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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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아이파크 No. 7

김치우 (金致祐/ Kim Chi-Woo)

출생

1983년 11월 11일 (34세)

국적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대한민국

출신지

서울특별시

포지션

왼쪽 미드필더, 왼쪽 풀백

신체조건

175cm, 68kg

등번호

FC 서울 - 7번
부산 아이파크 - 7번

소속팀

인천 유나이티드 (2004~2006)
FK 파르티잔 (2005) (임대)
전남 드래곤즈 (2007~2008.7)
FC 서울 (2008.7~2017)
상주 상무 (2011~2012.9, 군 복무)
부산 아이파크 (2018~ )

국가대표

28경기 5골

별명

치우천왕, 치우언니

KEB 하나은행 FA컵 MVP

2006년

2007년

2008년

김효일
(전남 드래곤즈)

김치우
(전남 드래곤즈)

최효진
(포항 스틸러스)


1. 개요2. 클럽
2.1. FC 서울 입단 이전2.2. FC 서울 입단
2.2.1. 2008 ~ 2015 시즌2.2.2. 2016 시즌2.2.3. 2017 시즌
2.3. 부산 아이파크로 이적
3. 국가대표4. 플레이 스타일5. 기타6. 같이 보기

1. 개요[편집]

치우천왕

잘하면 치우천왕, 못하면 김치

한국축구선수. 서울 태생으로 풍생중학교, 풍생고등학교, 중앙대학교를 졸업했다. 2004년 인천 유나이티드에 입단해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인천 유나이티드, FK 파르티잔, 전남 드래곤즈를 거쳐 FC 서울에서 전성기를 구가하고 선수생활 황혼기를 보내기 위해 부산 아이파크에 자리잡았다.

2. 클럽[편집]

2.1. FC 서울 입단 이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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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인천의 유망주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동료 여동원[1]과 함께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프르바리가의 FK 파르티잔으로 6개월 임대 이적하여 2004-05 시즌 리그 우승에 공헌하고, 2005년 6월 인천 유나이티드로 복귀했다. 그러나 다녀온 두 선수 모두 세르비아 하면 학을 떼는데, 통역 한명 붙여주지 않는 열악한 환경 속에 임금도 제대로 못 받아[2] 아는 사람도 없는 이역만리 타국에서 돈이 없어 쫄쫄 굶으며 뛰었다고 한다. 여담으로 이때 동고동락한 인연으로 여동원과 김치우는 매우 절친한 사이가 되었다고 한다.

2006년 국가대표 승선으로 몸값이 부쩍 상승하자 연봉 문제를 두고 인천과 갈등을 빚었고, 결국 2007년 1월 20억이라는 거액의 이적료에 전남 드래곤즈로 이적했다.[3] 전남 드래곤즈로 이적한 이후 핵심 선수로 활약하며 2007년 팀의 FA컵 2연패에 큰 역할을 했고, 대회 MVP를 차지했다.

2.2. FC 서울 입단[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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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동안 헌신했던 FC 서울 시절.

2.2.1. 2008 ~ 2015 시즌[편집]

2008년 7월, 오래전부터 그를 눈여겨 보던 세뇰 귀네슈 감독의 강력한 요청으로 고향팀 FC 서울로 적을 옮겼고 이적 직후부터 골을 기록하는 등 맹활약하며 팀이 준우승을 차지하는데 공헌했다. 그리고 이때 K리그 1만호 골의 주인공이 될 뻔했다. 최종전인 포항전에서 멋진 프리킥 골을 성공시키며 1만호 골의 주인공이 되는줄 알았으나 바로 직전 다른 경기장에서 부산의 김태영이 1만호 골을 자책골로 넣어버리는 바람에 K리그가 준비한 10,000골 이벤트가 전부 날아갔다.

2009시즌에도 리그 중반까지 좋은 활약을 펼쳤으나 6월 8일, 탈장 증세를 보이며 대표팀에서 하차하고 2009 AFC 챔피언스리그 16강에도 결장하였다. 이후 7월 24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친선 경기에서 복귀했다.

2010시즌 초반에는 주로 교체로 출장했고 시즌 중반 부상까지 당하며 다사다난한 시즌을 보냈으나 11월 7일, 대전과의 정규리그 최종전에서 1-1로 맞서던 후반 42분, 아크정면에서 멋진 오른발 결승골을 터뜨리며 팀의 정규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본래 정규리그 종료 후 바로 상주 상무입대가 예정되어 있었으나 플레이오프 진출 팀에 한해서 상무에서 입영기일 조절을 해준 덕분에 챔피언결정전에 뛸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챔피언결정전 1차전 제주 원정에서 후반 추가 멋진 중거리슛으로 극적인 동점골을 성공시켜 팀을 패배에서 구원했다.

2010시즌 성적은 컵대회 포함 23경기 2골. 이 2골이 팀에 정규리그 우승과 K리그 챔피언 자리를 안겨준 귀중한 골 이었다. 최효진과 함께 팀의 우승한 다음날 입대하여 2011~12시즌은 상무에서 보내고 12년 9월 서울로 복귀했다.

서울 복귀 이후 13시즌 아디와 로테이션으로 왼쪽 풀백을 맡았다. 특히 킥력이 살아있어서 전남원정에서 프리킥으로만 2도움을 챙기기도 했다.

14시즌을 앞두고 경쟁자였던 아디가 은퇴하면서 주전으로 올라서게 되었다. 게다가 쓰리백으로 전술변화를 가져가면서 공격력이 출중한 김치우에게는 희소식. 왼쪽 윙이나 윙포워드로 전진 배치 될 때가 많다. 2월 25일 센트럴코스트와의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조별예선 1차전에서 경기내내 왼쪽을 지배하며 좋은 모습을 보이면서 팀내 가장 많은 슈팅횟수와 1도움을 기록했다. 그러나 여름 왼쪽 다리에서 뼛조각이 발견되어 수술을 결정하고 한동안 전열에서 이탈했다 시즌 후반 복귀했다. 15시즌에는 심상민, 고광민과 함께 로테이션으로 뛰고 있다. 나이가 들면서 기동력이 하락하고 부상 빈도도 늘어나 매년 한번씩은 전열에서 이탈하고 있다.

2.2.2. 2016 시즌[편집]

시즌 초반에는 고광민에 밀려 중용받지 못했으나 황선홍 감독이 부임한 6월 말 이후로 꾸준한 출장 기회를 얻고 있다. 고요한이 부상으로 빠지고 심상민이 올림픽 대표팀이 차출되어 고광민이 오른쪽 풀백으로 옮겨가면서 닥주전으로 부상했다. 폼을 서서히 끌어올리며 장기인 크로스가 살아나고 드리블, 수비에서도 완벽에 가까운 활약을 펼치며 최용수 감독 시절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환골탈태한 상태로 돌변했다.

8월 3일 K리그 클래식 27라운드 성남 FC 원정 경기에 선발 출장하여 후반 35분 헤딩으로 데얀역전골을 도왔다.

8월 17일 K리그 클래식 26라운드 전남 드래곤즈 원정 경기에 선발 출장하여 전반 26분 데얀의 머리를 겨냥해 날카로운 크로스를 올리며 선제골에 기여했다.

전남전 활약에 힘입어 K리그 클래식 26라운드 베스트11에 선정되었다.

2.2.3. 2017 시즌[편집]

곽태휘, 정인환, 김근환, 김동우, 고요한, 신광훈 등 센터백, 풀백 가리지 않고 수비수들이 부진한 가운데 오스마르, 황현수와 함께 밥값하며 팀을 이끌고 있다. 아드리아노와 윤주태의 이탈로 팀 공격력이 크게 떨어진 가운데 그의 킥력은 많은 보탬이 되고 있으며 수비력과 활동량도 나이를 고려하면 굉장히 준수하다.

2.3. 부산 아이파크로 이적[편집]

2017년을 끝으로 서울과의 계약이 만료되었고, 선수단 분위기를 잡아줄 베테랑을 원했던 최윤겸 감독의 구애에 응해 부산 아이파크로 이적했다. #

현재 부산 아이파크의 7번을 달고 왼쪽 풀백을 뛰고 있는데 프리킥과 오른쪽 코너킥을 맡아 차고 있다. 나이에 비해서 날카로운 킥과 체력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부산아이파크에 활력을 불어넣는 몇 안되는 선수 중 한 명이다.

3. 국가대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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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의 상태가?

청소년 시절 부터 주목받아온 유망주로 2003년에 아랍에미리트에서 열린 FIFA U-20 월드컵에 출전하여 대한민국의 전 경기에 출장했고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대표로도 선발되었다.

2006년 10월 8일 가나와의 친선경기를 통해 성인 대표팀에 데뷔했고 도하 아시안게임에도 참가했으며 2007년 아시안컵에서 우측의 오범석과 나란히 맹활약하며 이 대회 최고의 수확으로 인정받았다. 2009년 3월 28일 이라크와의 친선경기에서 첫 A매치 득점을 올렸고, 바로 다음 경기인 2009년 4월 1일 북한과의 2010년 FIFA 월드컵 예선에서 두 번째 A매치 득점을 기록했다.

공수에서 다양하게 쓰일수 있는 옵션으로 월드컵 대표팀 승선도 기대되었으나 미드필더에선 박지성염기훈, 수비에선 이영표김동진이 포진해 있는 탓에 최종 엔트리에는 들지 못했다.


2013년 6월 5일, 브라질 월드컵 최종예선 레바논전에서 종료 직전 프리킥으로 극적인 동점골을 기록해 한국을 위기에서 구했다. 김치우의 프리킥 골이 없었다면 레바논 쇼크 시즌2가 될뻔했다.[4]

이렇게 중요한 순간에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을 두 번이나 월드컵을 올려놓는데 공헌했지만 정작 본인은 두 번 다 월드컵 본선 엔트리에 합류하지 못했다 (...) 이동국이나 곽태휘만큼은 아니지만 이쪽도 월드컵 운은 정말 지지리도 없는 선수.

4. 플레이 스타일[편집]

본래 이영표를 이을 차세대 왼쪽 풀백으로 주목받았으나 소속팀에 K리그의 최고의 수비수 중 한명인 아디가 있었던데다 우수한 공격력에 비해 떨어지는 수비력 문제를 극복하지 못해 사실상 왼쪽 미드필더로 전업했었다. 2010년 현영민이 영입된 이후 서울에서 더이상 수비수를 볼일은 없다고 보여졌다. 그러나 2013시즌 현영민은 성남으로 이적한데다 아디가 센터백 알바를 뛰고 공격진에 에스쿠데로와 윤일록이 추가되면서 수비수로 복귀했다. 허나 AFC 챔스 16강 홈경기에서 첫 실점의 결정적인 빌미를 제공하는등 전성기의 폼은 보여주고 있지 못하다.

측면에서 주로 활동하지만 상황에 따라 중앙을 오가며 공격의 가변성을 높여주는 롤을 수행하며(윙어로선)단단한 수비력에, 멀리 떨어진 동료들에게 찔러주는 날카로운 패스와 택배 크로스는 정평이 나있다. 연계플레이와 전술에 대한 이해도도 준수한 편. 왼발 프리킥이 위력적이라 소속팀과 대표팀에서 전담 프리키커를 맡기도 했다. 가끔 과감한 중앙돌파 뒤 직접 슈팅을 노리는 모습도 보여주며 측면에 배치될 경우 'ㄱ' 형태의 드리블로 페널티 박스 근처로 이동한후 날카로운 중거리 슛이나 크로스를 즐겨 올린다.

드로잉이 상당히 길고 정확하다. 이때문에 팀 내에서 그가 경기에 나오면 드로잉을 자주 맡아서 하는 편이다.

5. 기타[편집]

가장 큰 단점으로 급한 성격이 있었다. 서울에 입단하기 전부터 한 성질하는걸로 유명했는데 그때문에 쓸데없이 카드 모으는 일이 많아서 꽤나 까였다. 이 성질머리로 제대로 말아먹은 경기가 2009년 포항과의 컵대회. 그래도 나이 들고 군대 다녀오면서 불같은 면모가 많이 사라져서 큰 문제없이 뛰고 있다.

FK 파르티잔 임대와 관련된 문제도 있고 해서 인천 유나이티드와의 사이는 대단히 나쁘다. 당연히 인천 서포터즈들과의 사이도 굉장히 험악하다. 전남 시절에 인천 유나이티드와의 경기 때 상대 선수와 충돌하는 걸 보고 이 사실을 잘 모르던 중계진들은 친정팀에게 거칠게 나오는 것에 꽤 의아해했다 (...)

6. 같이 보기[편집]

[1] 인천 유나이티드의 창단 멤버로 쌍둥이 동생 여승원과 함께 꽤 주목받았던 유망주였으나, 이후 부상에 시달리며 별다른 족적을 남기지 못한 채 K리그를 떠났다.[2] 임금은 한국에 돌아오고 나서야 지불되었다고 한다.[3] 하지만 이로 인해 당시 K리그 몸값 거품 논란을 불러일으킨 대표주자 중 한 명이라는 오명을 쓰게 되었다.[4] 단적으로 설명하자면, 이 골이 없었다면 한국은 월드컵 본선에 직행할 수 없었다. 최종예선 마지막 경기인 이란과의 경기에서 패하는 바람에 우즈베키스탄과의 승점이 같아진 상황에서, 골 득실차로 2위에 올라 간신히 본선 티켓을 획득했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