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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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s20.postimg.org/snfc2017.png 성남 FC 2018 시즌 스쿼드

감독 남기일 · 수석코치 이정효 · 코치 변성환 · 코치 마철준 · GK 코치 김우성

1 김동준 · 2 이시영 · 3 최준기 · 4 문지환 · 5 임채민 · 6 김정현 · 7 에델 · 8 주현우 · 9 정성민 · 10 문상윤 · 11 서보민(C) · 13 김도엽
14 이학민 · 15 이지민(VC) · 16 이성재 · 17 오창현 · 18 이현일 · 19 고병일 · 20 연제운(VC) · 21 김근배 · 22 김재봉 · 23 김소웅
24 박태준 · 25 조성욱 · 26 이다원 · 27 이정태 · 28 윤영선 · 29 본즈 · 31 전종혁 · 32 김민혁 · 33 최병찬 · 34 박태민 · 37 임대준 · 41 황인재

* 이 표는 간소화된 버전입니다. 스쿼드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여기를 참고해주세요.
* 타 팀으로 임대 간 선수는 제외되었습니다.
* 감독과 주장은 볼드체로 처리하였고, 주장은 (C), 부주장은 (VC)로 표기하였습니다.
* 성남 FC 스쿼드에 변동이 있으면 두 틀 모두를 수정해주세요.


남기일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 펼치기 · 접기 ]

광주 FC 역대 감독

여범규
(2013)

남기일
(2013~2017)

김학범
(2017)


성남 FC 역대 감독

박경훈
(2017)

남기일
(2018~)


남기일의 수상 이력

[ 펼치기 · 접기 ]

2001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우성용

FW
산드로

MF
신태용

MF
서정원

MF
송종국

MF
남기일

DF
우르모브

DF
김현수

DF
김용희

DF
이영표

GK
신의손



Seongnam FC

파일:external/m.xportsnews.com/1436095510866.jpg

이름

남기일
南基一 | Nam Ki-Il

출생

1974년 8월 17일 (44세) /
대한민국 전라남도 순천시

국적

대한민국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신체

177cm

직업

축구선수(공격수 / 은퇴)
축구감독

소속

선수

부천 SK(1997~2003)
전남 드래곤즈(2004)
성남 일화(2005~2008)
천안시청(2009~2010)

감독

천안시청(2009~2010 / 플레잉코치)
광주 FC(2011~2013 / 코치)
광주 FC(2013~2014 / 감독대행)
광주 FC(2015~2017)
성남 FC(2018~ )

국가대표

없음

1. 개요2. 선수 시절3. 지도자 시기4. 사건 사고5. 이야깃거리

1. 개요[편집]

대한민국축구선수 출신 감독. 2018년부터 성남 FC 감독을 맡고 있다.

2. 선수 시절[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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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 일화 천마에서 현역 시절의 사진

경희대학교를 졸업한 뒤 1997년 부천 SK에 입단하면서 프로생활을 시작하였다. 1997년 부천에서 18경기에 출장하며 주전자리를 꿰찼으며 7시즌동안 122경기에 출장해 19골을 기록하였다.[1] 특히, 2001년에는 35경기에 출전해 9골 2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2004년 김길식과의 맞트레이드 형식으로 전남 드래곤즈로 이적하였다. 2004년 전남에서 19경기 1골을 기록하였고, 2005년 성남 일화 천마로 이적하였다. 성남에서 4시즌 동안 62경기 13골을 기록하며 소속팀의 2006년 리그 우승에 기여하였다. 당시 성남 일화 감독은 김학범이었다. K리그에서 30-30클럽에 가입한 선수 중에 하나이며 2009년부터는 천안시청 축구단의 플레잉 코치로 이적하여 2시즌 동안 40경기 6골을 기록하며 선수 생활을 마감하였다.

3. 지도자 시기[편집]

3.1. 광주 FC[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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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대행에서 정식 감독으로 승진해서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
광주의 야전 사령관!! [2]

2009년 천안시청 플레잉코치 때부터 하재훈 감독 밑에서 지도력을 쌓아왔고 2011년 광주 FC의 창단 코치로 합류하였다. 팀 지도 방향에 회의를 느껴 2012년 한 해 동안 모든 것을 버리고 “영어 공부와 코칭 연구를 위해” 미국으로 갔다가 2013년 다시 팀으로 돌아왔다.#

2013년 8월 16일 광주 FC여범규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사퇴하자, 감독 대행에 올랐다. 초창기에는 새로운 스타일로 갈등을 빚으며 한동안 평가가 좋지 못해 사퇴를 촉구하는 의견이 팬들 사이에서 나오기도 하였다. 2013 시즌은 3위로 마치며 승격에 실패하였다.

2014 시즌에도 초중반까지는 중위권에 머물렀는데, 이후 조금씩 상승하여 정규 시즌을 마친 결과 13승 12무 11패 승점 40점을 기록하였다. 그렇게 턱걸이로 FC 안양을 간신히 제치고 4위로 K리그 챌린지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였다.
그런데 대부분의 전문가 및 팬들의 비관적인 전망을 비웃기라도 하듯, K리그 챌린지 승격 플레이오프에서 완전히 달라진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정규리그 3위 강원 FC와의 준 플레이오프에서 1-0으로 승리하며 플레이오프에 진출했고, 정규리그 2위팀 경찰청과의 경기에서 3-0으로 완승하며 두 경기 모두 반드시 이겨야만 다음 단계로 진출할 수 있는 악조건을 모두 극복하고 승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만난 상대는 K리그 클래식 11위 팀 경남 FC였다. 훗날 경남이 심판매수를 자행한 것으로 밝혀진 홈 경기 1차전에서 3-1로 승리하였고, 원정 경기인 2차전에서 1-1로 비기며 광주 FCK리그 클래식으로 승격시켰다. 클래식 승격을 이끈 지도력을 인정받아 시즌 후 광주 FC의 정식 감독으로 취임했다.

2015 시즌, 챌린지 위너로 K리그 클래식에 승격한 대전 시티즌이 시즌 내내 강등권을 벗어나지 못하는 동안, 광주 FC는 잠깐이나마 상위 스플릿도 잠깐 들어가 보는 등 호성적을 거두면서 급격하게 평판이 올라갔다. 비록 리그가 진행되면서 얇은 팀 재정과 선수층, 유니버시아드로 인한 연속 원정, 홈 구장인 광주월드컵경기장의 안 좋은 잔디 상태 등 수많은 악재로 결국 10위까지 떨어졌으나, 워낙에 상황이 안 좋았던 탓에 클래식 잔류만으로도 선방했다는 의견이 대세다. 2015 시즌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광주 FC/2015년 문서 참조. 특히 굉장히 어리고, 얇은 선수단 구성을 가지고 후반기 체력 저하에도 불구하고 본인의 확고한 축구철학을 관철하는 모습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많이 받았으며, 광주 FC는 하위권 팀임에도 불구하고 공격적이고 재미있는 축구를 하는 팀이 되었다.

2016 시즌, 전년에 챌린지에서 승격한 수원 FC가 전반기 초반의 잠깐 돌풍 이후 잠잠하고 작년에 선전했던 인천 유나이티드 등도 김도훈 감독의 사임 직전까지 답이 없는 부진을 계속했던 반면, 광주 FC는 묵묵히 작년과 비슷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은퇴 수순으로 모두가 이해했던 정조국이 득점왕과 시즌 MVP를 차지하고 김민혁, 이으뜸, 윤보상 등 끊임없이 선수를 발굴해냈다. 덕분에 선수와 예산이 없다고 하소연해야 하는 감독들은 광주 보고도 그런 소리를 하느냐며 팬들의 거센 반발을 사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사실 광주 선수들을 면밀히 따져보면 그렇게 선수층이 얇지도, 실력이 떨어지는 선수들이 아니다. 애초에 스쿼드가 얇다는 편견(?)에 젊고 유망한 선수들이 광주를 첫 번째 프로팀으로 많이들 선택해왔다. 대표적으로 2016년 입단한 선수 중 윤보상은 대학 시절부터 올림픽 대표인 김동준과 대학 리그 넘버원을 다투던 우수자원이었던데다 2015 광주하계유니버시아드 대표였고, 올림픽 대표이자 유니버시아드 대표팀 주장이던 박동진은 여러 모로 매우 유명한 선수. 이민기와 정동윤도 유니버시아드 대표 출신으로 2015 광주하계유니버시아드 준우승에 기여했다. 또한 호남지역 전통의 명문 유스 중 하나인 광주 금호고 출신 조주영도 대학 리그에서 괴물로 통하던 선수였다. 즉 이름값만 떨어질뿐 상대적으로 알짜배기 신인급 선수들을 많이 데려왔다는 게 축구계의 정설이다. 물론 신인급 선수들을 많이 데려다쓰다보니 선수단 전체 연봉으로 따지면 1부리그 최하위권에서 노는 광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그 탑 수준의 운영비와 연봉을 자랑하는 팀들 사이에서 2년 연속 안정적으로 잔류한 것은 누가 뭐래도 남 감독의 능력을 높이 살 수 밖에 없는 부분이다.

광주 FC와의 계약이 2016 시즌 후 만료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중도 경질이 아닌 이적으로 팀을 옮길 수 있는 K리그 클래식 감독 1순위로 지목받고 있었으나, 2016년 12월 30일에 2년 재계약에 합의했다고 한다. 그러나 2017시즌은 팀의 태생적 한계로 인한 전력차를 더이상 감독과 코칭스태프만이 감당하는 것도 힘겨웠다.[3] 결국 8월 홈 대구전의 치명적인 패배 다음날인 2017년 8월 14일 자진사퇴를 발표했다. 같은 날 발표된 국가대표 신태용호 명단 발표에 최윤겸 감독과 함께 살짝 가린 느낌이지만 그동안 고생했으니 잠깐 쉬고 U-23 대표팀 감독을 맡으라거나 일단 자기 팀으로 오고 보라는 케이리그 팬들의 위로와 격려를 받고 있다. 광주 팬들만 안습...

광주FC 역사의 절반 이상 및 승격을 이뤄낸 감독이기에 광주FC 팬들에게도 여전히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사임 당시 광주 팬들은 슬프지만 그동안 너무 고마웠고 더 전력이 좋은 팀을 맡아도 응원하겠다는 반응이 많았으며, 지역 라디오 방송에서는 남기일 감독의 4년 활약상을 되돌아보는 특집방송을 편성하기도 했다.
1화에서는 남기일 감독과의 여러 추억에 대해 이야기했으며
2화에서는 남기일 감독의 4년간의 전술 변화에 대해 자세하게 이야기했다.
특히 2번째 방송은 남기일 감독의 전술적 변화에 대해 자세하게 다루었다는 평이다.

2013시즌 감독대행 취임 직후에는, 라인을 올려서 공격과 수비의 간격을 좁히는 축구를 시도했었고 이 전술과 짧은 패스를 통한 공격 전개가 잘 자리잡으면서 승격과 함께 2015년 K리그 클래식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그러나 2015시즌 중반부터 2016시즌 초반까지 뒷공간을 노리는 공격에 취약점을 보였으며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도 라인을 끌어올리면서 역전패를 당하는 경우도 가끔 있었다.

그러나 2016시즌 4월 3일 수원FC에 1대2 역전패를 당하자 이제는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는 지나치게 라인을 올리기보다는 안정된 수비를 바탕으로 경기를 운영하겠다고 했고 그 이후 광주FC는 시즌이 끝날때까지 단 한 경기도 역전을 당하지 않았다. [4]
16시즌은 15시즌처럼 짧은 패스로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는 축구를 보이는 빈도는 줄어들었지만 그래도 지난 시즌보다 더 많은 승점을 쌓으면서 광주FC 역사상 최고 순위를 기록했다.
17시즌은 여름의 공백을 최소화하기위해 4-2-3-1 포매이션을 4-3-3으로 변화시키면서 공격형 미드필더인 김민혁에게 수비적인 역할까지 맡겼으나 이 선택은 김민혁이 2선에서 활발한 공격을 진행하는 것에 어려움을 끼쳤으며 이는 시즌 초반 득점 저하로 이어졌다.
그러나 17시즌 초반은 16시즌보다 더 나은 수비를 보이면서 치고 올라갈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었으나 시즌 중반부터 갑작스럽게 수비가 무너지면서 남기일 감독의 최고 장점중 하나인 지키는 축구가 완전히 무너지게 되었다. 남기일 감독은 몇 달동안 이 상황을 극복해내지 못했으며 결국 11위와의 승점차가 4점으로 벌어지자 자진사임을 하게 되었다.

3.2. 성남 FC[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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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성남 FC 최고의 영입
추락한 명가 부활에는 이 사람 하나면 충분하다.

일단 2017년 끝날 때까지 쉬겠다고 했으며 2017년 12월 6일 현역시절 활약한 성남 FC 감독으로 부임했다. 구단에서는 믿고 기다려주겠다고 했지만 성남시와 성남시 의회의 사이가 최악이라 그렇게 될 지는 미지수.

5월 11라운드까지 7승 4무 무패행진을 기록했으며, 2위와 승점 4점차 1위를 달리고 있다. 끊임없이 신인들을 투입시키며 박태준, 김재봉, 이다원, 최병찬 등 수많은 선수들을 발굴했으며 사실상 모든 선수가 제대로 터졌다. 최준기는? 아직 애매하잖아 지난 시즌에 실망만 안겨주었던 이학민을 리그 최상급의 공격형 풀백으로 부활시켰다.

성남시 의회가 추가로 예산 55억을 부활시킴에 따라 선수단 임금 걱정을 덜었다. 팬들은 드디어 광주보다 나은 대접을 받게 되었다고 안도하는중. 벌써부터 그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에 대한 논쟁도 다시 시작되고 있다.

4. 사건 사고[편집]

주먹감자의 오리지널 되시는 분이다. 2003년 9월 부천 SK 소속으로 전남 드래곤즈와 원정경기하던 중 골을 넣고 전남 서포터즈들에게 주먹감자를 발사, 흥분한 전남 서포터즈가 난입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그러나 이래놓고 바로 다음해 전남으로 트레이드되어 이적하는 얄궂은 운명을 맞는다. 1년 후에 이런 일이 올 줄은 상상조차 못했던 남기일은 전남 팬들에게 큰절까지 올리며 사과했지만 전남 팬들의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고, 1년 만에 팀을 떠났다.

지금도 전남 팬들은 남기일을 썩 좋지 않게 생각하고 있으며[5], 2015년 6월 3일 K리그 클래식 전남과 광주의 경기에서는 '남기일 씨 주먹감자 반납이요'라는 걸개가 걸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 경기에서 전남은 선제골을 기록하고 후반 막판 2골을 허용하며 1:2 역전패. 이 이후 광주와 전남의 대결은 옐로 더비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광주는 그 어떤 팀과 다르게 아무리 힘들어도 전남에만은 강한 모습을 잃지 않고 있다.

5. 이야깃거리[편집]

  • 2009년, 현역으로 뛸 당시에 모교인 경희대에서 '프로축구 지도자의 리더십 유형에 따른 조직유효성 결정요인에 관한 연구’란 주제로 K리그 최초로 현역을 유지하면서 박사학위 취득에 성공했다.

  • 거의 억양이 없고 딱딱한 말투라 사람들의 오해를 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2016 시즌에는 수원 FC와의 맞대결에서 조덕제 감독과 말싸움에 휘말린 바 있다. 그뒤에는 화해했지만.

파일:K리그 더 클래식 레전드 선수 및 감독.png

[1] 참고로 1997년과 1998년에 부천 SK를 맡던 감독은 발레리 니폼니시로, 그 당시 니폼니시의 지도를 받은 제자들로는 남기일, 윤정환, 조성환(2015년 제주 유나이티드 감독) 등이 있다.[2] 광주FC 홈경기에서 경기 시작전 선발선수 명단을 소개할 때 장내 아나운서가 남 감독을 소개했던 멘트이다.[3] 사퇴 전후 한 인터뷰에서 "모든 것을 다 해보아 이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는 취지로 발언했다.[4] 2016시즌 광주FC가 선제골을 넣은 모든 경기의 성적은 10승 3무 1패이고 그 1패가 4월 3일 경기이다. 먼저 골을 넣은 경기만큼은 꼭 가져오겠다는 남기일 감독의 전술이 성공적으로 통했다는 증거[5] 특히 남기일의 고향이 광양시와 함께 전남 드래곤즈의 핵심 연고지역 중 하나인 순천시임을 생각하면 거의 고향 팬들에게 주먹감자를 내민 격이나 마찬가지였으니 더 분노할 수 밖에 없다. 역시 호남 출신으로 고향 사람들에게 시선이 좋지 않은 빵을 좋아하신 야구인 어떤 분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