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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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김원준(金元俊)

출생

1973년 2월 16일 (45세), 서울특별시

본관

청풍 김씨[1]

신체

178cm, 65kg, B형

성좌/십이지

물병자리, 소띠

형제자매

2남 1녀 중 막내

배우자

이은정(30·변호사시험 4회) 검사

학력

반포중학교
중앙대학교사범대학부속고등학교
서울예술대학 영화과
상명대학교 문화기술대학원 뮤직테크놀로지학과

활동

가수 데뷔(1992년 1집 모두 잠든후에)[2]

소속 그룹

베일(V.E.I.L) (2006~)
M4 (2010~2013)

소속사

Fe 엔터테인먼트
(구 후너스 크리에이티브)

링크

트위터

종교

개신교

1. 소개2. 데뷔 및 전성기3. 암흑기 및 재기4. 평가5. 그밖의 이야기들6. 앨범7. 관련 문서

1. 소개[편집]

한국싱어송라이터이자 대학교 교수.[3] 파문전사. 1992년 1집 타이틀곡 '모두 잠든 후에'로 데뷔, 이후 대표곡으로는 '언제나', '세상은 나에게', '너없는 동안', 'SHOW' 등이 있다.

2. 데뷔 및 전성기[편집]

2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의사아버지[4] 밑에서 엄격하게 자랐으나, 고교 시절에 4인조 아마추어 그룹 '쥬크박스'를 결성해 처음으로 음악을 접한 그는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서울예술대학 영화과에 진학, 재학 중에 교내 메탈 그룹 'Last Scene'을 거쳐 통기타 클럽인 '예음회'에서 활동하면서 음악에 심취한다.

1992년 8월 예음회 선배의 소개로 당시 삼성그룹 계열의 광고회사인 제일기획의 음악 담당 직원이자, 그룹 자전거 탄 풍경[5]리더로도 유명한 강인봉과 조우하여, 당시 제일기획에서 개최할 예정이었던 가수 오디션의 기회를 얻어 300:1이라는 경쟁률을 뚫고 합격한다. 당시 제일기획에서는 같은 삼성그룹 계열인 삼성물산의 의류사업부에서 런칭한 새로운 패션브랜드인 '카운트다운'의 광고 기획을 맡았는데, 참신한 신인 가수를 발굴하여 음악과 CF를 동시에 선보이며 유행을 만들어가는 파격적인 광고 전략이 수립되어 오렌지라는 레이블로 음반사업을 시작하였고, CF 전속모델을 겸하는 신인 가수를 발굴해 내는 과정에서 김원준이 뽑힌 것이다.

제일기획은 곧바로 김원준의 데뷔 앨범 제작에 착수했으며 김원준의 자작곡 2곡을 비롯해 작곡가들에게 받은 노래를 편곡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동시에 김원준은 카운트다운 광고 촬영과 8일간 밤샘작업을 통해 음반 녹음을 수행하는 등 타이트하고 톱니바퀴가 맞물리듯이 딱딱 짜여진 계획 속에서 데뷔 준비 과정을 거치며 고생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고 한다. 결국 김원준은 오디션 합격 후 45일 만에 CF 모델과 가수로 데뷔하는 기염을 토했으며, 데뷔 앨범 타이틀곡 '모두 잠든 후에'는 가요 차트 7주 1위(가요톱텐 4주 연속 1위, mbc 여러분의 인기가요 3주 연속 1위)를 차지하면서 김원준은 그야말로 성공적인 데뷔를 하며 가능성을 보이게 된다.[6]


▲ 김원준의 데뷔곡 '모두 잠든 후에'의 뮤직비디오[7]

데뷔 당시 신인 아이돌이미지가 강했던지라 그저 반짝하는 스타로 사라질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1993년부터 각종 공중파 예능 프로그램에도 적극적으로 출연하여 당시 MBC 대표 예능 프로그램인 특종TV연예에서 당대 최고의 개그우먼 이영자와 함께 영화 보디가드를 패러디했으며[8] "김완선" 실명이 그대로 쓰였다. 영상자료를 가지고 계신 분의 블로그. 이것으로 단순한 10대의 아이돌 스타를 넘어서 2030 세대의 연령층까지 포섭하게 되어, 1990년대 초중반의 대표적 문화현상이었던 X세대의 아이콘으로 등극하며 대중적인 인기를 얻기 시작한다.


▲ 1993년 X세대의 대표주자로 이병헌과 함께한 아모레 트윈엑스 CF

그리고 그 해 8월, 2집 '나에게 떠나는 여행'을 발표하면서 록과 댄스리듬을 절묘하게 결합시킨 자작곡 '언제나'를 타이틀곡으로 활동을 시작, 1집 때와는 사뭇 다른 성숙한 모습을 보여준 그는 1993년 골든 디스크 본상, MBC, KBS 10대 가수상을 수상하는 등 비디오형 가수가 아닌 오디오와 비디오가 결합된 가수로 인정받게 되었다. 이어, 1994년 6월 3집에서는 타이틀곡인 '짧은 다짐'이 Wands의 孤独へのTARGET를 베꼈다는 표절 논란에 휩싸이면서 잠시 위기를 맞았으나[9] 급히 '너 없는 동안'으로 활동곡을 변경해서 하우스 리듬과 정열적인 '허리춤', 치마패션으로 일약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키는 등 인기를 이어가면서 가요톱텐에서 5주 연속 1위 골든컵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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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국영을 연상시키는 조각같은 외모 덕분에 1995년에는 배우로도 영역을 넓혀 공군사관학교 생도의 생활을 그린 KBS의 전 드라마 창공절친류시원과 함께 주연으로 활약했고, 이 드라마의 주제곡인 '세상은 나에게'도 김원준이 직접 작곡해 불렀다. 다만 드라마 자체의 평가는 고만고만한 수준... 또한, 영화 데뷔작 불의 태양은 안타깝게도 흑역사급으로 심하게 망한 영화라서 언급하는 사람이 없다.

김원준은 1990년대 대표적 스타로서 그야말로 한 시대를 풍미했으며, 소속사인 제일기획의 전략대로 '카운트다운'를 비롯한 광고 모델로도 왕성한 활동을 하며 당시 패션유행을 일으킬 정도였다. 인기가 최절정에 달했던 1994년에 발표한 3집 앨범 '너 없는 동안' 은 앨범판매량 140만장을 기록하면서 그야말로 '김원준 신드롬' 을 일으켰다.

데뷔 앨범 때 부터 타이틀 곡 및 대부분의 곡을 작사/작곡 할 정도로 뛰어난 음악성도 갖추었던 김원준은 1995년 10월 발표한 4집 'Dear'로 자신이 직접 앨범 프로듀싱까지 담당해 뮤지션으로서 진일보했음을 알렸고 타이틀곡 '넌 내꺼'가 가요 차트에서 1위 후보까지 오르면서 흥행에도 성공했다.


거기에 이듬해인 1996년에 발표한 5집 '(Show)'[10] 인기가요 베스트 50에서는 1위 후보까지, TV가요 20에서는 1위까지 차지하는 등 히트를 치면서 그의 대표곡으로 자리잡게 된다.

3. 암흑기 및 재기[편집]

하지만 그 이후로 그는 아티스트라는 강박관념에 빠지게 되면서 따라부르기 쉬운 댄스 일변도의 과거와는 달리 6집부터는 과감하고 새로운 시도를 통해 음악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앨범 프로듀싱을 하는 바람에 대중성은 그만큼 떨어지기 시작했으며 6집부터 9집까지 4장의 앨범들은 별다른 인기를 얻지 못하면서 최고의 톱스타로서의 지위는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그의 전성기도 차츰 저물어가게 되었다.[11]

게다가 1999년 병역비리에까지 연루되면서 연예인의 이미지에도 큰 손상을 입었고 마음고생으로 무기한 활동중단에 들어가기도 하는 등 예기치 않았던 수난도 겪었다. 의혹의 주요 내용은 의사이던 아버지가 뇌물수수에 연루되어 김원준이 뇌물로 습관성 어깨탈골로 면제 받은 게 아니냐는 이야기가 있었고 그래도 재검을 통해 결국 동일 사유로 면제 판정을 받았다.

결국 정규 9집 발매 후에는 생활고에 빠지며 잘 나가던 시기에 좋아하는 모델을 종류별로 사 놓을 정도로 많았던 자동차들, 적금과 부동산도 정리하면서 재산은 밑바닥을 드러냈다. 또한 아들이 스스로 일어서길 바라는 아버지가 지원을 하지 않자 그는 스스로 재기하기로 마음을 먹고 2002년부터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행사를 뛰었고, 잘 나갈 때에는 거들떠 보지도 않았던 단편 드라마나 아침 드라마 등에 조연으로 출연하는 등 물불을 가리지 않고 연예계 활동을 하면서 재기에 어느 정도 성공했다. 이후 베일(V.E.I.L)이라는 밴드를 결성해 활동하다, 2010년부터 2013년까지는 동갑내기 가수 친구들과 M4라는 프로젝트 그룹을 결성해 활동했다.

2015년 4월 18일 콘서트 7080에 출연하여 # 쇼를 공연했다.

2015년 11월 베일(V.E.I.L) 데뷔 10주년을 기념해 새 앨범으로 컴백했다.

4. 평가[편집]

비주얼 때문에 인기가 있다는 선입견과 실제로 아주 좋은 가창력소유하진 못했지만, 자신의 음악성을 키우기 위해 밴드를 결성했다. 그리고 의외로 알려져 있지 않은 사실이지만 김원준은 아이돌로 통하던 시절부터 작사작곡을 해 온 싱어송라이터며 다른 가수들 곡도 종종 쓴다. 참고로 데뷔곡인 '모두 잠든 후에'도 자작곡이다. 참고로 최고의 히트곡인 쇼(항목 참고)는 김동률 작사 작곡.

재기한 후에도 댄스곡은 가급적 기피한다던지 하는 등 노력을 보이고 있으며 한 때 자작곡이 표절 논란에 휩싸인 흑역사가 있었다. 대표적인 곡은 바로 3집의 타이틀곡이었던 '짧은 다짐'. 자세한 내용은 표절 항목을 참조바람.

5. 그밖의 이야기들[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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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살인 팬한테 반말하는 연예인 참고로 김원준이 5살 연상이라고 한다..

40대의 나이임에도 20대 같은 외모의 대표적인 사기 동안 캐릭터의 소유자이다. 위의 프로필 사진이 39살 된 2011년에 찍은 사진이라니 말 다했다.

한 방송에서 배기성이 김원준의 동안 비결에 대해 "하루 세끼 다 챙겨 먹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것이 비결"이라고 했다. 하지만 군인도 그런데... 근데 흥미로운 건 일부 프로필에서는 김원준의 취미가 게임으로 밤새우기란 건데 이건 어찌된 일인지 참... 규칙적인 주침야활일 수도 있다.

비트매니아 IIDXBMS 플레이어인지 과거 게임 매장에 비트콘을 사러 갔다가 예약이 걸려있는 물건을 따블을 불러서 가져왔다는 썰도 있다.

코요태와의 인연이 상당하다.

코요태신지가 김원준 팬클럽의 인천지부 회장이었다고 한다. 신지가 불후의 명곡 김원준 편에 게스트로 출연하여 공식 인증하기도 했는데, 팬클럽 시절부터 서로 익히 아는 사이인지 김원준이 신지본명인 지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2005년에는 코요태김구, 정한종과 셋이서 '베일'이라는 팀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이래서 김원준, 신지, 김구는 셋이 서로 친분이 깊은데 다음과 같은 인간관계다.

  • 김원준 - 신지: 아이돌과 팬클럽 회장

  • 김원준 - 김구: 베일 멤버

  • 김구 - 신지: 코요태 멤버


2011년 5월부터 2012년 1월까진 우결에서 박소현과 가상부부로 출연했다.

유리상자이세준의 배기성 말로는 "김원준은 왕자 기질이 있어서, 방송에 부르려면 PD가 삼고초려를 해야 마지못한 척 나온다."라고 말했다. 옆에서 듣고 있던 박승화는 "그런 애들은 말로도 안 되고 약으로도 안 되고, 좀 맞아야 정신차린다."라고...(…)

데뷔 초 일간 신문에 연재된 어린시절 회고를 보면 사실 의외로 굉장히 우울하다고 한다. 김원준의 유아기 때 놀이 상대는 오로지 강아지자전거였으며, 말도 없고 사람 살이 몸에 닿기만 해도 깜짝 놀랄 정도로 소심해서 주위 사람들이 자폐증 걱정까지 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아버지가 무척 엄하게 키웠다니... 그의 아버지가 용산구에서 개인병원을 하던 시절, 동네 수준이 좋지 않다고 동네 친구들과 어울리지도 못 하게 했으며 걸어서도 갈 수 있는 몇 분거리 유치원까지 자가용으로 통학시킬 정도였다. 또 아버지 눈에 나는 행동을 하면 병원의 지하방에 감금당하기도 했다. 수술실 바로 옆에 있어서 어린아이에겐 음침하고 무서운 그 지하방에 12시간이나 감금된 적도 있었다고 한다. 이런 가정교육과 소심한 성격은 초등학교 진학 후에도 계속되어서 초등학교 시절을 떠올리면 같이 놀았던 친구나 추억이 전혀 없다고... 중학생 즈음에야 겨우 외향적으로 변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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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것은 진갑용과 중학교 때부터 형동생하던 사이라는 것. 진갑용이 한 살 동생이다. 형 동생은커녕 갑드래곤이 삼촌같은데? 참고로 김원준은 Fe 엔터테인먼트의 수장인 김현철과 더불어 삼성 라이온즈의 열혈 팬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히트곡 SHOW가 삼성 4번타자 최형우의 응원곡으로 쓰이고 있다.2017 시즌에는 딴팀 가면서 금지어가 됐지만

1집인 'Wanna be sexy'의 인트로를 듣다보면 본인 주민번호가 나온다.(...)

2012년부터 강동대학교 실용음악과 교수로도 활동하고 있으며, 동시에 학과장 직도 맡고 있다.

넝쿨째 굴러온 당신에서 윤빈 역으로 출연하며 이목을 끌었다. 무엇보다 본인의 역사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캐릭터라는 점이 조명받았다.

2013년 5월 30일에는 부친상을 당했다.#

2016년 1월 28일 () 웹툰히어로 툰드라쇼 2(꽃가족)에 출연하였다.

파일:김원준_배우자.jpg
2016년 3월 8일, 14살 연하인 현직 검사와의 결혼을 발표했다. 4월 16일 대검찰청 예식장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2017년 1월 19일, 첫 을 낳아 아빠가 되었다. #

동물농장에 대학 강의실 돌며 사는 고양이가 소속 대학에 나온터라 인터뷰 내용도 있다.

뜻밖의 Q 5회에서 출제자로 나오면서 오랜만에 브라운관에 모습을 드러냈다.

김원준이 주인공인 네이버 웹툰이 존재한다. 제목은 '알 게 뭐야' 이다.

6. 앨범[편집]

음반

제목

발매일

타이틀 및 후속곡

정규 1집

Wanna be sexy

1992

눈에 띄고 싶어

정규 2집

2집

1993.10

나에게 떠나는 여행

정규 3집

3집

1994.10

너 없는 동안, 짧은 다짐

정규 4집

Dear

1995.10

넌 내꺼, 다시 내곁에

정규 5집

Show

1996.08.20

Show,작별

라이브

나에게 떠나는 여행

1996.09.06

나에게 떠나는 여행

정규 6집

6집

1997.07.30

얄개시대, 내 품에 안겨

정규 7집

Self Destruction

1998

가까이, 너를 끝으로

정규 8집

Another 8000

2000.06

부탁, 나만의 사랑

정규 9집

Dearro Nine

2001.08

나인

7. 관련 문서[편집]

[1] 배우 김태희, 방송인 김제동, 가수 려욱과 본관이 같다.[2] TV 데뷔는 1992년 10월 17일 SBS-TV "쇼 서울서울" 에서 했다. 그 당시 소개멘트도 "쇼 서울서울의 새 식구입니다" / "쇼 서울서울에서만 만날 수 있는 친구입니다" / "쇼 서울서울의 새로운 기대주입니다" 라고 할 정도였다.[3] 현재 강동대학교 실용음악과에서 학과장겸 교수로 취임중이다.[4] 고 김기영씨로 산부인과 전문의. 어머니간호사로, 아버지가 인턴으로 일하던 병원의 간호사였다. 할아버지소아과 의사였으며, 고모부, 친형도 의사이다.[5] 퓨전 포크 록 음악그룹으로, 영화 클래식의 OST 타이틀 곡인 너에게 난 나에게 넌이 대표곡이다.[6] 김원준의 이런 단기간의 데뷔 및 성공은 절친이었던 류시원에게 연예계 입문의 결정적인 동기부여가 되었다고 한다.[7] 2016년 기준으로 정확히 24년 전인 1992년에 촬영된 영상이라는 점을 감안하고 감상하자. 원색 위주의 손발이 오그라드는 영상효과와 촌티나는 패션은 그 당시 X세대로 불리던 20대들 사이에서는 매우 유행하던 최신 스타일을 반영한 것이다.[8] 톱가수로 나오는 이영자를 간주 때 유덕화 닮은 괴한이 무대 위로 올라가 으로 위협하며 이영자를 인질로 삼는데 괴한의 총에 왼쪽 어깨를 맞음에도 불구하고 발차기로 괴한을 제압한뒤 육중한 이영자라고 쓰고 더미라고 읽는다.를 김원준이 업고 나가던 장면은 그야말로 충격의 도가니에 가까운 폭소를 자아내며 김원준의 인지도는 급상승했다. 이영자의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를 립싱크로 부르며 김완선 따라잡기 댄스도 꽤 화제였다.[9] 사실 위기랄 것도 없는 까닭이 곧바로 멜로디를 바꿔 대응한 데다 '너 없는 동안'으로 가요톱텐 골든컵을 수상한 이후 '짧은 다짐'을 후속곡으로 활동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짧은 다짐'의 표절 이후 하락세가 있었다고 서술됐으나 오히려 3집 때의 인기가 절정이었고, '짧은 다짐'은 이후 콘서트의 정식 넘버가 될 수준에다 중박 정도로 히트한 노래였으며 활동 당시에는 골든컵을 수상한 룰라의 "비밀은 없어"와 같이 가요 프로그램에서 1위 후보에 오른 곡이다. 영상.[10] 김동률이 작사/작곡한 곡으로 김동률이 고교시절 TV에서 본 김원준의 가수 활동 모습을 보고 만든 곡이라고 한다. 흠좀무.[11] 그래도 6집 타이틀곡인 '얄개시대'와 7집 타이틀곡인 '가까이', 8집 타이틀곡 '부탁'은 10위 권안에 들었고 9집 타이틀곡인 <나인>은 중위권에 들면서 선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