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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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원내정당
(괄호 안은 대한민국 국회의 의석 수)

여당

파일:minjoo.png
(120석)

야당

파일:libkorparty.jpg
(107석)

파일:people21.png
(40석)

파일:bareunparty.png
(20석)

파일:justice21.png
(6석)

파일:새민중.jpg
(2석)*

파일:돼한애국당.jpg
(1석)*

*: 창당준비위원회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280px-Logo_of_the_Minjoo_Party_of_Korea.svg.png

더불어민주당

영문명

Democratic Party[1]

약칭

민주당, 더민주[2]

창당일[3]

2015년 12월 28일

통합한 정당

민주당 (2016년 10월 31일 합당)

주소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국회대로68길 7
(여의도동, 민주당사)

대통령

문재인

대표

추미애 / 5선 (15·16·18·19·20대)

원내대표

우원식 / 3선 (17·19·20대)

사무총장

이춘석 / 3선 (18·19·20대)

정책위의장

김태년 / 3선 (17·19·20대)

국회의원

120석 / 299석

광역자치단체장

8석 / 17석[4]

기초자치단체장

80석 / 226석[5]

광역자치의원

290석 / 789석[6]

기초자치의원

1,164석 / 2,898석[7]

당 색

파랑 (#1870B9, Denim Blue)

이념

사회자유주의

정책 연구소

민주연구원 (2008년 8월 27일)

재외국민 조직

세계한인민주회의

당원 수

267만여 명 (2015년)

권리당원 수

25만여 명 (전체 9.6%, 2015년)

국고보조금

30억 8751만 6010원 (2017년 2분기)

공식 팟캐스트

진짜가 나타났다

공식 사이트

www.theminjoo.kr

SNS

파일:유튜브 아이콘.png 파일:페이스북_로고.png 파일:네이버블로그.png 파일:트위터 로고.png

1. 개요2. 당사3. 당명과 로고4. 역사
4.1. 2015년 12월4.2. 2016년4.3. 2017년
5. 정책6. 당내 구성7. 지지 기반
7.1. 지역별7.2. 세대, 소득별7.3. 선거에서의 이점7.4. 선거에서의 불리점
8. 타 정당과의 관계9. 민주연구원10. 당 지도부
10.1. 1기 지도부10.2. 비상대책위원회10.3. 2기 지도부10.4. 원내 지도부
10.4.1. 19대 국회10.4.2. 20대 국회
11. 역대 주요 선거 결과
11.1. 대통령 선거11.2. 국회의원 선거11.3. 재보궐 선거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집권 여당이자, 원내 제1당.

대한민국민주당계 정당으로, 자유한국당과 함께 거대 양당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8]

1955년 창당된 민주당을 뿌리라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민주당계 정당 문서에도 나오듯 이건 역사성을 강조하기 위한 부분이 크고, 실질적인 기원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95년 창당한 새정치국민회의나 또는 노무현 전 대통령으로 대표되는 부울경 출신 민주 인사들이 유입된 1991년 민주당에서 찾는 경우가 많다.[9][10] 이후 김한길 대표 체제의 민주당안철수 의원의 첫 번째 신당인 새정치연합이 합당해 2014년 새정치민주연합이 만들어졌고, 2015년 12월 13일 안철수 의원이 탈당하면서 손혜원 홍보위원장의 주도 아래 2015년 12월 28일에 당명을 새정치민주연합에서 더불어민주당으로 바꾸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념적으로 사회자유주의를 중심으로 하는 개혁-민주-진보 세력의 지지를 받는 정당이지만, 당내 구성원의 스펙트럼은 에서 , 진보에서 보수까지 넓은편이다.[11] 한편 온라인 당원 가입이 활성화된 이후에 민주사회주의, 사회민주주의, 생태주의 등과 같은 좌파 성향의 당원들도 꽤 많이 늘었다.[12] 또한 일부 좌파적인 사람들 가운데서 민주노동당 이래 15년간 추진해온 단독 집권론이 긴 시간을 거치면서 현실적으로 불가능인걸 인정하고, 차라리 민주당을 진보좌파적인 정당으로 바꾸기 위해서 대거 입당하기도 했다.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패배한 이후 쇠락일로를 걷다가 문재인 대표 체제가 출범한 뒤 험난한 당내 혁신과 내부 분열 과정을 거쳐 2016년 20대 총선에서 국회 전체 의석 300석 중 123석을 얻어 당시 압도적 다수파가 될 것으로 예상되던 새누리당을 제치고 12년 만에 원내 제1당으로 올라섰다. 그러나 새누리당이 총선 때 탈당하여 무소속으로 당선된 의원들을 복당시키면서 의석이 129석으로 늘어나 다시 원내 제2당으로 내려앉았다. 그러나 같은 해 10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새누리당이 자유한국당바른정당으로 분열된 덕분에 원내 제1당의 자리를 되찾았다. 박근혜의 탄핵 이후 2017년 19대 대선에서도 승리해 9년 만에 재집권에 성공하여 우리나라의 집권 여당이 됐고 국민의 정부참여정부 이후 다시 찾아온 재도약기를 누리고 있다.

원칙적으로 더불어민주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은 동일 정당으로서 같은 문서에 포함시켜야 하나 새정치민주연합이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으로 갈라지는 과정 자체가 복잡하여 리다이렉트 대신 정당명을 따라 문서가 분리되어 있다.[13] 따라서 이 문서는 2015년 12월 28일 당명 변경 이후의 일만을 기술한다.[14]

2. 당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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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당사

국회 본청의 당대표 회의실

현재 중앙당사는 국회 인근에 위치한 더불어민주당 중앙당 소유 건물로 2017년 2월 13일 입주하였다. 이전에는 '장덕빌딩'이라는 이름의 오피스 건물이었으며, 민주당이 매입하기 직전에는 여의도순복음교회 소유로 순복음영산신학원이 이용하고 있었다. 지상 10층 지하 4층 규모로 1층 일부를 제외한[15] 빌딩 전체를 사용 중이다. 지하에는 팟캐스트 촬영을 위한 스튜디오로, 2층은 공보국 프레스룸, 3층은 대변인실, 4층엔 당대표실과 회의실을 두었다. 5층에는 비서실장실과 총무조정국, 6층은 최고위원실과 사무총장실, 7층은 여성국과 청년국, 8층은 직능국과 전략기획국 그리고 홍보국이, 9층에는 민생지원국과 을지로위원회가 있으며 10층은 카페 등 다목적 공간으로 조성했다.

건물 가격은 원래 230억원이 넘는다고 알려졌으나 협상을 통해 200억원 이하로 낮춰 매입했다고 한다. 매입 비용의 80%는 10년 분할상환을 조건으로 은행에서 빌린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의 중앙당사의 위치나 임대조건이 좋지 않아서 2016년 9월, 민주연구원 등 당 조직을 한 데 모으고, 사무처 안정화 및 정당 운영 비용 절약을 위해 당사 매입을 결정한 것. 민주당계 정당이 중앙당 소유의 당사를 갖게 된 것은 1992년 이후 24년 만이다.

3. 당명과 로고[편집]

국민 당명 공모를 주관한 손혜원 홍보위원장은 후보들 중 희망민주당, 더불어민주당, 민주소나무당, 새정치민주당, 함께민주당의 다섯 개를 후보로 추렸는데, 대부분은 민주소나무당과 희망민주당이 유력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결국 당명은 당무위원회의 결정을 거쳐 '더불어민주당'으로 확정되었다. 손 위원장과 도종환 의원은 '민주소나무당'에 호의적이었으나 당이 조금만 어려워져도 "식물 정당"으로 불릴 것을 염려하는 의견도 있고, 대부분의 당직자들도 '더불어민주당'을 선호했다고 전해진다. 손혜원 의원에 따르면 당시 원외 민주당의 분쟁 등과 관련해, 세 글자인 민주당과 무게 중심을 맞춰 '더불어'를 선택했다고 한다. 더불어민주당이란 이름을 공모한 제안자는 이 명칭을 신영복의 글 중 '더불어숲'이라는 표현에 착안했다고 한다.

초기에 당명 개정 직후 개정된 당명에 대해 혹평을 받기도 하였다. 새누리당 김용남 원내 대변인과 조원진 원내수석부대표 등은 '더불어'가 음주운전 단속 때 나오는 말인 '더 불어'를 뜻한다고 하거나[16], '더 불어터진 떡국', '더 불어터진 당' 같은 단어로 원색적으로 조롱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창업 주역이었던 안철수 의원 역시 "포장지가 바뀌었다고 해서 내용물도 바뀌었다고 믿겠느냐"고 견제했다.[17] 추후 분당 사태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새정치민주연합 - 더불어민주당의 탈당 사태 때문에 '떠민당'이라고 비꼬는 사람들도 있다. 한편, 일부 네티즌들은 '더불어(佛語)민주당'과 같은 장난 섞인 의견을 내기도 했다 '더불어'라는 이름이 예전 동양제과(오리온)에서 출시한 크래커 '더브러'[18]와 발음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더브러 민주당'으로 비틀고 더브러의 구조가 직사각형 중앙에 점선 무늬가 있어서 그 점선을 따라 반으로 쪼개먹는 구조라 '분당을 예고하는 복선'이라는 암시를 내놓기도 했다. 일부 집단에서는 이름에서 더블오 민주당(…)을 연상시키기도 했다. 일단 이렇게라도 여러 패러디가 만들어지고 대중에 회자되면서 새누리당[19]처럼 당명을 널리 알리는 데는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약칭은 'The 민주당'이 될 수도 있고 '더'가 'more'의 의미가 될 수도 있게 '더민주당'으로 결정했으나, 더불어민주당과 이름이 비슷한 원외 민주당약칭 '더민주당'이 유사 당명 금지에 위배된다며 법적 조치에 들어가겠다고 밝혔고[20], 이후 당은 '더민주당'을 포함해 다양한 약칭을 검토한 후, 문재인 대표가 제안한 것으로 알려진 더민주를 약칭으로 확정했다. 이후 2016년 1월 11일, 선관위는 더불어민주당이 '더민주'라는 약칭을 사용해도 무방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에 따라 선관위에 정식으로 '더민주'를 더불어민주당의 약칭으로 등록하여 13일자 선관위 홈페이지에서 공지한 정당 등록 현황에 반영되었다. 그러나 2016년 10월 더불어민주당과 원외 민주당이 합당하면서 두 당의 이름 싸움은 마침표를 찍게 되었다. 당명은 계속 더불어민주당으로 가되, 약칭은 '더민주'와 '민주당' 두 가지를 혼용하고 언론에는 '민주당'이라는 약칭을 사용해달라고 요청하였다.#

새 당명을 두고 외신 기자들은 '더불어'를 어떻게 번역해야 하는지 혼란스러워 했다고 전해졌다. 물론 이런 독특한 정당명이 흔한[21] 일본의 언론은 당명 개정하고 얼마되지 않아 곧바로 '함께'라는 뜻의 '토모(共)'를 붙여 '共に民主党'(토모니 민슈토)라 표기하기 시작했다. 중국어권에서는 共同民主黨(共同民主党, 공동민주당)이라고 적기 시작했다. 영문명으로는 'Democracy for All', 'Harmonious Democratic Party', 'Inclusive Democratic Party', 'The Democratic United', 등이 검토되다가, 한글 약칭이 '더민주'로 결정됨과 동시에 'The Minjoo Party of Korea'가 되었다. 민주당도 정식약칭이 된 현재는 'Democratic Party of Korea'로 불린다.

처음엔 호불호가 매우 뚜렷한 이름이었지만, 더불어민주당이 한일 위안부 협상을 졸속 협상이라 비판하면서 내건 현수막에서 보듯 정책 구호와 당명을 연계하기 쉽다는 장점 또한 있다. 향후 선거 캐치프레이즈에서도 같은 양식이 자주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22] 이런 우수한 범용성 덕분에 더불어민주당이란 이름을 거북해 했던 지지층도 이젠 후한 점수를 주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로고

파일:더불어민주당_임시로고.jpg

2016년 1월 7일 정식 로고 공개 전까지 사용되었던 임시 로고 중 하나. 정식 로고 공개 전까지 언론 등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었다.

파일:더불어민주당 임시로고.png

2016년 1월 7일 정식 로고 공개 전까지 사용되었던 또 다른 임시 로고. 다만 첫 번재 임시 로고에 비해 사용 빈도는 현저히 적었다.

파일:더불어민주당 공식 로고.jpg

2016년 1월 7일 정식 공개된 공식 로고. 폰트는 격동고딕을 바탕으로 자체 제작했다. 로고 글씨의 초록에서 파란색으로 점차적으로 변하는 그라데이션은 첫 번째 임시로고에서 크게 변경되지 않았지만 전체적으로 채도가 낮아져 이전 것보다는 세련되어 보인다. 로고 우측 상단에 깃발 모양 '□'자에 대해 손혜원 더민주 홍보위원장은 "자유와 평화, 그리고 진리와 정의가 만들어 내는 '민주'의 'ㅁ', 민주주의 깃발" 을 상징한다고 밝혔다.[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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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월 12일 정식 로고 공개 이후 더민주 홈페이지에 자료실에 올라온 응용 버전.[25]

4. 역사[편집]

4.1. 2015년 12월[편집]

  • 문재인 대표는 12월 30일 더민주의 최고위원회의에서 외교통상부위안부 협상 합의는 대한민국 국회의 비준을 받아야 하는 조약이나 협정에 해당하며, 해당 합의는 국회의 동의를 얻지 않았으므로 원천 무효라고 주장했다. 또한 일본이 위안부 재단 기금으로 내놓을 10억 엔을 배상금으로 받아들이지 말자는 취지로 국민 모금 운동을 제안하며 당이 먼저 나서겠다는 뜻을 밝혔다.

  • 2015년 12월 30일, 문재인 대표의 부산 지역구 사무실에서 흉기를 든 괴한에 의해 인질극이 벌어졌다. 인질극을 벌인 정 모 씨는 "참여정부가 부산 문현동 일제강점기 당시 어뢰공장에 남겨져 있던 금괴를 숨겼다"고 주장하며 그 이유로 사무실을 습격했다고 알려져있다. 사건 당시 문재인 대표는 다행히도 김근태열린우리당 의장의 타계 4주기 추모행사에 참여 중이어서 지역구 사무실에 없었고, 이에 정씨는 문 대표의 특보 최모씨를 인질로 잡았던 것이다. 인질극은 1시간여 동안 지속되었고, 정 모 씨가 스스로 인질을 풀어주면서 막을 내렸다. 이와 관련해서 종편들은 피해자인 문재인 대표 측을 향해서 '부산 민심이 흉흉하다'며 '문재인에게 문제가 있어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 아니냐'며 답정너 식으로 성토했다. 피해자에게 잘못을 묻는 이상한 심리

  • 위 사건과 관련해 MBN은 더불어민주당에서 영입한 표창원 표창원범죄과학연구소 소장을 한 시사 프로에 섭외했는데, 김형오 앵커가 표 소장에게 문재인 대표한테도 이 사건에 대한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냐고 물었다. 그러자 표창원 소장이 "2006년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가 칼로 피습을 당한 건 (그 범인이 정신 질환자였기 때문이지) 박근혜 대표가 잘못해서 일어난 일이냐"고 반박했고, "나서서 피해자를 같이 위로해 줘야지 않겠나. IS미국이나 프랑스를 테러하면 피해자들을 도와줘야지 '미국이나 프랑스도 잘못한 게 있으니 IS가 테러한 것이다'라고 말할 것이냐"[26], "이 정부는 주 적성 국가고위급 비서가 교통사고로 죽은 것은 위로해 주면서, 상대 야당 후보가 피습을 당한 것에 대해서는 일체의 위로도 없었다"고 덧붙였다. 역관광당한 김형오 앵커는 음오아예만 불렀다. 이 영상은 인터넷에 퍼져 진보 지지층에게 많은 호응을 얻었다.해당 영상

4.2. 2016년[편집]

해당 문서 참조.

4.3. 2017년[편집]

해당 문서 참조.

5. 정책[편집]

다음의 내용은 더불어민주당 강령/정강 정책에서 옮긴 것이다. 13가지 분야에 걸쳐 기술된 정책의 자세한 내용은 더불어민주당 홈페이지를 참고할 것.

  • 정치
    삼권분립과 권력의 분산, 상호 견제, 국가권력기구의 정치적 독립을 보장한다. 절차적 민주주의의 성과를 바탕으로 소통과 협치의 새로운 정치를 구현하고, 다양한 세력의 참여가 보장되는 정치, 국민과 소통하고 공감하는 정치를 지향한다.

  • 경제
    공정한 시장경제질서를 추구한다. 저출산·고령화 및 경제의 세계화에 적극 대응하고 저성장과 양극화를 해소하는 혁신적 경제 운용 패러다임을 구축한다. 정부의 과도한 개입을 방지하며, 양극화와 불평등을 해소하여 국민 모두에게 혜택이 골고루 돌아가는 경제민주화를 실현한다. ‘정의롭고 더불어 잘 사는 경제, 사람이 중심인 경제’를 만든다.

  • 복지
    기회의 균등과 국민의 존엄한 삶을 보장하는 복지정책으로 사회정의를 실현하고 실족 질적 국민 통합을 추구하며 안전과 건강이 강조되는 차세대 복지를 실현함으로써 복지 선진국의 목표를 점차적으로 달성한다.

  • 일자리·노동
    일하는 사람들이 차별받지 않고 자신의 권익을 보장받으면서 노동의 가치가 존중받는 사회를 추구한다. 헌법과 국제 기준에 부합하도록 노동기본권을 신장하고, 일하는 사람이 경제와 사회의 한 주체로 참여할 수 있는 공정하고 자율적인 노사관계를 촉진시킨다.

  • 성 평등·사회 약자·소수자
    다양한 격차로 인해 차별 받는 사회적 약자 및 소수자인 여성, 아동, 청소년, 노인, 장애인, 이주민, 기타 소수자의 인권을 존중하고 이들이 차별받지 않는 사회를 만든다.

  • 외교·안보
    굳건한 한미 동맹을 기반으로 하고, 주변국과의 적극적 협력관계를 심화시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 및 동아시아 평화와 안정에 기여한다.

  • 분권과 균형발전
    지방이 건강한 나라, 골고루 잘 사는 대한민국을 지향한다. 지방화·분권화를 위해 중앙정부의 권한을 대폭 지방으로 이양하고 지방재정의 확충을 통하여 실질적인 지방자치를 구현함은 물론 분권과 균형 발전을 추구한다.

  • 교육
    교육 기회를 균등히 제공하고 교육이 불평등의 대물림 수단이 되지 않도록 교육재정 지원을 확대한다. 창의력과 인성 함양을 핵심으로 하는 창의적 인재를 육성하고, 생애 각 시기별로 다양한 학습 기회를 제공하는 평생학습사회를 실현한다.

  • 과학기술
    과학기술의 발전을 통해 한국경제의 성장 잠재력을 제고하고 21세기 미래 사회에 대비하기 위해 창의적인 과학기술인을 육성하고 과감한 연구지원체계를 구축한다.

  • 문화·예술·체육
    국민 누구나 문화·예술을 일상적으로 즐길 수 있는 문화의 나라를 지향한다. 문화 다양성을 추구함으로써 개인과 사회의 풍요를 증진하고, 현재 및 미래 세대의 문화 수요를 충족하며, 지구촌 모든 구성원이 평화롭게 교류·소통·공존할 수 있는 토양을 배양한다.

  • 언론·미디어
    언론의 정치 및 경제적 권력으로부터 독립을 지향한다. 언론의 정상적인 관계 정립을 통해 건강한 사회의 기틀을 마련하며, 의사표현의 제약이 없는 자유롭고 창의적인 공론의 장을 만든다.

  • 환경·에너지
    21세기 인류가 당면한 공동 과제인 지구 생태계 보전을 달성하기 위해 성장과 분배를 환경보전과 조화시키는 지속 가능한 발전을 지향한다. 에너지 효율을 제고하고 에너지 복지를 강화하면서 온실가스를 감축하는 효율과 형평의 저탄소 사회를 추구한다.

6. 당내 구성[편집]

핵심적인 계파로 분류하자면 과거 김대중, 노무현 시대 민주당계 정당의 3대 세력이었던

1) 동교동계로 대표되는 호남권 정치인들.
2) 민주화 투쟁에 앞장섰던 운동권[27]
3) 김대중이 적극적으로 영입했던 성공한 야권 성향 유명 인사 집단[28]이 있다.

이 중에서 1번은 대부분 국민의당으로 나갔고, 2번은 김근태열린우리당 의장이 세상을 떠난 뒤에는 각자도생의 길을 걷고 있다.[29] 3번으로 대표되는 야권 성향 명사 집단 중 가장 유명한 집단이 바로 친노무현계다. 19대 총선18대 대선에서 민주통합당이 패배한 뒤로는 쇠락의 길을 걸었지만, 문재인이 떠오른 뒤로는 친문으로 체질이 바뀌면서, 20대 총선이 지나고부터는, 당내 계파치고는 느슨한 결속력이지만 민주당에서 가장 많은 권리당원과 국회의원을 보유한 최대 계파가 됐다. 친문재인계민평련(김근태계)으로 대표되는 운동권 출신, 그리고 2번과 3번이 혼합된 시민사회 운동가 세력[30], 그 외 소수의 계파 중심으로 당권 구조가 형성되었다.

7. 지지 기반[편집]

몇몇 선거를 제외하고 2006년부터 2016년까지 또렷한 세력확대 없이 지속적으로 보수정당에 밀렸으나, 20대 총선과 박근혜 게이트 이후로 양당 체제의 한 축이었던 새누리당자유한국당바른정당으로 쪼개진데다가 무당파 중도층의 지지가 민주당으로 대거 이동하여 당 지지율이 평균 40% 이상에 달하는 유례 없는 전성기를 누렸다. 19대 대선에서 승리한 뒤로는 지지율이 50%를 상회한다. 다른 야당의 지지율은 10%안팎의 지지율을 보이는 가운데 더불어민주당만 50%대를 유지하고 있다. 전 지역, 전 연령에서도 1등은 덤이다.갤럽 여론조사.

7.1. 지역별[편집]

지역주의에서 다소 자유로운 지역인 수도권충청권, 제주특별자치도에서는 균질한 수준의 지지율을 보인다. 그런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로는 이 지역에서의 민주당 지지세가 다른 정당들에 비해 압도적인 격차를 보였다. [31]

호남 출신인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절대 영향력 하에 있었던 정당이라서 호남에서는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왔지만 2016년 4.13 총선에서는 전통적인 호남 계열 인사들이 대거 옮겨간 국민의당의 등장 때문에 호남에서도 이젠 경쟁을 했고, 19대 대선 이후 호남의 지지를 재탈환한 모양새다.

강원도는 노령 인구[32] 비율이 높아 자유한국당에게 밀리는 편이었지만 19대 대선에선 문재인 대통령이 가장 34.2%의 득표율을 기록해 30%의 득표율로 2위를 기록한 한국당 홍준표 후보를 앞질렀다.

박정희 시대와 3당 합당 이후로 우리나라 보수 진영의 아성이었던 영남에서는 기대할 게 없을 만큼 지지율이 심히 미미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분위기가 반전되기 시작했다. 한나라당 출신이었다가 민주당으로 건너온 김부겸 의원이 두 차례의 선전을 거쳐 마침내 20대 총선에서 대구광역시 입성에 성공했고, 또 경상남도에서 출생하여 부산광역시에서 적지않은 정치적 활동을 한 노무현 대통령 덕분에 낙동강 벨트로 대표되는 부산과 경남 지역에서도 지지세가 많이 커졌다.[33]

7.1.1. 수도권[편집]

수도권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인구가 밀집돼 있는 곳이기 때문에 반드시 최대한 지지를 얻어야 하는 곳이자 지켜내야할 곳이다.

호남 지역에서 올라온 이주민들과 젊은 유권자들의 영향, 그리고 지역주의 구도에서 자유롭다는 이점이 있어서 민주당은 수도권에서 서울특별시 대부분 지역과 수도권 근교 위성도시, 그리고 대부분의 신도시 지역에서 강세를 보이는 편이다. 그래도 호남보다는 약간 지지세가 옅어서 우세라고 해봤자 조금 앞서는 정도에 불과하다. 서울에서 한때 민주당 지지세가 제일 강력했던 관악구 역시 옛 새누리당계 정당 지지율이 40% 이하로는 내려간 적이 없다.

역사적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끌었던 은 수도권에서 제법 경쟁력을 보일 때가 종종 있었다. 더불어민주당 역시 그 지지세를 이어받은 것. 다만 강남 3구[34]여의도 같은 부촌(富村)에서는 보수 성향을 띄는 옛 새누리당 계열에게 많이 밀리는 편이며[35] 용산구영등포구는 부촌과 번화가, 서민층 지역, 토박이 지역과 호남 출신 지역이 혼재되어 있어 옛 새누리당계와 민주당계가 번갈아 가며 승리를 했다. 하지만 용산구는 중선거구제 이후 새누리당계가 꽤 많이 이겼고 영등포구는 여의도 몰표로 여야가 번갈아 가며 승리했다. 중산층이 많이 거주하는 경기도평촌이나 분당, 서울목동 지역 또한 지지세가 그다지 크지 않은 편이었다.

대체로 서울 마포구관악구를 비롯한 주요 대학가 지역 또한 20대 대학생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들에선 강세를 보이는 편이라고 볼 수 있다.[36] 그 외에 서울 동대문구, 종로구, 성동구, 중구, 서대문구, 성북구, 강서구, 노원구, 도봉구, 강북구, 동작구, 구로구, 광진구, 은평구 등도 민주당 지지세가 상대적으로 강하다. 다만 동대문구, 성북구, 종로구, 중구, 성동구, 서대문구, 은평구 등 서울 강북 지역의 대표적 7개 구들은 주로 옛 새누리당계 국회의원들이 상당히 꽤 당선되었고 동작구도 옛 새누리당계 국회의원들이 꽤 당선된 바 있다. 심지어 노원구, 도봉구, 강북구 등 서울 동북 3구도 역시 옛 새누리당계 국회의원들이 꽤 당선되었던 지역이다. 구로구도 마찬가지로 옛 새누리당계 국회의원들이 당선되었던 지역이다. 강서구도 마찬가지로 옛 새누리당계 국회의원들이 상당히 당선된 적이 있다. 심지어 젊은층이 많은 지역에서도 국회의원 선거는 옛 새누리당계 후보가 1위를 하는 경우가 많지는 않더라도 꽤 있었는데 이건 당시 새누리당 정치인들이 지역구 관리를 잘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 지역들은 민주당계가 우세하더라도, 관악구, 마포구와 달리 지지율 차가 10% 이상까지 가지는 않는다. 또한 관악구, 마포구와는 다르게 옛 새누리당 계열 정당이 꽤 당선된 적도 많았다. 하지만 2017년에 접어들고부터는 여론조사상에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보수 정당이 궤멸적인 타격을 입어 민주당이 다른 정당들에 비해 압도적인 지지를 받는 걸로 나타난다.

한편 인천 서부 지역과 경기도 외곽 지역, 그리고 휴전선이 접해있는 경기도 최전방 지역에서는 옛 새누리당 계열에게 많이 밀린다. 그러던 중 20대 총선에서 인천 서구 을에 출마한 신동근 전 인천시 정무부시장이 4전 5기 끝에 새누리당의 거물이자 친박계 중진이었던 황우여 전 교육부 장관을 꺾고 당선되는 기염을 토했다. 인천에서는 중구, 동구, 남구, 연수구에서는 보수정당에 상당히 밀린다. 북한과 인접해 있고, 노인들이 많이 사는 강화군옹진군도 보수 정당 지지세가 강한 편이다. 중구, 동구, 남구는 구도심 영향으로, 연수구는 부촌인 탓에 보수 진영이 꽤 우세했다. 인천의 남동구, 서구는 민주당과 한국당의 지지세가 엇비슷하다.[37] 그런데 민주화 이후에 보수 정당 계열 후보가 계속 당선될 만큼 옛 새누리당 강세 지역이었으나 논현 지구와 서창 지구를 비롯한 신도시 건설에 따라 젊은 유권자가 이곳으로 유입되면서 기존에 한나라당 - 새누리당 우세 지역이었던 곳이 민주당계 정당 근소 우세 지역으로 바뀌었다.

부평구계양구는 젊은층과 서울 통근자들이 많아 인천에서 민주당에게 가장 우세한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부평구는 보수 우세 지역인 남구, 서구와 밀접해 있어 보수층도 만만치 않은데, 과거에는 부평구도 보수 텃밭이었으나 2000년대 들어 서울 통근자들이 들어오며 민주당계 지지가 강해졌으나 아직까지 보수세도 심심찮게 있다. 20대 총선에서 부평 갑 선거구에 출마해 당선됐던 정유섭 의원이 그곳의 현역이었던 국민의당 문병호 전 의원을 100표차 미만으로 쓰러뜨린 것은 유명한 사례이다. 그리고 문 대통령의 지지층은 문병호가 결국 떨어지자 무척 고소해 했다는 후문이 전해진다 계양구의 경우는 민주당계 정당 강세 지역이기는 하지만, 보수층 역시 만만치는 않다. 18대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가 승리했지만, 박근혜 후보 역시 47%를 득표해 선전한 지역이기도 하며, 또 지방선거에서 4회 지방선거 때까지는 보수 정당 후보를 밀었고, 구청장도 3, 4회는 옛 한나라당 계열이 차지한 전력에, 15대 총선과 18대 재보궐에서도 한나라당 후보들이 당선된 전력이 있다.

수원시, 용인시, 성남시, 파주시, 고양시, 광주시, 김포시, 하남시, 구리시, 남양주시, 화성시 등은 농촌과 구도심, 신도시 지역이 혼재되어 있어 새누리당 계열과 민주당 계열의 지지율이 엇비슷하고, 평택시, 이천시, 안성시, 양주시, 동두천시, 여주시, 의정부시, 양평군, 가평군, 연천군은 경기 외곽 지역이라 새누리당 계열이 계속 강세를 보였던 지역이고 민주당 계열의 사지였지만 한 때는 승리를 하기도 했다.

요약하면, 그동안 20대~40대 유권자들이 많은 지역에서는 우세하고, 50대 이상 유권자들이 많은 지역에서는 약세를 보였다. 즉 수도권에서는 세대주의적 지지 양상을 보인다. 또한 세 곳의 광역지자체들만 비교해보면 지지세는 서울 >> 경기 > 인천 순서라고 볼 수 있겠다.

그런데 2016년 20대 총선에선 민주당이 수도권 전체 의석 122석 중 무려 82석을 석권하며 가장 큰 승리를 거머쥐었다. 이게 얼마나 대단한 일이냐면 2008년 18대 총선에서 통합민주당이 얻었던 의석이 지역구와 비례대표를 모두 합쳐 81석이었다. 18대 총선에서 민주당이 얻었던 전체 의석보다 더 많은 의석을 수도권에서 가져온 것이다. 특히 국민의당, 정의당 등 당시의 야당들이 난립해 표 분산으로 인하여 옛 새누리당이 수도권에서 어부지리로 압승할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었는데 이 다야(多野) 구도를 이겨내고, 부울경과 마찬가지로 역사상 최다 의석을 얻어낸 것이기도 하다. 이건 옛 새누리당을 지지하지 않는 유권자들이 지역구 표는 가장 경쟁력이 강력한 민주당 후보들에게 주고 정당 투표는 각각 다른 당들을 주는 방식의 전략적 투표에 힘입은 바가 큰 것으로 보인다.

또한 전통적인 부촌(富村)으로 옛 새누리당의 텃밭이었던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갑에서 게임 제작사 웹젠의 창업주였던 김병관 후보가, 분당구 을에서는 김병욱 후보가 당선되면서 분당구에 걸린 2석을 모두 민주당이 가져갔고, 마찬가지로 서울의 대표적인 부자 동네인 송파구의 3개 지역구 중 2개를 얻는 이변을 연출했으며, 강남구에서도 을 선거구에서 전현희 후보가 새누리당 김종훈 후보를 꺾고 당선되는 등 매우 의미있는 성과를 냈다. 거기에 서울에서는 기동민, 고용진, 박주민, 강병원, 황희, 김병기, 이훈 같은 신진 인사들도 많이 당선되었고, 비록 당선되지는 못했지만 전/현역 의원들을 상대했던 정태호, 천준호, 오기형 후보의 선전은 4년 뒤를 기대하게 해줬다. 그리고 경기도에서는 단 한 번도 민주당 계열에게 자리를 준 적이 없는 수원시 팔달구, 광주시파주시 같은 지역들까지 선거구 도입 이래 최초로, 민주당계 정당 인사들이 당선되었다. 특히 수원시 석권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성과다. 전통적으로 민주진영과 진보진영의 텃밭인 안양시도 석권할 수 있을 줄 알았지만 민주당 이정국 후보와 정의당 정진후 후보가 후보 단일화를 하지 못해 그 지역에서 다선을 했던 당시 새누리당심재철 후보의 당선을 허용하고 말았다.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압승했다. 문 대통령은 포천시, 여주시, 연천군, 양평군, 가평군, 강화군, 옹진군을 제외한 수도권의 모든 지역에서 승리하였다. 특히 서울문재인 대통령이 25개 선거구에서 모두 승리했다.

7.1.2. 호남[편집]

호남군사 독재 정권의 맞수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고향으로, 박정희 시대부터 지금까지 줄곧 민주당계 정당의 본거지라고 불리는 지역이다.

1970년대에 들어서 우리나라 정계와 사회에 지역주의의 광풍이 불기 시작했는데, 호남도 그 당시 최고의 정치 스타 중 한 명이었으며, 군사 정권에게는 가장 걸리적거리는 존재였던 김대중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줬다. 그러나 이로 인하여 군사 독재 정권의 잔혹한 유혈 탄압[38]을 받기도 했고, 그들이 추진해온 경제 개발 정책에서 철저하게 외면 받고 소외당하기도 했다.[39] 때문에 박정희의 민주공화당전두환노태우민주정의당 → 노태우와 김영삼과 김종필(3당 합당)의 민주자유당김영삼신한국당이회창한나라당박근혜새누리당 등으로 이어져 온 보수세력을 배척하는 분위기가 몹시 강했다. 고로 군사 정권에 맞서 싸워 왔던 사람들에게 지지를 안 보내려야 안 보낼 수 없는 곳이었고, 그 당시에는 호남 출신 정치인들 중 김대중 만한 능력과 카리스마를 가진 정치인이 없었기 때문에 김대중과 그를 따르는 세력은 주로 호남에 뿌리를 내리고, 지역주의 정서가 지방에 비해 약한 수도권 등에 줄기를 뻗으며 활동해왔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김대중이란 거목을 중심으로 결집되어 있었던 민주당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고 참여정부가 출범한 뒤 **의 주도로 열린우리당이 창당되자 열린우리당으로 넘어간 세력과 기존의 새천년민주당 세력으로 갈라지게 된다.

그러면서 호남의 지지도 나뉘게 되는데, 2004년 17대 총선에서는 새천년민주당이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태에 찬성한 것 때문에 호남에서도 폭망하며 원내 제1~2당을 다투던 위치에서 교섭단체도 안 되는 9석으로 순식간에 쪼그라 들고 만다. 반면, 열린우리당은 탄핵풍을 타고 국회 전체 의석 299석 중 152석을 얻어 민주진보 진영 역사상 최초로 단독 과반 의석을 따내는 압승을 거머쥐게 된다. 두 정당은 참여정부 말기에 다시 대통합민주신당으로 합치긴 했지만 열린우리당 세력과 기존의 새천년민주당 세력의 갈등은 계속 이어져 왔고, 이 게 지금의 친노 VS 비노 구도로 연결돼 2015년에 다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으로 다시 나뉘게 된다.[40] 민주당과 국민의당 중에 어느 정당이 호남의 지지를 더 받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렸는데, 20대 총선에서 국민의당은 23석을 획득하며 호남 전체 의석의 80% 이상을 차지한 반면, 민주당은 단 3석에 그치며 완패했다.[41][42] 국민의당이 호남에서 얻은 표수는 122만 표, 민주당이 얻은 표는 98만 표였다.[43] 그리고 새누리당도 2014년 7.30 재보선에서 전남 순천시-곡성군에 당선된 이정현에 이어 정운천전북 전주시에서 당선돼 호남에서 2석을 차지하는 변화가 나타났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문서를 참조할 것을 권한다.

사실 김대중이 정계에서 물러난 뒤부터는 '민주당을 지지한다'라기 보다는 '한나라당 - 새누리당이 아닌 당을 지지한다'는 느낌이 더 강했다. 다시 말하면, 김대중 이후부터는 한나라당 - 새누리당이 너무 싫어서 민주당계 정당을 찍고 있는 거라고나 할까. 거기에 수십년 간 호남에서 활동한 민주당 인사들이 거의 다 국민의당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그간 다져놓은 기반들을 싹 다 가지고 간 것도 민주당의 주된 패인 중의 하나로 꼽힌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20대 총선에서 100석도 얻기 힘들 거라던 민주당이 모두의 걱정을 딛고 123석을 얻어 원내 제1당이 되자, 호남에서 민주당을 상대로 완승을 거뒀고 정당(비례) 투표에서도 근소하게 민주당을 앞지르며 '녹색 돌풍'을 일으켰던 국민의당을 지지해야 한다는 여론이 조금씩 사그라들고, 그만큼 민주당에게 힘을 실어주자는 여론이 다시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간 민주당이 새누리당과 더불어 원내 제1~2당을 다투는 큰 정당으로 클 수 있었던 건 30석에 가까운 의석을 늘 보장해줬던 호남의 지지 덕분이라 그동안은 '호남 만으로는 정권을 잡을 수 없지만 호남 없이도 정권을 잡을 수 없다'가 정설이었는데, 이번 20대 총선에서 민주당이 호남에서 국민의당에게 완패하고도 수도권 압승과 영남권 선방을 바탕으로 원내 제1당이 되는 기염을 토하면서 그 정설이 늘 맞는 얘기인 건 아니라는 걸 입증해 보였다. 호남 사람들도 한 편의 반전 영화 같았던 민주당의 20대 총선 승리를 보면서 꽤나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그리고 국민의당김수민-박선숙 리베이트 수수 의혹으로 정치 뉴스의 단골 손님이 되면서, 여론조사 중에는 민주당의 지지율이 국민의당의 지지율을 약 10%P 이상의 차이로 앞서는 결과가 나오게 되었고 # 8월에 발표된 여론조사 결과에서는[44] 호남에서의 민주당의 지지율이 국민의당을 앞서고 있는 것으로 나왔다. # [45] # [46] 2017년 19대 대선 지지도를 묻는 여론조사에서는 더욱 크게 앞서는데 민주당 52.9%, 국민의당 25.4%로 민주당이 국민의당을 무려 27.5%p나 앞서고 있는것으로 조사됐다. # [47]

2017년으로 넘어오고 나서부터는 국민의당의 지지율이 고질적인 침체기에 들어간 것과 달리 민주당의 지지율은 비범한 상승세를 탔다. 여기다 문재인 대세론까지 떠오르면서, 20대 총선 시즌에 민주당에서 국민의당으로 넘어갔던 옛 호남 당원 3만 명이 민주당에 복당했다는 기사가 떴고, 무소속으로 민주당 후보와 대결하여 당선된 박성일 완주군수와 이항로 진안군수가 민주당에 입당했다. 그리고 이 열기는 19대 대선에서도 이어져, 문재인 후보가 62%의 득표율을 기록해 28.2%의 득표율 밖에 얻지 못한 안철수 후보를 깨끗하게 물리치고 승리를 거머쥐었다. 20대 총선에서 맛본 패배를 제대로 설욕한 것이다. 문재인 후보는 호남에 있는 모든 광역단체와 기초단체에서 이겼다. 특히 이정현이 재선에 성공했던 순천시에선 기초자치단체 최다 득표율을 올렸다. 그리고 대선이 끝나고 실시한 5월 3주차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는 호남에서 민주당이 무려 71%의 지지율을 기록해 2012년 대선 이후 차갑게 식었던 호남의 민주당 지지세가 계속 달아오르고 있다는 걸 여실히 보여주었다. 국민의당의 지지율은 불과 5%에 불과했다고 한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요직과 국무총리에 호남 출신 인사들을 여럿 임명하였고,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5.18을 상징하는 노래인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도록 지시한 것, 그리고 지난 보수 정부가 9년 동안 나라에 남긴 적폐들을 털겠다는 의지를 문 대통령이 집권 초반부터 보여주는 것을 환영하는 것에서 비롯돼 보인다. 한국갤럽 5월 3주차 여론조사 결과

7.1.3. 부산·울산·경남 (PK)[48] [편집]

부울경영남권의 일원인데도 TK에 비해 민주당 지지세가 희망적인 곳이다. 이 지역에서 민주당 지지 성향이 특히 더 강한 일부 지역은 낙동강 근처에 밀집돼 있어 낙동강 벨트라고 묶어서 부른다.

3김 시대에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본거지였고, 민주자유당이 만들어진 뒤에는 TK와 더불어 오랫동안 보수 세력의 근거지로 군림해왔던 곳인데, 그러면서도 친노 진영의 주요 지역 기반이기도 한 독특한 곳이다. 사실 부울경은 본래 호남 만큼이나 군사 정권을 규탄하는 시위가 자주 일어나던 지역이었다.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된 마산 항쟁을 주도한 지역이며, 부마민주항쟁으로 박정희 정권에 적극적으로 항거하기도 하였다. 처음부터 박정희 - 전두환 - 노태우 - 박근혜로 이어지는 계보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왔던 TK와는 달리 부울경은 이전에 한 번 민주화 진영의 본진이었던 적이 있기 때문에 새누리당에 대한 지지세가 TK 만큼 철벽 같진 않다. 10.26 사건을 촉발시킨 부마항쟁의 근거지가 어디였는지 생각해보면 이해가 빠를 것 같다.

그러나 부울경에서 절대적인 지지를 받아왔던 김영삼통일민주당TK를 거점으로 삼고 있었던 전두환노태우민주정의당, 박정희 정권의 2인자였던 김종필이 지휘하는 신민주공화당당을 합쳐 버리는 바람에 호남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민주화 세력의 근거지에서 TK 못지 않은 보수 세력의 초강세 지역으로 변해버렸다.[49] 다만 부울경 중 울산광역시, 경상남도는 예전부터 자유당 - 민주공화당 - 민주정의당 당선자도 많았는데 그 이유는 전두환의 고향이 경남 합천군이고, 군사 정권 당시 개발 수혜로 경남이 큰 혜택을 받은 영향이 크다. 그리고 그 당시 정부가 벌인 관권선거의 영향도 꽤 컸다.[50] 심지어 진주시, 거제시, 김해시, 양산시 등도 오랫동안 농촌 지역이 많아 보수 텃밭이었고, 또 사천시, 통영시도 군사 정권 시절부터 주로 보수 정당의 텃밭이었다. 또 합천군, 함양군, 남해군, 거창군, 함안군 등은 농촌이라서 보수성이 상당히 강했으며 또한 옛 창원 지역과 옛 마산 지역도 군사 정권 때 은근히 친정부 성향이 있었다. 부산광역시3당 합당 이전에는 군사 정권에 반대하는 분위기가 강했지만 부산진구, 동래구, 영도구민주공화당이 좀 앞서기도 했고 때에 따라 몇몇 지역에서는 보수 정당이 약간 정도는 앞섰으며 1971년 대선까지 박정희 전 대통령이 대선에서는 부산에서도 야당 후보들을 쓰러뜨렸다.

경상남도 김해시에서 태어난 노무현 대통령이 떠오르기 이전까지, 민주당은 이 지역에서 겨우 1~2석(주로 경남 마산, 창원 지역) 밖에 의석을 얻지 못했지만, 2002년 참여정부가 출범한 뒤엔 어느 정도 지지층이 늘어나서 부산광역시나 김해시에 일부 의석(3~4석 정도)을 확보하기도 했다. 게다가 19대 총선에서, 창원시 성산구, 의창구, 양산시, 김해시, 거제시 등지에서 새누리당과 득표율 격차를 상당히 줄였기 때문에 부울경에서는 더 많은 의석을 확보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주로 노동자들이 많이 사는 창원시 같은 지역에서 민주-진보 진영을 지지하는 세가 강한 편이다.

부울경은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약 15%를 차지하는 800만 명에 달하는 인구가 살고 있다. 그렇기에 총선의 목표인 과반 의석(151석 이상)을 얻어내려면 수도권과 마찬가지로 최대한 의석을 많이 확보해야 하는 지역이다. 수도권(122석)에 이어 선거구 숫자가 두 번째로 많은 영남권(65석) 선거구의 대다수가 이 부울경 지역구이기 때문이다(40석). 게다가 현재의 통념과 다르게 매년마다 인구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고 전한다.[51] 그렇기 때문에 민주당 입장에서도 방관하거나 등한시할 곳이 못 된다. 괜히 친노 진영이 이곳에 오랫동안 관심을 가지고 민심을 돌리려 한 것이 아니다. 앞으로 민주당이 '전국적 수권 정당이 된다'는 숙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영남권에도 뿌리를 내리는 게 필수적인데, 한국당에게 '묻지마 지지'를 보내는 TK보다는 그래도 한때 민주화 세력의 근거지 중 하나였던 부울경이 뿌리를 내릴 토양이 비옥한 편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더 공을 들이고 있다. 질 때도 매번 큰 표 차이가 나는 경우가 별로 없어서 민주당 부산시당 소속 정당인들 같은 경우엔 '죽더라도 할 말은 하고 죽자'는 심정을 가진 당직자가 대부분이라 당내에서도 초강성으로 분류된다.

사실 더불어민주당은 20대 총선에서 부산에 별로 기대를 걸지 않았다. 문제는 아무래도 한국당에 대한 견고한 지지세가 가장 컸고, 3당 합당 이후 민주당 계열 후보로는 처음으로 부산에서 당선돼 내리 3선을 했던 조경태 의원이 한국당으로 이적해버렸으며[52], 문재인 대통령도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게다가 무소속으로 경남지사에 당선되었으나 대선 출마를 위해 경남지사직을 내던졌던 김두관 전 지사에 대한 반감도 걸림돌로 작용할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부울경이 텃밭 호남에서 처참하게 깨져 무너질 뻔했던 민주당의 자존심을 가까스로 살려주는 반전이 일어났다. 무려 8석(부산광역시 5석 + 경상남도 3석)을 얻었는데, '8석이 많은 건가'하고 고개를 갸우뚱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앞서 위에 쓰여진대로 부울경은 3당 합당 이후 민주당계 정당 후보에겐 사실 TK처럼 떨어질 걸 알면서도 가는 곳이었다.[53] 2012년 19대 총선에서 승리가 확실시 되었던 민주통합당낙동강 벨트에서 10석을 얻는 걸 목표로 잡고 뛰었지만 고작 3석 밖에 얻지 못했던 곳이 이곳이다. 그런데 2008년 18대 총선만큼이나 여건이 나빴던 2016년 20대 총선에서 역사상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두었으니 민주당이 환호할만 하다. [54]

부산의 경우, 20대 총선에서 당선된 후보들 중 김해영 후보를 제외하면, 대개 여러 번의 낙선 경험을 맛본 사람들이었다. 20대 총선 시즌 때 민주당의 여건이 대내외적으로 너무 나빠 기대를 걸지 않았었는데 반전이 일어난 것. 이는 대부분 오랜 기간 부산 지역을 열심히 일구며 노력해왔던 후보들에게 마침내 부산 민심이 화답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사상구에서 박빙의 승부를 보여준 배재정 후보[55]해운대구에서 거물 하태경 의원을 상대로 무려 41%를 득표하며 가능성을 보여준 유영민 후보도 후일을 기약할 희망이 생겼다. 이에 누리꾼들은 역사상 처음으로 민주당이 호남보다 영남에서 더 많은 의석을 얻은 케이스라며 놀라움을 넘어 엽기적인(…) 결과라는 반응을 보였다.총선 직후 부울경에서 민주당이 당 지지율 1위를 차지하는 이변을 일으킨 결과로 보아 앞으로 부울경 역시 수도권과 같은 여촌야도형 정치 형태가 나타날 가능성도 점쳐진다.

'TK엔 기대할 게 없지만 부울경은 다르다'는 생각 때문인지 영남이 신공항 문제로 한참 시끄러웠을 때 민주당은 부산 가덕도를 밀고 있는 모습을 보여줬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터진 이후의 여론조사에서 민주당는 부울경에서 약 40%의 정당 지지율을 꾸준히 기록하며 한국당바른정당을 합산한 지지율을 오차 범위 밖으로 밀어내며 앞서고 있었다. 부울경의 정당 지지도가 현재 수도권과 유사한 사실로 볼 때, 2017년 대선에서 민주당이 지역주의 시대가 열린 이래 처음으로 부울경에서 대박을 터뜨릴 가능성이 자주 거론되고 있었다. 그리고 이 가능성은 2017년 4월 재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이 부울경 지역 광역의원 2곳 중 2곳 모두 석권하고[56], 기초 의원 10곳 중 5곳을 얻으면서 더 높아졌다. 이 재보궐선거의 결과를 보고, 19대 대선에서도 민주당이 부울경에서 선전할 가능성이 거의 기정사실로 굳어졌다고 보는 사람이 많아졌는데, 대선에서 확실히 선전을 하긴 했다. 비록 초창기 50%~60%까지의 지지율을 얻어내겠다던 야심찬 목표에서 많이 미달하긴 했지만 말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부울경에서 도합 37.8%의 득표율을 기록해 33.5%를 기록한 홍준표 후보를 꺾고 3당 합당 이후 사상 최초로 민자당 계열 대선 후보를 부울경에서 꺾은 첫 민주당계 대선 후보가 됐다. 문재인 후보는 울산의 5개 선거구에서 모두 승리하였고[57] 동구, 북구는 홍준표 후보의 망언과 노동자 인구의 증가로 인해, 앞으로도 민주당 지지세가 더 강해질 가능성이 있다.

부산의 경우 중구, 동구, 서구처럼 젊은 인구가 상당히 부족하거나, 행정구역 통폐합이 공식적으로 논의될 정도로 인구가 적은 지역은 홍준표 후보가 이겼다. 그러나 나머지 16개 구 중 13개 구, 특히나 보수적이었던 금정구영도구, 수영구에서도 문재인 후보가 승리를 거머쥐면서 이변을 보여줬다. 부산 서부는 명지오션시티 등 신도시 개발로 젊은 인구가 많이 유입되고, 외지인도 많은데다가, 한국당 소속 서병수 시장이 소홀히 한 곳이기에 문재인 대통령이 압승했고, 이젠 사실상 민주당의 텃밭이 된 거나 마찬가지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그리고 부산은 2017년을 기준으로 서병수의 어마어마한 업적과 박삼석 부산 동구청장의 위안부 소녀상 철거 시도 등 여러 논란 등으로 인해 노인층을 제외한 50대 이하 세대들 사이에선 한국당을 위시한 보수 세력에 대한 불신과 혐오가 팽배해졌다. 이게 대선에서 보태져 한국당 소속이라고 무조건 뽑아줬던 표심이 많이 묽어진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

마지막으로 경상남도는 이곳에서 약 5년 동안 경남지사로 일했던 홍준표 후보에게서 무상급식 중단 논란과 동남권 신공항 문제로 뒤통수를 엄청 쳐맞았는데, 이것 때문에 민주당 계열이 불과 10,000여표 차이까지 추격하는 선전을 거두었다.[58] 전체적으로는 한국당이 이겼지만[59], 김해시, 양산시, 거제시, 창원시 성산구는 문재인이 압승했으며, 3당 합당 이후 민주진보 계열 정당이 한 번도 못 이긴 창원시 진해구, 의창구에서도 승리했다. 김해시는 갑 지역, 을 지역 모두 국회의원이 민주당 소속이고, 시장까지도 민주당 소속이라 민주당의 지지세가 안착했다고 보고 있고 양산시와 거제시도 김해시 수준으로 지지세가 꾸준히 커가고 있는 듯하다. 창원시 의창구, 진해구는 접전 지역이 되었고, 마산회원구와 진주시에서는 접전 열세가 되면서, 다음 대선 때는 실책을 안 저지른 이상 민주당계 정당이 이길 것이라 보는 시각이 있다. 여기 남부 경남 지역은 밥줄이자 우리나라의 국가 기간산업이기도 한 조선업 붕괴로 가장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곳으로, 대한민국의 러스트 벨트가 될 위험에 처해있었다. 그러나 보수 정부는 이 문제를 치료해주기는 커녕 대우조선해양 비리 사태로 결정타를 날려줘서(...) 조선업으로 먹고 살았던 이 지역 주민들의 반감을 샀다. 그러나 통영시와 고성군에서는 홍준표 후보가 문재인 후보를 이겼고, 문 대통령의 고향이자 조선업 위기에 가장 영향을 크게 받은 거제시에선 문재인 후보가 홍준표 후보를 이겼다.

7.1.4. 대구­­·경북 (TK)[편집]

우리나라에 지역주의 정서가 싹 튼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도 민주당계 정당에게는 '통곡의 벽'으로 여겨지는 지역으로, 쉽게 비유하자면 민주당에게 있어서 PK중간보스이고, TK는 최종보스라고 볼 수 있다.

우선 박정희 전 대통령이 경북 구미시에서 태어났고, 박근혜 전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은 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났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경남 합천군에서 태어났지만 대구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60] 특히 박근혜 전 대통령은 출신지도 대구광역시이지만, 대구 달성군의 국회의원으로 내리 4선을 했다.[61] 그런데 대구는 지금은 두말할 나위가 없는 보수 진영의 메카지만 옛날에는 '조선의 모스크바'라고 불릴 정도로 좌파 세력이 강한 곳이었다. 이승만과 맞섰던 사회민주주의 정당인 진보당의 조봉암 지지율이 전국에서 가장 높았던 지역이었다고[62]. 하지만 경북의 경우는, 대구와 달리 옛날부터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이 유리한 성향을 보여오기도 했는데, 피난민들이 밀려오면서 반공 보수 색채가 상당히 강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등 군사 정권이 이 지역을 거점으로 집권하면서 지금과 같은 보수 세력의 심장부가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지지세는 박정희의 민주공화당 - 전두환, 노태우의 민주정의당 - 노태우, 김영삼, 김종필(3당 합당)의 민주자유당 - 김영삼의 신한국당 - 이회창, 이명박의 한나라당 - 박근혜의 새누리당 - 자유한국당으로 이어내려져 오고 있다.

TK6.29 선언 이후 2015년까지 민주당계 후보가 의석을 확보한 사례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잠시 정계를 은퇴한 뒤 치러진 1994년 8.2 재보선에서 이상두 후보가 보수 성향을 띈 무소속 후보들의 난립 덕분에 당선된 사례와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권오을 후보가 당선된 사례 말고는 없었다.[63] 민주진보 진영에 속한 후보가 30%대 득표율만 얻어도 꽤 잘 나왔다고 말하는 곳이니 더 말해 무엇하랴.

그런데 2012년, 19대 총선이 시작되자 민주통합당김부겸 후보가 '지역주의 구도 타파'라는 명분을 내걸고 자신이 3선 국회의원을 지냈던 경기도 군포시를 떠나 대구광역시 수성구 갑에 출마해 무려 40.4%의 득표율을 얻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김부겸 의원은, 18대 총선 때 수성구 을에 무소속으로 도전했다가 32.6%의 득표율로 떨어진 유시민 전 장관처럼 '1회성 출마'에 그치지 않고 2년 뒤 6.4 지방선거에서 대구시장 선거에 다시 도전장을 내밀었고 40.3%의 득표율을 기록하는 저력을 보여줬다. 물론 낙선하긴 했는데 그래도 대구 전 지역에서 민주당 후보가 40%대 득표율을 기록했다는 건 놀라운 일이라고들 했다. 대구에서 제일 보수적인 지역인 서구와 달성군에서도 역대 최대 득표율인 30% 초반 정도를 득표했고, 심지어 자신이 국회의원 선거 때 도전했던 수성구 갑에서는 새누리당의 권영진 후보를 근소하게 앞지르기도 했다. 게다가 19대 총선 때 패배도 그곳에 출마했던 다른 민주당계 정당 후보들에 비하면 그리 큰 차이로 지지 않았다. 그래서 이한구 의원이 별 이유 없이 20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것도 20대 총선에서 김부겸 후보와 맞붙을 경우 승리를 장담할 수가 없고, 만에 하나라도 떨어진다면 이는 곧 정치 생명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이라 일부러 피했다는 설이 있다. 그리고 20대 총선에서 김부겸 후보는 새누리당의 대권 잠룡인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를 무려 62.3%라는 압도적인 득표율로 누르고 마침내 대구광역시 입성의 꿈을 이뤘다. 이것은 민주당의 20대 총선 당선인들 중에서 경상남도 김해시에 출마해 62.4%의 득표율을 얻어 당선된 김경수 후보 다음으로 높은 득표율이다. 그러나 득표수로만 따지면 민주당 당선자들 중 가장 많다. 그리고 민주당의 1차 컷오프에서 공천 배제 대상이 된 홍의락 의원도 탈당해 대구 북구을에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52.3%의 득표율을 얻어 당선됐다. 홍 의원은 처음엔 민주당으로 돌아갈 뜻이 없다는 의사를 밝히고 1년 넘게 무소속 신분을 유지하다가 2017년 5월 4일 대선을 앞두고 복당하였다.

하지만 경상북도에서는 그런 거 없이 여전히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득표율 차이가 약 7:3[64]에서 9:1[65] 정도로 철옹성 같은 보수 일변도를 보여주고 있다. 20대 총선에서 전국을 통틀어 유일하게 새누리당 후보들이 전원 당선된 지역이기도 하다. 그나마 고령군-성주군-칠곡군 선거구에서 민주당의 박장호 후보가 약 30.5%의 득표율을 얻어 제법 선전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 속에서 치른 17대 총선열린우리당 득표율인 39%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득표율이라고 하는데 비교적 젊은 인구가 많이 사는 칠곡군에서의 선전에 힘입은 바가 크다고 한다. 헌데 THAAD 배치 문제 때문에 성주군에서 새누리당에 대한 반감이 폭발하였고, 또 그 불이 김천시에까지 옮겨가면서 다음 총선에서는 이러한 반사 이익에 힘입어 당선까지는 몰라도 득표율은 더 올라갈 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있었는데 19대 대선 결과를 보면 대구의 김부겸 같은 경우는 나오기 힘들 것 같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터지고 새누리당이 한국당바른정당으로 나뉘어진 뒤로는 민주당이 이 대경권에서도 잠깐이나마 지지율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한국당이 지지율 1위를 탈환했지만 제19대 대선 이후에는 다시 지지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다만 1위긴 해도 전국에서 가장 낮은 1위인데다가 지지율 2위인 한국당은 전국에서 가장 높은 2위인지라 타지역에 비해 정당 지지율 1, 2위 간의 격차는 크진 않다. 그리고 19대 대선에서는 보수 진영 특유의 결집력이 발휘돼, 홍준표 후보가 총 47%의 득표율을 기록해 21.8%의 득표율을 기록한 문재인 후보를 상대로 완승했다. 이 때문에 홍준표 후보가 아무리 보수 세력을 결집시킬 목적이었다지만 비상식적인 막말을 일삼은데 이어, 자신의 하숙집 동료가 돼지 발정제를 통해 여성을 강간하려는 일을 방조했다는 의혹까지 불거졌던 사람인데도 TK 사람들은 그가 단지 한국당 소속 후보라는 이유로 몰표를 몰아줬다며 TK 사람들을 싸잡아서 비난, 비하하는 목소리가 대선 직후 인터넷 상에서 터져 나오기도 했다. 심지어는 자기 고향이 TK에 있는 사람조차도 '아무리 내 고향이라지만 이건 너무하다'며 스스로 고향을 비하하기까지도(...)

한편 THAAD 배치로 홍역을 앓았던 성주군조차도 사드 배치 찬성론자인 홍준표 후보에게 56.2%의 표를 주었지만, 사드 재협상론을 주장한 문재인 후보에게는 18.1%에 불과한 표 밖에 주지 않아, 이 결과를 놓고 인터넷 상에선 문재인 정부가 사드를 어떻게 하지 못하더라도 성주 사람들은 문재인 정부를 비난할 자격이 없다고 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실제로 사드를 옆에 두고 살게 될 초전면의 홍준표 후보 득표율은 성주군 전체 평균보다도 오히려 높았다고.[66] 그렇지만 주로 젊은 사람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에서는 19대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가 1위를 차지한 지역이 몇 군데 있긴 하다. 포항시 효곡동[67], 구미시, 칠곡군 일부 공단 지역 등이 있는데 특히 김천혁신도시, 그러니까 김천의 신도심인 율곡동은 문재인 후보가 50.4%의 득표율로 17.2%의 득표율을 기록한 홍준표 후보를 트리플 스코어로 압살하면서 경북에서 유일하게(!) 50% 이상의 득표율을 얻었다. 김천 일부 지역에서 민주당이 승리하게 된 요인은 사드 배치로 인한 영향도 있지만 혁신도시의 건설로 인해 민주당 지지 성향이 강한 청년층이 많이 유입된 것이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문재인 후보가 민주당의 전통적 강세 지역이었던 호남권에서 약 62%에 달하는 득표율을 기록한 것과 대조적으로, 홍준표 후보는 한국당의 전통적 강세 지역이었던 이곳에서 50%대 득표율을 넘지 못했기 때문에, 역대 민자당 계열 정당에 소속된 대선 후보들 중 처음으로 TK에서 과반의 득표율을 기록하지 못한 후보가 되었다는 결과를 내밀면서 'TK도 변하고 있다 다만 그 속도가 너무 느릴 뿐이다'며 반론하는 의견도 존재한다.

7.1.5. 충청[편집]

충청권은 과거엔 3김 시대의 한 축이었던 김종필의 근거지였다. 김종필이 충청 출신이었기 때문에 김종필을 지역주의 시대의 한 축으로 뛰어들게 된 것이다. 그러나 자민련이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에 맞아 소멸되고 그 여파로 김종필마저 정계를 떠난 뒤에는 그 어떤 정당에게도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지 않는 '캐스팅보트' 지역으로 변했다. 그러던 중 충청 출신인 이회창 한나라당 전 총재가 자유선진당을 만들자 자유선진당을 지지하는 기운이 강해졌다. 자유선진당은 이회창 전 총재가 정계를 떠나고 선진통일당으로 이름을 바꿨다가 새누리당에게 흡수되는데, 흡수 과정에서 새누리당과 당을 합치는 것에 반발한 일부 인사들이 지금의 민주당로 자리를 옮기기도 했다.[68]

충청권에서는 일명 경부선 벨트[69] 지역이나 그 주변의 아산시, 당진시, 공주시에서도 지지세가 엇비슷하거나 높다. 다만 20대 총선의 선거구 획정에서는 단독 선거구였던 공주시는 부여-청양과 선거구가 통폐합되었다. 헌법재판소에서 선거구의 인구 편차를 2:1로 하라고 판결했기 때문이다. 공주의 19대 현역 의원이었던 박수현은 현역 의원인 정진석 의원에게 48.1 : 45의 차이로 밀려 낙선했기 때문에 민주당은 공주의 의석을 잃은 셈이다. 실제로 공주에서는 박수현 전 의원을 지지하였지만 나머지 부여-청양에서 60%정도로 정진석 의원의 지지가 높았다. 하지만 19대 총선과 비교하면 당진시, 논산-금산-계룡 선거구와 신설 선거구인 아산 을에서 의석을 얻어 그나마 민주당 입장에선 선방한 셈 쳤다. 천안에서는 신설 선거구인 병 선거구를 얻어갔지만 천안 갑은 잃어 현상 유지에 그쳤다. 다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바른정당의 창당, 위의 20대 선거구 획정 문서에서 보듯이 충남의 의석(현 11석, 적정 의석 10.19석)이 줄어들고 대전의 의석(현 7석, 적정 의석 7.48석)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충청권의 정치 지형이 변화할 가능성이 있다.

요약하면 김종필자유선진당이 사라진 뒤 충청권의 표심도 수도권처럼 '우촌좌도'로 변했다는 것이다.[70] 지역주의 전쟁에서 빠진 뒤로, 충청도민은 '이기는 쪽을 선택하는' 전략적 지지를 보내주고 있다. 따라서 전국적으로 민주당이 잘 나갈 때에는 민주당이 충청도에서 좀 더 많은 표를 얻고, 보수계열 정당이 잘 나갈 때에는 보수 쪽이 더 많은 표를 가져갔다. 20대 총선에서도 충청권 전체 의석 27석 중 새누리가 14석, 민주당이 12석을 차지했는데 무소속으로 출마해 복당을 선언했던 이해찬 의원까지 합하면 의석이 13석이라서 새누리와의 의석 차이가 고작 1석에 불과했다. 2016년에도 팽팽한 백중세를 이룬 셈이다.

흥미롭게도 우리나라 역대 대선 결과를 살펴보면 대통령에 당선된 후보는 어김없이 충청에서 승리를 거뒀다. 2017년 19대 대선에서도 문재인 후보가 충청권에서 40.5%의 득표율을 기록해 승리하면서 이 '충청 승리의 법칙'은 사례 하나를 더 추가하게 됐다. 그리고 충청권은 문 후보가 또 하나의 대박을 터트린 곳으로, 부여, 청양, 예산, 괴산, 단양, 보은, 영동을 제외한 모든 곳을 싹쓸이했다. 특히 민주당에게 매우 어려운 지역인 보령, 태안, 옥천[71], 충주, 제천에서도 승리하는 기염을 토했다.

7.1.6. 강원[편집]

강원도는 역시 영서 지역에서 약하게나마 지지 기반을 갖추고 있지만, 젊은 인구가 적어서 보수 정당의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어떤 사람들은 영남보다도 강원도민주당계 정당에게는 더 어려운 곳이라고 말할 정도다. '작은 TK'라고나 할까. 하지만 말이 그렇다는 거지, 강원도TK처럼 수십년 만에 민주당 후보가 당선되는 그런 곳은 아니었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강원도 평창군 태생에 노무현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이광재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이 태백-영월-평창-정선 통합 선거구에 출마해 46.7%의 득표율로 당선되었고, 6년 뒤에 열린 2010년 6.2 지방선거에서는 54.6%의 득표율을 얻어 강원도지사 선거에서도 이겼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는 태백시 출신의 배우 최종원태백-영월-평창-정선 선거구에 출마해서 55.3%의 득표율로 당선되기도 했다.

이광재 전 지사가 불미스런 일로 2011년 1월에 도지사직에서 내려온 뒤에는 최문순MBC 사장이 민주당 후보로 강원도지사 선거에 출마해 51.1%의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여기에는 한나라당 후보였던 엄기영 전 MBC 사장이 좀 막장이었던 탓도 크다[72] 최문순 지사는 2014년 6.4 지방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는 민주통합당영남권 공략에 너무 올인한 나머지 새누리당에게 무려 9석 모두를 헌납했었다. 17대 총선부터 민주당 후보를 둘이나 당선시켰던태백-영월-평창-정선 선거구도 허언증 환자에게 뺏겼다. 이게 새누리당의 19대 총선 역전승의 한 요인으로 꼽힌다. 그래서 20대 총선에서는 그 실패에서 배운 게 있었는지 원주시 을 1석을 얻는데 성공했다. 아쉬운 성적이긴 하나 이외에도 원주시 갑에서는 민주당 권성중 후보가 새누리 김기선 당선자와 100표 차이로 떨어지는 등 강원도에서도 제법 선전했다.

그리고 19대 대선에선 또다른 격전지가 된 양상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한국당 김진태의 각종 망언 및 광역 어그로로 지역구 비토 여론이 매우 강력한 춘천시는 물론이며, 혁신도시의 힘을 입은 원주시직업군인이 많은 영서 북부(홍천군, 철원군, 화천군, 양구군, 인제군)에서 승리하였다. 영서 남부에서도 거의 접전을 이뤘으며, 심지어 영동에서도 성과를 거두었다. 그리고 보수 정당 지지세가 거의 TK와 맞먹는 수준이라고 불리는 강릉시동해시에서 몇% 차이로 선전하였고 속초시에서는 승리를 하는(!) 놀라운 결과를 거두었다.

7.1.7. 제주[편집]

제주도수도권처럼 어느 특정 정당에게 표를 몰아주는 성향이 없지만, 그동안은 제주도 특유의 인맥을 중시하는 "궨당"[73]의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이었다. 이 궨당 정서는 1948년 제주 4.3 사건의 영향이 크다.

4.3 사건이란 이승만 정부가 이끄는 군경들과 남로당 계열 빨치산들 간의 무력 충돌 및 진압 과정에서, 제주도 사람들이 이승만 정부가 보낸 군경들한테는 '빨갱이'라는 이유로, 그리고 남로당빨치산들에게는 '반동분자들'이라는 이유로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듯 양쪽 모두에 의해 억울하게 학살당했던 사건으로, 이승만 정권이 남긴 여러 흑역사들 중 대표적인 사례로 손꼽힌다. 무려 3만여 명에 달하는 제주도 사람들이 이 시기에 학살당했다고 전해진다. 설민석 강사의 설명. 12분 36초 분량 2003년 10월, 노무현 대통령이 4.3 사건이 일어난 지 55년 만에 국가원수로서는 처음으로 제주도민들에게 공식 사죄하였고, 2005년에는 참여정부가 노 대통령의 뒤를 이어 정부 입장으로는 처음 제주도민들에게 4.3 사건에 대해 공식 사죄했다. 이러한 역사적 노력 때문이었는지, 2004년 17대 총선제주도에 출마한 열린우리당 후보들은 모두 당선됐다. 그리고 反노무현 정서가 하늘을 찔렀던 2008년 18대 총선 때에도 제주특별자치도에선 민주당 후보들이 전승을 거뒀다. 허나 여전히 제주특별자치도에서는 궨당의 영향을 무시 못한다고 한다. 따라서 제주도의 정치 지형은 정당보다는 인물론에 가깝다. 국회의원 선거에서 2000년대 이후 민주당 의원들이 약진했지만 그 이전까지만 해도 보수 진영[74]의 텃밭이다시피 했던 시절이 있었고 도지사 선거에서는 민주당 소속이었던 우근민이 도지사직을 잃고 탈당한 뒤로 민주당계 정당의 공천을 받은 후보가 오랫동안 당선되지 못했다.[75]

참고로 제주도는 지금까지 직선제로 대한민국 대통령을 선출한 모든 선거에서 당선된 후보의 지지율이 늘 높았던 유일한 광역 자치 단체다. 쉽게 말하자면, 충청권처럼 제주도에서 승리한 후보가 청와대에 입성했다는 이야기다.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4번 연속으로 민주당계 정당 후보들의 손을 들어줬지만 정작 2012년 19대 대선에서는 '제주 4.3사건 희생자 추념일 지정'을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당선되고 나서 입을 싹 씻어버렸박근혜 후보를 문재인 후보보다 근소한 차이로 더 지지했었고, 도지사 선거에서도 제주 출신 원희룡 당시 새누리당 후보가 승리하는 등 결과가 국회의원 선거와 많이 달랐던 점 또한 제주 지역 정치 성향의 복잡하고, 또 인물 지향적인 특징을 보여준다. 20대 총선에서는 새누리의 입성이 예상됐는데 지난 19대 총선과 마찬가지로 3개 지역구 모두 민주당이 수성했다. 이는 4.3 사건에 대한 참여정부의 사죄가 여전히 영향을 미치는 것도 있겠으나 폭발적인 외지인 유입으로 수도권과 정치 지형이 비슷해졌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존재한다.

4.3이라는 피비린내 나는 기억에서 오랫동안 갇혀 살았던 중장년층, 노년층에겐 여전히 '궨당'이 먹히지만, 그 끔찍했던 기억에게서 보다 더 자유로운 청년층과, 제주도로 건너온 외지 출신 도민들의 정치 성향은 다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한나라당 소속으로 서울에서 3선 국회의원을 지냈던 원희룡 제주지사가 제주도가 고향이라는 점 빼면 이렇다 할 기반이나 연고가 없었음에도[76] 동향인 신구범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를 상대로 무난히 당선될 수 있었다는 점이 제주특별자치도 특유의 궨당 정치가 이제는 서서히 약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한편 2017년 19대 대선에선 문재인 대통령이 총 45.5%의 득표율을 기록해 제주도의 전 지역에서 승리해 제주도에서 승리한 자는 늘 대권을 잡았다는 법칙에 한 사례를 더 추가하게 됐다.

7.2. 세대, 소득별[편집]

세대별로는 주로 30대의 지지율이 가장 높게 나오고, 그 다음으로 40대, 그 다음으로는 20대의 지지율이 높다. 60대 이상부터는 보수 정당에게 크게 밀린다. 50대는 386세대가 유입이 되면서 경합 상태에 있다.

특히 60대 이상 노인층의 경우는 주로 박정희, 전두환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고 따라서 그 시대와 연결된 부분이 많은 자유한국당에게 마음이 기울기 쉬울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소위 '콘크리트 지지층'이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반면 '486'-'586'에 해당하는 40-50대는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을 탄생시키기도 했던 세대로, '콘크리트'라고 표현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국민의당이 등장한 이후, 40대 미만 젊은 층에서는 민주당을 배타적으로 지지하는 비율이 높은 반면, 50대 이상으로 가면 非보수 성향이라도 국민의당을 선호하는 비율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20~30대의 젊은 유권자들 사이에서는 진보 정당이 있음에도 여전히 민주당이 가장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77] 결과가 널뛰기를 하는 여론조사들을 살펴보면 민주당이 젊은 세대에게서, 보수 정당이 노년층에게서 가장 높은 지지를 받고있는 구조 만큼은 그다지 달라지지 않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소득별로는 저소득층을 제외한 전 계층에서 지지 받는다. 다양한 계층이 지지하는 것이 민주당의 특징이다. 빈곤층에게선 한국당에게 밀리는 편인데, 한국당이 '부자 감세를 통한 낙수 효과'를 주장하고 복지 정책을 '포퓰리즘 정책'이라 비판하는 등 친재벌 성향이 강한 정당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의아한 일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지만, 이는 우리나라의 노인 빈곤율이 높고 노년층은 자유한국당을 많이 지지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계적으로도 민주국가에서 저소득층이 보수정당을 지지하는 계급배반 투표는 적지않게 발견된다. 19대 대선의 심층 출구조사에서도 월 소득이 600만 원 이상인 계층과 월 소득이 400~600만 원인 유권자의 과반이 BIG 3 후보중 문재인을 지지했었다. 200만 원~400만 원 계층에선 절반에 조금 못 미쳤고, 200만 원 미만인 저소득층에선 홍준표에게 밀렸다. #

도농별로는 도시에서는 그 도시에 인접한 농촌 지역에 비해 지지세가 높고 촌이나 소도시에서는 이웃한 도시보다 지지세가 약하다. 옛 새누리 계열이 여당이었을 땐 이걸 여촌야도라고 불렀다. 현재 우리나라 시골에는 주로 노인들이 많이 살고, 도시 지역에는 그래도 시골보다는 젊은 사람들이 많이 살기 때문이다. 다만 이것도 19대 대선 들어선 조금 바뀌긴 했다. - - 지역의 차이는 유지되었지만, 읍에서까지 민주당이 승리한 것이다. 특히 충남 지역에선 면 지역에서도 민주당이 승리하였다. 특히 19대 대선 때는 수도권, 부울경, 강원도, 충청권의 농촌 지역도 휩쓸었다.

7.3. 선거에서의 이점[편집]

  • 중도·진보 성향과 그로 인한 넓은 인재풀
    다른 정당과 비교하자면, 자유한국당박근혜정부 이후로 성향이 점점 극우로 변화하는 가운데 기존 인물들로 돌려막고 있다. 국민의당안철수 말고 대선 주자급이라고 부를 만한 정치인이 거의 없다. 바른정당 또한 유승민을 제외하고 존재감이 큰 사람이 별로 없다. 정의당노회찬이나 심상정 외에 새 얼굴이 십 수년 째 나타나지 않고 있다. 정의당 스스로도 인정하는 문제점이기도 하다. 그런데 민주당은 20대 총선이 지나고 인재풀이 많이 넓어졌다. 19대 대선 경선 때 문재인 대통령과 자웅을 겨루었던 안희정, 이재명, 박원순, 김부겸, 최성을 비롯하여 '문재인 키즈'라고 불리는 박주민, 표창원, 김병관, 조응천, 김병기, 그리고 박근혜 탄핵 심판과 최순실 국정 감사에 참여했던 박범계, 원외 인사지만 팟캐스트 등에서 진보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 정청래와 게임 팬들 사이에서 좋은 평판을 받았던 전병헌 등 인지도 높은 정치인들이 제법 많아졌다. 물론 중도 성향이라는 점이 마이너스가 될 수 있지만, 일단 중도성이 진보와 보수 성향의 유권자를 모두 흡수할 수 있다는 강점이 있다. 민주당의 스타 정치인들 중엔 정청래, 이재명처럼 진보적 색채가 뚜렷한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안희정, 김부겸처럼 온건하고 보수 쪽과도 코드가 통하는 정치인들과 진영처럼 보수측 인재들이 당의 좌우 날개로 기능하고 있다.

  • 높은 대통령 지지율
    정당 지지율 자체도 높지만 대통령 지지율이 높은 편이라 내부에서 당내 구성원이 전면으로 흔드는 일이 적은 편이다. 따라서 당대표부터 당원까지 큰 잡음없이 운영되는 것을 보여준다. 정당 민주화도 비교적 잘 되어있는 편이다.

  • 지역적 지지기반 확보
    노무현을 비롯한 다수의 정치인들의 오랜 기간의 투자, 동남권 신공항, 한진해운 사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13대 총선 이후 부울경에 민주당계 정당의 교두보를 확보했다. 결정적으로 민주당내 부울경 정치인의 대표격인 문재인 대통령의 존재로 인해 부울경 유권자들이 결집하기 용이하다. 아울러 20대 총선에서 국민의당에 빼앗겼던 호남의 지지를 19대 대선에서 1년만에 다시 가져왔다. 문재인 정부에는 적지않은 인물이 호남출신으로 구성되어 있기에 호남의 지지를 공고히 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78]

7.4. 선거에서의 불리점[편집]

  • 기울어진 운동장
    국민들 사이의 여론은 최순실 게이트를 거치며 크게 변화했지만 사회 전반적으로 아직 보수세력에 유리한 상황이다. 특히 선거에는 언론이 큰 영향을 미치는데 TV 뉴스와 신문 등은 보수 친화적이다. 다만 젊은층에서는 기성 언론에 반감을 가진 사람들이 증가해 팟캐스트 등 신규 매체를 찾고, 대놓고 악의적인 논조나 가짜뉴스는 지지자들이 먼저 불매운동과 신고로 대응 하면서 이런 불리점이 현저히 떨어진 상황이다. 그런데 노년층에서는 여전히 공중파 기성언론과 종편이 반강요되는 경우가 많아 노년층의 지지를 얻는데는 어려움이 있다.[79]

  • 언더독 효과
    높은 지지도, 넓은 인재풀, 지역구도 완화, 라이벌 정당들의 약화 상황까지 모든 점에서 이점이 굉장히 많지만, 이 점이 역으로 언더독 효과로 작용하는 측면도 적지 않다. 가령 호남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의 강세에 대한 반감은 20대 총선~19대 대선 기간 동안 반문정서가 확대되고 '호남홀대론', '친문패권주의'라는 말이 퍼지며 국민의당 지지율이 상승하는데 크게 일조했다. 그리고 여당이라는 지위도 언더독 효과에 일조하는데, 진보언론에게도 공격받기 쉽고 가장 가까운 선거인 지방선거는 여당의 무덤이라 불릴 정도로 여당에게 불리한 환경이다. 다만 야 3당들은 각각 원죄가 있는 이상 온전히 언더독 효과를 받기 힘든 면이 있고 정의당이나 다른 신생정당들은 세력이 너무 적다.

  • 모호할 수 있는 중도성향
    한국의 특수한 정치지형상 정작 보수정당인 새누리당계열의 정당들은 안보를 미국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보수적인 의제인 국가안보나 전역군인에 대한 보훈, 처우 문제를 도외시 하는 경우가 매우 많고 진보정당인 정의당이나 노동당 등은 원내에 진출해있지 못하거나 진출해 있다고 해도 세가 약해서 제대로된 정책을 추진하기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따라서 민주당은 집권하면 보수적인 입장에서 안보를 챙기는 한편 진보적인 입장에서 사회복지나 약자보호 등의 정책을 동시에 추진하게 되는데 이게 보수와 진보 양쪽으로 지지층을 확대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지만 자칫 잘못하면 양쪽에서 동시에 공격을 받을 위험도 있다. 실제로 보수정당과 보수언론에서는 민주당을 종북좌파취급을 하며 빨갱이로 보지만 진보정당과 진보언론에서는 친미수구취급 하며 수구꼴통으로 공격한다. 그래서 좌인지 우인지 제대로 결정하라는 의견이 나오지만, 민주당에게는 너무 혹독한 주문일 수 있다.[80] 결국 민주당이 1인 2역을 하는 처지다. 미국으로 치면 공화당과 민주당 역할을 둘다 수행하는 꼴. 실제로 참여정부 시절 당시 우파 야당이던 한나라당은 물론 좌파 야당인 민주노동당 마저도 노무현은 물론 김대중 정권을 포함하는 민주정권 10년 모두가 실패한 정권이라고 극렬하게 비판을 했었다. 때문에 자유한국당을 없애고 더민주가 거대 정당이 되면 더민주 내의 보수파와 진보파가 쪼개져서 진정한 좌우 양당 체제가 되어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

8. 타 정당과의 관계[편집]

8.1. 자유한국당[편집]

3당 합당 이후 대대로 라이벌 정당이자 반목이 제일 심한 정당

자유한국당전두환, 노태우신군부 세력이 창당하고 이끈 민주정의당과, 김종필을 포함한 옛 군부 세력이 만든 민주공화당을 계승하는 신민주공화당, 그리고 이들과 손을 잡은 김영삼통일민주당이 힘을 합쳐 만든 민주자유당을 시초로 한다.

민자당은 이후 김영삼이 당을 장악하면서 신한국당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김영삼의 인기가 땅을 뚫고 들어가기 시작했을 때에는 이회창이 당을 장악해 한나라당으로 이름을 바꿨다. 한나라당은 이 이름을 나름 10년 이상 가지고 나가다가 이명박 정부 때 정부 여당의 인기가 바닥을 찍으면서 박근혜가 구원 투수로 나서서 당의 이름을 새누리당으로 바꾸었다. 그 이후의 일들은 모두들 알 것이라 생각하고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따라서 민주당은 한국당의 현역 정치인이나 원로들 중에는 군사 독재 정권에서 일했던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여긴다. 민주당에는 군사 독재 정권에 맞서 싸웠던 민주화 운동권 인사들이 많기 때문에 두 정당은 태생부터 사이가 좋을 수 없는 관계다. 애초에 군사 정권 시대를 연 박정희와 민주화 세력의 대표 정치인 중 하나인 김대중김대중 납치사건 등으로 얽힌 필생의 숙적이었다. 비교적 갈등이 덜한 유럽의 양당제 국가들도 좌우 양당간 서로 날선 다툼을 벌이는 경우가 많은데, 하물며 군사 독재 정권을 옹호하는 사람들과 그 군사 독재 정권을 상대로 목숨을 건 저항까지 했던 사람들이 각각 소속된 두 당의 관계에 대해선 더 말할 게 있을까.

민주당이 한국당의 과거 독재 정권을 미화한다거나 권위주의 정책, 인권 탄압 소지가 있는 정책, 그리고 그들의 경제 정책이나 복지 정책을 반서민적, 친재벌적이라며 많이 깐다면, 한국당은 김대중 정부 이후 시작된 대북 유화책을 추구하는 민주당의 대북 정책 노선을 주로 까거나 민주당의 경제 정책 및 복지 정책을 대중의 인기만 생각하고 그냥 생각없이 내지르는 '포퓰리즘적 행태'라고 까는 경우가 많다. 심플하게 보면, 민주당은 한국당을 유신의 부활을 꿈꾸는 친일 독재 정당이라고 깎아내리는 반면,[81] 한국당은 민주당을 종북몰이 식으로 깎아내리는 경우가 많다.

물론 한국당의 뿌리인 민자당의 창당 세력 중에는 맨 위에 언급했듯 김영삼과 그의 계파인 상도동계도 섞여 들어갔고,[82] YS의 민주계가 당권을 잡고 나서 민주자유당의 이름을 신한국당으로 바꿨던 시기에는 김문수, 이재오 등 재야의 민주화 운동가들을 대거 영입했기 때문에 한국당 내부 구성원 중에는 민주화 운동을 했던 사람들도 꽤 있긴 하다. 그러나 이들도 김영삼 정부가 힘을 잃은 뒤에 등장하는 이회창, 이명박, 박근혜에게 새로 줄을 서다보니 결국 과거 김영삼 밑에서 있을 때 보여주었던 민주화 운동가로서의 성향은 거의 사라져 버렸다.[83] 그리고 이회창의 시대가 끝나고 이명박과 박근혜의 양강 구도가 열린 뒤에는 친박근혜계친이명박계와 그 외 비박계로 계파가 새로 짜여졌다. 그때 생긴 친박계와 친이계의 갈등이 나중에 친박계와 비박계의 갈등으로 이어졌고 결국엔 한국당과 바른정당으로의 분열로 귀결된 거다.

민주당 지도부는 새누리당이 한국당과 바른정당으로 나뉘어진 뒤 주호영 바른정당 원내대표에 대해서는 말이 통하는 상대라며 협상을 해나가겠다고 해 어느 정도 유화적인 태도를 보여줬다. 그러나 한국당의 정우택 원내대표의 경우 원내대표로 선출된 뒤 각 당의 원내대표에게 인사를 갔을 때 우상호 당시 원내대표는 아예 면담조차 거부하기도 했다. [84]

8.2. 국민의당[편집]

새정치민주연합 시절 계파 분쟁으로 분리된 이후 민주당이 집권한 지금까지 반목이 계속되고 있다

국민의당을 만들고 핵심적인 위치에 선 사람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대부분 민주당계 정당새천년민주당 - 통합민주당 - 민주당(2013년) - 새정치민주연합에서 10여년 넘게 뿌리를 박았던 인물들이 많다. 문재인 대통령이 새정련 - 더불어민주당의 당대표를 맡았던 시절 비주류, 비노계로 분류되었던 이들이, 소위 '친노 패권주의'를 비판하며 당을 박차고 나가 새로 만든 정당이 바로 지금의 국민의당이다.

때문에 국민의당은 대중적인 인기는 별로였던 새정련호남 세력과 당시 야권 대선 주자 빅3이긴 했지만 문재인 당시 대표에 비해 존재감이 그리 세지 않았던 안철수 의원이 정치적 실익을 위해 연합해 만든 당이란 의혹을 받았고,[85] 민주당 지지층도 국민의당을 '궁물당'(…)이라는 멸칭으로 부르며, '겉으로는 새정치와 중도라는 번지르르한 간판을 내걸었지만 사실은 'Anything But Moon'(문재인만 아니면 뭐든지 좋다)이 이념인 정당'으로 여기고 있다.[86]새누리당과의 사실상 정치관과 이념이 비슷한 사람들이라고 여겨서 언젠가 이들과 공조할 것이라고 생각해 새누리당 2중대라고 부르기도 했다. 사실 국민의당의 한 축을 이룬 호남 세력과 민주당의 주류를 이룬 친노·친문 진영이 꽤 오랜 시간 불편한 사이였던 건 맞다. 그래서 정치권의 일부 호사가들은 비노 세력이 국민의당을 만든 목적이 일단 '참여정부호남 홀대론'을 내세우고, 야권 표를 갈라서 민주당이 호남을 비롯해 모든 지역에서 새누리에게 참패하고 나면, 문재인 당시 전 대표가 정계를 떠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그럼 안철수라는 대선 주자를 앞세워 다시 민주당과 통합해 당의 주도권을 되찾는 것이라고 내다보기도 했다. 실제로 국민의당에서 김종인발 야권 통합론이 나왔을 때 국민의당 내부에서는 통합 거부를 주창해온 안철수 당시 대표를 지지하는 쪽과 민주당과의 연대를 주장해온 쪽 간의 내부 충돌이 있기도 했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니 국민의당은 호남을 차지하고 교섭단체가 된다는 제1차 목적은 달성했다. 하지만 다음 목표였던 민주당의 폭망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민주당은 호남에선 참패했지만 수도권에서 압승을 거두고 새누리당의 근거지인 영남에서도 약진하면서 123석을 얻어 화려하게 부활했다. 고질적인 약점이었던 '호남당' 인상을 꽤나 많이 걷어내고 '전국 정당'에 가까워지는 뜻밖의 이변이 일어난 것이다. 당연히 문재인 전 대표도 정계를 떠날 필요가 없어졌다.[87] 그래서 20대 총선 출구조사 당시 신생 정당이었던 국민의당이 38석이나 얻는 큰 수확을 거뒀음에도 정작 안철수 당시 대표가 그렇게 기뻐하지 않는 듯한 표정을 지었던 게 문재인을 정계에서 쫓아내는데 실패했기 때문이 아니었냐는 카더라가 돌기도 했다.

어쨌든 서로 으르렁대는 사이이지만, 둘 다 호남이라는 불가분의 뿌리에서 갈라져 나왔고 성향도 두 정당 모두 다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서 완전히 자유롭기 어렵다는 태생적 공통점이 있기 때문에 사안에 따라서는 새누리당에게 맞서 손을 잡을 때도 있다. 실제 박근혜정부역사교과서 국정화 정책에 대해선 두 정당이 이견의 여지없이 반대 의견을 냈고, 20대 국회의 국회의장단 선출 및 알짜배기 상임위원장 자리를 둘러싸고 새누리당과 당시 야권의 쟁탈전이 벌어졌을 당시엔 민주당의 손을 들어 새누리당을 압박하기도 했다. 이후에도 보면 협치를 명분으로 민주당과 새누리당 양당 사이에서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곤 있지만 아무래도 민주당 쪽 손을 들어주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많았다.

그런데 2016년 12월 새누리당이 분당되면서 100석이 무너져 바른정당까지 포함한 야권 총 의석이 한때 개헌선(200석 이상)을 넘었고(!), 다당제 체제 속에서 더 복잡한 정치 판세가 진행될 여지가 생겼다. 여기까지는 나름 힘 있는 원내 제3당으로서 존재감을 때때로 보여주곤 했는데 2017년 들어서부터는 새로운 교섭단체인 바른정당의 등장으로 존재감이 한층 더 약해졌다. 원내 제1당이라는 지위와 문재인이라는 막강한 대선 주자를 선봉장으로 삼아 정국 주도권을 치열하게 거머쥐려고 했던 민주당과는 달리, 국민의당은 갖고 있는 의석 수가 캐스팅보트 역할엔 적합해도 정국 주도를 해나가기엔 부족하였고, 무엇보다도 호남에 갇혀버린 탓에 안철수와 더불어 존재감을 그렇게 어필하지 못했다. 따라서 대선을 바라보는 호남의 민심도 점점 변하는 것이 감지됐다. 우선 지역 민심에 가장 예민한 호남 정치인들의 행보가 달라졌다. 국민의당으로 이적했던 옛 민주당 당원 3만 명이 민주당에 복당을 신청했고#, 무소속으로 당선된 박성일 완주군수와 이항로 진안군수가 민주당에 입당했다.#

그나마 대선 시즌이 중반에 접어들고 두 후보 간의 격차가 많이 줄어들었을 때가 반등의 기회였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국민의당은 안철수 후보가 유력한 2위 주자로 부상한 뒤에 쏟아진 여러 네거티브 공세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고, '안철수가 되어야 하는 이유'보다는 '문재인이 되면 안 되는 이유'를 입에 훨씬 더 많이 올린 탓에 안철수가 아닌 문재인이 더 부각되는 역효과를 불러오고 말았다. 안 후보 본인도 자신의 이미지를 스스로 떨어뜨리는 잘못을 여럿 범했다. 결국 19대 대선에서 국민의당은 한때 양강 구도를 부르짖던 때가 부끄러울 정도로 참담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20대 총선에서 국민의당은 민주당을 제치고 정당 득표율 2위를 기록했었지만 19대 대선에서는 민주당, 한국당에 이어 3위로 떨어졌다. 무엇보다도 민주당과 함께 뿌리를 내린 호남에서 문재인 61.9 : 안철수 28.2%라는 스코어로, 변명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완패해 버렸기 때문에 당의 존립까지 위협받는 처지에 놓였다. 대선 직후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도 민주당은 호남에서 무려 71%의 지지율을 기록했지만, 국민의당은 불과 5%에 지나지 않은 지지율을 기록했다. 국민의당 정치인들이 아직 새정련에 있었을 때 문재인 당시 대표의 호남 지지율이 5%대에 불과하니 사퇴하라고 압박했을 때와 비슷한 현실을 이번엔 본인들이 맞이하게 된 셈이다. 호남에 지역구가 있는 국민의당 의원들은 이런 민심이 신경 안 쓰일 수가 없을 것이다. 이미 호남 토호의 끝판왕인 동교동계의 원로들은 명분만 갖춰지면 다시 민주당으로 돌아가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듯하다. 기사

동교동계의 일원인 이훈평 전 의원은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소위 '친문 패권주의'가 싫어서 민주당을 떠났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탕평 인사를 보니 그 패권주의도 이젠 사라진 듯하다"면서 이렇게 되면 국민의당에 있는 게 의미가 없다고까지 말했다. 심지어 같은 동교동계의 일원인 정대철 전 의원을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에 앉혀서 민주당과의 통합을 논의해야 한다는 생각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조선일보 기사 김대중 전 대통령의 직계 가신들이었던 동교동계는 3김 시대 때 만큼 현실 정치에 미치는 영향력이 강하진 못하지만, 호남에서의 그 상징성은 아직 남아있기 때문에 20대 총선 때 그랬던 것처럼 동교동계가 이번엔 국민의당을 떠나 민주당으로 돌아오면 '호남 민심이 국민의당을 떠났다'는 내용의 대외 선전이 가능해진다. 다만, 민주당을 버릴 땐 언제고 국민의당이 침몰할 것 같으니 돌아오냐는 민주당 내 친문계 지지층의 반발도 클 테고, 만약 복당이 성사된다 해도 여전히 친문계가 주도권을 갖고 있는 민주당 내에서의 발언력이 아마도 예전만 못할 것이다. 결국 정대철 고문이 비대위원장직을 고사하고 박주선 의원이 비대위원장으로 확정되면서 이 갈등은 일단 봉합이 됐지만, 국민의당이 동상이몽 중이라는 걸 드러낸 일이라 하겠다.

국민의당은 시작부터 비노·반노 인사들이 뭉쳐져 생겨났으므로 중도를 표방한다는 명분으로 문재인 대통령과 친문계를 '친박계와 쌍벽을 이루는 양극단 세력'이라고 규정해왔기 때문에 때때로 문재인 대통령, 그리고 친문계가 지휘하고 있는 민주당에게 반기를 들고 각을 세우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그런데 정작 국민의당이 뿌리내린 땅인 호남의 민심은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때처럼 밀어주자는 분위기가 강하니 고민이 깊을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민주당과 전면 협력하자니 '민주당 2중대' 취급을 받으며 국민의당의 정체성 자체가 뒤흔들릴 수 있다. 따라서 민주당과 국민의당의 호남 주도권 경쟁의 세 번째 전장이 될 2018년 지방선거에서 어떤 결과가 호남에서 나오느냐에 따라 국민의당의 운명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와중에 국민의당이 초대형 정치 스캔들을 저지르는 바람에 두 당의 운명은 더욱 극명하게 갈렸다. 이 사건 이후 민주당과 국민의당의 호남 지지율은 단순히 크다는 수준을 넘어서 압도적으로 지지율의 차이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민주당은 정권을 탈환한 뒤 호남에서 압도적인 지지율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지만, 국민의당은 대선 패배 이후 지지율 침체가 가속화 되던 중이었는데 거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대선 공작 사건까지 터지자 어떤 여론조사에서는 자유한국당보다도 더 낮게 나오기도 했다.

민주당과는 다르게 호남 이외의 지역에서는 자생력이 현저히 떨어진다고 평가받는 국민의당으로선 당이 뿌리째 뽑혀나갈 수 있다는 위험 신호다. 국민의당이 붕괴 직전까지 치달아가는 상황을 보면서 민주당 지지층은 무척이나 고소해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국민의당 사람들을 다시 민주당으로 받아주면 그땐 민주당도 예전의 봉숭아 학당으로 돌아갈 것이 확실하다. 그러면 민주당도 결국 망하고 말 것이다'라며 민주당 지도부와 의원들을 압박하며 딴 생각을 못하게 압박하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우상호 전 원내대표가 언론 인터뷰에서 국민의당이 백기를 들고 민주당과 다시 합쳐야 한다고 했다가 두 당의 합당을 반대하는 민주당 지지층에게 많은 비판을 받은 적이 있다.

8.3. 바른정당[편집]

아직은 자유한국당보다 조금 나은 정도

일단 그 성향과 미래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배신자라고 비난하는 자유한국당 지지층을 제외하고 다른 정당 지지자들이나 무당층들은 이들이 한국당의 2중대가 될 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가지고 있다. 바른정당을 만든 옛 새누리 비박계는 한국당에서 다수파인 친박계와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사이가 됐지만, 바른정당으로 넘어가지 않고 한국당에 남은 비박계와는 계속 소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홍준표도 한때 바른정당에게 합당을 이야기하기도 했었다. 보수 정당들은 자유선진당처럼 따로 나왔다가 결국 보수 단일 정당으로 합당하는 전례가 많이 있어서 민주당 입장에서는 한국당과는 상종하지 않겠다는 바른정당의 말을 신뢰하기가 매우 어려울 수 밖에 없다. 다수의 의원이 한국당으로 복당이후 바른정당은 한국당은 구제불능이라고 비판하면서 손을 잡을 일이 없다고 일단은 선을 그었다. 그러나 우리나라 역대 제3당들이 모두 의석 수 부족과 지역 기반의 부재로 결국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사라져갔다는 점을 생각하면 바른정당이 독자 노선을 오래 걸을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또한 바른정당 창당에 민주당은 품위 있는 보수 정당을 기대한다는 식의 덕담을 건네긴 했지만 단순히 의례적인 표현일 수 있기에 큰 의미는 없을 것 같다. 탄핵 동참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라고도 여길 수는 있다. 바른정당이 생각 외로 지지를 얻지 못하자, 한국당 만큼은 신경을 안 쓰는 분위기다.

사실 이들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크게 기여를 하긴 했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의 힘이 건재했을 때 유승민이나 이재오를 포함한 소수의 몇몇 사람들을 제외하면 친박계 정치인들 못지 않게 박 전 대통령을 편들었거나 그들의 실정에 눈 감고 입을 닫았던 사람들이 꽤 많다. 이 사실을 아는 민주당 지지층도 이들은 그냥 정치적 이해 관계 때문에 한국당과 갈라선 것이지 정말로 제대로 된 보수 정당을 만들기 위해서 바른정당을 만들었을 거라 보지 않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우선 김무성의 경우 새누리당 대표로 있던 시절 '김무성 30시간의 법칙'이라는 조롱이 나올 정도로 박 전 대통령과 친박계에게 저자세로 일관하며 정말 중요한 타이밍이 아니면 대들지 않았고 주호영도 한때 '골수 친박' 정치인인 윤상현, 김재원과 함께 박근혜 전 대통령의 정무 특별보좌관으로 발탁됐던 인물이다. 또 세월호 특별법 정국이 닥쳤을 때에는 새누리당의 정책위원회 의장으로서 세월호 참사를 '단순 교통사고'라고 주장하며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위원회의 권한을 최대한 축소시키는데 앞장 섰던 과거가 있다.유튜브 영상 1, 유튜브 영상 2 바른정당의 최고 스타 정치인인 유승민도 2000년대부터 '원조 친박' 정치인이었고 새누리당 원내대표 경선에 출마했을 때에도 본인 입으로 "나는 친박이라는 말이 생기기 전부터 친박이었다"고 어필하기도 했다. 친박계에 의해 당에서 쫓겨나다시피 해서 무소속으로 출마했던 20대 총선 때에도 박근혜의 사진을 들고 선거 유세를 했으며, 테러방지법에 적극 찬동했다. 한국당으로 넘어간 김성태 역시 정세균 국회의장이 20대 국회 개회사에서 우병우민정수석을 비판하였을 때 다른 새누리당 의원들과 같이 국회의장실로 우르르 몰려가 이런 짤방을 남겼던 전례가 있다. 그리고 남경필 경기지사도 2014년 6.4 지방선거새누리당 경기도지사 후보로 출마했을 때 비록 훗날 반성문을 썼다지만 '대한민국의 딸 박근혜를 지켜내겠다'고 열변을 토하는 모습이 버젓이 남아 있기도 하다. 또 정세균 국회의장이 김재수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건의안을 상정해 야권 의원들의 찬성을 얻어 통과시킨 걸 문제 삼아 새누리당이 국정감사를 마비시켰을 때 비박계 인사들 또한 상당수 보조를 맞췄다. 이때 민주당 및 야당에서 국정감사를 통해 끄집어 내려고 했던 사람이 바로 최순실이었다.

이런 전력이 있기 때문에 민주당 지지층 중에는 바른정당은 한국당에 비하면 덜 골수일 뿐 한국당과 본질은 다르지 않을 거라고 믿는 사람들이 대다수다. 따라서 지금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재앙덩어리'가 되었으니 한때 박 전 대통령에게 협력했던 과거를 세탁해야 앞으로의 정치 진로가 열리므로 새누리당이라는 배를 버리고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동참했을 뿐, 이 일이 잠잠해지면 머지 않아 한국당과 재결합해 과거 19대 국회 시절의 모습으로 돌아갈 거라는 예측이 가장 힘을 많이 받고 있다. 그리고 이 예측은 일부 현실이 되기도 했다. 실제로 대선 시즌인 2017년 5월 1일 유승민 후보의 지지율이 좀처럼 오르지 않는 상황에서 홍준표 후보의 지지율이 상승세를 보이자 불안감을 느낀 바른정당 의원들이 유 후보에게 후보 단일화 압력을 넣다가 여의치 않자 무려 집단 탈당해 홍준표 후보 지지를 선언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이어서 홍준표 후보에 의해 눈칫밥 먹으며 한국당으로 돌아가는 촌극을 국민들에게 보여주면서 민주당 지지층은 "자유한국당을 청산 대상이라고 소리칠 땐 언제고 이제 와서 유승민을 버리고 홍준표와 손을 잡느냐", "역시 그 줄타기 본성이 어디 가겠느냐"며 조소를 날렸다.

그래도 보수 정치인들 중 대표적인 경제민주화론자로 알려진 이혜훈 대표 체제가 출범하면서 정부 여당에 일정 부분 협조하면서 중도보수층을 잡겠다는 스탠스를 취하고 있어 이 스탠스를 유지하는 한 어느 정도 호의적 관계가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아무래도 한국당이 홍준표 대표 체제에 들어서면서 주 지지층인 강경 보수층에게 어필하기 위해 강력한 대여 투쟁을 벌일 것이기 때문에, 여기에 끼어들기보다는 가능성을 보았던 2030세대나, 무당파 성향의 중도보수층을 공략하는 게 더 성과가 좋을 수 있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8.4. 정의당[편집]

정의당이정희가 이끌었던 민주노동당 + 유시민이 이끌었던 국민참여당 + 노회찬, 심상정 등이 이끌었던 진보신당 탈당파인 '새진보통합연대'가 손을 잡고 만든 통합진보당에서, 참여계와 새진보통합연대가 다시 갈라져 나와 만든 정당이다.[88] 원래 이름은 '진보정의당'이었지만 2013년 7월 21일 정의당으로 당명을 개정했다.

유시민, 천호선 같은 국민참여당 출신의 친노계 인사들이 소속되어 있고, 성향 면에서도 사회민주주의 정당으로 민주당의 사회자유주의와 통하는 바가 꽤 있어 두 당이 제법 가까울 것도 같지만, 따지고보면 생각보다 그렇게 밀접한 관계는 아니다. 정의당 자체가 거대 양당제를 비판하고 다당제 체제를 이끌어 내겠다는 목표를 고수하고 있어서 민주당 역시 양당 체제의 일원으로서 비판의 대상으로 보기 때문이다. 게다가 민주당의 전신인 민주통합당19대 총선통합진보당과 야권 연대를 했다가 통합진보당에서 벌인 여러 문제 때문에 크게 데이기도 했고, 좌클릭으로 인해 일정 중도층을 잃은 부분도 있었다. 그래서 민주당은 이른바 '중도층 공략'이라는 기치 아래 꾸준히 우경화 경향을 보여와서 정의당은 꾸준히 민주당의 우클릭 정책을 비판해왔다. 그래도 진보 성향을 명확히 한다는 점과 국민참여당 출신들이 많이 있다는 점 때문에 민주당은 정의당은 서로를 경쟁자로 볼 지는 모르겠으나 분명히 적으로는 보지 않는 편이다. 민주당 지지층도 정의당스스로의 힘으로 클 능력이 안 되니 그냥 양비론으로 우리를 새누리당 2중대로 몰아 점수나 따내려고만 한다며 불편하게 보는 쪽과 우리도 정의당처럼 진보 정체성을 명확히 해야한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쪽으로 나뉘어 있었다.

정의당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민주당 지지층의 경우 정의당이란 단어를 반대로 나열한 '당의정'[89]이라는 멸칭으로 부르기도 한다. 그리고 '민주노동당에서 정의당에 이르기까지, 진보 정당들이 10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해놓은 일보다, 민주당의 진보 성향 그룹인 '을지로(乙之路)위원회'가 2013년부터 지금까지 해놓은 일들이 훨씬 더 많다.'면서 진보 정당들의 능력에 대해서도 좋은 점수를 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다.[90] 그리고 바른정당과 정의당이 가까워지는 모습을 보이자 민주당의 일부 지지자들은 "저것들이 멍청하게 적폐 2중대를 응원하고 앉았네? 회색 분자 같은 것들"이라며 경멸하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민주당 지지자들 중에서 바른정당은 그나마 대화가 가능한 보수 정당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에 전부 그렇다고 보긴 힘들다.

정의당과의 후보 단일화 문제에 있어서도 '노회찬, 심상정, 조승수, 더 넓게 잡아보면 천호선정진후 말고 지역구 선거 경쟁력이 있는 사람이 정의당에 누가 있느냐. 20대 총선에서 정의당 후보로 단일화된 지역은 (노회찬 의원이 당선된) 경남 성산구 빼고 모두 지지 않았느냐'며 정의당이 민주당에게 양보하는 게 당연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더 심한 쪽은 비례대표에 올인하고 지역구 선거에는 아예 후보를 내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91] 그렇지만 정의당 내부에 노회찬 의원, 심상정 의원,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같은 탐나는 인재들이 있고 아예 당을 합치면 '피곤하게 야권 연대 같은 거 할 필요도 없어지므로' 정의당과의 합당에 그리 반대하진 않는 분위기였다. 다만 이쪽이 말하는 합당이란 양당이 똑같은 지분을 갖고 새로운 연합 정당을 만드는 그런 합당이 아니라 민주당이 정의당을 흡수하는 걸 말하는 것이다. 물론 대놓고 '흡수'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지는 않고, '20석 얻기도 버거워하는 군소 정당으로 시간을 낭비할 바에야 차라리 민주당으로 들어와 민주당에 진보 블록을 형성해 활동하는 게 더 현실적이지 않겠느냐'라는 워딩을 썼다.

반면 정의당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지지층은 정의당의 흔들림 없는 진보 정체성을 높이 평가하며 민주당도 이렇게 진보 정체성을 명확히 하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강경파가 많은 편이었다. 특히 이쪽은 민주당이 자신들의 성향과 맞지 않는 정책을 펼 때마다 정의당으로 당적 이전을 타진하기도 했었다.[92] 어찌보면 민주당이 '거대한 정의당'으로 거듭나길 바라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정의당과의 합당을 반겼으면 반겼지 반대할 이들은 아니었다. 그 외에 전태일 열사로 대표되는 노동 운동 부분에서는 민주통합당 출범 당시에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의 정신을 계승한다고 선언하면서 노동 운동의 역사를 받아들였고, 현재 더불어민주당의 강령과 정책에서도 노동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리고 민주당 소속 정치인들 중에도 노동 전문가들이 적지 않다. 그리고 전태일 열사의 여동생인 전순옥 씨가 19대 총선 당시 민주통합당 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되어서 의정 활동을 한 적도 있다.

한편, 정의당은 선거 때마다 후보 단일화나 정책 연대까지를 데드라인으로 그어놓고 그 선을 넘어갈 생각은 없다는 걸 여러 차례 보여주었다. 민주당과 정의당의 당세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차이가 크기 때문에 어떻게 합당을 하든 흡수될 수 밖에 없다는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두 당의 지지층은 국회의원 선거 때마다 지역구 후보는 단일 후보 혹은 민주당 후보에게 표를 집중시키고 비례대표 표는 정의당에 집중시키는 방향으로 새누리당을 견제해 왔었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는 각 지역구마다 민주통합당 - 통합진보당 단일 후보를 뽑아 표 분산 효과를 최소화하려고 하기도 했었다. 그래서인지 정의당은 결선투표제, 중대선거구제, 권역별 비례대표제 등의 선거제도 개편 부분에선 양당제 타파를 위해 오히려 국민의당과 연대하기도 한다.

19대 국회에서는 정의당이 5석에 불과하긴 했어도 원내 제3당의 위치에 있어서 목소리는 작을지언정 나름 존재감을 드러낼 때가 있어서 민주당이 적극적이진 않았어도 정의당과 나름 협의도 하고 그랬었는데, 20대 국회에선 그때의 정의당보다 훨씬 많은 의석으로 새로운 원내 제3당이 된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의 등장으로 민주당과의 관계가 더 멀어질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고작 6석 밖에 없어서 국회 운영에 아무런 영향력도 행사할 수 없는 정의당보다는 의석을 20석, 40석씩 갖고 있는 바른정당이나 국민의당과 이야기할 일이 더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20대 국회에서 정의당에 관한 뉴스는 참 찾아보기 어렵다. 게다가 정의당 문화예술위원회가 메갈리아 옹호 논란 사태를 자초하고 정의당 지도부가 이에 대해 또렷한 선긋기를 하지 못하면서, 이에 실망한 진보 성향의 일부 지지자들이 정의당에게 보냈던 지지를 철회해버리는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리고 정의당과의 관계를 풀어나가는 문제에 있어서도 '정의당도 경쟁자다. 같이 갈 수 있는 동반자가 아니다'라고 외쳐왔던 쪽의 발언력이 훨씬 더 강해졌다.

민주당이 은수미, 전순옥, 김광진 등 진보 성향의 인사들을 대거 영입함과 동시에 을지로위원회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기존의 진보 정당의 단독 집권 플랜이 현실성이 없다고 판단한 사람들이 민주당을 진보 정당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2012년을 기점으로 대거 입당하고 있다. 2016년에는 메갈리아 사태로 노동당, 녹색당, 정의당의 일부 당원이 입당하였고 2017년에는 정의당 심상정 후보가 대선 토론에서 홍준표와 함께 참여정부를 비판하면서 참여계[93]가 일부 입당하여 민주당이 진보 성향으로 이동할 조짐이 보이게 되었다.

9. 민주연구원[편집]

민주연구원은 더불어민주당 산하의 싱크 탱크이다.[94] 2008년 8월 27일 민주당 산하의 정책 연구소로 설립되어, 합당 등의 과정을 거쳐 현재 더불어민주당 산하에 있게되었다. 당헌에 따라 이사장직은 당대표가 맡는다. 산하에 국방안보센터, 청년정책연구소 등이 있다. 그리고 2016년 11월 4일 명칭이 '민주정책연구원'에서 '민주연구원'으로 바뀌었다.#

2016년 당대표로 선출된 추미애가 제11대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원장은 김용익 전 의원이 5대 연구원장으로 임명되었다 19대 대선에서 승리한 뒤 2017년 5월 17일 김민석 특보단장을 민주연구원의 6대 수장으로 임명했다. 상근부원장에 빅데이터 전문가인 고한석 빅토리랩 대표가 들어왔다. 비상근부원장에는 김성주 전 의원, 오기형 변호사, 조일출 수석연구위원이 임명되었다.#

10. 당 지도부[편집]

10.1. 1기 지도부[편집]

2015년 2월 8일 ~ 2016년 1월 27일

10.2. 비상대책위원회[편집]

2016년 1월 27일 ~ 2016년 8월 27일

10.3. 2기 지도부[편집]

(2016년 8월 27일 ~)
과거 김상곤 혁신위원회가 만든 대표위원제에 따라 지도부의 최고위원들이 각 시도당에서 선출된 권역별 대표위원들과 전당대회에서 선출된 직능 부문 대표위원들로 바뀌었다. 단, 명칭만 기존의 최고위원으로 변경하였고 직능 부분중 노동과 민생은 선거인단수 부족으로 추후 선출될 예정이다.

10.4. 원내 지도부[편집]

10.4.1. 19대 국회[편집]

  • 원내대표 : 이종걸[101] (2015년 5월 7일 ~ 2016년 5월 4일)

  • 정책위원회 의장 : 이목희 (2015년 12월 18일 ~ 2016년 5월 11일)

  • 원내수석부대표 : 이춘석 (2015년 5월 8일 ~ 2016년 5월 6일)

10.4.2. 20대 국회[편집]

11. 역대 주요 선거 결과[편집]

11.1. 대통령 선거[편집]

연도

선거명

대통령 후보

득표수 (득표율)

결과

2017

제19대 대통령 선거

문재인

13,423,800 (41.1%)

당선

11.2. 국회의원 선거[편집]

연도

선거명

지역구 (비율)

비례대표 (비율)

총 의석 (비율)

결과

2016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110 / 253 (43.48%)

13 / 47 (25.5%)

123 / 300 (41%)

1위

11.3. 재보궐 선거[편집]

연도

선거명

국회의원

기초자치단체장

광역자치단체의원

기초자치단체의원

결과

2017

2017년 4월 재보궐선거

0 / 1

1 / 3

1 / 7

5 / 19

2위

2017년 5월 재보궐선거

-

-

1 / 1

2 / 4

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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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존 표기는 'The Minjoo Party of Korea'. 2016년 10월 원외 민주당과 합당하면서 영어 공식 표기가 바뀌었다.[2] 선관위에 병기 등록했다. 2016년 10월 원외 민주당과 합당하면서 민주당이라는 약칭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3] 선거관리위원회에는 재창당으로 신고하였지만, 당(법인) 자체는 초기 새정치민주연합 설립부터 이어 오는 것으로 보인다. 민주통합당 시절의 고유번호(비영리단체용 납세자번호)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4] 서울 - 박원순, 대전 - 권선택, 광주 - 윤장현, 세종 - 이춘희, 강원 - 최문순, 충남 - 안희정, 충북 - 이시종, 전북 - 송하진[5] 2017년 기준[6] 2017년 7월 25일 기준[7] 지금은 의석수에 조금 차이가 있는데, 최신 정보가 나와 있지 않다.[8] 다만 2017년 들어 원내교섭단체만 4개나 되는 다당 체제가 구축되면서 교섭단체가 아닌 비교섭단체 정당까지 합치면 정의당까지 포함해 원내 5당., 거대 양당이라는 말이 좀 어색해진 감은 있다. 물론 지역 기반이나 당원 수 같은 걸 보면 아직 거대 양당 체제는 유지되고 있다는 견해도 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치명적인 타격을 입은 자유한국당도 19대 대선에서 썩어도 준치라는 것을 보여주었다.[9] 전자는 이후 민주당계 정당들 지향, 이념과 강령의 바탕이 된다는 점, 후자는 당시 모든 민주 세력의 유일 야당이자 이후에 현 집권 세력까지 이어지는 '통합'의 기원으로, 각각 내용과 형식면에서 지지를 받고 있다.[10] 이와 관련하여 '호남당'이란 소리도 많았는데, 실제로 그간 호남이 민주당계 정당의 심장부인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권노갑, 이훈평, 정대철, 정균환 전 의원 등 새정치국민회의의 중진 그룹을 형성했던 동교동계와 옛 민주계 대다수는 국민의당으로 넘어갔고, 새정치국민회의의 대변인을 맡았던 정동영 의원과 박지원 의원도 국민의당으로 넘어갔다. 또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직접 영입한 천정배 의원과 김한길 전 의원도 국민의당으로 넘어가서, 현재 더불어민주당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직계였던 사람들 중 일부만이 남아있는 상황이다. 때문에 국민의당 안티들 사이에선 저들이 나가서 호남당 이미지를 벗어났다고 오히려 쾌재를 부르기도 한다지만 호남은 민주당이 신경써야 할 요충지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11] 전체적으로 보면 자유한국당, 국민의당, 바른정당보다는 진보적이고, 정의당보다는 보수적이다.[12] 일부 좌파성향을 가진 사람들 중에서 진보 들이 메갈리아를 옹호하는 듯한 행보를 보인 것 때문에, 또는 19대 대선의 후보 토론에서 정의당 심상정 후보가 한국당 홍준표 후보와 함께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방한 것에 대한 반감으로 민주당에 대거 입당하였다.[13] 자유한국당새누리당, KEB하나은행 등과 비슷하다. 이전 새누리당한나라당, 외환은행을 계승한 것이지만 명칭 변경을 기점으로 성격이 워낙 크게 달라졌기에 분리된 것이다.[14] 따라서 새정치민주연합 창당 이후부터 더불어민주당으로 당명 개정 이전까지의 일을 알고 싶다면 새정치민주연합 문서를 참고하자.[15] 서울여의도광장 우체국이 임대하여 사용중이다.[16] 그런데 진짜로 당대표 배경으로 '더더더더'가 도배된 배경을 사용한다(…) [17] 안철수 탈당 이전부터 당명 개정 논의가 있어왔지만, 안철수 의원의 심기를 거스를까 봐 바꾸지 못했다는 것이 중론이다.[18] 해태 에이스 크래커의 아류작.[19] 한나라당에서 새누리당으로 당명이 변경될 때도 이런 진통이 있었다. 특히 한나라당이란 이름은 약 10년 넘게 쓰였던 이름이기도 했었다.[20] 실제로 과거 대통합민주신당이 민주신당을 약칭으로 등록했지만 중도통합민주당(약칭 민주당)의 유사 당명으로 인한 사용 금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이 받아들인 전례가 있다. 그래서 대통합민주신당은 부득이 약칭 없이 풀네임만 써야 했다.[21] 민나노당(다함께당), 생활의 당과 야마모토 타로와 친구들, 일본을 건강하게 하는 모임[22] 예시: 국민과 더불어민주당, 시흥시민과 더불어민주당, 부산외대 학우와 더불어민주당 등등.[23] 기사 출처 [24] 묘하게 '□' 모양이 Microsoft Windows의 창문 로고를 연상시키는데, 노린 건 아니지만 모티브 중에 '창문'도 있기 때문이라고.[25] 홈페이지 출처 [26] 실제로 이런 논조의 사설이 한경오에 실린 바가 있다.[27] 민청학련 세대 및 386세대 등[28] 시민단체 활동가 등[29] 다만, 김근태 의장의 부인이자 민주화 동지인 인재근 의원이 남편의 유지를 계승하고 있고 그와 뜻을 같이하고 지지했던 정치인들 일부가 민평련이란 당내 정파로 남아 있어 완전히 흩어지지 않고 어느 정도 동질성을 가지는 느슨한 연대를 보이면서 존재감은 유지하고 있다.[30] 박원순 등으로 대표되는[31] 이 사태로 인하여 민주당의 지지율은 40%를 상회하게 된다.[32] 자유한국당 외에는 모두 빨갱이들이라고 생각하는 전형적인 사고 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33] 참고로 20대 총선에서는 부산에서 5석, 경남에서 3석을 얻어 이 지역에서만 8석을 얻는 성과를 이뤘다.[34] 송파구에서는 일부 의석을 확보할 때가 간혹 있다. 20대 총선에서도 3개 지역구 중 2개에서 민주당이 승리했다.[35] 다만 용산구와 영등포구는 부촌만 있는 게 아니고 서민층 거주 지역도 혼재되어 있어서, 다소 밀리기는 하지만 때때로는 승리하기도 한다. 20대 총선 결과, 용산구는 옛 새누리당 소속이었던 진영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친박계의 공천 보복에 반발해 민주당으로 이적하면서 4선에 성공하였고 영등포구는 갑과 을에서 모두 민주당 후보가 당선됐다. 하지만 용산구는 전통적인 보수 강세 지역이었고, 영등포구 역시 현재는 민주당 우세라지만 그래도 전통적으로 여야가 번갈아 가며 승리했다.[36] 다만 이 지역들도 옛 새누리당계 정당이 한 때는 앞서기도 했지만, 현재는 그런 거 없고 민주당계 정당이 많이 앞선다. 2010년대 들어와서는 오히려 민주노동당, 정의당진보 계열 정당이 선전해온 지역이기도 하다.[37] 이 지역의 경우 사실상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책을 보고 뽑는 경우가 많다. 각 정당별 콘크리트 지지층이 별로 없다는 것.[38] 전두환이 제12대 대통령 선거의 후보로 나왔을 때 호남권 지지율이 높았다는 반론이 있을 수 있으나, 이는 당시 선거인단 대부분이 신군부 측의 인물이었던 명백한 '관제 선거'로서 호남권 지지세를 대표하는 근거가 되지는 못한다.[39] 88올림픽고속도로, 남해고속도로, 경전선이 그 예.[40] 물론 열린우리당 - 민주당과 더불어민주당 - 국민의당이 완전히 같은 구도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때의 새천년민주당과는 다르게 국민의당에는 예전에 한나라당(새누리당)에서 활동했던 사람들도 여럿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때는 친노 vs 비노였으나, 지금은 친문 vs 반문이다. 왜 비문이 아닌가 하면, 실질적으로 비문 인사가 민주당에 꽤 많다. 대표적으로, 지금은 친문 좌장이라 불리는 박영선 의원이 비문이고, 이낙연 총리 또한 비문계 인사였다.[41] 본래 민주당계 정당은 호남의 지지세가 강하고 영남이 약한데 20대 총선에서는 호남에서 단 3석을 얻은데 그친 반면 영남에서는 10석이나 얻었다. 즉, 민주당계 정당이 영남에서 얻은 지역구가 호남보다 3배나 더 많은 사상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더 놀라운 사실을 언급하면 20대 국회에 더불어민주당은 광주광역시 지역구는 0석이다! 민주당계 정당에게는 죽음의 땅이라는 대구광역시에서조차 2석을 확보했는데도 말이다![42] 그 결과 20대 국회에서 한국 7대 도시 중에 더불어민주당 소속 국회의원이 없는 도시는 광주광역시울산광역시가 유이하다.[43] 전라북도는 민주당 38% vs 국민의당 42%, 전라남도는 민주당 38% vs 국민의당 43%로, 의석에서는 국민의당이 크게 우세했으나 득표율 자체는 비슷했다. 다만 광주는 민주당 34% vs 국민의 당 56%로 차이가 크게 났다.[44] 리얼미터, 한국 갤럽, 리서치뷰[45] 리얼미터 더불어민주당 34.5% 국민의당 26.5%[46] 한국갤럽 더불어민주당 37% 국민의당 24%[47] 리서치뷰 여론조사[48] 예전에는 국어 로마자 표기법이 개정되기 전에 사용하던 '부산(Pusan)· 경남(Kyeongnam)'의 줄임말 'PK'를 주로 사용했다. TK와의 비교를 하는 경우에 라임을 맞추는 형식정도로 PK를 쓰기도 하나 최근에는 언론에서도 '부울경'이라는 단어가 일반화되고 있고, PK라고 쓰더라도 괄호 등으로 작게나마 부산 울산 경남 으로 병기하는 경우도 적지 않으므로 본 문서도 '부울경'으로 수정한다.[49] 3당 합당으로 탄생한 민주자유당은 이후 김영삼이 당을 장악한 뒤 신한국당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신한국당 → 한나라당 → 새누리당 → 자유한국당으로 이름이 바뀌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50] 김영삼 전 대통령의 고향인 거제시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향인 김해시도 민정계의 텃밭이었다.[51] 부산은 감소세, 울산과 경남은 소폭 증가세를 보인다. 셋을 합쳐서 보면 소폭 증가세이다. 경남에 위성 도시가 형성되면서 부산의 인구가 경남으로 빠져나가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경남 도시 지역에서 민주당 지지세가 늘어난 것도 그 일환일 갓이다.[52] 조경태는 친문계와 잦은 충돌을 벌이기도 했었고 동료 의원을 종북주의자라며 비난한다거나 비례대표제를 완전히 폐지하자고 주장하는 등 '정신적 새누리당 당원이다'이라는 말이 당 안팎으로 나올 만큼 새누리당과 색깔이 일치한 사람이었다. 그가 '원조 친노' 중 한 사람이었다는 과거를 생각하면 아이러니한 일이다.[53] 물론 민주화 인사였던 김영삼의 텃밭이었기 때문에 TK(약 10% 후반 ~ 20% 초반)보다는 민주당 계열 + 진보 계열의 득표율이 높지만(평균 30% ~ 40%), 단 1% 차이로도 떨어질 수 있는 소선거구제의 특성상, 민주당계 후보가 많이 떨어졌다. 20대 총선에서도 경남 거제시에서 출마했던 더민주 변광용 후보가 730표 차로 아깝게 낙선했었다.[54] 참고로 민주당 당선자 중에서 가장 높은 득표율을 기록한 후보가 경상남도 김해을에 출마한 김경수 후보였다(62.4%). 최다 득표율 당선자가 사지나 다름없었던 부울경에서 나온 것이다. [55] 사상구가 고향인데, 20대 총선 때는 새누리당 손수조 후보와 새누리당을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한 장제원 후보가 있어서 보수 표가 갈렸다. 물론, 본인도 이전 19대는 비례로 당선되었고, 문재인 의원의 지역구를 이어 받는 것이다 보니 지역 표심을 다지기 힘들었다는 점도 감안하며, 보수 단일 후보가 나올 경우를 생각해 많은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56] 남해군 선거에서 류경완 후보가 당선되었는데 류경완 당선자는 친 민주당 성향을 띈 인물이었다. 실제로 당선되고 난 후 조만간 민주당에 입당할 예정이다.[57] 동구와 북구에선 크게 승리하였고, 중구와 남구에서도 꽤 격차를 벌렸으며, 울주군에서는 개표 막바지까지 아슬아슬하게 지고 있었으나 마지막에 관외 사전 투표함이 열리면서 역전하였다.[58] 다른 지역은 1-2시에 특정 후보의 우세가 점쳐진 반면, 경상남도에서는 새벽 4시까지도 표차가 자꾸 줄어들며, 어느 후보라도 뚜렷한 우세를 보이지 않았다.[59] 물론 10,690표 차로 불과 0.5%다.[60] 합천군은 넓은 의미에서 대구권이기 때문에 정치적으로는 부울경권 보다는 대경권으로 볼 수 있다. 비슷한 인물로는 대구권인 경남 창녕군 출신인 홍준표.[61] 사실 박근혜가 능력이 있어서 달성군에서 내리 4선을 한 걸로는 볼 수 없다. 박정희 향수가 많이 남은 TK 지역 + 박정희의 딸 + 보수 정당 콘크리트 지역 + 대구 출신 + 노인 비율이 많은 군지역이었으니 박근혜가 떨어지면 되려 이상한 곳이었던 거다.[62] 당시 45%의 지지율로 전국 1위를 기록했다. 조봉암의 전국 지지율은 30%.[63] 이 권오을 후보도 지금은 바른정당 소속이다.[64] 포항, 구미 등의 공단, 신시가지 지역[65] 구룡포, 해평면 같은 농촌[66] 사드가 들어온 성주 롯데 스카이힐 골프장은 행정 구역상으로는 성주군에 속하나, 실질적으로는 김천시 쪽에 더 가깝다. 따라서 사드가 성주에서 김천으로 옮겨갔다고 볼 수 있으므로 이런 결과가 나왔다고 볼 여지가 있다. 그렇다고 김천시라고 결과가 크게 다른 것도 아니었지만.[67] 포스코 직원 아파트에 사는 주민들과 포스텍의 교직원과 학생들, 즉 외지인의 영향으로 그나마 민주당 계열 표가 두 자릿 수 정도로 나오는 곳이었다.[68] 대표적으로는 권선택 대전시장, 류근찬 전 의원, 이시우 전 보령시장이 있으며, 그 전에도 이미 이상민 의원, 이용희 전 의원이 19대 총선 시즌을 이용해 자리를 옮기기도 했다.[69] 천안시, 세종특별자치시, 청주시, 대전광역시 [70]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민주당의 지지세가 높은 경부선 벨트와 주변 지역은 외지인의 유입이 많은 도시 지역으로 전형적인 '우촌좌도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도농복합시의 도시와 농촌간에도 비슷한 현상을 보인다.[71] 박근혜 전 대통령의 생모인 육영수 여사의 고향이다.[72] 어느 정도였냐면, 강원도지사 후보 토론회 때 한나라당의 엄기영 후보는 MBC 뉴스데스크에서 보여줬던 것과 다르게 네거티브만 일삼고 말도 제대로 못 했다. 최문순 후보의 "사실만 말씀하시죠?"라는 질문에 "예..예? 그..그게요..그니까.."라고 답하질 않나. "사실관계만 말씀하시라구요."라고 다그치자.. 말문을 잊는 어이없는 상황을 연출하는 바람에, 엄기영은 거의 더블스코어 차이로 패배했다.[73] '친척'을 의미하는 제주도 방언. 권당(眷黨)의 발음이 변하여 궨당이 되었다고 한다.[74] 양정규 의원(6선), 현경대 의원(5선) 등.[75] 김태환 전 제주시장은 잠시 민주당 소속이었으나 이후 한나라당 등을 거쳐 도지사를 역임했고 우근민 전 제주지사는 무소속으로 도지사에 재선된 이후 새누리당으로 당적을 입당했으나 끝내 공천을 받지 못했다. 원희룡 지사는 2014년 6.4 지방선거 때 새누리당 소속으로 당선되었다.[76] 관선 2선, 민선 3선을 역임한 전직 민주당 출신 도지사 우근민이 한나라당에 입당하면서 따라서 입당한 평당원이 12,000명(!)에 달했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제주 지역 궨당 정치의 파워를 잘 알 수 있다.[77] 19대 대선 출구조사 때 20대의 지지율이 30대보다 다소 낮은 지지율을 보였는데 이는 홍준표를 제외한 안철수, 심상정, 유승민으로 표가 분산되었기 때문.[78] 참고로 부울경의 유권자 비율은 전체의 15%, 호남은 10% 정도 된다.[79] 친박 성향이 강한 중노년층들 사이에서는 조중동과 종편이 박근혜를 버렸다며 조중동과 종편을 배신자 취급 하면서 극우 성향의 카톡이나 유튜브 가짜뉴스를 선호 하기 시작 하고 있다. 물론 이게 민주당에 유리한 건 아니다. 보수 우위인 언론을 개혁 해도 스스로 보수우익 매체를 만들고 이것을 소비할 보수층도 있다는 뜻이니까. 하지만 이러한 유튜브나 가짜뉴스들은 결국 친박 지지층을 제외한 나머지 이용자들에게는 신뢰도가 매우 낮을 수 밖에 없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영향으로 친박의 확장성이 영구히 상실된 상황이라 민주당으로선 큰 위협이 되지는 못한다.[80] 왜냐하면 우파를 자처하는 새누리 계열 정당들은 집권능력이 있지만 오히려 친중행보를 보이기도 하고 안보를 미국에게 맡기는 등 우파노릇을 제대로 안하며 좌파를 자처하는 진신류정당들은 좌파노릇을 할 의지는 충만하지만 집권능력이 제로에 가깝기 때문이다. 정의당이나 그 이전 민주노동당이 그나마 민주당을 비판하면서 의석을 확대하고 수권정당으로서의 능력을 보여주었다면 그나마 다행일텐데 이들 진보정당들은 집권하겠다고 하는 일이라곤 유권자들이 멍청하다고 매도하는 일 밖에 없기 때문에 집권은 커녕 원내교섭단체도 되어본 역사가 전혀 없다.[81] 민주당 지지층은 예전에 한국당의 전신이었던 한나라당의 의원들이 모두 '친일파 재산 환수법'에 반대표를 던졌던 전적을 들어 한국당이 친일파를 대변한다고 까는 경우가 많다. 다만 친일몰이의 경우 종북몰이랑 뭐가 다르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다. 군국주의 추종자라면 문제도 있고(실제 박정희의 경우 군국주의자가 망친 일본을 자유주의자가 일으켜 세웠단 말에 반감을 보이며, 일본 군인들이 천황절대주의인게 뭐가 나쁘냐고 반문한 적도 있다고 전해진다), 재벌의 뿌리 문제나, 뉴라이트 문제 정도가 있지만, 그와 무관한 것까지 마구잡이식 친일 낙인으로 매도될 수 있다는 지적.[82] 다만 노무현 대통령은 이때 3당 합당에 반발해 YS를 떠났고 이후 여차저차해서 DJ의 밑으로 들어갔다.[83] 대표적인 케이스로 김무성을 들 수 있다. 광주의 5.18 묘역에는 일부러 밟고 가라고 땅 속에 박아놓은 전두환의 비석이 있다. 5.18 묘역을 참배하러 온 사람들은 대개 망설임 없이 밟고 지나가지만, 김무성은 머뭇거리다 끝내 비석을 비켜갔다. 반면, 그를 정계로 데려온 김영삼은 정권을 잡은 뒤 전두환을 (노태우와 더불어) 법정에 세우고 사형장으로까지 보낼 뻔했다.[84] 다만, 이런 한국당에게도 호의를 보이는 의원이 있는데, 바로 김현아 의원. 인사 독재, 야당 무시 등등의 팻말을 단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다. 사실 바른정당과 성향이 일치하는 인물인데, 20대 총선 때 새누리당 비례대표로 의원 배지를 달았기 때문에, 바른정당으로 당을 나가고 싶어도 우리나라 법에 따라 당 지도부에서 제명하지 않는 이상 비례대표 의원이 의원직을 유지한 상태에서 당적을 옮길 수는 없다. 그래서 한때 바른정당이 비례대표 의원도 의원직을 유지한 상태로 탈당할 수 있게끔 법을 고치자는 말을 꺼내기도 했었다.[85] 다만 안철수 의원의 경우 2015년 4.29 재보궐 선거에서 패배하고도 책임지지 않는 문재인 당시 대표, 불법 정치 자금 수수에 대해 유죄를 인정한 대법원 판결이 났음에도 이를 정치 탄압으로 규정하고 한명숙 전 의원에 대한 구명운동을 주장하던 당시 당내 기류(= 패권주의)와 쇄신안 거부 등이 표면적인 탈당 이유였다. 나중에 본인이 친노 진영을 비판하면서 했던 옳은 말들을 훗날 본인조차 국민의당에서 잘 안 지켰다는 게 문제였지만[86] 다만 이전 버전에는 민주당 지지층 대부분이 이런 인식을 공유한다고 써놨는데, 당연히 틀린 말이다. 노 전 대통령 추모식 당일 안철수 의원의 봉하마을 방문시 막말을 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반대로 환영한다는 플랜카드를 든 친노가 있었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애초 문재인, 김경수 의원 같은 정치인들도 SNS로 지지자들의 배타성을 경고하기도 했고, 국민의당과 연합하려는 야권 연대 기류는 지금도 나오고 있다.[87] 다만 호남에서 참패하면 정계 은퇴하겠다고 공언하고도 수도권에서 대승했다고 은퇴 약속을 번복한 문재인 전 대표에 대한 비토는 당연히 있었다. 그러나 19대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호남에서 안철수 전 의원을 61.9 : 28.2라는 압도적인 차이로 누르고 승리하면서 '호남은 안철수가 아닌 문재인을 선택했다'는 주장이 가능해졌으니 이 비난도 이제 더 이상 쓸모 없게 되어버렸다.[88] 이 세 개의 세력이 기껏 합당을 했다가 얼마 안 가 갈라선 이유는 여기에 보다 더 자세히 서술돼 있다. 항목 참조[89] 겉으로는 좋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해(害)가 될 수 있는 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90] 이 문제는 당세와 관련되어 있다. 당장 을지로 위원회에 소속되어있는 의원 수만 하더라도 정의당 전체 의원수보다 약 6배나 많은 수준이기 때문이다. 즉 정의당 혼자 할 수 없는 단독 입법이 가능하다. 이런 현실적인 부분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정의당으로 갔어도 잘 맞았을 진보 성향 인사들이 정의당으로 안 가고 민주당으로 가서 민주당 내부에 진보 진영을 구성하는 길을 선택하기도 한다. 을지로위원회도 그렇게 탄생했다고 한다. 단, 을지로위원회의 한계는 민주당 내의 조직이기 때문에 중앙당을 거스를 수 없다는 점에 있다. 하지만 2017년 5월 현재 을지로위원회 소속인 우원식 의원이 원내대표로 선출돼 기대가 커지고 있다. 이런 관계로 향후 더 진보적으로 민주당이 움직인다면 정의당은 말 그대로 2중대 신세를 면하기 힘들어질 것이다.[91] 필리버스터 등으로 인터넷상에서 인지도를 크게 높였던 정의당 박원석 의원도 고작 7.5%의 득표율 밖에 얻지 못했다. 그리고 안양시 동안구 을에서는 민주당 이정국 후보와 정의당 정진후 후보가 같이 출마했는데 이정국 후보는 39.5%의 득표율을 얻어, 41.5%의 득표율로 당선된 새누리 심재철 의원과 겨우 득표율 2% 차이로 떨어졌고, 정진후 후보는 19.0% 밖에 득표하지 못했다. 이에 관해선 정진후 후보의 득표율에 문제가 있다는 의견이 나왔는데 정진후 후보는 다른 지역과는 달리 상황이 조금 복잡하게 꼬여 있어 뭐라 단정짓기 힘들다. 자세한 사항은 정진후 항목 참고.[92] 더 찾아볼 것도 없이 정청래 전 의원이 잘렸을 때와 김종인 대표가 정의당을 아오안으로 대하는 전략을 피면서 많은 이들이 정의당으로 들어간 것을 생각하면 된다. 그게 정의당의 20대 총선 성적에는 별 플러스 효과를 가져오진 못했지만 말이다. 되려 이후에 정의당에 혼란만 가져다 주었다.[93] 정의당에 몸담고 있어서 국민참여당이나 열린우리당 시절보다 진보 성향이 강해짐.[94] 정당법에 따라 보조금 배분 대상에 속하는 정당은 의무적으로 정책연구소를 설립해야한다.[95] 엄기영 사장의 후임으로 뉴스데스크를 진행한 앵커이다. 공교롭게도 후임자인 신경민 기자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되었다.[96] 김영주는 서울 권역, 김우남은 제주 권역 대표 최고위원이다. 김우남 위원장은 김영주 위원장에게 부득이한 사정이 생겨 사퇴하였을 경우에만 최고위원직을 맡겠다고 밝혀서, 추미애 대표 체제가 유지되는 동안에는 김영주 위원장이 계속 최고위원을 맡을 것으로 보였는데 2017년 7월 1일 당초 임기대로 역할 맞교대가 이루어졌다.[97] 경기·인천 권역대표 최고위원, 1년 뒤 박남춘 인천시당위원장이 이어 맡는다.[98] 추미애 지도부가 출범했을 때 충청권 위원장인 박범계(대전), 도종환(충북), 박완주(충남) 모두 국회 간사직을 맡고 있어 최고위원까지 겸직할 수 없는 상태라서 충청권 대표들이 강원도당 위원장인 심기준 위원장에게 양보를 해주었다고 전해진다.[99] 호남 권역 대표 최고위원, 김춘진 전북도당위원장이 6개월 → 이형석 광주시당위원장이 8개월 → 이개호 전남도당위원장 10개월을 나눠 맡는다.[100] 영남 권역 대표 최고위원, 최인호 부산시당위원장 → 임대윤 대구시당위원장 → 정영훈 경남도당위원장 → 임동호 울산시당위원장이 각각 6개월 씩 나눠 맡는다. 오중기 경북도당위원장은 시도당위원장 선거 과정에서 오중기 위원장에게 50만 원이 든 돈봉투를 받았던 한 당원이 선관위에 고발을 하는 바람에 당선 인준이 보류된 상태다.[101] 2015년 12월 당무를 거부 중이었으나 다음해 1월 부로 복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