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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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교육이란?2. 교육의 요소3. 교육의 정당성4. 교육의 종류5. 교육의 역사
5.1. 서양의 교육5.2. 한국의 교육
6. 교육의 기능
6.1. 교육의 순기능6.2. 교육의 역기능6.3. 교육의 기능이 아닌 사항
7. 교육은 서비스업인가?8. 교육 관련 어록9. 교육 관련 문서

교육
敎育, Education

1. 교육이란?[편집]

어떤 , 기술을 가르치고 배우는 활동.으로 정의되어 왔으나

현대에 들어와 산업혁명으로 인한 서양문물의 급속한 확산과 세계화, 정보화 기기의 발달로 이러난 이른바 정보화 시대에 이르러 지식의 공유와 확산이 폭발적으로 늘어남에 따라, 피교육자와 가르치는 사람의 구분이 점점 희석되고 있으며, 이제는 학교나 학원 등 기존에 교육기관으로 인정되었던 집단이 정보의 핵심을 갖고 다음 세대에게 전달하지 않아도 주변에서 습득한 지식이나 문화가 스스로 전달되고 발전되는 이른바 잠재적 교육과정의 부분이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1] 이에 상기에 서술된 좁은 의미의 교육인 '새로운 지식이나 기능을 습득하게 하는 활동'이 특별한 교육자 없이도 빈번히 벌어지는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다.

따라서 교육의 의미를 지식이나 기술을 가르치고 이를 정확하게 익히는 경우 완성되는 하나의 활동으로만 볼 것인지, 지식문화가 스스로 확산되고 전수되는 현상이 가속화 됨에 따라, 이 지식문화를 접하여 이를 판단하고 선별하여 자신의 삶 또는 나아가 조화로운 공동체를 이루는데 기여할 수 있는 관점을 기르는 것이 교육인지, 더 넓게는 인간과 인간이 서로를 이해하는 가운데 그 의사소통의 깊이를 더 깊게 가져가는 일종의 관계확장을 교육으로 보아야 하는지 재정의가 필요한 실정이다.

덧붙이자면 위 문단의 글은 교육의 대상을 지적인 측면을 발달시키는 것에 치중시키고 있다. 흔히 교육학에서 쓰이는 블룸의 정의에 따르면 교육은 지적 영역(지)과 정의적 영역(덕), 심동적 영역(체)으로 나눠지며 지식과 기술만이 교육의 대상이 되는것은 아니다.
또한 교육의 중요부분인 학습과 수업의 성격에서 볼 수 있듯이 교육자 없이 빈번히 일어나는 개인의 변화는 엄밀히 말해 교육이 아니다. 학습은 개인에게서 일어나는 모든 변화에서 생득적인 반응에 의한 변화와 성숙에 의한 변화, 일시적 변화를 제외한 부분을 의미한다. 즉 학습은 영속적인 변화다. 또한 수업은 어떤 의도나 계획에 따라 학습자와 학습환경이 상호작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계획이란 크게 보면 교육과정이 된다. 교육과정은 계획을 담은 문서의 의미로 축소했을 때 국가[2]와 지자체의 교육청, 학교와 교사가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교육기관을 가지 않고 교수자 없이 학습자 스스로 환경과 매체를 통해 특정 대상을 배우는 것은 의도와 계획성이 결여되어 있으며, 비교적 일시적이므로 학습과 수업의 성격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보화 사회가 되었다고 해서 교수자 없이도 학습자 스스로 교육이 이뤄진다는 말은 틀린 말이다. 이는 교육의 3요소만 봐도 알 수 있다.

교육(敎育)이란 한자어는 《맹자》의 득천하영재이교육지(得天下英才而敎育之)에서 따온 단어이다. [3]한자를 풀이해보면 갓난아이를 때려서 가르친다는 뜻이다. 오해의 소지가 있어 부연을 하자면 敎는 爻와 子의 합친자(이끌 교)에 攵(치다 복)가 합친자다. 爻+子는 자식이 본받도록 가르치는 것을 의미하고, 거기에 회초리가 들어가는 식이다. 즉 본받도록 하고 사랑의 매를 든다는 소리지, 무턱대고 때려키운다는 뜻이 아니다.

학부모가 다른 사람과 경쟁시키려고 공부해서 남 주나는 말을 남발하는 경우도 있다. 다만 지식인이나 교육자의 경우에는 결국 누군가가 배우라고 준 것이다. 왜 지식인, 교사으로서의 책임이 존재하겠는가.

또한 이 말을 보통 교육에서 습득한 지식까지도 공유를 가로막는 목적으로 악용하는 경우도 있다. 개인을 위한 공부가 아닌, 학교와 학원에서 가르치는 남들 다 배우는 기본적인 교육은 오직 개인을 위한것으로만 포장하려고 해선 안된다. 모르거나 알고있다면 서로 공유해야 정상이다. 항상 기본교육을 개인을 위한 교육으로 포장하니 항상 학교에 문제아가 생기지

영어의 Education은 라틴어 동사 'educare'에서 유래했다. 어원적으로 해석하면 '밖으로 끌어내다'라는 의미로, 사람이 가진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이끈다는 뜻이다.

교육은 흔히 훈련 또는 교정, 교화와 혼동해서 쓰인다. 사용에 조심하자. 실제로 냉전 시기 세계가 두 사상으로 양분된 시절에는 서로 사로 잡은 포로들을 세뇌시키며 '정신 교육,' '사상 교육'이라는 명목 하에 각자의 사상을 버리기 전까진 비인간적으로 취급하곤 했다.

교정은 잘못된 것을 고치는 것이지, 인간의 행동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교육의 범위에 비하면 상당히 축소된 의미이며, 교화는 교도소에서 쓰이는 것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비도덕적이고 비교적 강제적인 방법이 많이 쓰이는데다가 학습자의 의도와 자발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으므로 교육이라고 볼 수 없다.

영국의 교육철학자 피터스(R. S. Peters)는 이러한 문제점을 지적하며 교육이 가치어라는 점에 주목했다. 흔히 학교현장을 성스러운 곳이라고 말하며, 교육이 훌륭하고 중요한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즉 교육은 가치 있는 것이며 이처럼 교육은 좋고 선한 의미에만 쓰여야 한다는 것이 피터스의 주장이자, 현대 교육학자들의 당연한 이론이다. 따라서 위의 '정신 교육', '사상 교육'과 같은 단어는 사용되지 말아야 하는 단어이며, 흔히 세간에 쓰이는 '군사 교육' 역시 교육학자들 입장에서는 잘못된 말이다. 훈련이 더 올바른 말일 것이다.

원래 현대 우리가 교육이라고 말하는 것은 이 Education의 번역어로, 근대 일본 학자들이 신경써서 찾아내고 잘 번역한 단어다. 하지만 동아시아에서 敎育을 Education의 개념에 부합하게 쓴 경우는 잘 없다. [4] 도리어 불교의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에서 각각 따온 상구하화를 좀 더 익숙하게 여겼다.

흔히 교육, 특히 국가에서 세우는 교육 정책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5]라고 할 만큼 개개인과 사회에까지 큰 영향을 준다. 교육 정책 한 번 잘못 세워서 학생들이 얼마나 큰 대가를 치렀는지는 예전의 사례들이 그걸 보여주고 있다 매번 바뀔 때마다 '교육은 백년대계' 라고 까는 것도 이미 여러 번

가장 효율성을 추구하는 분야이지만, 목표가 광범위하고 심지어 서로 상충되는 목표들이 혼재하고 있는데다 교육에서 다루는 각종 지식들의 학습적 연관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수두룩하기 때문에, 지상목표 달성을 위해 필연적으로 효율성을 포기해야 하는 분야의 대표격이다.

2. 교육의 요소[편집]


보통 교육의 요소는 교육자(또는 교수자)와 학습자, 그리고 교육의 대상인 교재[6]를 일컫는다.

  • 주체와 객체 - 교육자와 학습자. 교육자와 학습자가 같은 경우도 있다.

  • 장소 - 교육이 이루어지는 장소에 따라 가정교육, 학교교육, 사회교육으로 나눈다. 가정교육은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으로서 가치관, 태도, 도덕관념등을 습득하게 된다[7]. 학교교육은 학교에서 정해진 교육과정(curriculum)에 따라 이행된다. 사회교육은 사회에서 행해지는 교육으로서 인생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교육이다. 장소와 무관한 교육으로 원격교육이 있다.

  • 방향성 - 교육은 가르치는 것에서도 특히 '바람직한' 방향을 의미한다. 앞에서도 설명했지만 이를테면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에서 테러리스트에게 테러방법을 가르치는 것은 '교육학적 의미'의 교육이 아니다. 흔히 폭력물, 조폭물을 보면 '얘 좀 교육시켜라'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역시 교육학에서 규정하는 교육이 전혀 아니다. 교육은 무조건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루어질 때 교육이라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학술적으로 이 '바람직한'이라는 단어는 별로 좋지 못한 단어인데, 개념을 명확히 설명할 수 없고 사회의 변화에 따라 유기적이기 때문이다.[8] 그래서 교육학자들은 교육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내리고 싶어하나 어려운 부분이다.

3. 교육의 정당성[편집]

'왜 사람에게 교육을 실시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근거를, 교육의 정당성이라 할 수 있다. 교육의 정당성에 대해서는 교육의 필요성과 가능성 차원에서 논의되는 경우가 많다. 오늘날에는 교육이 너무나도 당연한 활동으로 인식되고 이에 따라 정당성 역시 암묵적으로 당연시되는 경향이 있다.

  • 필요성 - '왜 인간에게 교육이 없어서는 안 되는가?'하는 질문에 대한 근거를, 교육의 필요성이라 할 수 있다. 만약 교육을 받지 않아도 된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다고 가정하면, 교육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니게 된다. 이 점에 대해서 일찍이 칸트는 '사람은 교육에 의해서 인간이 된다.'라고 하여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한 바 있다. 현대 사회에 이르러서도, 왜 교육이 필요한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의미 있는 물음으로 남아 있다.

  • 인격성 - 칸트는 교육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일을 하며, 인간은 교육을 통해서만 인간이 될 수 있다고 하였다. 인간은 교육을 받는 유일한 동물이며, 교육을 통해 동물성 대신 인간성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격자 양성을 주요목표로 보았고 도덕적 인격교육을 강조했다.

  • 가능성 - '사람을 교육하는 것이 가능한가?'하는 질문에 대한 근거를, 교육 가능성이라 할 수 있다. 교육이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인간에게 가능한 것이 아니라면 교육은 역시 정당성을 잃게 된다. 예를 들어 플라톤은 '덕(德)은 가르칠 수 있는 것인가?'(≒교육이 과연 사람을 훌륭해지게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하며 철인 통치자의 자연적 소양을 중시하였다. 현대 사회에 있어서는 교육 가능성의 문제가, '교육이 어떻게 가능한가?' 하는 방법의 문제나 '교육이 어디까지 가능한 것인가?' 하는 한계의 문제로서 인식되고 있다.

4. 교육의 종류[편집]

  • 공교육 - 국가 및 자치단체가 운영

  • 사교육 -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개인교습과 학원. 역사적으로 부유층과 권력층은 사교육을 선호했다. 교육이 대중들에게 보급된 이후 학원교육체계가 들어섰다. 어학, 기술을 위한 학원이 일반적이지만 한국, 일본 등의 특수한 사정이 있는 국가에서는 대학입시를 위한 학원도 널리 존재한다.

  • 유아교육 - 일반적으로 유치원생이 받는 교육을 지칭.

  • 초등교육 - 1차교육이라고도 한다. 여러국가에서 의무교육과정에 포함되어 있다. 기초적인 교육이 이루어진다.

  • 중등교육 -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이다. 2차교육이라고도 한다. 국가에 따라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분리되어있는 국가도 있고 통합되어 있는 국가도 있다.

  • 고등교육 - 고등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주로 청년층을 대상으로 함. 전문대학이상의 교육기관에서 이루어진다. 3차교육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 직업교육 - 취업을 목표로 당해 직업이 요구하는 지식과 기술 및 태도를 습득하기 위한 교육. 중등교육과정에는 특성화고교가 담당하고 고등교육은 전문대학이 담당하고 있다, 그리고 고용노동부에서 허가받고 운영하는 전문학교가 있다.

  • 평생교육 - 인간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배우고 또 배우며 다른 사람을 가르치기도 한다. 학교 졸업하면 끝? 위에 나온 것처럼 직업교육도 있다. 게다가 자격이 필요한 경우 자격을 갱신하기 위해서 또 교육을 받거나, 이수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여가를 즐기거나 취미를 갖기 위해서도 교육이 필요하다. 이런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있는 것이 평생교육이라는 개념이며 좁게는 각 회사나 기업의 교육팀과 각 대학별 평생교육원에서 평생교육과정을 경험해볼 수 있다.

  • 가정교육 - 학교교육에 비해 사회적 관심이 적은 편이지만[9], 한 사람의 인생을 좌지우지 할 정도로 중요한 교육이다.

5. 교육의 역사[편집]

교육에 관한 역사를 교육사라고 한다. 가정 교육이나 사회 교육을 포함하여 생각해보면, 교육은 인류의 유사 이래 계속 존재해 온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또한 사회의 유지, 발전을 위해 다음 세대에게 자신들의 지식과 문화를 전수하는 것은 문자가 생기기 이전에도 있었던 일이라 여겨진다. 문자가 생겨난 이후로는 문자를 가르치는 것이 교육의 중요한 내용을 차지하게 되었으나 각종 생산 활동을 위한 교육은 현대에 이르기까지 실습 역시 핵심적인 교육활동이다.

5.1. 서양의 교육[편집]

제도화된 교육에 대해서, 서양에서는 고대 그리스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근대 국가에 의해 교육이 보급된 것은, 산업혁명 이후 노동자가 필요하게 되면서부터이며, 많은 나라에서 국민에 대한 일반교육이 공교육으로서 시행되게 된 것은 20세기에 들어서이다.

  • 고대 - 그리스는 고대유럽의 찬란한 문명지였던 만큼 교육도 발달했다. 무수한 소피스트들과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자[10]이자 교육자였다. 소피스트들은 웅변술과 수사학을 가르치는데 몰두했고, 소크라테스는 지금도 유용하게 사용되는 발문법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에는 문자와 셈하기를 가르치는 노예가 있었다. 노예를 교사로 이용한 것으로 유명한 나라는 로마로 그리스를 정복한 뒤 저명한 학자들을 자기집에 데려와 자식 교육에 이용했기 때문이다. 말이 노예지 한때 잘나가던 타국 학자들을 가정교사로 사용했다는 말. 피타고라스 학파는 수학을 연구하는 공동체를 운영했고, 플라톤은 아카데미에서 기하학을 연구했으며 교육에 따라 3개 계급으로 사회구성원을 나눌 것과 여성교육을 긍정했다는 것에 의의가 있다.[11] 사실 여성도 동일하게 교육의 대상으로 본 것의 시초는 다름아닌 스파르타다. 로마 역시 그리스와 비슷하게 수사학을 중시했으며, 로마 말기로 갈수록 사교육보단 공교육에 중점을 뒀다. 로마의 위대한 교육자로는 퀸틸리아누스가 있다. 이 사람은 현대 교육학의 원리들을 이시기에 주장하여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 중세 - 중세는 문화 암흑기라 부르기 어렵다. 항목 참조. 문답학교 본산학교 등 여러 기독교 학교가 있었으며, 수도원이 교육연구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 고급 계층의 자제들은 따로 7자유학과를 공부하거나 기사도 교육을 받았다. 중세말이 되어 학생과 교수 중심의 길드가 발전하여 파리와 이탈리아의 볼로냐, 옥스포드와 같은 대학교가 생겼다. 르네상스 이후 루터에 의해 종교개혁이 발생하고, 민중들이 독일어 성경을 읽지 못하는 것을 본 루터에 의해 공교육 이론이 제기되었다. 라틴어는 고사하고 자국어도 못 읽으니(문맹) 자국어를 나라에서 가르쳐야 한다는 것.

  • 근대 - <대교수학>으로 유명한 코메니우스, <에밀>로 유명한 루소, 관념론 철학자이자 교육가였던 칸트, 성자로 불린 페스탈로치, 유치원의 아버지인 프뢰벨, 교육학의 아버지인 헤르바르트 등이 이시기에 활동했으며 국가주의의 팽창과 산업수요에 맞는 인재를 만들기 위한 공교육제도가 생겼다.

  • 현대 - 20세기가 들어서며 듀이 등 대표적인 교육학자들이 활동하며 현대 교육의 틀을 잡게 되었다.

5.2. 한국의 교육[편집]

  • 372년, 고구려의 태학이 설치되었다. 지방에는 경당이라는 초, 중등 수준의 학교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학과 더불어 무술을 연마했다고 한다.

  • 신라에는 화랑도라는 청소년 수양단체가 있었다. 통일신라 시기에는 당나라의 제도를 수용하여 국학을 설치했고 원성왕 때 독서삼품과를 신설하여 6두품 관리들을 뽑으려고 했다. 사실상 한반도의 최초의 과거제.

  • 백제의 교육기관 혹은 제도는 알 수 없으나 '박사' 제도가 있어서 이시기에 이미 교사나 교육자, 대학자를 뽑았다는 걸 알 수 있다. 일본에 논어천자문을 전한 왕인과 백제 역사서인 <서기>를 지은 고흥이 대표적인 박사다.

  • 고려는 광종 때부터 과거제로 관리를 뽑았다. 고려의 과거제는 조선과 달리 명경과(경전 중시)보다 제술과(논리 중시)를 중시했다고 하며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무과가 없었다.

  • 992년, 성종 11년에 국자감이 설치되었다. 국자감은 뒤에 국학, 성균관 등 이름이 수차례 바뀌었다가 조선의 성균관으로 계승된다.

  • 고려의 교육기관은 국자감 말고도 향교와 동서학당, 5부학당, 사학 12도와 서당이 있었다.

  • 조선의 교육기관은 성균관과 4부학당, 향교, 서원, 서당이 있었다. 성균관 유생들은 지금의 대학생들처럼 정부의 정책이 마음에 안들면 소를 올리거나 집단행동을 취했다. 유학을 제외한 교육은 각 관청에서 담당했다. 장악원에서 음악을 가르친다던가 사역원에서 외국어를 가르친다던가.조식이라거나 이이와 이황 같은 이시기의 대학자들은 동시에 교육자여서 학파를 발전시키고 유지시키는데 큰 기여를 했다. 또한 조선의 왕들은 몇몇 폭군을 제외하고는 평생 경연을 통해 학문을 갈고 닦고 정책을 의논하는 고된 학생(...)들이었다. 고종 시기에 이르러 근대적 교육에 대한 요구가 일어나고 교육입국조서가 발표되었으며 수많은 관립학교들과 서양선교사들이 세운 학교, 민간과 애국지사들이 세운 학교들이 문을 열었다. 1886년에는 한국 최초의 여성교육기관인 이화학당이 설립되었다. 하지만 을사늑약 후 통감부가 설치된 이후부터 민족교육이 제한되며 수많은 학교들이 문을 닫게 되었다.

  • 일제강점기 - 민족 말살 정책은 교육도 피해갈 수 없었다. 아니 오히려 교육의 중대성을 일찍부터 알았던 일제에 의해 제3차 교육령에 걸쳐 교육령이 반포되었고 철저히 조선인들을 우민화시키고 일본인으로 만들려고 했다. 자세한 것은 일제강점기 항목 참조.

  • 미군정 시기 - 이시기(1945~1948)를 교육계에서는 교육에 대한 긴급조치기와 교수요목기라고 부른다.[12] 해방 후 38도선 이하에 진주한 미군정은 소위 '가방끈 긴' 한국인들을 모아 새로운 한국교육제도를 만들려고 했다. 당연히 이시기에 가방 끈 긴 한국인들 중에는 친일파가 다수 있었는데 김성수김활란 같은 자들이 교육가라는 이름으로 부끄러운줄 모르고 미군정이 만든 한국교육위원회에 참여하곤 했다. 미군정은 남한 지역내에서 미국에 친밀한 국가를 건설하는것이 목표였기에 미국의 6.3.3 교육제를 직수입했다.[13] 이시기의 교육과정안은 초중등 교육편제와 교과별 시간 배당이 전부였으나, 홍익인간이라는 민족의 이념이 교육목표로 자리잡았다는 것에 의의가 있다.

  • 한국전쟁 이후 - 1차 교육과정은 1963년까지 시행됐으며 교과 중심의 교육과정이었다. 특기할 점으로는 시기가 시기인 만큼 반공교육과 실업교육이 강조되었다는 점. 2차 교육과정은 1973년까지 시행되었고 경험중심 교육과정이었다. 이시기 역시 반공이 중요시 되었다. 3차 교육과정은 1981년까지이며 사실상 박정희의 유신헌법이 유지되던 시절과 비슷하다. 학문중심 교육과정이었으며, 일본의 메이지 유신 시기의 교육칙어를 답습한 국민교육헌장이 중시되었다. 4~6차 교육과정은 인간중심-통합중심 교육과정으로 진행되었고 7차 교육과정에 들어서면서 현재의 교육에 가까운 틀이 완성되었다. 7차 교육과정 이후부터는 20XX년도 개정 교육과정이라고 부르며 8차 등으로 부르지 않는다.[14]

  • 2004년 중학교 3학년까지 무상 의무교육이 완료되었다. 오오
    다만 제도만 그렇게 한다는 것이고, 진짜 무상 교육은 아니다. 교복급식은 물론이고, 통학 교통 수단 제공(스쿨버스), 교재, 학습 준비물 등 학교에서 하는 모든 활동이 무상이라 몸만 갈 수 있어야 진정한 무상 교육이다. 마찬가지로 의무인 군대에 갈 때, 군복과 총을 사 가지고 들어 가는 거 봤나? 교복 구입비를 지급하고 무상 급식 하는 성남시 정도가 근접해 있을 뿐, 2016년 현재 대한민국에서 100% 무상 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지자체는 없다. 진짜 무상 교육이 명목처럼 되고 있다면 2013년쯤부터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무상 급식 이야기, 누리 과정 예산 이야기가 나올 이유가 없다.

6. 교육의 기능[편집]

판단기준에 따라 순기능과 역기능이 바뀔 수가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의도한 목적과 다른 결과를 가져올시 교육의 역기능이라고 부른다.

6.1. 교육의 순기능[편집]

  • 개인의 발전과 완성

  • 사회의 발전에 기여(이하)

  • 경제성장[15]

  • 생애임금의 증가[16]

  • 중산층의 증가[17]

  • 높은 투표율[18]

  • 개인주의

  • 문맹감소

  • 남녀평등

  • 유아사망률감소

  • 위생개선

  • 산업재해감소

  • 국가경쟁력 강화

  • 숙련기술 인한 제조업 발전

  • 복지국가 출현

6.2. 교육의 역기능[편집]

프랑스의 철학자 푸코학교를 군대나 감옥같은 권력장치라고 보았다.
부르디외, 번스타인 등의 사회학자는 교육이 계급적, 문화적, 사회적 불평등이나 격차를 재생산한다고 보았다.
여성주의 입장에서는 학교가부장제를 재생산한다고 여긴다.
다문화주의 입장에서는 학교가 다수파의 힘으로 소수파의 문화를 억압한다고 여긴다.
사회주의 입장에서는 학교가 자본주의적 노동분배 및 공급을 담당한다고 여긴다(계급 발생).

위에 따르면 교육의 역기능을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바로 강압성, 교육의 기본적인 정의는 개인이나 집단이 가진 지식, 기술, 기능, 가치관 등을 대상자에게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르치고 배우는 활동이다.# 하지만 누가 바람직한 방향을 정하는가? 공교육의 경우, 사회가 정한다. 이는 악랄한 표현으로 하자면, 사회가 원하는 시민[19]을 만들기 위해 시민들을 "교정"하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20]

두번째는 교육의 권력성. 지식은 기본적으로 권력지향적이다.[21]이는 사회 전반에 퍼져있는 상식이라는 이름의 권력뿐만 아니라, 전문적인 식자들의 권위 또한 포함한다. 노벨상 수상자가 말하는 비타민C의 이로움과, 위키러가 주장하는 비타민C의 무용함. 둘 중에 어느 사람이 설득력이 있는가? 두말할 것도 없이 전자며[22] 만약 위키러가 자신의 주장에 더 권력을 실어주기 위해서는 보다 논리적이고 전문적인 지식을 풀어서 설명해야 할 것이다. 다르게 이야기 하자면 노벨상 수상자가 어떠한 분야에 대해서는 무지렁이라 할지라도 노벨상 수상자라는 이유로 어떠한 분야에서 그의 말에 설득력이 생긴다는것.[23] [24]이는 현재 대학의 논문에서 잘 드러나는데, 전대 학자에 대한 비판적인 접근, 독창적인 접근 보다는 그 주장을 자신에게 끼워맞추려는 형태의 접근법이 그것이다. 특히 사회학, 교육학의 논문을 보면 이러한 점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보통 사회학에서 대가(大家)라고 할 만한 사람들은 기존 학자의 의견을 '정면반박'하거나[25] '엄청난 창의력'으로 발전시킨[26] 사람들이 포함되는데 권위에 눌린 학계는 이런 인물의 탄생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서론이 길었는데, 교육은 이런 지식=권력의 세습화를 가속한다.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자는 더 많은 지식을 물려줄 수 있을 것이며, 배움이 적은 자는 왜 배워야하는지도 이해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좀 더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강남의 부자는 한달에 몇 백만 원씩 써가며 자식교육을 시킬 수 있고, 강북의 공돌이는 자식들에게 학원 하나 보내기도 빠듯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투자비용의 차이는 실질적인 교육격차로 드러난다. 당장 강남 8학군의 명문대 진학률만 봐도...

두 가지 모두 해결책은 존재한다. 첫 번째는 비 강압적으로 교육을 시키는 것. 그러나 이게 결코 쉬운 게 아니다. 간단히 지금당장 우리나라에서 학생들에게 공부하라는 압박(선생님의 압력, 부모님의 압력, 대입에 관한 부담)이 없어지면 몇명이나 공부를 할까?
이게 가능하려면 기본적으로 학생들의 흥미를 끌만한 콘텐츠와 이를 매력적으로 전달할 선생이 필요한데 다른 거 둘째치고 교과과정이 재미가 없다.. 그냥 재미가 없는 게 아니라 무려 '재미있는 것도 재미없게 만든다.' 이는 학생들에게 무언가를 가르치는 것보다 대입이라는 목표를 더 중요시 하다 보니 생긴 기현상, 공교육에 이 해법을 도입하기는 어느모로 보나 요원해 보인다.
(수정 전에 유도리교육을 예로 들면서 결과가 처참하다고 서술되어 있었는데, 유도리 교육은 비 강압적인 교육이 아니라 강압이라는 본질은 그대로 가져가면서 그 정도만 줄인 것이다. 그야말로 위에서 예로 든 공교육의 근본적인 문제점은 그대로인데 공부를 강요하는 압박만 사라진 셈, 당연히 결과는 혼돈! 파괴! 망가!!! 처참하겠지만 이는 비강압적 교육과는 분명히 다르다)
전세계적인 추세는 학생 스스로 수업에 흥미가 생기도록 수업의 질을 올리고,[27] 자신이 하고 싶은 공부만 할 수 있게 전문화 과정을 다양화 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28]
두번째의 해결책은 공평한 공교육. 전국민이 의무적으로 교육을 받는다면 교육의 격차가 크게 벌어지지는 않을거라는 판단인 셈.

두 가지 해결책은 서로 상충되는 면이 있다. 공교육을 강화하면 시민을 틀에 찍어서 생산한다는 소리나 듣고, 학생의 자율성을 중시하면 윗집 사장 아들내미는 사법고시 준비하는데 밑집 동네 양아치 아들은 학교도 못가서 아빠따라 건달이나 됐다고 하고... 이걸 토대로 국가의 교육정책이 어느 방향에 치우쳐져있는지 파악이 가능하다. 대한민국은 공평성 중심인 셈이다. 만약 공교육 하나로 국민이 원하는 모든 교육이 가능해지는 꿈의 세상이 온다면(...) 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6.3. 교육의 기능이 아닌 사항[편집]

민주화 - 유럽에서는 대부분 교육수준이 올라감과 동시에 민주화가 이루어 졌다. 그래서 민주화와 교육은 비례한다고 여겨졌었다. 하지만 유럽을 제외한 국가에서는 상관관계를 발견하지 못했다. 대부분 교육수준은 높아졌지만 민주화정도는 여전히 낮았기 때문이다. [29] 다만, 교육수준과 민주화가 무관하다라고 볼 것은 아니며, 민주화가 교육 수준 상승만으로 당연히 이루어지지는 않는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7. 교육은 서비스업인가?[편집]

별것 아닌 말인 것 같지만 경제학교육학이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는 주제이다. 경제학에서는 교육을 '일정한 보수를 조건으로 하여 지식의 전수를 하는 서비스업'이라고 하는 반면 한국 교육학의 대부라고 할 수 있는 정범모의 말을 빌려 표현하자면 교육학에서는 '바람직한 인간 행동의 계획적 변화 정도'로 표현한다.[30]로 정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학자들도 서비스업에서 교육을 언급할 때 우스갯소리로 '이거 사범대 교수님들에게 잘못 말하면 뺨 맞을 소리인데...' 하며 시작하기도 한다.

얼핏 보기엔 별것 아닌 것 같은 이 논의가 중요한 이유는 교육의 가치가 다분히 이중적이기 때문이다. 교사는 경제학적 측면에서 접근했을 때 분명히 교육의 대가로 돈을 받는 월급쟁이가 맞다. 하지만 교육학적 측면에서 접근하게 될 경우 '전문직'이며[31] 교육 자체가 사회적 가치에서 분리될 수 없는 만큼[32] 단순히 자본의 논리로만 해석할 수 없기에 단순 월급쟁이가 아니다. 이는 사회적인 교사에 대한 태도로도 나타나는데 사회에선 교사를 단순한 월급쟁이로 치부하는 경우가 다수 있으나, 어떠한 사건이 일어났을 경우 교사에게 더 높은 사명감과 행동양식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교사가 성직자라고 할 수 있는 부분. 무슨 더한 대가를 주면서 그러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이런 교사에 대한 이중적 관점은 다분히 비합리적이라 할 수 있다. [33]

교육을 서비스업으로 보게 될 경우 교사는 단순히 할 일만 하고 보수를 타가는 월급쟁이가 되지만, 서비스업으로 보지 않을 경우 금전적 가치 이상의 무엇인가를 가진 일이 되게 된다. 이런 점에서 기존 한국 사회에선 교육을 서비스업으로 보지 않았었다고 볼 수 있다. 금전적 대우는 차치하고 교사에게 주어지는 명예적, 사회적 대우가 높았기 때문이다.[34]하지만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월급쟁이적 요소가 부각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현상을 대변하는 것이 바로 교권의 붕괴.

8. 교육 관련 어록[편집]

교육이 가장 훌륭한 노후 대책이다
- 아리스토텔레스

사람에게 물고기를 주면 하루를 먹일 수 있지만,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가르쳐 주면 평생을 먹일 수 있다.
- 노자

10년을 내다보며 나무를 심고, 100년을 내다보며 사람을 심는다 (十年樹木百年樹人)
- 관자

교육은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이념 아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도야(陶冶)하고 자주적 생활능력과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함으로써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민주국가의 발전과 인류공영(人類共榮)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에 이바지하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
- 교육기본법 제2조(교육이념)

9. 교육 관련 문서[편집]


[1] 잠재적 교육과정이란 원래 학교에서 일어나는 교육과정에서 의도하지 않았던 부분을 일컫는 말이다. 여기서는 더 거시적으로 파악하였다고 이해하면 된다.[2] 교육부라거나 한국으로 치면 한국교육개발원[3] 원문은 맹자 진심장의 구절이다. 해당 구절을 소개하자면 孟子曰 君子有三樂 而王天下 不與存焉 군자에게는 세 기쁨이 있는데, 천하에 왕노릇은 이에 없다 父母俱存 兄弟無故 一樂也 부모가 계시고 형제가 탈이 없으니 그것이 첫 번째 기쁨이요, 仰不愧於天 俯不怍於人 二樂也 하늘에 부끄럼이 없고 사람에게 부끄러움이 없음이 두 번째 기쁨이며, 得天下英才 而敎育之 三樂也 천하의 영재를 가르치고 기름을 얻는 것이 세 번째 기쁨이다. 다시 말해서 군자는 영재를 가르치고 기르는 것이 가장 기쁜 일이라는 소리다. [4] 각각의 글자 씩은 비슷하게 쓰였다. [5] 말 그대로 100년 앞, 즉 먼 미래를 내다보고 세워야 할 계획. 저위에 관자라는 책에 나오는 구절이 원래의 의미이다.[6] 좁게 보면 교과서나 실험도구, PPT 같은 매체 같은 것이지만 크게 보면 교과, 학문 등 교육을 통해 경험하는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다.[7] 다른 교육과는 달리 시기를 놓치면 받기가 불가능하고, 부모의 능력이 부족해서 가정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면 나중의 학교교육과 사회교육에서 잘 적응하지 못할 확률이 높다[8] 이를테면 군국주의사회에선 적에게 잔인해지는 것을 바람직하다 보고, 전체주의사회에선 집단에 맹목적으로 순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본다. 그런데 이러한 것들은 전혀 바람직하지 못하다. 즉 바람직하다의 개념은 사회나 시대적으로 상대성을 가지고 때문에 학술적 정의에는 부합하지 못하는 것이다. 교육은 절대 사회에서 유리될 수 없기에 이런 부분은 중요하다 볼 수 있다.[9] 학교교육에 대한 사회적인 발언은 많은 편이지만 가정교육은 그에 비해 적은 편이다. 나무위키에서도 가정교육은 제일 뒤늦게 목록에 추가되었다.[10] 이 당시의 철학이란 곧 학문 그 자체였다.[11] 플라톤과 아리스트텔레스 모두 말년에 학교를 세우고 교육에 몰두했다.[12] 정확히 교수요목기는 1954년까지다.[13] 이 교육제가 지금까지 이어지는 그 교육제도가 맞다.[14] 큰 틀 안에서 조금씩 개정하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추정.[15] 현대의 교육제도가 보급된 원인이 산업혁명으로 인한 노동자수요에 바탕을 두기 때문[16] 학력에 따라 생애임금이 증가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차이의 폭이 크지는 않다[17] 빈민층과 부유층은 교육제도가 의도한 계층이 아니다.[18] 하지만 스위스대한민국처럼 예외인 경우도 있다.[19] 관료적이고 이해력이 좋은[20] 특히 과목의 특성상 사회과와 사회 교사에게 이런 논란이 더 심하다.[21] 미셸 푸코 - 광기의 역사[22] 이는 실제 사실적 관계와는 무관하게 작용한다.[23] 이거의 대표적인 예중 하나가 천쉐썬 박사의 파종밀집도 증가=벼 생산량 증가 주장이다. 천쉐썬 박사는 천재적인 로켓 공학자이지만 농사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다. 하지만 세계적인 명문 공대인 상하이 철도대와 칼텍을 나왔기에 어느정도 입김이 강했으며 저 주장을 방정식을 만들어 마오쩌둥에게 보여주고, 농민의 아들이지만 농사에대해 잘 몰랐던 마오쩌둥은 파종밀집도를 증가시키라고 명령했고(천쉐썬은 방정식에서 벼와 벼 사이 간격을 12×10cm를 설정했지만 실제 농사에서 최소한의 간격은 15×10cm이다. 이보다 더 줄어들면 벼들이 서로 더 성장하기 위해 낟알수를 줄이고 이파리를 늘려버린다.) 제사해운동과 토법고로라는 삽질과 어우러지며 약 4~5천만명이 굶거나 병들어죽는 '''대약진운동'"의 참사를 만든다.[24] 이것도 어디까지나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조성되었을 때의 이야기이다. 중세 교회가 맹위를 떨치던 시기 기존 아리스토텔레스식의 천동설에 자신의 과학적 근거를 통해 지동설을 주장하던 갈릴레이가 어떻게 되었는지를 생각해 보라.[25] 기존 관념론적 사회학에 대항해 유물론적 생산수단의 소유와 그를 통한 인간 소외를 다룬 마르크스가 대표적이다.(19세기 사회학의 정수라고 평가받는다.)[26] 파레토가 도입하려 한 사회학 체계를 가져가서 완전히 구축한 파슨스가 대표적이다.[27] 당연한거 아니냐고 할지 모르겠는데, 쌍팔년도의 한국에서는 그냥 닥치고 암기시킨 후 못외우면 패는걸로 해결봤다(...) 수업 그까이꺼 그냥 몇대 패주면 되는거 아님니까?[28] 학점제 또한 그 일환. 괜히 미국에서 돈 많이드는 학점제를 고등학교부터 운영하는게 아니다. 대한민국은 2030년까지 학점제로 전환하는 것이 목표. 3...30년?[29] 대한민국만 해도 90년대까지 민주주의 교육을 거의 안 했다. 반공 등 사상 교육만 열심히 시켰다. 기본권인 노동 3권에 대한 교육은 2010년대에 들어서도 거의 안 한다. 아니 민주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토론을 아이들에게 가르치기 위해 국어에서 한 단원을 통째로 할양했지만 시험과 입시때문에 용어와 과정만 가르치고 정작 배우라고 넣어둔 실제 토론은 그냥 넘어간다.[30] 왜 '정도' 라는 말이 들어갔느냐 하면 아직까지도 교육계에선 교육에 대한 공통적으로 적용될 학문적으로 명확한 정의를 내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바람직한'이라는 말은 명확한 수준을 규정할 수 없기 때문에 학문에선 별로 좋은 말이 아니다.[31] 가시화할 수 있는 전문직의 가장 큰 조건은 직무 수행에 있어 특별화된 기술이 필요한 것 혹은 국가 혹은 단체 등에서 일정 수단을 통해 자격을 주는것의 유무이다.(아주 간단히 말하면 아무나 못하는 직업) 교사는 교육에 있어 전문적인 기술을 교육받으며 교원자격증이 있어야 교사를 할 수 있으므로 전문직의 범주에 들어간다. 공무원 표를 보면 교사는 전문직 공무원에 준해서 대접받고 있다.[32] 상기된 교육의 교육학적 정의에서 '바람직한'이라는 말이 들어갔나 생각해 보자.[33] 실제로 대중들이 교사를 대하는 관점이 상당히 편협하고 이중적이라서 교사들이 골머리를 앓는 경우가 있다. 사회에서는 교직 자체를 상당히 천시하는데, 정작 교사의 지위 향상(여기서 말하는 지위 향상은 체벌권 같은게 아니다)에는 교사가 무슨 사회를 쥐고 흔드는양 난리를 친다. 여기서 더 나아가서 다양성이니 뭐니 그깟 지식 외워서 대충 말하면 되는게 뭐가 전문성이 있다니 뭐니 드립을 치면서 교원 자격증 자체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과 교육절세니 뭐니 해서 교원 전체를 계약직으로 만들고 기본급 얼마만 줘야한다니 뭐니 하는 주장도 튀어나오는 건 덤.[34] 이 주장에는 상당히 많은 이견이 있다. 교원의 사회적 지위가 높았으면 교육대학과 사범대학에 대한 이미지가 과거에 나빴을까? 아예 명문대에서는 다른 대학 취급 받을 정도로 이미지 자체가 나빴다. 게다가 그 시절 사범대 학생들도 단순히 학벌취득이 목적인 경우도 매우매우 많아서 의무기간만 채우고 다른직종으로 가버리는 사례도 꽤 많았다.괜히 나라에서 사범대 오면 등록금 면제 해주던게 아니다. 그 시절이도 상당히 천시받는 직업이었으며 그만큼 보수도 정말 정말 적었다. 교직이 교직이 예전보다 인기를 끌기 시작한 때는 imf때 이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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