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프리카 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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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프리카 공화국
Republic of South Africa
Republiek van Suid-Afrika

파일:남아프리카 공화국 국기.png

국기

파일:Coat_of_arms_of_South_Africa.png

국장

면적

1,221,037 ㎢

인구

55,436,360명(2017)

인종 구성

흑인 80.2%, 컬러드 8.8%, 백인 8.4%, 아시아계 2.5%

수도

프리토리아(행정)
블룸폰테인(사법)
케이프타운(입법)

최대도시

요하네스버그

정치체제

공화제, 대통령제

대통령

제이컵 주마

임기

2009년 5월 9일 ~ 2014년 5월 7일
2014년 5월 7일 ~ 2019년 5월 9일 (예정)

부통령

시릴 라마포사

명목 GDP

3175억 6800만$(2017)

1인당 명목 GDP

5,589$(2017)

GDP(PPP)

5,553억 4000$

1인당 GDP(PPP)

13,179$

공용어

아프리칸스어, 영어, 줄루어
남 은데벨레어, 코사어, 스와지어
북 소토어, 남 소토어, 츠와나어, 총가어, 벤다어

화폐단위

남아프리카 공화국 랜드

ccTLD

.za

국제연합(UN) 가입

1945년(아파르트헤이트로 추방, 1992년 재가입)

대한수교현황

남북한 동시수교(남한 : 1992년, 북한 : 1998년)

여행경보

여행유의 : 전지역[1]

모토

!ke e: ǀxarra ǁke[2]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600px-South_Africa_on_the_globe_%28Zambia_centered%29.svg.png

1. 개요2. 역사3. 경제4. 사회
4.1. 언어분포4.2. 아파르트헤이트4.3. 빈부격차4.4. AIDS4.5. 치안
5. 정치
5.1. 군사
6. 문화
6.1. 스포츠
7. 외교 관계
7.1. 대한민국과의 관계
8. 행정구역9. 국기와 국가
9.1. 국기9.2. 국가
9.2.1. 가사9.2.2. 한국어 해석
10. 창작물에 등장하는 남아프리카 공화국11. 출신 인물
11.1. 실존 인물11.2. 가상 인물

공식언어의 국명

아프리칸스어

Republiek van Suid-Afrika

영어

Republic of South Africa

줄루어

iRiphabhuliki yaseNingizimu Afrika

남 은데벨레어

iRiphabliki yeSewula Afrika

코사어

Riphabliki yomZantsi Afrika

스와지어

iRiphabhulikhi yeNingizimu Afrika

북 소토어

Repabliki ya Afrika-Borwa

남 소토어

Rephaboliki ya Afrika Borwa

츠와나어

Rephaboliki ya Aforika Borwa

총가어

Riphabliki ra Afrika Dzonga

벤다어

Riphabuḽiki ya Afurika Tshipembe

11개의 언어가 전부 공식 언어다. 주로 쓰이는 언어는 아프리칸스어영어. 원래는 아프리칸스어와 영어만이 공식 언어였지만 아파르트헤이트 철폐 이후 흑인들이 쓰던 언어를 모두 인정해주었기 때문이다.

1. 개요[편집]

남아프리카 공화국, 약칭 남아공(南阿共)은 아프리카 최남단에 있는 공화국이다. 1815년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고 1910년 영국에서 독립한 이후 1961년까지의 국호는 남아프리카 연방(남아연방)으로 영국 국왕이 국가원수였다. 이집트와 같이 아프리카 국가 가운데는 국가인지도가 높은 나라이다.

수도가 프리토리아(행정), 블룸폰테인(사법), 케이프타운(입법), 요하네스버그(경제) 세 군데로 나뉘어 있는 나라이다. 한국으로 치자면 청와대, 대법원, 국회의사당이 서로 다른 도시에 따로따로 떨어져 있는 셈이다. 이렇게 된 건 남아프리카 연방을 결성할 때(1910) 4개 구성국(중 세력이 큰 3개국)의 수도에다 3부 기관을 나누어주었기 때문이다. 트란스발의 수도 프리토리아에 행정수도, 오렌지자유국 수도 블룸폰테인에 사법수도, 케이프식민지 수도 케이프타운에 입법수도를 준 것이다. 그러나 최다인구 도시는 셋 모두가 아닌 요하네스버그로 인구는 약 390만 명이다.

이 나라 때문에 나미비아는 아프리카에서 3번째로 늦게 독립한 국가가 되었다[3].

이 나라의 지도를 보면 가운데에서 약간 동쪽으로 구멍이 뻥 뚫린 듯한 것과 동쪽 끝이 뭔가 쥐 파먹은 듯한 것을 볼 수 있다. 그 두 구멍은 레소토(서)와 스와질란드(동)이다.

세계에서 호주와 더불어서 이 넘쳐나는 나라 중 하나이며, 아프리카에서 가장 고도화된 산업국. 남아프리카 지역이나 블랙 아프리카에서는 우월한 강국으로 아프리카 연합의 실질적인 수장국이다.

한국전쟁 당시 UN군의 일원으로 참전하였다. 평택남아프리카 공화국군 한국전쟁 참전 기념비가 위치하고 있으며, 경부고속도로 상행선을 타고 올라가다 보면 표지판을 볼 수 있다.

2. 역사[편집]

가장 처음으로 인류가 거주한 지역 중 하나였으며, 매우 오래 전부터 코이코이족이나 산족이 살던 지역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수렵이나 채집을 하던 민족으로 특별한 역사 기록을 남기진 않았다. 이후 반투족이 남아공 일대로 남하해 와서 1,500년 전쯤 남아공 지역에 도착했으며, 이후 서쪽에선 코이코이족과 산족이 수렵으로 살아갔고 동쪽에선 반투 종족들이 농경과 목축을 영위했으며, 동북쪽 짐바브웨 근처에선 마풍구브웨 같은 왕국도 있었다.



이 지역은 1488년 희망봉의 발견으로 유럽인에게 처음 알려졌으나 처음에는 유럽인들은 이 지역에 썩 관심을 보이지는 않았다. 이 지역에 최초로 정착한 유럽인들은 17세기 얀 판 리베이크를 따라 정착네덜란드인들이었다.[4] 네덜란드는 동인도 제도와의 무역에 있어 중간보급항 차원에서 케이프타운 식민지를 개척했다. 처음에는 케이프타운의 혹독한 기후와[5] 좀처럼 늘지 않는 인구 때문에 식민지 경영에 어려움을 느꼈다. 하지만 식민지 통치자들의 지속적인 노력과 위그노들의 합류[6]로 식민지의 규모는 점점 커지게 된다. 또한 지역 흑인들을 이용해 금과 다이아몬드 등의 귀금속 채취로 많은 수익을 올린다.[7] 그러나 점차 영국인들 또한 영국군을 앞세워 정착하기 시작하여 이들을 피해 점점 내륙으로 들어가는 Great Trek이라 불린 대이동이 시작되었다. 이 과정 중에 토착 흑인 부족들과 때로는 싸우고, 때로는 교류도 하면서 점차 자신들을 독립된 민족적 주체로 인식하고 스스로를 보어인, 혹은 아프리카너(Afrikaner)라고 부르기 시작한다. 이게 또 19세기 초반에 샤카 대왕의 지도 아래 동북부에서 줄루족이 대대적인 정복 전쟁을 펼치면서 19세기 중엽 무렵에는 케이프타운 일대는 영국의 지배를 받고, 중부에는 트란스발 공화국과 오라녜 자유국을 필두로 한 아프리카너 국가들, 그리고 동부에는 줄루 왕국이 삼파전을 벌이는 형세가 되었다.

이후 줄루 왕국은 치열한 전쟁 끝에 1879년 영국에 정복되었고, 보어인들은 트란스발 공화국, 오라녜 자유국 등을 건국했지만, 남아프리카 지역의 귀금속 채굴권을 둘러싸고 영국과 갈등을 일으킨 끝에 1899년 보어전쟁이 발생한다. 보어인들은 게릴라전과 독일의 물밑지원에 힘입어 영국군을 무던히도 괴롭혔지만[8] 결국 엄청난 병력 차이를 이기지 못하고 1902년 트란스발, 오라녜 연합군이 영국에 패전하면서 영국령으로 넘어갔다.

이 과정에서 보어인의 강력한 저항에 진절머리 난 영국군 역시 무자비한 강경책으로 나서 보어인 마을들을 초토화시키고, 강제수용소에다가 보어인들을 수용시켰는데, 2만 8천 명에 가까운 여성과 어린이들이 수용소에서 영양실조와 학대로 죽어 영국 내에서도 비난을 받았다. 역사학자 골드윈 스미스는 영국이 백년전쟁에서 잔 다르크를 화형시켜 죽인 이래 이처럼 비도덕적인 행위를 한 적이 없다고 비탄하기도.



남아프리카가 영국의 식민지가 되기 이전에 영국은 이미 노예제도를 폐지한 나라였으나, 네덜란드는 그렇지 않았다. 영국이 남아공을 식민화한 뒤에도 현지의 반발로 인해 법률을 존중해야 했으며 이로 인해 타 영 연방국가와 남아공의 법률 체계는 완전히 달라지게 되었다. 1910년에는 영국의 4개 식민지인 케이프 식민지, 나탈, 트란스발, 오렌지 자유주를 합쳐, 입법에 관련해서는 영국과 타 영연방의 간섭을 받지 않는 주권국가인 남아프리카 연방(남아연방)이 출범했다. 1948년 국민당이 집권하면서[9]부터 완전히 막나가기 시작해 1952년 의회에서 법원의 결정을 번복할 수 있는 법을 만들어 이로서 사실상 영국 추밀원으로 상고하여 결정을 뒤엎을 수 있는 방법 자체를 원천 차단했다(...). 영국과의 관계는 아예 틀어졌는데, 일단 영국 본토 정부에서는 남아공의 인종차별 정책을 마음에 들지 않았던 데다가 1960년 헤럴드 맥밀런 영국 총리가 남아공을 방문해 대놓고 '변화의 바람'이란 연설을 해버렸다.

해럴드 맥밀런은 어느 때에도 침착 냉정하기로 유명했지만, 그런 맥밀런마저도 남아프리카 총리의 초청을 받자 흥분한 기색을 감출 수 없었다. 페르부르트 박사는 아파르트헤이트를 종교처럼 숭배하고 "만사에 오직 나만이 옳다"는 신념을 가진 "끔찍한 생각"의 소유자였다. 이날 맥밀런은 남아프리카 공화국 의회 앞에서 아프리카너 정권에 도전하는 연설을 했다. 긴장한 나머지 연설 직전에 몸이 아플 정도였다. 연설 자체는 철저한 준비를 거쳤다. 아프리카에는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고 그는 역설했다. 민족적 자각은 정책상 고려해야 할 정치적인 사실이었다.

그는 아프리카너 민족주의를 아프리카 최초의 민족주의라고 찬사를 보냈지만, 여기에서 끝나서는 안 된다고 했다. 계속해서 불평등을 감내해야 한다면 흑인들은 공산주의로 돌아설 것이었다. 맥밀런은 아파르트헤이트에 대해 직접적인 언급은 하지 않았지만 정부는 개인의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고 못박았다. 아프리카의 다른 지역에서도 영국의 정책은 변화하고 있으며, 따라서 "여러분에게 어려운 상황이 될 수 있다"고 꼬집었다." #


페르부르트는 당시 남아프리카 연합의 총리로, 이를 기점으로 영국계 주민의 평균 연령이 더 높고 젊은 연령층이 적은 것을 고려해 투표 연령을 18세로 내리고, 독일령이었고 독일계와 네덜란드계 보어인들이 대다수였던 나미비아까지 본토의 일부로 포함시켜 투표해 5% 차이로 영연방 왕국을 폐지하고 남아프리카 공화국(남아공)을 건국했다. 국기의 유니언 플래그는 그대로 남아있었다가 후 1994년 국기변경 이후로 사라졌다.

영국은 이빨 빠진 호랑이었고, 나머지 강대국들이 멀고 먼 남아프리카까지 군사 개입을 할 리가 없었던 걸 아는 남아공 정부는 대놓고 인종차별 정책을 그대로 밀고 가기 시작했다. 흑인들은 도시에는 고용된 경우가 아니면 입장을 하지 못했으며, 입장을 했다 하더라도 케이프타운이나 더반의 해변가, 공원 내 벤치, 공중화장실 등의 사용은 엄격히 금지되었다. 일단 그 전 1950년대에 유색인들은 의회 진출 금지, 또한 색이 다른 민족들 간의 성관계도 당연히 금지법들이 통과돼서 시행되고 있었다는 점을 잊으면 섭하다.[10]

이 때문에 1954년부터 FIFA로부터 제명당해 월드컵 예선조차 나가지 못하고 1970년에은 IOC에서도 제명되어 올림픽에도 못 나가는 수모를 당하는 등 국제 사회로부터 갖은 왕따를 당한다. 넬슨 만델라 등은 지속적으로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에 저항하였다. 결국 1990년 감옥에 갇혀있던 넬슨 만델라를 석방하면서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은 공식적으로 철폐되고, 1994년 만델라가 남아공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된 이후로 표면적인 인종차별의 역사는 종지부를 찍는다. 이걸 고치겠다고 흑인들의 경제력 신장을 대대적으로 높이기 위한 정책이었던 'Black Empowerment Plan'을 시행했는데 1995년에 백인들과 흑인들의 소득차는 4:1이었던 것이 아파르트헤이트 종결 6년 이후인 2000년의 호구조사에서는 6:1로 오히려 벌어졌다. 21세기의 첫 10년간 흑인 중산층(일명 블랙 다이아몬드)가 상당히 증가하고 있지만 아직도 전체적으로는 백인과 흑인간의 빈부격차가 심한 상태. 2011년 남아프리카의 1인당 명목 국민소득이 8천 달러인데도 불구하고, 전 국민의 25%가 하루 1.25달러 아래로 생계를 이어나가고 있다. 이 정도면 한국으로 치면 한국 국민의 25%가 하루에 4000원도 못 쓰는 수준.

그런데 의외로 남아공은 전세계에서 노동자의 권리가 제일 잘 지켜지는 나라 중 하나라고 한다. 국제 노동조합 연맹 항목 참고. 사실 이는 공산당과 남아공 노총이 남아공의 집권당인 아프리카 민족회의에 소속되어있는 형태로 영향력을 끼치고 있어서이기도 하다. 그와 별개로 실제 경제 정책은 흑인경제육성정책 정도를 제외하면 좌파적이진 않다(...)

3. 경제[편집]

4. 사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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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기준 남아공의 인종 분포. 빨간색이 흑인, 청록색이 컬러드, 연노랑색이 백인이다.

현재 남아공의 총 주민수는 4천 900만 명이라고 하는데 이중 흑인이 약 80%이고 백인이 약 10%[11] 이며 나머지 10%는 컬러드(Coloured)[12]와 아시아인[13]이라고 한다.

4.1. 언어분포[편집]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809px-South_Africa_2011_dominant_language_map.svg.png

아프리칸스어

소토어

영어

츠와나어

은데벨레어

스와티어

코사어

벤다어

줄루어

총가어

북소토어

비특정어

4.2. 아파르트헤이트[편집]

남아공 하면 역시 소수의 네덜란드, 영국계 백인들과 다수 흑인 사이의 인종차별과 갈등이 대표적이었는데 백인들의 권력독점으로 인해 백인에 대한 우대와 혜택 그리고 독식 등이 늘어나게 되면서 어느 분야 가릴 것도 없이 흑인과 차별화되었다. 학교에서도 백인 출신만을 입학 허가해주는 대학교가 있는가 하면 화장실이나 목욕탕 등도 백인 전용과 흑인 전용으로 나뉘어있는 등 생활면에서까지 인종에 대한 차별이 심했던 편이었다. 미국의 N-word에 대응하는 남아프리카 흑인에 대한 멸칭으로 kaffir[14]라는 고유의 단어가 생겨나기도 했다.

그 밖의 내용은 아파르트헤이트 참조.

4.3. 빈부격차[편집]

현재 아파르트헤이트는 끝났지만 아직도 사회 내 격차는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남아공의 지니 계수는 세계은행에 의하면 2008년 기준 소득 기준으로 0.7, 소비 기준으로 0.63에 달하고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58%를 장악하고 있는 수준. 인종별로 뜯어보면 인구의 9%에 불과한 백인과 79.2%인 흑인이 각각 소득의 약 40%를 차지하고 있는 수준이다. 2012년 기준으로 흑인의 56%가 빈곤층이었지만 백인 중 빈곤층은 2% 정도였고, 교육적인 면에서도 2008년 기준으로 남아공의 대학 진학률은 6명당 1명 수준이었지만 취업 연령대 흑인 중 대학 교육을 받은 비율은 1.4%에 불과했다. 참고. 2017년 초 시점에는 백인 빈곤율이 10%로 급증했는데 "백인이기 때문에" 국가가 주는 복지 지원 같은 것도 일절 없다고 한다. 사실 이런 문제도 있는데 대학등록금이 남아공 소득수준을 감안하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비싸고 중산층들도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다보니까 장학금을 못받으면 사다리가 사실상 막혀버린 경우가 많다.(...) 등록금 문제는 흑인들에게 가장 가혹하게 다가오지만 아시아인이나 백인이라고 해서 사실 사정이 크게 다르지는 않기 때문에 가릴거없이 인종 가릴 거 없이 등록금 낮춰달라며 시위를 벌이는 경우가 허다한데 정부에서 돈이 없다며 이러한 요구들을 목인하는 중이다. 그래도 시위를 거하게 벌이면 요구를 들어주기는 하는데 실제로는 그냥 현상유지하는 수준.

지니계수를 도시마다 살펴보면 요하네스버그0.75, 프리토리아더반은 0.72로 0.7을 넘겼고, 주요 도시중에는 케이프타운이 가장 낮았지만 여기도 지니계수가 0.67을 찍었다.# 전 세계의 지니계수가 0.68 정도로 추정되는 걸 감안하면 전 세계 모든 나라 간의 빈부격차보다 요하네스버그 도시 안에서의 빈부격차가 더 크다는 것(...).

백인의 정치 권력 독점이 철폐되고, 흑인에 대한 법적인 규제도 철폐되면서 수천만 명의 흑인 노동력이 한꺼번에 시장으로 쏟아져 나왔으나, 제대로 된 직업 교육을 받은 흑인이 적었던 데다가 5백만 명 정도의 백인들만으로 돌아가던 남아공의 경제력이 하루 아침에 4천만의 인구를 부양하게 만들 수 없었기 때문에 대다수의 흑인들이 중산층에 진입하지 못하고 여전히 빈곤한 상태에 머물러 있게 되었다.

어쨌거나 남아공의 백인들 중에는 경제력이 좀 되는 상류층이 아닌 이상 날씨가 비슷한 오스트레일리아로 이민 가는 사람들도 꽤나 많다. 다만 2000년대 중반 들어 백인 인구가 다시 증가세를 타고 있고 전 세계적인 경기침체로 미국, 호주 등지에서 신규 창출되는 일자리 수가 줄어들면서 백인 인구가 상당히 증가하고 있는 중(물론 80-90년대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얘기고 총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조금씩 줄어들고 있는 중). 남아공에선 흑인 인건비가 싸기 때문에 가정부나 운전기사, 경비원을 저임금으로 실컷 부려먹을 수 있어서 치안 문제만 제외한다면 손에 물 안 묻히고 편하게(...) 살 수 있는데 반해 호주나 뉴질랜드의 경우 경비원이나 가정부를 고용하려면 인건비가 왕창 비싸다보니까 직접 일을 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이 외에도 남아공에 금융업종 관련으로 이민 오는 백인들도 있다.

게다가 남아공에서 백인들을 견제해서 건전한 흑인 소유의 기업이 많이 탄생하면 그나마 안심이 될 텐데, 이 기회로 부자가 된 흑인 기업가들은 천민자본주의의 폐해를 너무나 제대로 보여주는 자본주의의 돼지들이란 게 문제며, 거기다 무능하기까지 하다. 남아공 정부의 끝발이 미치지 못하는 해외에선 진짜 진출하는 족족 털려서 다시 남아공으로 돌아오는 추태를 보인다. 즉 제대로 기업을 운영할 수 없는 사람이 정부의 미친 듯한 지원으로 엄청난 부를 축재한 셈이며, 그리고 그나마도 국력을 축낸다고 볼 수 있는 광산업 등에서밖에 성공하지 못하고 서비스업 같은 데선 정말 죽을 쑤고 있다. 더욱이 흑인 중에서 성공한 사람이 나타났다고 해서 빈부격차가 해소된 게 아니라 그냥 흑인 집단 안에서의 빈부격차만 커졌다. 그래서 시위도 간간히 일어나곤 한다고.

백인 소유 회사들은 이에 대항하여 다국적 기업에 편입되거나 하는 식으로 살아남거나 아니면 미친 듯한 정경유착으로 살아남고 나머지는 도태되고 있다. 남아공 백인 중에서 3백년째 남아공에서 가문 대대로 살며 광산업을 하던 백인 억만장자는 아파르트헤이트 이후에 너무나 노골적으로 차별을 받아서 회사를 처분한 다음에 호주로 이민 가고 아예 남아공 시민권을 포기했다. 아이러니하게 이 사람은 그나마 인종차별을 안 하던 광산회사 소유주였는데, 정경유착을 하지 않다가 훅 간 케이스며, 흑인들을 심각하게 부려먹던 다이아몬드 회사 드 비어스는 정경유착에 성공하고 회사의 본사를 유럽으로 옮겨서 아직도 쌩쌩하다[15]. 남아프리카의 경제를 표현한다면 한마디로 채찍으로 때리던 사람만 백인에서 흑인으로 바뀐 셈인 총체적 난국이다.

백인 빈민을 white squatter라 부르는데 이들은 아파르트헤이트 하에서도 가난했지만 그때는 백인이라서 기본 생계는 백인 정부가 책임졌다. 물론 현 남아공 정부에선 25%에 달하는(물론 취업포기자는 제외하고) 흑인 실업자들 취직시키기도 바쁘다. 헌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백인들 실업률은 5%대인데 반해 흑인 실업률은 40%나 달한다(...) 그리고 이들이 가난하다 해도 여전히 상당수 흑인들보다 상대적으로 부유한 것도 있긴 하다. 이들이 가난에 빠지면 이들을 보호할 사회 안전망이 전무하며 오히려 흑인들과의 경쟁에서 상대적인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때문인지 젊은 백인들의 경우 유럽 계열[16]로 이민을 준비하거나 아시아 계열에서 영어를 가르치며 생활하는 경우도 많다.

영어 위키백과의 관련설명에 의하면 남아공 백인들은 호주, 뉴질랜드 뿐만이 아니라, 영국, 아일랜드, 캐나다, 미국등 인구의 대다수가 영어를 모국어로 한 영어권 국가뿐 아니라 네덜란드, 벨기에, 스페인 그리고 심지어 아르헨티나, 브라질, 멕시코 등으로 이민 간 사람들도 있다.[17]

4.4. AIDS[편집]

사회 혼란 속에서 AIDS 발병자가 늘어났는데, 타보 음베키 대통령(1999년~2008년 재임)과 그 치하의 높으신 분들무능하게 대처하는 바람에 HIV가 남아공 전역에 급속도로 확산되는 걸 막지 못했다. 타보 음베키 대통령은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에이즈 때문에 죽은 사람을 하나도 모른다"라고 무책임한 발언을 한 적도 있고 장관이라는 양반이 에이즈 치료책으로 홍당무와 마늘을 먹으라 하지 않나... 타보 음베키 대통령은 부통령 시절에 만델라가 흑백화합 정책에 신경을 쓰는 동안 의료정책에 관여했기 때문에 에이즈 환자 비율이 급속히 높아지는데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책임이 크다는 얘기도 있다. 음베키는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꽤 정상(?)적인 에이즈관을 가지고 있었으나 상당히 궁핍한 남아공의 재정이 에이즈 약을 보급하기엔 가격이 심하게 비싸다는 점 때문에 주저하고 있었는데 에이즈와 HIV 바이러스간의 인과관계가 정확하게 입증되지 않았다는 설이 나오게 되자 이를 믿게 되었고[18], 이후에는 이하생략. 만델라도 움베키의 정책을 대대적으로 비난하고 남아공의 경제성장률을 상당부분 까먹었다는 얘기가 나왔을 정도.

다른 원인도 있는데, 흑인들 사이에서 아파르트헤이트에 대한 트라우마가 워낙에 깊다보니까 콘돔을 끼는 것을 거부하는 경우가 매우 많았다. 아파르트헤이트 당시 아예 세균을 통해 흑인들을 절멸하려는 계획도 있었으니 높으신 분들이 하는 말을 잘 신뢰하지 않았다.

2008년에는 남아공 인구의 10%, 특히 임산부의 28%가 HIV 감염자였다. 비공식 통계도 아니고 공식 통계가 이 모양이다. 결과적으로 30만명이 에이즈로 죽어버렸다(...) 그나마 만델라가 열심히 에이즈 퇴치하려고 발 벗고 나섰고 주마 대통령[19] 시기 들어 에이즈 치료제를 무상공급하는 정책[20] 덕분에 상황은 나아지고 있다. 그러나 타국에 비하면 여전히 심각한데, 남아공의 사망자의 3할이 에이즈로 인해 죽고 있으며 이 때문에 남아공은 세계에서 평균수명이 가장 낮은 나라에서 13위를 기록하고 있다. 겨우 50세 정도밖에 안 되는데, 이는 1인당 GDP가 남아공의 1/5 정도밖에 안 되는 베트남보다 20년이나 짧고, 아이티 급으로 답이 없지 않은 이상 대부분의 개발도상국도 평균수명은 대개 60대 후반에서 70대를 유지한다.

4.5. 치안[편집]

각종 범죄들이 소말리아 수준으로 일어난다. 특히 총기 난사 사고 문제는 너무도 심각해서, 남아공에 비하면 미국의 총기 난사 사건들은 그나마 훨씬 건전해 보이는 서바이벌 게임으로 보일 정도다. 그야말로 GTA 저리 가라 할 정도로 헬게이트라 할 수 있다.

만델라 정권이 출범한 1994년 살인 사건이 월평균 1,400건이었는데, 이는 통상 하루에 47명이 살해당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인구 규모가 비슷한 한국에서 발생하는 살인 사건의 사망자가 연간 430명 정도임을 감안하면[21] 얼마나 막장인지 알 수 있다. 강간도 심해서 여자의 경우 혼자 여행하거나 혼자 돌아다니는 것은 절대 금물. 물론 남아공도 사람사는 곳이다 보니 정상적인 사람들이 많지만 워낙 빈부, 교육, 국민 수준의 격차가 크다보니 혼자 돌아다니는 여성을 음란한 여자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좀 있어 외국인은 더욱더 조심해야 한다. 외국인이라고 가리지 않고, 특히 한국 여성들은 동양인 여성이라 티가 확 날뿐만 아니라 남아공 남성 기준에서 이국적이고 멀리 외국 여행을 혼자 나올 정도로 함부로 대해도 된다는 편견이 많아 성범죄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다.

살인 외에도 침입 강도는 월 6,000건, 노상강도는 월 12,000여 건, 강간은 월 2,500건, 차량도난은 월 8,000건이 일어나며 경찰 살해도 월 평균 15건이나 된다. 2001년에는 1년 동안 살인 21,553건, 강도 228,442건, 강간 52,425건이 일어났고 흉악범죄는 좀처럼 줄어들 기미가 안 보인다.

하지만 남아공의 치안은 전체적으로 개선되는 추세에 있다. 범죄의 절대 건수는 줄지 않았지만 비율은 크게 감소했기 때문이다. 가령 콰줄루-나탈 주의 살인율은 1994년 10만 명당 95에서 2011년 35로 줄었고, 남아공 전체로 볼 때는 동기간 67에서 32로 감소했다. 이는 인구 증가 때문인데, 백인 인구는 9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상당히 큰 폭으로 하락했지만 흑인들의 출산율이 상대적으로 높다보니 그만큼 인구가 증가하기는 했다. 2000년대 초반에는 에이즈로 나라 망하는 것이 아니냐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막장이었기 때문에 인구 폭증 수준까지는 아니다(...)

재밌는 건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1917년부터 살인에 대해서는 반드시 사형을 선고했으며 1992년에 넬슨 만델라에 의해 사형 폐지[22]가 될 때까지 매년 수백명의 흉악범을 처형할 정도로 사형집행이 잦은 국가였다. 1983년~1987년까지는 중국을 제치고 사형집행이 가장 많은 나라이기도 했다. 과장이 아니라 사형집행장이 있는 교도소에서는 일주일 중 주말만 빼고 매일 매일 사형수를 처형할 정도로 사형집행이 잦았는데도 범죄율은 전혀 낮아지지 않았다. 그래서 사형 제도가 범죄 발생 억제에 효과가 없다는 증거 사례로 뽑히는 국가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런 판국에 남아공 정부는 강력범죄에 대응하는 플라잉 스쿼드(Flying Squad)[23]의 장비나 인력 충원을 위한 지원도 전혀 하지 않고 있어 막장 상태를 개선할 의지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2010년에 월드컵을 치르게 되자, 주마 정부 들어서 대도시 지역의 치안은 어느 정도 개선되었다. 월드컵 치뤄지는데 치안불안정으로 망신 당할 수는 없으니까 남아공은 한국과 비슷하게 과거 암울한 독재정치를 거친 적이 있어서 공권력과 경찰 권력이 너무 강해지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있다. 그래서 경찰이 먼저 발포도 못하게 만들었지만 월드컵이 다가오자 그 법을 바꾸고(!) 범죄를 마구 소탕해 버렸다. 물론 그래도 이미 막장까지 간 상황이라 말 그대로 땜질 수준. 그리고 월드컵이 끝나자 그냥 흐지부지... 물론 개선되었다고는 해도 요하네스버그나 그 근교 도시에 사는 부유층들은 남녀 할 것 없이 돌격소총을 휴대하고 다니는 등 중무장이 일상이며, 교관의 지도하에 사격술 교습을 받으며 사실상 백인 인구 전체가 민병대화 되어있는 상황이다. 자세한 사항은 요하네스버그 가이드라인의 실제 사례 항목부터 참조.


도시가 아닌 시골에도 괴한들이 상당히 많다. 도시에서는 누구라도 보는 사람이라도 있지만 시골에서는 정말 속수무책이다(...) 이로 인해서인지, 이런 지역을 지나가는 고속도로 등의 안내판 등에는 "절대 차를 세우지 마세요. 괴한에게 습격 당할 수 있습니다." 라는 표지판까지 붙어있을 정도다.

실제로 위의 유명한 요하네스버그와 주변의 치안이 좋다고는 농담으로도 할 수는 없지만 소말리아급 지옥 수준은 절대 아니며 한국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고 방문하게 될 케이프타운과 블룸폰테인과 같은 수도와 더반, 포트 엘리자베스 등의 대도시의 백인 생활 지역의 경우 돌아다니다가 총을 볼 일은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5. 정치[편집]

남아공의 정치 정보

부패인식지수

43 점

2012년, 세계 69위 [24]

언론자유지수

24.56

2013년, 세계 52위[25]


아파르트헤이트 시절에는 의회제 국가 중 20세기에도 삼원제 의회를 가졌던 국가였는데 1980년대 들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자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을 조금 완화했는데 이때 백인들만 참여할 수 있었던 의회[26]를 백인 의회, 컬러드(흑인-백인 혼혈) 의회, 아시아인 의회로 나눈 것. 다만 컬러드 의회와 아시아인 의회는 권한이 미약해서[27] 삼원제가 시행했을 당시엔 컬러드와 아시아인들의 투표율이 매우 저조했다. 어쨌거나 80년대 후반-90년대 들어 아파르트 헤이트 정책을 완전히 폐지하는 과정에서 흑인 의회도 추가해 사원제로 전환하는 방안도 나왔지만 협상 끝에 양원제로 전환되었다.

현재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일단은 대통령이 국가원수이고 정부수반이지만, 대통령이 직접선거가 아닌 의회에서 선출되고 장관들도 의원 중에서 뽑히며, 또한 대통령이 제한적으로 의회를 해산하거나 의회가 대통령을 불신임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지는 등 의원 내각제에 가깝다. 1994년 선거부터 비례대표제로 국회의원을 선출하고 있다. 특징적으로는 다른 비례대표제를 채택한 국가들과 달리 남아프리카공화국은 특정 득표율 이하 득표한 정당을 당선되지 않게 하는 봉쇄 조항이 없어서, 0.2% 득표한 정당이 의석을 획득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역대 선거 결과를 보면 아프리카 민족회의가 모든 선거에서 과반 이상의 득표로 승리해서 군소정당 난립으로 인한 혼란은 나타나지 않는다.

흑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인종차별은 철폐되었고, 압도적인 쪽수로 인해 언제나 흑인 후보가 백인 후보에게 승리하는 상황이 계속되었다. 구체적으로 ANC(아프리카 민족회의)의 득표율이 보통 60% 초-중반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2000년대 후반부터는 점차 득표율이 떨어져가고 있지만 제1야당인 민주동맹(굳이 계보를 따지자면 남아공당-연합당-진보연맹당-민주당계열)의 득표율이 20%초반(그나마도 이것도 많이 올린 편)인지라 여전히 압도적이다. 그래도 비례대표제를 체택한 덕택에 의석점유율은 국민당이 대놓고 인종차별을 펼쳤을 시절보다는 낮은 편이지만 득표율 자체는 국민당 독재시절보다는 높은 편.

그런데 흑인 대통령 및 그가 임명하는 각료와 공무원들에게 정치적인 권력이 집중되고, 이로 인해 무능하고 뇌물을 밝혀대는 노멘클라투라 계급이 형성었으며 과거 국가 기간을 지탱한 백인 관료층이 축출되면서[28] 그간 유지되던 사회구조가 완전히 망가졌다. 사실 이는 선거제도가 영향을 준 것도 있는데 남아공의 국회의원 선거제도는 전국 단위 비례대표제로 선출된다. 이 때문에 의원들이 지역현안에 크게 신경을 안 써도 앞 번호만 받으면 당선이 되기 쉽고 이 때문에 유권자들과의 접촉이 많지 않기 때문에 자연스레 지역 관리에 소홀해지고 상대적으로 감시가 소홀해지기 때문에 인프라가 제때 확충되지 않는 결과가 나와서 빈민층들이 시위하는 일이 꽤 자주 있다.

2009년 취임한 대통령인 제이콥 주마는 넬슨 만델라가 백인들의 경제 지배를 인정하는 멍청한 짓을 해버려서 대다수 흑인들의 삶이 어려워졌다고 비난하면서 백인들의 기득권과 경제권을 흑인이 되찾겠다는 발언을 하는 등 백인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주마는 만델라 정권 시절부터 백인들을 추방하고 경제력을 압수해야 한다고 주장해왔고, 심지어 대놓고 'Kill the boer'라는 노래[29]를 부르는(...)등 각종 반(反)백인적 행각으로 백인들의 미움을 샀다. 하지만 그 덕에 흑인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오고 있었다. 주마는 줄루족 출신이라서 줄루족이 많은 남아공에서 그 지지도[30]가 엄청나다. 참고로 만델라와 그 후임이던 타보 음베키 대통령은 코사족이었기에 줄루족에서 주마를 더더욱 밀어주었다.[31] 하지만 정작 주마도 집권 뒤엔 별다른 정책 수정 없이 빈부격차 문제에 눈을 감으면서 현지에선 완전히 맛이 갔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그래도 제1야당인 DA(민주동맹)가 주로 백인이나 컬러드(흑-백 혼혈)층의 지지를 받는 정당인 데다가[32] 다른 야당을 보면 인타카 자유당은 콰줄루나탈주 지역정당인 데다가 한때 원내 3당을 차지했을 때도 있었지만 주마가 줄루족 출신인지라 2000년대 중반부터 세가 급속히 악화된 상황이고, 경제자유투사당은 아예 백인 토지 무상몰수를 주장하는 당인지라 집권하면 흑백갈등이 엄청나게 날 걸로 예상되고(그래도 젊은 흑인 실업자층에서의 지지율은 높았다), 그 이외 정당은 아예 듣보잡 of 듣보잡인지라 딱히 다른 대안도 마딱치 않았으며, 거기에다가 30대 이상의 흑인층에서는 ANC에 대해 동질감이 크다는 점도 한 몫 해서 2014년 총선에서도 ANC가 예상보다 조금 높은 득표율로 집권했다. 역대 총선 사상 최저 득표율로 위상이 다소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

어쨌거나 주마가 한 동안이나마 인기를 얻으면서 남아공이 짐바브웨 꼴 나는 거 아닌가 우려도 있긴 했지만, 주마는 부패하기는 했어도 바보는 아니라 빤히 코 앞에서 짐바브웨가 당하는 꼴을 다 보고서 똑같은 일을 남아공에서 저지를 정도는 당연히 아니고 오히려 집권 뒤에 상당히 보수적인 경제정책을 취했다. 오히려 짐바브웨의 실업자들이 남아공으로 몰리는지라여하튼 주마가 재집권한 뒤에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로 전환되고 부정부패는 시정되지 않고 실업률도 30%대로 올라가서 주마의 지지율은 최악으로 떨어졌다.

2014년 4월 주마는 재선에 성공하지만 야당인 DA와 ANC의 극좌세력인 줄리어스 말레마가 탈당해 만든 EFF가 상당히 위협적인 활약을 보이면서 주마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고 또 주마의 퇴임 후 사저인 은칸들라에 관련해 여러 비리와 국고를 쓸데없이 낭비한다는 의혹을 받으면서 ANC의 독주에 빨간 불이 켜진 상황. 2016년 11월 3일 제이컵 주마 현 대통령이 부정부패 논란에 휩쓸리면서 야당을 비롯한 반정부 세력과 국민들이 현 대통령에 대한 대규모 시위가 진행 중이고, 현 정부는 최루탄, 고무탄, 물대포 등을 이용하여 반정부 시위를 폭력적으로 제압했다.강력범죄 진압이나 그렇게 하지 주마 대통령은 이를 부인했다.#

5.1. 군사[편집]

6. 문화[편집]

세계에서 가장 높은 번지점프대가 있는 곳이었다. 높이는 무려 216m. 하지만 마카오 타워가 233m로 제껴버렸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공용어로는 아프리칸스어, 영어, 줄루어 등 11개가 있다. 그러나 영어를 모국어로 한 인구는 전체 인구의 9% 밖에 되지 않아 인구의 대다수가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영어권 국가라 칭하기엔 무리가 있다. 영국 이민국이나 미국 이민국에서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비자 신청자에게 영어능력을 요구하며 남아공 대학에서 영어로 전공한 학위는 영어구사능력으로 인정해주지 않는다. 하지만 모어로 쓰는 인구만 적을뿐이지 영어가 국제적으로 많이 쓰이고 아프리칸스어에 비해서 이미지가 괜찮으면서도 흑인 언어에 비해서는 써먹을데가 훨씬 많아 교육 언어로 선호받고 민족간 소통어로도 널리 쓰이고 있기 때문에[33] 중등교육 이상 받은 사람은 대다수가 영어를 구사할 줄 알며 남아공의 공영방송사인 SABC에서도 아프리칸스어나 줄루어, 코사어 등 다른 언어로 제작된 프로그램에다가 영어자막을 따로 달아서 편성한다.

남아공 영어는 기본적으로는 영국식 발음과 철자법을 쓰고 있지만 약간의 억양 차이가 난다. 특히 사회 계층에 따라 차이가 있는데, 대략 다음과 같이 나뉜다.

  • 상류층과 공식 석상에서 쓰이며 RP와 발음이 거의 비슷한 Cultivated

  • 중간 계층이 쓰는 General

  • 아프리칸스어 화자 및 노동자 계층이 쓰는 독특한 발음인 Broad


셋 모두 전반적으로 아프리칸스어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ɪ 발음이 'ə에 가깝게 발음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 자음의 기식이 적어 된소리처럼 들리는 말이 많다는 것, 또 화자에 따라 r이 스페인어의 r처럼 혀를 떠는 발음이 되곤 한다는 등의 특징이 있다. 남아공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 디스트릭트9의 주인공 비커스 반 데 메르베엘리시움(영화)크루거 동일인물가 이 영어를 구사한다.[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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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부시맨 1편의 마지막 장면은 God’s Window라는 산에서 촬영된 것이다. 평소에는 그렇게 안개가 펼쳐져 있지는 않고 아침에만 아주 가끔 산 아래가 안개 투성이가 된다고 한다. 영화 촬영시에는 안개가 피는 것을 밤새워 기다리고 촬영했다.

아프리카 국가 중에서는 거의 유일하다시피 이스포츠가 국제무대에서 제 역할을 하는 국가이다. 과거 이집트가 있으나마나한 활동이라도 벌였지만 벌써 대략 10년 쯤 전 얘기고 이젠 그냥 없는 취급 당하는 것에 비해, 현재 그나마 남아공만이 준메이저급 이상 규모의 세계 대회에 모습을 비추며 유의미한 성적을 거두고 있다.

림포포 주에 거주하는 로베두 족의 구름과 강수를 통제할 수 있는 등의 특별한 힘이 있다고 믿어지는 세습 여왕인 비의 여왕(Rain Queen) 모자지(Modjadji)가 나름 알려져 있다. 1800년부터 확립되어 전통적으로 모계 계승으로 이어졌는데 6대 이후로 현재 7대는 공석인 상태이다.

6.1. 스포츠[편집]

축구가 인기가 많다고는 하지만 럭비, 크리켓보다 인기가 낮다는 이야기도 있어서 정확한 사실확인이 필요하다. 관련 링크 #1, #2, #3, #4 남아공 프로축구리그는 이집트, 콩고민주공화국과 함께 아프리카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나눠먹는 리그 중 하나이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축구 항목 참고할 것. 더불어 크리켓이나 럭비도 상당히 인기가 많지만 인종적으로 경제적 여유 때문에 축구는 흑인층에서, 크리켓이나 럭비는 백인층에서 더 많이 한다. 과거 인종차별이 극에 달할 당시에 흑인들에겐 축구와 권투가 인기 많았다. 하여튼 이런 이유 때문인지 아프리카에서 유일무이한 크리켓[35] 및 그 여파로 야구도 그나마 하는 나라로 남아프리카 공화국 야구 국가대표팀 참고할 것.

참고로 1995년 럭비 월드컵에서 우승한 경력이 있다. 아파르트헤이트 때문에 오랫동안 국제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던 남아공은 월드컵 1년 전만 하더라도 잉글랜드에 쳐발릴 정도로 약체였지만 만델라의 적극적인 지원하에 1994년 월드컵에서 우승하는 감동 드라마를 이룩할 수 있었다. 자세한 내용은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인빅터스에 잘 나와있다.

럭비계에서 모두에게 강국으로 인정받는 몇몇 나라들 중 하나이며 럭비팬들에게 물어보면 무조건 다섯 손가락 안에 넣는다. 세계 럭비 랭킹에서 2016년 2월 말 기준으로 3위에 위치한다. 럭비의 인기가 상당히 많다지만 실제로 가보면 럭비의 수준이 높다. 우월한 피지컬로 밀어붙이는 플레이에 능하며, 그에 어울리게 무시무시한 떡대들을 자랑하는 선수들로 가득차있다.(원래 럭비선수들 자체가 떡대가 장난 아니지만 이들은 더하다)

7. 외교 관계[편집]

2010 G20 서울 정상회의의 참가국이며, 브릭스의 제5의 멤버다.

7.1. 대한민국과의 관계[편집]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1950년 한국전쟁UN군으로 참전하여 당시 남아공 공군 대대가 파병되어 사상자를 내었고, 국제 사회에서는 대한민국의 입장을 지지하는 편이었다.

그러나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으로 인해 공식적인 수교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1976년 남아공 정부에서 소웨토 항쟁을 강경 진압하고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에 대한 국제적인 비판도 거세지자, 대한민국도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의미에서 남아공과의 관계를 전면적으로 단절했다. 그래서 1988 서울 올림픽에는 IOC로부터 흑백 인종차별 문제로 등으로 인해 1964 도쿄 올림픽부터 참가 및 출전이 정지되어 불참하였다가[36] 1992년 인종차별 정책을 폐지하고 나서야 수교했다. 다만 국가 간의 외교를 단절한 것과는 별도로 민간 경제 교류는 이전부터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 1995년에는 넬슨 만델라 대통령이 방한하였다. 1998년에는 북한과도 외교 관계를 맺었다.

1974년 복싱 챔피언이자 당시 육군 일병 신분이었던 홍수환더반에서 챔피언을 획득한 기적과 영광을 일으켰고, 2010년 6월 남아공 월드컵 때에는 같은 도시에서 대한민국이 사상 최초 원정 16강 진출에 성공하기도 하였으며 1년 후 같은 도시에서 열렸던 IOC 총회에서 2018년 동계올림픽이 강원도 평창군으로 유치가 확정되기도 하여 특히 더반과 인연이 깊기도 하다.

대한민국에서 영어강사가 될 수 있는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국가" 중 하나이다. 적지 않은 수의 남아프리카인들이 한국에서 영어강사로 일하고 있다.

스와질란드, 보츠와나, 레소토, 라이베리아, 세네갈등과 함께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지역에서 한국인이 비자 발급 없이 무비자로 갈 수 있는 6개 국가들중 하나다. 체류기간은 30일.

대한민국 직항은 없으며, 환승해야 한다. 홍콩 국제공항에서 남아프리카 항공캐세이퍼시픽 항공요하네스버그행을 운항 중이기 때문에 홍콩 등지에서 환승이 가능하다. 케이프타운의 경우 위의 경로 이외에도 카타르항공 또는 아랍에미리트를 통해 요하네스버그를 거치지 않고 한국에서는 1회 환승 후 바로 입국가능하다.

8. 행정구역[편집]

9. 국기와 국가[편집]

9.1. 국기[편집]

파일:attachment/남아프리카 공화국/58546_149677601729954_143264689037912_296786_5501780_n.jpg

이전에는 옛 네덜란드 국기와 동일한 귤색, 하얀색, 파랑색에 국기문장이 들어간 3색기였으나 # 1994년 넬슨 만델라 정부가 수립되면서 이전의 3색기에 아프리카민족회의 깃발을 결합한 것으로 Y자 모양을 반시계 방향으로 90도 돌린 무늬의 3색기로 바뀌었고 귤색이었던 것이 빨강으로 바뀌었다.[37] 빨간색은 남아공의 독립과 흑인들의 희생과 열정, 초록색은 남아공의 농업, 삼림, 농촌, 국토를 뜻하며 노란색은 남아공의 주산물인 금을 비롯한 광물과 광업을 상징하고 파랑은 열린 하늘과 인도양대서양을 상징하며 검정과 하얀색은 남아공에 사는 백인과 흑인을 Y자는 화합을 상징하며 남아공의 흑인과 백인, 그리고 그 외 부족과 종족들, 남아공 지방정부의 화합을 나타낸다.

9.2. 국가[편집]



이전에는 남아프리카 연방의 국가였던 "남아프리카의 외침"(Die Stem van Suid-Afrika, 아프리칸스어)를 사용했으나 1994년 넬슨 만델라 정부의 수립과 함께 아프리카에서 자주 불리는 민중가요(?)였던 "주여 아프리카를 보호하소서"(Nkosi sikelel' iAfrika)[38](코사어, 줄루어, 소토어)도 공동 국가로 지정되었다. 1997년 이 두 노래를 섞어서 편곡, 개사한 "남아프리카 찬가"를 유일한 국가로 지정했다.[39]

국가가 무려 5개 언어로 구성되어 있다.[40]

9.2.1. 가사[편집]

(코사어) Nkosi sikelel' iAfrika
Maluphakanyisw' uphondo lwayo,

(줄루어)Yizwa imithandazo yethu,
Nkosi sikelela, thina lusapho lwayo.

(소토어)Morena boloka setjhaba sa heso,
O fedise dintwa le matshwenyeho,
O se boloke, O se boloke setjhaba sa heso,
Setjhaba sa, South Afrika — South Afrika.

(아프리칸스어)Uit die blou van onse hemel,
Uit die diepte van ons see,
Oor ons ewige gebergtes,
Waar die kranse antwoord gee.

(영어)Sounds the call to come together,
And united we shall stand,
Let us live and strive for freedom,
In South Africa our land.

9.2.2. 한국어 해석[편집]

주여 아프리카를 구원하사
영광을 높이 올리소서.
우리의 소원을 들어주사
주여, 그대의 아들인 우리를 구원하소서.

주여, 그대가 우리나라를 지켜 주사
모든 분쟁을 끝내주소서.
지켜주소서, 우리나라를 지켜주소서.
조국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지켜 주소서.

우리의 깊은 바다에서 출렁이는 파도 소리는
우리의 푸른 하늘에 울려 퍼지리라,
높은 산 위에서 바위산 끝까지
우리의 메아리가 울리리라.

화합의 외침이 울리네,
그리고 우리는 단결하여 일어서리,
우리의 자유로운 삶을 위해 노력하리,
우리의 조국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10. 창작물에 등장하는 남아프리카 공화국[편집]

SF 영화 디스트릭트 9의 주 무대로 등장한다. 감독 닐 블롬캠프가 남아공 출신이며, 디스트릭트 9의 원형이 되는 단편 영화의 제목이 <Alive in joburg(얼라이브 인 요하네스버그)>였으니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 기존의 남아공 인종갈등 구조에서 외계인이 개입되어 있는 색다른 구도로 화제가 되었다.

재난 영화 2012에서는 대재난에서 살아남은 인류가 문명 재건을 위해 정착할 예정인 곳으로 나오기도 했다. 대재난으로 인해 남아공의 영토가 지면 상승으로 해일 피해를 덜 입었기 때문이다.

웨스트우드 비브라토에서는 케이프 타운에 주인공의 악기 수리점 'WESTWOOD VIBRATO'이 있다.

커맨드 앤 컨커 타이베리안 던에서는 Nod가 공략하는 아프리카 주둔 GDI 최후의 기지가 남아공에 있는데[41], 임무선택 지도화면에서 볼 수 있는 공격의 방향으로 봤을 때 희망봉에서 배수의 진을 친 듯.

메탈슬러그 3 미션 3의 배경이 메탈슬러그 디펜스에 따르면 남아프리카 공화국이라고 한다.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서 헐크베로니카 수트가 한바탕 대결을 벌이는 곳은 남아공의 요하네스버그다. 해당 장면의 배경이 마블 코믹스에 나오는 가공의 아프리카 국가와칸다라고 오해하는 사람도 있는데, 헐크버스터 등장 장면을 촬영한 장소가 요하네스버그이고, 극중에서 헐크를 진압하기 위해 등장하는 것은 남아공 경찰이며, 아프리카 국가임에도 흑인 뿐만 아니라 백인 엑스트라가 많이 나왔다는 점에서 촬영 장소인 남아공을 묘사한 것이 맞다고 봐야 한다. 이상하게도 작중에서는 소코비아대한민국 서울과는 달리 남아공이라고 자막이 나오지는 않는다.

셈을 할 줄 아는 까막눈이 여자의 주인공인 놈베코 마예키가 아파르트헤이트 시절 태어난 곳이다.

11. 출신 인물[편집]

11.1. 실존 인물[편집]

11.2. 가상 인물[편집]

[1] # [2] 코이산어에 속하는 (쯧)함(ǀXam)어로 "다양성 속의 통일"이라는 뜻. 발음은 대략 "(똑)께 에 (쯧)하라 (쯧)께" 정도로 읽는다. 괄호 치고 (쯧) (똑)처럼 표기한 발음은 흡착음. 참고로 (쯧)함어는 현재 남아공의 공용어는 아닌데, 현재는 사어가 되었기 때문이다.[3] 제일 늦게 독립한 국가는 남수단 공화국, 두 번째로 늦게 독립한 국가는 에리트레아. 1991년 독립을 선언한 소말릴란드와 그 전에 독립을 선언했던 서사하라는 국제사회에서 승인을 받지 못하고 있으므로 여기서 제외. 남아공은 1976년 독립을 선언한 서사하라를 2004년부터 독립국으로 인정해주고 있다. 여기와 서사하라 항목 참조.[4] 대다수가 칼뱅주의 개신교도들이었다.[5] 남아프리카 공화국 남부 해안지역은 지중해성 기후도 나타나는 등 농산물을 수확하기에는 좋은 기후 조건을 갖고 있으나, 케이프타운 인근 지역은 바닷바람이 거세 농경에는 신통치 않았다.[6] 루이 14세의 낭트 칙령 폐지로 상공업에 종사하는 25만명의 위그노들이 유럽 각지로 탈출했고, 일부 위그노들이 케이프타운 식민지로 유입된다. 이들의 포도주 양조 기술 전파는 현재까지도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포도주를 빚고 수출할 수 있게 된 계기이다. 이들은 네덜란드계와 종교가 통했기 때문에 프랑스어를 버리고 구어체 네덜란드어로 갈아탔으며 얼마 안가 네덜란드계와 완전히 동화되었다.[7] 영국이 케이프타운 식민지를 점령하기 전, 네덜란드의 식민지는 이미 내륙의 오렌지 강을 경계로 할 정도로 확장해 있었다.[8] 초기 영국 원정대 지휘관의 삽질도 한 몫 했다. 자세한 것은 '아집과 실패의 전쟁사(세종서적 출판)'를 참조할 것.[9] 사실 당시 득표율로 보면 국민당은 37%, 연합당은 49%를 득표했다. 여기서 보이듯 유권자들(물론 대다수의 유색인종을 뺀 백인과 컬러드 한정)의 다수가 아파르트헤이트를 지지한 건 아니었지만 선거구 조정이 제때 안되는 바람에 인구가 적은 선거구(주로 네덜란드계 유권자들이 밀집해있었던 곳이 다수였다)에서 국민당이 우세했고 결국 집권에 성공했던 것.[10] 1950년대라면 당시 기준으로 별로 이상한 건 아니였다. 미국은 소위 Jim Crow Laws 일컬어지는 법을 각 주마다 통과시켜서 사실상 백인과 비백인의 결혼을 무효화 혹은 원천 봉쇄했으며, 학교나 공공시설도 백인, 비백인이 따로 있었다. 아이러니하게 흑인보다 아시아인들(정확히는 중국인) 히스테릭컬하다고 할 정도로 민감하게 반응을 보인 게 캘리포니아주로 결혼, 교육, 주거, 투표, 피선거권은 물론이요 술 사먹을 권리까지 제한했다. 주 헌법적으로 아시아인(중국인)의 존재를 악한 것으로 규정했을 정도(...)[11] 이렇게 비율상으로 보면 소수고, 그 비율도 감소추세지만, 인구로만 따지면 400만명을 훨씬 넘어서(약 470만명 가량) 뉴질랜드 전체 인구와 맞먹으며, 이 중 25%의 마오리족, 아시아계를 제외한다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백인 인구는 뉴질랜드의 백인 인구보다도 훨씬 많다. 이것도 1990년대에 백인들이 흑인들이 보복을 할까 두려워서(물론 보복을 하는일은 벌어지지 않았지만) 많이 이민을 떠나는 바람에 이 만큼이나 줄은것이고(90년대 후반에는 420만명대까지 둘은적이 있었다.) 1980년대에는 500만명에 도달한적도 있었다. [12] 남아공의 컬러드라는 인종분류는 1차적 뜻은 "유색인종"이지만, 인종 분류로는 백인과 다른 인종 사이의 혼혈인을 가리킨다. 유전적으로 보면 (서케이프 지역의 경우) 코이산계 흑인(32-43%)·반투계 흑인(20-36%)·유럽인(21-28%)·아시아인(9-11%)의 혼혈이라고 한다.#[13] 남아공의 아시아인은 영국 식민지 시절 인도를 중심으로 한 남아시아 지역 출신이 많으며, 동아시아를 가리키지 않는다. 아시아 중에는 인도 및 그 주변국, 즉 남아시아 출신을 가리키는 용법으로 더 많이 쓰이는 것은 영국도 마찬가지.[14] 현지 발음으로 "꺄프르" 비슷하게 들린다.[15] 위에 언급된 억만장자가 드 비어스에 회사를 팔아버렸다.[16] 영국 등지의 경우 영국에서 건너온 이민자의 후손임을 증명하면 다소 쉽게 비자를 얻을 수 있다.[17] 이런 경우의 백인들은 스페인, 포르투갈 쪽으로 조상을 두고 있는 백인들이다.[18] 음베키는 영국에서 유학하면서 경제학 석사 학위를 따냈을 정도의 엘리트였다. 보건정책에 손을 대서 그렇지[19] 사실 이 양반도 대통령이 되기 전에는 에이즈 예방은 관계 후 30분 내에 샤워하면 된다고 했다...[20] 그 이전에도 상당수 주들을 중심으로 에이즈 치료제를 무상공급하고 있었다. 이를 중앙정부 차원으로 확대한 것이다.[21] 그나마도 감정 과잉에 대한 관용 및 사회적인 가정폭력 무관심으로 살해당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아서 거리에서의 피살자 발생 확률은 일본과 비슷하다. 이 정도면 전세계 최저 수준.[22] 처음에는 한국처럼 무기한 중지됐다가 결국 폐지됐다.[23] 특별기동수사대로, 2인 1조로 운영된다. 긴급대응을 위해 시속 240km까지 달릴 수 있는 특별 순찰차에 R5 카빈으로 무장하고 있다.[24] #[25] 수치가 높을수록 언론 자유가 없는 국가, 언론자유 최상은 0점, 언론자유 최악은 100점. #[26] 1950년대 초반까지는 컬러드, 아시아계도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었으나 1953년 선거에서도 국민당이 승리를 거두면서 연합당의 표밭(당연히 컬러드나 아시아계 유권자들이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을 시행하는 정당인 국민당에 투표할 리는 없었으니까)인 컬러드와 아시아계 유권자들의 피선거권을 없애고 몇 명의 의원들(그것도 백인)만 뽑을 수 있게 투표권도 제한했으며 1970년대 들면서 이마저도 없애버렸다. 정확하게는 아파르트헤이트 원칙에 따라 따로 의원을 뽑자고 명분을 내세우며 따로 의회를 만들었긴 했는데... 권한이 별로 없다보니 허수아비나 마찬가지라 실상은 완전히 폐지된 거나 다름없었다.[27] 인구의 90% 가까이 차지하는 유색인종 의석이 10% 겨우 되는 백인 의원석보다 적었다. 1960년 샤프빌 시위와 1976년 소웨토 학생운동 같이 이전에도 반 아파르트헤이트 시위가 있었지만 격화 된 건 1980년대였고 또 가장 큰 이유는 불평등한 삼원제 때문이었다.[28] 남아공에서 가장 규모가 큰 도시이며 가장 심각했던 사례 중 하나인 요하네스버그의 경우 80%에 달하는 관료들이 순식간에 증발했다.[29] 해석하면 보어인들과 백인 농장주를 쏴죽이자는 뜻인데, 아파르트헤이트 시절 흑인 급진세력에서 많이 불린 노래이다. 유튜브에서 들어보면 가사가 꽤나 살벌하다.[30] 1942년생으로 아내가 셋이며 2번은 이혼했다. 그리고 2012년 4월 21일 6번째 결혼을 할 예정이다. 이에 대하여 비난을 받자 '일부다처제는 줄루족의 전통인데 뭐가 문제냐? 멋대로 쳐들어와 남아공에 살던 흑인을 핍박하고 지들의 전통을 강요한 백인들을 따르라는 거냐?'며 비난하던 자들을 역공했다. 이 문제에 대하여 앙케이트를 벌였더니 '능력 좋으면 그럴 수도 있지 뭘', '백인들의 잣대에 좌우하지 말자'는 의견이 압도적이었을 만큼 주마의 지지도가 엄청났었다. 취임 전까지는.[31] 2014년 총선에서 ANC가 60%대의 지지를 얻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타 지역에서 ANC 지지율이 상당폭 하락한 데 반해, 콰줄루나탈주에서 지지가 굳건했기 때문.[32] 물론 당 내 주류는 국민당 정부 시절 아파르트헤이트 폐지를 주장했던 민주당계가 우위를 차지하고 있지만(국민당계는 민주동맹 창당 이후 얼마 가지 못하고 갈라섰다가 결국 ANC로 통합되었다) 원래 민주동맹자체가 신국민당과 민주당과의 빅딜로 탄생한 정당이기도 하고 민주동맹 지지자들의 상당수가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을 시행한 시절에 국민당을 지지했었었던지라 흑인들 사이에서 민주동맹의 지지율은 극히 낮다. 그나마 2010년대부터는 지지세를 넓혀서 대도시 지역에 거주하는 흑인 중산층들의 지지를 얻는 편. 이러다 보니 남아공 선거 결과를 보면 같은 도시 안에서 어느 동네는 ANC가 85%를 득표하고 어느 동네에서는 DA가 85%를 득표하는 진풍경(...)을 볼 수 있다.[33] 아프리칸스어는 보어인들과 컬러드나 쓰고, 그 이외 주민들에게 잘 쓰이지 않은데다가(다만 아프리칸스어를 따로 배워서 써먹는 사람은 상당하다.) 흑인 언어는 종족별로 다르기 때문에 민족간 소통어로 쓰이기 힘들다.[34] 영화상에선 아프리칸스어 모어 화자이다.[35] 크리켓은 그럭저럭 수준이 아니라 인도, 호주, 파키스탄과 함께 세계정상권을 노릴만한 강팀. 세계랭킹 1위 자리에도 여러번 오른적이 있다.[36]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부터 다시 참가.[37] 영국과 네덜란드를 동시에 고려해서라는 얘기가 있다.[38] 탄자니아의 국가는 이 노래의 스와힐리어 버전이다. 한편 아파르트헤이트 시절 반투스탄의 하나였던 "트란스케이"의 국가였기도 했다. 잠비아도 이 노래에 가사만 바꿔서 국가로 쓰고 있다.[39] 사실 말이 좋아 편곡이고 두 곡을 섞은거지 사실은 그냥 두곡을 앞뒤로 부르고 중간에 라 음으로 South Africa를 집어 넣은게 전부다. 위의 동영상을 들어보면 South Africa~~~라는 말 다음에 아프리카 토속음악 같던 곡 분위기가 갑자기 군가 내지는 찬송가 느낌으로 확 바뀌는 것을 금방 느낄 수 있을 것이다.[40] 파트별로 언어가 다르다보니 자기 모국어가 아닌 가사부분에는 웅얼웅얼 거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만약에 남아공 백인이 국가를 부를때에는 아프리칸스어 파트 가사때 부터 목소리가 2배로 커진다카더라.[41] 반대로 GDI의 타임라인에서는 맨 마지막에 Nod의 성지가 있는 사라예보를 공략하게 된다.[42] 하스스톤 컵대회를 신청할 때 실수로 남아공국적으로 가입했다. 자세한 내용은 항목참조.[43] 흔히 남아공 출신으로 알려져 있으나 정확히 말하면 나미비아 출신.[44] 닐 블롬캠프와는 학교 동창이라, 그가 감독을 맡은 영화에 자주 출연한다.[45] 출생은 남아공이지만 높아지는 범죄율로 인해 아주 어렸을 때 호주로 가족 전체가 이민.[46] 출생은 영국이지만 남아공에 가족 전체가 산다.[47] 마블 코믹스의 빌런으로 블랙 팬서의 숙적 중 하나이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이며 어딘가에 사는 가난한 농부인 그는 악마 메피스토에 자신의 영혼을 팔았다고 한다. 살아있는 것처럼 말하는 손인형 다키와 대화하는 등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인데 티찰라에 대한 강박, 증오에 의해 더욱 더 악화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