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진(축구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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킷치 SC No. 38

김동진 (金東進 / Kim Dong-Jin)

생년월일

1982년 1월 29일 (36세)

국적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대한민국

출신지

경기도 동두천시

포지션

풀백

신체조건

183cm, 74kg

혈액형

A형

프로입단

2000년 안양 LG 치타스

소속팀

안양 LG 치타스/FC 서울 (2000~2006)
FC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 (2006~2009)
울산 현대 호랑이 (2010)
FC 서울 (2011)
항저우 뤼청 (2012~2013)
무앙통 유나이티드 FC (2014~2015)
서울 이랜드 FC (2016)
킷치 SC (2017~ )

국가대표

62경기 2골

종교

개신교[1]

2004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나드손

FW
모따

MF
김동진

MF
따바레즈

MF
김두현

MF
김대의

DF
산토스

DF
유경렬

DF
무사

DF
곽희주

GK
이운재


1. 소개2. 클럽 경력3. 국가대표 경력4. 플레이 스타일5. 트리비아

1. 소개[편집]

대한민국의 축구선수. 이영표, 장학영, 김치우 등과 함께 한국의 왼쪽 풀백 자리를 풍족하게 만든 주인공이었다.

별명은 강철, 황금 왼발, 샴푸도둑.

2. 클럽 경력[편집]

2000년 안양 LG 치타스에서 데뷔했고 FC 서울로 바뀐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활약했다. 2006년 독일 월드컵 이후에는 풀백으로 고정되었지만 K리그 시절에는 센터백, 윙백, 수비형 미드필더까지 가히 한국의 존 오셰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많은 포지션을 소화했다. 초기에는 적은 경기수에 비해 잦은 포지션 변경으로 적응에 애를 먹었지만 좋은 피지컬과 뛰어난 공간 활용으로 이를 극복하고 K리그에서 전도유망한 수비수로 성장했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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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독일 월드컵을 계기로 딕 아드보카트 감독의 눈에 들어 울산 현대이호와 함께 러시아 프리미어 리그FC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이적했다. 초반 적응기를 거쳐, 2007 시즌부터 제니트의 주전 선수로 뛰며 2007년 러시아 프리미어 리그 우승에 일조했고, 그 해 리그 최우수 왼쪽 풀백에 선정되며 다시 한번 뛰어난 재능을 각인시켰다.

2007-08 시즌 UEFA 컵에서도 예선전부터 32강 비야레알 CF전과 16강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전에서 각종 골과 어시스트를 기록하는 활약을 보였으나, 이후 부상으로 한동안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 하지만 레인저스 FC와의 UEFA 컵 결승전에서 아드보카트 감독의 배려로 종료 30초 전에 교체 투입되어 제니트의 첫 UEFA컵 우승을 경험했다. 이호와 함께 차범근 이후 20여년만에 UEFA 컵 우승을 경험한 대한민국 선수. 동료 이호가 벤치만 데우다 한국으로 돌아간 후에도 팀에 남아 유럽 생활을 이어갔다.

하지만 2007-08 시즌 이후 주전 경쟁에서 밀리며 입지가 위태로워졌다. 아직 군문제도 해결하지 못했기에 이래저래 고민이 많다. 광주 상무 불사조 입단 가능 연령이 지나서 자칫하면 안산 경찰청에서 뛰게 될 판이다.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는 수밖에 방법이 없는데 그럴려면 일단 3장밖에 없는 와일드카드에 뽑혀야 한다.

2010년 1월 말, 뇌혈류 장애로 팀 메디컬 테스트에서 탈락하면서 제니트에서 방출통보를 받았고 2010년 2월 K리그 울산 현대로의 이적이 확정되었다. 하지만 서울 시절 팀 후배로 자신에게 밀려 자리를 잡지 못했던 최재수에게 역으로 밀리며 주전 자리를 잡지 못했고 2011년 다시 친정팀인 FC 서울로 복귀하였다. 그러나 서울에서도 아디현영민이라는 걸출한 경쟁자들이 버티고 있었고[3] 결국 로테이션으로 돌려지다 2012년 중국 항저우 뤼청으로 이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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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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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 감독 마틴 레니와 함께.

2014년 2월 6일 무앙통 유나이티드 FC로 이적하여 2016년까지 뛴 후, 2016년 서울 이랜드 FC에 1년 계약으로 입단했다. 이후 1년 동안 팀의 베테랑 풀백으로 활약했으나, 2016 시즌 종료 후 홍콩 프리미어 리그의 킷치 SC로의 이적이 거의 확정되었다는 소식이 떴다. 서울 이랜드 측에서는 김동진을 붙들기 위해 협상을 해봤으나, 서로의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했는지 결국 떠나보내게 되었다.

3. 국가대표 경력[편집]

U-20 대표팀에서는 윙어를 맡았으며 2001년 있었던 아킬레스건이 파열되는 부상 재활 이후, 수비형 미드필더, 윙백으로의 포지션 변경이 되어 2002년 부산 아시안 게임 대표팀에서는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하였으며, 2003년 12월 4일 홍콩과의 경기로 A매치 데뷔전을 치뤘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는 예선 1차전 그리스전에서 골을 기록하고 3차전 말리전에서 조재진의 두골을 어시스트하며 대표팀의 8강 진출을 이끌었다.

이후 국가대표팀에도 선발되었으며, 2004년 12월 19일 부산에서 있었던 독일과의 친선전(독일팀 베스트 전력임. 클로제 발락 다나온 경기. 일본과의 친선경기도 3:0으로 발라버리고 온 팀)에서도 세계적인 골키퍼 올리버 칸을 상대로 선제골을 기록하며, 독일 월드컵 예선에서도 활약하게된다. 크로아티아전 장거리골은 그의 왼발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또 다른 장면이다.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선 경고 누적으로 출장하지 못한 토고전을 제외한 2경기에 모두 풀타임 출전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대표팀에서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해 눈에 안 보인다는 의미인 닌동진이라는 굴욕적인 별명으로 불렸다. 게다가 당시 대표팀 감독들이 김동진을 왼쪽 풀백으로 활용하기 위해 같은 포지션에서 한국 축구 왼쪽 풀백 중 가장 이름값이 높았고 유럽에서 쾌조의 활약을 보여주던 이영표를 본 포지션이 아닌 오른쪽 풀백으로 돌리는 선수 기용을 해야 했다. 이 때 당시 다수의 축빠들에게 까임의 대상이 되었고 2006년 독일 월드컵이 끝난 이후에도 한동안 이러한 비난은 계속되었다.

이 기용에 대해서는 당시 김동진의 기량이 사실상 이영표를 뛰어넘어서 김동진이 왼쪽이었고 그냥 오른쪽 풀백이 가능한 자원 중에서 이영표가 제일 나았기 때문에 김동진이 왼쪽 이영표가 오른쪽이었다는 의견,[5][6] 왼쪽밖에 뛰지 못하는 김동진과 오른쪽도 가능한 이영표를 동시에 사용하기 위한 고육책이었다는 의견, 그래도 이영표를 활용하고 오른쪽은 송종국이나 조원희를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게다가 2007년까지만 해도 러시아 리그에 대한 언론의 관심도가 사실상 전무했던 상황이었던지라 당시 유럽에 파견되었던 소수의 객원 기자들을 제외하고는 리그에서 주전으로 활약하고 있던 김동진을 철저히 외면했으며, 이후 제니트가 러시아 리그 우승 가시권에 들기 시작할 때쯤에야 조금씩 관심을 갖는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제니트에서의 성공을 발판으로 대표팀에서의 경기력도 향상되었으며, 자연스레 팬들의 평가도 달라졌다. 이후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 와일드 카드로 출전하여 3차전 온두라스전에서 결승골을 기록했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대표팀에 선발되었으나 벤치 신세였다. 오른쪽 풀백인 차두리오범석이 수비에서 믿음직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며 김동진-이영표 라인을 재가동하자는 의견이 축구팬들 사이에서 제기되었으나 나이지리아전 교체로 잠깐 뛴 것을 제외하면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

이영표가 물러난 시점에서 차세대 왼쪽 풀백으로 꼽히던 그의 부진은 팬들에게 많은 아쉬움을 주고있다.[7]

4. 플레이 스타일[편집]

체격이 좋고 중앙수비수 경험도 있기에 대인방어 능력이 우수하다. 전성기 시절엔 평범한 기동력을 뛰어난 공간활용능력으로 보완했고 이를 통한 공격력은 대표팀 부동의 주전인 이영표보다 한 수 위로 평가받기도 했다. 그러나 뇌혈류 장애로 인해 파주 NFC에서 졸도한 사건 이후로 폼이 급격하게 떨어지기 시작했고 현재는 군면제급의 상태라고 한다. 그러니까 폭탄을 달고 축구를 하는 셈. 국대에서도 밀린건 이 영향이 매우 크다.

5. 트리비아[편집]

  • 안정환샴푸를 훔쳐 쓰고 죽ㅓ어도 자기가 안 썼다고 우겼다 한다(...).[8]

  • 안양 서포터즈는 정조국과 함께 김동진을 엄청나게 싫어하는데, 이유는 안양 LG 치타스FC서울로 연고 이전하던 때 선수단 중 이 선수가 연고 이전에 적극 찬성이라며 환영하였기 때문이라 한다. 정조국과는 달리 안양공고 출신으로 안양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이영표와 포지션도 비슷하고, 이영표의 이적 이후 김동진이 잘해주기도 해서 많은 사랑을 받았던 선수여서 안양 축구팬들의 마음의 상처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한다.

[1] 올림픽 축구 대표팀이 부르는 찬양앨범에도 참여하였다.[2] 단순한 멀티 플레이어와는 달리 수비에서의 중앙과 측면은 아주 다르다. 때문에 풀백과 센터백을 동시에 소화하기 위해선 뛰어난 공간 활용능력과 축구 IQ가 요구된다. 슈틸리케호에서 장현수를 보자.[3] 여담으로 현영민과는 제니트 시절 한솥밥을 먹었던 적이 있다. 제니트 때는 현영민이 김동진에 밀렸으나 서울에서는 그 반대의 상황이 되었다.[4] 등번호 63번은 2016년에 태어난 자신의 아이와 함께 3명의 가족이 잘 지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정한 번호라고 밝혔다.[5] 당시를 회상함에 있어서 김동진의 기량이 이영표를 넘었다는 것에 대해 경기를 일으키는 사람들이 많다. 김동진의 기량이 그 정도로 뛰어났다면 어째서 그가 닌동진이라고 불렸겠냐는 것이다. 그러나 이건 한국에 축알못들이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까닭일 뿐이다. 가장 쉬운 예시를 들을 만한 선수들이 염기훈, 이근호, 김정우 등으로 이들은 사실상 대표팀 에이스거나 그에 준하는 활약을 보여줬지만, 그들은 국가대표에서 오랜 시간 동안 저평가를 받고 비난을 받다가, 정작 그들이 빠지고 좀 시간이 지나니까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그제서야 재평가되는 촌극을 보여주는 것, 중남미 국가나 아프리카 국가를 한국으로 불러놓고 시차적응 기후적응도 안 된 1.5~2군 선수들을 홈에서 두들겨패놓고 환호하는 것이 한국 네티즌들 축구 안목의 현실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를 닌동진이라고 불렀다는 것은 그다지 대단한 근거는 되지 못한다.[6] 또한 은퇴당시 이영표가 고백했던 것처럼, 한국 네티즌들의 안목이 그다지 대단하지 않은 이유로 한국 네티즌들이 숭앙하는 것만큼 이영표가 잘해줬던 것은 아니다. 김동진의 활약에 대한 직접적인 근거로, 이영표는 06 월드컵 당시 3경기 출장했지만 김동진은 2경기 출장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영표는 3백 체제에서는 왼쪽으로 나왔지만 4백 체제의 2경기에서는 오른쪽으로 나왔는데 반면 김동진은 4백 체제에서 2경기 다 왼쪽으로 나왔다. 왜냐면 밸런스 문제다. 가장 빌드업을 잘하는 중앙 미드필더는 이을용이지만 체격이 왜소한 편이고 30대를 넘어 가장 수비력이 떨어졌다. 이을용의 경우 타이밍을 보고 매섭게 압박하는 능력은 좋았지만 직접 공을 탈취하는 수비를 하는 스타일이 아니었으며 왼발 빌드업을 위해 왼쪽에 치중해서 서게 된다. 직접 탈취하는 스타일이 아닌 것은 이영표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4백 체제에서 이영표가 왼쪽에서 뛰게 되면 미드필더 가운데에서는 이을용을 부르게 되기 십상이지만 앞서 말했듯 이을용이나 이영표나 직접 탈취하는 능력은 약하기 때문에 약점이 생긴다. 수비수를 부를 경우 최진철인데, 최진철은 이영표를 지원하는 임무도 맡았다. 실제로 보면 알겠지만 최진철은 이영표가 3백에서 왼쪽을 맡았을 때는 왼쪽에 서 있었고, 4백에서는 오른쪽에 있을 때는 오른쪽에 서 있었는데 이 이유가 아니면 중앙 수비수가 서 있는 위치를 바꿀 장난질을 칠 이유가 하나도 없다. 어쨌거나 이영표의 탈취 능력 부족은 파이터형 수비수인 최진철을 이영표의 위치에 따라 바꿔 기용해야 했을 정도라는 것이다. 반면 김동진은 중앙 수비수도 했을 정도라 피지컬이 괜찮았고 공격력도 괜찮았기 때문에 부담없이 왼쪽에 세우기 좋았다. 이걸 다른 말로 하자면 이 당시 4백 왼쪽 수비수로서 김동진의 기량이 이영표에 비견할 만하며 관점에 따라서는 뛰어넘었다는 얘기다.[7] 김동진뿐만 아니라 K리그 최고의 왼쪽 수비수로 꼽히던 장학영은 국대와는 전혀 인연이 없다가 2010년부터 공익근무에 들어갔고 2007년 아시안컵에서 오범석과 함께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기대를 모았던 김치우는 수비력 부족을 극복하지 못하고 사실상 왼쪽 윙으로 전향했다. 장학영은 핌 베어백 감독이 국대로 호출했으나, 장학영은 부상이라 국가대표에 나갈수 없다며 차출을 고사했다. 그러고서 불과 4일뒤에 있었던 K리그 챔피언 결정전에 출전. 핌 베어벡을 엿먹였고, 이후 장학영은 국가대표와 인연이 멀어지게 된다. 소속팀에 충성심이 굉장히 강해 국대와 인연을 끊었었다.[8] 채팅창에서 질문을 하자 안정환이 대답했는데, 꽃을 든 남자 샴푸였다고 한다. 안정환이 리즈 시절 때 광고한 그 샴푸 제품이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