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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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김장훈 (金章勳)

출생

1967년[1] 8월 14일 (51세)
서울특별시 마포구

신체

185cm, 70kg, O형

학력

홍익초등학교
광성중학교
마포고등학교 중퇴
경원대학교[2] 영어영문학과 중퇴

직업

가수

데뷔

1991년 1집 앨범 '늘 우리사이엔'

가족

어머니 김성애(목사), 누나 2명

소속

공연세상

종교

개신교(예장중앙)[3]

본관

경주 김씨

블로그트위터페이스북

1. 소개2. 노래 스타일
2.1. 모창
3. 음반 목록4. 콘서트5. 김현식과의 관계6. 유희열과의 관계7. 사건사고8. 히트곡9. 저서10. 기타

1. 소개[편집]

대한민국에서 SNS는 인생의 낭비라는 어록을 대표하는 연예인이자 가창력에 대한 많은 비판을 가지고 있는 가수.
대한민국 연예계 사상 선과 악이 가장 뚜렷한 연예인.

대한민국가수이자 방송인, 배우[4]. 인터넷상에서는 숲튽훈[5]이라 불린다.

공식적인 프로필은 1967년생이지만 이는 나이를 속인 것이 맞고, 아직까지 공식적으로 그의 출생년도가 밝혀진 적이 없으며 실제로는 그보다 더 위라는 증거들이 많다. 그 중 결정적으로 봄여름가을겨울1962년생인 김종진유희열의 라디오천국에 나와 '장훈이가 나보다 1살 어리걸랑요?'라고 말한 걸로 보아 아마도 1963년생이 정확한 출생년도로 추정된다. 물론 김장훈도 방송에서 봄여름가을겨울에 관련된 얘기를 할 때는 '종진이 형'이란 표현을 쓴 적이 있다. 김장훈 다음으로 기부를 많이하는 박상민이 1964년생인데 김장훈을 언급하며 "내가 기부하는게 알려지나 싶으면 그 형이 한번에 기부를 너무 많이하잖아요"라고 한 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1963년생인게 기정사실화 되었고 1963년 생이라면 2017년 기준으로 53 ~ 54세이므로 1963년생이라는 것이 유력하다[6]. 가수 이승환1965년 생인데, 라디오 방송에서 형이라고 불렀다가 혼났다는 얘기도 있다. 이렇게 수많은 설이 있지만 상술 했듯이 2012년 당시 영상을 보았을 때 만 49세로 나온걸 보면 1963년생이 맞다.[7]

대학 시절부터 언더에서 활동하다가 김현식이 작고한 후 김현식의 사촌 동생으로 알려져, 1991년에 1집 앨범 '늘 우리 사이엔'으로 데뷔했다. 계속 언더로 활동 하려다가 어머니가 고생하는 걸 볼 수 없어 대중가수로 데뷔했다고 한다. 3집까지는 인지도가 낮아서 3집을 낼 때 기획사와의 합의로 직접 앨범 표지에 3집이라는 언급은 못했고 그 대신 그림으로 "삼(인삼)"과 "집"으로 표시했다고 한다.[8]

4집부터 가난한 가족을 돕기 위해, 그 외에 여러가지 이유로 언더에서 벗어나기로 했다. 그래서 대중적인 가수들의 발라드를 받아 부르기 시작했고, 방송에 나가면서 웃긴 가수의 이미지를 쌓았으며, PD와 싸우거나 방송펑크내지 않기로 했다. 대중적인 음악을 할 것, 방송출연 할 것, 싸우지 말 것, 세 가지 약속을 한 후에야 하나음악과 전격 계약했고 이때부터 서서히 곡 인기와 인지도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즉, 한때는 대표적인 기부천사였다.

1998년에 발표한 4집에 수록된 '나와 같다면[9]'이 흥행하면서 무명가수에서 벗어났다.[10]

1999년 발표한 5집의 "오페라[11]"가 2000년 즈음에 라이코스병맛나는 광고에삽입되면서 인지도가 비약적으로 높아졌다. 5집 타이틀곡은 '슬픈 선물'이다.

2000년 6집의 '혼잣말'과 '난 남자다' 또한 인기를 끌었다.

2001년 7집 앨범 발표 후 활동을 지속하다 2002년 12월 크리스마스 연말 공연 '아듀'를 끝으로 UCLA로 유학을 떠난다 전하고 3년간 소식이 없었다. 그 유학이라는 게 공개 강좌[12] 단 한 과목 들은거지만..

2. 노래 스타일[편집]

퍼포먼스로 승부하는 대표적인 가수.

김장훈의 가창력을 깔 때 대표적으로 언급되는 클립

진성으로만 노래하는 가수며 가성구가 손상되어 가성을 거의 쓸 수가 없다. 사실 가창력으로 봤을 때는 발성이 제대로 잡혀있지 않아[13] 소위 말하는 생목 목소리가 나기도 한다. 데뷔 초기~ 중반기였던 2000년대 초반까지는 성대 자체가 강한 데다가 영향받은 가수가 에어로스미스의 스티븐 타일러 등의 해외의 락커들과 김현식[14], 전인권 등의 국내의 철금성(쇳소리)나는 가수들이어서 가성을 거의 구사하지 않았고 꽤 괜찮은 노래를 들려주었다. 2000년대 중반까지는 반가성도 어느 정도 나왔다.

문제는 이후에 여러 차례 목이 망가지면서 어느 순간부터 가성을 구사하려고 해도 소리를 뽑아내기가 쉽지 않아지면서 가창력이 완전히 망가졌다는 것. 본격적으로 목이 망가진 것은 90년대 말부터로, 그는 이미 1998년 성대결절 판정을 받았었다. 성대에 혹이 나 있어서 그 혹을 때어내야 했는데, 김장훈은 소리를 심하게 지르면 떨어질 것이라 생각하고 수술을 거부하고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결국 이로 인해 2000년대 초~중반에 들어가며 가성을 못 낼 정도로 성대가 상해버렸고 거기에 본인의 음주, 흡연 습관까지 더해져 돌이킬 수 없는 수준이 되었다. 거기다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것이 2010년의 창법 변화이다. 2009년 후반부터 평소에 존경하던 전인권의 영향을 많이 받은 [15] 창법으로 서서히 바꾸면서 고음부 음색이 얇아졌다 [16] 이러한 바뀐 창법으로 2011년까지는 괜찮은 라이브를 선보였으나 2012년~2013년 즈음에는 실력이 훅 가버렸고 라이브가 많이 불안해졌으며 2015년부터는 아예 고음의 음색이 흔히들 말하는 닭소리로 변해버렸다. 이은미가 '언더 시절에는 음 하나 더 내보고 노래 좀 더 잘해보려고 선배들한테 묻고 다니던 게 방송에 맛들려서 노래 연습 안 한다'고 깠다가 김장훈이 인터뷰에서 '목이 망가질대로 망가져서 노래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축복'이라고 받아쳤을만큼 목이 심각하게 망가진 것을 자신도 인지하고 있는 모양. 성대가 망가지며 가창력으로 승부하기에는 한계를 본 김장훈은 2000년대 중반부터 노래실력보다 퍼포먼스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인터넷에 올라온 여러 영상들을 보면 정말 가수인데도 불구하고 심한 겉멋과 프로답지 않은 무대 퍼포먼스[17]로 엄청난 호불호가 생겼고, 노래실력 자체는 정말 참담한 수준이다. 김장훈이 26년 동안 가창력 논란이 생기는 이유는 자신이 핫하기 때문이라 하지만 노래를 정말 못 하는 가수라는 표식어가 맞다는 평이 주를 이루고 있다. 예전 라이브를 접한 사람들의 평마저도 과거에는 잘했지만 지금은.... 혹은 같은 사람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심하게 변했다. 라고 할 정도로 현재의 상태는 굉장히 심각하다.

음정을 못 맞춘다는 것에 대해서는 고음병이 원인인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음감 자체는 좋은 편인데 허구한 날 지르는 것 때문에 '음을 못 맞춰서 저러는 것이다'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 그리고 2010년대부터 고음을 낼 때에 목소리가 조금 기괴하게 변하는데[18] 2000년대 라이브에서는 비슷하게 지르는데도 갈라지지 않고 수월하게 나왔던 것을 보면 성대 노화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사실 지금도 고음 없이 노래를 부르면 2000년대 음색이랑 큰 차이는 없고 그렇게 샤우팅을 해대는데도 아직 노래 부르는게 가능하긴 한걸 보니 성대 노화가 주된 원인으로 보인다. 2007년, 고음이 깔끔했던 '사노라면' 라이브를 보면 지금과 엄청 다른 것을 알 수 있다.[19]

음정보다도 문제인 것이 엇박을 심하게 타는 건데, 그나마 2000년대~2010년대 초반까진 괜찮았으나 2016년 라이브에서는 엇박을 거슬리는 수준을 넘어서 반주가 김장훈에게 맞춰야하는 상황까지 되었다.[20] 반주고 뭐고 그냥 막 부르는 수준.

따지고보면 젊은시절에 근본적인 음색 자체는 굉장히 좋은 편이었다. 차라리 저음 부분을 집중적으로 노래 했다면 평가가 나아질 수도 있었지만 발성이 제대로 안 되어있는 상태에서 높은 음역대의 노래를 지르니까 이 상황이 되었다.

그래도 정식 가수인 만큼 원래부터 이랬던 것은 당연히 아니고 90년대 후반에서 약 2009년까지의 시절은 고음도 적절하게 내면서 노래를 분위기 있게 꽤 잘 불렀었고, 특유의 음색이 한창 절정인데다 외모까지 훌륭했다. 거기에 뛰어난 퍼포먼스와 무대장악력 그리고 관객과의 호흡을 보여주고 있다. 사람들은 이때의 김장훈을 '킹장훈'이라고 부른다. 예시1, 예시2 예시 3 [21], 김장훈의 무대장악력과 퍼포먼스를 가장 잘 보여주는 라이브 , 전성기 시절 그의 가창력을 보여주는 영상

9집의 Honey (Mania Ver)에서는 예외적으로 반가성을 사용 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유희열이 2009년 명랑히어로 프로그램에서 말하기를 '김장훈 씨 노래를 머리나 테크닉으로 들으면 안 와닿죠. 대한민국에서 가슴으로 노래하는 사람들이 몇 명 없잖아요. 다들 선생님들한테 레슨받아서 기계적으로 부르지만 김장훈씨는 노래를 정말 마음으로 하시잖아요. 사람들이 마음으로 받아 들이죠. 그럴 수 있는 가수가 대한민국에 또 있나요?', 이러한 언급이 있었는데 사실 여태껏 김장훈의 행보를 보면 정작 실제 대중들의 속마음과는 조금도 상관이 없는 단순한 방송용 립서비스의 정점이라고 볼 수 있다. [22] 이미 기술과 상관없이 마음으로 부르면서 시청자들에게 공감을 주는 가수들은 전세계적으로 상당히 많아왔는데 김장훈은 그런 대중들과의 공감대가 많이 존재하지 않는다.[23]

또한, 자신의 음역대에 맞지 않은 노래를 하고는 한다. 예를 들어 전인권의 '그것만이 내 세상'을 부르는데[24] 자신의 음역대보다 높은 노래임에도 불구하고 고음을 구사하는데 듣기가 매우 거북하다는 평이 많다.

이렇게 음역대를 맞춰서 고평가를 받은 노래가 바로 불후의 명곡에서 부른 '아니야'. 이 곡도 고음이 조금 나오긴 하지만, 편곡이 잘 되었고 김장훈의 음색에 맞게 노래했기 때문에 평가가 좋다.

노래를 35초 중 4초간 부른 클립이다. 댓글만 봐도 이런 노래에 대한 공감대가 거의 없음을 알 수 있다.


관객들에게 마이크를 항상 넘기는 것도 큰 문제다. 물론 이게 나쁘다고 볼 수는 없지만, 관객들은 가수의 노래를 듣기 위해 콘서트나 공연을 오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김장훈은 거의 모든 공연에서 관객들에게 마이크를 넘기다보니 가수 자체의 역량을 의심받는 경우가 많다. 이 덕분에 김장훈 콘서트를 세상에서 제일 비싼 노래방이라며 까는 사람들도 있다. 위 영상에서는 대놓고 흡연까지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심지어 신생아 창법이라고 불리우는 이 동영상에서는 내지를 때 아이의 우는 소리까지 내는 위엄을 보여주고 있다 떼쓰기 창법까지 나왔다... 왜 제목이 이런지는직접 들어보고 판단하자.

사실 김장훈이 이렇게 된 것은 본인의 자만과 관리실패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SNS로 많은 논란을 만들기 전인 200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음정은 잘 못맞췄어도 음색 하나로 대중들에게 어느 정도 평판을 유지했으나,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자기 관리 실패와 자만으로 목 관리를 심각하게 못하고 자기 음역대에 맞지 않는 노래를 하게 되면서 결국 이 지경까지 가버렸다.

결론적으로 대중들과 팬들은 기부 활동들은 할 만큼 했고, 잘 하고 있으니 이제는 제발 좀 본업에도 충실하라는 비판어린 주장이 자주 나오고 있다.

숲튽훈 드립이 어느 정도 인지도를 얻고 나기 시작한 후에는, 숲튽훈과 김장훈은 별개의 존재라는 농담이 나돌고 있다. 이 드립 또한 야갤세이콘 드립의 변형이라 할 수 있다. 숲튽훈의 혼이 김장훈에게 빙의되었다, 김장훈으로 돌아와달라 등등...

실제로 "김장훈" 모드는 좋은 음색과 좀 제대로 된 라이브에 많이 비유되며 흔히 말하는 "숲튽훈" 모드는 친환경보컬 소리를 듣는 닭소리를 내는 라이브에 비유된다. 이 동영상이 대표적으로 두 모드를 비교하는 좋은 예시.

욕설 사건 이후로 1년 넘게 자숙하다가 다시 복귀하면서 콘서트를 열었는데, 오히려 상태가 더욱 심각해졌다. 목소리가 더 늙어가는데[25] 닭창법은 전혀 고치질 않아서 가수로서의 장점은 사실상 없다시피 하다. 음역대 자체가 좁아져서 저음도 예전처럼 낮게 못내고, 고음은 2010년대 중반까지는 지르면서라도 음에 맞게는 냈는데 지금은 아예 못내고 있다. 심지어 '노래만 불렀지'의 1절에서는 저음을 아예 못내서 음도 못맞추고 '방황에 익숙해있기 때문이'[26] 부분을 전성기 시절엔 11초 동안 끌었던 것에 비해 2018년 현재엔 겨우 3초밖에 끌지 못하고 있으며 심지어 끝부분에는 갈라지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장훈의 페이스북에서 올라온 라이브 영상에서 들을 수 있다. 그래도 '나와 같다면'과 '세상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의 키를 내려서 노래하는 것을 보았을 때 현재 자신의 실력을 어느정도 인지한 듯 하나 특유의 거북한 내지르기와 샤우팅은 전혀 고쳐지지 않아서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상태가 더욱 심각해지면 심각해졌지 좋아질 것 같지는 않다. 사실상 마지막 탈출구는 창법을 바꾸는 방법인데 창법을 바꾸지 않는 이상 2000년대와 같은 포스를 내기엔 사실상 불가능해보인다.

2.1. 모창[편집]

김장훈을 모창하는 사람들은 꽤나 많다. 김장훈 목소리가 워낙 특색있다보니 따라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임재범이나 이문세처럼 따라하는 사람은 많아도 정확하게 카피하는 사람은 있을지 의문이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2절 가사 틀리는 디테일 '숲튽훈' 컨셉으로 모창해서 유명해진 것도 있다.7단고음까지 완벽하다.

3. 음반 목록[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김장훈/음반 목록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 콘서트[편집]

콘서트에서 발차기와 같은 여러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강심장에서 이러한 퍼포먼스를 시작한 이유를 밝혔는데, 콘서트에서만큼은 자본주의의 폐해를 없애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러다가 한 여학생의 자살시도를 막았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계속해서 이러한 일을 계속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러한 일들 중 당시 대한민국에서 제대로 된 콘서트 장비는 없고 상당수를 대여하거나 하면서 사용해야 했던 현실과 이공계 기피 현상으로 인해서 빡친 김장훈은 직접 카이스트로 가서 선물용으로 케이크와 난초를 들고 휴보를 빌리는 일을 진행하였다. 박사가 처음에는 반대하다가 김장훈이 계속 조르니까 "그러면 나 말고 다른 연구원들이랑 교수도 설득시켜봐라."이라고 하자 자기가 가수인지 모르는 연구원들이랑 술을 마시며 30여분 동안 대화를 나누며 그들을 설득시켰다. 그러자 박사는 "우리들만 설득시키면 안 되고 정부의 산업자원부도 설득시켜야 한다."이라고 하자 또 선물을 들고서 산업자원부까지 가서 설득을 하자 담당자가 교수에게 전화 걸어서 김장훈 공연 도와줘야겠다고 말했다고. 결국 휴보와 콘서트를 했다.

이로 인해서 카이스트는 물론 여러 박사들도 김장훈을 좋게 보았는지, 회식자리에서 수십 명의 박사들이 김장훈에게 콘서트에 자기랑 관련된 분야(우주선, 비행기 등등)에서 필요한 게 있으면 연락달라고 했다한다. 또한 카이스트 기계과에는 4학년 필수 교과목 중 "창의적시스템구현" 이라는 교과목이 있는데, 이 과목에서는 잠깐이지만 김장훈의 콘서트 장비를 만드는 내용을 다룬다고 한다.[27] 때문에 카이스트에서 김장훈의 인지도는 특히 높은 편이다.[28]

2015년 12월 21일에는 청주교도소에서 콘서트를 진행했다. 참고로, 청주교도소 108년 역사상 최초의 가수콘서트이자, 교도소 공연 역사에서도 대한민국 최초의 가수 단독콘서트다. 게스트로는 전직 국가대표 선수들로 구성된 대한민국 스포츠합창단도 참가하고, 교도소 수용자들로 구성된 중창단과 밴드까지 준비를 많이 한 듯하다.

와이어 퍼포먼스도 자주 선보이는데, 2002년 7월 100일 공연을 하던 중 와이어가 끊어져 추락하면서 어깨가 부서지는 큰 중상을 입은 적도 있었다.[29] 이 후 3년 정도는 와이어를 기피하다가 2005년 8월 스스로 극복했다고 선언하고 와이어를 다시 타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5. 김현식과의 관계[편집]

김현식과 김장훈들의 어머니끼리 어릴 적부터 친자매처럼 지낸 사이여서 김장훈과 김현식은 어릴때 부터 형동생하며 지낸 사이라고 한다. 김장훈이 김현식의 친동생인지 아는 사람도 더러 있다. 김장훈은 당시 김현식의 사촌동생으로 소개되어 내사랑 내곁에를 부른적이 있다. 다만, 말도 안되는 삑사리와 박자놓침의 일관으로 방송용 가수의 수준으로 절대 볼 수 없는 방송사고급의 무대를 보여 당시 고인에 대한 추모와 그리움으로 엄숙했던 장내 분위기를 '깨게 만드는' 흑역사급의 데뷔를 기록하고 있다.

이후 내사랑 내곁에 5주연속 1위의 골든디스크 시상무대를 역시 그가 대신 부르기로 예정한 걸 펑크 내버리며 7년동안 방송출연금지, 인터뷰 금지의 조치를 당하게 되었다.[30] 나중에 명랑 히어로에서 밝힌 바로는 "소속사하고 딱 한번만 하기로 했는데, 계속 혈육이라며 거짓말을 하며 김현식을 팔길래 잠적했다."라고 밝혔다. 훗날 자신의 앨범으로 가수활동을 재개하면서도 계속 사촌동생으로 소개 되었으며, 김장훈 자신도 그것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데뷔 10년이 넘어서야 사촌동생이 아니라는 언급을 했다.

속사정이야 본인밖에 모르겠지만... 김현식을 파는 게 싫은게 아니고 데뷔 무대를 망친 PTSD 때문에 도망친 걸, 훗날 그럴싸하게 얼버무린 건 아닌가라는 의심을 받을 수도 있는 행적이라는 추측도 있다.

김현식 헌정앨범도 냈다. 돈과 정성을 많이 들인 티가 나는 앨범이다.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김현식의 아들인 김완제와 같이 출연한 적이 있다.

6. 유희열과의 관계[편집]

유희열과는 각별한 사이이다.

유희열이 서울대 작곡과 입학하기 전인 1989년에 친구의 누나가 소개팅을 시켜준다고 해서 카페로 나갔는데 그 소개팅 상대가 바로 김장훈이였다. 김장훈이 자신의 밴드인 "김장훈과 한국사람"의 건반주자를 구하고 있어서 소개팅이라고 속이고 유희열을 불러냈다고 한다. 그 이후에 김장훈의 밴드 한국사람에 건반주자를 맡게 되고 클래식 전공인 유희열이 가요를 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31] 이후 서로 엄청나게 싸웠다고 하는데 당시 유희열의 증언에 따르면 밴드들간의 불화가 끊이질 않아 결성한 지 채 몇 달도 안 가서 김장훈과 자신 둘만 남게 되었다고... 결성초기 김장훈은 유희열을 추운 반지하에 가두어 연습을 시켰고 유희열은 말도 없이 친구와 설악산 여행을 가버리는 등 팀웍이... 그리고 결국 파국에 치닫게 되며 몇 년 동안 연락을 안 했는데 활동기간이 겹친 시기 방송국에서 재회 후, 다시 끈끈한 사이가 되었다고 한다.

김장훈의 1집에 수록된 "햇빛 비추는 날"이 바로 유희열의 곡이다. 이 노래는 토이 1집에도 수록되어 있다. 후에 유희열은 김장훈에게 히트곡을 주게 되는데 그게 바로 '난 남자다'란 곡이다.

유희열이 스케치북을 제외한 예능 프로그램에 나온다면 김장훈과 항상 같이 나온다고 봐도 무방하다.[32] 절친노트, 명랑히어로[33], 음악여행 라라라에 동반으로 출연했다. 김장훈이 유희열에게 2천만원을 빌렸는데 돈을 갚으면 유희열을 무시하는 것 같아 갚지 않겠다 말하자 유희열은 돈을 돌려받는 것을 포기하겠다 쿨하게 넘겼다.
유희열이 진행하는 KBS 라디오 프로그램인 유희열의 라디오천국에서도 고정과 게스트로 자주 등장하였다. 특히 유희열과 함께 진행했던 "원맨쇼"는 한국 라디오 역사상 길이 남을 명코너다.[34]

7. 사건사고[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김장훈/사건사고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8. 히트곡[편집]

  • 노래만 불렀지 (1996) [35]

  • 나와 같다면 (1998)

  • 사노라면 (1998)

  • 세상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1998)

  • 슬픈 선물 (1999)

  • 오페라 (1999)

  • 난 남자다 (2000)

  • 혼잣말 (2000)

  • 고속도로 로망스 (2004)

  • 허니 (2006)

  • 소나기(김장훈)(2008)

9. 저서[편집]

  • 나를 도발한다.


2016년 12월,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출간했고, 임원의 여직원 성추행 사건으로 논란을 일으킨 쌤앤파커스에서 김장훈의 자서전이 나왔다. 책을 쓴 이유는 '왜 몇 십년 째 나눔(기부)을 하는 것일까?'에 대한 대답이라고 한다. 거짓기부 연속 보도들 직후 책이 나와 민망하게 됐다.

2017년 1월7일 광화문교보,1월14일 강남교보에서 싸인회와; 따로 2월에 북콘서트를 열 예정이라 했으나 소리소문 없이 사라졌다.
2017년 1월 17일 인세 1억을 기부하겠다 주장했다.기사

가수 이전에 참 넉넉한 남자다. 그것도 ‘얼토당토않은’ 일을 태연히 하는 남자다.[36] 그는 이웃을 사랑하고 어두운 곳에 불을 밝히고 싶어 하는 남자다. 그 일들은 대개 다른 사람이 하고 싶어도 해내지 못하는 일들이다. 그리고 그걸 내세우지도 않는다. 나는 그게 늘 고맙다. 솔직히 ‘아주아주’ 미안하기도 하다.
전원책의 추천사

그의 책은 에세이라기보다 소설에 가깝다. 그만큼 극적이다. 책을 읽는 내내 그의 인생에 서린 눈물과 환희에 공감할 수 있었다. 거칠지만 그의 노래가 감동을 안겨주듯 그의 글에는 진심이 담겨 있다. 그의 삶과 음악이 어우러진, 한 편의 뮤지컬 같은 책이다.
김수로의 추천사

추천사인지 비아냥인지

10. 기타[편집]

  • 혼자 있을 때는 밥을 챙겨먹는 둥 마는 둥 하는 걸로 유명하다. TV 프로그램에 김장훈의 집이 나오면 99% 확률로 안습한 식사를 하는 모습이 나올 정도.

  • '소리를 잘 내기위해' 팔을 담뱃불로 지지는 자해도 시도해봤다 한다.

  • 어린 시절, 사업을 했던 어머니 덕분에, 어린 시절 가정부는 물론 운전기사까지 거느리며 꽤 부유한 환경에서 자랐다.

  • 아들이 밖에서 욕을 안듣게 하기 위했던 어머니의 엄한 교육을 견딜 수 없어 세는나이로 17세에 가출을 해 검정고시를 봤다.

  • 독도 문제에 몸소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등 대중들에게 자신의 애국심을 어필해왔다. 그렇게 얻은 폭넓은 인지도로 다큐멘터리를 제외한 독도 관련 TV프로에 한번씩은 꼭 나왔을 정도. 하지만 후술하듯 2016년 히로시마를 방문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한국인위령비엔 안 갔다고 사람이 아니라는 발언을 한 것으로 보아 일본이 엮이기만 하면 외교관계가 자기 마음대로 안 돌아간다고 투덜대는 극단적인 민족주의적 면모도 있다.

  • 2012년 1월, 성신여대 서경덕 교수와 함께 도쿄 중심가에 일본군 위안부 포스터를 부착했다. 2011년 12월 29일 게재한 월스트리트 저널과 같은 디자인이지만 영어를 일어로 번역하고, 크기를 늘렸다.# 김장훈은 자신의 SNS에 '노후보장연금보험'까지 꺠고, 모자라면 공연, 꽃배달 사업까지 해 위안부 굉고를 게재한다. 뉴욕발 외신을 기다려달라 홍보했지만, 광고비를 내지 않고 도망가 뉴욕 업체로부터 소송을 당했다.

  • 연예계에서도 소문난 두산 베어스의 열혈팬이다. 다만 그가 직관할 때마다 두산이 지는 징크스가 있는 직관필패의 화신이라고 한다. 샤다라빠의 필패법칙이 그에 의해 깨졌다.

  • 2007년 8월 KBS '해피투게더'에 출연해 "성추행범을 만난다면 말로 할게 아니라 바로 일격을 가해야 한다”고 충고하며 자신의 일화를 공개했다. 김장훈은 예전에 성추행범을 목격하고 일격을 가했지만 결국 김장훈만 맞은 뒤 싸움은 끝나 버렸다고 전했다. 김장훈은 “성추행범이 세상에서 제일 싫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누나들이 많아 그런 부분에 예민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 2010년 7월 활동 7년만에 미국으로 제대로 된 휴가를 갔으며 불면증 치료가 목적이라고 밝혔다

  • 윤종신에 의하면 지갑을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고 한다. 김장훈이 술을 사겠다고 해서 윤종신과 함께 술을 마셨는데 계산할 때 김장훈이 돈을 꺼냈는데 호주머니에서 꼬낏꼬낏한 현금을 꺼내서 계산했다고 한다. 윤종신이 이걸 보고 "무슨 마약 사는 사람도 아니고"라는 멘트를 했다.

  • 2011년 1월 20일 경희대 평화의전당에서 열린 하이원 '서울가요대상'에서 싸이와 함께 공연하던 도중 객석으로 내려와 소녀시대태연과 포옹했다.# 이에 대한 소녀시대 팬들의 반응은 "김장훈 개새끼 해봐", "김장훈 부럽다", 그리고 "아버지와 딸뻘이다"로 나뉘었다.

  • 해피투게더에 나와서 말하기를 "자식이나 가족을 이용하는게 제일 웃겨". 전에 두시탈출 컬투쇼에 출연해서 각자의 어머니 이름을 밝혔을 때, 어머니 성함이 "성애"씨라고 하자, 정찬우가 "이름에서 본능이 느껴지시네요."라면서 개그를 쳤고, "가족과 종교를 이용한 개그는 사장되어야 한다"라면서 흥분한 적이 있다.

  • 염색을 굉장히 자주한다. 한때 보라색 머리를 하고 다녔을 때 누가 일본풍 머리라고 부르며 까였다고 한다.

  • 토호쿠 대지진 때의 조롱이나 반일성 반응에 대해 "인간답게 살자"는 코멘트를 남겼다.

  • 평소에 양말을 잘 신지 않는다. 왜 안 신냐는 인터뷰기자의 질문에 '어차피 벗을 건데 왜 신어요'라고 답했다.

  • 흑역사가 된 영화에 출연한 적이 있었으며 김장훈 팬들이 절대 봐서는 안 될 영화 0순위라는 얘기도 있다. 그냥 모든 출연자와 그들의 팬들이 봐서는 안되는 영화 라디오 스타에선 각본상 선배뻘인 박중훈을 돈 안 갚는다고 신나게 디스했다.

  • 2011년 10월 22일, 공황장애로 병원에 입원했을 때 병실에서 막걸리를 마시다가 들켜서 강제 퇴원 당할 뻔했다. 23일에 자기 스스로 미투데이인증했다.#

  • 2012년 1월, 성신여대 서경덕 교수와 함께 도쿄 중심가에 일본군 위안부 포스터를 부착했다. 2011년 12월 29일 게재한 월스트리트 저널과 같은 디자인이지만 영어를 일어로 번역하고, 크기를 늘렸다.# 김장훈은 자신의 SNS에 '노후보장연금보험'까지 꺠고, 모자라면 공연, 꽃배달 사업까지 해 위안부 굉고를 게재한다. 뉴욕발 외신을 기다려달라 홍보했지만, 광고비를 내지 않고 도망가 뉴욕 업체로부터 소송을 당했다.

  • 공연에서 가끔 솜씨 좋은 하모니카를 연주한다.

  • 젊었을 때도 한 성질 했던 것 같다. 그야말로 거친 야수였다고. 다만 성격만 있어서 본인이 피해본 적이 더 많다고 밝혔다.[39] 유희열은 김장훈이 잘 먹어서 지금처럼 빼빼 마르지 않았다면 사람도 죽였을 거란 드립을 치기도 했다. [40] 성시경은 자신의 데뷔무대 때 김장훈이 대판 싸우는 바람에 자신이 데뷔 못하는 줄 알았다고 말하기도. 그 외에 스태프가 자기 몫의 달걀을 먹었다고 방송 중에 나갔다는 전설적인 일화도 전해진다. 물론 나이가 들면서, 결정적으로 가정을 위해 4집부터는 오버에서 활동하기로 하면서 마음을 고쳐먹었다고.

  • 어린 시절 몸이 약해 피해의식이 있었다고 한다. 길에 나가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시비를 걸거라는 걱정에 머리 속으로 낭심을 차고, 박치기를 하는 상상을 하면서 긴장했다 한다.

  • 공황장애가 완치되었다고 얘기를 할까 매니저와 상담했더니 좋은 일도 하지만 가끔 터트리는 사건, 사고 때문에 그냥 가지고 있다 말해라 했다 한다.

  • 2012년 9월 슈퍼7의 기획과 연출을 맡아서 여러모로 이야기가 많았다. 자세한 것은 문서 참조..

  • 2012년 11월 30일 고은아와의 열애설이 났지만 오해라고 본인 스스로 밝혔다. 다만 오해할 만한 글을 개인 홈페이지에 작성한 데다가 너무 오버하는 모습을 보였다.

  • 2014년 9월쯤 이해할 만한 개그를 괄호로 설명하는 것으로 욕을 먹었다.

  • 2016년 2월, 신혜성의 콘서트에 게스트로 출연해 신혜성의 팬들을 성추행했다는 논란이 있었다.#

  • 예전부터 연예인 중에서는 바둑 잘 두는 사람으로 손 꼽히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알파고 - 이세돌 바둑 경기에 해설로 나왔다. 그러나 기존의 비호감 이미지와 안티들 때문에, 특히 바둑을 잘 모르는 시청자들에게는 쟤는 프로도 아닌데 왜 나왔냐?라는 욕을 먹기도 했다. 그러나 김장훈은 실력도 아마 6단(최고단수 7단 바로 아래)으로 프로를 제외하곤 매우 높은 편이며 한국기원 홍보대사이기에 해설에 나올 자격은 충분히 된다. 물론 아마추어이지만, 단지 실력이 좋은 사람만 해설진으로 출연시킬 것이면 프로기사 외에는 아나운서도 출연시킬 필요가 없다. 실제로 아마추어 고수들 입장에서 궁금한 부분을 짚어 줄 수 있기에 이런 출연 자체는 충분히 의미가 있다. #

  • 바둑과 관련된 에피소드 중 하나로 조훈현의 딸에게 김장훈은 '약속도 안 지킨 거짓말쟁이'라는 평가를 들었다 한다. 1999년, 삼성화재배에 구경을 갔다 조훈현과 그의 딸을 만났고, 이 때 콘서트 표를 주겠다는 약속을 했다가 그만 김장훈은 잊어버렸다고.

  • 돈이 없어 생리대를 쓰지 못하는 여학생들을 보고 복지사업에 관심이 생겼다 한다. 기업들이 돈을 벌면 사회에 환원해야하는데 대한민국 기업들은 기업윤리가 없고, CEO들도 기부를 안하기 때문에 자기가 팀을 꾸려 대한민국 복지를 끝내겠다 다. 그 시작으로 생리대를 공급하려 했으나 알아보니 위생 인증 등 힘들어 보여 접었다. 눈을 돌려 소방관들에게 기본지급 되지않는 아이젠을 제공하고 싶어했다. 결과적으로 이루지 못했지만 소방관 프로젝트는 결과적으로 경기도의 지원으로 크레용팝과 함께 한 소방관 가족을 위한 무료공연으로 이루어졌다. # 크레용팝 문서를 참조.

  • 2016년 10월 1일 MBC가 주최한 '2016 DMC 페스티벌'에서 '대한민국 공연의 전설'로 엔딩무대에 올라 '난 남자다'를 불렀는데 통편집이 되었다. 제작진의 입장직캠을 참고하자.

  • 박근혜 퇴진을 위한 20차 집회 때 까지 나갈 생각이다 전했다.
    2016년, 12월 3일, 6차 범국민행동에 이어, 10일 7차 범국민행동에도 참가했다. # 그 후, 8차, 9차에는 참여하지 않다가 31일 자신의 공연을 취소하고, 10차 집회에서 노래를 부른다고 한다.

  • 공연 중 “여러분 제가 제일 못하는 게 뭘까요.”라고 관객들을 향해 질문했는데 앞 쪽에서 “노래”라는 대답이 나왔다. 아마 본인이 원했던 답은 ‘불의를 못참는다.’였던 모양이다.

  • 라이브 하던 도중 방청객 한명을 데려다 노래 시켰는데 본인보다 잘 불렀다카더라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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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흔히들 숲튽훈이라고들 한다. 숲튽훈은 야민정음이다. 다만, 김장훈의 장은 길 長이 아닌 글 章이지만 숲튽훈이 김장훈보다 어감이 찰진 편이라, 비디시러들 사이에서도 널리 쓰인다.

  • 위 야민정음에서 알수있듯 야갤에서는 김장훈을 '갤주님'이라 부르며 칭송하고 있는데 진심으로 그러는게 아니라 세이콘같은 의미로 그러는 거다. 김장훈 본인은 야갤에 대해 "거기 일베같은 곳 아닌가?"란 반응을 보인 적 있다. 틀린 말은 아니긴 하다

  • 63년생으로 50대 중반이지만 나이에 비해 꽤나 젊은 얼굴을 유지하고 있다.[41] 지금도 그럭저럭 잘생긴 편이지만 젊은 시절에는 지금보다 이목구비가 뚜렷해서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1] 김장훈 본인은 자신의 원래나이를 밝히기 싫어해서 프로필 상에는 1967년생으로 소개되어있다. 하지만 이 영상의 1분 18초를 보면 김장훈의 이름 옆에 49Y가 표시되어 있다. 병원에선 본인의 정확한 인적사항을 적어낸다는 점과 촬영시점인 2012년 8월 기준으로 만 49세라는 점을 미루어보아 1963년생이 맞다.[2] 현재는 가천대학교 글로벌캠퍼스[3] 예장통합이라고 적혀있는 위키들이 있는데 어머니가 운영하는 교회부터가 예장중앙이다. [4] 과거에는 긴급조치 19호 등 배우 활동도 병행했었다.[5] 김장훈 중에서 김, 장을 각각 金, 長으로 변형시킨 것. 왜 하필 長인가 할 수도 있겠지만 한자 상관없이 모든 장을 튽으로 바꾸는 게 야민정음의 규칙이다.[6] 실제로, 광성중학교 25회(79년) 졸업생이라 1963년 생이 정설인 것으로 추측된다.[7] 주민등록상으로 66년생이나 본인 주장으로 62년생이라고 하는 임재범의 경우 다른 62년생을 형님으로 모시거나 몇년마다 주장하는 나이가 수시로 바뀌어서 신뢰성이 다소 떨어지지만, 김장훈의 경우 다른 연예인들이 일괄적으로 63년생으로 대하는 걸 보면 방송용 나이만 다를 뿐 정확한(주민등록상) 나이가 63년생일 가능성이 높다. 이승철만 하더라도 슈퍼스타K 심사 중 김장훈 얘기를 하며 자연스럽게 "장훈이 형"이라고 지칭했는데, 한살 많은 이승환에게도 형이라고 잘 안 할 정도로 자존심이 세다.(다만 이승환의 경우에는 본인 주장으로 65년 12월생인 것이고 신분상으로는 66년 1월생이다. 그래서 신승훈 하고도 친구사이다.) 김장훈이 확실히 몇살 많다는 확신이 없으면 형이라고 할 가능성이 적다.[8] 이는 KBS 스펀지 16회에서 소개되었으며 이 때 그는 식당에 갔다가 인삼을 보고 영감을 얻었다고.[9] 1995년 가수 박상태가 불렀던 곡을 리메이크했다. 당시 박상태의 원곡은 아쉽게도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김장훈이 불러 뒤늦게 빛을 본 사례.[10] 이 노래의 히트로 처음으로 메이저급 기획사에 들어가게 된다. 이때 받은 계약금 9억 원을 비행청소년 선도 자원봉사활동 하던 어머니한테 모두 줬다고 한다. 김장훈의 기부활동의 시작이라고 볼 수도 있다. 또한 4집의 '세상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곡도 사랑을 받았다.[11] 원곡은 문관철의 곡이며 전혀 코믹한 곡이 아닌데, 김장훈이 부르면서 코믹성이 들어갔다.[12] 일종의 k-mooc같은 것이다. 다만 김장훈이 들은건 수강인원에 제한 없이(Massive), 모든 사람이 수강 가능하며(Open), “offline 기반의 (Offline) 강좌(Course)라는 차이점이 있다.[13] 굉장히 심각한 인골라 발성을 구사한다.[14] 가성을 아주 안 쓰는 건 아니지만 진성으로 부르는 부분 만큼은 순수하게 진성으로 부르는 경향이 있었다. 4집부터의 거친 보컬 스타일도 그렇고.[15] 현재의 창법.[16] 정확히는 2옥타브 라# 이상의 음부터 얇아졌다.[17] 뜬금없이 담배를 피거나, 갑자기 샤우팅을 하는 등의 행동들.[18] 흔히들 닭소리라고 하는 그것으로, 2011년쯤부터 고음에서 목소리가 억지로 내는 느낌으로 얇아지는데 그 상태에서 확 내질러서 나오는 소리다. 김장훈의 아리랑 영상을 부르면 2초만에 나온다.[19] 이때 이문세, 성시경과 함께 공연했다.[20] 노래만 불렀지 라이브에서 김장훈이 박자를 아예 무시하는 바람에 피아니스트가 박자를 놓치고 다시 맞추는 불상사가 벌어졌다.[21] 2옥타브 라의 음을 무려 11초간 끈다.[22] 하지만 2009년 당시 기준으론 틀린 말은 아니였다.[23] 멀리 가지 않아도 이미 김광석이라는 사람이 증명해주고있는 사실이다.[24] 링크[25] 저음에서도 음색이 예전같지 않다.[26] 2옥타브 라.[27] 방송에서는 마치 김장훈의 콘서트 장비만을 만드는 과목인 것처럼 과장해서 말했지만, 사실은 전혀 아니다. 참고로 해당 교과목은 교수와 학생들이 팀을 짜서 한 학기~두 학기 프로젝트를 한다.[28] 카이스트에도 자주 기부한다고 한다.[29] 어깨를 부상당하고 고통스러워 잠도 제대로 못 잤는데, 공연하고 싶어서 3주도 안 돼 공연장에 또 가서 공연하다가 부상이 도진 적도 있다고...[30] 펑크낸 김장훈을 대신해 장필순이 골든디스크 시상식에서 그 자리를 대신했다.[31] 이 때 김장훈이 유희열을 자신의 밴드에 영입하려 찻집에 불러놓고 한 말이 "내가 들국화 보다 음악 더 잘해" 였다고 한다.(...) 물론 김장훈의 성격상으로 볼 때 유희열을 꼭 영입하고 싶어서 본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한 것 같긴하다. 방송에서 말하길 이 때 유희열이 속마음으로 "아 미친X구나"라고 생각했다고. 물론 둘의 사이가 각별하니 이렇게 얘기할 수 있는 것이다.[32] 그러나 이는 이제 옛날 말이 되었고 무한도전 가요제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슈가맨과 비긴어게인 등 김장훈 없이 혼자 활발한 방송활동을 하고 있다.[33] 무려 10년만에 나온 예능이라고 한다.[34] 이걸로 라디오천국 PD가 상까지 받았다.[35] 엄밀히 따지면 히트곡은 아니나 김장훈의 이름을 알린 곡이며 김장훈 자신도 큰 애착을 가진 곡이라 항상 콘서트 엔딩곡으로 불러 유명해졌다[36] 노무현 추모제에서 본인이 경찰과 싸운 것을 언급하며 마이크에다 대고 '아 씨발 진짜'라는 미친 발언을 했다가 미친듯이 까이는걸 보면 틀린 말은 아닌 듯.[37] 이 링크를 들어가서 3분 25초부터 보면 영향받은 가수 중에 누가 있는지, 왜 그가 그렇게 고음에 집착하는가 등을 알 수 있다. 또한 5분 55초부터 9단 고음도 하이라이트다.[38] 한국으로 귀화했으며 현 세종대 교수.[39] 예를 들어 대중교통을 타다가 불의를 못 참고 싸웠더니 정신을 잃었다는 일화처럼.[40] 과연 김장훈은 한 소속사에 오래 있던 적이 드물다. 자신은 직원들과는 사이가 좋았고, 사장의 횡포에 분연히 들고 일어난 것뿐이라고 한다. 실제로 당시는 지금처럼 가수의 권리가 강화되고 체계화된 시절이 아니긴 하다. 하지만 매니저들은 좀 다르게 본다는 썰도 있다.[41] 사실 최근에는 보톡스를 맞고 있다고 윤종신이 우회적으로 언급한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