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리(197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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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김규리(金奎吏), 출생명 김민선

출생

1979년 10월 6일, 경기도 안양시

신체

168cm, 46kg, AB형

학력

동덕여자대학교 방송연예학과

데뷔

1997년 잡지 '휘가로' 모델

소속

예성HSM엔터테인먼트

웹사이트

트위터


1. 개요2. 상세3. 출연 작품
3.1. 영화3.2. 드라마3.3. 뮤직비디오

1. 개요[편집]

대한민국배우. 1997년에 데뷔하였으며 데뷔 때는 개명 전 이름인 김민선으로 활동하였으나 2009년에 아명(兒名)[1]이었던 현재 이름으로 개명했다. 자신보다 먼저 데뷔한 본명이 김문선인 김규리 때문에 개명 전 이름이 혼용되고 있지만, 배우 활동과 별 관련 없는 일들로 개명된 이름이 언론보도에 지속적으로 오르내리며 원조 김규리가 인지도에서 피해를 보고 있다는 말이 있다. 원조 김규리 씨도 트위터에 하소연을 올렸다.

2. 상세[편집]

데뷔 이후 매년 서너편 이상의 작품을 꾸준히 찍으며 활발히 활동해왔다. 드라마에서는 주로 주조연급으로 나왔으며 간간이 히트작에 출연하며 인지도를 어느 정도 알렸다. 단 영화계에서는 상대적으로 존재감이 적었는데, 주로 비중이 없는 조연급으로 출연했다. 그러나 남장여자 기믹으로 2008년 11월 영화 미인도에서 주연을 맡아 파격적인 노출신을 찍으며 영화계에서도 발자취를 남기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 뒤로 마땅한 히트작이 없다는 것이 단점. 조연급 연기자라기엔 인지도가 높은 반면 주연급으로 치고 올라가기엔 아쉬운 수준이다. 작품 활동은 꾸준히 하고 있지만 대중들의 주목을 받는 작품은 많이 나오지 않고 있다. 게다가 외적으로 논란이 된 것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니고 있어서, 이를 확실히 제거할 만한 작품이 나와야 연기 생활을 탄탄히 굳힐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연기력으로 따지면 상당히 수준급의 배우인데, 정치적 색채를 띄고 있는 터라 반대 진영의 비호감도때문에 대중적인 인지도 획득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2014년 여름 방송한 SBS 예능 프로 정글의 법칙 솔로몬 제도 편에 등장하여 의외의 생존력과 엄청난 몸매를 선보였다.

두산 베어스의 열혈 팬이라고 한다. 2015년 한국시리즈 5차전에 직관을 온 모습이 카메라에 잡히기도.

2008년에 있었던 광우병 논란2008년 촛불집회 때 미국 수입산 쇠고기를 청산가리에 비유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로 인해 '청산규리','청산가리킴'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30개월 이상 된) 미국소를 먹느니 차라리 청산가리를 입에 털어넣겠다'라는 발언을 했는데 문제는 2008년에 김민선이 라스베가스에서 미국산 소고기를 사용하는 인앤아웃 햄버거를 먹고 있는 장면이 찍혔다며 비난을 받았다. 그렇지만 김민선이 인앤아웃 햄버거를 먹은 시점은 2008년 1월이고 방송이 나간 시점은 3월이며, 광우병 논란 당시 문제가 되는 글을 쓴 시점은 2008년 5월이므로 적어도 앞에서는 미국산 소고기 먹지 말자고 해놓고 뒤에서 미국산 소고기로 만든 햄버거 먹었다고 깔 순 없다는 것이 소속사 측의 주장.

또한, 제주해군기지와 관련하여 자연을 놔두라고 트윗을 하는 등 국가적으로 논란이 있는 사안이 있을 때마다 자신의 정치적인 입장을 스스럼없이 밝히는 배우 중 하나로 유명했다. 하지만, 제주해군기지와 관련하여, 자연을 놔두라고 트윗을 하였으나, 트위터 저격수한테 그렇게 자연 좋아하면 얼굴이나 자연산으로 놔두라고 저격을 먹은 짤이 아직까지 돌아다닌다.

2010년 여름경 신동의 심심타파에서 개명의 사유를 새 연기영역의 개척을 위한 일환이라 설명했는데, 일부에서는 청산가리 논란으로 인한 방송계의 압력과 정치색이 입혀진 것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개명 당시에는 양세형의 숏터뷰에선 원래 집에선 그렇게들 불렀다고 원래 이름이나 다름없다고 말했으나, 단순히 이것만이 이유였던 것이 아니라 이러한 정치적 탄압과 같은 복합적인 배경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연예계에서 보통 동명으로 인한 혼동을 피하고자 늦게 데뷔한 연예인이 예명으로라도 양보하는 것이 관례인데, 주민등록된 이름을 개명하는 것은 개인사정이라 하겠지만, 개명한 이름을 연예계에서까지 굳이 바꾸어 사용하는 것은 10년 넘게 그 이름을 사용해왔던 동명이인인 동료 연예인에게 민폐를 끼치는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2] 나이 차이라도 난다면 좀 낫겠는데, 생년도 같아 더욱 혼란을 가중시킬 염려가 있다.

실제로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가 당선되자 이태원 식당에서 술을 마신 후 대성통곡을 했다고 한다. 너무 심하게 울어서 지인들이 부축해 겨우 집에 들어갈 정도였다고 하고, 문성근의 인터뷰 기사에 나온 바로는 악플을 수없이 받아온 것이 트라우마로 남아 이명박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관련 조사에 피해자 증인으로 출석하는 것조차 매우 두려워하고 있다고 한다.

2011년 MBC에서 방영한 리얼리티 프로그램 '댄싱 위드 더 스타'에서 준우승을 하면서 대중들에게 인지도를 회복했다. 그후 2012년 시즌2와 2013년 시즌3에서는 진행자로 출연하였다.

MBC 드라마 무신을 같이 찍었던 탤런트 김주혁과 연인관계였으나 결별하였다.

2014년 5월 16일. 야구선수 오승환과 연애설이 났으나 두 사람 다 전면부인. 당연히 소속사의 언플이다.# 덤으로 이렇게 1번의 김규리와 2번의 김규리를 착각하는 병크 기사도 있다. 그리고 17일 오전, 트위터에 열애설에 대한 자신의 심경을 밝히는 글을 올렸는데...#

2017년 9월 23일자 그것이 알고싶다에 출연해 위에 언급된 '청산가리' 일을 언급하며 10년간 힘들었던 심경을 최초로 털어놓았다. #

당시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사안(광우병)이나 정치적 논제에 대해서 함부로 단정하여 그 생각을 바탕으로 한 실언을 SNS에 올렸던 행동은 충분히 경솔한 행동이었고, 이에 대해 후에 여러 의견이 나오며 논란이 되었고, 김규리 본인은 언론의 노출을 피하며 연예 활동에 지장이 있었다.[3] 후에 이명박 정부 당시 국정원에서 김민선을 블랙리스트에 올렸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국정원에서 여론 조작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국정원에서 김민선을 SBS 드라마에 출연 시키지 말라고 SBS에 압력을 넣은 정황이 밝혀졌다..[4] 그리고 실제로 김민선은 2010년 이후 부터 2016년 우리 갑순이로 SBS 드라마에 복귀할 때 까지 SBS에 출연이 없었으나 그 외에 블랙리스트로 인해 그녀가 어떠한 피해를 입었는지에 대해 아직 구체적으로 밝혀진 것이 없고 조사 중이다.

3. 출연 작품[편집]

3.1. 영화[편집]

개봉 연도

제목

배역

1999년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

민아

2000년

해변으로 가다

도연

2002년

아프리카

소현

스물 넷

현지

2009 로스트 메모리즈

유치원 선생

2004년

하류인생

혜옥

2005년

거짓말

폭탄 연

2007년

레인보우 아이즈

별빛 속으로

삐삐 소녀

가면

은주

2008년

그들이 온다

미인도

신윤복

2009년

오감도

미진

정승필 실종 사건

미선

2010년

하하하

정화

인류멸망보고서

혜주보살

집 나온 남자들

영심

2011년

사랑이 무서워

소연

풍산개

인옥

2014년

또 하나의 약속

난주

2015년

화장

은주

3.2. 드라마[편집]

방영 연도

방송사

제목

배역

1999년

KBS

학교

박나리

2000년

SBS

메디컬 센터

조수안

2001년

KBS

아버지처럼 살기 싫었어

SBS

이별 없는 아침

한정서

2002년

리구두

우승희

MBC

현정아 사랑해

이현정

2003년

SBS

선녀와 사기꾼

송경숙

2004년

MBC

한강수타령

윤나영

2005년

KBS

러브홀릭

이율주

MBC

영재의 전성시대

주영재

2010년

일요 드라마 극장
사랑을 가르쳐 드립니다

이진이

2012년

무신

최송이

2013년

스캔들: 매우 충격적이고 부도덕한 사건

장주하

2014년

앙큼한 돌싱녀

국여진

KBS

왕의 얼굴

인빈 김씨

2016년

SBS

우리 갑순이

허다해

3.3. 뮤직비디오[편집]

발표 연도

아티스트

제목

2004년

박상민

해바라기(그녀에게..)

토니 안

사랑은 가질 수 없을 때 더 아름답다

2009년

바비 킴

사랑..그 놈

2011년

양파

아파 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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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집에서 가족들과 지인들에게만 불리고 주민등록되지 않은 비공식 이름이다.[2] 동갑이지만, 데뷔 시기로 따지면 원조가 엄연히 선배다.[3] 정치적 논쟁에 대해서 한쪽으로 치우친 시선으로 실언을 해왔기 때문에 그에 대해서 비난을 하는 네티즌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모두 국정원의 조작으로 몬다는 논란이 있다. 또한 김규리가 그알에서 하는 말에서도 미심쩍은 부분이 있는데, 본인은 청산가리 하나만 남게 해서 글을 왜곡시킨 누군가가 분명히 있을 거라고 주장하지만 해당 글은 청산가리 외에도 광우병에 관련된 루머들로 가득차 있었다. 청산가리 하나만 대중의 기억 속에서 남았다고 해도 그렇게 이상한 일이 아니다.[4] 김규리는 당시 올렸던 글들이나 인터뷰를 통해 심정을 표현했었는데, 그녀는 '너 아직도 안 죽었니? 응? 왜 안 죽었어? 죽어, 죽어, 죽어'라고 매도를 당했으며, 국정원 블랙리스트와 여론 조작으로 인해 상처를 많이 받았다는 심경을 밝혔다. 심적 고통을 호소하면서 자살시도까지 생각할 정도로 인격적으로, 정신적으로도 타격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