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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이 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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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어 : ཏཱ་ལའི་བླ་མ་(딸래라마)

1. 소개2. 계승과 대우3. 역대 달라이 라마4. 현 14대 달라이 라마5. 트리비아
5.1. 14대 달라이 라마에 대해5.2. 대중문화 속의 달라이 라마
6. 관련 문서

1. 소개[편집]

티베트 불교의 대표적인 인물이자 사실상 수장[1]이자 최고 수장을 가리키는 세습명. 동시에 정치적인 의미에서 티베트의 국가원수이자 실질 통치자이기도 하다. 천주교에 비유하자면 교황+황제의 의미를 가지며, 세속국가의 지배자이자 티베트 불교 교단의 최고위급 성직자이기도 하다. 때문에 영어 호칭도 His/Your Holiness(성하)다. 다만 2011년 8월부터 정부수반으로서의 지위는 총리에게 이양한 상태이다.

현 뗀진 갸초 달라이 라마는 14대다.

'라마(བླ་མ་, bla-ma)'는 티베트어로 '스승'을 의미하며, 그 어원적 의미에서는 산스크리트어 '구루(गुरु)'와 동일하다. '달라이'란 칭호는 몽골어로 '큰 바다(대양, 大洋)'라는 의미이며, 달라이 라마는 '큰 바다와 같은 넓고 큰 지혜를 가진 스승'이라는 의미가 된다. 참고로 티베트어로 '바다'는 '갸초(རྒྱ་མཚོ, Gyatso)'이다(그래서 그런지 모든 달라이 라마의 이름 끝엔 '갸초'가 붙는다).[2]

2. 계승과 대우[편집]

불교윤회설과 결합하여, 그 지위의 승계에 있어 다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방식을 취한다. 선대 달라이 라마가 사망하면 윤회에 의거하여 달라이 라마의 영혼이 다른 아이의 몸으로 환생한다고 믿기에, 달라이 라마가 죽으면 그 뒤를 이을 계승자가 될 아이를 승려들이 찾아[3], 적법한 심사를 거쳐 환생자로 판명되면 즉시 후대 달라이 라마로 선출되었다. 즉, 달라이 라마는 보살의 화신으로 티베트와 다른 모든 중생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을 열반으로 이끌기 위해 몇 번이고 다시금 태어난다는 것이다. 이렇게 선출된 경우 보통 아주 어린 나이이기 때문에 달라이 라마들의 치세는 대단히 길게 이어진다. 현재의 달라이 라마도 어릴 적에 선출되어 현재까지 지위를 이어오고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16~20세에 정식으로 즉위하지 않는 이상 정치적인 권한은 정부와 섭정[4]에게 있다.

모든 달라이 라마들은 티베트를 수호하는 보살인 관세음보살[5]의 화신으로 여겨지며, 때문에 티베트인들에게는 지극히 고귀하고 존귀하며 영성(靈性)이 뛰어난 성스러운 존재로 숭앙받는다. 이런 환생자를 통틀어서 티베트어로 '린뽀체(རིན་པོ་ཆེ་)'라고 하며, 환생자 중에서도 조금 특별한 환생자는 '뚤꾸(སྤྲུལ་སྐུ)'[6]라고 한다.

역대 달라이 라마들과 판첸 라마는 대부분 형식상으로는 중국 황제들의 스승[7]으로 황실의 초청을 받아 중국으로 가기도 했다.

이렇게 청나라 황제들이 달라이 라마를 비롯해 티베트 불교의 수장들을 극진히 예우한 까닭은 티베트, 몽골[8] 지방의 정치적 안정 때문이었다.
사실, 보통 극진하게 예우한 게 아니라 최왼 관계라고 하여 티베트 불교의 최대최고 시주로서 경제적, 군사적을 제공하여 티베트와 티베트 불교를 보호하고 후원하는 대신, 실질적인 티베트의 통치권과 만주와 몽골에 대한 통치 정당성을 종교적으로 부여받아 강력한 지지기반과 팔기군으로 상징되는 군사력을 확보하여 청나라 전역을 통치하는 기반을 다졌는데, 초기 신성 로마 제국 황제와 로마 교황 간의 관계와 판박이다. 박지원 역시 열하일기에서 이 점에 대해 매우 상세하게 서술하고 있다.

3. 역대 달라이 라마[편집]

4. 현 14대 달라이 라마[편집]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Nobel_Prize.png 노벨평화상 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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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년

1902년

1903년

1904년

1905년

장 앙리 뒤낭
프레데리크 파시

엘리 뒤코묑
샤를 알베르 고바

윌리엄 크리머

국제법학회

베르타 폰 주트너

1906년

1907년

1908년

1909년

1910년

시어도어 루스벨트

에르네스토 모네타
루이 르노

클라스 아르놀드손
프레드리크 바예르

데스투르넬 드 콩스탕
오귀스트 베르나르트

국제평화국

1911년

1912년

1913년

1914년

1915년

토비아스 아서르
알프레트 프리트

일라이휴 루트

앙리 라퐁텐

수상자 없음

1916년

1917년

1918년

1919년

1920년

수상자 없음

국제적십자사

수상자 없음

우드로 윌슨

레옹 부르주아

1921년

1922년

1923년

1924년

1925년

칼 브란팅
크리스티안 랑에

프리드쇼프 난센

수상자 없음

오스틴 체임벌린
찰스 도스

1926년

1927년

1928년

1929년

1930년

아리스티드 브리앙
구스타프 슈트레제만

페르디낭 뷔송
루트비히 크비데

수상자 없음

프랭크 켈로그

나탄 쇠데르블룸

1931년

1932년

1933년

1934년

1935년

제인 애덤스
니컬러스 머리 버틀러

수상자 없음

노먼 에인절

아서 헨더슨

카를 폰 오시에츠키

1936년

1937년

1938년

1939년

1940년

카를로스 사베드라 라마스

로버트 개스코인 세실

난센국제난민 사무국

수상자 없음

1941년

1942년

1943년

1944년

1945년

수상자 없음

국제적십자사

코델 헐

1946년

1947년

1948년

1949년

1950년

에밀리 그린 볼치
존 모트

미국 퀘이커 봉사위원회
영국 퀘이커 봉사협회

수상자 없음

보이드 오어

랠프 번치

1951년

1952년

1953년

1954년

1955년

레옹 주오

알베르트 슈바이처

조지 C. 마셜

국제연합 난민고등판무관사무소

수상자 없음

1956년

1957년

1958년

1959년

1960년

수상자 없음

레스터 B. 피어슨

도미니크 조르주 피르

필립 노엘 베이커

앨버트 루툴리

1961년

1962년

1963년

1964년

1965년

다그 함마르셸드

라이너스 폴링

국제적십자사

마틴 루터 킹

국제연합아동기금

1966년

1967년

1968년

1969년

1970년

수상자 없음

르네 카생

국제 노동 기구

노먼 볼로그

1971년

1972년

1973년

1974년

1975년

빌리 브란트

수상자 없음

헨리 키신저
레득토 (수상 거부)

숀 맥브라이드
사토 에이사쿠

안드레이 사하로프

1976년

1977년

1978년

1979년

1980년

베티 윌리엄스
마레드 코리건

국제앰네스티

안와르 사다트
메나헴 베긴

마더 테레사

아돌포 페레스 에스키벨

1981년

1982년

1983년

1984년

1985년

국제연합 난민고등판무관실

알바 뮈르달
알폰소 가르시아

레흐 바웬사

데즈먼드 투투

핵전쟁방지국제의사회

1986년

1987년

1988년

1989년

1990년

엘리 비젤

오스카 아리아스

유엔 평화 유지군

14대 달라이 라마

미하일 고르바초프

1991년

1992년

1993년

1994년

1995년

아웅산수지

리고베르타 멘추

넬슨 만델라
프레데리크 데클레르크

이츠하크 라빈
시몬 페레스
야세르 아라파트

조지프 로트블랫
퍼그워시 회의

1996년

1997년

1998년

1999년

2000년

카를루스 벨루
조제 하무스 오르타

지뢰금지국제운동
조디 윌리엄스

존 흄
데이비드 트림블

국경 없는 의사회

김대중

2001년

2002년

2003년

2004년

2005년

국제연합
코피 아난

지미 카터

시린 에바디

왕가리 마타이

국제원자력기구
무함마드 엘바라데이

2006년

2007년

2008년

2009년

2010년

그라민 은행
무함마드 유누스

앨 고어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

마르티 아흐티사리

버락 오바마

류샤오보

2011년

2012년

2013년

2014년

2015년

엘런 존슨 설리프
리마 보위
타우왁쿨 카르만

유럽 연합

화학무기 금지기구

말랄라 유사프자이
카일라시 사티아르티

튀니지 국민4자대화기구

2016년

2017년

2018년

2019년

2020년

후안 마누엘 산토스

핵무기 폐기 국제운동

Congressional Gold Medal
의회 명예 황금 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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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6년

1777년

1779년

1781년

조지 워싱턴

소장 호레이쇼 게이츠

소장 앤서니 웨인

사령관 헨리 리 3세

준장 대니얼 모건

1781년

1787년

1800년

1805년

1813년

소장 너새니얼 그린

존 폴 존스

대령 토마스 트럭스턴

준장 에드워드 프레블

대령 아이작 헐
대령 스티븐 디케이터
대령 제이콥 존스

1813년

1814년

대령 윌리엄 베인브리지

대령 올리버 해저드 페리
대령 제시 엘리엇

대위 윌리엄 워드 버로우즈 2세
대위 에드워드 맥콜

대령 제임스 로렌스

대령 토머스 맥도너
대령 로버트 헨리
대위 스티븐 카신

1814년

1814년, 1848년

1814년

대령 루이스 워링턴

대령 존스톤 블레이클리

소장 제이컵 브라운

소장 윈필드 스콧

소장 피터 부엘 포터
준장 엘리저 윌락 리플리
대령 제임스 밀러

1814년

1815년

1816년

소장 에드먼드 P. 게인즈

소장 알렉산더 마콤

소장 앤드루 잭슨

대령 찰스 스튜어트

대령 제임스 비들

1818년

1835년

1846, 1847년, 1848년

1847년

1854년

소장 윌리엄 해리슨
주지사 아이작 셸비

대령 조지 크로간

소장 재커리 테일러

소머스 호의 장교 및 승무원 구출

중령 던컨 잉그함

1858년

1863년

1864년

1866년

1867년

프레데릭 로즈

소장 율리시스 S. 그랜트

코닐리어스 밴더빌트

로버트 크레이튼
에드윈 J. 로우
조지 C. 스투퍼

사이러스 웨스트 필드

1867년

1871년

1873년

1874년, 1904년

1883년

조지 피바디

조지 F. 로빈슨

대령 자레드 크랜달 그 외

존 혼 주니어

존 폭스 슬레이터

1888년

1890년

1900년

1902년

1909년

조셉 프란시스

수석 엔지니어 조지 W. 멜빌 그 외

중위 프랭크 H. 뉴콤

중위 데이빗 H. 자비스
소위 엘스워스 P. 버트홀프
사무엘 J. 콜 박사

라이트 형제

1912년

1914년

1915년

1928년

대령 아서 로스트론

폴 H. 크라이봄 그 외

로물로 세바스티안 나온
에두아르도 수아레즈 무히카

찰스 린드버그

로알 아문센
움베르토 노빌

1928년

1929년

1930년

1936년

토머스 에디슨

최초로 성공한 대서양 횡단 비행사들

소령 월터 리드

준장 리처드 에벌린 버드

링컨 엘스워스

1936년

1938년

1939년

1940년

조지 코한

리처드 올드 리치 부인
안나 불리니

하워드 휴즈

목사 프란시스 퀸

윌리엄 시노트

1942년

1945년

1946년

롤랜드 바우처

1939-1941년 미국 남극 탐험대 멤버들

미합중국 육군 원수 조지 C. 마셜
미합중국 해군 원수 어니스트 킹

미합중국 육군 원수 존 조지프 퍼싱

준장 빌리 미첼

1949년

1954년

1955년

1956년

1958년

앨번 W. 바클리

어빙 벌린

조너스 소크 박사

남북 전쟁의 참전 용사들

준장 하이먼 리코버

1959년

1960년

1961년

1962년

로버트 고다드

로버트 프로스트

토마스 안소니 둘리 3세

밥 호프

샘 레이번

1962년

1968년

1969년

1973년

1977년

미합중국 육군 원수 더글러스 맥아더

월트 디즈니

윈스턴 처칠

로베르토 클레멘테

매리언 앤더슨

1978년

1979년

중장 아이라 C. 이커

로버트 F. 케네디

존 웨인

벤 아브러조
맥시 앤더슨
래리 뉴먼

휴버트 호레이쇼 험프리

1979년

1980년

1982년

미국 적십자

케네스 테일러

1980 미국 하계 올림픽

베아트릭스 여왕

대장 하이먼 리코버

1982년

1983년

프레드 워링

조 루이스

루이스 라머

레오 라이언

대니 토마스

1984년

1985년

해리 S. 트루먼

레이디 버드 존슨

엘리 비젤

로이 윌킨스

조지 거슈윈
아이라 거슈윈

1986년

1987년

1988년

나탄 샤란스키
에비탈 샤란스키

해리 차핀

에런 코플런드

메리 래스커

제시 오언스

1988년

1990년

1991년

앤드루 와이어스

로렌스 록펠러

대장 매튜 B. 리지웨이

대장 노먼 슈워츠코프

대장 콜린 파월

1994년

1996년

1997년

랍비 메나헴 멘델 쉬니어슨

루스 그레이엄
빌리 그레이엄

프랭크 시나트라

마더 테레사

바르톨로메오스 1세

1998년

1999년

넬슨 만델라

리틀록 9인

제럴드 포드
베티 포드

로자 파크스

테오도르 헤스버그

2000년

존 오코너

찰스 먼로 슐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로널드 레이건
낸시 레이건

나바호 족 코드 토커

2002년

2003년

대장 휴 쉘튼

토니 블레어

재키 로빈슨

도로시 하이트 박사

조셉 디레인 [br[ 해리 & 엘리자 브릭스
레비 피어슨

2004년

2006년

마틴 루터 킹
코레타 스콧 킹

터스키기 에어맨

14대 달라이 라마

바이런 넬슨

노먼 볼로그 박사

2007년

2008년

마이클 데바키 박사

아웅산수지

콘스탄티노 브루미디

에드워드 브룩

아메리카 원주민 코드 토커

2009년

2010년

여성 공군 서비스 조종사

닐 암스트롱
버즈 올드린
존 글렌

아널드 파머

무함마드 유누스

100연대 보병 대대
442 연대 전투단
군사 정보국

2011년

2012년

2013년

몬트포드 포인트 해병대

2001년 9월 11일 미국에 대한 테러 공격으로 사망한 남녀들

라울 발렌베리

애디 매 콜린스
데니스 맥네어
캐롤 로버트슨
신시아 웨슬리

제1 특수임무단

2014년

둘리틀 특공대 멤버들

미국의 공군 에이스들

제2차 세계 대전 민간 항공 초계 부대 멤버들

시몬 페레스

모뉴먼츠 맨

2014년

2015년

2016년

제65 보병연대

잭 니클라우스

셀마 몽고메리 행진

제2차 세계 대전 필리핀인 참전 용사들

OSS

2017년

밥 돌

現 달라이 라마 14세. "제춘 잠펠 아왕 롭상 예셰 뗀진 갸초, བསྟན་འཛིན་རྒྱ་མཚོ།"[9] (1935년 7월 6일생. ~ )

파일:external/chanteloube.pagesperso-orange.fr/Dalai-Lama-Nantes.jpg
현 달라이 라마는 중공티베트를 강제점령한 1959년 이래 인도 공화국에 망명하여 50여 년 넘게 다람살라에서 망명 정부를 이끌며, 티베트 불교를 전 세계에 널리 퍼트린 사람이다.망명 당시 사진.

한결같이 폭력노선을 지탄하고 비폭력운동을 전개했는데, 그 때문인지 1989년에는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다만 2008년 티베트 유혈사태에선 영향력을 발휘하는 데 한계를 보여 티베트 진영 내에서도 티베트 독립운동 혹은 자치를 위한 노선을 놓고 의견 대립이 일어나지 않는가 하는 추정도 있다.

2014년에 독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14대를 마지막으로 환생하지 않겠다(=후계자를 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불교 교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선언인데 '나는 열반에 올라 붓다가 되겠다'는 뜻이 된다. 또한 달라이 라마를 계승하려면 환생자를 찾아내고 이를 공인할 판첸 라마가 꼭 필요하다. 그런데 중국 공산당 정부가 (달라이 라마가 인정한) 판첸 라마를 연금하고 자기네들이 별도로 판첸 라마를 옹립하였으므로, 달라이 라마 사후에 중공의 입맛에 맞는 꼭두각시를 15대 달라이 라마라며 옹립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당연히 중국 정부는 이에 반발해, 관영언론인 환구시보를 통해 "現 달라이 라마가 환생제를 갖고 이래라저래라 할 권리는 없다. 티베트 불교를 믿는 신도들은 달라이 라마 개인을 믿는 게 아니라 환생제 그 자체를 믿는 것, 우리는 다음에 환생할 달라이 라마는 이전보다 더 큰 업적을 이룰 것이며 조국을 사랑하고 불교를 발전시키는 승려가 될 것이다." 라고 비판했다. 거기에 중화인민공화국 외교부 대변인 명의로 중앙정부가 수백 년간 달라이 라마를 책봉했다는 성명을 내면서 現 달라이 라마 사후 후계 문제에 개입할 뜻을 밝혔다. 그런데 환생한다는 본인이 안 하겠다는데 어떻게 말릴까

2015년 4월에는 한술 더 떠서 "달라이 라마 개인이 환생을 거부할 권리가 없다. 달라이 라마의 환생은 중국 정부의 소관인데, 달라이 라마가 월권(…)을 행사하려 한다." 라는 개드립까지 하였다. 중국 정부의 능력이 드디어 염라대왕의 영역까지 도달했다. 남들의 윤회까지 좌지우지(…) 중국 공산당은 무신론을 주장하는데도 이 문제에 한해서는 어처구니 없게 앞장서서 환생을 요구하는 꼴이다. 달라이 라마 자신이 환생 안 하겠다는데 환영하기는커녕 오히려 환생하라고 압박하는 듯한 상태가 지속 중이다.

여기에 대해 미국뉴욕타임스는 "카를 마르크스가 이 사실을 알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날 것"이라며 비웃었고, 영국 <인디펜던트>도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던 공산주의자들이 환생 운운하는 게 우습다"며 조롱했다.

2018년 6월, 말기암으로 투병 중이라는 뉴스가 전해졌다. 이로써 향후 티벳 독립운동의 장래가 중대한 기로에 놓이게 되었다.

5. 트리비아[편집]

5.1. 14대 달라이 라마에 대해[편집]

  • 달라이 라마에 대한 티베트인들의 존경과 헌신은 끝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3년에 14대 달라이 라마가 법회에서 "불교도라면 생명을 존중하기 위하여 동물의 모피로 된 옷을 입지 않는 것이 좋다. 만약 정말 추운 지역이거나 어쩔 수 없이 모피를 입게 되는 경우라면 모르지만, 장식으로써 값비싼 모피를 입는 것은 옳지 않다." 라는 발언을 하고 3시간 뒤, 티베트 본토(중국에 속한)의 티베트인들이 각자의 마을 광장에서 집안의 모피옷을 모두 불태워 버렸다. 인도 공화국에서 달라이 라마가 한 단 한마디에 티베트 본토의 사람들이 단 3시간 만에 움직인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10] 티베트에서도 재산 1호로 여겨지는 모피, 특히 호랑이표범가죽 등의 옷을 모두 불태워 버렸다는 것은 티베트인들이 얼마나 달라이 라마에게 헌신적인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증거이다.

  • 공식적으로 달라이 라마는 환생전승의 형태로 세습되지만, 이에 대해서 14대 달라이 라마는 엄밀히 말해서 대외적으로는 긍정도 부정도 하고 있지 않다. "정말로 자신이 부처의 환생이 맞다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선대 달라이 라마와 강한 유대감을 느낀다"고 대답한 적이 있으며, "설령 내가 입적하더라도, 후대 달라이 라마는 환생전승이 되지 않고 중생이 더 이상 달라이 라마를 필요로 하지 않으면 대가 더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이에 대해선 상술했듯 14대 달라이 라마가 합리적인 사람이라 환생이라는 것 자체에 회의적인거 아니냐는 시각도 있고, 반대로 판첸 라마의 사례를 보았을 때 자신이 죽으면 중국에서 임의로 달라이 라마를 지명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 그것을 사전방지하고자 정치적 제스처로 취한 행동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다만 중국계 미국인 저널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어릴 때 전생에 대한 질문을 맞추었던 일에 대한 질문을 받은 적이 있는데, "어릴 때는 자의식이 약해 전생에 대한 기억이 거울처럼 훤히 보였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자의식이 강해지기 때문에 전생에 대한 기억이 차차 흐려져서 지금은 잘 생각나지 않는다"는 대답을 한 적이 있다.

  • 또한 달라이 라마의 사상을 담은 여러 서적들 가운데서는 윤회전생에 대해서 암시하는 부분이 많다. 애당초 불교승려 가운데 윤회전생을 부정하는 이는 아주 소수에 속하며, 달라이 라마가 과학에 관심이 많다고는 하나 체계적으로 과학적 사고방식을 터득한 자는 아니기 때문에 애당초 윤회가 비합리성이라고 달라이 라마가 판단할 근거가 없다.

  • 흑역사로 1980년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는 의혹이 있다.# 이것이 사실일 경우 달라이 라마 입장에서는 일본티베트 독립운동 등에 관심을 가져주는 것에 대한 호의로 참배한 것일 테지만, 어쨌거나 전범들이 안치된 곳이니 만큼 평소 평화를 강조하는 그의 모습과 비교하면 모순적인 것은 사실이다. 물론 모르고 했을 확률도 높지만 어쨌든 경솔했던 건 사실이고 좋게 봐야 이용당한 셈. 마오쩌둥한테 이용당했던 것도 서럽구만 물론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것이 확실한 건지 알 수 없다는 반론도 있다. #

  • 1993년 뉴욕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희생자를 최소화한다면 전쟁을 받아들일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아울러 2차대전 당시 사진을 보는 것을 좋아하며 나치 독일군의 무기에도 관심이 많다고 고백. 밀덕후 스님

  • 2011년 11월 6일.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위로하기 위해 직접 후쿠시마 현(!)에 갔었다. 주변에서 건강과 노령의 나이(당시 76세)를 걱정해 만류했지만, 종교 지도자로서 그들을 만나고 희망을 주는 것은 의무라며 가기로 결정했다고. 오오 대인배 오오

  • 스스로 자신이 113세까지 살고 이 세상을 떠날 것이라는 예언과 같은 법문을 한 적이 있다. 정말인지 아닌지는 그때 가봐야 알 일.

  • 113세까지 살기 위해 건강유지를 위해 반신욕을 하고, 수행자의 옷차림으로 러닝머신(…)을 달리는 모습도 볼 수 있다.

  • 가톨릭교황이 여러가지 별칭을 가진 것처럼, 달라이 라마에게도 여러 존칭과 수식어가 붙는다.

    - 겔와 린뽀체 : (번뇌에 대하여)보배로운 승리자
    - 이신 노르부 : 마음속의 여의주
    - 쩬레식 : 관세음보살

    이 외에도 '모든 보리심의 주인', '흰 연꽃(白蓮)을 든 자' 등의 수식어가 있지만 달라이 라마 자신은 이 모든 수식어를 거부하고 '석가비구(석가여래의 제자)'라는 수식어만을 사용한다. 자신은 평범한 비구(승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뜻이다. 아주 가끔씩 티베트의 전통적인 종교적 서한에만 "흰 연꽃을 든 자라고 불리는 석가비구 뗀진갸초"라는 서명을 사용한다고.

  • 생불(生佛)이라는 달라이 라마에게 있어서도 성욕은 수행자로서 살아가는 데 있어 크나큰 걸림돌인지, 한 인터뷰에서 "성욕이 일어날 땐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나는 달라이 라마다!"라고 마음속으로 외친다고 대답했다. 또, "당신이 구도의 길을 가는 데 있어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하복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이것입니다" 라고 대답하기도 했다. 아아

  • 한국의 국제부 기자 사이에서는 "절대 비판하면 안 되는 2명의 아시아인 중 하나"라는 불문율이 있다고 한다. 다른 한 명은 아웅산 수지. 실제로 이런 내용을 간접적으로 언급한 기사도 있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 의혹 부분처럼 이들도 인간이니 만큼 실수를 할 수 있고, 비판할 점이 아예 없기 때문에 그런 건 아니다.[13]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불문율이 떠도는 이유는, 이들이 강력한 권력에 굴하지 않고 자유와 인권을 위해 싸우는 자의 포지션이기 때문에, 그들을 비판하면 자유와 인권의 가치마저 부정하는 사람으로 오해받을 수도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게다가 어설픈 비판을 하다가 되려 근거가 부족해 역공을 당한 사례도 있기 때문에, 굳이 비판을 한다면 사실에 근거해서 정확한 비판을 할 필요가 있다. 또 물론 이런 비판적인 부분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들의 기본적 업적인 자유와 인권을 위한 행동까지 부정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 사람들 안 까도 깔 사람들은 차고 넘치는 판국이니 현재의 14대 달라이 라마는 꽤 합리적인 면이 있어, 신화적인 내용을 거부하며 과학적인 논리를 중요하게 여긴다. 자신도 어떤 특별한 신화적인 존재로 생각하지 않고 그저 일개 불교 수행자로서 여긴다. 그의 가르침 또한 무조건 믿는 방식의 믿음보다는 공부, 수행, 논리, 자비를 강조한다. (달라이 라마와 현각스님과의 대화 참고. #1, #2, #3, #4, #5)

  • 2018 제1차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기 5일 전인 2018년 4월 22일에 남북정상회담의 성공을 기원하는 특별메시지 영상을 통해 "다가올 북미정상회담에 앞서 남북 양국간의 신뢰구축과 한반도비핵화를 위한 노력은 전세계 평화와 비핵화에 큰 본보기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덕담 메시지를 한국측에 전달했다.#전문(번역)

  • 티베트 왕국 시절에는 티베트 불교의 총본산인 포탈라궁을 불편하게 여겼다고 한다. 당시에는 달라이 라마도 아직 어려서 무겁고 엄격한 분위기의 포탈라궁보다는 정원이 있고 온화한 분위기인 노블링카(티베트의 별궁이자 여름궁전)를 더 편안하게 생각했다고.

5.2. 대중문화 속의 달라이 라마[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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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이 라마에 관한 영화로는 장 자크 아노 감독의 <티벳에서의 7년>(Seven Years in Tibet),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쿤둔>(Kundun)이 대표적이다. 둘 다 1997년작. <티벳에서의 7년>은 실존 인물인 오스트리아 출신의 산악가 하인리히 하러[14]의 관점을 중심으로 한 것이며, 달라이라마의 유년 시절과 중국티베트 침공, 달라이라마의 즉위까지를 다루었다. <쿤둔>은 달라이라마의 유년시기로 시작해서 마오쩌둥과의 회동도 묘사했고, 달라이라마가 인도 공화국으로 망명하는 씬으로 마무리. [15]

국내 무협소설에서는 포탈라궁의 궁주로 세외제일고수로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보통 중원일통을 위한 흑막의 전투력 측정기로 나와서 순식간에 털리는 경우가 다반사.

심슨 가족에도 등장했다. 은근 잊을 만 하면 등장하는 편. 주로 불교 신자인 리사 심슨과 자주 엮인다. 호머 심슨이 파이 그릇을 얼굴에 쓴 히어로 '파이맨'으로 활동하다가 번즈에게 걸려 약점이 잡힐 때 요구받은 게, "스프링필드에 강연하러 온 달라이 라마에게 파이를 던져 망신을 줄 것"이었다.[16] 그러나 그때 강연장에서 불교 신자인 리사 심슨을 보고 갈등한 끝에, 달라이 라마에게 파이를 던지지 않는다. 이 전개를 본 달라이 라마는 마무리를 하고선 다음 도시를 향해 날아간다. 여담으로 파이를 던지려 했던 호머는 그를 보고선 "미안해요 말하는 라마!!"라고 말한다(…).

대체역사물 스탈린의 편지에서는 달라이 라마 14세가 동아연방의 제11대 대통령으로 취임한다.

6. 관련 문서[편집]

[1] 엄밀히 말하자면 달라이 라마는 황모파(겔룩파)의 수장이며, 그것도 대한불교 조계종의 총무원장과 비슷한 자리다. (조계종 종정에 해당하는 직책은 간댄티빠로, 간댄 대사원에 있는 둘의 의자를 보면 달라이 라마의 것보다 간댄티빠의 것이 3미터 가량 더 높아 의례상이나마 위계는 간댄티빠가 더 높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실질적인 영향력은 당연히 겔룩파에 국한되지 않는다.[2] '달라이 라마'라는 이름 외에도 티베트인들은 존경의 의미로 여러 가지 이름으로 달라이 라마를 부르는데, "걜와 린뽀체(རྒྱལ་བ་རིན་པོ་ཆེ་, 고귀한 지도자)", "꾼뒨(སྐུ་མདུན, 고귀한 존재)" 등이 있다. 실제 티베트인들은 "달라이 라마"라고 부르기보다 "걜와 린뽀체"라고 더 많이 부른다.[3] 고승들과 섭정이 달라이 라마를 보호하는 여신인 빨덴 하모의 성지인 하뫼 라초(ལ여신의 호수)에 가서 기도와 명상을 하면, 호수에서 이미지가 보인다고 전한다. 보통 티베트어 단어나 사원, 태어난 집 등을 보여준다고 한다.[4] 고위 승려 1명, 속인(세속의 인간) 1명으로 이루어지며, 달라이 라마가 정식 즉위하기 전까지 정치와 종교 전반을 관리한다.[5] 티베트어로 '쨴레식(སྤྱན་རས་གཟིགས།)'[6] 린포체들 중에 죽기 전에 자신이 태어날 곳, 태어나는 시간, 부모의 이름 등을 써서 편지로 남기거나 제자들에게 일러주고 열반에 드는 경우가 있다. 이는 그냥 다시 태어나는 것과는 다르기에 '뚤꾸'라 하여 존경받는다. 그 외에도 달라이 라마와 같은 고위 승려의 환생의 경우엔 그냥 다시 태어나도 '뚤꾸'라고 칭할 때도 있다.[7] 원나라 때부터 청나라가 망할 때까지 지속됐다. 또 스승이라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당시 중국 문화권에 있는 나라 중 유일하게 황제와 똑같은 높이 혹은 그보다 아주 약간 낮은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8] 몽골 역시 예나 지금이나 티베트 불교를 믿는 지역이다.[9] 달라이 라마들은 출가할 때 승단으로부터 공식적인 이름을 받는다. 티베트의 옛 전통에 따르면 이름이 길수록 지위가 높다. 현재는 고위승려들만 이처럼 긴 이름을 받는다. 너무 길어서 공문서에도 안 쓰며, 달라이 라마를 위해 행하는 기도의식 중에만 사용한다. 여담으로 프랑스 출신 세계적인 거장 감독인 장 자크 아노의 <티벳에서의 7년>이라는 영화를 보면 이 이름에 담긴 의미가 언급된다.[10] 본토에서 달라이 라마가 나오는 위성방송 등을 봤다간 그대로 온 가족이 철창행.[11] 마오쩌둥은 "사람이 많아야 국력이 커진다"며 출산을 장려했다.[12] <달라이 라마가 들려주는 티베트 이야기> P.403 참조.[13] 아웅산 수지의 경우 미얀마의 소수민족인 로힝야족 차별 문제에 대해 소극적이고 방관자적인 입장을 보인다며 비판을 받기도 한다.[14] 나치 독일 부역 혐의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어 개봉 당시 논란이 되기도 했다. 영화 내에서 주인공의 독백 대사 중에 나치로써 일했다고 말하는 부분이 있다.[15] 개봉 때,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영화에 몇번 출연하였던 그의 모친이 유명을 달리하여, 감독은 그녀를 추모하는 텔롭을 마지막에 넣는다.[16] 중국 지배자들의 심기를 거스른다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