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지하철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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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하철 참사

발생일

2003년 2월 18일 오전 9시 52분

유형

지하철 화재, 방화

발생 위치

대구 도시철도 1호선 중앙로역

좌표

북위 35°8709724
동경 128°5939994

사망자

192명[1]

실종자[2]

21명

부상자

151명

생존자

30명

차종

대구도시철도공사 1000호대 전동차


1. 개요2. 사건 진행
2.1. 사건 이전2.2. 사건 발생2.3. 사건 규모 확대2.4. 결과
3. 사고 이후 조치4. 관련 이야기5. 사고의 후유증6. 트리비아
6.1. 희생자들의 마지막 메시지6.2. 현장 사진과 추모 메시지6.3. 여담
7. 같이 보기8. 둘러보기

1. 개요[편집]

오늘 , 참사 D+5573일, 참사 15주기.


# 대구 지하철 참사를 보도한 연합뉴스의 유일한 1보 기사다.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라는 말만 봐서는 흔하디 흔한 단순 화재같아 보이지만...[3]

대한민국에서 철도 관련으로 가장 많은 인명 피해를 기록한 테러이자 참사로, 사망자만 192명이다. 502명이 사망한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326명이 사망한 남영호 침몰 사고, 304명이 사망[4]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 292명이 사망한 서해 페리호 침몰사고 다음으로 많다. 이것은 165명이 사망한 대연각 화재사건보다 많다. 1995년에 289명이 사망한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벌어진 지하철 화재 사망자 다음으로 세계에서 2번째로 많은 지하철 화재 희생자를 낳은 불미스런 비극이다. 이 참사가 하필이면 유동인구가 많은 봄 방학 시즌 때 일어났기 때문에, 인명피해가 더 커졌다.

2. 사건 진행[편집]

- 9시 30분
방화범 김대한방화를 목적으로 주유소에 방문하여 휘발유 7500원어치 상당을 구입한 뒤 1호선 송현역 안심방면 승강장에서 안심행 1079 열차에 탑승했다.

- 9시 52분
중앙로역에 1079열차가 도착했다.

- 9시 53분
김대한이 열차가 진입하는 순간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자신의 옷에 불이 붙자 놀란 김대한은 휘발유통을 바닥에 던졌고 수 초만에 전동차가 불길에 휩싸였다. 그 불에서 나온 검은 연기, 유독성 가스가 승강장, 대합실에 확산됐고, 승객들이 대피하기 시작하였다. 1079호 열차 기관사는 초기 화재 진압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하고 화재발생을 종합사령실에 알리지 않은채 대피했다.

- 9시 54분
1079 열차에 타고있던 40대 남성이 최초로 119에 신고하여, 삼덕파출소 등 8개 소방대가 출동했다.

- 9시 55분
중앙로역 역무원이 종합사령실에 보고했으나, 종합사령실이 119에 신고하지 않았다. 한편 1080 열차가 대구역을 출발하여 종합사령실에서 전체 열차에 "중앙로역 진입 시 조심하여 운전해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지금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라고 알렸다.


- 9시 56분
중앙로역에 1080 열차가 도착했다.

- 9시 57분
1080 열차 기관사가 운전사령에게 중앙로역 상황을 보고했다.
서문로파출소 소방대원이 도착하여 인명구조가 시작됐다.

2.1. 사건 이전[편집]

뇌졸중을 앓은 당시 56세 김대한이 자신의 신변을 비관하다 자살을 하기 위해 9시 30분경 대구광역시 달서구 송현동에 있는 송현역에서 1079호 지하철을 탔다.
한국어 위키백과당시 현장검증 기사

2.2. 사건 발생[편집]

9시 53분경, 그는 성내동 중앙로역에서 열차가 서행하는 틈을 이용해 미리 들고 있던 석유 플라스틱 통에 불을 붙이고 바닥에 던져 화재를 일으켰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불이 치솟고 아비규환이 되자 화상을 당한 뒤 공포를 느끼고 빠져나간 것으로 밝혀졌다.

다행히도 당시 1079호는 중앙로역에 정차 중이었고 많은 승객들이 열려 있던 출입문을 통해 대피할 수 있었다. 또한 1079호에 타고 있던 승객이 119로 신고를 했다.

2.3. 사건 규모 확대[편집]

1079호 기관사는 초기 진화에 실패하자 중앙통제실에 신고하지 않고 달아났고, 결국 이로 인한 지하철 사령실의 오판으로 9시 55분에 원래 역을 통과해야 했던[5] 1080호가 중앙로역 반대편 선로에 정차했다.

게다가 중앙사령부에서 119에 신고를 늦게 했고[6], 1080호 기관사가 출입문을 열어주었지만, 이후 마스터 콘트롤 키를 뽑고 탈출[7]하는 바람에 출입문이 자동으로 닫혔고 거기다 비상시 문을 수동으로 열 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8] 많은 승객들이 탈출하지 못하였고, 설상가상으로 방화 셔터가 일찍 닫히면서 나오려던 사람들도 나오지 못한 경우가 많았기에 화재가 난 1079호에 비해 훨씬 많은 인명피해를 초래하였다.

다행히도 탈출 방법을 알고 있던 사람이 몇몇 객차에 타고 있었기에, 더 이상의 인명피해는 나지 않았다. 예컨데 많은 인명피해가 난 1080호의 경우 4호 객차에 타고 있던 승객 중에는 당시 철도청 직원이었던 권춘섭 씨가 사태를 직감하고 비상 코크를 취급하여 출입문을 수동개방 하였다. #

2.4. 결과[편집]

결국 사건이 일어난지 약 3시간 이후인 오후 1시 38분경에 화재는 진압이 되었지만, 사망 192명 부상 151명, 실종 21명이라는 엄청난 피해가 났다.

이 참사의 여파로 약 8개월간 중앙로역뿐만 아니라 명덕역부터 신천역까지 6개 역의 영업이 중단되었으며, 전 구간이 영업을 재개할 때까지 1년이 조금 못 되는 시간이 걸렸다. 이 때문에 약 1~2년 동안 대구 지하철의 이용객은 반 이상 감소했다. 또한 중앙로역 구조물 안전문제가 제기되어, 중앙네거리 국채보상로 교차점을 제외한 중앙대로 대구역 - 반월당 구간이 전면 통제됐다. 이로 인해 시내버스들은 계산오거리 혹은 봉산육거리로 우회 운행했으며, 402번같은 경우는 아예 북성로 구간을 포기하고 한때 한일극장으로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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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이 사고로 열차는 완전히 불에 타 뼈대만 남았고 중앙로역 천장과 벽에 설치된 환풍기, 철길 바깥쪽 지붕들도 모두 녹아내려 역 구내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바뀌었다. 사고 뒤 공개된 차량 내부는 시꺼먼 재와 철골만 남아있어 사고 당시의 참상을 잘 대변한다.
희생자의 대부분은 직접적인 화상보다는 유독가스에 의한 질식으로 사망했다고 추정되지만, 그렇다 해도 불에 타버리는 바람에 유해들은 형체도 못 알아볼 만큼 처참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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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사고 이후 조치[편집]

사고 다음날 정부는 대구를 특별 재난 지역으로 선포하였으나 사고 직후 대구광역시와 지하철 종사자들이 사고를 축소, 은폐하고 사고 열차들을 차량기지로 가져와서 대대적으로 물청소를 시키는 등 현장과 증거들을 훼손하는 부실한 대응으로 더 큰 충격을 주었다.

방화범과 지하철 관련자 8명이 구속, 기소되었다.[9]

서울지하철이고 부산지하철이고 할 것 없이 부랴부랴 차량과 시스템을 뜯어 고치기 시작했다. 서울에서 당시 굴러다니던 차량들은 유독성 가스의 원인으로 지목된 의자 시트를 전부 뜯어내고 은색 쇠 시트로 바꾸었으며 그 이후로 제작하는 신형 차량들의 경우에는 내연재가 사용된 시트가 채택되었다. 서울도시철도공사의 경우 나중에 내연 시트를 쇠 시트 위에 덧붙였다. 현재 2호선과 4호선은 쇠 시트로 전면 교체되었다.[10]

전국 지하철 내의 '테마열차' 투입이 거의 없어졌다. 이전만 해도 지하철에서는 가끔 특수하게 책을 끼워서 이동하는 도서관 열차나 불교 장식을 한 봉축열차를 운행한다거나 하여튼 별의별 신기한 한정 열차를 굴렸었지만, 이 사건 이후로 이쪽도 불에 취약하다는 분석이 나온 탓인지 사건이 일어난 뒤 한동안 테마열차 운행이 거의 없었다. 그나마 세월이 지나면서 경의중앙선도서관 열차와 같이 테마열차가 재등장하고 있기는 하지만, 사건 이전만큼은 못하다. 주로 외관이나 내부에 간단히 스티커만 붙이는 정도다.

역사 인테리어에서도 인공암반 소재를사용한 모든 도시철도역(e.g. 구 충무로역)의 인공암반을 철거 리모델링 하는 데 간접적인 영향력이 컸다. 인공암반이 화재시 유해물질 발생한다는것이 큰 이유고 울퉁불퉁한 구조로 인해 연기로 인한 시야가 없는 상황에서 머리를 부딪히는등 2차 피해 우려는 덤.

유사 상황을 가정한 대피훈련이 정기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객실 내, 역사 내 안내 방송과 안내 영상으로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매우 체계적이고 상세하게 알려주고 있다. 승객들의 인식 수준도 높아졌고 출입문 수동 개폐 요령이나 소화기 사용 방법등에 대해서도 전보다 더 잘 알게 되었다.
이전에 매우 작게 안내되어 있던 비상시 문 개방 방법도 크게 문이나 문 바로 옆 좌석 위에 붙게 되었다. 서울지하철에서는 운행 시간 중 일부를 할애하여 특정 역에 지하철을 멈추고 타고 있던 승객들에게 수동 개방 방법을 시연하고 직접 체험할 수 있게 하기도 했다.[11] 이후 설치되는 스크린도어에도 비상 개방 레버를 크고 눈에 띄기 쉬운 색으로 만들고 비상시 사용할 수 있음을 알리는 문구를 붙였고 화재를 대비해 방독면과 산소통, 손전등이 다수 비치되었다. 화재시 비상 탈출 경로 안내문도 추가로 역마다 부착되었다. 플랫폼의 영상장비에는 역에 비상 정차했을 때나 터널에서 비상 정차했을 때 탈출하는 방법 영상을 주기적으로 상영해주고 있다.

한편, 참사가 발생한 대구 지하철은 역내 안전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예를 들어 승객들이 승강장의 안전선 밖으로 넘어가거나 안전펜스에 손을 대는 행위를 엄금하고 있다. 그런 상황이 발생할 경우 승강장을 순찰 중이던 공익근무요원이 즉각 제지한다. 공익근무요원이 없을 경우 역무실에서 방송을 통해 제지한다. 그러나 작정하고 사고를 일으키는 사람[12]은 즉시 제지할 수 없기 때문에 스크린도어 확충이 필요하다. 2017년 현재 대구 도시철도의 전 역사에 모두 스크린도어가 설치되었다.[13]

지하역사의 스크린도어의 경우 우리나라의 역사들이 건설된 것이 스크린도어가 도입되기 이전이었기 때문에 제연(除燃)설비가 승강장 상부에서 공기를 공급하고, 하단의 선로 쪽에 공기를 빨아들이고 외부로 배출하는 방식[14]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스크린도어를 설치하게 되면 연기를 승강장과 선로로 분리, 격리는 가능하게 되지만 승강장에서는 외부 공기를 공급하기만 하고 발생하는 연기를 역사 외부로 배출하는 일이 불가능하게 된다. 또 반대로 선로에서는 공기를 그냥 빨아들이기만하는데 흔히 생각하기에는 공기를 외부로 빨아당기면 끝인거 아닌가 싶지만 그렇게 되면 공기의 압이 낮아져서 연기가 외부로 빨려가는 량이 적어지므로 비효율적이며, 정상적인 제연설비는 효율성을 위해 외부공기를 공급하고, 연기를 배출하는 두 개가 한 세트로 병행되어야 한다. 그래서 일부 역사의 스크린도어의 경우 상단부가 완전히 밀폐되지 않은 경우도 있다.[15] 이 점이 사쿠라기초 사고를 겪은 일본이 스크린도어를 적극적으로 설치하지 않거나, 설치하더라도 난간형 형태만 고집하는 이유라고들 한다.

이 점을 감안했는지 대구지하철의 스크린도어 내부(열차측) 비상개폐 레버는 어두워진 상태에서도 식별이 쉽도록 형광색으로 되어있고 비상 개방 방법에 대한 표지가 A4 반절 수준으로 일반 종이 형태로 손잡이 옆에 작게 붙어있는 서울교통공사 등지와 달리 상당히 눈에 잘 띄고 형광색으로 비교적 크게 붙어있다.

현재 운영중인 모든 철도 회사들에는 잊지말자 대구 지하철 참사라는 글이 사무실,공문,포스터 등에 항상 들어가 있다. 그야말로 대형 참사에다가 승무원이 도주한 것까지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항상 교육시간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 소재이다.

4. 관련 이야기[편집]

5. 사고의 후유증[편집]

살아남은 사람들도 가스 노출에 의한 후유증으로 평생을 고생하며 살아야 한다. 가스 자체의 유독 성분도 문제지만 고열의 가스로 인해 피부와 호흡기에 상당한 화상을 입었다고 한다. 그리고 설사 몸에 아무런 이상 없이 무사히 빠져나온 사람들이라 해도 후일담을 다룬 다큐멘터리에 의하면 목숨이 왔다갔다 했던 당시의 충격 때문에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 고생하고 있다. 그렇기에 사고 희생자들과 그에 관계된 유족들은 지금도 이 사고를 잊지 못하고 있으며 생존자들은 대부분 사고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충격으로 자살하거나 정신 이상을 일으킨 사람, 울화병으로 사망에 이른 사람 등도 적지 않았다. 그리고 당사자들이 아닌 대구 시민들 중에서도 지금도 대놓고 도시철도를 기피하는 사람들도 있다.

6. 트리비아[편집]

  • 당시 뉴스를 보면 사고가 난 후 다른 사람들이 우왕좌왕 하는 사이에 지하철 창문을 깨고 나가거나 선로를 따라 인근 역으로 가서 나간 사람들도 있었는데 이쪽은 거의 모두 부상 하나 없이 무사히 탈출했다.[16] 사고가 일어난 이후 시간이 흐른 지금은 화재 흔적 같은 것은 이미 사라진 상태지만[17] 사고 당시부터 2년 6개월을 넘는 시간 동안 해당 역 근방의 지하도 전체에 굉장한 어떻다고 표현을 하기 힘든 냄새가 흘러넘쳤으며 그와 함께 통행인의 수는 매우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이후로도 여러 가지 면에서 문제가 있어 보이는 일들이 있다고 추정된다. 귀신을 봤다는 이야기같은 것은 당연하고 지하도는 상당한 시간 동안 스산한 분위기에 유동 인구마저 상당히 줄어드는 등 여러 가지로 참사의 흔적이 이어졌다.

  • 피의자 김대한은 당시 화상을 입어 달아나던 중 북구 노원동3가의 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범죄 사실이 드러나 검거, 구속되었다. 그는 마치 정신 이상처럼 굴려는 듯 진술이 뒤죽박죽이었으며, 정신이상자가 저지른 사고라는 기사가 나오면서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편견을 부채질하는 거 아닌가 우려도 나왔지만 정신과 의사들의 판단에 의하면 정신이상은 아니라고 했다. 또한 심신장애도 없었다고 한다. 결국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고 항소하여 2심에서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상고는 포기하고 교도소 안에서도 횡설수설했다고 한다. 그리고 진주교도소로 이감됐다가, 2004년 8월 30일 지병인 호흡 곤란과 뇌졸중으로 급사했다.

  • 김대한은 2001년 뇌졸중으로 쓰러져 오른쪽 상반신, 하반신 모두 장애가 와서 지적장애 2급 판정을 받았다. 김대한의 방화 사유는 심한 우울증 후 정신 질환이 심해진 데 따른 판단력 상실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대한의 아들은 대구 중부경찰서에 출두하여 '아버지가 심한 우울증을 앓았으며 남의 말도 잘 알아듣지 못하는 등 정신적으로 심한 문제가 있었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지병인 뇌졸중으로 인한 울분을 방화로 토한 사건이라는 분석도 있어 방화 사유에 대한 의견은 아직도 분분하다. 김대한의 직계 가족은 사건 이후 곧 경북 지역을 떠났다. 친척들도 이쪽 집안은 아예 없는 사람 취급한다고.

  • 2013년 2월 15일, 김범일 대구시장은 참사 10주기를 앞두고 대시민 담화문을 발표하여 위로의 말을 전한 뒤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안전한 도시를 만들 것을 약속했다. #

  • 참사 10주기가 되는 날인 2013년 2월 18일, 대구 각지에선 추모 행사가 열렸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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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사 12주기 추모벽이 중앙로 역 지하 2층에 마련되었다고 한다. 국민성금 5억 2000만원을 들여 길이 27m, 폭 3m, 340㎡ 넓이로 조성되었으며, 추모 공간은 희생자들의 이름이 적힌 추모벽과 사건 당시 불에 그을린 벽과 그리고 화재의 열기에 수화기가 녹아내린 공중전화, 당시에 있었던 매점, 혈압측정기, 지하철 사물함, ATM기와 희생자의 유류품 등도 전시하고 있다.

  • 이 사고로 인해 PTSD라는 질병을 양지에서 공론화되었다. 물론 5.18 민주화운동이나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처럼 PTSD 환자가 많이 발생한 사건사고는 많았지만, 정신건강의학과(당시 신경정신과) 상담 자체가 터부시되고 의지드립이 난무하던 분위기상, 피해자는 상처를 숨겨야 했다. 하지만 이 사고로 인해 PTSD에 대한 관심도가 급증하여 후대의 참사 처리에 있어 PTSD 치료는 외적 부상 치료 이후에 반드시 행해지는 치료로 자리잡았다.

  • 2007년 감우성, 최강희 주연의 옴니버스 영화 내 사랑에서는 대구 지하철 참사를 직접적으로 연상시키는 사고 장면이 나온다.

  • 홍승우비빔툰에도 이와 관련된 8행시를 그리는 에피소드가 연재되었는데 단행본으로는 5권에 실려있다.

  • 윤인완이 스토리를 쓰고 김지혁, 유현, 변병준, 최경아, 서문다미, NANO, 요요 등이 작화를 맡은 단편집 문화 컨텐츠의 이해 (2010) 2부 "동화" (작화: 변병준) 편은 최면 치료를 받고 당시의 기억을 지워버린 대구 지하철 참사 피해자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이 작품을 통해 실제 사건을 컨텐츠화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 네이버 웹툰 기타맨 59-마지막화에 이를 소재로 한 내용이 나온다.#

  • 사건이 일어나고 얼마 되지 않아서 스타크래프트 유즈맵에서도 대구 지하철 탈출이라는 게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학교 탈출 같은 것과 같은 방식으로 뒤에서 방화범(파이어뱃) 역할의 플레이어가 쫓아오고 나머지 사람들은 건물과 미네랄을 뚫고 도착 지점까지 가는 것(...)으로 지금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 국산 쯔꾸르 게임 동결세계의 주 배경이기도 하다.

  • 2014년 8월에 대구광역시의 한 취객이 문재인 당시 의원을 죽이러 간다고 경찰에 전화를 걸었다가 검거되는 사건이 있었다. 문재인 의원이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을 위해선 열심히 뛰면서 정작 대구 지하철 참사가 일어났을 때에는 신경쓰지 않았다는 게 그 이유였는데, 사실 문재인 대통령은 대구 지하철 참사가 발생했을 때 유족들을 도왔다. 다만 알려지지 않았을 뿐.
    이 사건으로 부모님을 잃었던 유족 박성찬 씨가 2016년 2월 문재인 당시 전 대표의 경상남도 양산시 자택을 방문해 그를 만나고 SNS에 남긴 글이 공개되면서 그 사실이 세상에 알려졌다. 기사

  • 이 사고와는 직접적으로 관련은 없지만, 가사에서 이 사고를 연상케 하는 분위기로[19] 한 때 대구 지하철 참사 추모식 행사에도 추모곡용도로 쓰여서 유명해진 노래가 지금도 가끔 추모곡 용도로도 들리곤 하는 M.C The Max1집 음반의 후속곡인 <마지막 내 숨소리>라는 곡이다.

  • 기관사는 5년 복역을 마친 뒤 출소하고 다시는 전동차에 오르지 않을 것이라 밝혔다. 기사

6.1. 희생자들의 마지막 메시지[편집]

「잘 잤어요. 여긴 날씨 맑음. 오늘 하루 보고 싶어도 쬐금만 참아요.」

  • 사고 발생 7분 전(오전 9시 46분) 예비 신부 송혜정 씨가 예비 신랑 이호용 씨에게 보낸 문자메시지

"...좀 있으면 중앙로역을 지난다. 곧 갈게. 조금만 기다려."

  • 오전 9시 50분, 서동민씨가 선배 송두수 씨에게 한 통화기록 중

"지금 지하철인데 거의 사무실에 도착했어./저녁밥 맛있게 준비해 놓을 테니깐 오늘 빨리 퇴근해요!"

  • 사고 발생 4분 전(오전 9시 49분) 김인옥 씨가 남편 이홍원 씨에게 한 통화기록 중

"여보, 여보! 불이 났는데 문이 안 열려요. 숨을 못 쉬겠어요. 살려줘요... 여보 사랑해요, 애들 보고 싶어!"

  • 사고 발생 8분 후(오전 10시 01분) 통화기록 중

"지현아 나 죽어가고 있어. 나를 위해 기도해줘."

  • 개신교 모임 강사 허현 씨가 강사 강지현 씨에게

"엄마가 여기 와도 못 들어와!"

  • 오전 9시 54분(사고 발생 1분 후), 대학생 딸이 어머니 김귀순 씨에게 한 통화기록 중

"아... 안 돼... 안 돼!"

  • 오전 9시 58분(사고 발생 5분 후), 이현진 양이 어머니에게. [20]

"불이 났어. 나 먼저 하늘나라 간다."

  • 김창제 씨가 부인에게

"엄마 지하철에 불이 났어."
"영아야, 정신 차려야 돼."
"엄마 숨을 못 쉬겠어."
"영아, 영아, 영아..."
"숨이 차서 더 이상 통화를 못하겠어. 엄마 그만 전화해."
"영아야, 제발 엄마 얼굴을 떠올려 봐."
"엄마 사랑해..."

  • 장계순 씨와 딸 이선영 씨의 마지막 휴대전화 통화 내용

"어무이! 지하철에 불이 나 난리라예."
"뭐하노, 빨리 나온나."
"못 나갈 것 같아예. 저 죽지 싶어예. 어머이 애들 잘 좀 키워주이소."

  • 아들 박정순 씨가 노모 황점자 씨에게. 이날 그는 직장을 얻으러 가는 중이었다.

"열차에 불이 났다. 살아나갈 수 없을 것 같으니 꿋꿋하게 살아라."

  • 어머니 최금자 씨가 아들에게

"공부 열심히 하고 착하게 커야 해. 아빠가 미안해."

"오늘 아침에 화내고 나와서 미안해. 진심이 아니었어. 자기야 사랑해 영원히"

"오빠 없어도 밥 꼬박꼬박 챙겨 먹고 부모님 말씀 잘 듣고… 알겠냐. 그리고 기다리지마 나 안간다."

6.2. 현장 사진과 추모 메시지[편집]

팔공산에 위치한 대구광역시 시민안전테마파크에는 당시 불에 탄 1079호 전동차 몇 량이 있다. 그리고 이곳에서 사건을 가정해서 인체에 무해한 짙은 연기를 뿌려놓고 당시의 사건을 체험할 수 있다. 사족으로 대구경북지방병무청 소속의 사회복무요원이 소양교육을 받을 때 두 반 중 한 반이 이곳으로 견학을 간다. 나머지 한 반은 포스코로 가는 듯하다.

2013년 2월 7일에는 대구도시철도공사 임직원들이 참사 10주기를 앞두고 대구광역시 시민안전테마파크에 방문했다. 대구도시철도공사가 지난 10년간 중앙로역 화재 참사와 관련된 공식적인 활동을 자제한 것을 생각하면 이례적이다. 대구도시철도 3호선 개통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안전을 중시해야 한다는 의도가 담겨있다. 관련 기사

파일:attachment/대구 지하철 참사/info00716.jpg

6.3. 여담[편집]

일간베스트저장소디시인사이드 등지에서는 대구를 비하할 의도로 불에 탄 사건희생자들을 통구이로 빗대거나, 사건용의자인 김대한을 통구이요리사인 머한셰프라 지칭하는 지역드립이 있다.

2017년 일본 오다큐 전철 오다와라선에서 비슷한 사고가 날 뻔 했다. 다행히도 전원 무사히 대피하였고, 조기대응에 성공하여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7. 같이 보기[편집]

8. 둘러보기[편집]

문서가 있는 대한민국의 화재 목록

1980년대 이전

부산역전 대화재N, 부산 용두산 대화재H, 1960년 서문시장 화재A, 대연각 화재사건A, 대왕코너 화재사고A, 1975년 서문시장 화재H, 극동호 유람선 화재 사건A, 서울시민회관 화재 사고A

1990년대

혜영 용철 사건H, 거성관 방화 사건V, 원주 왕국회관 화재 사고V, 봉대산 불다람쥐 17년 연쇄 방화사건V,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사고A, 인천 인현동 호프집 화재 사고H

2000년대

군산 화재 참사?, 예지학원 화재 사고H, 대구 지하철 참사V, 2005년 서문시장 화재A, 이천 냉동창고 화재 사고H, 숭례문 방화 사건V, 화왕산 억새 태우기 사고H, 용산4구역 철거현장 화재 사건H

2010년대

2011년

호남고속 차고지 화재사건V, 설봉호 화재 사고A

2013년

인사동 식당밀집지역 화재V, 외발산동 버스 차고지 방화사건V, 포항 산불사고V

2014년

고양종합터미널 화재 사고H, 2014년 서문시장 화재?, 장성 효사랑요양병원 화재 사고V, 도곡역 열차 방화 사건V

2015년

의정부 아파트 화재사건H, 강화도 캠핑장 화재 사건A

2016년

경부고속도로 언양분기점 관광버스 화재 사고A, 김포 상가건물 공사현장 화재 사고H, 2016년 서문시장 화재?

2017년

여수 수산시장 화재A, 화성 동탄 메타폴리스 상가 화재 사고H, 2017년 5월 강릉-삼척-상주 산불H,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사고?

2018년

종로 여관 방화 사건V, 밀양 세종병원 화재 사고?, 세브란스병원 화재 사고H, 인천 이레 화학 화재 사고?

H: 사람에 의한 실화, A: 누전, 장비 고장, 가스 누출 등에 의한 사고, V: 고의적 방화, N: 자연 발화, E: 그외, ?: 원인 불명


[1] 이 중 186명은 신원이 확인되어 유가족에게 유해를 전해 줄 수 있었지만, 시신이 완전히 소실된 3명, DNA는 확보했으나 연고자를 찾지 못한 3명은 미신고자로 남아있다.[2] 사망자는 시신이 없더라도 사망이 인정되었지만, 이때는 사망이 인정되지 않은 경우다. 시체를 찾지 못하는 사망자인 셈이다. 그리고 시신은 있는데 훼손 상태가 심하여 신원 확인은 물론이요, 더욱 심한 경우에는 성별도 판별이 불가능한 시신도 존재했던 모양이다. 이들은 신원 확인이 안 되어서 코드명으로 있다.[3] 보통의 단순 화재도 이런 1보는 거의 매일 나온다. 검색되는 기사 중 가장 빠른 기사이자 1보 자체도 연합뉴스뿐이다. 그래서 더욱 역설적으로 대구 지하철 참사의 심각성을 알려주는 1보 기사.[4] 당시 현장에서 구조된 172명을 뺀 나머지.[5] 원래 지하철역에 화재가 일어나면 무정차 통과를 해야 한다.[6] 중앙로역 역무원이 신고를 한 시각이 사고 4분 후인 9시 57분이였다.[7] 기관사가 일부러 마스터키를 뽑고 탈출한 것이 아니고 규정이 있었다고 한다. 1080호 기관사는 역사내 연기로 인해 1079호에 불이 붙은 것을 보지 못하였으며 지하철은 가연재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배웠기에(불량 내장재로 인해 화재가 커졌다) 이렇게 심각한 화재였으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다만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고 많은 피해자가 발생하였기에, 안전 관리 문제로 5년형을 선고받았다.[8] 보통 문 옆 의자 아래나 벽면에 있는 뚜껑을 열고 그 안의 레버를 당기면 손으로 열 수 있는데 사고 전에 이 방법이 시민들에게 홍보가 되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레버 위치와 사용법에 대해서 아주 조그맣게 써놨기 때문에 지하철 타면서 유심히 살펴본 사람이 아니면 알기 힘들었다. 당시에는 비상레버 사용법이 지금처럼 전동차 문짝과 의자 옆면에 크게 적혀있지 않았고 레버 주변에만 작게 적혀 있었다.[9] 기관사가 사고에 있어서 최선을 강구하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허나 기관사가 매뉴얼대로 행동했다면 매뉴얼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것에 집중해야 한다. 예측되지 않은 사태인 비상시에 대비한 매뉴얼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던 것이야말로 심각한 문제였고 책임이 필요하다.[10] 겨울에는 이 쇠 시트를 열로 데워서 지나치게 차가워지는 걸 막는다. 이게 또 과민성 대장 증후군 환자들한테는 엉덩이 난방으로 불리며 또 다른 민폐로 취급받는 모양.[11] 승객이 적은 시간대에 행해졌다. 지하철이 늦어진다고 항의하는 사람은 없었다.[12] 예를 들어 투신자살하는 사람[13] 먼저 1호선 반월당, 중앙로, 동대구역, 2호선 문양 ~ 대실, 반월당, 정평~영대역에 설치했고, 이후 2단계에 나눠서 설치되었다. 3호선은 처음부터 전 역사에 스크린도어를 설치되어 있었다.[14] 평상시에는 선로에서 차량이 역에 정차하며 발생하는 마찰열로 인한 더운 열기를 빨아들여 외부로 보냄으로써 승강장에 그 열기가 가지 않도록 하는 역할을 겸한다.[15] 단, 이 경우 열차풍과 미세먼지, 소음을 감소시키는 기능은 하지 못하게 된다.[16] 이것은 연기가 위로 올라가려는 성질이 강하기 때문으로 화재가 나면서 생기는 열 때문에 공기가 데워지면서 대류 현상이 일어나 연기도 그 바람을 타고 위로 올라가게 된다. 화재 사고 매뉴얼에서 불이 났을 때 몸을 아래로 최대한 숙이고 저지대로 가라고 하는 이유가 이것 때문이다. 실제 사고 사례를 보면 연기가 많은 화재 사고 현장에서는 저지대 쪽으로 피한 사람이 고지대 쪽으로 피한 사람들보다 생존률이 높다.[17] 역에 통곡의 벽이라는 벽 너머엔 아직 일부가 남아있다.[스포일러] 18.1 18.5 김해관의 딸 유주는 실종된 것이 아니라 이 대구 지하철 참사에 휘말려 사망했다.[19] 원래 가사는 한 남자가 큰 사고를 당해서 곧 죽음을 앞두는 상황에서 자신의 애인에게 마지막으로 자신의 생각을 전해주는 분위기인데, 이게 대구 지하철 참사의 희생자들의 당시 상황과 미묘하게 매치되어 많은 이들의 가슴을 미어지게 했다고 한다.[20] 이현진 양은 이해에 서울대학교 사회과학 계열 입학을 앞두고 있었다. 이해 서울대학교 입학식에서는 식전에 추도 의식을 가지고 예정된 신입생 환영 행사를 취소했고 유족은 보상금으로 서울대 측과 협의하여 장학 기금을 조성하였다. 여담이지만 이현진 양은 사망 전 같은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던 동생에게 '누나가 잘 못해줘서 미안하다, 부모님 말씀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하라'는 메시지도 남겼다.[21] 現 롯데백화점 상인점이다.[23] 실제로 이 사건을 단순한 방화에 의한 참사로 분류해야 하는지, 명백한 "테러" 로 분류해야 하는지 논쟁이 있었다. 하지만 김대한 문서에서 볼 수 있듯이 이 사건은 "테러"(묻지마 테러)로 보는 것이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