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기무사령부

최근 수정 시각:

기무사

파일:attachment/국군기무사령부/DSC.png

國軍機務司令部
Defense Security Command (DSC)

파일:external/www.koreadefence.net/1390283182-24.jpg

국군기무사령부 홈페이지

국가를 지키는 또 하나의 방법 1337

충성(忠誠) · 명예(名譽) · 정의(正義)

조국과 자유는 우리의 생명
멸공의 깃발 아래 굳게 뭉쳤다
악마의 붉은무리 무찌르고서
영광의 통일전선 앞장을 서리
굴복을 모르는 화랑의 후예
국민의 힘이 되는 기무부대
미덥다 든든하다 정의의 후예
살아있는 성벽이다 기무부대


— 기무부대가


1. 개요2. 업무3. 역사4. 살아있는 흑역사5. 기무부대6. 지원 및 선발7. 출신인물8. 관련 문서9. 여담

1. 개요[편집]

군내 방첩업무 및 군인과 군사기밀에 대한 보안 감시를 하는 국방부 직할부대로 사령관은 중장이다. 경기도 과천시에 있다. 동아일보, 경기일보. [1] 미국 제24군단의 정보기관 CIC를 모델로 하였다. 김창룡이 역대 기무사령관에 들어가있다(당시 이름은 특무대).

다시 또 명칭이 보안사령부, 약칭 보안사로 바뀌었으나 현 명칭은 91년 바뀌었다. 전혀 관련이 없지만 그전에 국방부에는 제3국과 제4국이라는 수사기관이 있었으나 훗날 해체된다. 북한에는 우리의 기무사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조직인 보위사령부가 있다.

정보기관의 일종이므로 보안 문제에 민감하다. 만일 불법적인 내용이 적힌 것을 발견하면 기무사에 신고하면 포상을 받을 수도 있으니 신고하도록 하자.[2]

군인사법 시행령 제25조의2 제1항 제1호와 별표 1에는 사령관과 사령부 참모장이 임기제 진급 자리로 규정되어 있고, 육군의 몫으로 지정되어 있다. 더해서 몇 개 기무부대의 장 직위도 임기제 진급 보직으로 규정되어 있고 각군별로 자리가 할당되어 있다.[3] 무엇보다 1337 신고전화가 24시간이 아니다! 군 일과시간(06시30분-18시)까지만 가능하니 참고바람

2. 업무[편집]

군사보안지원, 군 방첩, 군관련 첩보 수집 및 처리, 특정범죄 수사 등의 임무를 담당하고 있다. 군 내부 범죄에 대해 크든 작든 수사권이 있는 조직은 헌병, 기무, 법무 세 곳이다. 민간으로 치면 헌병은 경찰, 기무는 국정원, 법무는 사법부와 검찰이다. 이 세 곳은 서로 '不可近 不可遠'(불가근 불가원)의 관계에 있다.

3. 역사[편집]

국군기무사령부 변천사

1940년 ~ 1950년

1950년 ~ 1960년

1960년 ~ 1968년

조선 경비대 정보처 특별조사과(1948년 5월)
→특별조사대(1948년 11월)
육군본부 정보국 방첩대(1949년 10월)

육군 특무부대(1950년 10월)
Counter-Intelligence Corp

육군 방첩부대(1960년 7월)
Special Investigation Service

해군 방첩대 (1953년)
National Security Unit

공군 특수수사대 (1954년)
Office of Special Investigation

1968년 ~ 1977년

1977년 ~ 1991년

1991년 ~ 현재

육군 보안사령부(1968년 9월)
Security Command

국군 보안사령부(1977년 9월)
(해군 방첩대, 공군 특별수사대 통합)
Security Command

국군 기무사령부(1991년 1월)
Defense Security Command

해군 방첩대
National Security Unit

공군 특수수사대
Office of Special Investigation

부대 이념- 자유대한민국 수호 및 자유민주주의체제로 통일 지원


육군의 방첩부대는 6.25 전쟁 당시 육군특무부대란 명칭으로 창설되어 이후 육군방첩부대육군보안사령부 순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해군의 방첩부대는 해군방첩부대로 창설되어 해군보안부대 변경 되었고, 1973년 해병대의 해병보안부대를 흡수 하였다. 공군의 방첩부대는 제20특무전대 예하의 대공수사부대인 26특수수사대였고, 1977년 육·해·공군의 방첩부대를 통합해 국군보안사령부를 창설 하였지만, 국군보안사령부 민간인 사찰 폭로 사건으로 인해 국군기무사령부로 명칭이 바뀌었다.

창설 당시부터 지금까지 한국군 내부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으며, 1960년대~80년대로 이어지는 군사정권 시기에는 군 외부에 대한 영향력도 상당했다. 이는 본래 군 내부 및 군 관련 사항에 엄격히 제한되어야 할 수사권을 포괄적으로 적용한 결과였다. 군사정권 시절 보안사령관은 정기적으로 대통령과 독대 직접 보고를 하였다. 국방부 직할부대임에도 국방장관도 못 건드리는 위치였다. 중앙정보부만이 보안사를 견제하였다.

그러나, 10.26 사건 직후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중앙정보부장 서리까지 겸임하면서 국내의 모든 정보를 통제하게 된다.[4] 당연히 이후에 전두환과 하나회를 아무도 막을 수가 없었다. 그 영향력을 활용하여 권력을 탈취한 것이 바로 전두환을 위시한 하나회 세력. 당시 보안사령부의 정보력과 수사, 연행권이 박정희 사망이후 이들이 상황을 주도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언론통폐합 및 언론인 강제해직(K-공작계획), 야당인사 정치활동규제, 민정당 창당 심지어 국회의원선거 공천까지 보안사에서 주도했다. 1980년대 이후에도 야당 정치인사, 재야인사, 학생운동, 노동운동 등에 대한 민간인 사찰을 계속해 왔다. 유명한 녹화사업 역시 보안사의 작품.

그러다가, 1990년 윤석양 이병의 양심선언으로 언론에 폭로되는데 이것이 국군보안사령부 민간인 사찰 폭로 사건이다. 당시 폭로된 명단이 무려 1300여명. 심지어 당시 집권당 대표였던 김영삼도 있었다. 1991년 국군기무사령부로 명칭을 바꾼 것도 이러한 부정적 이미지를 개선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보인다. 사실 '기무(機務)'라는 명칭이 기존 이름인 '보안(保安)'보다 잘 사용되지 않는 용어라 모르는 사람들은 이곳이 당최 무슨 부대인지 알 수가 없다. 사전적으로 '기무(機務)'는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근본이 되는 중요한 일'이라는 의미와 '기밀을 유지해야 하는 일'이라는 의미가 있다. 기무사령부의 '기무'는 후자의 의미로 보인다. 즉 '기밀 임무'의 줄임말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5] 실제론 기무학교에서 고종황제의 특별기관인 '통리기무아문'의 '기무'에서 이름을 따왔다고 가르친다.

현재는 군 외부에 대한 영향력은 과거에 비해 상당 부분 줄어들었다. 적어도 겉으로 드러나는 부분에서는 말이다.이쪽 일이 원체 비밀이 많다 보니… 그렇지만 군 내부에 대한 영향력은 여전하다. 기무사 소속 장교·부사관은 해당 계급이 낮더라도 절대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거나. 군 내부를 대상으로 상당히 많은 정보를 수집/활용하지만 역시 대부분은 보안사항 이므로 작성금지.[6] 상사대대장도 함부로 말을 못한다. 상사의 경우 대령까지 독자적으로 조사할 수 있기 때문. 만약 기무사령부 상사에게 밉보였다가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고 마음 먹고 조사하면 꼬투리 잡혀서 불이익이 생길 가능성이 크기 때문. 애초에 계급이 높더라도 기무사 소속 군인들은 웬만해선 절대 건드리지 않는다.하지만 어느 정도 인맥이 있다면 동기의 전화번호를 물어볼 때… 부탁하기도 한다.

4. 살아있는 흑역사[편집]

녹화사업은 그 어떤 흑역사보다 악명이 높다. 녹화사업을 담당했던 서의남(보안사 3처5과장, 중령)은 2002년 국가기관(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요구를 거부하고 범죄증거일 수도 있는 자료를 다수 불태워버리고 잠적하여 수배되기도 했다. #

국군보안사령부의 민간인 사찰, 이른바 청명계획이 1990년 폭로되어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를 참조. 이 사건으로 인해 국군보안사령부는 이듬해 국군기무사령부로 명칭이 바뀌게 된다.

1993년 김영삼이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기무사령관의 대통령 독대를 없애고 국방장관과의 상하관계를 명확히 해 정상적으로 국방장관의 통제를 받게 하였다. 사령관 직급도 소장으로 한 계급 내렸으나 1년 만에 다시 중장으로 환원되었다.[7] 기무사령관은 중장 보직이며 기무사 부사령관과 참모장이 소장, 그 아래 수뇌부로 준장 7명이 편제되어 있다.# 기무사령관은 군 의전 서열에 있어 중장인 3성 장군/제독들 중 2번째 서열의 보직이며 따라서 이는 전체 현역 군인들 중 10위에 해당된다.[8] 국방일보 기사.

하지만, 2008년 MB정권이 들어선 후 기무사령관의 정기적인 대통령 독대가 부활하였고, 2009년 여름 기무사 수사관의 민간인 사찰이 폭로되었다. 사찰내용이 기록된 캠코더와 수첩 등 증거자료까지 나왔는데도 어물쩡 넘어가려다가 소송걸렸다.(...) 결국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소송 결과 2011년 1월 피해자들에게 국가가 배상하도록 법원판결이 나왔다. 법원, ‘기무사 민간인 사찰’ 국가 책임 인정. 거기다 이미 발각되고 나서인 2011년 10월에 와서도 조선대학교 교수의 이메일을 해킹하다 걸렸고(...), 이 때문에 기무사의 불법행각이 또 문제가 되었다.

기무사의 고유 임무는 군내 방첩업무 및 군인과 군사기밀에 대한 보안 감시이며, "치명적인 군사 보안 범죄나 군사기밀 유출 범죄, 군내 간첩활동에 연루되지 않는 이상" 민주주의의 '문민통제' 원칙에 따라 민간인은 원래 사찰하지 못하게 되어있다. 특히 문제가 된 모 기업 파업 사건과 같이 군사 보안과 상관없는 일에 대해서까지 기무사가 민간인을 사찰했다는 것은 묵과할 수가 없는 일이다.

2010년대 들어 현재 기무사 내부는 수많은 비리와 불륜으로 심각할 정도로 썩어있다고 한다. 특히 불륜 사건의 경우 중령급에서 개입하여 덮으려했다가 더 크게 터졌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실제로 2013년도 말 상당수의 중~대령이 제대날짜보다 앞서서 제대해버린 것을 보면 이를 무마하기 위한 더 윗선의 지시였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2015년에도 각종 비리와 불륜은 여전하다고.

2015년 5월 13일, 기무사 전현직 간부가 탄창 4만 6천개를 레바논 테러 조직에 팔아넘겼다는게 밝혀졌다.(...) #. 2015년 7월 10일, 해군 출신 기무사 소령이 중국에 돈을 받고 해군 구축함 관련 군사 3급 비밀(Confidential) 정보를 팔았다고 한다. 사건의 내막. 요약하자면, 중국에서 위탁교육을 받던 해당 해군소령이 폭력시비에 휘말렸었는데, 이사건의 해결사 역할을 해줬던 중국인과 친분을 쌓게 되었고, 이 중국인은 이 친분관계를 이용해,[9] 해당 소령에게 군사자료 및 기밀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부 인력이 60% 들어간 20여명 규모로 만든 기무사 특별직무감찰팀이 성추행 갑질 등 문제 부대원 100여명을 추려냈다고 한다. 2016년 10월에는 현역 기무사 간부(소령)가 채팅 성매매를 알선하다가 잡히는 일까지 발생했다 (...) 기사 1 기사 2

2017년 9월, 이명박 정부 당시 여론조작 활동을 했었던 것이 밝혀졌다. 이 때문에 군 검찰에게 압수수색(...)을 당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는데, 문제는 현재 군 사이버사 댓글공작을 자체조사하고 있는 국방부 TF를 감청(!)해 수사기밀을 이미 알아낸 사실이 들통났다. SBS

2018년 1월 15일,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전국 기무부대원들이 동시에 참여한 가운데 정치적 중립 준수를 결의하는 정치중립선포식을 하였다. 이석구 사령관(육군중장)을 비롯한 기무사 장성들이 차례대로 서울 청계산에서 떠온 물에 손을 씻은 뒤 흰 장갑을 꼈다. 지지 만졌으니까 손 닦고 와? 기사

2018년 2월, KBS가 군 내부 문건을 단독 입수하여 보도한 결과에 의하면, 이명박 정부 당시 기무사가 청와대와 결탁하여 무차별 여론조작을 하고, 굉장히 편향적인 정치관을 드러내며 선거 개입 의지까지 적극적으로 드러난 정황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면서 굉장한 파문이 일고있다.#1#2

5. 기무부대[편집]

예하부대로 사단급 이상 제대에 기무부대가 배치되어 있다. 보통 해당 제대 사령부 영내에 위치해있기 때문에 사령부는 불편한 동거를 하는 셈. 강력한 칼자루를 쥐고 있기 때문에 큰소리를 칠 수 있고 사령부도 어찌할 수 없어 병폐가 일어나기도 한다.[10]

일단 해당 부대 소속이 아닌 기무부대 소속이기 때문에 어찌할 수도 없거니와 기무부대도 해당 부대에 소속감이 없기 때문에 부대 막사를 제외한 시설관리가 소홀하다. 그러면서도 큰 행사가 있을 경우에는 사령부 시설을 쓰는데 거리낌이 없다. 물론 행사가 끝나고 뒷처리는 사령부에서 한다. 이런 면들 때문에 기무부대 장병들을 노골적으로 싫어하는 경우도 있으며 특히 정보/보안계열 처부의 경우 기무부대와 '가깝고도 먼 관계'가 된다. 신원조회, 대간첩업무, 보안감사 등 적지 않은 업무에서 기무부대와 협력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외의 다른 처부에서도 기무부는 별로 좋아하지 않으므로 자연스럽게 묘한 거리감이 자리잡기도 한다. 엮이자니 좋은 일은 없고, 멀리하자니 그렇고... 그래서 기무부와 친한 곳은 간부식당뿐이란 말도 있다.

그래서 관련 간부들은 기무부대를 두고 앞에서는 웃고 뒤에서는 씹는 경우가 많다. 업무관련 접촉 이외에 간부들이 기무부대를 가장 많이 찾을 때는 '장성급 진급 및 인사' 때. 장성급 장교의 경우 진급과 인사가 대외비로 되어 있고 이쪽이 가장 소식이 빠르기 때문이다.

특히나 일반부대 병사의 경우 행정병 보직을, 그것도 정보분야 보직을 받았을 경우 매우 피곤하게 되는 존재가 된다. 보통 하루이틀전에 통보를 하고 오지만 만약 당일 아침에 통보해서 10시쯤 온다면, 결과가 좋든 나쁘든 피보는건 정보병이다. 실제로 08:30에 통보를 받고 한 시간 동안 50여 대의 PC를 싸그리 점검하는 경우도 있는 듯.

실제로, 기무부대 보안담당 간부들은 보안감사능력이 탁월하여, 모르쇠로 일관하여 컴퓨터 내 기록을 삭제하거나, USB를 허가없이 무단 사용 한 경우에도 모두 기록 복구를 하여 혐의를 입증시키는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USB접속기록 삭제프로그램이 출동한다면 어떨까? 주로 모르쇠로 일관하다가 잡혀온 경우 하사와 같이 군 초년생이 많다. 보통 간부들은 잡혀오면 대체로 혐의를 인정하는 편이다. 보통 이곳에 혐의를 받고 들어오면 다음 계급으로의 진급률은 현저히 낮아진다.

지역에 주둔한 기무부대는 위장명칭을 쓴다. 예를 들어 대구지역의 경우 태백공사라고 한다.

6. 지원 및 선발[편집]

장교

육군

해군 / 해병

공군

임관 후 4~6년차 장기복무자
전투병과장교(항공포함)

임관 후 4~5년차 장기복무자

임관 후 4~5년차 장기복무자

교육성적 및 근무평정 우수자
- 임관 또는 고군반 30% 이내자

부사관

임관 후 2~5년차 하사 또는 중사로서 장기복무자 또는 장기복무 희망자
양성 또는 초급과정 교육성적 상위 30% 이내자
인성 및 근무경력 우수자

구분

행정병

특기병

선발대상

육군교육사 육군훈련소 입영자
해군교육사 1군사교육단 입영자
해병대교육단 입영자
공군교육사 기본군사훈련단 입영자

육군교육사 육군훈련소 입영자
- 병과학교 교육생
해군교육사 1군사교육단 입영자
- 후반기 교육생
해병대교육단 입영자
- 후반기 교육생
공군교육사 기본군사훈련단 입영자
- 후반기 교육생

자격조건

대학4년제 재학 이상 학력 소지자
신체 2급 이상

대학 4년제 재학 이상 학력 및 기술특기 소지자
(2010년이후로 행정병과 특기병의 모집 학력이 동등하게 변경됨)
신체 2급 이상

이곳에서 근무하는 육군, 해군, 공군, 해병대 신병훈련 중 면담/신원조회를 거쳐 선발한다. 육군(특기번호 1541)의 경우 논산 육군훈련소에서만 선발이 이루어진다. 행정병의 경우 논산에 입영한 징집병(일반병) 사이에서만 선발하며, 모집병(특기병)은 선발대상에서 제외된다. 선발된 인원은 국군기무학교에서 2주간 교육을 받은 뒤 전국의 기무부대로 배치된다. 해군 같은 경우는 병과에 따라 1명 내지 2명이 걸려서 간다고 하며 보통 후보는 5배수. 후반기 교육 최종 평가 당시 시험 본 후 배치 판정 받을 때 걸린다. 뽑는 인원은 매번 다르고 필요할때만 뽑기 때문에 육군의 경우 보통 논산훈련소 전체에서 5주동안 20명 이내 정도가 선발된다(운전병제외). 국방부 직할부대 특성상 고급 인력을 먼저 유치할 수 있는 '차출'의 개념을 사용하며, 최초 5배수 선발당시에는 훈련소 입소 2주차가 지난 시점에서 이루어지기때문에 훈련이 다 끝나야 어디를 배치 받을지 아는 병들로서는 대다수가 당황하게 된다.

배치 부대, 업무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자타 공인 환상의 보직. 하지만 파견 없는 부대에 배치되면 내부에서 불쌍하다고 위로받기도 한다. 따로 유격이나 혹한기 훈련같은 건 안받지만[11] 그만큼 매월 15일 민방위 훈련은 칼같이 받기도 한다. 간혹 해병대 장병들은 훈련이 없다는 것에 실망해서 강도높은 유격훈련을 받고 싶다는 소원수리를 제출하기도 하지만 가볍게 무시당한다. 하지만 최근 해병사단을 지원하는 예하기무부대(물론 간부와 병 모두 해병)에서는 부대장의 배려로 부대 해병들이 사단 해병들과 함께 각각 1주와 3주간의 유격훈련과 기습특공 훈련을 받고 수료하였다. 2011년도 부터는 국방부 지침이 내려오면서 2박3일 유격이 실시되었는데 해군, 공군도 예외없이 실시한다.

사령부 본부에서 근무하게 되면 간부 대비 병의 비율이 안습 수준(병사 수<<<<장교 수<<<부사관 수)이기 때문에, 육체적으로는 타 부대보다 편할지 모르나, 오히려 예하대만 못한 경우가 많으며 정신적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병사가 각 부서에 배치되어서 근무하는 시스템인데, 부서 별로 사무실이 굉장히 많고 병사 수는 작기 때문에 병사는 홀로 다수의 간부들과 함께 사무실에서 근무한다. 고로 짬밥을 먹어도 만년 막내신세이다.

간혹가다 아직도 기무부대 병이 사복입고 핸드폰 들고 다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당연히 기본적인 근무는 근무복[12] 혹은 전투복[13] 사복은 휴가나갈 때만 입었으며, 그것도 2009년 2월 공문이 내려와 폐지되어 휴가때도 전투복이나 근무복, 정복을 입고 나간다. 아니면 가지고있던 사복을 출타때 승인받고 입고가는 경우도 많다. 업무 특성상 사복을 입는 병들이 존재하기는 하나, 당연히 업무 때문에 허가되는 것이다. 그러나 외출이나 외부행사 때문에 관물대에 사복을 가지고 있는 병사가 대다수. 사복을 착용햐야하는 보직들은 피복비가 1회 지급되지만 워낙 액수가 작아 세트를 구매하지 못하거나 아주 저렴한 세트로 맞추는 경우가 많다. 핸드폰의 경우 당연히 일반병은 가지고 다닐 수가 없고 간부를 모시고 다니는 운전병에 한해서 지급된다. 그리고 지급되는 핸드폰도 피처폰이 지급된다.

일부의 경우 기무사 나오면 나중에 취직 안된다면서 일부러 1차과정에 선발되도 생까는 경우도 있지만 근거 없는 이야기. 다만 육체적 카타르시스를 경험하려 자원한 해병대에서 기무사에 차출될 경우 슬퍼한다는 이야기는 있다. 대신 간부의 경우 기무사 소속이었다가 출신 군의 일반 부대로 빠지는 경우가 있는데(물의를 빚어 원복당하는 경우), 이 경우 몇년 동안 감시를 당한다고 한다.

7. 출신인물[편집]

  • 장교 및 병

    성명

    비고

    윤석양

    1990년 10월 4일 육군 이등병 신분으로 국군보안사령부 민간인 사찰 폭로 사건 때 불법 사찰 내용을 양심 선언하여 그 해 가을 노태우 정권 퇴진 운동을 일으키는 원동력이 된 인물이며, 부대 이름도 보안사에서 기무사로 바꾸는 데 영향을 끼쳤다.

    허삼수

    육사 17기. 하나회 회원으로 12.12 군사반란때 전두환이 사령관으로 있던 보안사령부의 인사처장이었다. 반란 성공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후 준장으로 예편, 청와대로 들어가 전두환 대통령의 비서실 사정수석비서관을 지냈다.

    허화평

    육사 17기. 하나회 회원으로 12.12 군사반란때 전두환이 사령관으로 있던 보안사령부의 비서실장이었다. 반란 성공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후 준장으로 예편, 청와대로 들어가 전두환 대통령의 비서실 보좌관과 정무1수석비서관을 지냈다.

    오세훈

    1988년 5월 사법연수원을 마치고 육군에 입대하여 보안사 정보처로 발령받아 약 30개월간(89년 7월~91년 1월) 근무했고, 1991년 2월 중위로 군 복무를 마쳤다. 정훈장교(군사교육정책분석장교)로 주로 '문무대전방입소'(80년대 대학생 입소훈련) 관련 업무를 담당했다.

    이서진

    연예인 이서진이 맞다. 해당 문서 참조

8. 관련 문서[편집]

9. 여담[편집]

파일:NISI20151019_0006029522_web.jpg
▲2017년까지의 국군기무사령관 부착물. 지휘관 휘장을 패용했다.

파일:PYH2018012517900001300_P4.jpg
▲2018년부터 바뀐 국군기무사령관 부착물

2017년 12월까지는 사령관이라 지휘관 휘장은 패용하는데, 지휘자 견장은 착용하지 않는 다소 이상한 부착물 패용을 해왔다. 그러나 지난 2018년 1월, 국군기무사령관용 흉장이 새로 제정되었다.

제37대 사령관인 허평환 중장까지는 기무사령관 재직시절 지휘관 휘장을 패용하지 않았으나, 제38대 사령관인 김종태 중장시절부터 기무사령관이 지휘관 휘장을 패용하는 모습이 보인다. 이후 취임하는 사령관들은 모두 지휘관 휘장을 패용하여 현재에 이른다.


[1] 2008년 이곳으로 이전 후, 옛 건물은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으로 사용 중. 기무사 건물을 리모델링하여 현대미술관 일부 건물을 만들었다.[2] 어떤 내용을 적는 게 겁난다면 판례, 신문기사, 정부 웹사이트 등 국민에게 공개된 정보라는 근거를 함께 기술하면 된다.[3]
육군: 제100부대, 제101부대
해군: 제102부대
공군: 제103부대
[4] 중앙정보부장이 대통령을 암살한 초유의 사태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하였다. 물론 당연히 중앙정보부장 서리에 다른 중앙정보부 요원들을 임명할 수는 없었지만(김재규의 끄나풀이 중앙정보부 내부에 어떻게 분포하고 있을 지 모르므로) 그렇다고 해서 정보기관간 견제와 균형을 무시하고 다른 정보기관의 장에게 중앙정보부장 서리를 맞긴 것은 분명 당시 한국 정부의 실책이었다. 하여튼 이 사건 때문에 중앙정보부는 안기부로 이름을 바꾸고 새로이 출범하기 이전까지 보안사의 하위기관처럼 전락해 버리고 만다.[5] 1894년 1차 갑오개혁 당시 설치된 '군국기무처(軍國機務處)'에서 따왔다는 견해도 있는데, 여기서의 '기무'는 전자의 의미에 가깝다. 실제 군국기무처는 폐정 개혁을 위한 초정부적 기구로서, 정보 통제나 감시와는 무관한 '입법 기관'이었다.[6] 이를 어기고 함부로 작성하다가는 기무사에 끌려가서 조사받는 게 아니라면 기무사와는 전혀다른 정보기관에서 대접하는 식사를 하면서 조사를 받게된다.[7] 하나회 출신 기무사령관을 숙청 후 후임 사령관이 소장이어서 소장이 사령관이었다가 후임 사령관부터 다시 중장이 보임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하나회 문서를 참조.[8] 위로는 대장 8명+해병대사령관(중장 1위)이 있다.[9] 애초에 폭력시비 및 해결 과정 자체가 중국 정보기관에서 짜둔 시나리오에 걸려든 것으로 보인다.(...)[10] 흔히들 기무대라 부르나 엄밀히 말하자면 해당 사단 소속이 아닌 기무사령부에서 파견한 부대이므로, 기무부대가 정식명칭이다. 즉 미토콘드리아처럼 한 울타리 두집살림이 공식적 대접이라는 것.[11] 기무사 예하부대가 워낙 많다보니 각 기무 부대장이나 사령관의 재량에 따라달라진다. 사령부와 국방부기무부대, 210기무부대, 서울권 파견부대 등 서울권 기무부대는 수방사예하부대로 가서 수방사장병들과 유격을 받는다. 전방사단 기무부대의 경우 혹한기 훈련을 받는경우도 있다. 특전사기무부대의 경우에는 특전장병들과 함께 공수기본 훈련도 수료한다.[12] 해병,공군은 근무복이 전병력보급이지만 육군은 없기 때문에 해병, 공군과 같이 근무하는 국직부대나 수방사의 경우에는 육군 근무복이 보급 구두와함께 지급된다.[13] 해군의 경우 전역할때 전투복이 보급되기때문에 육군 공군 전역자가 놔두고간 피복을 사용하거나 사시사철 청바지만을 입고 다녀야한다.당가리가 아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