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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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將軍箭

1. 개요2. 대중매체3.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파일:attachment/Chongtongs-Jinju_Castle.jpg
국립진주박물관의 천자총통에 장전된 대장군전. 출처


APFSDS
조선시대에 개발된 천자총통 전용 화살이자 포탄이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천자총통이 명종 대에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그 이전부터 고안되었다고 추정된다.

구조는 끄트머리에 화살촉 모양의 철혹이 있고, 세 개의 철우(날개)를 부착한 형태로 재질은 철제 또는 목제였으며 병기도감인 『화포식언해』에는 무게가 56근(33.6kg)이고 사정거리는 900보(1.4km)라고 기록되어 있다.

특히 디자인이 중세 때 만든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만큼 놀라울 정도로 현대적인 디자인이다. 외형도 마치 해성 대함미사일을 닮았다. 날개안정분리철갑탄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사실 아주 틀린말도 아닌데, 날개안정분리철갑탄이란 말을 풀어보면 가늘고 긴 포탄에 날개를 달아서 탄도를 안정화시키고(날개안정) 발사시 포탄으로부터 분리되는 송탄통에 실어 발사(분리)하여 운동에너지만으로 표적을 관통-파괴하는 탄(철갑탄)이니 말이다. 대장군전은 송탄통 없이 발사되니 날개안정철갑탄, 줄여 말하면 그냥 "날탄"이 된다. 게다가 현대적인 송탄통은 없지만 천자총통에 사용되는 격목을 사보로 번역하곤 한다는걸 감안하면 완전히 맞아 떨어지게 된다.

대장군전이 효과적이었냐는 물음에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대장군전은 대함용 물리적 타격 무기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그당시(17세기초) 해상 화약무기들은 실질적으로 대인용 무기였다. 목선의 특성상 무거운 화포 배치가 불가능했기에 10파운드 이상의 대형 철환이나 사석을 날려 함체를 파괴하는 것은 19세기가 넘어서야 가능해졌다. 때문에 함포전이라고 해도 배를 목표로 하는게 아니라 상대측 선원을 살상하거나 불을 지르거나 혹은 여러 방법으로 돛대를 부숴 상대의 기동력을 없애는 방식이었다.[1] 이러한 당시 상황과 선을 달리하는 최초의 대함 타격무기가 바로 대장군전이다. 이 대장군전은 전용화포인 천자총통의 대형화력에서 오는 추진력으로 적의 함체를 때려 선저까지 구멍을 뚫어 접현전이 개시되기 전에 배를 격침시키는 그야말로 근대적 해전을 목적으로 구상되고 만들어졌다. 이것은 접현후 육박전을 기본으로 삼는 그당시 해군 특히 일본의 해군에 커다란 심리적 압박이 되었다.[2] 실제로 이름이 '대장군'인 이유가 이 화살이 적진에 떨어지면 그 기세에 눌린 적군의 사기가 떨어지기 때문이었다고.

일본쪽 장계에 '조선군은 대들보를 뽑아 대포에 넣어 쏜다'라든가 '조선군이 쏘는 화살은 통나무만하다' 같은 말이 있는걸 보면 위압효과는 확실히 끝내줬던 것으로 볼만하다. 해군사관학교에서 재현한 대장군전이 400m 거리에서 화강암 틈새를 파고들어 80cm나 뚫고 들어갔다는 기록을 남겼는데, 이 정도면 대함 관통탄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이고 일본군이 겁을 안 먹을 수 없겠다. 게다가 물에 불으면 약해지는 삼나무를 이용한 그당시 일본의 선박은 이러한 물리적 공격에 쥐약이었다.

일본에 실물이 하나 남아있다. 안골포해전 당시 이순신에게 대패한 구키 요시타카가 전투 도중에 자신의 어린선에 맞은 대장군전을 가져간 것이 넘어간 경위이다. 이게 왜 회자가 되냐면 그 때 구키 요시타카가 이끌던 함선이 전부 격침되고 생존자들은 육로로 도주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패전 사유의 증거품으로 추측된다. 실물 사진 링크 다만 구키 가문에서는 쪽팔린 모양인지 가문 기록에선 1593년 부산 해전에서 노획했다고 적어놨다.# 정작 1593년엔 장군님이 부산에 가신 적이 없다는 것 이 대장군전은 2017년 국립진주박물관의 정유재란 7갑자 기념 전시회에 맞추어 구키 가문의 협조를 받아 국내에 전시되었다.[3]

여기에 비격전천뢰 달아놓으면 500년전 대전차 고폭탄이 된다고 한다.

2. 대중매체[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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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명량에서는 명량 해전에 선두로 나가 있던 이순신의 대장선에 일본의 구루지마가 보낸 화공선이 도달하지만 탄약이 다 떨어져 발만 동동 굴리던 차에 탄약고 옆에 기대어 있다가 툭 하고 떨어진다. 이를 비장의 카드로 마지막 한 발을 시도하지만 위력이 지나치게 강해 그냥 배를 관통해 버려서 별로 큰 타격은 없었고 그래도 관통당한 방향을 통해 화공선 안의 포로들이 보여짐으로서 스토리를 진행할 여유를 만들게 한다.

파일:external/img.bemil.chosun.com/20091201232312.jpg
조선 해군 대함미사일

사극 불멸의 이순신에서 전투에는 노량 해전에서 등장한다. 이동하던 일본 함대를 향해 매복하던 조선 함대가 쏴 명중시킴으로서 전투의 시작을 알린다. 해당 스크린샷은 극중에서 조선 수군이 전술훈련을 할때 발사한 장면이다. 실제 역사 기록에 따르면 안골포 해전 당시에 구키 요시타카의 어린선에 대장군전이 날아왔고 이를 퇴각하는 과정에서 수거해 일본군 진영으로 돌아가는 내용이 추가되어야 했으나 당시 드라마에서는 이를 묘사하지 않았다.

3. 관련 문서[편집]


[1] 실제로 임진왜란 당시 조선수군은 튼튼하고 거대한 판옥선을 성채처럼 사용하여 요새의 농성전처럼 달려드는 일본수군을 산탄으로 제압하는 전법을 사용했다. 조선수군이 천자총통이 아니라 보다 작은 사이즈인 지자총통과 현자총통을 주력으로 쓴 이유도 이 때문인데, 산탄을 끼얹는 방식으로 쇄도하는 적군을 막는다면 대형포탄 한방 쏘는 것보다는 화약을 여러 병사들에게 나누어서 사격하는 것이 훨씬 합리적인 선택이기 때문.[2] 굳이 심리적 압박이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실제 대장군전을 운용하기 위한 천자총통의 비중이 매우 작기 때문이다. 현재 학계에서는 천자총통보다 작은 사이즈인 지자총통과 현자총통을 임진왜란 당시 수군의 주력무기라 추정하고 있다. 물론 지자총통과 현자총통도 이 물건의 축소판인 장군전과 차대전을 뻥뻥 쏴댔다는 걸 생각해보면 마냥 심리적이라고만 하기엔 좀 그렇다.[3] 몸통 길이는 182㎝이며, 최대 지름 9.4㎝, 무게 10.6㎏이다. 머리 쪽에 박았던 철촉은 사라지고 없는 상태다. 철촉이 보통 10㎝ 내외인 점을 고려하면, 전체 길이는 192㎝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재질은 우리나라 남해안과 제주도 등지에서 자라는 가시나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