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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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춘의 역임 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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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5p4rcEr.png KBO 역대 총재

제7대
권영해

제8대
김기춘

제9~10대
홍재형

파일:external/img.hani.co.kr/00503233_20161122.jpg

이름

김기춘(金淇春, Kim Ki-chun)

생년월일

1939년 11월 25일 (77세)

출신지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통영군 장목면[1]

본관

김해 김씨

거주지

서울시 종로구 평창동 507-5

수감지

서울시 송파구 정의로 37(문정동) 서울동부구치소

신체

164cm

종교

천주교 (세례명: 스테파노[2])

학력

외포초등학교
마산중학교
경남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법학과
서울대학교 대학원 법학 석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법학 박사

경력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장
서울지방검찰청 공안부 부장
대구지방검찰청 검사장
대구고등검찰청 검사장
제22대 검찰총장
제40대 법무부 장관
제15대 국회의원(경남 거제시)
제16대 국회의원(경남 거제시)
제17대 국회의원(경남 거제시)
제2대 대통령비서실장[3]

링크

대한민국헌정회


1. 개요[편집]

법비(法匪)[4]

박근혜 정부상선

대한민국의 법조인 및 정치인. 유신정권 때부터 박근혜정부까지 40년 넘게 권력의 핵심부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유신헌법 설계, 공안사건 조작, 여론 공작, 지역감정 조장,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을 비롯한 온갖 정치적 비행을 저질렀으며, 위기 때마다 철저하게 기회주의적인 처신으로 난국을 돌파하였다.

2. 생애[편집]

해당 문서로.

3. 관련 사건[편집]

대한민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최흉, 최악의 흑막.

그의 인생 행적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가히 영화나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어둠의 참모라고 해도 과장이 아닐 정도. 유신시절부터 2016년 박근혜게이트에 이르기까지, 반세기에 걸친 한국 정치사의 그늘진 이면에서 브레인으로 활동했다. 리틀 김기춘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여론과 언론의 비토를 받고 있는 그 천하의 우병우마저도 이 개만도 못한 놈 앞에서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3.1. 1975년 학원 침투 간첩단 사건[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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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중앙정보부 소속으로 있던 김기춘이, 납북 어부를 간첩으로 만들거나 재일동포 학생들을 간첩으로 만들었다는 의혹이 있다. 학원간첩단사건에 연루되었던 21명 중 2016년 현재까지 재심 신청자 12명 모두 무죄 판결이 났다.

국정원 간첩 조작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자백에서 잠시 출연한다. 이 영화에서 1970년대 재일교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을 취재하던 최승호 기자는 아주 우연히 김포공항에서 일본으로 가는 김기춘을 마주쳐서, 그 사건의 조작여부에 대해 추궁하는데, 김기춘은 아는 바 없다고 모르는 척 한다.[5] 최승호 기자의 회고에 의하면 화장실로 도망쳤다가 한참 지난 후 나왔는데, 그때까지 최 기자가 대기하여 질문하자 난감해했다고.

3.2. 1989년 우지 파동[편집]

1989년 우지 파동이 벌어지자, 검찰총장이던 김기춘의 특별지시를 받은 검찰이 삼양식품을 대대적으로 수사해서 거의 파산직전까지 몰아간 적이 있다. 가뜩이나 1988 서울 올림픽을 기점으로 농심그룹[6]에게 업계 1위를 뺏겼던 삼양식품을 제대로 빅엿을 먹인 셈이다. 이후 삼양식품은 한때는 후발주자인 빙그레오뚜기에게도 위협당했다. 이 사건은 1997년 삼양라면이 무죄를 받음으로써 결백이 밝혀졌다. 문제는 김기춘은 퇴임 후에 이 사건으로 엄청난 수혜를 입은 농심의 비상근 (출근 안 하는) 고문변호사[7]를 맡으면서 매달 천만 원씩의 급여을 수년간 받아왔다는 것이다.

이렇게 무죄로 판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검찰이나 특별수사를 지시한 김기춘은 파산할 뻔한 삼양식품에 대한 사과를 한 적이 한 번도 없다.

3.3. 1991년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 사건[편집]

노태우 정권 시절, 김기춘이 법무부 장관 재직시 일어난 국가적 차원의 조작 사건. 그 모든 지휘를 했다는 의혹이 있다.

3.4. 1992년 초원복집 사건[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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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법무부 장관에서 물러난 지 2달 된 김기춘이 주도하여 부산의 기관장들이 모여 우리가 남이가!를 외치며, 지역감정을 유발하고 돈과 권력을 이용하자고 불법 관권선거를 모의했다.@

믿을 데라고는 부산 경남이 똘똘 뭉쳐 주는 것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는데, 민간에서 지역감정을 좀 불러 일으켜야… (우리는 지역감정 좀 일어나야 됩니다.) 일어나야 된다. 야, 지금 이번에 뭐 제대로 부산놈들 뭐 본때를 못 보이면 다 죽어야 된다. 요새 부산놈들이 정주영 운운하는 놈들이 쓸개가 있는 놈이냐 어떤 놈이냐 이런 식으로 하면서 이번에 이거 제대로 못 하면 부산놈들은 창자 쓸개도 없는 놈들이다 라는 어떤 그런 식으로.. 이건 부산 운동본부에서도 아이디어 한 번 주세요.


1992년 12월, 부산 초원즉석복국집에서 김기춘

나는 그것을 잘했다고는 말하지 않습니다. 내가 늘 반성하고 내 생애에서 가장 부끄러운 추억 중에 하납니다. 지우고 싶은 것 중에 하나에요. 난 깨끗한 비단옷을 입고 달밤에 길을 가는 그런 아낙네였는데, 그냥 구정물을 한 바가지 옷에 덮어쓴 것 같은 기분을 느껴요.


2005년 한겨례 TV와의 인터뷰에서 김기춘

본질은 분명히 지역감정을 유발하고 돈과 권력을 이용해 불법 관권선거를 모의했다는 것인데 이게 엉뚱하게 정주영 후보 측의 도청 문제로 번지면서 역풍이 불어버렸다. 이 사건이 터지자 도리어 보수 층이 우리가 남이가 정신으로 결집하여 김기춘이 열심히 밀고 있던 김영삼 후보가 압도적으로 당선되는 계기가 되었다. 어쩌면 이 사건은 김기춘의 몰락을 앞당길 수 있었던 사건이었는데 프레임 전환의 귀재답게 김기춘은 이 상황에서도 사건의 본질을 불법 관권선거 모의가 아닌 도청으로 물타기 하는데 성공하여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는데 성공한 것이다.

3.5.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결의[편집]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당시 국회 법사위원장으로 탄핵소추위원장을 맡았다.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심판청구를 기각하자, 헌법재판소 재판관들 탄핵의 찬반 여부를 실명으로 공개하도록 "심판에 관여한 재판관은 결정서에 의견을 표시하여야 한다."(헌재법 제36조 제3항)고 헌법재판소법을 개정하였다. 따라서 최순실 게이트로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소추안이 국회를 통과된 이후 헌재 재판관들이 국민의 여론에 반하는 반대의견을 내놓기가 부담스러워지면서 본의아니게 팀킬을 하게 되었다.

이후 2008년 서울대 법학과 제16회 동창회가 엮은 ‘낙산의 둥지 떠나 반백년’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소추 당시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으로서 탄핵소추위원으로 참여한 경험에 대해 글을 기고 하였는데 2016년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이 크게 이슈화 되면서 재주목을 받게 되었다. 이때 김기춘이 쓴 대통령 탄핵 소추의 의미의 내용은 다음과 같이 구성되어 있다. 1.“제헌국회 속기록을 보면 대통령의 실정법 위반뿐 아니라 지휘·감독 관계에 있는 공직자에 대한 지휘·감독을 소홀히 한 것과 국정을 불성실하게 수행하는 경우 모두 헌법 위반으로 탄핵 사유가 된다 2. “탄핵 사유는 기소가 가능한 형사적 범죄일 필요는 없고 헌법이 부여한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경우, 부패 행위를 한 경우, 공중의 신뢰를 깨뜨리는 경우도 탄핵 사유가 된다 3. “직무를 태만히 하거나 성실히 수행하지 않은 경우에도 탄핵 사유가 된다 할 것이다. 4. “형사재판에서는 무죄 추정의 원칙에 따라 유죄 판결이 확정되기 전에는 공무원의 직권이 정지되지 않는 데 반해 탄핵심판에서는 대통령의 권한이 정지되는 유죄 내지 유책 추정의 원칙을 적용한다” 이는 현재 헌법재판소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반대 입장을 대리하는 변호인측의 주장과 상반되는 주장들이다. 출처: 허핑턴포스트코리아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8년 전 글로 쓴 ‘대통령 탄핵사유'는 매우 놀랍다"

3.6. 2012년 국가정보원 여론조작 사건[편집]

박근혜 정부는 이 사건으로 정권 초부터 그 정당성이 크게 위협받는다. 당시 이 사건을 수사한 검찰은 국가정보원이 조직적으로 박근혜 후보에게 우호적인 여론을 조성하고 야권후보를 비방한 사실, 김용판 서울지방경찰청장이 대선 직전 수사에 외압을 넣고 허위의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한 사실 등을 밝히고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기소한다.

하지만 당시 검찰을 이끌던 채동욱 검찰총장은 돌연 사퇴하게 된다. '혼외자녀' 의혹에 휩싸이며 여론이 반전된 것이다. 김기춘은 채동욱 총장을 비롯한 '검찰 길들이기'를 주도하고 대선개입사건의 법원 판결에 대한 검찰 항소를 무마하는 데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3.7. 2014년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 사건[편집]

사실상 이 사건이 발생한 원인이자 흑막이다. 사건의 수습방식도 초원복집 사건과 굉장히 흡사하다. 초원복집 사건의 본질이 불법 관권선거 모의였는데 초점이 불법 도청으로 번지며 실체가 흐려졌듯이 이 사건 또한 핵심은 정윤회문고리 3인방이 국정에 개입해 국정농단을 저지르고 있다는 문건의 내용인데 엉뚱하게 사건의 초점이 문건의 내용이 아닌 문건이 어떤 경위로 유출되었는지에만 초점이 맞춰지며 사건의 실체인 정윤회가 아닌 정윤회가 비선 실세임을 폭로한 조응천박관천 등이 역풍을 맞아 청와대에서 쫓겨나게 되었고 문건 유출 책임자로 지목된 최경락 경위는 끝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3.8. 2015년 경남기업 회장 자살 사건[편집]

이명박 자원외교 비리 조사를 받던 성 전 회장은 이날 서울 청담동 자택을 나온 직후인 오전 6시부터 50분간 경향신문과 전화 인터뷰를 통해 “김 전 실장이 2006년 9월 VIP(박근혜 대통령) 모시고 독일 갈 때 10만달러를 바꿔서 롯데호텔 헬스클럽에서 전달했다”며 “당시 수행비서도 함께 왔었다.고 알려왔다.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은 자살하였고, 이후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애초에 수사선상에서 제외되서 그 어떠한 조사도 받지 않았다.[8][9]

3.9. 2016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편집]

유진룡 전 문화체육부 장관의 증언에 의하면, 문화 예술계 인사와 단체의 탄압을 수차례 직접 종용했고, 블랙리스트 작성의 흑막이다.유튜브1유튜브2

또한, 김희범 전 문체부 차관에게 블랙리스트에 반대한 문체부 1급 공무원 6명의 사표를 받아오라고 지시를 한 의혹도 있다. 사실이면 직권남용죄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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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당시 정부를 비판한 영화 <다이빙 벨>을 상영했다는 이유로, 부산국제영화제 정부 지원 예산을 전액 삭감하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문체부 관계자의 진술이 나왔다.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과 직접 대면해서 블랙리스트 관련 지시를 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구속 중인 김종덕 전 장관이 특검 조사에서 "김기춘 전 실장에게 블랙리스트에 대해 대면보고를 했다"고 진술했다.#

결국 구속되었다. 전직 법무부 장관, 검찰총장을 역임한 사람으로써, 수갑을 차고 서울구치소로 이송되어, 수감되는 치욕을 맛보았다.
#

2017년 7월 3일 김기춘은 '문화계 블랙리스트'의 작성과 실행을 지시한 혐의로 특검에서 징역 7년을 구형하였으나, 1심에서 직권남용은 인정되었으나 강요죄에 대해 인정되지 않아 겨우징역 3년형을 받았다. 그러나 위에서 상술했듯 이제 완벽하게 범죄자로 몰락한 상황이니 그의 길고 긴 추악한 정치경력도 종말을 맞이한거나 다름없어졌다.

4. 말말말[편집]

1. 야간의 주간화
2. 휴일의 평일화
3. 가정의 초토화
* 라면의 상식화


김기춘#

현대사에서 수많은 ‘법비’(法匪)가 있었다. 권위주의 체제 하의 ‘육법당’(陸法黨) 법률가들이나, 우병우, 조윤선 등의 박근혜 부역 법률가들이 그 예이다. 그런데 김기춘은 급이 다르다. 그는 ‘법비’가 아니라 ‘법마’(法魔)다.


조국(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이자 문재인 정부의 민정수석)#

5. 기타[편집]

  • 부인 박화자는 김기춘의 서울대 법대 동기 동창의 여동생으로 알려져 있으며, 장인은 광주광역시 지역 법조계의 원로였던 박찬일 변호사(1906년~1989년. 1931년 조선변호사시험 합격)다.

  • 김기춘이 결혼식을 올리던 1965년에는, 영호남이 서로 으르렁대지 않았다.[10] 초원복집 사건 주동자 김기춘은, 광주 태생인 아내를 끔찍이 사랑하고, 지금껏 같이 지냈다. 슬하에는 1남 2녀를 뒀다. 외동아들 김성원은 의사, 큰 사위가 김도영 변호사[11], 작은 사위가 안상훈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다. 안상훈은 박근혜 정부 인수위에서 위원을 하기도 했다.

  • 외아들이 2013년 12월 31일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하여 의식불명이 되었고, 결국 2016년 8월 22일 며느리와 공동으로 아들의 성년후견인이 되었다.

  • 6공시절(노태우 시절) 검찰총장을 맡았을 때, 운동권을 악의 세력이라고 지칭한 바 있다. 그때 별명이 미스터 법질서인데, 그의 행적을 보면 매우 가소로운 일이다.

  • 검찰총장을 퇴임할 당시의 퇴임식 광경이 한국일보 1990년 12월 6일자에 보도된 바 있는데, 돌이켜보면 뭔가 씁쓸한 내용이다.

    혼자 있을 때 더욱 조심하라는 신독의 자세를 강조해온 김 총장의 임기만료를 앞두고 인천 조직폭력배 전과누락사건, 대전 조직폭력배와 현직 검사의 술자리 합석사건 등 검찰의 체면에 중대한 타격을 가한 「추문」이 연이어 터져 후배 검사들은 총장 볼 낯이 없다고 입을 모았다.
    김 총장은 이런 분위기를 의식한 듯 3분여의 짧은 퇴임사에서도 『정의를 지키려는 검사의 직무는 태산보다 무겁고 크다』며 『이는 말로서가 아니라 반드시 행동으로 지켜나아가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해 후배들을 숙연케 했다.
    김 총장은 또 단호한 목소리로 후배들에게 『강력한 검찰이 되고 싶은가』라고 질문을 한 다음 곧 『그러려면 높은 도덕률과 탁월한 실력으로 무장하라』고 뼈아픈 충고의 답을 밝혔다.
    김 총장이 「충고의 퇴임사」를 하는 동안 대부분의 후배 검사들은 다소 붉어진 얼굴을 들지 못하고 그저 고개만 끄덕거렸다.
    맨 뒷줄에 서 있던 한 부장검사는 『후배들이 김 총장의 생활태도를 반만이라도 따라간다면 절대 국민들로부터 손가락질 받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총장의 퇴임사를 마음에 새기고 검사 개개인이 도덕 재무장을 해 범죄와의 전쟁에 나서야만 한다』고 곤혹스러운 심정을 털어놓았다.

    퇴임사에서 "학생시절의 순수성 정의감이 끝까지 퇴색되지 않았으면 한다."라는 말도 했다고 하는데, 이에 대해 훗날 한홍구 교수는 "남다른 흑역사를 간직한 김기춘에게 묻고 싶다. 당신의 학생시절의 순수성과 정의감은 안녕들 하십니까?"라고 비웃었다.#

  • 키는 165cm 내외로 추정된다. 나이대를 감안하면 보통키. 몸무게는 62kg이라고 본인이 부산일보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 바둑실력은 8급인데, 한국기원 부이사장을 역임한 바 있다.

  • 2013년 비서실장 취임 당시 재산을 공개했는데, 당시 재산이 39억 원이었다. 야인시절에는 거물급 변호사로 일했기 때문에, 예금성 자산(약 30억 원)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여기에는 평창동 자택과 바로 옆집인 아들네 집까지 포함되어 있지 않아서 불성실 신고 문제가 불거지기도 했다.

  • 시간관념이 매우 철저하다고 한다. 법무장관에서 물러나 집에서 야인으로 지낼 때도 짜놓은 시간에 맞춰서 움직였다고 한다. 또한, 자신의 집 2층 서재로 출근했는데 이 때도 정장을 했다고 한다.

  • 본인이 맡은 자리 중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자리로 KBO 총재를 들었다. 이 당시 한일 슈퍼게임 참관차 일본을 방문하고는 도쿄돔을 보고 감명을 받아, 돔구장 설립을 주장하기도 했다. 또한 용병 제도도 검토하긴 하지만, 본격적인 용병수입은 그가 물러난 이후에 도입되었다.

  • KBO 총재 시절 선동열주니치 드래곤즈에 보내는 것을 꺼리던 해태 타이거즈 구단주를 설득, 일본에 진출시키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선동열이 김기춘을 고맙게 생각하고, 교분이 있다고 한다.

  • 정치 행보는 매우 음험하고 교활하며 사악하지만, 사람 자체는 매우 예의바르고 교양[12]이 있다고 한다.[13] 한 마디로 정치적으로 엮이지만 않는다면 나쁘지는 않은 사람. 더불어민주당의 이철희 의원도 썰전 패널 시절 그렇게 증언한 바 있다. 영화 자백에 출연한 모습에서도 잠시 그런 모습을 볼 수 있는데, 부부동반 일본 나들이를 위해 온 공항에서 우연히 만나 끈질기게 재일교포 유학생 간첩 조작사건을 캐묻는 최승호 피디에게 정중한 목소리로 "모릅니다", "그런 적 없습니다"라고 사실을 부인하면서도 끝까지 분노를 감추었다. 같은 영화에 비슷하게 강제 출연한 국정원 간첩 조작 사건의 피의자인 전 국정원장 원세훈이 역정을 내는 것과는 대조적. 이 점이 바로 김기춘이 오랫동안 버틴 비결이다. 김기춘과 비슷한 정치검사-출세주의자 우병우는 평소에도 오만방자해서 수없이 많은 잠재적인 적을 만들었으며[14] 결국 검사장 승진에서 탈락해서 검찰을 떠난다. 김기춘은 적어도 겉으로는 주위에 친절하여 불필요한 적을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암흑기 때 한직에서나마 살아남았고, 검찰총장과 법무장관까지 지낼 수 있었던 것.

  • 검찰후배이자 같은 친박 정치인의 전 대법관 안대희는 "내가 아이큐 130인데, 김기춘은 170이다"라고 김기춘을 높이 평가하였다. 또 다른 검찰 후배이지만, 정치적 성향으로 정반대인 금태섭은 김기춘은 항상 권력의 전면에 나서지 않고 2인자에 만족했기 때문에 장수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즉,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최순실의 전횡을 막지 않고, 최순실에 이어 2인자 노릇을 하면서 권력을 공유했기 때문에 비서실장으로 오랫동안 재임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포스코 회장을 뽑을 때 자신이 추천한 인사를 접고 최순실이 미는 인사를 순순히 받아들였다고 한다.

  • 조응천이 초임검사 시절(1992년) 김기춘이 법무부 장관이었는데, 그 당시 조응천에게 김기춘은 "검찰에서는 거의 레전드급" 같은 인물이었다고 한다. 그의 발언 하나하나를 교과서 같은 말로 여겼다고 한다. 김기춘과 조응천은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함께 근무하게 되었으나, 2014년 정윤회 문건파동을 계기로 조응천이 쫓겨나면서 둘은 완전히 원수지간이 된다. 그리고, 2016년 더불어민주당의 국회의원이 된 조응천은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김기춘을 디스하고 있다.동아일보 김기춘 본인 퇴진설의 실상을 조사하라고 조응천에게 지시했는데 조응천이 보고한 바로 그 문건을 누군가에게 넘겨버렸다고 한다.

  •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합류하기 전, 야인 시절에 전립선 비대증 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청와대가 구입한 약물 중 전립선 비대증 치료제인 프로스카는 김기춘이 사용하기 위한 것이라는 설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탈모증에도 약효가 있기 때문에 온갖 억측이 나오는 모양이다.

  • 2016년 12월 국회에서 열린 청문회에서 모르쇠로 일관하면서 여러 의원의 질문공세를 피했으나, 막바지에 주갤의 지원사격을 받은 박영선 의원에게 크게 털리면서, 마지못해 최순실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순순히 인정했다. 기사에 따르면 청문회 이후에 박영선에 대해서 울분을 토했다고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문회가 끝나자 박영선 의원석을 찾아가 공손히 악수를 청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자기 속내를 100% 감출 수 있고 속마음과는 정반대로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매우 음험하고 위험한 남자다. 2017년 시점에서 78세인데도, 정치권의 핵심 인사로 계속 살아남은 것에는 이유가 다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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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의원은 김기춘이 최저임금 7% 인상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는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업무일지 2014년 6월 26일자의 내용을 거론하며 박근혜 정부의 최저임금을 김기춘이 사실상 결정했다고 비판했다.#[15]

  • 2017년 1월 27일 방영된 썰전에서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의원과 바른정당 이혜훈 의원의 증언에 따르면, 김기춘이 국회의원 시절에 박근혜도 같은 국회의원이었는데, 박근혜에 대해 주군(主君), 하명(下命) 등의 높임말을 썼다고 한다.

  •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 및 심판 당시 박근혜와 김기춘의 발언이 재조명되었다. 당시의 한나라당 대표 박근혜는 "대통령은 탄핵 결과에 승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헌법재판소 결정을 수호할 의무가 있는 것이 대통령이다." 등의 발언을 했으며, 당시 국회 법사위원장 김기춘은 "대통령이 헌재에 불출석하는 것은 탄핵 사유를 인정하는 것이다." "탄핵 사태는 국회의 잘못이 아니라 대통령이 자초한 잘못이다." "나라가 잘 되는 것도 대통령의 공로이고, 이 같은 사태를 오게 한 것도 대통령의 책임이다." 등의 발언을 한 전적이 있다. 기사 그리고 13년 뒤인 2017년 2월 27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통과되고 직무정지가 된 박근혜는 헌재에 불출석하고 서면으로만 입장을 전달하는 패기를 시전했는데, 이때 본인들이 직접 지껄였던 말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되돌려받았다는 점에서 사필귀정이라는 비웃음을 당하는 중이다.

  • 청문회 때 판사 출신 박범계 의원이 김영한 전 수석의 비망록을 언급하면서, "비서실장이 김영한 수석을 바보나 허수아비로 만들고 우병우 민정수석과 공모하여 문건 유출을 처리하고, 문제가 생기자 '국회 청문회 때 핫바지인 김영한 당신이 나가라'고 하였다. 이에 김영한 수석은 항명하고 민정수석을 그만두고 원통함에 술을 마시다가 스트레스로 젏은 나이에 죽었는데, 죄책감이 들지 않느냐"며 비망록에 있는 것을 모르쇠하는 뻔뻔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김기춘에게 질타하였다. 이에 김기춘이 "그분은 몹쓸 병으로 돌아가셨고 본인도 이에 애도합니다만..."이라며 형식적이고 가식적인 행동을 보이고 끝까지 부인하자, 화가 난 박범계가 '그게 애도하는 태도입니까, 김영한 전 수석이 누구 때문에 죽었습니까? 누가?'라고 일갈했으며 자신의 트위터에 '오늘 한 냉혈한 늙은 악마를 보았다'고 독설을 날렸다.

6. 관련자료[편집]

7. 선거이력[편집]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연도

선거종류

소속정당

득표수(득표율)

당선여부

비고

1996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경남 거제)

신한국당

47,989 (76.53%)

당선 (1위)

2000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경남 거제)

한나라당

33,379 (47.50%)

당선 (1위)

2004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경남 거제)

한나라당

34,729 (43.50%)

당선 (1위)

8. 둘러보기[편집]

[1]경상남도 거제시 장목면.[2]김수환 추기경세례명이 같다![3] 이명박정부의 대통령실에서 다시 박근혜정부에 대통령비서실로 환원된 이후라 2대이다.[4] 법률(法) + 비적(匪). 법률을 절대시하여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끼치는 관리나 법률가, 혹은 법률을 궤변적으로 해석하여 자신에게 유리한 결과를 얻고자 하는 사람에 대한 멸칭. 유래는 중일전쟁 당시 중국을 침략한 일본 제국이 현지를 다스릴 때 악랄한 법 체계를 만들어 수탈을 일삼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참조[5] 김기춘은 이 사건에 대해 수사기획 지휘 책임자로서 반드시 답변해야 할 의무가 있다. 김기춘은 이 사건을 기획, 수사지휘했던 '공로'로 훗날 1990년 노태우 정부 시절에 '5.16 민족상' 안보분야에 훈장을 받았다.(#)[6] 초창기 이름은 롯데공업주식회사다. 이후 롯데그룹에서 분리독립해 농심으로 이름을 변경했다.[7] 이런 고문 자리는 사실 거의 일이 없다. 결과적으로 사실상의 뇌물이나 다름 없다. 특히 농심이 김기춘이 현직일 때 스폰을 했는지도 조사할 필요가 있다. 검사들이 재력이 두둑한 스폰을 두는 것은 상당히 잦았으며, 2000년대까지 근절되지 않던 악습이었다. 이미 이명박 정권시절 검찰총장 후보였던 천성관이 스폰의혹으로 물러난 바 있다.[8] 수수정황에 대해서 검찰 측에서 아예 사실여부 확인조차도 거부하였다.[9] 반면 검찰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친형도 같은 공소시효인데도 받은 정황은 있었다고 발표하는등 같은 공소시효임에도 한쪽은 확인 자체를 거부하고 다른 쪽은 정황이 있었다고 발표함으로써 전 정권 때리기 박근혜 정권 실세에 대한 노골적인 봐주기라는 비판을 받았다.[10] 물론 지역감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정도가 심하지 않았을 뿐. 오히려 한반도에서 제일 지역감정이 심한 곳은 관서-관북, 즉 평안도함경도였다. 지금도 마찬가지.[11] 사시 31회 차석. 김앤장 근무[12] 엄청난 독서량과 부지런함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특히 동서양 고전을 꿰뚫고 있다고 한다. 심지어, 박사논문은 독일어로 초록을 썼을 정도였다. 구글 번역기가 있던 시대가 아닌 1980년대라는 점을 감안하면 대단한 학식을 갖고 있는 것이다. 또한, 조선시대 형법을 연구한 저서는 고전 한문 해독 능력이 없으면 쓰기 힘든 것이다. 엄청난 재능과 부지런함으로 갈고 닦은 학문을 출세를 위해 악행에 쓴 나쁜 사례라고 할 수 있다.[13] 근데 이런식으로 장점만을 보자면 아돌프 히틀러도 개인적으로 만나면 조용하고 온화하며 예술감각이 뛰어난 사람이고, 전두환도 호탕하고 유능하며 지인과 부하를 아끼는 인망있는 사람으로 유명했다. 애초에 진실로 예의가 있는 사람이라면 인생을 저렇게 살지도 않는다.[14] 예를 들면 본인보다 연상인 서울대 법대 선배들이 자기보다 늦은 기수로 검사가 되면 오만방자하게 반말을 했다고 한다.[15] 실제로 2014년 최저임금 인상률은 7.2%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