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업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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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쉽지 않다!
2.1. 아마추어리즘
3. 그러나 가능하다4. 만만치 않은 덕업일치5. 아예 역인 경우6. 덕업일치 목록7. 관련 어록

1. 개요[편집]

徳業一致[1]

오덕질을 하는 것과 직업이 일치되는 것. 수많은 오덕들이 바라지만, 잘 되지 않는 것 중 하나다. 오덕질은 재미를 추구하지만 일은 실리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실리를 추구하고자 하는 순간 어깨 위에 책임감이 얹힌다. 특히 예체능 분야에서 극대화된다.

단어의 뜻만봐도 알겠지만 절대 고사성어가 아니다.

2. 쉽지 않다![편집]

"프로가 된다는 것은, 당신이 하고 싶은 모든 일을 당신이 하고 싶지 않은 날에 하는 것을 말한다."
(Being a professional is doing the things you love to do, on the days you don't feel like doing them.)
- 줄리어스 어빙

"천문학은 천문학자가 아닐 때 훨씬 더 재미있지."

간단하게 말하자면 일이 되어버린 취미는 예전의 취미와는 다르다. 그것을 잘 명심해야 할 것이다. 그게 직업이 되는 순간 그건 더 이상 취미가 아닌 일이 되어 버린다. 특히 승부나 실적을 요구하는 분야는 더욱 더! 만약 실력이 절대적으로 먹고 들어가는 분야라면 재능이 없으면 포기하는 게 좋다. 실력이 모든 것을 좌우하는 분야라는 소리는 듣기에는 좋지만 진짜 지옥 같은 분야이거나 실력이 모든 것을 좌우하기 때문에 지옥일 수 있다.

축구 선수의 예를 들자면, 의 팀 구성원 자격으로 FIFA 월드컵에 나가서 조별리그에 탈락했을 때 이 상황은 절대 취미라고 웃어넘길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심지어, 그것 때문에 인생이 완전히 망해버린 사람도 있다.

상대적으로 덕후들이 입사하기 쉬운(?) 게임업계를 보자. 게임을 하는 것을 좋아하는가, 게임을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가는, 음식을 "먹는 것"과 "만드는 것" 정도의 천지차이다. 그리고 하고 싶을 때 하는 것과 언제나 해야 하는 것은 또 다시 천지차이. 만드는 거랑 향유하는 건 아예 다른 차원의 얘기다. 또 다른 예시를 들자면, 개인적 만족의 수준으로 만드는 것과, 직업으로서 기능할 정도의 고려를 갖추고 현실사정을 김수하는 것의 차이라고 해야하지 않을까? 이는 프로게이머 항목에도 명시되어 있는 사실이다.
또한 덕업일치를 잘못 실천하면 그 동안 자신이 좋아하고 즐긴 취미를 싫어하게 되거나 아예 청산하는 경우가 제법 많은 편이다.

게임하는 게 직업이 되는 순간부터 더 이상 취미가 아닌 일이 되기 때문에 해당 항목의 문제가 발생하는 것. 또한 게임계나 만화계나 영화, 음악계 등의 덕후들이 선호하는 직업은 3D인 경우가 더 많다. 게다가 직업 자체의 수명도 짧은 편이다. (개발자, 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 자기 게임회사에서는 힘들게 일하고는 집에 가서 다른 게임의 모드를 즐겁게 만든다는 농담도 있다. 즉 여전히 그 일을 좋아하긴 하지만 남이 시키는 일과 내가 자발적으로 하는 일의 차이도 존재한다.

만약에, 본인이 게임 제작자가 된다고 해도 절대로 자신이 만들고 싶은 게임만을 만들 수는 없다. 동인으로서 게임을 자작하는 것은 얼마든지 자신의 취향에 부합하도록 만들 수 있지만, 직업인으로서 게임을 만들게 되면 어찌 되건 수익을 많이 올릴 수 있도록 잘 팔리는 게임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부분은 자신의 취향을 고도화시켜서 발전시키는 덕후로서는 매우 치명적인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덕후가 자기 마음에만 쏙 드는 게임을 만든다면 십중팔구 그 게임은 지나친 제작비와 제작기간으로 막대한 손해를 보거나, 극소수의 동계열 덕후 이외에는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는 게임이 된다! 자신에게 소중한 것일수록 이에 대해 타협하는 것은 고통스럽지만 이를 직업으로 삼아 돈을 번다는 것은 결국 대중과의 타협이 불가피하다.

다만 위의 경우는 어디까지나 게임하는 것으로 좋아하는 사람이 만드는 것 그리고 그것을 판매하는 것이라는 다른 접근으로 하였기 때문이다. 만일 게임을 하는 것을 좋아하는 덕후가 그 덕후 기질을 살려 인터넷 방송 BJ가 된다면 그것은 게임을 만들 줄 아느냐 모르느냐와 상관없고 또한 자기 취향에 상관없이 고객에게 잘 팔릴 만한 게임을 만들어야 된다는 괴리감이 없기 때문에 얼마든지 덕업일치가 되게 된다. 특히 최근엔 인터넷 개인 방송이 다양한 컨텐츠[3]를 바탕으로 과거에 단순 취미로만 하던 것에 비해 수입원으로서 하나의 직업군으로서 자리잡게 되었고 이 직업 특성상 특별한 면허, 자격증, 특출난 기술, 노력 등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도전할 수 있는 일이기에 게임만 할 줄 아는 덕후라도 충분히 가능하다. 아니 이럴 경우는 오히려 천직이라고 보면 될 듯.

철도 동호인 등 교통 계열 오덕질도 철도나 버스, 항공기가 좋다고 버스 운전기사나 기관사, 조종사/객실 승무원 혹은 여행사[4] 등 관광업을 목표로하나, 상당히 어렵다. 특히 철도 지하철 기관사의 경우 묵직한 자격(제2종 전기철도차량 운전면허)을 취득해야 하고, 여행사 취업의 경우에도 관광학과를 나오거나 가이드자격증, 관광통역사자격 등의 자격증을 취득해야 한다. 버스운전기사도 만만찮다. 1종 대형면허와 버스운전자격증 등을 취득해야 하며, 사실상 버스교통에 대한 나름의 사명이 있어야 한다. 이는 철도 지하철도 마찬가지. 그리고 애초부터 교통 계열 직종은 거의 3D 직종이며[5], 관광업도 하나투어, 모두투어 등의 대형 여행사가 아니면 처우가 그리 썩 좋은 편은 아니다. 또 객실 승무원이 되기 위해서는 체력이 좋아야 되고 공부해야 하는 것도 많으며, 항공기 조종사도 월급이 많을 뿐이지 항공기 특성상 엄청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모두 외국어와 뗄레야 뗄 수 없다.

아르바이트도 마찬가지인데, 예를 들어 아케이드 게임(리듬게임 등..)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오락실에서 일하게 됐을 경우, 실제 일해보면 인형뽑기, 스티커사진기 등 자신이 손님이었을 때 자주 즐겼던 기계와는 아무런 관련 없는 일도 모두 해야됨은 물론이고, 교환기 관리나 손님 응대 등의 일도 모두 직접 해내야 한다.

꼭 오덕에 한정하지 않고 일반 사회에서도 많이 일어나는 일이다. 공학이나 음악, 스포츠 아니면 자연과학 특히 물리학……. 가장 극단적이고 찾기 쉬운 예라면 교수 그리고 가장 덕업일치로 역효과를 본 사례

2.1. 아마추어리즘[편집]

진지하게 덕업일치에 도전하는 이들에게 의외로 중요한 문제는 아마추어리즘을 벗고 프로정신을 가질 수 있는가이다. 서브컬쳐 시장이 형성되어가는 상황에서 해당 영역에 관심과 흥미를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직접 제작자로 활동하는 경우가 매우 많다. 이 경우 자신이 돈을 받고 일하는 직업인이라는 것을 정확히 인식하지 못한 제작자가 자신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사례가 종종 발생한다.

예를 들어 분명 돈을 받고 파는 상품인데도 도저히 완성품이라고 할 수 없는 수준의 물건을 내놓거나, 다른 창작물에서 무분별하게 요소를 차용하는 등 동인시절에는 일종의 유머로 받아들여질 수 있지만 상품에서는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박한 행동을 하거나, 판권, 계약과 같은 상품을 출시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부분들에 소홀한 것 등. 구체적인 예시는 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된다.

정말 하고 싶은 대로 마음대로 주무르는데도 잘 팔리는 사람은 정말 손에 꼽힌다. 보통 그런 사람들은 스티븐 스필버그 같은 사람들 처럼 천부적인 재능이나 감각을 타고 나서 인정받는 경우가 대부분. 일단 빌 게이츠는 전설

3. 그러나 가능하다[편집]

모든 덕이 자기 분야의 프로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프로 중에 자기 분야의 덕이 아니었던 사람은 얼마 없다.

물론 덕업일치에 성공한 사람들은 존재한다. 영화 감독 쿠엔틴 타란티노[6] 같은 경우, 영화 만드는 게 즐거워 못 견디겠다고 한다. 또 코지마 히데오는 게임을 직접 플레이하는 것보다 만드는 것이 더 즐겁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건 그냥 일 자체를 좋아하는 경우에 속한다. 일 중독

빼놓을 수 없는 덕업일치로는 안노 히데아키가 뽑힌다. 그의 일생 대부분이 덕을 쌓는데 몰입해왔으며 그 경지가 엄청난 수준임은 그의 작품들로 알수 있다. 대표작인 신세기 에반게리온을 비롯해서 그가 맡은 많은 작품들이 자신의 취향과 생각을 짙게 반영해낸 것들이다. 또한 결혼한 부인의 만화 감독 부적격에서 수많은 일화들을 통해 그의 덕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 수 있다. 함께 사는 사람의 오덕 잠재력을 극한까지 끌어내는 오덕 바이러스의 전파자.

네이버 블로거 중 부머라는 블로거는 오래전부터 슈퍼히어로에 대한 블로깅을 하다가 그 바닥에서 유명해져 진짜 프로로 갈아탄 케이스다. 본명은 이규원. 그것도 그래픽노블 전문 번역가로. 덕업일치가 정 하고 싶으면, 이와 같이 주위 모든 사람이 인정할 수 있을 정도로 광이 되면 된다.

조선일보의 군사전문기자유용원은 본인의 표현으로는 중학생 시절부터 무기에 대한 관심이 있었고, 대학 다닐 때 용산 등지의 외국잡지 헌책방들을 돌아다니며 무기 서적들을 구해보았다고 한다. 이를 통해 전차, 항공기, 미사일, 함정 등 각종 무기 수백 개를 한 번 보면 대충 식별할 수 있을 정도가 됐다고. 그 결과 기자가 되어서도 취미를 살리고자 노력해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군사전문기자가 되었다.

성우 김율도 어찌보면 덕업일치를 했다고 볼 수 있는데 일본 성우들의 애칭을 거의 알고 있고 좋아하며 자신을 성덕으로 불러달라고 할 정도면 말 다했다. 자세한 것은 김율 항목 참조. 또 우리말 더빙 연출하는 피디들 중에서도 덕업일치에 속하는 사람들이 꽤 있는 걸로 유명한데 주로 애니 연출 쪽에 많이 포진되어있다. 대표적으로 애니 덕후이자 성우 덕후기도 한 심정희 피디. 본인의 최애 작품이라 하는 원피스의 연출을 담당했으며 심지어 남편은 다름 아닌 성우 김승준이다. 성우 갤러리의 한 이용자는 이를 덕업일치를 초월한 덕혼(婚)일치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대한민국 연예계 덕업일치 최고급으로는 개그우먼 박경림이 있다. 개그맨 박수홍의 팬클럽 회장을 하면서 박수홍을 따라다니다가 연예계에 들어와 박수홍과 같이 프로그램도 하고 박수홍도 못 따본 연예대상도 탔다. 덕업일치+청출어람. 이와 비슷한 수준의 성공사례는 부활(밴드) 팬클럽 부회장 출신인 신해철이 있다.

인피니트의 리더 김성규의 경우, 의 팬이면서, 가수가 되기 위해 상경했다가 넬의 소속사인 울림엔터테인먼트 사람의 눈에 띄어서 인피니트로 들어오게 되었다. 솔로 앨범에서는 아예 김종완한테 곡을 받은 데다가 별로 비슷하진 않지만 가끔 예능에서 김종완의 모창을 하고, 개인 인터뷰에서 넬의 앨범을 추천하고 있다. 심지어 성규의 솔로 2집 프로듀싱은 김종완이 맡았다. 아이돌 중에 이런 경우가 드문 편은 아니지만, 대부분 다른 소속사, 혹은 시대가 맞지 않아 활동시기가 겹치지 않은 경우가 많은 걸 생각한다면 희귀한 케이스. 일본의 오쿠이 마사미도 이와 거의 유사하다.
여담으로 넬의 보컬 김종완은 소녀시대의 팬이었는데, 태연의 정규 1집 My Voice 작업에 참어하면서 그 역시 덕업일치를 이루었다.

아이돌 그룹 블락비의 리더 지코도 덕업일치 성공 사례 중 하나다.

4년전 Spot, Fanatic[7]에 사인받던 꼬마가 이제 화나 앨범 참여해서 랩해 Show StopperS

- 화나 - Show StopperS Remix 지코 파트 中


비틀즈의 리더 존 레논은 음악계에서 손꼽히는 덕업일치의 사례 중 하나이다. 존은 어릴 적부터 알아주는 엘비스 프레슬리 덕후였다. 그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엘비스 코스프레를 하고 다니며 가수의 꿈을 키웠는데 하필이면 만든 밴드가 바로 비틀즈... 영국에서 성공한 그는 미국에 진출해서 엘비스의 집에 초청되기까지했다! 게다가 엘비스에게 꿀리지 않는 뮤지션이 되어버리기까지...그야말로 청출어람.

예술, 학문 계통처럼 덕업일치로도 힘든 길은 그것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밖에 못 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들은 "별로 하고 싶진 않지만 돈이 되니까 한번 해볼까?" 정도의 마음가짐으로 프로가 되는 경우가 거의 없는 분야이며, 왜? 돈이 안되니까. 프로에 이름을 내건 순간 스스로가 원했던 원하지 않았던 반쯤은 이미 장인인 셈. 같은 3D직종이라도 덕업일치를 한다면 "돈이 벌리건 안벌리건 일이 힘들건 말건 난 이걸 해야 해" 하는 심정이 된다. 예를 들어 일렉트릭 기타리스트를 살펴보자. 기본적으로 프로 기타리스트들을 보면 대부분 연습시간이 5시간 이상은 육박한다. 외국 기타리스트들의 경우는 10시간 넘게 기타만 끌어안고 사는 사람도 있다. 말 그대로 먹고 싸고 자는 것 빼면 덕질이란 소리. 애초에 그게 일이다. 돈벌겠다고 좋아하지도 않는 기타를 이렇게 칠 사람이 존재할 수 있을까?

골동품이나 특정한 주제의 물품들을 수집하는 수집가들은 덕업일치가 불가능한가? 라고 묻는다면, 그런 사람들은 그 수집품들을 전시하는 테마카페나 작은 박물관을 여는 것으로 덕업일치가 가능하다고 답해주겠다. 애초에 박물관자체가 수집덕질을 자랑하는 것에서 시작했다(...)

이선호레기자 역시 어린 시절 해태 타이거즈 어린이 회원이었는데 지금은 KIA 타이거즈기사를 전담하는 기자가 되었으니 덕업일치에는 성공했다. 다만 이쪽은 해당항목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공과 사를 전혀 구분 못 하고 있다. 오죽하면 같은 기아팬들조차 지나친 빠심으로 기아 욕먹인다며 비난하는 상황..

참고로 일본 토요타 사장인 토요다 아키오도 꽤나 알아주는 모터스포츠 덕후라 자기가 직접 사내 테스트 드라이버인 나루세 히로무(1943년생, 2010년 6월 23일 사망)에게 직접 배워서 국제적 모터스포츠 대회인 뉘르부르크링 24시간 내구레이스에 나갈 정도다. 단, 이때는 가명을 써서 나갈 정도. 참고로 이 양반 말고도 자동차 업계에서 알아주는 모터스포츠 덕이라면 애스턴 마틴의 울리히 베츠(Ulrich Bez) 전 대표도 있는데, 이분도 뉘르부르크링 24시간 내구레이스에 나갔다.[8]

어렸을 때부터 가면라이더 시리즈를 좋아해 가면라이더가 되고 싶었던 배우 키리야마 렌가면라이더 W의 주연 히다리 쇼타로 역으로 출연하면서 그 꿈을 이루게 되었다.

오늘날의 올림푸스 카메라를 창조하다시피 한 엔지니어 겸 디자이너, 마이타니 요시히사도 덕업일치의 경우이다. 원래도 라이카 카메라를 가지고 놀던 카메라 덕후였는데, 자진해서 올림푸스에 입사, 스스로 덕업일치를 실천하게 된다. 그가 1950년대 만든 카메라가 PEN 시리즈인데[9], 너무나 많이 팔렸기 때문에 가끔 땅에서 발굴되는 경우까지 있다고 한다. 자세한 내용은 올림푸스 주식회사 참조.

이런 세세한 사례를 제하더라도 최소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한다면 플러스 효과를 기대할 수는 있다.

4. 만만치 않은 덕업일치[편집]

종종 행운의 가호로 덕업일치하여 만수복록을 누리는 경우도 있지만, 실은 "어? 내가 꿈꾸던 건 이게 아닌데" 하며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망가졌다는 고통에 몸부림치는 경우가 더 많다. 단순히 자기가 하기 싫을 때에도 일을 해야한다는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프로로서 직업을 가진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타협의 필요성을 갖게되는 것이다.

행여나 덕업일치를 생각하고 계시는 위키러들이 있다면 직업과 취미 사이의 괴리감 정도야 부차적인 것으로 미루고 보더라도 잘 생각해보자. 본인의 영혼을 불태워 덕질을 프로정신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지. 한마디로 이거 아니면 죽는다라는 감정을 가질 수 있는지[10]를 잘 봐야 한다. 머리로는 가능하다 생각하지만 실제는 또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11]그 정도 감정을 가지게 된다면 수입은 둘째 치고서라도 극도로 즐거운 마음으로 덕업일치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역으로 말하면 그 정도로 절실하다면 덕업일치 하지 말라는 게 오히려 더 가혹한 말이다.

이와는 별개로, 열정페이라는 함정에 빠질 수도 있다. 항목 참조.

5. 아예 역인 경우[편집]

헌데 이렇게 보면 취미를 직업으로 삼을 수 없다면 아예 취미와 정반대되는 걸 하자는 식의 논리도 있다. 작가나 게임 개발자 지망생은 정치가[12], 정원사 지망생은 벌목꾼[13], 탐험가 지망생은 군인, 과학 지망생들은 점술가, 발레리나는 종합격투기 선수, 성우 지망생들은 막장 드라마 배우, 신부 지망생들은 록가수, 경찰 지망생들은 조폭부패경찰?... 이렇게 하면 잘 된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는데... 긴 말 필요없고 한 번 해봐라. 정말 저렇게 해서 잘 되었다면 직업 잘못 선택해 개고생도 안 나왔을 것이다. 작품 속 상황이 무조건 현실에 일어나지 말란 법은 없다.

거기다 애초에 좋아하지도, 관심도 없는 일을 시작했는데 사회생활 내에서의 발전 수준이 어디까지나 갈지 생각해보면 답은 정해져있다.싫어하는 분야 쪽으로 일부러 들어가서 그 분야를 개발살 내버리는 지능형 안티인가

6. 덕업일치 목록[편집]

덕업일치가 되는 직업의 종류

7. 관련 어록[편집]

"프로가 된다는 것은 당신이 하고 싶은 모든 일들을 당신이 하고 싶지 않은 날에 하는 것을 말한다."
Being a professional is doing the things you love to do, on the days you don't feel like doing them


NBA의 스타 줄리어스 어빙

이 말은 메탈리카의 보컬이자 기타리스트인 제임스 헷필드 역시 인터뷰에서 비슷한 말을 했었다.


"쉰이 넘은 지금도 무대 위에서 노래 부르는 일을 도무지 즐기지 못한다. 프로가 어떻게 ‘즐길’ 수가 있느냐. 그저 ‘무서운 숙제’를 하듯 할 뿐이고 일도 놀이도 아닌 피할 수 없는 운명 같은 것, 그리고 팬들의 관심과 사랑에 보답해야 한다는 부채감이 있을 뿐"


가수 양희은 인터뷰


행복의 비밀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는 일을 좋아하는 것이다.


앤드류 매튜스


"인생은 즐거운 겁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하는 일을 좋아하세요!"
Life is Good. Do What You Like and Like What You Do!


서울대학교 물리학과의 한 이론물리 교수 연구실 슬로건.


"악기를 연주하는 건 직업을 위한 활동이 되면 안 돼. 네가 즐거워서 하는 게 돼야지. 그리고 5년쯤 지난 후 네가 재능이 없다는 걸 알게 된다해도 XX 어때? 그냥 구석탱이 스탠드에 세워놓기만 해도 존나 멋지잖아?"


노엘 갤러거


"아마추어는 즐기고 프로는 즐기려고 노력한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말 中


그러니까 다 덕업일치를 하라는 소리잖아

[1] 첫 번째 글자는 '덕 덕'으로, 오덕과 전혀 상관없는 뜻을 지닌 글자이다. 오타쿠를 한자로 표기하면 御宅어댁(おたく)이 된다. 댁업일치. [2] 이 사람 천체 물리학자다.[3] 먹방, 수다, 게임 등[4] 차량보다는 노선 및 주변지리 등에 관심이 많은 경우. 보통 어문학, 관광학 등과 결합해서 목표로 하는 경우가 많다.[5] 이렇게 3D 직종임을 뻔히 알면서도 철도 지하철 기관사 및 버스운전기사 등을 하려면 사실상 철도 지하철 및 버스 등에 대한 나름의 사명이 있어야 한다.[6] 보통 영화광은 덕후로 안 보지만, 이분 정도 되면 진상덕후다(…). [7] 이 곡의 주인인 래퍼 화나의 1집 이름[8] 다만 여기는 현 대표인 앤디 팔머도 브릿카 24시간 내구레이스에 나가기도 했다.[9] 2000년대에 나온 올림푸스의 PEN 시리즈는 이 50년대에 마이타니 요시히사가 잡아놓은 컨셉을 그대로 계승한 것이다.[10] 김성근 감독의 인터뷰들이 좋은 예다.[11] 하루에 두끼, 그것도 700원짜리 삼각김밥으로 식사를 해결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12] 전자의 두 직업은 현실감각이 있을리가 만무한데 비해서 정치가의 현실감각은...[13] 자연을 가꾸려는데 자연을 파괴하는 직업.[14] 게임을 하는 것과는 다르다![15] 하지만 이 사람도 시대의 소용돌이로 인해 딱히 덕업일치라 보기는 힘든 커리어를 보내야 했다. 그의 생애를 다룬 전기에는 즐거움만을 위해 비행기를 탈 기회는 전역 이전까지 오지 않았다는 의미심장한 문구로 격동기를 살아간 항덕후의 비애를 묘사했다.[16] Otto von Bismarck - Life - Early Years, Kenneth Barkin, Encyclopedia Britannica[17] 아예 자기가 어렸을 때 좋아하던 5대 닥터 피터 데이비슨의 딸과 결혼까지 했다! 그야말로 빠심에 의한 인생설계.[18] 역대 후비안 출신 닥터후 배우 중에선 본좌. 우리는 저분이랑 비교가 안 돼 무려 5살 때(닥터후 시작때부터)부터 챙겨 봤으며 13살 때는 팬클럽 문제로 BBC직원한테 깽판을 부리고 15살 때 닥터후 팬레터를 쓴 적이 있으며 시즌 8에는 너무 자주 나와서(...) 안 나오기로 했던 달렉이 이 사람이 제작진들한테 달렉과 싸워보는 게 일생일대의 소원이었다고 해서 결국 나오게 됐다.(...)[19] 스포츠와는 아무런 인연이 없고 문과생이었다가 행정고시를 통해 입직했다.[20] 토니안의 팬사이트를 운영했다가 닫았다고 한다. 그런데 데뷔하니 소속사 선배님들이 그때 라이벌[21] 특히 한승연의 경우에는 팬픽을 직접 쓰기도 했으며, 싸이월드에 불법 음원을 다운받지 말자는 글을 쓰기도 했다. 역시 십덕[22] 특히 모닝구 무스메의 전 멤버였던 이시카와 리카의 열성팬.[23] 애니플러스 전승택 대표가 인터뷰에서 직접 인증했다.[24] 로드 경기의 경우 정해진 스타디움이나 경기장이 아닌, 일반 공도로 코스를 짜서 달리는 장거리 레이스이기 때문에 관중들로 부터 입장료 같은걸 받을수가 없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상금도 적으며, 이로 인해 프로 사이클 팀도 엄청난 양의 스폰서들로 부터 후원을 받고, 운영을 한다. 선수들의 져지가 괜히 스폰서 네임으로 도배된게 아니다.[25] 굉장히 생소한 직업일 수 있으나, 정치 덕후들에게는 일종의 꿈의 직장. 모 당의 당직자는 친구와 함께 정덕 토론으로 10년을 보낸 끝에 둘 다 당직자에 지원해 정당으로 출퇴근하고 있다. 각각 다른 당으로 간 덕분에 여전히 신나게 정덕질을 하고 있다고 (...)[26] 리버풀FC의 열렬한 팬인 스티븐 제라드는 리버풀에서의 마지막 경기 때 "리버풀에 입단한 것 자체로 꿈을 이뤘다. 그외 딸려온 나머지는 덤(extra)이다." 라고 감상을 표현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