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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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크래프트 1 여성 프로게이머

김가을

이지혜

이종미

서지수

前 스타크래프트 1 프로게이머

前 삼성전자 칸 프로게임단 감독

前 삼성 갤럭시 프로게임단 사무국장

파일:Oops_January_01.jpg

이름

김가을

영문이름

Kim Gaeul

생년월일

1978년 10월 29일 (39세)

출생지

광주광역시

신체

166cm, O형

학력

조선대학교여자고등학교
한양대학교 산업공학과 학사
서강대학교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기술경영학과 석사

ID

[Oops]January

종족

저그

소속

게임아이 스틱스
(2000~2001)
게임아이 이노츠
(2001.9~2002.2)
삼성전자 칸
(2002.4~2003.2)
삼성전자 칸 감독
(2003.7~2013.9)
삼성 갤럭시 사무국장
(2015.1~2017.12)

데뷔

2000년 6월 배틀탑 아마리그

별명

저그여왕
가을이횽
제가을공명


1. 소개2. 활동 이력
2.1.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2.2. 삼성전자 칸 감독2.3. 삼성 갤럭시 사무국장
3. 수상 내역
3.1. 선수3.2. 감독3.3. 사무국장
4. 기타

1. 소개[편집]

프로게이머 출신 최초의 감독 & 사무국장
한 팀에서 선수-감독-사무국장을 역임한 원클럽우먼

대한민국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前 삼성전자 칸 감독, 前 삼성 갤럭시 사무국장.

2. 활동 이력[편집]

2.1.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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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시절 김가을 (2002)

한양대 산업공학과 97학번으로 어린시절부터 게임을 좋아하던 평범한 공대녀였지만, 대학교 2학년 때 피씨방에서 접한 스타크래프트가 그녀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꿨다. 스타크래프트의 재미에 빠진 김가을은 실력이 급성장했고 주위의 권유로 PC방 대회에 출전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다. 상금도 받다 보니 ‘등록금이라도 벌자’는 마음으로 1999년 휴학을 하고 본격적으로 프로게이머로 활동하며 비공식 대회들을 휩쓸었고, 2000년 6월 온게임넷[1] 배틀탑 아마리그에서 데뷔와 동시에 엄청난 포스를 내뿜으며 우승하며 여성부 본좌에 오른다.

이후 이어지는 iTV 서바이벌 리그에서 게임아이 스틱스[2]의 여성부 에이스로 활약하며 팀의 우승을 이끌었다. 이 리그는 흔히 볼 수 없었던 여성부가 따로 있는 팀 단위 형식의 리그였다. 김가을은 여성부에서는 적수가 없었고 남성 프로게이머들과의 연습에서도 밀리지 않아 선수들이 남자 프로게이머 같다며 가을이횽이라고부를 정도. 특히 엄청난 체력 소모를 요하는 저저전이 특기였는데 당대 최강의 저그 강도경을 여러번 이겼다고 한다.[3] 김정민의 스팀팩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여성부 리그는 연습 안하고 그냥 머릿 속에서 생각한 것만 해도 쉽게 우승했다고 하니 그 실력이 보통이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선수생활 말년에는 아예 스타를 손에서 놓았는데도 당시 신예 서지수를 비롯한 다른 선수들은 끝내 김가을 감독의 아성을 넘을 수 없었다. 엄재경은 트위터에서 "내 기억에 여성 게이머가 남성 게이머의 실력까지 갔던 건 김가을 뿐" 이라고 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공식경기 규칙상 남자선수 vs 남자선수, 여자선수 vs 여자선수로 경기를 했기 때문에 성대결이 벌어질 수는 없었다.

2001년 9월부터 게임아이 이노츠[4]의 창단 멤버로 활동했으나 2002년 2월 모기업의 부도로 팀은 해체되고 김가을은 삼성전자 칸으로 이적한다. 당시 남자 프로게이머들 사이에서도 몇 안되는 정식 연봉을 받고 활동하는 선수였다. 남성 프로게이머들과 비교했을때 여성 프로게이머들은 사회에서 보는 많은사람들의 잘못된 시선과 편견, 상대적으로 열악한 여러가지 환경 등의 문제 때문에 나타나는 실력 차이가 많이 났고, 남성 프로게이머들은 합숙 훈련이 정착되는데 비해 여성 프로게이머들의 지원은 매우 미비한 상황때문에 게임에 흥미를 잃은 김가을은 2002년 9월 복학과 동시에 은퇴한다. 더이상 휴학을 할 수도 없었고 축소되는 여성부 리그의 미래는 어렵다고 생각했다고.출처 인터뷰 2003년 2월까지 몇개의 대회에 참가하긴 했는데 이는 여성 프로게이머 인원이 부족해서 머릿수 채워주기로 참가한 것이다.[5]

2.2. 삼성전자 칸 감독[편집]

선수생활 은퇴 후 학교를 다니던 김가을에게 전 소속팀이던 삼성전자 칸에서 감독제의를 한다. 당시 삼성 프론트는 이름만 '삼성'일뿐 지원은 열악했고 게임이라고는 전혀 모르는 평사원에게 감독을 시켜 선수관리도 전혀 안되는 것으로 유명했다. 당연히 성적은 최하위권, 최약체 팀. 감독 제의를 받고 심각히 고민했는데 젊을 때 하고싶은 것을 해보라는 아버지의 조언[6]으로 2003년 7월 프로게이머 출신 최초로 감독이되었다. 당시 나이 26살(만 24살)로 최연소 감독.

그러나 김가을 감독 부임후에도 삼성칸의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주축으로 활동하던 고참선수들이 하나 둘 은퇴를 선언하거나, 군 문제로 팀을 떠났다. 지원도 열악해 삼성스포츠단에 프로게임단은 들어가지 못했고 프런트 직원이 단 1명이어서 김가을 감독이 프런트 역할을 겸했다. 만년 꼴지, 외인구단, 약체팀이 2004년까지 삼성전자 칸의 이미지였다.

그러나 최인규, 김근백 등 고참 프로게이머들을 영입하고 팀의 전체적 분위기와 시스템을 개혁했고[7] 송병구라는 슈퍼루키를 발굴하면서 팀은 성장해나간다. 2005년 변은종, 이창훈을 영입하고, 그해 9월 부임 3년만에 제1회 KeSPA Cup 우승하면서 삼성전자 칸은 완벽한 변신을 이루는데 성공한다. 이어서 2005년 프로리그 후기 준우승이라는 걸출한 성과를 내기 시작하면서 꾸준한 성장세를 타기 시작한다. 이성은허영무를 발굴해 낸 것도 이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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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전기 프로리그 우승 당시

2006년 그랜드 파이널 4위를 했고, 2007년 여름 마침내 광안리에서 프로리그 우승이라는 목표를 달성해냈다. 2007년 그랜드 파이널에선 아쉽게 준우승에 머물렀지만[8], 2008년 프로리그에서 다시 한 번 우승을 차지하며 명문팀으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굳혔다. 특히 주목받았던 점은 맵과 종족 상성을 기막히게 파악해서 배치한 엔트리. 일명 신트리였다. 08-09시즌 막바지 무렵에는 신인 발굴과 고정 엔트리가 파악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 간간히 발트리를 짜서 까이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김가을 감독의 엔트리가 막강했다는 점은 변하지 않았다.

09-10시즌 잘 쉰 대가로 쾌조의 스타트를 했어야 정상이었겠으나 갑자기 기량이 뚝 떨어진 허영무이성은을 끌고 팀을 운영하려니 제대로 돌아갈리가 없다. 11위, 12위를 전전하며 1라운드를 마감하여 삼성 팬들에게 가루가 되도록 까였다. 그러나 2라운드 들어서 급 정신차린 허영무송병구를 이끌고 팀을 다시 살리고 있다. 12/26일, MBC GAME HERO를 상대로 3:1 승리. 마지막은 자신과 신인 시절부터 같이 해온 주영달의 첫 1승이라 더욱 의미가 있다. 4라운드 개막과 동시에 3:0 패배를 당하고 말았다. 씁쓸한 출발인 듯. 5라운드 들어서 갑작스런 막바지 연승으로 희망고문을 시전하는가 싶었지만 삼성전자 칸은 결국 포스트 시즌 진출에 실패하고 만다. 결국 09-10 시즌은 삼성전자 칸과 김가을 감독에게 있어 씁쓸한 뒷맛을 남긴 시즌이 되고야 말았다.

시즌 종료 후 송병구의 트레이드 떡밥과 본인의 감독직 사퇴 떡밥이 동시에 투척되었는데, 스덕들은 떡밥 투척 당시 "조규남, 조정웅, 하태기 감독마저 사퇴한 마당에 이 분까지 사퇴하시면 스타판은 진짜 끝이다!"라며 절규했다. 일단은 송병구도 잔류시켰고 자신도 계속 팀을 맡을 예정인 듯 하다. 송병구를 잔류시킬 때 자신의 감독직을 걸고 담판을 지었다고 한다.

10-11 시즌에서 변함없이 삼성전자 칸을 이끌고 있다. 허필패는 끊임없이 연패나 찍어주고 송병구, 차명환도 예전만 못한 상황에서 어찌저찌 중위권의 성적을 유지해 주고 있다. 게다가 삼칸테란의 희망 박대호 발굴! 그리고 프로토스의 신예 임태규도 환골탈태하여 10-11시즌 제 몫을 해주고 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확실히 제가을공명의 별명이 아깝지 않다.[9] 그러나 송병구가 정명훈에게 3:0으로 셧아웃을 당하면서 준우승했고, 차명환은 피디팝 MSL 4강까지 치고 올라갔지만 또 준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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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칸 감독시절 (2011)

10-11 시즌 프로리그에서 포스트시즌 진출 확정. 저그라인의 약세와 각성 전의 허필패라는 두 가지 악재에도 불구하고 신예 육성과 적절한 엔트리 배치로 이뤄낸 쾌거이다. 역시 삼성칸의 최종보스는 가을이횽 하지만 6강 플레이오프에서 웅진 스타즈에게 1경기를 잡았음에도 이후 2,3경기를 내주고 패배. 3차전 에결에서 이재균 감독도 깜짝 놀란 박대호 카드를 꺼내들었는데 이길 수 있는 경기였음에도 전적으로 박대호의 중요한 순간 삽질때문에 패배했기 때문에 지고도 찬사를 보내는 의견이 많았다. 그나마 10-11 시즌에서 송병구, 차명환 연속으로 준우승만 찍다가, 2011 진에어 스타리그 결승에선 소속팀의 허영무가 우승을 차지. 2008 인쿠르트 스타리그에서 송병구가 우승한 이후 두번째로 우승자를 배출한 감독이 되었다.

11-12 시즌에도 삼성전자 칸을 이끌면서, KT와 1,2위를 다투었다. 기적의 4토스 엔트리를 냈을 때는 비판과 지지를 동시에 받았으나, 이후 경기들에서는 토스를 중심으로 그럼 어쩌라고 다른 종족 내보낼 선수가 없는데 맵도 토스한테 좋잖아 적절히 종족들을 배치하며 승리를 기록 중. 여담으로, 요 근래 방송 카메라가 김가을 감독을 잡으면 표정의 변화가 아스트랄함을 느낄 수 있다. 결국 3월 11일 웅진 스타즈전 승리를 마지막으로 정규시즌 2위로 마무리했다. 플레이오프 직행 확정.

플레이오프에서 KT 롤스터와 맞상대하였으나, 2연패로 탈락. 프로토스 중심의 팀 컬러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난 경기들로, 플레이오프에만 오면 미치는 KT저그들을 막지 못한 것이 탈락의 큰 원인이었다. 하지만 엔트리 자체는 전체적으로 나쁘지 않았고 차려준 밥상을 선수들이 걷어차버린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10] 역시나 김가을 감독은 많이 까이지 않았다.

프로리그 시즌2 들어서 스2도 명장소리 듣고 있다. 송병구의 스2 성적이 나날이 좋아지고 있고, 허영무의 경우 티빙 스타리그 우승으로 스타1 최후의 챔피언 등극에 WCS예선에서의 선전과, WCG2012 국가대표선발전 본선진출. 게다가 배틀넷 월드 챔피언쉽 시리즈 SC2 2012 한국대표 선발전 본선에서 김기현,신노열이 대활약을 펼치면서 (게다가 신노열은 MLG챔피언인 이동녕까지 2:1로 이겨버렸다.) 3라운드 들어서 삼성칸이 웅진 스타즈보다 더 유력한 결승 직행 후보 소리까지 들어버렸다. 전 코칭 스태프가 스2를 하고 있었던데다가 전담코치인 오상택 코치 영입 효과가 더블로 겹쳐서 최고의 성적을 보여주는 중. 하지만 팀은 5위로 쳐지는 중... 그러나 2012년 8월 25일 제8게임단과의 사실상의 1위 결정전 끝에 승리를 차지하며 결승 직행이라는 쾌거를 이뤄내며 다시 한 번 명장임을 입증하였다.

다만 결승전에서의 용병술은 아무래도 아쉽다는 평이 많다. 삼성칸에서 스타크래프트2로 내밀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카드 두 장은 누가 뭐라 해도 김기현과 신노열이고, 허영무는 개인리그 페이스가 워낙 안 좋았으니 김기현, 신노열은 스2, 허영무는 스1 으로 나올 게 거의 분명해 보였다. 하지만 막상 결승에서는 김기현이 스1, 신노열허영무가 스2로 출전했는데 결과적으로 김기현과 허영무가 모두 지고 신노열만 승리를 거뒀다. 아무리 엔트리 싸움이나 저격, 논개 작전을 경계했어도 김기현과 허영무의 위치를 바꾼 것은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근 격이라는 이야기가 많다. 실제로 CJ 에서도 김기현이 스1으로 출전한 것을 보고 당황해하기는 커녕 이것만 잡으면 우리가 이긴다는 확신에 찼다고 하니 이번만큼은 판단 미스였던 듯 하다.

12-13 시즌에 들어서는 5연패의 부진에 빠져 있어 김가을 감독의 속은 타들어가고 있다. 신노열 외의 다른 주력 카드들이 붕괴한 데다 이를 받혀주는 백업 요원들의 성적이 부진한 것이 문제. 게다가 12월 24일 SKT T1전에는 송병구, 허영무가 승리를 거두어 줬는데 박대호가 꼬라박을 시전하고 신노열김택용에게 패배인간상성하는 등 악재가 겹치면서 패배...

그러나 2013년 들어서면서는 완전히 분위기 반전에 성공해낸 모습이다. 물론 현재(3월 13일)기준으로 승률은 5할이 약간 안 되고 세트 득실은 -16으로 다소 불리한 상황이지만, 중위권이 워낙 진흙탕 싸움인데다 기세상으로도 상당히 좋기 때문에 포시 진출의 가능성도 제법 높아 보인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직 시즌은 절반도 안 끝났다.또한 칼날여왕신노열2013 HOT6 GSL Season 1에서 협회 선수 최초로 GSL 우승, 그리고 자유의 날개로 치러진 마지막 개인리그 우승이라는 쾌거를 이룩하였다. 이로서 김가을 감독은 브루드워자유의 날개 양 종목 모두에서 최후의 우승자를 배출한 감독이 되었다.

OGN 제작 프로리그 200승 기념 헌정영상 (2013)

다만 초반 부진이 더욱 아쉬운 것은 바로 감독의 승수. 3라운드까지를 기점으로 김가을 감독의 승리는 196승. 4승만 더 찍었으면 감독 최초로 200승을 달성할 수도 있었기에 팬들은 초반 기록이 나빴던 것을 아쉬워하고 있다. 2013년 4월 28일, 프로리그 4라운드 4주차 경기에서 팔게임단을 4:1로 잡아내며 역대 두 번째로 감독 통산 200승을 달성했다.

2013년 10월 22일, 삼성과의 재계약을 하지 않았다는 기사가 떴다. 매년 반복되는 프런트의 열악한 지원과 대우가 주된 원인으로 계약 종료가 9월 말 경인데 여론을 의식해 삼성 프런트에서 10월 22일까지 공식발표를 미뤘더고 한다. 가을이형이 만드신 삼성전자 칸이 삼성에게 우승컵을 얼마나 가저다 줬는데 김가을 감독 사퇴 이후 오상택, 송병구 코치가 사실상 감독역할을 수행했으나 정식 감독으로 임명되지는 않았고, 전술했듯 김가을 감독 이전에는 사무국에서 관리하는 체제였기에 김가을 감독이 삼성전자 칸의 처음이자 마지막 감독이 되었다.

2.3. 삼성 갤럭시 사무국장[편집]

감독 사퇴 발표 직후 인터뷰에서 “오랫동안 팀을 이끈 만큼 휴식이 필요했고, 언젠가는 다시 e스포츠에 복귀할 생각이다”고 밝혔고 약 1년간의 휴식을 취하고 2015년 1월 삼성 갤럭시 사무국장으로 e스포츠에 복귀했다. 프로게이머 출신 최초 감독에 이은 프로게이머 출신 최초 게임단 사무국장. 스타크래프트 2와 리그 오브 레전드 등 삼성 갤럭시의 모든 e스포츠 업무를 총괄한다. 2014년 삼성스포츠제일기획의 내부사정으로 기존 프런트가 단체 사표를 냈고 LOL팀 전원이 팀을 나가는 등 팀 내부적으로 혼란스러웠다. 이런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김가을 전 감독에게 사무국장으로 복귀할 것을 팀에서 부탁했다고 한다.

부임 후 해체 위기였던 스타크래프트2 팀을 프로리그 종료까지 유지시켰고, LOL팀도 지원을 해서 팀 재구성 2년만에 롤드컵 준우승을 하는 등 빠르게 게임단을 안정시켰다. 리그 오브 레전드 엑소더스가 일어난 2014년과는 다르게 2016년 스토브리그에서 선수 전원과 재계약에 성공하며 달라진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대외적으로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팀 내부에서 삼성 갤럭시를 이끌어 가는 중.

리그 오브 레전드 2017 시즌 월드 챔피언십에서 삼성 갤럭시가 우승을 하면서 e스포츠 업계에서 선수-감독-사무국장으로 모두 우승을 하였다. 2017년 12월 삼성전자가 KSV eSports에 프로게임단을 매각하면서 추후 거취는 불투명해졌다.

3. 수상 내역[편집]

3.1. 선수[편집]

  • 2000 배틀탑 스타크래프트 여성부 우승

  • 2000 국가 대표 선발전 스타크래프트 여성부 우승

  • 2000 KBK 국제 마스터즈 대회 여성부 우승

  • 2000 온게임넷 롯데리아배 여자부 우승

  • 2001 삼성 디지털배 KIGL 여성부 우승

  • 2001 iTV 서바이벌 리그 우승

  • 2001 스카이 겜티비 여성부 특별전 우승

  • 2001 온게임넷 킹덤 언더 파이어 특별전 우승

  • 2002 스카이 겜티비 1회 여성 리그 우승

3.2. 감독[편집]

  • 2004 hello apM WEG 3위 (워크래프트 3)

  • 2005 제1회 KeSPA Cup 우승

  • 2006 SKY 프로리그 2005 후기리그 준우승

  • 2007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7 전기리그 우승

  • 2007 신한은행 프로리그 감독상

  • 2008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7 통합챔피언전 준우승

  • 2008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8 우승

  • 2008 경남-STX컵 마스터즈 2008 4위

  • 2009 신한은행 프로리그 08-09 4위

  • 2012 SK플래닛 스타크래프트Ⅱ 프로리그 시즌2 감독상

  • 2012 SK플래닛 스타크래프트Ⅱ 프로리그 시즌2 준우승

3.3. 사무국장[편집]

  • 2016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 준우승

  • 2016 IEM Season XI Gyeonggi 우승

  • 2017 LOL Champions Korea Spring 3위

  • 2017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 우승

  • 2017 LoL KeSPA Cup 4강

4. 기타[편집]

하지 말라고 권하고 싶다. 이 직업의 좋은 점은 단 하나 자신이 좋아하는 게임을 마음껏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게임을 통해 성취감을 얻을 수 있고 자신감을 얻을 수 있다. 이기던 지건 경기가 끝나고 나면 말할 수 없는 행복감에 젖는다.

그러나 이것은 극도의 긴장감에서 벗어난 것일 뿐이다. 게이머 생활을 오래 하다보면 몸이 많이 상한다. 대부분이 신경성 위염을 앓고 있다. 이겨야만 한다는 부담감이 있기 때문에 게임 내내 초조하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게임 전에 설사를 몇 번이나 하기도 한다. 그리고 밤을 세워 연습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과로에 시달리게 되고 시력도 나빠진다.

또한 이 직업도 학력을 따지고 여성의 경우 특히 외모를 많이 따진다. 처음에는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가 없었는데 프로게이머를 하게 되면서 약간 생긴 것 같다. 여성 프로게이머들은 거의 탤런트 수준이다. 남성의 경우 잘하는 사람이 너무 많기 때문에 그들을 뚫고 나가기는 정말 힘들다.

  • 킹덤 언더 파이어 대회에도 출전해서 우승을 했다. 겜잘잘 놀라운 사실은 당시 겜티비 여성부 대회와 일정이 겹쳤음에도 모두 우승했다는 것. 삼성전자 칸에 워크래프트 3 팀이 있었을 당시에는 워3 감독도 겸임했었다.

  • 2007년 7월 삼성 SENS 노트북 TV CF에 출연하며 e스포츠 감독 최초로 TV 광고를 찍었다. '김정민의 스팀팩'에서 밝히길 삼성전자 사무국에서 시켜서 찍은 것이라고.


[1] 정확히는 투니버스에서 개최. 온게임넷은 2000년 7월 개국했다.[2] 송호창이 감독으로 남자부에는 홍진호, 이윤열이 있었다.당시 기사 송호창이 홍진호와 이윤열을 데리고 나가 IS 팀에 합류하면서 해체되었다.[3] 올드 게이머들의 개인방송에서 밝혀진 바로 실제 김가을의 vs 남성 프로게이머들의 연습승률이 높았다고 한다.[4] 슈마GO의 전신. 벤처기업 이노츠의 스폰을 받아 게임아이가 다시 창단한 게임단. 감독은 조규남, 창단 멤버는 김가을, 최인규, 김동준, 이재훈이었다. 이노츠 팀 해체 후 2002년 4월 GO가 창단된다.[5] 대회 출전선수가 부족해 개최가 어려워질 정도로 여성부 리그는 급속하게 축소되었다.[6] 어머니는 굉장히 반대하셨다고 한다. 학창시절부터 게임하는 것 자체를 부모님께 숨겨서 딸이 프로게이머가 된 것도 신문기사를 보고 알게되었다고.[7] 인터뷰에서 밝히길 고참 선수들을 영입한 이유는 성적보다는 후배들에게 모범을 보여주며 프로팀으로서 기틀을 잡는 것이 목적이었다고 한다. 두 선수들의 성적은 좋지는 않았지만 고참의 역할을 충실히 해주어서 김가을 감독이 매우 고마움을 표시했고 은퇴까지 잘 챙겨주었다.[8] 당시 스코어 4:1로 패배. 그러나 재미있는 점은 당시 팀에서 유일하게 1승을 기록한 선수가 패왕 김동건(!!)이었다는 점. 거기에 상대는 무려 이제동이었다.[9] 최근 스타판의 걸출한 신인 4명을 김장임박이라고 일컫는데, 그 중 '임'과 '박'이 삼성전자 출신이다. 한 시즌에 대박 신인 한 명 발굴해도 대단한 일인데, 2명이나 나왔다. 역시 제가을공명.[10] 예를 들어 허영무의 이영호 상대 2연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