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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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조치 9호를 알리는 매우 유명한 기사. 금성출판사 한국근현대사 교과서에도 실려있다.

유신헌법(1980년 폐지) 제53조 ①대통령은 천재·지변 또는 중대한 재정·경제상의 위기에 처하거나, 국가의 안전보장 또는 공공의 안녕질서가 중대한 위협을 받거나 받을 우려가 있어, 신속한 조치를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할 때에는 내정·외교·국방·경제·재정·사법등 국정전반에 걸쳐 필요한 긴급조치를 할 수 있다.

②대통령은 제1항의 경우에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이 헌법에 규정되어 있는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잠정적으로 정지하는 긴급조치를 할 수 있고, 정부나 법원의 권한에 관하여 긴급조치를 할 수 있다.

③제1항과 제2항의 긴급조치를 한 때에는 대통령은 지체없이 국회에 통고하여야 한다.

④제1항과 제2항의 긴급조치는 사법적 심사의 대상이 되지 아니한다.

⑤긴급조치의 원인이 소멸한 때에는 대통령은 지체없이 이를 해제하여야 한다.

⑥국회는 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긴급조치의 해제를 대통령에게 건의할 수 있으며, 대통령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이에 응하여야 한다.


1. 내용2. 역대 긴급 조치
2.1. 제1호2.2. 제2호
2.2.1. 적용 사례
2.3. 제3호2.4. 제4호
2.4.1. 반유신운동 탄압2.4.2. 재판과정의 불공정성
2.5. 제5호2.6. 제6호2.7. 제7호2.8. 제8호2.9. 제9호
3. 이후4. 여담5. 관련 항목

1. 내용[편집]

1972년 개헌된 유신 헌법(제4공화국)에 근거한 국가긴급권의 일종으로, 대통령이 내릴수 있는 특별조치이다.

긴급조치 발령시 대통령은 국회의 동의 없이 헌법상 국민의 기본권을 정지시킬 수 있고 정부와 법원의 권한도 맘대로 바꿀 수 있다. 국회는 단지 긴급조치의 해제를 대통령에게 건의할 수 있을 뿐이므로 대통령이 이를 묵살해도 전혀 제재를 받지 않았다. 심지어 긴급조치를 발령하는 행위는 사법적 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는 등 긴급조치권은 대통령에게 사실상 헌법개정의 권한을 부여한 것과 동일한 효력을 갖는 것이었다.

긴급조치는 제4공화국 기간 중 박정희 대통령에 의해 총 9차례 발령되었으며, 그중 긴급조치 1~8호의 집대성인 긴급조치 9호는, 79년 12월 7일 해제될 때까지 4년여 동안 지속되었다. 또한 유신헌법의 지속성과 대통령의 신임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1975년 2월 12일에 진행됐고, 74.4%의 찬성률(79.8% 투표율)로 국민투표가 가결되어 유신헌법과 긴급조치의 정당성을 강화하기도 했다.

긴급조치로 처벌 받은 사람 중 절반은 술을 마시고 대화를 하던 중 또는 수업 도중에 박정희 정권이나 유신체제를 비판해 재판에 넘겨진 사람들이다.# 즉, 말 한마디로 감옥에 끌려간 것이다. 그래서 막걸리 보안법이라고 비꼬는 단어가 나오기도 했다.#

택시 안에서나 술김에 청와대나 정부 비판을 하면 쥐도 새도 모르게 경찰서로 끌려갔다.# 교회, 사찰, 언론사에도 사복경찰, 이른바 '사복'이 들락거렸다. 집에서조차 아들이 유신을 비방할라치면 아버지가 손바닥으로 입을 막았으며, 택시기사도 손님이 유신 비방 발언을 하면 즉시 차를 세워 그 손님을 경찰에 고발까지 하였다. 긴급조치 9호는 유언비어의 날조 유포나 교내 집회 시위는 물론 긴급조치 그 자체를 비방하는 행위도 처벌토록 했다. 철저히 재갈을 물린 것이다. 감시망은 촘촘했고 빠져 나올 구멍은 안보였다. 심지어 교수가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주검으로 돌아오던 시절이다. 대충봐도 여기랑 아주 똑같다.

2. 역대 긴급 조치[편집]

2.1. 제1호[편집]

  • 대한민국 헌법을 부정, 반대, 왜곡 또는 비방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한다.

  • 대한민국 헌법의 개정 또는 폐지를 주장, 발의, 제안, 또는 청원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한다.

  • 유언비어를 날조, 유포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한다. [1]

  • 전 1, 2, 3호에서 금한 행위를 권유, 선동, 선전하거나 방송, 보도, 출판, 기타 방법으로 이를 타인에게 알리는 일체의 언동을 금한다.

  • 이 조치에 위반한 자와 이 조치를 비방한 자는 법관의 영장 없이 체포, 구속, 압수, 수색하며 1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이 경우에는 15년 이하의 자격정지를 병과할 수 있다.

  • 이 조치에 위반한 자와 이 조치를 비방한 자는 비상군법회의에서 심판, 처단한다.

  • 이 조치는 1974년 1월 8일 17시부터 시행한다.

2.2. 제2호[편집]

  • 긴급조치를 위반한 자를 처벌하는 비상군법회의 설치

  • 중앙정보부 부장이 사건의 정보, 조사, 보안업무를 조정, 감독

2.2.1. 적용 사례[편집]

1979년 12월 8일자 경향신문 기사에 나온 사건 모음도 참고할 것.

2.3. 제3호[편집]

국민생활 안정을 위한 대통령 긴급조치. [2]

  • 저소득층의 조세부담을 경감하기 위한 근로소득세, 주민세 등의 면제 또는 대폭 경감, 국민복지 연금제도 실시의 보류, 통행세 감면, 미곡수매가 소급 인상, 영세민 취로사업지 확보, 중소상공업자에 대한 특별저리융자, 임금체불 등 부당노동행위 가중처벌, 재산세 면세점 인상 및 사치성 품목에 대한 조세중과, 공무원 임금인상의 조기실시, 쌀 연탄 가격의 안정, 비생산적 대출 억제 등

2.4. 제4호[편집]

  • 민청학련과 이것에 관련한 제 단체의 조직에 가입하거나, 그 활동을 찬동, 고무 또는 동조하거나 그 구성원에게 장소, 물건, 금품 그 외의 편의를 제공하거나 그 활동에 관한 문서, 도서, 음반, 그 외의 표현물을 출판, 제작, 소지, 배포, 전시, 판매하는 것을 일제히 금지한다.

  • 이 조치를 위반한 자, 이 조치를 비방한 자는 영장 없이 체포되어 비상군법회의에서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한다.

  • 학생의 출석거부, 수업 또는 시험의 거부, 학교 내외의 집회, 시위, 성토, 농성, 그 외의 모든 개별적 행위를 금지하고 이 조치를 위반한 학생은 퇴학, 정학처분을 받고 해당학교는 폐교처분을 받는다.

  • 군의 지구사령관은 서울특별시장, 부산시장 또는 도지사에게 학생탄압을 위한 병력출동 요청을 받을 때는 이에 응하고 지원해야 한다.

2.4.1. 반유신운동 탄압[편집]

2.4.2. 재판과정의 불공정성[편집]

  • 피고인 가족 1인에게만 방청 허용.

  • 피고인들의 형량은 사형 9명, 무기징역 21명, 그 외 140명 형량합이 1,650년.

2.5. 제5호[편집]

대통령 긴급조치 제 1호와 동 제 4호의 해제에 관한 긴급조치.

  • 대통령 긴급조치 제1호와 동 제4호를 해제한다.

  • 해제당시, 대통령 긴급조치 제1호 또는 동 제4호에 규정된 죄를 범하여, 그 사건이 재판 계속중에 있거나 처벌을 받은 자에게는 영향을 미치지 아니한다.

  • 이 조치는 1974년 8월 23일 10시부터 시행한다.

2.6. 제6호[편집]

대통령 긴급조치 제 3호의 해제조치.

  • 대통령긴급조치 제3호「국민생활의 안정을 위한 대통령긴급조치」를 해제한다.

  • 해제당시 대통령긴급조치 제3호의 적용을 이미 받았거나 받을 사항에 대하여는 영향을 미치지 아니하며 그에 관한 사항의 처리는 종전의 예에 의한다.

  • 해제당시 대통령긴급조치 제3호에 의하여 부과하였거나 부과할, 또는 감면하였거나 감면할 제세에 관하여는 종전의 예에 의한다.

  • 해제당시 대통령긴급조치 제3호에 위반한 행위에 대한 벌칙의 적용과 그 재판관할에 있어서는 종전의 예에 의한다.

  • 이 조치는 1975년 1월 1일 0시부터 시행한다.

2.7. 제7호[편집]

  • 1975년 4월 8일 17시를 기하여 고려대학교에 대하여 휴교를 명한다.[3]

  • 동교내에서 일체의 집회, 시위를 금한다.

  • 위 제 1, 2호를 위반한 자는 3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이 경우 10년 이하의 자격정지를 병과할 수 있다.

  • 국방부장관은 필요하다고 인정한 때에 병력을 사용하여 동교의 질서를 유지할 수 있다.

  • 이 조치에 위반한 자는 법관의 영장없이 체포·구금·압수·수색할 수 있다.

  • 이 조치에 위반한 자는 일반법원에서 관할심판한다.

  • 이 조치는 1975년 4월 8일 17시부터 시행한다.

2.8. 제8호[편집]

대통령 긴급조치 제 7호의 해제조치.

  • 대통령 긴급조치 제7호를 해제한다.

2.9. 제9호[편집]

  • 다음 각 호의 행위를 금한다.

    • 유언비어를 날조, 유포하거나 사실을 왜곡하여 전파하는 행위

    • 집회·시위 또는 신문, 방송, 통신 등 공중전파 수단이나 문서, 도화, 음반 등 표현물에 의하여 대한민국 헌법을 부정·반대·왜곡 또는 비방하거나 그 개정 또는 폐지를 주장·청원·선동 또는 선전하는 행위

    • 학교 당국의 지도, 감독 하에 행하는 수업, 연구 또는 학교장의 사전 허가를 받았거나 기타 예외적 비정치적 활동을 제외한 학생의 집회·시위 또는 정치 관여 행위

    • 이 조치를 공연히 비방하는 행위

  • 제1에 위반한 내용을 방송·보도 기타의 방법으로 공연히 전파하거나, 그 내용의 표현물을 제작·배포·판매·소지 또는 전시하는 행위를 금한다.

  • 재산을 도피시킬 목적으로 대한민국 또는 대한민국 국민의 재산을 국외에 이동하거나 국내에 반입될 재산을 국외에 은닉 또는 처분하는 행위를 금한다.

  • 관계 서류의 허위 기재 기타 부정한 방법으로 해외 이주의 허가를 받거나 국외에 도피하는 행위를 금한다.

  • 주무부장관은 이 조치 위반자·범행 당시의 그 소속 학교·단체나 사업체 또는 그 대표자나 장에 대하여 다음 각 호의 명령이나 조치를 할 수 있다.

    • 대표자나 장에 대한, 소속 임직원·교직원 또는 학생의 해임이나 제적의 명령

    • 대표자나 장·소속 임직원·교직원이나 학생의 해임 또는 제적의 조치

    • 방송·보도·제작·판매 또는 배포의 금지 조치

    • 휴업·휴교·정간·폐간·해산 또는 폐쇄의 조치

    • 승인·등록·인가·허가 또는 면허의 취소 조치

  • 국회의원이 국회에서 직무상 행한 발언은 이 조치에 저촉되더라도 처벌되지 아니한다. 다만 그 발언을 방송·보도·기타의 방법으로 공연히 전파한 자는 그러하지 아니한다.

  • 이 조치 또는 이에 의한 주무부장관의 조치에 위반한 자는 1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이 경우에는 10년 이하의 자격정지를 병과한다. 미수에 그치거나 예비 또는 음모한 자도 또한 같다.

  • 이 조치 또는 이에 의한 주무부장관의 조치에 위반한 자는 법관의 영장 없이 체포·구속·압수 또는 수색할 수 있다.

  • 이 조치 시행 후,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2조(뇌물죄의 가중처벌)의 죄를 범한 공무원이나 정부관리·기업체의 간부직원 또는 동법 제5조(국고손실)의 죄를 범한 회계관계직원 등에 대하여는, 동법 각조에 정한 형에, 수뢰액 또는 국고손실액의 10배에 해당하는 벌금을 병과한다.

  • 이 조치 위반의 죄는 일반법원에서 심판한다.

  • 이 조치의 시행을 위하여 필요한 사항은 주무부장관이 정한다.

  • 국방부 장관은 서울특별시장, 부산시장 또는 도지사로부터 치안질서유지를 위한 병력출동의 요청을 받은 때에는 이에 응하여 지원할 수 있다.

  • 이 조치에 의한 주무부장관의 명령이나 조치는 사법적 심사의 대상이 되지 아니한다.

  • 이 조치는 1975년 5월 13일 15시부터 시행한다.[4]


긴급조치제9호

3. 이후[편집]

10.26 사건에서 박정희김재규에게 암살당하고 1980년 10월 27일 대한민국 헌법이 개정되면서 사라졌다. 대신 비상조치, 긴급경제사회조치가 생겼는데, 긴급조치와는 달리 입법부의 사후 의결을 받아야 하고, 사법적 심사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또한 비상조치를 해제할 수 있는 온전한 권한을 국회에 부여하였다. 하지만 여전히 군사정권시기라고 이 시점까지도 헌법적 권한을 부여하는 것은 멈추지 않고 있었다.[제51조]

이런 문제는 1987년 개정된 대한민국 헌법 제76조에 언급된 '처분', '명령'이 법률적 효력을 가지는 것으로 바뀌면서야 사라졌다.[6] 유신헌법 개정 이후로 긴급명령권을 발동한 사례는 1993년대통령 긴급재정경제명령 제16호 딱 한 건 뿐이다.

2010년 12월 16일 대법원은 긴급조치 1호에 의해 복역한 오종상에게 모든 혐의 무죄를 선고하면서, 긴급조치 1호가 위헌이라고 판시하였다. 그는 1974년 유신 체제를 비판한 혐의[7]징역 3년을 선고받고 복역했으나, 2010년 대법원은 "당시 유신헌법상의 발동 요건조차 갖추지 않고 한계를 벗어나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했기 때문에 위헌"이라고 설명했다. 이 재판의 내용은 2013학년도 수능 근현대사 과목 시험 문제로도 출제된 바 있다.관련기사. 다만 긴급조치가 형식적으로 명령과 같다고 보아 대법원에게 최종 심사권이 있다고 본 점에는 비판이 많다. 긴급조치는 법률과 같은 효력이 있기 때문에 헌법재판소에서 심사해야 한다는 것. 물론 위헌이라는 점에는 비판이 없다.

2011년 2월 11일 서울고등법원은 긴급조치 4호가 "헌법에 보장된 국민기본권을 침해해 유신헌법에 어긋나 위헌이며 현행 헌법에 비춰보더라도 위헌"이라고 판시했다.

2013년 3월 21일 1, 2, 9호에 헌법재판소가 만장일치로 위헌 결정을 내렸다. 대법원과는 달리 헌법재판소는 긴급조치를 법률로 보아 위헌 결정한 것. 또한 유신헌법을 위헌 판단의 기준으로 본 대법원과는 달리 유신 헌법은 국민의 결단으로 폐기된 것이므로 현행 헌법만을 판단 기준으로 본다고 설시해 대법원의 판결과 정면으로 대치했다.

2013년 4월 18일 대법원은 긴급조치 9호를 무효 선언했고 이로인해 긴급조치 9호를 위반하여 유죄판결을 받은 피해자는 재심청구로 형사보상을 받을수 있게 되었다. 관련기사

2013년 5월 16일 대법원은 긴급조치 4호 역시 헌법에 위반되어 무효로 선언했다. 이로 인해서 긴급조치 4호 위반으로 실형을 받은 사람들이 재심을 청구할 수 있게 되었다.관련 기사

여기서 대법원과 헌법재판소가 위헌심사권을 가지고 대립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자세한 것은 헌법재판소 참고.

4. 여담[편집]

당시 사람들은 이러한 연대를 '긴조시대'라고 불렀다고 한다.

5. 관련 항목[편집]

[1] 1,2,3호 전부 겉보기엔 문제가 없어보이지만 진짜 문제는 저 헌법이라는 대상이 유신 헌법이란게 문제다. 또한 2호를 통해 헌법 개정을 막아버렸기 때문에 입법부의 권한이 줄었고 행정부를 제제할 수단을 잃게 되었다.[2] 주로 독재를 용이하게 하기 위한 다른 긴급조치들과는 달리 이 조치는 다른 조치들에 비하면 매우 엉뚱한 내용을 담고있다. 이걸 왜 엉뚱하다라고 표현하느냐면, 헌법적 위치가 필요할 정도로 권리의 제한을 가져오지도 않고, 긴급성을 요하지도 않으며, 어차피 삼권을 장악한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이걸 법률로 통과시키겠다고 해도 걸릴 것이 없었기 때문에 법률로 통과시키지 못할 이유도 없었기 때문이다. 즉, 닭 잡는 일에 길로틴을 가져온 격이다. 때문에 긴급조치에 대한 부정적 인상을 희석시키기 위한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만 존재한다. 초법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것에 재미가 들려서 그랬나?[3] 1975년 4월 6~7일 사이에 있었던 교내 반 유신 농성집회로 인해 내려진 긴급조치. 8호와 함께 긴급조치 중에서 유일하게 전국이 아닌 한 대학교를 대상으로 발효되었다. 이 당시에는 고려대학교를 폐교시킨다는 소문도 공공연하게 돌 정도.[4] 1979년 12월 8일 해제되었다.[제51조] ①대통령은 천재·지변 또는 중대한 재정·경제상의 위기에 처하거나, 국가의 안전을 위협하는 교전상태나 그에 준하는 중대한 비상사태에 처하여 국가를 보위하기 위하여 급속한 조치를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할 때에는 내정·외교·국방·경제·재정·사법 등 국정전반에 걸쳐 필요한 비상조치를 할 수 있다.
②대통령은 제1항의 경우에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헌법에 규정되어 있는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잠정적으로 정지할 수 있고, 정부나 법원의 권한에 관하여 특별한 조치를 할 수 있다.
[6] 제3공화국 헌법의 긴급명령권에 국가안전보장이라는 목적을 추가했다.[7] 대통령 긴급조치및 반공법 위반.[8] 2000년대를 배경으로 긴급조치가 발령되어 벌어지는 가상적인 상황을 소재로 한 영화인데 매우 안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