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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우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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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주요 동호회3. 인터넷으로 패러다임 시프트4. 서비스 종료5. 관련 항목

1. 개요[편집]

나우콤이 운영했던 PC통신(VT) 서비스. 1994년에 서비스를 개시했으며 2013년 1월 31일 서비스가 종료되었다. 천리안하이텔에 이은 대형 BBS인터넷이 지금과 같이 발전하지 못했던 시절, 몇 안되는 정보 교류의 장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한 때 수백만에 이르는 많은 회원을 거느렸으며 다양한 게시판 및 동호회가 운영되었다.

서비스 시작시부터 모든 접속 포트에 당시 기준으로 고속모뎀(14400bps)을 지원하고(다른 서비스들은 상당수가 2400bps 포트였고 고속 포트는 별로 없었다.), 초기에 인터넷 이용이 분당 수십원 하던 시절에 인터넷 접속을 일시적으로 무료로 제공하는 등의 정책으로 짧은 시간에 많은 회원을 모았다. 전체적으로 천리안하이텔에 비해 연령층이 젊었고 미성년자 회원도 많았으나, 당시는 예절이 지켜지는 아름다운 시절로 요즘처럼 초딩들이 날뛰는 모습은 볼 수 없었다. 나우지기[1]들이 열심히 모니터링을 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여러 대학들과 제휴하여 사이버캠퍼스를 운영하여서 대학생들도 많이 이용하였다.

별칭으로는 나우느려, 나어눌이, 너무느려, 이제(Now)느려, 여우누리 등등등, 지금과는 차원이 다른 저렴한(?) 성능의 컴퓨터와 회선 속도상의[2] 조합으로 인한 느릿느릿한 속도를 보이거나 하는 문제로 인해 그런 별칭이 있었다. PC통신 VT텍스트가 한 화면에 아무런 그림도 없이 텍스트만 꼴랑 25줄 표시되는데도 한 줄씩 화면에 그려내는 속도가 거의 고랫적 도트프린터로 찌익찌익 하고 한줄씩 뽑는 속도에 가까웠다... 초기 나우누리는 하이텔망(01410, 01411)을 통해 접속하거나 전용 BBS 전화번호(라고는 하는데 014XY 형식이 아닌 그냥 시내 전화번호였다.)를 통해 접속했어야 했기 때문. 이 문제는 거의 90년대 말에 들어서야 해결되어 이 때에야 01443이라는 전용번호를 부여받게 된다. 그런데 그 1, 2년 후에 바로 인터넷 텔넷의 전성시대가 열렸다는 게 함정.

또한 위에서도 언급이 되었지만, 나우 와레즈 등이 있었다.

한국에서 최초로 자체 GUI클라이언트를 서비스한 회사다. 서비스를 시작하자마자 전용 클라이언트인 나우로를 통해 서비스를 제공했으며, 나중에는 인터넷 접속까지 제공했다. 나우로는 당시의 기준으로 상당히 앞서가는 개념이었는데, 특히 나우로윈 2.0 버전에서는 당시로서는 혁신적이었던 멀티세션을 3개까지 지원했다. 창을 하나만 띄울 수 있던 시절 3개까지 창을 띄울 수 있게 구현했다는 얘기. 지금은 인터넷창만 대여섯개 열어놓고 쓰는데 이게 뭔 소린가 할 것이다. 이후 천리안이 나우누리와 경쟁하기 위해 전용 클라이언트를 도입하고 PC통신사들이 너도나도 전용 그래픽 클라이언트 프로그램을 제공하기에 이른다.

또한 한국 최초로 빌 게이츠의 방한 연설을 실시간 문자와 그래픽으로 중계한 적도 있다. 실로 유비쿼터스의 시작이다.

한창 때에는 모든 게시판에 사람들이 넘쳐났으며, 특히 유머란의 전성기에는 한시간에 수백개의 글이 올라오는 등 많은 인기로 인해 나우유머의 이름이 드높았으며, 여러 작가[3]를 배출하기도 하였다. 베스트유머에는 시사글과 키워질 글, 군대간다는 글이 많이 올라오는 등 현 시기의 각종 유머사이트가 가진, 유머글 아닌 글도 공감받는다고 추천받는 문제점이 이 시기에도 나오고 있었다는 건 꽤 흥미로운 부분.

여기에서 눌러살던 사람들을 나우폐인이라 불렀는데, 나우폐인들은 당시 아햏햏으로 일어난 고대 디씨 또는 웃대의 전력과도 맞먹을 정도의 힘을 자랑했다. 과거에는 인터넷 폐인의 세력은 나우폐인 - 햏자로 양분되어 있었다. 이 때는 아직 웃대가 뜨기 전의 시절이다. 이 때 이들의 행적을 만화로 그려 히트한 이가 김풍.

동호회 전체 자료실은 꾸준히 올라오는 불법적인 양질의 자료로 인해 나우와레즈라고도 불렸다. 불법 자료들은 나우지기에 의해 삭제 대상이었기 때문에 이름을 바꿔 올리는 방법이 널리 이용되었으며 바꾼 이름이 유머의 소재가 되기도 하였다.[4]

이당시 하이텔의 serial에 맞먹는 통신소설의 메카 SF란을 가지고 있었지만 소설 뿐만이 아닌 잡담이 섞여 올라오는 구조였고, 이 잡담에서 논쟁이 많이 발생하여 정작 소설이 묻혀버리는 사건이 자주 발생하였다.[5] 이에 화난 작가들이 절필선언으로 쇠퇴기를 겪은 적이 있다.[6]

개그맨 전유성이 유머 게시판에 자기 코너를 갖고 있었던 것으로 유명하다. 전유성의 저서(컴퓨터 일주일만 하면 전유성 만큼 한다)에도 나와있다. 다만, 전유성이 최초로 PC통신을 시작한 곳은 하이텔이었다. ID는 전유성 (초창기) -> gagman01(ID변경 후).

한총련민주노총 역시 나우누리에 회원전용게시판(CUG)을 개설한 적이 있었다. 1996년 연세대 사태 당시 한총련의 불법시위 정보를 입수한 경찰이 나우누리 본사(단우빌딩 방배동) 압수수색하는 도중 한 경찰관이 컴퓨터를 몰라서 "한총련 방이 몇호실이야?"라고 묻는 웃지 못할 일화도 있었다.

2. 주요 동호회[편집]

  • ANC - 통칭 앙끄. 애니메이션 동호회. 하이텔 애니메이트의 나우누리쪽 카운터파트라고 보면 되었고 특성상 1~2 세대들 위주로 응집된 곳이었다.

  • GMF - 게임 매니아 포럼, PC게임 동호회. 하이텔 개오동의 나우누리쪽 카운터파트라 할 수 있다. 나우누리 서비스 초기부터 운영되던 게임 동호회로 본래 PC와 콘솔 모두를 망라하고 있었으나 콘솔쪽 유저가 많아지면서 VG로 분리되어 나갔다. 한글화 소모임 팀이 유명했는데 동급생, 드래곤나이트4 등 엘프사 게임부터 문명 3 같은 영문 게임까지 여러 장르를 망라한 한글 패치가 배포되었다.

  • VG - 콘솔게임 전반, 아케이드는 덤, 즉 비디오 게임을 다루는 동호회다. 하이텔 GAMER의 나우누리쪽 카운터 파트. 본래 GMF의 콘솔 게시판이 모태로, 그곳에서 활동하던 회원들의 주도로 분리 독립되었다. 1~2세대 콘솔 덕후들 위주로 응집된 곳이었다.

  • 나모모 - 나우누리 모뎀플레이 모임. 당시에는 네트워크 멀티플레이를 주로 모뎀으로 했기때문에 모뎀플레이는 즉 멀티플레이와 동일한 의미를 가진 말이었다. 멀티플레이 모임 위주이긴 하나, PC게임 전반을 다루는 특성도 있기때문에 하이텔의 개오동과 비견할수 있겠다. 스타크래프트 관련 인적 자원 및 정보 자원은 하이텔에 상대적으로 밀렸으나, "쌈장" 이기석이 나모모 출신 프로게이머로 알려져있다. 황영재, 황신도 나우누리 출신[7]이었으나 활동 동호회는 조금 다른듯 하다.

  • 리듬비트 - 통칭 리듬동. 리듬게임 문서에서 PC통신 시대의 커뮤니티 단락 참조. 자유게시판 닉은 8바이트.

  • 미연사모 - 미연시를 사랑하는 모임. 위의 리듬비트와 마찬가지로 게시판닉은 8바이트.[8] 에로게, 갸루게 전반을 다루는 커뮤니티. 독립된 동호회로 존재하였기 때문에 타 통신의 에로게 포럼보다는 규모가 컸다.[9]

  • TRPG동호회 - Table Talk Role Playing Game. 약칭으로 TRPG이며, 하이텔 TRPG 동호회의 나우누리쪽 카운터 파트. 하이텔 TRPG 동호회보다 상대적으로 평균연령이 낮았다고 볼 수 있다. 하이텔TRPG동호회 등과 함께 RPG컨벤션을 여러 해 개최했다. 이 동호회의 유명인으로는 RPG출판물전문회사 도서출판 '초여명'으로 알려진 박나림, 김성일 부부가 있다. 그 외 하이텔쪽과 마찬가지로 많은 온라인게임개발자들을 배출해냈다.

  • 찬우물 - 정치 동호회로 당시 나우누리 정치성향의 대세가 진보라는 것을 보여주는 지표로 주로 PD운동권계열의 모임이었다. 그러나 회원 중에는 한총련 관련자들도 있어서 1997년 5~6월 사이에 한총련 관련자들의 아이디 수십 건과 이들이 올린 게시글이 공권력에 의해 무더기로 각각 이용중지 및 삭제되었다. 비슷한 포지션의 동아리로는 천리안의 '사회비평동호회 희망터', 하이텔의 '바른 통신을 위한 모임'이 있다.

  • PGF [Pure Game Forum] - 나우누리에 가장 포괄적인 게임들을 다루는 동호회. (장르 구분 없이 잡식성이었다.)

  • ELF (엘프) [Emulator Love Forum] - 원래 PGF의 서브 카테고리의 동호회 였다. [Pure Game Forum의 준말이지만 동호회 표기는 순수 게임사랑(??) 으로 했다.] 하지만 90년대 말 오락실 게임을 컴퓨터로 하는 에뮬레이터의 신드롬 때문에, PGF 를 넘어서는 인기를 보여주었다. 결국 어마어마한 인기에 힘 입어 나중엔 PGF의 서브가 아닌 단독 ELF로 독립.( 본디 VT 상에서 GO PGF 55를 쳐야 들어 갈 수 있었는데, 나중엔 단독으로 GO ELF 쳐도 들어 갈수 있었다.) 에뮬 황금기엔 구 게시판과, 신 게시판을 나눌 정도로 어마한 회원들의 활동이 있었다.

  • NEWZ (뉴즈) [Nownuri Emulator Workspace! Z] - 99년 11월 5일. ELF에서 활동하던 일부 운영진이 기존 운영진과의 마찰로 인해, 따로 나와 만든 에뮬레이터 동호회. 시삽은 모범생님. 부시삽은 친절맨, YSPANIC..등이 있었다.아무래도 엘프와 껄끄러운 관계였기 때문에, 초기 엘프에서 뉴즈를 광고할때는 많은 잡음 있었다. 초창기엔 엘프가 워낙 유명하다 보니 뉴즈는 찬밥이었지만, 유명한 엘프가 저작권 에뮬롬을 올리면 검열로 바로 잘리는 바람에 상대적으로 덜 관심이 가는 뉴즈의 자료가 잘리지 않아 사람들이 뉴즈를 많이 찾았다. 에뮬 황혼기인 2001-3년 당시 뉴즈를 가입할려고 하는 사람은 한 주당 300명으로 추산 된다. 하지만 인터넷과 온라인 게임으로 인한 VT의 쇠퇴기를 맞이하면서, 엘프와 뉴즈는 협력하는 동반자가 되었지만, 결국 시대의 흐름에 둘다 무릎을 꿇고 만다.뉴즈의 마지막 글은 나우누리 종료일인 2013년 1월 31일 11시11분 자유게시판에 남긴 운영자 nownewz2 이다.

3. 인터넷으로 패러다임 시프트[편집]

하지만 시간이 흘러 대세가 VT에서 웹으로 넘어가자, 이에 맞추기 위해 별나우 등 다양한 시도를 하였으나, 당시의 경쟁 서비스들에 비해 구린 디자인, 느린 속도, 불편한 이용에 기존 서비스와의 연동이 제대로 되지 않는 등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결과적으로 모두 실패하였으며, 이외에도 운영자 독단적으로 (잠시) 적용되었던 닉네임 정책에 대한 반발이나 무료회원 허용에 관한 논란, 동호회 자료실 용량 제한과 그 때 피디박스로 나우누리 서버를 빼간다는 소문[10]이 도는 등 다양한 악재가 겹쳐 그 세력이 급격히 기울게 되었다. 이제는 소수의 회원만이 남아서 과거의 영광을 추억하는 수준이며 그 활동도 거의 이루어지지 않지만, 아직도 회원 가입이 가능하며 이전의 게시판과 서비스 중 많은 부분이 남아 있다. 텔넷을 통한 VT 접속도 가능하지만, 로그인은 유료회원만 가능하다. 다만 전화선을 통한 접속은 더 이상 지원하지 않는다.

웹으로 넘어와서 나우누리의 가장 강력한 세일즈 포인트는 동호회 자료실이었다. 당시 나우누리의 자료실 소스는 어느 인터넷 서비스도 쫓아올 수 없는 서비스량을 자랑하고 있었고, 내심 유료 서비스로도 사용자들의 충성도를 유지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나 보지만 결과는 시궁창.

점점 웹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떠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기 위해서 나우누리 홈페이지에는 와레즈만큼이나 자료가 많은 곳이라는 광고를 내보내었지만 이미 떠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기에는 너무 늦었다. 나우누리는 급속히 막장을 타게 되고, 동호회 자료실에서 힌트를 얻은 나우콤은 피디박스와 클럽박스 사업을 시작하게 된다.

사실 별나우로 넘어와서도 나우누리를 사용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꽤 있었지만 이당시 나우콤의 정책이 막장 그 자체였고, 현재도 그 정책을 지키고 있다.

별나우의 가장 치명적인 문제점은 먹을것도 없는데 별걸 다 유료를 강요한 점이며, 웹 서비스의 기본중의 기본인 이메일 서비스조차도 돈을 내지 않으면 계정을 제공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나우누리 계정을 주 이메일로 사용하고 있던 사람들은 메일 계정을 버리고 피눈물을 흘리며 서비스를 떠나가게 되었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여타 다른 서비스 회사들은 웹으로 넘어가면서도 무료 사용자에게 이메일 정도는 제공한 것에 비해서 지나치게 가혹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이것은 프리챌 사건과 더불어, 인터넷에서의 섣부른 유료화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주는, 대한민국 온라인사에 남을 희대의 삽질이라고 할 수 있다. 나우누리의 경우 원래 유료였던 PC통신에서 넘어왔다는 점을 생각하더라도, 인터넷의 특성이 무료 공유에 가깝다는 점에서 보면 시대에 역행하는 유료화라고 평가해야 할 것이다.

온라인의 프론티어들을 다수 점유하고 있었고, 커뮤니티 집단 역시 실질적인 독점력과 파워를 가졌던 나우누리였지만, 경영진의 병크에 의해서 나우누리의 시대는 저물어 갔다. 이에 따라 당시 독점적인 정보력을 가지고 있던 동호회 집단들이 대거 공중분해되고, 다음 카페로 대표되는 신흥 인터넷 커뮤니티에 그 바톤을 넘겨주게 되고 당시 듣보잡이었던 루리웹이 거대 인터넷 커뮤니티로 성장하는 계기를 만들어준다.

이후 운영이 나우콤에서 자회사인 나우 SNT로 넘어갔으며, 이관 초기에는 몇 가지 서비스를 도입하는 등 나름 시도를 한 것 같지만 이제는 서비스가 돌아가게 하는 것 말고는 거의 손을 놓은 것으로 보인다. 놀랍게도 지금도 수요일 새벽에 정기 점검을 하고 있다. 참고로 나우콤은 아직도 피디박스, 클럽박스, 아프리카TV 등으로 여전히 잘 나가고 있다.

4. 서비스 종료[편집]

하지만 나우누리 자체는 2013년 1월 31일 서비스 종료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안녕하세요. 나우누리입니다.
먼저 그 동안 나우누리를 사랑해 주신 고객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나우누리는 1994년 나우누리 서비스를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고객님들과 함께 해 왔으나, 이제 서비스 종료라는 쉽지 않은 결정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나우누리를 이용해 주신 고객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서비스 종료에 대해 아쉽고 죄송한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고객님들의 너그러운 이해를 부탁 드립니다.
나우누리 서비스는 2013년 01월 31일 부로 서비스가 완전히 종료됩니다.서비스 종료전에 2개월(2012년 12월 01일 (소급적용)부터 2013년 01월 31일)간 무료서비스로 전환하여 데이터 백업 및 서비스 이전을 할 수 있도록 조치할 예정입니다.
무료로 서비스 되는 2개월동안 백업을 받으실 데이터를 백업을 받아주시기 바라며,서비스 종료로 인해 고객님들께 불편을 끼쳐 드린 점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사과 드립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 나우누리 서비스 종료 공지 - 현재 페이지 없어짐

5. 관련 항목[편집]


[1] 하이텔에는 PCCOM 시리즈가 이에 상응.[2] 모뎀 시절에 빠를 수가 없었던 건 당연 하지만, 종종 툭하면 접속이 제대로 되지 않거나 접속 프로그램의 불안정성으로 폭주를 한다던가 TXT만 불러내는데도 엄~청나게 느려서 이런 별칭이 있었다.[3] 대표적으로는 영화화 된 '엽기적인 그녀'의 견우와 '동갑내기 과외하기'의 최수완이 있다.[4] go pdsforum 88 이 동호회 전체 자료실이었으며, 크랙(crack)은 과자, 포토샾은 사진가게, 윈도우즈는 창문 등등 왠지 뜻은 통하는 것 같기도 한 이름으로 적당히 바꿔서 자료가 올라오곤 했었다. 이사짐 센터 쿠의 95년도 판 전화번호부라는 식으로 그냥 보면 뭔지 모를 것 같은 제목이지만, 사실은 이사쿠 95년도 판 에로게 같은 걸 몰래 올려놓는 용도로 쓰였었다.(...) 지금이야...[5] 처음에는 한 달에 한 번 정도였으나 심할 때는 한 주에 한두번 정도였다. 이에 비해 규모면에서 비슷했던 하이텔 시리얼란은 잡담란을 따로 만들고 연재란에 잡담이 올라오면 철저히 삭제했다. 왜 나우누리가 굳이 별개의 잡담란을 만들지 않았는지는 아직까지도 신비.[6] 이성현(카인)의 "빛의 검"에 "에스에프국"이 등장하는 이유가 이것 때문이다. 거기에 등장하는 에스에프국 출신 두 사람의 이름은 당시 논쟁을 가장 심하게 일으켰던 두 사람의 ID를 패러디했다. 그리고 이 절필선언 후 작가들은 웹사이트를 만들어 그쪽으로 이동했는데, 이 사이트가 커그.[7] 당시 StarC_Yellow라는 배틀넷 ID를 쓰고 있었다[8] 덕분에 자유게시판에 가면 각종 에로게 히로인들의 한자/가나이름이 4어절(=8바이트)인 경우 거기에 딱 맞춰서 게시판닉을 쓰는 사람도 종종 있었다.[9] 하이텔에서 에로게를 논할수 있는 공간은 고전게임 동호회에 부속게시판으로 존재하고있었다. 원래 PC98을 다루는 포럼이었는데 하드웨어 특성상 에로게가 많다보니 에로게 포럼 비슷하게 되어버렸다(...) [10] 그 전까지는 동호회자료실의 용량이 무제한이었는데, 피디박스가 잘 나가던 시점에서 동호회자료실의 용량에 제한을 둔다고 발표했다. 사실 협의만 하면 계속 쓸만한 용량을 제공해줬는데, 이걸 제대로 설명을 안한 탓에 시삽(다음카페의 운영자와 같은 위치) 입에서 용량제한때매 자료실 자료를 삭제하겠다라는 말이 나왔을 정도. 소문이 안 돌래야 안 돌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