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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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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분류
2.1. 밀덕 독빠
2.1.1. 제1차 세계대전 독빠
2.1.1.1. 문제점
2.1.1.1.1. 독일은 지지 않았다는 착각 2.1.1.1.2. 가만히 있던 프랑스군 비하2.1.1.1.3. 독일 제국의 침략성 미화2.1.1.1.4. 벨기에에 대한 만행 옹호2.1.1.1.5. 독일군의 전투력에 대한 과대평가
2.1.2. 제2차 세계대전 독빠
2.1.2.1. 문제점
2.1.2.1.1. 독일군에 편파적인 서술2.1.2.1.2. 독일군과 히틀러의 전쟁범죄 물타기2.1.2.1.3. 독일 국방군 무오설2.1.2.1.4. 독일 무기 성능이나 기술의 과대평가2.1.2.1.5. 독일 전차에 대한 과도한 환상과 기대2.1.2.1.6. 독일 군조직의 과대평가2.1.2.1.7. 독일군의 전투력에 대한 과대평가2.1.2.1.8. 독일 전범 혐의자들에 대한 면죄부 및 미화2.1.2.1.9. 오스트리아에 대한 나치 책임 전가2.1.2.1.10. 총론
2.1.3. 현대 밀리터리 독빠
2.2. 정치 독빠2.3. 기술 독빠2.4. 스포츠 독빠
2.4.1. 독축빠
2.5. 문화 독빠
2.5.1. 판타지 독빠
2.6. 학문 독빠2.7. 역사 독빠
3. 특징4. 각국의 독빠
4.1. 일본의 독빠4.2. 미국의 독빠4.3. 독빠인 인물4.4. 독빠인 캐릭터
5. 여담

1. 개요[편집]

나는 독일이 너무 좋다. 그래서 두 개면 더 좋겠다.
- 샤를 드 골[1][2]


독일+. 독일을 아주 좋아하는 사람을 뜻한다. 아시아로 한정한다면 와패니즈의 서양 버전으로, 여러모로 상당히 대칭적이다. 특히 한때 벤치마킹의 대상이었고 2차 대전에서는 같은 추축국이었다는 걸 의식해서인지 일본쪽 미디어에서 독빠적 기질을 보이는 경우가 꽤 많이 있으며, 한국에서도 일본문화 덕후들이 이에 감염되어 독빠 성향을 보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한국인이나 중국인들이 와패니즈를 또라이로 보듯이, 프랑스인들이나 네덜란드인들이 이들을 똘아이로 보는 것도 비슷. 와패니즈에도 순수하기 일본문화을 좋아하는 양성이 있는가 하면, 일본의 병크나 군국주의까지 옹호하는 악성이 있는데, 독빠도 이런 양성과 악성 두부류로 구분할 수 있다.

2. 분류[편집]

2.1. 밀덕 독빠[편집]

밀리터리 덕후로서 독일을 좋아하는 부류. 사실 이쪽이 다수인데 국내에서는 이쪽도 크게 두가지 부류로 나뉜다.

미빠나 러빠(정확히는 소빠)들과 의견 대립이 일어나기도 한다. 영빠와 불빠와도 대립하지만 일단 미빠나 러빠에 비하면 소수라(특히 불빠) 주목받지는 못하는 편.

영어로는 Wehraboo(베어부)[3]라고 한다.

2.1.1. 제1차 세계대전 독빠[편집]

2차 세계대전 국방군과 현대의 연방군 빠들에 비하면 수가 적긴 하지만 1차 세계대전 제2제국 빠도 엄연히 존재한다. 오히려 요즘은 국방군&무장친위대빠나 연방군빠들보다도 더 기승을 부린다. 다만 밀덕. 특히 한국의 밀덕들 대다수가 워낙 1차대전엔 관심이 없어서 잘 모르는 것일 뿐.

1차대전 독빠들은 2차대전의 독빠짓을 하다가 그 뿌리가 되는 독일제국군까지도 숭앙하게 된 부류가 대부분이고 오직 1차대전의 독일만 좋아하고 나치정권시절의 독일은 부끄럽다고 하거나 혹은 역겹다고 하는 부류도 몇 있다. 독일 2차대전 고위직,즉, 히틀러를 비롯한 대부분의 나치 독일 수뇌부나 독일 원수나 장성들은 1차대전에 참전했고, 독일 제국군의 법동은 독일 국방군으로 바로 이어지기에 2차대전의 독일국방군을 빨던 독빠들이 1차대전의 독일제국군까지도 빠는 경우가 많다.

아는 사람도 별로 없지만, 독가스 공격, 민간인 폭격 시초는 독일 제국이다.

2.1.1.1. 문제점[편집]

나치 독일을 빠는 것은 범죄의 영역이지만, 독일 제국이나 독일 제국군은 사실 취향의 문제라고 봐도 된다. 1차대전의 독일 제국 자체도 군국주의-전체주의적이었을지언정 다른 연합국인 러시아보다는 훨씬 민주국가였고, 유대인들도 독일제국군에 광범위하게 복무했을 정도로 인종문제도 자유로웠기 때문이다. [4]

하지만, 근대 이후 전쟁에서 처음으로 민간인에 대한 폭격이나 학살을 저질렀고, 독가스를 대규모로 사용한 것도 독일이라는 것을 잊으면 안된다. 요컨대 나치독일군처럼 인간 말종들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빠짓의 대상이 될만큼 신사적인 군대 또한 절대 아니었다.

하지만 문제는 제국군을 너무 옹호한 나머지 나머지 1차대전 참전국들을 개무시하거나 제국군의 전쟁범죄까지 쉴드치려고 하는 것이다.

2.1.1.1.1. 독일은 지지 않았다는 착각 [편집]

2차대전 국방군빠들과 마찬가지로, 1차대전 제국군빠들도 협상국(연합국)의 승리는 기적이라능!이라거나 배후중상설을 굳게 믿고 독일은 1차대전에서 패한게 아니라 연합국들과 동등한 관계의 휴전을 맺은 것에 불과하다 라는 사람도 있다. 이들은 독일 제국은 군사적으로 패배한 적이 없고 오로지 내부의 적. 즉, 독일 혁명으로 인해 스스로 무너진 것에 불과하다 라고 주장한다. 그럼 백일 전투는? 우습게도, 이런 독일은 지지 않았다는 착각(특히 배후중상설)은 2차 세계대전 직전 아돌프 히틀러나치당의 프로파간다를 단순히 반복한 것에 불과하다.(...)

일단 따지고보자면 독일은 적국이였던 영국과 프랑스보다 열약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는데,전쟁에 모든 물자들을 소비하는데 영국 해군에 의하여 해상은 완전히 막혀버렸기에 내부의 상황은 순무의 겨울같은 끔찍한 상황들이 발생하고있었다.
적어도 영국과 프랑스,러시아등은 제2제국같이 외교등의 부문에서 엄청난 병크들을 일으킨다거나 무리한 해상 작전에 실패하여 해양을 봉쇄당하는 등의 병크등을 피하고 광활한 영토와 나름대로 쌓여있던 외교관계,식민지등의 여러 자원들을 이용하여 독일과 비슷한 수준의 물자 및 식량난에까지는 몰리는 것을 피하였다.

결국엔 영국 해군의 봉새를 뚫으려던 모든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서 대양함대는 수상병영 신세가 되버리고 본토에 프랑스,영국,러시아인들이 오는 것을 막았지만 영향력은 어찌할수가 없었던 1918년의 상황을 승리로 볼 수 있다는게 참 신기할 따름이다.

2.1.1.1.2. 가만히 있던 프랑스군 비하[편집]

밀덕독빠들의 특징이 항상 독일의 라이벌 국가인 프랑스군을 비하한다는 것인데, 마치 역사적으로 항상 프랑스군이 독일에게 호구 노릇을 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는 프랑스군이 독일측에 참패한 전쟁은 보불전쟁2차 대전 뿐으로, 1차 세계대전 때는 독일과 프랑스, 더 정확히 말하자면 협상국들과 동맹국들이 서로 대등하게 싸웠었다.

1차대전에서 독일을 포함한 각국이 참호전에 휘말려들어서 갖은 삽질을 했는데, 밀덕독빠들은 마치 프랑스만 참호전에서 삽질을 한 것처럼 왜곡을 하고 있다. 애초에 프랑스군만 삽질을 했다면 프랑스군과 달리 참호 돌격이라는 선택지를 고르지 않고 뾰족한 수를 이용해서 진작에 1차대전의 승기를 잡았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참호속에서 사이좋게 죽어갔다. 전차가 도입되서 참호를 돌파할 방법을 찾기 전까지 독일이건 프랑스건 영국이건 기관포 사선에 보병들이 돌격해야 했다. 거기에 최초의 전차를 개발한 영국과 최초의 회전포탑을 개발한 프랑스하곤 다르게 성능은 그렇지 않지만 육상전함에 가까운 A7V의 성능을 1차대전의 티거라고 부르면서 장갑을 왜곡하기도 했다.

또한 프랑스의 전략을 가지고 까는 경우도 있다. 프랑스는 개전시 알자스-로렌 지방으로 진주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알자스-로렌 지방은 역사적으로 독일계 공국들이 다스린 땅이었으나,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프랑스가 뜯어낸 땅이었다. 이를 보불전쟁에서 승리한 프러시아가 다시 뜯어낸 것. 그러나 그 사이 이 땅은 상당 부분 프랑스화 되어있었고(아일랜드 독립 시 영국으로 남은 북아일랜드를 생각하면 된다.), 프랑스 입장에서는 역사적인 치욕의 증거품이자 독일에게는 전리품과도 같은 곳이었다. 이 당시 프랑스 국민이 느낀 치욕과 복수심을 일부 표현(더 자극하는 역할도 하였다)한 작품으로 마지막 수업이 있다. 그만큼 알자스 로렌 지방은 프랑스인에게 있어 잃어버린 땅이자, 회복해야만 하는 실지였다. 더군다나, 이 지방은 프랑스 석탄 밑 철광석 생산량의 반 이상을 담당하는 요충지로서, 공업화의 원동력을 제공해주는 전략적인 요충지이기도 했다. 프랑스의 이런 사정을 꿰뚫어본 슐리펜은 일부러 알자스-로렌 지방의 방어선을 깊고 느슨한 종심으로 짜고, 주공을 벨기에-네덜란드로 우회기동하여 프랑스군을 와해시킬 계획을 가졌다. 실제로 독일의 슐리펜계획이 원안대로 실행되었다면 프랑스군이 포위되어 보불전쟁의 재현 또한 가능했기에, 전략적이고 승리지향적이기보다는 근시안적이고 감정적이며 지극히 정치적인 이러한 프랑스의 행보를 빌미로 까는것.

전부 맞는 말이기는 하다. 그러나 이런 논리라면, 독일 또한 똑같은 비평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 맹점. 굳이 히틀러까지 가지 않더라도, 1차대전시 독일이 패배한 가장 큰 원인중 하나가 독일이 같은 방법으로 더 큰 병크를 저지른 것. 독일의 모태였던 땅이자, 장교 및 지주들인 '융커'들의 기반인 프로이센 지방이 러시아의 위협에 노출된다는 이유로, 프랑스 전선에 할당되어야 할 병력을 대거 러시아전선으로 재배치 한것. 심지어 벨기에-네덜란드의 주공을 빼서 알자스-로렌 지방의 종심방어선을 더 두텁게 하여 슐리펜 계획을 말아먹었다. 마치 뭐 묻은 개가 뭐 묻은 개 나무라는격.

또한 1차대전 당시의 프랑스군을 정신론에만 입각하고 엘랑 비탈에 심취한 군대로, 2차대전 당시 일본군 과 비교하며 깐다.

이는 과대한 논리 확장에서 나온 것으로, 정신론을 강조한 프랑스군을 따라한 일본군의 졸전을 프랑스군에까지 적용시켜버린 것이다. 실제 1차대전 원수이자 총사령관이었던 페르디낭 포슈의 명언인(어린왕자에도 인용되었다) "전투에 이기는 것은 결코 졌다고 믿지 않는 것이다." 의 정신론은, 2차대전에서 일본군이 채용한 그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부 공통점만으로 프랑스군 전체를 일본군과 같은 레벨로 생각하는것은 지나친 비약. 비록 프랑스가 무리한 공세를 펴다가 많은 사상자를 낸 것은 사실이지만, 참호전의 수렁은 그당시 어떤 군대도 피할 수 없었다. 독일군도 전쟁 막바지인 1918년 봄, 동부전선에서 끌어모은 병력을 합쳐 루덴도르프 공세를 펴다가 수많은 사상자를 냈지만 결국 전선을 돌파하지 못해 멈추었고, 그 여파로 바로 이어진 연합국의 반격인 백일 전투때 변변히 저항도 못해보고 결국 항복에 이른것을 보면 독일이 엘랑비탈에 심취해서 무모했던 프랑스보다 별로 나을건 없었다. 이렇게 프랑스군을 과도하게 비하하는 경향은 독빠가 주류인 한국 밀덕의 특징이었던데다 프랑스군에 대한 정보 부족도 있었으며, 나무위키 내의 1차 세계대전 및 프랑스군 관련 몇몇 문서들에서 조차 이런 경향이 많이 보였으나 최근에는 1차 대전에 대한 정보가 많아짐에 따라 많이 개선된편. [5]

프랑스는 인구가 개전시 독일 인구의 반을 조금 넘는 60%임에도 불구하고, 추축국 주력인 독일서부군을 끝끝내 막아냈으며, 당연히 승전국의 최고 지분을 가지고 있었다.[6] 물론 독빠들은 2차대전에서 랜드리스를 강조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미국 때문에 진 것이지 프랑스군 때문에 진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미국이 연합국의 승리에 결정적 공헌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미 육군이 유럽 전장에 본격적으로 발을 디딘 것은 전쟁이 끝나는 해인 1918년 봄에 이르러서였다. 오히려 전쟁 준비도 안됐으나 프랑스군의 애원으로 대규모 동원을 하여, 준비도 되지 않은 군대로 독일군을 엄청난 목숨값으로 붙잡아둔 러시아가 더 큰 역할을 했다. 물론 이 타격으로 공산혁명이 일어나 망하지만.

동서의 양면전을 치루어낸 독일군은 물론 막강했지만, 1차대전의 승자는 연합측이었으며 서부전선의 주력은 프랑스군이었다. 끝물에 참전한 미국군, 과다출혈로 도중에 이탈한 러시아군, 전쟁 중반 이후에나 섬에서 본격적으로 기어나온 영국군[7]과 달리, 독일의 주력군과 처음부터 끝까지 맞상대한 것이 프랑스군이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프랑스군이 독빠들이 말하는대로 비정상적인 군대에 무능하고 약했더라면 전쟁이 5년이나 갈 이유가 없다.

2.1.1.1.3. 독일 제국의 침략성 미화[편집]

그리고 1차대전 독빠들은 독일 제국은 "평범한 다른 제국주의 국가들" 과 전혀 다를 바 없었던 평범한 나라였다고 주장한다. 물론 이것은 일부 맞는 말이기도 하다. 2차 세계대전, 나치즘에 잔뜩 물든 나치 독일이면 몰라도 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제국은 그냥 평범한 식민 제국 수준이긴 했으니까. 그러나 이러한 피장파장의 논리는 위험하다. 당장 1차대전 직전에 조선을 합병한 일본의 경우만 해도, "평범한" 제국주의 국가가 되어버린다. 조선을 비롯한 수탈당한 수많은 나라들 입장에서, 그저 시대가 그랬다는 이유가 변명이 되지는 않는다.

2.1.1.1.4. 벨기에에 대한 만행 옹호[편집]

1차대전 독빠들에게 가장 심각한 문제는 벨기에의 강간을 옹호한다는 것이다. 벨기에의 강간이란 독일 제국군이 벨기에를 무력점령 하면서 1914~1918년까지 벨기에인들을 마구 학살하고 수탈한 사건을 말하는데, 독일군의 고의적인 민간인 학살로 인해 1914년 한 해에만 1000명이 넘는 민간인이 죽었고, 디낭 시에서는 700명 가까히 되는 인명이 살해당했다. 벨기에의 적은 인구를 고려해볼 때 절대 낮은 수치가 아니다. 그러나 독빠들은 레오폴드 2세콩고인들 1000만 명 죽였다능!! 고로 벨기에는 당해도 싸다능! 이러면서 제국군의 전쟁 범죄까지도 옹호한다. 답이 없다 독일은 더도 아니라 콩고의 바로 남단의 나미비아에서 1904년과 1907년 사이에 식민지배에 저항하는 원주민 10만명을 학살했으며 (헤레로-나마 학살사건) 이는 20세기 최초의 제노사이드로 기록될만큼 잔혹한 것이었다.[8] 옆의 콩고에서 벨기에가 워낙 잔혹해서 뭍였을 따름이지만, 독일도 비슷한 짓을 한건 사실이니 벨기에의 악행을 들어 독일을 옹호하는거야 말로 전형적인 내로남불 논리이다.

이렇게 독일의 식민정책이 착한것도 아니지만,레오폴드 2세의 콩고인 학살을 가지고 벨기에 민간인 학살을 정당화하는건 무슨 논리인지 해괴하기 짝이 없다. 즉, 레오폴드 2세의 악행과 벨기에의 강간은 아예 별개의 사건인데,대체 왜 서로 완전히 다른 사건을 연관시켜가며 아무 죄 없는 벨기에 민간인들이 죽어도 싸다고 하는지 모를 노릇이다. 심지어 1차대전 당시 벨기에 국왕은 레오폴드 2세도 아니고 알베르 1세였고 레오폴드 2세는 추악한 진상이 드라나자 당시 벨기에 사람들에게도 욕을 처먹었다. 이런 논리라면 미국도 필리핀 침공해서 민다나오 섬 필리핀인들을 학살했으니 바탄 죽음의 행진 당해도 싸다는 말이 된다(...).

2.1.1.1.5. 독일군의 전투력에 대한 과대평가[편집]

2차대전 독빠와 마찬가지로 1차대전 독빠 중에서도 이런 사람들이 많다. 물론 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이 확살히 강대국은 맞았다. 나치 독일이 1939년 전쟁 발발 당시에도 제대로 체계화된 군 조직을 갖추지 못한 것에 비해 독일 제국은 1914년 당시 매우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군 조직을 갖춘 나라긴 했기 때문이다. 육군의 전투력은 세계 1위, 해군력은 세계 2위의 강대국이 맞긴 맞다. 그러나 독일과 맞서 싸웠던 영국, 프랑스 등의 연합국들도 만만치 않은 나라들이였으며 독일이 그렇게 쉽게 호락호락 어찌해 볼 정도의 수준은 아니였다. 영국은 독일보다 압도적으로 강한 해군력을 자랑하던 세계 1위의 해군강국이였고, 프랑스 역시 전통적인 유럽의 육군 강국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독빠들은 슐리펜 계획이 갑작스런 러시아 제국의 기습으로 틀어져서 그렇지, 마음만 막으면 제 2제국이 프랑스는 물론 영국까지 손쉽게 정복하는 것이 일도 아니였다 라고 주장한다. 물론 독일 해군이 북해로 진출하는것을 막고 수상병영노릇을 하다가 종전을 맞이하게 만든게 어느 나라인지 생가각한다면 말도 안되는 소리다. 더 심한 경우, 미국까지 정복할 수 있었다고 말하는 자들도 많다. 당시 미국은 2차대전 때와는 달리 천조국도 아니였고, 육군도 약하고, 공군도 없고, 해군도 약한 오합지졸의 덩치만 큰 나라라는 것이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지만 [9] 다만 그건 미군의 이야기고 미국의 산업역량은 전혀 다른 이야기였기에 독일이 기적이 따라줘서 대영제국 해군을 격파한다 한들 과연 본토침공을 당한 미국인들이 앉아서 당해줬을리가 없다. 애초에 세계최강이던 대영제국을 격파하고 독립을 한게 미국인들임을 생각하면..2차 세계대전까지 갈 것도 없이 이미 1917년에도 미국의 경제력은 영국, 독일(둘 다 식민지 제외)을 합한 것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게다가 러시아 제국의 기습이라는 표현이 쓰여있는데, 독일이 러시아에 선전포고로 선빵날렸지, 러시아가 먼저 선전포고하지 않았다. 또한 독일은 양면전을 필연적인 수순으로 생각하고 있었고, 이를 위한 타개책을 준비하고 있었다. 애초에 러-프 동맹인 상황에서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러시아제국에게 기습을 맞았다는 주장이 있다면, 그것은 독일 참모진이 일반인 이하로 무능하다는 주장이나 다를바 없다. 애초에 슐리펜 계획을 수정안으로 바꾼 것 또한 독일 참모총장이었던 소 몰트케. 심지어 몇년에 걸쳐서 수정한것이기에, 러시아의 공격이 기습이라는 주장은 그 근거조차 불분명하다.

그 외에도 다른 볼트액션 소총과 별 다를 바 없는 Gew98리-엔필드르벨 M1886, 스프링필드 M1903보다 훨씬 우월하며[10], 연합군은 꿈도 못 꿨던 기관단총이라는 물건을 최초로 개발했기 때문에 1차대전 당시 가장 시대를 앞서 내다본 국가라고 쉴드를 치기도 하지만 연합군 역시 MAB 18를 오히려 MP18보다 더 먼저 전선에 배치했고[11] , 특히 기관총에 열광하여 MG(08) 시리즈에 열광한다. 여담이지만 1차대전 때 최고의 기관총으로 각국에 라이센스까지 판매된 기관총은 맥심 기관총이고 MG08은 맥심의 독일판이다. A7V 전차 항목을 수정하여 전면 장갑을 다섯 배로 뻥튀기해서 작성하면서 A7V는 1차대전 최강의 전차라능! 연합군 전차들은 죄다 밥이였다능! 이라고 적어놓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세 가지 주장 모두 아무른 근거도, 증거도 없으며 타당한 이유조차 대지않고 딱 저렇다 라고만 말해버리니 황당할 노릇이다. 전차의 최고 개발은 영국이고, 회전 포탑의 최초 개발은 프랑스다. 독일은? 육상전함?실제로 A7V는 장갑재질문제로 측면에서 기관총 사격을 당하면 전면장갑의 방호력과 다르게 승무원들의 안전을 보장하기 힘들었다

2.1.2. 제2차 세계대전 독빠[편집]

네오나치?
제2차 세계대전 시기의 독일을 좋아하는 사람들. 독일 국방군이 물량이 딸리는 상황에서도 나름 잘 싸운 군대이기 때문에 이 점에 주목하여 빠가 된 경우가 많다.

2.1.2.1. 문제점[편집]
2.1.2.1.1. 독일군에 편파적인 서술[편집]

이를 대표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곳이 다름아닌 나무위키 내의 2차 세계대전 몇몇 문서들이며, 각종 전투를 묘사한 항목에서 독일군에 편파적인 기술을 여럿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독일군의 패전은 "히틀러의 실책",[12] "날씨와 같은 행운(특히 독소전쟁)[13]에 힘입은 석패이고, 독일군의 승전은 "연합군이 범접할 수 없는 독일군의 압도적인 작전능력 및 우수한 지휘관 탓"이라는 식이다.

특히 이런 항목은 냉전적인 시각과 겹쳐서 독소전쟁의 여러 전투에서 심하다. 특히 데이비드 글랜츠가 발굴한 "르제프 전투"는 희한하게 독빠들이 강조하면서 소련군은 사실 독소전에서 승리한 것이 아니라, 독일군이 서방 연합군을 막으러 서쪽으로 이동한 공백을 차지해 동유럽을 차지했을 뿐이라는 식으로 결론내는 경우가 많다. 정작 데이비드 글랜츠는 "노르망디나 렌드리스가 없었어도 소련군이 독소전쟁에서 승리했을 것은 부인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물론 렌드리스의 효과는 엄청났다. 단순히 무기 원조를 넘어 생산 기계나 기관차, 각종 생필품 및 식료품까지 제공되면서 소련의 공업능력은 무기 생산에 올인될 수 있었다. 그러나 소련에 대한 렌드리스 자체가 전쟁 후반기에나 제대로 이루어졌고 전쟁 전반기에는 주로 소련의 공업만으로 버텨냈다는 걸 생각해보면 렌드리스가 없었다고 소련이 무조건 졌을 것이라고 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렇게 렌드리스를 강조하는 독빠의 심리는 "독일은 1:1로는 소련 따위에게 지지 않아"라는 생각에 기반하고 있지만, 실제로 독일도 자기 능력만으로 싸운 것은 아님을 까맣게 잊어버린다는데서 문제가 있다. 렌드리스를 강조하는 독빠들은 미국이 지원해줘서 소련이 미국 버프를 받았다고 주장하는데, 나치 독일이 점령하고 있던 전유럽의 공업지대와 자원을 모조리 사용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쏙 빼놓고 말하며, 독일편에서 지원했던 독일의 동맹군들 ( 이탈리아, 스페인, 오스트리아, 루마니아, 크로아티아, 핀란드, 헝가리, 불가리아)의 언급은 없다. 따지고 보면 독일 동맹국 루마니아의 원유제공이 없었더라면 독일은 애시당초 제대로 된 비행기, 탱크도 굴릴 수 없었을 것이며, 이탈리아가 아무리 병크를 저질렀다고는 하나 지중해에서의 해상장악에 큰 도움을 준 것은 어면한 사실이다. 또한 이는 외교적으로 동맹국한테 물자를 원조받은건 부끄러운거고, 남의 나라에 처들어가 약탈한 자원은 정정당당한거라는 해괴하기 짝이 없는 개논리이다.

정치장교의 삽질, 형벌부대 운용 같은 면에서 내전시절이나 독일군이 퍼트린 도시전설이 아직까지도 독빠들에게 진실처럼 여겨지고 있다. 나무위키의 어느 항목을 보면 소련군 정치장교들은 작전에 앞서 중무장을 한 독전대를 거느리고 돌격에서 낙오하거나 후퇴하는 병사들을 사살했다는 주장을 써놓고 있는데, 이는 스탈린그라드 전투 초기처럼 소련군에 패배주의가 흑사병처럼 번질 때의 특정한 일화를 일반화하는 주장이다. 이런 독일측의 흑색선전은 자신들의 패배 원인을 소련인의 노예근성으로 돌리고 소련인들의 애국심을 폄하하려는 독일군의 흑색선전에서 비롯되었다. 즉, 독일군은 애국심으로 싸우는데, 소련인들은 노예근성 및 정치장교의 위협으로 싸운다는 주장이다. 이런 근거없는 낭설은 에너미 앳 더 게이트에 그대로 묘사되어 소련의 참전용사들의 엄청난 비난을 받은 바 있다. 이는 포로가 된 정치장교 사살을 합리화하기 위한 독일군의 흑색선전에서 비롯되었다. 또한 형벌부대도 독빠들에게 알려진 것보다는 훨씬 덜 잔인했다는 증거가 속속 나오고 있다. 자세한 점은 형벌부대 참고.

소련군의 정치장교가 상당히 문제가 있는 조직이긴 했지만, 독일 국방군은 아예 정부와는 별개로 존재하는 문민통제를 씹어먹는 조직이었고, 무장친위대가 나치당의 사병이었음을 감안한다면, 독빠들이 소련군의 정치장교를 탓하는건 어처구니가 없는 일.

이렇게 독빠들이 과장하는 정치장교형벌부대는 소련군에만 있었던 것도 아니고, 오히려 독일군은 그보다 한술 더 떴다. 독일군은 대전 초기부터 소련군 못지 않게 형벌부대를 운용했으며, 특히 패전이 임박하자 히틀러와 OKW(국방군 최고 사령부)는 낙오병 사살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독빠들의 소련군 폄하는 자신들이 하면 위대한 승리를 방해하는 낙오자들을 사살하는 것이지만 소련군이 하는거는 패닉에 빠진 정치 장교들과 학살일뿐이라는 전형적인 내로남불이다.

2.1.2.1.2. 독일군과 히틀러의 전쟁범죄 물타기[편집]

다른 제국주의 열강들을 까면서 정작 독일은 잘못이 적다고 발뺌하는 경우가 있어 문제다.


이런 문제들을 넘어서 때로는 단순히 무기 기술에 대한 빠질을 넘은 것보다 더 나쁜 것은 역사적 현상에 대한 왜곡을 일삼는다. 그 대상이 바로 연합군 중에서 가장 야만적이었던[14] 소련군과 스탈린이다.

일부 독빠들은 주로 소련의 전쟁범죄를 부각시키면서 정작 나치의 문제점에 대해 물타기를 시전한다. 예를 들어 스탈린그라드 전투 항목의 수정이력을 보면 독일군 포로에 대한 소련의 행동이 소련군 포로에 대한 독일의 행동보다 상대적으로 덜 잔인했음을 서술한 주석에 하지만, 소련군은 독일 포로가 아니라 독일의 '민간인'들에게 그 화살을 돌렸다는 서술이 덧붙여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소련군은 공식적으로는 민간인 대상 범죄를 엄금했으며, 이런 범죄가 헌병노릇을 하던 NKVD 부대에 발각되면 엄벌했으면서도 전쟁범죄가 일어났다.[15] 소련 민간인들의 시체로 지층을 쌓고 전쟁 초기 소련 포로들을 굶겨죽였으며 공식적인 명령체계로 강조명령까지 내려 유대인과 슬라브인들을 학살한 것은 무시한다. 아무리 역사적인 사실이더라도 북한이 전쟁범죄 이야기만 나오면 '한국군도 베트남전에서 민간인을 학살했다' 이야기를 운운하면서 물타기를 시전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국가적으로 대놓고 인종청소를 자행한 것과 국가에서 민간인 범죄를 금지하는 상황에서 병사/지휘관이 민간인에게 범죄를 저지른 것은 그 차이가 극도로 크다. 어디 가서 역사적 사실이랍시고 정치범수용소/북한 항목에서도 '그러나 한국군도 베트남전 운운하며...'라고 신나게 적어본다고 하더라도 걔네들의 악행 또한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이다.

베를린 강간 등의 사례를 들면서 정작 독일이 소련과 동유럽에서 저지른 성폭행, 강간 범죄를 전혀 언급하지 않거나 심하면 안했다고 뻥치는 행위다. 42년 한해만 밝혀진 성범죄 건수가 1천만건이 넘고 75만의 신생아가 독일군의 강간에 의해 탄생했다. 심지어 이거, 가해자인 독일측의 보고서다. 보통 성범죄는 일본이 난징의 강간같은 사건을 대하는 모습에서 보이듯 가해자측이 의도적으로 피해규모를 쉬쉬하며 축소하는 판인데, 그 가해자측에서 너무 많아서 축소하고 쉬쉬하며 적은 건수만 1천만건에 신생아 75만명 탄생이다. 실제론 이 몇배 이상의 강간이 발생했을지 아무도 모른다. 42년만 해도 이 정도인데, 바르바로사 작전이 시작된 41년부터 독일군이 소련땅에서 거의 쫓겨나는 44년까지 다 합한다면? 사실상 계산 자체가 되지 않는다. 이 정도면 거의 독일군이 진주한 소련 국토의 거의 모든 여성이 독일군에게 강간당한 셈이다. 당장 벨라루스 초토화작전 문서만 봐도 독일이 동부전선에서 얼마나 끔찍하게 행동하였는가를 확실하게 알 수 있다. 그런데 정작 이러한 독일군이 행한 인간성이 있는 인간이라면 당연히 분노해야할 작태에는 눈 감고 소련군에게만 물타기하는 어이없는 행동이 국내 독빠들에게 상당히 많이 보인다. 당장 지금 러시아 가서 현지 할머니들에게 이딴 말하면 어떤 꼴이 날까? 심지어 나중에 어떻게든 강간범죄를 통제하려한 소련군에 비하면 독일군은 그딴거 없었다. 히틀러부터가 대놓고 강조명령이라 하여 슬라브인에 대한 철저한 말살을 추구했고 현지 독일 장군들은 이런 독일군의 범죄를 등한시하거나 부추긴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악명높은 라이헤나우 강조 명령을 내린 사람은 다름 아닌 국방군 장성인 발터 폰 라이헤나우이고 그 상관인 게르트 폰 룬트슈테트[16]의 경우 여기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지지한다는 의사를 밝혔으며 다른 장성들도 반대하지 않았다.[17] 냉전 이후 동서방이 나눠지면서 이런 독일군이 저지른 강간범죄는 쉬쉬되었고, 소련조차도 동독을 서방에 대항하는 첨병으로 쓰면서 의도적으로 이런 범죄를 눈감은게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면서 빚어진 현상이기도 하다.

정작 현재 독일 정부는 독일군이 먼저 동유럽 점령지에서 벌여놓은 짓이 있기 때문에 소련군의 여러 만행들이나 전후 독일계 주민들에 대한 잔혹행위 및 학살, 추방행위에 대해 입도 벙긋 못하고 있다. 독일인들이 너무 착하거나 호구라서 이에 대해 입다물고 있는게 아니다. 책임을 추궁하기 시작하면 누가 먼저 시작했냐의 문제로 귀착되는데, 결국은 먼저 마구잡이로 민간인이나 포로를 학살하기 시작한 독일의 원죄로 귀착될 것이기 때문이다.[18] 그런데 일부 한국 독빠들은 독일 정부보다도 더 나치독일을 옹호하니(...). 사실 이 점은 한국 독빠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자체가 독일에게는 당한게 없고 일본 제국과 공산국가인 소련, 북한이 훨씬 더 나쁘다고 배운 영향이 크다.

  • 영국, 프랑스 및 다른 제국주의 국가와의 비교


베를린 전투의 수정내역을 보면, 어떤 독빠가 장황하게 프랑스의 제국주의적 만행을 언급하며 프랑스는 민간인들이 비시 정권에 협조적이라서 또다른 추축국이라는 궤변을 늘어놓은 적이 있다. 스탈린 항목에서도 어떤 독빠가 레지스탕스 운동은 허당이고, 비시 정부는 독일 제3제국에 협조적이었다며 프랑스는 또다른 추축국이라는 궤변을 늘어놓은 바 있다.[19] 그래도 샤를 드 골을 필두로 한 저항군들이 나치스와 치고박고 싸우면서 이긴 덕분에 현재 상임이사국으로 올라서게 되었지만. 이렇게 주로 불까를 겸하는 독빠들은 항상 독일의 만행을 물타기하면서 다른 제국주의 국가들의 식민지배를 거론해가면서 열심히 나치 독일의 만행을 물타기한다.

또한 네이버 지식인 등에서 활동하는 어떤 친독성향의 사람[20]과 그를 따르는 추종자들은 윈스턴 처칠벵골 대기근을 고의적 일으켰다고 내세우며 나치의 전쟁범죄를 물타기하는 시도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치독일이 같은 백인 국가인 폴란드와 네덜란드를 식민통치하면서 똑같이 반대하거나 비협조적이라는 이유로 무참히 밀어붙인 걸 보면 정말로 백인민족주의적이라고 볼수가 없다.[21] 애초에 나치 독일군이 파리를 점령하고 가장 먼저 한 짓이 문명국에서 야만의 흔적을 없애겠다면서 프랑스 흑인 병사들을 학살한 것이었던 걸 보면 안봐도 비디오다. 벵골 대기근은 당시 벵골 지방의 인프라가 개판이었던데다가 인도 지자체 정부간의 식량 비협조(힌두-이슬람 종교문제) 및 행정력의 미비, 태풍으로 인한 수확 감소 및 전시 상황까지 겹쳐서 발생해서 다소 논란이 있는 편이다. 현재 대한민국 인터넷에서도 영국(+프랑스)의 제국시절 식민지 경영과 수탈, 식민지인들에 대한 탄압을 근거로 많아지고 있는 추세이다.[22]

에시당초 식민지의 목표는 점령국에게 일정 이상의 이익을 제공하는 것이 최우선 목표이다. 물론 그 와중에 선주민들과 충돌하면서 수많은 인명피해나 학살 등이 일어나기도 하고.[23] 참고로 간디를 필두로 한 인도 독립운동이 한창이던 당시 히틀러는 영국 외무장관에게 조언이랍시고 이런 말을 한다. 간디를 사살하시오. 만약 그것으로도 복종시키기에 충분하지 않다면, 국민회의 지도부 열댓 명을 사살하시오. 그래도 충분하지 않다면, 200명 등 질서가 잡힐 때까지 사살하시오. 이게 진짜로 위의 네덜란드와 폴란드와 같은 점령지에서 직접 실행된 정책이다. 독일 군인 한명이 저항운동의 테러로 죽을 때마다 테러 용의자가 아닌 수백명의 무고한 인질들이 끌려와 처형되었다.

즉, 영국과 프랑스의 제국주의식 식민지 경영을 예시로 들어서 나치 독일의 악행을 정당화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생각이라는 것이다. 애초에 유럽열강들 중 식민지 문제에 대해서 큰소리 칠 수 있는 나라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며 독일도 식민지 나미비아에서의 만행을 저질러서 예외는 아니다.


소련군을 이용한 물타기에 비하면 드문 편이나 연합군의 전략폭격에 의해서 민간인 피해가 발생한 점을 이용해서 연합군도 민간인을 죽였다고 물타기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전략폭격에 의한 민간인의 피해는 어디까지나 군사 목표물을 공격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의도하지 않은 피해에 가까운 반면에 독일의 전쟁범죄는 처음부터 학살이 목적이었다. 게다가 당시의 기술수준으로는 군사목표물과 민간인이 섞여있을 경우 민간인만 피해서 공격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24] 당시 연합군 장성의 일부는 민간인의 피해가 발생해도 상관없다는 태도를 보인건 사실이나 이는 당시의 기술 수준상 민간인의 피해가 발생하지 않으면서 군사목표물만을 타격하기는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작정하고 학살을 저지른 것과 군사적 목표물을 타격하는 과정에서 당시 기술력의 한계로 의도치 않게 민간인에게 피해를 입힌걸 동일선상에 두고 비교하는것은 적절하지 않다.

이것의 변형판으로 아무런 공격할 이유가 없는 도시인데 폭격을 했다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그 예시로 드레스덴 폭격이나 함부르크 폭격을 들고 오기도 한다. 그러나 두 도시 모두 전쟁과 무관한 도시가 아닌 것이 드레스덴과 함부르크는 둘 다 주요 공업도시였다. 또한 드레스덴은 동부전선으로 가는 보급, 교통의 요충지이기도 했으며 함부르크에는 유보트 기지가 있었다.유보트가 전쟁과 무관한 물건이라고 안하는게 다행이다 게다가 이런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폭격은 독일이 먼저였으며 뉘른베르크에서도 폭격과정에 민간인이 죽은걸로 기소된 독일 지휘관은 없었다.

  • 일본 제국의 만행을 이용한 물타기


일제의 만행을 강조하면서 나치 독일은 그나마 양호했다고 주장하는 경우이다. 과거 난징 대학살항목에서 난징 대학살에 관한 책인 《난징의 강간, 그 진실의 기록》에 대해서 언급한 부분에서 취소선을 치기는 했으나 '심지어 아돌프 히틀러가 천사로 생각될 정도로 일본군의 막장행각이 나온다'라는 기술이 있으며 이런 경우가 아니라도 일본이 한거에 비하면 별것이 아니라는 식으로 물타기를 하기도 한다.이제 하다 못해서 소울메이트까지 팔아먹는다 게다가 일본은 국가 간 조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처들어가거나 군축조약을 무시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진주만 공습이 선전포고를 많이 늦게한 공격이기는 하지만 미국과 일본 사이에 불가침 조약이 체결된 상황은 아니었고 야마토급 전함의 경우도 조약에서 탈퇴한 이후에 만든 물건이라 둘다 조약 위반은 아니다. 그리고 독일 측에서 소련 침공을 함께 해달라고 지원 요청했을 때도 끝까지 거절하여 소련과 맺은 불가침 조약을 지켰다.

게다가 독일군의 만행도 일본군 못지 않다. 비록 서부전선 놓고 보면 독일군이 덜 잔혹했던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동부전선까지 포함시키면 절대로 그렇게 볼 수가 없다. 일본군이 중국에서 신멸작전같은 학살을 저질렀다면 독일군 역시 소련에서 벨라루스 초토화작전같은 무차별 학살을 수도 없이 저질렀으며 이로 인해 죽어나간 사람들의 수는 인류 역사상 최대 수준이다. 게다가 독일군의 포로학대 역시 일본군보다도 심각한 수준이었으며, 포로사망률만 비교해봐도 독일군에 잡힌 소련군 포로의 사망률은 57%에 달한다. 일본군에 잡힌 미군 포로의 사망률도 27%로 매우 높은 편인데 독일군은 그것의 2배를 넘는 수준이다.[25] 누가 독소전쟁 당시 독일군이 전쟁범죄를 저지르는 사진을 몇장 올려놓으면 꼭 댓글에 "그래도 끝까지 고통스럽게 죽이는 일본군보다는 차라리 깔끔하게 죽이는 독일군이 낫네요."라는 식의 헛소리도 꾸준히 등장한다. 일본군의 전쟁범죄는 다양한 글과 사진과 이야기들을 들어보고 비판하면서 독일군의 전쟁범죄는 고작 사진 몇장 봐놓고 "깔끔했네?" 라고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당시 소련 민간인들과 포로들의 증언을 보면 독일군은 그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나치 독일이 일본 제국보다 나았다는 주장은 사실과는 전혀 부합하지 않는 주장이다. 오히려 이런 주장과 달리 나치 독일의 시스템은 일본제국보다도 더 충격을 줬었다, 단순 학살부분에선 비슷하지만 일본은 인종말살 계획[26]따윈 있지도 않았고, 아인자츠그루펜이나 홀로코스트 마냥 체계적이고 산업적인 공장제 학살 또한 일본에 없었다.

국내 네티즌들의 강한 반일 감정과 독일에 대한 지나친 환상도 있고 독일의 전후 반성이 비교적 깔끔했다고 알려져 있는데다[27] 일제에게는 직접 피해를 입었던 반면(강제징병, 일본군 위안부 문제등)에 나치 독일에 대해서는 그냥 막연히 나쁘다 정도로만 알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냉전 등의 영향으로 독소전쟁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있지 않기 때문에[28] 국내 네티즌 대다수는 나치 독일이 저지른 전쟁범죄라고는 홀로코스트밖에 모른다.[29] 독소전쟁에서는 그 이상으로 잔혹하고 규모가 큰 대학살이 수두룩했는데 말이다.

2.1.2.1.3. 독일 국방군 무오설[편집]

나치빠와는 좀 다르지만 역시 큰 문제가 되었던 사례로 90년대와 00년대 초까지는 나치가 아닌 독일군은 그저 자신들의 의무를 수행했기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는 깨끗한 국방군 개념을 신봉하는 한심한 작태를 보인 적도 있었다. 독일인들이야 정치적 이유때문에 이걸 주워섬길 이유가 있었다지만 아무 상관없는 이역만리 타국(그것도 추축국의 발아래 고통받은 과거가 있는 나라)에 사는 사람들이 그걸 그대로 믿어버리면 어쩌자는 걸까?

이런 식이면 일본군도 마찬가지로 "자기에게 주어진 군인의 의무를 수행했을 뿐, 침략은 정치가들의 책임이다"라고 얼마든지 변명할 수 있다.

사실 2차대전기 독일의 놀라운 전공들이 많지만, 결국은 패배했다. 물론 패배했다고 그들을 좋아하지 말라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그럼에도 '독일군은 미군에게 마구 죽어나가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다'는 것 알고 하악하악대는, 이른바 독뽕들이 멀쩡한 밀덕들에게 민폐를 끼치곤 한다. 심지어 이들은 옳은 소리에도 독일의 명예가 손상되었고 사실과 다르다는 엉터리 헛소리를 한다. 이들은 대다수 중고딩이나 무개념 취급을 받으며 거꾸로 까를 양산하는데 일조한다. 이들 중에는 네오 나치보다도 멍청한 자들도 많다.

또한 이들의 문제점 중 하나는, 덕질 분야가 분야이다보니 독일 국방군나치의 관련성을 과도할 정도로 부정한다는 것이다. 물론 당시 독일 국방군 개개인 중에서는 나치에 협력하지 않은 사람도 있고 비판적인 사람도 당연히 있다. 그러나 독일 국방군의 전공이 곧 명백하게 나치 정권의 이득이 되어왔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독일 국방군을 철저하게 나치와 분리하여서 꼬리 자르기를 하는 것은, 북한군을 북한 전체주의와 분리하는 시도 만큼이나 파렴치한 짓이라 할 수 있다. 독소전쟁에서 이들에게 죽은 민간인이 아무리 적게 잡아도 1000만 단위이다. 당시 독일의 기술력이나 전술 등을 중립적인 차원에서 이렇다 저렇다 평가를 하는 것이야 문제가 없지만, 독일 국방군에서 나치를 분리하고 미화를 하는 것은 정말 진지하게 다시 생각해봐야할 문제이다.

그리고 백번 양보해서 소위 국방군선역론을 그대로 믿어 준다고 해도, 그럼 그 또라이 나치스를 상관으로 모시며 슈타우펜베르크 같은 극히 소수를 제외하고 명령 거부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평 없이 명령 받아 시행한 국방군은 호구인가, 병신인가? 아니면 일개 당의 사병 집단의 학살과 만행을 못막을 정도로 국방군이라는 조직이 허접한 조직이라는 것인가?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안 통하는 정치와 군대의 논리적 분리를 전체주의 국가에 적용하려고 하는 마인드 자체가 어설픈 밀덕 아니곤 진지하게 받아 줄 가치도 없는 발상이다.

2.1.2.1.4. 독일 무기 성능이나 기술의 과대평가[편집]

나무위키 곳곳에서 독빠들의 만행은 도를 넘어선 경우가 많다. 이는 나무위키의 원본 격인 리그베다 위키에서부터 이어져온 유서 깊은 문제점이며, 오히려 나무위키 탄생 전의 독빠들의 주 활동지였던 네이버, 다음, 이글루스 등지의 각종 웹사이트엔 지금 시각에선 기가 찰 수준의 왜곡들이 넘쳐난다.
특히 독빠들은 독일군 무기 찬양에 그치지 않고 실전에서 아무 문제 없이 써왔던 연합군의 멀쩡한 무기, 특히 소련군 무기에 성능이 열세다, 호구같은 성능이다라는 식의 반달성 멘트를 꼭 끼워넣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한국에서는 독빠들이 밀덕의 주류이기 때문에, 이런 엉터리 멘트들이 사실인양 받아들여지고, 또다른 독빠들을 양산한다는 점이다.

이런 스펙상으로 보이는 숫자에만 놀아난 바보들에 의해 생겨난 환상이 아직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경우가 있는데, 바로 MG42. 특히나 히틀러의 전기톱이란 별명의 이유인 분당 1200발 이상의 연사력을 보고 빨아대는 경우가 많은데, 스펙만 보면 연사력 높은 게 당연히 더 좋고 만들기 어려울 거란 생각이 들지만, 소형화기에겐 연사력은 성능이 아니라 특징에 불과하며, 기술적으로도 어렵지 않다. 이는 세계 최초의 권총탄 연발 기관총인 이탈리아제 Villar Perosa가 현대의 미니건 수준인 분당 3000발을 발사한다는 것에서부터 알 수 있다.
고연사력=고성능 논리도 소형화기의 과도한 연사력은 정상적인 군대가 그닥 달가워하지 않는 현실에서 논파되는데, 똑같이 두세발만 맞아도 죽는 사람에게 잠시 방아쇠를 당기면 초당 8발을 쏘든 20발을 쏘든 일은 똑같이 끝나지만 연사력이 과하면 쓸데없이 총알을 낭비한다. 다수 상대 측면에서도 분당 500~600발의 기관총으로도 1차대전 때 잘만 보병들을 갈아버린 경험이 있고, 탄막 형성 면에서도 연사력이 너무 빠르면 반동에 총기가 떨어대서 명중률이 떨어지므로 못 맞춘다.[30] 반동을 팍 낮춘 대다수의 FPS 게임에서조차 무작정 난사하면 안 맞는데, 현실에서야 말할 것도 없으며, 연사력이 늘면 반동도 같이 늘어서 목표를 명중시키는데 배나 되는 탄약을 써야 한다. 그리고 탄약은 공짜가 아니며, 독일은 그럴 여유가 없었다. 기관총의 총알을 세어 가면서 싸웠다는 말로 유명한 국방군에게 이게 뭔 의미인지는 설명이 필요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사력 높으면 최고라는 단순하고 덜떨어진 시각이 드러난 편집이 잦았는데, MG42 항목의 역사를 보면 "세계 최고의 명품 기관총"이니, "부정할 수 없는 최강의 기관총"이니 하는 찬양 문구가 붙었던 경우가 많았고, 심지어 탄종을 변경한 후계 기관총인 MG3와 비교해서 연사력이 낮아졌다는 이유로 개량품인데도 성능이 더 떨어졌다는 어처구니없는 서술이 강조 표시되어 있었다.
이미 전세계에서 1000발/분 이상의 연사력은 쓸데없다는 시각이 많아서 연사력을 떨어뜨리는 경우가 잦으며, 총기 설계기업과 군대 모두 과도한 연사력은 장점이 아니라 문제거리라는 생각이 팽배한데다 그게 정석이다. 이는 일부러 연사력을 떨어뜨려 사용하거나 아예 단발, 점사 기능을 넣는 현대 총기들을 보면 알 수 있으며, 끝까지 초월적인 연사력을 고집한 총기들은 민간이나 특수집단에게만 관심을 끌다 제식 채용은 꿈도 못 꾸고 단종되는 경우가 잦다. 하다못해 MG42와 같은 카테고리인 기관총을 고를 때도 연사력이 낮은 것을 장점으로 보고 채용하는 선진국까지 있다. 하지만 그런 현실은 아랑곳하지 않고 아직도 연사력 끝내주니 최강이고 최고라는 주장들은 나무위키는 물론이고 여러 사이트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MG42가 종합적인 명품이라고 듣는 것은 다른나라 기관총보다 가벼워서 상대적으로 다루기 쉽고 총열 교체가 쉬워서 준비가 용이하다는 것도 크다.

여기에 소련의 전투기인 Yak-9의 수정내역을 보면 어떤 독빠가 "소련군과 독일군의 교환비가 크기 때문에 소련군 전투기의 성능을 과대평가해서는 안된다"는 기술을 뜬금없이 추가한 바 있다.[31] 그리고 IS-2 문서의 경우도 IS-2 화력과 장갑이 뛰어나다고 적혀있으면 장갑을 지워버리는 이들 독빠들에 있어서는 다른 연합군, 특히 소련군의 무기는 독일보다 무조건 열등해야 정상이다. 그리고 모든 육상장비 평가를 본 용도와 상관없이 독일전차에 맞서는 대전차전에 맞춰 평가하는 경향이 매우 심하다. 전차의 주 목적 중 하나가 대전차 임무이긴 하지만 2차 대전 당시 전차들은 철갑탄보다 고폭탄을 많이 싣고 다니는 경우가 흔할 정도로 다른 임무에도 신경을 많이 썼다. SU-152ISU-152 같은 대전차전도 수행가능한 다목적자주포를 구축전차 설명하듯 설명하며 독일전차에 비해 열등하다고 깐다.[32]

이러한 기술은 소련에게만 국한된 게 아니라서 영국의 전투기인 슈퍼마린 스핏파이어 문서에는 Bf109는 항상 스핏파이어를 상대로 2:1의 우월한 교환비를 보였으므로 영국을 구했다는 것은 영국인들의 정신승리에 불과하다라던가 스핏파이어는 항상 109보다 열등했다는 서술을 추가하기도 했다. 문제는 스핏파이어가 영국 본토 항공전에서 109보다 약간 열세이기는 했으나(전반기에 스핏파이어와 109의 손실비는 1.2:1로 스핏파이어가 다소 열세이기는 했으나 후반기에는 잘못된 전술 등으로 인하여 격차가 더 좁혀졌다.) 그 격차가 크지 않았으며 개량에 따라서 우열이 뒤바뀌었으며 후기형은 전반적인 성능에서 스핏파이어의 우세가 유지되었다는걸 무시했다는 것이다.[33]

이들이 주로 믿는 미신은 독일의 과학기술이 연합군의 것보다 모든 분야에서 월등했다는 것. 독일이 2차대전 주요 참전국중 기술적으로 뛰어난 축에 든다는 사실은 이론의 여지가 없지만, 타 강대국과의 차이는 별로 크지 않았으며, 연합국이 우세한 다른 분야와 자원 및 물량으로 충분히 커버가 가능한 수준이었다.그렇게 잘났으면 VT신관 만들어서 쏘지 그랬냐? 대표적으로 독일이 다른 연합국을 압도하고 있었던 기술분야로 V2 미사일을 앞세운 미사일 분야를 들 수 있는데, 그마저도 보병용 다연장 로켓은 추진체의 저열함 때문에 후기에는 소련의 항공로켓을 베껴서 사용했다. 그리고 V2의 개발이 미국의 로버트 고다드가 개발한 로켓을 바탕으로 제작되었다는 사실은 언급하지 않는다.[34] 항공기 제작 분야는 영국이나 미국에 비해 큰 우위를 점하지 못했다.[35] 전투기 뿐만 아니라, 폭격기나 수송기 같은 대형 항공기의 제작기술은 미국에 절대적으로 못 미쳤다. 또한 많은 부분에서 미국, 영국, 심지어 소련이나 일본보다 부족한 부분도 있지만 가볍게 넘어간다. 영국보다 몇개월정도[36] 빨리 나온 제트전투기를 2차대전 유일 제트전투기로 둔갑시키고[37] 수십년전 인력 부족 때문에 후일에 전쟁에서 질수있단걸 예상하고 움직이고 기관총만 쏘는 수준이 아니라 화염방사기들까지 쏴재끼던 무인전차들을 가지고있던 소련 옆에서 무선자폭차량 가지고 전쟁에 사용된 최초의 로봇이라고 외치는 수준이다. 특히 하야테 항목은 레퍼런스까지 달아놓고 모든 포케볼프 모델보다 빠르다고 서술된 바로 밑에 독일기가 비웃는 속력이라고 써놓고 있었다.

또한 그나마의 기술적 우위도 후진적인 생산공학(혹은 산업공학) 시스템으로 다 갉아먹은게 독일이다. 중세때부터 내려오는 장인-도제 시스템 때문에 여러 무기의 생산 속도는 매우 느렸으며, 이때문에 애써 연합국보다 우수한 무기를 내놓는다고 해도 적당한 성능의 병기를 대량생산한 연합군의 공세에 압도당하기 일수였다. 이런면에서 독일의 생산공학은 20세기 초반부터 포드주의로 대규모 생산체계를 확립한 미국은 물론 소련에도 뒤떨어졌다. 6호 전차 티거 1대가 T-34 10대와 맞붙어야 하는 상황은 독일의 자원이 부족했다기보다는[38][39] 독일의 후진적인 생산시스템이 낳은 문제점이었고, 결국 2차대전의 승패를 결정했다. 그러므로 연합국에 비해 부분적으로 앞선 기술적 우위만으로는 독일이 절대로 승리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런 기술개발 역시 통상적 생산에 밀려서 미친듯이 발악한 결과 개발한 것이다.

게다가 다른 국가에서 개발한 모든 기술은 무조건 독일의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전후 개발된 모든 기술은 증거가 없지만 일단 독일에서 나온것이며[40] 독일 기술의 복제품일 뿐이라는 것. 그러나 새로 개발되는 무기는 당대의 다른무기를 참고하기 마련인데 단지 일부를 참고했다고 직계후손이나 카피품 취급하는 식이다.[41] 반대로 독일이 타국의 장비를 그대로 카피하고 약간의 변형을 준 물건은 완전히 똑같지는 않으니 독일 자체개발이나 다를 바가 없다는 이중잣대를 보여준다. 리그베다 위키때만 해도 수십개의 문서가 독일 ~의 짝퉁이라는 식으로 서술되어 있었는데 아무런 증거를 제시하지도 못하고 토론에서 죄다 깨지고 반박하는 서술이 들어가거나 삭제된 상태이다. 하지만 입문하면서 나무위키를 참고했던 초보 밀덕은 그게 사실인줄 알고 블로그등지에서 확대 재생산을 하고 있다. 슬라이드가 총열을 감싸지 않은 권총만 보면 루거의 영향을 받았다고 기가막힌 주장을 하는데서 이들의 수준을 알 수 있다. 수많은 국가를 거치며 발전한 분야도 거슬러 올라가다 독일이 나오면 그냥 독일개발과 동일시 한다. 모든 화포가 화약을 처음 개발한 중국제라는 수준의 소리이다. 현대에도 독일이 유럽의 다른 국가와 공동개발을 하면 그냥 독일제로 취급해버린다. 프랑스 기술이 상당히 들어간 밀란 미사일도 독빠들에 의해 수년간 독일제 미사일로 써져있었다.

독빠 기질에 의한 무기 성능 왜곡은 비단 서방 연합국과 소련군에 대한 왜곡된 서술에서 끝나지 않고, 독일의 동맹군 일본군까지도 번져나간다. 물론 일본군이 병신같은 무기에 병신같은 삽질을 많이 한 건 사실이지만, 무기 성능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하면 일까 성향에 독빠 성향이 덧붙어서 끝내주는 왜곡성 서술이 완성된다. 오랜 기간 동안 아리사카 문서는 왜곡의 절정이었으며,[42] 마우저 소총의 마이너 카피판이라는, 기도 안 차는 서술이 오랫동안 서술되어 있었다. 정작 아리사카의 화약은 프랑스식 화약의 영향력 아래 있으며, 당시의 다양한 볼트액션 소총들 대다수로부터 영향을 받았던 것이다. 차라리 독일의 영향이 컸다면 모르겠지만 마이너 카피는 말도 안 되는 소리다. 항공기의 경우 Ki-84 하야테 문서는 레퍼런스까지 달아놓고 모든 포케볼프 모델보다 빠르다고 서술된 바로 밑에 독일기가 비웃는 속력이라고 써놓고 있었다. 게다가 독일 무기는 독일 상태가 멀쩡해서 생산 라인이 잘 돌아갈 때 나온 최상품을 기준으로 평가하지만 일본 무기는 대전 말기 미군 폭격에 기반 시설이 모두 파괴되어버린 후 막 만들어낸 상태를 기준으로 평가하는 모습도 많이 보인다. 똑같이 대전 말기 성능이 구려졌는데도 불구하고 아리사카는 성능이 병신이고 Kar98k는 볼트액션 계의 명총이라는 식이다. 97식 전차가 천자총통에 뚫릴지도 모른다는 개소리는 덤. 문제는 인터넷에서 나무위키를 참조한 초보 밀덕들이 그저 일본 무기를 까고 독일 무기를 칭송하면 올바른 정보인 줄 안다는 것이다. 최근에서야 감정적인 서술을 자제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시각이 늘어나고 있지만 여전히 모자란 편.

2.1.2.1.5. 독일 전차에 대한 과도한 환상과 기대[편집]

독일이 전차로 유명하고 독빠들이 전차에 거는 기대가 크므로 문단을 따로 분리한다. [43]

독일이 전차로 유명한 만큼 독일 전차에 대한 과장된 서술은 아주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독일 전차가 당대 최강의 전차였고 적용된 과학기술력도 다른 국가에 비해 선진적이었다는 것이 그 주장의 요지이다. 그러나 잘 알려진 이미지와 달리 독일은 전차기술이 뛰어나긴 했지만 최고는 아니었다. 오히려 2차대전기 독일군은 시종일관 소련군 기갑전력에 비해[44] 지속적인 열세였다. 독일군의 전차 개발사를 살펴보자.

1939년 폴란드 침공 때 독일군이 가지고 있는 전차 전력은 정찰전차인 1호 전차, 2호 전차와 애매한 성능의 3호 전차, 그리고 4호 전차 초기형 정도였다. 그런데 이 전차들을 뛰어넘는 성능인 프랑스의 B1 전차는 이미 1934년 정도에 양산중이었다.[45] 즉 2차대전 초창기 독일은 프랑스에 비해 5년 정도 뒤진 전차기술력을 가진 셈이다.

독일은 꾸준히 주력전차인 4호 전차를 개량해가면서 유탄포인 3호 돌격포를 장포신으로 환장하여 대전차전 능력을 강화하는 등 애를 썼으나, 이미 소련에서는 1939년에 KV-1 전차 프로토타입이 개발되고 있었다. KV-1 전차는 추가적인 증가장갑[46]이 안달린 초기형에서도 무려 75mm에 달하는 장갑을 가졌기에 B1 전차 정도에도 애먹던 독일로서는 그야말로 공포의 대상이었다.

물론 애초에 독일은 3 · 4호 전차가 타국의 전차에 비해 약하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 증거로 폴란드 침공 이전인 1938년부터 4호 전차를 대체할 신형 전차의 개발이 시작되었다. 4호 전차가 타국에 비해 쓸만했으면 전쟁 시작 전부터 대체품을 개발하려고 하지는 않았겠지... 그러나 이 신형 전차 개발 계획은 VK전차 시리즈 같은 삽질만 하다가 1943년 중순에나 판터 전차로 첫 선을 보이게 된다(...).

1940년 북아프리카 전선에서는, 영국의 마틸다 보병전차가 공수되었다. 보병전차 자체는 매우 구식 개념이었지만, 정작 독일군도 구식 전차밖에 보유한 게 없어서 어떤 전차로도 마틸다 전차를 격파할 수 없었다.[47] 대신 88mm 대공포를 지상포로 유용하여 격파해야 했다. 이를 두고 롬멜의 지휘력이나 88mm의 명성을 찬양하지만, 그러니까 대공포를 지상포로 유용하는 삽질까지 벌이지 않으면 어떤 전차로도 마틸다 전차와 제대로 대전차전을 수행할 수 없었다고 보면 된다(...). 게다가 영국은 전차에 물리탄 이외의 고폭탄을 지급하지 않는 홍차맛 보급지침이 있었기에 이런 성과를 낸 것이지 영국 전차에 대보병용 고폭탄이 정상적으로 보급되었다면 대전차포만으로 영국 기갑전력을 박살낼 수는 없었을 것이다. 결론만 말하자면, 전차 자체는 독일이 훨씬 약했다.

이 시기쯤이 되면 1호 전차는 거의 대부분 퇴역하고, 2호 전차는 정찰전차 혹은 지휘차량으로만 남고 그 공백을 메꾸기 위해 체코에서 LT vz. 38 같은 전차를 빌려다 썼다. 뭐 점령하고 빼앗아 쓴 거지만, 생각해보자. 독일 전차군단이 그렇게 우수했으면 굳이 남의나라 전차를 훔쳐다 썼을까?

1940년, 그 T-34가 등장한다. 소련 기술진은 독일 전차의 뛰어난 성능에 놀랐지만, 그건 대전차전 성능보다는 적은 소음과 기계적 신뢰성 등 기술적인 문제가 컸다. 소련은 전간기만 하더라도 중공업화가 막 되거나 아직 완료되지 않은 농업국가였으므로 독일보다 공업력이 뒤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인민을 갈아넣은 공업화 끝에(...) 3호 전차와 초기형 4호 전차를 명백히 압도하는 T-34가 등장한다. 경사장갑, 뛰어난 생산성과 정비편의성 등 설계이념도 혁신적이었다. 독일군의 주력 대전차포인 37mm는 결국 T-34 앞에 퇴역하고, 이는 독일군의 머릿속에 T-34 쇼크라는 이름으로 오랫동안 자리잡는다.[48]

이렇듯, 티거와 판터가 나오기 전까지의 독일 전차개발사를 살펴보면 눈물이 나는 수준이다(...). 실제로 독일 대전차전을 담당한 건 전차가 아니라 대전차포 등 포병의 힘이 컸다.

독일은 부족한 전차전력을 메꾸기 위해 구축전차같은 요상한 물건들을 잔뜩 만들어 배치했다. 대부분 설계사상이 극단적으로 큰 포를 달면서 얇은 장갑으로 차체 부담을 깎던가 아니면 장갑과 화력 둘다 채택후 고정전투실로 그 설계한계를 부담하는 형식이였다. 이런 극단적인 대전차 임무만을 위해 설계하고 대규모로 배치한 경우는 나치독일의 경우밖에 없었다.[49]

하나의 예시로, 1942년에 개발된 나스호른은 이러한 땜빵 설계의 전형. 나스호른은 3호 전차의 내부 부품과 4호 전차의 차대, 대공포인 88mm를 조합하여 만든 구축전차다. 이것저것 유용해서 만들다보니 문제가 컸는데, 일단 오픈탑이라 추웠고(...)[50] 전투실 장갑이 고작 10mm밖에 되지 않는다는 결정적 결함이 있었다. 사실 대부분의 구축전차는 땜빵용으로 만들어지는 물건이기 때문에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결함들이 있다. 회전포탑이 없어 즉응력이 떨어진다든가, 장갑이 지나치게 얇다든가, 장갑은 두꺼운데 무거워서 신지선회를 못한다든가, 전투실이 지나치게 좁아 승무원 피로가 심하다든가, 휴행탄수가 너무 적다든가...

1942년 드디어 괴로움 끝에(...) 티거 전차가 첫 선을 보였다. 이후 티거는 T-34와 셔먼 등을 상대로 압도적인 전과를 보였다. 그런데 이건 애초에 비교가 잘못된 거다. 왜냐하면 티거는 중전차고, T-34나 셔먼 등은 중형전차이기 때문이다! 총으로 비유하면 소총과 기관단총을 비교하면서 기관단총이 사거리가 더 짧고 운동에너지가 낮으니 나쁘다고 평가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티거는 56톤 중전차였고, 셔먼과 T-34는 30톤급이었다. 당연히 무게가 무거우면 더 큰 주포를 장착할 수 있고 더 두꺼운 장갑을 달 수 있으니 대전차전 능력에서는 더 강할 수밖에 없다. 반대로, 무게가 무거우면 연료를 더 많이 써야 하고 현가장치에 무리가 가서 정비성이 나빠진다. 애초에 미국은 수송이나 여러 문제 때문에 이런 60톤급 중전차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퍼싱조차도 40톤에 불과하다. 즉 단거리주자와 장거리주자의 차이처럼 애초에 서로 방향성이 다른 것이다.

충분히 티거와 대등하게 싸울 수 있는 소련의 IS-2만 하더라도, 그 중량은 46톤에 지나지 않는다. 티거 주포의 관통력으로는 약점을 정확하게 사격하지 않으면 IS-2의 120mm 경사장갑을 뚫기 힘들었으나, IS-2의 122mm 대구경포는 티거의 어디를 맞춰도 그냥 무식한 탄두의 운동에너지로 격파가 가능했다.[51] 그러나 티거의 주포는 IS-2보다 정확했다. 이처럼 IS-2와 티거를 비교하면 일장일단이 있는 대등한 수준. 그런데 앞서 말했듯이 독일군은 전차전력이 지속적으로 연합군에게 열세였기 때문에 대전차전 능력을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고 티거를 만든 반면, IS-2는 다목적 지원을 전제로 한 중전차[52]였다! 말하자면 티거는 IS-2보다 10톤이나 더 무거운 대전차전 전용 중전차면서도 10톤이나 가벼운 다목적 지원용 중전차와 서로 일장일단이 있는 대등한 수준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생산성도 IS-2가 압도적으로 좋았다는 것은 덤.

또한 이 티거 전차는 인기와 활약과는 반대로 티거의 구조와 설계사상이 독일 전차개발에 악영향을 주는 아이러니 함이 발생한다. 바로 방어력을 올리기 힘든 너무 큰 차체, 수리병의 악몽 다중 로드 휠, 구조강도를 올리기 위한 변속기 커버의 제거 등 이다. 판터와 티거2 는 티거의 엔진과 다소의 부품 공유 덕분에 티거보다 소형화 시킬 수 없어 차체의 크기가 매우 크며, 무게대비 방어력이 좋지 못했다.[53] 다중 로드 휠은 두말하면 입 아플 정도의 물건이고, 변속기 커버의 제거는 독일 전차들의 전반적인 가동룔을 깎아 먹을 정도의 좋지 못한 결정 이었다.

한편 조금 늦게 선을 보인 판터는 등장 때부터 문제가 아주 많았다. 다른 건 둘째치고 구동계가 쓰레기였던 것(...). 열차에서 내리다가 불이 붙거나, 오르막길을 올라가면 불이 붙거나, 심지어 정비하고 나서 정비소에서 출고하다가 불이 붙거나(...). 첫 투입 때 200대를 투입했으나 160대가 고장으로 주저앉은 일화는 유명하다. 이 정도 수준이면 대전차전 능력을 논하기 이전의, 근본적인 문제다. 이 문제는 정비불량이 아니라 설계 결함이어서 결국 최대속력을 일정 수치 이상 올리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것으로 타협을 볼 수밖에 없었다. 이후로도 복잡한 기어 설계 때문에 후진 속도가 고작 시속 2km밖에 되지 않는다거나 포탑회전이 느리다거나 무게에 비해 측면이 지나치게 얇아 측면을 노출시키면 간단히 격파당한다거나 하는 소소한(?) 문제점들이 속출했다.

1944년, 독일 최강의 중전차인 티거 2가 등장하지만 티거 2는 판터보다도 기계적 결함이 심각했다. 결국 티거 2와 판터는, 주포 위력과 장갑 두께라는 숫자만 보고 전차를 개발하여 억지로 무게를 늘린 전차라는 점에서 동일하다. 티거2의 경우 미국에서는 이미 1940년에 개발하여 전차에 장착까지 끝낸 1000마력급 엔진[54]이 없어서 티거와 동일한 700마력의 엔진을 장착해야 했고, 사실 700마력의 엔진은 티거에 달기에도 너무 섬세했는데 그것보다 10몇 톤이나 무거운 티거 2에 달기는 역부족이었다. 철을 두껍게 만드는 건 어느 나라나 할 수 있다. 주포를 강하게 만드는 것도 결국 비슷하다. 결국 판터와 티거 2는 독일 전차 기술력의 부족을 증명해주는 아주 좋은 증거였다.

결국, 이미 쾨니히스티거를 종합적 성능에서 뛰어넘는 센추리온 전차IS-3이 1945년에 개발 및 배치되어 주행시험을 끝냈지만, 2차 대전이 패망하면서 2차대전 전차 개발사는 여기서 그치게 된다. 결론적으로 독일의 전차 개발사를 살펴보면 독일은 단 한번도 연합군보다 우수한 전차를 보유한 적이 없었으며, 기갑전력 전체를 보아도 끊임없이 독일의 열세였다.

여담으로, 영국과 독일의 초중전차 프로토타입을 비교해 보아도 독일의 기술력 부족이 명백하다. 우선 A39 토터스마우스 전차에 비해 2배 이상 가벼웠는데도 장갑 두께는 비슷했다.[55] 포방패를 제외하면 토터스는 178mm – 228mm이고, 마우스는 190mm - 240mm였다. 마우스는 당시에도 포장도로조차 제대로 굴러가지도 못했고, 토터스는 아직도 박물관에서 꺼내서 좀 정비하고 연료만 넣으면 굴러간다.[56] 비슷한 중량의 야크트티거토터스를 비교해도, 토터스가 야크트티거에 비해 크게 떨어지지 않는 성능임에도 불구하고 기계적 신뢰성은 토터스가 훨씬 우수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심지어 엔진의 출력 자체는 토터스가 더 낮다.

2.1.2.1.6. 독일 군조직의 과대평가[편집]

또하나의 미신은 독일군은 매우 합리적이고 기계화 비율이 높은 군대였다는 것. 하지만 독일군도 일본군과 마찬가지로 육해공+친위대간의 군 내부의 갈등이 상당했고 이중적이고 비합리적인 명령체계의 문제도 있었다. 괴링의 사병집단이나 다름없었던 공군이나 나치당의 사병집단인 무장친위대가 각기 기갑부대를 거느리고 강대국들을 상대로 광범위하게 펼쳐지는 전쟁에 참전한 것만 봐도 독일의 전쟁수행 능력이 얼마나 비합리적인지를 알 수 있다. 이는 육군이 잠수함과 항공모함을 보유하려던 일본군과 도긴개긴이다. 독일군의 기계화는 기갑부대에 한정해서 잘되어 있었을 뿐, 보병과 포병의 수송은 기본적으로 말이었다. 이렇게 독일군의 기계화는 이미 1차대전 이후 말과 노새를 퇴출한 미군은 물론, 미군에 수천대의 트럭을 렌드리스로 제공받은 소련군에도 미치지 못했다.

황당한 망상은 독일의 비밀무기들이 양산만 되었다면 연합군을 이길 수 있었다는 것. 하지만 애초에 비밀무기들 자체가 일반 병기 양산에서 연합군에 밀리기 때문에 기획된 물건들이었다. 이걸 양산할 능력이 있었다면 이미 이런 것을 굳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말하자면 기술적으로 딸리는 팀이 여러가지 변칙 작전으로 요행을 바란다는 건데, 이런 팀이 이기는 경우는 거의 없고, 독일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독일은 이런 쓸데없는 요행에 안그래도 부족한 자원을 지나치게 분배하여 더욱 나락으로 떨어졌다. 이와 비슷하게 행동을 한 일본군은 뻘짓이라 까면서 독일군은 "참신한 시도를 했다"라고 하고 있다.

2.1.2.1.7. 독일군의 전투력에 대한 과대평가[편집]

이들은 독일군이 마치 천하무적의 군대고, 연합국의 물량 때문에 어쩔수 없이 졌다고 착각한다. 특히 이들은 독소전에서 독일은 철저하게 소련군의 물량에 밀려서 결국 졌다고 말하면서, 소련군 전사자는 2700만명이나 된다고 착각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소련군 전사자는 700만에서 최대 1100만 정도로 추산되며, 독일에게 학살당한 소련인들은 최소 1600만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더욱이 소련군 전사자가 700만이라지만, 순수하게 전투, 그러니깐 서로 제대로 싸워서 생긴 전사자의 교환비는 1:1.3 가량으로 추산되는 편.[57] 예를 들어 독소전 초기인 1941년에만 해도 독일은 소련군 포로를 335만명 가량 잡았는데 이는 초기 소련군 병력에서 그나마 상태가 양호한 병력들이었으나 기습과 스탈린의 트롤링으로 싹 날려먹은것이다. 이런 피해는 병력 손실에만 그친게 아니었기에 소련은 전쟁 초반에 엄청난 타격을 입었다. 그러면 전쟁 말기에는 독일이 이러한 전과를 보여주었을까? 물론 전술적 차원에서 독일군이 선전한건 사실이고 소련군에게 지속적으로 타격을 주었지만 그럼에도 전략적으로는 분명히 제대로 잡아내지않으면 질수밖에 없는 전략적 거점들을 소련에게 내주고 그 결과 패배하면서 전선이 무너저내렸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전차 및 자주포를 예로 들면 대전 후기로 갈수록 소련군과 독일군의 교환비는 1:1로 수렴해가며, 이는 독빠들이 무적이라고 찬양하는 티거판터가 나섰을 때의 교환비로서, 독일군의 주력이 3호 전차4호 전차였을 때(약 1:5) 보다도 오히려 교환비가 나빠지는 것이다. 이런 것을 보면 독빠들이 소련군의 T-34IS-2를 판터나 티거에는 상대도 안되는 야라레메카라고 주장하는 것은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애초에 기본적으로 전술 자체가 달랐기 때문에 무기 간의 성능을 쉽게 비교하는건 말이 안된다.

유튜브 댓글 같은 곳을 보면, 승패는 동부전선에서 결정났고, 서부전선에서 밀고온 서방 연합군은 오합지졸들의 독일군을 격파해온거며, 서방 연합군은 이런 오합지졸들에게조차 고전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이들의 주된 소스는 오토 카리우스가 소련군을 높이 평가한 반면, 서방 연합군은 소련군보다 한참 아래로 평가했다는 단 한명의 주장을 맹신하는데, 서방 연합군도 만만치 않은 독일군과 싸웠다. 이탈리아 전선은 은 물론이며 노르망디에서 막대한 희생을 치루고 아르덴에서 독일군을 완전히 꺾어버리며 선전한게 서방측이며, 서부전선에서도 동부전선에 배치되었던 판터티거, 티거 2같이 상당히 강한 무기들이 배치됐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 말을 한 카리우스는 야크트 티거를 타고 미군을 잠깐 상대하다 종전되어 항복한게 전부다. 그리고 독일 해공군의[58] 등뼈를 꺽은건 말할것도 없이 영국과 미국이다.

2.1.2.1.8. 독일 전범 혐의자들에 대한 면죄부 및 미화[편집]

일부 독빠들은 에리히 폰 만슈타인이나 헤르만 호트와 같은 동부전선에서 전쟁범죄를 저질렀으나, 미국의 소환거부로 소련의 전범재판에 넘겨지지 않은 독일군 지휘권들에 대해, "소련이 어거지를 부려 넘겨달라고 했다"는 식으로 주장한다. 또한 소련의 형무소에서 사망한 에발트 폰 클라이스트는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며 분개하곤 한다.

하지만 이들이 직접 전범행위를 지시했는지의 여부는 불확실하다고 해도, 이들의 예하부대가 동부전선에서 벌인 짓은 당시에 밝혀진 것만 해도 이미 부지기수였으며, 시간이 지나면서 사료가 공개되면서 이들이 유대인이나 포로를 처형한 것에도 간여한 것으로 나오는 등, 면죄의 여지가 없는 자들이었다. 태평양 전쟁에서 비슷한 짓을 저지른 일본군 장성(마쓰이 이와네, 야마시타 도모유키, 혼마 마사하루, 홍사익 등)들이 직접적인 증거가 없어도 감독부실의 책임을 물어 미국에 의해 사형선고를 받고 처형된 것을 보면, 오히려 소련의 전범재판은 장성급에서는 거의 사형이 없을 정도로 미국에 비해서는 관대했는데, 이들 독빠들은 "소련군이 보복으로 순수 군인들을 소환해서 처벌하려 했다"는 식으로 어거지를 부리곤 한다. 이들 전범 용의자들의 전범행위를 미국이 눈감았던 이유는 이들이 순수군인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서독군 창설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 하나 뿐이었으며, 만약 이들이 소련군이 아닌 미군에 이런 짓을 저질렀다면 사형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2.1.2.1.9. 오스트리아에 대한 나치 책임 전가[편집]

히틀러가 오스트리아 사람이라는 것과, 오스트리아가 현대에도 네오나치 문제를 완전히 해경하지 못했다는 것으로, 나치에 대한 책임에서 물타기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현대의 네오나치 문제는 독일도 오스트리아와 대동소이하며, 히틀러는 오스트리아의 상대적 다문화 분위기가 싫어서 독일로 갔으며, 지나가던 환빠 히틀러를 괴물로 키운 것은 엄연히 독일이 맞다. 가장 말도 안되는 황당한 주장이다. 히틀러 출생지가 오스트리아가 아니라 당시에는 현지의 유력한 소수민족으로 존재했던 발트3국이나 루마니아 트란실베니아, 아니 심지어 러시아령 볼가 독일인 출신이라한들 히틀러와 나치스가 패악질 친 국가적 기반이 독일이면 그건 독일의 책임인 것이다. 애초에 히틀러 같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다문화주의적 이념과 결코 융화될 수 없었던 인간을 싫어서 뱉어낸 오스트리아 입장에서는 그 당시 역사적 이념을 대표했던 합스부르크 제국이 소멸해서 망정이지 당사자들이 들었다면 기가막혀 뒤집어질 주장이다. 애초에 오토 폰 합스부르크가 대표하던 당시 오스트리아의 왕실 복고주의 초보수주의자들은 좌파와 나란히 나치스에 저항한 몇 안되는 오스트리아 내의 반나치 세력에 가담했고, 나치스 정권 또한 합스부르크 가문의 남아 있는 일원들을 집중적으로 감시, 투옥 등 탄압했다.

2.1.2.1.10. 총론[편집]

이 독빠들의 주장이나 경향은 사실 한국에 한정한 것이 아니다. 원류로 시작하면 서방권, 특히 미국과 영국 이다.

전쟁이 끝나고 냉전체제가 시작되던 1946년부터 서방 연합군에게 최대의 적으로 떠오르던 소련군에 대응하기 위해 소련군과 전쟁을 치룬적 있는 독일 국방군 장성포로들을 불러들였다. 그리고 그들은 미국 국방성의 역사국의 주도 하에 1948년에 무려 1000건이 넘는 문건을 작성했다. 그말인 즉슨 대부분의 영어로 된 서구의 자료들이 독일군, 그것도 독일 국방군의 시각에 따라 미화되거나 왜곡된게 흔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프란츠 할더가 존재했다. 프란츠 할더는 최대한 자신을 반나치 인사로 포장하며 문건을 작성하는 전직 국방군 장성포로들에게 국방군의 작전과 나치 친위대의 범죄를 구분하게, 자신들의 전략전술적 실패를 자연환경과 히틀러의 무능 탓으로 포장하게끔 지시했다. 냉전체제 때문에 소련과의 대대적인 교차검증도 불가능했다.[59] 그리고 영국의 군사학자인 리델하트는 만슈타인을 이용해서 자신의 입지를 높히고자 했으며 전범재판 당시 만슈타인을 옹호하며[60] 국방군의 우수함을 칭찬하는 서술 등으로 인해 전격전 같은 개념의 미화와 왜곡이 가속되었다. 그리고 미국과 영국, 그리고 서독조차 국방군의 그러한 소련군 폄하가 사실임을 알면서도 묵인했다.

즉 여기서부터 독빠들이 탄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러시아어는 못하지, 소련 자료는 구하기 힘들지, 근데 독일군이 미화된 영어 자료는 쏟아저 나오지... 결국 그렇게 서구권에서 독빠가 발생하지 않는게 이상할 지경이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의 독빠들이 "근거자료"라고 내놓는 소련군 폄하적인 영어판 저서들도 사실 독일자료나 다름없다. 사실 소련-러시아의 군사문건들은 소련 붕괴후 그 일부가 해제되어 공개되었지만, 현재도 상당수가 비밀로 분류되어 공개되지 않고 있으며 , 언어적 어려움이나 자료 접근의 문제도 겹쳐서 현재까지 일부가 아닌 온전한 소련측 시각이 포함된 영어권의 독소전쟁사는 발간되지 않고 있다. [61] [62]그렇기 때문에 현재 독소전쟁사의 대부분은 독일군 자료로 작성되었으며, 위에서 기술한 바와 같이 편파적인 서술이 나올 수밖에 없다.

2.1.3. 현대 밀리터리 독빠[편집]

기갑 갤러리의 이전 지배자. 지금은 갑갤의 적 (?)

현대의 독일 무기를 좋아하는 사람들.

과거에는 일본에서 유행하던 밀리터리 장르를 국내에서 번역해 들여오기 시작하면서 탄생했으며, 지금도 지속되는 일본의 독빠 기질에 영향을 받아 국내에서도 2차대전 독빠들의 위세에 힘입어 일단은 카테고리가 같은 현대전 분야에도 상당수의 밀덕들이, 심지어 대전기 전문가들도 이 분야를 병행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주로 전차에 집중되어 있으며, 레오파르트2를 추종하는 '레오신교'가 대표적이었다. 문제는 양 차 대전기 독빠들에게서 나타나듯 현대전 독빠들 역시 남의 말을 들을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이는 당시 밀덕들의 세대교체기와 맞물려 독빠들이 다른 빠들에게 린치를 가하는 형태로 이뤄졌던 점.[63] 특히나 00년대 미군의 이라크와 아프간에서의 부진을 이유로 미군의 무기와 전략전술은 사실상 거품이었고 따라서 독일식이야말로 우수하다는 견해가 나타났는데 위의 나치 문제와 결별한 독일에 대한 호감과 겹쳐 독일이야말로 EU를 이끌 국가이며 독일군은 미국을 배제한 상태에서 유럽 최강의 군사력을 투사할 것이다라는 설로 이어지게 된다.

당시에는 매우 그럴듯해 보이는 논리였는데 문제는 유럽이 전반적으로 군축 분위기에 힘입어 돈을 덜 쓰고 있었다는 점에 있었고 독일이야말로 이것에 가장 적극적이었다. 심지어 NATO의 방위분담금조차 미국과 유럽이 반반을 부담하던것이 미국 혼자 75%를 부담하는 모양새가 될 정도. 이런 상황에서 질적으로 세계 최고의 군사력을 유지할수 있다고 할때 조금 생각을 해보면 거품이라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 하지만 당시에는 눈에 띄는 붕괴현상은 보이지 않았기에 큰 문제는 되지 않았다. 사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들이 키배를 할때 어떤 본좌님이 이렇게 말했다고 언급하면서 밀리터리 본좌의 증언 외에 다른 자료를 사용하지 않으려 했다는 점에 있었다.
오히려 현재 우크라이나 프로셴코 대통령은 "독일 연방군보다 노보 러시아 반군들이 더 강력할 수준"[64]이라며 면박을 주는 수준으로,심지어는 기관총 총열을 어디다 팔아먹은건지 검게 칠한 빗자루를 잘라서 꽂아놨다.

이렇게 불안한 우위를 지속하다가 결국 2013년에 터질 것이 터지고 만다. 레오2A7+ 수출 불발과 푸마의 사망 선고를 시작으로 까들이 소식을 빠르게 풀어버렸고 이걸 쉴드칠 '본좌'들은 진작에 공개석상에서 사라진 상태였다. 결국 독빠들은 이를 기점으로 빠르게 주류에서 퇴장당하고 지금은 HK G36의 열팽창 문제들과 겹쳐서 현대 독일무기 전반이 조롱감으로 전락한 상태.

이런 현실을 알고 인정하면서 그냥 간지 만으로 빠는 눈물겨운 독빠들도 있지만 아주 극소수

한국군 참모들 중에서도 독일 유학파들이 이쪽이 많은데 미국 등 다른 나라에서 배운 사람들의 말로는 실전경험도 거의 없는 곳에서 배워놓고 콧대는 제일 높다고 한다.

위에 써져있듯이 공동개발은 거의 독일의 영향으로 만들어졌거나 그냥 독일제로 써버리는 경우가 있다. 특히 프까들이 이 분야의 전문가들이다. 그리고 사실 독일이 어마어마한걸 만들었는데 전후혼란기라 없어지거나 남에게 뺏겼다는둥 나토표준을 지키려고 안쓴장비가 있는데 엄청난 성능을 가졌다능둥의 주장을 펼치는데 말하는 그 물건의 이름도 모르고 주장하는 바를 구글에 검색해도 문서 하나가 안나온다. 제작회사가 판촉하려고 올린 스펙과 광고동영상을 그대로 믿고 외계인장비라고 생각하는 독빠들이 있는데 물론 타국의 장비는 실전중에 발생한 문제나 개발중에 나타나서 이미 고쳐진 문제들까지 파내서 비하한다.

2.2. 정치 독빠[편집]

독일의 정치 제도를 좋아하는 사람들. 은근히 진보 진영에서 독일 정치에 호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은데, 독일 정치계에서는 독일 사회민주당이나 녹색당 등의 좌파 정당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으므로 "우리도 저렇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느낌으로 호감을 느끼는 듯 하다. 이 때문에 독일식 정당명부제의 도입을 주장하기도 한다. 그리고 독일의 복지 정책에 호감을 느끼기도 한다.
사실 이렇게 독일식 법치가 좋다면 사형 폐지 , 성매매 합법은 당연한것이다. 이것들이 무슨 무조건 만악은 아니고 독일은 이렇게 하고있다.
보수 진영에서도 대륙법계가 독일 중심이었고 제조업 중심 경제 , 파독 광부 간호사 등으로 독일에대한 호감이 큰 편이고 일부는 연정내각제를 주장하기도한다.

이쪽은 위의 밀리터리 독빠랑 별 접점이 없다.

2.3. 기술 독빠[편집]

공업, 경공업 등 각종 독일의 기술력을 좋아해서 독일에 호감을 느끼는 사람들.공돌이가 매우 많다

주로 벤츠,BMW,포르쉐같은 독일 자동차를 좋아하고, 그 외에 엔진이나 기계 계열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독일차빠가 이 부류에 속한다.

그리고 고속철도 독빠도 있다.

2.4. 스포츠 독빠[편집]

주로 축구, 분데스리가의 팬이 많다.

2.4.1. 독축빠[편집]

어느 나라 축구도 독일 축구를 만나면 패배한다.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을 좋아하는 사람들. 2014년 브라질 월드컵서 독일이 홈팀 브라질을 무려 1-7이라는 무시무시한 스코어로 털어버리고 우승하면서 더욱 늘어났다. 그 이후로 독일본좌설을 내세우며 다른 대표팀을 깎아내리는 짓을 많이 하고 돌아다녀 타 팀의 팬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도 했는데 그런 무개념 독축빠들에겐 친절하게 히혼의 수치를 비롯한 독일의 각종 경기조작질과, 이탈리아만 만나면 약해지는 독일대표팀의 현실을 가르쳐주자. 아니 카잔의 치욕만 보여줘도 된다.
차범근의 월드컵 결승전 해설을 보면 괴체의 결승골 장면에서 매우 좋아함을 알 수 있다. 다만 차붐의 경우는 독일에서도 대접받고 독일에서 생활도 오래했으며 아들도 독일서 출생하는 등 약간 특이한 케이스이고 차범근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독일 경기를 중계할때 생각만큼 편파적인 해설은 안한다. 다만 2014년 월드컵 알제리와의 16강전에서 연장전 혈투끝에 메수트 외질의 결승골이 나오자 터져나오는 기쁨을 참지는 못했다.(...)

2.5. 문화 독빠[편집]

독일 전통 문화나 특히 독일 음식이나 독일 맥주, 게르만족 등에 빠진 부류.

그 외에도 교육적인 측면으로서도 빠도 있다, 예를들어 독일에는 마이스터 스쿨이 있는데(장인양성학교, 다르게 말하면 기술학교)에서 자격증을 취득하면 독일전역, 유럽전역에서도 취직시 매우 큰 어드밴티지를 얻을 수 있고[65] 국가적으로도 장려하기 때문에 대학을 가기위한 과정 중 하나로 전락한 한국 중, 고등학교의 교육체계를 보고 실망을 해서 빠가 되는 경우가 있다.

음악 마니아들 중에서도 독빠가 상당히 많다. 클래식 음악에서도 걸출한 연주자들이 많은 편인데다가 현대 음악 및 독일 팝음악까지 걸쳐서 상당수의 마니아가 존재한다. 특히 일음덕후들이 한일 정치관계문제로 인해서 오프라인에서 일코하고 다니는 것과 달리 독일은 그나마 과거를 반성했다는 이미지 때문인지 오프라인애서도 독음덕후임을 드러내는 사람들도 많다. 네오 나치를 보면 생각이 달라지겠지만 역시 한국에선 먼나라 독일의 네오 나치보다는 이웃나라 일본재특회 쪽이 더 재수없어보이는지라

그림 형제 동화 덕후들도 많고 파우스트 문학 덕후들도 많다.

비슷한 민족 구성으로 이루어진 국가인 오스트리아, 스위스까지 좋아하는 경우도 있다. 룩셈부르크, 리히텐슈타인: 우리는?

2.5.1. 판타지 독빠[편집]

상술한 파우스트, 그림 형제 동화 등에 엮이는 면도 있고 해서 판타지 덕후들도 많다.

2.6. 학문 독빠[편집]

학문 쪽에도 있다. 철학 쪽을 보아도 임마누엘 칸트헤겔같은 유명 철학자들의 영향 때문에 서양철학을 공부할 때 독일철학을 빼놓기가 어려운 데 이 때문에 학문적으로 독빠가 되기도 한다. 당장 20세기 초의 독일철학 인맥만 따져봐도, 후설의 제자 하이데거, 하이데거의 친구 야스퍼스, 하이데거의 애인 한나 아렌트라는[66] 황당한 라인업이 나온다.뿐만 아니라 신학에서도 독빠가 많은데, 독일이 가톨릭에서건 개신교에서건 신학적 기반이 워낙 탄탄하다보니 현대까지도 네임드 신학자들을 꾸준히 배출하고 있다. 유학을 갈 때도 대체로 가톨릭에서는 이탈리아 혹은 독일권(오스트리아 포함)으로, 개신교에서는 미국 혹은 독일(오스트리아X)로 보내는 편. 토마스 아퀴나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독일 신학은 최고의 시녀(철학)들과 함께하는 셈이다. 참고로 위에서 소개한 먼치킨 인맥은 신학계로도 이어지는데, 20세기 최고의 가톨릭 신학자로 여겨지는 카를 라너는 하이데거 밑에서 철학을 배웠고, 에디트 슈타인이라는 세속명으로 더 유명한, 신학자이자 철학자인 십자가의 성녀 테레사 베네딕타는 후설의 제자이다. 그리고 네임드 개신교 신학자인 루돌프 볼트만은 하이데거의 친구이기도 하다. 이쪽도 간혹 문제를 터뜨리는데 과학의 모든 업적은 독일에서 나왔다고 주장하는 사례도 있다. 그 와중에 닐스 보어의 국적을 독일로 세탁하는건 덤(...)[67]

법학쪽으로 가더라도 대륙법 국가인 대한민국에서는 독빠가 많은 편.

2.7. 역사 독빠[편집]

크고 아름다운 프랑크 왕국[68]이나 신성 로마 제국,[69] 오스트리아 제국, 튜튼기사단, 프로이센, 독일 제2제국에 반해서 역사적으로 독빠가 되는 경우가 있다. 나치빠랑은 다른게 보통 위에 쓰여진 국가들을 빨다가 독빠가 될 정도면 이미 상당히 체에 걸러진 상태인지라 악질 나치빠가 될 가능성은 좀 적은 편. 아니, 애초에 독일 민족사적 관점에서 보면 독일땅이라 주장할 만한 건덕지기가 굉장히 많은 오스트리아 같은 곳이 독일에 귀속될 가능성을 3차 세계대전이 터지지 않는 한 영원히 불살라버렸기 때문에 나치빠와 상극이다. 예를 들어, 대독일(Großdeutschland) 개념같은 경우, 히틀러와 나치당이 2차 세계대전의 개전명분으로 써먹은 이래 나치의 과오에 민감한 국가들에서는 입 밖에 내는 것만으로도 정치적 품성을 의심받을 정도로 철저히 금기시되고 있으나, 본질적으로 보면 단순히 독일인(독일 민족, 말하자면 독일어를 쓰고, 독일 문화권에 속하는 게르만족 혈통의 -또는 게르만족 혈통이라고 여겨지는- 집단) 전체를 아우르는 통일 국가를 지향하는 개념으로써, 19세기에서 20세기 중반 사이 전 세계를 풍미한 민족주의, 특히 민족자결주의 적 국가관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말하자면, 독일 민족주의자의 입장에서 '대독일의 건설'이란 한국인의 입장에서 '우리의 소원은 통일' 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봐 줄수 있었던[70] 것이고,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오스트리아 합병이나 체코슬로바키아 합병에 영국과 프랑스가 명확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것 역시 (상당부분 1차 세계대전의 피해로 인한 혐전 정서에 기반한 것이기도 하지만) 일정부분은 당시 세계를 풍미하던 민족주의적 입장에 따라 독일인 역시 자신들의 단일한 민족국가를 가질 자격이 있다고 여겼던 것에서 기인했던 것. 그러나 나치의 만행 이후 독일 민족주의의 지향점이던 대독일 개념은 철저히 금기시되어 버렸다. 즉, 독일 민족주의자의 입장에서 보면 (독일 민족주의 자체가 히틀러의 집권에 상당부분 기여하고 그 만행에 부역한 과오가 막대함을 부정할수는 없으나) 히틀러와 나치당이 날뛴 덕분에 전후 '대독일' 존재 자체가 철저히 부정당해 버린 셈이다. 특히 중세때부터 독일계 국가들의 맹주 노릇을 하던[71] 오스트리아가 독일에 통합되는 길이 막혀버린 것은 매우 뼈아픈 편.

역사 독빠들은 나치를 극혐한다. 문화, 역사적인 의미로 독빠의 관점에서 나치는 독일을 잿더미로 만들고 간지 판도를 축소시키며, 저 멀리 트란실바니아까지 퍼져있던 독일 문화를 한큐에 말아먹은 것도 모자라 중동부 유럽 널리 퍼져 있던 독일 문화적 커뮤니티 재건의 논의도 되기 힘든 여건을 만들어 버린 천하의 개쌍놈들이다!!!

2.7.1. 신성 로마 제국 독빠[편집]

'서방의 보편 제국'이라는 화려한 간판을 가진 신롬에 하악거리는 부류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볼테르의 그 유명한 조롱을 비롯하여, 신롬이 말기의 모습 때문에 '신성하지도 않고 로마도 아니고 제국도 아니다'라고 폄하되는 경우가 많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소한 당대의 서방인들에게는 엄청난 진실성을 가진 정체성이였다. 자세한건 신성 로마 제국/오해 문서 참조.

신롬빠의 경우 12세기로 대표되는 중세의 전성기에 보여준 신롬의 모습을 좋아하는 경우도 있고, 혹은 카를 5세 시절 스페인과 이탈리아 일부를 포함한 합스부르크 영지를 숭상하는 경우도 있고, 오스트리아를 구심점으로 하는 대독일주의 독일을 지지하는 경우도 보인다. 카를 5세 이후의 합스부르크 제국 모습을 좋아한다면 프로이센에 의한 소독일주의를 거부하며 밑의 독빠들을 짝퉁으로 까내리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소수이지만, 신롬으로 대표되는 '대독일'적 모습보다는 그냥 오스트리아가 좋아서 신롬빠를 겸하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 넓은 의미에선 독빠일 순있지만, 오스트리아빠에 가깝다. 사실 저렇게 카를 5세의 재상 메르쿠리노 가티나라가 주장했던 서방 기독교권의 보편 제국을 추구했던 이념을 빨며 이탈리아, 스페인도 빨아 재끼거나, 아니면 베스트팔렌 조약 이후 확실하게 신성로마제국 강역에서 실질적인 국력을 뽑아 내려는 걸 포기하고현대 오스트리아와 역사적 보헤미아, 헝가리 중심으로 형성 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빠는 건 빠질의 대상이 되는 합스부르크 帝國을구성하는 諸國 중에 독일계 국가인 오스트리아가 있다이지 순수한 독빠라고 보기에도 애매하다.

3. 특징[편집]

위에서 지적했듯이 독일에 대한 미화가 쩌는 편이다.

여기에 밀덕 독빠들은 밀덕 특유의 편협함까지 곁들여서 밀리터리를 넘은 방면에서까지도 억지를 부리는 경우가 많다. 일부 밀덕 커뮤니티나 독빠가 많은 커뮤니티 (예를 들어 엠팍) 등에서는 자동차나 축구처럼 전통적으로 독일이 강세를 보이는 방면 이외의 모든 방면에서도 독일이 다른 나라를 압도한다는 식이다. 예를 들어 이런 독빠들은 독일어가 프랑스어보다 유용하다거나[72] 혹은 (영어보다 가까워서) 한국인에게 쉽다는 주장을 늘어놓거나, 유럽문학 중에서 독문학이 최고라는 이야기도 한다.[73] 베를린이 파리보다 훨씬 볼거리가 많고, 독일인이 프랑스인보다 친절하고 교양있다는 주장도 빠지지 않는다. 물론 이런 주장은 모두 개인적인 감상이거나 근거가 없는 것이다. 그래도 요리는 차마 독일 요리가 프랑스보다 낫다고는 못한다

독일의 라이벌 국가인 프랑스에 대한 비하도 이들의 빼놓을 수 없는 특징이다. 밀덕의 주류를 이루는 독빠(+미빠)들에 의해 프랑스의 역대 사기 행각 전설이 약 2000년대 10여년간 한국 밀덕계를 지배했는데, 이후 모든 것이 거짓으로 판명되었음에도 독빠중에서는 아직까지 이런 사기를 믿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의 프랑스에 대한 인식은 와패니즈들이 인식하는 중국과도 완벽히 호환된다. 그러면 와패니즈의 한국 인식 = 독빠들의 폴란드 인식 적절하려나 또한 위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제국주의 투톱을 달리던 프랑스의 여러 만행이나 흑역사를 들춰내어 나치 독일의 악행을 물타기하려는 악질 불까 독빠들도 많다. 문제는 이들이 빠는 독일은 말할것도 없고 영국, 미국과 같은 제국주의 국가들도 이보다 마찬가지거나 심했던건 사실인데, 이들은 프랑스 저랬다고 주장한다.[74] 여기에 이미 거짓말로 밝혀진 프랑스 역대 사기행각 전설이나 외규장각 도서에 직지심경을 슬쩍 끼워넣는 왜곡도 서슴지 않다. 이런 악질 불까 독빠가 많은 사이트로는 과거의 리그베다 위키를 들 수 있다.[75] 폴란드도 독빠들이 자주 비난하는 국가로, 유튜브에 폴란드 관련 영상이 올라오면 폴란드를 욕하는 독빠들이 자주 출몰한다.댓글 참고[76]

한국 독빠들의 맹목적인 독일 미화는 정작 독일인들조차 우려의 대상으로 생각한다. 다니엘 린데만의 인터뷰 기사나 주한 독일 대사의 인터뷰만 # 봐도 한국의 맹목적인 독일 미화에 으쓱해하기는 커녕 오히려 이것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4. 각국의 독빠[편집]

4.1. 일본의 독빠[편집]

메이지 유신 때부터 일본은 독일을 주요한 모델로 하여 발전하였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개념 독빠애초에 똑빠는 개념 상실이지만무개념 독빠 골고루 가장 많은 나라이다. 의학, 약학, 화학 등 많은 분야에서 독일어를 도입했으며, 정치체계까지 독일(프로이센)에서 모델을 따왔다. 그러다 부작용도 똑같이 나와서 망했지만(...)

일본 밀덕계에서도 전반적으로 독빠 성향이 짙다. 이 점이 한국 밀덕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보는 견해도 많다. 초기 밀덕용 자료들 대부분이 일본 출처라거나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고 애당초 밀덕과 만화,애니 같은 서브컬처가 상당히 연관이 많기 때문. 여기에 당시 조악했던 한국 밀리터리 프라모델업계에서 일본쪽 금형을 카피한 제품을 낼때 2차대전들중 독일군 프라모델도 같이 흘러들어온 것이 시너지 효과를 이루었다.

또한 애니메이션계도 밀리터리를 다루면 무조건 독일제 무기가 주인공 측의 무기로 등장할 정도로,독뽕 메타가 사실상 일본 밀리터리 애니메이션을 지배하고있다고봐도 될 정도로 독뽕이 심각하다

그리고 위에서 언급한 2차대전 독빠들의 문제점 역시 일본 독빠들은 거의 똑같이 가지고 있다. 아니, 오히려 이쪽은 지극히 당연한 역사적인 이유로그나마 최소한의 도덕적 딜레마도 없이 나치스도 긍정하고, 파시즘도 긍정하고, 일제도 긍정해버리는 그냥 극우가 되기 쉽기 때문에 오히려 한국 독빠 커뮤니티의 암적 요소 상당부분을 사전주입해 놓은, 악성 독빠계의 최종보스정도로 심하다(;..)

4.2. 미국의 독빠[편집]

마찬가지로 미국에도 상당수 독빠들이 존재한다. 제2차 대전 전에는 미국나치당(American Nazi Party)(...)이 존재하였고, 이들이 워싱턴 DC에서 시가행진을 할 정도였다. 이들의 주장은 유대인과 흑인 반대. 다행히(?) 나치 독일의 동맹국인 일본이 미국을 선제공격하고 제3제국이 미국에 선전포고 하면서 미국나치당은 불법화되었다.

1960년대부터 미국에서도 밀덕 독빠들이 많아졌다. 한국에도 간간히 번역되는 각종 영문판 2차대전 밀리터리 서적들의 소비층이 바로 이들이다. 다만 이들은 한국이나 일본처럼 나치를 노골적으로 옹호하지는 못하고, 홈페이지를 봐도 자기들은 순수한 취미활동으로 독일군이나 무장친위대를 좋아하지, 네오나치와 그 이념과는 무관하다며 선을 긋고 있다. 미국은 유대인들의 입김이 세기 때문에 설령 어떤 꼴통이 그런 생각을 하더라도 공개적으로 펼칠 수가 없다.

미국에는 문화독빠나 정치독빠는 그다지 존재하지 않는다. 차라리 문화적으로는 불빠나 일빠가 많고, 정치적으로는 지나치게 자국중심주의라서 문제. 다만 자동차 독빠는 상당히 존재하는 편.

다만 이들도 독소전쟁 만큼은 지나치게 소련을 비하하고 독일에 편파적인 기술로 악명높다. 미국에서 펴낸 제2차대전 통사를 보면 대부분 독소전쟁은 아프리카 전역 정도의 마이너 전역이고 노르망디 상륙작전이야말로 나치에 사형선고를 내렸다는 식으로 묘사하는 경우가 많다. 덤으로 소련군의 만행을 강조하는 것도 냉전 초기 미국의 프로파간다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유튜브 에서도 일부 중증나치빠들이 2차대전기 SS와 국방군의 사진이나 동영상과 군가를 편집한 비디오을 올려놓고 댓글로 나치독일과 SS를 진정한 영웅,용감한 병사들로 치켜세우고 찬양하며 연합군과 소련을 악의 축으로 폄하하고 각종 인종차별 발언을 서슴치않는등의 추태를 보여주기도 한다. 예시 보다보면 지금이 21세기인지 1930년대 나치당집권기인지 헷갈릴정도. 나치딸잡이들 그들이 원하는대로 나치가 세계를 지배했다면 수용소에 끌려가서 개죽음당하는건 자기들이라는걸 깨닫지 못하나 보다 댓글에는 독일계가 많이보인다. 독일 혼혈인걸 자랑스러워하는 댓글도 있다. 근데 웃긴건 덧글 단 사람 대부분이 나치랑 박 터지게 싸웠던,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서양권에서는 특이하게 주로 영어권 국가들이 나치에 대한 혐오감이 없는 편인데, 그러다보니 나치빠들도 불어권 국가나 기타 서방 국가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은 편이다. 덧글 보다보면 프랑스인이나 러시아인이 미국인이나 영국인들과 싸우는 걸 볼 수 있다 그러나 respect from france나 italy같은 댓글도 많다

고의적인 나치 찬양 영상뿐 아니라 일반적인 총기리뷰 영상, 그중에서도 2차대전기 나치독일의 총기 관련 영상에도 주로 서식하며 AK와 AR15는 모두 Stg44 짝퉁이라고 주장하거나, 독일공학, 무기에 대한 찬양 일색인 댓글들을 쓰고 베댓란을 독차지하며, 왜 영상 총기 소개부분에서 하켄크로이츠대신 독일 국기를 걸어놨냐고 묻는 댓글에 유대인들때문이라고 답글을 다는등 역사의식 제로+인종차별적인 모습까지도 보여주어 독빠를 제외한 보는이들을 불쾌하게끔 만든다. 총기 뿐 아니라 제3제국을 다루는 동영상의 댓글란을 보면 고의적인 트롤링인지 아니면 유대인에 대한 피해망상인지 의도는 모르지만 유대인에 대한 인종차별, 폴란드 등 나치 독일에 침공받은 국가들에 대한 조롱을 담은 댓글이 추천 폭격을 받고 베댓으로 올라가 있는 일이 빈번하다.

2016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 이후 미국 청년들 사이에서 대안 우파 열풍이 불고 인터넷에도 그 영향을 끼쳐 대안 우파 성향의 네티즌들이 급격히 증가하게 되면서 이런 현상은 더욱 심각해 지고 있다. 대안 우파의 성향이 나치즘과 유사하고 실제로 그 일부는 진짜 네오 나치이기도 한 만큼 만큼 단순 독빠를 넘어서 나치빠 수준의 행태를 보여준다. 독일은 찬양해도 나치는 부정하던 이전과 달리 위의 예시들 처럼 당당히 나치를 옹호, 찬양하는 글을 쓰고, 유대인과 홀로코스트 피해자들을 조롱하고 비방하며, 이를 비판하는 정상적인 네티즌과 키배를 벌이기도 한다. 다만 유대인에 대한 비난은 이전부터 유대인들의 미국 사회 엘리트 계층 진출에 대한 WASP를 위시한 기존 미국인들의 반감과 이스라엘의 여러 만행 등 여러 요인으로 인해 반유대인 사상이 네티즌들에게 확산되어 왔던것을 감안하면 그 수가 늘었을 뿐 과격함의 정도는 과거와 달라진게 없다.

이런 웹독빠들을 부르는 Wehraboo(Wehrmacht + Weeaboo), Nazi fanboy라는 신조어가 있다.

카투사로 복무할 경우 미군 사무시설에 들어가면 내셔널 지오그래픽부터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에 이르기까지 각종 잡지들이 비치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혹시 시간이 된다면 이중 군사학이나 밀리터리 관련 잡지들을 잘 찾아보자. 읽다보면 컨텐츠의 상당량이 나치독일군 관련 자료들을 다루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2015년에 발간된 모잡지의 칼럼 중에서는 루프트바페 원수인 볼프람 폰 리히트호펜에 대해서는 매우 유능했던 공군 지휘관으로써의 모습이 부각되어 상당히 긍정적으로 묘사하기도 하였다.

4.3. 독빠인 인물[편집]

  • 카를로 젠: 인터넷 소설가로 그의 대표작인 유녀전기에서의 주인공측 세력의 모티브 자체부터가 독일이며,[77] 그에게 온갖 버프를 받는 무기 및 국가의 모티브가 독일과 관련되어 있다. 이외 다른 작품들의 작풍을 보면 독빠라기보다는 소련까인 것도 같지만.

  • 유시민: 독일 유학파로서 독일의 복지제도에 큰 선호를 보인다. 한 저서에서는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에게 학습에 지장있을 알바를 할까봐 정부에서 보조금까지 지급하는 독일의 복지제도를 거론하면서 "독일은 자본주의 체제라고는 하지만 공산주의 창시자 마르크스가 꿈꾼 모든 것을 이뤄 놓았다"고 극찬. 정작 독일은 하르츠 개혁 이후 유시민이 찬양하는 복지국가와는 전혀 다른 나라가 되었다.[78]

  • 진중권: 유시민과 마찬가지로 독일 유학파이고 독일 예를 꽤 많이 든다.

  • 김종인: 독일 유학파이고 하려고 하는 정책 방향도 독일 경우를 많이 인용한다

  • 이원복: 역시 독일 유학파로서 초창기에는 유시민과 비슷한 독일관을 보였으나, 2000년대 이후 급격히 보수화.

  • 고바야시 모토후미: 개념은 잡혀있는 사람. 작품에서 민간인을 학살하는 독일군이 나오고[79] 소련군들 중 꽤 신사적인 인물들[80]도 많이 나오는 관계로 무조건 독빠가 아니다.

  • 리치 블랙모어: 프란츠 베켄바워를 보고 나서 베켄바워와 독일 축구의 팬이 되었다고 한다. 또한 1960년대 이후부터 1974년 미국으로 이민가기 전까지 독일에서 계속 거주하였고,[81] 첫 번째 부인과 두 번째 부인도 독일인이고 큰 아들의 이름도 독일식 이름인 위르겐(Jürgen)으로 지었다.

  • 모리즈미 소이치로: 슈퍼로봇대전의 시나리오 라이터. 왠지 독일어를 좋아하여 그가 담당한 설정은 그다지 올바르지 않은 독일어가 많이 쓰인다. 본인은 자신이 전생에 독일인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중.

  • 이즈부치 유타카

  • 다나카 요시키

  • 이범석

  • 안호상: 초대 교육부 장관

  • 우에다 신

  • 장제스: 중일전쟁 직전까지 독일과 군사교류를 행해왔으며, 자신의 직속부대(약 20만명)에는 독일식 헬멧과 제복을 입힐 정도였다.

  • 차범근: 축구 한정.

  • 표트르 3세: 역사를 바꾼 독빠. 이 항목의 최강자[82]

  • 윤민혁

  • 최순실: 독일 영구거주를 목적으로 독일에 유령회사를 설립하였다.

4.4. 독빠인 캐릭터[편집]

  • 함대 컬렉션 - 이8: 실제 모티브가 된 한 구일본군 잠수함이 당시 동맹이었던 나치 독일과 인연이 닿은 점도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 거기에 덧붙여 이 게임의 흥행에 일조한 한 만화가대표작에 등장하는 독일인 캐릭터의 대사를 오마주한 것은 덤.

  • 루돌프 폰 골덴바움: 이름을 보면 원래 독일계[83]로 보이는데, 아예 은하영웅전설의 은하 제국을 프로이센을 모델로 한 군국주의 독재국가로 만들었다. 은하 제국군들도 모티브인 독일 국방군과 아예 빼다박은 모양새가 느껴진다.

5. 여담[편집]

'독빠족'이라는 민족이 있다고 한다.
매우 매니악하지만 소련빠, 넓게 보면 러시아빠인 동시에 독빠인 사람은 동독빠가 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이상하게도 프랑스에 열등감을 가지기라도 한 건지 뭐든지 프랑스를 까고 본다. 정작 역사부터 문화까지 18세기까지 3류 국가였던 독일은 프랑스에게 영향 받은 것들이 많다.

그리고 러빠소빠를 만나면 둘의 격렬한 논쟁을 볼수있으며 나치 이야기 나오면 아예 야 이 빨갱이 새끼야 야 이 파시스트야 하면서 대놓고 싸우는 걸 볼 수도 있다! 진정되어도 히틀러 이야기 나오는 순간 스탈린과 레닌이 나오며 또 싸운다 그리고 안습고르바초프

[1] 알만한 사람은 알겠지만, 실제로 드골이 한 말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말했는데, 드골이 한 말로 알려져 있다.[2] 본 뜻은 독일이 로 갈라졌으면 하는 뜻이다.[3] Weeaboo(일빠)+Wehrmacht(독일 국방군)[4] 영국이나 미국의 여러 대학에서는 재학중 귀국해 1차대전에 참전했다가 전사한 독일유학생들은 적어도 자국의 전몰 학생들과 비슷한 대우를 해준다. 하지만 2차대전의 나치 독일군에 복무해 전사한 유학생들에게는 그런거 없다. [5] 나무위키의 엘랑 비탈 항목은 전형적인 독빠가 작성했는지 프랑스군 비하가 너무 심하다. 포슈를 무슨 무다구치 렌야나 노기 마레스케 처럼 그려놨고,프랑스군이 이런 교리를 이용하여 수많은 사상자가 났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사실은 프랑스군뿐만 아니라 독일군도 참호전을 돌파할 수 없어서 비슷한 실수를 한 것을 보면 딱히 프랑스군의 병크만으로 돌리는건 전형적인 독빠 논리.[6] 1차대전의 연합국 최고지분은 미국이나 영국이 아니라 프랑스였다. 왜 1차대전 서부전선 총사령관을 프랑스군의 포슈 원수가 맡았는지를 생각해보자. 또한 1919년 파리강화회의에서도 비교적 독일에 유화적이었던 영국과 미국의 태도에도 불구하고 초강경이었던 프랑스의 의견이 적극 반영된게 괜히그런 것이 아니다. [7] 애초에 영국은 섬나라,그리고 해군을 주로 키운 국가이고 영국은 독일 제국 해군을 상대로는 삽질도 좀 했지만 독일 제국의 숨통을 충분히 막아주며 해야하는 일은 다 해줬다. 그리고 일단 섬에서 기어나온 이후에는 프랑스 다음가는 주력으로 자리잡았다.[8] 1985년에 국제연합에 의해서 20세기 최초의 제노사이드로 규정되었다. 그리고 독일은 그 이전까지 사과도 배상도 거부해왔고 2016년에 들어서야 사건 자체는 인정하였으나 배상은 거부했다.[9] 당시 미군은 현대와는 전혀 다르게 낙후된 군대였다. 고립정책을 추구하다보니 유럽의 최신 군사기술에는 관심 없이 주변의 만만한 삼류국가나 아메리카 원주민 정도만 상대할수 있으면 되었기 때문. 카우보이 모자쓴 양키들이 제대로 된 자동화기도 없이 싱글벙글 웃으며 오는걸 보고 영국과 프랑스군이 경악해서 무기를 쥐여줬을 정도...그게 쇼샤니까 문제지 그나마 해군은 마냥 약한것도 아니였으며 개인화기는 선진적이었다.[10] 그렇지만 리-엔필드의 경우 연사력 면에서,르벨은 장탄수 면에서 Gew98보다 뛰어났다,물론 르벨은 장전과 탄창 문제가 있었지만[11] 정확히는 이탈리아 제국군이[12] 웃긴건 이렇게 패전의 원인을 특정한 개인에게 돌리는 것은 이들이 믿는 또 다른 미신인 독일 국방군이 철저히 합리적인 조직이었다는 주장과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연합국의 스탈린이나 처칠도 뻘짓은 제법 많이 했는데 정작 독일의 승리를 저들의 뻘짓탓으로는 절대로 돌리지 않는다.[13] 날씨는 행운이라고 볼 여지가 있으나 그런 날씨에 고통받는건 양쪽이 동일하다. 날씨 때문에 졌다는 것은 결국 그 날씨에 대한 대비가 부족했다는 이야기일 뿐이다. 소련군도 동장군에 의해서 제대로 이기지 못한 전쟁으로 겨울 전쟁이 있다.[14] 소련군이 전쟁범죄를 저지르기는 하였으나 지휘부의 통제를 벗어난 개인이 저지른 행위였고 이는 영-미와 다르지 않다. 복수심에 불타는 소련군 병사 개개인에 대한 통제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을 뿐이다.[15] 소련을 디스해서 미국으로 추방당한 반체제작가인 솔제니친의 자전적인 소설인 수용소 군도에서, 스탈린에게 불경죄를 범해 굴라그로 온 주인공의 감방동료 두명은 독일 여인을 강간했다가 NKVD에 체포된 소련군 병사였다. 그러니까 소련에서 대역죄인 스탈린 모욕죄만큼 소련군 당국이 점령지 주민에 대한 병사의 범죄들을 심각하게 다뤘다는 것이다.[16] 라이헤나우는 6군 사령관이었고 룬트슈테트는 6군이 소속된 남부집단군 사령관이었다. 따라서 상명하복이라 어쩔 수 없다는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17] 딱 한명 반대한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은 다름아닌 프리드리히 파울루스로 라이헤나우가 남부집단군 사령관으로 영전한 이후 6군 사령관이 된 다음 이 강조명령을 폐기했다.[18] 독일이 민간인들의 피해에 대해 소련이나 그밖의 동유럽 국가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한다면, 먼저 독일이 그 몇배의 배상금을 물어줘야 한다. 독일이 착해서 가만히 있는게 아니다.[19] 이 독빠 논리대로라면 왕징웨이 정권을 세운 중국도 추축국이고, 수많은 청년들이 징병에 끌려가 일본군에 복무한 한국도 추축국이며, ROA에 수만명이 참여한 러시아도 추축국이다. 레지스탕스도 흔히 알려진 것보단 그 활약이 많이 과장된 것이지만 비시 프랑스가 밀리스를 동원하여 견제할 정도였다. 심지어 비시 프랑스를 지지하는 반독 레지스탕스도 있었다.[20] 누군지는 말할 수 없으나 "세"짜로 시작한다. 2011년 이전부터 네이버 카페를 통해서 활동했으며 서프라이즈에도 벵골대기근에 관련되서 날조된 정보를 제보하거 과거 2차 세계대전 갤러리에서 무수한 키배를 벌이기도 했다.[21] 특히 네덜란드는 히틀러가 그렇게나 빨아제끼던 같은 게르만 계통이더라도 자기들한테 비협조적이라면서 밀어붇인다.[22] 이때의 만행을 비판하는 선에서 끝나면 다행이지만 거기에서 더나가 나치가 나았다는 논리를 펼치는 사람들이 몇 있다[23] 예시로 그 일제 강점기의 일본조차도 산미증식계획 당시 잡곡을 들여와서 풀게 하는 등 최소한의 인프라는 살려두려 했다. 또한 당장 레오폴드 2세가 같은 식민 제국 내에서도 왜 욕을 먹는지 같은 맥락이다.[24] 이는 지금도 완벽하지는 않아서 의도치않게 민간인의 피해가 발생하곤 한다. 하물며 2차 세계대전 당시의 기술수준으로는 더더욱 불가능한 이야기다.[25] 소련군 포로의 경우 소수의 견해로 70%까지 잡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57% 정도로 잡는다. 일본군의 경우 중국군을 집계에 넣으면 최대 40%까지 올라간다고 한다. 물론 어느쪽이든 영/미에 비해서 훨씬 많이 죽은건 변함이 없지만.[26] 가끔 일본이 실행한 민족말살정책과 비슷한거 아니냐고 오해하는 사람이 있는데 전혀 아니다. 말살이라는 단어의 어감 때문에 혼동할 수 있으나 민족말살정책의 목적은 자신들의 식민지배 정당화하는데 목적이 있다. 반면 나치의 인종말살정책은 아예 특정 인종(유대인,슬라브등)을 지구상에서 멸종 시켜버릴려고 한 것이다.[27] 실제로는 독소전쟁이나 식민지배에 관해서는 그리 깔끔하다고 보기 힘들지만 냉전의 영향과 식민지배에 관한 국제사회의 비교적 관대한 인식 덕분에 독일이 깨끗하게 과거사를 청산했다는 듯이 알려져있다.[28] 그나마 이쪽은 많이 개선된 편이라 소련의 기여에 대해서는 잘 알려진 편이고 반대로 서방연합군에 대한 저평가가 일어나는 부작용도 있다. 다만 역시 전쟁범죄 피해는 주목을 못받는 편.[29] 그나마도 홀로코스트=유대인 학살이라고 생각한다. 집시(총 인구 대비 비율로는 유대인보다 더 많이 죽었다고도 한다), 사회주의자, 장애인, 성소수자 등도 수백만이 학살되었다는 사실은 모른 채. 항목 참고.[30] 탄막을 형성할때도 난사로 대충 갈겨서 형성하는게 아니다. 실제로는 화력을 평소보다 퍼붓되, 난사하는게 아니라 적당히 조절해서 끊어야 한다. 게다가 연사력이 높은 화기로 마구 갈겨대면 탄소모로 인해 탄막 형성이 일찍 끝나버려 차라리 점사하느니만 못한다. 영화에서야 기관총의 화력을 부각시키기 위해 난사하는 장면이 많이 나오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지 않다. [31] 물론 Yak-9가 고공에서의 성능이 나쁘다는 서술이면 차라리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실제로 대전기 소련군 항공기의 대부분은 고공에서의 성능이 형편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내용도 아니고 뜬금없이 손실비(그것도 전체 전투기간의)를 비교하여 저런 결론을 내리는것은 뜬금없는 내용이다.[32] 단, 이건 독빠가 아니라도 러시아의 모 게임에서 SU-152 같은 자주포들을 죄다 구축전차로 분류해버려서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냥 구축전차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기는 하다.[33] 물론 최후기형인 Bf109 K-4가 등장하면서 스핏파이어 IX형에게 다시 동등 이상의 성능을 확보하게 된다. 물론 그 시점이면 스핏파이어도 개량형이 나왔고 두 기체가 싸울 일 자체가 거의 없어진 시점이지만.[34] 얼마나 영향을 주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상당한 영향을 준건 확실해 보인다. 고다드는 V2를 조사한 다음 독일인들이 자신의 기술을 훔쳤다고 판단하였으며 V2의 개발자인 브라운 조차도 고다드의 연구가 자신이 V2를 개발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은 인정했다.[35] 특히 제트기를 들먹이며 독일의 항공기술력이 최강이라고 주장하는게 설득력이 부족한 것이 당시에 미국과 영국 또한 제트기를 이미 개발한 상태였지만 당시 제트엔진 기술이 초기단계라서 (연합군이건 독일군이건 할것 없이)문제점이 많은 상태에서 굳이 어거지로 투입할 필요성이 낮았고, 기존에 사용중인 레시프로기로도 충분히 밀어버릴 수 있었다는 점, 괜히 최신 기술이 들어간 제트기가 노획되서 만에 하나 소련으로 넘어가면 곤란하다는 점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다.(미티어가 배치되었을때 독일이 점령한 지역으로 못넘어가게 한 이유가 이것.)[36] 제트기의 배치를 기준으로 하면 3개월, 비슷한 성능의 기체가 배치된건 6개월정도 차이가 난다. 물론 제트기 자체는 독일이 먼저 만들어본 경험이 있다는것을 고려할 필요는 있다.[37] 그게 안되자 다른 나라는 쓸만한 제트기를 못만들어서 배치가 늦어진걸 독일이 배치하자 어거지로 배치했다는 정신승리를 시전하기도 한다. 글로스터 미티어P-80 슈팅스타의 성능은 Me262와 비교해서 그렇게 떨어지지 않으며 일부 성능은 오히려 우세한 부분도 있다.[38] 독빠들이 잊고 있는 것은 식량 위주의 렌드리스를 제외하고 무기대여가 제대로 가동된것은 적어도 1943년이며, 1944년 초까지는 독일은 프랑스나 이탈리아 북부 등의 공업지대를 활용할 여지가 있었고, 영향력하에 있었던 지역들의 자원을 모조리 쓸 수 있었다는 점이다. 즉, 우랄 산맥 서쪽의 산업시설이 반이나 파괴되었던 소련보다도 훨씬 유리한 위치였다. 다만 그 막대한 유럽 전역의 자원을 가지고 영국엔 폭격만 날리다 레벤스라움 같은 막연한 이론에 기대어 독소전쟁을 일으키고 홀로코스트와 동부전선의 인종청소에 낭비하였을 뿐이다.[39] 독빠들은 소련이 공업지역의 상당수를 잃고도 독일 이상으로 기갑부대를 찍어낸걸 모두 다 미국의 렌드리스 때문이라고 우긴다. 하지만 렌드리스가 제대로 가동되는 1943년 이전에 생산되었던 T-34의 생산량이 1차 세계대전 시기부터 2차 대전 종전 직전까지 독일에서 생산되었던 모든 전차들의 총생산량을 능가한다.[40] 물론 독일의 기술자들이 승전국으로 가서 개발을 돕거나 일부 기술은 관련분야에 널리 쓰인 경우도 있었것 자체는 사실이지만 큰 영향이 아니거나 일부분에만 독일기술이 적용된 경우도 많았다. 이들의 문제는 진짜 독일의 영향이 큰 물건이 아닌 것에도 확실한 증거없이 비슷하게 생겼다고 이런 주장을 하는건데 각 국가의 개발사를 알고 있는 사람 눈에는 어이가 없을 수 밖에 없다.[41] 당장 독일의 판터가 소련의 T-34의 경사장갑을 보고 경사장갑을 적극적으로 도입했다.[42] 사실 아리사카의 전신인 30년식 소총만 해도 화력이 좀 빈약했을 뿐, 그럭저럭 잘 맞는 소총에 속했다. 일본 무기들이 대전 말기로 갈 수록 열악한 생산력에 의해 저질이 많았었는데 그런 사례가 심각하게 부각이 됐을 뿐, 제대로 만들면 성능 자체는 크게 떨어지는 정도는 아니다. 단, 일본 중소화기 특유의 화력 부족은 명백한 사실이다. [43] 꼭 독빠가 아니더라도 이러한 정보가 확대 재생산되어 오오 티거 오오...하는 사람은 인터넷에 널려 있다.[44] 혹은 연합군 기갑전력에 비해[45] 꼭 독빠가 아니더라도 많은 밀덕들이 간과하는 사실이지만 샤르 b1 bis는 독일군들이 가장 격파하기 곤란해했던 전차 중 하나다. 장갑은 40mm, 그 개수형인 bis는 60mm가 넘어 어떤 전차포로도 격파가 불가능했던 반면, bis의 75mm 야포는 모든 독일 전차를 단발에 격파 가능했다. 47mm 주포도 허약하지 않아서 3호 전차 이하라면 모조리 격파할 수 있던 무시무시한 전력이었다.[46] KV-1이 나치의 대전차병기에 의해 전면이 관통당하기 시작하자 소련은 KV-1의 전면에 용접으로 추가장갑을 달아대기 시작했다. KV-1은 점점 장갑이 증가되며 42년형은 전면장갑이 100mm에 최대 장갑은 130mm에 달한다. 그런데 이 장갑으로도 Pak 40의 APCR은 쉽게 막을 수가 없었고 오히려 너무 무거워져서 T-34와 같이 사용하기가 불가능해지고 보병전차로나 써야될 판이 되자 그냥 장갑을 포기하고 다시 가볍게 다이어트를 시킨다.[47] 애초에 마틸다 전차는 중전차 KV-1 초기형과 맞먹는 75~78mm의 떡장갑을 지닌, 홍차빨고 만든 전차였다(...).[48] 그래서, 판터의 설계는 명백히 T-34의 경사장갑 등을 모방한 설계였다.[49] 미국의 T28은 지크프리트 선을 뚫기위한 중장갑 자주포였고, 소련의 대부분의 고정전투실 자주포는 말 그대로 자주포라서 화력지원 용도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기 때문에 대전차포가 아니라 분리장약식 탄약을 쓰는 일반 야포를 채택한 경우가 대부분이였다. 예외는 SU-85와 SU-100 정도.[50] 주 전장이 러시아 땅인 걸 생각해보면 이건 끔찍하게 심각한 문제다![51] 관통력 자체도 1000m에서 수직입사 시 145mm 수준이라 수직장갑인 티거는 차체 어디를 맞든 터져나간다. 게다가 대구경포라면 파편도 더 많이 발생하고, 승무원 살상 확률도 훨씬 높다.[52] 보병 지원사격과 엄폐물이 되어주는 것, 장애물 제거 등[53] 심지어 이 큰 차체는 독빠들이 셔먼 전차를 깎아 내릴 때 자주 써먹는 레파토리다.[54] T1 중전차, M6 중전차에 960마력 엔진을 달았다. 엔진 말고 이외의 성능에 만족하기 어려워서 투입 자체는 되지 않았지만.[55] 물론 토터스에는 회전포탑이 없다는 단점도 있다. 그것을 고려해도 마우스는 지나치게 무겁다.[56] 실제로 박물관에서 가동시연을 선보인다.[57] 자료에 따라서는 1:1.5정도까지 나오기도 한다. 순수 사망자와 전투에 의한 사망자의 숫자가 다른 이유는 소련군 포로들이 많이 죽었기 때문인데 총 사망자의 33% 이상이 그렇게 발생한 사망자이다. 양쪽의 포로 사망률이 너무 차이가 났기에(소련군 포로의 사망률은 독일군 포로 사망률의 2~4배에 달한다.) 이를 고려하지 않고 계산하면 차이가 발생할 수 밖에 없다.[58] 안타깝게도 소련 공군은 종전 직전까지도 독일군의 격추 셔틀 신세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영국과 미국이 전투기로 못쓰겠다고 까댄 P-39가 방공군에서 굴러다니던 실정이었으니... 소련이 격추시킨 독일기는 높게 잡아도 20%를 넘지 못하는게 현실이다.[59] "독일국방군: 2차대전과 깨끗한 독일군의 신화"에서도 잘 나와있다.[60] 이때 만슈타인의 변호인단은 영국계 유대인으로 편성되었다.[61] 사실 이는 한국전쟁사도 마찬가지다. 북한-중국측 자료가 거의 공개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영어권 자료들은 그저 유엔군-국군측의 시각으로만 전쟁의 추이를 그리고 있다. [62] 서방에서는 데이비드 글랜츠 정도가 그나마 소련측 자료를 비교적 많이 섭렵했고, 소련에 우호적인 전쟁사가인데, 희한하게 독빠들은 위에서 지적한대로 그의 설의 일부(르제프 전투)만을 아전인수로 끌어와서 독일군 무적설을 옹호하고 있다. [63] 특히나 당시에 소수였던 미빠와 수는 비슷했지만 자료의 부족으로 키배에서 독빠를 이기기 어려웠던 러빠들에게 원한을 산 것이 사실상 몰락의 한 원인이기도 했다.[64] 사실상 노보 러시아는 사복 입은 러시아군이란 사실은 둘째 치고[65] 물론 해당직업, 예를들어 소세지나 맥주 마이스터 자격을 취득한뒤 맥주나 소세지 업체에 입사하려할 때[66] 다만 이분은 나치 때문에 미국으로 망명했다.[67] 보어는 덴마크 사람이고 영국에서 어니스트 러더퍼드의 제자였다.[68] 물론 프랑크 왕국은 독일만의 역사가 아닌 프랑스, 이탈리아와의 공동 역사다.[69] 신성 로마 제국도 프랑크 왕국과 마찬가지로 독일만의 역사가 아니라 이탈리아, 보헤미아와 역사를 공유한다.[70] 한땐 그랬다. 오스트리아 출신 어떤 상병이 호헨촐레른 왕가가 다스렸던 독일을 먹은 다음 이후 전 세계가 다시 대독일주의 담론 자체를 병적으로 의심할 만큼 거한 똥을 푸기 전까진 말이다.[71] 아무리 저평가를 한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독일계 가톨릭 국가들의 에이스 대접은 받던[72] 독일어권의 모어 사용자가 많긴 하지만 모어를 제외한 사용자는 프랑스어가 독일어를 압도한다. 당장 예술권 공용어가 프랑스어이다.그보다도 닥치고 국제연합 공용어에 뭐가 들어가 있는지 쳐봐라[73] 이는 매우 주관적인 이야기다. 독문학이 다른 나라에 비해 수준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유럽문학 3대장은 영국 문학, 러시아 문학, 프랑스 문학으로 본다.[74] 그리고 독빠들은 영국, 미국의 제국주의 행각도 비난하지만 독일의 만행에 대해선 침묵한다.[75] 히혼의 수치 항목이 사실상 오랫동안 작성금지였던 것이 좋은 예시.[76] 그나마 이쪽은 폴란드의 외교적 실수와 스스로 일으킨 불화라도 있지만 프랑스의 경우는 프랑스의 잘못이 아님에도 비난한다[77] 상세히 말하자면 군대는 제3제국 스타일, 정치는 제2제국 스타일.[78] 약간 부연을 하자면 저 언급을 한 유시민의 저서 <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는 초판이 1994년에 나왔고, 하르츠 개혁은 2002년에 마련되었으니 유시민이 잘못 본 것은 아니다. 이러한 독일에 대한 호의적인 시선도 유시민 만의 것이 아니라 80~90년대 독일에서 유학생활 한 사람들에게 흔하게 볼 수 있는 모습이다.[79] 해피 타이거장갑척탄병, 불꽃의 기사, 특전대 zbv 등.[80] 흑기사 이야기에서 쿠르츠를 살려주는 장교와 늑대의 포성에서 나오는 고도로크, 도로 위의 괴물에 나오는 실존인물인 알렉산더 오스킨과 KV-1의 전차병들 등.[81] "독일에서 계속 살고 싶었지만, 독일은 세금을 너무 많이 걷는다'"라고 나중에 이민의 이유를 밝혔다.[82] 다만 정확히 말하자면 독빠라기보다는 프로이센빠, 혹은 프리드리히빠에 가깝다. 오스트리아 입장에선 그저 부들부들[83] 정확하게는 유태계 성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