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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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나무위키+유도.png   이 문서는 과거 전쟁의 병과로서의 활잡이에 관한 것입니다. 활잡이 속성에 대한 내용은 활잡이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1. 개요2. 현실의 궁병
2.1. 동양2.2. 서양2.3. 궁병의 특징
3. 손가락 욕4. 그 외의 참조하면 좋은 문서들5. 창작물에 나오는 궁병
5.1. 목록

1. 개요[편집]

弓兵. 을 무기로 다루는 병사. 궁수(弓手)라고도 쓰며 궁사(弓師)라고도 쓴다. 영어아처(Archer)나 보우맨(Bowman) 등으로 쓴다.

2. 현실의 궁병[편집]

고대~근세까지의 전장에서 보병의 엄호를 받으며 멀리서 적군을 무력화시키는 역할을 맡았다. 집단전에서 투사무기의 보조를 받느냐 못 받느냐의 차이는 그야말로 어마어마한데, 현대전으로 치면 공군지원 받는 부대와 공군지원 받지 못하는 부대의 차이점으로 생각하면 된다. 궁병의 중요성이 궁금하다면 한 번 체험해 보자. 화약이 즐비한 근세부턴 의미가 달라지지만 동서양을 막론하고 중세까지의 투사무기는 단연 이 최고였다.

특히 대 보병전에 탁월한 기병이 속도가 빠르다는 이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을 타고 있는 큼지막한 표적이라 전통적으로 궁병에게 상당히 약했던 것으로 보인다.[1] 물론 접전에 들어가면 궁병이고 포병이고 다 박살 나버리지만, 궁수 부대의 일반적인 일제사격 사거리인 100~150m를 통과하는 동안 최소한 1~2번의 일제사격을 뒤집어 써야 한다. 때문에 제아무리 정예 기병대라 하더라도 장창병과 궁수부대가 유기적으로 잘 조합된 보병 방진에 어설프게/무식하게 돌격할 경우 자살행위가 될 수 있다. 또한 두텁게 중무장하여도 궁병은 기병이 아닌 말을 노리기 때문에 병사는 무사하지만 말은 무사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말에게도 철이나 가죽으로 된 갑옷을 입히는 마갑이 있지만, 마갑을 입힐 경우 말이 빨리 지쳐버려 속도가 떨어지기 쉽다. 더욱이 말은 겁이 많은 동물인 만큼 마갑에 안전하다 하여도 튕겨지는 화살소리에 놀라는 경우가 많아서 기병 입장에서는 궁병이 까다로운 적이기도 하다.

2.1. 동양[편집]

한국의 경우 전통적으로 기병으로 구성된 북방 유목민족과 맞설 일이 많았고, 그만큼 유목민족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2] 아울러 한반도 전체에 걸친 백두대간의 험준한 산악 지형으로 인해 산성이나 읍성을 중심으로 한 수성/공성이 주요 전쟁 양상이었기 때문에 활이 매우 중요시되었다. 산해경이나 삼국지 위지 동이전로부터 시작하여 중국의 많은 기록에서는 삼국시대에서부터 조선까지, 한민족 국가들의 뛰어난 궁병대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특히 조선 시대에 이르면 활쏘기는 선비의 기본 소양일 뿐 아니라 기생과 같은 아녀자들까지도 취미로 활쏘기 내기를 할 정도로 대중적으로 보급되었다. 오죽하면 일제가 조선을 병탄한 후, 조선총독부에서 내린 치안 관련 칙령 중 하나가 길거리에서 아이들이 활을 쏘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한국의 역사를 살펴보면 뛰어난 궁수들이 많다. 명궁 항목 참조.

일본에서는 궁수를 유미토리(弓取り)라고 한다. 직역하면 '활잡이'라는 의미지만 이 단어는 꼭 활잡이라는 뜻으로 쓰이지는 않았고 '무명이 뛰어난 무사'를 가리키는 일종의 관용구였다. 유미토리라는 말이 '무사'를 가리키는 말로 굳어진 이유는 헤이안 시대 말엽 겐페이합전 시기의 무사들의 주된 무기가 크기가 긴 일본식 활이었기 때문. 이 시대에는 주로 서로를 향해 말을 달리며 활을 쏘아대는 것이 주된 무사들의 대결 양상이었다. 헤이안 시대 이후에는 활을 더 이상 무사의 상징으로 쓰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이 말만은 남는다. 마치 '중장기병'을 뜻하다가 '귀족 무사 계급'을 뜻하게 된 영단어 Knight, 라틴어 Equites와 같은 경우.

2.2. 서양[편집]

서양, 특히 고대엔 크레타 궁병이 유명하였고[3], 중세에는 영국군장궁병이 유명하였다. 궁사는 대체로 평민 계층[4]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활이 나름대로 비싸고 이정도쯤 되는 계층이면 그럭저럭 군사 훈련을 할 여력이 되는 중류층이기 때문인 듯하다. 영국에서는 이것 때문에 일주일에 한 번은 반드시 활쏘기만 하라는 것을 국가 정책으로 삼기도 했으며, 이렇게 훈련한 덕인지 일반적으로 이 사람들은 팔과 상체 근육이 약간 비정상에 가까울 정도로 발달되어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 이 시대 궁병들의 유골을 발굴해서 보면 어깨뼈의 형태 자체가 일반인과 다르게 변형되어 있는 것이 확인된다.

그러나 중세에 이르자 중무장 기병대가 주력이 된 서유럽의 경우에는 영국을 제외하면 궁병은 일찍이 사장되었으며[5], 총기가 보편화된 이후로는 비유럽권 지역에서도 극소수의 전문 병력만이 남게 되었다. 그리고 전열보병 시대가 되면 일정 비율의 궁병, 궁기병 편제를 유지하였던 동아시아 지역이나 총기 전래가 아예 되지 않은 오지를 제외하고는 볼 수 없게 되었다.

2.3. 궁병의 특징[편집]

궁병 최대의 장점은 양성 비용이 대체로 싸다는 것이다[6] 활의 가격은 재질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적으로 중갑과 금속무기보다는 훨씬 쌌다. 궁술 역시 백병전을 익히는 훈련보다는 훨씬 단시간 내에 습득이 가능했기 때문에 전사계층이 아닌 징집병들도 빠른 기간 내에 기본적인 사격 기술을 익힐 수 있었다.참고 영상 일반적으로 투사무기들이 근접무기에 비해 교육기간이 짧은 편이다.[7] 개개인의 명중률도 전쟁에서처럼 집단으로 운용할 경우 탄막을 펼치는 식으로 어느정도 보완이 된다.[8] [9] 일개 징집병들이 전장에서 레골라스마냥 뛰어다니고 할 필요는 없을 테니 말이다. 다만 입문 자체가 싸게 먹힌다는 거지, 제대로 된 탄막이 형성될 수 있을 정도로 훈련시키려면 이쪽도 비싼 건 매한가지였고, 화살도 소비량이 심각한 주제에 제대로 된 재료로 제대로 만들어야 하는 물건이었기 때문에 유지비는 많이 들었다. 따라서 궁수는 어느 정도 여유가 있는 부농이나 상인 사냥을 생업으로 사는 사냥꾼, 혹은 전문용병이 담당하였다. 가난한 농민들은 전쟁시에는 활이 아닌 집에서 쓰던 농기구나 혹은 나무를 깍아서 만든 몽둥이(클럽,스태프)로 무장하였다[10]

궁병이 보편화 되기 전인 고대에는 이 자리를 투창병이나 투석병이 차지했는데, 이 경우에는 활에 비해 무기인 투석구의 제조와 투척할 돌멩이 수집은 활과 화살에 비해 그야말로 공짜나 다름없을 정도로 쉽고 싸게 준비 가능하며, 위력에 대해서도 활을 능가했지만 제대로 써먹으려면 활을 능가하는 고도의 훈련이 필요하다는 점 때문에 역사적으로 일부를 제외하곤 소수의 전문가[11]를 고용하는 경우가 많았고, 일부 지방에서 영국이 궁수 양성을 위해 수시로 활쏘기를 장려했던 것처럼 평시에 투석을 즐겼던 지방[12]에서 전시에 동원하는 일종의 예비군 방식으로 비교적 대규모로 충원하는 경우도 있었다. 고대까지는 이러한 군제가 다수 있었으나 시대가 지나며 궁병에 비하면 편제상으로 휠씬 줄어들게 되었다.

기계식 활인 쇠뇌의 경우 활과 투석구를 모두 아득히 상회하는 무지막지한 위력[13] 그리고 현대의 총처럼 걸어놓고 나서 편하게 조준한 뒤 방아쇠를 당기면 그만이기에 무엇보다 익숙해지기 굉장히 쉽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일반 활에 비해 상대적으로 제작 방법이 복잡하고, 덕분에 만드는 기간이 오래 걸리는데다 억소리나게 비싼 가격도 발목을 잡았다. 그래서 대규모 병력에 지급하기에는 시간[14]과 돈이 많이 드는 관계로 중세 유럽 등 일부를 제외하고는 그 이전이나 이후로나 일정 수준 이상으로 비중 있게 쓰인 적은 많지 않았다. [15]

때문에 활이든 쇠뇌든, 궁수 양성에는 많은 시간이 들기 마련인데, 여기에 비용(화살[16])도 많이 드는 탓에 질 좋은 궁수부대를 양성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다른 나라에 비해 잉글랜드나 조선, 터키 등에서 궁수부대를 편제하기 쉬웠던 것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활쏘기를 즐기는 문화 덕이 매우 컸다. 특히 말을 탄 상태에서 활을 쏘는 기마사격(기사, 騎射)은 굉장히 고급 기술이며, 몽골 등 북방기마민족처럼 기사 자체가 어려서부터 생활화된 민족이 아니면 대규모 기마궁수 양성이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힘들었다.

많은 매체들이 궁병들은 오직 활만 갖고 다니며 그 탓에 원거리에서는 유리하나 근접전에서는 적들에게 일방적으로 학살당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궁병이라고 해서 활만 달랑 들고 다니는 것은 아니었다. 특히 영국 궁사들은 상당수가 꽤 잘 사는 편이었으므로 갑옷도 잘 장만해서 다니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영국 궁사들은 아쟁쿠르 전투에서 진흙탕에 빠져서 허우적대는 프랑스 기사들에게 근접전을 걸어 뼈와 살을 분리해놓은 경우도 있고, 그 외에도 적국 보병이 영국 보병대를 부수고 영국 궁병대에 달려들었다가 오히려 궁병 부대에게 근접전에서 발려버렸다는 이야기도 있다. 당시에는 전문적으로 양성된 인력이 있을지언정 병과에 따른 구분이 세분화 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기사가 궁수역할하는 경우도 있었고 중세시대에 그린 전투화를 보면 궁병들이 부무장으로 칼이나 메이스 같은 철퇴를 상비하고 있고 정안되면 나무를 대충 깍아 만든 몽둥이를 장비하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져있다. 이는 한국도 마찬가지로 궁수들에게 칼이나 철퇴 그것도 아니면 육모방망이로 부무장 시켰다. 예초에 조선이나 중국을 제외하면 활을 능숙하게 사용하기위해선 많은 시간과 재력이 소비되었고 주로 앞에서 말한대로 재력있는 부농이나 상인 혹은 전문용병이나 사냥꾼들이 궁병을 담당하는 경우가 많았다.[17] 무엇보다 제대로된 활과 화살도 제작-유지 비용이 많이 깨진다. 거기다 궁병 1명이 들고 다닐수 있는 화살 수도 많아야 100개 미만이었고 화살이 떨어지거나 적이 근접했을 경우를 대비해 부무장을 갖추고 있었다.[18]

하지만 대부분의 궁수는 일반적으로 근접전에서 적과 맞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멀리서 적을 공격하는 역할을 맡는데다, 좋은 갑옷은 보병에게 지급하는 것도 모자랄 판이었기 때문에 궁수가 좋은 갑옷을 착용하고 있는 경우를 찾기 힘들다. 또한 너무 무거운 갑옷은 활을 쏘는데 방해가 되므로 경장을 선호하기도 했다.[19] 물론 위에서 애기한대로 양판소처럼 일반적으로 당한 것은 아니었다. 활도 근접전이 가능한 무기로 조선무과 시험중 하나가 근접사격 시험이었다. 애초에 멀리서 쏘든 가까운데서 쏘든 활에서 나간 화살은 사람을 죽인다. 거기다 자신이 활밖에 없다고 순순히 죽어주는 사람은 더욱 없다. 거기다 가까운 데서 활을 쏘면 활의 저지력과 관통력이 강한 상태에서 맞추는 것이라, 관통되지 않더라도 저지력 때문에 상당히 귀찮다고 한다.[20]

현대에는 실전된 궁병들의 기술을 복원하려는 시도들도 있는데, 라스 앤더슨은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축에 속한다. 그러나 라스 앤더슨의 영상 같은 경우에는 '정말로 실전성 있어 보인다'와 '애들 장난감같은 활에, 곡마단 잡기로나 쓸 기술이지 궁병의 기술은 아니다'로 의견이 극단적으로 양분되는 경향이 있다.#라스 앤더슨의 영상 궁도 커뮤니티 쪽에서의 반응도 '테크닉이나 영상 자체는 훌륭하지만, 고대 사법 복원 운운은 좀 아닌 것 같다' 쪽이 정설에 가깝다.

3. 손가락 욕[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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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병의 훈련과 양성에는 막대한 시간이 소모 됐기 때문에 서유럽 지역에서는 전쟁이 끝나고 포로를 풀어줄때, 특히 백년전쟁 당시 프랑스 군대는 영국군 궁병 포로들의 중지와 검지를 잘라버리는 관행이 있었다. 다시는 활을 못쏘게 하기 위함인데 이를 안 영국군은 V사인을 내보이며 "와서 내 손가락을 잘라봐라" 라는 의미[21]의 욕설이자 도발행동이 된다고 한다. 시간이 흘러 영국 내에선 심한 욕으로 자리잡게 된다.

4. 그 외의 참조하면 좋은 문서들[편집]

5. 창작물에 나오는 궁병[편집]

2차 창작물들에서는 궁병 종족으로 엘프의 이미지가 매우 강한지라 대부분의 궁병 캐릭들이 호리호리하거나 혹은 연약한 이미지로 그려지는 경향이 나타나는데, 활을 당기고 그것을 유지하는데 팔근육과 등근육, 복근의 근력이 상당히 요구되는지라, 보디빌더급의 부풀린 비대한 근육 정도는 아니더라도 상당한 수준의 근육강화는 피할 수 없다. 위에서 이야기한 영국 국민들의 체형처럼 팔과 상체 근육이 비정상적인 형태를 이루는 게 보통. 더군다나 레인저처럼 빠른 기동과 은신을 요구하는 경우엔 다리도 강화되는지라 호리호리랑은 전혀 상관없는 형태가 되는게 필연적이다. 진짜 로빈 후드라면 에롤 플린 같은 상큼한 청년보다는 러셀 크로우 같은 덩치 큰 아저씨였을 거라는 얘기. 활잡이면서 힘캐인 주몽은 의외로 고증을 살렸다

드래그 온 드라군 시리즈에서도 악명을 떨치는 졸개들. 오죽하면 그냥 잡졸인데도 최악의 캐릭터 인기투표에 이놈들이 순위권에 올라왔다.

전직이라는 개념이 있는 게임의 경우 일반적으로는 연노/쇠뇌/석궁병, 레인저나 저격수 등의 병과와 호환되지만 드물게 궁수가 전직해서 도적이 되거나 반대로 도적이 전직해서 궁수가 되는 경우도 있다. 아무래도 로빈 후드같은 활잡이/도적 속성의 유명인이 있는 것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고, 민첩성을 살리는 클래스라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인 듯 싶다. 삼국지 영걸전의 경우 궁병의 최종테크가 특이하게도 발석차다. 애초에 그 게임은 보병 최종테크가 전차인 괴상한 클래스업을 자랑한다(...)

대부분 궁병들은 활만 들고 다니고 그 탓에 화살이 떨어지거나 적이 가까이오면 일방적으로 도륙당하는데 이것은 활과 궁병의 사용빈도가 적은 일본과 미국 등의 대중매체의 왜곡으로 현실적으로는 반지의 제왕, 호빗으로 유명한 톨킨의 소설 세계에서는 엘프나 궁병들도 검같은 보조 무기로 근접전에 대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톨킨이 소설을 쓰면서 중세시대의 궁병을 잘 표현했는데 이는 톨킨이 서구 유럽에서 유일하게 궁병을 체계적으로 사용한 영국 출신인 탓이 크다. 한국 사극에서도 활만 들고 다니다가 적에게 죽는 궁수들을 보면서 많은 역사학자들이 방송국이 엉터리로 고증한다고 성토하는 기사도 있다. 게임에서도 이런 편견을 반영해서 타일 개념이 있는 게임은 궁병의 공격범위에서 근접 타일이 제외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대부분의 궁수들은 솔플에 적합하다. 다른 근접 딜러들처럼 공격받을 위험이 적은데다 마법사들처럼 mp의 부담을 많이 받지 않고, 컨셉이 컨셉인만큼 기동성이 좋거나, 사냥꾼 컨셉인 경우 대신 몸빵을 해주거나 딜링을 같이 해주는 동물이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손이 덜가기 때문. 거의 모든 온라인 게임에서 궁수 컨셉의 직업은 솔플 앵벌용 부캐로 하나씩은 키워놓는 경우가 많다.

5.1. 목록[편집]

[1] 특히나 아시아는 수많은 유목민족의 침입으로 인해 대기병 전술로는 대부분 궁병을 두는게 일반적이였다. 그에 비해 서양은 일부 동구권 지역을 제외하면 유목민족과 접할 일이 드물기 때문에 대기병 전술로 창병을 두는게 일반적이였다.[2] 대표적인 예로 호주머니와 환도.[3] 다만 고대 그리스에선 궁병을 매우 천시하였다. 남자라면 중갑입고 전선에서 부딫히는 것이라고 생각했던지라 멀리서 "안전하게" 화살을 쏘아대는 궁병은 찌질한 병종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문학에서 많이 보인다. 극단적인 예로 에우리피데스의 비극 "헤라클레스"에선 다름아닌 헤라클레스가 활을 쏜다는 이유로 비겁한 겁쟁이라는 모욕을 하는 인물이 나올 정도다. 이때가 이미 헤라클레스가 히드라등 온갖 괴물들을 때려잡은 이후인데도 단순히 활을 잘 쏘니까 겁쟁이다라는 논리로 비난한 것이다. 물론 이후 활은 전략적인 무기라는 반론이 나오긴 하지만 고대 그리스에서 궁병을 얼마나 천시했는지 볼수 있는 예. 어찌보면 1차 대전까지 저격수 천시하는 풍조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4] 자영농민인 젠트리, 요먼[5] 이쪽은 개인 및 국가의 경제 능력이 점차 향상되면서 비싸지만 사용이 쉽고 위력이 강력한 쇠뇌가 보편화되었다. 물론 영국은 제외.[6] 단 아래에서 후술하겠지만, 유지비용 면에선 창검으로 무장한 보병보다 많았다. 화살은 현대의 총알과 똑같은 위치로 소모품에 해당한다. 좋은 목재를 써도 훈련이든 실전이든 계속 쓰다보면 부러지며, 다시 보충하는데도 시간과 돈이 많이 필요했다.[7] 단, 활은 모든 투사무기 중 배우기 어려운 편에 속한다.[8] 각종 매체에서의 궁수들이 유격전을 펼치는 경우는 대게 노련한 사수들이고, 야전에서의 궁병은 근현대의 포병처럼 방열하고 사격하듯, 대오를 갖춰 포진한 후 지휘관의 명령하에 단체로 사격하는 식이였다.[9] 궁병이라고 만능은 아니어서, 짧은 수련 기간을 거친 하급 병졸들의 경우에는 효율적인 사격법을 행하지 못해 전술했듯이 탄막을 형성하는 방식을 제외하고는 써먹을 법이 없었고, 이는 한국이나 영국, 유목민족들을 제외하면 공통적으로 일어나는 문제였다.[10] 이건 동서양의 차이가 있다. 서양은 기본적으로 병사가 모든 무장을 구비해야 했으나 동양권의 경우 전부 또는 일부를 국가가 지급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경우는 단순히 농민 궁병이라도 단도 정도는 쥐어줬다.[11] 고대에는 로도스섬 투석병과 발레아레스섬 투석병이 유명했다고 한다.[12] 우리나라의 경우 안동과 김해의 투석병들이 유명했는데, 이들은 한국의 전통 연례행사인 석전에서도 두각을 나타내었다고 한다.[13] 활에서 발사된 화살의 운동에너지는 평균 200J에 해당한다. 그러나 쇠뇌는 최대 1000J에 해당하는데, 이는 머스킷 탄환의 기본 운동에너지와 흡사하다.[14] 다만 쇠뇌를 일단 지급한 뒤에 그걸로 수련하는 기간은 비교적 짧았다.[15] 한국사에서는 신라가 다른 나라들에 비해 특히 쇠뇌를 많이 사용했고 그 품질은 당나라에서도 높게 쳐줄 정도였다.[16] 화살은 훈련에서든 실전에서든 소모/분실되기 매우 쉽다. 그리고 예나 지금(1발당 2~3만원)이나 재료/인건비가 무척 비싸다. 그렇다고 비용 아끼겠답시고 화살을 싸구려로 막 만들면 안 쓰느니만 못 할 정도로 조악한 물건이 되어 버린다. 화살은 공기역학적으로 굉장히 섬세한 물건이다.[17] 사냥꾼이 활만 들고 다니는 것도 매체의 왜곡이다. 위험한 사냥을 생업으로 사는 사람들이 활만 들고 사냥하는 경우는 없다. 사냥하다가 늑대나 곰을 만나게되면 활로 상대하는데 한계가 있어 활뿐만 아니라 창이나 단검으로 무장한 상태에서 여러 사람들이 같이 사냥하는 경우가 많았다.[18] 현대전에서도 탄약이 떨어질 경우를 대비해 소총말고도 권총이나 군용나이프를 지급하는 이유도 이와 같다. 최악의 경우 보조 무기로 적과 싸우라는 뜻이다.[19] 실제로 고구려 고분 벽화를 보면 궁병대는 민소매 갑옷을 입고 투구가 아닌 깃털 달린 모자를 쓰고 있다. 소매 있는 갑옷은 활쏘기에 방해가 되며 투구는 시야 확보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20] 유튜브에서 knight vs warbow 참조[21] 그 외에도 '너 따위는 이 두 손가락만으로도 처리가 가능하다.' 라는 도발적 의미가 있다는 설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