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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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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640px-UN_building%2C_Genevra.jpg

스위스 제네바의 구 국제연맹 본부 건물.
국제연합으로 조직이 계승되고 세계본부가 미국 뉴욕으로
옮겨진 뒤에는 국제연합 유럽위원회 사무국으로 쓰이고 있다.

국제연맹
League of Nations(영어)
Société des Nations(프랑스어)
Sociedad de Naciones(스페인어)

연맹기[1]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600px-Flag_of_the_League_of_Nations_%281939%E2%80%931941%29.svg.png

회원국[2]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024px-League_of_Nations_Anachronous_Map.png

상태

국제조직

존속기간

1920년 ~ 1946년

위치

전세계

본부

스위스 제네바

대표

사무총장

공용어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주요사건

1920년 설립
1939년 2차대전 발발
1946년 해체

해체 이후

국제연합


1. 개요2. 회원국3. 역사
3.1. 창립3.2. 가입국3.3. 문제점3.4. 짧은 평화3.5. 균열3.6. 폭풍 전야3.7. 전쟁과 해체과정
4. 국제연맹의 교훈과 유산5. 여담
5.1. 위임통치5.2. 자유시5.3. 한국과의 관계5.4. 대중매체의 국제연맹

1. 개요[편집]

영어

League of Nations [3]

프랑스어

Société des Nations

스페인어

Sociedad de Naciones

중국어

國際聯盟(Guójì Liánméng)

일본어

国際連盟(こくさいれんめい)

에스페란토

Ligo de Nacioj

러시아어

Лига Наций


제1차 세계 대전전쟁의 재발을 막기 위해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이 제안하여 1919년 기획되어 1920년 설립되었으며, 초기 회원국은 42개국, 최대 60개국이 참여했던 국제 기구이다.

UN(국제연합)의 밑거름이 되었으나 사실 전쟁을 막는다는 원 목적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1946년 해체되고 국제연합에 그 자산과 국제법원(국제사법재판소)와 국제 노동 기구 등 대부분의 하위 조직이 이전되었다. 본부는 스위스 제네바에 있었다.

2. 회원국[편집]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800px-League_of_Nations_Anachronous_Map.png

색상

가입 기간

해당 국가[4][5]

남색

연맹 창설~연맹 해체

대영제국[6], 프랑스 제3공화국,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스위스, 포르투갈 제1공화국, 폴란드 제2공화국, 노르웨이,
스웨덴, 그리스 왕국, 라이베리아, 남아프리카 연방, 이란 제국, 영국령 인도 제국, 중화민국, 태국,
영국령 호주, 영국령 뉴질랜드, 영국령 캐나다[7], 쿠바, 파나마, 콜롬비아, 우루과이

형광 하늘색

연맹 창설~연맹 해체[8]

유고슬라비아 왕국, 아르헨티나

형광 연두색

연맹 창설~중간 탈퇴

스페인 제2공화국, 이탈리아 왕국, 덴마크, 체코슬로바키아 제1공화국, 루마니아 왕국, 일본 제국,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니카라과, 아이티, 페루, 베네수엘라, 브라질, 파라과이, 칠레

보라색

중간 가입~연맹 해체

영국령 아일랜드 자유국, 핀란드,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불가리아 왕국, 터키,
이집트 왕국, 에티오피아 제국, 이라크 왕국[9], 아프가니스탄 왕국, 멕시코, 에콰도르

노란색

중간 가입~중간 탈퇴

바이마르 공화국, 오스트리아 제1공화국, 헝가리 왕국, 알바니아 왕국, 소비에트 연방, 코스타리카

주황색

국제 연맹 위임 통치[10]

토골랜드[11], 토골랑[12], 카메룬[13], 르완다-우룬디[14], 탕가니카[15], 나미비아[16]
시리아[17], 레바논[18], 팔레스타인[19], 요르단[20], 이라크 왕국[21] 뉴기니-비스마르크 제도-부건빌[22],
마리아나 제도-캐롤라인 제도-팔라우-마셜 제도[23], 나우루[24], 사모아[25]

짙은 회색

미가입국

아이슬란드, 사우디아라비아, 예멘 왕국, 네팔 왕국, 부탄, 몽골 인민 공화국, 미국[26]

하늘색

회원국의 식민지[27]

대영제국령 - 감비아, 시에라리온, 골드 코스트, 나이지리아, 수단, 소말릴란드, 우간다,
케냐, 잔지바르, 북로디지아, 남로디지아, 니아살랜드, 베추아날랜드, 스와질란드,
바수톨랜드, 쿠웨이트, 카타르, 트루시얼 스테이트, 오만, 아덴, 실론, 말라야 연방, 싱가포르, 사라왁, 북보르네오, 뉴기니, 솔로몬 제도, 뉴펀들랜드 래브라도[28], 기아나
프랑스령 - 모로코, 알제리, 튀니지, 프랑 [29],
적도아프, 마다가스카르, 인도차이, 기아나
네덜란드령 - 동인도, 기아나
벨기에령 - 콩고
포르투갈령 - 기니비사우, 앙골라, 동아프리카

연두색

탈퇴한 회원국의 식민지

에스파냐령 사하라, 이탈리아령 리비아, 이탈리아령 동아프리카, 이탈리아령 소말릴란드, 에스파냐령 모로코, 에스파냐령 적도 기니, 일본 제국령 조선, 일본 제국령 대만, 덴마크령 그린란드

옅은 회색

미가입국의 식민지/속령

미국령 필리핀, 하와이, 알래스카[30]

[31]

3. 역사[편집]

3.1. 창립[편집]

우드로 윌슨은 '평화 원칙'을 내세우며 베르사유 조약 1조에 국제연맹을 설립한다는 항목을 넣는 데 성공했고, 42개국이 가입했다.

UN과 달리 최고기관이 이사회가 아닌 총회였는데, 초기 상임이사국영국, 프랑스 제3공화국, 일본 제국, 이탈리아 왕국이었다. 뒤에 보겠지만 이후 바이마르 공화국(1926년~1933년)과 소련(1934년~1939년)이 잠시 상임이사국을 맡았다.

3.2. 가입국[편집]

1919년에는 영국과 영연방(인도 제국 포함)의 여러 나라와 프랑스 제3공화국, 일본 제국, 이탈리아 왕국, 그 외 유럽중남미의 여러 독립국들 위주로 가입되었고, 체코슬로바키아 제1공화국, 유고슬라비아 왕국, 루마니아 왕국 등이 독립국으로서 새로 가입했다.

뒤이어 1920년에는 최초로 제1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인 오스트리아 제1공화국과 구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았던 알바니아 왕국, 불가리아 왕국, 1921년에는 발트 3국, 1922년에는 헝가리 왕국, 1923년에는 아일랜드 자유국에티오피아 제국이 들어가면서 점점 국제연맹은 회원을 확대했다.

3.3. 문제점[편집]

이런 초기 상황에도 불구하고 국제연맹은 세 가지의 근본적인 문제점이 있었다.

  1. 제1차 세계 대전의 패전국인 독일 제국, 오스만 제국[32]공산주의 국가인 소련이 가입을 거부당했고,

  2. 정작 본 제안국인 미국이 먼로 독트린을 이유로 공화당이 다수인 상원에서 부결되어 가입하지 못했다.[33]
    말 그대로 떼고 뗀 상황이었다. 여기에 더해...

  3. 다수결이 아닌 만장일치였고, 군사적 제제 수단이 전무했으며, 상임이사국이 특별히 이권이 없었다.


이건 여러모로 막장이었다. 강대국의 입장에선 자신이 특별하게 대접을 받는 게 아닌 수십 개 나라 가운데 하나로만 취급되었기 때문에 국제연맹에 가입해 있다고 해서 특별히 이득을 볼 거리가 없었다. 반면 약소독립국들의 입장에선 강대국이 설친다고 해도 국제연맹이 항의와 경제봉쇄 외에는 뭔가를 할 수가 없었고, 숫자를 빌미로 단체 머릿수 과시에 나서지도 못하니 뭘 써먹을 수도 없었다. 그러니까 어느 나라 입장에서도 이익이 될 게 없었다.

결국 강대국도 약소국도 "수틀리면 탈퇴한다!"를 시전하게 된다.

다만 영국과 프랑스 중심 체계도 당시 미국의 국제적 영향력이 비교적 제한적이었고, 국력이 절정에 달한 (것처럼 보이는) 대영제국과 프랑스 식민제국을 중심으로 세계 질서가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에 이 무렵에는 크게 결함있는 사항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이미 가입한 국가와 그 식민지 만으로 전 세계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또한 미국은 전반적으로 정치권과 국민여론이 고립주의를 옹호하고 있었기 때문에 윌슨의 정치력이 좀 더 뛰어나서 가입을 했다고 해도 결과적으로 큰 차이는 없었을 것이다.

3.4. 짧은 평화[편집]

코스타리카가 가입한 지 5년만인 1925년 탈퇴하고, 다음 해인 1926년 6월에는 브라질이 상임이사국 진출에 실패하고 분노하여 탈퇴해버리면서 국제연맹의 탈퇴행렬은 시작되었다.

그래도 당장은 모든 것이 무너진 게 아니었고, 오헝제국과 러시아의 공산화 등으로 개판 오분전이 되어버린 유럽 내부의 여러 위기들을 국제연맹이 조정에 성공하면서 어느 정도의 성과를 보였다. 무엇보다 같은 해 9월 바이마르 공화국이 가입해서 상임이사국이 되었다. 또한 군비축소위원회도 그럭저럭 돌아가고 있었고, 조금 이르게는 워런 거메일리얼 하딩이 태평양 군축회의에서 영일동맹을 끊고 군비경쟁을 완화시켰다. 이런 상황이 되자, 국제연맹체제를 진두하던 영국과 프랑스는 이제 전쟁 이전의 상황으로 완벽하게 돌아왔다고 안도하게 되었다.

사실 대공황 이 다 망쳐놓기 전에는 여러 성과들을 냈다. 1921년엔 스웨덴핀란드 사이의 아란드(Aaland) 분쟁을 정리해주었고, 바이마르 공화국폴란드사이의 북 실레시아 (Upper Silesia) 영토분쟁을 해결해 주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국제 연맹의 커다란 공헌으로 1921년에 알바니아 왕국유고슬라비아 왕국 사이, 1925년에 그리스 제2공화국과 불가리아 왕국 사이의 전쟁을 막으면서 1925년의 로카르노 협정과 함께 세계인들과 함께 서로 대화와 존중을 통한 전쟁없는 세계로 점점 더 다가가는 해피 엔딩....

...인 줄 알았는데, 하필이면 1929년 대공황이 찾아오면서 국제연맹은 무너져내리게 된다.[34]

3.5. 균열[편집]

세계대공황의 앞에서 국제연맹은 무력하게 영국과 프랑스의 블록화를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국제연맹은 빠르게 무너져내렸다. 물론 이 와중에 멕시코(1931년), 터키와 이라크 왕국(1932년)이 가입하긴 했지만, 나치파시스트가 등장하고 일본 제국은 만몽과 화북 지역의 이권이 일본의 생명선이라 주장하며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켜 만주국을 수립했고 성동격서를 위해 1932년 제1차 상하이 사변을 일으켰다. 이어 1933년 열하사변을 일으키기에 이르렀다. 이에 중화민국의 국제연맹 제소가 있었지만 일본의 탈퇴 협박과 실질적인 제재 수단 부재 때문에 국제연맹의 대응은 지리멸렬했다.

게다가 이 와중에도 소련은 계속 거부되었고, 미국은 끝까지 가입하지 않았다(...).

그래도 국제연맹을 구성한 기존 열강들은 평화의 가능성을 신뢰하고 있었다. 일본에는 경제제제를 경고하고 실제로 만주까지 조사단(그들이 쓴 보고서는 Lytton report)을 파견하고 만주국의 승인을 거부하고 일본군 철수를 권고했다. 또 같은 회원국끼리의 전쟁인 이탈리아의 에티오피아 침공(1935년)과 스페인 내전(1936년)에도 훈수를 두고 다른 회원국의 참전을 막았다.[35]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일본과 이탈리아는 그런 말을 듣느니 탈퇴가 더 빨랐다. 독일 역시 아돌프 히틀러가 베르사유 체제의 폐기를 선언하면서 1933년에는 일본과 독일이, 뒤이은 1937년에는 이탈리아가 탈퇴했다.

3.6. 폭풍 전야[편집]

국제연맹은 그 직후 1934년 소련을 상임이사국으로 가입시키면서 뭔가 기대를 했지만, 소련독소 불가침조약으로 상큼하게 국제연맹을 배신하고 1939년 핀란드 침공과 함께 탈퇴한다. 하지만 핀란드 동장군과 만네르하임 전선에 막혀서 역으로 탈탈 털린 게 함정 게다가 이 막장의 와중에 명색이 상임이사국이라는 영국프랑스, 그리고 그들의 동맹이자 원년 멤버였던 폴란드는 독일의 오스트리아 합병, 체코슬로바키아 합병을 '우리 시대의 평화'라며 허용하는 병크를 저지른다. 국제연맹에서 탈퇴해도 편 들어주고 달래주고, 도리어 회원국들을 망하게 내버려두는 상황이 되었다......

한편 여전히 국제연맹을 탈퇴한 일본 제국과 이탈리아 왕국은 말 그대로 중일전쟁(1937년)과 리비아, 북아프리카 침공으로 깽판을 치고 있었다. 이렇게 되니 중미의 여러 나라들도 주르르 탈퇴해버리고, 스페인도 독자적 노선을 택한다.

1930년대 말기에 다다르면, 국제연맹을 탈퇴한 나라들은 이제 열강들이 직접 나설 수밖에 없는 수준에 이르른다. 태평양에서 일본 제국을 그나마 제어할 수 있는 나라는 회원국이 아닌 미국 밖에 없었고, 결국 미, 영, 중, 네덜란드는 ABCD 봉쇄를 통해 석유의 수출을 제한해버린다. 같은 이유로 나치 독일의 야욕은 점차 심해지면서 뒤에 나오는 단치히 자유시를 빌미로 폴란드 합병을 주장하고, 영국과 프랑스는 이번만큼은 극구 반대한다. 결국 폴란드 침공과 함께 1939년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면서 전쟁을 막겠다던 국제연맹은 전쟁의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3.7. 전쟁과 해체과정[편집]

눈 깜짝할 사이에 유럽은 독일의 손아귀에 들어간다. 망명정부를 차린 폴란드, 자유 프랑스, 네덜란드, 벨기에, 노르웨이 정도를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의 나라의 괴뢰정부는 국제연맹에 탈퇴를 선언한다. 더구나 이 망명정부를 차린 나라들도 국제연맹한테 일종의 뒷통수를 맞은 격이었고 실권도 전혀 없어서 이름뿐이었다.

국제연맹은 졸지에 영국과 망명정부의 모임 수준으로 전락했다. 마지막 가입국인 이집트 왕국(1937년)이나 터키도 비슷했다. 유명무실해진 국제연맹은 1945년 설립된 UN에 자리를 내주게 된다. 회원국이나 업무 같은 것은 모두 UN에 인계되었으므로, 사실상 UN체계로 재창단 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4. 국제연맹의 교훈과 유산[편집]

국제연맹에서 교훈을 얻은 UN은 철저하게 탈퇴와 배제를 하지 않는다는 데 중점을 둔다.[36] 이러한 생각은 철저하게 열강에 유리하게 짜여진 상임이사국 제도에서 엿볼 수 있다. 안보리(UNSC)가 불공평한 건 사실이지만, 핵무기의 등장과 뒤이은 냉전으로 인류 공멸 가능성은 더더욱 높아진 상황에서 다른 답이 없었다.

만장일치제도 폐지하고, 다수결과 군사력(유엔군, 평화유지군)을 바탕으로 한 직접적 개입과 여러 단체를 포괄하는 더욱 큰 조직을 만들게 된다. 그 대표적인 첫 개입이 바로 한국전쟁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한국전쟁과 같은 사례의 적극적인 개입은 UN에서도 두 번 다시 나오지 않았고, 각 나라의 입장 차이와 현실적 제약 때문에 평화유지군은 그야말로 '제한적인 치안 유지 임무' 정도로만 한정되게 된다. 그래도 군사적으로 무력했던 국제연맹보다는 다소 발전한 것이지만.

이렇게 실패한 국제연맹에서 교훈을 얻은 UN이었기에 2차대전 종결 후의 국제사회가 대충 전반적으로는 인권의 신장과 평화로운 상태를 유지해온 것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제1세계, 제2세계 이야기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낫지 않은가.

5. 여담[편집]

위키 문헌에 국제연맹 헌장이 있다. #

5.1. 위임통치[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위임통치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2. 자유시[편집]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25px-Flag_of_the_Free_City_of_Danzig.svg.png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50px-Gdansk_Bay_Borderlines_1939_English.png

국제연맹에는 특이한 도시국가인 자유시라는 것이 있었다. 나폴레옹 1세가 잠시 프로이센 견제용으로 세웠던 단치히 자유시가 다시 부활한 것. 국제연맹은 1920년 1월 10일 영구 중립의 도시국가로서 단치히를 독립시켰는데, 독자적 화폐깃발도 있었고 25만 명의 인구로 나름대로 번성했다. 하지만 발트해 유수의 항구였던 이곳의 전략적 이점을 노린 히틀러가 단치히 합병을 감행한다. 히틀러는 "다리" 역할을 하는 연결통로가 되는 단치히를 넘길 것을 폴란드에 요구하나 이게 통하지 않자 곧바로 단치히를 침공하여 멸망시켰다. 가히 19년의 역사 동안 국제연맹과 운명을 함께 했다고나 할까.

5.3. 한국과의 관계[편집]

한 마디로 전혀 쓸데없는 기관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 심하게 말하면 국제연맹이 힘이 없어서 전쟁 난 것이 일본의 자멸을 야기했기에 오히려 이 점에 정말 고마워해야 할 지경이다. 한국, 아니 조선조선총독부는 국제연맹이 인정한 적법한 식민지였고, 자치권도 없어 영국의 식민지들과 달리 회원국도 아니었다. 그리고 그 당시 조선은 일제강점기라서 국제적으로도 일본의 식민지로 인정된 상황이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통령이었던 이승만의 경우는 이른바 외교독립론으로 차라리 한국을 위의 위임통치에 맡기려는 시도를 한다. 하지만 열강들 입장에서 그게 될 리도 없었고, 그저 일본의 한국을 다루는 태도를 비난하는 의도가 강했다. 애초에 3.1 운동 직후에 열렸던 파리 강화 회의에서도 조선의 독립 문제가 신나게 씹히던 상황이었는데 당연한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박용만, 신채호를 비롯한 반이승만 무장독립파들이 이 사건을 물어 이승만을 공격하고 같은 외교 독립론은 주장하지만 이승만은 관계없던 세력들도 이승만을 물어뜯으면서 임시정부는 개판으로 치닫는다. 위임 통치 청원 사건에 대해서 신채호의 시각을 일방적으로 추종하여 미리한 매국 운운하는 말들이 보이지만 비슷한 시기 김규식 등도 외교독립론을 주장했고 영국,프랑스의 위임통치를 받았던 이라크나 시리아, 레바논 같은 중동 아랍권 국가들이 훗날 독립한 것을 보아 이 시도 자체를 비난할 이유는 없다.

이후 이승만과 임정의 관계는 완전히 끝난 것처럼 보였으나 다시 한 번 두 세력이 손을 잡는 사건이 발생한다. 1931년 만주사변이 발발하고 뒤이어 일본의 국제연맹 탈퇴 가능성이 높아지자, 국무령이었던 김구가 국제연맹에 한국의 독립 문제를 전달할 특명전권대사로 다시 한 번 이승만을 보내기로 결정했다.

1933년 1월 제네바에 도착한 이승만은 일본의 만행을 규탄하고자 『만주의 한인들』이라는 선전용 책자를 국제연맹에 제출하고 독립을 역설했으나 그의 발언력은 없다시피 했다. 이때 그가 국제연맹에 제출한 주요 의제는 '만주국에서의 조선인의 지위'로 이 지역의 조선인들을 중립국민의 자격으로 대우해달라는 것이었는데, 국제연맹에서 만주국이 합법정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을 보고 뭔가 기대를 한 모양이었지만, 국제연맹은 양쪽을 다 씹는 공평한 처사(...)로 이승만의 기대를 참혹하게 배신했다. 이미 이런 상황에서는 국제연맹이 한국의 독립과 만주국 조선인들의 중립국화를 승인하든 자시든 의미가 없기도 했다. 이후 일본은 중국과 한국에서 저지른 만행들이 뭉쳐져서 자국에 대한 비난으로 돌아오자 국제연맹을 탈퇴한다.

결국 외교독립 노선 역시 국제연맹의 무력함과 함께 예정된 실패로 끝났다. 당연히 대한민국에서 국제연맹에 관한 평가는 최악 그 자체. 애초에 근대사 자체가 '제국주의에 의한 핍박으로 점철된 암흑시대'라고 까이는 한국[37]에서 그 제국주의의 첨병 역할을 하던 국제연맹이 좋은 평가를 받는 게 더 이상할 수밖에 없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유엔와는 정반대로 아주 한반도를 철저히 무시하고 전혀 도움을 주지 못했던 단체라 할 수 있다.

5.4. 대중매체의 국제연맹[편집]

복거일대체역사소설비명을 찾아서에서는 미국과 일본이 1940년에 국제연맹에 가입하고 2차대전 기간에도 유지되어 배경이 되는 1987년까지 국제연맹이 여전히 유지되고 있고, 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 일본이 상임이사국이 되어 사실상의 국제연합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영국과 프랑스의 식민지는 여전히 독립하지 못하고 있으며, 베트남, 케냐에서 무장독립투쟁이 벌어지고 있다. 마셜 군도 등은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지 않으면서 그대로 일본의 위임통치령으로 남아 있고, 중화인민공화국중화민국이 국공내전 당시 일본의 개입으로 황허 강을 경계로 휴전하여 단치히 자유시 대신에 중국이 분단되어 영토분쟁 상태가 된 상해, 즉 상하이 자유시가 존재하며, 이곳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만약에라는 대체역사소설 에세이집 2권에서는 존 루카치는 시어도어 루즈벨트1912년 대통령이 되었다는 가정을 한다. 여기서 루즈벨트는 닥치고 내 말 들어라라는 식으로 일단 전쟁을 종결시키고 만국평화회의를 연 뒤 미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국가를 강제로 가입시키는 쾌거를 보이지만, 결국 전쟁은 또 일어나고 만다는 암시를 준다.

이것은 1차대전이 온건하게 끝났다고 해도 2차대전의 발발이 어느 정도는 필연이었다는 시각을 반영한다. 심지어 러시아 혁명을 차단했다는 가정 하에서도. 바로 앞의 앨리스테어 혼이 쓴 "엠스 전보 사건보불전쟁 발발의 가능성이 나폴레옹 3세의 침착한 태도 덕에 사라지면서 양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지 않게 되었다"는 가정과는 상충되는 점. 바로 뒤의 로버트 L. 오코넬의 가정에서는 독일이 승리하지만 독일 혁명으로 전쟁은 대충 정리되고 윌슨의 계획은 한방에 씹힌다.

TRPG 게임 겁스 무한세계 속의 평행우주 중 하나인 건스백에서는 국제연맹이 '세계과학위원회'의 버프를 받아 원자폭탄을 비밀리에 개발하고 있던 이오시프 스탈린의 소련을 박살내는 등 국제연합 못지않은 믿음직스러운 국제 기구로 거듭나게 된다. 소련과의 세계대전 이후에는 상비군인 "연맹평화유지군"도 두고 있다.

물론 이 세계의 국제연맹은 서구 열강의 입장에서만 평화의 수호자로 여겨지지, 식민지인들는 원수나 다름없다. 정말로. 인도와 아프리카에서 반(反)연맹 반란이라고 쓰고 독립투쟁이라고 읽는 것연맹평화유지군으로 진압했다. 또한 아직도 건스백에서는 인종차별성차별이 공공연히 이루어지고 있다. 이 세계에서도 당연히 한국은 일본 제국의 지배하에 있다. 사실상 연맹은 세계과학위원회의 지시를 받고 있는 꼭두각시일 뿐이다.

한국에서 연재된 인터넷 소설 내가 히틀러라니!에서는 독일이 재가입하며 존속되어 국제연합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1] 1939년에서 41년까지 쓰인 준공식기 이다.[2] 아래에서 자세히 설명.[3] 줄여서 LoN이라고 하기도 한다.[4] 해당 국가는 현재 존재하는 국가가 아니라 국제연맹 창설 당시의 국가를 기준으로 하였으므로, 현재 존재하는 국가의 명칭, 영토와는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다.[5] 국가의 순서는 대서양을 기준으로 서에서 동쪽으로 순차적으로 나열함.[6] 창설 당시 영국의 자치령(dominion)이었던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남아프리카 연방, 영국령 인도 제국은 별도의 회원 자격을 지닌 채 출범했다. 하지만 1931년, 웨스트민스터 헌장이 발효되어 이들이 영국 본국과 대등한 지위를 지닐 때까지는 사실상 영국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영국은 국제 연맹에서 여러 표를 행사하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7] 뉴펀들랜드 래브라도 제외.[8] 중간에 탈퇴했다 다시 가입함.[9] 국제연맹의 위임 통치국이었다가 후에 가입함.[10] 대부분 구 독일 제국의 식민지이다.[11] 영국이 위임 통치.[12] 프랑스가 위임 통치.[13] 지도 상엔 두 개로 나뉘어 있으나, 한 곳은 영국, 한 곳은 프랑스가 위임 통치한 곳으로, 두 곳 모두 현재의 카메룬이다.[14] 르완다 왕국과 부룬디 왕국의 연합체이며, 벨기에가 위임 통치.[15] 영국이 위임 통치.[16] 영국령 남아프리카 연방이 위임 통치.[17] 프랑스가 위임 통치.[18] 프랑스가 위임 통치.[19] 영국이 위임 통치.[20] 영국이 위임 통치.[21] 영국이 위임 통치하였으나 후에 위임 통치가 끝나고 국제연맹에 가입함.[22] 영국령 호주가 위임 통치.[23] 일본이 위임 통치.[24] 영국이 위임 통치.[25] 영국령 뉴질랜드가 위임 통치.[26] 미국은 국제연맹의 창설을 주장했고, 상임이사국 자리까지 받기로 하였으나 국제연맹에 가입하지 않았다.[27] 이 항목은 해당 지역이 너무 많아서 지배하는 국가를 기준으로 분류했다.[28] 국제 연맹의 창설 당시 뉴펀들랜드 래브라도는 캐나다 소속이 아니라 별개의 영국 식민지였다(애초에 캐나다도 브리티시 컬럼비아, 퀘벡 등 많은 영국 식민지들의 연합이었으니). 따라서 뉴펀들랜드는 국제연맹에 가입하지 못했다. 게다가 1930년대에는 세계 대공황에 의해 뉴펀들랜드 정부가 자치권을 영국에 반납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1949년에야 주민투표를 통해 캐나다에 소속되었으므로 유엔에 가입하지도 않았다.[29] 소속 국가가 7개나 되어서, 어쩔 수 없이 프랑스령을 중복 표기했다.[30] 이들 두 지역은 아직 미국의 정식 회원 주가 아닌 속령이었다.[31] 기타 지도에서 보이지 않아 누락된 지역도 채워주길 바랍니다.[32] 이에 반해 같은 제1차 세계 대전의 패전국이었던 오스트리아와 헝가리, 불가리아는 국제연맹에 가입했다.[33] 먼로 독트린도 독트린이지만, 회원국의 1/3에 달하는 남미 17개국과 대등한 상황이란 것도 맘에 안 들었을지도 모른다. 윌슨은 결국 이 죽도 밥도 안 되는 상황에서 반신불수로 쓰러져 아내가 사실상 직무를 대행했고, 정권도 공화당에 빼앗겼으며, 4년 후 사망했다.[34] 이 미스터리한 대공황의 간접적인 원인이 이 국제 기구의 창설배경이기도 한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걸 생각하보면 매우 기구하면서도 아이러니한 운명이 아닐 수가 없다.[35] 근데 또 다르게 생각해보면 깡패 놈이 약한 놈 패는데, 동네 싸움 날까봐 그냥 싸움 냅두고 다른 애들 보고 끼어들지 말라고 내버려둔 격이다. 더구나 소련이랑 나치는 회원국이 아니어서 잘만 후원했다.[36] 물론 팔레스타인이라든지 대만이라든지 세르비아라든지 남아프리카 공화국이라든지 예외적인 케이스가 있고, 냉전 시대 당시 대한민국북한도 수십년간 이런 케이스였다.[37] 때문에 한국사학계에서 현대의 시작은 1910년대라는 서양사적 관점을 절대 인정하지 않고 있다. (사학계뿐 아니라 일반적으로 한국에서 '현대'라고 하면 최소한 한국전쟁이 끝난 1950년대 이후(뒤의 시기로 상정하는 드문 경우도 있긴 하지만 반대의 경우는 별로 없고, 있어도 그나마도 광복 전인 1945년 이전은 없다.)를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