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서울현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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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민족의 얼이 서린 곳.
조국과 함께 영원히 가는 이들
해와 달이 이 언덕을 보호하리라.
1. 개요[편집]
서울특별시 동작구 현충로 210 (동작동)에 소재한 국립현충원. 1955년에 '국군묘지'라는 명칭으로 개장하였으며, 1965년 국립시설로 승격되어 '국립묘지'로 불리었다. 이후 2006년에 '현충원'으로 변경되었으며, 현재 대한민국 국방부 산하 기관이다.
개장 당시에는 6.25 전쟁 때 전사(戰死)했던 군인, 대한민국 군무원, 종군자를 안장하는 위주로 갔었으나, 국립묘지로 승격되면서 일제강점기 때 일제(日帝)에 맞서 싸우다 순국(殉國)한 애국자 및 독립유공자 등의 호국영령을 비롯해 경찰, 향토예비군의 영현까지 안장함에 따라 호국보훈 및 추모시설로 범위를 넓혀나가게 되었다.
묘역에는 일반묘역과 애국자 및 독립운동가 묘역, 군인 묘역, 경찰 묘역, 무명용사 묘역 등이 있으며 현충탑, 현충문, 현충선양관, 충렬대, 전쟁기념관, 무명용사의 탑이 있다.
매년 현충일이 되면 이곳에서 현충일 추념식이 열리며, 대통령을 비롯한 국가 및 정부요인, 각계 인사들이 참석하여 현충탑 앞에서 분향 및 헌화 의식을 가지기도 한다.[2] 또한, 신정 아침에도 대통령이 반드시 처음으로 가는 곳이며, 국회의원, 대통령 선거 출마자나 당선자의 경우 거의 첫 일정이 현충원을 방문하여 참배하는 것[3]이다. 그 외에 참배객들과 보훈유족들이 방문하여 복잡하고도 시끌벅적한 분위기를 만들기도 한다.[4] [5]
국립대전현충원 신설 이후로 일반적인 묘 안장이 중단되었지만, 대전 현충원 포화에 대비하여 실내 봉안시설인 충혼당이 건설됨에 따라 유족의 의사에 따라 서울 현충원 충혼당에 유해를 봉안하는 경우도 있다. 윤승주 일병과 김지훈 일병 등의 유해도 유족의 뜻에 따라 대전 현충원 안장 대신 서울 현충원에 봉안되어 있다.
국방부 소속이기 때문에 해당 지역을 관할하는 대한민국 육군 제52보병사단 예하부대인 52경비대에서 현충원을 경비했으나, 경비업무가 민간으로 넘어가면서 2008년 11월 21일 해체되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방문하여 참배한 적도 있다. 지금은 상상하기 힘들지만 아베 신조 집권 초기에 아베는 친한파 정치인이었다. 일본 총리로서 현충원에 참배한 것도 아베가 최초였다. 대한민국의 정권교체 이후 반한으로 변질되었지만. 아베 국립현충원 참배
평상시에도 개방되어 있으며, 인근 주민들이 산책하기도 한다. 또한, 벚꽃철이나 단풍철에는 꽃구경하러 많이 찾아온다.
중, 고등학교의 단체 봉사활동으로 종종 와서 잡초를 뽑거나 비석을 닦는다. 잡초 뽑으랬더니 잔디 이삭만 주구장창 뽑는 건 덤.
개장 당시에는 6.25 전쟁 때 전사(戰死)했던 군인, 대한민국 군무원, 종군자를 안장하는 위주로 갔었으나, 국립묘지로 승격되면서 일제강점기 때 일제(日帝)에 맞서 싸우다 순국(殉國)한 애국자 및 독립유공자 등의 호국영령을 비롯해 경찰, 향토예비군의 영현까지 안장함에 따라 호국보훈 및 추모시설로 범위를 넓혀나가게 되었다.
묘역에는 일반묘역과 애국자 및 독립운동가 묘역, 군인 묘역, 경찰 묘역, 무명용사 묘역 등이 있으며 현충탑, 현충문, 현충선양관, 충렬대, 전쟁기념관, 무명용사의 탑이 있다.
매년 현충일이 되면 이곳에서 현충일 추념식이 열리며, 대통령을 비롯한 국가 및 정부요인, 각계 인사들이 참석하여 현충탑 앞에서 분향 및 헌화 의식을 가지기도 한다.[2] 또한, 신정 아침에도 대통령이 반드시 처음으로 가는 곳이며, 국회의원, 대통령 선거 출마자나 당선자의 경우 거의 첫 일정이 현충원을 방문하여 참배하는 것[3]이다. 그 외에 참배객들과 보훈유족들이 방문하여 복잡하고도 시끌벅적한 분위기를 만들기도 한다.[4] [5]
국립대전현충원 신설 이후로 일반적인 묘 안장이 중단되었지만, 대전 현충원 포화에 대비하여 실내 봉안시설인 충혼당이 건설됨에 따라 유족의 의사에 따라 서울 현충원 충혼당에 유해를 봉안하는 경우도 있다. 윤승주 일병과 김지훈 일병 등의 유해도 유족의 뜻에 따라 대전 현충원 안장 대신 서울 현충원에 봉안되어 있다.
국방부 소속이기 때문에 해당 지역을 관할하는 대한민국 육군 제52보병사단 예하부대인 52경비대에서 현충원을 경비했으나, 경비업무가 민간으로 넘어가면서 2008년 11월 21일 해체되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방문하여 참배한 적도 있다. 지금은 상상하기 힘들지만 아베 신조 집권 초기에 아베는 친한파 정치인이었다. 일본 총리로서 현충원에 참배한 것도 아베가 최초였다. 대한민국의 정권교체 이후 반한으로 변질되었지만. 아베 국립현충원 참배
평상시에도 개방되어 있으며, 인근 주민들이 산책하기도 한다. 또한, 벚꽃철이나 단풍철에는 꽃구경하러 많이 찾아온다.
중, 고등학교의 단체 봉사활동으로 종종 와서 잡초를 뽑거나 비석을 닦는다. 잡초 뽑으랬더니 잔디 이삭만 주구장창 뽑는 건 덤.
1.1. 안장자[편집]
1965년 미국 하와이에서 초대 대통령 이승만 전 대통령이 사망한 이후 이곳에 안장되었고, 1979년에는 10.26 사태 이후 사망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안장되었으며, 2009년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폐렴으로 사망한 이후 안장되었고 2015년엔 김영삼 전 대통령이 사망함에 따라 이곳에 안장되었다. 이에 따라 현재 고인이 된 국가원수 4인의 묘가 있다[6]. 김대중 전 대통령은 본래대로면 대전현충원의 국가원수 묘역 혹은 화장 후 충혼당 봉안을 해야 했으나, 유가족들이 국민들의 참배가 용이토록 서울에 묘역을 마련해 달라고 청원한 것을 이명박 대통령이 수락해 특별히 안장되었고, 이 전례에 따라 김영삼 전 대통령도 서울에 안장되었다. 전 대통령들의 공적으로 보아 용인 가능한 것이라는 주장과 모범을 보이지 않고 이후 전 대통령들도 특례를 요구할 시 거절할 근거를 없앤 나쁜 선례를 남겼다는 주장이 대립하고 있다. 때문에 국립대전현충원에는 최규하 대통령 만이 남게 되었다. 현재 생존해 있는 전직 대통령 전원(전두환, 노태우, 이명박, 박근혜) [7]이 서울이건 대전이건 현충원 안장이 아예 불가능하기 때문에, 최규하 전 대통령은 상당한 기간동안 국립대전현충원 국가원수묘역의 유일한 묘소로 남을 전망이다.
그리고 2019년 6월 10일에 세상을 떠난 이희호여사가 남편인 김대중 전 대통령 묘역에 안장되었다.
철도공무원들 중 김재현 기관사가 최초로 이곳에 안장되었다.[8] 고인은 1950년 7월에 미 육군 제24보병사단장 윌리엄 딘 육군소장 구출 작전에 참가했다가, 온 몸에 8발의 총탄을 맞고 사망했다. 공무원 출신으로는 드물게 장교 묘역에 있다.
외국인으로는 석호필(스코필드) 박사가 이곳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되었고, 장후이린[9], 위쉬팡[10]도 중화민국 국적으로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되어 있다.
스포츠계의 유명인으로는 2016년 9월 8일 자살로 생을 마감한 야구 해설가인 하일성 KBO 전 사무총장이 이 곳 충혼당에 안치된다. 사유는 베트남 전쟁 참전용사 자격이다.
서울현충원 2번 사병 묘역에는 육군 중장, 즉 장군의 신분으로 장군 묘역을 거부하고 유언에 따라서 최초로 사병 묘역에 안장된 채명신 장군 묘소가 있다. 묘번은 34489로, 묘지에 들어서는 화강암 비석도 일반 사병의 것과 똑같다. 퇴역 직후부터 평소에도 서울 현충원에 오면 자신은 이렇게 살아있고 부하들은 여기 잠들어 있다면서 통곡을 했다고 하며, 그래서 채명신 장군이 스스로 자신이 죽으면 여기에 묻혀야 하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를 위해서 청와대에 편지를 보내는 등 우여곡절 끝에 김관진 국방부 장관이 조문을 하면서 사병 묘역에 안장하는 방안을 유가족들에게 전달했다고 한다.
5.18 민주화운동의 계엄군 중 28명이 28묘역에 안장되어 있는데 이들은 시위를 하지 않은 민간인에게도 발포한 바 있어 그 논란이 거세다. 그 외에도 일부 무자격자가 안치되어 있는데,사실 이는 대전도 마찬가지.아마 대대적인 조사를 하지 않는 이상 무자격자들을 가려내긴 어려울 것이다.[11][12]
중종의 후궁으로 선조의 할머니이자 덕흥대원군의 어머니인 창빈 안씨의 무덤도 이곳 안에 조성되어 있다. 다만 의도하고 안장한것은 아니고, 예전부터 묘역이 만들어져 있다가 현충원이 조성될때 의도치 않게 겹친것.
살아있는 사람 묘도 있다.# 무덤 주인에 대한 내용은 항목 참조.[13][14]
그리고 2019년 6월 10일에 세상을 떠난 이희호여사가 남편인 김대중 전 대통령 묘역에 안장되었다.
철도공무원들 중 김재현 기관사가 최초로 이곳에 안장되었다.[8] 고인은 1950년 7월에 미 육군 제24보병사단장 윌리엄 딘 육군소장 구출 작전에 참가했다가, 온 몸에 8발의 총탄을 맞고 사망했다. 공무원 출신으로는 드물게 장교 묘역에 있다.
외국인으로는 석호필(스코필드) 박사가 이곳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되었고, 장후이린[9], 위쉬팡[10]도 중화민국 국적으로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되어 있다.
스포츠계의 유명인으로는 2016년 9월 8일 자살로 생을 마감한 야구 해설가인 하일성 KBO 전 사무총장이 이 곳 충혼당에 안치된다. 사유는 베트남 전쟁 참전용사 자격이다.
서울현충원 2번 사병 묘역에는 육군 중장, 즉 장군의 신분으로 장군 묘역을 거부하고 유언에 따라서 최초로 사병 묘역에 안장된 채명신 장군 묘소가 있다. 묘번은 34489로, 묘지에 들어서는 화강암 비석도 일반 사병의 것과 똑같다. 퇴역 직후부터 평소에도 서울 현충원에 오면 자신은 이렇게 살아있고 부하들은 여기 잠들어 있다면서 통곡을 했다고 하며, 그래서 채명신 장군이 스스로 자신이 죽으면 여기에 묻혀야 하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를 위해서 청와대에 편지를 보내는 등 우여곡절 끝에 김관진 국방부 장관이 조문을 하면서 사병 묘역에 안장하는 방안을 유가족들에게 전달했다고 한다.
5.18 민주화운동의 계엄군 중 28명이 28묘역에 안장되어 있는데 이들은 시위를 하지 않은 민간인에게도 발포한 바 있어 그 논란이 거세다. 그 외에도 일부 무자격자가 안치되어 있는데,사실 이는 대전도 마찬가지.아마 대대적인 조사를 하지 않는 이상 무자격자들을 가려내긴 어려울 것이다.[11][12]
중종의 후궁으로 선조의 할머니이자 덕흥대원군의 어머니인 창빈 안씨의 무덤도 이곳 안에 조성되어 있다. 다만 의도하고 안장한것은 아니고, 예전부터 묘역이 만들어져 있다가 현충원이 조성될때 의도치 않게 겹친것.
살아있는 사람 묘도 있다.# 무덤 주인에 대한 내용은 항목 참조.[13][14]
2. 사건사고[편집]
- 관련문서 : 북한의 대남 도발사
1970년에 북한에서 남파된 간첩 3명이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리는 한국전쟁 20주년 기념식에 참여할 예정이었던 대통령 및 정부 요인을 암살하기 위해 정문인 현충문에 폭탄을 설치하던 중 폭탄이 그대로 폭발하여 폭탄을 설치하던 간첩 1명이 사망하였고 현충문이 일부 파손된 사건이 있었다.
3. 교통[편집]
4호선과 9호선이 만나는 동작역, 그리고 동작대교가 국립서울현충원과 인접해 있다.4호선역과는 좀 멀지만,9호선과는 매우 가깝다. 이 역의 부역명이 주역명인 대전의 모 역과 심히 비교된다 9호선 동작역 8번 출구로 나가면 바로 정문이다. 특히나 현충일 때에는 도로도 막히니 지하철을 타고 오는 것을 추천한다. 정기공연 음악회 감상을 하려면 7번출구로 나가면 빠르다. 4호선 출구로 나가면 한참 걸어야 한다. 그렇치만 지하도 걷는거리나 지상으로 걷는거리나 비슷하긴 하나, 4호선 출구의 경우 계단과 언덕이 있다
[1] 2016년 3월 29일 대한민국 정부 통합 정부상징으로 교체와 함께 상위 기관인 국방부 로고로 교체.[2] 대통령 부재 시에는 국무총리가 대신 참석하여 추념사를 낭독한다.[3] 보통 지역구 의원은 해당 지역의 국립묘지를 찾는다.[4] 심지어 평상시에는 보이지 않던 노점상들이 등장한다. 명절에도 현충일만큼은 아니지만 많다.[5] 특히 일부 철부지 꼬마들이 묘역에 꽂아놓았던 태극기를 뽑아 장난감으로 삼기도 하여 묘역에 꽂힌 태극기들이 뽑히는 수난을 당하기도 한다.[6] 노무현 전 대통령은 개인의 유언에 따라 자기 고향 땅인 경상남도 김해시인 봉화산에 묻혀있다.[7] 탄핵된 자는 현충원에 안장될 권리를 박탈당하므로, 박근혜 전 대통령은 현충원에 안장될 수 없다.[8] 위패는 대전에 있다.아이러니.[9] 姜惠霖(1924~1951), 한국식 독음은 강혜림. 평양에서 중국요리 음식점을 운영하다가 국군 제1보병사단 15연대 하 "중국인특별수색대"에 입대했다. 1951년 2월 2일 중공군 군복으로 위장하고 관악산을 점령하고 있는 중공군을 상대로 정찰을 하던 중 교전이 벌어지자 중공군 정예병력과 백병전 도중 전사했다. 1964년 현충원에 안장되었다.[10] 魏緖舫(1923~1989), 한국식 독음은 위서방. 국부군 장교 출신으로 1949년 화교 청년들과 함께 한중반공애국단(韓中反共愛國團)을 조직해 국군이 평양에 입성할때 협력했고 이후 국군 제1보병사단 15연대 하 "중국인특별수색대"에 입대했다. 전후 한의사가 되어 의료봉사와 장학사업을 하였으며 1989년 별세. 이후 국무회의 결의를 거쳐 현충원에 안장되었다.[11] 일부 무자격자라지만 거의 만장인 서울현충원을 감안했을때 일부가 백 명이 넘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계엄군 외에도 친일반민족행위자나 베트남 전쟁 때 현지 여성을 강간한 강간범들도 묻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12] 물론 이들 모두가 발포하거나 범죄를 지른 자들이란 뜻은 아니다. 경찰들 경우 안병하 경무관 명령 아래 절대 과잉진압을 하지 않았지만 순직한 경찰관들도 있었고 계엄군도 말그대로 억지로 끌려왔다가 전교사와 11공수여단의 오인총격전과 같이 교전 도중 순직한 군인들도 있다. 일일이 그들이 무슨 역할을 했는지 알 수 없어서 안장 자격의 유무를 밝혀내기는 어렵다.[13] 당시 국방부의 어이없는 행정 실수로... 포로가 된 사람이 전사처리 되었고 전사통지서까지 유족(?)들에게 배달되었다고 한다.가족들은 죽은 줄 알았던 사람이 휴전후 어슬렁어슬렁 들어오는거 보고 얼마나 기쁘면서도 황당했을까 [14] 본인도 무덤의 존재 자체는 알고 있으며 가끔 방문한다고 한다. 아마 사후 이곳에 안장되는건 확정인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