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희주

최근 수정 시각:

파일:나무위키+상위문서.png   상위 문서: 축구선수/목록/대한민국

파일:나무위키+넘겨주기.png   관련 문서: 축구 해외파 선수들, 불교/인물

파일:external/scontent-icn1-1.cdninstagram.com/16907998_1863101083975571_5865848384761364480_n.jpg

매탄고등학교 코치

곽희주
(郭熙柱 / Kwak Hee-Ju)

생년월일

1981년 10월 5일 (37세)

국적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대한민국

출신지

강원도 강릉시

포지션

수비수

신체 조건

184cm, 77kg

프로 입단

2003년 수원 삼성 블루윙즈

선수 경력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03~2013)
FC 도쿄 (2014)
알 와크라 SC (2014~2015)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15~2016)

지도자 경력

화성 FC U-12 감독 (2017)
매탄고등학교 코치 (2018~ )

국가대표 경력

2005 동아시아 축구 선수권 대회 국가대표
2008 동아시아 축구 선수권 대회 국가대표
A매치 6경기 / 0골

종교

불교

수원 삼성 블루윙즈 역대 주장

송종국
(2008)

곽희주
(2009)

이운재
(2009)[1]

최성국염기훈
(2011)

곽희주
(2012)

김두현
(2013)

2004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나드손

FW
모따

MF
김동진

MF
따바레즈

MF
김두현

MF
김대의

DF
산토스

DF
유경렬

DF
무사

DF
곽희주

GK
이운재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주년 레전드

18
박건하

13
산드로

14
서정원

22
고종수

29
곽희주

7
김진우

3
이병근

1
이운재

11
데니스

12
나드손

K리그 최고의 수비수를 꼽으라면 주저 없이 수원의 곽희주를 꼽겠다. 왜냐하면 가장 많은 골을 넣은 나를 꼼짝 못하게 하니까. 인간적으로는 훌륭한 선수이지만, 경기장에서는 무서울 정도로 거칠다. 마치 인생의 마지막 경기를 뛰는 것처럼…

- 데얀 (당시 FC 서울)[2]


1. 개요
1.1. 선수 시절1.2. 국가대표
2. 선수 은퇴 및 지도자 전향3. 기타

1. 개요[편집]

전설이 된 그 이름

전설이 될 그 이름 곽대장![3]

수원 블루윙즈의 Forever Legend: 리얼 블루

수원 삼성 블루윙즈 소속 축구선수. 포지션은 중앙 수비수 겸 좌측 풀백.
수원 삼성 블루윙즈 산하 U-18 유스팀인 매탄고등학교 축구부 코치.

파일:external/www.bluewings.kr/2d5f8a219269142d5de75f3434310a98.jpg

수원을 가슴에 품은 영원한 BLUE LEGEND 곽희주의 마지막 경기 수원 팬들이 그의 등번호인 29번과 그의 얼굴 가면을 이용한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광운대학교를 졸업하고 2003년수원 삼성 블루윙즈에 입단한 김호의 아이들 1세대 멤버 중 하나. 수원 입단 이후 국내에서 계속 수원 삼성에서만 뛴 선수. 왼쪽 팔목에 블루윙즈 로고 문신을 새길 정도로 팀에 대한 애정이 매우 깊다.[4]

1.1. 선수 시절[편집]

김호 감독 시절부터 백업 수비수로 기회를 부여받았으나 그의 포텐이 터지게 된 계기는 2004년 차범근 감독의 부임이었다. 사실 곽희주는 2003년 말, 잠시 축구에 대한 회의를 느끼고 구단의 전지 훈련 중에 무단 이탈하게 된다.[5] 하지만 차범근 감독이 부임하면서 곽희주 선수 특유의 파이팅을 보며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 2004년부터 수원의 주전 수비수로 도약시키게 된다.

2004 시즌 초반, 수원 수비진의 초토화(조-조 라인의 부상, 김영선의 부상 등)로 인해 팀의 수비에 송송 구멍이 뚫리던 시기에는 수원 수비의 공적으로 인식되어서 수원 팬들로부터 먹을 욕 안 먹을 욕 다 먹었지만, 여름 시즌이 지나갈 때즈음부터는 단단한 벽이 되어서 2004 시즌 말에는 K리그 베스트 11에 선정될 정도였다. 특히 2004년 여름에 있었던 FC 바르셀로나와의 평가전에서, 판타스틱 4 앞에서도 주눅들지 않는 모습을 보이며 수비에 임해 무실점으로 막아내 승리를 이끌기도 했다.

플레이 스타일은 '파이터'로 끈적끈적한 대인 마크에 강했다. 신인 시절부터 한번 공격수가 보이면 계속 압박하고 달려드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그런지 데얀이나 이동국처럼 K리그 전설급 스트라이커들에게 유독 강한 모습을 과시해 왔다. 중앙 수비수 치고는 발도 빠른 편. 다만 라인을 조절하거나 하는 부분에서는 다소 부족한 모습을 보여서 마토이싸빅, 조성환과 같이 수비 라인을 리드해줄 수 있는 수비수와 짝을 이루어야 좋은 활약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6]

축구장에서의 모습과 달리 매우 조용하고 온화한 성격이며 낯을 심하게 가리는 편이라고 한다. 수원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활약하며 선후배들로부터 인망을 받고 있고 부드러운 모습을 보여주어 2009년과 2012년에 팀의 주장을 맡아 활약하였다.[7][8]

2011년 들어 중앙 수비수 경쟁자로 마토황재원이 들어와서 이 두 명에게 밀릴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윤성효 감독이 곽희주의 멀티 플레이 능력에 주목, 팀 내에서 중앙 수비수, 측면 수비수, 수비형 미드필더 등 수비 보직과 관련한 다양한 포지션을 맏길 것이라고 밝혔고, 실제로도 서울과의 경기 때 3백의 오른쪽 수비수로 서서 활약하기도 했으며 가끔 수비형 미드필더 정도 위치로 올라가서 1.5선에서 수비를 해 주는 역할을 맡기도 했다.

2013 시즌이 종료된 후 계약이 만료되어 FA 자격을 얻었지만 수원의 운영비 삭감 정책의 후폭풍을 맞아 결국 재계약에 실패했다. 팬들은 "'리얼 블루'마저 팀을 떠나게 한다"는 것에 분노하고 있는 분위기였는데, 사실 이 말은 명백한 오보이자 팬들의 오해이다.

곽희주는 팀이 2008년 이후 우승을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고민과 부담감 그리고 미안함이 너무 컸고, 구단의 미래를 위해서 그리고 선수 시절의 마지막 새로운 도전을 위해서 스스로 재계약을 하지 않았다. 실제로 곽희주는 2013년 시즌이 종료된 후에도 구단의 자원봉사 활동에도 참여 하였고, 시즌 종료 후 치뤄진 그의 결혼식은 수원 삼성의 단장이 곽희주 본인의 부탁으로 직접 주례를 보았다. 이후 수원 구단에서 그를 버렸다는 기사가 나가자 다음날 직접 "그런 일은 절대 없다"라며 직접 반박하는 인터뷰가 실린 기사가 나오기까지 했다.

2014 시즌 자유 계약으로 FC 도쿄로 이적하였다. 그러나 컵대회 2경기만 출장하였고, 9월 4일 소속 구단과 계약을 해지하였다. 9월 16일 카타르 스타스 리그알 와크라와 계약을 맺었다.

2015년 3월 24일에 다시 수원 삼성 블루윙즈로 돌아왔다. 플레잉 코치로 수원과 1년 계약을 체결하였다. 선수 은퇴 후에는 스카우터를 꿈꾸고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제주 유나이티드와의 평일 원정 경기에서 처음으로 선발 출전해서 복귀 헤딩골을 작렬시키며 4-3 승리에 일조했다.

2016 시즌에는 크고 작은 부상 및 징계 등으로 많이 뛰지는 못했고, 더군다나 서정원 감독이 포백과 쓰리백 사이에서 갈등하며 흔들리고 있던 수비진은 이정수와 곽희주로도 어찌 할 도리가 없었기에 불안한 모습을 많이 보여줬다. FA컵 8강전 성남 FC전에서는 연장전까지 쥐가 나도록 뛰면서 수비하는 노장의 투혼을 선보이기도 했다.

리그 10경기 출장에 그쳤으나 그 중에서 FC 서울과의 경기에만 세 차례 출전했고, 그 때마다 크고 작은 스토리를 만들어냈다. 일명 홀리 다이버 사건.

수원에서의 통산 300번째 경기이기도 했던 4월 30일 슈퍼매치에서는 후반 36분 골 찬스를 맞은 서울 아드리아노의 유니폼 상의를 잡고 늘어지다가 여의치 않자 발목을 손으로 잡는 비신사적인 반칙을 범했다. 규정대로라면 퇴장까지도 나올 수 있었지만 실제 판정은 경고에 그쳐 오심이 아니냐는 서울 팬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결국 연맹 상벌위 결과 퇴장성 반칙에 해당됨이 인정되어 출전정지 2경기 사후 징계를 받았다. 2달 후 유로 2016에서 헝가리 VS 포르투갈의 경기 중 헝가리의 졸탄 게라가 이 행동을 하면서 경고를 받았다.

6월 18일 상암에서 열린 슈퍼매치에서는 동점 헤딩골을 넣은 뒤 저 때의 반칙을 골 세레머니로 재현하며 여러 의미로 멘탈갑이라는 평가를 들었다.

후일 은퇴 후 인터뷰에서 해당 상황에 대해 언급했다. 아드리아노에게 범했던 파울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막아내야 할 절박한 순간이었기에 일을 저지르기는 했으나 이후 쏟아지는 비난과 파울 당시의 웃기게 나온 사진[9]을 보며 창피함을 느꼈다고 한다. 골을 넣을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와중에 저 때의 상황을 골 세레머니로 재현하자는 생각을 먼저 해왔고, 공교롭게도 진짜로 골을 넣게 되면서 저 김칫국 마시는 발상을 실천으로 옮길 수 있게 되었으며, 이 골은 곽희주의 선수 생활 마지막 득점이 되었다.

8월 13일 슈퍼매치에서는 공중볼 경합에서 무리하게 발을 올려 윤일록의 얼굴을 발로 차는 비신사적 파울을 범한 뒤, 잘못 착지하면서 어깨 근육이 찢어지는 부상을 입었다. 영상 워낙 잔부상들을 안고 살던 몸이라 회복에 오랜 기간이 걸릴 것이라 전망됐는데, 결국 남은 경기들을 뛰지 못하고 그대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비록 경기는 나오지 못했지만, 주장인 염기훈과 함께 부진한 성적으로 처져 있던 선수단 분위기를 추스르는데 힘썼다고 한다. 일종의 정신적 지주 역할.

1.2. 국가대표[편집]

국가 대표와는 별 인연이 없는 편인데 2005년과 2008년에 국가 대표로 뽑힌 이후로 별로 선발되지 못했다. 통산 A매치 6경기 출전.

2. 선수 은퇴 및 지도자 전향[편집]

2017년 1월 2일 공식 은퇴를 선언했다. 구단이 유소년 코치직을 제안했으나 이를 사양하고 서울의 모 대학교 코치로 새출발할 것이라는 뜻을 밝혔다. # 현장감과 멀어진 느낌의 유스보다는 프로에 가까운 위치에서부터 시작하고 싶어 대학 코치를 선택했다고.

그러나 대학교 코치직은 불발되고, 대신 코칭 커리어를 기초부터 다져나가기 위해 모 대학에서 최우수 성적으로 스포츠심리상담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무엇이 선수를 위축되게 만드는지를 이해하며, 그 부담을 덜어주는 방법론을 공부하고 싶었다고 한다.

이후 화성 FC U-12팀 감독으로 활동했다. 2017년 7월 30일 제2회 국토정중앙배 전국유소년축구대회 8세 이하 부문에서 우승하면서 부임하자마자 우승을 하게 됐다.

또한 한국프로축구선수 협의 이사로도 선임되며 행정가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카타르 시절 임금 체불 문제를 김훈기 선수협 사무국장의 도움으로 해결하면서 결심을 굳혔었다고 한다.

은퇴 후 인터뷰에서 개인적인 수원의 역대 베스트 11을 다음과 같이 꼽았다.

FW - 에두 나드손
MF - 김대의 이관우 김은선 염기훈
DF - 이정수 마토 곽희주 송종국
GK - 이운재

3월 11일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K리그 클래식 첫 홈경기에서 은퇴식을 가졌다. 구단에서는 영구결번을 제의했지만 29번을 달고 더 뛰어난 활약을 펼치는 후배가 나오길 바란다는 뜻을 밝히며 스스로 거절했다. 그리고 1년만에 등장했다!

2018년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U-18 유스 팀인 매탄고등학교 축구부의 저학년부 코치로 부임했다. #

3. 기타[편집]

  • 선천적으로 한쪽 눈이 잘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축구하는 데 그닥 불편하지 않아서 방치했고, 성인 시절 고치려 했으나 그 때는 이미 늦은 때... 신경병이었는데 십년넘게 방치해 신경이 손댈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이 이유군대면제 처리되었지만 본인에게는 흑역사.

  • 고등학교 때 축구부가 완전히 문제아들의 집단이라 그만둘 뻔한 위기에 처했으나[10] 다행히 좋은 사람을 만나 대학 진학에 성공했다고 한다.

  • 어렸을 때 축구를 가르쳐 주겠다는 사람이 홀연히 나타나 시작했으나... 그가 사기꾼이었다[11]. 당시 가족이 금품갈취를 당하는 등 고생이 심했다고.

  • 한 때(2003년) 도저히 프로에서 버티지 못해(각종 이유가 있겠지만, 차범근 당시 수원 감독과의 불화가 가장 컸던 걸로 추정) 팀을 무단 이탈했다. 당시 충청 대천에 있는 바닷가로 내려가 하룻밤을 보낸 후, 위치 추적을 이용한 코치 한 명에게 설득당해 여기까지 왔다고 한다.

[1] 시즌 도중 선임.[2] 곽희주가 떠난 지 약 1년 후, 데얀은 곽희주가 뛰었던 팀으로 오게 된다.[3] 현역시절 빅버드 선수소개 멘트[4] 문신 위치로 왼쪽 팔목을 선택한 것은 왼손잡이라서 제일 잘 보이는 곳이기 때문.[5] 왼쪽 눈 실명, 오른쪽 눈 시력 0.7이라는 핸디캡 때문에 경기 중 불편함이 너무 심해서 축구에 대한 회의감을 느꼈다고 한다.[6] 원래 대인 수비형 센터백 & 조율형 센터백 조합이 가장 시너지가 좋은 구성이기 때문에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다.[7] 수원의 주장은 선수들의 투표로 선출되며 임기는 1년이다.[8] 2009 시즌 당시 수원이 최악의 부진을 보이자 그에 부담감을 크게 느껴서 주장 완장을 다시 이운재에게 넘기기도 했다.[9] 저 사진은 서울 팬들이 비난할 때도 거론했지만, 수원 팬들도 '홀리 다이버'라는 이름을 붙이고 현수막으로 만들어 응원하는데 쓰기도 했다.[10] 당시 어느 정도였냐면, 일반 학생들도 축구를 못하게 하려고 학교 운동장 곳곳을 중장비로 팠다고 한다.[11] 전과도 수두룩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