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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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훈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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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유나이티드 감독

김봉길
(2012~2014)

김도훈
(2015~2016)

이기형
(2016~2018)
(감독대행: 박성철)


울산 현대 역대 감독

윤정환
(2015~2016)

김도훈
(2017~)

-


김도훈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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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최용수

FW
김도훈

MF
안드레

MF
신태용

MF
전경준

MF
데니스

DF
강철

DF
이임생

DF
김현수

DF
마시엘

GK
신의손

2003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김도훈

FW
마그노

MF
신태용

MF
이성남

MF
이관우

MF
김남일

DF
최진철

DF
김태영

DF
김현수

DF
산토스

GK
서동명



Ulsan Hyund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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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김도훈
金度勳| Kim Do-Hoon

출생

1970년 7월 21일 (48세) /
대한민국 경상남도 통영시

국적

대한민국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신체

183cm | 체중 76kg

직업

축구선수(공격수[1] / 은퇴)
축구감독

소속

선수

상무 (1993~1994)
전북 현대 다이노스 (1995~1997)
비셀 고베 (1998~2000)
전북 현대 모터스 (2000~2002)
성남 일화 천마 (2003~2005)

감독

성남 일화 천마 (2006~2012 / 코치)
강원 FC (2013 / 코치)
대한민국 U-20 대표팀 (2014 / 수석코치)
인천 유나이티드 (2015~2016.8)
울산 현대 (2016.11~)

국가대표

72경기 30골(대한민국 / 1994~2003)

정보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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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연세대학교

번호

9

별명

폭격기




1. 개요2. 선수 시절3. 은퇴 이후 지도자 생활
3.1. 인천 유나이티드3.2. 울산 현대
3.2.1. 2017년3.2.2. 2018년
4. 논란5. 플레이스타일6. 이야깃거리7. 선수 이력

1. 개요[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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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현대 시절.

성남 일화 시절.


성남전북황제
쇠퇴한 명가 울산 현대를 재건 중인 감독

대한민국축구선수 출신 감독. 2016년부터 울산 현대 감독을 맡고 있다.

2. 선수 시절[편집]

2.1. 클럽 경력[편집]

2.1.1. 전북 현대 다이노스[편집]

1995년 전북 현대 다이노스에 입단해 3년간 팀의 주축 공격수로 활약했으며, 61경기 23골의 기록을 남겼다.

2.1.2. 비셀 고베[편집]

1998년에는 J리그비셀 고베로 임대 이적해서 훌륭한 활약을 보여주었다. J리그에서의 평가도 매우 높았으며, 김도훈은 이때 2년간 58경기 27골의 훌륭한 성적을 기록했으며, 이에 빗셀 고베는 3명의 용병 슬롯을 모두 한국 국가대표 선수들(김도훈-하석주-최성용)로 채웠을 정도로 김도훈의 활약은 대단했다.

2.1.3. 전북 현대 모터스[편집]

2000년 비셀 고베 임대 생활을 정리하고 국내 최고 대우를 받으며 전북 현대 모터스로 복귀한 김도훈은 전북을 리그 3위로 올렸고 FA컵 트로피까지 차지했다. 김도훈은 그 해에 리그 27경기 출전해서 15골을 터뜨리며 득점왕에 오르는 등 최고의 기량을 과시했다. 하지만 김도훈과 전북의 관계는 계속 되지 못했다. 성적 부진으로 최만희 감독이 사퇴하고 조윤환 감독이 들어오면서부터다. 김도훈은 조윤환 감독과 좋지 않은 관계였다. 조윤환은 부천 출신 선수들과 외국인 선수들 위주로 팀 리빌딩을 단행했다. 그 과정에서 김도훈을 비롯한 기존 전북 선수들의 불만은 극에 달했고 결국 김도훈은 2003년 성남 일화로 떠났다.

2003년에는 28골로 K리그 득점왕에 올랐는데, 이는 데얀이 2012년에 31골을 기록하기 전까지 최고 기록이었다. 당시 마그노도도 2명의 브라질 특급 스트라이커와의 경쟁 속에서 기록한 것이라서 더욱 의미가 있다.[2] 2005년에도 좋은 활약을 보였지만 부상 때문에 시즌 막판을 날리게 되고, 이는 선수 생활 은퇴로까지 이어졌다. 어쨌거나 구단과의 관계와는 별개로 김도훈은 전북의 황제임을 증명하듯, 92경기 40골의 활약을 펼쳤다.

2.1.4. 성남 일화 천마[편집]

성남 일화 천마에서는 리그 우승 3연패를 비롯한 최전성기를 이끌었던 레전드 선수로 존경을 받고 있고, 기록의 사나이로 불리는 신태용과 같이 황금 콤비를 이루면서 만든 득점의 수를 합치면 무려 200개가 넘는다.[3] 한편, 성남에서도 104경기 51골이라는 대활약을 펼쳤다.

2.2. 국가대표 경력[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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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인상적인 활약은 1999년과 2003년. 1999년 3월 28일 잠실종합운동장에서 브라질과 친선경기를 가졌을 때 후반 종료 직전에 브라질을 상대로 결승골을 넣어서 브라질을 1-0으로 격파하는 파란을 일으켰다.##[4]

이는 A매치 한정으로 아시아 국가의 유일무이한 브라질전 승리다.

여담으로 당시 브라질 국대감독이던 룩셈부르구는 "한국 경기장이 나빠서 졌다."라고 변명[5]했다가 브라질 언론에게도 욕을 먹었다.[6]

그 외에 1994년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동대문운동장에서 터뜨린 바이시클 킥 골도 유명한 장면이다.#[7]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에서는 당초 주전 공격수로 낙점되어 있었던 황선홍과 최용수가 각각 부상과 컨디션 난조로 인해 출전이 어렵게 되자 그들을 대신해 멕시코전에 원톱으로 선발출장했지만, 본인도 컨디션이 별로였는지라 별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후반전엔 다리에 쥐가 나서 침을 맞아가면서 뛰는 투혼을 보였지만, 정작 경기를 지켜보던 축구 팬들의 반응은 "최용수, 황선홍은 어디가고 쟤가 나왔어?"였다.(...) 2차전인 네덜란드전에서도 선발 출전했는데, 초반 강력한 중거리슛으로 옆그물을 때리는 인상적인 장면을 보이기도 했다. 해설진이 순간 골로 착각했을 정도.

2000 시드니 올림픽 때는 와일드카드로 뽑혔는데, 본선에서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했다. 3차전 칠레전에서는 한국이 1명 퇴장 당한 상황에서 교체 출전했는데,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본의아니게 후배들에게 폐(?)를 끼치기도 했다.

어쨌든 그 이후에도 한동안 국가대표 주전 공격수로 활약했으며, 거스 히딩크 감독이 부임하고 나서도 5골을 기록할 정도로 주전 공격수로 중용되었다. 하지만 북중미 골드컵 대회 종료 이후부터는 거의 기용되지 않았으며, 2002 월드컵을 몇 달 남기고 떠난 해외전지훈련 명단에서도 제외되었다. 결국 예상대로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엔트리에 포함되지 못하며 그의 월드컵 커리어는 끝나버렸다.

사실 김도훈의 능력 자체는 월드컵 엔트리에 들어도 무방할 정도였으나 전술 상 주전 경쟁에서 밀렸다고 볼 수 있다. 히딩크호는 3-4-3 포메이션을 쓰며 정통 스트라이커는 원톱 자리에 한명만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외에 나머지는 설기현, 이천수, 차두리, 박지성 같은 윙 포워드형 공격수들이었다. [8] 그리고 경기 중 김도훈의 불필요한 행동들이 히딩크의 눈 밖에 났다는 점도 부정할 수 없는데, 실제로 북중미 골드컵 3, 4위전인 캐나다전에서 김도훈은 선제골을 넣었지만, 이후 자책골을 기록하고 만다. 캐나다 선수가 크로싱한 볼을 걷어낸다는 것이 김도훈의 머리를 맞고 한국 골대 안으로 들어간 것. 히딩크는 어느 언론의 인터뷰에서 김도훈은 충분히 능력이 있는 공격수이지만 불필요한 행동을 보여주곤 했다고 언급한적이 있다. 이것이 괜한 착각이 아니었는지 김도훈은 성남 일화 소속으로 출전한 클럽대항전에서 중국 프로팀과 경기를 가졌는데, 여기서 또 자책골을 기록한다.

그런데 정작 축구 팬들 사이에서 김도훈의 엔트리 탈락은 딱히 화제가 되지 않았다. 그래도 월드컵 1, 2년 전까지는 히딩크호의 주전 공격수 역할을 했던 선수였는데, 엔트리가 발표되었을 때도, 월드컵이 성황일 때도, 대회 종료 이후에도 김도훈에게는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다. 당시 김도훈과 마찬가지로 엔트리에서 제외된 이동국의 경우 의외라는 반응도 많았고 동정 여론도 있었기에 어느 정도 화젯거리가 되기도 했지만, 김도훈은 그런 면이 상대적으로 굉장히 적었다. 아니 아예 묻혀버렸다는 것이 맞는 표현일듯. 물론 본인은 기사나 인터뷰 등을 통해 엔트리에서 제외된 것에 대한 상심을 내비치기도 했지만, 팬들은 김도훈과 월드컵과의 관계를 의식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다.

월드컵 탈락 이후에도 2003년에 아시안컵 지역 예선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주며 한국의 아시안컵 본선 진출에 크게 공헌했다. 히딩크의 후임인 코엘류 감독 또한 "맡은 지역에서 찬스가 생기면 확실히 골로 마무리를 하는 선수"라며 높게 평가한 바 있다. 원래 아시안컵 2차 지역 예선을 끝으로 국가 대표 은퇴를 선언했지만 코엘류 감독의 만류로 취소를 했다. 하지만 결국 2004년 1월 국가 대표 은퇴를 하게 된다. 당시 대표팀에서 자신이 안정환, 설기현, 이천수, 박지성, 차두리 같은 2002 월드컵 출신의 젊은 해외파 선수들의 교체 선수에 불과하다고 느끼고 있었으며, 거기에다 최성국, 조재진 같이 아테네 올림픽 대표팀에도 좋은 후배들이 있었기 때문이다.[9]

2006년 초 앙골라 전을 통해 국가대표 및 선수 은퇴식을 가졌다.

3. 은퇴 이후 지도자 생활[편집]

성남 일화 천마의 코치로 활동하다가 강원 FC의 코치로 옮겼다. 2014년 대한민국 U-19팀 수석코치로 선임되었다.

3.1. 인천 유나이티드[편집]

2015년 1월 12일 밤 본인도 '저런 팀을 누가 맡지?' 했던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 계약에 합의하고 사인을 마쳤다. 계약 기간은 1+1년이다.#

다함께 몰아쳐 사자를 사냥하는 늑대축구를 표방하고 출발한 시즌, 김도훈 감독의 인천 유나이티드는 2015년 8월 24일 현재 리그 6위에 랭크돼 있다. 공격력, 수비력, 조직력 모두 수준급에 올라왔다는 평가. 늑대축구를 표방한 것에 걸맞게 스피디한 역습 전개에 매우 뛰어난 모습을 보인다. 8월 22일에는 선 굵은 역습 축구로 리그 1위를 순항하는 전북 현대를 잡아내기까지 했다. 충격을 받았는지 최강희 감독은 이 경기가 끝난 후에 "닥공 축구를 버릴 것"이라 선언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

그의 지도력 덕분인지 울산 현대와 바뀐 것 아닌가 할 정도의 날카로운 공격력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김인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공을 운반하고, 수비라인 교란시키고, 때론 펄스 나인에 가까운 역할을 맡기기도 하는 등 지장으로서의 면모가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공격도 수비도 지지부진했던 예년과 달리 목적 의식이 뚜렷한 경기 방식에 인천 유나이티드 팬들과 많은 리그 팬들이 김도훈 감독에게 찬사를 보내고 있다. 더불어 직관 보는 재미도 함께 늘었다는 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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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마다 상당한 패션 센스를 선보여 언론과 팬들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완생을 향해'...'패션왕' 김도훈의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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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6일 현충일에는 인천 상륙작전을 기념하는 의미로 맥아더 장군의 복장을 하고 사인회를 열었다.

성남 김학범 감독과 사제대결에서 잇따라 0:1로 패하였다. 특히 33라운드에서 상위 스플릿 진출을 확정해야 하는 상황에서 패하여, 같은 날 전북을 잡은 제주에 승점 1점차로 밀리는 바람에 하위 스플릿이 확정되고 말았다. 아이러니하게도, 김도훈 감독은 선수시절 성남과 전북의 레전드였는데 인천이 성남에게 1-0으로 밀리고, 전북이 제주에게 3-2로 졌기 때문에, 친정팀들에게 직접적으로 피해를 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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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위 스플릿 탈락 확정 뒤 슬픔에 못 이겨 기자회견 때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그전까지 눈물을 억지로 참아가다가 이 날 부상을 당한 조수혁 골키퍼 이야기가 나왔을 때 결국 울음이 터지고,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못한 채 기자회견을 끝내고 나갔다.

여담으로 저 우는장면이 나온지 며칠뒤 인터뷰에서 아이가 울보아빠라고 놀리니까 저때 언급은 하지말자고 셀프 흑역사화 하기도(....)

이후 대한축구협회 FA컵 결승전에서도 FC 서울에게 패하여 아깝게 준우승을 차지하게 되었다. 상위 스플릿 확정도, FA컵 우승도 모두 그 결과를 결정짓는 경기에서 패배했기 때문에 본인도, 선수들도, 팬들도 상당히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이전 시즌들의 경기력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장족의 발전이라는 평가. 그동안 코치로만 활동했지 감독으로서는 첫 시즌인터라 불안감을 보이는 팬들도 많았으나 시즌 내내 돌풍을 일으켰던 터라 하위 스플릿으로 떨어졌음에도[10] 평가는 상당히 좋다. 벌써부터 내년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

인천과의 다년계약이 거의 확실시 되고 있다.#

2016년 초에는 거의 15-16시즌 아스톤 빌라 FC 급으로 폭망한 경기력을 보여줬았다. 이대로면 경질은 확실해질 듯... 했는데 12라운드에서 성남 FC를 상대로 첫 승을 거둔 후 수원 삼성 블루윙즈 상대로 무승부[11], 수원 FC 상대로 2승을 거두는 등 조금씩 반등의 기미를 보이고 있다. 과연 이 상승세를 계속 유지하고 강등권을 탈출할 수 있을지가 관건.

하지만 부진을 거듭하며 진전은커녕 강등권 탈출이 요원해 보이자 결국 2016년 8월 31일 성적 부진으로 감독직에서 물러나고 말았다. 수원FC 원정에서 0:2로 패한 점이 컸다.

인천 감독직에서 물러난 후 시즌이 계속되고 있는 와중에 벌써부터 타 구단으로의 재취업 이야기가 솔솔 나오고 있다. 물러나기 직전 극도로 부진한 성적을 거두긴 했지만 없는 살림에도 인천을 FA컵 준우승으로 이끄는 등 나름대로 괜찮은 리더십을 보여줬기 때문으로 보인다. 2017시즌 감독직을 새로 맡을 것으로 가장 유력해 보이는 구단은 역시 본인이 선수로 활약했던 수도권의 모 구단. 한국의 퍼거슨이 슬슬 지도력의 한계를 보여주고 있는 와중에 올해 말이면 구단과의 계약이 끝나기에 벌써 유력한 후계자로 거론되고 있는 상황이다. 수도권의 옛 명가 역시 유력한 다음 행선지중 하나로 거론되는 중이다.

3.2. 울산 현대[편집]

3.2.1. 2017년[편집]

졸전의 ACL, 애매하게 마무리한 리그
그러나 FA컵 우승으로 향후 반전의 계기를 마련하다

울산 감독으로서 신고식으로 치른 ACL 플레이오프 경기가 매우 OME 수준이라 팬들로부터 큰 우려를 사고있는 상황. 김도훈 감독 본인의 얼굴표정도 승장이라 하기에는 매우 어두웠다. 그러나 이 OME 수준 경기력도 전북의 아챔박탈로 인한 대타 참가와 그로 인해 전지훈련 스케줄이 절반 이상 파토나는 등 꼬이고 몸 상태고 전술이고 팀웍이고 하나도 맞는 거 없이 경기에 임해야 했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이해는 하는 편이다.[12]

아챔 조기 탈락 등 초반 부진이 있었지만 4월 말엽부터 차곡차곡 승점을 쌓더니 8월 기준으로 울산식 역습축구를 보여주면서 리그 단독 2위를 기록하고 있다. 0의 득실차를 유지하는 신기한 모습은 덤.이길 땐 힘들게 이기고 질 때 시원하게 털려서 그래...

이러쿵 저러쿵 탈도 많았지만 울산을 2시즌 연속으로 상위 스플릿에 이끌었다. 하지만 상위 스플릿에서 1승 4패 거두는 등 부진하여 2017년 시즌을 4위로 마감 하였다.

FA컵에서는 울산을 19년 만에 결승 진출로 이끌었고 FA컵에서 우승을 달성했다.[13] 우승하면서 "1년전 나는 실패한 감독이었다. 그 실패자에게 기회를 준 울산 구단에 감사드린다."란 한맺힌 인터뷰를 남겼다.

곡절도 많았지만 지난 3년보다는 볼 맛 나는 축구를 구사했다는 평이 지배적이고 무엇보다 첫 시즌 ACL 진출에 성공했다는 점에서 김도훈 감독은 울산 현대 감독으로서 맞이한 첫 시험대를 나름대로 잘 통과했다고 볼 수 있다.

3.2.2. 2018년[편집]

안정적인 리그 상위권 유지로 지도력을 증명하는 중
FA컵 2연패에 도전장을 내밀다

1라운드 전북과의 경기에서 2:0으로 패한 후 상주 상무와의 홈 개막전 라인업을 2군 위주로 돌렸고 2:0으로 패배했다. 아마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 대비를 위해서 1군 전력을 아낀 듯 한데 문제는 이 경기가 홈 개막전 이었던지라 홈 팬들 우롱하는 거냐며 대차게 욕을 먹고있다. 그러나 제주와의 경기에서 1분만에 2명 퇴장을 당하면서 0:1로 패하고 동해안더비에서 또 패하면서 현재 꼴찌를 기록중...

헌데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이상하리만치 잘나가면서 16강 진출 확정.

그리고 리그에서도 강원, 대구, 서울을 때려잡으며 3연승을 거둬 반등에 성공하였다.

이후 경남,전남과 비기면서 주춤하는가 했으나 동해안 더비에서 2:1로 포항을 때려잡고 아챔 16강에서 수원을 1:0로 잡아내면서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이내 2차전에서는 군대 가기 전 갑자기 폭발한 김건희에게 2골을 내리 먹히면서 결국엔 16강에서 탈락한다.

8월 24일 기준 리그 최근 10경기 6승 4무로 매우 순탄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FA컵 16강에선 작년 준우승팀인 부산을 잡으며 8강에 안착했다. 더군다나 전북이 작년에 이어 또다시 하부 리그 팀에게 발목이 잡히며 조기 탈락하는 바람에 울산의 FA컵 2연패 도전에 청신호가 켜졌다.

4. 논란[편집]

5. 플레이스타일[편집]

큰 키와 피지컬을 이용한 포스트플레이도 훌륭하였고 위험지역에서의 볼컨트롤이나 퍼스트 터치도 훌륭했다. 다만 페널티박스를 벗어나면 확실히 활용도가 떨어지는 면모도 있었다.

플레이스타일 자체가 활동량이 많거나 빠른 편은 아니었고, 최전방에서 배급되는 패스를 받아 골을 넣는 타깃형 타입이었는데, 특히 소위 '줏어먹었다' 라고 할 정도로 쉬운 상황에서의 득점이 많아서 일부 팬들 사이에서는 '줏어먹기만 한다', '운이 좋아서 공이 그쪽으로 굴러갔을 뿐이다'라며 스트라이커 능력에 대해서 폄하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당시 한국에 우수한 공격수가 많기도 했었기 때문에 저평가되는 감도 있었다.

하지만 황선홍, 최용수, 이동국 등 쟁쟁한 선후배들과 경쟁하면서 국가대표에 꾸준히 선발된 점에서 알 수 있듯이 적어도 당시 아시아권에서는 정상급 공격수였다. 그리고 다른 축구인들이나 전문가들은 오히려 위치선정과 오프 더 볼에 능했다는 점에서 김도훈을 매우 높게 평가했다. 그 때는 저평가 됐지만 지금 다시 보면 확실히 피니쉬가 매우 훌륭하다. 또한 바이시클 킥 등 임팩트있고 화려한 골도 곧잘 넣었으며 아크로바틱한 플레이가 특징이었다. 현재에도 역대 K리그 득점랭킹에서도 최상위권에 들어갈 정도로 많은 기록을 세웠다. 특히, 부천 SK를 상대로 항상 골을 넣는 공포의 선수였다.#

잉글랜드의 공격수 앨런 시어러와 유사한 스타일로 K리그 팬들에게는 한국의 앨런 시어러라고 불렸다. 플레이 스타일도 그렇지만 그 밖에도 비슷한 점이 많은데, 공교롭게도 앨런 시어러와 김도훈 모두 나이(1970년생)와 신체 조건(183cm)이 똑같고, 자국리그에서 뛰어난 족적을 남겼다는 점도 일치한다. 심지어 두 선수 모두 1998 FIFA 월드컵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월드컵 대회에 출전하지 못했다는 부분과, A매치에서 통산 30골을 기록했다는 점도 같다. 그리고 동시대 국대에 뛰어난 공격수가 많아서 한국의 로이 마카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6. 이야깃거리[편집]

  • 불교 신자라고 한다. 1998년 월드컵 당시 최용수 대신 출전해 같은 기독교 신자를 넣었다고 차범근과 김도훈을 욕한 팬들이 있는데, 기독교 신자는 최용수였다. 최 감독이 3시합 연속 선발로 들어갔는데 한 시합은 쉬게 해주는게 도리 아닌가?

  • 1995년 코리안컵에서 활약하고 난 후 SPL의 킬마녹에서 김도훈에게 관심을 보였다고 하는데 확실하지 않음.

  • 훈훈한 외모와 좋은 체격 조건때문에 故 앙드레 김 패션쇼에 초청받았으나 사정이 있어 이운재 선수가 대신 나갔다.

  • 네티즌들에게 불리우는 별명 중의 하나가 네덜란드의 공격수 루드 반 니스텔루이에서 따온 도후니스텔루이다.

  • 마음의 소리의 작가 조석이 가장 좋아하는 축구 선수 중 한 명이다.[14]

7. 선수 이력[편집]

  • 울산 학성고등학교 - 연세대학교 - 상무

  • 전북 다이노스 / 전북 현대 : 1995~1997, 61경기 23득점

  • 비셀 고베 (일본 J리그 1부) : 1998~1999, 58경기 27득점

  • 전북 현대 : 2000~2002, 92경기 40득점

  • 성남 일화 : 2003~2005, 104경기 51득점

[1] 스트라이커[2] 사실 이것은 일찍 우승을 확정한 상태에서 팀이 김도훈에게 득점 지원을 집중한 면이 있었는데, 이것은 성남, 전북, 울산 다 마찬가지였다.[3] 실제로 신태용은 감독이 되면서부터는 자유분방한 분위기로 팀을 꾸렸지만 선수들이 해이한 모습을 보일 때, "나랑 김도훈 코치가 합작해서 넣은 골만 200개가 넘는다. 그런데, 넌 뭔데 빈둥거리나?"며 엄포를 놓았다고 한다.[4] 도움은 최성용. 당시 빗셀 고베에서 같이 뛰던 동료였다.[5]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직전 한국 축구 경기장 상태가 나쁜 건 사실이지만 브라질도 사실 좋은 경기력이 아니긴 했다.[6] 참고로 이 양반은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예선 도중 부진으로 경질되고 말았다. 후임은 이 분.[7] 도움은 한정국. 한정국의 크로스를 받아 그대로 바이시클 킥으로 골을 만들었다.[8] 황선홍과 교체되는 조커로 뽑힌 안정환은 황선홍과는 타입이 다른 섀도우 공격수 스타일이었다. 또한 좌우 윙포워드인 설기현과 박지성, 이천수와 차두리 등은 모두 20대 초반의 젊은 선수들이었고, 주전인 설기현을 제외하면 모두 서브로 쓰기에 적절한 선수들이었다. 결국 정통 스트라이커인 황선홍과 최용수에 밀렸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김도훈이 히딩크호에서 주전으로 뛰던 시기에 황선홍은 부상으로 부재중이었는데, 이 당시 대표팀은 골 가뭄으로 인해 여론의 비판을 받고 있었다. 히딩크 역시 인터뷰에서 골을 넣을 수 있는 선수, 즉 킬러가 없다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하기도 했는데, 이런 상황에서 황선홍이 부상에서 돌아와 골을 터뜨리자 자연히 김도훈의 입지는 줄어들게 된다.[9] 당시 김대의, 우성용 등이 김도훈과 비슷한 상황에 놓인 베테랑 공격수들이었다.[10] 그리고 인천은 그 하위 스플릿에서도 1위를 고수하고 있다!...가 윤정환 감독의 울산 현대가 하위스플릿을 씹어먹어 하위스플릿 최종순위는 울산이 1위, 인천이 2위로 시즌을 마쳤다[11] 이것도 무승부지만 거의 이길 뻔했던 경기였다.[12] 물론, 극소수의 여론이었다.[13] 김도훈 감독 개인으로서는 2년 만의 FA컵 우승 재도전이었며 그 한을 풀었다.[14] 마음의 소리 212화 '내가 축구 선수가 된다면' 편에서 소개된 바에 의하면 국내 선수 중에는 김도훈을, 해외 선수 중에서는 해리 키웰을 좋아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