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어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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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김어준 (金於俊)

출생일

1968년 12월 6일

출생지

경상남도 창원시

본관

김해 김씨

신체

183cm, 102kg, A형

학력

홍익대학교 전자제어공학 학사


1. 소개2. 생애
2.1. 딴지일보 창간2.2. 딴지일보의 리즈시절 이후2.3. 최근 동향
3. 기타 이모저모4. 매의 눈?5. 프로젝트 부6. 사건사고/논란7. 출연작

1. 소개[편집]

대한민국언론인[1]. 딴지일보 총수. 2016년 9월 26일부터 교통방송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을 진행하며 공장장이란 칭호도 획득했다.

다스는 누구거냐? 드립을 만들어 유행시킨 인물

2. 생애[편집]

경상남도 진해시(현 창원시 진해구) 출신이다. 모친의 직업이 유치원 교사였으며 굉장한 방임주의 가정에서 자랐다고 한다.[2][3] 고등학교 당시 우등생이었으며 서울대학교에 들어가고 싶어 삼수까지 했으나 모두 실패하고, 결국 홍익대학교 전자제어공학과로 진학하였다. 스스로 회술한 바에 따르면 더 재수해서 서울대를 가고 싶었으나 군대 때문에 홍익대에 머물렀다고 한다. 훗날 본인의 저서 '건투를 빈다(p.26~29)'에서 '서울대에 갔더라면 세상의 수많은 가치 중 겨우 공부 하나 잘하는 걸 가지고 스스로 존재 자체가 우월하다고 믿는 어린 편협하고 유치한 멘탈리티에 사로잡혔을 것'이라며 자기합리화가 아니라 진정으로 '서울대에 떨어진 것이 다행이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본인의 행적을 보면 본민만큼 자의식이 강한 사람도 드물다. 결국 현재의 자의식이 선택하지 않은 자의식을 욕하면서 현재의 강한 자의식을 강화하는 것. 중학교 시절 사진과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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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1인투어 가이드 시절. 지금의 모습이 전혀 상상되지 않는다.케인


대학 당시에는 흔히 말하는 운동권과 같은 활동은 거의 없었으며, 당시의 대학생과 별 다를 것 없는 대학생활을 지냈다. 졸업 후 포스코에 입사했으며, 대학생활 중 흔히 말하는 사고를 친 적 없는 평범한 모습을 견지했다. 하지만 이 대학 시절 배낭여행을 대단히 많이 했으며, 근 50여 개국 이상의 나라를 여행하면서 많은 경험과 견문을 넓혔다고 스스로 자술한다.[4] [5]

2.1. 딴지일보 창간[편집]

포스코를 8개월 만에 자기 발로 박차고 나왔다. 이러한 결정을 하게 된 이유는 서류복사나 하는 신입시절 자기가 하는 일에 비해 너무 많은 돈을 받는 거 아니냐는 자괴감과 어느 날 새벽까지 이어진 회식 후 본인을 포함한 신입들에게 회사에 일찍 나오라고 무리한 요구를 한 뒤[6], 사원들 군기를 잡아주기 위해서 본인이 더 먼저 회사에 나와서 가오를 잡던 간부가 스스로 그런 자기 행동에 대해 진심으로 만족하는 표정과 태도를 보인 걸 느끼던 순간의 끔찍함이었다고 한다.[7] 자신의 미래를 보는 것 같아 비참하다 못해 너무 무서웠다고 한다.

이후 여러 회사를 전전하다 IMF 때 정리해고를 당한 후, 1998년 딴지일보를 시작했다. 원래 딴지일보는 김어준 개인 사이트로 시작을 했고, 스스로 기사를 만들고 홈페이지 디자인을 하고 코드를 짜는 등 혼자서 모든 것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아무도 방문 안 해서 스스로 조회수를 올리는 짓을 했다고 하나, 결국 입소문을 타고 방문객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당당히 1999년 언론사 영향력 순위에서 당당히 17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B급 정서로 대변되는 대한민국의 초창기 인터넷 문화 형성에 나름의 공이 있다. 이 점은 디시인사이드김유식에 비할 만하다. 명확한 정치지향이 없다가 이후에 보수 쪽으로 커밍아웃한 김유식과 달리 김어준은 확실히 처음부터 진보-개혁세력 지향이었고, 특히 조선일보에 대한 적대적 포지션을 분명히 했다. 다만 이쪽이 좀 더 빨랐으며 초창기에는 날카로운 정치 평론과 유력 정치인, 대권 주자들에 대한 신선한 형식의 인터뷰로 유명했다. 유명 정치인들과의 인터뷰 자리에서 빤스가 사각이냐, 삼각이냐는 어이없는 질문을 하는 사람이었다. 2012년 새롭게 시작한 웹 월간지 더딴지에서도 파토 등의 주요 필진이 물어본다.

딴지일보의 직설적인 논조 - 음담패설과 욕설을 운영자 자신이 인터넷 수면 위로 끌고 올라온 첫 세대 매체다 - 와 과감하게 당시 기성언론에서 다루지 않은 부분까지 거침없이 다루었기 때문에 매우 큰 관심을 받았다. 예를 들어 그동안 하급문화 취급을 받아 아무도 심도 있게 다루지 않았으며 저평가되었던 국산애니나 고전만화에 대한 관심을 일으켜, 발굴운동을 벌였다든지 하는 일은 꽤 높이 평가받을만 하다. 90년대 후반은 묘하게 고급 필진들이 모여드는 시기였다. [8]

딴지일보의 성공으로 기성언론에 대한 비꼼과 날카로운 풍자를 내세우며 인터넷 문화와 언론을 이끄는 선두주자로 매김한다. IT거품이 한창이던 리즈시절에는 300억 원에 딴지를 인수하겠다는 오퍼도 있었다고. 하지만 딴지일보가 서서히 지면서 같이 지기 시작한다. 딴지일보 외에 여러 풍자 사이트와 유머 사이트가 등장했고, 특히 디시인사이드를 비롯한 사이트들은 이용자끼리 생산-소비를 하는 형태로 사용자들의 지속적 참여로 성장을 거듭한 반면 일방적으로 생산한 결과물을 소비하는 포맷의 딴지 일보는 이들 사이트들에 이용자를 많이 빼앗기게 된다. 이후 상황은 딴지일보 항목 참조. 딴지 커뮤니티가 엄청나게 흥했지만 그것을 성장동력으로 삼지 못했고, 소수 필진이 있는 소리 없는 소리 하고 싶은 말 다 쓰고는 보완없이 - 애초에, 필진도 독자도 컨텐츠를 즐기는 곳이었다 - 다음 주제로 넘어가는 식이라 점점 정보보다는 잡설을 보는 곳이라는, 재미있게도 처음 시작하며 내건 이미지에 접근하기 시작했다.

이것과 함께 정치적인 지형도 딴지의 몰락에 한몫했다. 소위 개혁세력이 집권할 때 딴지의 주적인 보수세력이 야당이었는데, 원래 풍자와 해학은 권력을 까는 데서 재미가 나오는 법이지만 딴지의 주적은 그 당시엔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이었으니... 비슷한 진보적 정치풍자 사이트인 미디어몹도 개혁세력이 위기에 몰렸던 탄핵정국까지 그 인기가 피크를 이루다가 이후 열린우리당이 국회 과반수를 차지하자 거기에 휘말려 인기가 떨어졌다. 시사인, 한겨레가 그랬듯이.

2.2. 딴지일보의 리즈시절 이후[편집]

딴지일보의 몰락 후(2000년대 중반) 엄청나게 힘든 생활을 했다고 한다. 전 부인과의 이혼도 이 시절 딴지가 리즈시절일 때 지나친 확장을 해서리 그게 다 빚으로 돌아왔다. 그러다 보니 돈을 벌기 위해 딴지일보에서 여성용 성인기구를 팔기도 했다. 그러나 딴지 몰락하에서도 진보적 논객으로 활약하면서 김어준의 지명도는 오히려 높아진다. 스스로 야매 상담가라고 자칭하기도 했으며, 한겨레 신문에서는 "그까이꺼"라는 상담 코너를 연재하기도 했다. 이를 묶어 "건투를 빈다"라는 저서로 펴냈다. 이와 함께 대학이나 기관의 각종 강연에도 얼굴을 내밀었는데, 주된 논지는 "남의 눈에 구애받지 말고 과감하게 자기 하고 싶은 것을 하라"는 것이다. 자주 불려다닌 것으로 봐서는 이런 연사로서 평가는 꽤 좋은 편. 의외로 이런 데 나와서는 "씨바" 같은 욕을 안 한다. "존나"는 한다.

2011년 이후 나는 꼼수다의 인기에 힘입어 전국민적으로 폭풍적인 관심을 받았다.

정치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나는 가수다 품평으로도 유명하다. "두시의 데이트 윤도현입니다"의 한 코너에 출연해서 나가수의 열풍에 힘입어 크게 이슈에 오르기도 했다. 전율스럽게도 김어준은 라디오에서 당시 진행되던 시즌에서 1등과 7등(탈락자)을 단 한 번 빼고 다 맞혔으며 심지어 그 한 번도 총수가 찍은 사람이 6등이었다. 허나 얼마 뒤 MBC 라디오국이 윤도현을 하차시키면서 함께 퇴장.

여러 저서 등과 활동을 볼 때 상당히 정치지향적인 인물이며 정치논리로 움직이고 이를 굳이 부정하지 않는다. 꾸준했는데 스탠스는 중도라고 하는데 사실상 진보개혁성향(민주당, 국민참여당 쪽)으로 평가받고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한다.

2.3. 최근 동향[편집]

  • 2011년 10월 24일 MBC 라디오 개편과 더불어 색다른 상담소가 폐지됨에 따라 해당 방송에서 하차하게 되었다. 이를 두고 나는 꼼수다 때문에 외압이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색다른 상담소는 팟캐스트에서도 상위권에 포진해있는 나름대로 인기코너이기 때문에 그 의혹은 더 불거졌다. 허나 이러한 의혹에 대해 김어준 본인이 프로그램 시작 전부터 6개월만 찐하게 하고 끝내자고 제작진과 이야기 했다고 하며 일축했다...라고는 하는데, 이게 뭐 6개월만 하고 자기가 뜨겠다는 게 아니라 어차피 자신은 김미화 퇴출로 촉발된 진보 성향 연예인의 퇴출을 수습하기 위한 일종의 방패막이니 수명이 길지 않을 거라 예측했다는 것. 김어준의 인터뷰에서도 이런 표현이 나온다. 참고로 색다른 상담소가 사라지고 그 자리를 대신한 프로그램은 배한성 배칠수의 고전열전 재방송이다. 총수 왈 "내가 재방에 밀렸어!"

  • 2011년 10월 28일, 열애설이 터졌다. 상대는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 아일랜드의 작가로 상당한 마니아층을 거느리고 있는 작가 인정옥. 이혼 후 2004년부터 열애 중이었다고 한다.

  • 2014년 3월14일 한겨레하니tv에 김어준의 KFC라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론칭하였다. 1주일도 안 되어 조회수가 20만을 돌파하는 등 나꼼수의 인기가 여전함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치킨은 박근혜의 동의어라한다. 하지만 12화부터 프로그램 제목이 김어준의 파파이스로 바뀌었다. KFC 본사에서 클레임이 들어왔다고 한다. 한겨레에서 고소에 할애한 자금이 다 떨어져서 어쩔 수 없이 클레임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 2015년 1월 프로젝트 不 다큐멘터리 3부작의 제작자로 참여, 펀딩을 시작했다. 그리고 45일 만에 목표액인 10억 원에 도달하였다… 감독은 김지영을 기용.

  • 복귀한 김어준의 뉴스공장이 일일 팟캐스트 다운로드 몇 백만을 찍고 지상파 라디오 청취율 전체 2위에 등극하는 등 엄청난 인기를 구가하고, JTBC와 함께 최순실게이트에서 이어진 탄핵정국에 부정할 수 없는 영향력을 발휘했다. 뉴스공장과 마찬가지로 지대한 역할을 했던 파파이스는 최근 한겨레 인터뷰에서 그만 둔다고 밝혔다.

  • SBS <김어준의 블랙하우스>로 8년 만에 지상파로 복귀한다. 첫방송 날짜는 11월 4일 밤 11시 15분 첫방송을 시작한다.

3. 기타 이모저모[편집]

  • 세월호 고의침몰설을 제기했다.

  • 딴지일보의 과거 여행 전문 섹션으로 딴지관광청(노매드21)이 있었는데, 그는 사이트 내에 대형 여행 전문 섹션을 만들었을 정도로 여행을 좋아하는 편이기도 하다. 딴지관광청의 경우 2003년도에 노매드21로 이름을 변경한 후 전문 여행사로 독립했다. 또한 현재 딴지일보에서 완전히 경영 분리가 된 상태이다. 다만 칼럼 기고나 공동 상업인증 서비스 등의 형식으로 느슨한 업무협조의 관계가 이어지고 있다.

  • 상담칼럼을 모은 건투를 빈다라는 책자를 쓴 바 있다. 이 책자에서 남한 절반도 안 되는 작은 나라였던 옛 고대 이스라엘이 무슨 대제국이니 하나님의 나라라고 하냐면서 성경이라는 소설책을 신의 말씀이라고 받드는 자들의 종교가 선교라는 이름으로 저지른 죄악이 많다고 풍자한 바 있다. 건투를 빈다를 썼을 당시 인터뷰에서, 향후 모바일 세대에 맞춰 새로운 아이템을 준비하고 있다고 언급한 적 있는데, 다들 딴지일보 모바일 정도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나꼼수가 등장해 대박이 난 것. 그리고 이 인터뷰에서 다음 저서는 인간의 동물적 속성을 파헤치는 책을 내겠다고. 가제로 '인간은 동물이다'라고 지었었다. 실제로는 그 책은 다음으로 미뤄지고 '닥치고 정치'가 발간되었다.

  • 노무현 추종자. 딴지일보의 과거 대선후보 인터뷰는 총수가 항상 동행하여 직접 인터뷰 했다. 노무현 대통령과는 취재차 여러 번 만나고 그의 인간성에 반한 듯 보인다. 스스로 밝히길 이명박에 대한 순수하리만치 한 증오는 노무현의 죽음에서 비롯되었다고. 그는 최고의 정치인으로 김대중을, 최고의 '남자' -정치인을 포함한 모든 남자 중 최고의 남자- 로 노무현을 뽑았다. 그리고 둘 모두를 이명박이 살해했다고 평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사망한 후 8년째 그를 추모하는 의미에서 검은 넥타이만 멨다. 그러다 2017년 제19대 대통령 선거를 통해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된 후, 첫 김어준의 파파이스 방송에서 흑과 백의 스트라이프 무늬의 넥타이를 착용했다.

이명박 같은 자가 그런 남자를 죽이다니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내가 노무현 노제 때 사람들 쳐다볼까봐 소방차 뒤에 숨어서 울다가 그 자리에서 혼자 결심한 게 있어. 남은 세상은, 어떻게든 해보겠다고. - 닥치고 정치 中

  • 노무현을 추종하는 이상으로 박근혜를 싫어한다.[9] 이 문제로 인해 검찰에 출석해서 조사를 받기도 했다. 그가 왜 나꼼수 이후 팟캐스트를 다시 시작할때 그 이름을 'KFC'[10]로 했으며, 얼마 안 가 KFC 측에서 항의의사를 제기하자 이후에 이름을 '파파 이스'로 바꿨는지 생각해보자. 모두 닭 이후로도 김어준은 박근혜에 대해 비판을 지속적으로 행했으며, 박근혜 5촌 살인사건을 추적하면서 험한 꼴을 봐왔는지라 더욱 싫어하는 경향을 비쳤다. 그리고 이 사건이 터지면서 그가 박근혜를 증오에 가깝게 비판했던 행적들이 신의 한 수로 칭송받고 있다.

  • 나꼼수로 SNS 정치혁명을 일으켰다고 평가받지만, 사용하는 휴대폰은 스마트폰이 아니라 피처폰. 다만 목격된 바에 의하면 2012년 초반 쯤에 아이폰4/4S로 갈아 탄 듯하다. 거기다가 트위터페이스북은 안 한다고 한다. 그래서 김어준의 동향은 김용민이나 탁현민, 주진우의 SNS를 통해 나온다. 하도 김어준 행세를 하는 가짜 트위터 계정들이 날뛰어서 딴지일보에서 '공식 가짜 계정'(?)을 만들었다.

  • 웃음소리가 마치 모 만화악당처럼 크하하하 웃어제끼기 때문에 라디오로 들어도 금방 알 수 있다. 수염도 은근히 닮았고

  • 같이 나꼼수를 했던 김용민이 그를 취재하며 쓴 '김어준 평전'이 있다. 김어준의 어릴 적 이야기부터 김어준을 만든 부모님 이야기, 그의 인생이야기, 딴지일보를 창간한 스토리나 나꼼수시절 에피소드 수많은 논객들과의 일화 등 김어준이 어떤사람인지 이해하는데 좋은 책이다. 정작 김용민이 이 책을 만들었다고 하니까 김어준의 반응은 '내가 아직 살아있는데 무슨 평전이야 씨바 미친 돼지새끼야 껄껄껄' 이었다고 한다.음성지원되는

  • 알아주는 골초인 데다가 안 피울래야 안 피울 수가 없지 비만기도 보이고 게다가 연일 계속되는 강행군으로 건강이 썩 좋아보이지 않는다. 나꼼수 지방 콘서트에다가 김어준의 뉴욕타임스(1주일당 대충 2시간) 녹화까지 겹쳐 매일 지방과 서울을 직접 운전으로 왔다갔다 했다고 한다. 그리고 언동으로 보건데 맨날 고기만 퍼먹는 듯하다. 야채는 가축이 먹는 거라며 고기만 찾는다. 이런데도 나꼼수 4인방이 건강검진 받은 결과는 멀쩡하다고. 자기 말로는 의사가 자기 폐를 보고는 담배를 안 피우는 사람 폐 같았다고 했단다. 결국 2011년 11월 28일, 가슴통증을 호소하며 쓰러졌으나 곧 회복하였다고 한다. 같이 있었던 탁현민 씨가 다음 날 병원에 데려가겠다고 트윗. 나꼼수와 정치적으로는 정반대 지점에 있는 중앙일보의 홍혜걸 의학전문기자가 이 소식을 듣고 동영상까지 만들어 빨리 병원가라고 충고해주기도 했다.

  • 친노친문 성향이 강한 야권지지자이지만 뉴스공장을 통해 김성태나 이혜훈, 하태경 등 바른정당 의원들이나 박지원, 손학규 등 비노의원들과도 큰 충돌없이 인터뷰를 원활히 진행하는 편이다. 이런 점을 보면 친노친문 성향의 패널을 가급적이면 배제하거나 줄이는 TV조선, 채널A 등 종편보다도 유연한 편.

4. 매의 눈?[편집]

고럼고럼
2011년 5월 지승호와 가진 대담을 글로 옮긴 저서인 "닥치고 정치"(2011년 10월 출간)에서 예언했던 내용이 일부 맞았다. 그런데 일부라면 누구든지 맞힌다

  • 진보신당에서 노회찬과 심상정은 탈당할 것이다. (11년 6월)

  •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대표는 홍준표가 될 것이다. (11년 7월)

  • 오세훈은 무상급식 져서 사퇴할 것이다. (11년 8월)

  • 10월 26일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모종의 세력 (한나라당) 이 선관위 홈피를 공격한다.

  •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은 합당할 것이다. (11년 12월)

  • 진보신당의 일부는 끝까지 국민참여당과의 합당을 반대할 것이다. (심상정, 노회찬, 조승수를 위주로한 진보신당 탈당파는 진보신당과 결별하고 민노당, 국민참여당과의 합당에 참여로 실현.)


그런데 이러한 몇몇 예언이 맞았다고 보기도 힘든 게, 오세훈이 무상급식으로 자폭한 건은 보수유권자가 봐도 뻘짓인 게 뻔했고, 민노당 국참당의 합당이나, 노심의 탈당과 같은 경우에는 진보정치에 어느 정도 관심이 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저 정도의 인식은 지니고 있었다. 2011년 5월 있었던 연석회의의 결과가 발표되었을 때, 그걸 주도한 사람이 누구였는지, 그리고 진보신당 당원들이 얼마나 반대했는지, 그리고 그 이후 총선 국면이 다가오면서 이정희와 유시민이 함께 책을 내는 등, 징후는 많았으며 정치에 관심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 징후를 읽어내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매의 눈'으로까지 보기는 어려울 듯하다. 미국의 음모론까지 제기하며 황우석을 옹호한 일이나 신정아에 대해 옹호적인 인터뷰를 쓴 일, 무조건적인 비난 의욕에 불타 사실관계 검증에 소홀했던 삼성 휴대폰 폭발 사건 등은 그 안목의 한계를 보여준다. 논란이 됐었던 황우석 옹호 사건은 비난받지 않기도 한다. 자세한 내용은 딴지일보참조. 이 가운데 삼성 휴대폰 사건은 딴지일보에서 터진 뻘짓이기는 하나, 이 시기의 딴지일보는 김어준의 손에서 많이 벗어난 시기이다. 김어준이 직접 쓴 글이라면 몰라도 그 외의 사건들을 김어준과 연결시키는 것은 무리이다.

2013년엔 한겨레신문의 하니방송 <시사게이트>에 출연하여 안철수와 민주당에 관한 전망을 한 적이 있다. 이걸 두고 또 무슨 예언이 적중했네하는 의견이 있는데 정확하게는 예언이 아니라 '국회의원 단 둘 가지고 제3세력으로 계속 가는 건 무리고 민주당을 먹거나 먹히거나 해야 활로가 있다'는 전략에 대한 발언이었다.방송을 보면 옆사람도 그 말에 동의했는데 그러면 그도 예언가인가? 2014년 3월 2일에 안철수 신당과 민주당이 그의 바람대로 합당을 하였다. 그리고 2년도 안 가서 다시 쪼개졌다

2017년 9월엔 속속 이명박 정부 시절의 국정원, 사이버 사령부, 기무대를 동원한 전방위적인 여론조작이 사실로 드러나고 있는데 김어준은 자신이 진행하는 뉴스공장에서 자기가 당시 여론조작팀이 가동되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미친 놈의 음모론 취급을 받았다며 공작은 설마 그렇게까지 하겠어? 하는 심리의 빈틈을 먹이로 가동된다고 말했다. 십알단에 대해서도 그때는 미친 음모론자 소리를 들었다고.

5. 프로젝트 부[편집]

김어준이 계획한 다큐멘터리
1. INTENTION
2. 더 플랜
3. 저수지 게임

자세한 것은개별 문서 참고 바람

6. 사건사고/논란[편집]

문서 참고

7. 출연작[편집]


[1] 2008년에 언론사 등록을 했기 때문에 서류상으로도 딴지일보는 정식 인터넷 언론사이다.[2] 본인의 회고에 따르면 어릴 적부터 맛있는 게 있으면 부모 당신들이 항상 먼저 챙겨먹으며 "너희들은 맛있는 거 먹을 날이 많이 남았잖냐"라고 했다고. 그리고 김어준은 반박불가한 이 말에 설득당했다고 한다.[3] 이 방임주의란 것이 어느 정도였냐면 김어준이 고교생 시절 담배를 피울 것인지 말 것인지가 아니라 집에서 대놓고 피울 것인지 밖에 나가서 피우고 들어올 것인지를 두고 부모님과 설전을 벌였다고 한다. 이때 김어준은 난생 처음으로 부모의 간섭을 받았다고 하는데, 끝끝내 방에서 담배를 피우겠다는 김어준의 고집에 모친은 뺨을 한 대 때리고는 "그래 피워라 임마"라고 반응했다고(...)[4] 이라크와 이스라엘 중동지역을 방문할 때 반군 지도자 아라파트의 모습이 궁금해서 그의 집을 한참 찾다가 만나기 직전까지 갔으나 생각해보니 무작정 만나고 싶었을 뿐 아라파트에게 하고 싶은 말은 정작 없어 그의 집 벽에서 사진 한장 찍고 돌아왔다고 한다.[5] 그러나 그의 저서에서는 생각해보니 아라파트가 본인을 만나줄 이유가 없었기에 집을 배경으로 사진만 찍고 돌아왔다고 밝혔다.[6] 당시 김어준은 시간상 2~3시간밖에 없어서 잠을 아예 안 자기로 하고, 집에 가서 샤워만 하고 옷을 갈아 입고 회사로 갔다고 한다. 근데 그걸 요구한 그 간부가 먼저 출근해 있어서 놀랐다고 한다. 그러니까 그 간부도 잠 안 자고 온 것[7] 스스로 직장 후배들 휴식 인권뿐만 아니라 자기 인권까지 파괴하면서도 자기가 하는 게 그런 것인 줄 인지하지 못하는 데다가, 그런 정신상태를 후배에게 더 심어주려는 자기 태도 자체에 대해 만족하기까지 하는 순수 노예 앞잡이 근성이라는 뜻.[8] 사실 1998년 정도면 아직 PC통신이 전성기일 때라, 인터넷 매체는 많지 않았고 갈 곳도 적었으며, 그 비싼 인터넷 자원 - 미국의 인터넷이 상업화되는 시기에도 많은 논쟁이 있었다 - 을 가지고 황색저널을 표방하는 데 쓸 생각을 한 사람은 더 적었다. 시기를 아주 잘 탄 것.[9] 박근혜의 정치적 기반은 철저하게 박정희를 기반으로 하고 명확히 다른 길을 걷는 것도 아니어서 박정희하고 연계시켜서 까는 것이 연좌제라고 보기는 어렵다. 특히 박근혜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당연한 세습이므로 박근혜를 폭풍디스했다.[10] 파파 이스로 바뀌기 전, 방송 초기에 방송 중 중간 영상으로 김어준이 청취자와 시청자들에게 '닭을 새롭게 요리하는 법'을 적어서 방송 측에 보내달라고 했을 정도다. 중의적 표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