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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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원내정당

(괄호 안은 대한민국 국회의 의석 수)

여당

파일:minjoo.png
(121석)

야당

파일:자유한국당.png
(107석)

파일:국민의당.png
(40석)

파일:bareunparty.png
(20석)

파일:justice21.png
(6석)

파일:새민중새로고.png
(2석)

파일:kpp.png
(1석)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280px-Logo_of_the_Minjoo_Party_of_Korea.svg.png

더불어민주당

영문명

Democratic Party of Korea[1]

약칭

민주당, 더민주[2]

창당일

2015년 12월 28일[3][4]

통합한 정당

민주당 (2016년 10월 31일 합당)

주소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국회대로68길 7
(여의도동, 민주당사)

대통령

문재인

대표

추미애 / 5선 (15·16·18·19·20대)

원내대표

우원식 / 3선 (17·19·20대)

사무총장

이춘석 / 3선 (18·19·20대)

정책위의장

김태년 / 3선 (17·19·20대)

국회의원

121석 / 299석

광역자치단체장

8석 / 17석[5]

기초자치단체장

81석 / 226석[6]

광역자치의원

291석 / 789석[7]

기초자치의원

1,157석 / 2,898석[8]

당 색

파란색 (#1870B9, Denim Blue)

이념

사회자유주의

정책 연구소

민주연구원 (2008년 8월 27일)

후원회

설립 절차 진행 중

재외국민 조직

세계한인민주회의 (2010년 10월 4일)

당원 수

280만여 명 (2017년 7월)

권리당원 수

35만여 명 (2017년 8월)

국고보조금

30억 8384만여 원 (2017년 3분기)

공식 팟캐스트

진짜가 나타났다

공식 사이트

www.theminjoo.kr

SNS

파일:유튜브 아이콘.png 파일:페이스북_로고.png 파일:네이버블로그.png 파일:트위터 로고.png


1. 개요2. 당사3. 당명과 로고4. 역사
4.1. 2015년 12월4.2. 2016년 이후
5. 정책6. 당내 구성7. 지지 기반
7.1. 지역별7.2. 세대, 소득별7.3. 선거에서의 이점7.4. 선거에서의 불리점
8. 타 정당과의 관계9. 민주연구원10. 당 지도부
10.1. 1기 지도부10.2. 비상대책위원회10.3. 2기 지도부
11. 원내 지도부
11.1. 19대 국회11.2. 20대 국회
12. 역대 주요 선거 결과
12.1. 대통령 선거12.2. 국회의원 선거12.3. 재보궐 선거
13.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집권 여당이자, 원내 제1당.

대한민국민주당계 정당으로, 자유한국당과 함께 거대 양당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9] 1955년 창당된 민주당을 뿌리라 주장하지만 이는 민주당계 정당 문서에도 나오듯 역사성을 강조하기 위한 부분이 크고, 실질적인 기원은 김대중 대통령이 1987년에 창당한 평화민주당, 1995년 창당한 새정치국민회의 또는 노무현 대통령으로 대표되는 부울경 출신 민주 인사들이 유입된 민주당에서 찾는 경우가 많다.[10][11] 이후 김한길 대표 체제의 민주당안철수 의원의 첫 번째 신당인 새정치연합이 합당해 2014년 새정치민주연합이 만들어졌고, 2015년 12월 13일 안철수 의원이 탈당하면서 손혜원 홍보위원장의 주도 아래 2015년 12월 28일에 국민의당 세력이 탈당한 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으로 재창당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념적으로 사회자유주의를 중심으로 하는 개혁-민주-진보 세력의 지지를 받는 정당이지만, 당내 구성원의 스펙트럼은 좌파에서 우파, 진보에서 보수까지 넓은 편이다.[12] 한편 온라인 당원 가입이 활성화된 이후에 사회민주주의, 민주사회주의, 생태주의 등과 같은 진보좌파 성향의 당원들도 꽤 많이 늘었다.[13] 또한 진보좌파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 가운데서 민주노동당 이래 15년간 추진해온 단독 집권론이 현실적으로 불가능인걸 인정하고, 차라리 민주당을 진보좌파 정당으로 바꾸기 위해서 대거 입당하기도 했다.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패배한 이후 쇠락일로를 걷다가 문재인 대표 체제가 출범한 뒤 험난한 당내 혁신과 내부 분열 과정을 거쳐 2016년 20대 총선에서 국회 전체 의석 300석 중 123석을 얻어 당시 압도적 다수파가 될 것으로 예상되던 새누리당을 제치고 12년 만에 원내 제1당으로 올라섰다. 그러나 새누리당이 총선 때 탈당하여 무소속으로 당선된 의원들을 복당시키면서 의석이 129석으로 늘어나 다시 원내 제2당으로 내려앉았다. 그러나 같은 해 10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새누리당이 자유한국당바른정당으로 분열된 덕분에 원내 제1당의 자리를 되찾았다. 박근혜의 탄핵 이후 2017년 19대 대선에서도 승리해[14] 9년 만에 재집권에 성공하여 대한민국의 집권 여당이 됐고 국민의 정부참여정부 이후 다시 찾아온 재도약기를 누리고 있다.

2. 당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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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당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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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본청의 당대표 회의실

현재 중앙당사는 국회 인근에 위치한 더불어민주당 중앙당 소유 건물로 2017년 2월 13일 입주하였다. 이전에는 '장덕빌딩'이라는 이름의 오피스 건물이었으며, 민주당이 매입하기 직전에는 여의도순복음교회 소유로 순복음영산신학원이 이용하고 있었다. 지상 10층 지하 4층 규모로 1층 일부를 제외한[15] 빌딩 전체를 사용 중이다. 지하에는 팟캐스트 촬영을 위한 스튜디오로, 2층은 공보국 프레스룸, 3층은 대변인실, 4층엔 당대표실과 회의실을 두었다. 5층에는 비서실장실과 총무조정국, 6층은 최고위원실과 사무총장실, 7층은 여성국과 청년국, 8층은 직능국과 전략기획국 그리고 홍보국이, 9층에는 민생지원국과 을지로위원회가 있으며 10층은 카페 등 다목적 공간으로 조성했다.

건물 가격은 원래 230억원이 넘는다고 알려졌으나 협상을 통해 200억원 이하로 낮춰 매입했다고 한다. 매입 비용의 80%는 10년 분할상환을 조건으로 은행에서 빌린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의 중앙당사의 위치나 임대조건이 좋지 않아서 2016년 9월, 민주연구원 등 당 조직을 한 데 모으고, 사무처 안정화 및 정당 운영 비용 절약을 위해 당사 매입을 결정한 것. 민주당계 정당이 중앙당 소유의 당사를 갖게 된 것은 1992년 이후 24년 만이다.

3. 당명과 로고[편집]

국민 당명 공모를 주관한 손혜원 홍보위원장은 후보들 중 희망민주당, 더불어민주당, 민주소나무당, 새정치민주당, 함께민주당의 다섯 개를 후보로 추렸는데, 대부분은 민주소나무당과 희망민주당이 유력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결국 당명은 당무위원회의 결정을 거쳐 '더불어민주당'으로 확정되었다. 손 위원장과 도종환 의원은 '민주소나무당'에 호의적이었으나 당이 조금만 어려워져도 "식물 정당"으로 불릴 것을 염려하는 의견도 있고, 대부분의 당직자들도 '더불어민주당'을 선호했다고 전해진다. 손혜원 의원에 따르면 당시 원외 민주당의 분쟁 등과 관련해, 세 글자인 민주당과 무게 중심을 맞춰 '더불어'를 선택했다고 한다. 더불어민주당이란 이름을 공모한 제안자는 이 명칭을 신영복의 글 중 '더불어숲'이라는 표현에 착안했다고 한다.

초기에 당명 개정 직후 개정된 당명에 대해 혹평을 받기도 하였다. 새누리당 김용남 원내 대변인과 조원진 원내수석부대표 등은 '더불어'가 음주운전 단속 때 나오는 말인 '더 불어'를 뜻한다고 하거나[16], '더 불어터진 떡국', '더 불어터진 당' 같은 단어로 원색적으로 조롱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창업 주역이었던 안철수 의원 역시 "포장지가 바뀌었다고 해서 내용물도 바뀌었다고 믿겠느냐"고 견제했다.[17] 추후 분당 사태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새정치민주연합 - 더불어민주당의 탈당 사태 때문에 '떠민당'이라고 비꼬는 사람들도 있다. 한편, 일부 네티즌들은 '더불어(佛語)민주당'과 같은 장난 섞인 의견을 내기도 했다 '더불어'라는 이름이 예전 동양제과(오리온)에서 출시한 크래커 '더브러'[18]와 발음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더브러 민주당'으로 비틀고 더브러의 구조가 직사각형 중앙에 점선 무늬가 있어서 그 점선을 따라 반으로 쪼개먹는 구조라 '분당을 예고하는 복선'이라는 암시를 내놓기도 했다. 일부 집단에서는 이름에서 더블오 민주당을 연상시키기도 했다. 일단 이렇게라도 여러 패러디가 만들어지고 대중에 회자되면서 새누리당[19]처럼 당명을 널리 알리는 데는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약칭은 'The 민주당'이 될 수도 있고 '더'가 'more'의 의미가 될 수도 있게 '더민주당'으로 결정했으나, 더불어민주당과 이름이 비슷한 원외 민주당약칭 '더민주당'이 유사 당명 금지에 위배된다며 법적 조치에 들어가겠다고 밝혔고[20], 이후 당은 '더민주당'을 포함해 다양한 약칭을 검토한 후, 문재인 대표가 제안한 것으로 알려진 더민주를 약칭으로 확정했다. 이후 2016년 1월 11일, 선관위는 더불어민주당이 '더민주'라는 약칭을 사용해도 무방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에 따라 선관위에 정식으로 '더민주'를 더불어민주당의 약칭으로 등록하여 13일자 선관위 홈페이지에서 공지한 정당 등록 현황에 반영되었다. 그러나 2016년 10월 더불어민주당과 원외 민주당이 합당하면서 두 당의 이름 싸움은 마침표를 찍게 되었다. 당명은 계속 더불어민주당으로 가되, 약칭은 '더민주'와 '민주당' 두 가지를 병용하고 언론에서는 '민주당'이라는 약칭을 사용해달라고 요청하였다.#

새 당명을 두고 외신 기자들은 '더불어'를 어떻게 번역해야 하는지 혼란스러워 했다고 전해졌다. 물론 이런 독특한 정당명이 흔한[21] 일본의 언론은 당명이 바뀐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곧바로 '함께'라는 뜻의 '토모(共)'를 붙여 '共に民主党'(토모니 민슈토)라 표기하기 시작했다. 중국어권에서는 共同民主黨(共同民主党, 공동민주당)이라고 적기 시작했다. 영문명으로는 'Democracy for All', 'Harmonious Democratic Party', 'Inclusive Democratic Party', 'The Democratic United', 등이 검토되다가, 한글 약칭이 '더민주'로 결정됨과 동시에 'The Minjoo Party of Korea'가 되었다. 민주당도 정식약칭이 된 현재는 'Democratic Party of Korea'이 되었다.

처음엔 호불호가 매우 뚜렷한 이름이었지만, 더불어민주당이 한일 위안부 협상을 졸속 협상이라 비판하면서 내건 현수막에서 보듯 정책 구호와 당명을 연계하기 쉽다는 장점 또한 있다. 향후 선거 캐치프레이즈에서도 같은 양식이 자주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22] 이런 우수한 범용성 덕분에 더불어민주당이란 이름을 거북해 했던 지지층도 이젠 후한 점수를 주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로고

파일:더불어민주당_임시로고.jpg

2016년 1월 7일 정식 로고 공개 전까지 사용되었던 임시 로고 중 하나. 정식 로고 공개 전까지 언론 등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었다.

파일:더불어민주당 임시로고.png

2016년 1월 7일 정식 로고 공개 전까지 사용되었던 또 다른 임시 로고. 다만 첫 번재 임시 로고에 비해 사용 빈도는 현저히 적었다.

파일:더불어민주당 공식 로고.jpg

2016년 1월 7일 정식 공개된 공식 로고. 폰트는 격동고딕을 바탕으로 자체 제작했다. 로고 글씨의 초록에서 파란색으로 점차적으로 변하는 그라데이션은 첫 번째 임시로고에서 크게 변경되지 않았지만 전체적으로 채도가 낮아져 이전 것보다는 세련되어 보인다. 로고 우측 상단에 깃발 모양 '□'자에 대해 손혜원 더민주 홍보위원장은 "자유와 평화, 그리고 진리와 정의가 만들어 내는 '민주'의 'ㅁ', 민주주의 깃발" 을 상징한다고 밝혔다.[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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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월 12일 정식 로고 공개 이후 더민주 홈페이지에 자료실에 올라온 응용 버전.[25]

4. 역사[편집]

4.1. 2015년 12월[편집]

  • 문재인 대표는 12월 30일 더민주의 최고위원회의에서 외교통상부위안부 협상 합의는 대한민국 국회의 비준을 받아야 하는 조약이나 협정에 해당하며, 해당 합의는 국회의 동의를 얻지 않았으므로 원천 무효라고 주장했다. 또한 일본이 위안부 재단 기금으로 내놓을 10억 엔을 배상금으로 받아들이지 말자는 취지로 국민 모금 운동을 제안하며 당이 먼저 나서겠다는 뜻을 밝혔다.

  • 2015년 12월 30일, 문재인 대표의 부산 지역구 사무실에서 흉기를 든 괴한에 의해 인질극이 벌어졌다. 인질극을 벌인 정 모 씨는 "참여정부가 부산 문현동 일제강점기 당시 어뢰공장에 남겨져 있던 금괴를 숨겼다"고 주장하며 그 이유로 사무실을 습격했다고 알려져있다. 사건 당시 문재인 대표는 다행히도 김근태열린우리당 의장의 타계 4주기 추모행사에 참여 중이어서 지역구 사무실에 없었고, 이에 정씨는 문 대표의 특보 최모씨를 인질로 잡았던 것이다. 인질극은 1시간여 동안 지속되었고, 정 모 씨가 스스로 인질을 풀어주면서 막을 내렸다. 이와 관련해서 종편들은 피해자인 문재인 대표 측을 향해서 '부산 민심이 흉흉하다'며 '문재인에게 문제가 있어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 아니냐'며 답정너 식으로 성토했다. 피해자에게 잘못을 묻는 이상한 심리

  • 위 사건과 관련해 MBN은 더불어민주당에서 영입한 표창원 표창원범죄과학연구소 소장을 한 시사 프로에 섭외했는데, 김형오 앵커가 표 소장에게 문재인 대표한테도 이 사건에 대한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냐고 물었다. 그러자 표창원 소장이 "2006년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가 칼로 피습을 당한 건 (그 범인이 정신 질환자였기 때문이지) 박근혜 대표가 잘못해서 일어난 일이냐"고 반박했고, "나서서 피해자를 같이 위로해 줘야지 않겠나. IS미국이나 프랑스를 테러하면 피해자들을 도와줘야지 '미국이나 프랑스도 잘못한 게 있으니 IS가 테러한 것이다'라고 말할 것이냐"[26], "이 정부는 주 적성 국가고위급 비서가 교통사고로 죽은 것은 위로해 주면서, 상대 야당 후보가 피습을 당한 것에 대해서는 일체의 위로도 없었다"고 덧붙였다. 역관광당한 김형오 앵커는 음오아예만 불렀다. 이 영상은 인터넷에 퍼져 진보 지지층에게 많은 호응을 얻었다.해당 영상

4.2. 2016년 이후[편집]

2016년 문서2017년 문서 참조.

5. 정책[편집]

다음의 내용은 더불어민주당 강령/정강 정책에서 옮긴 것이다. 13가지 분야에 걸쳐 기술된 정책의 자세한 내용은 더불어민주당 홈페이지를 참고할 것.

  • 정치
    삼권분립과 권력의 분산, 상호 견제, 국가권력기구의 정치적 독립을 보장한다. 절차적 민주주의의 성과를 바탕으로 소통과 협치의 새로운 정치를 구현하고, 다양한 세력의 참여가 보장되는 정치, 국민과 소통하고 공감하는 정치를 지향한다.

  • 경제
    공정한 시장경제질서를 추구한다. 저출산·고령화 및 경제의 세계화에 적극 대응하고 저성장과 양극화를 해소하는 혁신적 경제 운용 패러다임을 구축한다. 정부의 과도한 개입을 방지하며, 양극화와 불평등을 해소하여 국민 모두에게 혜택이 골고루 돌아가는 경제민주화를 실현한다. ‘정의롭고 더불어 잘 사는 경제, 사람이 중심인 경제’를 만든다.

  • 복지
    기회의 균등과 국민의 존엄한 삶을 보장하는 복지정책으로 사회정의를 실현하고 실족 질적 국민 통합을 추구하며 안전과 건강이 강조되는 차세대 복지를 실현함으로써 복지 선진국의 목표를 점차적으로 달성한다.

  • 일자리·노동
    일하는 사람들이 차별받지 않고 자신의 권익을 보장받으면서 노동의 가치가 존중받는 사회를 추구한다. 헌법과 국제 기준에 부합하도록 노동기본권을 신장하고, 일하는 사람이 경제와 사회의 한 주체로 참여할 수 있는 공정하고 자율적인 노사관계를 촉진시킨다.

  • 성 평등·사회 약자·소수자
    다양한 격차로 인해 차별 받는 사회적 약자 및 소수자인 여성, 아동, 청소년, 노인, 장애인, 이주민, 기타 소수자의 인권을 존중하고 이들이 차별받지 않는 사회를 만든다.

  • 외교·안보
    굳건한 한미 동맹을 기반으로 하고, 주변국과의 적극적 협력관계를 심화시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 및 동아시아 평화와 안정에 기여한다.

  • 분권과 균형발전
    지방이 건강한 나라, 골고루 잘 사는 대한민국을 지향한다. 지방화·분권화를 위해 중앙정부의 권한을 대폭 지방으로 이양하고 지방재정의 확충을 통하여 실질적인 지방자치를 구현함은 물론 분권과 균형 발전을 추구한다.

  • 교육
    교육 기회를 균등히 제공하고 교육이 불평등의 대물림 수단이 되지 않도록 교육재정 지원을 확대한다. 창의력과 인성 함양을 핵심으로 하는 창의적 인재를 육성하고, 생애 각 시기별로 다양한 학습 기회를 제공하는 평생학습사회를 실현한다.

  • 과학기술
    과학기술의 발전을 통해 한국경제의 성장 잠재력을 제고하고 21세기 미래 사회에 대비하기 위해 창의적인 과학기술인을 육성하고 과감한 연구지원체계를 구축한다.

  • 문화·예술·체육
    국민 누구나 문화·예술을 일상적으로 즐길 수 있는 문화의 나라를 지향한다. 문화 다양성을 추구함으로써 개인과 사회의 풍요를 증진하고, 현재 및 미래 세대의 문화 수요를 충족하며, 지구촌 모든 구성원이 평화롭게 교류·소통·공존할 수 있는 토양을 배양한다.

  • 언론·미디어
    언론의 정치 및 경제적 권력으로부터 독립을 지향한다. 언론의 정상적인 관계 정립을 통해 건강한 사회의 기틀을 마련하며, 의사표현의 제약이 없는 자유롭고 창의적인 공론의 장을 만든다.

  • 환경·에너지
    21세기 인류가 당면한 공동 과제인 지구 생태계 보전을 달성하기 위해 성장과 분배를 환경보전과 조화시키는 지속 가능한 발전을 지향한다. 에너지 효율을 제고하고 에너지 복지를 강화하면서 온실가스를 감축하는 효율과 형평의 저탄소 사회를 추구한다.

6. 당내 구성[편집]

핵심적인 계파로 분류하자면 과거 김대중, 노무현 시대 민주당계 정당의 3대 세력이었던


이 중에서 1번은 대부분 국민의당으로 나갔고, 2번은 김근태열린우리당 의장이 세상을 떠난 뒤에는 각자도생의 길을 걷고 있다.[29] 3번으로 대표되는 야권 성향 명사 집단 중 가장 유명한 집단이 바로 친노무현계다. 19대 총선18대 대선에서 민주통합당이 패배한 뒤로는 쇠락의 길을 걸었지만, 문재인이 떠오른 뒤로는 친문으로 체질이 바뀌면서, 20대 총선이 지나고부터는, 당내 계파치고는 느슨한 결속력이지만 민주당에서 가장 많은 권리당원과 국회의원을 보유한 최대 계파가 됐다. 친문재인계민평련(김근태계)으로 대표되는 운동권 출신, 그리고 2번과 3번이 혼합된 시민사회 운동가 세력[30], 그 외 소수의 계파 중심으로 당권 구조가 형성되었다.

7. 지지 기반[편집]

1997년 이전, 1999년부터 2002년 중반, 2005년부터 2008년, 2012년부터 2015년까지 또렷한 세력확대 없이 지속적으로 보수정당에 밀렸으나, 20대 총선과 박근혜 게이트 이후로 양당 체제의 한 축이었던 새누리당자유한국당바른정당으로 쪼개진데다가 무당파 중도층의 지지가 민주당으로 대거 이동하여 당 지지율이 평균 40% 이상에 달하는 유례 없는 전성기를 누렸다. 19대 대선에서 승리한 뒤로는 지지율이 50%를 상회한다. 다른 야당의 지지율은 10%안팎의 지지율을 보이는 가운데 더불어민주당만 50%대를 유지하고 있다. 전 지역, 전 연령에서도 1등은 덤이다.갤럽 여론조사 그 때문에 사드배치 찬성을 당론으로 할 가능성이 더 높아졌으며 오히려 보수포지션까지 흡수할 가능성 또한 높아지고 있다.

7.1. 지역별[편집]

지역주의에서 다소 자유로운 지역인 수도권충청권, 제주특별자치도에서는 적어도 20%, 많으면 40% 수준의 지지율을 얻어왔다. 그런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로는 이 지역에서의 민주당 지지세가 다른 정당들에 비해 압도적인 격차를 꾸준히 보이고 있다. 이 사태로 인하여 민주당의 지지율은 이들 지역에서 40~50%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호남에서는 신안군 출신인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절대 영향력 하에 있었던 정당이라서 항상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왔지만 2003년 열린우리당 분당 이후 지지층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잦은 계파 갈등으로 꾸준히 지지도를 잃어오다가 결국 호남 의원 다수가 국민의당으로 빠져나간 2016년 4.13 총선에서는 전국 평균 수준인 30% 미만의 지지율로 추락했다. 그러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기점으로 잃어버린 지지율을 급속도로 회복하여 현재는 60% 가량의 높은 지지율로 고공행진 중이다.

강원도는 수구적 사고방식을 가진 노인 인구[31] 비율이 높아 자유한국당에게 밀리는 편이었지만 19대 대선에선 문재인 대통령이 가장 34.2%의 득표율을 기록해 30%의 득표율로 2위를 기록한 한국당 홍준표 후보를 앞질렀다. 2017년 기준으로도 평균 30%대의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박정희 시대와 3당 합당 이후로 우리나라 보수 진영의 아성이었던 영남에서는 10% 초중반대 수준으로 기대할 것이 없을만큼 지지율이 심히 미미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분위기가 반전되기 시작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시작으로 유시민, 조경태, 김부겸 등 지역주의의 벽을 허물기 위해 노력하는 영남권 인사들이 두루 생겨나고, 마침내 20대 총선에서 부산 5석, 경남 3석, 대구 1석의 의석을 얻는데 성공하면서 그 빛을 보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낙동강 벨트로 대표되는 서부산 지역을 뭉뚱그리는 단어가 생겨났고, 이를 바탕으로 PK 지역에서 상당수의 교두보를 확보하였다. 20대 총선에서 얻은 교두보를 바탕으로 19대 대선에서 사상 처음으로 PK 승리를 가져오는 성과를 거두어, 2017년 현재 40%를 넘나드는 지지세를 확보하고 있다.

7.1.1. 수도권[편집]

간단히 요약하면, 부촌 지역 및 농어촌과 구도심에서는 열세를, 중산층 및 서민층 주거 지역과 공단, 중소형 아파트가 밀집되어 있는 신도시 지역에서는 우세했다고 말할 수 있다.

약 2,500만 명이 살고 있는 수도권호남 지역에서 상경한 이주민들과 젊은 유권자들의 영향, 그리고 지역주의 구도에서 자유롭다는 이점이 있어서 민주당은 수도권에서 서울특별시 대부분 지역과 수도권 근교 위성도시, 그리고 대부분의 신도시 지역에서 강세를 보이는 편이다. 그래도 호남보다는 지지세가 옅어서 우세라고 해봤자 약간 앞서는 정도에 불과하며 정치상황에 따라 항상 지지율이 변하는 곳이다. 서울에서 한때 민주당 지지세가 제일 강력했던 관악구 역시 한나라당계 정당 지지율이 40% 이하로는 내려간 적이 없다.

역사적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끌었던 정당들은 서울특별시에서 경쟁력을 보여왔다. 민주당 역시 그 지지세를 이어받은 것이다. 다만 강남 3구[32]여의도 같은 부촌(富村)에서는 보수 성향을 띄는 한나라당 계열에게 많이 밀리는 편이며[33] 용산구영등포구는 부촌과 번화가, 서민층 지역, 토박이 지역과 호남 출신 지역이 혼재되어 있어 옛 새누리당계와 민주당계가 번갈아 가며 승리를 했다. 하지만 용산구는 중선거구제 이후 보수 정당이 꽤 많이 이겼고 영등포구는 여의도의 몰표로 여야가 번갈아 가며 승리했다. 중산층 거주지인 목동 지역 또한 지지세가 그다지 크지 않은 편이었다.

대체로 서울 마포구관악구를 비롯한 주요 대학가 지역 또한 20대 대학생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들에선 강세를 보이는 편이라고 볼 수 있다.[34] 그 외에 서울 동대문구, 종로구, 성동구, 중구, 서대문구, 성북구, 강서구, 노원구, 도봉구, 강북구, 동작구, 구로구, 광진구, 은평구, 중랑구 등도 민주당 지지세가 강하다.

다만 동대문구, 성북구, 종로구, 중구, 성동구, 서대문구, 은평구서울 강북 지역의 대표적 7개 지역구들은 주로 보수 정당 국회의원들이 많이 당선되었고 동작구도 보수 정당 국회의원들이 많이 당선됐다. 심지어 노원구, 도봉구, 강북구서울 동북 3구도 역시 보수정당 국회의원들이 꽤나 당선되었던 지역이다. 구로구도 마찬가지로 보수 정당 국회의원들이 많이 당선되었던 지역이다. 강서구도 마찬가지로 보수 정당 국회의원들이 당선된 적이 많다. 심지어 젊은층이 많은 지역에서도 국회의원 선거는 보수 정당 후보가 1위를 하는 경우가 많지는 않더라도 꽤 있었는데 이건 당시 보수 정당 정치인들이 지역구 관리를 잘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 지역들은 민주당계가 우세하더라도, 관악구, 마포구와 달리 지지율 차가 10% 이상까지 가지는 않는다. 또한 관악구, 마포구와는 다르게 보수 정당 후보들이 꽤 당선된 적도 많았다. 마포구 역시 보수정당 국회의원이 꽤 당선되었으며 중랑구의 경우도 보수정당이 꽤 크게 선전해 온 편이었다. 관악구도 제법 보수정당 후보가 국회의원에 당선되기도 했다.

그리고 관악구, 마포구를 제외하면 다른 지역은 강남3구나 강동구, 용산구까지는 아니어도 보수정당이 꽤 45% 이상 득표를 하는 편인데 그 이유는 서울의 인구가 대부분 많고 호남 출신이 여전히 1위라지만 서울 토박이도 제법 살고, 또한 영남, 충청, 강원 출신을 합치면 서울에서도 호남 이외의 인구는 과반수 이상을 넘으며, 경기 북부 출신도 제법 살기 때문에 서울의 정치성향은 그 영향을 많이 받아서 2010년대만 해도 진보성향이 과반을 차지해도 접전에 그쳤으며 보수성이 만만치 않은 지역으로 분류되었다. 또한 서울은 개발 영향을 많이 받고 고령화도 진행되어 가고 있어서 보수화가 되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2017년에 접어들고부터는 여론조사상에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보수 정당이 궤멸적인 타격을 입어 민주당이 다른 정당들에 비해 압도적인 지지를 받는 걸로 나타난다.

한편 인천 서부 지역과 경기도 외곽 지역, 그리고 휴전선이 접해있는 경기도 최전방 지역에서는 보수 정당에게 많이 밀린다. 그러던 중 20대 총선에서 인천 서구 을에 출마한 신동근 전 인천시 정무부시장이 4전 5기 끝에 새누리당의 거물이자 친박계 중진이었던 황우여 전 교육부 장관을 꺾고 당선되는 기염을 토했다. 인천에서는 중구, 동구, 남구, 연수구가 보수 정당 지지세가 가장 센 곳으로 꼽힌다. 북한과 인접해 있고, 노인들이 많이 사는 강화군옹진군도 보수 정당 지지세가 강한 편이다. 중구, 동구, 남구는 구도심 영향으로, 연수구는 부촌이었기 때문이다.

인천 남동구, 서구는 민주당과 한국당의 지지세가 엇비슷하다. 이 지역의 경우 사실상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책을 보고 뽑는 경우가 많다. 각 정당별 콘크리트 지지층이 별로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민주화 이후에 보수정당 후보가 계속 당선될 만큼 보수 지지세가 강한 지역이었으나 논현 지구와 서창 지구를 비롯한 신도시 건설에 따라 젊은 유권자가 이곳으로 많이 유입되면서 민주당 지지세가 근소한 차이로 더 강해졌다.

부평구계양구는 젊은 층과 서울 통근자들이 많아 인천에서 민주당에게 가장 우세한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부평구는 보수 우세 지역인 남구, 서구와 밀접해 있어 보수층도 만만치 않은데, 과거에는 부평구도 보수 텃밭이었으나 2000년대 들어 서울 통근자들이 들어오며 민주당계 지지가 강해졌으나 아직까지 보수세도 심심찮게 있다. 20대 총선에서 부평 갑 선거구에 출마해 당선됐던 새누리당 정유섭 의원이 그곳의 현역이었던 국민의당 문병호 전 의원을 100표차 미만으로 쓰러뜨린 것은 유명한 사례이다. 그리고 문 대통령의 지지층은 문병호가 결국 떨어지자 무척 고소해 했다는 후문이 전해진다 계양구의 경우는 민주당계 정당 강세 지역이기는 하지만, 보수층 역시 만만치는 않다. 18대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가 승리했지만, 박근혜 후보 역시 47%를 득표해 선전한 지역이기도 하며, 또 지방선거에서도 4회 지방선거 때까지는 보수 정당 후보를 밀었고, 구청장도 3, 4회는 한나라당 계열이 차지한 전력에, 15대 총선과 18대 재보궐에서도 한나라당 후보들이 당선된 전력이 있다.

광명시, 시흥시, 안산시, 안양시, 군포시, 부천시는 민주당계 강세 지역이다. 하지만 광명시, 시흥시, 안산시, 안양시, 부천시 등의 경우 보수정당 국회의원들이 제법 당선되었고 과거에는 경기도 서남부 지역도 농촌이 대다수라서 보수정당 텃밭이었지만 신도시 건설로 인구가 유입되며 민주당계 지지세가 강해졌다. 그래도 제법 2010년대 중반까지는 보수정당 지지세도 40% 이상 확보하고 있었으나 2017년에 들어서는 민주당이 이 지역에서 다시 압도적인 지지를 받는다.

수원시, 용인시, 성남시, 파주시, 고양시, 광주시, 김포시, 하남시, 구리시, 남양주시, 화성시 등은 농촌과 구도심, 신도시 지역이 혼재되어 있어 새누리당 계열과 민주당 계열의 지지율이 엇비슷하고, 중산층이 많이 거주하는 경기도평촌이나 과천시, 분당은 민주당이 열세였으며 외곽 지역의 평택시, 이천시, 안성시, 양주시, 동두천시, 여주시, 의정부시, 포천시, 양평군, 가평군, 연천군은 새누리당 계열이 계속 강세를 보였던 지역이고 민주당 계열의 사지였으나 19대 대선에서는 여주시, 포천시, 양평군, 가평군, 연천군의 5개 최외곽 지역을 제외하고는 경기도의 대부분 지역에서 승리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리고 포천시연천군 등지에서도 크게 선전했다.

요약하면, 그동안 20대~40대 유권자들이 많은 지역에서는 우세하고, 50대 이상 유권자들이 많은 지역에서는 약세를 보였다. 즉 수도권에서는 세대주의적 지지 양상을 보인다. 또한 세 곳의 광역지자체들만 비교해보면 지지세는 서울 >> 경기 > 인천 순서라고 볼 수 있겠다.

그런데 2016년 20대 총선에선 민주당이 수도권 전체 의석 122석 중 무려 82석을 석권하며 가장 큰 승리를 거머쥐었다. 이게 얼마나 대단한 일이냐면 2008년 18대 총선에서 통합민주당이 얻었던 의석이 지역구와 비례대표를 모두 합쳐 81석이었다. 18대 총선에서 민주당이 얻었던 전체 의석보다 더 많은 의석을 수도권에서 가져온 것이다. 특히 국민의당, 정의당 등 당시의 야당들이 난립해 표 분산으로 인하여 새누리당이 수도권에서 어부지리로 압승할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었는데 이 다야(多野) 구도를 이겨내고, 부울경과 마찬가지로 역사상 최다 의석을 얻어낸 것이기도 하다. 이건 새누리당을 지지하지 않는 유권자들이 지역구 표는 가장 경쟁력이 강력한 민주당 후보들에게 주고 정당 투표는 각각 다른 당들을 주는 방식의 전략적 투표에 힘입은 바가 큰 것으로 보인다.

또한 전통적인 부촌(富村)으로 옛 새누리당의 텃밭이었던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서도 게임 제작사 웹젠의 창업주였던 김병관 후보와, 예전부터 이 지역을 다져왔던 김병욱 후보가 모두 당선되면서 분당구에 걸린 2석을 모두 민주당이 가져갔고, 마찬가지로 서울의 대표적인 부자 동네인 송파구의 3개 지역구 중 2개를 얻는 이변을 연출했으며, 강남구에서도 을 선거구에서 전현희 후보가 새누리당 김종훈 후보를 꺾고 당선되는 등 매우 의미있는 성과를 냈다.

거기에 서울에서는 기동민, 박용진, 고용진[35], 손혜원, 박주민, 강병원, 황희, 김병기, 이훈 같은 신진 인사들도 많이 당선되었고, 비록 당선되지는 못했지만 전/현역 의원들을 상대했던 정태호, 천준호, 오기형 후보의 선전은 4년 뒤를 기대하게 해줬다. 그리고 경기도에서는 단 한 번도 민주당 계열에게 자리를 준 적이 없는 수원시 팔달구, 광주시파주시 같은 지역들까지 선거구 도입 이래 최초로, 민주당계 정당 인사들이 당선되었다. 특히 수원시 석권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성과다. 전통적으로 민주 진보 진영 지지세가 강했던 안양시도 석권할 수 있을 줄 알았지만 민주당 이정국 후보와 정의당 정진후 후보가 후보 단일화를 하지 못해 그 지역에서 다선을 했던 당시 새누리당심재철 후보의 당선을 허용하고 말았다.

19대 대선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압승했다. 문 대통령은 포천시, 여주시, 연천군, 양평군, 가평군, 강화군, 옹진군을 제외한 수도권의 모든 지역에서 승리하였다. 특히 서울문재인 대통령이 25개 선거구를 모두 휩쓸었다.

7.1.2. 호남[편집]

호남DJ고향으로, 박정희 시대부터 지금까지 줄곧 민주당계 정당의 본거지라고 불리는 지역이다.

1970년대에 들어서 우리나라 정계와 사회에는 지역주의의 광풍이 불기 시작했는데, 호남도 그 당시 최고의 정치 스타 중 한 명이었으며, 군사 정권에게는 가장 걸리적거리는 존재였던 DJ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줬다. 그러나 이로 인하여 군사 독재 정권의 잔혹한 유혈 탄압[36]을 받기도 했고, 그들이 추진해온 경제 개발 정책에서 철저하게 외면 받고 소외당하기도 했다.[37] 때문에 박정희민주공화당전두환-노태우민주정의당노태우-김영삼-김종필민주자유당김영삼신한국당이회창-이명박한나라당박근혜새누리당 등으로 이어져 온 보수 세력을 배척하는 분위기가 몹시 강했다. 고로 군사 정권에 맞서 싸워 왔던 사람들에게 지지를 안 보내려야 안 보낼 수 없는 곳이었고, 그 당시에는 호남 출신 정치인들 중 DJ 만한 능력과 카리스마를 가진 정치인이 없었기 때문에 DJ과 그를 따르는 세력은 주로 호남에 뿌리를 내리고, 지역주의 정서가 지방에 비해 약한 수도권 등에 줄기를 뻗으며 활동해왔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김대중이란 거목을 중심으로 결집되어 있었던 민주당은 DJ의 임기가 끝나고 참여정부가 출범한 뒤 의 주도로 열린우리당이 창당되자 열린우리당으로 넘어간 세력과 기존의 새천년민주당 세력으로 갈라지게 된다.

그러면서 호남의 지지도 나뉘게 되는데, 2004년 17대 총선에서는 새천년민주당이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태에 찬성한 것 때문에 호남에서도 폭망하며 원내 제1~2당을 다투던 위치에서 교섭단체도 안 되는 9석으로 순식간에 쪼그라 들고 만다. 반면 열린우리당은 호남 지역구 대부분을 석권한 것은 물론 국회 전체 의석 299석 중 152석을 얻어 사상 최초로 단독 과반 의석을 점한 민주당계 정당이 됐다. 두 정당은 참여정부 말기에 다시 대통합민주신당으로 합치긴 했지만 열린우리당 세력과 기존의 새천년민주당 세력의 갈등은 계속 이어져 왔고, 이 게 지금의 친노 VS 비노 구도로 연결돼 민주당계 정당은 2015년에 다시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으로 다시 나뉘게 된다.[38]

민주당과 국민의당 중에 어느 정당이 호남의 지지를 더 받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의견이 갈렸는데, 두 정당이 처음으로 맞붙은 선거인 20대 총선에서 국민의당은 호남 전체 지역구 28석 중 23석을 획득하며 호남 전체 의석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압승을 거두었지만 민주당은 단 3석에 그치며 완패했다.[39][40] 국민의당이 호남에서 얻은 표수는 122만 표, 민주당이 얻은 표는 98만 표였다.[41] 그리고 새누리당도 2014년 7.30 재보선에서 전남 순천시-곡성군에 당선된 이정현이 재선에 성공했고 전북 전주시 을 지역에 도전장을 내민 정운천도 37.5%의 득표율로 당선돼 새누리당이 호남에서 2석을 차지하는 변화가 나타났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문서를 참조할 것을 권한다.

민주당이 오랜 세월 본진이었던 호남에서 개발살이 난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다. 먼저 DJ가 정계에서 물러난 뒤부터는 호남의 표심은 적극적으로 민주당을 지지하는 표심이라기 보다 보수 정당을 눌러줄 정당을 밀어주는 표심이었다. 다시 말하면, DJ 이후부터는 보수 정당을 '어떻게 해줄' 정당이 민주당 밖에 없었기 때문에 지지해왔다는 뜻이다. 거기에 수십년 간 호남에서 활동한 민주당 인사들이 거의 다 국민의당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그간 다져놓은 호남 조직 기반들을 싹 다 가지고 간 것도 민주당의 주된 패인 중의 하나로 꼽힌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20대 총선에서 100석도 얻기 힘들 거라던 민주당이 모두의 걱정을 딛고 123석을 얻어 원내 제1당이 되자, 호남에서 민주당을 상대로 완승을 거뒀고 정당 투표에서도 근소하게 민주당을 앞지르며 녹색 돌풍을 일으켰던 국민의당을 지지해야 한다는 여론이 조금씩 사그라들고, 그만큼 민주당에게 힘을 실어주자는 여론이 다시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간 민주당이 새누리당과 더불어 원내 제1~2당을 다투는 큰 정당으로 클 수 있었던 건 30석에 가까운 의석을 늘 보장해줬던 호남의 지지 덕분이라 그동안은 '호남만으로는 정권을 잡을 수 없지만 호남 없이 정권을 잡을 수도 없다'가 정설이었는데, 20대 총선에서 민주당이 호남에서 국민의당에게 완패하고도 수도권 압승과 영남권 선방을 바탕으로 원내 제1당이 되는 기염을 토하면서 그 정설이 늘 맞는 얘기인 건 아니라는 걸 입증해 보였다. 호남 민심도 민주당의 이러한 '자립'을 보면서 제법 큰 충격을 받았던 모양이다. 그리고 국민의당이 김수민-박선숙 리베이트 수수 의혹으로 정치 뉴스의 단골 손님이 되면서, 여론조사 중에는 민주당의 지지율이 국민의당의 지지율을 약 10%P 이상의 차이로 앞서는 결과가 나오기 시작했고 # 2016년 8월에 발표된 여론조사 결과에서는[42] 호남에서의 민주당의 지지율이 국민의당을 앞서고 있는 것으로 나왔다. # [43] # [44] 2017년 19대 대선 지지도를 묻는 여론조사에서는 더욱 크게 앞서는데 민주당 52.9%, 국민의당 25.4%로 민주당이 국민의당을 무려 27.5%p나 앞서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 [45]

2017년으로 넘어오고 나서부터는 국민의당의 지지율이 고질적인 침체기에 들어간 것과 달리 민주당의 지지율은 비범한 상승세를 탔다. 여기다 문재인 대세론까지 떠오르면서, 호남 지역 민심에 제일 민감한 지역 정치인들이 다시 민주당에 줄을 대는 움직임이 감지되기 시작했다. 먼저 20대 총선 시즌에 민주당에서 국민의당으로 넘어갔던 옛 호남 당원 3만 명이 민주당에 복당했다는 기사가 떴고, 무소속으로 민주당 후보와 대결하여 당선된 박성일 완주군수와 이항로 진안군수가 민주당에 입당했다. 그리고 이 열기는 19대 대선에서도 이어져, 문재인 후보가 호남에서 62.0%의 득표율을 기록해 28.1%의 득표율 밖에 얻지 못한 안철수 후보를 깔끔하게 물리치고 승리를 거머쥐었다. 민주당과 국민의당의 호남 2차전에선 민주당이 국민의당에게 깨끗이 설욕한 것이다.

문재인 후보는 호남에 있는 모든 광역 단체기초 단체에서 큰 차이로 이겼다. 특히 이정현이 재선에 성공했던 순천시에선 67.8%의 득표율을 기록해 기초 단체 최고 득표율을 기록했다. 그리고 대선이 끝나고 실시한 5월 3주차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는 호남에서 민주당이 무려 71%의 지지율을 기록해 2012년 대선 이후 차갑게 식었던 호남의 민주당 지지세가 계속 달아오르고 있다는 걸 여실히 보여주었다. 국민의당의 지지율은 불과 5%에 불과했다고 한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요직과 국무총리에 호남 출신 인사들을 여럿 임명하였고, 5.18 광주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5.18을 상징하는 노래인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도록 지시한 것, 그리고 지난 보수 정부가 9년 동안 나라에 남긴 적폐들을 털겠다는 의지를 문 대통령이 집권 초반부터 보여주는 것을 환영하는 것에서 비롯돼 보인다. 한국갤럽 5월 3주차 여론조사 결과 이후 한때 문재인 대통령을 끈질기게 따라다니며 괴롭혔던 '호남의 반문(反文) 정서' 프레임이 무색해질 정도로, 호남은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에게 가장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주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뒤 실시된 여론조사를 살펴보면 하나도 빠짐없이 호남의 지지율이 가장 높게 집계되고 있다. 게다가 경쟁자인 국민의당이 지지율 저조를 극복하기는 커녕 대선 공작 사건과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임명동의안 부결[46]로 시원하게 자폭을 하면서 민주당과 국민의당의 호남 3차전이 될 2018년 6.13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다시 한 번 국민의당을 물리치고 '청색 돌풍'을 불러올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다.

7.1.3. 부산·울산·경남 (PK)[편집]

부울경은 과거엔 PK라고 불렸다. 그 당시엔 울산이 지금처럼 광역시가 아니라 경상남도에 속한 도시였기 때문에 부산경상남도를 묶어서 그렇게 불렀던 것이다. 이후에 울산이 광역시가 되어 경상남도에서 독립한 뒤로는 부울경이란 단어로 불려지고 있다. 이 지역은 영남권에 속하는 지역인데도 불구하고 민주당 지지세가 희망적인 곳이다. 이 지역에서 민주당 지지 성향이 특히 더 강한 일부 지역은 낙동강 근처에 밀집돼 있어 낙동강 벨트라고 묶어서 부른다.

3김 시대에는 YS의 본진이었고, 3당 합당 후에는 TK와 더불어 오랫동안 보수 세력의 근거지로 군림해왔던 곳인데, 그러면서도 친노 진영의 주요 지역 기반이기도 한 독특한 곳이다. 사실 부울경은 본래 호남 만큼이나 군사 정권을 규탄하는 시위가 자주 일어나던 지역이었다.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된 마산 항쟁을 주도한 지역이며, 부마민주항쟁으로 박정희 정권에 적극적으로 항거하기도 하였다. 처음부터 박정희 - 전두환 - 노태우 - 박근혜로 이어지는 계보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왔던 TK와는 달리 부울경은 이전에 한 번 민주화 진영의 본진이었던 적이 있기 때문에 새누리당에 대한 지지세가 TK 만큼 철벽 같진 않다. 10.26 사건을 촉발시킨 부마항쟁의 근거지가 어디였는지 생각해보면 이해가 빠를 것 같다.

다만 부울경울산경상남도는 예전부터 자유당 - 민주공화당 - 민주정의당 당선자도 많았는데 그 이유는 전두환의 고향이 경남 합천군이고, 군사 정권 당시 개발 수혜로 경남이 큰 혜택을 받은 영향이 크다. 그리고 그 당시 정부가 벌인 관권 선거의 영향도 꽤 컸다.[47] 심지어 진주시, 거제시, 김해시, 양산시 등도 오랫 동안 농촌 지역이 많아 군사 정권의 텃밭이었고, 또 사천시, 통영시, 밀양시도 군사 정권 시절부터 주로 보수 정당의 텃밭이었다. 또 합천군, 함양군, 남해군, 거창군, 함안군, 의령군, 산청군, 창녕군 등은 농촌이라서 보수성이 상당히 강했으며 또한 옛 창원 지역과 옛 마산 지역도 군사 정권 때 은근히 친정부 성향이 있었다. 반면 부산3당 합당 이전에는 군사 정권에 반대하는 분위기가 강했지만 부산진구, 동래구, 영도구민주공화당이 좀 앞서기도 했고 때에 따라 몇몇 지역에서는 보수 정당이 약간 정도는 앞섰으며 1971년 대선에선 박정희가 야당 후보들을 쓰러뜨리기도 했다. 그러던 중 부울경에서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왔던 YS통일민주당이 TK를 거점으로 삼고 있었던 전두환-노태우민주정의당, 충청권을 거점으로 삼고 있었던 김종필이 지휘하는 신민주공화당당을 합치면서 호남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민주화 세력의 근거지에서 TK 못지 않은 보수 세력의 초강세 지역으로 변해버렸다.

부산의 경우에는 중구, 서구, 동구 등은 구도심이라 새누리당 계열 정당 지지세가 아주 강한 동네였으며 영도구의 경우에도 외지인들이 살지만 노인들이 많은데다가 구도심이라 새누리당 계열 정당 지지세가 강했다. 동래구, 수영구, 금정구, 연제구도 구도심 영향력이 아주 강해 보수정당 지지세가 견고했으며 또한 부산진구, 해운대구, 남구 역시 부촌과 번화가를 끼고 있어 민주당계 지지세는 좀 있지만 여전히 새누리당 계열 지지세가 매우 견고한 동네였다. 그리고 북구, 강서구, 사상구, 사하구 등 낙동강벨트 지역의 경우 민주당계 지지세가 높은 지역이기는 했지만 새누리당계 지지세가 견고한 지역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낙동강벨트 중에도 북구, 강서구는 민주당계 지지세가 좀 높기는 했지만 부촌이 포진해 있고 구도심 영향력도 좀 있어 새누리당 계열 지지세가 견고했고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민주당계가 늘 낙선했다. 북구에서 민주당계가 늘 낙선한 것은 구도심인 덕천동과 구포동, 그리고 부촌인 화명동의 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사상구, 사하구가 접전지였지만 사상구도 본래 민주당계가 당선된 적은 19대 총선 이전에는 없었으며 사하구도 갑 지역구는 새누리당계가 독점했다.

경상남도 김해시에서 태어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떠오르기 이전까지, 민주당은 이 지역에서 겨우 1~2석(주로 경남 마산, 창원 지역) 밖에 의석을 얻지 못했지만, 2002년 참여정부가 출범한 뒤엔 어느 정도 지지층이 늘어나서 부산이나 김해시에 일부 의석(3~4석 정도)을 확보하기도 했다. 게다가 19대 총선에서, 창원시 성산구, 의창구, 양산시, 김해시, 거제시 등지에서 새누리당과 득표율 격차를 상당히 줄였기 때문에 부울경에서 더 많은 의석을 확보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주로 노동자들이 많이 사는 창원시 같은 지역에서 민주 진보 진영을 지지하는 세가 강한 편이다.

부울경의 인구는 약 800만 명으로,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약 15%, 영남 전체 인구의 약 60%를 차지한다. 그렇기에 총선의 목표인 과반 의석(151석 이상)을 얻어내려면 수도권과 마찬가지로 최대한 의석을 많이 확보해야 하는 지역이다. 수도권(약 122석)에 이어 선거구 숫자가 두 번째로 많은 영남권(65석) 선거구의 대다수가 이 부울경 지역구이기 때문이다(약 40석). 게다가 현재의 통념과 다르게 매년마다 인구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고 전한다.[48] 그렇기 때문에 민주당 입장에서도 방관하거나 등한시할 곳이 못 된다. 괜히 친노 진영이 이곳에 오랫동안 관심을 가지고 민심을 돌리려 한 것이 아니다.

앞으로 민주당이 '전국적 수권 정당이 된다'는 숙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영남권에도 뿌리를 내리는 게 필수적인데, 한국당에게 '묻지마 지지'를 보내는 TK보다는 그래도 한때 민주화 세력의 근거지 중 하나였던 부울경이 뿌리를 내릴 토양이 비옥한 편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더 공을 들이고 있다. 질 때도 매번 큰 표 차이가 나는 경우가 별로 없어서 민주당 부산시당 소속 정당인들 같은 경우엔 '죽더라도 할 말은 하고 죽자'는 심정을 가진 당직자가 대부분이라 당내에서도 초강성으로 분류된다.

사실 민주당은 20대 총선에서 부산에 별로 기대를 걸지 않았다. 이유는 아무래도 한국당에 대한 견고한 지지세가 가장 컸고, 3당 합당 이후 민주당 계열 후보로는 처음으로 부산에서 당선돼 내리 3선을 했던 조경태마저 한국당으로 이적해버렸으며[49], 문재인 대통령도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데다 무소속으로 경남지사에 당선되었으나 대선 출마를 위해 경남지사직을 내던졌던 김두관 전 지사에 대한 반감도 걸림돌로 작용할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부울경이 텃밭 호남에서 처참하게 깨져 무너질 뻔했던 민주당의 자존심을 가까스로 살려주는 반전이 일어났다. 무려 8석(부산 5석 + 경남 3석)을 얻었는데, 위키러 중엔 '8석이 많은 건가'하고 고개를 갸우뚱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앞서 위에 쓰여진대로 부울경은 3당 합당 이후 민주당계 정당 후보에겐 사실 TK처럼 떨어질 걸 알면서도 가는 곳이었다.[50]

2012년 19대 총선에서 승리가 확실시 되었던 민주통합당낙동강 벨트에서 10석을 얻는 걸 목표로 잡고 뛰었지만 고작 3석 밖에 얻지 못했던 곳이 이곳이다. 그런데 2008년 18대 총선만큼이나 여건이 나빴던 2016년 20대 총선에서 역사상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두었으니 민주당이 환호할 만하다. [51]

부산의 경우, 20대 총선에서 당선된 후보들 중 김해영 후보를 제외하면, 대개 여러 번의 낙선 경험을 맛본 사람들이었다. 20대 총선 시즌 때 민주당의 여건이 대내외적으로 너무 나빠 기대를 걸지 않았었는데 반전이 일어난 거다. 이는 대부분 오랜 기간 부산 각 지역을 열심히 일구며 노력해왔던 후보들에게 마침내 부산 민심이 화답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사상구에서 박빙의 승부를 보여준 배재정 후보[52]해운대구에서 거물 하태경 의원을 상대로 무려 41%를 득표하며 가능성을 보여준 유영민 후보도 후일을 기약할 희망이 생겼다. 이에 누리꾼들은 역사상 처음으로 민주당이 호남보다 영남에서 더 많은 의석을 얻은 케이스라며[53][54] 놀라움을 넘어 엽기적인(…) 결과라는 반응을 보였다.총선 직후 부울경에서 민주당이 당 지지율 1위를 차지하는 이변을 일으킨 결과로 보아 앞으로 부울경 역시 수도권과 같은 우촌좌도 형세가 펼쳐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TK엔 기대할 게 없지만 부울경은 다르다'는 생각 때문인지 영남이 신공항 문제로 한참 시끄러웠을 때 민주당은 부산 가덕도를 밀고 있는 모습을 보여줬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터진 이후의 여론조사에서 민주당는 부울경에서 약 40%의 정당 지지율을 꾸준히 기록하며 한국당바른정당을 합산한 지지율을 오차 범위 밖으로 밀어내며 앞서고 있었다. 부울경의 정당 지지도가 현재 수도권과 유사한 사실로 볼 때, 2017년 대선에서 민주당이 지역주의 시대가 열린 이래 처음으로 부울경에서 대박을 터뜨릴 가능성이 자주 거론되고 있었다. 그리고 이 가능성은 2017년 4월 재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이 부울경 지역 광역 의원 2곳을 모두 석권하고[55], 기초 의원 10곳 중 5곳을 얻으면서 더 높아졌다. 이 재보궐선거의 결과를 보고, 19대 대선에서도 민주당이 부울경에서 선전할 가능성이 거의 기정사실로 굳어졌다고 보는 사람이 많아졌는데, 대선에서 확실히 선전을 하긴 했다. 비록 초창기 50%~60%까지의 지지율을 얻어내겠다던 야심찬 목표에서 많이 미달하긴 했지만 말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부울경에서 도합 37.8%의 득표율을 기록해 33.5%를 기록한 홍준표 후보를 꺾고 3당 합당 이후 사상 최초로 민자당 계열 대선 후보를 부울경에서 꺾은 첫 민주당계 대통령이 됐다. 문재인 후보는 울산의 5개 선거구에서 모두 승리하였고[56] 동구, 북구는 홍준표 후보의 망언과 노동자 인구의 증가로 인해, 앞으로도 민주당 지지세가 더 강해질 가능성이 있다.

부산의 경우 중구, 동구, 서구처럼 젊은 인구가 상당히 부족하거나, 행정구역 통폐합이 공식적으로 논의될 정도로 인구가 적은 지역은 홍준표 후보가 이겼다. 그러나 나머지 16개 구 중 13개 구, 특히나 보수적이었던 금정구영도구, 수영구에서도 문재인 후보가 승리를 거머쥐면서 이변을 보여줬다. 부산 서부는 명지오션시티 등 신도시 개발로 젊은 인구가 많이 유입되고, 외지인도 많은데다가, 한국당 소속 서병수 시장이 소홀히 한 곳이기에 문재인 대통령이 압승했고, 이젠 사실상 민주당의 텃밭이 된 거나 마찬가지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그리고 부산은 2017년을 기준으로 서병수의 어마어마한 업적과 박삼석 부산 동구청장의 위안부 소녀상 철거 시도 등 여러 논란 등으로 인해 노인층을 제외한 50대 이하 세대들 사이에선 한국당을 위시한 보수 세력에 대한 불신과 혐오가 팽배해졌다. 이게 대선에서 보태져 한국당 소속이라고 무조건 뽑아줬던 표심이 많이 묽어진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 마지막으로 경상남도는 이곳에서 약 5년 동안 경남지사로 일했던 홍준표 후보에게서 보편적 급식 정책 중단 논란과 동남권 신공항 문제로 뒤통수를 엄청 쳐맞았는데, 이것 때문에 민주당 계열이 불과 만여 표 차이까지 추격하는 선전을 거두었다.[57]

전체적으로는 한국당이 이겼지만[58], 김해시, 양산시, 거제시, 창원시 성산구는 문재인이 압승했으며, 3당 합당 이후 민주 진보 계열 정당이 한 번도 못 이긴 창원시 진해구, 의창구에서도 승리했다. 김해시는 갑 지역, 을 지역 모두 국회의원이 민주당 소속이고, 시장까지도 민주당 소속이라 민주당의 지지세가 안착했다고 보고 있고 양산시와 거제시도 김해시 수준으로 지지세가 꾸준히 커가고 있는 듯하다. 창원시 의창구, 진해구는 접전 지역이 되었고, 마산회원구와 진주시에서는 접전 열세가 되면서, 다음 대선 때는 실책을 안 저지른 이상 민주당계 정당이 이길 것이라 보는 시각이 있다. 여기 남부 경남 지역은 밥줄이자 우리나라의 국가 기간산업이기도 한 조선업 붕괴로 가장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곳으로, 우리나라의 러스트 벨트가 될 위험에 처해있다. 그러나 이명박근혜 정부는 이 문제를 치료해주기는 커녕 대우조선해양 비리 사태로 결정타를 날려줘서(...) 조선업으로 먹고 살았던 이 지역 주민들의 반감을 샀다.

7.1.4. 대구­­·경북 (TK)[편집]

TK대구경상북도를 묶어 부르는 말로, 대경권이라고도 한다. 이 지역은 우리나라에 지역주의 정서가 싹 튼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도 민주당계 정당에게는 '통곡의 벽'으로 여겨지는 지역이며, 보수 정당의 본진이었던 곳이다.

우리나라 수구-보수 진영의 창조주들이 모두 이 지역 출신이다. 우선 박정희는 경북 구미시에서 태어났고, 박근혜노태우는 대구에서 태어났다. 특히 박근혜는 고향도 대구지만, 12년 동안 대구 달성군의 국회의원으로 있었다.[59] 전두환경남 합천군에서 태어났지만 대구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60]

지금의 대구는 두 말할 나위가 없는 보수 진영의 메카지만 옛날에는 '조선의 모스크바'라고 불릴 정도로 좌파 세력이 강한 곳이었다고 한다. 이승만과 맞섰던 사회민주주의 정당인 진보당의 조봉암 지지율이 전국에서 가장 높았던 지역이었다고[61].

하지만 경상북도는, 대구와 달리 옛날부터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이 유리한 성향을 보여오기도 했는데, 피난민들이 밀려오면서 반공 보수 색채가 상당히 강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등 이 지역에서 태어난 군부 정권의 수장들이 이 지역을 거점으로 집권하면서 지금과 같은 보수 세력의 심장부가 된 것이다.

대구광역시의 경우 동구, 서구, 대구, 북구, 중구는 구도심이라 막강한 보수정당 텃밭이며, 수성구달서구도 부촌으로 인해 보수정당의 텃밭이었다.

그리고 그 지지세는 부울경 항목에서 이미 설명했듯, 민주공화당민주정의당민주자유당신한국당한나라당새누리당자유한국당으로 이어내려져 오고 있다.

그래서 TK는 6.29 선언 이후 2015년까지 민주당계 후보가 의석을 확보한 사례가 DJ14대 대선에서 YS에게 패해 잠시 정계를 은퇴한 뒤 치러진 1994년 8.2 재보선에서 이상두 후보가 보수 성향을 띈 무소속 후보들의 난립 덕분에 당선된 사례와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권오을 후보가 당선된 사례 말고는 없었다.[62] 민주 진보 진영에 속한 후보가 30%대 득표율만 얻어도 정말 잘 나왔다고 말하는 곳이니 더 말해 무엇하랴.

그런데 2012년 19대 총선민주통합당김부겸 후보가 '지역주의 구도 타파'라는 명분을 내걸고 자신이 12년 동안 국회의원을 지냈던 경기도 군포시를 떠나 대구 수성구 갑 지역에 출마해 무려 40.4%의 득표율을 얻어 전국을 깜짝 놀라게 했다.

김부겸은, 18대 총선 때 수성구 을에 무소속으로 도전했다가 32.6%의 득표율로 떨어진 뒤 바로 경기지사 선거에 도전했던 유시민처럼 '1회성 출마'에 그치지 않고 2년 뒤 2014년 6.4 지방선거에서 새정련 소속으로 대구시장 선거에 다시 도전장을 내밀었고 40.3%의 득표율을 기록하는 저력을 보여줬다.

새누리당 권영진 후보에게 패하긴 했는데 그래도 대구 전 지역에서 민주당 후보가 40%대 득표율을 기록했다는 건 놀라운 일이라고들 했다. 대구에서 제일 보수적인 지역인 서구달성군에서도 역대 최대 득표율인 30%대 초반 정도를 득표했고, 심지어 자신이 국회의원 선거 때 도전했던 수성구 갑에서는 새누리당의 권영진 후보를 근소하게 앞지르기도 했다.

게다가 19대 총선 때도 대구에 출마했던 다른 민주당계 정당 후보들에 비하면 그리 큰 차이로 진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그 당시 수성구 갑의 현역 의원이었던 이한구가 별 이유 없이 20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것도 20대 총선에서 김부겸과 맞붙을 경우 승리를 장담할 수가 없고, 만에 하나라도 떨어진다면 이는 곧 정치 생명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이라 일부러 피했다는 설이 있다.

그리고 20대 총선에서 김부겸은 경기도지사를 두 번이나 지낸 새누리당 김문수 후보를 무려 62.3%라는 압도적인 득표율로 누르고 마침내 대구 입성의 꿈을 이뤘다. 김부겸의 득표율은 민주당의 20대 총선 당선인들 중에서 경상남도 김해시에 출마해 62.4%의 득표율을 얻어 당선된 김경수 후보 다음으로 높은 득표율이다. 그러나 득표수로만 따지면 민주당 당선자들 중 가장 많다.

그리고 민주당의 1차 컷오프에서 공천 배제 대상이 된 홍의락도 탈당해 대구 북구 을 지역에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52.3%의 득표율을 얻어 당선됐다. 홍의락은 처음엔 민주당으로 돌아갈 뜻이 없다는 의사를 밝히고 1년 넘게 무소속 신분을 유지하다가 2017년 5월 4일 대선을 앞두고 복당하였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터지고 새누리당한국당바른정당으로 나뉘어진 뒤로는 민주당이 이 TK에서도 잠깐이나마 지지율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한국당이 지지율 1위를 탈환했지만 19대 대선 이후에는 다시 지지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다만 1위긴 해도 전국에서 가장 낮은 1위인데다가 지지율 2위인 한국당은 전국에서 가장 높은 2위인지라 타 지역에 비해 정당 지지율 1, 2위 간의 격차는 크진 않다.

하지만 경상북도에서는 그런 거 없이 여전히 보수 정당과 민주당의 득표율 차이가 약 7:3[63]에서 9:1[64] 정도로 철옹성 같은 보수 일변도를 보여주고 있다.

20대 총선에서 전국을 통틀어 유일하게 새누리당 후보들이 전원 당선된 지역이기도 하다. 그나마 고령군-성주군-칠곡군 선거구에서 민주당의 박장호 후보가 약 30.5%의 득표율을 얻은 게 가장 괄목할 만한 결과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 속에서 치른 17대 총선열린우리당 득표율인 39%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득표율이라고 하는데 비교적 젊은 인구가 많이 사는 칠곡군에서의 선전에 힘입은 바가 크다고 한다.

헌데 사드 배치 문제 때문에 성주군에서 새누리당에 대한 반감이 폭발하였고, 또 그 불이 김천시에까지 옮겨가면서 다음 총선에서는 이러한 반사 이익에 힘입어 당선까지는 몰라도 득표율은 더 올라갈 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있었는데 19대 대선 결과를 보면 대구의 김부겸 같은 경우는 나오기 힘들 것 같다.

19대 대선에서 TK는 보수 진영 특유의 결집력을 발휘해, 홍준표 후보에게 총 47.1%의 표를 줘 21.7%의 표를 준 문재인 후보를 쓰러뜨리게 했다. 이 때문에 홍준표 후보가 아무리 보수 세력을 결집시킬 목적이었다지만 비상식적인 막말을 일삼은데 이어, 자신의 하숙집 동료가 돼지 발정제를 통해 여성을 강간하려는 일을 방조했다는 의혹까지 불거졌던 사람인데도 TK 사람들은 그가 단지 한국당 소속 후보라는 이유로 몰표를 몰아줬다며 TK 사람들을 싸잡아서 비난, 비하하는 목소리가 대선 직후 인터넷 상에서 터져 나오기도 했다. 심지어는 자기 고향이 TK에 있는 사람조차도 '아무리 내 고향이라지만 이건 너무하다'며 스스로 고향을 비하하는 경우까지 발생했다.

그리고 사드 배치로 홍역을 앓았던 성주조차도 사드 배치에 찬성했던 홍준표 후보에게 56.2%, 유승민 후보에게 6.9%, 안철수 후보에게 12.0%, 도합 75.1%의 표를 주었지만, 사드 재협상론을 주장한 문재인 후보에게는 18.1%에 불과한 표 밖에 주지 않아, 이 결과를 놓고 인터넷 상에선 문재인 정부가 사드를 어떻게 하지 못하더라도 성주 사람들은 문재인 정부를 비난할 자격이 없다고 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실제로 사드를 옆에 두고 살게 될 초전면의 홍준표 후보 득표율은 성주군 전체 평균보다도 오히려 높았다고 한다.[65] 그래서 북한이 2017년 7월 28일 밤에 기습적으로 ICBM 시험 발사를 했을 때 문재인 정부가 사드를 긴급히 임시 배치했는데 이때 성주 쪽의 반발이 컸다. 하지만 인터넷 상의 반응은 예전과는 다르게 많이 차가웠다.

그렇지만 주로 젊은 사람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에서는 19대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가 1위를 차지한 지역이 몇 군데 있긴 하다. 포항시 효곡동[66], 구미시(!), 칠곡군 일부 공단 지역 등이 있는데 특히 김천혁신도시, 그러니까 김천의 신도심인 율곡동은 문재인 후보가 50.4%의 득표율로 17.2%의 득표율을 기록한 홍준표 후보를 트리플 스코어로 압살하면서 경북에서 유일하게(!) 50% 이상의 득표율을 얻었다. 김천 일부 지역에서 민주당이 승리하게 된 요인은 사드 배치로 인한 영향도 있지만 혁신도시의 건설로 인해 민주당 지지 성향이 강한 청년층이 많이 유입된 것이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문재인 후보가 민주당의 전통적 강세 지역이었던 호남에서 약 62%에 달하는 득표율을 기록한 것과 대조적으로, 홍준표 후보는 한국당의 전통적 강세 지역이었던 이곳에서 50%대 득표율을 넘지 못했기 때문에, 역대 민자당 계열 정당에 소속된 대선 후보들 중 처음으로 TK에서 과반 득표율을 기록하지 못한 후보가 되었다는 결과를 내밀면서 'TK도 변하고 있지만 속도가 다른 지역에 비해 느린 것일 뿐이다'며 반론하는 의견도 존재한다.

7.1.5. 충청[편집]

충청권은 과거엔 3김 시대의 한 축이었던 김종필의 근거지였다. 김종필충남 부여군 출신이었기 때문에 김종필 지역주의 시대의 한 축으로 뛰어들게 된 것이다. 그러나 자민련이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에 맞아 소멸되고 그 여파로 김종필마저 정계를 떠난 뒤에는 그 어떤 정당에게도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지 않는 '캐스팅보트' 지역으로 변했다. 그러던 중 충남 예산군 쪽에 본적을 두고 있던 이회창자유선진당을 만들자 선진당 지지세가 강해졌다. 선진당이회창이 정계를 떠나고 선진통일당으로 이름을 바꿨다가 새누리당에게 흡수되는데, 흡수 과정에서 새누리당과 당을 합치는 것에 반발한 일부 인사들이 지금의 민주당으로 자리를 옮기기도 했다.[67]

충청권에서는 일명 경부선 벨트[68] 지역이나 그 주변의 아산시, 당진시, 공주시에서도 지지세가 엇비슷하거나 높다. 다만 20대 총선의 선거구 획정에서 단독 선거구였던 공주시부여-청양와 선거구가 통폐합되었다. 헌재에서 선거구의 인구 편차를 2:1로 하라고 판결했기 때문이다. 공주의 19대 현역 의원이었던 박수현은 현역 의원인 정진석에게 48.1 : 45의 차이로 밀려 낙선했기 때문에 민주당은 공주의 의석을 잃은 셈이다. 실제로 공주에서는 박수현 전 의원을 지지하였지만 나머지 부여-청양에서 정진석이 60%대 득표율을 올리면서 정진석의 당선을 이끌었다. 하지만 19대 총선과 비교하면 당진시, 논산-금산-계룡 선거구와 신설 선거구인 아산 을에서 의석을 얻어 그나마 민주당 입장에선 선방한 셈이 됐다. 천안에서는 신설 선거구인 병 선거구를 얻어갔지만 천안 갑은 잃어 현상 유지에 그쳤다. 다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바른정당의 창당, 위의 20대 선거구 획정 문서에서 보듯이 충남의 의석(현 11석, 적정 의석 10.19석)이 줄어들고 대전의 의석(현 7석, 적정 의석 7.48석)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충청권의 정치 지형이 변화할 가능성이 있다.

요약하면 김종필자유선진당이 사라진 뒤 충청권의 표심도 수도권처럼 '우촌좌도'로 변했다는 것이다.[69] 지역주의 전쟁에서 빠진 뒤로, 충청도민은 '이기는 쪽을 선택하는' 전략적 지지를 보내주고 있다. 따라서 전국적으로 민주당이 잘 나갈 때에는 민주당이 충청도에서 좀 더 많은 표를 얻고, 보수 정당이 잘 나갈 때에는 보수 쪽이 더 많은 표를 가져갔다. 20대 총선에서도 충청권 전체 의석 27석 중 새누리가 14석, 민주당이 12석을 차지했는데 세종시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복당했던 이해찬까지 합하면 의석이 13석이라서 새누리와의 의석 차이가 고작 1석에 불과했다. 2016년에도 팽팽한 백중세를 이룬 셈이다.

흥미롭게도 우리나라 역대 대선 결과를 살펴보면 대통령에 당선된 후보는 어김없이 충청에서 승리를 거뒀다. 2017년 19대 대선에서도 문재인 후보가 충청권에서 40.4%의 득표율을 기록해 승리하면서 이 '충청 승리의 법칙'은 사례 하나를 더 추가하게 됐다. 그리고 충청권은 문 후보가 또 하나의 대박을 터트린 곳으로, 부여, 청양, 예산, 괴산, 단양, 보은, 영동을 제외한 모든 곳을 싹쓸이했다. 특히 민주당에게 매우 어려운 지역인 보령, 태안, 옥천[70], 충주, 제천에서도 승리하는 기염을 토했다. 한편 세종특별자치시의 경우 민주당이 공무원 연금개혁, 성과연봉제 등의 정책에서 공무원들에게 우호적이므로 공무원들의 민주당 선호 현상이 강하게 일어나 호남 다음으로 민주당세가 강한 지역이 되었다. 19대 대선에서 5자 구도에서 무려 51.1%를 득표하였다. 물론 세종시의 인구가 적기 때문에 영향력은 작은 편이나 앞으로 인구가 증가한다면 민주당의 탄탄한 텃밭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7.1.6. 강원[편집]

강원도는 역시 영서 지역에서 약하게나마 지지 기반을 갖추고 있지만, 젊은 인구가 적어서 보수 정당의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어떤 사람들은 영남보다도 강원도민주당계 정당에게는 더 어려운 곳이라고 말할 정도다. '작은 TK'라고나 할까. 하지만 말이 그렇다는 거지, 강원도TK처럼 수십년 만에 민주당 후보가 당선되는 그런 곳은 아니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슈가 있었던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새천년민주당 시절 전체 8석 중 무려 5석으로 쓸어가는 위용을 보였는데, 이것은 2017년 19대 대선 이전까지 민주당이 강원도에서 완승을 했던 유일한 선거였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도 강원도 평창군 태생에 노무현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이광재태백-영월-평창-정선 통합 선거구에 출마해 46.7%의 득표율로 당선되었고, 6년 뒤에 열린 2010년 6.2 지방선거에서는 54.6%의 득표율을 얻어 강원도지사가 됐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는 태백시 출신의 배우 최종원태백-영월-평창-정선 선거구에 출마해서 55.3%의 득표율로 당선되기도 했다.

이광재가 불미스런 일로 2011년 1월에 도지사직에서 내려온 뒤에는 최문순MBC 사장이 민주당 후보로 강원도지사 선거에 출마해 51.1%의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여기에는 한나라당 후보였던 엄기영MBC 사장이 좀 막장이었던 탓도 크다[71] 최문순 지사는 2014년 6.4 지방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는 민주통합당영남권 공략에 너무 올인한 나머지 새누리당에게 무려 9석 모두를 헌납했었다. 17대 총선부터 민주당 후보를 둘이나 당선시켰던태백-영월-평창-정선 선거구도 뺏겼다. 이게 새누리당19대 총선 역전승의 한 요인으로 꼽힌다. 그래서 20대 총선에서는 그 실패에서 배운 게 있었는지 원주시 을 1석을 얻는데 성공했다. 아쉬운 성적이긴 하나 이외에도 원주시 갑에서는 민주당 권성중 후보가 새누리 김기선 당선자와 100표 차이로 떨어지는 등 강원도에서도 제법 선전했다.

그리고 19대 대선에선 또다른 격전지가 된 양상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한국당 김진태의 각종 망언 및 광역 어그로로 지역구 비토 여론이 매우 강력한 춘천시는 물론이며, 혁신도시의 힘을 입은 원주시직업군인이 많은 영서 북부(홍천군, 철원군, 화천군, 양구군, 인제군)에서 승리하였다. 영서 남부에서도 거의 접전을 이뤘으며, 심지어 영동에서도 성과를 거두었다. 그리고 보수 정당 지지세가 거의 TK와 맞먹는 수준이라고 불리는 강릉시동해시에서 몇% 차이로 선전하였고 속초시에서는 승리를 하는(!) 놀라운 결과를 거두었다. 게다가 정선군에서는 초접전을 이루는 성과를 거두었고 태백시에서도 크게 선전했다.

7.1.7. 제주[편집]

제주도수도권처럼 어느 특정 정당에게 표를 몰아주는 성향이 없지만, 그동안은 제주도 특유의 인맥을 중시하는 "궨당"[72]의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이었다. 이 궨당 정서는 1948년 제주 4.3 사건의 영향이 크다.

4.3 사건이란 이승만 정부가 이끄는 군경들과 남로당 계열 빨치산들 간의 무력 충돌 및 진압 과정에서, 제주도 사람들이 이승만 정부가 보낸 군경들한테는 '빨갱이'라는 이유로, 그리고 남로당빨치산들에게는 '반동분자들'이라는 이유로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듯 양쪽 모두에 의해 억울하게 학살당했던 사건으로, 이승만 정권이 남긴 여러 흑역사들 중 대표적인 사례로 손꼽힌다. 무려 3만여 명에 달하는 제주도 사람들이 이 시기에 학살당했다고 전해진다. 설민석 강사의 설명. 12분 36초 분량

2003년 10월, 노무현 대통령이 4.3 사건이 일어난 지 55년 만에 국가원수로서는 처음으로 제주도민들에게 공식 사죄하였고, 2005년에는 참여정부가 노 대통령의 뒤를 이어 정부 입장으로는 처음 제주도민들에게 4.3 사건에 대해 공식 사죄했다. 이러한 역사적 노력 때문이었는지, 2004년 17대 총선제주도에 출마한 열린우리당 후보들은 모두 당선됐다. 그리고 反노무현 정서가 하늘을 찔렀던 2008년 18대 총선 때에도 제주특별자치도에선 민주당 후보들이 전승을 거뒀다.

허나 여전히 제주도에서는 궨당의 영향을 무시 못한다고 한다. 따라서 제주도의 정치 지형은 정당보다는 인물론에 가깝다. 국회의원 선거에서 2000년대 이후 민주당 의원들이 약진했지만 그 이전까지만 해도 보수 진영[73]의 텃밭이다시피 했던 시절이 있었고 도지사 선거에서는 민주당 소속이었던 우근민이 도지사직을 잃고 탈당한 뒤로 민주당계 정당의 공천을 받은 후보가 오랫동안 당선되지 못했다.[74]

참고로 제주도는 지금까지 직선제로 대한민국 대통령을 선출한 모든 선거에서 당선된 후보가 늘 이겼던 유일한 광역 자치 단체다. 쉽게 말하자면, 충청권처럼 제주도에서 승리한 후보가 청와대에 입성했다는 이야기다.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4번 연속으로 민주당계 정당 후보들의 손을 들어줬지만 정작 2012년 19대 대선에서는 '제주 4.3사건 희생자 추념일 지정'을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당선되고 나서 입을 싹 씻어버렸박근혜문재인보다 근소한 차이로 더 지지했었고, 도지사 선거에서도 제주 출신 원희룡 당시 새누리당 후보가 승리하는 등 결과가 국회의원 선거와 많이 달랐던 점 또한 제주 지역 정치 성향의 복잡하고, 또 인물 지향적인 특징을 보여준다.

20대 총선에서는 새누리의 입성이 예상됐는데 지난 19대 총선과 마찬가지로 3개 지역구 모두 민주당이 수성했다. 이는 4.3 사건에 대한 참여정부의 사죄가 여전히 영향을 미치는 것도 있겠으나 폭발적인 외지인 유입으로 수도권과 정치 지형이 비슷해졌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존재한다.

4.3이라는 피비린내 나는 기억에서 오랫동안 갇혀 살았던 중장년층, 노년층에겐 여전히 '궨당'이 먹히지만, 그 끔찍했던 기억에게서 보다 더 자유로운 청년층과, 제주도로 건너온 외지 출신 도민들의 정치 성향은 다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한나라당 소속으로 서울에서 3선 국회의원을 지냈던 원희룡 제주지사가 제주도가 고향이라는 점 빼면 이렇다 할 기반이나 연고가 없었음에도[75] 동향인 신구범 새정련 후보를 상대로 무난히 당선될 수 있었다는 점이 제주도 특유의 궨당 정치가 이제는 서서히 약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한편 2017년 19대 대선에선 문재인 대통령이 총 45.5%의 득표율을 기록해 제주도의 전 지역에서 승리해 제주도에서 승리한 자는 늘 대권을 잡았다는 법칙에 한 사례를 더 추가하게 됐다.

7.2. 세대, 소득별[편집]

세대별로는 주로 30대의 지지율이 가장 높게 나오고, 그 다음으로 40대, 그 다음으로는 20대의 지지율이 높다. 60대 이상부터는 보수 정당에게 크게 밀린다. 50대는 386세대가 유입이 되면서 경합 상태에 있다.

20~40대의 젊은 유권자들 사이에서는 진보 정당이 있음에도 여전히 민주당이 가장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 단 최근에 와서는 오히려 30대, 40대에서 탄탄한 지지를 받고 대신 20대에서 지지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편인데 이는 이들 세대가 김대중, 노무현에 대한 향수가 적은데다 북한 도발의 영향으로 안보에서 보수성향이 강하기 때문으로 분석할 수 있다. 여론조사들을 살펴보면 민주당이 젊은 세대에게서, 보수 정당이 노년층에게서 가장 높은 지지를 받고있는 구조 만큼은 그다지 달라지지 않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반면 60대 이상 노인층의 경우는 주로 박정희, 전두환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고 따라서 그 시대와 연결된 부분이 많은 자유한국당에게 마음이 기울기 쉬울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소위 '콘크리트 지지층'이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반면 '586'에 해당하는 50대는 과거 민주화운동을 했으며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을 탄생시키기도 했던 세대로, '콘크리트'라고 표현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국민의당이 등장한 이후, 40대 미만 젊은 층에서는 민주당을 배타적으로 지지하는 비율이 높은 반면, 50대 이상으로 가면 非보수 성향이라도 국민의당을 선호하는 비율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득별로는 저소득층을 제외한 전 계층에서 지지 받는다. 다양한 계층이 지지하는 것이 민주당의 특징이다. 빈곤층에게선 한국당에게 밀리는 편인데 . 19대 대선의 심층 출구조사에서도 월 소득이 600만 원 이상인 계층과 월 소득이 400~600만 원인 유권자의 과반이 BIG 3 후보중 문재인을 지지했었다. 200만 원~400만 원 계층에선 절반에 조금 못 미쳤고, 200만 원 미만인 저소득층에선 홍준표에게 밀렸다. #

  • 자유한국당이 '부자 감세를 통한 낙수 효과'를 주장하고 복지 정책을 '포퓰리즘 정책'이라 비판하는 등 친재벌 성향이 강한 정당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의아한 일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지만, 이는 우리나라의 노인 빈곤율이 높고 노년층은 자유한국당을 많이 지지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계적으로도 민주국가에서 저소득층이 보수정당을 지지하는 계급배반 투표는 적지않게 발견된다


도농별로는 도시에서는 그 도시에 인접한 농촌 지역에 비해 지지세가 높고 촌이나 소도시에서는 이웃한 도시보다 지지세가 약하다. 옛 새누리 계열이 여당이었을 땐 이걸 여촌야도라고 불렀다. 현재 우리나라 시골에는 주로 노인들이 많이 살고, 도시 지역에는 그래도 시골보다는 젊은 사람들이 많이 살기 때문이다. 다만 이것도 19대 대선 들어선 조금 바뀌긴 했다. - - 지역의 차이는 유지되었지만, 읍에서까지 민주당이 승리한 것이다. 특히 충남 지역에선 면 지역에서도 민주당이 승리하였다. 특히 19대 대선 때는 수도권, 부울경, 강원도, 충청권의 농촌 지역도 휩쓸었다.

7.3. 선거에서의 이점[편집]

  • 지역적 지지 기반 확보
    20대 총선에서 민주당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인구가 밀집되어 있는 수도권에서 일여다야(一與多野) 구도에도 불구하고 전체 122개 지역구 중 82곳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또 노무현을 비롯한 부울경 출신 정치인들의 오랜 투자, 동남권 신공항 갈등, 한진해운 사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13대 총선 이후 부울경에 처음으로 교두보 확보에 성공했다. 그리고 19대 대선에서도 문재인 대통령은 서울의 전 지역에서 다른 후보들을 상대로 승리하였고, 인천경기도에서도 다른 후보들을 제법 큰 격차로 제치고 승리를 거머쥐었다. 부울경에서도 문재인 대통령은 (비록 홍준표와 큰 차이를 내진 못했지만) 부산울산에서 홍준표를 쓰러뜨렸고, 경남에서도 그곳에서 약 5년 동안 도지사로 일했던 홍준표와 초접전을 벌이다 0.5%의 득표율 차로 석패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지역두 번째로 많은 지역에서 연달아 혁혁한 성적을 낸 셈이다. 그리고 20대 총선에서 국민의당에 빼앗겼던 호남의 지지를 19대 대선에서 1년 만에 다시 가져왔다. 문재인 정부에는 적지 않은 인물이 호남 출신으로 구성되어 있기에 호남의 지지를 공고히 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76]
    수도권과 부울경, 그리고 호남에서 충분한 지지세를 굳건히 이어나갈 수만 있다면, 향후 총선과 대선 같은 전국구적 성격을 띄는 선거에서 민주당을 이기기란 무척 어려운 난제가 될 것이다. 역대 단일 보수 정당들이 그토록 막강했던 이유가 약 1300만의 인구가 살고 있는 영남(TK + 부울경)의 몰표 때문이었음을 감안해 보자. 영남 전체 인구의 60%를 차지하는 부울경에서만 이라도 보수 정당에 대한 묻지마 지지를 거둔다면, 민주당 입장에서는 예전에 비하면 대단히 쾌적한 선거 환경이 조성되는 셈이다.

  • 중도·진보 성향과 보수 지지층 흡수
    중도 성향이라는 점이 '애매하다'는 이미지를 주어 마이너스 요소가 될 수 있지만, 일단 중도성을 제대로 띄기만 하면 진보와 보수 성향의 유권자를 모두 흡수할 수 있다는 강점이 생긴다. 여론조사 등을 살펴보면 알 수 있겠지만, 스스로를 진보도 보수도 아닌 중도라고 칭하는 유권자들이 언제나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해 왔다. 그리고 선거란 언제나 이 중간 지대의 무당층을 누가 더 많이 끌어오느냐에 승패가 갈렸다. 민주당의 스타 정치인들 중엔 정청래, 이재명처럼 진보적 색채가 뚜렷한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안희정, 김부겸처럼 온건하고 보수 쪽과도 코드가 통하는 정치인들, 혹은 (한때 초강성이라고 불렸지만) 중도 개혁 성향의 박영선 등등 다양한 성향의 정치인들이 민주당의 좌우 날개로 기능하고 있다. 그럼에도 보수 측 지지자들은 어지간하면 지지 당을 바꾸지 않아 중도 성향의 메리트를 그다지 보지 못했으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TK - 60대 이상 친박 지지층과 박사모를 중심으로 한 강경 극우를 제외한 보수 지지층들이 자유한국당에서 이탈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민주당은 이들 무당층을 포섭할 기회를 얻었으며 실제로 일부 유권자들은 민주당을 지지하고 있다. 이는 여론조사에서도 확인된다

  • 대통령과 당의 높은 지지율
    2017년을 기준으로,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60~70%대를 넘나들고 있고, 특히 높았을 땐 80%대를 찍기도 하는 등 고공행진 중이라 민주당 사람들이 예전의 열린우리당처럼 대놓고 대통령에게 "계급장 떼고 붙어보자"는 식으로 대들기가 무척 부담될 상황이며, 야당들 입장에서도 대통령을 상대로 내는 쓴소리가 이렇다 할 국민적 호응을 받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도 비슷한 상태다. 과거의 '콩가루 집안'에서 벗어나 정당 지지율이 40%~50%대를 넘나들며 1위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는 '잘 굴러가는 집안'이 된 데다, 무엇보다도 민주당의 최대주주인 친문 성향의 당원들 때문에 민주당 소속 의원들 중 일부 불만 세력이 있다 하여도 친문 성향 당원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만들어진 추미애 지도부에게 함부로 각을 세우기 어려운 상황이며, 대통령에게 각을 세워 존재감을 빛내는 식의 정치 행보에도 큰 위험이 따르게 됐다.
    따라서 당대표부터 당원까지 큰 잡음 없이 당이 잘 굴러가고 있는 중이다. 그랬기 때문에 2012년 18대 대선 때와는 달리 19대 대선 때는 민주당이 대선 승리에 총력을 쏟을 수 있었고 그랬기에 정권도 되찾아 올 수 있었던 것이다. 정당의 지지율을 가장 잘 떨어뜨리는 요소 중의 하나가 내부 분란이다. 영구 집권할 것만 같았던 새누리당친박계비박계의 공천 갈등 때문에 한 방에 훅 갔던 기억을 떠올려 보자. 질서정연하고 일사불란한 것에 동경을 느끼는 우리나라의 대중 정서상 '봉숭아 학당' 같은 정당보다는 팀웍이 잘 맞는 정당에 더 안정감을 느끼고 유능하다는 인상을 받을 것이다.

7.4. 선거에서의 불리점[편집]

기울어진 운동장이라 표현되는 불리점이 상당하다. 이명박 - 박근혜 9년, 그리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거치면서 우리나라 보수 진영의 이미지는 크게 나빠졌지만 우리나라는 여전히 사회 전반적으로 아직 보수 친화적인 분위기가 강한 나라다.

  • 지역 기반
    우리나라 보수 진영의 본거지인 영남은 비록 20대 총선19대 대선에서는 이전에 비해 확연히 다른 표심을 보여주긴 했지만, 대선TK가 보여준 선택에서 알 수 있듯, 아직은 우리나라 보수 진영에 대한 지지세가 튼튼한 편에 속한다. 부울경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때 승리를 거두긴 했어도 홍준표와의 득표율 격차가 당초 민주당 측이 기대했던 것보다 그리 크지는 않았다. 영남은 약 1330만 명의 인구가 살고 있는 지역으로, 약 2500만 명이 살고 있는 수도권 다음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인구가 살고 있는 권역이다. 충청권, 호남권, 제주도, 강원도의 인구를 다 합쳐도 영남의 인구수를 넘진 못한다. 가장 큰 수도권이 보수표와 진보표로 경합을 벌이는 상황에서 두번째로 큰 권역이 그간 통일되어 있었던 보수 정당들을 향해 압도적 몰표를 던져댔으니 민주당이 역대 단일 보수 정당들을 상대로 큰 선거에서 이기기가 몹시 어려웠던 것이다.[77] 그래서 민주당이 이긴 15대 대선, 16대 대선의 경우 충청표를 끌어오기 위해 DJP연합,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행정수도 공약을 내걸어서 정권을 잡을 수 있었다. 만약 20대 총선 때 민주당이 '영원한 최강자'인 수도권에서 82석을 가져오는 대승을 거두지 못했다면 훗날의 정치 판세가 크게 달라졌을 수도 있다. 지금은 보수 정당이 한국당바른정당으로 분열되었고, 지역주의 성향도 예전에 비해 많이 묽어졌다고는 하나, 보수 정당이 하나로 다시 뭉쳐지고 영남지역주의 정서에 다시 불이 붙으면 민주당의 진로도 험난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 노년층
    우리나라 인구는 노년층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노년층은 우리나라 보수 정당의 대표적인 지지 연령층이다. 넉넉 잡아 50대부터는 오랫동안 군부 정권의 통치 아래서 길들여진 삶을 살아온 이들이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이미 고령사회에 진입한 나라[78]인데, 사람이란 존재는 나이가 점점 들면 들수록 젊었을 때의 모험 정신과 총기가 흐려지게 마련이므로 늙어가면 늙어갈수록 사람이 보수적으로 변해지기 쉽다.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이지만[79] 우리나라 노년층은 젊은 세대에 비하여 투표 참여율이 대단히 높다. 사실 '묻지마 지지'에 가까우므로 본받으라고 하기엔 뭐한 투표 성향이긴 하지만[80] 일단 선거가 있다고 하면, 주변 사람들에게는 겉으로 '찍을 사람이 없다'고 말은 하면서도 일단 투표소에 나가 한 표를 행사한다. 마음에 드는 후보가 없으면 투표를 포기해 버리거나, 아예 투표 자체에 관심이 없는 젊은 세대에 비해 대단히 대조적이다.[81]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선거 때마다 대학가처럼 젊은 사람들이 많은 곳보다, 전통시장 또는 노인정처럼 주로 노인들이 많이 있는 곳을 훨씬 더 집중적으로 들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투표를 잘 하지 않는 젊은 세대를 공략하느니, '정치 적극 소비층'인 노인층을 집중 공략하는 게 더 효과적이란 사실을 아는 거다.

    다만 젊은 세대도 노년층 표만 신경 쓰는 정치인들에 대한 반감이 강해지고 친민주당 친노친문 성향 인사들이 젊은 세대가 많은 인터넷 여론을 공략 하면서 젊은 세대 사이에서 친민주당 친노친문 성향이 강해지고 반 새누리당 표를 주기 시작 하면서 세대 대결 양상이 되는 반대 급부도 생겼다. 이 때문에 이명박근혜 정권과 새누리당은 젊은층 투표율을 떨어뜨리거나 국정원과 어용단체로 여론조작을 하거나 국정교과서로 젊은 보수층을 양성하려고 했지만 헬조선으로 대표 되는 보수 정권의 실정 때문에 결국 실패하고, 결정적으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박사모 노인들의 태극기집회로 젊은층의 반 새누리당 감정과 꼰대, 틀딱충으로 대표되는 반 노년층 감정이 정점을 찍으면서 젊은층의 투표율이 오르고 박근혜에게 투표한 30%대(대경권에서는 60%대)의 젊은 보수층들도 자유한국당을 버린 것이다. 물론 젊은층은 단순히 차악이라는 것 만으론 노년층의 투표율을 이기기 힘들기 때문에 공천이나 경선에서 젊은층의 의견을 잘 수용 하는 방향으로 후보를 내야 이후의 선거에서 노년층의 콘크리트 지지가 있는 자유한국당에 우위를 점할 수 있을 것이다.[82]

 

  • 언론
    언론 역시 조중동종편이 보수 친화적이고 공중파 기성 언론도 보수 정권이 장악했으며 한경오 등의 진보언론도 비판해야 할 때는 비판해야 한다는 비판적 지지 성향에서 나온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로 노무현을 공격 했었기 때문에 국민의당과 정의당은 몰라도 친노친문에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다. 사실 언론인들 스스로 보수 정권이 장악한 언론사를 정상화 하려는 움직임이 강해지고 있지만 친문 성향이 된다는 보장은 없고 참여정부 때처럼 상황에 따른 공약 이행 실패나 국회 협력 문제 때문에 느리게 진행 되는 걸 가지고 전후 사정을 감춘 채로 좌우를 가리지 않고 집중포화를 받을 수 있으며, 문재인 정부가 나서서 언론을 친문 성향으로 바꾸려 한다면 결국 보수 정권의 언론장악과 다를 바 없다.

    다만 이들 주류언론에 대한 불신 때문에 언론 신뢰도가 하락하고 팟캐스트 등의 비주류 언론이 활약하면서 정치적 역량이 향상했다. 대놓고 악의적인 논조의 뉴스나 가짜뉴스는 지지자들이 먼저 신고로 대응하면서 언론에서의 불리함은 어느 정도는 줄어들었다. 하지만 노년층은 여전히 공중파 기성 언론과 종편에 대한 믿음이 강하기 때문에 노년층의 지지를 얻는데는 어려움이 따른다. 그 중에서도 친박 성향이 극렬한 중노년층들 사이에서는 친박 극우 성향의 카톡이나 유튜브 채널을 선호하면서 이를 적극적으로 퍼뜨리며 자기 생산 소비하고 있기 때문에 보수 언론 개혁에 성공해도 성향을 바꾸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러한 유튜브 채널이나 가짜 뉴스들은 결국 친박 지지층을 제외한 나머지 이용자들에게는 신뢰도가 매우 낮을 수밖에 없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영향으로 친박의 확장성이 영구히 상실된 상황이라 민주당으로선 큰 위협이 되지는 못한다.

 

  • 색깔론, 대북 문제
    남북 분단으로 인한 대립, 김대중 전 대통령으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북한과의 대화 기조가 주로 민주당의 확장성을 저해하는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북한과 대화와 협상을 통해 민간 교류를 확대하고 평화통일을 이룩하자는 햇볕정책은 민주당의 중요한 정체성이다. 그러나 통일의 대상인 북한은 전세계 역사상 유례가 없는 3대 독재세습, 비판을 조금이라도 용납하지 않는 철저한 인권탄압,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개방을 거부하는 극단적 폐쇄정책, 핵무기 개발 등의 노선을 지향하는 나라다. 그 때문에 긴장감이 도는 냉전 구도를 해제하고 평화 체제를 구축하려는 목적의 햇볕정책북한을 상대로는 통하지 않았다는 평가가 현재로서는 지배적이다. 민주당 집권 10년간 화해 무드로 지내왔을 때에도 북한은 여러 차례 무력 도발과 핵무기 실험을 강행했고, 결국 대화와 협상을 시도하려는 것 자체가 북한에 돈퍼줘서 핵무기 만들 돈이나 준 셈이 됐다는 보수 진영의 선전이 제대로 먹혀서 도리어 민주당의 발목을 두고두고 잡게 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특히 이 부분은 6.25 전쟁에 대한 트라우마와 지속적으로 이어졌던 무력 충돌, 그리고 꾸준한 반공 교육을 받으면서 살았던 노년층에게서 민주당이 가장 강한 불신을 받고 있는 부분이다. 매번 선거 때마다 보수 정당 및 보수 언론들은 민주당을 다양한 이슈로 공격했지만, 이들이 오랫동안 가장 애용했던 무기는 바로 대북 정책과 이를 연관지은 종북몰이였으며, 민주당을 찍지 않는 사람들의 대다수는 어떤 다양한 기타 이슈가 아니라 민주당이 북한으로부터 우리나라를 확실하게 지켜줄 수 있을 지 불안하다는 생각 때문에 민주당의 집권을 기피하는 구도가 항상 이어져왔다. 이 때문에 문재인 대통령은 12.12를 일으키기 이전의 전두환에게 표창장을 받을 정도로 우수 했던 특전사 경력을 내세우고[83] 핵잠수함 도입 공약을 하고 전직 장성들의 지지 선언을 받았으며, 대통령 당선 이후에는 북한이 여전히 미사일을 쏘거나 하면 똑같이 미사일 발사로 맞대응 하고 환경영향평가 후 사드 재검토에서 임시 배치로 바꾸는 등 북한에 대하여 유화적인 제스처를 취한 날보다 까칠한 제스처를 취한 날이 더 많다.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기에 비하면 상당히 강경한 대북 노선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 지지층에서는 '민주당의 안보관은 믿을 수 없다. 북괴와 대화 하고 퍼주려는 민주당은 종북 빨갱이다'고 믿는 보수층에게 박정희는 한때 남로당 출신이었고 7.4 남북 공동 성명으로 먼저 북한과 대화의 문을 열었고 10월 유신북한에 먼저 알렸던 점, 전두환하나회 세력도 북한과 얼굴을 맞대고 살던 전방 병력으로 쿠데타를 일으켜서 안보 공백을 초래했던 점, 선거에서 이기려고 북한한테 총 쏴달라고 했던 총풍 사건, 이명박근혜미국만 믿고 국방비를 깎으면서 방산비리를 용인했고 북한을 감시 하고 김정은과 그 측근들에 대해 연구 해야 할 국정원을 인터넷에서 댓글이나 쓰게 만들었던 점, 한나라당 대표 시절의 박근혜통일부의 허가 없이 김정일에게 공손한 어조로 편지를 보내고 김정일을 만나러 갔던 박근혜 편지 사태 등을 거론하며 보수 쪽의 안보관이 훨씬 더 불안하다. 입안보와 종북몰이에 매몰된 보수야말로 북한을 이롭게 한 진정한 종북 빨갱이고 반박하고 있다. 그리고 민주당이 추진하는 대북 지원, 경제협력 정책 등은 원래 헌법에서 북한도 대한민국의 영토이며 평화통일을 추구해야 한다고 정했고 북진통일은 피해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이게 싫으면 개헌을 해서 북한을 외국으로 인정하자.고 반박 하고 있다.

 

  • 모호할 수 있는 리버럴 성향
    민주당은 집권하면 보수적인 입장에서 안보를 챙기는 한편, 진보적인 입장에서 사회 복지나 약자 보호 등의 정책을 동시에 추진하겠다는 노선을 추구하지만, 이것이 성공하면 보수와 진보 양쪽으로 지지층을 확대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지만 자칫 잘못하면 양쪽에서 동시에 공격을 받을 위험도 있다. 실제로 보수 정당과 보수 언론에서는 민주당을 종북좌파 취급을 하며 빨갱이로 보지만, 진보 정당과 진보 언론에서는 친미수구 취급하며 도리어 수구꼴통으로 공격한다. 실제로 참여정부 시절 당시 우파 야당이던 한나라당은 물론 좌파 야당인 민주노동당마저도 노무현은 물론 김대중 정권을 포함하는 민주 정부 10년 모두가 실패한 정권이라고 극렬하게 비판을 했었다.

    그리고 집권 여당이니만큼 국가 운영의 올바른 방향성을 도모해야 하기에 선거를 위한 정치 세력 다툼만으로 스탠스를 결정할 수 없는 상황이다. 우리나라의 특수한 정치 지형상, 보수 정당들은 안보를 미국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정작 보수적인 의제인 국가 안보나 전역 군인에 대한 보훈 및 처우 문제를 도외시 하는 경우가 매우 많고, 진보 정당인 진신류 정당들은 원내에 진출해 있지 못하거나 진출해 있다고 해도 세가 약해서 제대로 된 정책을 추진하기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이렇다보니 민주당은 사실상 홀로 우파의 안보와 좌파의 민생 모두 챙겨야하는 상황이다.

  • 여소야대
    20대 총선으로 누가 집권 해도 여소야대인 국회가 되었기 때문에 야당의 반대가 심해서 정책과 인사 진행이 느려졌다. 의회해산 권한이 없기에 2020년 21대 총선까지 진득하게 기다려야 하는데 2018년 제7회 지방선거에서 더민주가 대승리를 한다고 해도 재보궐선거로 국회 의석이 더민주에게 다소 늘지도 몰라도 큰 변화는 없다.[84] 그리고 국민의당, 정의당과의 합당이나 연립정부는 공천 문제 등으로 국회의원들끼리 나눠먹거나 내부총질을 싫어 하는 지지층들이 비토를 하며 국회선진화법 무력화 의석인 180석이 안된다. 하지만 2020년까지 버틴다면 야당과 언론의 여당 무능론과 문모닝 앞에서 문재인 정부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율이 그 때까지 유지 될지, 친문 지지층의 '이게 다 야당 때문이다' 프레임이 계속 통할 지가 문제다.

8. 타 정당과의 관계[편집]

8.1. 자유한국당[편집]

정치는 복합적이기에 정당들간의 관계를 한 마디로 정리할 수 없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과의 관계만은 앙숙이라고 간단히 정리할 수 있다.

자유한국당전두환, 노태우신군부 세력이 창당하고 이끈 민주정의당과, 김종필을 포함한 옛 군부 세력이 만든 민주공화당을 계승하는 신민주공화당, 그리고 이들과 손을 잡은 김영삼통일민주당이 힘을 합쳐 만든 민주자유당을 시초로 한다. 이 세 정당의 합당을 3당 합당이라고 부른다.

3당 합당으로 탄생한 민자당은 이후 김영삼이 당을 장악하면서 신한국당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김영삼의 인기가 땅을 뚫고 들어가기 시작했을 때에는 이회창이 당을 장악해 한나라당으로 이름을 바꿨다. 한나라당은 이 이름을 나름 10년 이상 가지고 나가다가 이명박 정부 때 정부 여당의 인기가 바닥을 찍으면서 박근혜가 구원 투수로 나서서 당의 이름을 새누리당으로 바꾸었다. 그 이후의 일들은 모두들 알 것이라 생각하고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반면 민주당은 김대중의 피를 이어받은 정당으로, 군사 독재 정권에 맞서 싸웠던 민주화 운동권 인사들이 많기 때문에 두 정당은 태생부터 사이가 좋을 수 없는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애초에 군부 정권 시대를 연 박정희와 민주화 세력의 대표 정치인 중 하나인 김대중김대중 납치사건 등으로 얽힌 필생의 숙적이었고, 3당 합당의 주역들 모두 때로는 필요에 따라 손을 잡은 때도 있었지만 김대중과 정적 관계로 얽혀 있던 사람들이었다. 비교적 갈등이 덜한 유럽의 양당제 국가들도 좌우 양당간 서로 날선 다툼을 벌이는 경우가 많은데, 하물며 군부 독재 정권을 옹호하는 사람들과 그 군부 독재 정권을 상대로 목숨을 건 저항까지 했던 사람들이 각각 소속된 두 당의 관계에 대해선 더 말할 게 있을까.

민주당이 한국당의 과거 독재 정권을 미화한다거나 권위주의 정책, 인권 탄압 소지가 있는 정책, 그리고 그들의 경제 정책이나 복지 정책을 반서민적, 친재벌적이라며 많이 깐다면, 한국당은 김대중 정부 이후 시작된 대북 유화책을 추구하는 민주당의 대북 정책 노선을 주로 까거나 민주당의 경제 정책 및 복지 정책을 대중의 인기만 생각하고 그냥 생각없이 내지르는 '포퓰리즘적 행태'라고 까는 경우가 많다.

심플하게 보면, 민주당은 한국당을 유신 체제의 부활을 꿈꾸는 친일 독재 정당이라고 깎아내리고,[85] 한국당은 민주당을 친북 포퓰리즘 정당이라고 깎아내린다.

비록 한국당의 뿌리인 민자당의 창당 세력 중에는 맨 위에 언급했듯 김영삼과 그의 계파인 상도동계도 섞여 들어갔고,[86] YS의 민주계가 당권을 잡고 나서 민자당의 이름을 신한국당으로 바꿨던 시기에는 김문수, 이재오 등 재야의 민주화 운동가들을 대거 영입했기 때문에 한국당 내부 구성원 중에는 민주화 운동을 했던 사람들도 꽤 있긴 하다. 그러나 이들도 김영삼 정부가 힘을 잃은 뒤에 등장하는 이회창, 이명박, 박근혜에게 새로 줄을 서다보니 결국 과거 김영삼 밑에서 있을 때 보여주었던 민주화 운동가로서의 성향은 거의 사라져 버렸다.[87]

그리고 이회창 의 대선 실패로 정계를 떠나고 이명박박근혜의 양강 구도가 열린 뒤에는 친박근혜계친이명박계와 그 외 소장파로 계파가 새로 짜여졌다. 그때 생긴 친박계친이계의 갈등이 나중에 친박계비박계의 갈등으로 이어졌고 결국엔 한국당바른정당으로의 분열로 귀결된 것이다.

민주당 지도부는 새누리당한국당바른정당으로 나뉘어진 뒤 바른정당에 대해서는 말이 통하는 상대라며 협상을 해나가겠다고 해 어느 정도 유화적인 태도를 보여줬다. 그러나 한국당의 정우택 원내대표의 경우 원내대표로 선출된 뒤 각 당의 원내대표에게 인사를 갔을 때 우상호 당시 원내대표는 아예 면담조차 거부하기도 했다.

8.2. 국민의당[편집]

국민의당을 창당하고 핵심적인 위치에 선 사람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대부분 민주당계 정당새천년민주당 - 통합민주당 - 민주당(2013년) - 새정치민주연합에서 10여년 넘게 뿌리를 박았던 인물들이 많다. 문재인새정련 - 더불어민주당의 당대표를 맡았던 시절 비주류, 비노계로 분류되었던 이들이, 소위 '친노 패권주의'를 비판하며 당을 박차고 나가 새로 만든 정당이 바로 지금의 국민의당이다.

때문에 국민의당은 대중적인 인기는 별로였던 새정련호남 세력과 당시 야권 대선 주자 빅3이긴 했지만 문재인에 비해 존재감이 그리 세지 않았던 안철수가 정치적 실익을 위해 연합해 만든 당이란 의혹을 받았고,[88] 민주당 지지층도 국민의당을 '궁물당'(…)이라는 멸칭으로 부르며, '겉으로는 새정치와 중도라는 번지르르한 간판을 내걸었지만 사실은 'Anything But Moon'(문재인만 아니면 뭐든지 좋다)이 이념인 정당'으로 여기고 있다. 또 새누리당과의 사실상 정치관과 이념이 비슷한 사람들이라고 여겨서 언젠가 이들과 공조할 것이라고 생각해 '새누리당 2중대'라고 깎아 부르기도 했다.

사실 국민의당의 한 축을 이룬 호남 세력과 민주당의 주류를 이룬 친노·친문 진영이 꽤 오랜 시간 불편한 사이였던 건 맞다. 그래서 정치권의 일부 호사가들은 비노 세력이 국민의당을 만든 목적이 일단 참여정부호남 홀대론을 내세우고[89], 야권 표를 갈라서 민주당이 호남을 비롯해 모든 지역에서 새누리에게 참패하고 나면, 그 당시 당대표는 아니었지만 민주당의 실질적인 책임자라고 여겨져왔던 문재인이 정계를 떠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그럼 안철수라는 대선 주자를 앞세워 다시 민주당과 통합해 당의 주도권을 되찾는 것이라고 내다보기도 했다. 실제로 국민의당에서 김종인발 야권 통합론이 나왔을 때 국민의당 내부에서는 통합 거부를 주창해온 안철수를 지지하는 쪽과 민주당과의 연대를 주장해온 쪽 간의 내부 충돌이 있기도 했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니 국민의당호남을 차지하고 교섭단체가 된다는 제1차 목적은 달성했지만, 민주당도 호남에서 참패했는데도 불구하고 수도권에서 압승을 거두고 새누리당의 근거지인 영남에서도 약진하면서 123석을 얻어 화려하게 부활했다. 그리고 고질적인 약점이었던 '호남당' 인상을 꽤나 많이 걷어내고 '전국 정당'에 가까워지는 뜻밖의 반전을 일으켰다. 당연히 문재인도 정계를 떠날 필요가 없어졌다.[90] 그래서 20대 총선 출구조사 당시 신생 정당이었던 국민의당이 38석이나 얻는 큰 수확을 거뒀음에도 정작 안철수가 그렇게 기뻐하지 않는 듯한 표정을 지었던 게 영락없이 호남에만 갇힌 셈이 된데다 문재인을 정계에서 쫓아내는데 실패했기 때문이 아니었냐는 카더라가 돌기도 했다.

어쨌든 서로 으르렁대는 사이이지만, 둘 다 호남이라는 불가분의 뿌리에서 갈라져 나왔고 성향도 두 정당 모두 다 김대중에게서 완전히 자유롭기 어렵다는 태생적 공통점이 있기 때문에 사안에 따라서는 새누리당에게 맞서 손을 잡을 때도 있다. 실제 박근혜정부역사교과서 국정화 정책에 대해선 두 정당이 이견의 여지없이 반대 의견을 냈고, 20대 국회의 국회의장단 선출 및 알짜배기 상임위원장 자리를 둘러싸고 새누리당과 당시 야권의 쟁탈전이 벌어졌을 당시엔 민주당의 손을 들어 새누리당을 압박하기도 했다. 이후에도 보면 협치를 명분으로 민주당과 새누리당 양당 사이에서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곤 있지만 아무래도 민주당 쪽 손을 들어주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많았다.

그런데 2016년 12월 새누리당이 분당되면서 100석이 무너져 바른정당까지 포함한 야권 총 의석이 한때 개헌선(200석 이상)을 넘었고 다당체제 속에서 더 복잡한 정치 판세가 진행될 여지가 생겼다. 여기까지는 나름 힘 있는 원내 제3당으로서 존재감을 때때로 보여주곤 했는데 2017년 들어서부터는 새로운 교섭단체인 바른정당의 등장으로 존재감이 약해졌다.

원내 제1당이라는 지위와 문재인이라는 막강한 대선 주자를 선봉장으로 삼아 정국 주도권을 치열하게 거머쥐려고 했던 민주당과는 달리, 국민의당은 갖고 있는 의석 수가 캐스팅보트 역할엔 적합해도 정국 주도를 해나가기엔 부족하였고, 무엇보다도 안철수가 존재감을 그렇게 어필하지 못했다. 따라서 대선을 바라보는 호남의 민심도 점점 변하는 것이 감지됐다. 우선 지역 민심에 가장 예민한 호남 정치인들의 행보가 달라졌다. 국민의당으로 이적했던 옛 민주당 당원 3만 명이 민주당에 복당을 신청했고#, 무소속으로 당선된 박성일 완주군수와 이항로 진안군수가 민주당에 입당했다.#

그나마 19대 대선 선거 운동이 중반에 접어들고 문재인안철수의 격차가 많이 줄어들었을 때가 반등의 기회였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국민의당안철수가 유력한 2위 주자로 부상한 뒤에 쏟아진 여러 네거티브 공세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고, '안철수가 되어야 하는 이유'보다는 '문재인이 되면 안 되는 이유'를 입에 훨씬 더 많이 올린 탓에 안철수가 아닌 문재인이 더 부각되는 역효과를 불러오고 말았다. 안철수 본인도 자신의 이미지를 스스로 떨어뜨리는 잘못을 여럿 범했다.

결국 19대 대선에서 안철수는 41.1%의 득표율로 당선된 문재인, 24%의 득표율로 2위를 기록한 홍준표에 이어 21.4%의 득표율로 3위를 기록해 대선에서 떨어졌다. 무엇보다도 민주당과 함께 뿌리를 내린 호남에서 문재인 62.0% : 안철수 28.1%라는 스코어로, 변명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완패해 버렸기 때문에 당의 존립까지 위협받는 처지에 놓였다. 대선 직후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도 민주당은 호남에서 무려 71%의 지지율을 기록했지만, 국민의당은 불과 5%에 지나지 않은 지지율을 기록했다. 국민의당 정치인들이 아직 새정련에 있었을 때 문재인 당시 대표의 호남 지지율이 5%대에 불과하니 사퇴하라고 압박했을 때와 비슷한 현실을 이번엔 본인들이 맞이하게 된 셈이다. 호남에 지역구가 있는 국민의당 의원들은 이런 민심이 신경 안 쓰일 수가 없을 것이다.

동교동계의 일원인 이훈평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소위 '친문 패권주의'가 싫어서 민주당을 떠났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탕평 인사를 보니 그 패권주의도 이젠 사라진 듯하다"면서 이렇게 되면 국민의당에 있는 게 의미가 없다고까지 말했다. 심지어 같은 동교동계의 일원인 정대철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 자리에 앉혀서 민주당과의 통합을 논의해야 한다는 생각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조선일보 기사 김대중의 직계 가신들이었던 동교동계3김 시대 때 만큼 현실 정치에 미치는 영향력이 강하진 못하지만, 호남에서의 그 상징성은 아직 남아있기 때문에 20대 총선 때 그랬던 것처럼 만약 동교동계가 이번엔 국민의당을 떠나 민주당으로 돌아오면 '호남 민심이 국민의당을 떠났다'는 내용의 대외 선전이 가능해진다.

다만, 민주당을 버릴 땐 언제고 국민의당이 침몰할 것 같으니 돌아오냐는 민주당 내 친문 지지층의 반발도 클 테고, 만약 복당이 성사된다 해도 여전히 친문계가 주도권을 갖고 있는 민주당 내에서의 발언력이 아마도 예전만 못할 것이다. 결국 정대철이 비대위원장직을 고사하고 박주선이 비대위원장으로 확정되면서 이 갈등은 일단 봉합이 됐지만, 국민의당 구성원들이 모두 동상이몽 중이라는 걸 드러낸 일이라 하겠다.

국민의당은 시작부터 비노-반노 인사들이 뭉쳐져 생겨났으므로 중도를 표방한다는 명분으로 문재인친문계를 '친박계와 쌍벽을 이루는 양극단 세력'이라고 규정해왔기 때문에 때때로 문재인, 그리고 친문계가 지휘하고 있는 민주당에게 반기를 들고 각을 세우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그런데 정작 국민의당이 뿌리내린 땅인 호남의 민심은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때처럼 밀어주자는 분위기가 강하니 고민이 깊을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민주당과 전면 협력하자니 '민주당 2중대' 취급을 받으며 국민의당의 정체성 자체가 뒤흔들릴 수 있다.

그리고 이 와중에 국민의당초대형 정치 스캔들을 저지르는 바람에 국민의당의 미래는 더욱 어두워졌다. 이 사건 이후 민주당과 국민의당호남 지지율은 단순히 크다는 수준을 넘어서 압도적으로 지지율의 차이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민주당은 정권을 탈환한 뒤 호남에서 압도적인 지지율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지만, 국민의당은 대선 패배 이후 지지율 침체가 가속화 되던 중이었는데 거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대선 공작 사건까지 터지자 어떤 여론조사에서는 호남극혐하는 한국당보다도 지지율이 더 낮게 나오기도 했다.

민주당과는 다르게 호남 이외의 지역에서는 자생력이 현저히 떨어진다고 평가받는 국민의당으로선 당이 뿌리째 뽑혀나갈 수 있다는 위험 신호다. 국민의당이 붕괴 직전까지 치달아가는 상황을 보면서 민주당 지지층은 고소해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국민의당 사람들을 다시 민주당으로 받아주면 그땐 민주당도 예전의 봉숭아 학당으로 돌아갈 것이 확실하다. 그러면 민주당도 결국 망하고 말 것이다'라며 민주당 지도부와 의원들을 압박하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우상호 전 원내대표가 언론 인터뷰에서 국민의당이 백기를 들고 민주당과 다시 합쳐야 한다고 했다가 두 당의 합당을 반대하는 민주당 지지층에게 많은 비판을 받은 적이 있다.

이후 전당대회에서 안철수가 다시 대표로 선출되면서 민주당과의 대립각이 강화되는 모양새다. 실제로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이 부결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국민의당에서는 이 시기에 soc예산 삭감을 이유로 호남 홀대론을 다시 들고나왔는데 정작 호남출신인 김 후보자의 낙마에 기여했다는 것이다.

국민의당의 미래가 어찌될 지는 민주당과 국민의당호남 3차전이 될 2018년 6.13 지방선거에서 어떤 결과가 호남에서 나오느냐를 봐야 가장 확실하게 예측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8.3. 바른정당[편집]

바른정당을 바라보는 민주당의 생각을 요약해 보면 '바른정당한국당과 언제 다시 합칠까?'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바른정당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 민주당 원내 지도부는 품위 있는 새로운 보수 정당이 되기 바란다고 덕담을 건넸지만, 일단 그 성향과 미래에 대해 많은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배신자라고 비난하는 한국당 지지층을 제외하고 다른 정당 지지자들이나 무당층들은 이들이 머지 않아 한국당의 2중대가 될 것이라는 의심을 가지고 있다.

바른정당을 만든 옛 새누리 비박계한국당에서 다수파를 차지하고 있는 친박계와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사이가 됐지만, 바른정당으로 넘어가지 않고 한국당에 남은 비박계와는 계속 소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홍준표도 한때 바른정당에게 합당을 이야기하기도 했었다. 보수 정당들은 자유선진당처럼 따로 나왔다가 결국 보수 단일 정당으로 합당하는 전례가 많이 있어서 민주당 입장에서는 한국당과는 상종하지 않겠다는 바른정당의 말을 신뢰하기가 매우 어려울 수 밖에 없다.

바른정당 소속이었던 국회의원 13명이 한국당으로 다시 말을 갈아탄 후 바른정당은 '한국당은 구제불능'이라고 비판하면서 손을 잡을 일이 없다고 일단은 선을 그었다. 그러나 우리나라 역대 제3당들이 모두 의석 수 부족과 지역 기반의 부재로 결국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사라져갔다는 점을 생각하면 바른정당이 독자 노선을 오래 걸을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사실 이들은 박근혜 탄핵에 크게 기여를 하긴 했지만, 박근혜의 힘이 건재했을 땐 친박계 정치인들 못지 않게 박근혜를 편들었거나 그들의 실정에 눈 감고 입을 닫았던 사람들이 꽤 많다. 이 사실을 아는 민주당 지지층도 이들은 그냥 정치적 이해 관계 때문에 한국당과 갈라선 것이지 정말로 제대로 된 보수 정당을 만들기 위해서 바른정당을 만들었을 거라 보는 사람이 거의 없다.

우선 김무성의 경우 새누리당 대표로 있던 시절 '김무성 30시간의 법칙'이라는 조롱이 나올 정도로 박근혜친박계에게 저자세로 일관하며 정말 중요한 타이밍이 아니면 대들지 않았고 주호영도 한때 '골수 친박' 정치인인 윤상현, 김재원과 함께 박근혜의 정무 특별보좌관으로 발탁됐던 인물이다. 또 세월호 특별법 정국이 닥쳤을 때에는 새누리당의 정책위원회 의장으로서 세월호 참사를 '단순 교통사고'라고 주장하며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위원회의 권한을 최대한 축소시키는데 앞장 섰던 과거가 있다.유튜브 영상 1, 유튜브 영상 2

바른정당의 최고 스타 정치인인 유승민도 2000년대부터 '원조 친박' 정치인이었고 새누리당 원내대표 경선에 출마했을 땐 본인 입으로 "나는 친박이라는 말이 생기기 전부터 친박이었다"고 어필하기도 했다. 실제로도 2005년에는 박근혜의 비서실장이었고 2008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에서도 박근혜 캠프의 일원이었다. 친박계에 의해 당에서 쫓겨나다시피 해서 무소속으로 출마했던 20대 총선 때에도 박근혜의 사진을 들고 선거 유세를 했다. 바른정당 대선 후보 경선 때 유승민과 경쟁한 남경필도 2014년 6.4 지방선거새누리당 경기도지사 후보로 출마했을 때 비록 훗날 반성문을 썼다지만 '대한민국의 딸 박근혜를 지켜내겠다'고 열변을 토하는 모습이 버젓이 남아 있기도 하다.

새누리에 있었을 땐 김무성, 유승민과 더불어 대표적인 탈박 인사였고 바른정당으로 넘어온 뒤에는 당의 초대 당대표가 된 이혜훈세월호 참사 직후에는 친박계처럼 '세월호 때문에 상인들이 장사를 못한다'는 논리로 마타도어를 한 전력이 있다. #

한국당으로 넘어간 김성태 역시 정세균 국회의장이 20대 국회 개회사에서 우병우민정수석을 비판하였을 때 다른 새누리당 의원들과 같이 국회의장실로 우르르 몰려가 이런 짤방을 남겼던 전례가 있다.

정세균 국회의장이 김재수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건의안을 상정해 야권 의원들의 찬성을 얻어 통과시킨 걸 문제 삼아 새누리당이 국정감사를 마비시켰을 때 비박계 인사들 또한 상당수 보조를 맞췄다. 이때 민주당 및 야당에서 국정감사를 통해 끄집어 내려고 했던 사람이 바로 최순실이었다.

바른정당 창당의 주축이 된 옛 새누리의 비박계가 이렇게 박근혜가 건재했던 시절에는 친박계처럼 자세를 낮추며 박근혜의 뜻에 순순히 따랐으면서 박근혜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완전히 힘을 잃고 난 뒤에야 본격적으로 반기를 드는 모습을 쭉 지켜본 민주당 지지층 중에는 바른정당한국당에 비하면 덜 골수일 뿐 한국당과 본질은 다르지 않을 거라고 믿는 사람들이 대다수다.

따라서 지금은 박근혜가 '재앙덩어리'가 되었으니 한때 박근혜에게 협력했던 과거를 세탁해야 앞으로의 정치 진로가 열리므로 새누리당이라는 배를 버리고 박근혜 탄핵에 동참했을 뿐, 이 일이 잠잠해지면 머지 않아 한국당과 재결합해 과거 19대 국회 시절의 모습으로 돌아갈 거라는 예측이 가장 힘을 많이 받고 있다. 그리고 이 예측은 일부 현실이 되기도 했다.

실제로 대선 시즌인 2017년 5월 1일 유승민 후보의 지지율이 좀처럼 오르지 않는 상황에서 홍준표 후보의 지지율이 상승세를 보이자 불안감을 느낀 바른정당 의원들이 유 후보에게 후보 단일화 압력을 넣다가 여의치 않자 무려 집단 탈당해 홍준표 후보 지지를 선언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이어서 홍준표 후보에 의해 눈칫밥 먹으며 한국당으로 돌아가는 촌극을 국민들에게 보여주면서 민주당 지지층은 "한국당을 청산 대상이라고 소리칠 땐 언제고 이제 와서 유승민을 버리고 홍준표와 손을 잡느냐", "역시 그 줄타기 본성이 어디 가겠느냐"며 조소를 날렸다.

그래도 보수 정치인들 중 대표적인 경제민주화론자로 알려진 이혜훈 대표 체제가 출범하면서 정부 여당에 일정 부분 협조하면서 중도 보수층을 잡겠다는 스탠스를 취하고 있어 이 스탠스를 유지하는 한 어느 정도 호의적 관계가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아무래도 한국당홍준표 체제에 들어서면서 주 지지층인 강경 보수층에게 어필하기 위해 강력한 대여 투쟁을 벌이며 극우화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여기에 끼어들기보다는 지난 대선 때 가능성을 보았던 2030세대나, 무당파 성향의 중도보수층을 공략하는 게 더 성과가 좋을 수 있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8.4. 정의당[편집]

정의당이정희가 이끌었던 민주노동당 + 유시민이 이끌었던 국민참여당 + 노회찬, 심상정 등이 이끌었던 진보신당 탈당파인 '새진보통합연대'가 손을 잡고 만든 통합진보당에서, 참여계와 새진보통합연대가 다시 갈라져 나와 만든 정당이다.[91] 원래 이름은 '진보정의당'이었지만 2013년 7월 21일 정의당으로 당명을 개정했다.

유시민, 천호선 같은 국민참여당 출신이나 김종대 같이 참여정부 출신의 친노계 인사들이 소속되어 있고, 성향 면에서도 사회민주주의 정당으로 민주당의 사회자유주의와 통하는 바가 꽤 있어 두 당이 제법 가까울 것도 같지만, 따지고보면 생각보다 그렇게 친한 관계는 아니다.

정의당 자체가 거대 양당제를 비판하고 다당제 체제를 이끌어 내겠다는 목표를 고수하고 있어서 민주당 역시 양당 체제의 일원으로서 비판의 대상으로 보기 때문이다. 게다가 민주당의 전신인 민주통합당19대 총선통합진보당과 야권 연대를 했다가 통합진보당에서 벌인 여러 문제 때문에 크게 데이기도 했고, 좌클릭으로 인해 일정 중도층을 잃은 부분도 있었다. 그래서 민주당은 이른바 '중도층 공략'이라는 기치 아래 꾸준히 우경화 경향을 보여와서 정의당은 꾸준히 민주당의 우클릭 정책을 비판해왔다.

그래도 진보 성향을 명확히 한다는 점과 국민참여당 출신들이 많이 있다는 점 때문에 민주당은 정의당을 경쟁자로 볼 지는 모르겠으나 분명히 적으로는 보지 않는 편이다.

따라서 민주당 지지층도 정의당스스로의 힘으로 클 능력이 안 되니 그냥 양비론으로 우리를 새누리당 2중대로 몰아 점수나 따내려고만 한다며 불편하게 보는 쪽과 우리도 정의당처럼 진보 정체성을 명확히 해야한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쪽으로 나뉘어 있었다.

정의당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민주당 지지층의 경우 정의당이란 단어를 반대로 나열한 '당의정'[92]이라는 멸칭으로 부르기도 한다. 그리고 '민주노동당에서 정의당에 이르기까지, 진보 정당들이 10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해놓은 일보다, 민주당의 진보 성향 그룹인 '을지로(乙之路)위원회'가 2013년부터 지금까지 해놓은 일들이 훨씬 더 많다.'면서 진보 정당들의 능력에 대해서도 좋은 점수를 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다.[93] 그리고 바른정당정의당이 잠깐 가까워지는 모습을 보이자 민주당의 일부 지지자들은 "저것들이 멍청하게 적폐 2중대를 응원하고 앉았네? 회색 분자 같은 것들"이라며 경멸하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민주당 지지자들 중에서 바른정당은 그나마 대화가 가능한 보수 정당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에 전부 그렇다고 보긴 힘들다.

이들이 가장 민감해하는 부분은 정의당과의 후보 단일화 문제로, '노회찬, 심상정, 조승수, 더 넓게 잡아보면 천호선정진후, 박원석 말고 지역구 선거 경쟁력이 있는 사람이 정의당에 누가 있느냐. 20대 총선에서 정의당 후보로 단일화된 지역은 (노회찬 의원이 당선된) 경남 성산구 빼고 모두 지지 않았느냐'며 정의당이 민주당에게 양보하는 게 당연하다고 주장한다. 더 심한 쪽은 정의당은 비례대표에나 올인하고 지역구 선거에는 아예 후보를 내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94] 그렇지만 정의당 내부에 노회찬, 심상정, 유시민 같은 탐나는 인재들이 있고 아예 당을 합치면 '피곤하게 야권 연대 같은 거 할 필요도 없어지므로' 정의당과의 합당에 그리 반대하진 않는 분위기였다. 다만, 이쪽이 말하는 합당이란 양당이 똑같은 지분을 갖고 새로운 연합 정당을 만드는 그런 합당이 아니라 민주당이 정의당을 흡수하는 걸 말하는 것이다. 물론 대놓고 '흡수'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지는 않고, '20석 얻기도 버거워하는 군소 정당으로 시간을 낭비할 바에야 차라리 민주당으로 들어와 민주당에 진보 블록을 형성해 활동하는 게 더 현실적이지 않겠느냐'라는 워딩을 썼다.

반면 정의당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지지층은 정의당의 흔들림 없는 진보 정체성을 높이 평가하며 민주당도 이렇게 진보 정체성을 명확히 하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강경파가 많은 편이었다. 특히 이쪽은 민주당이 자신들의 성향과 맞지 않는 정책을 펼 때마다 정의당으로 당적 이전을 타진하기도 했었다.[95] 어찌보면 민주당이 '거대한 정의당'으로 거듭나길 바라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정의당과의 합당을 반겼으면 반겼지 반대할 이들은 아니었다.

그 외에 전태일 열사로 대표되는 노동 운동 부분에서는 민주통합당 출범 당시에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의 정신을 계승한다고 선언하면서 노동 운동의 역사를 받아들였고, 현재 민주당의 강령과 정책에서도 노동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리고 민주당 소속 정치인들 중에도 노동 전문가들이 적지 않다. 그리고 전태일 열사의 여동생인 전순옥 씨가 19대 총선 당시 민주통합당 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되어서 의정 활동을 한 적도 있다.

그래서 민주당이 은수미, 전순옥, 김광진 등 진보 성향의 인사들을 대거 영입함과 동시에 을지로위원회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기존의 진보 정당의 단독 집권 플랜이 현실성이 없다고 판단한 사람들이 민주당을 진보 정당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2012년을 기점으로 대거 입당하고 있다.

한편, 정의당은 선거 때마다 후보 단일화나 정책 연대까지를 데드라인으로 그어놓고 그 선을 넘어갈 생각은 없다는 걸 여러 차례 보여주었다. 민주당과 정의당의 당세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차이가 크기 때문에 어떻게 합당을 하든 흡수될 수 밖에 없다는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두 당의 지지층은 국회의원 선거 때마다 지역구 후보는 단일 후보 혹은 민주당 후보에게 표를 집중시키고 비례대표 표는 정의당에 집중시키는 방향으로 새누리당을 견제해 왔었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는 각 지역구마다 민주통합당 - 통합진보당 단일 후보를 뽑아 표 분산 효과를 최소화하려고 하기도 했었다. 그래서인지 정의당결선투표제, 중대선거구제, 권역별 비례대표제 등의 선거제도 개편 부분에선 양당제 타파를 위해 오히려 국민의당과 연대하기도 한다.

19대 국회에서는 정의당이 5석에 불과하긴 했어도 원내 제3당의 위치에 있어서 목소리는 작을지언정 나름 존재감을 드러낼 때가 있어서 민주당이 적극적이진 않았어도 정의당과 나름 협의도 하고 그랬었는데, 20대 국회에선 그때의 정의당보다 훨씬 많은 의석으로 새로운 원내 제3당이 된 국민의당바른정당의 등장으로 민주당과의 관계가 더 멀어졌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고작 6석 밖에 없어서 국회 운영에 아무런 영향력도 행사할 수 없는 정의당보다는 의석을 20석, 40석씩 갖고 있는 바른정당이나 국민의당과 이야기할 일이 더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20대 국회에서 정의당에 관한 뉴스는 찾아보기 어렵다.

게다가 정의당 문화예술위원회가 메갈리아 옹호 논란 사태를 자초하고 정의당 지도부가 이에 대해 또렷한 선긋기를 하지 못하면서, 이에 실망한 민주당의 親정의당 성향 지지자들이 정의당에게 보냈던 지지를 철회해버리는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래서 정의당과의 관계를 풀어나가는 문제에 있어서도 '정의당의 응석을 더 이상 받아주면 안 된다'라고 주장해왔던 反정의당 성향 지지층의 목소리가 압도적으로 커졌다.

그리고 메갈리아 옹호 논란으로 노동당, 녹색당, 정의당의 일부 당원이 각자 속해 있던 진보 정당을 떠나 민주당에 입당하였고 2017년에는 정의당 심상정 후보가 대선 토론에서 홍준표와 함께 참여정부를 비판하면서 참여계[96] 일부가 민주당에 입당하기도 했다.

그래도 어찌되었든 그나마 더불어민주당의 우군이 되는 정당인 것은 사실이다. 정당들과는 달리 참여계와 같이 노무현 정신을 잇는 친노라는 다리가 아직까지 양당간에 놓여있기도 하고[97] 끊임없이 합당 내지는 연립정부 설립 논의[98]가 나올정도로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준여당의 행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다른 야당들이 문재인 정부에 대해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측면까지도 소통이나 구체성이 부족하다며 폄하하는 논평을 하는 반면, 정의당은 호의적인 논평을 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실제로 항상 총선, 지선 정국에 들어갈 때마다 더불어민주당이 항상 우선적으로 단일화 협상을 하는 대상이 정의당이다. 그런 상황을 언론과 다른 정당의 정치인들도 인식해서인지 항상 여야간 대립구도를 그릴 때 더불어민주당-정의당 vs 자유한국당-국민의당-바른정당으로 묶는 구도가 많다. 이는 나무위키에서 총선 정당득표율이나 대선 득표율에서 정의당과 민주당이 득표한 비율을 합쳐놓은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9. 민주연구원[편집]

민주연구원은 더불어민주당 산하의 싱크 탱크이다.[99] 2008년 8월 27일 민주당 산하의 정책 연구소로 설립되어, 합당 등의 과정을 거쳐 현재 더불어민주당 산하에 있게되었다. 당헌에 따라 이사장직은 당대표가 맡는다. 산하에 국방안보센터, 청년정책연구소 등이 있다. 그리고 2016년 11월 4일 명칭이 '민주정책연구원'에서 '민주연구원'으로 바뀌었다.#

2016년 당대표로 선출된 추미애가 제11대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원장은 김용익 전 의원이 5대 연구원장으로 임명되었다 19대 대선에서 승리한 뒤 2017년 5월 17일 김민석 특보단장을 민주연구원의 6대 수장으로 임명했다. 상근부원장에 빅데이터 전문가인 고한석 빅토리랩 대표가 들어왔다. 비상근부원장에는 김성주 전 의원, 오기형 변호사, 조일출 수석연구위원이 임명되었다.#

10. 당 지도부[편집]

10.1. 1기 지도부[편집]

2015년 2월 8일 ~ 2016년 1월 27일

10.2. 비상대책위원회[편집]

2016년 1월 27일 ~ 2016년 8월 27일

10.3. 2기 지도부[편집]

(2016년 8월 27일 ~)
과거 김상곤 혁신위원회가 만든 대표위원제에 따라 지도부의 최고위원들이 각 시도당에서 선출된 권역별 대표위원들과 전당대회에서 선출된 직능 부문 대표위원들로 바뀌었다. 단, 명칭만 기존의 최고위원으로 변경하였고 직능 부분중 노동과 민생은 선거인단수 부족으로 추후 선출될 예정이다.

11. 원내 지도부[편집]

11.1. 19대 국회[편집]

  • 원내대표 : 이종걸[108] (2015년 5월 7일 ~ 2016년 5월 4일)

  • 정책위원회 의장 : 이목희 (2015년 12월 18일 ~ 2016년 5월 11일)

  • 원내수석부대표 : 이춘석 (2015년 5월 8일 ~ 2016년 5월 6일)

11.2. 20대 국회[편집]


12. 역대 주요 선거 결과[편집]

12.1. 대통령 선거[편집]

연도

선거명

대통령 후보

득표수 (득표율)

결과

2017

제19대 대통령 선거

문재인

13,423,800 (41.1%)

당선

12.2. 국회의원 선거[편집]

연도

선거명

지역구 (비율)

비례대표 (비율)

총 의석 (비율)

결과

2016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110 / 253 (43.5%)

13 / 47 (27.7%)

123 / 300 (41.0%)

1위

8,881,369 (37.0%)

6,069,744 (25.5%)

12.3. 재보궐 선거[편집]

연도

선거명

국회의원

기초자치단체장

광역자치단체의원

기초자치단체의원

결과

2017

4월 재보궐선거

0 / 1

1 / 3

1 / 7

5 / 19

2위

5월 재보궐선거

-

-

1 / 1

2 / 4

1위

2018

재보궐선거

? / 1

-

-

-

미실시

13.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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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존 표기는 'The Minjoo Party of Korea'. 2016년 10월 원외 민주당과 합당하면서 영어 공식 표기가 바뀌었다.[2] 선관위에 병기 등록했다. 2016년 10월 원외 민주당과 합당하면서 민주당이라는 약칭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3] 당에서는 민주당(1955년)을 뿌리로 보고 있다. 2017년 9월 18일 창당 62주년을 기념했다.#[4] 선거관리위원회에는 재창당으로 신고하였지만, 당(법인) 자체는 초기 새정치민주연합 설립부터 이어 오는 것으로 보인다. 민주통합당 시절의 고유번호(비영리단체용 납세자번호)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5] 서울 - 박원순, 대전 - 권선택, 광주 - 윤장현, 세종 - 이춘희, 강원 - 최문순, 충남 - 안희정, 충북 - 이시종, 전북 - 송하진[6] 2017년 기준[7] 2017년 9월 기준[8] 2014년 지방선거 기준. 이후 국민의당 분당 사태로 호남권을 중심으로 대거 탈당하여 상당히 줄었으나, 최신 정보가 공개되지 않아 정확한 의석 수 파악이 어렵다.[9] 다만 2017년 들어 원내교섭단체만 4개나 되는 다당 체제가 구축되면서 교섭단체가 아닌 비교섭단체 정당까지 합치면 정의당까지 포함해 원내 5당. 거대 양당이라는 말이 좀 어색해진 감은 있다. 물론 지역 기반이나 당원 수 같은 걸 보면 아직 거대 양당 체제는 유지되고 있다는 견해도 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치명적인 타격을 입은 자유한국당도 19대 대선에서 썩어도 준치라는 것을 보여주었다.[10] 첫 번째 관점은 김대중 대통령의 정강과 정책을 계승한다는 현 더불어민주당의 기조에 비추어 볼 때 그 본격적인 출발이 된다는 점, 두 번째 관점은 이후 민주당계 정당들 지향, 이념과 강령의 바탕이 된다는 점, 세 번째 관점은 당시 모든 민주 세력의 유일 야당이자 이후에 현 집권 세력까지 이어지는 '통합'의 기원으로, 세 가지 관점 모두 내용과 형식면에서 지지를 받고 있다.[11] 이와 관련하여 '호남당'이란 소리도 많았는데, 실제로 그간 호남이 민주당계 정당의 심장부인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권노갑, 이훈평, 정대철, 정균환 등 새정치국민회의의 중진 그룹을 형성했던 동교동계와 옛 민주계 대다수는 국민의당으로 넘어갔고, 새정치국민회의의 대변인을 맡았던 정동영 의원과 박지원 의원도 국민의당으로 넘어갔다. 또 김대중 대통령이 직접 영입한 천정배김한길도 국민의당으로 넘어가서, 현재 더불어민주당에는 김대중 대통령의 직계였던 사람들 중 일부만이 남아있는 상황이다. 때문에 국민의당을 부정적으로 보는 민주당 지지층 사이에선 저들이 나간 덕에 호남당 이미지를 벗어났다고 오히려 쾌재를 부르기도 한다지만 호남은 민주당이 신경써야 할 요충지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12] 전체적으로 보면 자유한국당, 국민의당, 바른정당보다는 진보적이고, 정의당보다는 약간 보수적이다.[13] 진보좌파 성향을 가진 사람들 중에서 정의당, 노동당, 녹색당메갈리아를 옹호하는 행보를 보인 것 때문에, 또는 19대 대선의 후보 토론에서 정의당 심상정 후보가 한국당 홍준표 후보와 함께 참여정부를 비방한 것에 대한 반발로 민주당에 대거 입당하였다.[14] 그와 동시에 3의 지지도는 붕괴하였고, 더불어 민주당의 지지도는 50%에 육박하게 되었다.[15] 서울여의도광장 우체국이 임대하여 사용중이다.[16] 그런데 진짜로 당대표 배경으로 '더더더더'가 도배된 배경을 사용한다 [17] 안철수 탈당 이전부터 당명 개정 논의가 있어왔지만, 안철수 의원의 심기를 거스를까 봐 바꾸지 못했다는 것이 중론이다.[18] 해태 에이스 크래커의 아류작이다.[19] 한나라당에서 새누리당으로 당명이 변경될 때도 이런 진통이 있었다. 특히 한나라당이란 이름은 약 10년 넘게 쓰였던 이름이기도 했었다.[20] 실제로 과거 대통합민주신당이 민주신당을 약칭으로 등록했지만 중도통합민주당(약칭 민주당)의 유사 당명으로 인한 사용 금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이 받아들인 전례가 있다. 그래서 대통합민주신당은 부득이 약칭 없이 풀네임만 써야 했다.[21] 민나노당(다함께당), 생활의 당과 야마모토 타로와 친구들, 일본을 건강하게 하는 모임[22] 예시: 국민과 더불어민주당, 시흥시민과 더불어민주당, 부산외대 학우와 더불어민주당 등등.[23] 기사 출처 [24] 묘하게 '□' 모양이 Microsoft Windows의 창문 로고를 연상시키는데, 노린 건 아니지만 모티브 중에 '창문'도 있기 때문이라고.[25] 출처 [26] 실제로 이런 논조의 사설이 한경오에 실린 바가 있다.[27] 민청학련 세대 및 386세대 등[28] 시민단체 활동가 등[29] 다만, 김근태 의장의 부인이자 민주화 동지인 인재근 의원이 남편의 유지를 계승하고 있고 그와 뜻을 같이하고 지지했던 정치인들 일부가 민평련이란 당내 정파로 남아 있어 완전히 흩어지지 않고 어느 정도 동질성을 가지는 느슨한 연대를 보이면서 존재감은 유지하고 있다.[30] 박원순 등으로 대표되는[31] 자유한국당 외에는 모두 빨갱이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32] 송파구에서는 일부 의석을 확보할 때가 간혹 있다. 20대 총선에서도 3개 지역구 중 2개에서 민주당이 승리했다.[33] 다만 용산구와 영등포구는 부촌만 있는 게 아니고 서민층 거주 지역도 혼재되어 있어서, 다소 밀리기는 하지만 때때로는 승리하기도 한다. 20대 총선 결과, 용산구는 옛 새누리당 소속이었던 진영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친박계의 공천 보복에 반발해 민주당으로 이적하면서 4선에 성공하였고 영등포구는 갑과 을에서 모두 민주당 후보가 당선됐다. 하지만 용산구는 전통적인 보수 강세 지역이었고, 영등포구 역시 현재는 민주당 우세라지만 그래도 전통적으로 여야가 번갈아 가며 승리했다.[34] 다만 이 지역들도 옛 새누리당계 정당이 한 때는 앞서기도 했지만, 현재는 그런 거 없고 민주당계 정당이 많이 앞선다. 2010년대 들어와서는 오히려 민주노동당, 정의당진보 계열 정당이 선전해온 지역이기도 하다.[35] 고용진 의원은 아주 신진 인사라 부르긴 힘들다. 본인 지역구에서 시의원을 7년간 지냈기 때문. 시의원에서 물러난 지 무려 14년 만에 다시 공천장과 당선증을 손에 넣은 탓에 그 시간 동안 일반 유권자들에게 많이 잊혀져 신인이라 봐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니긴 하지만.[36] 전두환이 제12대 대통령 선거의 후보로 나왔을 때 호남권 지지율이 높았다는 반론이 있을 수 있으나, 이는 당시 선거인단 대부분이 신군부 측의 인물이었던 명백한 '관제 선거'로서 호남권 지지세를 대표하는 근거가 되지는 못한다.[37] 88올림픽고속도로, 남해고속도로, 경전선이 그 예.[38] 물론 열린우리당 - 새천년민주당과 더불어민주당 - 국민의당이 완전히 같은 구도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때의 새천년민주당과는 다르게 국민의당에는 예전에 한나라당(새누리당)에서 활동했던 사람들도 여럿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때는 친노 vs 비노였으나, 지금은 친문 vs 반문이다. 왜 비문이 아닌가 하면, 실질적으로 비문 인사가 민주당에 꽤 많다. 대표적으로, 지금은 친문 좌장이라 불리는 박영선 의원이 비문이고, 이낙연 총리 또한 비문계 인사였다.[39] 본래 민주당계 정당은 호남의 지지세가 강하고 영남이 약한데 20대 총선에서는 호남에서 단 3석을 얻은데 그친 반면 영남에서는 10석이나 얻었다. 즉, 민주당계 정당이 영남에서 얻은 지역구가 호남보다 3배나 더 많은 사상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더 놀라운 사실을 언급하면 20대 국회에 민주당은 광주광역시 지역구는 0석이다! 민주당계 정당에게는 죽음의 땅이라는 대구광역시에서조차 2석을 확보했는데도 말이다![40] 그 결과 20대 국회에서 한국 7대 도시 중에 더불어민주당 소속 국회의원이 없는 도시는 광주광역시울산광역시가 유이하다.[41] 전라북도는 민주당 38% vs 국민의당 42%, 전라남도는 민주당 38% vs 국민의당 43%로, 의석에서는 국민의당이 크게 우세했으나 득표율 자체는 비슷했다. 다만 광주는 민주당 34% vs 국민의당 56%로 차이가 크게 났다.[42] 리얼미터, 한국 갤럽, 리서치뷰.[43] 리얼미터 더불어민주당 34.5% 국민의당 26.5%[44] 한국갤럽 더불어민주당 37% 국민의당 24%.[45] 리서치뷰 여론조사.[46] 애초에 국민의당에서는 당론을 정하지 않고 의원들에게 자유 투표를 권했기에 아슬아슬하게 가결될 것이란 전망이 높았으나 이 분의 입김 때문에 부결되고 말았다. 사실 이번 표결이 무기명 투표였다보니 원칙적으로 누가 찬성하고 반대했는지 알 수 없어서 안철수 본인만 입 다물고 있었다면 민주당에도 반란표가 있었을 지 모르는 일이라고 언플을 할 수 있었을 테고, 국민의당이야 의심을 받았겠지만 어디까지나 의심에서 그쳤을 텐데, 안철수 본인이 자기 블로그에 내 덕분에 부결됐다. 우리가 캐스팅보트임! ㅋㅋ라며 자랑글을 쓰며 인증하는 바람에 빼도 박도 못 하게 되어버린 것(...) 호남계가 곡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더 어이없는 건 안철수 본인이 표결 며칠 전에 호남을 순회하며 문재인 대통령이 호남을 홀대한다고 선동해놓고 정작 전북 고창 출신인 김 후보자의 헌재소장 임명을 저지했다는 점이다. 지역구 의석의 대부분이 호남 의석인 정당의 대표가 해서는 안 됐을 치명적 실수.[47] YS의 고향인 거제시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향인 김해시도 민정계의 텃밭이었다.[48] 부산은 감소세, 울산과 경남은 소폭 증가세를 보인다. 셋을 합쳐서 보면 소폭 증가세다. 경남에 위성 도시가 형성되면서 부산의 인구가 경남으로 빠져나가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경남 도시 지역에서 민주당 지지세가 늘어난 것도 그 일환일 것이다.[49] 조경태는 친문계와 잦은 충돌을 벌이기도 했었고 동료 의원을 종북주의자라며 비난한다거나 비례대표제를 완전히 폐지하자고 주장하는 등 '정신적 새누리당 당원이다'이라는 말이 당 안팎으로 나올 만큼 새누리당과 색깔이 일치한 사람이었다. 그가 '원조 친노' 중 한 사람이었다는 과거를 생각하면 아이러니한 일이다.[50] 물론 민주화 인사였던 YS의 텃밭이었기 때문에 TK(약 10% 후반 ~ 20% 초반)보다는 민주당 계열 + 진보 계열의 득표율이 높지만(평균 30% ~ 40%), 단 1% 차이로도 떨어질 수 있는 소선거구제의 특성상, 민주당계 후보가 많이 떨어졌다. 20대 총선에서도 경남 거제시에서 출마했던 더민주 변광용 후보가 730표 차로 아깝게 낙선했었다.[51] 참고로 민주당 당선자 중에서 가장 높은 득표율을 기록한 후보가 경상남도 김해을에 출마한 김경수 후보였다(62.4%). 최다 득표율 당선자가 사지나 다름없었던 부울경에서 나온 것이다.[52] 사상구가 고향인데, 20대 총선 때는 새누리당 손수조 후보와 새누리당을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한 장제원 후보가 있어서 보수 표가 갈렸다. 물론, 본인도 이전 19대는 비례로 당선되었고, 문재인 의원의 지역구를 이어 받는 것이다 보니 지역 표심을 다지기 힘들었다는 점도 감안하며, 보수 단일 후보가 나올 경우를 생각한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53] 20대 총선에서 민주당은 영남에서 총 10석(부산 : , 강서 갑, 부산진구 갑, 사하구 갑, 연제구, 남구경상남도 : 김해시 갑, 김해시 을, 양산시대구 : 수성구 갑, 북구 을)을 확보했는데 호남에서는 단 3석을(전라남도 : (함평군, 영광군, 장성군, 담양군) 전라북도 : 익산시 갑, (완주군, 장수군, 무주군, 진안군))확보하는데 그쳐 영남에서 얻은 지역구 수가 호남에서 얻은 것보다 3배나 더 많다. 하지만 이것이 전화위복이 된 것이 민주당이 호남 정당이라는 색채를 벗고 전국 정당으로 거듭나게 된 계기가 되었다.[54] 여담으로 7대 광역도시 중에서 민주당의 지역구 의석이 없는 곳은 광주울산 둘 뿐이다. 광주는 국민의당의 돌풍으로 인해 1석도 건지지 못했고 울산은 본래 낙동강 벨트와는 다르게 민주당계 정당의 지지율보다는 오히려 더 좌측인 노동당계 정당의 지지율이 더 높은 곳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대 총선에서 당선된 무소속 김종훈 의원과 윤종오 의원도 본래 노동당계 정당 출신이었다.[55] 남해군 선거에서 류경완 후보가 당선되었는데 류경완 당선자는 친 민주당 성향을 띈 인물이었다. 실제로 당선되고 난 후 조만간 민주당에 입당할 예정이다.[56] 동구와 북구에선 크게 승리하였고, 중구와 남구에서도 꽤 격차를 벌렸으며, 울주군에서는 개표 막바지까지 아슬아슬하게 지고 있었으나 마지막에 관외 사전 투표함이 열리면서 역전하였다.[57] 다른 지역은 새벽 1~2시에 특정 후보의 우세가 점쳐진 반면, 경상남도에서는 새벽 4시까지도 표차가 자꾸 줄어들며, 어느 후보라도 뚜렷한 우세를 보이지 않았다.[58] 물론 10,690표 차로 불과 0.5%다.[59] 사실 박근혜가 능력이 있어서 달성군에서 내리 4선을 한 걸로는 볼 수 없다. 박정희 향수가 많이 남은 TK 지역 + 박정희의 딸 + 보수 정당 콘크리트 지역 + 대구 출신 + 노인들이 많이 사는 군 지역이었으니 박근혜가 떨어지면 되려 이상한 곳이었던 거다.[60] 그리고 합천군은 지리상으로는 부울경에 속해 있지만 생활 면에서는 TK에 속해 있다고 볼 수 있다. 비슷한 인물로는 마찬가지로 TK권에 속하는 경남 창녕군 출신인 홍준표.[61] 당시 45%의 지지율로 전국 1위를 기록했다. 조봉암의 전국 지지율은 30%.[62] 이 권오을 후보도 지금은 바른정당 소속이다.[63] 포항, 구미 등의 공단, 신시가지 지역.[64] 구룡포, 해평면 같은 농촌.[65] 사드가 들어온 성주 롯데 스카이힐 골프장은 행정 구역상으로는 성주군에 속하나, 실질적으로는 김천시 쪽에 더 가깝다. 따라서 사드가 성주에서 김천으로 옮겨갔다고 볼 수 있으므로 이런 결과가 나왔다고 볼 여지가 있다. 그렇다고 김천시라고 결과가 크게 다른 것도 아니었지만.[66] 포스코 직원 아파트에 사는 주민들과 포스텍의 교직원과 학생들, 즉 외지인의 영향으로 그나마 민주당 계열 표가 두 자릿 수 정도로 나오는 곳이었다.[67] 대표적으로는 권선택 대전시장, 류근찬 전 의원, 이시우 전 보령시장이 있으며, 그 전에도 이미 이상민 의원, 이용희 전 의원이 19대 총선 시즌을 이용해 자리를 옮기기도 했다.[68] 천안시, 세종특별자치시, 청주시, 대전광역시.[69]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민주당의 지지세가 높은 경부선 벨트와 주변 지역은 외지인의 유입이 많은 도시 지역으로 전형적인 '우촌좌도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도농복합시의 도시와 농촌간에도 비슷한 현상을 보인다.[70] 박근혜의 생모인 육영수의 고향이다.[71] 어느 정도였냐면, 강원도지사 후보 토론회 때 한나라당의 엄기영 후보는 MBC 뉴스데스크에서 보여줬던 것과 다르게 네거티브만 일삼고 말도 제대로 못 했다. 최문순 후보의 "사실만 말씀하시죠?"라는 질문에 "예..예? 그..그게요..그니까.."라고 답하질 않나. "사실관계만 말씀하시라구요."라고 다그치자.. 말문을 잊는 어이없는 상황을 연출하는 바람에, 엄기영은 거의 더블스코어 차이로 패배했다.[72] '친척'을 의미하는 제주도 방언. 권당(眷黨)의 발음이 변하여 궨당이 되었다고 한다.[73] 양정규 의원(6선), 현경대 의원(5선) 등.[74] 김태환 전 제주시장은 잠시 민주당 소속이었으나 이후 한나라당 등을 거쳐 도지사를 역임했고 우근민 전 제주지사는 무소속으로 도지사에 재선된 이후 새누리당으로 당적을 입당했으나 끝내 공천을 받지 못했다. 원희룡 지사는 2014년 6.4 지방선거 때 새누리당 소속으로 당선되었다.[75] 관선 2선, 민선 3선을 역임한 전직 민주당 출신 도지사 우근민이 새누리당에 입당하면서 따라서 입당한 평당원이 12,000명(!)에 달했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제주 지역 궨당 정치의 파워를 잘 알 수 있다.[76] 참고로 부울경의 유권자 비율은 전체의 15%, 호남은 10% 정도 된다.[77] 사실 대경권은 호남권과 인구가 비슷하다. 문제는 3당 합당으로 보수진영의 텃밭이 된 부울경이다.[78] 2017년 8월 말 이후로 고령화사회에서 고령사회로 진입했다.[79] 일본도 노인들의 투표율이 높고 영국도 노년층들이 브렉시트에 적극적으로 찬성표를 던지면서 방심하고 적극적으로 반대표를 던지지 않은 청년층의 미래를 박살내기도 했다.[80] 물론 청년층들도 정치인들이 청년층들 신경쓰게 만들고 노년층에게 미래가 박살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민주당 지지자들과 청년층들이 일부러 기권해서 개표 정족수 미달로 끝내고 오세훈을 사퇴시킨 2011 서울특별시 무상급식 주민투표 같은 경우를 제외하면투표율이 높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정동영의 노인비하 논란 발언도 사실 청년층들이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나온 것으로 노년층이 지지하는 자유한국당과 노인들의 아이돌인 박근혜의 폐단을 보면서 정동영의 발언이 재평가를 받고 있다.[81] 예를 들어 17대 대선에서는 이명박정동영 둘 다 싫어서 기권하거나 군소 후보로 분열한 젊은 세대와 다르게, 10년 뒤 19대 대선에서는 홍준표의 강성 우경화 발언으로 친 자유한국당 성향 중노년층의 표심을 거의 회복 했을 정도다.[82] 실제로 자유한국당은 박근혜정권의 실정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공범이라는 오명이 있음에도 여론조사상 평균 15프로, 무응답층 중 샤이 자유한국당 지지자를 감안하면 평균 20프로의 지지도를 유지하고 있는데 이는 노년층의 콘크리트 지지의 덕이 크다.[83] 이 때문에 19대 대선 후보 민주당 경선 과정에서 공격받기도 했지만 이 당시의 전두환은 쿠데타를 일으키기 전이라 오히려 이를 두고 공격했던 사람들이 역풍을 맞았다. '우리 같은 일반 병사들은 군 생활하면서 별들 얼굴을 한 번 볼까 말까한데, 이들이 훗날 반란을 일으킬 지도 모른다는 것까지 예상하고 군 생활을 하라는 말이냐?'는 비판이었다.[84] 현재 재보궐이 유력한 선거구가 천안 갑, 송파 을, 영암신안무안, 광주 서구 갑, 해운대 을, 노원 병, 울산 북구이다. 이 중 민주당에게 유리한 선거구가 현재 천안 갑, 영암신안무안, 광주 서구 갑, 노원 병 정도이다. 나머지 지역의 경우, 송파 을은 할만하지만 아직까지 민주당이 완전히 유리하다고 할 정도는 아니며, 울산 북구는 정의당과 단일화를 해야 승산이 있다. 해운대 을은 갑 선거구와 다르게 구시가지 위주로 구성되어 있어 민주당이 유리하다고 볼 수 없는 선거구이다. 결국 민주당이 재보궐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의석은 최대 4석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85] 민주당 지지층은 예전에 한국당의 전신이었던 한나라당의 의원들이 모두 '친일파 재산 환수법'에 반대표를 던졌던 전적을 들어 한국당이 친일파를 대변한다고 까는 경우가 많다. 다만 친일몰이의 경우 종북몰이랑 뭐가 다르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다. 군국주의 추종자라면 문제도 있고(실제 박정희의 경우 군국주의자가 망친 일본을 자유주의자가 일으켜 세웠단 말에 반감을 보이며, 일본 군인들이 천황절대주의인게 뭐가 나쁘냐고 반문한 적도 있다고 전해진다), 재벌의 뿌리 문제나, 뉴라이트 문제 정도가 있지만, 그와 무관한 것까지 마구잡이식 친일 낙인으로 매도될 수 있다는 지적.[86] 다만 노무현 대통령은 이때 3당 합당에 반발해 YS를 떠났고 이후 여차저차해서 DJ의 밑으로 들어갔다.[87] 대표적인 케이스로 김무성을 들 수 있다. 광주의 5.18 묘역에는 일부러 밟고 가라고 땅 속에 박아놓은 전두환의 비석이 있다. 5.18 묘역을 참배하러 온 사람들은 대개 망설임 없이 밟고 지나가지만, 김무성은 머뭇거리다 끝내 비석을 비켜갔다. 반면, 그를 정계로 데려온 김영삼은 정권을 잡은 뒤 전두환을 (노태우와 더불어) 법정에 세우고 사형장으로까지 보낼 뻔했다.[88] 물론 표면적으로 안철수는 2015년 4.29 재보궐 선거에서 패배하고도 책임지지 않는 문재인 당시 대표, 불법 정치 자금 수수에 대해 유죄를 인정한 대법원 판결이 났음에도 이를 정치 탄압으로 규정하고 한명숙 전 의원에 대한 구명운동을 주장하던 당시 당내 기류(= 패권주의)와 쇄신안 거부 등이 탈당 이유였다. 나중에 본인이 친노 진영을 비판하면서 했던 옳은 말들을 훗날 본인조차 국민의당에서 잘 안 지켜서 역공을 받았지만.[89] 19대 대선 이후 그런 견해를 철회한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점에서 결과적으로 설득력 있는 주장은 아니었다. 그냥 문재인 공격용 멘트였을 뿐.[90] 다만 호남에서 참패하면 정계 은퇴하겠다고 공언하고도 수도권에서 대승했다고 은퇴 약속을 번복한 문재인에 대한 비토는 당연히 있었다. 그러나 19대 대선에서 문재인이 호남에서 안철수를 62 : 28.2라는 압도적인 차이로 누르고 승리하면서 '호남은 안철수가 아닌 문재인을 선택했다'는 주장이 가능해졌으니 이 비난도 이제 더 이상 쓸모 없게 되어버렸다.[91] 이 세 개의 세력이 기껏 합당을 했다가 얼마 안 가 갈라선 이유는 여기에 보다 더 자세히 서술돼 있다. 항목 참조[92] 겉으로는 좋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해(害)가 될 수 있는 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93] 이 문제는 당세와 관련되어 있다. 당장 을지로 위원회에 소속되어있는 의원 수만 하더라도 정의당 전체 의원수보다 약 6배나 많은 수준이기 때문이다. 즉 정의당 혼자 할 수 없는 단독 입법이 가능하다. 이런 현실적인 부분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정의당으로 갔어도 잘 맞았을 진보 성향 인사들이 정의당으로 안 가고 민주당으로 가서 민주당 내부에 진보 진영을 구성하는 길을 선택하기도 한다. 을지로위원회도 그렇게 탄생했다고 한다. 단, 을지로위원회의 한계는 민주당 내의 조직이기 때문에 중앙당을 거스를 수 없다는 점에 있다. 하지만 2017년 5월 현재 을지로위원회 소속인 우원식 의원이 원내대표로 선출돼 기대가 커지고 있다. 이런 관계로 향후 더 진보적으로 민주당이 움직인다면 정의당은 말 그대로 2중대 신세를 면하기 힘들어질 것이다.[94] 필리버스터 등으로 인터넷 상에서 인지도를 크게 높였던 정의당 박원석 의원도 고작 7.5%의 득표율 밖에 얻지 못했다. 그리고 안양시 동안구 을에서는 민주당 이정국 후보와 정의당 정진후 후보가 같이 출마했는데 이정국 후보는 39.5%의 득표율을 얻어, 41.5%의 득표율로 당선된 새누리 심재철 의원과 겨우 득표율 2% 차이로 떨어졌고, 정진후 후보는 19.0% 밖에 득표하지 못했다. 이에 관해선 정진후 후보의 득표율에 문제가 있다는 의견이 나왔는데 정진후 후보는 다른 지역과는 달리 상황이 조금 복잡하게 꼬여 있어 뭐라 단정짓기 힘들다. 자세한 사항은 정진후 항목 참고.[95] 더 찾아볼 것도 없이 정청래가 컷오프 되었을 때와 김종인이 정의당을 아오안으로 대하는 전략을 피면서 많은 이들이 정의당으로 들어간 것을 생각하면 된다. 그게 정의당의 20대 총선 성적에는 별 플러스 효과를 가져오진 못했지만 말이다. 되려 이후에 정의당에 혼란만 가져다 주었다.[96] 정의당에 몸담고 있어서 국민참여당이나 열린우리당 시절보다 진보 성향이 강해짐.[97] 과거 열린우리당•참여정부와 민주노동당간의 관계를 생각해보면 현재 더불어민주당•문재인 정부와 정의당과의 관계는 위성정당 소리를 들을 정도로 가까운 편이다. 구 민노당과 열린우리당 사이에 대양이 놓여있었다면 현재는 강줄기가 놓여있는 정도의 수준으로 그 간극이 좁혀졌다, 어찌보면 정의당이 더불어민주당의 왼쪽 방파제 역할을 해주는 것일 수도 있다, 비협조적인 골수좌파정당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면 민주당은 홀로 고립되었을 것이다. [98] 유시민 국무총리설이나 노회찬•심상정 노동부장관설, 노회찬 법무부장관설등이 문재인 정부 1기 내각이 구성되는 동안 끊임없이 호사가들과 언론 사이에서 떠돌았다.[99] 정당법에 따라 보조금 배분 대상에 속하는 정당은 의무적으로 정책연구소를 설립해야한다.[100] 엄기영 사장의 후임으로 뉴스데스크를 진행한 앵커이다. 공교롭게도 후임자인 신경민 기자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되었다.[101] 전국대학생위원장을 겸직할 수도 있다.[102] 전국노동위원장 겸직[103] 전국농어민위원회,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 사회적경제위원회, 전국직능대표자회의, 전국장애인위원회, 다문회위원회 중 하나의 위원장을 겸직[104] 김영주는 서울시당, 김우남은 제주도당 위원장이다. 김우남 위원장은 김영주 위원장에게 부득이한 사정이 생겨 사퇴하였을 경우에만 최고위원직을 맡겠다고 밝혀서, 추미애 대표 체제가 유지되는 동안에는 김영주 위원장이 계속 최고위원을 맡을 것으로 보였는데 2017년 7월 1일 당초 임기대로 역할 맞교대가 이루어졌다. 아무래도 김영주 의원이 문재인 정부의 첫 노동부 장관으로 들어가게 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105] 추미애 지도부가 출범했을 때 충청권 위원장인 박범계(대전·법사위), 도종환(충북·교문위), 박완주(충남·운영위) 모두 국회 간사직을 맡고 있어 최고위원까지 겸직할 수 없는 상태라서 충청권 대표들이 강원도당 위원장인 심기준 위원장에게 양보를 해주었다고 전해진다.[106] 김춘진 전북도당위원장이 6개월 → 이형석 광주시당위원장이 8개월 → 이개호 전남도당위원장 10개월을 나눠 맡는다.[107] 최인호 부산시당위원장 → 임대윤 대구시당위원장 → 정영훈 경남도당위원장 → 임동호 울산시당위원장이 각각 6개월 씩 나눠 맡는다. 오중기 경북도당위원장은 시도당위원장 선거 과정에서 오중기 위원장에게 50만 원이 든 돈봉투를 받았던 한 당원이 선관위에 고발을 하는 바람에 당선 인준이 보류된 상태다.[108] 2015년 12월 당무를 거부 중이었으나 다음해 1월 부로 복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