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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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특징3. 역사
3.1. 2004년 ~ 2007년: 제1기(재능방송 방영 시기)
3.1.1. 타임라인3.1.2. 상세
3.2. 2007년 ~ 2011년: 팬덤의 와해3.3. 2011년 ~ 2012년: 제2기(카툰네트워크코리아 방영 시기)3.4. 2012년 ~ 2013년: 암흑기3.5. 2013년 ~ 2016년: 제3기(니사모 1대 ~ 3대)3.6. 2016년 하반기 ~ 2017년: 과도기(니사모 4대 ~ 6대)3.7. 2018년 이후: 제4기(니사모 6대 이후, 트위터)
3.7.1. 1월 ~ 4월3.7.2. 5월 ~ 8월
4. 사건사고
4.1. 핑코를 찾아라 사건4.2. 난다 난다 니얀다 3기 허위사실 유포 사건4.3. 니사모 4대 매니저 선거 결과 번복 사건4.4. 니사모 6대 매니저 2차 창작 규제 논란
5. 이야깃거리6. 주요 인물7. 바깥고리

1. 개요[편집]

'수명이 끝난 애니메이션의 팬덤은 몰락할 수밖에 없다'는 통설의 마지막 반례.

난다 난다 니얀다팬덤.

본래 난다 난다 니얀다일본에서 만들어진 작품이었고, 대만홍콩, 인도이탈리아에서도 한 차례 방영되었었다. 그러나 현존하는 니얀다 팬덤은 대한민국의 니사모가 유일하다. 일본의 팬덤은 붕괴된 지 오래이고, 다른 국가에서는 팬덤이 생긴 적조차 없는데 대한민국의 팬덤은 살아남아 2018년 현재에도 꿋꿋이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2. 특징[편집]

처음에는 난다 난다 니얀다가 전연령 애니메이션이었던 만큼 어린이들이 절대다수로 구성되었었다. 재능방송 방영 당시 재능방송 측에서 이 작품을 엄청나게 푸시해준 덕분에[1] 재능방송에서 이벤트를 하기만 하면 반응이 매우 높았다. 당시 재능방송 측에서 인물 퀴즈를 내면 십중팔구 단역이 정답이라고 해도 쉽게 맞출 정도였다.[2] 재능방송에서 최종화인 83화를 방영한 후에 1화부터 다시 재방영하자, 팬덤에서는 최종화 이후의 이야기를 상상해서 팬픽으로 구현하게 되었다. 또한 수준이 높다고는 볼 수 없어도, 각 등장인물에 대한 토론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다만 뭇 애니메이션의 팬덤이 그랬듯, 악당으로 묘사된 메롱이나 망토대왕 등에 대해서는 평가가 박했다. 물론 에도가와 코난을 좋아한 어린 명탐정 코난의 팬들이 모리 코고로를 싫어했던 것[3]과 비슷한 경우. 그래도 명색이 레귤러이고, 2기 때는 이들의 민폐가 줄어들기 때문에 팬들은 이들도 팬픽에 넣어주고는 했다.

하지만 2007년 방송 시간대가 줄어들고 여름에 종영하자, 이들은 당시의 활동이 무색하게 대부분 자취를 감추었다. 일부는 카툰네트워크의 재방영 소식을 접하고 복귀했다. 하지만 재능 방영 당시 그 어마무시한 덕력을 갖고 있던 사람들은 다시는 복귀하지 않았고, 결국 사실상 리부트 수준으로 팬덤이 재결성된다. 이 과정에서 난다 난다 니얀다 3기 허위사실 유포 사건의 풍파로 인해 팬카페가 옮겨갔고, 새로운 팬카페의 이름인 '니얀다를 랑하는 사람들의 임'의 약칭인 니사모가 팬덤의 명칭으로 굳어진다. 이 때부터는 팬아트나 만화가 그려지기 시작했다.

미방영 기간이 길어지자 팬덤의 화력이 점점 시들어졌으나, 2017년 이후 급격하게 팬덤이 외부로 확장되었고, 지금은 재능방송 시절의 화력을 어느 정도 따라잡았다고 해도 될 정도로 발전하게 되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방영이 안 되다 보니 당시의 팬들이 갖고 있던 덕력의 수준에는 아직 미치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2016년말부터 폭증한 나무위키의 정보를 통해 조금은 보완되는 모양새.

2010년대의 팬덤은 메롱과 망토대왕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진 대신 찍찍 일족에 대해서는 거의 흑역사로 여긴다. 대신 조연급 캐릭터의 인기가 급락하고, 이들의 공백은 자캐가 대신한다. 2017년 이후에는 AU 캐릭터가 니사모의 경향으로 굳어진다. 다만 조연급 캐릭터의 재평가를 목표로 활동하는 팬들이 소수 있기에 서로 상호보완적인 기능을 하게 된다.

3. 역사[편집]

대한민국에서 난다 난다 니얀다가 방영되기 시작한 때는 일본 방영으로부터 4년 10개월이 지난 2004년 12월 20일로, 이듬해인 2005년부터 인터넷 카페들을 중심으로 저연령층 팬덤이 생겨났다. 그러나 방영이 중단된 이후 단 하나의 카페만이 살아남았고, 곧 이 카페의 이름의 약칭이 팬덤 전체의 이름으로 굳어졌다.

3.1. 2004년 ~ 2007년: 제1기(재능방송 방영 시기)[편집]

3.1.1. 타임라인[편집]

3.1.2. 상세[편집]

처음에는 여느 팬덤과 마찬가지로 애니메이션의 한국 방영으로 인해 만들어진 팬덤이었다.

이 때까지만 해도 인터넷 카페의 주류는 다음 카페였기 때문에, 네이버 카페의 활동보다 다음 카페에서의 활동이 더 활발하였다. 당시 다음 카페에서는 수많은 팬픽이 생산되었고, 개중에는 극장판의 꼬리표를 달고 나온 것도 있었다. 다만, 이 꼬리표를 단 작품은 실제 극장판의 시놉시스나 시나리오가 아닌, 저연령 팬들의 소망이 담긴 작품이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 난다 난다 니얀다의 에피소드가 적기 때문에 후속작을 스스로 만들어낸 것. 당시 팬픽을 쓰던 게시판도 '마지막화 이후의 이야기(지어내세요)'였다는 것이 이를 반증한다.

이들은 블로그에서도 활동했고, 비정기적으로 팬픽을 연재하기도 했다. 그들이 만든 팬픽은 슈퍼전대 시리즈와 같은 저연령층 작품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작품들이 많았다. 전대물을 표방한 작품이었으나 연재가 짧았던 냔다-렌쟈가 좋은 예시.

그러나 2007년 여름, 돌연 방송이 종료되어 니얀다 팬덤은 빠르게 와해되고 만다. 곧 다음 카페들은 광고글이 흘러넘치는 무법지대로 변하였고, 네이버 카페도 큰 타격을 받아 유일한 성인층 중심 니얀다 팬카페 '난다-카멘'이 유령화되었다.

3.2. 2007년 ~ 2011년: 팬덤의 와해[편집]

다음 카페들은 다음 카페 침체기와 맞물려 완전히 망했고, 네이버 카페들도 순식간에 유령 카페로 변해버렸다. 네이버 블로그를 운영하는 블로거들을 중심으로 니얀다를 추억하는 사람들이 관련된 이야기를 소소하게 나누는 데에 그쳤다.[4]

3.3. 2011년 ~ 2012년: 제2기(카툰네트워크코리아 방영 시기)[편집]

본국인 일본에서도 유지되지 못한 팬덤이 한국에서 사라졌다가 부활한 애니메이션 팬덤 역사상 전무후무한 사례

2010년, 카툰네트워크코리아가 재능방송판 난다 난다 니얀다를 재방영하기 시작한다. 다만 카툰네트워크코리아의 무성의한 방영으로 인해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2011년, 난다 난다 니얀다(네이버 카페)의 회원들 일부가 오랜 잠수를 끝내고 속속 복귀했다. 하지만 난다 난다 니얀다(네이버 카페)의 초대 매니저가 팬덤 와해 당시 네이버를 탈퇴해 무정부 상태가 되어 있었고, 당시에 활동하던 고참 회원들도 상당수가 이미 탈퇴한 뒤였기에 결국 재방영 이후 활동을 재시작했거나 새로 유입된 회원들 중에서 매니저를 선출할 수밖에 없었다.

2011년 위키백과의 난다 난다 니얀다 문서가 정체불명의 인물에게 훼손되자, 난다 난다 니얀다(네이버 카페)의 회원이었던 도약이 3기의 진위에 대해 조사하였고, 위키백과 운영진은 문서 훼손범이 돌린 다중 계정을 모두 정지시킨다. 이 인물의 정체는 2013년이 되어서야 밝혀지게 된다.

2012년 가장 활발하게 팬만화 작품들을 만들던 회원 니얀다375가 네이버에 매니저 선정을 위임했다. 당시 회원들은 니얀다375가 차기 매니저가 될 것으로 보고 샴페인을 터뜨렸으나, 네이버니얀다(=상죽이)를 2대 매니저로 선정했다. 대체 어떤 기준으로 그를 매니저로 임명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네이버의 결정은 팬덤 분열 나비효과의 시작점이 되고 만다.

3.4. 2012년 ~ 2013년: 암흑기[편집]

난다 난다 니얀다의 한국 팬덤사상 최악의 흑역사기

2012년 소리소문없이 니얀다가 종영되자 또 다시 난다 난다 니얀다(네이버 카페)가 침체되었지만, 회원들은 2007년 때와는 달리 자리를 지켰다. 이후 2013년 다시 니얀다가 방영되기 시작하였으나...

2013년 5월, 니얀다 방영이 2주만에 강제 중단되었다. 이에 회원들은 이대로 종영을 지켜볼 수만은 없다며 일제히 카툰네트워크코리아 홈페이지의 니얀다 소개 페이지에 니얀다 방영 재개를 청원했으나, 카툰네트워크는 묵묵부답이었다. 니얀다 팬덤은 다시 와해될 맞을 위기에 처한다. 설상가상으로, 니얀다가 3기설과 '니얀다 경민' 공인설을 주장하는 바람에 혼란이 가중되었다.

당시 , 빠돌빠돌, 행인 등 3기설 반대파와 니얀다 간의 욕설과 설전이 벌어졌다. 사실 종영된 저연령층 애니메이션의 팬들이 키배를 벌인다는 것 자체가 이례적인 일이었다. 결국 니얀다375가 중재에 나섰고, 3기설 반대파의 선봉 격인 썬이 먼저 니얀다에게 사과하였으며, 니얀다에게 매니저를 니얀다375에게 위임하라고 건의했다. 니얀다는 결국 매니저가 된지 1개월 만에 니얀다375에게 직위를 넘기고, 반성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다.

하지만 니얀다는 일반회원으로 강등된 뒤에도 경민설을 포기하지 않았다. 결국 일부 회원들은 탈퇴했고, 일부 회원들은 독립해 니얀다를 사랑하는 모임(니.사.모)[5](네이버 카페)을 만들었다. 이후 니얀다375는 니얀다를 재가입 불가 영구 탈퇴처리하였으며, 얼마 후 니얀다를 사랑하는 모임의 회원이 되었다. 이 때부터 니얀다 팬덤의 주도권은 니얀다를 사랑하는 모임에게로 넘어갔다.

결과적으로, 방영 중단과 3기 허위사실 유포에도 불구하고, 팬들은 버텨냈다.

3.5. 2013년 ~ 2016년: 제3기(니사모 1대 ~ 3대)[편집]

니얀다 없는 니얀다 팬덤
니사모가 곧 니얀다 팬덤이었던 시기[6]

니사모가 개설된 후, 상죽이는 니사모에 잠입해 니사모 단챗방 테러 사건을 터뜨린다. 이에 격분한 회원들은 그의 블로그를 회생불능에 이를 때까지 공격했다. 이 과정에서 니사모는 더욱 보수적이고 강경한 색채를 띄게 된다.

2013년과 2014년 두 해 동안에는 니사모에 가입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는데, 이는 니사모 회원들, 특히 루시엘이 블로그를 통해 니얀다와 니사모를 홍보했던 것이 주효했다. 이 때 썬에 이어서 니사모의 2대 매니저가 된 행인은 리그베다 위키난다 난다 니얀다 문서를 만들었다. 이에 상죽이가 문서를 반달하려 시도했으나, 2012년 3기설 반대파 시절의 행보를 재현하듯 행인은 문서가 훼손되는 족족 복구시켰다. 이 와중에 리그베다 위키 사유화 사태가 터졌고, 해당 문서도 나무위키로 포크된다.

2014년 하반기에 들어서면서 행인의 활동이 급격히 저조해졌고, 결국 행인이 사임을 선언하여 니얀다 팬카페 역사상 첫 매니저 선거가 벌어졌다. 이 때 13화부터 18화까지를 녹화해 인터넷에 올린 리듬게임 플레이어 케논이 당선되었으나, 케논은 모종의 이유로 매니저직을 거절하였고, 결국 밀덕후이자 역덕후로서 군 관련 지식을 2차 창작에 접목시켜 호평을 받았던 대한민국정예국군이 3대 매니저가 되었다.

니얀다가 국내 첫 방영한지 10년이 넘었기 때문에, 저연령층 팬들은 청소년이 되어 있었다. 이들의 팬픽과 팬아트도 잔인하고 냉혹한 성격으로 바뀌었다. 이에 2015년에 빠돌빠돌이 주도하여 고어한 연출을 다소 통제하는 것으로 시정했다. 그러나 시정 이후에도 제1기 당시 저연령층이 만들었던 수준으로는 되돌아가지 않았으며, 이는 2017년 이전까지의 한국 니얀다 팬덤의 특색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하지만 이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2015년을 기점으로 팬덤의 화력이 점점 떨어져갔다. 팬들이 나이를 먹은 만큼 그 나이대를 노린 작품들에게 관심을 돌렸거나, 팬들이 너무 바빠져서 활동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를 모두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재방영밖에 없는데, 재방영은 여건이 안 되는[7] 절망적인 상황. 이에 니사모 3대 매니저는 신참도 운영진으로 임명하는 초강수를 두었다. 또 빠돌빠돌의 주도 하에 유령 회원을 쳐내기 위해 200명 가까이 되는 회원들 중 50여 명을 남기고 모두 탈퇴시켜버린다. 이를 대숙청이라고 부른다. 이 행보는 2017년 이후 신의 한 수로 평가받게 된다.

대숙청 이후 나무위키난다 난다 니얀다 문서나 네이버 블로그를 통해 팬덤에 유입된 일부 팬들 덕에 회원 수는 70~80여 명으로 늘었다. 그러나 이들마저도 호기심으로 일회성 가입을 한 케이스가 적잖았기 때문에 활동을 점점 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신참 운영진들은 끝까지 니사모를 지켜냈다. 이들이 없었다면 2017년에 니얀다가 다시 떠오르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may be의 <구원> 24화가 업로드된 2016년 1월 이후, 니얀다 팬픽의 연재가 끊겼다.

2016년 3월, Kuro(現 Ru인)가 니사모에 가입했다. Kuro는 블로그나 나무위키를 보고 니얀다 팬덤에 합류한 것이 아니라, 갑자기 니얀다가 생각나서 팬카페를 찾아내어 가입한 것이다.[8] 그는 니얀다의 일본판 VHS를 사들여 디지털화하고, 한국 자막을 붙여 니얀다를 한국에 널리 알리는 이른바 니얀다 살리기 운동을 계획했다. 그러나 금전적, 시간적 문제에 부딪혀 니얀다 살리기 운동은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하지만 이 취지는 계승되어 2017년 클티(現 엑시온)가 한국판 및 일본판 에피소드 일부를 유튜브에 업로드함으로써 니얀다의 인지도 상승과 팬덤의 성장에 일조하게 되었다.

2016년 6월, 젤전시오가 니사모에 가입했다. 젤전시오는 2005년 재능방송 방영 당시 니얀다를 보았지만 팬은 아니었으며, 애니덕후도 아니었다. 오히려 2014년부터 젤다로서 젤다 팬카페에서 팬픽을 쓰며 활동하던 사람이었다. 당장 닉네임부터가...[9] 그러다가 나무위키를 통해 본격적으로 입덕하여 니사모에 가입한 것. 그는 니얀다를 널리 알리기 위한 방법으로 다름아닌 나무위키를 선택한다.

3.6. 2016년 하반기 ~ 2017년: 과도기(니사모 4대 ~ 6대)[편집]

젤전시오가 쏘아올린 작은 공(功)
팬덤의 쇠퇴과 3기 사건[10]을 동시에 해결한 희대의 반전.

2016년 8월부터 젤전시오는 난다 난다 니얀다 관련 나무위키 문서를 급격히 늘리기 시작했다. 이 때 그는 수능을 앞둔 고3이었다 난다 난다 니얀다 문서의 한 문단이었던 야고 항목을 내용을 늘려 독립 문서로 만드는 것부터 시작해서, 등장인물과 에피소드, 기획 의도세계관에 이르기까지 무려 100여 개의 문서들을 만들었다. 이 때 한국에 전래된 캐릭터들이 바로 카사양, 테르테르, 리오, 초키 등이다. 문서 생성 이후에는 다른 문서에 이 문서들을 링크하는 방식으로 다른 위키러들이 니얀다 관련 정보를 쉽게 입수하게끔 하였다.[11]

그런데 매의 눈 상죽이가 이같은 변화를 감지하고 나무위키에 들어와 문서 훼손을 저지르다가 문서를 작성 및 편집하던 젤전시오와 정면으로 충돌, 편집 분쟁을 일으켰다. 젤전시오는 리그베다 위키 당시 행인이 그랬던 것처럼 상죽이가 문서를 훼손하는 족족 문서를 복구시켜 정상적인 문서 편집으로는 3기설을 주장하지 못하게 했으나,[12] 상죽이는 악착같이 반달을 자행했다. 상죽이의 반달은 아이피까지 바꾸어가며 장장 10개월간 지속된다. 이에 대해서는 난다 난다 니얀다 3기 허위사실 유포 사건/타임라인/2016년 ~ 2017년 문서를 참조.

2016년 9월, 엄슴(cloudcape)이 니사모에 가입하고, 카페의 문제점을 지적하여 3대 매니저의 신임을 얻게 된다. 3대 매니저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이유로 매니저를 그만두겠다고 한 뒤 세 번의 선거를 통해 엄슴을 4대 매니저로 임명한다.

한편, 젤전시오의 나무위키 문서 생성으로 인해 그 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니얀다 관련 정보가 트위터에 유입되어 작은 파장을 일으켰고, 그 결과 난다 난다 니얀다를 보지 못한 사람들도 니얀다에 관한 정보를 접하고 입덕하여 팬덤에 합류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니사모의 회원 수는 150명을 돌파하기에 이른다. 니사모의 3기 관련 공지글과 난다 난다 니얀다 문서의 10번 문단이었던 '3기 낚시 사건' 덕분에 새로운 팬들은 3기 사건의 진상을 알게 된다. 훗날 젤전시오는 10번 문단을 독립 문서로 생성하는데, 이것이 지금의 난다 난다 니얀다 3기 허위사실 유포 사건 문서이다.

더불어 적화존(現 미스틱닥)이 2016년 10월 팬픽 1화를 내면서 팬픽 공백기가 끝났다.[13]

2017년 4월, 엄슴이 젤전시오의 요청으로 니얀다 반달 사태 해결에 끼어들었다. 결국 근성가이(...) 상죽이도 우주방어[14]를 견디다 못해 토론을 개설해 3기설을 위키러들에게 인정받으려고 했다. 그러나 이것은 오히려 더 많은 위키러들을 3기 사건 해결에 끌어들이는 결과를 낳았다.

2개월 후 젤전시오가 개설한 3기 관련 마지막 토론에서 상죽이는 위키러들을 설득하지 못하고, 아이피와 닉네임으로 감추던 정체마저 젤전시오에게 발각되자 토론 도중 사과하고 만다. 토론으로 3기설 주장이 완전히 봉쇄된 이후, 상죽이는 등장인물들 문서에 "동물이니까 등장'인물'이 아니지 않느냐"고 시비를 걸었으나[15] 그것마저도 젤전시오에게 막히자(...) 며칠 뒤 나무위키에서 종적을 감췄다.

그러나 나무위키 반달을 방어하는 과정에서 4대 및 5대 매니저 엄슴은 학업을 이유로 사임하고 젤전시오가 6대 매니저가 된다.

트위터를 중심으로 사람들의 (재)입덕이 계속 이루어지고 있는데, 애니메이션의 방영이 옛날 옛적에 끝났는데 이런 기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는 나무위키 문서를 본 트위터리안이 니얀다에 입덕해 해당 회원을 팔로우하는 사람들의 덕통사고를 유발(...)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검색이나 트위터 상에서 갑작스레 늘어난 니얀다 정보와 니얀다 수동 봇들을 접하고 니얀다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에 가입한 회원들이 많다.

유튜브에 올라온 니얀다 1기 오프닝 영상이 2016년 하반기 ~ 2017년 상반기 사이에 시청 횟수가 무려 1만회 이상 늘었다.[16]

2017년 8월 31일, 디시인사이드 난다 난다 니얀다 마이너 갤러리#가 생성되었다. 활동은 매우 적은 편. 원래 갤주는 다른 사람이었지만 활동을 중단해 젤전시오가 2대 갤주가 되었다.

팬들이 늘어났지만 정작 2013년부터 줄곧 팬덤의 중심이던 '니얀다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회원들의 활동은 줄어든 편이다. 재능방송에서 니얀다를 봤던 사람들은 2017년 현재 입시와 군 입대로 활동할 겨를이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정으로 인해 니얀다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에서 매니저직을 거절한 회원도 있고, 심지어는 매니저직에서 물러나고 카페를 탈퇴한 사람도 있다.

이 때를 기점으로, 니얀다 팬덤의 중심은 니사모에서 트위터로 옮겨지게 된다. 애니메이션이 방영된 지 수 년이 흘렀음에도 오히려 팬덤이 성장하는 이례적인 예가 되었다.

3.7. 2018년 이후: 제4기(니사모 6대 이후, 트위터)[편집]

7년간의 온갖 시련과 위기를 딛고, 재도약을 하는 시기
니사모가 카페명을 넘어 팬덤의 명칭으로 굳어진 시기

3.7.1. 1월 ~ 4월[편집]

2018년 초에는 2017년에 비해 니사모로의 유입이 많이 더뎌졌었다. 다만 트위터에서는 난다 난다 니얀다가 메이저화되어 언급이 많아졌다. 앞으로는 날아라 호빵맨처럼 인터넷 주류계에서도 니얀다를 대중화할 수단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트위터에서는 니얀다 까만이라는 캐릭터가 유행하고 있는데, 2차 창작 캐릭터이지만 처음 만든 사람이 자유롭게 쓰는 것을 허락했다고 한다. 인터넷 팬 캐릭터(?)로서는 드물게 니얀다, 니얀다 카렌과 어깨를 나란히하는 인기를 얻고 있다. 그러나 정작 다른 원작 캐릭터들은 '회자만 되는' 정도이고 팬아트로 연성되지는 않는다. 주인공들을 제외하고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기 때문.

한편 2018년 1월 니사모 매니저 젤전시오는 공지를 통해 '난다 난다 니얀다'와 본 카페를 합치는 방안을 내놓았으나 난다 난다 니얀다(네이버 카페) 매니저 니얀다375가 반대 입장을 표명한 상태이다. 결국 통합하지 않고 그대로 가는 것으로 결정.

이와는 별개로 젤전시오는 니얀다375에게 한국어 더빙판 니얀다를 녹화한 테이프를 디지털화하는 작업을 요청하였다. 니얀다 팬들의 최대 숙원은 모든 에피소드를 더빙판으로 보는 것인데, 재방영 및 VOD화가 요원한 현재 인터넷에 있는 니얀다 더빙판 에피소드는 20개도 채 되지 않는다. 하지만 테이프 디지털화는 '니얀다 살리기'가 그랬듯 돈이 많이 들기에 니얀다375의 더빙판 업로드 계획은 실현되기 힘들다. 니얀다375가 2018년 현재 활동하지 않고 있고, 젤전시오도 더빙판을 보는 것보다는 더빙판을 재방영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으로 활동 방향을 선회하였기에 사실상 백지화라고 보는 것이 옳다.

다만 이것을 젤전시오가 부탁하는 과정에서 강요하는 느낌을 받은 팬들이 많았고, 동성애와 수위를 규제하는 젤전시오의 새 규정에 팬들이 반감을 드러내면서[17] 활동량이 일시적으로 저하되었고, 뒤이어 젤전시오가 사퇴를 번복하는 사건으로 인해 팬덤이 일시적으로 침체되었다. 하지만 결국 젤전시오가 사과 후 사퇴하는 것으로 마무리.

임기 만료 직전 젤전시오는 복잡했던 카페 규칙을 간단하게 줄여버리고, 이 과정에서 2차 창작 관련 모든 규제가 카페 규칙에서 빠졌다. 만세!

7대 매니저로 2015년 병맛 내지 패러디 팬만화를 활발히 생산하며 5대 매니저 시절 스탭으로서 운영을 잘 했던 쿠키향아이스가 낙점되었으나, 그는 사태가 안정되자 학업을 이유로 트위터에서 Bro Frenemy라는 명의로 활동하며 니얀다 까만 봇을 운영하는 니얀다 까만에게 매니저직을 넘겼다.

이후 오히려 팬들이 카페에 많이 가입하였고, 트위터에서도 니얀다를 언급하는 빈도가 다시 정상 궤도로 올라갔다. 트위터와 니사모에 동시에 가입하는 팬들도 많아졌다. 다만 젤전시오의 실책으로 떠나간 팬들을 다시 포섭하는 것은 힘들어보인다. 이 때 떠나간 팬들은 대부분 무조건적으로 규제를 반대하던 사람들로, 3기 사건의 풍파를 맞은 니사모와는 상성이 안 맞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젤전시오는 매니저 시절의 고집스러운 모습 대신 자신을 탓하는 자기혐오성 글을 니사모에 쏟아낸 후 활동을 중단해 고참 회원들에게도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니얀다 까만은 임명되자마자 모순적이었던 등급 제도를 고쳤다. 단 규칙은 젤전시오가 마지막으로 고친 규칙 그대로 유지된다.

3.7.2. 5월 ~ 8월[편집]

트위터가 니얀다 팬덤의 구심점이 된 것을 알게 된 니사모의 핵심 요인들이 트위터를 니얀다 덕질 및 홍보에 이용하고 있다. 흥미롭게도 과도기는 물론 제3기 때 가입한 니사모 회원들도 적극적으로 트위터에서 활동하며, 非니사모 트위터 팬들과 정모도 가진다. 물론 젤전시오는 반동결이다. 아이고 이 사람아[18]

6월에는 트위터에서 상죽이로 추정되는 다중 계정이 확인되었다.(#1, #2, #3, #4)[19] 이 계정들은 모두 니얀다 3기, 니얀다 경민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트윗이 다수이며, 트위터에서 니얀다 자캐 및 오너캐를 만드는 사람들을 협박하거나, 니얀다 경민은 실제로 존재한다고 선동하며, 이번 치바TV 재방영 소식에 3기가 방영될 것이라는 등, 지금까지 보여왔던 짓들과 하나같이 행보가 비슷하다. 최근 트위터에서 급격하게 니얀다가 떠오르는 만큼, 활동 영역을 넓히려는 듯 보인다. 그러나 정작 트위터 상의 활동 빈도 자체는 저조해 아직은 모두가 숨죽여 지켜보고 있는 상황이다.

사실 위키에서 상죽이가 완전히 축출되었고, 3기 사건 자체가 조금 알려지게 된 만큼 그가 3기설을 주장할 수 있는 근거는 거의 절멸했다. 그러나 문제는 그의 활동지가 트위터라는 것. 트위터의 특성상 말같지 않은 말을 해도 일부 트위터리안들은 사실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에 위험성이 크다.

급기야 6월 25일경에는 니얀다의 팬 한 명의 신상을 알아내 살해협박했다. 그러나 이번이 첫 번째가 아니다. 사람들에게 주소와 실명을 물어본 건 예전부터 해 왔는데, 3기 사건이 잘 알려지지 않았을 때였기에 회자되지 않았다.[20] 니사모 측은 일단 사이버안전국에 신고 접수를 하였으며, 트위터 및 니사모 소속 팬들 모두가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다.

6월부터 젤전시오와 Ru인이 활동을 본격적으로 재개했다. 그러나 젤전시오는 이전부터 앓았던 우울증+사회공포증+불안장애[21]가 4월의 그 사건으로 인해 심해져, 이미 정신건강이 악화될 대로 악화된 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진실을 위하여>를 최대한 빠르게 연재해나갔으나, 20화를 끝으로 리부트를 하겠다고 발표하고 1화부터 재연재에 들어간다.

한편, AIM120D의 <사냥꾼과 마법사>가 최초의 야고-미미 커플을 그린 작품으로서 근친물을 탐탁치 않아하던 일부 의견을 엄청난 필력으로 묻어버리고 최고의 니얀다 소설이 되었으며, Ru인이 그림을 제공하여 그림과 팬아트의 합작이라는 미친 시너지를 일으키게 되었다. 결국 후속작 <유령>은 조회수 100을 가볍게 넘겨버리며 니얀다 팬픽의 신기원이 되었다. 그리고 그에 비하면 평작에 불과했던 <진실은 위하여> 개정판 1화는 그대로 잊혔다. 젤전시오가 4월에 했던 행보를 생각해보면 그야말로 인과응보가 아닐 수 없다.

이어서 e에스트e(現 Lunar) a.k.a. EST가 실제 만화 장면에 견줄 만한 삽화와 원작과 가장 가까운 분위기의 스토리텔링을 버무린 소설로 <유령>을 능가하는 인기를 얻게 된다.[22] <진실을 위하여>도 니얀다 팬픽 역사에 남을 정도인 것은 분명하지만 저 둘의 인기가 넘사벽이라 명예로운 죽음을 당하고 있다.

7월에는 트위터의 팬들에 의해 앤솔로지가 만들어졌다. 제목은 <난다? 냔다!>.

9월 니사모 정기 모임에 非니사모 회원인 트위터의 니얀다 팬들이 일부 참석했고, 이 때 니사모가 카페의 명칭이 아닌 니얀다 팬덤 전체의 이름임을 확인하였다.[23]

4. 사건사고[편집]

4.1. 핑코를 찾아라 사건[편집]

작품의 주역인 핑코깨비깨비가 10여 년 동안 외면받은 계기가 된 사건.

다음 카페를 중심으로 팬덤이 돌아가던 2005년, <납치된 핑코>가 방영된 다음 회에 <핑코를 찾아라>가 방송되자 핑코의 붙잡힌 히로인 속성에 불만을 가졌던 팬덤이 일제히 폭발한 사건이 있었다. 하지만 <핑코를 찾아라>에서는 핑코가 납치되지 않았으며, 이를 안 회원이 진정하라는 글을 남겼다.

그러나 팬들은 종영할 때까지 핑코를 외면했고, 자연스럽게 깨비깨비도 잊혀졌다. 팬덤이 무너졌다가 부활한 2010년대에 들어서도 핑코와 깨비깨비는 캐릭터 소개에나 보일 뿐 팬들에게 주목받지 못했다. 하지만 2017년 <진실을 위하여> 2화에서 핑코와 깨비깨비가 등장하면서 12년만에 2차 창작에 데뷔하였으며, 핑코가 재평가된 현재 이들은 2차 창작에 곧잘 등장하고 있다. 그리고 도깨비 드립이 터지는데

4.2. 난다 난다 니얀다 3기 허위사실 유포 사건[편집]

한국 애니메이션 팬덤 역사상 전례가 없는 사건. 자세한 내용은 문서 참조.

4.3. 니사모 4대 매니저 선거 결과 번복 사건[편집]

2016년 가을, 니사모의 3대 매니저는 대학 입시로 인해 더 이상 직무수행이 어렵다고 하며 4대 매니저를 투표로 뽑겠다는 공지를 올린다.

  • 2016년 9월 10일: 예선
    3대 매니저가 염두에 두고 있던 회원 6명을 후보 등록해 예선을 치렀는데, 그 결과 젤전시오, 쿠아스(現 쿠키향아이스, 훗날의 7대 매니저), kuro(現 Ru인)가 표를 받았다. 하지만 kuro가 개인 사정으로 인해 사퇴해서 두 명으로 본선을 치루었어야 하는데...

  • 2016년 9월 11일: 본선
    3대 매니저는 예선에는 없던 회원 엄슴을 후보 등록한다. 심지어 엄슴 본인은 정작 다른 좋은 회원분이 매니저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거절의사를 표시했으나 매니저는 "카페의 문제점을 잘 알고 있다"는 이유로 거절의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kuro가 사퇴할 때에는 수리했다?[24] 이와 별개로 본선 투표 결과 젤전시오가 5표를 얻어 최다 득표를 했다.

  • 2016년 9월 24일: 결선(?)
    문제의 3차 투표. 위 링크에서 보듯, 엄슴이 잘 할 것 같다는 같은 이유에서였다고 밝히며 또 투표를 한 것. 투표 결과 엄슴이 당선되어 4대 매니저로 옹립된다. 젤전시오는 낙선 사례에서 두 번 본선을 치른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였지만, 사실 젤전시오가 본인을 투표했다면 본인이 4대 매니저가 될 수도 있었으나, 엄슴에게 투표했기 때문에 결과는 승복하였다. 낙선 사례 깨알같은 취소선


이로서 4대 매니저에는 3대 매니저가 밀어준 후보가 당선되었다. 그러나 젤전시오도 잠수를 탄 기존 부매니저를 대신해 부매니저직을 받았다. 3대 매니저가 보상 차원에서 젤전시오에게 자리 하나를 준 것.

하지만 정작 본선(2차 투표)의 세 후보 중 가장 직무를 잘 수행한 회원은 멤버등급 스탭인 쿠아스였다. ??! 이는 4대 매니저나 젤전시오도 인정한 부분.# 훗날 젤전시오가 2차 창작 규제 논란으로 사퇴할 때 쿠키향아이스(舊 쿠아스)에게 매니저직을 주는 근거로 작용한다.

4대 매니저도 초반에는 카페 규칙을 대대적으로 손보고 대문을 바꾸는 등 카페 관리를 위해 노력하였으나, 2017년에는 그도 대학 입시 문제로 활동을 거의 하지 못했다. 결국 2017년 6월, 부매니저 젤전시오에게 매니저직을 인계하고 카페를 탈퇴한다. 3대 매니저와 4대 매니저는 대입 때문에 운영을 포기했는데 젤전시오는 그런 거 없다[25]

사실 3기 사건이나 후술할 정치질 사건에 비하면 큰 사건은 아니었지만, 만약 이 카페의 회원 수가 천 명 정도 되었다면 결코 작은 논란은 아니었을 것이다. 참고로 당시 회원수는 100명 내외...

6대[26] 매니저에 오른 후, 젤전시오는 니사모 규칙을 새로 만들었다.[27] 또 3기 사건을 완전히 종결시켰으며, 니얀다 팬덤이 커져 많은 사람들이 카페에 가입했다. 또 카페북에 니얀다 팬덤의 역사와 3기 사건을 요약 및 정리하여 고참 회원과 신참 회원 모두의 지지를 받아 임시직적인 위치에서 빠르게 고정적인 입지를 다지게 되는 듯했다. 그러나 후술할 사건으로 인해 그도 매니저직에서 내려오게 된다.

4.4. 니사모 6대 매니저 2차 창작 규제 논란[편집]

2018년 5월 매니저 젤전시오가 2차 창작에서 고어하거나 선정적인 것을 배제해야 한다는 자신의 입장만을 고집하였다가 상당수의 트위터리안 출신 회원들의 반발을 일으킨 사건. 작가 야나세 타카시평화주의자였기에 이러한 주장을 한 것인데, 2차 창작에서만큼은 개인의 자유에 맡기는 것이 맞는다는 의견이 많아 니사모 내에서의 반발이 거셌다. 이에 젤전시오는 잘못을 인정한다며 매니저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일부 회원들이 만류하자 젤전시오는 재신임을 묻겠다고 했는데, 고참 회원들이 매니저를 계속 해달라고 해서 사퇴를 번복한다. 하지만 트위터에서 활동하던 모 회원[28]이 이 분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탈퇴해버렸고, 결국 젤전시오는 건강상의 이유로 정말로 물러난다. 이후 자신을 자책하는 글을 올려 니사모의 분위기를 가라앉게 해, 몇몇 회원들이 추가로 탈퇴하기도 했다.

젤전시오는 아무도 매니저직을 지원하지 않자[29] 직권으로 쿠키향아이스에게 매니저직을 넘겨주었다. 그러나 쿠키향아이스는 사태가 진정되자 학업을 이유로 니얀다 까만에게 매니저직을 위임했다. 트위터리안 출신 회원이 매니저에 오른 것은 니사모 최초로, 트위터리안들의 압도적인 인기를 얻고 매니저직을 수행하며 니사모는 단기간에 침체에서 벗어났다.

젤전시오는 이 사건 이후 활동을 중단했으나 오래지 않아 돌아왔다. 그러나 이 사건을 계기로 그의 정신건강이 악화되어[30] 회원들과 충돌이 잦아지는 등, 후유증이 꽤 길게 이어졌다.

5. 이야깃거리[편집]

  • 제1기 팬덤과 제2기 이후의 팬덤은 연결고리가 느슨한 편으로, 제1기 당시 활동하던 팬들은 현재 거의 없다. 굳이 예를 들자면 니얀다의 팬이라고 불릴 자격조차 없는 인간 정도.

  • 행인의 경우 니사모의 매니저 자리에는 오래 앉지 못했지만, 능력은 역대급이었던 인물이다. 2014년 리그베다 위키 문서 생성으로 인해 니사모에 합류한 팬들은 지금까지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문서 반달 당시 혼자서 반달을 방어하고 3기설의 허구성을 모조리 간파하여 니사모 카페에 공지글을 올리는 저력을 발휘하였을 뿐만 아니라, 필력도 좋고 피아노 연주 실력도 뛰어났다. 니사모가 2013년 만들어진 후 가장 먼저 팬픽을 쓴 작가 중 한 명이기도 했다. 젤전시오가 행인의 후계자라 카더라.

  • 행인과 빠돌빠돌은 2012년 당시 니얀다(상죽이)를 막아내는 데에도 힘을 합쳤으며, 제3기 당시 합작해서 팬픽 <DaNgErOuS>를 쓰기도 했다. 26화(!)까지 연재되었지만 결국 연재중단되고 말았다. 그러나 2017년 콘테로의 <인비저블>이 기록을 갱신하기 전까지 화수가 가장 길었던 니얀다 팬픽으로, 니얀다 팬픽의 선구자적인 역할을 한 두 작품 중 하나였다.[31]

  • 제3기의 위기였던 2015년 ~ 2016년 당시 니사모 카페를 지켰던 사람들 중에서는, 안타깝게도 트위터에서 인기가 오른 현재 니얀다 팬덤에서 활동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지금도 활동하는 3대 매니저와 7대 매니저, 4대 부매니저도 당시 니사모를 지켜낸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 과도기에 팬덤에 합류한 젤전시오는 다른 팬들과는 차원이 다른 독종인데, 그는 역덕후방덕후겜덕후교통덕후(...)이지만 니얀다에 치이기 전까지는 애니덕후가 아니었다. 4대 매니저 선출 당시에는 한국외대서울시립대지원했지만 수능을 잘 보기를 포기하고 나무위키 문서를 보충하며 반달과 맞서는 것을 선택했다. 무서운 건 그의 판단이 옳았다는 것[32] 또 트위터의 인기 2차 창작 캐릭터인 '니얀다 까만'으로 대표되는 현상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고 한다.[출처]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작품의 사상에 집착하다가 매니저 자리를 날려버리기도 했다. 이러한 기행(?)에도 불구하고, 인지도는 팬덤내에서도 공기이다. 그림을 못 그리니까.[34]

6. 주요 인물[편집]

2017년 현재, 나무위키에 문서가 생성된 실존 인물들 중 니얀다의 팬이라고 밝힌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그러므로 이 문서에 볼드체가 된 팬들이 주요 인물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니얀다 팬들이 스스로 유명인이 되는 방법도 있지만 현실은...

7. 바깥고리[편집]

[1] 무려 보글보글 스폰지밥, 톰과 제리와 동급으로 띄워줬다. 물론 2006년에는 파워레인저 매직포스마법전사 유캔도라는 두 작품이 워낙 전설적인지라 푸시가 줄기는 했지만 종영 직전까지 생일파티의 이벤터는 니얀다였고(카사양과 테르테르 문서를 참조), 메인 ID에 꾸준히 보일 정도로 재능방송을 상징하는 애니메이션 중 하나였다.[2] 심지어 정답이 세탁맨이었을 때에도 팬들은 기어이 맞춰냈다. 세탁맨은 21-A화에서 출연하는 단역이다. 21-A화의 제목이 <세탁맨의 꿈>이었으니 해당 에피소드를 본 사람들은 정답을 알 수 있었다. 반대로 생각하면 그만큼 니얀다를 시청한 팬들이 많았다는 이야기.[3] 모리 코고로 문서에도 언급된 재수없게 미친아 사건(...)이 대표적이다.[4] 예외적으로 2008년, '난다-카멘'의 멤버였던 상죽이가 난다-카멘에 니얀다와는 별 관련이 없는 글들을 마구 쏟아냈던 적이 있다. 아무도 보지 않았지만(...).[5] 2016년 10월 10일 4대 매니저가 카페명을 니얀다(냔다 카멘)를 사랑하는 모임으로 변경했다. 하지만 6대 매니저가 2017년 9월 3일 지금의 이름인 니얀다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으로 재차 변경했다.[6] 아이러니하게도 이 때문에 트위터로 팬덤이 확장된 2017년 이후에도 팬덤 이름은 니사모로 굳어진다.[7] 왜 안 되는지는 난다 난다 니얀다/국내 방영 문서 참조.[8] 예전에는 이런 케이스가 흔했지만, 2016년 초가 되면 니얀다를 기억하는 사람이 적어지는 대신 나무위키의 난다 난다 니얀다 문서도 얼추 형식을 갖추게 되기 때문에 나무위키의 문서를 보고 오거나 블로그의 니얀다 리뷰를 통한 니사모 홍보로 오는 케이스가 많았다.[9] 그러나 젤다 팬덤에서는 젤전시오가 아닌 '역사사랑'이라는 닉네임을 쓴다.[10] 사실 주범인 상죽이는 트위터에 잠복하고 있지만, 그가 더 이상 위키커뮤니티, 포털 사이트에 등장하지 않게 된 것, 그리고 3기 사건이 뒤늦게나마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만으로도 놀라운 성과라고 할 수 있다.[11] 사실 방식 자체는 굉장히 간단하다. 이를테면 문서의 대중매체 문단에 삵 캐릭터인 메롱(난다 난다 니얀다) 문서를 링크하고, 안나 카레니나 문서에 이름이 관련 있는 안나 카발레리나를 링크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관련 문서가 더 많은 문서에 링크될수록 그만큼 위키러들이 니얀다를 접할 기회가 많아질 수 있다.[12] 말은 이렇게 해도, 사실 3기 사건이 알려지지 않은 반달 초기에는 미쳐 날뛰는 상죽이와 더 미쳐 날뛰는 젤전시오의 키배(...)에 불과했다. 그러나 위키러들이 사건에 개입한 이후 상죽이가 반달임이 알려진 시점부터는 집단지성에 의한 상죽이의 캐관광으로 양상이 바뀐다.[13] 그러나 2화가 나오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그 사이 젤전시오의 <진실을 위하여> - 콘테로의 <인비저블> - 암람(AIM120D)의 <사냥꾼과 마법사>(약칭 사과마)로 장편소설의 계보가 이어져서 공백기가 다시 오지는 않았다. 참고로 세 작품 모두 니얀다 2차 창작사에 길이길이 남을 작품인데, <진실을 위하여>는 핑코와 깨비깨비가 2차 창작에 데뷔+야고-루루 러브라인 첫 언급+사회 비판+리부트된 최초의 니얀다 소설이고 뭐? 두 번째는 병맛코드 소설의 최고봉(...)이며, 마지막은 아예 야고미미 커플의 효시이다. 흠좀무.[14] 리그베다 시절과는 다르게 상죽이의 반달 횟수도 늘어났으며, 무엇보다 젤전시오가 문서를 몇십 개나 만든 탓에 더 많은 문서에 반달이 가해졌다. 그런데 젤전시오는 다른 위키러들과 함께 이 수십 번의 반달 시도를 모두 막아낸다.[15] 등장인물 문서를 보면 알 수 있지만, 의인화된 캐릭터들은 등장인물로 부를 수 있다.[16] 2016년까지만 해도 5만대 중반이었던 영상이다. 2017년 9월 3일 현재 조회수는 7만 1천. 10월 14일 기준 7만 7천. 11월 14일 기준 8만 1천. 그리고 2018년 2월 1일 기준 9만 이상. 그리고 동년 4월 29일 기준으로 무려 10만을 뚫었다. 말 그대로 하늘 위로 올라가는 조회수[17] 전말은 이렇다. 동성애 규제는 젤전시오도 하고 싶지 않았지만, 3대 매니저였던 정예국군이 동성애 작품을 반대하는 의견을 강력하게 내었고, 결국 젤전시오가 수용하면서 동성애 규제가 실시된 것. 물론 수위는 젤전시오가 제한하려 한 것이다. 그러나 정예국군은 젤전시오가 매니저를 그만둔 뒤 생각을 바꾸었고, 수위도 어느 정도는 제한해야 한다는 의견이 니사모 사이에서 개진되어 젤전시오는 조금 억울한 상황이 되어버린 것. 물론 당시 젤전시오가 너무 강하게 밀고나간 것에는 이론이 없다.[18] 카페채팅에서 젤전시오는 트위터가 워낙 문제점이 많아 활동에 대해 회의적이고, 트위터리안 회원들 일부와 부딪힌 후 그들에게 외면받았기 때문에 무섭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아마 트라우마가 생긴 듯 하다.[19] 두번째 계정은 이름이, 세번째 계정은 아이디가 니얀다 경민이다.[20] 3기 사건이 알려진 후인 2017년 9월에 디시인사이드 난다 난다 니얀다 마이너 갤러리에서 상죽이가 니얀다 까만을 만든 사람을 살해하자고 선동한 적이 있었으나, 젤전시오가 이 사실을 협박 피해자에게 알리고, 마이너 갤러리의 갤러였던 클티(엑시온과 동일 인물)의 동의를 받고 갤주가 되어 직접 차단했었다.[21] 복귀 뒤 스스로 병명을 밝혔다. 그래서 병역판정검사에서 4급 보충역판정을 받아 사회복무요원 소집 대상이 되었다고.[22] 참고로 EST도 젤전시오와 마찬가지로 나무위키러 출신이라 니얀다 덕질에 있어서 젤전시오의 영향을 매우 강하게 받았다. 그래서 젤전시오가 정신적으로 힘들어할 때 젤전시오 덕분에 이렇게 할 수 있었다며 가장 격려를 많이 해 주었다. 게다가 <진실을 위하여> 개정판 3화의 그림을 한 장 그려주기까지 했다. 그러나 젤전시오는 글과 그림에서는 EST에 비해 너무 실력이 낮아 그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고, 결국 젤전시오 본인이 불평등조약이라는 희대의 자학개그를 남기고 말았다.[23] 그러나 '니얀다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은 여전히 네이버 카페만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이 카페는 나무위키의 등재 기준을 충족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 문서의 이름은 '니사모'이지만, '니얀다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으로는 이 문서로 들어올 수 없다.[24] kuro는 국방부 퀘스트 때문에 자진 사퇴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kuro는 2018년 Ru인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돌아온다.[25] 4대 매니저 투표 당시 젤전시오도 대입을 앞두고 있었다. 아래 이야깃거리 문단 참조.[26] 5대가 아닌 6대인 이유는 4대 매니저가 임기 도중 본계를 바꾸었기 때문이다. 구 본계의 매니저 권한을 새 본계에 인계한 것.[27] 새 규칙은 성문법처럼 구성이 맵시있게 짜여져 있기는 했으나, 지나치게 엄격해 카페에서의 덕질이 어렵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28] 73-B화를 번역한 사람이다.[29] 니얀다의 팬들은 현재 성인 내지 고등학생이다. 의무가 더 가중되는 것을 꺼리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30] 젤전시오는 우울증을 앓고 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자기혐오가 심해진 것.[31] 나머지 하나는 may be의 <구원>이다. 26화로 <DaNgErOuS>와 타이 기록을 이루었지만 역시 그 길로 연재 중단.[32] 젤전시오는 결국 두 대학의 수능최저요건을 맞추지 못했지만, 인천대학교합격했다고 밝혔다. 다만 그의 행동이 끼친 영향은 일종의 나비효과 및 시너지 효과였기 때문에 정작 2017년 이후 합류한 팬들은 그의 영향력을 잘 체감하지 못하는 부분이다.[출처] 이 글에 의하면 사실 캐릭터 자체는 높게 평가했지만, 2차 창작 캐릭터가 원작 캐릭터의 인기를 능가하는 현상을 좋아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34] 젤전시오는 자기 주장이 너무 세고 그림을 못 그려서 그렇지, 능력은 매우 뛰어난 편이라고 평가받는다. 능력과 인간성이 별개인 사람 나무위키 건도 그렇고, 70-B화의 삽입곡 <전설의 피아노>를 최초로 피아노로 연주했다. 핑코깨비깨비가 2차 창작에 처음 등장한 팬픽 <진실을 위하여>도 이 사람이 쓴 것이다. 필력과는 별개로 인기는 별로 없지만 그리고 아마추어 수준이기는 하지만 작곡도 가능하다. 그러나 문제는 저 두 개의 단점 때문에 이러한 능력들이 전혀 부각되지 않는다는 것.[35] 자막판은 싱크가 안맞거나 자막이 엉망인 영상이 몇 개 있다...고 하는데 당연한 것이 전문 자막 제작자가 자막을 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들은 오로지 팬심으로 자막을 달았으니 자막 제작자들을 욕하는 무개념 짓은 절대로 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