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트메어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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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제작비화3. 영화 시리즈4. TV 시리즈

1. 개요[편집]

프레디 크루거를 마스코트 캐릭터로 하는 미국호러 프랜차이즈. 1984년 웨스 크레이븐이 만든 동명의 호러영화로부터 시작되었다. 《13일의 금요일 시리즈》처럼 영화, TV 시리즈, 소설, 코믹스 등 다양한 분야로 전개되고 있으며 메인 시리즈인 영화는 2010년까지 총 9편이 발표되었다.

정확한 제목은 엘름 가의 악몽(A Nightmare on Elm Street).
사실 미국에선 그냥 호러영화 나이트메어라고 하면 1984년에 나온 동명의 다른 호러영화가 더 먼저 언급된다. 스크림 시리즈의 웨스 크레이븐이 감독과 각본을 맡았다.

파일:attachment/나이트메어 시리즈/nightmareonelmstreet-caratula.jpg
이 영화를 바탕으로 레어에서 NES용 게임을 만들었는데(유통은 LJN) AVGN이 깔 정도이니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2. 제작비화[편집]

이 영화에 대해 자세히 말하자면 감독 이야기를 해야한다. 웨스 크레이븐은 꼴통 개신교도 집안에서 태어나 언제나 금욕적으로 살아가도록 강요받으며 자라왔다. 그래서 어린 시절을 차마 기억하기 싫다고 치를 떨었고 덕분에 어린 시절에 영화도 제대로 볼 수 없었다고 한다. 부모가 아이에게 좋을 것만 보게 했고 커서 존경받는 교육자가 되라고 하여, 교육대학을 다니며 문학을 공부하며 선생이 될 뻔 했지만, 그는 교육자는 되고 싶지 않았다.[1]

그래서 대학 시절에서야 실컷 영화를 마음껏 보면서 호러영화에 눈을 뜨게 되었고 영화감독이 된다. 하지만 안정된 교육자의 길을 버리고 저예산 호러영화감독이 된 것에 불만을 품은 아내는 두 아이를 그에게 내다맡기고 이혼했으며 부모도 경악하여 거의 절교한다. 물론 그는 부모와의 절교를 기뻐했다. 그나마 1972년, 영화 왼편 마지막 집(비디오 제목은 분노의 13일)[2]을 겨우 10만 달러 수준 제작비를 들여 만들어 미국에서만 280만 달러를 버는 대박을 거둬들였고, 힐즈 아이즈(한국의 비디오 출시 제목은 공포의 휴가길)도 40만 달러 수준 제작비로 10배에 달하는 성공을 거둬들이면서 어느 정도 먹고 살만했다. 샤론 스톤(무명 시절), 어니스트 보그나인 주연의 악령의 리사(Deadly Blessing/1981)도 420만 달러 제작비로 만들어 827만 달러라는, 좀 기대 이하이긴 해도 본전은 뽑았다.

하지만 만화를 원작으로 한 히어로 호러물(?) 늪지의 괴물 / 스웜프 씽[3]이 참패를 거두면서 그도 큰 곤란에 빠진다. 아직 어린 두 아이를 맡아야 하던 그는 이 시절 불면증에 빠지고 여러 모로 마음이 심란했는데, 어느 날 어렸을 때 화장실 창문 너머로 얼굴에 심한 화상을 입고 챙 달린 모자를 쓴 중년의 남자 노숙자를 보고 너무 놀랐던 기억과[4] 그의 버릇들 중 하나인 신문 기사 스크랩을 하던 중, 정체를 알 수 없는 심장마비사가 연이어 벌어진다는 기사를 보고, 이 2가지를 합쳐서 꿈에 화상을 입은 남자가 나타나면 그 꿈을 꾸는 사람은 죽는다는 각본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얼굴만 보고 놀라 심장마비로 죽는다는 설정이었는데 이게 너무 약하다 싶어서 화상 입은 살인마가 사람을 피투성이로 죽게 하자는 걸로 보강한다. 그 와중에 제이슨 부히스처럼 칼을 들고 나온다든지 여러 설정을 넣다가 우연히 장갑을 보고 칼날 장갑을 생각하여 이걸 설정하면서 프레디 크루거가 탄생한다. 하지만 당시 할리웃 메이저 제작사들이 이 각본을 보고 그다지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아 크레이븐은 큰 낭패를 겪는다. 수입이 없어서 친구이던 숀 S. 커닝햄에게 돈을 빌려가며 살아가야 했고, 결국 어렵게 산 집까지 팔아야 했다. 각본을 들고 2년이 넘도록 여기저기 영화사를 돌아다니며 번번이 거절당하던 차에 훗날 반지의 제왕 실사영화 시리즈를 만들어 유명해진 영화사 뉴라인 시네마에서 각본을 마음에 들어 하여 영화로 제작하게 된다. 하지만 당시 뉴라인 시네마는 중소영화사였고 여기도 자본사정이 말이 아니라서 2백만 달러 남짓한 제작비로 무리하게 찍어야 했다. 분장을 맡은 데이빗 밀러는 분장 예산이 달랑 2만 달러라서 골머리를 앓아야 했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2015년 기준으로 30년도 넘은 영화이고 분장 예산이 적었다는데도 분장이나 특수효과를 최대 퀄리티로 뽑아낸 게 함정.

파일:external/horrorwarehouse.com/anightmareonelmstreet1984behindthescenes.jpg

그리고 당시 유순한 배우 이미지가 싫다고 하여 로버트 잉글런드가 프레디 크루거를 연기했다. 이 프레디 역도 여러 배우를 오고가며 어렵사리 배우가 정해졌으며 여러 말이 오갔다. 1편이 별다른 홍보를 할 돈이 없어서 홍보도 하지 않고 개봉했지만 제작비의 11배가 넘는 흥행 대성공과 함께 잉글런드와 크레이븐 감독은 이후로 아예 호러영화 단골(잉글런드는 감독도 했다)로 자리 잡게 된다.

1편만 크레이븐이 감독했다. 사실 크레이븐은 속편은 너무 상투적이라며 프레디를 1편에서 확실히 죽이려 했는데 제작자가 2편을 준비하자고 하여 불만이었다. 그 당시 더 급한 게 크레이븐이었기에 프레디가 이후에도 나올 듯한 엔딩을 준비하고 대신 2편부터 감독은 사양한다고 못을 박는다. 그렇게 2편부터는 다른 감독들이 계속 만들면서 나온 5편까지 흥행에 성공하면서 미국의 한 경제신문에서는 흥미로운 투자 사항으로 이 영화가 언급된 바 있다. 평은 호불호가 갈리지만 연이어 흥행에 성공했기에 크레이븐은 다른 영화를 감독하여 이 영화와 거리를 두었으나, 흥행도 그럭저럭 성공한 6편이 악평을 받자 보다 못한 크레이븐이 다시 돌아와 1994년 10주년 기념작으로 7편 뉴 나이트메어를 감독해 괜찮은 반응을 얻었다.

이 와중에 시리즈를 제작하던 뉴라인 시네마사가 13일의 금요일 판권을 획득하면서 13일의 금요일 9편 제이슨 고즈 투 헬: 더 파이널 프라이데이 마지막 장면에서 프레디의 칼날 장갑이 갑자기 튀어나와 제이슨의 가면을 가져가 이후 서로 싸우게 되는 떡밥을 던진 엔딩을 보여준 바 있다.

3. 영화 시리즈[편집]

4. TV 시리즈[편집]

프레디의 악몽(Freddy's Nightmares). 1988년부터 1990년까지 2 시즌으로 방영. 각 시즌마다 22화로 총 44화.

프레디의 주무대인 스프링우드 엘름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다룬 옴니버스 드라마다. 굳이 프레디 때문이 아니라도 이 마을 사람들이 얼마나 제정신이 아닌지 알 수 있다.

특이하게도 프레디가 메인으로 나오지 않고 처음, 중간에 한두 번 나와 시청자들에게 상황을 자기 식으로 간략하게 설명하거나 자잘한 개그를 보여주고 매회 끝부분에 나타나 마무리를 짓는다. 즉, 여기에서 프레디는 자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에피소드를 제외하면 직접적인 관여 및 살인을 거의 하지 않고 출연 횟수도 상당히 적다. 대신 더욱더 강화된 프레디의 개그가 나온다. 심지어 프레디 본인이 악몽을 꾸는 에피소드까지 있다! 영화에선 볼 수 없는 프레디의 다양한 코스프레가 볼거리. 페도라 말고 다른 모자를 쓰고 있을 때도 많다.

[1] 그런데 이때의 경험이 2000년 영화 뮤직 오브 하트를 감독하게 만든다. 호러영화로 유명한 그가 이런 비호러 드라마를 만들자 사람들이 놀랐다고.[2] 13일의 금요일 1편을 감독한 숀 S. 커닝햄이 제작해서 비디오 업체는 이 제목을 붙였다.[3] 1982년작으로 애니메이션도 나와 국내에도 비디오로 나왔다.[4] '꿈에서 얼굴에 화상 입은 남자가 자신을 노려보는 걸 보고 놀랐던 기억'이라는 자료도 있으나, 여러 기사 및 각종 자료에는 현 버전처럼 어렸을 때 실제로 본 사람이 모티브라는 내용이 압도적으로 많다. 확실한 것을 아는 사람이 있으면 깔끔하게 수정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