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일고등학교

최근 수정 시각:

이 문서는 개별 대한민국 내에 소재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초·중등교육법 제2조의 각종학교, 영재교육 진흥법 제2조의 학교, 평생교육법 제31조의 학교 형태의 평생교육기관 관련 내용을 다룹니다.

학교 관련 편집지침에 따라 모든 한국 소재 초중고교 및 그에 준하는 교육 기관 문서들은 비로그인 이용자의 편집 및 편집 요청이 제한되어 있습니다.

또한 다음에 해당되는 서술은 금지되어 있으며 이에 위배되는 내용을 작성할 시 문서 훼손으로 간주되어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 현황과 역사를 불문하고 학교 간 우열이나 서열을 확정·조장하는 서술과 학교 수준을 비하하는 서술

  • 학교 내 특정 임의 단체(급식, 매점 등)에 관한 서술

  • 언론에 보도되지 않은 학교 관련 사건·사고에 관한 서술

  • 학교 내의 교사 및 학생 등 비공인에 관한 서술

  • 템플릿:학교에 존재하지 않는 문단에 관한 서술

  • 기타 편집지침에 어긋나는 불필요한 서술

형제 법인: 서경대학원

대일고등학교
Daeil High School
大一高等學校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Daeil_High_School_logo.png

개교

1973년[1]

유형

일반계 고등학교

성별

남자고등학교

운영형태

사립학교

설립자

김성민[2]

교장

김상태

재단 이사장

김범준

재단

학교법인 대일학원

재학생 수

1179명(2018년 기준)

교직원 수

102명(2018년 기준)

소재지

서울시 강서구 등촌로 105
(등촌2동 563-2)

관할교육청

서울특별시 강서·양천교육지원청

홈페이지

1. 개요2. 학교 연혁3. 학교 생활4. 시설5. 동아리
5.1. 학술동아리5.2. 일반동아리5.3. 폐부된 동아리
6. 학업 , 입시/진학7. 사건 사고8. 대일고등학교 출신 인물
8.1. 정계 및 법조계8.2. 재계8.3. 연예계
9. 이용 가능한 대중교통
9.1. 버스 노선
10. 교가 가사11. 이야깃거리

1. 개요[편집]

파일:daeilhighview.png

대일고등학교 전경


大一高等學校. 서울특별시 강서구 등촌2동(등촌로 105)에 위치한 사립 남자고등학교.

1972년에 부실학교로 폐교 처리된 경일중·고등학교[3]의 부지와 시설을 무교동에서 맥주홀을 운영하던 김성민씨가 인수하여 성북구 정릉동에서 개교하였다. 1988년 대일외고서경대학교에 교정을 물려주고 현 강서구 등촌동 교정으로 이전하였다.

신의(信義)(Faithfulness), 헌신(獻身)(Devotion), 창의(創意)(Creativity)를 교훈으로 삼고 있다.[4] 교목은 은행나무, 교화는 개나리이다. 교색은 자주색이다. 구호는 '명문대일'이다.

2. 학교 연혁[편집]

  • 1972.09.26. 학교법인 성한학원 설립 인가

  • 1972.12.26. 대일고등학교 설립 인가 (성북구 정릉4동)

  • 1973.02.24. 초대 윤덕현 교장선생님 취임

  • 1973.03.03. 개교

  • 1975.06.28. 2대 윤양모 교장선생님 취임

  • 1979.03.02. 3대 오연근 교장선생님 취임

  • 1981.08.01. 4대 이구철 교장선생님 취임

  • 1987.08.11. 강서구 등촌동 교사 착공식

  • 1988.03.04. 강서구 등촌동 교사 이전 - 제 16회 입학식 거행

  • 1990.02.04. 정릉동 교사에서 제 14회 졸업식 거행, 등촌동 교사 최종적으로 완공

  • 1994.03.02. 5대 김용희 교장선생님 취임

  • 1995.10.06. 학교법인 성한학원에서 학교법인 대일학원으로 명칭 변경

  • 1995.03.02. 6대 김병학 교장선생님 취임

  • 1999.03.02. 7대 남호법 교장선생님 취임

  • 2005.03.02. 8대 이태준 교장선생님 취임[5]

  • 2007.03.01. 9대 임동신 교장선생님 취임

  • 2011.03.02. 10대 이우일 교장선생님 취임

  • 2016.02.04. 제 41회 졸업식 (총 졸업생수 27,456명)

  • 2016.08.26. 11대 이자욱 교장선생님 취임

  • 2018.08.30. 12대 김상태 교장선생님 취임

3. 학교 생활[편집]


대일고등학교 홍보동영상

학기 시간표

평일

등교시간

~07:55

1교시

08:20~09:10

2교시

09:20~10:10

3교시

10:20~11:10

4교시

11:20~12:10

점심식사

12:10~13:20

5교시

13:20~14:10

6교시

14:20~15:10

7교시

15:20~16:10

참고로 점심은 3학년이 먼저 먹고 2학년,1학년 순으로 먹는다.

야자 시간표

평일(월~목)

0교시

16:40~17:30

15:40~17:30

석식

17:30~18:30

17:30~18:30

1교시

18:30~20:10

18:30~20:10

2교시

20:25~22:00

20:25~22:00

4. 시설[편집]

파일:external/www.sanghaiw.com/yoon@sanghaiw.com_2334_img1_20130709110356.jpg

신의관 방면으로 촬영한 사진

학교 건물은 신의관(A동), 헌신관(B동), 창의관(강당 및 체육관), 정보과학관 등으로 구성되어있으며 운동장을 지층으로 하여 지하 2층 ~ 5층으로 이루어져있다. 정보관은 해당되지않는다.

건축 구조가 특이하다. 뒤에 산이 있고 앞은 등촌로인 배산임로의 정신이 돋보인다. 대일고 정문에 도착하면 두 개의 갈림길이라는 선택의 기로가 보인다. 그러나 등교 시엔 B동쪽 길 이용 불가능하다. 아침엔 일용할 양식을 위한 급식차가 오르락내리락하기 때문이다. 참고로 1980년대 후반에 지었으면서 예전 정릉동에서 쓰던 건물하고 똑같은 스타일로 지어놓았다.

램프길(경사로)을 올라오면 1학년과 일부 2학년이 사용하는 A동(신의관) 진입계단이 보이고 특별반 수업 혹은 자습 등 다양하게 쓰이는 대일학사, 그리고 대일고의 명물 이발소가 있다. 대일고의 역사가 궁금하다면 대일고 약 40년 복직 경험의 이발사 할아버지에게 여쭈어보는 것도 좋다.

A동 진입로 앞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1층 높이의 경사로를 걸어올라가면 A동 정문이 나오고 많은 사람들이 옥상으로 착각하는 운동장이 나온다. A동 정문 뒤쪽으로 걸어들어가면 분리수거함과 작은 농장이 나온다.

운동장은 산을 깎아 산책로처럼 조성해 놓은 대일동산과 맞닿아 있으며, 정사각형 운동장을 반띵하여 우레탄 바닥에 6개의 농구 코트가 비치되었다. 농구하기엔 좋으나 축구 할 때 골대로 핸드볼 골대를 이용하며 바닥이 우레탄이니 영 좋지 않다. 또 비가 오면 워터파크, 눈이 오면 몸개그의 장이 되어 그럴 경우 A동과 그 반대편에 있는 B동 간 이동 시간이 2~2.5배로 늘어난다. 이럴 땐 대일동산 앞쪽 배수로를 밟으며 오는 것을 추천한다.

A동에서 운동장을 건너면 B동(헌신관)이 나오는데 이곳은 주로 2학년과 3학년이 사용한다. B동에는 식당과 매점이 위치해 있다. 식당은 운동장을 1층으로 기준을 잡았을 때 지하 1층, 매점은 지하 2층에 위치해 있다. 밥줄은 식당 앞 계단 부터 운동장의 식수대 아 좀 많이 길구나 체감할 때는 대일동산까지 늘어나기도 한다. 2013년 보수 공사를 하기전에는 식수대 앞에 늘 물이 고여있었는데 부실공사로 인한 B동 옥상의 배수불량이 원인으로 발생한 현상이었다. 식당에서 한층을 더 내려가 보면 매점, 그리고 경사로쪽으로 통하는 문이 있다. 이 문은 B동 학생들이 정보관이나 체육관을 갈 때 이용한다.

A동이든 B동이든 1~5층까지 교무실과 교실, 화장실이 위치해 있으며 대강 방향만 알면 반 위치를 절대 헷갈릴 수 없는 직선형 구조로 되어 있으므로 편하다. 또 다른 학교들과 비교하여 화장실과 관리가 잘 되어 깨끗한 편이고 교실 또한 청소정신이 투철하신 선생님들께서 청소를 자주 시키시므로 청결에 대해선 걱정할 필요가 없다. 단 방충망 상태가 안 좋은 교실이 많아 여름에는 강려크한 산모기들이 러쉬하여 야자할 때 가끔 선생님들이 학생들 손에 에프킬라를 쥐어주시곤 한다. 또한 바로 옆이 산인 관계로 드물게 야생의 비둘기가 교실로 들어오기도 한다. 물론 공기 하나는 끝내주게 좋다.

하교할 때 B동쪽 경사로를 내려가면 등촌로, 배광교회와 붙어 있는 정보관[6]이 있다. 이곳에는 도서관(3층), 과학실(2층) [7][8], 독서실[겨울방학], 정보실(1층) 등이 위치해 있다. 도서관에는 의외로 도서장서량이 출충하니 자주 이용하도록 하자. 학교 선생님들의 과거 사진이 실린 앨범도 존재하기도 한다. 램프길의 고단함, 정보관으로의 이동 시 노선이 너무 길다는 문제를 제외하고는 그닥 시설을 이용하는데 문제가 없고 산과 붙어 있어 나름대로 공부하기엔 나쁘지 않은 학교이다.

2018년부터 교실 뒤쪽의 게시판을 제거하고 새 사물함이 배치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점은 청소용구함이 전 사물함과 세트인데 왜 사물함만 바꿨는지이다. 심지어 모든 교실엔 빗자루와 쓰레받기, 대걸레 3~4개가 있는데, 얼마나 오래됐는지 쓰레받기는 손잡이가 너덜너덜한게 대부분이고, 대걸레도 걸레부분이 떨어질 듯 말 듯한것이 한두개가 아니다. 아마 청소용구함과 청소도구까지 바꾸기에는 무리가 있었던듯 싶다.

5. 동아리[편집]

5.1. 학술동아리[편집]

2018년 기준

  • 즐거운 책읽기 : 독서동아리

  • MSC (수학/과학 논술 동아리) : 동아리부심이 매우 강할 정도로 이 학교 이과 학생들 중 SKY는 여기서 거의 다 배출해내는 편이며, 이과 쪽의 인재들을 IF와 양분하고 있다. 동아리 입학시험을 따로 시행한다.

  • Economia(이코노미아): 경제 토론 동아리다. 2015년 한국경제신문 경제체험대회 -교육부장관상 수상 경력이 있다. 문과 쪽 학술 동아리로는 상당히 유망한 동아리로 소문이 나 있다. 현 부장이 마치 제갈공명처럼 총명하다. 인문사회학동아리 경세제민과 양대산맥을 이루는 라이벌 관계이다.

  • 과학탐구반 I.F[10] : 과학동아리. 전기/전자/전파/물리/기계/항공과 관련된 실험과 탐구를 하고 모형 항공기를 직접 날리면서 이에 대한 이론을 파악한다. 외부대회를 가장 많이 나가는 편이며 학생부 관리도 철저하다. 신문에도 항공동아리로 기사가 난 적도 있으며인기가 많아 매번 모집인원수가 꽉 찬다. 입부하려면 어느 정도의 부담해야 할 개인비용은 있다. 2014년도에는 안양천변에서 비행기를 날리다가 간첩 신고를 당한 경력이 있다.

  • DEC (공학부) 대일고등학교 2016학년도 신설 동아리이다. 컴퓨터 프로그래밍, 라즈베리파이 등을 배운다.

  • NEXT : 로봇제작

  • 스포츠경제부(SEA)

  • 영어토론동아리 (CUSSION): 디스 없는 토론이라는 (DIS)CUSSION 의 뜻을 담고 있다. Parliamentary debate 를 기반으로 주요 토론을 1년에 3번 정도 진행하고, 자유 발표 또한 진행하고 있다. 부원들이 적긴 하지만 그만큼 관리도 잘되고 있으며, 생기부 또한 상당히 잘 써주는 동아리이다. 문과, 이과 구별 없이 자유롭게 활동하고 있다.

  • 소마쿰라우데 (소논문작성) : 이공계열 동아리이다.

  • 피케(과학토론동아리[11]): Physics and Chemistry의 줄임말. 말 그대로 물리와 화학 등 과학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이과 동아리다.

  • Eco N.E.S.T. (환경과학동아리)

  • BLC[13]: 2017년 새로 생긴 신설 생명 동아리이다. 다양한 토론과 각종 실험을 한다.

  • 경제세민(經世濟民) : 인문사회학 탐구 동아리다. 인문사회학에 대한 개인별 연구를 발표하는 것을 주로 하며, 토론도 한다. 팩트의 나열을 반대하고, 자신의 의견을 펼치는 것을 중시한다. 2018년에 면접 문제로 2016년 서울대 인문대학 면접 문제를 출제하는등, 굉장히 수준이 높은 활동을 한다. 부장이 살짝 미쳤다. 미친 만큼 천재다.

  • 영어저널반: 2017년 창설된 동아리로, 학종 대비와 최상위권 친목을 위하여 창설된 동아리로, 영어로 학기당 3~4페이지 가량의 글을 쓴다. 대학에서 보고 꼴리도록 자신의 희망학과와 관련된 심화된 내용에 대하여 쓴다. 인원이 많아 2개 반으로 나뉘어 있다.

5.2. 일반동아리[편집]

  • 봉제산에서 아침을(봉제산반) : 매주 화목 아침 7시부터 50분간 봉제산을 등산하는 동아리이다. 방학때 단체로 여행을 가기도 한다.

  • CNI (미술 동아리) : 그림을 그리는 동아리로 당연히 미술쪽 활동이 주를 이룬다. 원래 소설부원을 겸하고 있는 만화&소설 동아리로 전형적인 문예부에 가까웠으나, 학교축제때 소설 면에서는 축제 때 선보일 것이 애매하여 써먹지못할 것이라는 이유로 소설부원을 대거감축하고 그림부원들로만 운영한다.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덕후들이 모여 그림 그리는 동아리.

  • 방송반(DBS) (방송 동아리) : 방송,문화,예술,기술, PD 관련 다양한 활동을 하고 학교 방송시스템에 대한 체계를 이해한다. 축제 당일 방송제를 통한 다양한 영상 제작도 한다. 비록 다른 동아리 보다 활동 시간도 많고 힘도 많이 들지만 방송 관련쪽으로 진학을 희망한다면 방송반 만큼 철저하게 학생부를 관리해주는 동아리는 없다. 주요 활동은 점심 방송과 공지사항 안내 등 학교 전반의 방송을 관리하는 것이며. 학교 행사에 사용할 동영상이나, PPT등을 직접 만들기도 한다.

  • 대일밴드: 기타 치고 노래 부르고 드럼 치는 밴드부이다. 동아리 홍보 포스터에 진짜 그 대일밴드 반창고 이미지가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2015년 축제에선 밴드보다 초대가수가 더 인기가 많았다.

  • 마술부(VERITAS) : 대일고 축제를 재밌게 만들어 주는 마술 동아리이다. 마술에 대해 전혀 몰라도 들어가면 친절히 알려준다.

  • 미술부(ártĭfex) : 미대진학을 위한 아이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여러 정보 공유가 가능하다. 들어올 때 약간의 테스트를 거친 후 선발한다.

  • Cloud Nine(힙합부) : 대일고등학교의 힙합동아리이다.

  • 스카우트 : 학기 초 담당 선생님이 직접 스카우트 입부 제의를 하신다. 1학년들이라면 대개 미술시간에 미술실에서 이루어진다. 미술실이 부실이며 미술부의 부실은 다른 곳에 있다.

  • EXIT: 춤 동아리. 여고 같은 다른 학교 축제 때 많은 공연을 나간다. 유튜브에도 찾아보면 다른 학교로 찬조를 받아 공연하러 갔을 때의 영상이나 연습실 영상 등이 많이 있다.

  • 사진부 : 사진 관련 직업을 꿈꾸는 학생들이 모여서 출사하고 축제때는 전시회를 연다. 축제때 학교에서 지원하는 예산으로는 인화,액자를 할 수 없어 자기 돈 많이드는 동아리이다. 축제 때 조용한 분위기다.

  • 야구부: 대일고에서 제일 활기찬 활동을 하는 동아리다.들어갈 때 선발 시험을 본다. 때문에 실력 좋고 열정 많은 야구덕후들과 선생님 때문에 다른 학교와의 경기에서 많은 승리를 거두고 대회에서 좋은 성과를 내 왔다. 또한 학교 동문 선배가 넥센 히어로즈의 단장으로 재임 중이었던 까닭에 동아리 비품(스피드건, 야구공, 글러브 등)을 프로야구 팀인 넥센 히어로즈에서 지원 받은 적이 있다.

  • 열린생각부: 사회적 ,윤리적 문제를 주제로 토론 하는 동아리로 고문 담당선생님이 진보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으므로 보수적인 의견을 피력할 때에는 준비를 꽤 많이 해야 한다.

  • 일어나라(日語なら): 17년도에 신설된 일본어 단체자습동아리이다, 1학년들에 한해서 기초일본어를 가르치고 2, 3학년은 각자 자격증이나 유학시험등등의 문제집을 들고다니며 동아리시간마다 공부한다고 한다.

  • 영화 감상부: 소모임격 성격이 강했던 동아리로 2010년 '죽은 시인의 사회'를 감상하고 그에 대한 토론을 하거나 포스터를 만들어 동아리 입부 활동을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였으나 1년 만에 폐부되었다.

  • 프라모델부: 정식 승인을 받은 동아리였으며 나름 학교&구청에서 지원금을 받았었다. 이름 그대로 프라모델을 만드는 활동을 한다. 학교 축제기간에 프라모델을 전시 했으며 동아리 내에 덕들이 많다고.

  • 암벽등반부: 전 10대 대일고 교장이 2010년 까지 담당을 맡았다. 2010년 당시 교감으로 재직하고 있었으며 암벽등반 취미를 하였기에 등반 동아리를 운영하였다. 현재 역사속으로 사라진 동아리.

  • 기악부: 말 그대로 악기연주를 하는 동아리다. 특별한 아이덴티티는 없고, 여타 고등학교의 기악부와 다를 것이 없다.

  • 어쿠스틱부: 통기타를 전문적으로 치는 동아리이다.

  • 농구부: 이름 그대로 농구를 하는 동아리. 학교 운동장의 특성상 축구보다는 농구 쪽이 훨씬 적합하기에 목숨 걸고 축구에 매달릴 게 아니라면 운동 쪽으로는 이 동아리가 괜찮다.

  • 축구부: 말 그대로 축구를 하는 동아리. 운동장 특성상 체육수업시간에는 축구할 일이 없으므로 꼭 축구를 해보고 싶다면 입부를 추천한다.

  • 탁구부: ca날 밥먹고 점심시간부터 시작할 수 있다. 체육관에 여러 대의 탁구대를 설치 후 그냥 미친듯이 탁구만 한다. 단점은 2학기가 되면 2학년들이 2학기 때 탁구를 배워 탁구부 아닌 사람들도 탁구를 치러 와 자리가 없을 수도 있다.

  • 일본어 기초 학습부

  • 도서부

  • 담아 : 벽화부로 2018년 신설되었다.

5.3. 폐부된 동아리[편집]

  • 거시경제연구부 : 지금은 정년퇴직하신 선생님의 주도 하에 만들어진 4개 경제 동아리 중 하나. 2011년 창설되었으며, 해당 교사의 퇴직 이후로 폐부.

  • 미시경제연구부: 위의 동아리와 마찬가지로 같은 교사의 의해 만들어진 동아리이다. 소리소문 없이 위 동아리와 통폐합되며 사실상 사라졌다.

  • 봉신(봉사의 신) : 담당 교사가 해고되면서 폐부되었다.

  • 히스토리아: 역사 토론 동아리다. 친일문학인 작품을 교과서에 올릴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해 논의하기도 하고 박정희에 대해 토론하는 등, 진보 성향의 동아리였던 듯 하다. 창설한 지 1년만에 사라졌다.

  • N-CEO: 2014년 2월 졸업생을 마지막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경제학 동아리. New-generation Chief Economist Organization이라는 명칭을 갖고 있었다. 현직 교사가 중심이 되어 만들어진 거시, 미시 경제학 동아리와 달리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뭉쳐 만들어진 역사를 자랑했었다. 나름대로 문과 엘리트 집단을 표방하여 학력 수준이 높은 학생들을 선별한 것은 좋았으나 본래의 취지에 부합하지 않게 단순한 친목 도모의 장으로 변질되었다. 그러다보니, 스카이에 진학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는 후문.

  • 아이스하키부 : 198?~83년까지 잠시 있던 학교 공인 동호회다. 아이스하키 선수 출신 체육 교사가 부임해 있을 때 생겼다가, 지도 교사인 선생님이 전근 가면서 사라졌다. [14] 그런데 그 때 나오는 부러진 아이스키 스틱을 잘라 만든 몽둥이 때문에 폐부 후에도 재학생들이 많이 고생했다. 당시는 학생 체벌이 일상적이던 시절이었기 때문.

  • 요트부 : 요트부로 불렀지만 실제 이름은 기술부였다. 아이스하키부와 비슷한 시기에 있다가 사라진 부. 순수 교사와 학생들 힘으로 나무와 FRP로 학교 뒤뜰에서 요트를 만들었다. 신문 방송에 나기도.

6. 학업 , 입시/진학[편집]

70년대, 80년대 그러니까 서울시 고교 평준화(1974년 실시) 이후에도 서울의 신흥 명문고로 떠오르며 80년대 중반까지 한해 서울대를 50여명 SKY 대학을 100여명 이상으로 보낸 전력이 있다고 한다. 79,80년 입시에서 서울대 전체 수석 입학자도 있다고. 정계, 재계, 법조계에 대일고 출신들이 많은 것을 보면 한때 엄청난 명문고였던 것은 사실이다.1980년 1월 29일자 동아일보 - 대일고등학교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수석 입학자 6명 배출,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총 138명 합격 따라서 개교 초기 막장학교였던 같은 재단의 대일외고와는 비교할 수준이 아니었다.

하지만 80년대 후반 대일고가 대일외고 수준으로 학업수준이 올라가면서 대일외고 유지에 위협을 느낀 재단은 대일고를 강서구로 이전한 이후로 학교가 심각하게 하향평준화 되었다. 특히 90년대 초반부터 대일고의 명성을 대일외고가 이어받으면서 두 학교 사이의 격차는 하늘과 땅 차이가 됐다. 그나마 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한해에 서울대학교를 10명 내외로 꾸준히 보냈으나 2000년대 들어서는 완전히 추락. 심지어 몇 년 전까지는 이과면 반에서 5등, 문과면 반에서 2~3등 정도가 되어야 인서울이 가능했다. [15]그러나 2013년 이후로 입시에서 수시가 확대되는 추세를 따라 외부업체(대일고 출신 선배가 운영)를 통한 수시대비반을 운영하고 있으며 수시 지원을 대폭 확대시켰고 이전까지 수시 전형에 신경을 별로 안하던 학교 측에서도 다양한 대회를 만들고 학생들을 관리하고자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2000년대 중반[16] 잠시 대학 입시에서 고교 내신의 역할이 약화되고 외국어고와 과학고가 부상하면서 목동 중학교 학군이 '특목고 특화 학군'으로 떠올랐을 때 서울대 10명 내외, KY 20명 내외로 과거의 명성을 어느 정도 회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수능 등급제 직후 희대의 불수능이었던 200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앞에서 많은 학생들이 무릎을 꿇고 난 이후부터 진학실적이 점점 악화되기 시작하였다. 여기에 결정타를 먹인 것은 2011년도 고교선택제 시행 이후 목동 뒷단지의 학군 조정이었다. 이전에 대일고로 배정되던 목동 뒷단지 학생들이 백암고등학교양천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되면서 특목고 탈락생이 대일, 영일로 진학하는 비중이 공기화되었다. 그 때문에 2014학년도 입시에서는 서울대를 2명 보내는 대굴욕을 겪기도 한다. 다만 그 이후로 후배들이 분발하여 지금은 어느 정도 과거의 입시 성적을 회복한 듯 하다.

2016년 1월 15일 기준 의예과 1명 포함 서울대학교를 7명(수시 5명,정시 2명(재수생1명포함)), 연세대학교 신촌캠퍼스와 고려대학교 안암캠퍼스의 합격자 수를 합치면 40여명 정도 된다고 한다.

2017년 2월 23일 기준 치의예과 포함 서울대학교를 7명(수시 5명, 정시 2명)이 합격했다.

7. 사건 사고[편집]

  • 1975년 대일고등학교 공납급 불법 사용 사건 및 1981년 교감 음독 자살 미수 사건
    당시 언론에 크게 보도되었던 사건이다. 1972년 부실 고등학교로 폐교된 경일고등학교를 학교법인 성한학원의 김성민씨가 인수하여 대일고등학교로 변경하여 1970년대 서울의 신흥 명문고로 성장시켰다. 하지만 이면에는 서울 무교동에서 국내최초의 극장식 맥주홀 올림피아를 운영하던 재단 이사장 김성민씨가 1974년부터 대일고등학교 학교공납금을 불법적으로 빼내 개인 사업에 사용한 혐의와 탈세로 1975년 5월 1년간 징역형을 선고받았으며, 그 이후로도 학교 재단측이 학교에 불법적으로 간섭하였고 대일고에 재학중인 김성민 이사장의 아들의 내신성적을 조작하기도 하였다. 1981년 재단의 비리(학교를 개인회사처럼 운영)에 반대하는 교사들의 집단행동에 대한 인사조치에 맞서 당시 민병택교감의 자살미수사건이 발생하여 사회적인 물의를 빚기도 하였다. 81년 당시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민병택 교감은 "도를 넘어선 재단의 교권침해 행위를 더 이상 참고 견딜수 없었으며 나 하나를 희생해서라도 우리사회에 만연한 사학비리를 고치고 싶다"라고 말했다. 동일 재단 소속인 대일외국어고등학교에서도 1988년도와 1993년 대규모 비리가 적발된 적이 있다. 1993년 2월 6일 동아일보 기사에서 소개한 재단 비리

  • 재학생 사망 사건
    1978년 10월 4일에는 학교(정릉동시절) 송구(핸드볼) 골대가 넘어지면서 학생 1명이 숨지기도 했다. 1978년 경향신문 기사 은퇴하신, 스키 국가대표를 지낸 한 체육 선생님에 의하면 한 학생이 핸드볼 골대에 매달려 턱걸이를 하다가 골대가 엎어져 골대와 땅 사이에 머리가 끼어 두부가 파열한것. 그 당시에 학교에 철봉이 없던 것도 아니고 매달려 놀 곳이 없던 것도 아닌데 왜 골대에서 턱걸이를 했는지는 의아하다. 아무튼 그 이후 골대뿐만 아니라 철봉 매달리는게 한 동안 금지되었고 벌점 규정이었다. 물론 현재 철봉에는 매달려도 되지만 골대에 매달리는 것은 지금의 벌점규정으로도 처벌이 가능하다.

  • 2013년 초, 대일고를 배경으로 'EBS 공부의 왕도'가 촬영된 적이 있다. (175회)

  • 2016년 6월 서울시 교육청에서 실시한 학교 우레탄 운동장 유해성 검사에서 대일고의 우레탄 트랙이 기준치 이상의 납과 중금속이 검출되어 "사용 중지"처분을 받았다고 한다. 덮개로 트랙을 가리고 있었으며 예산이 확보되는데로 다시 시공할 예정이라고 한다. 2018년 현재 재시공 된 상태이다.

8. 대일고등학교 출신 인물[편집]

8.1. 정계 및 법조계[편집]

8.2. 재계[편집]

8.3. 연예계[편집]

9. 이용 가능한 대중교통[편집]

9.1. 버스 노선[편집]

목동시장.대일고교.배광교회

602 , 650 , 654 , 5616 , 6623 , 6629 , 6714 , 6715 , N62 , 6716

대일고등학교

6003

10. 교가 가사[편집]

70년대 대일고의 교사 남천우가 작사하였고 음악교사 장익환[17]이 작곡하였다. 대일외국어고등학교대일관광고등학교에서도 이 교가를 가져가서 사용하고 있다.[18]

파일:대일고등학교 교가.png

배달의 정기어린 북악 기슭에
우뚝이 솟아났다 대일의 웅자
나라의 별이 되고 기둥될 일꾼
한마음 한 뜻으로 여기 모였다
장하도다 우리 요람 대일고등학교
억만년 빛내리라 대일고등학교

11. 이야깃거리[편집]

대일고, 대일관광고등학교, 대일외고 설립자 김성민은 연세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한후 서울시 무교동에서 그당시 생소한 국내 최초의 극장식 맥주홀인 '올림피아'를 차리고 운영했던 사람이었다. 2호점 '빅토리아'를 개점하고 노래방, 여관, 공장까지 인수하여 단순간에 떠오르는 재벌로 취급받았다고 한다.

1988년 대일고가 강서구로 이전한 이유는 재단이 국제대학[19]를 인수하면서 대학의 부족한 교지를 채우라는 교육청의 지시가 있었기 때문이다.[20] 이에 따라 1987년 8월 김성민 이사장과 재단 이사회에서 성북구 정릉동 옛 대일고 부지를 국제대학에 넘겨주고 대일고를 이전하기로 결정하게 된다. 1987년 8월 11일 강서구 등촌동에 대일고 신축공사에 들어가고 1988년 3월 4일 이전을 완료했다. 이후 1989년 대일외고와 대일고가 대일학원으로, 서경대학교가 국제대학원으로 재단이 분리되었다.[21]

2011년 오세훈 전 서울시장 2014년 정운찬 전 총리(이분은 대일고 출신은 아니다)를 초빙하여 강연을 열기도 하는 등 의외로 정치권과 정부에서 일하는 선배 및 관계자들이 많다.[22]

학교 안에 매점이 존재하지만 대로 건너편의 GS25 와 대일마트/서점(구: 패밀리마트)을 이용하는 학생들이 많다.

운동장이 학교 옥상에 위치해 있다. 때문에 가끔 축구공이 옥상을 넘어 지상으로 떨어지기도 한다.

간혹 대일외고와 비교당하기도 한다. 대일외고에 계시다 오신 선생님들이 특히 그런 비교를 많이 하는 편. 사실 대일고와 대일외고는 하복이 똑같다는 거 빼고는 거의 모든 면에서 다르다. 대일외고에 무시당한다는 생각에 처음엔 기분이 나쁠 수 있지만 고3쯤 되면 다들 그냥 그러려니 하는 편.

현재의 대일고 본관 건물은 처음 계획에서 절반만 지어진 형태인데 원래 봉제산 쪽으로 건물 2개가 더 지어질 예정이었다 그리고 운동장의 크기도 지금보다 2배정도 더컸다. 그러나 재단의 여러가지 이유로 인하여 이 계획은 무산되었다고 한다. 학생수 감소로 인하여 무산되었다는 것이 대표적인 이유이다. 이러한 이유로 중앙현관이 산 옆에 붙어있다.

대일고 건물은 본관과 정보관이 어정쩡하게 배치된 형태인데, 원래는 학교 앞 배광교회 부지까지 인수하여 대일고와 대일여고를 한 부지 내에 만들 계획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배광교회 측에서 끝내 부지를 내놓지 않았고, 결국 지금의 어정쩡한 형태의 건물이 완공되게 되었다.

[1] 1988년에 정릉에서 목동으로 이전하였다. (88년 신입생을 목동에서 받았고 2~3학년은 정릉에 있었다. 최종적으로 89년 말 목동으로 완전히 이전했다.)[2] 대일고, 대일외고, 대일관광고를 설립한 성한학원(현 대일 학원)의 이사장이였다 .이사장이 연세대학교를 졸업해서 그런지 연세대와 관련한 물품(체육대회 당시 연세대 천막 등)이 학교에 얼마전까지 많았었다. 참고로 김성민 이사장은 서경대학교도 인수하여 동일 재단에 두었으나 1989년 국제대학원(현 서경대학원)으로 분리해 운영하고 있다. 현재 대일학원의 이사장은 그의 아들인 김범준이다.[3] 1968년에 개교했다가 고작 2년만인 1970년에 시설 미비 및 재단 부채 문재로 인하여 나란히 폐교되었고 학교법인도 완전히 해산되었다. 그 후 2년 이상 텅 비이었는 상태로 방치.[4] 대일외고와 같다.[5] 하나고등학교 교장으로 재임했다가 2015년 터진 비리사건으로 징계를 받아 퇴임하였다. 현재 대일고 재단인 대일학원의 감사로 재임하고 있다. 참고로 80년대 대일고 국어 담당 교사였다. 실력이 대단한 분으로, 이 분 덕에 당시 대일고에서는 다른 건 몰라도 국어 점수는 웬만한 서울의 명문고보다 훨씬 좋아서 대입 시험에서 거의 만점을 받는 학생이 수두룩하였다고 한다. 1995년부터 2002년까지 대일외국어고등학교 교장이기도 했다.[6] 정식명칭은 정보 과학관[7] 각 부 동아리와 수행평가를 제외하고는 거의 안 쓴다. 2018년 기준으로 과학탐구실험(실험)과목이 교육과정 개편으로 신설되어 수업을 이곳에서 진행한다.[8] 물리실, 지구과학실, 생물실, 화학실[겨울방학] 때 주로 이용[10] Invention & Finding[11] 담당선생님의 말로는 과학 동아리가 너무 많아서 토론을 붙였다고 한다. 토론은 거의 하지 않는다.[12] Daeil Chemistry Club.[13] Bio Learning Club[14] 당시 대한민국에 아이스하키부가 있는 고교가 거의 없던 시절이라, 기억하는 올드 아이스하키 플레이어도 있을 것이다.[15] 전성기이던 80년대 초에서 중반 졸업생까지는 반에서 70등을 하더라도 인서울이 가능했다. 그것도 한년당 15반까지 있고, 한 반에 70-80명 하던 시절에. 그러니까 경제 문제나 중도 자퇴, 입대, 이사 등 개인 사정으로 자의로 타 지역으로 가거나 진학을 포기하지 않은 경우 아니라면 100% 인 서울 대학 진학이 되었다는 무시무시한 학력이었던 것.[16] 7차 수능 시작인 2003년부터 외국어고 입학시험 금지 조치가 시행된 2009년 사이가 목동 학군의 최전성기이다. 앞단지 신목중학교와 뒷단지 목일중학교의 입시결과는 강남의 웬만한 중학교들을 듣보잡으로 만들 정도였으니.[17] (1937~1991) 예천 출신 작곡가로 아리랑 서곡 등이 유명하다. 70년대 초 잠시 대일고 교사로 재직할때 교가를 작곡하였다.[18] 가사만 대일 외국어와 대일관광고로 바꿔서 사용한다.[19]서경대학교[20]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당시 교육청의 명령은 "대일외고를 이전시키라"였다.[21] 재정은 분리되었지만, 같이 돌아간다. 대일학원과 서경대 이사장은 부자 관계다. 직원(교사)들도 왔다갔다한다.[22] 법조계도 상당하다 검사장,변호사 선배도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