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자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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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분기 10대 글로벌 자동차 그룹

1위

2위

3위

4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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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image/015/2011/03/31/9127908d6f7c08d3173257b1c4767657.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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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자동차 주식회사
KIA MOTORS

파일:KIA MOTORS.jpg

정식명칭

기아자동차주식회사

영문명칭

KIA MOTORS CORPORATION

설립일

1944년 12월 11일[1]

창업자

김철호

업종명

승용차 및 기타 여객용 자동차 제조업

기업규모

대기업

모기업

현대자동차그룹

상장여부

상장기업

상장시장

유가증권시장(1973년 ~ 현재)

편입지수

코스피
KRX100
KOSPI200

주식코드

000270

웹사이트

공식 홈페이지
노조 홈페이지
노조 비정규직지회 홈페이지

로고 변천

파일:기아_로고(1953-1964).png

파일:기아_로고(1964-1986).png

파일:기아_로고(1986-1994).png

1953 ~ 1964

1964 ~ 1986

1986 ~ 1994


1. 개요2. 역사
2.1. 1997년 부도
3. 특색4. 현재
4.1. 디자인 경영
5. 사명(社名)6. 역대 슬로건7. 웰컴사운드, 효과음8. 문제점9. 생산차량
9.1. 승용차, SUV, 승합차, 경상용차9.2. 버스, 트럭9.3. 삼륜차9.4. 군용차
10. 베이퍼웨어
10.1. GT와 GT-Line
11. 기타
11.1. 스폰서십
12. 관련 문서13. 둘러보기

1. 개요[편집]

국내에서 현대자동차와 쌍벽을 이루는 자동차 기업

현대자동차그룹의 두번째 자동차 회사이자, 2017년 기준 기아자동차 단일 기업으로서는 세계 9위의 생산량을 자랑하는 기업.

2. 역사[편집]

1944년 12월 11일에 학산 김철호에 의해 '경성정공'이란 이름으로 설립되어[2] 국내 최초의 자전거 '3000리호'를 출시(다들 아시는 그 삼천리자전거의 기원이 된다.)[3]하고 1952년 2월 회사 이름을 기아산업(주)로 변경하였다.[4][5]

1962년 기아마스타 시절에 마쓰다의 모델을 들여와 356cc의 3륜 화물차 K-360을 생산하였으며, 1973년에 김철호 회장의 타계로 장남인 김상문 씨가 후계자로 나서며 1974년에 국산 FR 승용차 브리사를 제작하였다.[6] 브리사는 당시 현대자동차포니새한자동차제미니와 격돌해 한때는 국산 승용차 시장 1위를 차지하는 최강자의 위치에 있었을 정도로 막강[7]했던 차량.

1976년에는 아시아자동차를 인수해 자회사로 편입시킨다. 현재의 기아자동차 광주공장 및 특수차량 공장.[8] 현재도 일부 SUV, 버스, 봉고트럭, 군용차는 광주공장과 특수차량 공장에서 생산하고 있다.

1981년 자동차공업 통합조치(산업합리화)로 인해 정부로부터 '중소형화물차 및 버스 전문생산업체'로 지정받아 승용차 생산이 금지되면서 경영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같은 해 10월 전문경영인 체제가 들어선 이후[9][10] 마쯔다의 소형승합차 봉고를 라이선스 생산[11]하여 출시해 대성공을 거두면서 경영을 정상화 시킬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위기를 넘겼을 뿐이지 자동차공업 통합조치의 여파를 모두 털어버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사실상 합리화 조치의 최대 피해자[12]라 할 수 있다.

1986년 말부터 오대양 육대주를 휘날리는 깃발(또는 물결무늬)을 형상화한 로고로 변경하고 1987년 자동차공업 통합조치가 풀리고 프라이드, 콩코드로 부활, 이후 1992년에 세피아를 출시하고 아산만공장(현 화성공장)을 지으면서 확실하게 그룹을 키워갔다.

1994년 지금과 같은 로고로 변경한다. 바뀐 이유는 그 전 로고의 모양이 굴뚝에서 연기가 나는 환경오염연상하게 해서 바꿨다는 것이 정설이다. 1996년에는 공식 홈페이지까지 개설하였다. (계열사 아시아자동차는 글자만 달랐다.)

파일:Kia-alternate.logo.jpg

현대차 인수 뒤에는 내수용 한정[13]으로 차량 외부에 위와 같은 원형의 로고를 붙였지만, 인지도가 낮고 BMW의 로고와 비슷한지라 "어차피 현대나 기아나 타원 모양의 로고이니 통일감 있게 예전 그대로 하자" 해서 2004년 2세대 스포티지의 출시 때 지금의 타원형 로고로 다시 돌아왔다.[14] 단, 수출용은 밀레니엄 로고를 아예 쓰지 않고 타원형 로고를 계속 쓰고 있었다.

1997년 7월 경영의 악화로 부도를 맞은 뒤 1998년 4월 법정관리에 들어가게 되었으며, 같은 해 6월 국제 공개 경쟁입찰로 처리방침이 확정됨에 따라 1998년 10월 현대자동차에 낙찰된다. 1999년 아시아자동차와 함께 현대자동차에 인수되어 현대그룹에 편입되었고, 6월에는 기아자동차판매, 아시아자동차, 기아대전판매, 아시아자동차판매 4개사를 통합하였다.

2000년 9월 현대그룹 왕자의 난 이후 정몽구현대그룹에서 현대자동차를 중심으로 9개 계열사를 들고 나와 현대자동차그룹을 형성한다.

2011년에는 현대-기아 자동차 그룹이 현대건설을 인수하여 정통성을 강화한 기념으로, 현대자동차그룹으로 간판을 바꿔 달면서 이름이 빠지게 되었다. 지못미.

배우 하정우가 기아차 딜러라 카더라.[15]

노조는 1960년 결성 이후 한동안 대한노총-한국노련-한국노총 금속노련 소속이었으나, 1994년 탈퇴 이후 현재 민주노총 금속노조 소속이다. 정식 명칭은 민주노총 금속노조 기아자동차지부.

2.1. 1997년 부도[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기아그룹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 특색[편집]

현대가 안정적인 쪽을 선호한다면 이 쪽은 모험으로 위기를 돌파하는 쪽을 선택했다.[16][17] '기술의 기아'라는 이름에 걸맞는 행보를 보였었는데, 예를 들자면 국내최초로 차체(Underbody, "섀시(chassis)"라고도 함)를 독자 개발한 세피아[18]라든지, 영국 로터스에서 생산 라인을 그대로 들여온 것이긴 하지만 대한민국 최초의 로드스터인 엘란, 세계 최초의 온로드 중심 소형 SUV스포티지[19][20][21], 그리고 대한민국 대형버스 최초로 자체 디자인을 적용하여 GD마크를 획득한 그랜버드 등이 있다. 게다가 그 이전으로 올라가면 박정희 정부 시절에 이미 부품면에서 90% 이상의 국산화를 이루어낸 브리사까지 포함하는 등 기아의 기술력은 보통이 아니었다.[22]

엔진에 있어서도 정숙성과 연비위주의 현대자동차와는 달리 성능 위주의 세팅을 하였으며, 후에 자체 개발한 엔진인 T8D엔진 역시 성능위주의 세팅으로 나왔다. 이 엔진은 엘란의 생산분과 크레도스 등에 쓰였는데 성능은 그럭저럭 괜찮았고 당시의 한국엔진 중 가장 스포티했다. 부도 전에는 사실상 업계에서 가장 뛰어난 차체 기술력[23]과 하체 설계&세팅 노하우[24]를 자랑했던 회사로 엔지니어 마인드가 국내 자동차 업체 중 최강이었다고 봐도 할 말이 없는 회사. 다만, 회사가 당시 현대나 대우에 비해서 자금조달이 자유롭지는 못했던 관계로 파워 트레인의 기술력은 동급에서 가장 발빠른 움직임을 보이던 현대차는 커녕 오히려 자체개발에 소홀해 보였던 대우자동차에게도 기술력이 밀렸다[25]. 일단 창업주부터가 애시당초 일본에서 기계공업에 종사해서 돈을 벌었던 인물이다. 엔진 특성으로 보면 대체적으로 마쓰다의 터보엔진을 당시 국내 실정에 맞게 자연 흡기로 개조하고 출시한 엔진이 많고, 전체적으로 회전수가 높게 잘 돌아가고 압축비도 높은 편. 비슷한 자연흡기용 엔진과는 다르게 전부동식 피스톤핀이나 피스톤 쿨링용 오일제트를 장착하는등 약간 오버스펙인 면이 있다. 터보용 엔진에 어울리는 부분이지만, 자연 흡기로 고치면서도 다운그레이드 하지 않은 부분 부분이 남아있는 편.[26]

자동차공업 합리화 조치 이전에는 유럽의 차량들을 도입하여 생산하는 데 적극적이었다[27] 아시아자동차까지 포함하면 피아트 124, 피아트 132, 푸조 604 등이 있으며, 몇십년 후의 일이지만 기아자동차가 영입한 피터 슈라이어와 유럽 전용 모델 기아 씨드를 포함하여 이들은 기아자동차의 유럽 DNA로 분류되고 있다.

다만 자동차 디자인 부분에서는 현대자동차보다 뒤쳐져서 촌스럽다거나 거친 느낌을 주는 자동차가 많고, 자동차 내부의 스위치 질감이나 재질, 배치도 현대자동차보다 저렴한 느낌이 나는 것이 단점이었다.[28] 조립 품질 또한 문제여서, 단차와 도장품질은 물론이고 스포티지가 한국에서 안팔리게 된 결정적인 이유였던 허브 베어링 파손으로 인한 바퀴빠짐 현상이라던가, 출고후 채 3년이 안되었는데도 불구하고 도어트림이 벗겨진다거나, 대시보드 들뜸 현상으로 인한 수리 불가한 잡소리[29], 비만오면 열심히 오작동 하는 외부 전기장치[30] 등의 조립불량 문제가 많았다. 문제는 여기에 보태 A/S센터가 쌍용자동차와 함께 불친절하고 느리기로 악명 높았고 부품수급과 또한 느리기로 유명했다.

1980년대 내내 자동차공업 합리화 조치를 비롯한 이유로 승용차 개발 역량을 키우지 못했던 부분도 이에 한 몫을 했었고, 1980년대 중순 이후로 부족해진 승용차 개발 및 디자인 노하우를 포드와의 협력 개발 프로젝트나 해외에 나와 있었던 직원들을 통해 조금씩 배우기 시작했다. 이렇다보니 현대자동차 인수 후 '기술의 기아'라는 이미지가 퇴색되고 '디자인의 기아'로 이미지 변신 후에는 과거 기아자동차를 추억하는 오너들 사이에서 나의 기아차는 이렇지 않아라는 반응도 일부 있다.

어찌됐든간에 현대에 인수 된 이후 현대차의 플랫폼과 파워트레인을 받아서 차를 제작하지만 어차피 이정도는 해외 메이커에서도 흔한 일이라 기아의 나름대로 독자적인 세팅과 설계를 하기도한다. 같은 플랫폼이라도 서로 비교해보면 은근히 다른 부분이 많은 등 비교 시승해보면 재밌다.근데 깨알같은 차이라 일반인에게 큰 의미는 없다 그러나 역시 현대차 그룹 산하기 때문에 정말로 마음대로 차를 제작할 수 없다는건 큰 애로사항이다. 아우디폭스바겐의 예처럼 서로 차종이 겹치건 말건 상관 안하고 마음대로 차를 개발해서 판매하는 것 과는 매우 대조적인데 아무래도 기준점이 현대에 있기 때문에 기아차는 상대적으로 파워 트레인 공급 등에서 많은 차별을 받는다. K9의 엔진과 위치 같은건 유명한 예시고[31] 트림이나 옵션 구성도 묘하게 제한받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다.[32][33] 어차피 상술된 스위치 질감 같은 실내 인테리어 문제는 2015년 현재에 와서는 일부 구형차종을 빼고 완전히 해소 된 문제다. 하지만 파워 트레인 공급이나 미묘한 트림 구분은 쉽게 해소되기 힘든 문제일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현대차 그룹의 정책상 기아는 틈새시장 공략용으로 설정했기 때문이라 생각되는데 엑센트에는 1.6 디젤 엔진에 DCT 미션을 달고 나오지만 프라이드는 그런거 없고 1.4 디젤에다 인기가 떨어지는 수동 미션만 나온다던지, 내수용 경차MPV, 미니밴 같은 차량은 기아에서만 생산 한다던지. 어쨌든 위에 설명된 사항은 무조건 단점이라고 볼 수는 없다. 젊은 층이나 일부 매니아들은 기아차의 옵션구성을 더 반기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자신의 취향에 맞춰 차를 구입하는데는 무리가 없는 수준이다.

4. 현재[편집]

파일:attachment/market_share.jpg
두개의 표가 아니다, 하나의 표다
르노삼성 망했어요, 한국지엠 망했어요, 쌍용 망했어요, 수입차는 아예 관심이 없다. 르노삼성 잘나가다 왜이러니

현대자동차 다음으로 국내 시장 점유율 2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현대자동차에게는 매번 판매량에서 밀렸으며, 그나마 현대자동차보다 우위를 점한 차종은 시장에 먼저 진입한 SUV봉고를 위시한 트럭, 승합차, 카렌스, 카니발, 카스타미니밴이다. 2000년대 후반 이후 국내 내수 점유율이 상승했으나 현대차와의 판매 간섭현상으로 현대차의 내수 점유율이 조금 줄었다. 다만 기아의 내수 점유율 상승분이 현대차의 내수 점유율 감수분보다 많아 현대기아의 내수 점유율 합은 더늘었다.

중고 비율이 꽤나 높았으나 현대에 인수된 후로는 별 차이가 없다. 2000년대 중반 들어서 현대가 기아의 가능성을 보고 이것저것 기아라는 브랜드로 모험을 시키는 형편. 하지만 제 버릇 남 못준다고 동급의 현대차보다는 달리기 성능을 중시하는 경향이 여전하다. 요즘에는 유럽 전용 판매모델인 씨드(Cee'd)시리즈로 해외에서도 톡톡히 돈 잘 벌고 있는 중. 현재는 시장에서의 동일계열사간 동일 차급에서의 판매 간섭을 최소화하기 위해 주력하는 차종을 서서히 나눠가는 추세이다.

참고로 무개조급이기는 하지만 WRC 우승기록이 있는 무시무시한 회사다.(1995년 박정룡 선수가 세피아를 몰고 호주 랠리에 참전) 게다가 해외 지사의 출격이긴 하지만 다카르 랠리 완주 경험도 있다.[34][35] K5를 시점으로 차명을 통일하기 위해 현대처럼 독자적인 차명 체계를 잡아가는데 하필이면 그 앞자가 놀랍게도 'K'이다. 그 첫 대상은 K7. K7을 시작으로 파워트레인을 제외한 모든 부분에서 독자적으로 차량 개발 체계를 구축하려는듯. 동급 차종의 경우 한세대에서 반 세대 전의 현대자동차 플랫폼을 가져와서 쓰던 것을 아예 독자적으로 개발해서 쓸 요량이라고 한다. 현대자동차를 닮아간다고 옵션 장난질 한다고 같이 욕을 먹고 있지만 그래도 기술 개발에 한해서만은 현대자동차 이상으로 믿을 수 있는 회사. 앞날이 기대되는 회사이다..라고 적혀있지만 현대차나 기아차나 전부 같은 사람들이 만든다. 현대차와 기아차의 연구개발 인력은 구분되어있지 않으므로 당연히 플랫폼을 포함한 기술은 모두 현대자동차와 공유한다. 사실 개발 시점에 따라 새로운 플랫폼이 기아차에 가장 먼저 적용되는 경우도 있으니 기술 논쟁은 사실상 무의미. 실제로 기아자동차 합병 이후 기아자동차 소속 연구개발 인력들은 모두 현대자동차로 옮겨갔고, 기아자동차 소하리 연구소는 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로 통합되었다. 현재도 디자인을 제외한 현대기아차의 연구개발 인력은 모두 현대자동차 소속이다.

K시리즈 이후로 2008년에 주가가 바닥까지 쳐서 주당 5000원 대였던 이후로 K5, K7의 연이은 히트로 인해 2011년 1월 20일 3년만에 6만원대까지 10배가 넘게 올라갔다. K9 안습

4.1. 디자인 경영[편집]

파일:external/img.thesun.co.uk/SNF1304MA-682_753415a.jpg

2005년, 디자인을 미래의 성장 동력으로 정하고, 정의선 전 대표이사(현대자동차그룹 승계자로 내정되어 있다) 취임 후 빠른 변화와 발전을 보여오고 있는 중이다. 취임 직후 폭스바겐, 아우디 출신의 디자이너 피터 슈라이어를 디자인총괄 부사장으로 영입해 와서 '직선의 단순화'를 모토로 자동차 디자인이 획기적으로 바뀌고 있는 중이다. 슈라이어 부임 이후 나오는 자동차 디자인은 멀리서 봐도 기아차 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통일된 패밀리 룩으로 가는 중이며, 그릴 모양은 Tiger Nose(호랑이 코)라는 고유의 모양으로 가고 있다.

이와 같이 현대차에 인수된 이후로 디자인면에서는 확실히 전보다 좋아져서 쏘울, 신형 스포티지등은 외국에서 신선한 디자인으로 호평받고 있으며, 그외 여러 모델들이 외국 디자인상을 받았다. 기아 K5는 라이벌인 현대 쏘나타보다 디자인에 대한 평가가 더 높다.[36] 2010년 전후의 현대차 디자인이 전통적인 세단형을 버리고, 4도어 쿠페 스타일로 가거나 플루이딕 스컬프쳐라는, 마치 스타트렉같은 SF에서나 볼 것 같은, 너무 급진적이고 미래적인 디자인이었던[37] 반면, 기아는 '무난함+오래봐도 질리지 않음+세련됨 추구' 스타일로 가고 있다. 그리고 슈라이어 부임 후 나온 기아의 모델들은 은근히 폭스바겐, 아우디 쪽 모양과 비슷하다. 피터 슈라이어는 인터뷰에서 "It's not fancy and has a timeless design. It looks natural." ("팬시하지 않다.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고 유행을 타지 않으며 자연스럽다")라고 했다.

반면 기존의 기아자동차의 특색이던 독자 개발은 거의 못하고, 현대자동차에서 개발된 플랫폼과 엔진을 기반으로 차량을 설계하고 제작하고 있는 문제가 있다. 즉, 기술개발등 엔지니어링은 현대에게 맡기고, 디자인에만 집중하고 있다[38]고 볼 수 있는데, 선택과 집중 측면에서 보면 효율적인 방식이긴 하나, 엔지니어링을 전적으로 현대에 맡겨버려서, 현대가 잘 나갈때는 동반 상승하겠지만 만약 현대에 도요타 리콜 사태디젤게이트같은 품질 위기가 닥치면 같이 위험할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정확하게 말하면 현대에서 엔지니어링, 기아에서 디자인을 하는 것이 아니라 현대든 기아든 가리지 않고 엔지어니링과 디자인 부문은 남양연구소에서 통합하여 맡아 개발하고 있다. 그 남양연구소가 편제상 현대기아자동차 회장실 직속으로 소속되어 있는 것이다. 이런 사실 때문에 현대를 bashing 하는 세력은 기아도 묶어서 같이 까고 해외에서는 기아를 현대의 Division[39] 취급하는 경향도 있는데, 엄연하게 말하면 현대-기아는 Division이 아닌 독립된 회사이며[40], 기아자동차가 연구개발을 현대에 위탁해서 연구개발만 같이 할 뿐이다. 나머지 부분, 즉 판매나 마케팅, A/S[41] 등은 조직이 완전히 분리되어 있으며 경쟁관계에 있다. 오히려 푸조-시트로엥의 연합체인 PSA그룹과 비슷하다고 할 만하다.

아무튼 디자인 측면에서만 보면 독일 프리미엄 3사..까지는 아니어도 대중차 메이커 중에서는 수준급의 평가를 받는 브랜드이다. 최근에는 인테리어 디자인이나 인터페이스, 품질 측면에서도 일취월장하여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5. 사명(社名)[편집]

일어날 기(起) + 버금 아(亞)를 쓰는 기아라는 사명은 영어로는 "Rising Out of Asia"라도 번역될 수 있는데, 실제로는 이런 뜻을 생각하고 사명을 지었다기 보다는, 영어의 기어(Gear)를 한자로 변환하는 과정에서 이와 같은 사명이 된 게 아닌가 하는 추측이 지배적이다. 아니면 기어의 일제 잔재어인 기아를 음차해서 起亞가 나왔을 수도 있다. 일단 기아에서는 두 가지 뜻을 모두 담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한국어 기아에는 飢餓(굶주림)라든가 棄兒(갖다버린 아이)같은 부정적인 뜻이 있어 어감이 좋지 않다는 이야기가 예전부터 많았다. 기아타이거즈 프로야구단을 KIA로 표기하는 이유도 이것. 우승에 굶주린 구단 KIA(飢餓)차에 ASA(餓死)휠을 끼우고 달리면 찰떡궁합

미국에서도 KIA가 Killed In Action(작전 중 사망, 전사자)를 뜻하기 때문에, 군사용어를 아는 소수의 사람들에게는 놀림의 대상과 구매시 거부감을 주며 잦은 사고나 낮은 안전성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정확히 말하면 K.I.A(케이 아이 에이)라고 약자로 읽어야하므로 그냥 키아 라고 읽으면 문제 없긴 하지만[42], 사실 한국차가 미국 진출 초창기에는 싼 맛에 타는 그저 그런 차라는 인식이 많았기 때문에 이것 때문에 팔릴 차도 안 팔리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Ford는 Found On the Road Dead(도로에 죽어서 발견되다)로 더 많이 알려져있는 표현이 있다 그 외에도 FIAT는 Fix It Again,Tony로도 많이 알려져 있는 표현도 있던데... 사실 기아는 북미에서는 2010년대 중반 들어서야 싸구려 차의 이미지를 벗어나고 있는 중이며 아직도 괄시하는 시각이 많다.

Ford 산하에 Ghia라는 이태리 카로체리아 기원의 디자인 스튜디오가 있었는데 한국 발음으로는 KIA와 동일하지만 어쩐지 이쪽은 듣보잡화되어 잊혀진 느낌...유럽의 일부 시장에서는 최상급 모델들에 Ghia라는 프리미엄 트림을 부착하기도 한다.

6. 역대 슬로건[편집]

  • 자동차공업의 선구자/스피이드의 메이커 (1969)

  • 신용있는 회사 노력하는 회사 꿈을 가진 회사 (1970~1985)

  • 여러분의 안전을 먼저 생각합니다 (1990)

  • 인재를 키우는 기업, 인재가 키우는 기업 (1990~1992)

  • 함께 웃는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가는 기아자동차 (1991)

  • 함께웃는 좋은사회, 기쁨주는 좋은차 (1992)

  • 고객의 만족이 기아의 보람입니다 (1992~1993)

  • 고객을 위한 품질, 세계를 향한 기술 (1993~1994)

  • 新기술로 21세기에 도전하는 기아자동차 (1995~1996)

  • 자동차사랑 (1996~1997)

  • 인간을 먼저 생각합니다/안전한 차는 기아가 만듭니다 (1997)

  • 자동차 전문기업 기아자동차 (1998~1999)

  • 고객 속으로 기쁨을, 고객 속에서 미래를 (1999)

  • 믿음을 주는 차, 꿈을 주는 기업 (2000)

  • 기술의 기아 안전의 기아 (2001)

  • 자동차는 기아차가 좋습니다 (2001~2002)

  • The Car That Cares (2004~2005)

  • The Power to Surprise (2005~ )

7. 웰컴사운드, 효과음[편집]

기아자동차도 제네시스와 같은 현대자동차의 브랜드인 만큼 웰컴시스템을 가지고 있으며, 기아도 독자적인 웰컴사운드, 일부 효과음이 존재한다. 대부분의 차량이 같은 웰컴사운드를 쓰는 현대와 달리, 기아는 세단/RV/프리미엄으로 일부 효과음과 웰컴/굿바이 멜로디가 다르다.

종류, 시대별 웰컴사운드 및 효과음은 추가바람.

8. 문제점[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현대자동차/비판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현대차에 인수된 이후 기아차의 차량 대부분은 현대차 플랫폼을 사용하고 있다. 또한 현대차의 안 좋은 점도 답습(...)하고 있다. 시간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문서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국민을 호구로 봐서 까인다"는 것. 물론 선입견으로 인해 억울하게 까이는 측면도 있지만...

기아자동차만의 약점으로 보자면 역시 서자라는 인상을 들 수 있겠다. 쉽게 말해 그룹내 콩라인.

9. 생산차량[편집]

프로젝트 코드는 현대자동차 코드와 동일하다. 현대자동차 생산차량 항목 참고.

  • 경차: A [43]

  • 소형차: B 또는 C

  • 준중형차: D

  • 하이브리드 차량: E

  • 중형차: F

  • 준대형차: G

  • 후륜구동 준대형차: H

  • 대형차: J [44]

  • 스포츠 모델: K

  • 준중형 SUV: L

  • 중/대형 SUV: M 또는 N

  • 대형 미니밴 및 승합차:O 또는 P 또는 Q

  • MPV 및 소형 SUV: S

  • 버스: KM [45]

  • 소형 트럭: U


그러나 저 프로젝트 코드는 과거가 되었으며 2018년 이후에 나올 신차들 같은 경우는 모든 현대자동차그룹의 차량들을 통틀어 두 자릿수 알파벳+세대를 의미하는 한자리의 숫자로 바뀐다고 한다.

9.1. 승용차, SUV, 승합차, 경상용차[편집]

국내 시판 차량은 볼드체 표시
단종된 차량은 취소선 표시

9.2. 버스, 트럭[편집]

9.3. 삼륜차[편집]

1960~70년대에 생산했었다. 마쯔다와의 기술제휴로 생산했지만 마쯔다의 삼륜차 부품을 들여와서 생산했다.

9.4. 군용차[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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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베이퍼웨어[편집]

아시아자동차가 기아자동차의 틈새시장 공략에 벗어나 고유 라인업을 구축하기 위해 개발하였던 프로젝트이었으며, 여기에 기아차의 프로젝트도 포함되어 있었다. 개발 당시 일본의 히노다이하츠, 프랑스의 푸조와 협력관계를 맺고 90년대 중반에 유행하던 장르에 맞춘 모델들의 양산을 목표로 하였다. 하지만 1997년 기아 사태로 인해 네오마티나, 기아 1세대 후속 프라이드, 기아 프라이드 마이너체인지, 기아 ARV, 기아 소형 미니밴 프로젝트, 기아 레토나 5도어의 프로젝트 개발이 중단되었으며, 현대자동차에 인수된 이후 SJ, 쏘렌토 SUT, 기아 LCV 프로젝트, 기아 뉴 엘란 프로젝트의 프로젝트 개발을 중단하게 된다.

아래의 명단 중 랜드마스터가 베이퍼웨어라고 알려져 있지만 여러가지 자료를 교차검토해 볼 때 랜드마스터가 록스타의 전신이라고 했으니 록스타로 이름이 변경되었다 볼 수 있을 것이다.

2000년 이전의 미개발 차량에 대해서는 아시아자동차의 미개발 차 97년 기아사태로 자취 감춘 모델들 기사를 참조할 것.

10.1. GT와 GT-Line[편집]

기아자동차에서는 준고성능 모델인 GT트림을 운영하고 있다. GT트림은 스포티한 외관에 고성능 엔진과 장거리 운행에 적합한 편의 사양을 갖추고 있다. GT-Line은 GT와 같은 스포티한 외관만 갖고, 사양은 일반 트림과 비슷하거나 약간 좋은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GT 트림이 처음 선을 보인 것은, K5 2세대에서였다. K5 2세대에서 2.0리터 터보 모델이 GT-Line트림으로 나왔고, 이듬해 정식 GT 트림으로 출시되었다. K5 GT는 스포티한 외관에 2.0 터보 엔진에 로우 스틸 브레이크, 전자 제어식 서스펜션, 액티브 사운드 제네레이터 등이 장착하고 있었다.

해외, 특히 유럽에서는 폭넓게 적용되고 있는데, 옵티마(K5), 피칸토(모닝), 씨드, 쏘울, 스토닉 등에서 GT나 GT-Line 트림이 존재한다. 대한민국에선 최고 사양을 사느니 그 윗급의 깡통차를 사는 경향이 강해 고가격대에 속하는 GT 트림의 판매량이 극히 적지만, 유럽에선 지 꼴리는대로 차를 사니 GT나 GT-Line도 판매량이 꽤 나온다고 알려져 있다.

2018년 K5 2세대가 부분 변경되면서 GT 트림이 삭제되어, 대한민국에는 스팅어 GT만이 남게 되어, 대한민국에서 아예 GT트림이 빠지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현대기아차그룹 차원에서 고성능은 현대의 N, 준고성능은 기아의 GT트림으로 전략적으로 육성하기로 결정하면서, 부활이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일단 2018년 말 K3 GT를 출시하면서 기아의 GT 브랜드 전략을 다시 가다듬고, GT의 적용 범위를 확대한다고 한다. 또한, 현대의 TUIX처럼 튜온의 파츠 및 악세서리 선택의 폭도 넓힐 것이라 한다.

11. 기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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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씨티은행쪽의 주문 실수로 주식시장에 상장 주식 수보다 많은 5억주 매수 주문이 들어온 적이 있다.

국내에선 만년 콩라인이지만, 의외로 2017년까지도 한국에서 생산해 세계 시장에 수출하는 물량은 현대자동차와 비슷하다.[73] 유럽, 호주, 동남아시아, 남아메리카, 중동 등 일부 지역에선 현대자동차나 제네시스보다 오히려 더 브랜드 인지도가 높다. 예를 들어 러시아에서는 기아 리오쏠라리스를 제치고 판매량 1위를 차지했다. 특히, 동남아시아와 남아메리카에서는 중산층이 가장 갖고 싶은 자동차 브랜드로 자리를 잡았으며, 유럽에서는 씨드, 옵티마, 프라이드와 같은 모델들을 필두로 상당한 수준의 인지도를 축적했다.[74] 스팅어 출시 직전 유럽 시장에서 E형 스팅어 전용 엠블럼과 기존 기아 엠블럼의 선호도 조사를 했는데 기아 엠블럼에 대한 호감도, 선호도가 압도적으로 높았다고 한다.

향토기업 출신이 아니고 딱히 지역색을 띤 것도 아니지만 종종 호남 지역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도 하는데, 이는 과거 기아자동차의 자회사였다가 합병된 아시아자동차광주를 거점으로 활동했었고,[75] 이를 모체로 하여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이 현대에도 광주권 지역 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점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기아자동차의 창업주 김철호도 경북 칠곡군 태생이고 사업 시작도 서울에서 했기 때문에 중간에 인수한 아시아자동차 역사를 제외하면 기아자동차는 호남과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 기아자동차의 기반은 주력 생산공장인 광명공장과 화성공장, 그리고 과거에 소재했던 시흥공장의 위치에서도 알 수 있듯 수도권을 기반으로 하며, 오히려 타 생산업체보다도 수도권에 사업장이 집중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 기아자동차 서비스센터와 홈플러스가 있는 자리가 원래는 기아자동차 시흥공장 자리였다.

그럼에도 사실 이런 오해 아닌 오해를 사는 이유는 프로야구단 기아 타이거즈의 모기업이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사실 기아 타이거즈는 전신인 해태 타이거즈를 기아가 1997년 외환 위기로 부도가 난 해태그룹으로부터 그대로 인수받아 운영하는 것이고, 구단 인수 시점도 2001년이라 기아자동차가 현대자동차그룹으로의 인수 후에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실질적인 구단 인수는 모기업인 현대자동차의 입김으로 이뤄진 것이라 보는게 더 합리적이다. 참고로 현대자동차는 프로축구 구단으로 호남 지역에 연고를 두는 전북 현대 모터스 구단을 운영 중이기도 하다. 물론 1990년대 중반에는 한국프로농구 출범과 함께 부산광역시에 연고를 둔 구단인 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를 직접 창단하기도 했었다. 하여튼 잡설이 길어졌는데, 결론적으로 스포츠 구단 운영 정책과 호남 지역과의 연관성은 별로 없다고 봐야 한다. 물론 다 떠나 그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되면 지역민들에겐 그게 좋은 기업이겠지만. 제2의 고향?

기아차 광주공장은 무진대로 남과 북쪽에 각각 1개씩 위치하는데, 다른 사업장과는 달리 광주 시가지 한복판 노른자위 땅에 있다. 그 이유는 원래 도심에 지은 것이 아니라 광주공장의 전신인 아시아자동차 공장이 들어섰을 때만 해도 그곳은 광주 시가지의 바깥쪽이었기 때문이다. 광주 동구 대인동에 있던 버스터미널도 시외에 새로 크게 지어야 한다고 해서 현재의 광천터미널이 들어섰는데 같은 이유다. 현재는 상무지구를 개발하고 서구 북구 광산구 등이 지속적으로 개발 되면서 도시의 중심이 되었다. 공장 사이를 가르는 왕복 16차로짜리 무진대로의 풍경도 장관. 사실 이 도로 이름도 원래 '기아로'였다가, 서쪽으로 이어지는 무진로와 통합되면서 바뀐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위에서 정리한 광주공장은 승용차 생산 공장이다. 원래 상용차 생산을 전문으로 했고 또 아시아자동차의 본부가 있었지만 2005년 이후 승용차 위주로 생산하게 되었다. 광주에는 이곳 말고도 광산구에 특수차량 생산공장이 위치해있다. 군용차량은 현재 이곳에서 생산 중이며 기아 그랜버드도 이곳에서 생산하고 있다.

기아차의 미국법인은 기발하고 엽기적인 광고로 매우 유명하다. 쏘울의 햄스터 광고도 이들의 작품이며 이 기발하고 엽기적인 광고 센스는 슈퍼볼 광고에서 절정에 달한다.

기아사태 이전까지만 해도 창녕에 창녕공업고등학교와 고암중학교라는 사립학교도 가지고 있었으나 기아자동차 측에서는 학교를 인수해놓고도 별로 신경쓰지 않아서 이게 정말 대기업 재단 계열 학교가 맞나 싶을 정도로 안습한 시설과 기자재를 자랑했는데 무려 1980년대 중후반 까지 나무 책걸상을 썼다고 한다. 고암중학교의 경우는 기아사태가 터지기 1년전인 1996년에 소리소문없이 폐교당하는 신세에 놓여버렸고 창녕공업고등학교만 겨우 살아남았지만 이쪽도 기아사태가 터지기 직전 까지도 개교 이래 시설 개량이 거의 없었다고... 결국 기아사태 이후에 현대자동차가 창녕공업고등학교까지는 인수하지 않아서 1999년 이후로는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신세가 되어버렸고 그 와중인 2002년에 학교가 현 위치로 이전했다. 그러다가 2015년 들어서 넥센타이어가 창녕공업고등학교를 인수하려고 했다가 잡음이 생겨버린 듯.

11.1. 스폰서십[편집]

직영중인 기아 타이거즈 외에도, 글로벌 이미지 제고를 위해 각종 스포츠 종목에서 활발한 스폰서십을 제공중이다.[76]


이중 스페인 출신의 테니스 선수 라파엘 나달과 메인 스폰서십을 맺은 계기가 상당히 재미있다. 2004년 당시 만 18세였던 나달이 플로리다에서 열린 나스닥 오픈에서 당시 탑랭커로서 유명세를 떨치고 있던 로저 페더러를 2:0으로 꺽으며 파란을 일으켰는데, 경기 직후 발목 피로골절로 결승에도 가지 못하고 그 해 클레이 시즌을 날리게 된다. 허나 기아 글로벌 마케팅 부서의 고위 관계자가 이 경기를 보곤 당시 세계랭킹이 50위권 밖에 되지 않았던 나달이 차후 탑랭커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며 메인 스폰서를 제안&체결하게 된다.

당시 떠오르는 신인으로 불리고는 있었지만, 아직 그랜드슬램 대회 4회전도 진출해보지 못한 나달에게 이만큼의 투자를 하는건 위험하다는 의견이 더러 있었는데, 1년 뒤인 2005년에 나달은 처음으로 출전한 롤랑 가로스 남자 단식에서 우승하더니 2018년 현재까지 클레이 코트의 제왕이란 별명까지 얻으며 테니스 분야에서 로저 페더러와 쌍벽을 이루고 있다. 이미 살아있는 레전드인 셈. 당연히 나달의 대활약으로 인해 메인 스폰서인 기아자동차는 광고 효과를 톡톡히 봤고, 이는 대표적인 스포츠 마케팅 사례로 꼽히고 있다. 이와 비견되는 국내 기업의 스포츠 마케팅 성과 중 하나론 무리뉴 시절 극강 첼시 후원한 삼성도 있다.

또 신인 시절부터 자신을 밀어준게 정말 고마운지 나달은 인터뷰는 물론이고 SNS 등에서 기아 관련 드립을 자주 친다. 심지어 메르세데스 컵이란 큰 대회에서 우승하고 메르세데스-AMG GT를 부상으로 받은 적이 있는데, 내 스폰서인 기아자동차보다는 별로지만 좋은 차라며 흠좀무한 립서비스를 해준 적도 있다. 그리고 기아자동차의 광고모델도 고정적으로 맡고 있어 이런 광고도 찍은 적이 있다.

12. 관련 문서[편집]

13. 둘러보기[편집]

[출시예정] 1.1 1.2 출시 예정인 모델.

파일:KIA Motors_white.png
기아자동차 국내 시판 차량

해치백 / 세단

해치백

경형

모닝

준중형

K3

세단

준중형

K3

중형

K5

스팅어

준대형

K7

대형

K9

CUV / SUV / MPV

CUV

경형

레이

준중형

쏘울

SUV

소형

스토닉

니로

준중형

스포티지

중형

쏘렌토

준대형

모하비

MPV

카렌스

카니발

버스 / 트럭

버스

대형

그랜버드

트럭

소형

봉고3


[1] 회사 설립 등기가 이뤄진 날이다.[2] 1994년에 발간한 기아자동차 창업 50년사에 의하면 1944년 7월부터 창업 준비를 해왔고 그 해 12월 11일, 경성지방재판소(현 서울지방법원)에 설립등기를 마쳤다고 한다.[3] 삼천리자전거는 현대그룹에 인수되기 훨씬 전인 1979년에 분사되었기 때문에 현대자동차그룹에서는 빠졌다. 그러나 현대자동차그룹 아래에서는 옛 기아의 역사가 점점 희석되어가고 있는 반면, 삼천리자전거는 아직도 기아차의 역사를 기리고 있다고 한다. 자세한 것은 삼천리자전거 문서를 참조.[4] 기아자동차 창립 40주년 기념 책에서는 부산공장에서 만들고 처음 만든 그 해에 사명을 바꿨다고 한다.[5] "아시아에서 일어선다."는 뜻의 起亞, 영어 gear (당시의 일본식 발음으로는 기아)의 두 가지 뜻을 담아 지은 이름이다.[6] 여담이지만 이때 미국 GM와 기술제휴를 할 뻔 했다가 철회되기도 했다.#,먼저는 GM의 상용차 브랜드인 GMC와 제휴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7] 국산 승용차 시장 1위를 차지했던 것은 포니가 등장하기 전의 일이다. 포니가 등장한 후 브리사는 1위를 포니에게 빼앗겼고 이후 단종될 때까지 영원히 콩라인이었다. 1970년대 중반 당시로서는 굉장한 최신 스타일인데다가 차체도 더 큰 포니에 비해 구식 스타일이며 차체도 작은 브리사는 상대가 되지 못했다. 이후 차체를 키운 신형 K303이 등장했으나 결국 끝까지 1위를 되찾지 못했다.[8] 단, 특수차량 공장은 1991년에 준공되었다.[9] 유한양행이 행했던 그것 맞다. 김상문 당시 회장은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선언해 민경중 당시 아시아자동차 사장을 회장으로, 기아기공 사장이던 김선홍(기아자동차에 사원으로 입사해 과장, 부장을 거쳐 나중에 회장까지 지낸 입지전적 인물. 현대에 흡수되며 색이 바랬다.)을 기아자동차 사장으로 선임했으며, 김상문 본인은 '명예회장' 직함을 달고 주주의 위치만 가졌다.[10] 사실 기아그룹이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된 가장 큰 이유는 김상문 회장의 아들 김석환 삼천리 자전거회장이 기아그룹의 규모에 부담을 느껴서 스스로 경영권을 포기했다. 이후 그룹의 기원이자 계열사사이던 삼천리자전거로 옮겨갔고, 79년에 그룹에서 나오며 IMF때 기아그룹이 공중분해될 때 든든한 중소기업으로 살아남았다. 어떻게 보면 김석환 회장의 선견지명.[11] 1t 트럭 버전이 먼저 나왔고 이후 승합차 버전이 나왔다.[12] 비록 영원한 2위이기는 하나 브리사 K303이 잘 팔리고 있었고, 피아트 132, 푸조 604 등도 인기였으나 이 차종들을 모두 포기해야 했다.[13] 타이완에서도 잠깐 사용되기도 했다.[14] 두 회사 로고는 가로세로 비율이 조금 다르지만, 수출 지역에 따라 현대 기아 차종이 회사를 바꿔 투입될 때, 금형 수정 없이 엠블렘만을 바꿔 붙일 수 있어 경제적이기도 하였다.[15] 영화 "터널"을 보면 하정우가 기아자동차 하도대리점 딜러로 일하며 K5를 타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터널(영화) 항목 참조.[16] 옛 기아자동차의 프로파간다였는데, 실제로는 반대로 현대 쪽이 더 모험적이었다. 1970년대의 현대가 사운을 건 모험을 할 때 기아는 안정적으로 외국 모델을 들여오는 것을 택한 것이 대표적인 예. 현대와 합병되기 전의 기아 홍보실은 실제보다 과장된 선전에 아주 능했다.[17] 실제로 기아가 모험을 한 예도 있다. 바로 승합차 버전의 봉고를 내놓았던 것인데, 그 당시는 우리나라에서 승합차에 대한 개념조차 희박했던 시절이었다. 승용차 판매가 금지된 상황에서 달리 방법이 없었던 기아가 돌파구로 선택했던 것이 봉고 승합차 버전이었는데 결과적으로는 이것이 대박을 쳐서 기아는 1980년대 초반의 어려운 상황을 버텨낼 수 있었다. 단, 봉고신화로 기아가 기사회생한 것은 맞으나, 당시 상황이 반드시 기아에게 불리한 것만은 아니었다. 승용차는 생산 금지가 되었지만 1톤부터 3톤까지의 트럭 시장을 독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이 소형~중형 트럭 시장은 결코 무시할 수 없고, 이를 독점한다는 것은 혜택이었다. 당시의 전두환 정권도 나름대로 생각을 해서 배려한 것인데, 다른 쪽을 박탈한 대신 이쪽에 반대급부로 혜택을 준 것이다. 소형트럭, 중형트럭 시장은 그동안 타사 모델이 갖고 있던 점유율까지 기아가 독점했으며, 승용차 시장을 일단 포기하기는 했으나 봉고 승합차 버전으로 승용차 시장의 일부를 가져오기까지 했으므로 1980년대 초반의 기아는 아주 잘 나갔다. 오히려 1986년부터 경쟁사에서 1~2.5톤 트럭과 승합차까지 생산할 수 있게 되면서 그동안 기아가 독점하던 이 시장이 경쟁 체제가 됨으로써 이후의 기아가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18] 이것은 단순한 프로파간다가 아니라 정말로 국내 최초가 맞다. 현대 엑센트보다 기아 세피아가 먼저 등장했으므로 국내 최초 독자 섀시의 타이틀을 세피아가 가져갔다.[19] 아울러 스포티지 생산 시 프레임에 엔진 등 대부분의 구동계를 협력업체에서 통합 조립하여 공급하는 모듈 개념을 국내 최초로 선보이기도 했다. 모듈 공장은 당시 스포티지 프레임을 생산하던 서진산업이 기아에서 위탁받아 운영했는데 막장으로 치닫던 공장을 정상 가동시켜 놓으니 모비스에서 도로 뺏어갔다.[20] 이 부분은 논란이 있다. 기아차 팬들은 스포티지가 세계 최초의 온로드형 SUV이며 차후 주류가 된 온로드 형 SUV는 모두 이 스포티지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데, SUV의 역사를 살펴보면 세계적으로 온로드형 SUV의 시초로 보는 차종은 차급은 다르지만 스즈키(자동차)사이드킥이라는 차종이다.(GM에서 트랙커라는 이름으로 OEM받기도 했고, 국내에도 수입되었다) 자동차 역사로 본다면 이미 1950년대에 라다에서 나온 온로드타입 SUV도 있고. 무엇보다 사이드킥이나 초대 스포티지 모두 프레임 설계 차종이고, 실제 모노코크 설계인 완전한 온로드형 SUV로 나온 것은 토요타라브4이고, 이후에 나온 대부분의 온로드형 SUV는 이 라브4의 영향을 직간접적으로 받고 있다. 외국쪽에서 스포티지의 평가는 '한 수 아래의 한국시장에서 웬일로 당시 시대 흐름을 잘탄 차가 하나 나왔네...'수준이지 스포티지를 외국에서 벤치마킹했네 어쩌네 하는건 다 헛소리. 기아자동차가 당시 비주류라서 그런 평가를 받는다는 견해도 있는데, SUV계보를 보면 당시 소련이나 체코같은 비주류회사들의 SUV들도 가치가 있으면 다 소개해 주고 있다. 스포티지가 '시대를 앞선 차종'이라는건 맞지만, '시대를 선도했다'는 주장은 좀 심하다.[21] 스포티지는 본래 전문 디자인 업체가 포드를 위해 디자인했던 모델이었다. 포드가 이 모델의 생산을 기아에게 맡겼던 것. 현대에 합병되기 전의 기아는 프로파간다에 아주 능숙해서 실제보다 더 좋은 이미지가 되도록 환상을 심는 일이 많았으므로 당시 기아의 선전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다. 스포티지가 새로운 시대의 온로드형 SUV의 시초니 하는 헛소리도 모두 기아의 당시 프로파간다를 기본으로 한 것이다.[22] 단, 이 중에는 옛 기아자동차의 과장된 프로파간다 성격의 얘기가 많으므로 곧이곧대로 듣지 않도록 주의하자. 기아 브리사는 본래 박정희 정부의 국민차 계획의 후보 중 하나였는데 포니보다 먼저 나왔으면서도 채택되지 못했다. 채택되지 못한 이유는 바로 국산화율이 기준 미달이었기 때문인데, 이후 등장한 포니는 국산화율 기준을 준수하고 있었다. 즉, 포니보다 브리사의 국산화율이 낮았던 것이다. 그런데, 당시 기아자동차는 여러 방면으로 힘을 써서 결국 포니가 국민차로 채택되는 것을 막아내고야 말았다. 이렇게 물귀신처럼 발목을 잡은 결과 결국 어떤 차종도 박정희 정부의 국민차로 채택되지 못했으나 그래도 여러 종류의 소형차가 시장에서 경쟁하는 바람직한 상황이 되었다. 또, 문장 첫머리에는 현대는 안정적인 것을 선호하고 기아는 모험으로 위기를 돌파하는 것이 회사의 컬러였던 것처럼 기술되어 있는데, 이 또한 기아의 프로파간다였다. 지금 기준으로 당시를 재단하면 안된다. 일단 현대 포니만 보더라도 현대가 당시로서는 엄청난 모험을 한 것이었고, 반면 기아 브리사는 안정적인 선택이었다. 1960~1970년대의 현대그룹의 특징 중 하나가 모험을 즐기는 것이었고, 현대자동차도 예외는 아니었다. 만약 현대가 안정적인 것만 좋아하는 회사였다면 지금 현대가 만들어 판매하는 차들은 포드 또는 미쓰비시 차종들 뿐일 가능성이 높다. 기술적으로는 가솔린 엔진 기술은 현대에 크게 뒤져 있었고 디젤 엔진 기술은 현대보다 앞서 있었는데, 기아자동차가 현대자동차에 합병되었던 당시 기아의 가솔린엔진 기술과 섀시 기술은 현대보다 앞선 것이 하나도 없어서 그대로 버려졌으나 디젤 엔진 기술은 현대가 그대로 받아들여서 이후의 디젤 엔진 개발에 요긴하게 써먹었다.[23] 최초로 세피아를 통해 한국에선 처음으로 자체 개발한 플랫폼과, 뒤이어 데뷔한 스포티지 역시 일부의 특수 목적 차량에나 사용되던 중앙 저상 프레임 설계방식을 과감하게 도입했다.[24] 세팅은 로터스의 도움을 다소 받은건 사실이나, 기초 설계부터도 당시로써는 선진적인 기술이던 강성이 필요한 부위에만 강도를 집중하고 나머지 부분은 경량화 하는, 현가하 질량절감과 휨 강성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첨단의 설계방법을 채택했었고. 덕분에 차체와 서스펜션의 강성과 기본기가 매우 중요한 국/내외 랠리경기에서의 성적은, 티뷰론을 제외하곤 항상 현대차를 압도했었다.[25] 기아가 부도전에 자체개발한 엔진은 디젤엔진인 J계열 엔진과 가솔린 T8D엔진, 대형디젤엔진은 H100 단 세가지 뿐이었다. 반면에 현대는 이미 그 시기에 가솔린 엔진으로는 입실론(이놈은 ECU까지도 현대가 직접 개발했다!)/알파/베타/델타 엔진과 소형차용 4단 자동변속기를 자체 개발하여 양산하고 있었으며, 대형 디젤엔진은 당시로써는 최첨단 연료분사 기술이던 고압 유닛 인젝터 방식인 파워텍 엔진을 선보였다. 기술개발을 외면하는것 같이 보이던 대우조차도 T8D보다 한참 앞선시기인 80년대에 이미 XQ엔진을 자체개발 했었고, 이를 바탕으로 르망과 에스페로에 얹혔던 1500cc DOHC엔진을 시장에 내놓았다. 이 1500cc DOHC엔진은 후에 스트로크를 한계까지 늘려서 레간자 1.8 모델에도 사용된다. 게다가 당시엔 직렬 6기통 엔진인 XK엔진 또한 데뷔가 임박하던 시기였다. 대형 디젤엔진은 비록 만과 벤츠의 것을 벤치마킹 하긴 했지만, 당시 국내에서 최강의 성능을 발휘하는 DV15 엔진을 선보여 팔고 있을 때였다.[26] 대표적인것이 기아 캐피탈에 들어간 B5 DOHC 엔진으로, 원래 마쓰다 파밀리아 GT라는 핫해치에 들어가던 1600cc 터보 엔진을 가지고 배기량을 국내 자동차 세금체계에 맞게 1500cc로 줄이고 터보를 떼어낸 엔진이었다.[27] 다만 이 시기에 기아뿐만 아니라 한국의 모든 자동차 회사들은 신진자동차가 아주 잠시잠깐 토요타와 인연은 맺은것과 현대가 미쓰비시 랜서를 이용해서 포니를 만든것 말고는 죄다 유럽의 차량들을 도입하여 생산했었다. 현대는 유럽포드의 차들을 들여와 만들었었으며, 대우차는 오펠의 차들을 들여와 생산하던 시기였다.[28] 세피아 첫 발표 당시 경쟁 모델이었던 엘란트라와의 비교에서 더욱 확실해진다. 엘란트라는 실내에 나사 머리가 노출되지 않게 플라스틱 캡을 추가로 씌우는게 일반적이었는데 세피아는 당당하게 나사 머리를 여기저기 보여준다든가 하는...[29] 심지어 심한경우엔 대시보드의 앞쪽 부분의 접착제가 아예 떨어지는 문제로 인해 대시보드가 말리면서 벗겨진다![30] 크레도스 V6 2.0모델은 비만오면 엔진이 부조했고 계기판의 모든 경고등이 켜졌다. ECU와 하네스를 뜯어내 88핀 모두를 한땀한땀 정성껏 직접 납땜(...)을 새로 해주면 아주 멀쩡히 고쳐진다. 물론 A/S센터에서는 이런 귀찮은 작업따윈 절때로 해주지 않고 오로지 보증기간 이내에 ECU와 하네스 교환으로만 처리했었다.[31] 에쿠스를 침범하지 말고 제네시스와 에쿠스 사이에 들어가야 한다는 현대차의 압박으로 인해 기함이라기엔 애매한 사이즈가 되었다. 거기다가 V8 4.6/5.0 엔진도 없어서 기아의 플래그십이라기에 부족했다. 출시 후 판매량이 좆망하자 FL을 두 번이나 거치고 엔진도 V8을 추가하며 옵션 장난질도 줄였지만 이미 늦었다.[32] 예를들어 정말로 최고급 옵션으로 도배된 차를 구입 하려면 현대차가 유리하다던지. 엔진 바리에이션도 현대가 더 다양하거나 매력적이라던지.[33] 중간급 모델인 그랜저와 K7도 풀 옵션 구성을 놓고 보면 그랜저가 조금 더 구성이 충실한 편이고 차량의 완성도 측면에서도 그랜저를 조금 더 높게 쳐준다. 대신 그랜저가 약간 더 비싸지만 그랜저와 K7의 네임밸류 차이 때문인지 그랜저가 압살하는 수준.[34] 2000, 2001년 기아 스포티지, 2009, 2010년 기아 쏘렌토[35] 1988년에도 K-111을 튜닝한 로드마스터로 참전하여, 비공식이지만 국내 기업 최초로 다카르 랠리를 완주하기도 했다. 문제는 제한 시간을 초과하는 바람에 다카르 랠리에서는 탈락 처리 되었고, 그래서 공식이 아닌 비공식으로 국내 최초가 되어버렸지만. 참고로 당시 드라이버 중에는 1995년에 세피아로 WRC 호주 랠리에 참전해 우승한 그 박정룡 선수가 있었다.[36] 외국에서 쏘나타를 제끼고 여러 디자인 상을 수상.[37] 2017~2018년 기준으로 볼 때 현대는 이런 급진적인 디자인을 일찌감치 버렸다.[38] 그런데, 디자인하는 곳도 같은 건물 안에 있다.[39] 토요타-렉서스, 쉐보레-폰티악, 크라이슬러-지프 등 한 회사에서 만든 다른 이름의 브랜드.[40] 제네시스는 현대의 Division이 맞다.[41] A/S는 현대와 기아가 따로 한다고 하기엔 애매하다. 긴급한 조치를 요할 경우, 기아차의 영업소에서도 아반떼, 쏘나타 등 현대차를 수리해주고, 현대차의 영업소에서 K3와 K5 등을 수리해준다. 현대-기아의 차들이 같은 플랫폼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엔진계와 구동계 같은 핵심계통은 설계가 거의 같다.[42] 꼭 그렇지만도 않은데, 일단 현대영어의 추세는 편.의.상 약자도 그냥 한 단어처럼 읽는 경향이 강하기때문이다. 가령, ASAP(에이쌥)이라든지, HMMWV라든지, SCAR라든지 CIWS라든지, SWAT, SCUBA, RADAR, LASER등이 있다. 그러므로 Killed In Action을 케이아이에이라고만 읽어야한다는 법이 없다. (Military Arms Channel; MAC은 UMP를 엄프라고읽는다.) 물론 보통 케이아이에이로 읽지만.... 게다가 Kia가 아니라 KIA이다. 미국영어를 기준으로 KIA는 K.I.A와 다르지않다.[43] 모닝의 파생형인 레이의 코드는 TAM이다.[44] 2세대 K9부터 적용된 코드, 현대차 순수 플래그쉽 차량만 I를 사용한다.[45] 아시아자동차 시절 AM에서 KM으로 변경 솔직히 그랜버드만 남아있다.[46] 수출명 피칸토(Picanto)[A] 47.1 47.15 47.24 현재 국내 내수용 생산차량은 단 한대도 없다![48] 1세대 수출명 포드 페스티바(Festiva)/마쓰다 121, 2세대부터 리오[49] 수출명 포드 아스파이어(Aspire)[50] K2의 러시아 버전. 프라이드의 기존 수출명과 같은 차명을 사용한다.[51] 수출명 멘토(Mentor)[52] 수출용 모델로 벤가와 함께 슬로바키아에서 생산.[53] K3의 호주, 뉴질랜드 수출명.[54] K3의 북아메리카 수출명. 중국형(푸뤼디)은 아직 생산 중[55] 수출명 클라루스(Clarus)[56] 차량 자체는 단종되었지만 K5의 수출명으로 사용중이고 로체도 이 이름으로 수출됐었다.[57] 수출명 마젠티스(Magentis)/옵티마[58] 수출명 카덴자(Cadenza)[59] 수출명 아만티(Amanti)[60] 수출명 쿠오리스(Quoris)/K900[62] 수출명 보레고(Borrego)[63] 수출명 론도(Rondo)[64] 특이하게 울산에서 생산되었는데, 싼타모를 베이스로 했기 때문이다. 수출명 조이스(Joice)[65] 수출용 모델로 씨드와 함께 슬로바키아에서 생산.[66] 기아 스포티지 3세대 차량의 중국형 전략 차종이자, 2018년에 출시한 SUV이다.[67] 기아 스토닉의 중국형 차량이지만, 실제 크기는 스토닉보다 조금 작다.[68] 기아 스포티지 QL의 중국형 이름.[69] 수출명 세도나(Sedona)[71] 네이밍 변경으로 출시. 아시아 록스타의 전신이 바로 랜드마스터다.[72] 현재의 기아 모닝과는 디자인이 다르다.[73] 2017년(잠정): 현대 - 997,000여 대, 기아 - 978,000여 대.[74] 유럽 시장에선 이들 모델의 준고성능 트림인 GT 트림의 판매 비중도 상당하다.[75] 참고로 아시아자동차의 창업주였던 이문환은 호남 출신 사업가다. 아시아자동차가 기아자동차에 넘어간지 오래된 현재는 그의 친척들이 아시아자동차와는 무관하게 활동 중이다.[76] 기아는 과거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유니폼 스폰서(2005~2012년)이기도 했는데 그다지 성적이 화려하지 않아(하지만 유로파 리그 우승까지 하여 투자한것을 생각하면 손해는 아니었다고) 2012년부로 재계약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틀레티코는 아제르바이잔 정부가 스폰서를 맡았는데 그 아틀레티코가 2013-14 시즌 리그 우승과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을 차지하는 통에 기아에서 안타까워했다는 후문.[77] 대한빙상경기연맹이 아닌 스피드스케이팅 대표팀만 후원하고 있다.[78] 양재동 사옥에 입주하기 이전에 쓰던 여의도 사옥의 현 주인이 바로 현대카드이다.[79] 주역 로봇들의 자동차 형태는 기아차의 모델들이다.[80] 주인공 이정수가 대놓고 자신을 기아차 하도대리점 직원이라고 소개한다. 또한 구조대장의 차를 제외하면 모두 기아차들이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