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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경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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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160617_경기도BI_메인이미지.jpg

파일:국회상징.png 대한민국 국회의원 (경기 수원시 팔달구)

제14·15대
남평우[1]

제15~18대
남경필

선거구 개편
남경필[A]

파일:국회상징.png 대한민국 국회의원 (경기 수원시 병)

선거구 개편
남경필[A]

제19대
남경필
[4]

제19대
김용남

파일:00500293_20170918.jpg

이름

남경필(南景弼, Nam Kyung-pil)[5]

출생일

1965년 1월 20일(53세), 물병자리/뱀띠[6]

출생지

경기도 용인군 포곡면[7]

본관

의령 남씨[8]

가족

祖남상학,父 남평우, 남동생 남경훈[9]
전처[10] 슬하 2남[11], 현(現)배우자[12] 및 슬하 의붓아들[13]

신체

167cm[14]

학력

경복고등학교
연세대학교 사회사업학 학사[15]
예일대학교 경영대학원 경영학 석사
뉴욕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 중퇴[16]

종교

개신교(침례회)[17][18]

병역

육군 상병 소집해제

소속 정당

자유한국당

의원선수

5

의원대수

15, 16, 17, 18, 19

지역구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약력

제15~19대 국회의원
제34대 경기도지사
한나라당 최고위원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위원장
대한민국국가모델연구모임 대표
한국게임산업협회 회장
한나라당 원내부총무
경인일보 사회정치부 기자
예일대학교 한인학생회 회장

외부링크

공식사이트, 페이스북




1. 개요2. 활동
2.1. 의원 시절2.2. 새누리당 소속 경기도지사 시절
2.2.1. 연정 시도
2.3. 새누리당 탈당, 바른정당 창당2.4. 바른정당 탈당, 자유한국당 복당
3. 성향4. 남경필계5. 사건 사고/논란6. 트리비아7. 저서8. 선거 이력

1. 개요[편집]

제34대 경기도지사를 지낸 대한민국정치인.

2. 활동[편집]

조부 남상학이 창업한 경남여객을 바탕으로 14, 15대 의원을 지낸 아버지 남평우를 거쳐 3대째 내려오는 수원의 터줏대감 집안 출신이다.[19] 경복고등학교, 연세대학교 사회사업학과를 졸업하고[20] 부친이 회장으로 있던 경인일보에서 잠시 기자 생활을 하다 미국 예일 대학교로 유학을 떠났다. 그곳에서 똑같이 예일대로 유학을 오게 된 오세훈 변호사(전 서울시장)와 인연을 맺었다.

아버지 남평우 의원의 갑작스러운 별세로 실시된 1998년 재보궐선거(수원시 팔달구)에 이회창 당시 총재의 공천[21]으로 출마한다.

처음엔 열세가 예상되었으나, 26.2%라는 낮은 투표율 하에서 출구조사에서조차 우세가 예상되던 박왕식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를 꺾고[22] 만 33살의 나이로 당선되는 이변을 일으키며 정치에 본격 입문했다.[23]

2.1. 의원 시절[편집]

제16대 대통령 선거 당시 이회창 후보진영의 총괄 대변인을 지내는 동안 한나라당 당헌 개정안(당권 - 대권 분리[24], 집단지도체제 시행)에 투신한 혐의(?)로 이회창 후보와 엄청난 반목을 하기도 했으나 어찌어찌 설득해서 공천을 받아내어 2004년 무엇을(?) 실현시키기도 했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에 찬성을 했었다. 이건 딱히 노무현과 원한이 있는 건 아니고 그냥 당의 방침에 따라간 것이다. 실제로 이후 원희룡, 정병국과 함께 박근혜에게 탄핵 찬성 철회를 주장했으나, 씹혔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당시 초반부터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였고[25] 이명박이 한나라당의 대선 후보로 선출되었다.[26] 이명박정부로 들어와서 2008년 18대 총선 당시엔 이명박대통령의 친형 영일대군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의 총선 출마를 반대하였다. 당시 한나라당내 개혁/소장파를 비롯한 공천자 55명이 이상득의 퇴진을 요구하는 연판장에 서명하자 이상득은 지역구인 포항으로 내려가서 칩거하였는데, 포항까지 내려가서 이상득을 만나 불출마를 종용하기도 했다.[27] 하지만 이상득은 결국 불출마 요구를 거절하였고 남경필은 찍혔다.(...)

2008년 이명박 정부의 광우병 파동 당시, 경찰의 폭력진압 논란에 대해서 비판하고 미국에게 양해를 구하고 재협상할 것을 주장하였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이 실용보다는 '정치와 이념' 잣대에 의해 추진되고 있다고 비판하였다. 한나라당이 재집권하려면 중도를 포용하는 등의 외연확대를 해야 한다며 이명박 정부정책과 한나라당 보수기조를 비판하였다. "이명박 정부는 대기업 성공시대, 고소득층 성공시대가 아닌 국민성공 시대를 위해 감세철회, 물가폭등의 원인인 고환율·저금리 정책 등 상당수 국정기조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남 의원은 이어 "4대강 사업 등 토목관련 SOC사업 위주에서 벗어나 교육과 복지에 예산을 투자해야 한다"며 주장했다.[28] 해당기사.

하지만 이 때문에 찍혔는지 이명박 정부 시절 총리실 산하 공직자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사찰 파문의혹 사건이 터졌을 때, 여당 의원임에도 불구하고 정두언, 정태근 의원과 함께 불법 민간인 사찰의 대상이 되었다는 의혹이 터져나오기도 했다.[29] 이에 대해서 남경필은 “민간인 사찰, 뿌리 깊은 개입이 의심된다”라고 하였고해당기사, 검찰의 수사가 의혹 남기면 국조·특검 불가피하다고 주장하였다.

2011년 7월 한나라당 전당대회에 출마하여 최고위원이 되었다. 당시 당대표 홍준표, 최고위원은 유승민, 남경필, 원희룡, 나경원, 홍문표, 김장수였다. 유승민과 함께 추가감세 철회를 이끌어냈고,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 패배와 선관위의 디도스 공격 논란이 일자, 유승민이 최고위 총사퇴를 주장하면서 사퇴를 결의하자 여기에 본인의 과거 사찰의혹에 대한 한까지 담아 가세했다. 결국 홍준표 당대표체제가 붕괴되고 이후 박근혜 전 대표를 중심으로 비상대책위원회가 구성된다.

위에 서술했다시피, 남경필은 한때 범친이계에 속하기도 했으나, 이후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식을 날세워 비판하면서, 친이계에서 벗어났고, 이후에는 계파 자체를 거부하는 무계파 정치인으로 변하게 된다.

19대 국회에서 폭력국회를 종식한 국회선진화법 발의를 주도했다. 국회선진화법에 대해서 비판이 일자, 대화와 토론, 타협과 양보의 국회를 만들기 위해 여야가 모든 것을 내려놓고 만들어낸 것이 선진화법이라고 설명하며 국회선진화법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선진화법을 악용해 여당의 발목을 잡고 투쟁 도구화하는 것은 그 당시 정치철학을 이해하지 못한 야당 지도부의 정치철학의 부재라고 비판하면서도 여당 역시도 야당을 설득하고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2012년 5월 새누리당 원내대표 선거에 출마했다. 김기현 의원이 정책위의장 후보 러닝메이트였다. 이한구 의원(원내대표)과 진영 의원(정책위의장)조, 이주영 의원(원내대표)와 유일호 의원(정책위의장)조가 출마했다. 1차 투표에서는 남경필-김기현 의원 조가 58표, 이한구-진영 의원 조가 57표를 각각 얻어 1, 2위로 결선에 진출했으나, 결선 투표에서 이한구-진영 조가 전체 138표 가운데 72표를 얻어, 66표를 얻은 남경필-김기현 의원 조를 꺾고 1차 투표의 결과를 뒤집었다. 해당기사.

2.2. 새누리당 소속 경기도지사 시절[편집]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경기도지사로 당선되어 4년간 재임하였다.

당초에는 김문수 당시 경기지사의 3선 출마를 주장하였고 "짜장면 중에서 삼선짜장이 제일 맛이 있듯이 도지사는 삼선 도지사가 가장 최고다"라는 개그를 시전하기도 했으나, 결국 김문수가 불출마 입장을 굳히고 당내에서도 남경필의 출마를 종용하면서 경기지사 출마를 선언하고, 경선에서 정병국, 원유철, 김영선과 맞붙어 승리함으로써 새누리당 경기지사 후보가 된다.

남경필 후보는 여당 내에서 상대적으로 개혁 성향이고, 새정치민주연합 김진표 후보는 야당 내에서 상대적으로 보수 성향의 정치인이었던지라, 이념의 차이가 거의 크지 않은 두 수원의 왕자가 맞붙은 선거라는 평가였다[30]. 심지어 SBS 선거방송에서는 보수성향이 아니라 진보성향으로 표시되기도 했다.

남경필은 네거티브 선거를 펼치지 않고 정책선거를 하겠다고 선언하였고, 끝까지 네거티브를 하지 않았다. 네거티브로 당선이 된다한들 서로에게 깊은 상처를 주게 되어서 통합이 되지 않아서 도정을 제대로 이끌 수 없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당시 지방선거 곳곳에서 네거티브전이 펼쳐졌음에도 불구하고[31] 경기도지사 선거만 거의 유일하게 버스 준공영제, 교통문제, 주거문제 등과 관련한 정책대결이 주목을 받았을 정도였다.

당시 세월호 참사로 여론이 악화된 와중에 결국 4만3천여표, 득표율로는 불과 0.8%pt의 근소한 차이로 김진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통합진보당 후보가 사퇴하면서 무효표가 14만표나 발생하였기에, 남경필 입장에서는 참으로 아슬아슬한 승부였다는 평.

경기도지사 당선 후 야권 출신의 이기우열린우리당 국회의원을 경기도 사회통합부지사로 내정하여 도내 연정을 실시했다.[32] 경기도정을 이끌면서 야권과 협력하는 협치모델을 구현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5년 한국사 국정화 교과서에도 반대 의사를 밝혔다.

2016년 4월 도내 프로젝트 중 하나인 G-MOOC(경기도-온라인 대중 공개강좌)의 추진단장으로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을 영입했다.[33] 카카오의 김범수 의장과 이영조 경희대 교수도 같은 시기에 영입했다.

2016년 10월 터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 청와대의 정상적 업무가 불가능하므로 우선은 당이 나서서 사태를 해결해야 하며, 그것은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대표직을 사퇴하는 것이 시작이라고 주장했다.# 한마디로 친박계와 제대로 각을 진 것.

2016년 11월 9명의 친박의원 모임, 이른바 친박 9인회[34]에 대해 폭로했다.

2016년 11월 15일 비박계의 임시 지도부인 비상시국위 12인 공동대표 중에 한 명으로 선출되었다. 그리고 비상시국위 출범으로 분노한 이정현 대표로부터 지지율 합쳐 10%도 안 되는 대선주자들이 당에 먹칠한다는 막말을 들었다.

남경필은 이에 발끈하면서 이정현, 박근혜교 사이비 신도 같다라고 맞받아쳤다. 그리고 이정현 대표가 사퇴 안 하면 탈당하겠다고 밝혔다.#

2.2.1. 연정 시도[편집]

2014년 경기도지사 취임 이후, 경기도정을 여야가 함께 참여하는 연립정부로 이끌면서 무난한 행정능력을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연정을 아예 '자기브랜드화'하려는 것 같다는 평도 있다.

6.4 지방선거 결과 새정치민주연합 도의원들이 경기도의회에서 과반 의석을 차지하면서 경기도의회가 여소야대 상태이기 때문에 원활한 도정 운영을 위해서는 새정연 측과 협력을 해야하는 입장이기도 하다. 도내 국회의원들도 야당 의원이 과반수기도 하다. 다만 소장파로서의 의정 경력, 국회선진화법 발의, 도지사공약, 고려대 특강에서의 발언 등을 보면 단순한 유불리 때문에 한다기보단 본인의 평소 소신과도 연결되는 부분이 있음을 추론할 수 있다.

연정은 크게 야당 출신 부지사와의 연정, 도의회와의 연정, 진보교육감과의 연정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로, 2014년 사회통합부지사직을 신설해 야당이 추천한 이기우[35]를 사회통합부지사로 임명해 사회, 보건, 복지 분야의 인사권 등 몇몇 권한을 부여했다.

도의회와는 2015년 1월 도의회와 집행부, 민간전문가가 참여하는 '경기도 연정 실행위원회'가 공식 출범하면서 예산 배분과 운용을 설정하는 재정전략회의가 신설돼 집행부와 도의회가 '함께 짜는 예산 연정'의 기틀이 마련됐다. 생활임금을 광역자치단체에서 처음 도입했으며 2015년 5~7월 전국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메르스 사태 당시에도 초당적 협력, 중앙정부 및 타 지방과의 공조를 원활하게 이끌어 안희정 충남지사 등과 더불어 행정력, 위기관리 능력을 발휘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교육감과의 연정을 통해서는 무상급식 관련 비용도 마찰없이 통과시키고, 상당히 왼쪽에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이재정 경기교육감과의 연정에 합의했다. 무상교복 정책을 추진하며, 보수 진영에서 무상급식을 비판할 때 거론되던 학교 화장실 등 시설물 문제도 합의하는 등 전임 김문수 도정 때와 달리 교육감과의 마찰도 줄었다.

야당이 주장하는 무상급식 등의 정책과 여당의 본래 공약을 함께 이루는데 많은 비용이 들 수 있으며, 연정이 법률에 의거한 것이 아니라는 한계가 있지만 한국 정치계에서 주목할 만한 실험으로 평가받고 있다. 2014년 12월 고려대학교 초청 강연에서 남경필 도지사 본인이 밝히길, '우리나라는 다른 선진국과 다르게 한쪽이 권력을 잡으면 다른쪽 상대방이 짓밟히는 꼴을 봐왔다. 연정을 통해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여 우리나라의 정치를 한 단계 개선시켜나가야 하지 않나'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

하지만, 2016년 들어서 누리과정 예산 문제로 연정이 한차례 무너졌고, 특히 성남시 이재명 시장이 자체 예산으로 시행하려는 3대 복지사업에 제한을 걸면서 연정이 삐걱하는 모습도 보여 귀추가 주목된다. 남 지사는 연정 Ver 2.를 제안해서 다시 연정을 꾸릴 예정이라고 한다. 2016년 상반기 내로 재협상을 완료하겠다고. 실제로 2016년 5월 경기도청경기도의회가 다시 화해에 성공하여 누리과정 예산을 확보하는 대신(2차 추경에 반영) 더불어민주당 측에 좀 더 권한을 양보하였다.

2.3. 새누리당 탈당, 바른정당 창당[편집]

2016년 11월 22일 "진정한 보수 중심을 세워 먼저 헌정 질서 복원 로드맵을 만드는 데 앞장서고, 헌법을 유린한 대통령과 그 일파가 헌법과 법률에 따라 의법조치 되도록 앞장서겠다"고 밝히면서 김용태와 함께 새누리당 탈당의 스타트를 끊었다#.

뒤이어 새누리당을 탈당한 비박계 정치인들과 함께 바른정당을 창당하였다. 2017년 1월 25일 대선 출마를 선언하고#, 바른정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유승민과 경쟁하였으나 탈락했다.

2017년 7월 31일 채인석 화성시장과 함께 동탄신도시 사랑으로 부영아파트 부실공사에 대한 대책을 발표하였다. 이 아파트가 얼마나 문제가 많은지에 대해서는 이 항목으로. 어영부영 지은 부영아파트

바른정당 내 통합파와 자강파의 입장을 절충해 자유한국당의 서청원 등 친박 중진을 쳐내고 나서 신당 창당의 형식으로 자유한국당과 합당하자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당대당 통합을 하기 위해서는 통합전대가 필수적인데 이를 위해서는 양측 지도부 모두가 사퇴해야 하기 때문에, 실현가능성이 낮은 제안이다. 언론과 네티즌들은 자유한국당에 복당하기 위해 이러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선도탈당한 사람이 다시 자유한국당에 투항하는 꼴이라 기회주의자라고 비판받고 있다.

남경필 본인은 합당이나 신당 창당이 아닌 이상, 절대로 당을 탈당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

2.4. 바른정당 탈당, 자유한국당 복당[편집]

지금까지 쌓아온 개혁보수 이미지를 적잖게 날려버린 사건

2018년 1월 9일,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의 합당에는 뜻이 달라 같이할 수 없다는 입장을 표명하고 탈당계를 제출하였다. 페이스북에 “동탁을 토벌할 수 있다면 기꺼이 조조가 되겠다” 며 자유한국당 복당을 시사한 데 이어, 동탁은 대체 누구? 2018년 1월 15일 공식 복당 선언을 하면서 약 1년 만에 자유한국당으로 복귀하게 되었다.

이재명은 남경필이 조조가 아니라 여포라고 비난했으며#동탁을 직접 목 벤 인물은 여포니까 맞네, 바른정당 하태경은 "'조조'는 새 조(鳥)를 두 번 쓴 것이다. 철새가 두 번 이동했다는 뜻"이라고 비웃었다.#

'철새'라는 비판에 대해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들도 숱하게 당적을 옮겼다. 내가 철새면 노무현-김대중도 철새라고 해야 하나'라고 반론하였다. 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에서는 '막말대열에 합류한 남경필 지사, 자유한국당 복당 신고식이라도 하는가?'라는 논평을 냈고 이재명 시장은 페이스북에서 '어찌 두분과 자신을 비교할 수 있는가? 함부로 모욕하지 마라'라고 강하게 비판하였다.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당내 경선 없이 자유한국당의 경기도지사 후보로 단수공천되어 출마하였으나, 상대 후보인 이재명에게 여러 잡음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35.5%의 득표율에 그치면서 낙선했다. 무소속으로 출마한 원희룡 제주지사가 연임에 성공한 것과 대비되면서, 복당이 악수가 되어버렸다는 평가가 많다.

비록 낙선했다고는 해도 남경필은 당내 계파 싸움에서 자유롭고 자유한국당 내에서는 그나마 개방적인 마인드를 갖고 있는 정치인으로 평가받고 있는 만큼[36] 향후로도 일정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3. 성향[편집]

보수정당 내에서도 매우 리버럴한 관점을 가지고 있는 정치인으로 꼽힌다. 극우 세력에게는 진보좌파...심하면 좌빨(...)이라고 불리며 비슷한 성향의 유승민 의원과 자주 비교되곤 한다. 아니, 유승민보다 더 진보적인 면도 있다. 유승민의 경우 안보에 대해서는 확실히 보수 성향을 갖고 있는 반면, 그의 경우에는 보다 중도주의적인 경우가 많다. 유승민은 모병제에 대해서는 가난한 사람만 군대에 가게 될 것이라고 반대하는 데 비해 남경필은 모병제를 시행해야 한다는 입장이다.[37]

원희룡 제주특별자치도 도지사, 정병국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같이 2천년대에는 남원정이라고 불리며 새누리당내의 소장파 역할을 했었다. 5선 국회의원, 경기도지사를 지낸 거물급 정치인이지만 계파색이 없다는 점이 특기할 만하다. 친이, 친박 어느 계보에도 확실히 속하지 않고 비교적 중립을 지켜왔다.[38]

2017년 중반 <판도라>에서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투명성만 보장한다면, 자주 할수록 좋다고 생각한다."고 밝히기도 했으며, 19대 대선 바른정당 내 경선에서 개성공단의 즉시 재개를 내걸었으니, 사실상 햇볕정책을 지지하는 셈.[39] 이 때문에 극우진영에서는 좌빨이다, 종북이다 등의 막말도 듣기도 했을 정도. 후술할 아들의 군대폭행 논란도 남경필 본인이 박근혜에게 밉보였기 때문에 원래는 그냥 묻혀갈 일이 까발려진 것이 아니냐는 음모론도 있다.

다만 사드 배치에는 찬성하며[40] 대한민국이 언젠가는 핵무장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보수적인 면도 있다.

본인이 경기도지사로 재임하면서 연립정부를 직접 조직했던 것이라든가, 바른정당의 "청년 정치 학교" 개소식 당시 "국민들이 먹고 사는 데에 진보와 보수가 어디 있느냐, 실용의 길을 가야 한다."고 밝힌 바를 보면, 그의 평소 신념이라 봐도 무방할 정도.

4. 남경필계[편집]

해당 문서로.

5. 사건 사고/논란[편집]

6. 트리비아[편집]

  • 경기도지사 당선 직후 부인과 이혼했다. 즉 돌싱남. 이에 대해 정치인 커리어로서는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는 반면, 21세기에 이혼은 개인 사생활의 문제로 큰 흠결이 아니라는 반론도 있다.[41] 이에 대해 남경필 본인은 MB정권 시절 불법사찰 때문에 부인의 스트레스가 컸다며, 의원까진 용인해도 도지사는 안 된다고 했다는 등 이혼에 정치적 이유가 상당히 크게 고려되었음을 회고하기도 했다. 즉, 경기도지사에 당선되면서 각자의 인생을 살기로 하고 이혼한 셈이라는 것. 이혼이야 뭐 개인의 선택이니 장남 관련 문제에 비해선 논란이 훨씬 덜한 편이다. 그리고 2018년 8월 10일 재혼했다. 교회에서 만난 4살 연하의 여성이며, 직계가족만 참석하에 조용히 식을 올렸다고 한다.[42]# 또한 남경필의 전처와 새 아내의 전남편이 진심어린 축하를 보내주었다고 한다. 아무튼 지방선거에서 이혼 사실은 이슈조차 되지 못했고 유권자들도 사실상 관심조차 두지 않은 걸 보면 정치인 커리어에 이혼은 개인 사생활 영역일 뿐이란 주장이 결과적으로 맞았다고 할 수 있다.

  • 출구조사를 두 번이나 뒤집었다. 첫 번째는 1998년 국회의원 재보궐, 두 번째는 2014년 경기도지사 선거.

  • 자수성가한 정치인이 아닌 소위 말하는 금수저 정치인이다. 이에 대해 본인도 자신이 금수저 정치인이 맞음을 인정하면서도 금수저를 갖고 혼자 파먹는 게 아니라 소위 ‘흙수저’, 어려운 분들을 위해 정치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처럼 나도 노력하겠다고 답변하였다.

  • 민주당과 가장 연정을 잘 하던 정치인 중 한 명이다. 민주당 지지자들도 이 건에는 대부분 동의하는 편이다. 실제로 남경필은 보수 내에서도 개혁을 주장해온 소장파로서의 행보를 줄곧 해왔다. 그 밖에도 경남도지사 시절의 홍준표나[43] 서울특별시장 시절의 오세훈과는 달리[44] 도지사 시절 야당 의원들과 마찰을 자제하기로도 유명했다. 홍준표가 유독 더 그렇긴 했다 고문 후유증으로 고통받는 민주화운동 유공자들에 대한 무료 진료만 하더라도 남경필이 전폭적으로 야당의 의견을 수용한 사례이며 야당 의원들도 남경필 도지사에게 감사를 표했다. 이 것도 모자라, 7대 지방선거를 앞두고, 남경필의 선거공보물의 퀄리티를 보고 한심했는지, 한 민주당 지지자가 남경필의 선거공보물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 안희정, 정병국, 우상호 등과 함께 미남 정치인 중 한 명으로 꼽힐 정도로 외모가 나쁘지 않은 편이다. 그런데 본인은 자신의 외모에 대해 정치인으로선 안 어울릴 수 있는 동안상이라며 불만을 표출하기도 했다. 빠른이긴 하지만 1965년생이니 한국나이로 53세. 또래 정치인으로 황영철, 지상욱, 노안 정치인의 대명사 정청래(...), 만악의 근원 김진태(...), 그리고 민주당계 정치인 중에는 동갑내기인 전 충남지사 안희정이 있으며, 이재명 경기도지사보다 생일이 1달 느리다.[45] 아니 이건 이재명이 너무 노안인 거 아닌가 특히 하태경 의원은 그보다 3살 젊다(...). 대신 키가 작으니 위안을 삼자 아니 그럼 이분은...[46] 원로 정치인이었던 유인태가 농담삼아 안철수와 남경필에 대해 어린 사람이 정치하는 것 같다고 했는데, 남경필의 경우는 너무 어려 보여서(...) 그렇게 봤다고 정두언이 밝힌 바 있다. 다만, 안철수는 다소 눌변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준 것 때문에 그리 봤다고 한다.

  • 정계입문 초창기에는 안경을 썼으나, 2000년대 중반으로 들어서면서 안경을 벗고 다니고 있다. 이건 원희룡도 마찬가지.

  • 2016년 9월 2일 CBS와의 인터뷰에서 국군 모병제를 통한 군 병력 30만 규모 감축과 사병 월급 200만 원 등 작고 강한 군대를 만들자고 주장했다. 또한 대선 경선에 출마한다면 공약으로 삼겠다고 말했다.# 9월 7일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이 자신의 모병제 주장을 비판하자 공개토론을 제안하였다.# 북한 5차 핵실험 때도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을 막기 위해서는 강한 군대를 만들 수 있는 모병제가 답이라고 자신의 SNS에 말했다. 그리고 안보불안에 대한 해법으로 동시에 핵무장을 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사교육마약이라고 규정하고 사교육 철폐안을 국민투표에 부치자고 제안한 적이 있다.#

  • 가장 본받고 싶은 정치인으로 미국의 32대 대통령 프랭클린 D. 루스벨트를 꼽은 바가 있다. 상기한대로, 혼자 파먹지 않고, 금수저로서, 노블레스 오블리제를 실천하겠다나.

  • 유시민과 몇 번 토론한 적이 있었는데, 상대가 상대인지라 밀리긴 했지만 일방적으로 얻어맞은(...) 김문수, 나경원과는 달리 자기 소신에 대해 제대로 주장하면서 토론했다. 대체적으로 유시민에 약간 밀리기는 했지만, 나름대로 자신의 주장을 잘 펴 나갔다는 평이 많은 편.[47] 유시민과 호형호제하면서 시민이 형이라고 부를 정도로[48] 사석에서는 상당히 친한 사이이다.[49] 유시민의 자유분방한 성격과 남경필의 중도실용적이면서 사교적인 성격이 의외로 서로 잘 맞는 듯하다. 거기다가 박형준하고도 상당히 친한 사이이다. 그래서 그런지 남경필이 박형준한테 자기 맏아들놈이 또 사고쳤다고(...) 하소연했다고 한다. 여하튼, 민주당계와 두루두루 친하다고 한다.

  • 소위 모두까기 기질이 강한 진보성향 논객인 진중권이 보수정당계 정치인 중에서 인정하는 몇 안 되는 정치인이다. 실제로 외부자들에서 진중권이 이를 언급했다.[50][51]

  • 원희룡 제주특별자치도지사와 더불어 타당이지만 더불어민주당안희정 충청남도지사와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하고는 상당히 친한 사이이다. 특히 남 지사와 안 지사가 매우 친한 걸로 알려져 있는데, 강적들이나 100분 토론 등 TV에도 같이 나오며, 정책에 있어서도 서로 옹호를 많이 해준다. 특히 연정론이라던가 정책적인 면에서도 비슷한 면이 많으며, 공동 공약(...)도 발표했을 정도. 본격 족보브레이커[52] 실제로 이 네 사람은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권영진 대구광역시장과 더불어 15여 년 전부터 정책 논의를 많이 해 왔다고. 자세한 건 여시재 항목으로.[53] 문제는 4명 중 원희룡 빼고 다 망했다

  •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맞붙었던 김진표와 같은 교회(수원중앙침례교회) 교인이다. 김진표는 장로, 남경필은 집사라고 한다.

  • 한 때 이명박 前 대통령의 측근으로 일컬어지던 정두언, 정태근 前 국회의원이랑 매우 친한 사이이며, 이들과 행보도 자주 엮인다.[54] 김용태 국회의원하고도 매우 친한 사이이다.

  • 선거 이력이 화려하다. 국회의원과 경기도지사라는 큰 직책을 건 선거, 그것도 소속 정당의 텃밭이 아니라 격전지인 수도권에서 6연승[55]이라는 놀라운 기록을 자랑했으나,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참패함으로써 연승 기록은 끝.

  • 남경필 경기지사가 경기도 역점 사업인 '청년통장'을 '사행성 포퓰리즘'이라고 언급한 이재명 성남시장을 강력 질타했다.# 이재명 시장이 한 라디오방송에 출연하여 경기도가 추진중인 '청년통장' 사업에 대해 "경기도의 '1억 통장'은 도가 5천만 원을 지원해주겠다는 것인데, 그 대상은 도내 300만~400만 명의 청년 중 최대 4천~5천 명밖에 안 된다"고 말했으며 또 "1천 분의 한 두 명 정도 뽑아 5천만 원의 혜택을 주겠다는 것인데, 이것이야말로 사행성 포퓰리즘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남경필은 '사행성'을 언급한 이재명을 정면 반박하며 청년들에게 사과할 것을 요구했다.[56]

  • 경기북부지역을 지속적으로 지원하겠다며 자신의 별명을 '북경필'이라고 했다. # 아재요...

  • # 전해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도시락을 선물받았다. 전해철 의원은 tvN 프로그램 '우리가남이가'에 출연해 백암순대, 죽순밥, 낙지호롱구이, 순대볶음을 만들었고, 이 요리를 남경필 경기도지사에게 전해달라고 했다. 전현무, 박명수, 황교익 등 멤버들은 경기도청 비서실과 연락한 후 남 지사를 직접 찾아가 메뉴를 전달했다. 남경필 지사는 아주 맛있게 먹었다. 전 의원님... 좀 부족합니다

  • 2018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SNS나 문재인 지지 성향의 커뮤니티 등에서 재평가의 움직임이 있었다. 그러니 비록 강성 친문 지지자들이 이재명의 각종 논란 때문에 이재명을 비토하는 상황에서 평소에 보여준 민주당 쪽에도 어느 정도 먹힐 만한 성향이라고 하지만, 남경필이 보여준 탈당-복당 사태, 그리고 장남의 흑역사로 인하여 강성 친문을 제외하곤 여전히 마뜩지 않아도 민주당 후보를 찍겠다는 성향이 우세. 결국 선거 결과 여론조사와 큰 차이 없이 2위로 낙선하였다. 그래도 정당따라 가는 도의회 득표수보다 무려 이재명은 -48만표, 남경필은 +32만표를 기록하며 일각에서 말하는 인터넷에만 있는 소수 극단주의자는 절대 아니고 상당수의 대중들에게 먹혀들어갔음이 증명되었다고 강성친문들은 주장한다만, 실제론 자기들이 보고싶은 것만 본 것에 가깝다.[57] 정당 따라가는 도의회나 광역비례 득표율보다 민주당 후보들이 표를 더 못 받은 경우는 단순히 경기도 만의 문제가 아니다. 오거돈 시장의 개인기가 강력했던 부산이나 송철호의 울산 정도가 아니면 전국적으로 민주당 후보들은 정당 득표율 보다 못 받는 경우가 허다했다. 대표적으로 인천의 박남춘의 경우 본인의 지역구 남동구에서 144979표를, 유정복은 82245표를 받았는데 도의회의 경우 민주당 후보들이 161366표를, 한국당 후보들이 72911표를 받았다. 이를 경기도만의 특수한 현상으로 받아들이면 곤란하다는 이야기. 굳이 비유하자면 후보는 민주당, 비례는 정의당이라던 민주당 지지자들과 같은 마인드가 중도보수~보수 유권층에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7. 저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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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선거 이력[편집]

연도

선거 종류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1998

7월 재보궐선거 (경기 수원 팔달 국회의원)

한나라당

19,112 (44.3%)

당선 (1위)

초선[58]

2000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수원 팔달)

한나라당

51,893 (48.93%)

당선 (1위)

재선

2004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수원 팔달)

한나라당

44,287 (49.01%)

당선 (1위)

3선

2008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수원 팔달)

한나라당

41,025 (64.08%)

당선 (1위)

4선

2012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수원 병)

새누리당

50,011 (50.34%)

당선 (1위)

5선[59]

2014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기도지사)

새누리당

2,524,981 (50.43%)

당선 (1위)

초선[60]

2018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기도지사)

자유한국당

2,122,433 (35.51%)

낙선 (2위)

역대 선거 벽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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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바람

파일:남경필_1.png

1998 상반기 재보궐 (경기 수원시 팔달구)

16대 총선 (경기 수원시 팔달구)

파일:남경필_2.png

파일:남경필_3.png

17대 총선 (경기 수원시 팔달구)

18대 총선 (경기 수원시 팔달구)

파일:남경필_4.png

파일:남경필_5.png

19대 총선 (경기 수원시 병)

6회 지선 (경기도지사)


윗 부분에서도 언급되었듯히 선거 이력이 화려하다. 비록 부친의 후광과 운이 따라주었다고는 해도 33살에 원내에 입성해 총 다섯 번의 국회의원 선거와 한번의 도지사 선거에서 전승을 거두었다. 그것도 수도권에서. 그리고 출구조사를 뒤집은 적만 두 번이다.

수도권에서 자신이 속한 정당의 지지율이 비교적 높은 지역구에서 연이어 5선을 했다는 점에서 선거의 달인으로 통하는 이해찬 전 총리와 공통점이 있다.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하지만 2018년 기준으로 자유한국당 지지율이 매우 낮은 상황때문인지 결국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기도지사 재선에 실패하고 본인도 처음 낙선 경험을 하게 되었다.[61]

[1] 남경필의 아버지로, 임기 중 작고.[A] 2.1 2.2 수원시 팔달구 선거구 제18대 국회의원수원시 병 선거구 제19대 국회의원[4] 의원직 사퇴[5] 개명한 이름으로 개명 이전에는 남기석이라고 한다.[6] 2018년 현재 띠에 대한 명확한 기준은 없으나, 사주상으로만 입춘을 이후로 따진다.[7]용인시 처인구 포곡읍[8] 개그맨 겸 MC 남희석과 본관과 항렬이 같다. 실제 외부자들에 전화연결했을 당시에도 이를 언급했을 정도. 외부자들에 전화연결뿐만 아니라 남경필 본인이 직접 출연해서 서로 인사하기도 했다.[9] 경남여객 사장[10] 동료 원희룡(1991년 결혼), 정병국(1993년 결혼)에 비해 24세경 일찍 결혼한 편이나, 2014년에 결혼 25년차에 이혼을 했다.[11] (주성,주형)이 중 장남이 군에서 사건과 마약사건을 일으켰다[12] 남경필보다 4세 연하의 일반인 여성으로, 2018년 8월 10일 재혼[13] 재혼한 배우자가 전혼(前婚)과정에서 얻은 1남[14] 원희룡 제주지사와 비슷한 키다. 그와 친한 안희정 충남지사와 정병국 초대 바른정당 대표가 175cm.[15] 現 연세대학교 사회복지학과[16] 논문 준비 중 부친이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 귀국, 도중 부친이 사망하자 정치를 결심하며 중퇴했다.[17] 출처: 남경필 공식 페이스북 프로필 종교관.[18] 현재 그는 수원중앙침례교회에 출석중에 있다.[19] 지금은 남동생 남경훈이 경남여객 사장으로 있다.[20] 연세대 재학 시절 신학과 학생이었던 가수 안치환농활을 같이 가면서 친해졌다 한다. 지금까지도 연락하며 스스럼없이 만나고 지낸다고.[21] 이회창 총재가 없었더라면 이 선거 때 공천조차 받지 못했을 거(원래 내정된 다른 한나라당 후보가 있었다.)라고 남경필 경기지사의 저서 '시작된 미래'에서 밝히고 있다.[22] 이 당시에는 재보선에도 출구조사를 했는데, 1998년 재보선 당시 출구조사에서는 박왕식 후보의 6%포인트 차 당선이 예측되었다. 남경필 후보는 이때 벌어진 재보선 당선자 중 출구조사를 뒤집은 유일한 당선자였다.[23] 운이 크게 따라준 선거이기도 했다. 보통 투표는 노년층이 오전, 젊은 층이 오후에 집중되는데 이날 오후 시간대에 폭우가 쏟아졌다.(...) 덕분에 젊은 층의 투표율이 크게 떨어졌고 반대로 부친을 봐서라도 한 표 던져준 노년층의 표심이 크게 작용했고 남경필의 당선으로 이어졌다.[24] 오늘날의 정치에 익숙한 나이적은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일일지라도, 이는 대통령이 당 대표 격인 총재를 겸하며 각종 선거의 공천, 당론, 국회의결 등 각종 당의 업무를 사실상 결정하던 관습을 깨트리고자 하는 것이었다. 3김시대의 과도기적 성격을 탈피하게 된 중요한 일이다.[25] 이 당시 남경필은 강력하게 이명박에 대해 지지선언하기도 했다.[26] 이 때문인지 남경필 본인은 정두언, 정태근과 달리 이명박을 바로 옆에서 보좌하진 않았지만 친이계로 분류하는 경우도 있다.[27] 회고하길 밤이었음에도 사무실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서서 북적북적했다고. 역시 상왕. 본인도 그 줄에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마침 이상득 의원이 왔고 남경필을 보자마자 '어, 남경필이네? 또 불출마 요구하려고 왔어? 일단 들어가지'라고 프리패스로 그와 함께 들어갔다고 한다.[28] 놀라운 점은, 2007년 대선 경선 때, 남경필은 극초창기부터 이명박 지지 선언을 강력하게 한 바 있어, 범친이계에 속했으면서도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해 날선 비판을 한 점이다.[29] 엄밀히 말하면 총리실 산하 공직자 윤리지원관실에서 남경필 의원의 부인에 대한 사찰을 벌였다. 당시 지원관실에서는 2008년 남 의원 부인이 사업상 횡령 혐의로 고소된 사건을 경찰이 무혐의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하자 남의원이 혹시 외압을 행사했는지 뒷조사를 했다는 해명을 했지만, 민간인, 정치인에 대한 불법사찰 아니냐하는 논란을 불러일으켰다.[30] 공교롭게도 두 사람 모두 경기 수원 출신이며(정확히 남경필 출생지는 용인), 수원을 기반으로 하는(남경필은 팔달구, 김진표는 영통구) 정치인이다. 또한, 두 사람 모두 당시 해당 지역 현역의원이었다. 그래서 지선 이후 수원 지역구 중 세 곳에서 보궐선거를 하게 되었다.[31] 특히 서울시장, 서울시교육감 선거가 가장 네거티브가 심한 선거라는 인식이 있었다.[32] 반대하던 야당 인사들에겐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연정 시도 얘기를 꺼내며 설득했다고 한다.[33] 본래 윤여준은 한나라당 소속 국회의원이기도 했으며, 2000년대 중반까지는 보수인사였던 인물이다. 16대 총선에서 공천학살을 주도해서 당시 민정계와 상도동계 같은 기성세력을 밀어내고 한나라당의 체질을 젊게 만든 것도 이 사람이다. 이후 안철수 의원을 도와 국민의당 창당에 기여하기도 했으나 건강악화를 이유로 일선에선 물러난 상태. 이후 7개월 만인 2016년 11월 추진단장직에서도 물러났다. 다만 필요하다면 남경필 지사는 계속 도울 생각이라고.[34] 최순실 일가와 문고리 3인방 등이 사라진 상황에서, 서청원, 최경환, 윤상현을 축으로 정갑윤, 원유철, 정우택, 홍문종, 유기준, 조원진이 매일 작전회의를 하여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대책을 전해주었다고 한다. 실제로 조원진은 이 존재를 인정했다(...)[35] 17대 국회의원 출신이다.[36] 남경필은 더불어민주당을 숙적으로 보는 자유한국당의 주된 흐름과는 달리 경기도에서 더불어민주당과 연정을 실시한 점, 진보적인 의제도 기꺼이 받아들이고 있는 보수정당 내 몇 안되는 정치인이라는 점 때문에 보수정당의 정치인 치고는 상대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37] 이 때문에 손흥민의 병역의무 얘기와 관련되어서 더 선에 이름이 나온 적도 있다. #[38] 솔직히 말하자면 왔다갔다한게 더 정확할 것이다. 2007년 대선 당시에는 이명박을 강력지지하면서 범 친이계에 속했다가, 이상득과 마찰이 생겨 이상득에게 공격당하고 나서는 범 친이계에서 벗어났다가, 경기도지사 유세 때에는 마치 박근혜에게 우호적인 발언을 했지만 지금에 이르러서는 친박을 맹비난하면서... 아무튼 특정 계파에 속하지 않았다고는 할 수 있지 않나... 마찬가지로 친이계였으나 비주류로 변신한 케이스로 정두언, 김용태 등이 있다.[39] 이란의 사례를 들어 북핵 문제는 제재와 대화를 투 트랙으로 풀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홍석현 전 중앙일보 회장의 지론과도 일치하는 셈.[40] 다만 박근혜가 배치 과정을 매우 엉망진창으로 한 것에 대해서는 비판을 했으며, 이 역시 배치를 하기 전에 "미국이 직접 중국에게 설명하도록" 했어야 했다는 견해를 피력하기도 했다. 물론 현재 도널드 트럼프가 된 이후로는 이것도 어렵게 되었지만(...).[41] 실제로 외국에서도 이혼 경험이 있는 정치인들이 대통령이 된 사례들은 꽤 있다. 당장 한 때 같은 당에 있었던 지상욱 의원도 이혼 후 재혼했다.[42] 신부도 아들 한 명이 있으며, 재혼이다.[43] 툭하면, 도의회와 마찰을 일으켰고, 과거에는 경상남도 소속이였어도, 지금은 독립해서, 경상남도와는 전혀 상관없는 울산의 현대중공업 노조를 상대로 귀족노조라 비하하며 어그로를 끌었다. 그래서, 울산시의원들과의 사이도 안 좋아져서, 거의 반목에 가까운 수준이다. 왜냐면, 울산시는 공업으로 인해 성장했고, 그 중신에는 현대중공업이 있기 때문이다. 당장, 울산시에서 현대중공업 근무자들이 빠지면, 울산은 망한다.[44] 당장 시위를 막겠다고, 경찰산성을 쌓던 게 시의회 의견을 무시한 거다. 롯데월드타워를 지을 땐, 공군과 맞서기도 했으니...[45] 이 지사가 1964년 12월생, 남 전 지사는 1965년 1월생이다. 사실상 남경필 지사가 빠른 생일이므로 동갑내기나 마찬가지.[46] 안희정은 175cm로 당대 나이의 인물들 치고는 키가 어느 정도 큰 편. 문재인 대통령이 173cm. 원희룡 지사도 남경필 전 지사와 키가 비슷하다. 대략 167cm 정도(...).[47] 특히 나경원의 경우에는 두고두고 조롱거리가 되었다. 이동관은 유시민에게 약간 밀리기는 했으나, 어느 정도 대등하게 토론을 이끌어가긴 했다.[48] 다만, 노무현 정부 시절 처음 알게 됐을 때는 남경필과 유시민이 고소와 맞고소를 시전할 정도로 사이가 험악했으나, 이후에는 화해하고 오히려 서로 친밀하게 지내는 편이다.이래서 남자들은 싸우면서 친해진다고 하는 건가[49] 참여정부 후반~이명박정부 초반에는 남경필과 유시민이 서로 농담하는 장면이 목격돼기도 했다. 유투브에 동영상도 있는데 유시민이 남경필을 만나자마자 "어서 오시오~ 한잔 했어?" 이런 투로 말을 걸자 남경필이 유시민을 웃으면서 툭 치기도 했다[50] 다만 최근 방영한 외부자들 73화(5월 22일 방송분)에서 실시한 전화연결에서 남경필 경기지사 후보가 이재명 후보에 대한 평가로 정책대결보다 네거티브를 펼쳤다며 실망(..)했다고 화를 내며 쏘아붙인 일이 있었다.[51] 최근 다시 떠오른 형수 욕설 논란을 들며 이런 후보를 공천한 게 의심스러우며 후보를 사퇴해야 한다고 발언하였다.[52] 호적상으로는 원희룡(64년 2월)-남경필(65년 1월)-이광재(65년 2월)-안희정(65년 5월) 순인데, 실제로는 원희룡-안희정(64년 12월생)-남경필-이광재 순이다(...). 다만 남경필이나 이광재 둘 다 빠른 생일이기 때문에 딱히 상관은 없을지도.빠른 생일과 호적이 꼬이는 순간[53] 이광재 전 강원지사가 이 싱크탱크 부원장으로 있다.[54] 사실, 남경필도 초창기에는 이명박 前 대통령의 최측근은 아니지만, 측근으로 분류돼기도 했고, 이명박을 적극적으로 지지한다는 연설을 하기도 했다.[55] 사실 남경필의 전 국회의원 지역구인 수원 병은 보수세가 강한 편이라 격전지라기보다는 오히려 텃밭에 가깝다. 20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승리하긴 했지만 이건 김용남의 뻘짓그런다고 공천 못 받아요!과 김용남과 남경필의 관계가 소원해져 남경필 측에서 지원을 하지 않은 점이 크다. 19대 대선에서도 문재인이 승리했지만 대선 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생각하면 뭐... 그러나 이제는 보수세가 강한 편이라고 보기 어려운 것이 수원 병도 영통신도시 개발에 영향을 받아 재개발이 이루어지고 있어 민주당세가 강해지고 있다.[56] 그런데 이 논쟁이 어쨌든 정책 공방인 데다가 장남의 마약 문제에서 화제를 전환하는 효과도 있어서 남경필에겐 득이 된다는 분석이 있다. 이재명 역시 당내 경선에서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어 서로 윈윈이라고. #[57] 강성으로 흐를수록 확증편향도는 심해진다. 이건 정치 성향과 무관한, 인간 본성의 문제.[58] 전임자 남평우(부친) 작고[59] 2014.5.15 사퇴 (경기도지사 출마)[60] 2016.11.22 탈당, 바른정당 입당, 2018.1.9 바른정당 탈당, 2018.1.15 자유한국당 복당[61] 같은당의 서병수 부산시장과 김태호 전 경남지사 그리고 김기현 울산시장도 역시 2018년 패배하기 전까지는 선거 때마다 전승을 기록했다. 하지만 이번선거로 네 사람 모두 선거 이력상 사상 첫 낙선이 기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