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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총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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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총검술의 역사와 개요
1.1. 스텝(Step)1.2. 자세(Guard)1.3. 공격(Engaging)1.4. 방어(Parry)1.5. 기술
2. 총검술 훈련의 개요
2.1. 다른 무기와의 전투-대처법2.2. 근대와 현대 총검술의 차이점2.3. 역사적인 총검술 교범들

1. 총검술의 역사와 개요[편집]

총검을 의미하는 Bayonet이라는 단어는 16세기 말까지 거슬러올라가며 콩그레이브 사전 1611년판에서는 작은 포켓나이프를, 피에르 보렐(Pierre Borel)의 1655년 언급에서는 긴 나이프를 의미한다고 서술되었으며 이때까지는 총에 꽃아쓰는 무기가 아니었다. 그러나 17세기 중반부터는 군인들이 많이 소지하면서 자연스럽게 이 나이프를 총구에 꽃아 백병전 무기로 사용하기 시작하는 것이 여러 사료에서 나타난다.

16세기부터 보병은 기병에 대항하여 총병을 보호하기 위한 파이크 창병이 총병과 함께 편제된 테르시오전법을 사용하였다. 그러나 30년 전쟁에서 활약한 구스타프 아돌프 대왕을 선두로 경포, 연대포 등 보병대열에서 직접 쏠 수 있는 경량 화포가 등장했고, 신뢰성이 좋은 플린트락 총기가 보급되면서 보병화력이 전체적으로 향상되어 17세기 후반에는 최대의 적이었던 기병의 위협 자체가 크게 사라진 시점이었다.

이렇게 되자 기병에 맞서 총병을 보호하기 위해 사용해온 파이크의 필요성을 놓고 큰 논쟁이 벌어지게 된다. 쓸모 없는 창병을 유지하지 말고 모두 총을 줘서 화력을 크게 올리는 게 낫다는 논지.[1] 결국 루이 14세가 전장에서 창병이 창을 버리고 죽은 총병의 총을 주워다 쓴다는 보고를 받자 파이크를 폐지하고, 그 대신 총검을 제식화함으로써 유럽에서 군대의 주요 백병전 무기가 되는 계기가 되었다.

총검은 착검하면 창과 유사한 무기가 되기 때문에 처음에는 하프파이크[2] 창술로 사용했고 집단운용이 기본이라서 무술로써의 수준은 높지 않았다. 그러나 프랑스에서 에페 검술을 기반으로 총검술을 재구성함에 따라 19세기에 이르러서는 총검술 또한 에페, 플뢰레, 사브르와 함께 유럽 4대검술로 인정받았으며, 19세기 내내 중요한 과목으로써군대와 민간인을 가리지 않고 훈련되었다.

이 항목에서 서술된 세부 내용은 19세기의 다양한 유럽 보병교범과 총검술 교범을 참고로 작성되었다.

1.1. 스텝(Step)[편집]

총검술의 스텝은 찌르기가 기본이고 에뻬 검술에서 나왔기 때문에 펜싱의 스텝과 매우 유사하다. 펜싱이나 세이버 검술, 창술과 마찬가지로 오른발과 왼발의 각도가 90도이며, 펜싱과는 달리 왼발이 앞으로 나온다. 왼발은 전방을 향하고 오른발은 90도 측면을 향하며, 적당히 벌려 안정감있게 서는 것이 기본 자세이다. 무게중심은 중앙 혹은 전방에 놓고 약간 낮추어 선다.

  • 1.전진(To advance) - 펜싱 사브르에서는 마르슈. 앞발 즉 왼발을 먼저 전방으로 내딛고, 내딛은 만큼 오른발이 따라간다. 상대와의 교전시 간격을 잡고 정밀하게 이동할 수 있으며, 보법의 기본이다. 뒤로 빠질 때는 오른발이 먼저 뒤로 가고 왼발이 따라간다. 적으로부터 빠르게 멀어지거나 가까워질 때에는 연속적으로 행할 수 있는데, 마치 점프해서 접근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펜싱의 봉엉나방과는 다르다.

  • 2.보통걷기(To pass) - 펜싱 사브르에서는 파스. 평범한 걷기와 비슷하며 오른발이 왼발 앞으로 나오고 다시 왼발이 오른발 앞으로 가는 식으로 걷는다. 상대와 거리가 멀 경우 사용하는 보법이며, 그냥 걷는 것과 큰 차이가 없다. 다만 총검은 항상 적을 향하도록 한다.

  • 3.런지(Lunge) - 모든 검술에서 존재하는 보법. 그중에서도 거리 싸움의 비중이 높아진 스몰 소드 펜싱이나 스포츠 펜싱에서는 특별히 중요한 보법이다. 상대의 칼이 닿지 않는 거리에서는 나의 칼도 닿지 않는데, 이때 단숨에 앞으로 들어가 베거나 찌르기 위한 보법이다. 전진걷기를 통해 적이 런지로 찌를 수 있는 거리에 들어왔다면, 런지를 통해 찌른다. 이때 에페 검술과 구별해야 하는 점은 에페처럼 90도로 오른다리를 굽히고 왼발은 완전히 쭉 펴는 식으로 최대한 전진하는게 아니라, 오른다리는 110도 정도로만 굽히고 왼다리도 펴기는 하되 에페처럼 낮추지 않는다. 착검한 총검은 5kg에 달하며 개인장비를 착용하고 있으므로 자세 회복이 매우 어렵다. 최대 스텝으로 전진하여 찌른다는 개념으로 이해하도록 한다.

  • 4.방향전환(The Volt) - 남북전쟁 당시 미국의 장군인 조지 매클래런 장군의 Manual of bayonet exercise - prepared for the use of the Army of the United States (1862) 정도에서나 볼 수 있는 개념. 당시 군대란 열을 지어서 총을 쏘고 총검돌격을 했기 때문에 총검술에서 방향전환 개념을 따로 가르칠 이유나 필요도 없었지만, 매클래런 장군은 프랑스 총검술의 우수성에 주목했고 그 개념을 가져와 자신의 교범에 수록하였다. 프랑스 교범을 번역했던 당시 남부연합의 Skirmishers' drill and bayonet exercise - (as now used in the French army) with suggestions for the soldier in actual conflict (1861)에서도 간단히 언급하고 있다. 전방으로 나선 왼발을 축으로 회전하며 총검 끝을 전후좌우로 겨누도록 한다.

1.2. 자세(Guard)[편집]

총검술의 자세는 크게 나누어 4가지로 나뉘며, 에페 검술을 기반으로 만들어졌으나 양손으로 잡는 긴 무기이기 때문에 창술과 공통점이 많다. 이것은 에뻬 검술과 창술이 똑같이 찌르는 검술이기 때문이다. 다만 근대 전쟁터의 환경에 따라 비슷한 자세라도 활용법이 조금씩 다르며, 자세한 자세는 아래와 같다.

  • 미들가드(Middle Guard / against infantry) - 총검술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자세. 손은 그립과 총대를 잡고 허리춤에 위치하도록 잡으며, 왼손이 앞으로 가고 총검은 적의 배와 가슴을 겨눈다. against infantry라는 이름처럼 보병을 상대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자세이며, 총검술의 4개의 찌르기 중 2개와 콰르트와 티에르스 방어가 미들가드에서 파생된다.

  • 하이가드(High Guard / against cavalry) - 총검술의 하이가드는 2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중단과 같은 자세에서 총검을 상방 45도 이상 올리는 것과, 아예 머리 위로 총을 들어 올려 약간 위를 향해 겨누는 것이다. 모두 기병을 상대로 하는 자세이며, 기병을 상대하는 찌르기인 하이 포인트가 나가도록 하는 자세이다. 창술에서의 상단과 다른 점은 창의 경우 중단에서 서로 밀다가 들어 올려 하이가드로 전환, 때리거나 벨 수 있지만 총검은 베는 날도 없고 무게중심도 방아쇠 쪽에 치우쳐 있으므로 베거나 때리는 효과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보병전투에서는 기피하도록 하는 자세이다. 부득이하게 이 상황에 맞닥뜨렸을 경우 개머리판으로 때리거나 발로 찰 수 있지만 가능하면 피하도록 한다. 하이가드에서도 역시 콰르트와 티에르스 방어가 나온다.

  • 쿠프 드 멜레(coup de melee) - 파이크 창술에서 유래한 자세. 왼손은 방아쇠 근처를 잡고 오른손은 개머리판의 뒤를 잡아 왼손이 얼굴 옆으로 오도록 하며, 상대의 얼굴을 겨눈다. 밀집대형을 취하고 적에게 전진할 때 사용하는 자세. 찌를 때는 개머리판의 뒷부분을 밀듯이 찌른다. 창술의 그것과 동일한 용도로 사용된다.

  • 로 가드(Low Guard) - 총검의 끝을 45도 아래로 향하고, 개머리판은 얼굴 옆에 둔다. 방아쇠울이 하늘을 가도록 한다. 쓰러진 적을 찌를 수 있는 자세이다. 프라임 방어와 스공드 방어가 이 자세에서 나온다.

  • 짧게잡기(Shortend stroke) - 당시의 총검은 착검시 160~190cm에 달했으므로 총검 안쪽으로 접근해올 경우에 대한 대비가 필요했다. 2가지 대비로써 개머리판 치기와 더불어 총을 짧게 잡아 대응하는 방법이 있었다. 프랑스 육군교범을 영어로 번역한 Skirmishers' drill and bayonet exercise(1861)에서는 기본 잡기에서의 자세와 더불어 짧게잡기에서의 자세를 함께 나타내고 있다. 앞서 언급한 4개의 자세와 동일하다.

1.3. 공격(Engaging)[편집]

  • 찌르기(Thrust) - 찌르기는 총검술 공격의 알파이자 오메가이며 시작과 끝이다. 18세기부터 총검은 베기가 불가능한 삼각형 단면의 형태를 띠었으며, 꼬챙이에 더 가까운 형상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18~19세기 내내 그러하였고, 착검하는 장검, 소드-바요넷(Sword-bayonet)과 같은 예외적인 경우만이 다를 뿐이었다. 심지어 소드 바요넷조차도 총열 옆면에 장착되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베기공격을 하기가 어렵고 찌르기만 쓰도록 되어 있었다. 베기가 가능하도록 만들어진 것은 19세기 후반부터 등장한 총과 총검들이 되어서였다. 따라서 모든 총검술의 공격법은 찌르기를 중심으로 구성되었으며, 보병에 대한 3개의 찌르기, 기병에 대한 1개의 찌르기가 있다. 각 찌르기는 다음과 같다.

  • 프런트 포인트(Front point) - 미들가드에서 나가는 찌르기. 목표는 상대의 목, 가슴, 배이다. 총검술의 가장 기본적인 찌르기에 해당한다. 미들가드에서 런지를 하면서 총을 옆으로 돌리면서, 혹은 그대로 찌른다.

  • 랜스 포인트(Lance point) - 왼손을 놓고 기습적으로 길게 찌르는 것. 총검술 최대의 리치를 자랑하며 사거리 밖에서 안심하던 적이 단숨에 제압당할 수 있는 찌르기이다. 그러나 왼손을 놓아버리기 때문에 상대가 방어하고 반격을 가할 경우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으므로 사용에는 주의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찌르기가 존재하는 이유는 총검의 경우 총열, 총열띠와 기관부 등의 요소 때문에 창처럼 왼손을 느슨하게 잡고 길게 찌르는 슬립 스러스트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 하이 포인트(High point) - 기병을 상대로 하는 찌르기로써 말안장 위의 기병의 몸통을 목표로 삼는다.

  • 로 포인트(Low point) - 쓰러진 적을 상대로 하는 찌르기이다. 로가드 자세에서 방아쇠울이 아래를 향하도록 돌려주며 찌른다. 아무튼 아래에 뭐가 있을 경우 쓰는 찌르기이다.

  • 개머리판(Butt-fencing) - 나폴레옹 전쟁 시대까지만 해도 개머리판 싸움은 총검술에서 거의 고려되지 않았다. 대열을 이루어 총격전을 벌이는 상황에서 개머리판으로 치면 총검 끝이 전우의 얼굴을 찌를 우려가 있었기 때문에 개머리판 싸움은 교범에도 잘 수록되지 않았다. 그러나 실전에서는 총을 꺼꾸로 잡고 개머리판으로 내려치는 행동이 보고되었으며, 총이 너무 길었으므로 근접 육박전에서 개머리판으로 적의 하복부나 영 좋지 않은 곳을 가격하는 방법 등이 사용되었고 이러한 내용은 1850년대부터 교범에 정식으로 등재되기 시작한다.

하지만 개머리판 사용법이 적극적으로 연구된 것은 1880년 이후 탄창식 연발총의 개발이 이루어진 다음이었다. 이때는 과거처럼 완전한 대열을 이루지 않고 어느 정도 산개하여 전투했기 때문에 보다 다양하고 자유롭게 싸울 수 있었다. 또 이전에는 옆은 전우가 보호하므로 앞만 신경쓰면 되었지만 이제는 옆까지 스스로 지킬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에 따라 기존에는 무시되었던 개머리판 전투의 기법이 개발되었다. 이때부터 흔히 알려진 개머리판으로 쳐내고 후려치는 기술이 교범에 적극적으로 수록되기 시작한다.

  • 베기(Cut) - 근대 총검술에서는 거의 나오지 않으며 특히 18~19세기의 총검에서는 사실상 쓸 수도 없었던 공격법. 소드 바요넷을 착검하더라도 베는 날이 옆을 향하기 때문에 총을 눕혀야만 벨 수 있었다.이쯤되면 베지 말란 소리죠 19세기 후반 나이프형 총검들이 나오면서 비로소 가능해졌지만 총검으로 베기를 하면 총열에 부담이 많이 가고, 베기보다는 찌르기가 빠르다는 이유 때문에 잘 쓰이지 않았다. 베기를 배제한 것은 현대에도 그 예가 있는데, AKM 총검은 베는 날이 위를 향해 끼워지기 때문에 베기가 안된다.

1.4. 방어(Parry)[편집]

총검술의 방어는 크게 4가지로 나뉘며, 펜싱을 참고하여 개발되었으므로 펜싱 용어를 그대로 사용한다. 세인트 조지 방어는 원래 세이버 검술의 방어이나 일부 교범에 수록되어 있어 그대로 수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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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라임(Prime) - 칼끝을 아래로 내린 상태에서 왼쪽을 방어하는 개념. 총검술에서는 로가드를 취한 상태에서 총을 왼쪽으로 치우쳐 중앙에서 들어오는 찌르기를 왼쪽으로 걷어내고, 왼쪽에서 들어오는 베기를 방어하는 개념이다.

  • 스콩드(Seconde) - 칼끝을 아래로 내린 상태에서 오른쪽을 방어하는 개념. 총검술에서는 로가드를 취한 상태에서 총을 오른쪽으로 치우쳐 중앙에서 들어오는 찌르기를 오른쪽으로 걷어내고, 오른쪽에서 들어오는 베기를 방어하는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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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티에르스(Tierce) - 칼끝을 위로 올린 상태에서 오른쪽을 방어하는 개념. 총검술에서는 미들가드와 하이가드 상황에서 총을 오른쪽으로 치우쳐 찌르기를 걷어내고 오른쪽에서 들어오는 도검 등의 베기를 막을 수 있는 개념이다.

  • 콰르트(Quarte) - 칼끝을 위로 올린 상태에서 왼쪽을 방어하는 개념. 총검술에서는 미들가드와 하이가드 상황에서 총을 왼쪽으로 치우쳐 찌르기를 걷어내고 왼쪽에서 들어오는 도검 등의 베기를 막을 수 있는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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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인트조지(St.George) - 총대를 머리 위에 수평으로 올려 머리를 방어하는 개념. 총을 꺼꾸로 잡고 개머리판으로 사람을 잡는 병사의 머리치기나, 기병의 세이버 머리베기를 방어할 수 있다.

1.5. 기술[편집]

적과 나의 무기가 같을 때 막무가내로 찌르면 적과 나 모두가 죽음을 동시에 맞이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총검술 교범들에서는 공통적으로 상대의 방어를 해지하는 법, 방어를 해지하려는 적에 대응하는 법, 공격을 방어하고 곧바로 반격하는 법을 제시하고 있다. 해당 예제는 다양한 교범에서 등장하는 내용을 통합-정리한 것이다.

상대의 미들가드를 제치는 방법

  • 1. 상대의 총검과 자신의 총검을 교차시킨다. 콰르트로 밀고 찌른다.

  • 2. 상대의 총검과 자신의 총검을 교차시킨다. 티에르스로 밀고 찌른다.


적이 나의 미들가드를 제치려 할 때의 대응법

  • 1. 티에르스, 콰르트 어느 방향이든 제치려고 하면 즉시 총검을 밑으로 내린다. 상대는 그대로 힘을 주던 방향으로 총검이 헛나가게 되고, 즉시 올려서 찌른다. 또는 내린 상태로 하복부를 찌른다.


적이 찔러들어왔을 때의 대응법

  • 1. 콰르트나 티에르스로 밀거나 쳐낸 다음 찌른다. 적이 보다 가깝게 접근하여 총검으로 찌르기에 너무 가까운 경우는 짧게 잡거나 보통걷기로 조금 후방으로 빠진 다음 런지하여 찌르도록 한다.

  • 2. 하복부로 찔러들어왔을 때에는 하이가드로 전환하여 개머리판으로 적 총검을 콰르트/티에르스로 쳐냄과 동시에 적의 머리나 어깨를 총검으로 벤다.[3]

  • 3. 하복부로 찔러들어왔을 때에는 미들가드에서 즉시 적 총검을 아래로 내려치고 곧바로 찌른다.

  • 4. 하복부로 찔러들어왔을 때에는 즉시 로가드로 전환하며 적 총검을 프라임/스콩드로 밀거나 쳐낸 다음 찌른다.

  • 5. 쿠프드멜레로 찔러들어왔을 경우에는 하이가드로 전환하며 콰르트로 쳐냄과 동시에 패싱 스텝으로 몸의 오른쪽이 앞으로 오도록 하면서 개머리판으로 상대의 머리를 친다.

  • 6. 쿠프드멜레로 찔러들어왔을 경우에는 하이가드로 전환하며 티에르스로 쳐냄과 동시에 찌른다. 적이 보다 가깝게 접근하여 총검으로 찌르기에 너무 가까운 경우는 짧게 잡거나 보통걷기로 조금 후방으로 빠진 다음 런지하여 찌르도록 한다.

  • 7. 랜스 포인트로 찔러들어왔을 경우에는 콰르트/티에르스로 쳐냄과 동시에 런지하며 찌른다.

전술적으로 항상 적이 먼저 공격하는 것을 받아치는 것이 유리하며, 적의 빈틈을 잡기 위해 미들가드를 슬쩍 치운다던가 하는 여러 페인트(Feint)를 적절히 구사하는 것이 매우 바람직하다.

특정한 상황에서의 대응법

  • 1. 총검전투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것이 서로 완전히 달라붙어서 총대로 밀어붙이는 초근접 상황 즉 코르아코르(Corps a Corps)이다. 이때는 개머리판으로 거시기를 가격하거나 무릎으로 칠 수 있다. 팔을 펴고 약간 공간을 만든 다음 발로 밀어서 넘어트릴 수도 있다. 섣불리 후퇴할 경우 역으로 위험에 빠질 수 있다. 태평양 전쟁에서 영미군이 이 근접 난타전에 매우 뛰어나 일본군 병사들이 크게 당했다고 한다.

  • 2. 간혹 총구를 잡고 개머리판을 몽둥이 삼아 휘두르는 병사들이 있는데, 세인트조지 방어가 이러한 경우에 좋다. 총을 머리 위로 수평으로 올려 세인트조지 방어를 실행한 다음 즉시 프라임 패리로 전환하여 찌른다.

2. 총검술 훈련의 개요[편집]

총검술은 보병전술의 일부로써 명령에 의한 집단적인 전열 돌격, 이동, 전진 등의 요소가 가장 중요했다. 근대 총검술 교범에서 측면이동이나 방향전환과 같은 요소가 미약하게 다루어지거나 아예 언급되지 않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개인전술로써의 총검술 또한 상대의 정면에서 적의 총검을 제치고 찌르거나 적의 찌르기를 쳐내고 찌르는 등, 측면이동으로 상대의 옆을 잡아내지 않고 정면에서 대항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나, 현대 총검술과는 달리 개머리판을 크게 중시하지 않는 것이 바로 이러한 18~19세기의 전술 때문이었다.

따라서 집단 전열을 이루고 하는 제식훈련이 사격과 총검술 모두에서 가장 중요했다. 제식훈련을 제외한 총검술 훈련은 기본적으로 스텝 훈련, 자세와 기본동작, 그리고 표적을 만들어 제자리에서 혹은 돌진하면서 찌르는 훈련이 가장 많이 행해졌고, 2인1조로 수행하는 컴비네이션 훈련은 그 비중이 낮은 편이었다. 공격과 방어를 하나의 연속기로 재구성하는 훈련을 시키기는 했으나 그것도 혼자서 하는 카타방식의 훈련이었다.

즉 총검술 훈련은 에페 훈련을 토대로 개발되어 그 수준은 나쁘지 않았으나 실제 보병훈련에서는 저돌적인 정신무장과 돌격성을 기르는 데에 중점을 두었지 상대의 총검에 대응한 방어-반격법 훈련에는 그렇게 큰 비중을 두지 않았는데, 대규모의 병력을 빨리 훈련시켜 내보내는 데에 있어서는 이 점이 차라리 합리적이었다.

집단제식훈련이나 1인1조의 기본동작 훈련, 물체 찌르기 훈련에는 실총과 진짜 총검을 사용했고, 2인 1조의 형 수련 및 대련에서는 트레이닝 바요넷을 사용하였다. 상세는 해당 항목 참고.

2.1. 다른 무기와의 전투-대처법[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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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Islington Tournament

- the Graphic (3rd July, 1880)

  • 총검 vs 장검 - 총검은 장검을 패용한 장교들이 돌격시 가장 일상적으로 마주칠 수 있는 위험요소였다. 따라서 검술과 총검술이 대결하면 누가 유리한가는 중요한 관심사였는데, 기라드(Girard), 로워스(Roworth), 토머스 매슈슨(Thomas Mathewson)과 헨리 앤절로스(Henry angelos)와 같은 18세기 이후의 여러 검술 마스터들은 대체적으로 검술의 우세를 점치는 경향이 있었다. 특히 매슈슨은 총검이 검을 이기기는 어렵다고 하면서 총검의 경우 길고 벨 수 없으므로 안쪽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검이 원하는 대로 상대를 벨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앨프리드 허턴의 경우 총검은 5kg에 달할 정도로 무겁고, 양손으로 잡으므로 중량모멘텀과 컨트롤, 리치에서 우위가 있으며, 장검으로 막고 치려고 해도 총검의 무게와 두손으로 잡는다는 점 때문에 쉽지 않으며, 장검이 막고 반격하더라도 총검이 힘으로 제쳐버릴 수 있다는 점, 이 점을 이용하여 검이라면 반격의 위험 때문에 할 수 없는 한번의 런지에 두번의 찌르기도 얼마든지 가능하고 유효하다는 점을 들어, 총검 사용자가 불리할 것이 없음을 역설하였다.

허턴은 이러한 점을 들어 장검이 총검을 이기려면 보통걷기(Passing step)으로 몸의 왼쪽을 앞으로 전진시켜 총검을 잡아채면서 공격하는 것을 추천하였고, 총검이 장검을 이기기 위해서는 휴턴이 주장한 장점을 충분히 활용하여 검객이 자세를 바꿀 때마다 연속 찌르기를 가하고, 특히 왼손을 놓는 랜스 포인트는 연속공격이 어렵고 두손으로 잡는 장점을 잃어 검객의 반격에 당하기 쉬우니 해서는 안된다고 하였다. [4]

20세기 중일전쟁에서도 중국군이 근접전용으로 기관권총과 함께 항일대도를 애용하였으며 군벌 풍옥상이 지휘하는 서북 29사단을 중심으로 소림권의 김은충, 응조번자권의 유법맹 등의 여러 무술인들이 일본군의 총검술에 대항하는 대도술을 정립 발표하였다. 일본도로 장창에 대항하는 법을 수록한 명나라의 단도법선을 재구성한 파봉팔도라는 기법도 존재했다. 가장 잘 알려진 김은충의 실용대도술을 보면 짧은 검의 불리함을 극복하기 위해 총검이 먼저 찔러오게 유도하면서 이것을 쳐내거나 흘리면서 빈틈을 만들어 베고 찌르는 방식으로 끝내는 방식이다.

  • 스펀툰 vs 총검 - 스펀툰은 1.8~2.2m정도의 짧은 창으로, 18세기부터 19세기 초까지 장교/부사관의 지위의 상징으로 이용되었다. 검과 총검의 대결은 여러 마스터들이 다룬 바 있지만 스펀툰과 총검의 대결은 아직까지 언급된 사례가 없다. 스펀툰은 실전에서 지위의 상징으로 쓰였고 사용법이나 길이도 총검과 큰 차이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추정된다. 특징을 보면 스펀툰은 같은 무게의 총검보다 가볍고 자루 전체가 매끈하며 걸릴 것이 없으므로 총검에 비해 같은 리치에서 보다 다양하게 다룰 수 있고, 더 빠르게 사용할 수 있으며, 총검에서는 불가능한 슬립 스러스트가 가능하다. 이러한 점이 분명히 총검과 비교해서 우위를 차지하는 부분이나, 실전에서 이러한 장비의 우위가 나타나는가는 검증과 실험을 필요로 하는 부분이다.

2.2. 근대와 현대 총검술의 차이점[편집]

근대 총검술은 머스켓 총기의 느린 장전속도와 낮은 명중률 때문에 발생한 전열보병 전술에 맞춰 형성되었다. 대열을 짓고 싸우면 측면이 동료 병사에 의해 보완되었기 때문에 전방에서의 싸움이 중요해서 최대 2m를 넘기는 총과 총검이 등장했으며, 자유로운 방향전환과 측면이동은 가르치지 않고 오직 전방으로 전진하는 보법과 상대의 겨눔세를 쳐내는 것이 중심이었다. 또한 찌르기가 우월하다는 당시의 인식에 따라 베기를 배제하고 찌르기에 치중한 총검과 총검술을 가지고 있었다.

그에 비해 현대 총검술은 1870년 이후부터 태동하였다. 이때는 금속 탄피와 함께 고정식 탄창의 도입으로 연사력이 크게 늘어났으며, 그에 따라 나폴레옹 시대의 라인배틀에서 벗어나 산개하여 싸우는 산병전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었다. 과거에는 측면은 전우가 보호했으므로 개머리판을 사용할 필요가 없었고 오히려 개머리판으로 치려다가 옆의 전우의 얼굴에 총검을 들이댈 위험이 있었다. 하지만 산개 전투가 점점 본격화되면서 자신의 측면까지 스스로 지켜야 했으므로 과거에는 신경쓰지 않은 개머리판 전투 기법이 연구되었고 현대 총검술의 뼈대는 19세기 말에 이미 대부분 정립된다.

여기에 1차대전의 전훈으로 고색창연한 총검돌격보다는 휴대성에 집중하면서 보병의 소총은 19세기 말 1.3m에서 1~1.2m로 줄어들었다. 길이가 짧아지면서 총검술은 복싱의 스텝등을 도입하고 방향전환과 측면이동을 중요하게 가르치고, 찌르기 위주의 기존 방식에서 베기, 개머리판 사용의 비중이 높아졌는데, 전방뿐만 아니라 측면, 후방에도 적이 있을 것을 생각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총의 길이가 짧아지면서 쓰기 보다 자유로워졌으며 총검에만 집중하는 기술에서 벗어나 총 전체를 무기로 보는 관점이 새롭게 발생하였다.

새로운 전쟁터에 맞지 않는 총검술을 갖지 못한 군대의 예가 일본군이다. 일본군은 1차대전 이전까지 유지되던 고리타분한 19세기식의 긴 총검과 총검술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으며 총검이 길다는 이유로 백병전에서 유리할 거라고 생각했으며 개머리판을 배제하고 총검 끝으로만 찌르며 중단 싸움을 위주로 가르치는 옛날 방식 그대로였다.[5]

이런 방식은 태평양 전쟁이 개전하면서 영미 식민지 주둔군, 영미 정규군과의 싸움에서 그 한계를 노출하게 된다. 간격을 넓게 잡는 2차대전의 전쟁터에서 대열을 짓고 싸우던 시절의 방식을 유지한 일본군 총검술은 측면 대응과 방향전환, 근접전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 현대전은 물론 19세기 후반에 비추어봐도 부족한 총검술 체계였으며 길게 찌르는 것만 알던 일본군은 영국/미국 포로들을 대상으로 한 총검술 연구에서 피하고 달라붙어 두들겨패는 영연방군의 역량 앞에 참담하게 깨졌고, 이에 놀란 대본영이 육군부 전훈보고 제 6 호「영/미국병의 백병전투에 관한 관찰 보고서」를 내놓기도 했다. 과달카날 전투를 비롯한 여러 전투에서도 미군은 일본군과의 백병전에서 밀리지 않고 오히려 압도하는 능력을 보여주었다.

병사들 사이의 간격이 충분하고 개인 호신으로써의 요소가 더욱 중요한 현대의 전장에서는 현대 총검술이 더욱 적절하다는 것이 증명된 것이다.

2.3. 역사적인 총검술 교범들[편집]

A treatise on the science of defence for the sword, bayonet, and pike, in close action (1826)
The rule of bayonet fighting training for infantry (1838)
Henry Charles Angelo - Angelo's Bayonet exercise (1853)
A Complete System of Bayonet Exercise(1853)
Esgrima de bayoneta - Galvez de zea (1855)
"Reglement sur l'exercice et les manœuvres des regiments d'infanterie de carabiniers et de chasseurs a pied" (1860)
Skirmishers' drill and bayonet exercise : (as now used in the French army) with suggestions for the soldier in actual conflict (1861)
George Brinton McClellan - Manual of bayonet exercise : prepared for the use of the Army of the United States (1862)
Company drill etc. with Bayonet Fencing - Monroe (1863)
Instruction pour l'enseignement de la gymnastique, de la natation et de l'Escrime a la baionnette (1873)
Sabre, Singlestick, Sabre and Bayonet - Waite (1880)
Bayonet fencing and sword practice - Captain Alfred Hutton (1882)
Fixed Bayonets - Captain Alfred Hutton (1890)
Manual of Bayonet Exercises, United States Army (provisional) 1907 (1907)
Notes on bayonet training : compiled from foreign reports (1917)
Notes on bayonet training, no. 2 : adapted from a Canadian publication (1917)
Elements of Trench Warfare: Bayonet Training NO.1(1917)
Elements of Trench Warfare: Bayonet Training NO.2(1917)
FM 23-25 Basic Field Manual Bayonet, M1905 (1940)
FM 23-25 Bayonet (1943)

[1] 프랑스에서 파이크 옹호론자였던 자가 삼총사의 주인공이자 실존인물인 총사대장 달타냥이었다.[2] 파이크의 절반 길이의 창, 2~3m정도 되며 파이크 창술과 똑같이 사용했다.[3] 소드-바요넷 한정. 착검시 베는 날이 옆을 향하기 때문에 총을 눕혀서 베어야 한다.[4] 한마디로 무기가 강한게 아니라 장점을 더 유용하게 쓰는사람이 강한것이다.[5] 일본군 1934년 교범을 보면 1차 상해사변(1932)에서 겪은 고난을 바탕으로 근접격투(개머리판 전투와 주먹질), 이종격검(군도나 단검같은 다른 무기와 대련) 등의 방법이 수록되었으나 여전히 훈련의 중심은 목총과 호구를 사용하는 찌르기 대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