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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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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하학에는 왕도(王道)가 없습니다. - 유클리드[1]



1. 개요2. 발전사3. 고전 기하학4. 현대 기하학의 갈래
4.1. 길이와 좌표, 방정식을 중심4.2. 다양한 변환 속에서 유지되는 성질 중심4.3. 공리적인 접근
5. 영향6. 기타7.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幾何學 / Geometry / γεωμετρία

점, 직선, 곡선, 면, 부피 등 공간의 성질을 연구하는 수학 분야. 수학의 한 분야이자 자유7과(중세 서양 대학의 7대 학문)에 속하는 학문이다.

영어 표현인 Geometry는 그리스어인 γεωμετρία로부터 왔는데, 이는 γεω~(땅), μετρία(측량)의 합성어이다. 즉 '땅의 측량', 혹은 '땅을 측량하기 위한 방법'이라는 뜻. 반면 중국어, 일본어, 한국어 등에서 쓰이는 한자 표현인 기하학(幾何學)은 한자 자체에 큰 의미가 있는 게 아니고, 마테오 리치명나라 조정에 서양 학문을 소개할 때 발음했던 걸 단순히 음차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현대 중국어로 幾何를 '지허'(jǐhé)라고 발음하는 걸 보면 나름 비슷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차라리 측지학(測地學)이라고 썼으면 어땠을까... 국어국문학자 양주동이 이걸 한문 그대로 해석하니 뜻('몇 어찌'라는 뜻이다)이 도무지 이해가 안 되어 밤새 고민했다고 한다.

2. 발전사[편집]

기하학이 언제 시작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또 기하학은 많은 문명에서 측량이나 건축 등에 이용되면서 발전되었기 때문에 어디서 먼저 발생하였는지를 이야기하는 것도 무의미하다. 이미 메소포타미아와 중국 등에서도 피타고라스의 정리는 널리 알려져있었던 사실이고, 정다각형의 작도와 같은 문제도 이미 연구되어 있었다.

근대 기하학의 개념은 피타고라스 등의 고대 그리스 수학자들이 연역적인 증명을 통해서 기하학을 탐구하면서 출발하였다. 기원전 300년대의 그리스인 유클리드는 그의 저작 '원론'에서 선, 점, 면과 같은 몇 용어[2]공리[3]들로 당시 알려져있던 대부분의 정리를 증명해냈다. 이 기하학을 흔히 유클리드 기하학이라고도 한다.

현대적인 기하학의 모습은, 르네 데카르트의 해석기하학적인 접근이 등장하고, 기하문제(이를테면 작도문제)를 대수적인 방법으로 풀 수 있다는 발견들이 이루어지고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어 평행선공준(Parallel Postulate)이 늘 성립하지 않는 기하학도 있다는 발견도 이루어졌고, 이런 분야를 비유클리드 기하학이라고 부른다. 이런 발견들이 19세기말에 완성된 집합론의 언어로 표현되면서 기하학은 현대적인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이집트의 나일 강이 정기적으로 범람하자 토지의 경계가 사라지는 일이 자주 발생했다. 그래서 강물이 빠질 때마다 사람들은 토지의 넓이를 새로 측정했는데, 이 과정에서 기하학 지식이 생겨났다.
역사학의 아버지 헤로도토스는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소유한 토지 일부가 강물에 휩슬려가면 국왕은 그곳에 사람을 보내 조사를 실시한다. 그리고 측량을 거쳐 유실된 면적을 정확히 계산해낸다....나는 이집들인들이 이런 과정을 통해 기하학을 이해하게 되었고 후대에 이를 그리스에게 전해 주었다고 생각한다.([수학의 역사], 지즈강지음/권수철 옮김, 더숲, 2011)

3. 고전 기하학[편집]

고전 기하학은 유클리드 기하학이라고도 하는데 유클리드의 원론에서 체계적으로 논의가 시작되었기 때문에 이렇게 부른다. 유클리드 공리계는 체계적으로 배우는 최초[4]의 공리계로서 공간 기하학까지 이어진다.

유클리드의 방법은 직관적으로 성립하는 당연한 원리들을 공리(axiom), 도형의 성질 중에 당연히 받아들이는 성질들을 공준(postulates), 공준들을 이용해서 유도되는 원리들을 정리(theorem)이라 하였다. 여기서 학자에 따라서는 아래 서술한 공리들을 common notation, 공준을 공리라고 하기도 한다. 어찌 정의하든 간에 직관적으로 성립하는 성질들이다.

  • 공리

    1. 동일한 것과 같은 것은 서로 같다.

    2. 동일한 것에 같은 것을 더하면 그 전체는 같다.

    3. 동일한 것에서 같은 것을 빼면 나머지들은 같다.

    4. 겹쳐 놓을 수 있는 것은 서로 같다.

    5. 전체는 부분 보다 크다.

  • 공준

    1. 한 점에서 다른 한 점에 직선을 그릴 수 있다.

    2. 유한한 선분은 그 양쪽으로 얼마든지 연장할 수 있다.

    3. 임의의 점을 중심으로 하고, 임의의 길이를 반지름으로 갖는 원을 그릴 수 있다.

    4. 모든 직각은 서로 같다.

    5. (평행선 공준)두 직선이 하나의 직선과 만날때 같은 쪽에 있는 두 내각의 합이 180도 보다 작으면, 두 직선을 무한이 연장 했을 때 반드시 그 쪽에서 만난다.


원론에 입각한 기하학은 약 18세기까지도 수학의 중심이었다. 수학이 지나치게 도야적 입장으로만 발달하다보니 실용적 측면은 소홀하게 되었고, 18~19세기가 되어서야 '수학을 사용하는' 측면적으로 학문이 발달하게 되었다.

4. 현대 기하학의 갈래[편집]

현대 기하학은 접근 방법에 따라서 다양한 분야로 나뉘었으며, 크게 세 갈래로 나눌 수 있다.

4.1. 길이와 좌표, 방정식을 중심[편집]

르네 데카르트가 발명한 좌표평면을 이용하면, 공간 위의 각 점마다 고유한 좌표를 줄 수 있고, 선과 면을 하나의 방정식으로 표현할 수 있는데, 여기에 미적분의 방법을 이용하면서 순수하게 기하학적인 방법만으로 다루기 어려운 곡선들과 곡면을 비교적 쉽게 다룰 수 있게 되었다.[5] 이런 방법은 후에 미분기하학(Differential Geometry)으로 이어진다. 또 선과 면을 방정식을 표현하는 것과는 반대로, 주어진 방정식을 공간위의 곡선과 곡면으로 나타내 이 성질을 연구할 수 있는데, 이는 대수기하학(Algebraic Geometry)으로 이어진다.

4.2. 다양한 변환 속에서 유지되는 성질 중심[편집]

기하학에서는 평행이동이나 회전대칭, 거울대칭을 한 후에도 합동이나 수직, 교점의 존재여부 등 기하학적인 성질이 그대로 보존된다. 또 길이를 포기하고, 모든 점들의 거리를 똑같은 비율로 늘려주는 변환을 한다면, 합동은 유지되지 않지만 닮음은 유지된다. 이것을 좀더 일반화시켜서, 원근법을 적용시켜 그림을 그리듯 어떤 도형을 투영시켜 살펴보면, 많은 기하학적인 성질이 유지되지 않지만 교차비(cross ratio)와 같은 특수한 성질과 교점의 개수 등은 유지된다. 이것보다 더 큰 범주로 길이와는 상관 없이 연속적으로 도형을 변환시킬 수도 있다. 이렇게 변화를 시키면 길이 자체는 무의미해지지만, 교점의 개수 등은 여전히 유지된다. 이러한 변환들과 유지되는 성질들은 고유한 구조를 가지고 있으므로, 이런 변환 안에서 변하지 않는 고유한 성질들만을 연구할 수도 있다. 사영 속에서 유지되는 성질에 대한 연구는 파스칼과 데자르그 등에 의해 시작되어, 클라인[6] 등이 변환군 등을 이용 발전시켜 지금의 사영기하학(Projective Geometry)이 되었고, 오일러가 시작한 연속적인 변화에 대한 연구는 훗날 위상수학이 된다.

4.3. 공리적인 접근[편집]

  • 평행성 공준 - 두 직선이 하나의 직선과 만날때 같은 쪽에 있는 두 내각의 합이 180도 보다 작으면, 두 직선을 무한히 연장 했을 때 반드시 그 쪽에서 만난다.


유클리드의 다섯번째 공준은 다른 수학자들이 보기에는, 직관적이지 않으므로(무한히 연장이라는 말 때문이다) 그 전에 언급한 네개의 공준을 통해 증명이 될 것으로 보았다. 하지만 수많은 수학자들이 도전했으나, 평행선 공준의 증명은 나타나지 않았다.

다만 그와 동치인 명제만이 여럿 발견되었다. 가장 유명한 것은 플레이페어가 발견한 것으로 "한 직선과 평행이고 그 직선 위에 있지 않은 한 점을 지나는 직선은 하나뿐이다." 쉬운 기하책들은 오히려 이것을 평행선 공준이라고 서술해 놓은 것도 있다. 유클리드 제5공준은 설명이 너무 어려우니까...

다른 예들은 "삼각형의 내각의 합은 두 직각(180도)과 같다."같은 것들이 있으며 평행선 공준을 사용하지 않으면 "삼각형의 내각의 합은 180도 보다 작거나 같다"고 증명[7]할 수는 있지만 180도라는 증명은 불가능했다.

보여이, 로바체프스키, 가우스와 같은 수학자는 평행선 공준이 성립하지 않는다(하나만 있는게 아니라 무한히 있다 또는 아예 없다)고 가정하고, 다른 유클리드의 공리들은 유지하며 논리를 전개시켜본 결과 전혀 모순이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가우스는 이걸 발표하지 않고 후학들을 좌절시키는 용도로만 사용한다.[8][9][10] 후에 리만이 리만기하학을 완성하고 클라인을 거쳐 비유클리드 기하학이 정립된다.

이렇게 공리를 통해 기하학 원리를 탐구하는 방식은 수학자 힐베르트가 칸토어의 집합론을 이용해 공리적기하학(Axiomatic Geometry)으로 완성된다.[11]

수학사적으로 봐서도 이 평행선 공준에 대한 논란은 수리철학적으로 큰 의미를 갖는데, 평행성 공준이 성립하지 않는 비유클리드 기하학과 함께 나중에는 칸토르의 집합론에 의해 유클리드의 제5공리(전체는 부분 보다 크다)가 성립하지 않을 수도 있음(정수는 자연수보다 크지만 크기는 같다)이 알려졌다.

그렇다면 "절대적으로 참인 수학적인 원리가 존재할까?"라는 본질적인 물음이 나왔는데 여기에 '절대주의' 수리철학은 수학적 지식은 절대적으로 확실한 진리라고 보는 관점으로, 주요한 관심사는 수학적 진리의 안전한 기초를 확립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논리주의는 수학을 논리로 환원하여 논리 위에 세우고자 하였다. 직관주의는 직관으로 인해 기본적인 수학적인 개념과 정리가 자명하게 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형식주의는 정해진 규칙에 따라 이루어지는 일종의 체계라고 보았다. 수학의 기초를 확립하려는 시도가 만족스럽지 않게 된 이후, 수학의 절대성에 의문을 던지게 되었으며, 불완전성 정리에 의해 '완전한 수학체계'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결론이 났다.

5. 영향[편집]

원근법과도 연관성이 크며, 만화에서 해부학과 더불어서 가장 기본적인 학문. 그 이유는 사람 인체나 배경도 일정한 도형의 원리로 이루어져있기 때문이며 특히 투시도법을 이해하기 위해서 기하학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는 필수이다.

건축과 만화와 그림에 주로 응용되는 투시도법의 뿌리가 되었던 것이 기하학이다. 또한 기하학은 문화 예술뿐만 아니라 건축과 도로 그리고 각종 분야에서 빠지지 않는 학문 중 하나이다.

비유클리드 기하학은 물리적이지 않은 추상적인 객체로 여겨졌으나, 로렌츠나 아인슈타인 이후로 현실이 유클리드 기하보다는 쌍곡기하학에 더 적합하다는 것이 밝혀져 물리학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6. 기타[편집]

간혹 가다 "동양에는 기하학이 없었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사실이 아니다. 오히려 중국에서는 기하학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이 기원전 330년경의 것이며, 정황상 그 이전에도 훨씬 많은 연구가 있었지만 분서갱유로 대부분이 유실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인도는 아예 아리아인들이 인도 땅에 채 정착하기도 전인 베다 시대부터 기하학에 대한 기록이 발견된다. #

幾何學이라는 한자어가 Geometry의 음차인 것은 말 그대로 단어를 빌려왔을 뿐이다.[12] 동양에는 기하학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다. 기하학의 경우 동양에서는 항상 건축학의 일부분으로만 연구되었지만 서양에서는 기하학을 지적유희의 일종으로 여겼던 고대 그리스의 영향으로 아예 자유칠과 중 하나로 편입되었기 때문에 독자적 개념으로 설명할 필요가 있었다. 그마저도 고대인들에게 있어 건축이라는 분야는 항상 종교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사실 기하학은 토지측량과 정리에 쓰이는 아주 실용적인 학문이기 때문에, 문명이 발전한 지역에는 당연히 존재한다.

2021학년도 대학입학 수학능력시험 이과 계열에서 기하학이 제외되었다. 수학학습부담을 줄인다며 빼버렸는데, 미적분은 또 들어가 있다. 그래서 수학계는 자문 하나 없이 교육부 설문대상에서도 의견개진하지 않고 왕따한 데다[13] 설문 내용도 교육부가 기하를 빼기로 내정한 결론이 학생들에게 좋다는 식으로 정해놓고 물어봐 기획이라고 노발대발했다. 과학기술단체와 컴퓨터, 이공계 인력을 고용하는 업계에서도 완전 멘붕에 빠진 상태.

7. 관련 문서[편집]

[1] 마케도니아 왕국의 국왕인 프톨레마이오스 1세가 기하학을 쉽게 배우는 방법은 없냐며 질문하자, 유클리드가 '사람이 다니는 길에는 왕께서 다니는 길이 있지만, 기하학에는 그런 왕의 길(王道)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2] 수학적인 표현은 아니지만 직관적으로 이해가 가능한 말을 사용했다. 두께와 길이가 없는 것이 점, 두께가 없는 것이 선, 선 중에서 곧게 뻗은 것이 직선, 이런 식이다.[3] 두 점을 지나는 직선은 하나이다 등등[4] 수학사적으로 본다면 체의 공리 같은 것들은 너무나 당연하게 사용했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한 것은 얼마 안된다.[5] 이미 아르키메데스는 구분구적과 비슷한 방법으로 구의 부피와 표면 넓이를, 페르마는 극한과 유사한 방법으로 접선을 구해냈다. 그러나 더 일반적인 방법으로 발전한 것은 이 때[6] 클라인의 병의 그 클라인 맞다.[7] 귀류법을 쓴다. 내각의 합이 180도 보다 큰 삼각형이 존재한다고 가정한 후에 모순을 찾음.[8] 정확히는 가우스는 유클리드 제5공준을 빼도 기하학이 성립한다는 것을 발견했지만, 그걸 발표하면 "무지몽매한 자들의 짹짹거림"에 시달릴 것이 두려워 발표하지 않았다고. 사실 아이작 뉴턴도 프린키피아를 라틴어와 논증기하로 떡칠(비록 라틴어나 논증기하로 증명하는 것은 당시에 자주들 했지만)해서 쓴 이유가 잡놈들이 조금 안다고 설치는 꼴이 보기 싫어서라는 얘기도 있고, 쉽게 설명하는 것을 즐기던, 혹은 그것이 진정으로 현상을 이해하는 길이라 여기던 리처드 파인만도 당시 철학자들이 상대성 이론 가지고 삽질하는 꼴을 보고 빡쳤던 것을 보면 꼭 소심해서 그런 거라고 하기엔 씁쓸한 감이 있다.[9] 실제로 어떤 수학자가 제 5공준을 바꿔서 생각해서도 모순이 없는 공간을 만들 수 있다는 걸 발견한 후 그 수학자의 아버지의 친구인 가우스에게 편지를 보내서 자랑했지만, 가우스는 이미 그것을 알고있었고, 그 수학자는 낙심하게 된다.[10] 더 안습한 것은 그 수학자말고 또 다른 수학자가 이미 3년 전에 그와 일치되는 내용을 발표했다는 것이다. 어떤 수학자의 생애에 대해 검색해보면 알겠지만 여러모로 참 안습하다.[11] 앞서 말한 비유클리드 기하학은 사영기하가 포함하는 형태이기 때문에 공리적 기하는 비유클리드 기하보다는, 유한한 점과 선으로 이루어진 공간이라든지, 다른 공리를 이용할 때 등장할 수 있는 공간 등에 대해서 연구한다.[12] 음차가 아니라 그리스어를 직접 옮긴 표현이라는 설도 있다.링크 참고.[13] 교사와 교육부 조직 인사, 학부모를 대상으로 교육부 자체 온라인 설문을 했다고 한다.[14] 세미의 비명소리#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