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인 인치 네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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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나인 인치 네일스 (Nine Inch Nails)

국적

미국 파일:미국 국기.png

결성

1988년, 오하이오, 클리블랜드

멤버

트렌트 레즈너, 애티커스 로즈 [2]

활동
시기

1988년 - 현재

장르

인더스트리얼, 인더스트리얼 메탈, 앰비언트

레이블

Nothing Record, The Null Corporation, Columbia, 인터스코프 레코드

관련
링크

파일:페이스북 아이콘.pn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png

홈페이지

http://www.nin.com


1. 소개
1.1. 멤버1.2. 트렌트 레즈너
2. 역사3. 이름의 유래4. 디스코그라피5. 수상 경력6. 트리비아

1. 소개[편집]

나인 인치 네일스는 1988년 미국 오하이오클리블랜드에서 트렌트 레즈너에 의해 결성된 인더스트리얼 록밴드이다.

1970년대 중반, 전통적인 대중 음악의 패턴을 타파하고자 기계의 각종 소음들을 전자 사운드에 결합시켜 생소한 사운드를 만들어낸 스로빙 그리슬(Throbbing Gristle), 카바레 볼테르(Cabaret Voltaire) 등이 창시한 인더스트리얼은 사운드의 거부감때문에 대중화가 되진 못하였다. 80년대 후반, 트렌트 레즈너는 여기에 신스팝의 대중성을 가미시켜 언더그라운드에서만 취급받던 인더스트리얼이라는 장르를 양지로 끌어올려 대중화에 성공시킨 뮤지션이다. 각종 전자 악기들로 여러 음악 장르의 접목을 시도하며, 공연을 위해 NIN과는 다른 전신인 라이브 밴드를 소집한다. 또한, NIN은 공연 도중 악기를 부수는 등 자주 시각적인 퍼포먼스를 펼치기도 한다.

초기 언더그라운드의 팬들에게 많은 환영을 받은 NIN은 1990년대 몇 차례에 걸쳐 음반을 내면서 영향력 있는 뮤지션으로 인기를 얻었으며, 라디오에서도 또한 많은 곡들이 인기를 끌었다. NIN의 음반들 중 2장은 그래미를 수상했으며, 총합 2,000만 장의 판매 기록을 세웠고 그중 미국에선 약 1,050만 장이 팔렸다. 2004년, 롤링 스톤이 발표한 100명의 훌륭한 록 뮤지션 중 94위에 올랐다. 그러나 팬들의 환호와는 반대로, NIN은 레코딩 산업 측의 여러 기업과는 많은 불화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2007년, 트렌트 레즈너는 자체 레코드 레이블을 설립해 활동을 계속하기로 하였다.

기본 포맷은 밴드 체재이지만, 사실상 보컬리스트인 트렌트 레즈너의 원맨 밴드이고 나머지 멤버들은 대부분이 서포트 or 세션 멤버이다. 작곡, 레코딩, 믹싱 대부분을 본인의 힘으로만 작업하는 것이 큰 특징. 드럼을 제외한 거의 모든 포지션을 레즈너가 맡고 있으며, 앨범을 낸 후 공연 활동을 할 때 마다 세션 멤버를 모집하여 쓴다. 좀 과장하자면 한마디로 트렌트 레즈너 = NIИ.[3]

2016년, 프로듀서 애티커스 로스가 나인 인치 네일스의 정식 멤버로 영입되었다.


1.1. 멤버[편집]

파일:Treznor.jpg

이름

마이클 트렌트 레즈너 (Michael Trent Reznor)

출생

1965년 5월 17일 / 미국 펜실베니아주, 뉴캐슬

직업

싱어송라이터, 프로듀서

파트

보컬 / 기타 / 베이스 / 피아노 / 색소폰 / 신디사이저 / 드럼머신

데뷔

1988년 《Purest Feeling》

배우자

마리퀸 맨디그 레즈너 (Mariqueen Maandig Reznor) [4]

자녀

3남 1녀 [5]
Lazarus Echo Reznor
Balthazar Venn Reznor
Nova Lux Reznor

SNS

파일:트위터 아이콘.pn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png

이름

애티커스 매튜 쿠퍼 로스 (Atticus Matthew Cowper Ross)

출생

1968년 1월 16일 / 영국 런던, 레드브록 그로브

직업

작곡가, 프로듀서, 레코딩 엔지니어

파트

베이스 / 신디사이저 / 드럼머신

영입

(2016년 ~ 현재)


1.2. 트렌트 레즈너[편집]

역대 아카데미 시상식 - 음악상

파일:external/blogs-images.forbes.com/Oscar_icon.png

제82회
(2010년)

제83회
(2011년)

제84회
(2012년)

마이클 지아키노
()

트렌트 레즈너, 애티커스 로스
(소셜 네트워크)

루도빅 바우스
(아티스트)

인더스트리얼 음악의 황제이자, 차가운 인더스트리얼 음악에 인간성을 부여한 혁명가


뉴욕 타임스, 1997년 4월호

그는 제가 아는 사람 중에서 가장 재능있는 친구죠


데이브 그롤, Sound City, 2017



마이클 트렌트 레즈너 (Michael Trent Reznor)는 1965년 5월 17일 펜실베니아 주 뉴 캐슬 (New Castle)에서 낸시 루 (Nancy Lou)와 마이클 레즈너(Michael Reznor)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독일계와 아일랜드계 출신이며 조지 레즈너 (George Reznor)의 후손이다. 레즈너는 펜실베니아 주 머서 (Mercer)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다. 부모님이 이혼을 하면서, 레즈너는 조부모님과 함께 살게 되었고, 여동생인 테라 레즈너[6] (Tera Reznor)는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레즈너는 5살 무렵에 할머니의 권유로 클래식 피아노 교육을 받게 된다. 본인도 이를 좋아했고 음악에 대한 재능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할아버지인 빌 클락 (Bill Clark)은 1995년 인터뷰에서 "레즈너는 어릴 적부터 음악이 일상인 아이였고, 재능을 타고난 아이였다."고 회상했으며, 어린 시절 피아노 선생님이었던 리타 베글린 (Rita Beglin)은 "레즈너가 피아노를 연주할때면, 흡사 Harry Connick, Jr.를 떠올리게 했다"고 언급했을 정도로 음악에 타고난 재능을 보인 아이였다.

한편, 레즈너는 펜실베니아에서의 숨 막힐듯한 삶이 외부 세계로부터 격리되었다는 느낌을 받게 했다고 언급 했었다. 1994년 롤링 스톤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음악 산업에 뛰어든 계기에 대해 말했다.

"시골을 탈출해서 새로운 세계로 나가고 싶던 욕망을 제외하면, 솔직히 왜 이 일을 하고 싶었던 건지 모르겠다. 내 고향이 그렇게 나쁜 곳은 아니었지만, 그냥 옥수수 밭 뿐이었다. 내 인생 경험은 영화 감상, TV 시청, 독서, 잡지를 보는 것에서 시작됐다. 그리고 매일 TV를 보는 것으로 문화를 접하게 되면, TV에서 나오는 각종 멋진 장소, 흥미로운 곳, 멋있는 직업과 커리어를 가진 사람들의 이미지에 휩싸이게 된다. 그 어느 것도 내가 있었던 곳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었다." [7]


레즈너는 Mercer Area Junior / Senior High School에서 테너 색소폰과 튜바를 배웠다. 그리고 재즈와 마칭 밴드의 멤버였다. 이 시기에 로컬 밴드 Option 30에 가입하여 일주일에 세 번 공연을 하곤 했다. 머서 고등학교의 전 밴드 감독인 Hendley Hoge는 레즈너를 매우 긍정적이고 사교적인 아이로 기억했다.

또한 레즈너는 고등학교 시절 연극에 참여하여 직접 연기를 하기도 했다. 그는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에서 유다 역할을 연기했으며, 급우들로부터 "Best in Drama"라는 투표를 받기도 했다. 사실 음악을 하기 전에 배우를 할까하는 생각도 했었다고... 1983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하여 인근의 Allegheny College에서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게 된다.

1년 후, 레즈너는 대학교를 중퇴하고 오하이오 주 클리블랜드로 이동해 음악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클리블랜드에서의 첫번째 밴드는 커버 밴드 Urge였다. 1985년, The Innocent라는 밴드의 키보디스트로 합류를 하고 Livin' In the Street 이라는 앨범을 발표했지만, 3개월 후에 밴드를 탈퇴했다. 1986년 로컬 밴드 Exotic Birds에 들어갔고 영화 Light of Days (1987)에서 The Problems라는 가상의 밴드로 출연했었다. 또한 이 시기에 신스팝 밴드 Slam Bamboo의 키보디스트로 활동하기도 했다.

이후 레즈너는 Cleveland의 라이트 트랙 스튜디오 (Right Track Studio)에서 보조 엔지니어 및 잡역부로 일했다. 스튜디오 주인 바트 코스터 (Bart Koster)는 레즈너에 대해 "그는 자기가 하고 있는 모든 일에 열중했어요. 바닥에 왁스칠 한 번 하는 것도 끝내주게 했었죠"라고 회상했다. 화장실 변기에 붙어있는 음모를 하나하나 떼 내는 등의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으며 신임을 쌓아간 레즈너는 코스터에게 스튜디오를 쓰지 않는 시간 동안 자신의 노래 데모를 무료로 녹음 할 수 있겠냐는 요청했고, 코스터는 흔쾌히 승낙했다.

나인 인치 네일스의 첫 데모를 녹음하는 동안, 레즈너는 자신이 원하는만큼 자신이 작곡한 노래를 분명하게 표현할 수 있는 밴드원을 찾을 수 없었다. 방법을 궁리 하던 레즈너는 프린스에게 영감을 받아 드럼을 제외한 모든 악기를 직접 연주하기로 결심했다. [8] 이렇게 완성된 데모를 레즈너는 여러 레이블에 돌렸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레이블 중 TVT 레코드와 계약하게 된다. 데모 곡 중 9곡은 비공식적으로 1988년 《Purest Feeling》라는 제목으로 발매되었으며, 이들 곡은 Nine Inch Nails라는 이름으로 발매된 최초의 공식 릴리즈인 《Pretty Hate Machine》에 많은 부분이 수정된 형태로 재수록된다. 당시 레즈너가 스튜디오에 틀어박혀서 1집을 작업하다가 오랜만에 밖으로 나갔는데 이웃 주민이 수염이 덥수룩한 레즈너를 보고 수배 중이던 범죄자로 착각하고 경찰에 신고했다는 일화가 있다.

2. 역사[편집]

나인 인치 네일스는 첫번째 앨범인 《Pretty Hate Machine》으로 화려하게 데뷔를 하였으며, 인더스트리얼의 대부[9]라는 별명을 얻고 미국 록계의 주목을 받는다. 다만, 초창기 시절이이서 그런지 인더스트리얼이라기보다는 디페시 모드 풍의 신스팝에 가깝다는 평이 대부분이지만, 대부분의 평론가들과 음악지들은 이 음반에 높은 평가를 내리고 있다.

문제는 이 주목이라는게 상업적 주목이었다는것. 음반사 사장은 자기 마음대로 활동하고 싶은 레즈너를 노예처럼 부려먹었고, 건스 앤 로지스의 오프닝 액트에 집어넣는[10] 등의 만행을 저질렀다. 아이러니 하게도 건즈 앤 로지스의 Chinese Democracy를 들어보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결국 환장한 레즈너는 소송을 제기하고, 길고 지겨운 싸움끝에 인터스코프 사가 그를 업어간다. 이때 나온 명작이 Broken 앨범인데, 이 앨범의 NIN 이니셜이 소문자로 되어있는 것은 레코드 이적이 끝나기 전인 애매한 상황에서 나왔기 때문. 일단 상황은 해결되었으나, 이때의 일과 자신을 길러주신 할머니의 죽음으로 레즈너는 약물과 알코올에 빠지게 된다. 이 음반부터 그는 헤비메탈을 대폭 수용했으며, 굉장히 폭력적이고 분노에 차 있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이 Broken 앨범은 뮤직비디오가 잔인하다고 악명이 높으나, 더 브로큰 무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정신건강을 챙기고 싶다면 보지 않는 것을 추천한다.

이후 정신을 가다듬고 발매한 두번째 앨범인 NIN 최고의 걸작 《The Downward Spiral》을 발매한 후 트렌트 레즈너는 "미국의 록의 구세주"라는 식으로 인기를 얻는다.[11] 매스컴과 언론에서의 띄워주기가 상당하기도 했으나 그만큼의 인기도 대단했던 것도 사실은 사실. 쟁쟁한 게스트 멤버들이 참여했으며 그 중엔 킹 크림슨의 에이드리언 빌류, 머틀리 크루의 토미 리도 있었다[12]. 전작 Broken의 분위기가 일종의 예고편이었다면, 이 음반에서는 그의 커리어에 정점을 찍었다고 할 수 있다. 프로그레시브 록적인 구성과 헤비메탈, 인더스트리얼을 한데 뭉쳐서 굉장히 꽉 짜인 훌륭한 컨셉트 음반을 만들어냈다.

《Broken》에서의 분노, 《The Downward Spiral》에서의 절망은 5년후 발매된 앨범 《The Fragile》에서 끔찍한 우울함과 적막함으로 승화되었다. 앨범 작업 당시 그는 굉장한 중압감과 자신의 위치에 대하여 굉장한 부담감을 안고 있었다한다. 또한 그전까지의 작업 방식은 트렌트 레즈너가 작곡을 한 후에, 게스트 뮤지션들이 연주를 해주는 방식이었는데 이 당시 그는 마릴린 맨슨이 밴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부러워하며 처음으로 밴드 멤버들과의 공동작곡을 고려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앨범 작업 중 "나는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한번에 20가지 정도를 생각해내는데, 다른 멤버들이 그것을 모두 파악할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좀 견디기 힘들다."라는 한마디로 내가 최고니까 너네는 그냥 거들라는 언급을 하면서 다시금, 예전의 작곡방식으로 돌아갔다. 《The Fragile》앨범은 더블 CD라는 방대한 길이와, 본인이 회상하기에도 이런걸 만든게 믿기지 않는 엄청난 퀄리티를 자랑하며 빌보드 1위까지 올라가는데 성공하고, 발매 첫 주만에 228,000장을 팔아치웠다. 음반의 평은 CD1쪽의 평가가 좋은 평이고 CD2의 완성도는 다소, 아쉽다는 평이 많다. 다만, 대중적이지는 않은 앨범의 특성상 이 앨범은 빌보드 1위를 한 지 1주일이 채 되지 않아 10위 밖으로 밀려나갔다.

한편, 그의 정신적 불안은 영감을 제공하는 동시에 그를 파멸로 몰아가고 있었다. 알코올 중독과 약물 남용으로 고통받고 있던 그는 앨범 활동 후, 장기간의 치료와 안정을 거치고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근육을 키워서 《The Fragile》 발매 이후 6년 만에 깔끔한 느낌의 《With Teeth》로 돌아온다. 이 앨범은 레즈너가 컨디션을 되찾았다는데 그 의미가 있는 앨범이며 상업적으로도 빌보드 1위까지 올라가는 데에 성공한다. (이는 나인 인치 네일스 앨범 중 《The Fragile》과 함께 유이한 성적이다.) 그러나, 기존 팬들에게는 대중적이라는 평을 듣고 평점도 전작만하지 못했다.( 평론가들의 평가는 대체로 좋은 편이었다.)

《With Teeth》를 발매한지 2년 후인 2007년, 트렌트 레즈너는 미국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는 컨셉 앨범 《Year Zero》를 발매한다. 이는 앨범 발매 기간이 꽤 길었던 NIИ에게는 꽤 이례적인 일이었다. 앨범의 평가는 꽤 호평이었고, 메타크리틱 평균 점수 76%를 얻었다.

컨셉 앨범 《Year Zero》의 이야기는 2020년의 미국이 배경이다. 2020년은 미국 정부가 미국을 다시 태어난 해로 정의하고 Year 0이라고 선언한 해이다.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에 의해 미국은 무수히 많은 테러를 당해 왔고, 그에 맞서 미국 정부는 국가에 대한 절대적인 통제권을 이행한다. 국가 기업인 Cedocore를 조직하여, 국민들이 사용하는 물에 파레핀이라는 약물을 탄다. 이 약물에 노출된 미국 국민들은 정부에 대해 무관심하고 근심 없게 바뀌게 된다. 이 통제적인 정부에 저항하는 지하 조직이 있는데, 이들은 Art Is Resistance라고 알려져있다. 이 조직의 과학자들은 미국 정부의 권위에 저항하기 위해 미래의 웹사이트를 2007년으로 시간여행시켜 전송하여 2007년의 사람들에게 경고하고 과거를 바꿔 어두운 미래의 싹부터 없애려고 하고 있다.

참고로 이러한 스토리를 배경으로 한 ARPG가 앨범 발매 전에 발매되었고 이 게임의 일부로서 사용된, 아직 발매되지 않은 Year Zero의 노래가 담긴 USB가 NIИ의 콘서트 화장실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2008년 7집 앨범 The Slip을 발표하고 왕성한 활동을 펼치다가 결혼식을 올리고 휴식기간을 가지고 있다. 지금은 아내와 함께 How To Destroy Angels 돌리고 있는 중.

2007년 9월 11일 올림픽홀에서 첫 내한공연을 가졌고 2009 ETP FEST를 통해 두번째로 내한했다. 당시 3 헤드라이너 중 한명으로 나머지 2명은 림프 비즈킷서태지. SBS 방송에도 2곡이 방송되었다.

2013년 2월 공식 페이스북을 통해서 활동재개를 선언했다 구체적인 스케줄은 나와있지 않으나 속속 유명 록페스티벌 라인업에 들어간다는 말이있으니 조만간 다시 만나볼수 있을 듯 하다. 이후 Hesitation Marks를 완성하여 발매하였는데 이제는 완전히 거장의 반열에 올라섰다는 호평이 대다수이다.

2013년 안산 밸리 록 페스티벌헤드라이너로 결정되었다! 하지만 2012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의 라인업이 너무 강력했는지 별다른 호응은 없었다.

2015년 12월 19일 트렌트 레즈너가 twitter를 통해 2016년에 컴백을 한다고 확정지었다.

2016년 7월 1일, 트위터를 통해 밝혔던 [ New NIN coming in 2016. Other stuff, too. ]의 Other stuff 중 하나는 Nasa와 Apple Music이 협업한 Visions of Harmony 프로젝트 영상의 사운드 트랙이었다. 음악만 듣고 싶다면 여기에서 들어 볼 수 있다.

2016년 9월 10일, 개인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제작한 기후 변화 다큐멘터리 Before The Flood의 사운드트랙 작업에 관해 알렸다. 포스트 록밴드 모과이와 작곡가 구스타프 산타올랄라도 참여했다.

2016년 10월 2일, 영화 패트리어트 데이의 감독 피터 버그가 인스타그램을 통해 트렌트 레즈너와 애티커스 로스의 사운드트랙 작업을 공식 언급했다. 전 사운드트랙을 이 곳에서 들어 볼 수 있다.

2016년 10월 7일, 9월에 알렸던 Before The Flood 사운드트랙을 공개했다. 하지만 THIS IS NOT NEW NINE INCH NAILS라고 못을 박았다...
감상은 이 곳에서

2018년 6월 1일에 공개된 2018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1차 라인업에 등장했다!

2018년 8월 11일 2018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에 헤드라이너로 공연하였다.

HBO에서 제작되는 왓치맨 TV 시리즈의 음악감독을 맡게 되었다.

3. 이름의 유래[편집]

밴드 이름인 Nine Inch Nails는 어떤 뜻을 내포하고 있기보다는, 축약하기 쉬워서 이렇게 지었다는 설이 있다. 지금은 폐간된 월간 핫뮤직 1998년 3월호에 따르면, 밴드의 이름을 정하기 위해 50개 정도의 이름을 정해두고 각각 종이에 써서 집 여기저기에 붙여두었는데, 2주가 지나도 질리지 않는 유일한 이름이어서 정했다고 한다.

또 다른 추측으로는 예수가 십자가에 박힐때 쓰인 9인치의 대못을 상징한다는 설도 있으며 또는 프레디 크루거의 9인치 손톱을 나타낸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또한, 영어로 축약된 NIN은 현대 히브리어로 야훼의 4자음 문자[13]와 유사하다.

두꺼운 테두리 안의 NIИ으로 표현되는 Nine Inch Nails의 로고는 레즈너와 게리 탈파스에 의해 디자인되었다. 첫번째 로고는 NIИ의 첫번째 싱글인 Down In It에서 선보였으며, 이것은 토킹 헤즈의 앨범인 Remain in Light에서의 타이버 칼먼의 타이포그래피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4. 디스코그라피[편집]

대부분의 음반에는 ''Halo'' 라는 명칭과 고유 번호가 부여되어 있다.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무료로 배포된 프로모션 음반의 경우 ''Seed'' 라는 명칭과 고유 번호가 부여된다.


나인 인치 네일스/음반 목록 항목 참조


Nine Inch Nails의 디스코그라피 요약

<< Halo 1 - Halo 32 >>

Halo 1

Down In It (1989)

Single

Halo 2

Pretty Hate Machine (1989)

Studio Album

Halo 3

Head Like A Hole (1990)

Single

Halo 4

Sin (1990)

Single

Halo 5

Broken[14] (1992)

EP

Halo 6

Fixed (1992)

Remix

Halo 7

March Of The Pigs (1994)

Single

Halo 8

The Downward Spiral (1994)

Studio Album

Halo 9

Closer To God (1994)

Single

Halo 10

Further Down The Spiral (1995)

Remix

Halo 11

The Perfect Drug[15] (1997)

Remix

Halo 12

Closure[16] (1997)

Live Album

Halo 13

The Day The World Went Away (1999)

Single

Halo 14

The Fragile (1999)

Studio Album

Halo 15

We're In This Together (1999)

Single

Halo 16

Things Falling Apart (2000)

Remix

Halo 17-1

And All That Could Have Been: Live (2000)

Live Album

Halo 17-2

And All That Could Have Been: Still[17] (2002)

Bonus CD

Halo 18

The Hand That Feeds (2005)

Single

Halo 19

With Teeth (2005)

Studio Album

Halo 20

Only (2005)

Single

Halo 21

Every Day Is Exactly The Same (2006)

Single

Halo 22

Beside You In Time (2006)

Live Album

Halo 23

Survivalism (2007)

Single

Halo 24

Year Zero (2007)

Studio Album

Halo 25

Y34RZ3R0R3M1X3D (2007)

Remix

Halo 26

Ghosts I-IV[18] (2008)

Studio Album

Halo 27

The Slip (2008)

Studio Album

Halo 2R-V

Pretty Hate Machine (2010 Remaster)

Remastered Album

Halo 28

Hesitation Marks (2013)

Studio Album

Halo 29

Not The Actual Events (2016)

EP

Halo 30

The Fragile: Deviations 1[19] (2017)

Alternate

Halo 31

Add Violence (2017)

EP

Halo 32

Bad Witch (2018)

Studio Album[20]




<< Seed 01- Seed 08 >>

Seed 01

Collected (2005)

Seed 02

The Definitive NIN - The Singles (2006)

Seed 03

The Definitive NIN - Deep Cuts (2006)

Seed 04

The Definitive NIN - Quiet Tracks (2006)

Seed 05

Lights In The Sky (2008)

Seed 06

NIN/JA 2009 - Summer Tour EP (2009)

Seed 07

Live 2013 EP (2013)

Seed 08

Remix 2014 EP (2014)

5. 수상 경력[편집]


대중성과는 거리가 먼 노래임에도 불구하고 그래미 어워드에서 2번의 수상경력이 있다. [21]

Wish - 메탈 최우수작 (1992년)
Happiness in slavery - 메탈 최우수작 (1995년)


둘은 나인 인치 네일스 활동 외로 영화 음악을 담당해, 2011년 데이비드 핀처가 연출한 소셜 네트워크로 83회 아카데미 시상식골든글로브상에서 오리지널 스코어 부문 수상을 하였다.

나를 찾아줘, 밀레니엄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2011)은 골든글로브 오리지널 스코어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었다.

6. 트리비아[편집]

  • 각 앨범 간의 발매 기간이 꽤 긴 아티스트 중 하나다. 1년 간격으로 낸 것도 있으나 거의 4년 간격으로 앨범을 발매하는 수준. 물론 그 사이사이 라이브 앨범과 리믹스 앨범을 발매하여 본인의 실험적 음악세계를 보여준다.

  • 코트니 러브에게 스토킹을 당한 적이 있다. 레즈너는 이를 피하기 위해 모텔방 발코니에서 점프하고, 스튜디오에 게이 포르노 사진을 도배하는 등 엄청난 노력을 해야 했다.

  • 레즈너는 헬스 매니아라고 한다.[22] 유일하게 갖고 있는 취미가 게임과 식스팩 만들기라고. 그리고 근육돼지가 되었다

  • 이드 소프트웨어FPS 게임 퀘이크 1의 음악과 사운드를 맡았다. 1994년 무렵 이드 소프트웨어 게임의 열렬한 팬이었던[23][24] 트렌트 레즈너는 댈러스에서 열린 콘서트에 이드 소프트웨어의 개발진을 초대하였고, 이것이 인연이 되어 당시 이드 소프트웨어가 개발 중이던 퀘이크의 사운드 제작을 맡게 된다.
    트렌트 레즈너는 팝 멜로디를 귀에 쏘아붙이는 기존의 게임 음악 스타일을 좋아하지 않았으며, 퀘이크 사운드트랙은 이에 대한 안티테제로써 멜로디를 담은 음악이라기보다는 게임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소음으로 만들어졌다. 존 카펜터데이비드 린치의 영화에 어울릴 법한 사악하고, 음침하며, 공포스러우면서 우울한 사운드를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트렌트 레즈너가 퀘이크 1에 참여한 영향으로 네일건 탄약상자에는 NIN 로고가 박혀있다. 그리고 얼티밋 둠의 E4M1에는 바닥에 NIN이라 새겨진 함정이 있다.
    트렌트 레즈너는 퀘이크 2의 사운드 제작에도 참여할 기회가 있었으나, 게임의 제작진이 그가 원치 않는 록 사운드를 요구했기 때문에 창작견해차로 고사했다. 대신 존 카멕으로부터 둠 3 제작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는 적극적으로 참여 의사를 밝혔으며 수 년간 작업을 하기도 했지만 최종적으로는 불분명한 이유[25]로 인해 그의 작업물이 폐기되었다. 유출된 E3 2002 알파 버전의 사운드가 바로 레즈너의 작품으로, 완성본에 쓰인 사운드보다 훨씬 낫다는 것이 중론.

  • 2012년에는 콜 오브 듀티: 블랙 옵스 2의 메인 테마를 맡기도 하였다. 레즈너 자신이 콜 오브 듀티 시리즈의 광팬임을 자처하며 자신이 테마를 맡은 것에 대해 기쁜 반응을 보였고, 게임의 발매를 앞둔 현재 메인 테마의 샘플만 공개됐음에도 레즈너의 인더스트리얼 록 성향과 근미래전을 다룬 게임의 분위기가 상당히 어울린다는 호평을 받았다.

  • 국내의 짝퉁 티셔츠 중에서는 NIN로고를 살짝 변용한 NINI(...)라는 길바닥 브랜드도 있다. 일본 유명 브랜드 넘버나인의 카피 제품이다.

  • 데이비드 린치의 로스트 하이웨이와 올리버 스톤의 내츄럴 본 킬러스의 사운드트랙을 프로듀스하기도 했다. 평단과 팬들의 반응은 좋은 편.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사운드트랙은 호평인 반면, 두 영화의 평들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로스트 하이웨이에 수록된 'The Perfect Drug'는 자신이 작곡한 곡들 중에서 제일 적인 코러스가 등장하는 곡이라고 자평한 바 있다. 여담으로 트렌트 레즈너가 이 곡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데다 결말 처리의 문제로 그동안 라이브로 단 한 번도 공연되지 않은 곡이었지만, 결말 문제가 해결되었는지 2018년 9월 18일 북미투어 공연에서 최초로 상연했다.

  • 레즈너는 본인 명의로 2010년에 NIN의 프로듀서인 애티커스 로스와 함께 데이비드 핀처의 《소셜 네트워크》 사운드트랙을 작업했다. 라디오헤드Creep 합창 버전을 사용했던 트레일러와는 정 반대되는, 본인의 직전 앨범 Ghosts I-IV와 비슷한 스타일의 사운드트랙을 만들어 평단의 폭발적인 반응을 얻어냈다. 심지어 LP판으로까지 판매하며 상업적으로도 크게 밀었고, 83회 아카데미 사운드트랙 상도 수상했다.

  • 영화 더 팬에서 길 리나드의 광기를 보여주는 장면에서 나인 인치 네일스의 곡이 자주 나온다.

  • 데이비드 핀처의 《밀레니엄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은 캐런 오가 보컬을 맡은 레드 제플린의 〈이민자의 노래(Immigrant Song)〉 커버에 맞춘 트레일러부터 난리가 났고, 《소셜 네트워크》에서 탄력을 받아, 그리고 팬 및 평단의 압도적인 반응과 연말 시상 성적을 의식했는지, 영화 러닝타임보다 더 긴 3CD 구성으로 음반을 발매했다. 사운드트랙 평도 아주 좋고 영화 평도 덩달아 좋은 것까진 좋았으나, 아카데미 후보에도 올라가지 못했다. 많은 사람들이 화를 냈다. <나를 찾아줘>의 사운드트랙도 맡았다. 가수가 가수이니만큼 일반적인 리듬이 아닌 특유의 느낌을 준다.

  • 이해하기 어렵게도, 뉴에이지풍 크로스오버 음악가 양방언이 NIN을 아주 좋아한다고 한다. 음악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동질감까지 느낀다나. 국내에서는 김사랑이 좋아하는 아티스트이기도 하다.

  • 전 레이블과 갈등이 있어 레이블과의 관계를 끝내기 위해 자신이 파일 공유 사이트에 자신의 음악을 업로드했다. 그래서 계약은 끝냈지만 레즈너는 이후 자신의 사이트에 앨범을 업로드하고 공짜로 받든 돈내고 받든 마음대로 하라고 했다. 그리고 그는 16억원($1.6 Million)의 매출을 올렸다

  • 2009년 ETP FEST 2009 당시 헤드라이너 후보 중 한명이 서로 앙숙으로 유명한 림프 비즈킷이었고, 누가 헤드라이너를 할 지 다툰 결과 락페 주최자인 서태지와 함께 각자 헤드라이너가 되는것으로 합의하였다.

  • 2015년부터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에 번번히 실패하고 있다...

  • 2018년 Bad Witch LP가 공개되었는데 앨범의 길이가 총 30분 초반대로 일반적인 EP 길이랑 비슷해서 논란이 많았다[26]. NIN 팬 커뮤니티인 Echoing The Sound에서 한 팬이 이에 대해 이제 더이상 영감이 떨어진게 아니냐라는 식의 댓글을 달자 트렌트 레즈너 본인[27]이 내 X이나 빨아라 라는 식으로 댓글을 달아서 논란아닌 논란이 일기도 했다. 팬들은 '이래야 우리 트렌트 레즈너 답지'라면서 즐기는(?) 분위기. 레딧 링크.

  • 20세기 미국 최악의 살인마인 찰스 맨슨과 아주 약간의 접점이 있다. 찰스 맨슨이 일으킨 살인 사건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사건이 폴란스키 가 살인 사건으로,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아내인 샤론 데이트를 비롯한 사람들을 살해한 사건이다. 이 사건이 벌어진 저택은 이후 레즈너가 구입해서 제작실로 사용했다. 하지만 터가 영 좋지 않긴 했는지 분위기가 매우 흉흉했고, 결국 레즈너는 건물을 철거했다.

[1] 애티커스 로즈 (좌) & 트렌트 레즈너 (우)[2] With Teeth 앨범부터 프로듀서로 참여하다가 2016년 Not the Actual Events을 기점으로 정식 멤버가 되었다.[3] 실제로 투어 멤버나 스튜디오 멤버의 교체설이 나오면서 팬덤이 흉흉할 때면 누군가가 다시금 일깨워주는 말이 NIИ=Trent Reznor이다[4] 필리핀계 미국인으로, 무려 16살 연하다! 인디밴드 보컬로도 활동했었으며 레즈너와 함께 프로젝트 밴드 How To Destroy Angels의 보컬로 참여했다.[5] 2015년 출생한 아들의 이름이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6] 트렌트 레즈너에게 여동생이 있다는 사실은 어딘가 모르게 낯설지만, 데이빗 보위와 만나게 해주거나 자신의 라이브 공연에 초대하는 등 여동생을 챙기는 것을 보면 나름 오빠 노릇을 톡톡히 하는 듯 하다.[7] 훗날 레즈너는 이 인터뷰가 비참한 어린 시절의 느낌을 주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8] 이후 레즈너는 가끔 다른 뮤지션, 드러머 및 관련 전문가와 함께 작업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밴드 스튜디오 레코딩에서는 이러한 규칙을 고수하였다.[9] 레즈너는 이 말을 가장 싫어한다. 아니 애초에 본인 음악을 인더스트리얼이란 틀에 가두는걸 싫어한다고. 헌데 후발 인더스트리얼 밴드들이 영향받은 밴드를 언급할때 심심하면 나오는게 이(들)이다.[10] 당시 일부 록팬들에겐 이펙트 떡칠 음악은 이단이었다. 아니나다를까 무대에 온갖 투척물이 날아들고, NIN 티셔츠를 입은 사람 한명이 어디 구석에서 뛰어다니다가 휩쓸려 사라졌다고.(...)[11] 이 앨범은 빌보드 차트 2위까지 올라갔는데, 본인은 이 앨범이 그렇게까지 팔리고 흥할줄 몰랐다고. 참고로 1위는 사운드가든의 Superunknown[12] 크리스천인 빌류는 처음 온 날, 연주를 시작하기 전에 주기도문을 외웠다. 레즈너는 "죄송하지만 지금 저희 앨범은 Antichrist Superstar 앨범의 아버지 삘입니다."라고 말했고, 빌류는 "그런가? 알겠네" 라고 대답하곤 아주 강력한 리프를 연주했다. Mr.Self Destruct의 기타리프가 바로 이 리프의 어레인지 버전이다![13] 히브리어에서 하느님을 나타내는 4자, 즉 YHWH, YHVH 등[14] 일반적으로는 EP로 분류되지만, 히든 트랙을 합치면 LP 수준의 길이를 만족하므로 정규 2집으로 취급하는 사람도 있다.[15] 원곡은 영화 로스트 하이웨이 사운드트랙에 수록되어 있다.[16] 지금은 유물이 된 비디오테이프로 만들어진 라이브 앨범이다. 뮤직비디오도 수록되어있다.[17] AATCHB 디럭스 버전의 보너스 CD. 개별 CD로도 발매되었다. 뉴에지 풍의 피아노 연주곡과 어쿠스틱 버전 트랙이 수록되었다.[18] 인터스코프를 떠나고 발표한 첫 독립 발매 앨범이다.[19] The Fragile에 수록된 곡의 인스트루멘탈 버전 트랙과 미발표 곡들이 수록되어 있다.[20] EP로 발매될 예정이었지만 러닝 타임이 30분을 살짝 넘기면서 LP가 되었다. 물론 가격은 EP 가격에 팔고 있다. 포맷이 바뀐데 대해 트렌트 레즈너는 "원래 Not The Actual Events와 Add Violence, Bad Witch EP 3부작을 합쳐 한 장의 LP로 취급하는 것을 목표로 하여 음반 작업을 하였다. 그런데 요즘 EP를 덜 중요하게 여기고, 무시하는 풍조가 짙어졌고, Not The Actual Events와 Add Violence도 그런 취급을 당하는 것을 보고 Bad Witch를 EP가 아닌 Studio Album으로 발표하기로 생각을 고쳐먹었다."라고 말했다. 덕분에 Bad Witch는 NIN의 스튜디오 앨범 중 러닝 타임이 가장 짧은 LP가 되었다. 사실 스튜디오 앨범(LP)과 EP를 나누는 명확한 기준은 없다. 러닝 타임이 애매할 경우 아티스트가 LP라고 부르고 싶으면 LP, EP라고 부르고 싶으면 EP가 된다. 다만 Grammy에서는 30분을 기준으로 이 시간보다 러닝 타임이 짧으면 EP, 길면 LP로 취급하고 있다.[21] 그것도 두 노래 전부다 Broken 수록곡이다![22] 헬스 매니아가 된 계기는 코카인과 알코올 중독 때문이라고 한다.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운동을 시작했다고. The Downward Spiral 시절까지는 슬림한 몸매였으나 The Fragile을 거쳐 With Teeth에 이르러서는 근육질의 몸매를 소유하게 되었다.[23] 트렌트 레즈너는 인생의 가장 즐거웠던 경험 중 하나로 어린 시절 할머니의 저금통에서 동전을 슬쩍해 스페이스 인베이더를 플레이했던 걸 꼽았다. 이후로도 게임에 대한 관심을 유지해왔으나 완전히 빠져든 계기는 울펜슈타인 3D였다고. 음악을 하기 위해 매킨토시를 사용하던 그와 그의 주변 사람들에게 있어 PC는 멸시와 기피의 대상이었으나 울펜슈타인을 보곤 바로 꽂혀 당시 최고 성능의 PC를 구입하였다고 한다.[24] 둠과 퀘이크의 개발비화를 담은 '마스터 오브 둠'에 따르면 트렌트 레즈너는 콘서트를 끝낸 후 술과 마약, 여자를 마다하고 바로 투어 버스로 달려가 둠을 플레이했다고 한다.[25] 레즈너는 With Teeth 완성 전까지는 정신적, 육체적으로 영 좋지 않은 상태였다. 중독증 치료를 위해/완벽한 작업을 할 자신감이 없어 빠졌을 가능성이 높다.[26] 빌보드 닷컴에 나와있는 EP의 정의는 대개 30분대 앨범을 말한다고 한다. Broken EP의 길이도 히든 트랙포함해서 31분 이었다.[27] 정확히는 공식 계정이 아니라 teitan이라는 계정으로 댓글을 달았지만 예전에 음원을 이 아이디로 공개한 적이 있던지라 다들 누군지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