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자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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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백상예술대상_로고.png 영화부문 여자 최우수연기상

김지미
(1974)[1]

김자옥
(1976)

태현실
(1977)

김윤경
윤미라
(1978)

김자옥
(1979)

유지인
(1980)

파일:백상예술대상_로고.png TV부문 여자 최우수연기상

여운계
(1974)

김자옥
정혜선
안인숙
(1975)

김혜자
홍세미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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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김자옥(金慈玉)

출생

1951년 10월 11일, 부산광역시[2]

사망

2014년 11월 16일 (향년 63세)

발인예배

2014년 11월 19일,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본관

서흥 김씨

가족

배우자 오승근, 딸 오지연[3], 아들 오영환, 동생 김태욱[4]

학력

배화여자중학교
배화여자고등학교
한양대학교 연극영화학 (중퇴)

데뷔

1970년 MBC 2기 공채 탤런트

취미

독서, 공상

종교

개신교(예장합동)[5]


1. 소개2. 가족3. 투병과 그 이후4. 트리비아5. 출연
5.1. 영화5.2. 드라마
6. 수상

1. 소개[편집]

대한민국의 배우. 말년에는 중년의 여인 역을 주로 맡았지만, 사실 1970년대에 하이틴 스타로도 활약한 경험이 있다. 귀여운 외모에 호감 가는 인상은 말년에도 잘 드러났다. 현재 아줌마, 시어머니로 나오는 많은 중년 이상의 배우들 중에서 트로이카 배우들을 제외하고 김자옥만큼 인기를 누린 여배우는 없다.

중년 노년 어머니 역할을 많이 하는 여배우들 중에서도, 젊었을 때 연기커리어가 엄청나게 화려한 편이다. TV의 보급으로 드라마가 영화의 위치를 대신하게 되었을 때 김자옥은 김영애, 한혜숙과 더불어 안방극장의 트로이카[6]라 불릴 정도로 인기를 누렸다. MBC에서는 양정화와 더불어 투톱 라인이었다.[7] 김영애, 이효춘도 유명했지만 김자옥과 출연하면 이들도 주조연으로 밀려날 정도로 김자옥의 위세는 다른 MBC 여배우에 비해 압도적이었다. 이후 영화계가 박동명 사건의 여파로 기존의 영화 여배우들이 몰락하여 여배우 기근 사태로 신음하고 있을 때 김자옥이 이들 자리를 대체하였다. 그리하여 전형적인 호스티스물인 O양의 아파트, 정윤희와 함께 출연한 가을비 우산속에 등의 흥행작도 자주 내었다. 물론 정윤희 등의 트로이카가 유행하던 시절에는 대중적인 인기에서 이들 트로이카 여배우한테 밀렸지만, 적어도 그 다음의 자리는 차지했다. 이런 트로이카 여배우들이 맹위를 떨치던 시절에도 흥행작을 여러 편 냈을 정도로 기세만 놓고 보자면 트로이카를 압도하지는 못했어도 위축되지는 않았다.

흥행기록만 놓고 보면 당대 트로이카였던 유지인과 정윤희를 제칠 정도의 기록을 보유했다. 당시 그녀보다 흥행에서 앞섰던 여배우는 안인숙이나 염복순같은 원 히트 원더를 제외하면 이영옥장미희[8]밖에 없었다. 사실 그녀가 2000년대 이후 다시 활동을 시작했을 때 그녀와 비슷한 나이대에 활동하는 중년 여배우들이랑 비교하면 그녀의 커리어를 따라잡았거나 그녀와 흥행상에서 대등했던 여배우는 없었다.

또한 데뷔 때부터 외모뿐만 아니라 연기력까지 훌륭하다고 호평 받았던 흔치 않은 여배우였다. 지금 레전드 거성이 된 고두심은 김자옥에 비하면 정말 새발의 피라고 불릴 정도이다.[9]

부드럽고 촉촉한 목소리로도 유명하다. 덕분에 오랫동안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을 진행한 적도 있다.

주로 드라마에 많이 출연한 배우로 알려져 있지만, 영화에도 많이 출연한 경력이 있다. 1980년대에는 정부의 3S정책에 의해 상당히 야한 영화에도 나왔었다. 1990년대 이후에는 예능 프로그램에도 종종 나왔는데, 1996년 MBC 코미디 프로그램 《오늘은 좋은날》에서 조혜련, 서춘화 등과 출연해 공주병 여고생 컨셉으로 열연한 개그가 대히트했다. 예를 들자면, 입원하신 선생님의 문병에 돈을 모아 꽃을 사가자고 하자, 김자옥은 이렇게 말한다. “어머, 꽃을 돈 주고 사는 거였구나! 난 남자애들이 나한테 갖다 주는 건 줄 알았어”라는 식이다. 그때 싸움을 건다거나 비명을 지른다거나 하면서 날뛰는(?) 것이 조혜련, 서춘화 등의 반응. 일부에서나 쓰던 공주병이라는 말을 사실상 유명하게 만든 인물이다.

그 여세를 몰아 1996년 말에 태진아의 도움으로 《공주는 외로워》라는 곡으로 활동한 적이 있다. 앨범이 꽤나 팔리는 등 꽤나 히트를 치면서 가요차트에서 중상위 권 안에 드는 등 선전했고 이 노래를 통해 당시 우울증도 나았다고 한다.

중견 배우였던 그녀는 이를 계기로 또 한 번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었으며 이 때의 활동 때문에 공주병 기믹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배우가 되었다. 한 번 들어보자.

사실 컬트 팬들 사이에서는 《살인나비를 쫓는 여자》의 '자옥 공주'로 더 유명하다.

2. 가족[편집]

아버지가 시인 김상화이다. 어릴 적 아버지의 바람기가 심해, 가족 모두가 마음고생이 심했다고 한다. 심지어 그녀의 어머니가 김자옥에게, "네 아버지 죽었으면 좋겠다", "밤에 화재가 났을 때 (방에서 자고 있던)네 아버지를 안 깨우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었다" 고 말했다고 했을 정도. 그러나 김자옥이 해석하기로는, 어머니가 아버지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미움도 컸을 수 있다고 했으나, 본인도 어린 나이에 아버지가 미워서 편지에도 아버지를 해치겠다고 써서[10] 아버지 방에 두었다고 했었으니, 어쨌든 힘들었던 가정환경이었던 건 사실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남편은 가수 오승근[11][12]. 김자옥과 오승근 각자에게 모두 재혼이었으며, 오승근 사이에서 아들 1명을 낳았다. 그리하여 오승근의 전처 소생 딸과, 재혼 후 낳은 아들까지 1남 1녀를 슬하에 두고 살았었다.

그의 형제도 이쪽 분야에서 일하는데, 김자옥의 9세 아래 남동생은 SBS의 아나운서로 입사하여 활동 중인 김태욱 아나운서팀 부국장이다. 채시라의 남편으로 알려진 가수 출신의 사업가 김태욱과는 동명이인이다.

3. 투병과 그 이후[편집]

2008년, 대장암 진단을 받아 수술과 항암치료를 받고 회복되어 연예활동을 재개했다. 대장암에서 회복된 후 시트콤지붕 뚫고 하이킥》에 출연한 것을 시작으로, 꾸준히 드라마, 영화,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활동을 거의 쉬지 않았다.

2013년 말, tvN의 예능 프로그램 《꽃보다 누나》에 출연하면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는데, 그동안 암 수술과 공황장애 등을 치료하며 꽤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밝혔다. 실제 방송에서도 다른 연기자들이 많이 챙기는 모습이 나온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방영된 SBS 드라마 《세 번 결혼하는 여자》에도 출연했다. 하지만 《꽃보다 누나》 촬영과 방송에 이어 《세 번 결혼하는 여자》는 결국 그녀의 마지막 출연 프로그램이 되었다. 마지막 영화 출연작은 같은 해 2월에 개봉한 홍상수의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2014년 봄, 《세 번 결혼하는 여자》 종영 후 한동안 휴식기를 가졌는데, 사실 전에 발병했던 대장암이 폐와 임파선 등 다른 장기로 전이된 상태였다고 한다.[13] 결국 상태가 급격히 악화되어, 2014년 11월 16일에 세상을 떠났으며 63세 생일을 맞이한 지 겨우 한 달만이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자신의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는 듯한 모습을 자주 보여주었다. 《무릎팍도사》에서도 "암을 친구처럼 여긴다. 마지막 순간에 대해서 항상 생각한다"는 취지의 이야기도 털어놓기도 했었으며(관련 기사나 링크 등을 추가바람), 《꽃보다 누나》에서도 자그레브의 성모승천대성당 방문시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며 기도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이는 이미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고 추측하는 사람도 있었던 듯. 또한 아들 오영환 씨의 결혼식 날짜를 미리 잡고 준비를 마쳤는데, 이 또한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는 모습이기도 했다고 한다.

장례 이후 오승근은 서울을 떠나 분당신도시로 이사했다고 하며 그녀의 장지(납골당)에서 매우 가까운 곳이라고 한다. 한편 그녀가 세상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장남이 결혼식을 치르게 되어 더욱 큰 안타까움을 주었다.

2014년 연말 방송 3사 연기대상에서 모두 공로상을 받았다. 12월 30일, MBC 연기대상과 31일 SBS 연기대상에서는 아들 오영환이, SBS와 같은 시간 진행된 KBS 연기대상에서는 남편 오승근이 고인(故人)을 대신해 수상했다.

추모 공연을 따로 한 것은 없으나, KBS의 특별프로그램 《트로트대축제》에서 오승근이 《떠나는 임아》를 노래하면서 고인을 추모하는 시간을 가졌다. # 남녀노소 구분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던, "너무나 사랑스러운" 배우였기에 그녀의 마지막 가는 길은 많은 이들에게 슬픔을 주었다.

4. 트리비아[편집]

여담으로 1970~1980년대에 오뚜기의 전속 모델로 활동했다. 김자옥이 나온 제품 광고 중 오뚜기 도마도 케챂 광고에 자주 출연했는데, 이 광고 내용이 나름 충공깽이다. 다름 아닌 깍두기에 케찹을 넣어 만드는 조리법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맛있다고 한다. ## 실제 방송도 탄 적 있으며, 시식 반응도 괜찮았다. 정작 그녀는 토마토를 싫어해서 오뚜기 케첩도 싫었다고. 시키면 한다! 약간 위험한 방송 시즌 3에도 실험해 보기도 했다.

5. 출연[편집]

5.1. 영화[편집]

제목

관람 인원

배역

상영 일자

비고

춘원 이광수

9,484명

1969

[14]

보통여자

16,461명

은희 역

1976.03.20

O양의 아파트

281,726명

오미영 역

1978.03.31

[15]

지붕위의 남자

77,382명

미호 역

1978.09.30

영아의 고백

100,530명

영아 역

1978.09.30

상처

208,960명

하영 역

1978.11.04

살인나비를 쫓는 여자

14,275명

1978.12.02

수녀(水女)

952명

순옥 역

1979.04.21

비련의 홍살문

1979.04.27

속 O양의 아파트

73,138명

오미영 역

1979.05.12

목마위의 여자

36,319명

김정미 역

1979.05.19

가을비 우산속에

159,335명

정은 역

1979.08.23

태양을 훔친 여자

51,645명

정숙 역

1979.11.17

낯선곳에서 하룻밤

76,968명

혜린 역

1980.02.09

그 여자 사람잡네

70,113명

진숙 역

1980.03.22

화요일밤의 여자

26,838명

초혜 역

1981.04.12

이 세상 다준다 해도

13,230명

장수미 역

1981.04.17


안방극장의 트로이카 중에서 영화실적이 가장 뛰어나다. 그녀의 흥행성적은 1970년대 여배우를 통틀어서 5손가락 안에 들어갈 정도였다. 1980년 결혼을 앞두던 시기에도 5~7만명 이상의 중박을 찍은 영화가 있었다.

5.2. 드라마[편집]

  • 1971년 KBS 일일연속극 《심청전》 ... 심청 역

  • 1972년 KBS 주간연속극 《한중록》 ... 혜경궁 홍씨 역

  • 1972년 KBS 주간연속극 《신부들》

  • 1973년 KBS 일일연속극 《장바우》

  • 1974년 KBS 일일연속극 《꽃피는 팔도강산》

  • 1974년 MBC 화요연속극 《얼굴》 ... 세희 역

  • 1974년 MBC 일일연속극 《수선화》

  • 1975년 MBC 일일연속극 《양반》 ... 선화 역

  • 1975년 MBC 일일연속극 《신부일기》

  • 1975년 MBC 주간연속극 《억순이》 ... 억순이 역

  • 1976년 MBC 화요연속극 《엄마의 얼굴》

  • 1976년 MBC 주간연속극 《들장미》 ... 길녀 역

  • 1976년 MBC 창사특집극 《쇠랑산 처녀》

  • 1976년 MBC 일일연속극 《내일이면》 ... 윤경희 역

  • 1976년 MBC 일일연속극 《꽃사슴》

  • 1977년 KBS 일일연속극 《행복의 문》 ... 초희 역

  • 1977년 MBC 주간연속극 《당신》 ... 영란 역

  • 1978년 MBC 주말연속극 《도련님》

  • 1978년 MBC 일일연속사극 《정부인》

  • 1979년 MBC 주말연속극 《봄비》 ... 차혜실 역

  • 1979년 MBC 주간연속극 《당신은 누구시길래》 ... 자영 역

  • 1980년 MBC 주간연속극 《종점》

6. 수상[편집]

  • 1975 제11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여자최우수연기상

  • 1975 제11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인기상

  • 1976 제12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여자최우수연기상

  • 1979 제15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여자최우수연기상

  • 2000 KBS 연기대상 최우수연기상

  • 2006 MBC 연기대상 중견배우상부문 특별상

  • 2008 SBS 연기대상 드라마스페셜부문 여자조연상

  • 2011 KBS 연기대상 장편드라마부문 여자 우수상

  • 2014 MBC 연기대상 공로상

  • 2014 KBS 연기대상 공로상

  • 2014 SBS 연기대상 공로상

[1] 1975년에는 수상자 없음[2] 본적은 대구광역시지만, 피난을 와서 부산에서 태어났다.[3] 남편 오승근의 전처딸이다[4] SBS 아나운서. 배우 채시라의 남편과 동명이인으로, 김자옥과는 무려 9세 아래다.[5]옥한흠 목사의 사랑의교회에 출석했다. 건강이 악화되기 전까지는 성가대 봉사도 했기에 당시 성가대 영상에 특유의 로켓트 머리(...)를 하고 열심히 찬양을 부르던 그녀가 잡힌 적이 있다. 남편(오승근)과 종종 특송도 했었던 것 같다.꽃보다 누나 촬영 당시 자그레브의 성모승천대성당에서 진심으로 기도를 올린 적이 있어서 이 분을 가톨릭 신자로 오인하는 사람이 간혹 있다.[6] 당시 60년대 중후반에 영화계에서 잘 나갔던 윤정희, 문희, 남정임을 여배우 트로이카라 불렀는데, 여기서 본딴 것이다.[7] 그러나 인기는 양정화가 더 많았다고 한다.[8] 장미희도 김자옥이랑 비슷한 과라고 볼 수 있는데, 인기 면에서는 다른 트로이카 여배우들에게 밀렸지만 영화에서의 흥행은 이쪽이 압도적이다. 오히려 흥행에서는 김자옥도 장미희에게 처참하게 밀릴 정도다.[9] 사실 고두심은 젊을 때도 깨끗한 외모에 연기력을 갖춘 괜찮은 젊은 여배우들 중 하나였으나, 동시대의 다른 여배우들의 스펙이 너무 뛰어났다. 때문에 당대 청춘 탑스타였다라기보다는, 중년이 되면서 더 연기력의 진가가 훌륭하게 발휘되어 크게 인정받는 배우 유형인데, 김자옥은 청춘기에도 잘나가던 스타였던 유형이다.[10] 김자옥 본인이 방송에서 "나는 아버지를 어떻게 하고(해친다는 의미) 감옥에 갈 거야" 라고 썼다고 한다.[11] 1970년대 포크 그룹 금과 은(투에이스) 멤버로 활동해, 이후에는 트로트 가수로 전향. 《빗속을 둘이서》, 《사랑을 미워해》, 《있을 때 잘해》, 《내 나이가 어때서》 등의 히트곡이 있다. 트로트 가수로 바꾼 것 때문에, 젊은이들은 그냥 트로트 가수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 ‘금과 은’이었을 때의 인기가 더 많았다. 김자옥 남편으로 주목받기 전까지의 인기로 보자면 그러하다.[12] 참고로 전 남편은 가수 최백호. 대표곡으로 《영일만 친구》, 《낭만에 대하여》 등이 있다.[13] 사실 생전에 스스로 대장암 수술을 받았을 때의 상황에 대해 방송에서 이야기하며, 이미 대장뿐만 아니라 폐로 전이된 부분도 같이 수술해서 제거했다고 밝혔었으니, 아마 그때 전이된 부분이 완전히 발견되지 않았거나 완전히 제거된 것이 아니었던 것일 수도 있다.[14] 아역으로 출연했다.[15] 1978년에 3번째로 가장 많이 흥행한 영화. 여담으로 1위는 37만명 관객을 동원한 이영옥, 윤일봉 주연의 내가 버린 여자, 2위는 32만의 관객을 끌어모은 장미희, 신성일 주연의 속 별들의 고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