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원

최근 수정 시각:

한반도의 화폐 변천사

조선 문

조선 양

대한제국 원

조선 엔

북한 원

조선은행 원

대한민국 환

대한민국 원

대한민국 원

Korean won ₩

파일:Currency_South_Korea.jpg

ISO 4217 코드

KRW

중앙은행

한국은행

사용국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대한민국

기호

단위

₩1, ₩5, ₩10, ₩50, ₩100, ₩500
₩1000, ₩5000, ₩10,000, ₩50,000

인쇄처

한국조폐공사

1. 개요
1.1. 단위 입력하기
2. 1962년의 화폐개혁
2.1. 1차 (영제권)2.2. 2차2.3. 3차2.4. 4차 (구권)2.5. 5차 (현행권)2.6. 동전(주화)2.7. 수표
3. 등재된 인물들에 대한 논란4. 대한민국 원의 인지도5. 2,000원권 기념 지폐6. 액면 대비 가치7. 여담

1. 개요[편집]

한국은행법 제47조의2(화폐단위) ① 대한민국의 화폐단위는 원으로 한다.
② 원은 계산의 단위가 되고 100전으로 분할된다.
③ 원은 영문으로 WON으로 표기한다.
④ 전은 영문으로 JEON으로 표기한다.
[본조신설 2012.3.21.]

대한민국통화이다. 긴급통화조치법에 따라 기존의 을대체하여 통용되어 오다가, 아예 한국은행법에 명문으로 규정되었다. ISO 4217 국제표준화 화폐코드는 KRW이고, 약식 기호로는 ₩와 같이 나타낸다. 통념과는 달리 이 원(won)에 대응하는 한자는 없는데, 처음 도입 당시 圓을 썼지만 몇 차례의 화폐개혁을 거치면서 공식 한자 표기를 없앴기 때문이다(다만 지금도 관습적으로는 圓이라고 쓰는 경우가 간혹 있다). 보조단위로는 전(jeon)이 있는데, 모두들 알다시피 일상에서 사용하지 않게 된 지 오래 되었으나 환율 계산에 이용된다.가끔 마을버스 운임 어쩌고 할때도 나온다 1원, 5원짜리 동전은 은행업자들 간의 결산거래주화세트용으로만 소량씩 제작되며, 실생활에서는 10원, 50원도 거스름돈 외에는 잘 쓰이지 않는다.

전 단위의 안습한 처지에 대해 조금더 부연해보자면, 시중에서 사용할 수 있는 유효한 전 단위 대응 법정화폐가더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1] 현재 전 단위는 전산 상으로나 주고받을 수 있으며, 따라서 실생활에서는 환율이 나올 때에나 간간이 쓰인다.[2]

인플레이션은 1.6%(근원물가 기준)

1.1. 단위 입력하기[편집]

한국어 윈도에서는 \(U+005C, 역슬래시, reverse solidus)를 입력하면 반각 문자 ₩이 나오긴 하지만 다른 언어판 윈도나 다른 운영 체제에서는 그냥 역슬래시(\)로(일본어 윈도에서는 ¥으로) 나오므로 다른 방법으로 입력하는 것이 좋다. ₩(U+20A9)는 Alt + 8361(Num lock을 켜고 숫자 키패드로 입력)를 통해 입력할 수 있다. 전각 문자 ₩(U+FFE6)는 ㄹ + 한자 또는 Alt + 65510(역시 숫자 키패드로)로 입력할 수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한글 IME에서는 Alt + =으로 전각 모드로 전환한 후 \ 키를 누르면 전각문자 ₩이 나온다.

이런 것조차도 문제가 될 수 있는 환경이 있으므로 공식 서한 등에서는 통화 코드인 KRW를 사용하는 편이다.

2. 1962년의 화폐개혁[편집]

1962년부터 "원" 단위의 모든 화폐는 지금도 쓸 수 있으며, 공식적으로 한국은행 및 시중은행에서 현행권과 교환이 가능하다.[3] "전(jeon)"은 안 된다. 다만, 사용시에는 액면가 그대로로만 사용할 수 있지만, 수집가 등에게 팔면 몇십배 내지는 몇천배, 몇만배까지도 받을 수 있어서 사용하는 게 손해라는 것이 문제.

2.1. 1차 (영제권)[편집]

1962년 6월 10일,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에 발맞춰 내놓았다. 조선 엔과 달리 한자를 전혀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4] 조선 엔대한민국 환과 교환하는 비율은 1000엔=10환=1원이 된다. 이 조치 이후로 기존의 환을 전면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으나, 사용량이 폭주하는 소액권 보급에 차질이 생김에 따라(이 당시엔 원화 동전이 아직 나오지 않았다.) 예외적으로 50환과 10환 동전의 통용을 1975년 3월 21일까지 허용하였다.[5][6]

비공식 별칭은 영제(英製) 시리즈. 영국의 데라루(De La Rue)사에서 인쇄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그래서 한글 글꼴이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상당히 어색해 보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오십전은 부산교통 생각난다 디자인부터 인쇄까지 죄다 영국에서 했으니. 몰론 감수는 한국은행이 했다. 종류는 1원부터 500원까지 6종이 발행되었는데, 1원 미만(옛 1환단위)의 소액을 처리하기 위해 10전과 50전짜리 지폐[7]를 추가로 도입하여 모두 8종이 되었다. 굉장히 아담하고 뭔가 성의없어 보이는 저액권과 기본적인 구성을 갖춘 고액권의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나는 것이 특징. 한국은행권 중에선 가장 비싼 값으로 수집가들에게 거래되는 시리즈이며, 가장 비싼 것은 위에도 걸려있는 총석정 50원[8]이다.

 

앞면

뒷면

파일:attachment/대한민국 원/20130116_154953.jpg

십전, 오십전

-

파일:attachment/대한민국 원/first1.jpg

일원

-

파일:attachment/대한민국 원/first5.jpg

오원

-

파일:attachment/대한민국 원/first10.jpg

십원

-

파일:attachment/대한민국 원/korea50won.jpg

오십원

총석정[9]

봉화

파일:attachment/대한민국 원/first100.jpg

백원

독립문

봉화

파일:attachment/대한민국 원/first500.jpg

오백원

숭례문

봉화

  • 한국은행에서는 "가"시리즈로 명명하였다. 예를들면 총석정 50원은 "가 50원권".

  • 여담이지만 이 당시(60년대 중반) 물가는 쌀 1,100원/20kg가량, 쇠고기 1근 300원, 라면 1개 10원[10], 서울에 집 한채 혹은 외제차 1대 70만원 가량이었다. 또한 일부 기록에 의하면 대통령 봉급이 78,000원이었다고.

2.2. 2차[편집]

  • 2차와 3차에 속하는 지폐들의 정확한 등장 순서는 나 십원권(1962.09) → 나 백원권(1962.11) → 다 백원권(1965.08) → 나 오백원권(1966.08) → 나 오십원권(1969.03) → 가 오천원권(1972.07) → 가 만원권(1973.06) → 다 오백원(1973.09) → 가 천원권(1975.08) → 나 오천원권(1977.06) → 나 만원권(1979.06) 이다.


묶기는 2차로 묶었으나, 1차 시리즈 및 3차 시리즈와 시기가 엇갈려 있다. 주로 1970년대를 주름잡던 시리즈의 선행판 정도로 보면 된다. 신토불이의 정신으로 수입산을 버리고 국내산을 쓰자는 운동이 크게 벌여지면서 적극 도입된 결과이며, 근본적인 도입 목적이기도 하다.[11] 1966년 처음 원화 동전(1원, 5원, 10원)을 생산하면서 이전권 저액 지폐의 입지가 크게 좁아졌다. 5천원권은 영국 데라루의 원판을, 1만원권은 일본 조폐국의 원판을 사용하여 찍어냈기 때문에 둘 다 OME!!한 모습을 하고 있다. 그나마 같은 동양인이라 그런지 세종대왕님은 은근히 작화보정(...)[12]을 받았지만 율곡 이이는... 망했어요.

파일:external/namdomenu.co.kr/3697215516_8e2de666_C6F7B8CBBAAFC8AF_C3DFBEEF105.jpg

파일:attachment/대한민국 원/10000wonsample.jpg
원래 1만원권은 5천원권과 동시에 내놓을 예정이었으나 1년 늦게 등장했다. 그리고 디자인도 당초엔 달라서 앞면에는 석굴암의 본존불상, 뒷면에는 불국사가 들어갈 예정이었다. 참고로 불국사의 경우에는 복원사업 완료 이전이라 지금과 모습이 좀 다르다.

원판이 완성되고 시제품[13]을 찍어내 당시 대통령인 박정희의 재가를 받고 친필서명까지[14] 받아낸 다음 공표하였지만, 양대 종교단체 모두의 반발을 감안하지 않은 탓에 심한 반발로 무산되었다. 기독교계는 '불교만 편애한다'는 이유로, 불교계는 '신성한 불상을 세속의 상징인 돈에 올릴 수 없기 때문'에 각각 반대했다. 결국 처음부터 다시 만드느라 1년 늦게 나왔다. 하지만 이미 주문한 용지까지 폐기할 자금 여유는 없었기 때문에 그냥 인쇄되었다. 덕분에 가 만원권 왼쪽 은화의 석굴암 본존불상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관련 기사.

참고로 1천원권의 경우는 원판화를 담당하던 분이 갑작스럽게 돌아가시는 바람에 더 늦어져 내놓을 시기를 놓쳐버렸고, 나 오천원/만원이 나올 시기에야 그 모습을 드러냈다.

 

앞면

뒷면

파일:attachment/대한민국 원/_120127_001.jpg

(나) 십원[15]

첨성대

거북선

파일:attachment/대한민국 원/_120216_009.jpg

(나) 오십원

파고다공원의 팔각정[16]

봉화와 무궁화

파일:attachment/대한민국 원/_120127_013.jpg

(나) 백원

독립문

경회루

파일:attachment/대한민국 원/m-2.jpg

(나) 오백원

숭례문(남대문)

거북선

파일:추가바람.jpg

(가) 오천원

이이, 봉화

한국은행 본관

파일:추가바람.jpg

(가) 만원

세종대왕, 무궁화

경복궁의 근정전

  • 참고로 1993년 이전에는 갑을병정(甲乙丙丁)순으로 불렀다. 거기에 개정판이라면 개(改)를 붙여 개갑(...)이라는 식.

2.3. 3차[편집]

묶기는 3차로 묶었으나, 2차 시리즈와 시기가 엇갈려 있다. 주로 1970년대를 주름잡던 주요 시리즈로 보면 된다. 전반적으로 기술의 발전으로 새롭게 내놓은 성격이 강하다. 경제규모의 팽창이 점진적으로 가속화되고 오일쇼크의 영향으로 물가상승률이 높은 수준을 기록하여 원화가치가 지속적으로 떨어지면서 50원(1972년 12월 1일), 100원(1970년 11월 30일)동전이 추가되며 서서히 지폐를 밀어냈다.

2.4. 4차 (구권)[편집]

1983년에 등장한 시리즈로, 화폐체계가 완전히 정착된 시기다. 이때부터 정확히 일반인들에게 익숙한 지폐 3+1종과 동전 5+1종[17] 체계가 되었다. 지폐 자체의 재질도 다른 것으로 바꾸었고[18], 위조방지장치도 크게 강화되었다. 시각장애인 식별표식도 이때부터 달기 시작한 것.

 

앞면

뒷면

파일:attachment/대한민국 원/20130116_155355.jpg

(나) 천원

이황, 투호[19], 사슴

도산서원

파일:attachment/대한민국 원/20130116_155429.jpg

(다) 오천원

이이, 벼루[20],

오죽헌

(라) 오천원[21]

기번호(시리얼)가 다르다.[22]

(다) 만원

세종대왕, 물시계[23],

경회루

파일:attachment/대한민국 원/20130116_155514.jpg

(라) 만원[24]

앞면 여백부분에 소용돌이 무늬 추가

(마) 만원[25]

앞면 여백 소용돌이 무늬 삭제
앞면 여백 아래 점자를 금색으로 변경

구권이긴 하지만 여전히 기억하는 사람도 많고, 아주 간혹가다 시중에서 볼 수 있기도 하다. 특히 편의점 알바와 같이 돈을 많이 만지는 업종에 종사하고 있다면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다만 엄연히 회수중에 있으므로 한국은행으로 들어가면 다시는 나오지 못한다. 이곳이 사형장이로구나

2.5. 5차 (현행권)[편집]

대한민국 지폐

색상

파란색

주황색

초록색

노란색

지폐

천원

오천원

만원

오만원

전면 도안

이황

이이

세종대왕

신사임당

후면 도안

정선의 계상정거도

사임당의 초충도

혼천의, 천상분야열차지도

어몽룡의 월매도
이정의 풍죽도

크기

136mm * 68mm

142mm * 68mm

148mm * 68mm

154mm * 68mm

파일:/image/kor/contents/money/money_five_img06.jpg
사진은 5만원권의 모습.

2006년 1월 2일에 위조비율이 가장 높았던 5천원권이 처음 교체되면서 데뷔하였다.

미국 달러처럼 고풍스러웠던 이전까지의 분위기와는 다르게 밝고 시원시원해졌다. 독일 마르크화나 스위스 프랑화처럼 모더니즘 스타일로 디자인 방향이 전환되었다.[26] 굳이 따져본다면 시기는 스위스 프랑이 좀 더 빠르지만 유통된 적이 없고, 일련번호 배치 등의 레이아웃은 독일 마르크화에 더 가까운 편.

그러나 돈을 막 접했던 시기의 국민들은 이전보다 빠진 장식과 간략해진 글꼴 등에 대해 당황해하는 반응을 보였으며 비난 여론도 높았다. 당시 기준으로 봤을 때 돈이 돈답지 못하다는 것. 하지만 현대적인 디자인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2007년 1월 22일 1천/1만원권 등장, 2009년 6월 23일 5만원권 등장[27]까지 거친 이후론 이러한 디자인도 어느정도 수긍하는 분위기. 또한 사람들이 이젠 크기가 작아진 신권에 익숙해지면서 도리어 옛날 지폐가 커서 불편했다라는 반응. 적응력의 힘 하지만 일부는 여전히 글꼴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반응이 남아있긴 하다. 그리고 천원권이 푸른 색으로 바뀌면서 한동안 야간에 만원권과 헷갈리는 사단이 자주 벌어졌다. 유로를 참고했다면 좋았을 것을.

등장 당시엔 (짧지만) 호경기였는데다 20여년만의 디자인 개혁과 맞물려 대중매체에서 고가수집품에 관한 방송을 가능한한 자극적으로 틀어준 것까지 훌륭하게 콜라보레이션 되어 잠시 일반인들 사이에 수집 재테크(...) 바람이 불었다. 뭔가 그럴싸해 보이고 오래되 보이는 것이 눈에 띄면 지식포털 등에 무작정 감정부터 해달라고 징징거리는건 기본, 심지어 판매한다는 글 올리고 설레발 치는 것은 몰론, 빠른 번호가 비싸게 팔린다는 뜬소문이 퍼져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한국은행 앞에 전날부터 진치고 기다리는 진풍경까지 벌여졌었다. 흡사 코믹마켓 개장 전 모습인 마냥. 지금은 불경기가 이어지면서 확실히 가라앉은 상태. 여튼 일반인들에게 가치로서의 돈이 아닌 "화폐"라는 물건 자체에 관한 관심을 크게 키워준 시리즈다.

2014년 현재 5만원권의 회수율은 20%도 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유야 당연히 뇌물비자금의 용도로 사용되므로 그럴 수밖에...

앞면

뒷면

(다) 천원

이황, 명륜당[28], 매화

계상정거도

(마) 오천원

이이, 오죽헌(몽룡실)

신사임당의 초충도 2점

(바) 만원

세종대왕, 일월오봉도, 용비어천가

혼천의[29], 천상열차분야지도, 보현산 천문대 망원경

(가) 오만원

신사임당, 묵포도도, 초충도수병

월매도와 풍죽도[30]

2.6. 동전(주화)[편집]

공식적으로는 6종류이나, 실제로는 4종류만 쓴다. 이런 의외성으로 토막퀴즈를 낼 때 자주 이용된다.

2.7. 수표[편집]

엄밀히 따지면 화폐가 아니라 유가증권이다. 다만 사실상 현금과 마찬가지로 쓰이며, 특히 은행에서 발행하는 자기앞수표는 사실상 화폐 취급된다. 그러나 해외에서의 국내 수표는 종류를 불문하고 환전이 불가능하다.

3. 등재된 인물들에 대한 논란[편집]

백원 주화의 이순신 장군과 만원권 지폐의 세종대왕에 대해서는 이견이 거의 없지만, '이황, 이이, 신사임당이 과연 화폐에 등록이 될 만한 사람들인가?'하는 의문을 가진 사람도 많다. 나름대로 해당 분야의 위인이라는 점에는 공감해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얼굴이라는 위치에는 걸맞지 않다는 정도의 지적이다.

아직 발행되지는 않았지만 이미 2007년에 5만원권의 신사임당과 함께 차기 나올 10만원권은 백범 김구로 도안이 확정되었다.#


먼저 천원권과 오천원권에 등장하는 이황과 이이에 대해 말하자면 두 인물은 모두 유교 철학자다. 조선이면 몰라도 현대 대한민국에서 유교는 더이상 나라의 근간이 되는 이념도 아니고 깊게 다뤄지는 학문도 아니다. 주변에서 유학자를 찾아볼 수 있는가? 그런 점에서 현대에는 큰 의미를 가지지 못하는 유학자를 한 사람도 아닌 여러 명 넣을 필요가 있는가라는 의문이 들 수 있다.[31]

또한 100원 동전부터 5만원권 지폐까지 전원 조선 초중반 고작 200년 정도 되는 기간에 살았던 인물들 뿐이다.[32] 시대적으로도 몇천년 한국사가 무색하게 너무 시대적으로 편중되어있고, 무엇보다 대한민국 수립 이후에 태어났거나 활동한 사람은 한명도 없다는 문제가 있다. 과연 이 지폐들이 먼미래에 발굴된다고 하면 미래의 사람들에게 대한민국에서 통용된 화폐로 보일 수 있는가하는 의문점이 제기된다. 이 지폐들은 선정된 인물들로 보아하니 조선 후기때 통용된 화폐 같습니다. 탄소연대 측정하면 알겠지

물론 위인이나 존경할 만한 사람에 대한 평가는 그 당대에는 내리기 힘든 감이 있고, 정부 수립 이후 아직 한 세기도 지나지 않았으니 지폐에 올라갈 정도의 상징성 깊은 인물을 선정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특히 한국의 근현대 인물들은 어떤 인물을 언급하든 그 사람에 대한 논란으로 온 나라를 벌집을 쑤신 것처럼 만들기 충분하기에 선정에 까다로운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외의 여러 지폐들은 굳이 정치인이나 지도자가 아니어도, 마리 퀴리노구치 히데요같이 비정치인으로도 얼마든지 지폐 인물로 선정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그조차도 힘든 편이다.[33]

비교적 최근에 신사임당이 추가되기 전까지는 모두 이(李)씨라는 점도 지적 대상이었는데, 이 때문인지 이씨여야만 화폐 인물이 될 수 있다는 도시전설이 오랫동안 믿어지기도 했다. 그리고 신사임당조차도 오천원 이이의 어머니이자 이씨 집안 며느리. 예전엔 이승만이 초대 대통령이어서 잠깐 지폐에 얼굴에 들어가있던 시절도 있었는데, 심지어 이승만도 이씨다.

통상적으로는 논란이 되는 독립운동가들의 경우 일반적인 후보군으로 결격 사유가 많으니[34] 제한다면, 이미지 중복이라는 명분을 가지게 할만한 이황이나 이이가 빠지고 다른 이미지의 인물을 넣을만도 하겠지만, 문제는 비용이다. 우선 화폐 제조에 필요한 도안을 새로 만드는 것부터가 일인데다가 화폐를 회수하고 새로운 화폐에 대한 지침 및 홍보에 관한 돈도 많이 들어간다. 그러니 굳이 그렇게 돈을 들이면서까지 정부가 인물을 바꿀 가능성은 디노미네이션을 해서 처음부터 갈아엎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는 이상 그런 거 없다.

한 마디로 누가 들어가냐는 그저 처음에 제정한 사람들의 취향이 반영되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국회의사당 건물에 왜 이 있냐는 질문과 비슷하다.

1960년대 100환 지폐에는 조폐공사 여직원과 그 아들을 모델로 썼다. 대한민국 환 문서 참조.

평창 동계 올림픽 기념 2,000원권 지폐는 1948년도 올림픽의 한국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들이다.

평창 동계 올림픽 기념 주화(동전) 중 하나가 미국의 피겨 스케이팅 선수 그레이시 골드의 2014년 소치 동계 올림픽 경기 장면으로 만든 것이라는 논란이 일고있다.[35] 네티즌들의 의견은 사진을 직접 갖다 쓰지 않았을 뿐 트레이싱으로 보인다는 의견이 대다수이다.

4. 대한민국 원의 인지도[편집]

달러, 유로, , 파운드 등 핵심 국가들의 화폐에 비하면 당연히 밀리는 구석이 많은 화폐이며, 환율쪽에서도 환전받을 수 있는 나라 수가 저 4나라에 비하면 비교적 적은 편이다. 끝판왕인 미국 달러, 끝판왕에 도전하는 거성 유로화, 과거에 비해 명성을 잃었어도 추종자가 굉장히 많은 영국 파운드와 직접 거품이 터지기 전 까지 세계를 호령하던 엔화 이들과는 비교하기가 좀 가혹하다. 조건 자체도 열악한데 달러는 미국 경제를 기반으로 한 점에서 더 이상의 설명이 무의미하고, 파운드도 금융 강국 영국의 의외로 견실한 경제구조와 영연방 국가들과의 연계에 미국과의 핵심 동맹 체계가 결합[36]되었으며, 유로는 최근 남유럽의 막장 테크화 및 동유럽의 부실함으로 문제가 많긴 하지만 알프스 산맥 북쪽의 경제대국들[37]이 받쳐주고 있기에 무너질 가능성이 매우 낮고, 일본 엔은 그나마 나머지 3화폐보다는 가치가 크게 떨어져 있지만 그래도 잃어버린 20년을 제자리 걸음으로나마 버텨낸 일본의 건실함 및 재기 가능성에 대한 신뢰로 인해 중국 위안 등 소위 경제강국의 화폐들보다도 훨씬 좋은 평가를 받는다. 반면 한국 원은 2015년 기준 세계 11위에 불과(?)한 경제 규모, 수출 위주 경제로 인해 국제 환경의 변화에 지나치게 민감한 점 등으로 인해 그 신뢰성이 낮다. 애초에 거시경제학이나 국제금융론(경영학의 국제재무가 아닌 경제학 분야를 칭하는 것이다. 이 때는 국제거시경제학, 개방거시경제학으로서의 의미가 강하다.)에서 말하는 대규모 개방경제에 속하는 나라는 미국, 유로존, 일본, 중국 정도 뿐이다. 영국은 유로존은 아니지만 세계 금융결제의 상당액이 파운드로 이뤄졌다. 브렉시트 이후에는 그 위상이 떨어지는 듯하나 썩어도 준치라고 기축통화에 준하는 위상은 유지하고 있다.

한국 경제의 규모가 크지 않은데다 수출 위주라 불안정하며, 원화의 양도 매우 적어서[38] 달러를 제외한 나머지 통화에 대한 가치는 달러화를 통한 크로스체크, 즉 재정환율(arbitrage rate)로 결정되기 때문. 따라서 국제금융시장에서 한화는 그 동향을 신경 쓸 필요가 없으며, 달러만 보면 가격이 바로 나와버린다. 그 때문인지 한국에서 공식적으로 다루는 외화는 오로지 미국 달러뿐이었고 그 외 통화는 메이저급이라도 미국 달러를 중재로 놓고 다뤄왔고, 2014년부터는 달러 없이 원-위안화간 직거래가 시작되었다.

그렇다고 무시할 수 없는 것이, 정치-경제적 순위가 열 손가락에 들어가며 자칫하면 한국에 문제가 생길경우 외국인 투자자들도 왕창 손해본다. 예를 들어 연평도 해전 때 해외 증시를 급락시킨 걸 보면 알 수 있다. 그 외에도 한국은행이 원론적으로 외환보유고를 달러에만 집중하지 않고 다양화하겠다고 발표했을 때도 일시적이지만 국제금융시장에 큰 충격이 가서 이성태 전 한은 총재가 위의 발언을 한 다음날 바로 원론적인 선에서 말한 것이지 즉각적으로 정책으로 옮기겠단 뜻은 아니었다고 해명 아닌 해명을 한 적도 있다.경제규모가 나름 상당하기 때문에 한국에 아주아주 큰 충격이 오면 국제금융시장에 영향을 끼칠 수는 있으나 그 정도로 큰 충격은 현실에서 찾아보기 힘들다[39].

북한중국의 존재가 의외로 막강하다. 그나마 북한은 전쟁 수행 능력이 많이 약해진 데다 미국의 존재 때문에 그렇게 심각한 리스크는 아니지만[40] 문제는 중국. 지정학적으로 한반도는 중국에게 있어 심장을 노리는 단검이나 다름없기에 공격이건 방어건 언제든 차지하려 들 수밖에 없는 곳이다. 사실 단검이라고도 하지만 거꾸로 생각하면 공격 받기도 좋게 생겼다. 물론 한반도에서 미중간 전쟁이 일어나면 미국 달러등 4대 화폐도 그 가치가 크게 떨어지겠으나 승패와 무관하게 적어도 몇 년 간은 휴지조각 신세가 될 원화나 위안과는 차원이 다르다.

북한에서는 인기가 없는 편. 사실상 휴지조각인 북한 원에 비하면 한국 원은 가치는 높지만 어차피 바로바로 환전해서 사용이 가능한[41] 위안이나 미국 달러, 유로에 비하면 인기가 적으며, 중국 위안이나 달러와는 달리 한국 원은 남한과 교역이 거의 없는 수준이라 진짜 쓸 곳이 없고, 들고 있다 걸리면 요덕행 편도티켓이 되어 북한에서는 크게 인기가 없다.

국제 외환시장에서 2010년 기준으로 1.5%정도의 가치를 차지한다. 액수가 상대적으로 적다 보니 여러가지의 방법으로 원화에 대한 정부의 개입이 많으며, 이것이 정치적 이유를 띠게 되는 경우 욕을 많이 먹기도 한다. 대한민국/환율 항목 참조.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거의 모든 은행이 한국 원을 취급하지만, 수수료가 비싼 편이다. 또 외국에서 원화를 취급하는 은행이나 환전소는 많지 않고, 대부분 상당한 환전수수료를 감당해야 한다[42]. 그래서 대부분의 한국인 여행자들은 일본 여행을 할 때 한국에서 미리 바꾸면 적은 수수료로 환전할 수 있지만 돈이 다 떨어지거나 미처 환전하지 못하고 일본에 도착해서 환전하게 되면 눈물이 앞을 가로막는다. 반대로 일본 여행자들은 자국에서 미리 환전하면 수수료가 비싸므로 엔을 한국으로 가져와서 환전한다. 한편 한국에서 환전수수료가 비싼 나라 돈은(또한 그 나라에서도 한국 원 수수료가 비싸다면) 시중은행에서 해당국 화폐로 직접 환전하기보다는 명동 등지의 사설 환전소를 찾아가거나, 은행에서 환전수수료가 매우 낮은 미국 달러로 환전하여 현지에서 미국 달러를 현지 화폐로 다시 환전하는 이중환전을 하고 있다. 말하자면 범세계적인 완전한 경화(Hard Currency)급은 안되더라도 역내(域內)에서는 어느 정도 힘 있는 화폐 정도는 된다는 뜻이다. 한국어가 메이저 언어의 말석이자 마이너 언어의 선두주자인 것과 비슷한 위상인 듯.

통화선물시장이나 외환거래 제공하는 국내 은행 경우 G8(미국 달러, 유로, 일본 엔, 영국 파운드, 스위스 프랑, 스웨덴 코로나, 호주 달러, 뉴질랜드 달러)통화에 홍콩달러를 유럽식으로 표기한다. 선물시장에서는 미 달러, 유로, 엔화 거래만 유럽식 호가로 표기하며 일본이나 다른 통화 FX마진 취급하는 외국계 회사 경우 엔, 홍콩 달러 등 역내 통화대해서는 미국식 호가로 표기하여 거래 편의를 제공한다.(예 : 100원/엔= 8.9421엔)

외국계 FX마진 회사를 빼면 나마지 회사나 은행에서는 유럽식으로 계산되는데 한 예로... 스위스 1프랑 미화 환산가가 1.0314이고 미국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이 1038.45원 일때 스위스 프랑에 대한 원화에 대한 가치계산은 이렇게 된다.

1.0314(스위스 프랑에 대한 미국 달러 환산가)*1038.45(미국달러에 대한 원화 환율) = 1071.06(소수점 두번째 자리 올림 적용)이다.

5. 2,000원권 기념 지폐[편집]

6. 액면 대비 가치[편집]

이탈리아가 자국 화폐를 리라에서 유로로 전환한 이래 OECD 국가 중에선 액면 대비 가치가 가장 낮은 화폐이다. 그러니까 1원, 1달러, 1유로 등등 OECD 국가 화폐를 1씩 놓고 비교하면 그 중에 1원이 가치가 가장 낮다. 사실상 십원 이하는 시중에서 거의 쓰이지 않고 있다. 그래서 웬만한 상품들은 가격 표시가 죄다 백의 자리 이상이고, 그래서 1000:1 리디노미네이션 주장이 꾸준히 나오고 있지만 인플레이션 우려가 너무 큰데 비해 리디노미네이션을 하기에는 너무 애매한 액면이라 당분간 할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UN이나 IMF, OECD 등의 권고가 있다거나, 아니면 국민의 결정적인 요구가 있지 않는 한 계속 이 상태가 유지될 것이다. 관련 논문에서도 굳이 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이 절대 다수를 차지한다.

OECD를 넘어서 전 세계로 확대해도 원화보다 단위가치가 낮은 화폐는 20여 종 정도밖에 없다.[43]하지만 아무리 리디노미네이션을 할 필요가 없다고 해도 원화의 가치에 1000을 곱하면 달러스위스 프랑, 유로와 가치가 매우 비슷해지기 때문에, 2010년대 들어 국내 일부 관광지나 번화가의 식당이나 카페에서는 가격표에 0 세 개를 떼고 대신 k를 붙이는 경우를 볼 수 있다.(예 : 아메리카노 3000원 → 3.0k, 비빔밥 6500원 → 6.5k) 그리고 대부분은 여기서 k조차 안 붙인다. (예 : 아메리카노 3000원 → 3.0[44]) 또 그 이전부터 쓰인 줄임법으로 큰 액수를 말할 때 '만' 단위를 생략하는 경우가 있다. 10만, 혹은 100만이 넘어가는 큰 금액을 이야기할 때 '만 원' 부분을 떼어버리는 것. (예 : 통장에 7백만 원 있다. → 7백 있다. / 이 아파트는 매매가가 3억 2천만 원입니다. → 3억 2천입니다.)

7. 여담[편집]

  • 한국에서도 계산의 편의성 등을 위해 구미권 선진국에서 사용되는 2단위 화폐를 도입하자는 논의가 있기는 하지만 금방 도입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너무 급하게 도입했다가는 2000년 일본에서 2천엔권 지폐가 발행되었을 때 터졌던 문제가 재현될 수 있다. 일단은 기념 화폐 목적의 이천원권 지폐가 나오기로 결정되었다. 한국 역사상 2단위 지폐가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조선 말기와 대한제국 시기에 2단위 화폐가 통용된 적이 있었으며 미국 달러화의 쿼터(25센트)와 비슷한 두돈 오푼(2錢5分) 백동화도 통용된 적 있다.

  • 한 해 5억 장 정도의 화폐가 손상 등의 이유로 폐기되고 이로 인한 교체비용이 매해 500억 이상 든다.

  • 동아시아에서 영어가 공용어가 아닌 나라임에도 발권은행명을 영어로도 표기한 화폐이다. 예를 들면 한국은"Bank of Korea"라고 영어로 표기했지만, 일본은 "Nippon Ginko", 중국은 "Zhongguo Renmin Yinhang" 등 모두 현지어의 로마자 표기이다. 같은 방식으로 한국은행을 표기하면 "Hangugeunhaeng"[45]이 되어야 한다. 한국에서 아직까지 영어가 외국어의 지위에 있음을 생각하면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1] 현행 통화체제 발족 초기에 10전과 50전짜리 지폐가 발행된 바 있으나, 둘 다 얼마 못 가 실물화폐로서의 효력을 아예 상실하였고 기존 발행분은 모조리 휴짓조각 신세로 전락하고 만다. 요즘 공중화장실 페이퍼타월이 가치로 따지면 한 장에 2원 50전 정도 한다니 썩 적절한 비유는 아닌 것 같지만 하여튼 1원 동전과 5원 동전이 아직 유효한 것과 비교하여 보면 그저 안습일 따름.[2] 라디오 뉴스에서 환율을 이야기할때 1023원 50전과 같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은행에서 그날의 환율을 고지할 때 이렇게 소수점 두 자리까지 나타내는데, 이는 아까운 내 돈을 조금이라도 더 뜯어가려는 금융업자들의 농간 전 단위가 실물화폐로서는 가치를 잃은 것과 별개로 법적으로는 유효하기 때문에 계산에 반드시 포함시켜야 해서 그러는 것이다.[3] 몰론 외국에서 환전이 가능하지만 은행별로 환전 가능 시리즈가 있겠지만...[4] 조선 엔은 圓이라는 한자 표기가 있었으나 1962년의 원화부터 폐지했다. 그래서 일본에서 남한의 원화 단위를 표기할 때는 그냥 'ウォン'이라고 쓴다. 한자로 쓰면 '円'이 돼서 엔화와 혼동된다는 이유도 있고. 다만, 한자를 쓸 수밖에 없는 중국어권에선 '韓圓(韩圆)'이라고 쓴다. 홍콩에서는 대한제국 원, 대한민국 환 시절에 쓰던 圜이라는 한자를 살려 쓰고 있다.[5] 주화의 통용에 관한 임시조치법[6] 50환=5원, 10환=1원[7] 잔존수량이 많아 지금도 구매하기는 어렵지 않다. 무려 관봉단위로도 팔고 두 장 세트로 비싸야 2천원이면 가능하다. 웬만하면 1000원이면 팔고 있다. 회현지하상가 기준으로[8] 미사용 기준 60~100만원대. 사용제라도 어지간한 걸레가 아닌 이상 10만원 넘게는 쳐준다.[9] 한국은행권 유일하게 실물이 북한에 있는 도안이다.[10] 이 때 인스턴트 라면이 처음 나왔다.[11] 반은 농담이지만, 자존심이 어느정도 작용한 것은 사실이다. 유출되는 외화도 절약할 겸.[12] 지금의 모습이 인자한 모습이라면, 이때는 간지폭풍이었다.[13] 정식 용어로는 시쇄권이라고 한다.[14] 이 실물은 한국은행 본관 옆 화폐금융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15] 뒷면 하단 왼쪽에 발행 년도가 적혀있으면 수집가들 사이에서 고가로 거래된다.[16] 공식적으론 "파고다공원"이나, 흔히 팔각정으로 더 알려져 있다.[17] 500원 주화가 비교적 뒤늦은 1982년에 등장한 탓에 지폐와의 공존기간이 있었다.[18] 다만 초창기에는 지폐재질과 잉크의 화학적 상성이 워낙 옳지 못해서... X냄새가 코를 찌를 정도로 진동하는 바람에 "X돈"이라는 오명이 붙었다. 하지만 금방 문제를 인지하고 교체해 단순한 해프닝 수준으로 마무리되었다.[19] 장대를 멀리서 던져 항아리 속에 넣는 전통놀이[20] 그냥 판대기처럼 보이지만, 서예할 때 쓰는 그 벼루다. 도안의 실물은 바로 오죽헌에 전시되어 있는 율곡 선생이 쓰시던 벼루.[21] 2002년 개정판[22] 다 오천원은 "가가 0000000 가" 순이나 라 오천원은 "0000000 가가가" 순이다.[23] 1994년 개정판부터는 이 물시계 밑바닥에 "한국은행"이라 깨알같이 쓰여 있다. 이를 미세문자라고 한다.[24] 1994년 개정판[25] 2000년 개정판[26] 사실 시기적으로 봤을 때 대한민국 현행권과 비슷한 스타일의 스위스 프랑이나 독일 마르크화는 10년 이상 빠르게 나온 디자인이었고 특히 한국 화폐가 바뀔 당시의 스위스 현행권은 그보다 한층 더 파격적인 스타일이었다. 다만 이건 스위스나 네덜란드 같은 나라가 빠르게 변하는 것이었고 당시 유로 및 비슷한 디자인의 영국 파운드 등의 변화 시기를 생각하면 한국도 적당한 시기에 늦지 않게 변화했다고 할 수 있다.[27] 이걸로 화폐 인물군이 조선시대를 벗어나지 못함(1백-충무공이순신, 1천-퇴계이황, 5천-율곡이이, 1만-세종대왕)은 물론, 유명인 모자가 나란히 지폐에 들어가게 되었다. 신사임당아들 잘 둔 덕분에 도 제치고 최고액 화폐에 등장하였다.[28] 성균관대에 있는 그것이다.[29] 원래는 혼천시계를 그릴려 했는데 너무 육중한 몸매...때문에 혼천의만 분리해서 그려놓았다. 그런데 하필이면 Made in China라서 논란이 되었다. 실물은 고려대박물관에 있다.[30] 신사임당 작품이 아니다. 각각 어몽룡과 이정의 작품.[31] 그나마 이이의 경우 경장론을 내세워 조선 사회 전반에 개혁을 시도하려 했으니 퇴계 이황보다야 낫겠지만... 이황의 자리에 그래도 굳이 성리학자이며 이황과 관계된 인물을 넣어야 한다면 차라리 이황의 제자인 류성룡이 나을지도 모른다.어찌되었든 나름 성리학 부분에서 학자이기도 하면서도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공이 있으니 넣는다고 해서 굳이 어색할것도 없다.[32] 대한민국 원에 있는 인물들 5명 중 가장 먼저 태어난 인물은 1397년에 태어난 세종대왕이고 마지막에 사망한 인물은 이순신 장군으로 1598년에 전사했다.[33] 위 두 인물 중, 마리 퀴리는 옛 프랑스 프랑화 지폐에 등장하지만 폴란드 태생이고 노구치 히데요는 일본 엔 지폐에 지금도 등장하나 인물 자체로는 여러 논란이 많은 편이다. 우리나라였으면 어느 쪽이든 적절 여부 논란으로 인해 지폐에 오르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34] 화폐에는 국제적으로 민감한 인물은 집어넣지 않는데다가, 국내적으로 봐도 정치색까지 개입되어 시끄러워진다.[35] 한국은행 “평창 기념주화, 특정 선수 표현한 것 아냐” 2017-03-14 http://hubnews.co.kr/m/3/view.php?hnsmc=3&hnsnd=2017031415524451739.3&rv=idx_2017031415524451739_3[36] 일각에서 일본이나 이스라엘 등을 거론하는데 미국에게 있어서 반드시 지켜야 하는 핵심동맹국은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4개국 뿐이다(5개의 눈). 나머지는 필요하면 언제든 버릴 수 있으며 실제로 미국은 지정학적인 상황에 따라 이스라엘조차 외면한 적, 아니 이스라엘을 완전히 갈아버리려고 한 적도 있다.[37] 특히 독일.[38] 무역결제 대금, 외환거래시장에서 거래되는 비율 200%대비 1.5%로로 세계 10위[39] 단 북한과 중국의 존재로 인한 위협은 상시 존재한다는 문제가 있기는 하다. 북한이야 한국을 침공할 능력이 없다시피하니 제쳐둔다고 해도 중국은 북한의 위협과는 차원이 다를 뿐더러 현재는 반중감정이 상당히 두드러져 있는 실정이라 마냥 안심하긴 이르다. 거기다가 미국이 아니었다면 손봐줬을 나라란 험악한 말을 했던 전과도 있으니. 그리고 결정적으로 중국은 대한민국 주도의 통일에 대해 몹시 부정적인 태도를 견지하는 국가이다.[40] 선제타격이 성공할 경우 한국 측 민간인 피해가 거의 제로에 가까울 거라는 계산도 나오고 있다.[41] 평양에선 외화로 돈을 받는 가게들이나 식당들이 꽤 있다고 한다.[42] 다만 동남아 국가의 일부 사설환전소에서는 원화 수수료를 낮게 매겨서, 그런 환전소의 존재를 아는 한국 여행자들은 원화를 가져가서 환전하기도 한다.[43] 베네수엘라 볼리바르, 이란 리알, 베트남 동, 상투메 프린시페 도브라, 인도네시아 루피아, 기니 프랑, 라오스 킵, 북한 원, 우즈베키스탄 숨, 시에라리온 레온, 파라과이 과라니, 캄보디아 리엘, 우간다 실링, 콜롬비아 페소, 몽골 투그릭, 탄자니아 실링, 레바논 파운드, 콩고민주공화국 프랑, 미얀마 짯, 이라크 디나르 등이다.[44] 다만 한국에서는 전통적으로 네 자리마다 끊기 때문에 문맥에 따라 3.0이 3만 원을 의미할 수 도 있다. 뒤에 언급한 줄임법과도 관련 있기도.[45] Hanguk eunhaeng이 아니다. ‘한국은행’은 『표준 국어 대사전』에 한 단어로 등재되어 있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