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비서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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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대통령비서실장 (1960 ~ 2008)3. 대통령실장4. 대통령비서실장 (2013 ~ )

대통령비서실

대통령실

대통령비서실

1. 개요[편집]

말 그대로 대통령비서실의 장. '비서'라는 직함이 붙는 공무원 중 가장 높은 직급을 가졌다.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청와대의 대통령비서실이 대통령실로 개편되어 대통령실장이란 이름으로 바뀌었다. 2013년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다시 대통령비서실로 환원되었다.

대한민국 정부체계에서는 제2공화국 시절인 1960년 처음으로 설치되어, 이재형 실장이 초대 비서실장에 임명되었다. 이후 곧바로 5.16 군사정변이 발생하고 박정희 대통령이 집권해 비서실을 개편, 대통령 친정체제를 강화하는 데 사용했다. 제1공화국, 2공화국 때는 비서실 내 정해진 고유 업무가 없어 보좌관들이 비서업무를 대행하는 구조였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 때 공식적으로 비서실이 대통령 직속부서로 힘을 갖게 되었고, 비서실장 직위에 중앙정보부이후락이 임명되는 등 점차 힘이 생겼다. 초기 비서실은 박정희 정권의 민생계획 등 주요 정치 현안에 관여하기도 했다. 제4공화국 이후에는 군부세력의 힘이 더 커지면서 경호실장 차지철을 중심으로 대통령경호실이 비서실 업무에 간여해 10.26 사건 때까지는 유명무실한 존재에 가까웠다.

제6공화국이 들어선 이후 현재는 실질적인 행정부 국정의 2인자로 통한다. 명목상, 의전상의 2인자는 국무총리겠지만, 총리의 경우 실세총리가 아니라면 권력이 강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러나 비서실장은 최측근에서 대통령을 보좌하면서 권력을 대행할 수 있고, 간언을 할 수도 있다. 즉 대통령의 오른팔이다.[1] 가교 역활을 하는건 국무총리나 여야 당대표를 교섭한다

한마디로 대통령의 그림자이자 대한민국의 실세이다. 그것도, 그냥 실세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행정부 2인자라고 할 정도로.[2] 국무 총리나 다른 국무위원보다 권력이 크다.

대통령의 그림자라서 그런지 비서실장이라는 것으로 유명한 사람은 적다. 이후락중정부장, 박지원은 4선 국회의원으로 더 유명하다. 문희상도 6선 의원으로서 유명하다. 그나마 10.26에 직접 관계된 김계원, 친노의 구심점 문재인 등이 순수하게 비서실장 이력으로 유명하다. 그나마도 문재인은 이제 대통령 비서실장이 아니라 그냥 대통령으로 유명하게 되었다. 그중 엄청난 권력을 누렸던 '왕 실장'이라 불리던 김기춘이 있었는데, 박근혜의 오른팔로 인사와 정무를 전횡할 정도로 엄청난 권력을 휘둘렀다.

다만 예외(?)도 있는데 바로 이원종 비서실장. 2016년 10월 21일 청와대 국정감사 중 운영위원장 정진석 의원이 "우병우 민정수석의 국감 출석 여부를 묻고 확인전화를 하라"며 국감을 중지시켰다. 이원종 청와대 대통령비서실장이 우병우 민정수석에게 전화 후 "못 온다고 합니다" 라고 답하자, 김대중 정부 시절 비서실장을 지낸 박지원 의원이 "비서실장이 오라는데 오라고 해도 안 온다는 말이에요?" 라며 격앙된 듯한 말투로 묻자, 이원종은 “의원님[3]이 비서실장 하실 때와 요 사이는 다릅니다.” 라며 부하인 민정수석에게 사실상 먹혀있는 모습을 보였다. 역시 박근혜의 총애를 받는 실세 중의 실세 유시민은 이를 "승지와 도승지가 바뀐 꼴"이라고 비유했다.[4]

문재인 정부 때는 정책실장이 부활하여 비서실장에 몰렸던 업무가 분화되었으며, 비서실장에 수석비서관들보다도 나이가 어린 임종석을 임명하여 비서실장의 위상을 낮췄다. 물론 이렇게 낮췄다고 해도 행정부 넘버2인건 변하진 않지만.(...)

과중된 업무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공직으로 유명하다. 최장수 비서실장이었던 김정렴은 재임 중 스트레스성 탈모와 만성신경통에 시달렸는데 비서실장을 사임하면서 해당 현상이 사라졌고, 현 문재인 정부 비서실장인 임종석도 과도한 업무로 인해 한포진을 앓고 있다고 한다. 출처 그래서인지 2년을 넘겨 재임하는 게 드물다.

2. 대통령비서실장 (1960 ~ 2008)[편집]

정부

대수

이름

임기

제2공화국

초대

이재항 (李載沆)

1960년 10월 21일 ~ 1962년 4월 6일

2대

이동원 (李東元)

1962년 4월 6일 ~ 1963년 12월 6일

제3공화국

3대

이후락 (李厚洛)

1963년 12월 10일 ~ 1969년 10월 21일

4대

김정렴 (金正濂)

1969년 10월 21일 ~ 1978년 12월 22일

제4공화국

5대

김계원 (金桂元)

1978년 12월 22일 ~ 1979년 10월 30일

6대

최광수 (崔侊洙)

1979년 12월 10일 ~ 1980년 8월 27일

7대

김경원 (金瓊元)

1980년 8월 27일 ~ 1981년 12월 30일

제5공화국

8대

이범석 (李範錫)

1982년 1월 3일 ~ 1982년 6월 2일

9대

함병춘 (咸秉春)

1982년 6월 6일 ~ 1983년 10월 9일

10대

강경식 (姜慶植)

1983년 10월 15일 ~ 1985년 1월 21일

11대

이규호 (李奎浩)

1985년 1월 21일 ~ 1985년 10월 14일

12대

박영수 (朴英秀)

1985년 10월 15일 ~ 1987년 7월 13일

13대

김윤환 (金潤煥)

1987년 7월 13일 ~ 1988년 2월 24일

노태우 정부

14대

홍성철 (洪性澈)

1988년 2월 25일 ~ 1990년 3월 17일

15대

노재봉 (盧在鳳)

1990년 3월 17일 ~ 1990년 12월 27일

16대

정해창 (丁海昌)

1990년 12월 27일 ~ 1993년 2월 24일

문민정부

17대

박관용 (朴寬用)

1993년 2월 25일 ~ 1994년 12월 23일

18대

한승수 (韓昇洙)

1994년 12월 23일 ~ 1995년 12월 21일

19대

김광일 (金光一)

1995년 12월 21일 ~ 1997년 2월 28일

20대

김용태 (金瑢泰)

1997년 2월 28일 ~ 1998년 2월 24일

국민의 정부

21대

김중권 (金重權)

1998년 2월 25일 ~ 1999년 11월 23일

22대

한광옥 (韓光玉)

1999년 11월 23일 ~ 2001년 9월 10일

23대

이상주 (李相周)

2001년 9월 10일 ~ 2002년 1월 29일

24대

전윤철 (田允喆)

2002년 1월 29일 ~ 2002년 4월 15일

25대

박지원 (朴智源)

2002년 4월 15일 ~ 2003년 2월 24일

참여정부

26대

문희상 (文喜相)

2003년 2월 25일 ~ 2004년 2월 13일

27대

김우식 (金雨植)

2004년 2월 13일 ~ 2005년 8월 19일

28대

이병완 (李炳浣)

2005년 8월 25일 ~ 2007년 3월 9일

29대

문재인[5] (文在寅)

2007년 3월 12일 ~ 2008년 2월 24일

3. 대통령실장[편집]

정부

대수

이름

임기

이명박 정부

초대

류우익 (柳佑益)

2008년 2월 25일 ~ 2008년 6월 10일

2대

정정길 (鄭正佶)

2008년 6월 20일 ~ 2010년 6월 3일

3대

임태희 (任太熙)

2010년 7월 16일 ~ 2011년 11월 30일

4대

하금열 (河今烈)

2011년 12월 12일 ~ 2013년 2월 24일

박근혜 정부

5대

허태열 (許泰烈)

2013년 2월 25일 ~ 2013년 3월 22일

4. 대통령비서실장 (2013 ~ )[편집]

정부

대수

이름

임기

박근혜 정부

30대

허태열 (許泰烈)

2013년 3월 23일 ~ 2013년 8월 4일

31대

김기춘 (金淇春)

2013년 8월 5일 ~ 2015년 2월 22일

32대

이병기 (李丙琪)

2015년 3월 1일 ~ 2016년 5월 15일

33대

이원종 (李元鐘)

2016년 5월 16일 ~ 2016년 10월 30일

34대

한광옥 (韓光玉)

2016년 11월 3일 ~ 2017년 5월 9일

문재인 정부

35대

임종석 (任鍾晳)

2017년 5월 10일 ~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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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비서실장은 장관급이다.[2] 1인자는 물론 대통령이다. 물론, 명목상으론 부총리 3명과 총리가 있는데 감사원장은 권한은 강하지만 비서실장의 부하인 민정수석비서관의 인사권에 좌지우지된다. 경제부총리예산권과 경제정책권이라는 막강한 권한이 있지만 대통령과 거리가 멀고, 사회부총리는 교육과 관련된 정책 말고는 권한이 없다. 국무총리는 그저 대통령의 방패막이일 뿐이라서, 실질적으로는 비서실장이 2인자나 다름없다. 행정부 말고도 서울특별시장이나 삼성그룹 상속자(혹은 상속 예정자),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경기도지사, 국회 교섭단체 정당대표, 조중동계열 언론사 사주(또는 주필), 김앤장 법률사무소 대표 말고는 권력이 더 강한 사람을 찾아볼 수가 없다.[3] 박지원은 김대중의 비서실장이자 계파의 확실한 넘버 2였다.[4] 승지 도승지가 와닿지 않는다면, 대략 군대로 치면 대대장이 중대장에게 전화해서 '저기 지금 나오실 수 있나요?' 하며 물어보고 허가받고 나서 오는지 마는지 듣고 대답(보고)했다고 생각해보자.[5] 대통령비서실장 출신 중 유일무이하게 실제 대통령에 취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