두발자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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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1. 개요2. 상세
2.1. 단정한 머리
3. 두발자유화 운동사례
3.1. 대만의 두발자유화3.2. 일본의 두발자유화3.3. 중국의 두발자유화3.4. 한국의 자유화 운동
3.4.1. 약사3.4.2. 내용3.4.3. 무엇이 문제인가?3.4.4. 현황
3.5. 교도소의 두발자유화
4. 학교 이외의 사례
4.1. 군대의 두발자유화4.2. 성직자의 두발자유화
5.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두발 자유화'라는 말 자체가 매우 창피한 일이라 생각한다. 왜 아이들의 머리를 규격화 시키는 것인가. 이(두발규제)는 일제강점기의 안 좋은 잔재이며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다. - 성시경

자꾸 억압 받는 에너지가 학생들에게 오히려 부정적인 에너지를 끼칠 것이다. - 하림[1]


頭髮自由化

중학교고등학교에서 두발의 길이, 모양 등을 제재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2. 상세[편집]

대한민국 헌법에 보장된 신체의 자유에 어긋나고 구 일제시대 획일화 교육의 잔재라는 주장과, 순탄한 단체생활과 학생의 원활한 관리를 위해 필요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지켜줘야 한다는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두발자유의 정의는 단순히 길이의 자유화에서부터 염색/파마 등 완전 자유화에 이르기까지 학교마다, 개인마다 어느정도 의견의 차이를 보인다. 단어의 의미만으로 보면 완전 자유화에 가까우나, 시행한다는 학교를 보면 길이는 자유화하되 염색/퍼머는 제한하는 경우가 많다.(지방은 아직도 두발 길이를 규제하는 중,고등학교가 많다.)

본래 개화기 시절부터, 근대교육은 사실상 일본의 근대교육을 상당부분 참고한 형태로 도입이 되었는데, 당시 일본 근대 교육은 학생을 사관 생도처럼 육성하는 방식이었다. 학생을 하나의 인간으로 보기 보다는 전체주의에 입각한 하나의 고급 인력으로 파악한것. 그렇기 때문에 두발부터 복장까지 철저하게 군대식 체계를 띠게 된것이다. 사실상 사관생도를 육성하는 방식으로 중/고등학교가 운영되었던 것이다. 일본식 교복의 대명사인 가쿠란도 사실 당시 서양의 군복에서 원형을 따온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군인처럼 짧은 머리를 강요하는것은 당연지사. 이것이 일제강점기 당시 그대로 이어지면서 군국주의식 교육이 확립되었고, 해방 후에 별 비판없이 이어지다가 현재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 일본식 두발규제도 후술하겠지만 1차대전 당시 유럽군대(특히 독일)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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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정 화백 작품인 O달자의 봄에서 나오는 두발규제...실제로 아예 선생들이 직접 가위질을 해버렸었다.

한국에서만 유난히 제재하는 건 아니다. 복장 등에 관련된 규제는 전세계 어느 학교라도 어느 정도는 존재한다. 그 정도와 규제 방법, 그리고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교복이 없는 유럽 대륙의 학교들도 1960년대 초까지는 어느 정도 두발을 포함한 전반적인 용모에 제한을 가했었다. 꼬마 니콜라처럼 68혁명 이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에서 초등학생들조차 죄다 가르마 탄 머리에 양복 차림이던 이유가 이것. 미국도 마찬가지라 1950년대까지는 학생이고 일반인이고 남자가 귓볼 밑으로 머리를 기른다는 건 상상도 못하던 시절이었다. 현대에도 해외의 기독교 계열 사립학교는 꽤 복장, 두발 규제가 생각보다 엄한 편이다.

관리의 편의성을 위해 이런 제도를 도입한다고 해도, 단순히 어렵다는 혹은 귀찮다는 이유로 실제로 이 제도의 당사자들인 학생의 의견 반영을 통해 적절한 합의를 도출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행한다는 것은 물론 문제가 있다. 두발자유화는 학교-학생 간의 문제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와 학부모, 교사와 학생의 요구사항이 얽혀있는 문제다. 하지만 두발규제의 근거로 사용되는 성적이나 치안 등과 두발자유의 연관성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나 통계 등이 없는 상태라 제자리걸음 중.

KBS1 라디오 열린토론 2009년 12월 22일 방송분 '경기도 학생인권조례안, 어떻게 볼 것인가?'에서 학생인권조례안에 대해서 이에 반대하는 인사가 이에 대해 "전교조라는 좌익용공단체가 국가를 전복하여 적화통일을 이루기 위한 사악한 의도로 추진하는 것"이라고 발언했다.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김상곤 현 교육감이 재선에 성공함에 따라 경기도 교육청에서는 조례안을 발효하기 위한 수순을 밟기 위해 일선교사들에게 의견을 청취 중인 상황이다.

2010년 10월에 경기도에서 학생인권조례가 발표되었다. 깽판치는 교장이 나오고 있는 듯 보이지만, 2012년에 서울시 학생인권조례가 발표되었다.

머리를 짧게 깎고 다니는 어른도 있으니 학생 때 밀고 다니라는 논리를 펴는 사람이 있으나 강제로 머리를 미는것과 자신이 선택해서 삭발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2.1. 단정한 머리[편집]

학교에선 (남교사 및 남학생에게) '단정한 머리'를 하라는 것이지 두발을 규제하라는 것이 아니라는 논리를 펴기도 한다. 기준은 시대마다 달랐다. 1970년대까지는 반삭(일명 '밤송이 머리', 3mm~1cm 이하)이었다. 현재에도 '단정한 머리'에 대한 기준이 없다. 대다수 형용사처럼, 원천적으로 형용사 '단정하다'의 척도는 절대적이지 못하여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한편, 다음처럼 의문을 던져볼 수가 있다.

과연 김경호, 박완규, 김태원(부활) 등은 단정한가? 단정하지 못한가?
김광규, 이덕화 등 탈모인들의 머리는 단정한 머리인가?
홍석천, 구준엽, 드웨인 존슨(더 락) 등 스킨헤드는 단정한 머리인가?


현재는 투블럭이 유행하는 고로, 귀두컷을 의미하는 말로 변질되었다.

3. 두발자유화 운동사례[편집]

정권은 잘 알고 있었다. 집을 나서면서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는 사람은…

'베일이 잘 씌워졌나?'
'나를 채찍으로 때리면 어쩌지?'

…더 이상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나의 사상의 자유는 어디 있지?'
'나의 언론의 자유는?'
'내 삶은 살만한 걸까?'
'정치범들은 어떻게 된 걸까?'


-페르세폴리스 2권 152페이지, 이란 "호메이니"통치 시기


어느정도의 규제는 어느 나라나 있지만 특히 신체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측면에서[2] 일반적으로 독재가 심한 국가에서 두발과 다른 복장까지 규제를 한다. 대한민국, 일본, 대만민주주의 국가이면서 오직 학생에게 두발을 전면적으로 규제하는 나라는 일제 군사주의의 교육이 이식되면서 "아시아적 공동체주의 독재"를 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3.1. 대만의 두발자유화[편집]

2005년 4월 23일 中華民國學生反髮禁自治協會 ; 중화민국학생반발금자치협회 설립
(반 발금 = 두발규제(발금) 반대)
(협회장 北市成功高中升高三的李建緯和創會會長 ; 이건위, 타이페이 성공중고교 고3학년)
反髮禁自治協會 , 인터넷 사이트 오픈, 회원수 96,000명 확보

6월 19일 타이페이FM101.7, 中華民國學生反髮禁自治協會 회견
7월 19일 "我的頭發自己管" (아적두발자기관 = 내 머리는 내가 결정한다) 구호

홍보동영상 제작, 인터넷 배포


7월 19일 오후 1시, 타이페이 교육부 청사 앞 첫 시위
7월 24일 오전 10시 30분, 타이페이 교육부 청사 앞 시위 전격 결행

대만 남부도시 카오슝 시민광장에서도 중고교생 시위 전격 결행


7월 25일 대만 교육부 두발규제 전면폐지 결정

2005년 대만 정부는 새학기가 시작되는 오는 9월부터 초중고생의 두발 자유화를 선언하며 신발, 양말, 복장 등에 대한 규제의 철폐도 검토하겠다고 발표한다. 이런 정부의 결정이 있기까지 대만 청소년들은 4월 23일 인터넷 사이트를 열고 11만명의 청소년들의 회원을 모았다. 이들은 24일 교육부 청사 앞에서 시위를 열었으며 결국 교육부장관의 면담을 얻어냈다. 면담이 있은 직후 다음날인 25일, 교육부는 공식적으로 두발규제의 종결을 선언한다. 이후 새학기가 시작되는 대만의 학교는 각 학교에서 학생들이 활발하게 두발규정에 대한 토론을 열며 교사들과의 적절한 규정에 대해 논의하였고 두발규제는 철폐되었다.

대만의 경우, 2000년대 들어서 권위주의 정권이 민주화되는 정권교체가 이루어졌고 그 이후에 2005년 학생들의 요구를 교육부가 전격 수용하면서 두발규제폐지 지침이 내려지게 된다. 반면 한국의 경우 3s정책으로 두발자유를 전격적으로 수용하였던 전두환 정부에서 노태우, 김영삼 정부로 가면서 오히려 국민의 요구에 따라 두발규제가 심해졌다.[3]

3.2. 일본의 두발자유화[편집]

지역에 따라서는 차이가 있다.[4] 한국의 두발규제도 일본에 의해서 들어 온것이다.[5] 해방이 되고 두발규제는 여전히 지속되었으나, 1960년 전공투등의 활발한 학생운동이 이루어지고 관리교육[6] 반대운동이 일어났다. 젊은층의 자유주의적 성향이 가속화되고 관리교육 반대운동이 지속적으로 두발 및 학생 생활지도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 결과, 학생의 두발규제도 완화되고 자유로운 연애가 가능한 사회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일본의 고등학생들은 학생회자치와 방과후 자치활동[7] 등 많은 부분이 여전히 침해당했다. 하지만 전공투의 몰락과 일본내의 사회주의 세력의 종말, 극우의 성장과 더불어 일본인 특유의 순종성까지 더 해 일본의 학생운동은 시작도 못해보고 멸종되었다. 유토리교육을 받은 세대가 중고등학생이 되자 문부과학성은 두발규제, 자유연애, 복장규제를 완화하였고 일본의 교원노조는 학생들의 자치화를 지원하였으나 일본의 학생들은 자치적이고 조직적이며 지속적인 학생조직을 만드는데 실패하였다.

2010년대 기준으로 사립학교나 오키나와[8] 쪽 학교를 제외하면 여러 중고등학교에서 두발규제가 완화되었다. 그래도 빡빡 밀고다니는 학생들이 아예 없는 건 아닌데, 이런 학생들은 야구부 같은 스포츠 동아리 소속이거나 부모가 선종, 밀교 종파에 속한 대처승인 경우가 많다.

3.3. 중국의 두발자유화[편집]

현재 중국은 외국인학교를 제외하고는 80년대 한국의 고등학교와 상황이 흡사하다고 한다. 일반 시민의 인권이 제한되어있으므로 학생들의 인권도 지켜지지 않는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에 대항한 학생운동도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3.4. 한국의 자유화 운동[편집]

우리 청소년들은 미래의 주역이자 언제나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사회 발전에 한 몫을 해왔다. 그러기에 마땅히 그 위치에 걸맞게 자신의 개성과 의사를 자기 뜻대로 표현하고 자유와 권리, 인권을 제대로 누려야 한다.

하지만 오늘날 경쟁을 강요하는 입시위주의 학교 교육 안에서 권위에 대한 순종과 ‘학생’으로서의 의무만을 강요당해 왔다. 이런 현실을 뚫고 우리는 오늘 ‘두발자유화를 위한 청소년 행동의 날’을 열게 되었다. 이 역사적인 자리에서 앞으로 우리 청소년들은 우리 자신을 억압하는 부당하고 불합리한 현실에 순응하고 체념하는 존재가 아니라 당당하게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자기 목소리를 내는 참된 존재로 거듭날 것을 선언한다.

두발 규제는 명백하게 신체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인권 침해에 해당한다. 머리카락을 얼마나 기를 수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 내 머리카락을 함부로 만지고 기준을 정해서 강제로 자르게 하는 규정을 세우는 것 자체가 반 인권적인 행위라고 보아야한다. 현재 교육부에서 각 학교에 내려 보낸 두발규정 관련 지침은 이전보다 한 단계 나아졌지만 불충분하며 실제 학교에서 실현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아직도 많은 학생회들이 학교 측의 힘에 떠밀려 제대로 활동을 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학생대표의 학교운영위원회 참관은 학생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어렵다. 현재로서는 청소년들 스스로의 힘에 의해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서 실현되는 진정한 두발자유화를 이룰 수 없다는 것이 우리의 뜻이다.

두발 규제 문제를 포함하여 학교에서 일어나는 모든 청소년 인권 문제가 개선되기 어려운 것은 바로 입시위주의 교육풍토 때문이다. 진정한 교육의 목적은 사람을 사람답게 길러주는 것이지 입시 성적을 올리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의 학교는 청소년들의 모든 자유로운 생각과 활동을 ‘입시’라는 이름으로 묶어놓고 오로지 시험 문제 몇 개를 더 외우게 하고 경쟁을 강조하면서 자기 자신에 대한 진지한 생각과 고민을 할 시간을 주지 않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청소년들이 어딘가에서 입시경쟁으로 고통 받고 있다.

최근 내신 성적에 상대평가제도가 도입되어 많은 청소년들을 죽음으로까지 내몰게 한 이러한 입시 교육의 폐해는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정부와 교육 당국은 이러한 문제의 해결과 제대로 된 청소년 인권의 보장을 위해 입시교육의 문제점에 대한 확실하고 효과적인 해결책을 만들어야 한다.

더 이상 청소년들의 목소리를 덮어두려 하거나 왜곡하지마라. 더 이상 어리다는 이유로 우리의 목소리를 무시하지마라. 우리는 생각할 줄도 알고, 잘못된 것에 대해 분노할 줄도 안다. 진정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면, 먼저 우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들어라.

[9]

3.4.1. 약사[편집]

1995년 - 최우주 군 강제 야간자율학습 위헌소송제기 의사표명

◎ PC통신 학생복지회 결성, 본격적으로 '학생인권'이라는 개념을 도입함


1998년 - 송파공고 학내 두발자유 종이비행기·풍선 시위로 두발자유화.

2000년 3월 - '학생인권과 교육개혁을 위한 전국중고등학생연합(학생연합)' 결성

◎학생인권보장과 학교민주화를 필두로 하는 청소년 주체 대중조직표방


2000년 5월~12월 - 두발자유화 운동 전개
온라인 서명운동 14만명 돌파(청소년 웹연대 with)
학생인권&학교민주화 선언 및 오프라인 두발자유화 시위(학생연합)

2001년 - 학교운영위원회 학생참여 운동(학생연합)

◎ 학내 운영 결정의 학생참여를 통한 형식적 학교민주주의 주장


2002년 - 교육부 공교육 내실화 정책관련 야간자율학습 합법화에 반대하는 운동(학생연합)관련기사

2003년 - NEIS반대 운동(청소년의 힘, 민학연, 학생연합, 아이두, 고슴도치 등)관련기사

◎ 정보인권 개념의 등장과 확산.

18세 선거권 운동(18세 선거권 낮추기 연대, 낮추자, 등)

◎ 청소년의 사회적, 정치적 지위를 얻어 내고자한 운동. 청소년을 미성숙하게 바라보는 기존의 인식을 깨기 위한 시도


2004년 - 학내 종교자유를 위한 1인 시위 및 단식투쟁 & 대장정(로이 등)

◎ 전 대광고 학생회장 강의석군의 1인 시위를 통해 촉발, 폐쇄적이고 수직적인 학교구조를 이용한 미션스쿨의 파행적 종교강요 행위가 알려짐.


2005년 - 학생회 법제화 운동 (발전하는 학생회 가자 등)

◎ 유명무실한 학생회의 실질적 권한회복을 위해 법제적 대안제시.


2005년 3~4월 - 서명운동, 락카시위

5월 7일 - 내신등급제 및 입시과열로 숨진 학생추모대회(21세기 청소년공동체 희망)

2005년 5월 14일 축제

2005년 5월~6월 송파공고, 풍생고에서 학생들의 시위가 일어남

2005년 6월~11월 서울, 수원, 전주/진주 집회

3.4.2. 내용[편집]

한국의 경우에는 군사주의 독재속에서 장발이 어른아이할 것 없이 전부 규제되었다. 1987년 당시 현대중공업 노조 위원장이었던 이갑용 씨가 노조를 결성하고 노동자들이 1순위로 해결하고자 한 것이 '두발규제'였다. 당시에는 공장 문 앞에서 노동자들의 머리를 바리깡으로 밀어버리는 일이 성행했다는 것이다. 이 때의 두발은 노동자들에게 단순히 머리카락이 아니라 굴종, 체념, 부끄러움, 억울함의 상징이었다. 이후 민주화가 되면서 성인들의 규제는 사라졌지만 학생들의 경우 악습이 전통으로 미화되면서 유지되어왔다.

하지만 1983년 두발규제가 상당히 완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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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후반 한 서울소재 고등학생의 두발 상태.

하지만 노태우, 김영삼 정부로 가면서 두발규제가 심해졌다.

2000년[10] 광화문과 교육부 앞에 몇 만명이 모여 집회를 요구하고 교육부 차관이 학생대표와 면담을 했는데 교육부는 명백하게 반대의사를 밝히는 대신 얼버무리면서 시간을 끌었고 대만과 달리 학생회 등의 자치조직을 가지지 못하고 단발성으로 모인 학생들은 결국 해산당하였다.

2005년에도 시위가 있었지만 2000년의 패배에 대한 학습과 신자유주의와 학벌주의 교육광풍 확대된 상황은 안좋아 힘이 약했으며 해산당하였다.

2009년 12월 경기도 교육청에서 학생인권조례 초안이 발표되었다. 청소년 활동가는 2010년 지방선거 때 진보교육감경선에 참여하였다. 이후 학생인권조례가 2010년 10월 경기도에서 발표되었다.

3.4.3. 무엇이 문제인가?[편집]

한마디로 학생이 국민으로서 지닌 기본권인 신체의 자유를 억압하는 인권침해이기 때문이다. 두발제한이 인권 침해 행위이라는 걸 모르는 게 더욱 문제다. 즉 이것이 문제라는 인식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만약 '단정해야 한다'는 이유로 학생이 두발제한을 해야 한다면 마찬가지로 선생님들도 '단정해야 하기 때문에' 두발제한을 하는 것이 논리에 맞을 것이다.[11] 현재 일부 학교에서 두발자유화에 대한 목소리가 성과를 보고 있지만 상당수 학교에서는 학생의 두발규제를 들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에서 두발자유화가 강력이 주장되었던 제일 큰 이유는 바로 일제의 잔재라고 하기 때문이다. 1895년에 시행됐던 단발령의 영향을 받았던 것과 70년대 정부의 단발령이 악습처럼 내려온 것이 학생의 두발규제이며, 그런 악습을 "학생들은 단정해야 된다."라는 말도 안 되는 기준을 심어가면서, 학생들을 통제하려는 것이 과연 정상이냐는 것이다. "학생은 단정해야 된다."라는 기준부터 애매모호 하다. 자유로운 머리를 하고, 학생 드라마에 출연하는 연예인들이 단정하지 않다고 얘기할 사람이 있을까?

"짧은 머리의 학생은 단정하고, 긴 머리의 학생은 불량하다."라는 주장은 다음의 두 마디로 반박이 가능하다.

  • 일진이 머리를 짧게 깎고 다니면, 그 일진은 착한 일진이 되는 것이며

  • 모범적인 학생이 치렁 치렁 머리를 기르고 다니면, 양아치가 되는가?


'머리를 짧게 해야 하는 이유들 대다수가 변명거리처럼 보이며 자기들이 보기 싫으니깐 짧게 자르라는 말'로 밖에 안보인다.
학생도 인권이 보장되어야 하는 엄연한 대한민국의 국민 중 한 사람이다. 투표권만 없을 뿐이다.[12] 또한 학생은 군인이 아니며 범죄자도 아니다.

3.4.4. 현황[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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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발규정의 예시. 서울 성남고등학교 두발규정. 실제로 이 규정은 서울성남고등학교보다는 성남고등학교와 함께 있는 성남중학교에서 강요받고있다.

두발자유화를 하는 학교는 늘어가고 있지만 현재도 학생주임이나 선도부원[13]이 단정하지 못한 학생을 단속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14] 전근대적인 방식과 기준으로 학생들을 통제하려고 하는 건 자유 민주주의 원칙에서도 어긋나는 일이다. 학업 및 인성과의 연관성이 전혀 없는 두발규제를 들어 청소년의 신체의 자유와 인권을 무시하는 행태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2015년 교육부 컨설던트의 지식인 답변을 참조하면 한국 중학교의 60%가 두발자유화를 했다고는 하지만 신빙성 여부는 둘째치고 이 의견을 사실이라고 가정해도 40%의 중학교는 여전히 과거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전광역시의 경우 고등학교 75%, 중학교 96%가 두발 단속중이라고 하며, '두발단속은 인권침해'라는 의견을 제기하고 유인물을 배포한 중학생에게 학교 측이 징계를 내려 파문이 일었다. 그것도 교육청이처벌하지 말라 했음에도.#
그리고 그 학생들을 도와줬던 분들이 이걸 또 만들었다.

현 상태에서는 아무리 적어도 두세 세대 정도는 지나야 두발제한이 모든 학교에서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그 외에 집단지성을 동원한 행동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대전의 다른 고등학교에서는 국민청원이 올라왔다. 이건 어떻게 될지...[15]

영재학교, 과학고등학교는 이러한 두발제한이 없는 것이 일반적이기는 하다. 물론 국제학교도 포함...이지만 이건 한국 학교가 아니므로 제외.

영훈국제중학교는 예외다. 선배들이 지켜온 전통/학생답게라는 명목으로 한달에 한 번 꼴로 5/6 교시를 비워 용의복장검사를 하며 걸린 학생들에게 체육담당/인성교육담당 교사가 고성과 욕설을 퍼붓는다. 상대가 선생님이라는 점 때문에 학생들은 매우 무기력함을 느낀다. 과학고등학교의 경우 남학생인데 머리카락이 여자만큼 긴 사람이 있긴 있다.

하지만 현재도 많은 중학교, 고등학교에서는 두발의 길이, 모양 등을 규제하고 있다. 두발자유화를 하는 학교가 늘어가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 이런 학교가 상당수 존재한다는 것부터 큰 문제이다. 일제시대부터 존재한 학교이거나 지방의 학교일수록 두발규제가 심하다.[16]

3.5. 교도소의 두발자유화[편집]

원래 낙인을 찍고 권력을 과시해서 꼼짝 못하게한다는 측면에서 옛날부터 외국의 교도소도 두발 검사를 실시하고 바리깡으로 밀어주었다고 한다.[17] 그러나 인권이 향상되면서 차차 없어지고 지금은 재소자들의 상징처럼 머리에 각인된 삭발을 하지 않아도 된다. 물론 재소자들의 머리가 길어져서 재소자 교화에 문제가 생겼다는 소식은 없다. 머리 긴 재소자들이 출소하여 재범 비율이 높아졌다는 통계도 없다. 단순히 탄압의 수단일 뿐인데도 이것을 사회불안과 엮는 이유는 그들이 내는 목소리가 두려워서였다.

김대중 정부 때 재소자의 인권은 급격히 향상되었다. 그 이유는 김대중 본인이 교도소에서 무수히 많은 고초를 당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김대중 정부 이전엔 교도관 폭행으로 죽는 재소자도 무수히 많았고 수많은 미친짓과 신고식이 묵인되는 등. 거의 무정부 상태나 다름없었다고 한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생겨진 이후 처음 착수한 일이 전국의 교도소를 돌며 인권침해를 조사하는 일이었다.

문민정부 출범이후 교도소의 인권개선이 꾸준히 이루어지고 1999년부터 재소자의 두발제한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높고 항의가 이어지자, 2000년 7월 28일 수형자의 명예감정 보호차원에서 1999년부터 수원교도소 등 4개 교도소에서 4개월간 시범 시행했던 재소자들의 두발자유화를 전국의 교도소, 구치소, 감호소로 확대 시행함으로서 일반 수형자 3㎝, 모범 수형자 5㎝로 제한돼 있는 기결수용자의 두발 길이를 자유화해 마음대로 머리를 기를 수 있도록 허용키로 하는 것을 골자로 한 '21세기 선진 교정행정' 시책을 시행했다. 그러나 파마는 금지된다.

4. 학교 이외의 사례[편집]

4.1. 군대의 두발자유화[편집]

군대에서 위생과 청결 개념이 부족하던 고대에는 두발이 자유였지만, 근대 이후 의학이 발전하면서 군대 내에서도 위생 개념이 중요시되면서 두발을 규제하기 시작했다. 단, 근대 이후 서구 군대에서 등장한 두발규제는 위생과는 거리가 먼, 그저 뽀대용 및 통일성, 군기잡기의 일환이었을 뿐이었다. 짧게 깎기는 커녕 되려 길러서 꽁지머리를 만들어야 했는데, 위생 관념이 희박하던 시절이고 한 번 만드는 데 빡센 스타일이어서 비누나 기름 등으로 떡칠을 해 올백을 만들고 그걸 몇 주씩 방치해서 각종 피부염에 시달렸다. 게다가 19세기 초까지 머리카락을 하얗게 만드는 것이 유행했고, 군대에선 이걸 의무적으로 하게 해서 밀가루를 뿌려 하얗게 만들었는데[18], 이 역시 만드는 데 힘드니 오래 방치하는 게 일상이었고 이건 피부 자체의 문제뿐 아니라 땀 등으로 인해 부패하면서 악취를 내뿜고, 등이 이를 갉아먹으러 밤중에 달려드는 등 여러모로 골치아팠다. 결국 민간에서도 19세기 중반부터 남성들의 머리 길이가 짧아지기 시작하면서 장발 규정이 없어져 올백 스타일 정도만 유지토록 했다.

현재는 전세계 대부분의 군대가 짧은 머리를 유지한다. 제1차 세계대전 때 참호전의 불결한 환경으로 이가 번식하자 삭발 명령이 내려지기도 했으나, 2차 세계대전 이후까지도 한동안 올백 스타일이 신분을 불문하고 기본형으로 자리잡았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독일군에서는 두발이 자유화되었다가 여러가지 이유로 다시 규제로 바뀐일도 있었다. 자세한 건 이곳 참조 타 유럽 국가들도 마찬가지인데, 장발이 적극적으로 허용된 시절의 서유럽쪽 군인들이 어떤 수준으로 머리를 길렀는지는 아놀드 슈워제네거의 군 복무 시절 사진만 봐도 알 수 있다(...)

미군에서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짧은 군대머리가 필요하다고 가르치고 있다.

  • 통일성 - 군대라는 조직 특성상 개성보다는 같은 부대원으로서의 통일성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 사제 전투복을 허용하지 않는 이유[19]이기도 하다.

  • 위생 - 군대는 장기간 출정나가는 경우도 많고, 경우에 따라서는 씻거나 머리를 감기에 물이 부족한 경우도 많다. 이 때 머리가 짧으면 필요한 물도 적고, 청결을 유지하기도 쉽다. 머리가 길면 머리에 가 생기는 등 비위생적인 환경이 조성되는 경우도 많으며 방탄헬멧을 착용시 땀이 많이 찬다.

  • 화생방 보호 - 머리가 길면 백병전시 적에게 잡힐 위험이 있다...지만 과거 얘기고 현대에는 백병전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현대전에서 보다 중요한 이유는 화생방전 발생시 머리가 길면 가스 마스크로 보호하는 것이 힘들다는 점[20] 때문이다.


위의 내용을 종합해 보건데 아무래도 군인은 머리가 짧은게 유리한 건 사실인지라 군인에게는 두발자유화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희박하다. 다만 여군의 경우 심리적 거부감[21] 등의 이유로 적용되지 않는다.

참고로, 미군의 두발 기준은 길이 제한이 아니라 남군 기준으로 모자를 썼을 때 드러나는 머리카락을 전부 밀어야 하고, 앞머리를 내렸을 때 눈썹을 덮거나 하면 안 되는 정도이다. 즉, 규정상 올백 등의 스타일도 해당 범위 내에서 얼마든지 신분 불문하고 할 수 있다. 삭발한 사람이 많이 보이는 것은 관리하기 귀찮아서 밀어 버리는 사람이 많기도 하고, 서구에서 남성들의 삭발이 유행해 이에 대한 거부감이 우리보다 훨씬 덜한 점, 그리고 서양인의 두상이 전반적으로 삭발을 해도 덜 흉하다는 점 등으로 인한 것으로, 규정상 삭발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짬 좀 되는 장교부사관, 혹은 삭발이 영 안 어울리는 두상이 많은 동양계 등은 머리를 적당히 기르는 경향이 많다. 또한, 수염 기르는 행위가 특별한 예외를 제외하고 금지되어 있는 국군과 달리, 콧수염까지는 기를 수 있다. 물론, 훈련병이나 사관생도 등 양성 과정의 인원들은 수염은 못 기르고, 훈련병은 남군 기준으로 삭발 혹은 그에 가깝게 깎은 뒤 수료 직전 즈음부터 조금씩 기를 수 있다.

국군의 기준은 육군의 경우 흔히 9㎜(병 기준)로 밀게 되어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각 군별로 다르다. 가장 머리가 긴 곳은 해군으로, 모자 썼을 때 튀어 나오는 옆머리와 뒷머리는 짧게 잘라야 하나, 앞머리 및 윗머리는 신분 불문하고(수병이든 장교든 간에) 11㎝까지 기를 수 있다. 아무래도 육군보다 위생 관리가 수월한 근무 환경이 많이 보장되고, 해군 복제의 특성상 머리가 너무 짧으면 굉장히 보기 흉하다는 점 빠박으로 밀고 세일러복 입어봐라, 함정 근무자의 경우 유사시 머리를 잡아당겨 물 속에서 끌어내기 수월한 점 등이 그 이유이다. 해병대의 상륙돌격머리가 윗머리는 기르는 형태인 것도 같은 이유이다.[22]

그리고 육군도 실제로는 부대마다, 지휘관마다, 보직마다 다르다고 보는 것이 옳다. 칼같이 육규대로만 적용하는 부대가 있는가 하면, 육규대로 밀면 너무 짧아 보기 흉하다고 지적하는 부대도 있다. 대체로 전투부대가 빡빡하고 국직부대기행부대는 널럴하다는 인식이 있지만, 모 국군병원의 경우 전원 훈련병(…) 수준의 머리를 요구하고 있다. 그렇다고 아예 편견만은 아닌게 전투복보다 근무복이나 사복을 입을 일이 더 많은 일부 보직들은 머리를 기르는 것이 허용될 뿐더러 오히려 권장된다. 애초에 해당 보직들이 근무복이나 사복을 입는 것부터가 군인 티를 덜 내려는 목적이니 당연하다. 물론 그렇다고 덥수룩한 장발이 허용된다는 뜻이 아니라, 적당히 간부 정도의 단정한 머리가 권장된다. 특수 보직의 경우 아예 민간인 수준의 두발이 허용되는 경우도 있다.[23]

4.2. 성직자의 두발자유화[편집]

가톨릭에서는 사제와 수도자가 전통적으로 정수리를 삭발하는 관습이 있었으나 1972년 폐지되었다. 이후로는 전통주의를 고수하는 일부에서나 볼 수 있게 되었다.

불교는 국가, 종파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정통 교리에 따르면 머리카락은 번뇌를 상징하므로 무조건 삭발하도록 되어 있으나 대한불교천태종이나[24] 일본 정토진종처럼 장발을 허용하는 종파들도 있다.

5. 관련 문서[편집]

[1] 두 대화는 2013년 5월 5일, MBC FM4U <성시경의 FM 음악도시>에서 나온 이야기이다.[2] 헌법에서 괜히 보장되어있는게 아니다.[3] 한국 국민들의 경우 그 당시에 정치적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은 강했으나 학생의 인권에 대한 인식은 낮았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또한 그 당시 독재정권을 타파한 이후 정치적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던 386세대 운동권 특유의 "하라는 거 빼고 다 하지 마라" 로 대표되는 엘리트주의적 가치관과 80년대의 경제호황기를 거치면서 얻은 "노력한 만큼 돌아온다"는 이상주의에 영향을 받은 교육관도 한 몫 했을 가능성이 있다.[4] 고베나 나고야 같은 곳에서는 1990년대에도 완전 빡빡이 남학생을 쉽게 볼 수 있었다.[5] 사실상 일본의 1940년대 이후 교육과정은 중학생 이상을 일종의 생도로 보는 생도교육이었기 때문에 두발규제가 엄격했다. 물론 그 이전까지는 그다지 두발규제가 심하지 않았다. 별건곤을 비롯한 당시 조선어 잡지에는 두발규제가 강화됨으로서 "이런 머리로는 연애를 못한다"고 하소연 하는 학생들의 이야기가 실렸다.[6] 학생을 관리 대상으로 보고 행동 하나하나 전부 지도해야 한다는 교육이다.[7] 우리가 애니에서 흔히 보는 수상실적이 없다고 부를 무단 폐부하는 일은 사실 매우 흔한 일이다. 당하는 입장으로선 어이가 없는 셈[8] 사실 이곳은 후덥지근해서 머리를 잘 못 기르는 환경이다.[9] 두발자유화를 위한 학생운동본부 2005년 5월 14일[10]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이후 인터넷의 발달로 두발자유화 운동이 일어난 시기다.[11] 실제 과거 엄격한 일본 사립 고등학교(닛세이 학원)는 한때 군사식 커리큘럼을 학생들에게 적용하면서 두발제한을 매우 철저하게 하였는데 실제 한 동영상에서 학생은 물론이고 교사 이사장까지 모두 과거 황군(구 일본제국군)처럼 거의 대머리처럼 짧게 민 모습이 보였다.[12] 아수나로에서 청소년에게 교육감 선거에 한해 투표권을 달라는 것도 두발규제 때문이 크긴 했으나 교육감이나 교육부 정책에 의해 영향을 받는 건 학생인데, 영향을 받는 학생에게는 투표권이 없다는 것이 모순이라면 모순이다. 시대에 역행하는 공약과 정책을 내밀고 당선이 되어버리는 교육감이 나오게 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에게 오기 때문.[13] 물론, 이들도 학생인지라 위에서 하라는 대로 움직이는 피해자 입장에 있다고 볼 수 있다.[14] 가장 엄격한 일부 학교는 남학생의 경우 군인 머리와 흡사하게 앞머리는 당연히 없어야 했고 윗머리 기준 14mm~15mm까지 짧게 자르게 하였다. 머리길이를 잴 때 로 직접 재거나 혹은 손을 머리 카락 사이에 집어 넣어 머리카락이 얼마나 삐져 나오는지까지 확인하는 경우도 있어서 우스갯소리로 '스님 머리, 스님 학교'라는 별명같은 걸 붙이기도 하였다. 신문기사 참고[15] 청원 3일째 정오 기준 약 300명이 동의했다.[16] 전라남도 여수시의 모 일반계 고등학교는, 2006년에 1학년 전체에 삭발해서 올 것을 명령했다. 스포츠 머리였던 학생도 '머리를 자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맞을 정도였다. 이 단발령으로 인해 삭발했던 한 학생은 여자친구와 헤어지게 됐는데, 그 학생의 담임 선생님은 "여자친구가 너를 사랑한 게 아니라 너의 머리를 사랑했다"고 개드립을 날렸다.[17] 나치 독일에서 유태인들을 강제로 수용소로 끌러갈 때 제일 처음 순서가 머리를 강제로 미는 것이었다.[18] 때문에 장교들 중엔 가발을 쓰는 이들도 있었다.[19] 하지만 사제의 기준이 옷의 형태와 재질 등에서 차이를 보이는가 이기 때문에, 지급품과 동일 사양의 것을 구입해 착용하는 것은 뭐라 하지 않는다. 국군은 좀 본받아라.[20] 이것은 군대에서 면도를 규정하는 이유이기도 하다.[21] 여자 입장에서 스포츠 머리를 하는 건 통상적으로 부담이니까.[22] 그런데, 많은 대한민국 해병대원들이 믿는 것과 달리, 이 머리 모양이 탄생했다고 알려진 미합중국 해병대는 이런 머리를 규정한 적이 없고 유행 정도만 했다.[23] 전원 2:8 가르마에 뒤로 빗어 넘기라고 포마드까지 보급나오는 제33헌병경호대가 대표적인 사례.[24] 비구니 한정. 비구승은 삭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