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해도 이것보단 잘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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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실제 사례 3. 창작물의 사례4. 실패 사례

1. 개요[편집]

다른 사람의 평범한, 혹은 안 좋은 의미로 괴랄한 퀄리티를 목격한 후, 직접 자신이 그보다 더 좋은 퀄리티를 뽑을 수 있음을 자신할 때 종종 내뱉곤 하는 말.

대개 그 분야에 약간이라도 능통했던 사람 A가 그보다 못한 사람 B의 퀄리티를 보면서 "왜 저것을 저 정도로밖에 하지 못하는가?"라고 디스질문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이렇게 되면 B의 경우 발끈하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 아무래도 남의 자존심에 흠집을 내면서 그 사람의 나름 전문영역에 침입하는 모양새가 되므로, 대개 A가 B보다 고퀄리티를 뽑아내서 B를 데꿀멍시키더라도 B는 A를 좋게 보지 않게 되어 버린다.

물론 A가 호기롭게 나섰는데 B와 동등하거나 그보다 못하는 수준인 경우에는 아주 좋은 팝콘의 소재가 되므로, 정말 그 전문분야에 기여했다 말할 수 있는 레벨이라거나 B를 기분나쁘게 하면서도 B로부터 실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면 개입하지 말자. 심하면 조리돌림까지도 갈 수 있다.

통상적으로 현실에서는 웬만큼 자신감이 가득한 전문가 VS 이제 겨우 첫 발을 떼어 경험이 많지 않은 일반인좆문가 사이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으며, 퀄리티를 대신 뽑아낼 A가 허세만으로 똘똘 뭉친 사람이 아니라면 십중팔구 B보다는 그래도 나은 퀄리티를 뽑아내는 경우가 많다.

아주 드물게 해당분야와 무관하거나 무명급들 인물들이 이런 마음가짐으로 도전해서 정상에 서기도한다.

창작물 내에서는 양판소의 클리셰 수준. 아무래도 독자에게 대리만족을 주는 게 주 내용인 만큼, 어떤 현대판타지 소설에도 꼭 한 번씩은 주인공이 A의 입장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주인공을 따라온 여자사람친구가 여자친구가 된다거나 주인공의 색다른 면모에 열광하는 다른 조연이 등장하기 마련이며, 이 때 B의 입장이었던 사람은 앙심을 품고 주인공을 해할 다른 음모를 꾸민다는 것이 거의 정석 수준. 이렇게 하면 양판소 반권어치를 떼울 수 있다

맨 밑 항목에서 보다시피 애니메이션이나 만화에서도 주인공이나 조연의 존잘성을 돋보이게 하는 데 종종 사용한다. 독자/시청자로 하여금 위 서술된 문단처럼 대리만족을 불러오거나, 해당 캐릭터의 특징을 각인시킬 때 사용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한편으로 호언장담만 하고 실행에 옮기지 않을 경우에는 내가 해봐서 아는데와 동급이거나 그 이하의 취급을 받는다.눈과 귀랑 손은 반비례

2. 실제 사례 [편집]

자꾸 찡찡대는 사람에게 "그렇게 잘 알면 네가 한번 만들어봐라"라고 했더니, 혹은 내가 만들어도 이것보단 잘할 수 있겠으니 제가 직접 한 번 해 보겠다고 판단하고 실행에 옮긴 예를 나열하였다. CHALLENGE ACCEPTED

  • 리누스 토르발즈는 기존의 소스 관리툴인 BitKeeper에 엄청나게 빡쳐서 단 2주만에 Git을 만들어냈다.

  • 프랑스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거장인 장뤼크 고다르는 처음에 독설로 유명한 영화 평론가였다. 그의 독설을 듣다가 화가 난 다른 프랑스의 영화감독들이 "그럼 당신이 만들어 보세요" 라고 해서 정부의 문화 보조금을 받아 영화를 만들었는데 데뷔작부터 네 멋대로 해라(1961)라는 영화 역사를 대표하는 걸작을 뽑아냈다(...) 그 뒤로 60년대 누벨바그 영화의 기수로 꼽히며 점프컷이라는 지금은 너무나도 널리 쓰이는 촬영, 편집기법을 고안하는 한편 수많은 걸작들을 만들었다. 이 중 대부분은 흥행에 실패했다. 그러나 영화감독 및 평론가들에게는 열화와 같은 지지를 받고 있으며 영화 공부를 하는 사람이나 마니아들에게는 클래식 그 자체이다.

  • 드러머 키스 문은 그룹 더 후가 디투어스라는 무명 밴드였던 시절 공연장에서 "드럼이 그따위냐" 며 객석에서 무대로 난입하여 소란을 피웠다. 이에 열받은 멤버들이 "그럼 니가 쳐봐라" 그랬더니 천상의 드럼 연주 실력을 보여주며 다른 멤버들을 데꿀멍시킴과 동시에 그날 바로 정규 멤버로 계약을 하게 되었다. 미리 연습을 했을 드러머보다 그 자리에서 난입한 사람이 드럼을 더 잘 쳤으니 상당한 실력자였던 셈. 드럼의 신중 하나니까

  • 임성한의 경우는 기존의 드라마에 대해 반기를 가지고 직접 드라마 각본을 썼다고 한다. 그 결과 그의 드라마는 지금에 와서야 뻔하다고 욕먹을지라도 안 좋은 의미로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 파파존스는 창업주인 존 슈내처가 동네 피자를 먹고선 내가 만들어도 이것보단 낫겠다 라고 생각해서 창업한 것이었다. 그렇게 등장한 파파존스는 한때 미국 피자업계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 페루치오 람보르기니는 원래 트랙터를 만드는 업자였다. 페라리의 창업자였던 엔초 페라리에게 자신이 구입한 페라리 차량의 문제점을 말하러 갔는데 트랙터나 만드는 주제에 뭘 아냐며 무시당하자, 직접 자동차를 만들기 위해 람보르기니를 세웠다. 이 회사의 슬로건은 무조건 페라리보다 빠른 차를 만들자.

  • 눈물을 마시는 새의 출판은 이와 비슷한 논쟁이 관여되어 있었다. 김경진이 <하늘길잡이>라는 한국형 판타지를 출판한 이후 김경진과 안병도가 드래곤 라자는 한국형 판타지가 아니라고 깠고 이영도와 잠시 논쟁이 붙었다. 그리고 논쟁이 끝나고 나서 이영도는 눈물을 마시는 새를 들고 와서 내밀었다. 만들어 왔으니 다시 붙자 으아니 이길 수가 없잖아[3]

  • 1994년 프리시즌에 열린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 vs 옥스포드 유나이티드 친선경기에서 웨스트 햄의 리 채프먼과 수석코치 해리 레드냅에게 스티브 데이비스라는 팬이 뒤에서 죽어라 욕을 했다. 이에 화가 난 해리 레드냅 수석코치가 그를 스탠드에서 끌어내려 "니가 더 잘할 수 있으면 해봐"라면서 경기에 투입했는데, 거기서 그는 골을 넣었다(...). 답답해서 내가 뛰었다. 왜? 저 선수가 누구냐고 묻는 기자들에게는 불가리아 국가대표 출신 선수라고 구라를 쳤다(...). 다만, 사실 코치가 그냥 빡쳐서 그 관객을 투입한 건 절대 아니고, 당시 상황이 레드 카드와 부상 인력이 다발한 상황이라 벤치에서 투입할 수 있는 여유 인원이 바닥나 있었다(...) 그 와중에 선수 교체를 할 때가 오자 아까 고래고래 소리지른 관객한테 가서 정말 우리 선수보다 잘 뛸 수 있냐고 묻고는 투입시켰다고.... 2013년 가디언지 인터뷰에 따르면 현재는 택배업을 한다고 하며, 물론 아직도 웨스트 햄 팬이라고.

  • 주요 논지는 아니었지만 힛갤 아이언맨 사건 당시 까이던 유저의 반응 중에 섞여있는 것이 '나처럼 못 만들면 조용히 해라' 식이었는데, 이후 그 유저가 가루가 되도록 까이고 묻힌 뒤 진짜 만들어온 다른 사람 때문에 한 번 더 까였다.

  • 아키모토 야스시는 수험생활 중 코미디언 센다 미츠오가 나오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듣다가 '저 정도 각본이면 나도 쓸 수 있겠다' 라고 생각해 수험 공부용으로 준비했던 노트 스무 페이지 정도에 걸쳐 센다를 주인공으로 한 헤이케 모노가타리의 패러디를 작성하여 이를 라디오 방송국에 보내 고교생의 나이에 방송작가로 데뷔하게 된다. 그게 의 시작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지

  • 영화 제작자 김조광수디 워 돌풍 때 심형래 영화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비판했다가 디빠와 당시 광풍에 휩쓸린 일반인들로부터 영화 만들어보지도 못한 사람이 영화 깐다고 비난당했다. 하지만 이후 2011년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을 흥행시켜 자신이 제작자로서는 심형래보다 훨씬 능력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였다. 그에 비하면 이후 심형래는... 망했어요.

  • 컬투정찬우수색대 근무시절 일병 때 문선대가 와서 공연을 했는데 너무 재미가 없어서 '내가 해도 저것보단 더 재미있겠다' 라고 생각해 문선대 대신 공연을 했더니 정말 정찬우가 한 공연이 더 재미있었다. 그래서 문선대에 스카웃되어 6개월간 근무했다고. 정찬우는 그 사건 이후로 "내가 개그맨 끼가 있구나" 하여 개그맨이 되기로 했다고 한다.

  • 엔젤하이로함장은 양판소 작가들의 "님은 글이라도 써봤음? 책이라도 내봄?" 이라는 비꼼에 당당하게 반박하기 위해 메이드 드래곤 전기를 집필했고 매너리즘에 빠진 판타지물 사이에서 의외로 괜찮은 평을 듣기 시작해서 출판 제의까지 되어 계약금을 받고 원고를 넘겼으나 출판사의 경영 축소로 출판을 못했다. 때문에 아직까지 결말부를 공개 못하고 있다.그래봤자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텍본에는 결말까지 다 나오지만

  • 게임 해설자 안준영의 경우 '내가 하면 더 잘할 것 같아서' 게임해설가를 지망했는데, CJ미디어슈퍼파이트에서 자리가 비는 것을 알고 CJ미디어 고객 센터로 전화를 걸어 상담원에게 따졌다고 한다. 근데 멘트가 가관. "해설 두 명이서 하면 당신이 책임질 거야?!" 결국 슈퍼파이트 담당 PD의 전화번호를 알게 되고 연락 후 찾아가서 오디션을 본 후 합격해서 해설을 시작했다.

  • 배우 유인영은 고등학생때 패션잡지를 보다가 "내가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라는 생각에 모델 학원에 접수했다고 하며, 이후 모델로 데뷔해서 현재까지 배우 생활을 하고 있다.

  • 안경회사[4] 사장이기도 한 카메라 애호가 짐 쟈나드는 기존의 카메라가 마음에 들지 않아 개선점을 발견하고 끝끝내 카메라를 개발하고 회사를 차리는데 이 회사가 바로 레드사이다. 그리고 이 회사에서 개발한 카메라는 현대 디지털 시네마 카메라의 선두주자이자 대부분을 잠식하고 있는 레드 원이다.

  • 영국 이코노미스트 특파원인 대니얼 튜더가 한국 맥주는 북한 대동강 맥주보다 못하다고 디스하자 국산 맥주 업체들이 우린 싱거운 게 아니라 한국 사람이 목넘김과 청량감을 중요시한다고 핑계대며 반발한 사건이 있었다. 이후 이 기자는 일을 그만두고 직접 서울에 맥줏집을 차렸다. 정확히는 반박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한국 맥주를 디스한 기사가 한국인들로부터 호응을 얻자 질 좋은 맥주의 수요가 충분하고 시장성이 있다고 판단하여 맥줏집을 차린 것이다. 처음엔 더부스란 이름의 맥주 가게로 시작했다가 의외로 장사가 잘 되어서 아예 맥주 양조까지 직접 하는 맥주 회사로 성장했다. 창립 동기에 걸맞게(?) 대동강 페일에일이란 맥주도 제조하고 있다. 물론 북한의 대동강 맥주와는 별개의 맥주이지만 튜더가 고의로 이름을 이렇게 지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 프로야구에서 지명타자 제도가 없는 미국 내셔널리그일본 센트럴리그 등지에서는 투수가 타석에 들어서야 하는데 보통 쉬어가는 타선으로 인식되곤 한다. 물론 가끔씩 안타나 홈런(!)을 치는 투수도 있으며 심지어 타선이 삽질할 때 투수가 보다못해 직접 점수를 내서 경기를 가져오는 일도 있다. 답답해서 내가 친다 항목 참조.

  • 고시생툰 작가 seri는 대학생 시절 사교육 시장에 몸담았던 적이 있었는데(…),고전시가에 학생들이 낙오하고 포기해버리자 "아 이거 만화로 쉽게 이해시켜주는 만화 안 그리나" 라는 생각을 했고,졸업때까지 결국 그런 교재가 나오지 않자 아예 직접 본인이 만들어 출간하였다.

  • 메이저리그 최소승 명예의 전당 헌액 투수인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디지 딘은 혹사로 인해 30세의 나이에 선수 은퇴 후 해설자로 나서서, 그 당시 중계하던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즈 투수들을 신나게 까내리기 시작했다. 본래 성질이 굉장히 괴팍한 선수였지만 까는 것이 너무 심해지자 참다못한 브라운즈 선수들이 "그럼 당신이 내려와서 던져라." 라고 디지 딘에게 항의 했고 그 후 정말로(!) 디지 딘은 은퇴한지 7년만에 37살의 나이로 4이닝 무실점에 안타까지 기록했다! 당연히 그 후 브라운즈 투수들은 아닥.

  • 정동남의 경우는 매우 안타까운 경우인데, 1969년 정동남의 동생이 한강에 빠졌는데 아무도 구조해주지 않고, 배를 가진 사람이 돈을 먼저 가져와야지만 구해준다는 이야기를 하기만 하는 바람에 동생이 익사하는 슬픔을 겪게 된다. 그로 인해 그는 구조사가 되어서 국내와 해외를 막론하고 재난현장에 달려가서 헌신적인 활동을 하게 된다.

  • 국회의원 전병헌의 경우 바다이야기 사태 이후 설립된 게임물등급위원회가 제대로 일을 못하고 오히려 '특정업체의 로비를 받고 심의한다'는 등의 국정감사 결과를 가지고 와서 '게등위 해체'를 주장하는 등의 공격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후 중계권 사태나 GSL 보이콧 등의 행태로 '개스파'라고 불리었던 KeSPA의 회장으로 취임했는데...이후 KeSPA의 행보가 180도 달라졌다. 2014년 국회의원 겸직 금지 조례가 내려지자 인터넷에서 '살다살다 높으신 분이 감투 내려놓는 게 싫어질 줄은 몰랐다.'라는 반응이 나올 정도.

  • 대한민국의 뮤지션 배철수는 학생시절 제1회 대학가요제 대상을 받은 '샌드페블즈'의 '나 어떡해'를 듣고는 "뭐야? 저 정도면 대상이었단 말이야?"라면서 다음 회차에 출전하게 되었다고 한다(...). 배철수 말로는 당시 2회 참가자들 대부분이 '이 대회가 이 정도 수준이라면 나 정도면 대상 받겠다'라고 생각하고 각지에서 몰려든 것이라고 언급했다.

  • 라쿠텐 이글스 GM 타치바나 요조는 2015 시즌 개막 전 전지훈련에 직접 참석했는데, 선수들과 20m 셔틀런 횟수 대결을 해서 1등을 했다. 연봉협상 때 써먹을 수 있다

  • 무협 소설가 좌백 또한 마찬가지 케이스. 흔히 말하는 구무협과 신무협의 구분을 좌백의 등장으로 나누는 사람이 많다. 과거 무협 소설은 그야말로 펄프픽션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저질 수준의 책이 많았다. 이는 홍콩이나 대만의 유명 작가들의 소설을 무단으로 번역하거나 표절 했으며, 색협지 또는 떡협지로 불리는 와룡강 스타일의 공장 소설이 범람했던 것이 주 이유다. 좌백은 그런 무협소설들을 보며 말 그대로 '내가 써도 이것보단 잘쓰겠네...' 하며 쓴 것이 바로 소설 '대도오' 이다. 이는 기존 매너리즘에 빠져 있던 무협계에 큰 충격을 줬으며, 고루한 아저씨들만 읽는 이미지가 있었던 무협의 이미지를 바꿔놓는 계기가 되었다.

  • 의 보컬 프레디 머큐리는 에이즈로 고통받던 말년, TV에서 무슨 그림이 비싸게 팔렸단 뉴스를 보고 '내가 그려도 저것보단 잘 그리겠네!'라고 하며 많은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7] 프레디는 자조 섞인 목소리로 애인인 짐 허튼에게 '이거 내가 죽고 나면 무지 비싸게 팔릴 거야.' 라고 농담처럼 말했다고 한다.프레디의 이름값을 보면 나중에 결국 비싸게 팔리긴 했을듯....

  • 미국 항공기 제조사인 보잉의 사장 윌리엄 보잉은 1910년 로스엔젤레스에서 열린 American Air Meet 이란 곳에서 비행기를 탔는데, 자리가 하나뿐인 비행기라 날개에 붙어 탈 테니 태워 달라고 하면서 비행기를 탔고, '내가 만들어도 이것보단 잘 만들겠다'고 하고 그 뒤 시애틀로 돌아와 보잉을 세웠다는 창립 일화가 있다.

  • 록맨 시리즈의 아버지 이나후네 케이지캡콤을 퇴사하고 만든 록맨 시리즈의 정신적 후속작 마이티 No.9이 흥행과 비평 양면에서 쪽박을 찬것을 계기로 캡콤은 이나후네 없이 록맨을 부활시키기로 했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자세한건 록맨 11문서 참고. 내가 해도 이것보다 잘하겠네의 실패사례와 성공사례가 합쳐져있다.

3. 창작물의 사례[편집]

  • 웹툰 츄리닝 中: 국가대표 축구선수에게 악플을 다는 악플러에게, 팬들이 그렇게 잘하면 니가 해보라며 공격을 가한다. 그리고 다음컷에서 그 악플러는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제가 축구를 한 계기는……." 발롱도르를 수상한 것이다(…).

  • 만화 바쿠만 中: 히라마루 카즈야라는 평범한 직장인이, 어느날 지하철에 버려진 점프를 읽어보곤 "이 정도는 나도 하겠네." 하고 그날로 사표를 내고 한달 뒤에 정기연재를 따내는데 성공, 대히트를 치게 된다.

  • 아이돌 마스터: 아키즈키 리츠코. 학창시절, 아이돌들의 공연을 보고 한눈에 문제점을 파악하며 "내가 쟤네들 관리한다면 더 잘하게 만들 수 있는데!"라고 생각하고 프로듀서가 되기 위해서 공부하고 765 프로덕션에 입사하게 된다. 그런데 프로덕션의 인재부족으로 인해 본의 아니게 아이돌 후보생-프로듀서 양다리를 걸치게 된다. 그리곤 실제로 13명 중에 3명을 먼저 데뷔시켜버리는 능력을 뽐냈다. 특정게임에서는 내용상 흑역사가 되어서 문제

  • 게임 Chroma Squad: 특촬물을 촬영하던 특덕후 스턴트맨 5명이 제멋대로인 감독의 등쌀을 견디다 못해 "이럴 바에야 우리가 스튜디오 하나 새로 차려서 찍자!"고 뛰쳐나와, 빈 창고에 스튜디오를 차려 인디 특촬물을 촬영한다는 것이 스토리의 발단이다.

  • 영화 데이브에서 낸스 부통령은 젊은 시절 구두수선공이었는데 맨날 정치에 대해서 투덜거리니, 어느날 부인이 '그렇게 투덜거리지 말고 네가 해봐라' 하길래 점심시간에 가서 자치단체 의회 의원으로 입후보 등록하고는 당선되었다. 그것도 아주 적은 돈을 쓰고.

4. 실패 사례[편집]


[1] 단, 정식 더빙은 아니고 팬더빙이다. 처음은 일본판, 1분 8초부터 웨인 도스터의 공식 북미판, 2분 14초부터 길버트슨이 한것.[2] 비슷한 사례로 시판작 중에 마음에 드는 게임이 하나도 없어서 게임을 만드신 분도 있다. 그리고 2차 창작으로 대박을 쳤지[3] 한국형 판타지가 아니라는 말 때문에 싸운 것은 아니다. 저것 때문에 발끈해서 쓴 거라면 이건...[4] 그 회사 이름이 바로 오클리(...).[5] 여담으로 잘 언급되지는 않지만 이분도 총기 개발자이다.[6] 5분 경부터 관련 내용이 나온다.[7] 그런데, 원래 이 사람은 미대 나온 그래픽 디자인 전공자이다. 퀸의 앨범 디자인도 직접 한 게 많다. 잘 하는 게 당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