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오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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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2. 사양 및 가격
2.1. 하드웨어2.2. 롬 카트리지
3. 역사4. 특징5. CMVS(Console MVS)6. 파생작/후속작7. 게임 목록8. 그 밖에


Neo Geo / ネオジオ

파일:attachment/네오지오로고.png
오락실을 가봤다면 한번쯤은 봤을 네오지오 로고[1]

파일:external/gaminghistory101.files.wordpress.com/neogeo_aes.png
가정용 네오지오

1. 소개[편집]

SNK가 1990년 개발한 아케이드 게임 기판과 이 기판과 호환되는 가정용 게임기. 이름의 의미는 새로운(neo) 땅(geo), 즉 '신세계'라는 의미인데, 시대가 시대인지라 오늘날엔 가끔 이 이름 가지고 신천지 드립(...)을 치는 사람이 있지만 당연히 아무 관계도 없고 그냥 웃자고 하는 소리. 심지어 해당 종교단체가 유명해지기 훨씬 전에 나온 물건이다. 2018년 현재는 현역에서 은퇴한지 오래되었지만 거의 15년 가량 게임이 출시되며 현역으로 굴렀던 놀라운 머신. IT 기술의 발전 속도를 생각하면 네오지오의 분투는 놀랍지 않을 수 없다.[2]

아케이드용 기판은 'MVS(Multi Video System)'로 불리고, 가정용은 'AES(Advanced Entertainment System)'로 불린다. '네오지오'라는 상표명은 원래 양쪽 모두를 합쳐서 가리키는 이름이지만 일반적으로 유저들 사이에서 '네오지오'라고 하면 가정용 네오지오인 AES만을 가리키고, 아케이드용 네오지오 기판은 'MVS'로 따로 불리는 경우가 많다. 본 문서에서는 양자를 모두 다룬다.

2. 사양 및 가격[편집]

2.1. 하드웨어[편집]

하드웨어의 설계는 알파 전자(ADK)에서 담당했다[3]. 메가 드라이브를 참고하여 만들었다는 얘기가 있는데, 실제로 CPU는 메가 드라이브와 같은 모토로라 68000이고, 사운드 칩인 YM2610도 메가 드라이브의 YM2612와 같은 OPN 계열의 야마하 FM음원 칩이다. 사운드 보조용 프로세서로 Z80을 사용하는 구조도 동일. 다만 당시에 68000과 야마하 FM칩을 쓴 기판은 메가 드라이브가 아니더라도 흔한 설계이기는 했기 때문에 꼭 메가 드라이브의 영향을 받았다고만 딱 잘라 말하기는 그렇다.[4] 하드웨어 성능면에서는 메가 드라이브 따위는 압살해버리는데, CPU는 동일품이기는 하나 MD의 7.8MHz보다 50% 이상 빠른 12MHz 제품을 탑재해서 일단 처리 속도 면에서 유리하고 그래픽면에서는 메가 드라이브는 물론이고 슈퍼 패미컴의 동시 발색 성능 및 스프라이트 성능과 비교해도 크게 앞선다. 단, 슈퍼 패미컴이 지닌 반투명 표시/하드웨어적 배경 회전 기능은 가지고 있지 않다.

CPU

모토로라 68000 16비트 12 MHz

그래픽

SNK LSPC2-A2 24 MHz[5], NEO-B1[6]

사운드 프로세서

자이로그 Z80 8비트 4 MHz

사운드 칩

야마하 YM2610, 15채널[7]

RAM

메인: 64 KB SRAM, 사운드: 2 KB SRAM
비디오: 64KB(Lower/Slow) SRAM[8], 4 KB(Upper/Fast) SRAM[9], 16 KB SRAM[10]

해상도

304×224

표현 가능 색상

65,536색 (동시 발색 수 4,096색)

스프라이트 성능

16×16~16×512 지원. 최대 384개/화면, 96개/스캔 라인[11]

온보드 ROM

512 KB

사용매체

롬 카트리지

규격

325㎜×237㎜×60㎜, 3.5㎏

컨트롤러

8방향 조이스틱, 4버튼 + 셀렉트 + 스타트[12]


전술했듯이 스프라이트에 알파값(반투명)을 주는 기능이 없다. 네오지오가 등장한 1990년에는 아케이드 기판과 가정용 콘솔을 막론하고 알파값을 지정할 수 있는 하드웨어가 없지는 않았으나 드물었다. 일반적으로 쓰이지 않은 기술이라 몇 개월 뒤의 미래를 못내다보고 넣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때문에 반투명 스프라이트를 표현하려면 망점을 이용하거나 스프라이트를 빠른 속도로 숨기기/보이기를 반복해서 눈속임으로 반투명 그래픽을 만들어 내는 삽질을 해야 한다. 실제로 네오지오를 비롯한 반투명 기능이 없는 기판의 게임들은 그림자, 장풍 등의 표현에 이런 기법을 흔하게 사용하는 편이다. 또한 확대/축소 기능은 있지만 회전 기능은 없어서 슈퍼 패미컴에 비해서 일부 표현 능력이 부족한 측면도 없잖아 있기는 하다.

하드웨어 스펙상 가장 특이한 점이라면 별도의 배경 레이어를 하드웨어가 지원하지 않는 대신에 배경도 스프라이트로 처리한다는 점이다. 2ch에 스레를 세웠던 SNK 출신 전직 개발자가 "힘으로 밀어붙이는 헤비급 흑인 복서 같은 하드웨어"라는 표현을 쓴 적도 있는데, 그런 말이 나올 만한 것이 표현 가능 스프라이트가 16x16~16x512 사이즈로, 380장[13]. 스프라이트의 크기 자체가 크고 표시 가능한 양도 많기 때문에 배경도 그냥 스프라이트로 처리해버리도록 만든 것. 힘으로 밀어붙인다는 이야기는 저런 특징을 두고 한 이야기일 것이다. 하지만 스프라이트의 크기와 상관없이 380장(스캔라인당 96장)의 제약은 동일하게 걸리기 때문에 작은 크기의 스프라이트를 다수 화면에 뿌려대야 하는 탄막 슈팅 게임 같은 장르에는 취약하다는 약점이 있다. 아무리 탄막슈팅이라도 380장이면 충분할 것 같지만 이미 배경과 유닛에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매수가 있기 때문에 아무래도 한계가 있다. 기판이 나온 1990년 4월 당시에는 저렇게 작은 크기의 스프라이트를 대량으로 뿌리는 탄막슈팅 같은 장르가 없었기 때문에 굳이 저런 부분은 고려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튼 이 네오지오의 무식하고 널럴한 설계는 격투 게임 붐을 맞으며 축복이 되었으나 반대로 저주가 되기도 하였다.

네오지오, 정확히는 AES 시스템은 90년대 게이머에게는 꿈의 머신이었다. 그 당시 모든 게이머의 염원이었던 '오락실 게임을 가정에서' 라는 꿈을 그대로 이뤄주는 제품이었기 때문이다. 오락실의 오락기는 오락기통이나 기판이라는 복잡한 물건들을 집에 들여야 하지만, 네오지오 AES 시스템만 있으면 간편히 TV에 연결해서도 오락실 네오지오 게임을 100% 똑같은 품질로 즐길 수 있었다. 아니 심지어는 MVS 시스템의 게임팩을 컨버터를 사용해서 그대로 사용할 수도 있었다. 슈퍼패미컴이나 메가드라이브로 이식도 되서 나오긴 했지만 다운 이식은 피할 수 없었고 어디까지나 대리만족을 느껴야 했다. 90년대 중반 그나마 철권 같은 게임이 부족한 이식을 서비스로 덮는 '초월이식' 이라는 컨셉을 들고 나오기도 했지만 네오지오 게임은 2000 년도나 되어서야 완벽이식이 이뤄질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꿈의 머신은 어디까지나 꿈의 머신이었다. 집에 VHS나 게임보이, 최소한 아타리2600이 있어도 이미 좀 사는 집 취급을 받았는데, AES 시스템 자체 가격도 상당하거니와 100메가비트가 기본인 네오지오 게임팩들은 가격이 수십만원이었기 때문이다. 팩 교환비 5천원 겨우 모아서 게임이나 바꿔가는 애들한테는 꿈은 그냥 꿈일 뿐이었다.

2.2. 롬 카트리지[편집]

그래픽에 투자를 많이 한 덕택에 용량은 동세대의 게임들보다 큰 편이다. 1991년에 캡콤에서 CPS1 기판으로 출시한 스트리트 파이터 2의 용량이 56Mbit(=7MB)이나, 네오지오는 동시발매 게임들로 그 정도 용량은 이미 찍고 갔고 92년에 출시된 용호의 권이 그 두배에 육박하는 102Mbit(=12.75MB)이다. 용호의 권을 발매하며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웠던 '100메가 쇼크'라는 표현은 사실 별로 먹히지는 않았다. 컴퓨터 사용자들은 '바이트로 환산하면 디스켓 열 장 정도 밖에 안되는구만?' 하고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실제로는 마스크롬 시스템은 램을 대신하기 때문에 어마어마한 것이 맞다. 당시 IBM PC AT의 메모리는 잘해봐야 1MB, 도스가 이용 가능한 용량은 640KB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PC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아케이드 게임을 이식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MVS와 AES 모두 카트리지에 들어있는 데이터가 기본적으로 똑같다. 가정용 카트리지라고 해서 가정용에 맞게 데이터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그냥 업소용과 가정용에 필요한 데이터를 한 카트리지에 다 집어넣어놓고 본체의 바이오스를 감지해서 AES면 가정용에, MVS면 아케이드에 맞게 게임을 구동해주는 방식이다.[14] 그러나 두 카트리지의 핀 수가 달라 업소용의 카트리지를 그대로 가져다가 가정용에 쓸 수 없다고 한다. 이는 가정용 카트리지가 더 싼 가격으로 판매되었기 때문에 오락실 업주들이 가정용을 사서 업소용으로 쓰는 걸 막으려고 이루어진 조치이다[15].

그 대신 내부 코드 조작을 거치는 MVS 모드와 AES 모드의 전환은 대부분 문제없이 이루어진다. 하지만 내부 코드 조작을 해도 게임 로직 내부에서 AES 가동을 막는 일이 있기 때문에 일부 게임은 AES에서 제대로 동작하지 않는다. 대표적인 예로, KOF 2000을 AES로 실행하려 하면 붉은 저작권 경고문구가 뜨면서 더 이상 실행되지 않으며, KOF 2001은 AES 관련 메뉴가 깨진다. AES로 발매된 적이 없어도 모드 자체는 더미로 지원되는 일도 있는데, 왕중왕 등이 그 예이다.

3. 역사[편집]

1990년 4월 26일, 일본에 4개의 게임과 함께 판매용 아케이드 기판과 대여용 콘솔로 2개로 나누어서 처음 선보였지만 반응이 좋아 1991년 7월 1일부터 전세계에 가정용 콘솔 판매를 했다. 가정용 네오지오는 본래 판매용이 아니었고 대여용(비디오 대여점 등에 배치해놓고, 일정 기간 대여하는 방식)으로 기획한 상품으로 대여용 콘솔의 경우에는 당시에만 해도 반응이 굉장히 좋지 않았으나, 이듬해인 1991년 2월, 스트리트 파이터 2의 발매와 동시에 대전액션게임 붐과 맞물려서 같은 해 7월 1일에 가정용으로도 판매되었다. 다만 1992년 8월, 용호의 권이 발매되기 이전까지는 가정용 콘솔의 판매량도 좋지 않았다고 한다. 아무래도 가격 탓도 있었을 것이고 사실 100메가 쇼크 시대 이전 초창기 네오지오 게임은 괜찮은 작품이 몇개 있긴 하지만 킬러 타이틀이라고 할만한 작품은 없기도 하다. 미국에서는 골드 시스템과 실버 시스템으로 출시됐는데, 골드 시스템에는 컨트롤러와 게임이 번들됐고, 실버 시스템에는 컨트롤러만 번들됐다.

콘솔과 소프트가 매우 비쌌지만 가정에서 당시의 아케이드와 거의 같은 퀄리티로 게임을 즐길 수 있다는 이점이 있었다. 가정용과 업소용의 기계 구조는 거의 같은 것이고, 네오지오의 홍보에 사용된 문구 하나가 '아케이드의 흥분을 그대로 가정에!!'(アーケードの興奮をそのまま家庭へ!!)[16]이다. 네오지오가 처음 나온 1990년 당시는 오늘날과 달리 가정용 게임기에서 아케이드로의 이식은 비슷하게만 만들어도 이식왕 소리를 듣던 시절이라[17] 아케이드와 가정용이 완벽하게 같다는 네오지오의 특징은 게이머들에게 각광을 받기에 충분했다.

한국에서는 1992년에 '빅에이'에서 관련 사업을 처음 벌였으며, SNK 직영점 '네오지오 랜드'의 이용권 등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1994년 7월부터 연회비 3만원의 가입비를 입금하면 가입되는 회원 제도도 운영하였다. 네오지오 회원이 되면 격월간으로 회원지를 받거나 소프트웨어를 정가의 10~20퍼센트 할인된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었다. 또한, 개인구매를 제외하면, 게임샵에 디스플레이 되거나, 1992년부터 1994년까지는 콘솔방에 네오지오가 가동기종으로 일부 입하된 적도 있다.

1997년에 가정용 콘솔 생산이 종료됐고, 1997년 3월까지 전 세계에 총 41만대가 판매됐으며, 그 가운데에 35만대가 일본에 팔렸다. MVS 기판용 게임은 계속 출시됐다.

1990년 당시에는 최고의 2D 머신이면서 개발에 용이하고 개발비용 및 원가를 최소화시킬 수 있는 하드웨어였음은 분명하다. SNK 밖의 많은 제작사에서도 이 기판을 썼으며, 기판의 가격도 상대적으로 저렴해서 1994년까지 웬만한 오락실이나 문방구에서 가동되었을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CPU로 68000을 쓴 만큼 일반적인 90년대 초 아케이드 게임의 개발 환경을 크게 벗어나지 않아 개발이 수월한 모양이다.

다만 단순히 성능의 추이만 보면, 네오지오는 1990년대 중반 무렵에 마무리를 짓고 새로운 환경으로 건너갔어야 옳았다. 1995년은 네오지오의 성능을 아득히 능가하면서 저렴한 기판들이 아케이드에서 일반화 된 해이자 게임 콘솔의 패러다임이 3D로 완전히 바뀐 해이다. 세가 새턴플레이스테이션을 위시한 가정용 콘솔들의 성능 역시 광학 매체를 사용하는 특성상 메모리가 부족하다는 점을 제외하면 네오지오의 표현능력을 능가한다.[18] SNK에서는 네오지오의 후속기를 개발했지만 시대착오적인 후속기가 크게 실패하면서 여러 여건상 기가 파워 같은 식으로 카트리지의 용량을 업그레이드하여[19] 그 수명을 2004년까지 강제로 연명했다. 모자라는 성능을 용량빨로 때우려고 한 것으로, 발상은 매우 무식하지만 효과는 확실해서 실제로도 2D 한정으로는 동시대 최신 기판에 꿀리지 않는 퀄리티의 게임을 보여준다. 워낙 오래 현역으로 굴러간 하드웨어여서인지 90년대 초반 작품과 2004년 작품을 보면 이게 같은 기판으로 돌아가는 건가 의심들 정도로 차이가 난다. 하지만 하드웨어의 한계를 벗어나지는 못했고, 그래픽과 사운드 측면에도 많은 문제가 있으며, 확장된 카트리지의 용량인 716메가비트(약 90메가바이트)로도 보여주고 싶은 게임 내용을 보여주지 못해서 미완성된 게임들이 많았다. 쉽게 생각해보자. 2004년이면 PC는 기가헤르츠를 넘어 멀티코어의 시대로 접어들어가던 때고 가정용 콘솔도 플레이스테이션 2엑스박스가 절정을 달릴 때다. 그 시절에 고작 MC68000@12MHz의 머신이 당당히 현역이었다는 얘기다!! 어떤 의미로는 정말로 굉장한 물건.

게다가 오래된 기기이니만큼 하드웨어의 구조가 매우 간단해서 1998년부터는 신작이 나온 때마다 복사나 롬 파일 덤프 등 불법 복제 문제에 끈질기게 시달렸다.[20] 그나마 KOF 2000[21]과 후반부에 해당하는 SVC Chaos는 락이 걸려있기 때문에 발매하자마자 뚫리지 않을 것처럼 보였지만[22] 결국에는 덤퍼들이 이마저 별도의 프로그램들로 보안체계를 해제하고 대량 복제한 뒤 덤프하는 등의 근성으로 뚫었고, 몇달 뒤에는 덤프가 완전히 이루어졌다.

결국 네오지오 시스템은 2004년, 사무라이 스피리츠 제로 스페셜을 마지막으로 14년만에 기판 생산이 종료되었고, 2007년 8월 31일에 유지보수 지원이 종료되었지만, 몇몇 아마추어 게임 제작자들은 아직도 네오지오 시스템으로 게임을 제작, 배포 및 판매하고 있다. 기술 개발의 속도와 교체 주기를 생각하면 가히 기록적인 수명의 하드웨어라고 하겠다. 이후 SNK 플레이모어에서 플랫폼을 사미의 ATOMISWAVE로 옮겨갔지만 이마저도 2년밖에 못 버텼다.

4. 특징[편집]

게임 기동시 네오지오 로고와 SNK 로고가 뜨면서 흐르는 특유의 징글 멜로디는 사실상 거의 모든 네오지오 게임에 쓰였고, 이 징글 멜로디는 KOF 맥시멈 임팩트 2의 숨은 스테이지인 네오지오랜드 BGM 시작부분에 삽입되었다.

일부 게임이나 세부기판에 따라 음색이 미묘하게 다르게 나오는 경우 또한 많다. 네오지오 게임들 가운데 31가지의 징글 배리에이션.


NEO-GEO 초기 로고(1990~1997년)
여기서 330MEGA란 롬 카트리지의 최대 용량 330Mbit(=41.25MB)를 의미한다.

파일:attachment/neogeo_logo.png

GIGA-POWER 버전(1998~2004년)
기존의 최대 롬 카트리지 용량 330Mbit(=41.25MB)보다 더 큰 용량의 롬 카트리지를 지원하는 기판임을 의미한다.

네오지오로 나온 게임들 거의 다 어트랙트 데모 화면에서 게임의 타이틀 로고가 화면 한군데에 작게 표시되는 것도 특징. 특유의 코인음도 비슷한 맥락.[23] 네오지오 밑에는 스펙에 관련된 정보가 뜨는데, 90년대 게임은 큰 차이가 없지만 네오지오 말기로 가면서 옆그레이드 스펙 변화가 보인 때는 그 스펙정보를 요약한 문구가 조금씩 바꾸는 경향이 있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네오지오 게임들은 레벨을 설정할수 있었는데, 1부터 8까지 설정가능. 1이 제일 쉬운 난이도이며 8이 가장 어렵다. 일반적인 오락실에서는 4로 맞춰져있다.


5. CMVS(Console MVS)[편집]

아케이드용 기판을 가정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컨트롤박스와 네오지오 MVS 기판을 연결하여 가정용으로 사용할수 있도록 개조한 MVS이다. 소형 MVS 기판을 이용하면 AES 크기와 비슷하게 만들 수 있으며, 국내에서 유명한 CMVS는 레트로유저 카페인 구닥동에서 소량 제작하여 공제로 판매한 네오MVS가 있다.

DIY 케이스를 만들 수 있는 능력자이고 납땜정도 할 수 있다면 저렴한 네오지오 기판으로 오리지널 가정용 MVS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개조가 왜 성행하냐면, 업소용이 가정용에 비해 성능이 좋으며 하드값과 소프트값 모두 저렴하기 때문. 특히 메탈슬러그 같이 가정용으로는 상상을 초월하는 가격의 게임들을 업소용으로는 상당히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 나아가 업소용-가정용 변환도 쉬운 편이니...

6. 파생작/후속작[편집]

고질적인 문제인 소프트 가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네오지오 CD를 만들었지만, CD의 읽기 성능이 그다지 좋지 않아 느린 CD 로딩 때문에 네오지오보다 먼저 망했어요. 후기에는 메모리 부족으로 다운 이식까지 감행해야 했다. 네오 CD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조.

네오지오(MVS)의 후속작으로 하이퍼 네오지오 64가 있는데, 사실 네오지오의 수명이 예상치 못하게 길어진 원인 중 하나가 하이퍼 네오지오 64의 기록적인 실패 때문이라고도 한다. 어떤 의미에서는 반복되는 SNK의 경영 삽질을 메꿔준 캐시카우 역할을 해준 머신이라고도 하겠다.

휴대용 게임기로 네오지오 포켓이 있다.

공식 휴대판으로 네오지오 X가 있는데, 이쪽은 SNK 자체제작이 아닌 타 회사에 아웃소싱을 준 것.

7. 게임 목록[편집]

8. 그 밖에[편집]

아는 사람만 아는 이야기이지만, 네오지오 발매 당시에 이미지 캐릭터로 게임 망토라는 "굉장한 게임을 갖고 돌아가자!" 는 캐치프레이즈를 가진 괴도신사 컨셉의, 말 그대로 괴상한 캐릭터가 있다. 초기 네오지오 광고 포스터를 보면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으며, 괴기스러운 분위기에 클레임이라도 먹었는지 나중에 출연이 줄어들면서 이후로는 배경 캐릭터로서 가끔 등장했다. 또한 사무라이 스피리츠 제작당시에 사브르를 든 캐릭터로 나오자는 안이 있었다가 여캐가 나코루루밖에 없는 상황이라서 여캐를 하나 더 넣자는 안이 나오면서 공격 컨셉만이 샤를로트에게 이어졌다는 비화가 있다. 이후 KOF 2000에서야 료의 매니악 스트라이커 G-MANTLE로 등장하고, SNK 플레이모어로 넘어가서도 일부 배경에 깨알같이 등장하여 명맥을 이었다.

1998년 3월 19일에 출시한 리얼 바웃 아랑전설 2가 첫번째 기가 파워 게임이고, 최대용량인 716Mbit(=89.5MB)를 전부 쓴(카트리지판 기준) KOF 2003가 최고용량 기가 파워 게임이며, 최저용량 게임은 22메가비트를 쓴 퍼즐드(조이 조이 키드)라는 테트리스 게임이다. 참조.

유니버스 바이오스라 하여 여러 에뮬레이터 개발에 참여한 바 있는 라줄라가 제작한 네오지오용 바이오스가 있는데, 롬라이터 등으로 구워서 기존의 바이오스 대신 장착시켜주면 국가설정, 가정용 및 업소용 선택, 자체 치트 등등의 무궁무진한 기능을 사용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는 유료로 판매되고 있으나 버전이 업데이트 되면 이전 버전이 무료로 공개되기 때문에 에뮬레이터 등에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2017년 5월 11일 기준 최신 버전은 유료: v3.3, 무료: v3.2. 홈페이지는 http://unibios.free.fr/.

가정용 네오지오는 레트로 마니아들이 소프트까지 포함하여 수집하는 경우를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는데, 생산이 중단된 관계로 본체 박스셋의 중고는 약 20만, 신품은 약 40만을 웃도는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고 한다. 그 밖에도 카트리지의 가격도 10만대를 가볍게 넘어서며, 30~40만원대에 거래되는 물건도 있다. 2000년대 초에는 메탈 슬러그 1의 중고는 120만원대, 상태에 따라 혹은 거품이 끼여서 200만원대까지 치솟기도 했다. 정확한 게임의 명칭은 알 수 없으나, 네오지오 스포츠 계열의 유럽판 패키지는 미국 이베이 경매가 10만 달러(현 한화 약 1억 2천만)에 낙찰되었다는 흠좀무한 일화도 있다.

고전 졸작 게임 리뷰어 AVGN 캐릭터를 연기하는 제임스 롤프도 네오지오 기기와 카트리지 일부를 소지하는 것으로 보이나 대부분이 이름난 명작이거나 하다못해 평작은 되는 것들이라 언급했을 정도인지라 'AVGN'에서는 리뷰된 바가 없고, '제임스 & 마이크 먼데이'에서 메탈슬러그1,더블 드래곤(두개 다 네오지오CD,일본판) 이 리뷰되었다.[24] 오오 SNK 오오

1987년에 나온 사카모토 류이치의 음악 앨범의 이름과 같다. 단, 앨범의 가나 표기는 'ネオジオ'가 아니라 'ネオ・ジオ'.

한국에서는 전설로 회자되는 것과 달리 비현실적인 가격으로 당시에 실제로 접하기는 어려운 게임기였다. 90년대 초반이라면 한국에서는 8비트 패미컴이나 재믹스, 겜보이가 대중적인 시절이고, 16비트 슈퍼 패미컴이나 메가 드라이브를 소장하고 있다면 부르주아(...) 소리를 들을 만 했다. 아니, 이미 게임기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쁘띠 부르주아(...) 취급은 받았다. 당시 보따리장사들이 밀수로 들여온 네오지오는 일본 내수 가격에 더해 꽤 고마진을 얹어서 팔았는데, 안그래도 비싼 물건+당시 일본과 한국의 물가차+보따리 마진까지 고려하면 도저히 넘볼 수 없는 게임기였다. 다만, 일본에서는 당시 버블 경제의 절정인 시절이기에 일반 서민층이라면 부담스러운 가격이긴 하나 아예 못살 정도는 아니었으며, 더군다나 부르주아 계급의 아이들이라면 오락실 버전을 그대로 할 수 있단 사실만으로 필구였다. 당시 경제2위 일본에서도 이 게임기는 대중적인 게임기가 아닌 부유층 아이들을 타겟으로 한 부르주아 게임기였는데, 한국에서는 보따리 상인들이 마진 남겨먹느라 일본 내수가격보다 훨씬 비싸게 팔았으니[25] 당시에 한국에서 이 게임기를 아무렇지 않게 사서 할 수 있던 아이라면 초 부르주아 확정.

2018년부로 28주년을 맞은 기판. 당시에 고성능으로 아케이드 2D 게임시장에 충격을 준 기판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세월 참 무상하다. 하지만 30여년이 다 되어가는 2018년에도 전설로 회자되는 데에는 당시 상황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90년대 초반의 머털도사와 또매를 보면 누덕산 제일봉이 호화버전으로 리모델링되는데, 그 중 한층이 바로 오락실이다. 자신만의 오락실을 갖게된 또매가 환호하는데, 당시 오락실 키즈들의 꿈이었다. 지금 30~40대가 된 오락실 키즈들이 문방구 게임기를 사서 자신의 방에다가 갖다두고 인증샷을 올리기도 하지 않는가? 지금이야 컴퓨터 에뮬레이터로 고전게임 얼마든지 할 수 있고 가정용 게임기의 성능도 막강한 마당에 말이다. 험악한 인상에 무시무시한 근육질 덩치를 자랑하는 WWE 프로레슬러 데이브 바티스타의 충격적인 취미는 도시락통 모으기(...)라는데 어린 시절에 부모를 여의어서 도시락을 싸오는 친구들을 몹시 부러워한 과거 때문이라고. 마찬가지로, 지금 30~40대 올드 게이머들이 오늘날의 관점에선 거추장스러울 수도 있는 게임통을 굳이 비싼 돈 들여 사는 이유는 어린시절에 오락실을 소장하고픈 욕구가 엄청났다는 의미인데, 당시 네오지오는 오락실을 소장하게 해주는 꿈의 머신이었다. 스트리트 파이터 2를 원작에 가깝게 이식했다고 호평을 받은 슈퍼 패미컴판도 사실 자잘한 삭제가 많고 완벽이식과는 거리가 있는 다운이식이었다. 그래도 제법 비슷한 외관에 게임성 자체는 얼추 오락실 느낌을 살렸기에 당시 수준엔 그 정도만 되어도 최고의 이식도라고 호평을 받으며 대박이 터졌을 정도인데, 네오지오는 오락실 버전을 그냥 그대로 들고 왔다. 똑같은 하드웨어에 똑같은 내용을 담은 롬이니 다운이식 그딴 거 없으므로 오락실 키즈들의 꿈을 실현시켜준 게임기였기에 선망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1] 초기 (330Mbit까지 지원) 부트 업 로고[2] 물론, 후술에도 있는 갈아 탈 차세대 기판를 준비하였으나, 그 차세대 기판 이라는 게 대차게 망했으니 당시 SNK도 답이 없는 상황이었다.[3] 이후에 이 회사에서 이 기기의 서드파티로도 참여해 월드 히어로즈 시리즈와 트윙클스타 스프라이츠 등의 수작 게임을 꽤 여럿 만들었다.[4] 애초에 메가 드라이브부터가 세가의 아케이드 기판 'System 16'을 베이스로 단가를 낮추어 스펙다운한 설계의 콘솔이다.[5] 선-스프라이트 생성기 및 VRAM 인터페이스[6] 둘 다 후지쯔칩이 사용된 것으로 드러났다.[7] 18.5 kHz 고정 주파수 ADPCM 6채널, 1.85~55.5 kHz 가변 주파수 ADPCM 1채널, FM 4채널, PSG 3채널, 노이즈 1채널[8] 메인용 비디오 램[9] 비디오 스프라이트용 비디오 램[10] 팔레트용 비디오 램[11] 즉, 화면 전체에는 384개까지 스프라이트를 표시할 수 있으나 가로 일렬로 놓일 수 있는 스프라이트 수는 96개까지다. 그 이상이 늘어서면 97번째 스프라이트부터는 표시되지 않게 된다. 이는 초창기(8~16비트 시대) 하드웨어들의 스프라이트 구현 원리과 관련이 있는데 상세한 내용은 스프라이트 문서의 라인 버퍼 문단을 참조하자. 참고로 MSX2나 패미컴의 스캔라인당 스프라이트 매수는 8개에 불과했다.[12] 재믹스와 더불어 기본 컨트롤러가 십자패드가 아니라 아케이드 스타일 조이스틱인 얼마 없는 케이스다. 이후에 플레이스테이션 2용 복각판이 출시된 바가 있고, 네오지오 X 초회 한정판에도 USB 케이블로 연결할 수 있는 복각판이 포함되었다.[13] 이게 얼마나 무시무시한 수치냐면, 패미컴은 8x8~8x16 사이즈로 64장(1라인에 8개까지 표현 가능), 슈퍼 패미컴은 64x64 사이즈로 128장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네오지오에서 이식한 게임들의 캐릭터 크기가 확 줄어드는 이유가 이거다.[14] 이는 네오지오 게임을 구동 할 수 있는 일부 에뮬레이터에도 그대로 재현하였는데, 설정에서 AES와 MVS를 바꾸어, AES면 가정용, MVS면 아케이드 버전으로 구동이 되었다. 롬 파일도 MVS에서 덤프된 롬 하나만 있으면 구동 가능.[15] 말은 이렇지만 업소용 MVS용보다 약간 쌌다는 말이지, 일반 가정용 카트리지도 결코 싼 게 아니다. 게다가 이는 현역 시기에 그랬다는 거고, 지금은 가정용이 거품이 붙어 미친 듯이 비싸고 업소용이 오히려 더 싸다. 예를 들어, 메탈슬러그 같은 건 세월이 흐르면서 가정용이 희귀품으로 취급되면서 200만원에 거래되고 그마저도 없어서 못사는 정도인데, 업소용은 많아야 10만원 안팎이면 살 수 있다.[16] 이 철칙을 지키지 않아 유저들에게 지탄받고 흑역사로 매장된 게임의 하나가 바로 사무라이 스피리츠 제로 스페셜이다. 그러나 이게 마냥 지탄받기만 하기엔 너무나 억울한 게, 발매 당시 일본에서 초등학생이 동급생을 살해한 사건이 터졌기 때문이다.[17] 기본적으로 하드웨어의 성능차가 너무 크다. 당장 가정용 이식의 전설인 스트리트 파이터 2 슈퍼 패미컴 이식판만 봐도 오늘날의 기준으로는 제법 눈에 띄는 다운이식임에도 당시에는 얼추 비슷한 외관에 게임성이 거의 완벽히 이식됐다는 정도만으로도 열광적인 반응을 받았다. 심지어 얼추 비슷한 외관에 게임성은 안드로메다(...)였던 타카라제 네오지오 이식작들도 제법 잘 팔렸을 정도.[18] 한국 콘솔방에서도 1995년 이후로는 플레이스테이션세가 새턴을 주로 돌렸다.[19] 뱅크 전환 기술을 적용하여 기존 대비 2배 이상의 용량을 사용할 수 있다. 용량만 디립다 때려박았지 처리 성능 향상은 없는데, 발적화에 따른 처리 지연으로 유명한 킹오파 97과 메탈슬러그 2와 기가 파워가 적용된 98과 X 같은 차기작을 비교하면 후자가 많이 쾌적해져서 성능이 향상되었다는 착각을 일으키기도 한다.[20] 복사 대책을 위해 고심한 결과, 막바지에 나온 게임들인 SVC Chaos, KOF 2003, 메탈슬러그 5는 아예 롬 자체를 기판에 박은 전용 기판 형식으로 되어있다. 즉, 다른 게임과의 카트리지 교체를 할 수 없고, 멀티슬롯에도 꽂을 수 없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은 오히려 매출에 악영향을 주었고, 오히려 복사 카트리지가 범람하는 계기가 되었다. 멀티 슬롯 게임에 앞의 세 게임이 포함되어 있으면 복사판으로 보면 된다.[21] 덤프 초기에 락을 우회하는 별도의 프로그램을 사용해야 했고, 그마저도 몇몇 폰트나 스프라이트는 암호화 된 상태였다.[22] 롬 자체는 덤프가 되었지만, 구동이 되지 않았다.[23] SNK 게임이 아닌 서드파티 게임들도 마찬가지.[24] 대신 'AVGN'에서 패미컴(북미판 이름 NES)판 이카리 1편을 리뷰한 바는 있으며, 몇몇 오프닝에서 네오지오 게임 카트리지의 무게를 재는 장면이 나온다.[25] 인터넷 직구...는 때려치우고 그냥 (우리가 생각하는)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다! 정말 가끔 드물게 PC 통신을 매개로 일본 유학생을 통해 직구 비슷한 걸 하는 경우도 있긴 했지만 당시엔 PC 자체가 흔하지 않았고 비싼 전화요금 물면서 PC 통신까지 하는 사람은 더 드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