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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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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2. 가수 활동3. 안습의 필모그래피4. 종교5. 근황6. 여담7. 앨범
7.1. 1집

http://img.sbs.co.kr/newsnet/etv/upload/2012/08/20/30000132074_700.jpg

이름

김민종(金旻鍾)

출생

1971년 또는 1972년 3월 23일[1]

신체

180cm[2], 70kg, O형

본관

경주 김씨

학력

안양예술고등학교 연극영화과 (졸업)
서울예술대학 영화과 (전문학사)

직업

가수, 배우

가족

2남 2녀 중 넷째

데뷔

1992년 1집 '사랑 이별이야기'

종교

불교(법명 : 법진)

1. 소개[편집]

대한민국멀티 엔터테이너 - 가수, 배우.

배우와 가수 양쪽에서 모두 두각을 나타낸 원조 남자 연예인들중 하나로, 안양예고-서울예술대학을 졸업했다. 1988년 영화 <아스팔트 위의 동키호테>로 데뷔했다. 1989년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로 최초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 밖에 실제 사건을 영화화한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에선 여주인공을 강간하려다가 를 깨물려 절단된 가해자를 연기했다.

사실 90년대 남자 배우 중에서는 상당한 인기를 자랑했는데, 드라마만 나왔다하면 히트를 쳤을정도로 안방극장의 흥행 보증 수표였다. <느낌>, <머나먼 나라>, <미스터 큐> 같은 드라마에서는 당대 최고의 인기 배우들 ,미녀스타들과 호흡을 맞춰 많은 인기를 누렸다. 큰 키와 이국적인 외모는 당시에도 흔치 않은 마스크였고 80년대 말 ~ 90년대 초반을 장식한 여러 하이틴 스타들 군단의 일원으로 많은 인기를 누렸다. 지금은 결혼한 배우 이승연과 한때 공개 열애를 했다가 결별했다.

2. 가수 활동[편집]

  • 가수로는 1992년 1집 《사랑 이별이야기》로 데뷔했다.[3] 그리고 당대 최고의 청춘스타 중 하나인 손지창과 함께 2인조 그룹 '더 블루'를 결성해서 활동했다.[4] 자신의 출연한 작품의 OST도 직접 불러 많은 인기를 끌었는데, 느낌의 '그대와 함께'[5][6]

  • 머나먼 나라의 'Endless Love', 미스터Q의 '세상 끝에서의 시작' 등등. 솔로 1, 2집을 성공시키고 귀천도의 ost였던 귀천도애가 대박을 터뜨리면서 여러 가요프로그램에서 1위를 거머쥘 때 귀천도애가 일본 노래를 표절한 걸로[7][8] 판정되어 가요톱텐에서 사과 방송을 한 다음 1위 후보에서 자진 하차하고 활동을 접어야 했던 흑역사가 있었다.

  • 그러다 미련이 많이 남았는지 주위의 설득에 아직도 김민종의 대표곡으로 사랑받는 착한 사랑의 작사를 직접하면서 2년만에 성공적으로 가요계에 복귀했으며 그 뒤 앨범을 내는 족족 많은 1위를 했다.[9] 특유의 목을 쥐어짜는 창법과 열창할 때 미간이 찌푸려지는 표정, 무대에서 쓰러질 듯[10]한 모습은 많은 연예인들이 개인기로 따라했을 정도다[11].최근 음반을 안내는 이유는 음악을 잘해낼 자신이 없고 잘하는 후배들이 너무 많아서 가요계에 나서기가 부끄럽다고 털어놓았다. 한 때 신사의 품격의 ost 제안도 받았지만 본인의 아름다운 아픔을 다시 재녹음해서 수록한 것이 그가 최근 참여한 음악 활동이 되겠다.

3. 안습의 필모그래피[편집]

영화쪽으로는 영 풀리지 않았는데, 데뷔 초에 조연으로 출연한 영화들이 나름 성공을 하고 인지도를 쌓아가다[12] 인기 스타가 된 이후 찍은 영화 <귀천도>로 일약 주목을 받았다[13]. 하지만 그 뒤로 찍은 영화는 줄줄이 망했어요. 솔직히 나온 영화들이 꽤나 막장급이었다. 박찬욱 초기작인 3인조는 그렇다쳐도, 제목부터가 뭐야 이거? 소리가 나오는 마지막 방위[14] 홀리데이 인 서울은 왕가위 영화 기법 표절작이라고 흥행과 같이 평도 망했고, 이후로 나오는 낭만자객,패밀리....줄줄이 흥행과 평에서 연속 재앙이었다. 작품보는 눈+운+감독[15]빨이 안받고 흥행참패의 쓴잔을 연거푸 마신다. 망가지는 연기도 불사하고 찍은 <낭만자객>, <나비>를 연달아 찍었으며, 특히 <나비>의 경우는 흥행에 실패하면 연예계를 은퇴하겠다는 각오로 작업에 임했으나... -> 그뒤엔 충무로의 블랙 리스트에 올랐는지 제작자, 감독 그 아무도 찾지 않는 배우가 되었다.

4. 종교[편집]

불교의 상징이라 할 만한 '(卍)'자 목걸이를 즐길 정도로, 연예계에서 꽤나 유명한 불교 신도로 알려져 있다. 어려서부터 비구니인 외할머니의 영향으로 친구들과 사찰을 자주 찾았고, 학창 시절 한때 절에서 학교를 다닐 정도였다고 한다.

2000년대 초반에는 시상식에서 '부처님께 감사드립니다'는 수상소감을 밝혔고, 2012년 연기대상 시상식에서도 부처님의 자비로움에 감사한다는 수상소감을 피력하기도 했다. 본인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친만큼 그 감회가 남다른 듯 하다.

여담으로 개같은 날의 오후 영화에서도 '(卍)' 목걸이 매고 나왔다.

5. 근황[편집]

2000년대에 들어서 그 인기가 다소 주춤하게 됐는데, 아무래도 나이를 먹기 시작한 것도 있지만, 더 큰 이유는 가수로서의 활동이 녹록치 않게 된 탓이 크다. 김정민 버금갈 만큼 목을 쥐어짜는 듯한 발라드 창법을 구사했던만큼, 목에 부담이 많이 갈 수밖에 없기 때문.[16] 김민종처럼 연기력, 음악실력 모두 일정 수준 이상으로 연마한 연예인은 지금도 매우 드물기 때문에, 음악적 역량을 꾸준히 쌓아가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배우, 가수이며, 꾸준하게 활동을 하는 만큼, 팬들은 김민종이 다시 제 역량을 발휘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2012년 신사의 품격으로 복귀. 팬들의 기다림을 실망시키지 않았고, 완벽한 연기로 다시 부활의 날개를 펼치게 되었다. 덕분에 미중년 컨셉으로 다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고. 드라마에서 까메오로 출연하기도 했는데,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서는 자신이 '신사의 품격'에서 맡은 최윤 변호사 역을 그대로 활용하여 차관우를 자신의 로펌으로 스카웃하려 제의를 하는 선배 변호사로 등장. 또한 '응답하라 1994'에서는 '성동일'과 인연을 맺은 자신의 캐릭터 '김민종'으로 분하여 2002년 나정의 결혼식 때 삼천포와 같이 축가 '너만을 느끼며'를 불렀다.

현재는 SM에서 인수한 여행사에 사외이사로 선임이 되어서 나름 SM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간부가 되었다.[17]

2015년 11월 부산 조직 폭력배 칠성파 간부 결혼식에 나와 손지창과 같이 진행을 맡으면서 뒷말이 많았다.이에 대한 취재에 둘 다 피해 다니기만 했다고.

2015년에는 SBS 드라마 미세스 캅을 2016년에는 시리즈편인 미세스 캅 2에서 박종호 역할로 출연한다.

6. 여담[편집]

장동건과 관련된 꽤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김민종은 이른 시기에 스타가 되었는데 원래 드라마 우리들의 천국에서 장동건이 맡은 배역은 김민종의 배역이었다. 그러나 김민종이 SBS <열정시대>의 주인공으로 캐스팅되어 출연이 어렵게 되자, 이미지가 비슷한 탤런트를 찾다가 신인 장동건을 기용한 것. 이 드라마를 통해 장동건은 스타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물론 워낙 출중한 외모이니만큼 이 드라마가 아니어도 언젠가는 떴었겠지만… 사실 장동건을 진짜 스타로 만들어준 드라마는 따로 있었다.

김보성과 더불어 연예계의 대표적인 의리캐릭터로, 앞뒤도 안 보고 의리 하나때문에 금전적, 물질적인 손해를 보고 적지 않은 마음고생을 한 듯 하다. 지인의 부탁으로 영화에 무보수로 출연한 적도 있었다고. 다만 김민종의 경우는 감수성이 매우 풍부하다고 보는 게 옳을 듯.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야 하는 직업적 특성상, 연예인들은 이 감정이입하는 감성이 매우 발달해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장국영처럼 연기자로도 가수로도 모두 성공을 거둔 사례를 찾아보면 더 쉽게 알 수 있는 부분. 연예인으로서는 축복받은 재능이나, 남의 말을 잘 믿고, 부탁을 쉽게 거절 못하기 때문에 고생 끝에 번 돈을 허무하게 날리는 경우가 유독 많은 연예인 직업군에서도 크게 손해를 보았던 사례인 듯.[18]

박중훈과의 인연이 좀 깬다. 1987년에 박중훈이 아스팔트 위의 동키호테라는 영화에 최재성과 같이 주연으로 나왔는데 김민종은 이 영화의 단역으로 데뷔했다.[19] 촬영장에서 박중훈이 날씨가 추운 관계로 김민종에게 자신의 차 열쇠를 주면서 시동만 켜 놓고 차안에서 히터를 쬐라고 배려해 줬었는데 김민종은 이 차로 주행을 하다가 접촉사고를 내고 말았다.# 이 사고로 상대 차량의 수리비가 그 당시 기준으로 50만 원(지금으로 따지면 거의 천만 원 가까운 돈이다.)이 나왔다. 이 때문에 박중훈은 김민종에게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욕을 하며 갈궜는데 이후 그것도 인연이라고 나중에 화해한 이후로는 둘이 친하게 지냈다. 참고로 박중훈은 지금도 그랬지만 당시에도 화가 나면 가장 무서운 연예인이였다. 박중훈의 분노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으면 바이오맨항목이나 박중훈항목을 보면 된다.

의외로 심각한 방송사고를 일으킨 적이 있다. 영화 홍보차 나온 한밤의 TV연예에서 사회자가 그가 맡은 깡패역의 극중 한장면을 한번 보여달라고 계속 요청하자 갑자기 멘탈이 붕괴했는지 생방송인데도 실제 쌍욕을 넣어 거하게 대사를 친 뒤 자기도 놀라 '큰일 났다 방송사고다! 전 시켜서 한거에요!' 라고 한 흑역사중 흑역사가 있다(...) 뇌를 해킹 당했나? 아니면 진정한 메소드. 저 당시로도 데뷔한지 꽤 된지라 방송물 먹을만큼 먹은 사람인데도 저런 실수를 했단 것이다. 퓨어한 이미지가 강한데 실제로도 퓨어바보 한 듯. 유투브 등지에서 김민종 방송사고라고 쳐보자.

2013년 10월말 11월초 2주간에 걸쳐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에 초청되는 등 조금씩 극 이외의 매체에도 등장하면서 다시 주목 받는 중. 이날 방송을 보면 DSP미디어 이호연 사장과 친해서, 과거 이호연 사장과 핑클이랑 같이 일본에 놀러갔었다고 한다. 그때 성유리가 물놀이를 하다가 물에 빠졌는데, 김민종이 와서 구해줬다고 밝혔다.#

7. 앨범[편집]

7.1. 1집[편집]

  • 1.또다른 만남을 위해[20]

  • 2.그대 품에 다시 안기어[21]

  • 3.언제나 내맘속에 있는 너[22]

  • 4.To You[23]

  • 5.흔들리는 사람들[24]

  • 6.어두운 밤에 홀로[25]

  • 7.지나간 시간[26]

  • 8.알 수 없는 아쉬움[27]

  • 9.꿈이었을까?[28]



[1] 72년 생이나 71년 생이다 여러 추측들이 있지만 김민종 3집 앨범에 수록된 <이왕 시작된 인생>이라는 곡의 가사에서는 본인이 1971년 3월 23일 생이라 되어 있고, 정황상 예전부터 71년 생이라 소개되어 있는 것을 보면 71년 생으로 보인다. 72년 2월 생인 윤정수가 형으로 부른다거나, 72년 3월 생인 장동건이나 빠른 신경 안 쓰고 72년 1, 2월 생들과 친구하는 유재석도 모두 이라 부르는 것을 보면... 그런데 최근에 출연한 라스에서는 또 1972년 생으로 언급된다. 대관절 뭐지? 참고로 네이버다음 등에는 모두 1972년 생으로 기입되어 있다.[2] 전성기 때 프로필은 178cm였다. 40대 중반의 나이를 감안하면 1cm 줄은 것이라고 봐도 된다.[3] 한해 전인 1991년 본인이 출연한 <하얀 비요일>의 OST에서 1집의 타이틀곡인 '또다른 만남을 위해'를 불렀던 적이 있다.[4] 손지창 역시 연기와 노래 모두 잘 하는 능력 있는 배우로 주목받던 연예인이다.[5] 손지창과 함께 부름. 가요톱10 3주 연속 1위를 기록했다.[6] 여담으로 이때 드라마틱하게도 1위 경쟁을 하던 곡이 이현도가 작사, 작곡한 구본승의 '너 하나만을 위해' 라는 곡이었는데 '그대와 함께'가 2주차 1위를 했을때는 단 3표 차이, 3주차 1위를 할때는 딱 1표 차이로 2위에 머물렀다가 그 다음 주부터 '그대와 함께'의 4주 연속 1위를 저지한 뒤 정상을 밟았지만 그 다음 주부터 발라드 황제라 불리우는 분 노래가 정상을 밟은 뒤 결국 골든컵을 차지했다.[7] TUBE가 부른 Summer Dream (1987). 오다 테츠로 작곡. 듣고 판단하시길. [8] '귀천도애'의 작곡가 서영진은 이미 1993년 더 블루'나를 위해'X JAPAN'Endless Rain'을 표절했다는 판정을 받은 바 있다.[9] 실제로도 1위를 한 곡들이 꽤 있다. 세월은(?) 많이 지났지만 언제 들어도 괜찮다는 평이 대다수.[10] 피사의 사탑처럼 몸을 기울이고 노래를 부른 경우가 많다.[11] 미간을 찡그리고 콧부리에 집게손을 살짝 얹으며 그대여~ 를 하는게 정석[12] 영화 '개 같은 날의 오후'에서도 조연으로 출연했는데 영화 평은 좋은 편이었다.[13] 나름 성공작이라는 이 영화도 '귀천도애' 때문에 김민종 본인에겐 흑역사급.[14] 제작사인 아브락사스가 망할 정도로 쫄딱 망했다. 이후 이 영화의 감독 김태규는 전설이 된 또 하나의 괴작을 만들어낸다.[15] 그가 맡은 작품들을 보면 현재 흥행감독으로 잘나가는 윤제균, 거장으로 불리는 박찬욱이 있지만 그가 출연한 작품은 죄다 망했다..[16] 이런 점 때문에 김민종이 가수활동을 쉬게 된 2000년대 이후 이 창법을 구사하는 대형신인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17] 여행사를 인수한 이유는 SM의 해외진출과 맞물려 해외 팬들을 상대로 한 여행상품을 개발하는 사업을 진행하게 되었기 때문이다.[18] 대략의 액수가 궁금하신 분들은 알고싶은 연예인 이름 뒤에 "돈 날려" 항목을 넣어 검색해보시기 바란다.[19] 당시 김민종은 고등학교 1학년이였고 박중훈은 대학생이였다.[20] 작사 : 지우, 작곡 : 서영진 4:33[21] 작사:지우 작곡:서영진 편곡:서영진 4:06[22] 작사:송재준 작곡:송재준 편곡:송재준 4:32[23] 작사:지우 작곡:서영진 편곡:서영진 3:43[24] 작사:지우 작곡:서영진 편곡:서영진 3:36[25] 작사:김민종 작곡:서영진 편곡:서영진 3:37[26] 작사:서영주 작곡:김형석 편곡:서영진 4:00[27] 작사:지우 작곡:서영진 편곡:서영진 4:06[28] 작사:김민종 작곡:김민종 편곡:서영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