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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勞動者
labourer / laborer / worker

1. 개요
1.1. 사무직들도 노동자
2. 국내의 노동자3. 해외의 노동자들
3.1. 전 세계 각국의 외국인 노동자들
4. 노동조합 / 노동운동5. 탈노동 현상6. 자본가와 노동자의 관계에 대한 오해와 반박7. 기타8. 관련 항목들


자신이 소속된 기관 또는 기업체에서 을 하고 살아가기 위한 금전의 대가를 받는대가를 받는 것이 노동이고 그렇지 않고 그냥 해주는 것은 보통 자원봉사라 한다. 사람. 광의적인 의미로는 직업을 갖고 일하는 모든 사람들을 노동자라고 말할 수 있으나, 일반적으로는 사업자에게 고용되어 일하는 피고용인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생산직이건 사무직이건 당신이 누군가에게 고용되어 봉급을 받는다면 노동자다. 다른 이름으로는 근로자라고도 칭한다.

1. 개요[편집]


간단하게 말해서, 돈 벌기 위해 머리로 혹은 몸으로 일을 하는 모든 사람들 인류가 노동자이다.[1]

보다 엄밀하게는 생산 수단을 소유하지 못해 노동을 판매하고 그 대가인 임금으로 생활하는 사람(무산 계급, 프롤레타리아)을 가리키는 말이다. 중세에는 농노들이 비록 토지에 대한 소유권은 없었으나, 관습적 경작권이 인정되었기 때문에 생산수단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출현하면서 토지, 즉 생산수단에 대한 권리를 상실한 농노 출신들, 그리고 대지주 중에서도 상속권이 없는 삼남, 사남 등의 아들들이 도시로 흘러들어가 노동[2]을 판매하고 임금을 받으면서 노동자라는 계층이 탄생하게 되었다.

즉, 월급쟁이가 곧 노동자라고 볼 수 있다. 노동자라고 하면 흔히 블루칼라라고 불리는 공장 노동자들을 연상하는 경우가 많으나, 화이트칼라 역시 엄연한 노동자다. 대기업 사무직 평사원이나 하급 행정직 공무원도 엄밀히 따지면 노동자인 셈이다.[3] 교사소방관 등도 역시 노동자에 해당되는 것이다.

냉전 시절에는 소련을 위시한 사회주의 진영에서 노동자 단결을 운운하자 이에 대중들이 홀려 넘어가는 걸 막아보고자 근로자라는 용어를 만들기도 했다. 이를 기념하는 근로자의 날도 있는데,[4] 역시 노동절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진 날이다. 그래서인지 일부 보수 진영의 사람들은 노동자라는 말을 꺼려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경우 애용하는 용어가 근로자. 그런데 사실 근로자라는 말은 북한에서도 쓰는 말이다. 마치 가치중립적이었던 인민이라는 용어가 현재 한국에선 금지어 되다시피 한 것과 유사하다. 그나마 노동자라는 말은 민주화 이후 사정이 나아진 편.

노동자란 일단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해 노동을 판매하고 그 대가인 임금으로 생활하는 사람이다. 노동은 신성하다고는 하지만 노동을 해야 되는 사람 입장에서 노동은 전혀 신성하지 않고, 오히려 그 시간 동안 인격과 시간, 체력을 고스란히 바쳐야 된다. 인간의 상품화, 기계부품화라는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인권 이전에 인간의 기본 권리를 부정하는 근거가 될 수도 있다. 인간을 하나의 도구, 수단으로 볼 수 있는 위험한 발상일 수도 있다. 우선 그 시간 동안 얼마의 돈을 위해서 그는 그 시간을 회사, 직장, 혹은 업자에게 행동의 제약, 구속을 당하는 것이다. 근무시간 동안에 그 사람은 자신의 권리와 행동을 회사와 상사에게 고스란히 바쳐야 된다. 그 시간 동안 분명히 다른 일, 다른 활동을 할 수도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일반적으로 노동자의 전형으로 여겨지는 공장 생산직 노동자는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넘어오면서, 노예에서 해방된 사람들, 그리고 재산을 상속받을 일이 없는 둘째아들, 셋째아들 등이 도시로 흘러나와서 단순 육체노동, 기술과 지식이 필요하지 않은 일에 종사하면서 형성되었다. 그러나 노동자의 의미에는 공장 생산직 외에도 농업 생산도 노동이며, 사무직도 노동이다.

그와 무관하게 노동자보다 근로자가 더 품격(?) 있어보이는 용어라 생각하여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실제 과거 국립국어원에선 1992년 노동자를 근로자로 순화하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1993년 순화어 대상에서 빠진 바 있다. 결론적으로 노동자는 표준어로 공적으로 써도 무방한 용어라는 것.#

노동자의 천적으로는 부르주아, 산업재해, 임금체불, 야근, 구조조정, 명예퇴직, 실업 등이 있다.

1.1. 사무직들도 노동자[편집]


일정 시간과 노동력을 판매하고 그 대가로 돈, 또는 재화를 받으면 노동이다. 흔히 노동자라 하면 생산직만을 나타내는 단어로 여기기 쉽다. 그러나 사무직도 노동자가 맞다. 생산직이건 사무직이건 일단 기업이나 국가 등 타인, 타자에게 일정기간 고용되어 봉급을 받고 그 대가로 노동을 한다면 그는 노동자다. 일각에서는 직업으로 인정하지 않는 편견이 일부 존재하지만 아르바이트 역시, 일정 시간과 노동력을 판매하고 돈을 받는다는 점에서는 노동에 해당된다.

2. 국내의 노동자[편집]


한국 국민들 역시 대다수가 노동자로서 살아가게 된다. 그런데 한국에선 노동자에 대한 이미지가 생산라인에서 열심히 무언가를 만드는 공돌이 또는 공사장 용역 노가다 일용직 정도로 박혀 있고, 사무실에 앉아 일하는 사람은 직장인이나 회사원뭔가 좀 차별화를 심하게 두어 구분하는 경우가 많다. 직장인은 맞지만 노동자는 아니라구요 그런데 이는 잘못된 생각인게 당신이 누군가에게 고용되어 봉급을 받고 있으면 그냥 다 노동자다.

과거 박정희 군사독재 시절엔 故 전태일 열사의 분신 시위에서도 볼 수 있듯이 국가에서는 국가기관과 사기업들이 나라의 경제 성장으로 집중시킨 결과 그 대가로 노동 환경들이 매우 열악하였다. 그래도 이후 故 전태일 열사의 분신 시위와 나라의 경제가 안정적으로 성장되고 사회의 민주화노동조합들의 노동운동 등 여러 노력에 힘입어 노동 환경이 이전들 보다는 나아졌다. 어디까지나 예전보다는. 하지만 사실 지금도 현실은 좋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2014년 5월 국제노조연맹에서 발표한 세계노동권리지수, 즉 GRI를 보면 한국은 5등급으로 같은 등급의 국가로는 임금과 처우가 열악한 국가들이 대다수로, 중국, 필리핀, 방글라데시, 캄보디아 등이 있다. 그외에 5등급 아래로 5+등급도 있는데, 이는 소말리아, 남수단,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시리아처럼 정정불안 등으로 법치주의가 아예 이뤄지지 않는 국가들이다. 해당 기구에 따르면 미국, 한국 등의 일부 선진국들의 노동권리지수가 이라크, 아프간 등과 비슷하거나 그보다 열악하다고 한다. 그리고 전세계 1등 분야를 가리는데 한국은 일 중독으로 1등을 먹었다고 한다. 어느 나라가 1등일까?. 참고로 북한은 검열.

이는 노동자와 직장인을 구분하는 특이한 어법과 일부 언론의 편협한 보도, 까면 그냥 한다 식의 사고 방식 때문인지 어디 감히 위에 저항하는 것처럼 보이는 노동운동에 대해 여전히 안좋은 인식을 갖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참 웃긴게, 노동운동이란게 애초에 노동자의 권익을 향상시키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물론 노조에 가입했을시 회사로부터 알게모르게 받을 불이익에 대한 걱정 때문에 방관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노동자임에도 불구하고 아예 노동운동에 대해서 부정적 인상을 갖고 있거나 노조나 파업에 "불법" 딱지를 붙이는 사람들도 많은 것이 현실이라는 것이다.

또 이것은 정식으로 일하는 정규직들/ 계약하고 일하는 비정규직들간의 다툼 및 싸움을 조장하기도 하는데, 이는 노동자 대부분이 자신이 노동자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지 못한데다 '노동자'라는 단어 자체가 '노무자'에 가깝게 취급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또다른 이유로는 사무직 역시 노동자의 범위에 해당되는데도, 흔히 노동자라 하면 공장 생산직만을 가리키는 단어로 인식되었고, 그러한 인식, 편견이 굳어졌다. 쉽게 말해 "직장인"은 "노동자"가 아니다 또는 직장인들은 근로자들이지, 절대로 노동자들이 아니다.라는 식의 구분이 통하는 상황이 되어가 버렸다.

21세기에도 여전히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이유 없는 무단해고와 그로 인해 벌어진 장기투쟁 시위 중 22명의 자살, 삼성 반도체 공장 근로자가 위험한 화학물질 및 방사선에 노출되는 근무환경으로 인해 백혈병에 걸려 산업재해 즉 산재로 수십명이 사망하고 투병하는 일 등 극단적 사건들을 필두로 해서 OECD 국가 중 최상위권인 연간 평균노동시간, 비정규직이라는 저임금 일자리의 확산으로 한국의 노동 현실은 그 경제규모에 비해 매우 열악하기 짝이 없다.

반면에 현대자동차대기업 생산직들의 (극히 상대적으로) 과도한 노조 활동이 부각되면서 노동조합의 혜택으로 좋은 노동조건들을 가지게 된 귀족노조[5]가 생겨나기도 했다. 오히려 화이트칼라 사무직들이 열악한 노동조건에 노출되어 있는 경우가 있다. 특히 우리나라 중소기업 노동자의 대부분은 사무직이든 생산직이든 박봉이거나 정년보장이 잘 안되거나 노동시간이 길거나 하는 등 대우가 안 좋은 경우가 많다. 물론 아닌 곳도 많지만, 가족 단위이거나 개인 단위로 운영되는 중소기업 특성상 대기업과 맞먹는 연봉과 복지 혜택 등 근로 조건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특히 한국은 주류적 노동자라 해도, 회사 운영에 하등의 발언권이 없으며[6] OECD 최악의 산재율과 최장의 노동시간에 눌려 살아야 하고 현대차 정규직이라 해도 장시간 고강도 노동에 의한 가정 불화와 각종 골병 등 고질병, 만성피로와 스트레스로 인한 건강 악화는 보장돼 있어 한국에서 노동자로 산다는 것 자체가 저주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현재 노동을 하면서도 노동을 불쾌하게 여기고, 거부감을 느끼는 이들은 언제든 존재해왔고, 일부는 돈을 모아서 자영업을 하거나 공무원 시험, 공기업 공채, 여러 임용시험을 준비하거나, 학업을 연장하여 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하는 식으로 노동을 거부, 회피하게 되었다.

1980년 발생한 일본의 경기악화가 장기화되면서 구조조정과 비정규직이 등장하였다. 한국은 1997년의 IMF의 도움을 받은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과 비정규직이 대폭 증가하면서 노동조건이 더욱 악화되고 있다. 그에 따른 여파인지 2010년대 청소년들의 노동자에 대한 인식도 영 좋지 않다. 하지만 그게 너희들의 미래일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다.

3. 해외의 노동자들[편집]


사회민주주의가 강하게 자리잡은 서북유럽권 국가의 노동자들은, 대우가 상대적으로 매우 좋다. 유럽권의 복지가 좋은 이유 중 하나가 노동자들이 노조 결성 등으로 강하게 정부나 사업자들을 대상으로 투쟁해온 다른 지역들 보다 역사가 길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애초 공교육 과정에서부터 이런 노동 관련 교육을 시키고, 실제 노동자들의 힘도 강한 편이다.

그런데 의외로 자유진영의 상징처럼 대표되는 미국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만큼 자본주의 문화가 강한 관계로 자본가들에 비해 미국 노동자들의 힘이 약한 편이다. 미국 영화나 미국 드라마 등에서 자주 보이는 "넌 해고야." 라고 하는 순간 짐싸고 바로 나가는건 미국, 유럽에선 정말로 있을 수 있는 일. 물론 그만큼 노동시장이 상당히 유연하기 때문에 이런 이력이 취직할 때 문제가 되는 경우는 거의 없고, 곧바로 다른 직장을 찾아 볼수는 있으나, 고용자 말 한마디에 직장이 날아간다는 것 자체가 고용자의 파워가 절대적이란 것을 의미한다. 그나마 미국, 유럽 또한 이제는 시대가 바뀌고 발전하는 것과 함께 노동인구 감소, 청년층의 노동 기피, 거부현상 등 여러가지 요인으로 갑작스럽게 해고시키는 일이 점점 줄고는 있지만, 여전히 사업자들이 절대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바뀌지가 않았다.

2008년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 금융 시장 자체가 거하게 삽을 푸면서 지금까지 미국 사회, 유럽 국가 내에서 저런 빈약한 노동권을 상쇄하던 이직, 재취업의 기회 또한 갈수록 줄어드는 반면, 저런 없는거나 마찬가지인 노동자의 권익은 그대로이니 2010년대 이후 미국에서는 그로부터 몇년 전까지만 해도 주류 정치인이라면 입에 담지도 못했을 사회주의를 공공연하게 주장하는 버니 샌더스가 유력한 차기 대권 주자 중 하나로 떠오르는 등 점점 그 피로와 불만이 고개를 들고 있다.[7][8]

3.1. 전 세계 각국의 외국인 노동자들[편집]


개발도상국과 중진국의 노동자들이 국내 보다는 국외로 나가서 노동하는 일도 흔했다. 이는 제2차 세계 대전 종결 이후 두드러진 현상으로, 한국은 1960년대부터 1980년대의 프랑스, 독일의 광부, 건설 노동자, 파견 간호사들, 1980년대의 중동 파견 건설기술자들이 있었고, 이들은 월급을 국내로 송금했다. 일본은 1945년 이후 1960년대에 미국과 남미에서 저임금 노동자로 생활하며 외환을 본국으로 송금했다.

1960년대 이후에 유럽의 식민지에서 독립하기 시작한 동남아시아권 국가들, 아프리카권 국가들의 노동자들이 다른 외국으로 건너가 노동을 하였고, 1992년 이후로는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적인 내용을 일부 채택한 중국, 몽골, 베트남 등지의 노동자들이 해외로 취직하여 열악한 업종에 근무하며 월급을 본국으로 보냈다. 이런 외국인 노동자들은 해외에서 기피되는 3d업종에 주로 종사하며, 돈을 벌어 자국으로 송금하였다.

이러한 다른나라로 건너가서 외국인 노동자 생활을 하다가 현지 국가에 귀화하는 일도 있고, 일부는 본국으로 귀국하기도 한다. 자국의 산업시설이 발전하게 되면 해외로 나가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수는 서서히 감소해갔다.

4. 노동조합 / 노동운동[편집]

5. 탈노동 현상[편집]


20세기 중반을 기점으로 전세계적으로 노동자는 감소하는 추세이다. 이는 노동 기피, 노동 거부에 의한 결과물이다. 노동인구 감소현상은 컴퓨터로 자동화된 직종만이 아니라, 자동화나 인공지능이 도입되지 않은 산업으로도 확산되고 있다.

일정시간 사용자에게 일정액수를 받기 위해 개인의 시간과 권리를 헌납해야 하는 노동에 대한 불쾌감과 일부 위험하고 열악한 작업환경에 대한 불쾌감과 불만은 계속 있어왔다. 이는 노동자로 하여금 자신의 자녀들만큼은 노동자가 되지 않게 하겠다는 생각을 품기도 했고, 노동에 대한 거부와 기피는 오래전부터 존재해왔다.[9]

1960년대 이후 2010년대까지 상당수의 한국인은 노동자로 살아왔다. 그러나 중소기업소기업, 영세업체의 열악한 근로환경과 자칫 잘못하면 이런 사건, 이런 사건, 이런 사건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 인권의식과 개인주의, 정보능력의 향상 등으로 인해 미국과 프랑스 등은 1970년대부터, 일본은 1980년대부터, 한국은 2000년대부터 탈노동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러시아1990년대 말부터 서서히 등장해 2010년대에 본격 사회공론화 되었다.[10]

또한 고학력화와 정보화, 산업의 발달, 사회의 발전에 따라가지 못하는 열악한 일자리들의 존재는 청년층의 탈노동현상을 심화시켰다. 산업화가 어느정도 완성되고 경제적으로도 일정수준의 소득을 형성해 중산층이 증가한다. 이들 역시 지식과 학력, 정보력, 인권의식 등을 스스로 자각하거나 주변을 통해 접하게 되면서 점차 노동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기 시작한다.[11] 이러한 자발적 탈노동을 하는 이들을 가리켜 미국에서는 니트족이라 이름붙였다. 이 단어는 일본을 거쳐 한국으로도 그대로 유입되었다.

일본은 1980년대의 경기악화 초창기 당시의 사회진출연령인 신인류세대는 생산직 노동이라도 취업하려는 의욕을 보였으나, 점차 노동을 거부하거나 기피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당시까지만 해도 돈을 벌어 주택 마련과 자동차 마련을 당연하게 여겨왔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의 일본 청년들은 노동을 거부하거나 기피하고, 아르바이트 등으로 생활하는 일이 나타났는데, 집과 자가용 마련에 의미를 두지 않기 시작했다. 이를 득도했다 하여 사토리세대라 부른다. 한국은 1997년의 imf 구제금융 사태까지만 해도, 새로운 직장에 취직하여 노동을 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1990년대 초에 이미 한국의 일부 청년층은 노동을 거부하거나, 기피하는 현상이 나타났고, 대신 공무원 시험과 공기업 공채시험 준비, 대기업 입사 등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한국에서는 점차적으로 그러한 취직 자체를 거부하는 청년층도 점차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하였다.

결국 부모들이 노동을 기피, 거부하는 청년층에 대해 우려하는 것은 이들을 부양하는 데 부담이 되어서는 아니다. 부모가 집에서 노는 자녀를 보면서 화를 내는 건 그 자녀 때문에 돈이 많이 들어서가 아니다. 도박 같은 데 중독되거나 수시로 사고를 치는 게 아니고서야 니트족 대부분은 돈을 거의 안 쓴다. 화를 내는 진짜 이유는 부모가 은퇴한 뒤의 경제사정과 자녀의 암담한 미래 때문이다. 자식은 적은 돈에 직장상사, 업무 스트레스를 받는 것보다, 니트, 백수로 사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라 생각되어 노동을 거부, 기피하는 것이다. 노동거부, 노동기피는 특정 국가에만 해당되는 국한적 현상은 아니다. 한국과 일본 외에도 각국에서 1960년대 이후부터 꾸준히 점증하는 현상이기도 하다.

한국에 한해서이지만 노동을 하지 않는 사람 중에서도, 노동을 할 의욕은 있으나 하지 못하는 사람과 노동에서 도피하거나 노동을 거부하는 사람이 구분된다. 노동을 할 의욕은 있으나 하지 못하는 사람은 백수, 노동에서 도피하거나 노동을 거부하는 사람은 니트족 등으로 따로 구분한다.

6. 자본가와 노동자의 관계에 대한 오해와 반박[편집]


흔히 부유한 자본가와 빈곤한 노동자의 이항대립은 스테레오타입에 불과하며 자본가가 노동자보다 우월한 지위에 있지 않다는 식으로 마르크스주의의 주장을 비판하는 경우가 있다. 즉, 의사, 변호사[12], 강사, 프리랜서, 운동선수, 일부 소작농[13] 등등 생활수준이나 사회적 지위가 전혀 떨어지지 않는 사람들도 노동자고, 대기업과의 관계에서 을의 위치에 놓인 중소기업, 자영업자, 아니면 소액 임대소득으로 연명하는 부류, 자영농, 개미 투자자, 자기 집 보유자[14], 일부 소작농[15] 등도 자본가인데 자본가가 노동자보다 우월한 지위를 점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비판은 첫째로, 자본과 노동의 관계를 불평등의 문제와 혼동하고 있으며, 둘째로 사회구조에 관한 이론을 개별 자본가, 개별 노동자의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생태학적 오류를 저지르는 주장이다. 마르크스가 비판한 자본주의의 모순은 생산수단이 노동자와 분리되어 있는 현상이지 노동자의 빈곤함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마르크스주의의 관점에 따르면 노동가치이론에 따라 생산과정에서 나온 부가가치는 노동자의 몫이다. 하지만 생산수단을 갖고 있는 자본가가 부가가치의 일부를 가져가기 때문에 자본주의 체제는 모순적이다. 이게 바로 마르크스가 말한 '착취'다. 마르크스주의에서 말하는 착취는 자본주의라는 생산체제, 즉 생산수단과 노동이 분리된 상태에서 노동자의 몫인 부가가치를 자본가가 가져가는 현상이 일어나는 것을 뜻하는 사회과학 용어이지 일상생활에서 쓰이는 것처럼 도덕적 판단을 뜻하는 단어가 아니다.[16] 따라서 자본가가 쿠바산 시가에 좋은 차에 좋은 양복을 빼입은 자본주의의 돼지 같은 부류이기 때문에 자본주의가 문제인 것이 아니다. 반대로 노동자가 높은 소득을 올리고 생활조건이 나아진다고 해서 자본주의의 모순이 해소되는 것도 아니다.

물론 마르크스가 주로 활동했던 시기인 초기 자본주의 사회와 현재의 고도 자본주의사회의 차이가 상당히 크기 때문에 마르크스주의의 관점을 오늘날 바로 적용할 수는 없다. 가령, 전문직의 경우 전문직이 되기 위해 쌓은 지식과 경험들을 '인적자본'으로 새로이 개념화해서 전통적인 자본 개념을 재고해볼 수 있다. 또 보다 근본적으로는 경제결정론적 관점이나 노동가치설 등 마르크스주의의 기본적인 전제, 관점들을 비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중소기업, 자영업자 등 영세 자본가와 대기업 직원, 전문직 등 고소득 노동자를 예로 들면서 자본과 노동의 관계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을 비판하는 것은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떠드는 헛소리에 불과하다.

7. 기타[편집]


유럽권에서는 1970년대, 아시아권에서는 1990년대 이후로 노동을 거부하거나 기피하는 현상이 서서히 점진적으로 증가하였다. 노동 거부, 노동 기피와는 별개로 2015년 일부 국가에서는 인공지능에 대한 개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다. 인권의식과 각종 위험요소 등 여러가지 복합적인 사유로 자발적 노동 거부, 노동 기피현상이 증가하여 생산성 감소가 우려되었으나, 인공지능과 자동화의 도입으로 생산성은 일정 수준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그에 대한 대안으로 고려되는 것이 복지제도와 기본소득제이다.

8. 관련 항목들[편집]

[1] 애초에 노동이라는 말의 뜻이 육체적, 정신적으로 일을 하는 것을 뜻한다.[2] '노동력'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다! 노동과 노동력은 엄연히 다른 개념이며 당신은 근로기준법상 주당 40시간의 '노동'을 판매하는 것이지 노동할 수 있는 능력, 즉 '노동력'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다. 맑스경제학에서는 중요한 개념이니 꼭 구분할 것.[3] 이들이 노동자가 아니라면 노조 결성권이 왜 있겠는가.[4] 근로자라는 단어도 생각 외로 널리 쓰이긴 했다. 해방 후 여운형이 주도한 중도좌파정당인 근로인민당 역시 근로라는 단어를 썼다.[5] 이 귀족노조란 단어도 말이 안 되는 소리인 게, 이들이 받는 노동조건은 현재 물가상황 등 여러 경제적 요인을 고려해보았을 때 밥만 먹고 사는 짐승이 아닌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즉 인간답게 살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당장 부모 지원이 없다면 몇십 년을 일해도 수도권에 집 한 채 마련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 아닌가. 그리고 이게 귀족노조면 재벌은 조물주인가?[6] 애초 회사의 주인은 주주라는 소리. 이에 더러워서 노동자들이 회사의 주식을 가지고 있는 사원주주제를 실시하는 곳도 있다. 경향신문, 한겨레 등이 대표적.[7] 물론 샌더스가 주장하는 사회주의는 소위 말하는 생산수단의 전면적 집단화로 대표되는 본격적인 좌파 노선이 아니라 북유럽식 사회민주주의에 가깝지만 이조차도 미국의 반공주의는 실질적으로 사코와 반제티 사건 이후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미국 유권자들이 사회주의란 단어 보자마자 입에 거품물고 달려드지 않는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변화인 것이다.[8] 물론 여기서 미국의 반공주의가 뿌리가 깊다고 해서 우리나라처럼 군사 독재 정권 공권력의 철퇴 아래 좌파적 주장 조금 했다고 사람 때려 죽이고, 법원에 처넣어 사형 때리고, 이런 식으로 무식하게 때려잡은 건 아니다. 군사독재 치하 한국처럼 아예 사회 전체적 공안 분위기 조성으로 좌파란 이유만으로 탄압했으면 실제로 현실 미국 정치, 사회판이 어찌 돌아가던 상관없이 예나 지금이나 좌파, 진보진영의 입김이 강한 미국의 학계, 언론계는 진작에 갈려나갔을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좌익이 자리잡을 수 없었던 여건이란 무식하게 사람 두들겨 패서 입막음했다는 그런 식의 독재가 아닌(물론 잠시나마 물리적인 사법적 탄압이 있었던 적도 있긴 하다. 대표적인 예가 메카시즘. 얼마 못가 밑천을 드러내고 망한게 함정이지만) 분위기 자체를 노동자, 사회주의, 재분배 같은 단어가 나오기만 하면 진지하게 정치할 사람 취급 못 받도록 정치판의 사상적 스펙트럼 자체를 왜곡했던게 더 크다.[9] 아직 군사독재 시절인 1990년대 초에 한국에서도 이런 노동 기피현상, 노동 거부의 조짐이 보였다. 해당 뉴스 참고.[10] http://russiafocus.co.kr/society/2013/12/03/43413[11] 한국에서의 사농공상이라는 조선시대 이후의 잘못된 직업윤리관과 별개로, 산업화의 완성과 중산층 증가, 인권의식과 개인주의, 사회발전에 따라 점차 위험하고 낮은 월급에 처우가 열악한 생산직 노동에 대한 거부감이 나타났다.[12] 자기가 직접 업소를 열어서 경영하는 사람들 말고, 법인 소속으로 일하는 경우[13] 사실상 지주가 소작농의 농장 경영을 회사 사장처럼 통제할 경우는 지주는 자본가고 소작농은 노동자로 볼 수 있다.[14] 월세나 전세를 놓는 케이스와는 달리 이들은 자기가 얻는 임대소득을 주거 혜택의 형태로 소비하는 격이라 할 수 있다. 이를 귀속임대료라 한다.[15] 자기가 농장을 자주적으로 경영할 수 있는 케이스를 말한다. 이들은 경제학적으로 볼 때 본질적으로 사채 등으로 돈을 빌려 경영하는 자영업자와 다를 바 없다.[16] 물론 마르크스주의를 포함한 사회주의 사상이 초기 자본주의 사회의 비인간적인 노동환경에 대한 비판의식을 담고 있었다는 점에서 전혀 무관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론적으로는 아무 상관없는 별개의 문제다.[17] 로봇(robot)은 노동자, 노동이라는 뜻을 가진 체코어 robota에서 따온 말이다. 앞으로 노동자의 역할을 계속 대체할 것이니 노동자의 입지를 더 좁아지게 만들 수도 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