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궤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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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詭辯 / Sophistry

1. 정의2. 예시

1. 정의[편집]

궤변은 얼른 들으면 옳은 것 같지만 실은 이치에 닿지 않는 말을 억지로 둘러대어 합리화시키려는 허위적인 변론을 일컫는 말이다. 상대방을 속여 참을 거짓으로, 거짓을 참으로 잘못 생각하게 하거나, 또는 거짓인줄 알면서도 상대방이 쉽게 반론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해 사상적 혼란과 감정이나 자부심 등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말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궤변은 처음부터 어떤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목적을 위해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쉽게 말해서, 이기기 위한 말장난이다.

궤변의 원어인 Sophistik 란 낱말은 그리스궤변학파에서 나온 말이며 궤변학파는 본디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뜻으로 오늘날의 궤변을 뜻하지는 않았다. 그러던 것이 후세에 이르러 목적을 위해 '논리적인 규범을 무시하고 아무렇게나 둘러댄다'는 뜻으로 변했다. 동양에서는 명가(名家)의 학자 공손룡(公孫龍)의 '견백론(堅白論)'이나 '백마비마론(白馬非馬論)' 등이 궤변의 좋은 예로서 널리 알려져 있다. 백마비마론은 아래 예시에도 적혀 있다.

어둠에 다크한 일들을 말로 교묘하게 포장해서 얼추 맞는 것처럼 정당화 시키는 데에 사용할 수 있는지라 중2병스러운 라이트 노벨에서 자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악역들이 사용할 경우 주로 범죄자 옹호 등에 궤변이 자주 이용되는데 조금만 생각해보면 헛소리라는 걸 알 수 있기 때문에 비판적으로 보는 것이 좋다. 거꾸로 고2병에 빠지면 상대방의 주장을 우선 궤변이라고 몰아가는 상황이 벌어진다.(…) 이런 류의 라이트 노벨에서는 악역이 장광설을 늘어놓으면 주인공이 "흥, 궤변이야." 로 반박을 시작하는 모습을 매우 자주 볼 수 있다. 심지어 궤변이 아닌 주장에 대해서도 덮어놓고 궤변이라고 퉁치면서 주인공의 입을 빌려서 작가 본인의 의견을 강제한다.(…) 물론 중2병적인 많은 아이디어들이 궤변이라는 것을 깨달았으면서도, 아직 중2병의 영향력에서 온전히 벗어나지는 못하기 때문.

키보드 배틀에서도 자주 보이는데, 좋을 것 하나 없다. 덮어놓고 전부 궤변이라고만 몰아붙이면 상대방은 기운이 빠질뿐더러 불필요한 감정의 골만 깊어져서 인신공격의 진흙탕이 되고 만다. 세상 그 누구도 자신이 정성껏 쓴 장문의 글이 "궤변이군요." 한 마디로 무시당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이 상대방에게 궤변이라고 쏘아붙인다고 해서, 행여 자신의 주장 속에 섞여있을지 모를 궤변들이 감추어지지는 않는다. 눈팅중인 제3자들에게 비웃음거리만 될 뿐. 더불어, 상대방의 주장을 궤변이라고 단정짓고 반격을 시도하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는 자신의 주장의 정당성을 강화하지는 못한다.

다양한 궤변의 예시는 논리적 오류/비형식적 오류에 상세히 나와있다.

2. 예시[편집]

예전 중국 고대의 춘추 전국 시대에는 수많은 학자들이 많은 학파(學派)를 이루고 있었다. 이 가운데 명가(名家)로 불리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교묘한 궤변으로 이름을 날렸다. 그들의 궤변은 이런 식이었다. 여러 가지 색깔을 사람들에게 보여 준 뒤, 흰색은 색이 아니라고 하자,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들이 말했다. "자! 여러분의 말대로 흰색은 색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흰말은 이라 할 수가 없습니다."


네가 만약 살 운명이라면 약 같은 것을 쓰지 않아도 살 것이고, 반대로 죽을 운명이라면 아무리 좋은 약을 쓴다 해도 결국은 죽게 된다. 그런데 너는 살 운명에 있느냐 죽을 운명에 있느냐의 그 어느 쪽에 있다. 그러므로 어차피 살려고 바둥바둥할 필요가 없고 약을 쓸 필요도 없다.[1]


어떤 사람이 남의 를 훔쳐 갔다. 관가에서 그를 잡아다가 왜 남의 소를 훔쳐 갔느냐고 신문(訊問)하였다. 그 사람이 대답하였다. "제가 길을 가는데, 길에 웬 쓸 만한 노끈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노끈을 주워 가지고 집으로 간 것뿐입니다. 소는 잘 모릅니다." 길에 떨어진 노끈을 주웠는데, 노끈에 소가 매어져 있는 줄은 몰랐다. 그러니까 소를 훔치려 한 것이 아니고 소를 못 본 것뿐이니, 죄가 없다고 주장한 것이다.[2][3]


자유가 존중 받아야 한다면, '자유를 억압할 자유' 역시 존중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참가하는 것에 의의가 있다면, 참가하지 않는 세력에 참가하는 것도 의의가 있을 것이며 무슨 일이든 경험이라 할 수 있다면,
경험하지 않는 경험에도 가치가 있을 것이다. 오히려 누구나가 경험하는 것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역으로 귀중하다 할 수 있다.이분?



[1] 이는 딜레마(양도론법)를 이용한 궤변의 일례이다. 사람은 죽는가 아닌가로 상태를 딱 잘라 말할 수 없고 죽을 병이라 해도 고통을 줄이고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기에 참을 만한 병이라도 의사의 치료를 받는 게 낫다.두산백과 참고[2] 출처[3] 상식적으로 소 정도로 무거운 게 노끈과 이어져있다면 당연히 느낌이 날 수밖에 없으니 궤변이다. 만약 노끈 끄트머리에 있던 게 진주 한 알이나 동전 한 닢처럼 가벼운 물건이면 또 모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