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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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춘의 역임 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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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국회상징.png 대한민국 국회의원 (경남 거제시)

선거구 개편
김봉조 [1]

제15~17대
김기춘

제18대
윤영


파일:5p4rcEr.png KBO 역대 총재

제7대
권영해

제8대
김기춘

제9~10대
홍재형

파일:대학 선배.jpg

이름

김기춘(金淇春, Gim Gi-chun)

생년월일

1939년 11월 25일 (78세)

출신지

경상남도 통영군 장목면[2]

본관

김해 김씨

거주지

서울시 종로구 평창동 507-5

수감지

서울시 송파구 정의로 37(문정동) 서울동부구치소

신체

164cm, 62kg

종교

천주교 (세례명: 스테파노)

학력

외포초등학교
마산중학교
경남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법학과
서울대학교 대학원 법학 석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법학 박사

경력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장
서울지방검찰청 공안부 부장
대구지방검찰청 검사장
대구고등검찰청 검사장
법무연수원 연구위원
법무연수원 검찰부장
법무연수원장
제22대 검찰총장
제40대 법무부 장관
제8대 KBO 총재
제15대 국회의원(경남 거제시)
제16대 국회의원(경남 거제시)
제17대 국회의원(경남 거제시)
제2대 대통령비서실장[3]

링크

대한민국헌정회


1. 개요2. 생애3. 관련 사건4. 말말말5. 기타6. 관련자료7. 선거 이력8. 둘러보기

1. 개요[편집]

법마(法魔)

대한민국의 법조인 및 정치인. 유신정권 때부터 박근혜정부까지 40년 넘게 권력의 핵심부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유신헌법 설계, 공안 사건 조작, 여론 공작, 지역감정 조장,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을 비롯한 온갖 정치적 비행을 저질렀으며, 위기 때마다 철저하게 기회주의적인 처신으로 난국을 돌파하였다.

2. 생애[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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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관련 사건[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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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말말말[편집]

1. 야간의 주간화
2. 휴일의 평일화
3. 가정의 초토화


김기춘의 메모 중#

현대사에서 수많은 ‘법비’(法匪)가 있었다. 권위주의 체제하의 ‘육법당’(陸法黨) 법률가들이나, 우병우, 조윤선 등의 박근혜 부역 법률가들이 그 예이다. 그런데 김기춘은 급이 다르다. 그는 ‘법비’가 아니라 ‘법마’(法魔)다.


조국(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이자 문재인 정부의 민정수석)#

5. 기타[편집]

  • 한때의 별명으로 ‘따뜻한 마음의 미스터 법질서’가 있었다고 한다.(...)

  • 부인 박화자는 김기춘의 서울대 법대 동기 동창의 여동생으로 알려져 있으며, 장인은 광주광역시 지역 법조계의 원로였던 박찬일 변호사[6]다.

  • 김기춘이 결혼식을 올리던 1965년에는, 영호남 간의 지역대결이 심하지 않았다.[7] 초원복집 사건 주동자 김기춘은, 광주 태생인 아내를 끔찍이 사랑하고, 지금껏 같이 지냈다. 슬하에는 1남 2녀를 뒀다. 외동아들 김성원은 의사, 큰 사위가 김도영 변호사[8], 작은 사위가 안상훈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다. 안상훈은 박근혜 정부 인수위에서 위원을 하기도 했다.

  • 외아들이 2013년 12월 31일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하여 이후로 쭉 의식불명이 되었는데[9] 이에 대해서 아버지 김기춘이 저지른 만행들의 인과응보를 아버지가 받지 않고 아들이 받아버렸다는 반응들이 상당했다, 결국 2016년 8월 22일 며느리와 공동으로 아들의 성년후견인이 되었다.

  • 6공 시절(노태우 시절) 검찰총장을 맡았을 때, 운동권을 "악의 세력"이라고 지칭한 바 있다. 그때 별명이 미스터 법질서인데, 그의 행적을 보면 매우 가소로운 말이다.

  • 검찰총장을 퇴임할 당시의 퇴임식 광경이 한국일보 1990년 12월 6일자에 보도된 바 있는데, 돌이켜보면 뭔가 씁쓸한 내용이다.

    혼자 있을 때 더욱 조심하라는 신독의 자세를 강조해온 김 총장의 임기만료를 앞두고 인천 조직폭력배 전과누락사건, 대전 조직폭력배와 현직 검사의 술자리 합석 사건 등 검찰의 체면에 중대한 타격을 가한 「추문」이 연이어 터져 후배 검사들은 총장 볼 낯이 없다고 입을 모았다.
    김 총장은 이런 분위기를 의식한 듯 3분여의 짧은 퇴임사에서도 『정의를 지키려는 검사의 직무는 태산보다 무겁고 크다』며 『이는 말로서가 아니라 반드시 행동으로 지켜나아가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해 후배들을 숙연케 했다.
    김 총장은 또 단호한 목소리로 후배들에게 『강력한 검찰이 되고 싶은가』라고 질문을 한 다음 곧 『그러려면 높은 도덕률과 탁월한 실력으로 무장하라』고 뼈아픈 충고의 답을 밝혔다.
    김 총장이 「충고의 퇴임사」를 하는 동안, 대부분의 후배 검사들은 다소 붉어진 얼굴을 들지 못하고 그저 고개만 끄덕거렸다.
    맨 뒷줄에 서 있던 한 부장검사는 『후배들이 김 총장의 생활태도를 반만이라도 따라간다면 절대 국민들로부터 손가락질 받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총장의 퇴임사를 마음에 새기고 검사 개개인이 도덕 재무장을 해 범죄와의 전쟁에 나서야만 한다』고 곤혹스러운 심정을 털어놓았다.

    퇴임사에서 "학생시절의 순수성 정의감이 끝까지 퇴색되지 않았으면 한다."라는 말도 했다고 하는데, 이에 대해 훗날 한홍구 교수는 "남다른 흑역사를 간직한 김기춘에게 묻고 싶다. 당신의 학생시절의 순수성과 정의감은 안녕들 하십니까?"라고 비웃었다.#[10]

  • 키는 165cm 내외로 추정된다. 나이대를 고려하면 보통 키. 몸무게는 62kg이라고 본인이 부산일보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 바둑 실력은 8급인데, 한국기원 부이사장을 역임한 바 있다.

  • 2013년 비서실장 취임 당시 재산을 공개했는데, 당시 재산이 39억 원이었다. 야인시절에는 거물급 변호사로 일했기 때문에, 예금성 자산(약 30억 원)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여기에는 평창동 자택과 바로 옆집인 아들네 집까지 포함되어 있지 않아서 불성실 신고 문제가 불거지기도 했다.

  • 시간관념이 매우 철저하다고 한다. 법무부 장관에서 물러나 집에서 야인으로 지낼 때도 짜놓은 시간에 맞춰서 움직였다고 한다. 또한, 자신의 집 2층 서재로 출근했는데 이때도 정장을 했다고 한다.

  • 본인이 맡은 자리 중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자리로 KBO 총재를 들었다. 이 당시 한일 슈퍼게임 참관차 일본을 방문하고는 도쿄돔을 보고 감명을 받아, 돔구장 설립을 주장하기도 했다. 또한 외국인 선수 제도도 검토하긴 하지만, 본격적인 외국인 선수 제도 도입은 그가 물러난 이후에 도입되었다.

  • KBO 총재 시절 선동열주니치 드래곤즈에 보내는 것을 꺼리던 해태 타이거즈 구단주를 설득, 일본에 진출시키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선동열이 김기춘을 고맙게 생각하고, 교분이 있다고 한다.

  • 정치 행보는 매우 음험하고 교활하며 사악하지만, 사람 자체는 매우 예의 바르고 교양이 있다고 한다.[11] 한마디로 처세술에 능통했다. [12][13] 한 마디로 정치적으로 엮이지만 않는다면 나쁘지는 않은 사람. 더불어민주당의 이철희 의원도 썰전 패널 시절 그렇게 증언한 바 있다. 영화 자백에 출연한 모습에서도 잠시 그런 모습을 볼 수 있는데, 부부동반 일본 나들이를 위해 온 공항에서 우연히 만나 끈질기게 학원 침투 간첩단 사건을 캐묻는 최승호 피디에게 정중한 목소리로 "모릅니다", "그런 적 없습니다"라고 사실을 부인하면서도 끝까지 분노를 감추었다. 같은 영화에 비슷하게 강제 출연한 국정원 간첩 조작 사건의 피의자인 전 국정원장 원세훈이 역정을 내는 것과는 대조적. 이 점이 바로 김기춘이 오랫동안 버틴 비결이다. 반면, 김기춘과 비슷하게 정치검사였던 우병우는 상대에 대한 태도로 잠재적인 적을 만들었으며[14] 결국 검사장 승진에서 탈락해서 검찰을 떠난다. 김기춘은 적어도 겉으로는 주위에 친절하여 불필요한 적을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암흑기 때 한직에서나마 살아남았고, 검찰총장과 법무부 장관까지 지낼 수 있었던 것.

  • 검찰 후배이자 같은 친박 정치인의 전 대법관 안대희는 "내가 아이큐 130인데, 김기춘은 170이다"라고 김기춘을 높이 평가하였다. 또 다른 검찰 후배이지만, 정치적 성향으로 정반대인 금태섭은 ‘김기춘은 항상 권력의 전면에 나서지 않고 이인자에 만족했기 때문에 장수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즉,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최순실의 전횡을 막지 않고, 최순실에 이어 이인자 노릇을 하면서 권력을 공유했기 때문에 비서실장으로 오랫동안 재임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포스코 회장을 뽑을 때 자신이 추천한 인사를 접고 최순실이 미는 인사를 순순히 받아들였다고 한다.

  • 조응천이 초임검사 시절(1992년) 김기춘이 법무부 장관이었는데, 그 당시 조응천에게 김기춘은 "검찰에서는 거의 레전드급" 같은 인물이었다고 한다. 그의 발언 하나하나를 교과서 같은 말로 여겼다고 한다. 김기춘과 조응천은 박근혜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함께 근무하게 되었으나, 2014년 정윤회 문건 파동을 계기로 조응천이 쫓겨나면서 둘은 완전히 원수지간이 된다. 그리고, 2016년 더불어민주당의 국회의원이 된 조응천은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김기춘을 비난하고 있다.동아일보 김기춘 본인 퇴진설의 실상을 조사하라고 조응천에게 지시했는데, 조응천이 보고한 바로 그 문건을 누군가에게 넘겨버렸다고 한다.

  •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합류하기 전, 야인 시절에 전립선 비대증 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청와대가 구매한 약물 중 전립선 비대증 치료제인 프로스카는 김기춘이 사용하기 위한 것이라는 설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탈모증에도 약효가 있기 때문에 차은택설 같이 온갖 억측이 나오는 모양이다.

  • 2016년 12월 국회에서 열린 청문회에서 모르쇠로 일관하면서 여러 의원의 질문 공세를 피했으나, 막바지에 주식 갤러리에게서 증거 자료들을 받은 박영선 의원에 의해 최순실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순순히 인정했다. 기사에 따르면 청문회 이후에 박영선에 대해서 울분을 토했다고 하나, 그런데도 불구하고 청문회가 끝나자 박영선 의원석을 찾아가 공손히 악수를 청하였다. '자기 속내를 100% 감출 수 있고, 속마음과는 정반대로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매우 음험하고 위험한 남자다'라는 평가를 고려해보면 그야말로 무서운 일. 2017년 시점에서 78세인데도, 정치권의 핵심 인사로 계속 살아남은 것에는 이유가 다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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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의원은 "김기춘이 최저임금 7% 인상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는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업무일지 2014년 6월 26일 자의 내용을 거론하며 "박근혜 정부의 최저임금을 김기춘이 사실상 결정했다"고 비판했다.#[15]

  • 2017년 1월 27일 방영된 썰전에서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의원과 바른정당 이혜훈 의원의 증언에 따르면, 김기춘이 국회의원 시절에 박근혜도 같은 국회의원이었는데, 박근혜에 대해 주군(主君), 하명(下命) 등의 높임말을 썼다고 한다.

  •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 및 심판 당시 박근혜와 김기춘의 발언이 재조명되었다. 당시의 한나라당 대표 박근혜는 "대통령은 탄핵 결과에 승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헌법재판소 결정을 수호할 의무가 있는 것이 대통령이다." 등의 발언을 했으며, 당시 국회 법사위원장 김기춘은 "대통령이 헌재에 불출석하는 것은 탄핵 사유를 인정하는 것이다." "탄핵 사태는 국회의 잘못이 아니라 대통령이 자초한 잘못이다." "나라가 잘되는 것도 대통령의 공로이고, 이 같은 사태를 오게 한 것도 대통령의 책임이다." 등의 발언을 한 전적이 있다. 기사 그리고 13년 뒤인 2017년 2월 27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통과되고 직무 정지가 된 박근혜는 헌법재판소에 불출석하고 서면으로만 입장을 전달하였는데, 이때 본인들이 직접 지껄였던 말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되돌려받았다는 점에서 사필귀정이라는 비웃음을 당하는 중이다.

  • 청문회 때 판사 출신 박범계 의원이 김영한 전 수석의 비망록을 언급하면서, "비서실장이 김영한 수석을 바보나 허수아비로 만들고 우병우 민정수석과 공모하여 문건 유출을 처리하고, 문제가 생기자 '국회 청문회 때 핫바지인 김영한 당신이 나가라'고 하였다. 이에 김영한 수석은 항명하고 민정수석을 그만두고 원통함에 술을 마시다가 스트레스로 젊은 나이에 죽었는데, 죄책감이 들지 않느냐"며 비망록에 있는 것을 모르쇠하는 뻔뻔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김기춘에게 질타하였다. 이에 김기춘이 "그분은 몹쓸 병으로 돌아가셨고 본인도 이에 애도합니다만..."이라며 형식적이고 가식적인 행동을 보이고 끝까지 부인하자, 화가 난 박범계가 '그게 애도하는 태도입니까, 김영한 전 수석이 누구 때문에 죽었습니까? 누가?'라고 일갈했으며, 자신의 트위터에 '오늘 한 냉혈한 늙은 악마를 보았다'고 독설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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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여옥은 저서 《오만과 무능》에서 김기춘에 대해 다음과 같이 회고하길, (김기춘은) 만날 때마다 늘 책을 읽고 있었으며, 동서의 고전에 능숙하고 무척이나 영리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다른 사람들이 박근혜에게 삼류 수준의 아부를 떨어대는 것과 달리 그는 박근혜가 커터칼 테러를 당했던 당시 "실로 천운이었다, 하지만 이리 무사하신 걸 보니 하늘이 더 큰 사명을 내릴 것 같다"고 하자 박근혜는 무척 기뻐했으며, 전여옥은 아부도 저 정도면 예술의 경지라며 감탄했다고 한다.

    • 세월호 7시간 사건을 질의하던 당시 김기춘이 관저에 있었는지 집무실에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말을 TV로 들었는데, 그는 박근혜보다 먼저 일어나 집무실에 가서 박근혜의 상태를 확인하고 사저로 물러나는 것을 확인하고 잠드는 사람이었다면서, 그걸 아예 모른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저 대화를 할 때까지 며칠이나 시간이 있었는데 다른 변명도 많은데 아예 모른다는 것은 진짜로 몰랐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문고리 3인방 때문인가 싶었지만, 전임이라면 모를까 김기춘이 그들에게 막힐 정도는 아니라면서, 최순실에게는 그라도 꼼짝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검찰 수사에서 밝혀진 세월호 7시간 사건의 진상을 보면 당시 김기춘은 박근혜를 직접 만난 적이 한 번도 없고 제대로 된 연락도 되지 않았던지라, 말 그대로 거짓말은 아니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 가정적인 성격의 사람이며 가족을 아낀다고 한다. 전여옥이 실제로 언급한다. 하지만 김기춘이 공안 정치를 통해 직접적, 간접적으로 파멸로 몰아넣은 시민들의 가정이 수십 가구는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악의 평범성이다. 외부자들에서 전여옥이 김기춘이 가정적이라고 언급하자 이에 대해 정봉주진중권 또한 악의 평범성을 언급한다.

6. 관련자료[편집]

7. 선거 이력[편집]

연도

선거 종류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1996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경남 거제)

신한국당

47,989 (76.53%)

당선 (1위)

2000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경남 거제)

한나라당

33,379 (47.50%)

당선 (1위)

2004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경남 거제)

한나라당

34,729 (43.50%)

당선 (1위)

8. 둘러보기[편집]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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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인

주요 혐의

1심

항소심

상고심

최순실·안종범·정호성

태블릿 PC 등 증거인멸·직권남용·비밀누설[병합][분리1]

최순실 징역 20년·벌금 180억 원·추징금 72억 9,247만 원
안종범 징역 6년·벌금 1억 원·추징금 4,290만 원

최순실 징역 20년·벌금 200억 원·추징금 70억 5,281만 원
안종범 징역 5년·벌금 6천만 원·추징금 1,990만 원

정호성 징역 1년 6월 (확정)

차은택·송성각·김홍탁·김영수·김경태

플레이그라운드 등 직권남용·횡령·강요미수·뇌물

차은택 징역 3년
송성각 징역 4년·벌금 5천만 원·추징금 3,774만 원

김홍탁 무죄 (확정)

-

김영수 징역 1년 6월·집행유예 2년 (확정)
김경태 징역 8월·집행유예 2년 (확정)

-

장시호·김종·최순실

스포츠캠프 등 강요·횡령·비밀누설[분리2]

장시호 징역 2년 6월

장시호 징역 1년 6월

김종 징역 3년

조원동

CJ그룹 부회장 사퇴 강요미수

징역 1년·집행유예 2년

문형표·홍완선

제일모직 합병 등 직권남용·배임

각각 징역 2년 6월

류철균

이화여대 특혜관련 업무방해·문서위조·공무집행방해

징역 1년·집행유예 2년 (확정)

남궁곤·최순실·최경희·이원준·이경옥·하정희

이화여대 특혜관련 업무방해·문서위조·공무집행방해·위증 등

남궁곤 징역 1년 6월 (확정)
최순실 징역 3년 (확정)
최경희 징역 2년 (확정)
이원준 징역 10월·집행유예 2년 (확정)
이경옥 벌금 800만 원 (확정)
하정희 벌금 500만 원 (확정)

김종덕·정관주·신동철

문화계 블랙리스트 직권남용·강요·위증

김종덕 징역 2년
정관주·신동철 징역 1년 6월

김경숙

이화여대 특혜관련 업무방해

징역 2년 (확정)

김기춘·조윤선·김상률·김소영

문화계 블랙리스트 직권남용·위증

김기춘 징역 3년
조윤선 징역 1년·집행유예 2년

김기춘 징역 4년
조윤선 징역 2년

김상률 징역1년 6월
김소영 1년 6월·집행유예 2년

이인성

이화여대 특혜관련 업무방해

징역 1년·집행유예 2년

박채윤·김영재·김상만

청와대 비선의료진 뇌물공여·위증·의료법 위반 등

박채윤 징역 1년 (확정)

김영재 징역 1년 6월·집행유예 3년 (확정)
김상만 벌금 1천만 원 (확정)

-

최순실

K스포츠&미르재단 뇌물 뇌물수수·알선수재·직권남용 등

박근혜·최순실·신동빈 재판과 병합

정기양

청와대 불법시술 위증

징역 1년

징역 6월·집행유예 1년

공소기각 (확정)

이임순

위증

징역 10월·집행유예 2년

공소기각 (확정)

이재용·박상진·최지성·장충기·황성수

삼성전자 각종 뇌물 뇌물공여·재산국외도피·범죄수익은닉·횡령

이재용 징역 5년
최지성·장충기 징역 4년·법정구속
박상진 징역 3년·집행유예 5년
황성수 징역 2년 6월·집행유예 4년

이재용 징역 2년 6월·집행유예 4년
최지성·장충기·박상진 징역 2년·집행유예 3년
황성수 징역 1년 6월·집행유예 2년

이영선

청와대 불법 의료&불법 휴대폰 위증·의료법 위반·전기통신사업법 위반

징역 1년·법정구속

징역 1년·집행유예 2년 (확정)

-

박근혜·최순실·신동빈

각종 뇌물·국정농단 뇌물수수 및 공여·강요·직권남용·비밀누설 등[분리3]

박근혜 징역 24년·벌금 180억 원
최순실 징역 20년·벌금 180억 원·추징금 72억 9,247만 원
신동빈 징역 2년 6월·추징금 70억 원·법정구속

박근혜 징역 25년·벌금 200억 원
최순실 징역 20년·벌금 200억 원·추징금 70억 5,281만 원

우병우

좌천 남발 등 직무유기·직권남용·강요 등

징역 2년 6월

고영태

관세청 인사개입 등 알선수재·사기

징역 1년

최윤수

문화계 블랙리스트 관여 등 국가정보원법 위반

김기춘·김장수·김관진·윤전추

세월호 참사 보고서·훈령 조작 등 허위공문서작성·직권남용·공용서류손상·위증

청문회 불출석 혐의로 기소된 재판에 대하여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재판/청문회 불출석자 참고

[병합] 박근혜·최순실·신동빈 재판 중 최순실·신동빈 부분 및 장시호·김종·최순실 재판 중 최순실 부분을 병합[분리1] 신동빈의 항소심은 롯데그룹 비자금 조성 의혹 사건 항소심에 병합[분리2] 최순실의 재판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재판/최순실·안종범·정호성에 병합[분리3] 최순실·신동빈의 재판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재판/최순실·안종범·정호성에 병합
[1] 거제군-장승포시 선거구의 제14대 국회의원이다.[2]경상남도 거제시 장목면.[3] 이명박정부의 대통령실에서 다시 박근혜정부에 대통령비서실로 환원된 이후라 2대이다. 대통령 실장과 합산하면 35대 실장이다.[4] 여기서 '상식'은 '항상 먹는 음식'이라는 뜻이다.[5] 김기춘이 위에 글이 써져있는 대로 성실하고 부지런하게 업무를 수행했다는 평가도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모든 사람들이 숨 돌릴 틈도 없이, 그야말로 노예처럼 최소한의/최저의 생활을 하고 겨우겨우 먹고살아 아주 단순하게 되어버려 정치나 권력을 생각할 겨를을 없애려고 한 것이라는 반론이 있다. 이 비판에 따르면, 이런 지침은 당연히 그가 누린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6] 1906년~1989년. 1931년 조선변호사시험 합격[7] 물론 지역감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전반적으로는 서북 지역과 호남 지역이 배척을 많이 받았으나 분단 이후 서북은 북한으로 날라가면서 남한에는 호남-비호남, 호남-영남, 북한에서는 관서-관북, 즉 평안도-함경도 지역갈등이 커졌다.[8] 사법고시 31회 차석. 김앤장 근무[9] 2013년경 부터 줄곧 의식도 없이 미동도 하지 못한다. 사실상 회복이 힘든 상태[10] 그런데, 이미 학생시절에도 딱히 순수하거나 정의감이 있지는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대학 시절에 4.19 혁명, 5.16 군사정변을 모두 겪은 세대인데도 자신의 대학시절을 회고하면서 위 두 사건에 대해 일언반구 언급이 없었는데, 동시대인치고 이런 예는 찾아보기 어렵다.# [11] 여담으로 아돌프 히틀러도 그랬다고 한다.[12] 엄청난 독서량과 부지런함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특히 동서양 고전을 꿰뚫고 있다고 한다. 심지어, 박사논문은 독일어로 초록을 썼을 정도였다. 구글 번역기가 있던 시대가 아닌 1980년대라는 점을 감안하면 대단한 학식을 갖고 있는 것이다. 또한, 조선시대 형법을 연구한 저서는 고전 한문 해독 능력이 없으면 쓰기 힘든 것이다. 엄청난 재능과 부지런함으로 갈고 닦은 학문을 출세를 위해 악행에 쓴 나쁜 사례라고 할 수 있다.[13] 근데 이런식으로 장점만을 보자면 아돌프 히틀러도 개인적으로 만나면 조용하고 온화하며 예술감각이 뛰어난 사람이고, 전두환도 호탕하고 유능하며 지인과 부하를 아끼는 인망있는 사람으로 유명했다. 애초에 진실로 예의가 있는 사람이라면 인생을 저렇게 살지도 않는다. 그리고 여기서 우병우의 수준이 나오는데, 저런 미담도 없다는 거 자체가 그는 최소한의 이미지 관리도 하지 않았다는 얘기가 된다. 우병우는 너무 오만방자해서 주변이 다 기피했다고 하니 뭐.[14] 예를 들면 본인보다 연상인 서울대 법대 선배들이 자기보다 늦은 기수로 검사가 되면, 오만방자하게 반말을 했다고 한다. 문제는 자기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는 거.[15] 실제로 2014년 최저임금 인상률은 7.2%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