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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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ientific revolution

1. 개요2. 과학혁명기의 과학 발전3. 과학혁명 연구의 역사
3.1. 20세기 초 과학인식론주의자들의 영향과 한계3.2. 기존 연구의 한계와 극복3.3. 거대 상의 몰락과 대안의 모색
4. 논의된 여러 문제들
4.1. 용어의 문제4.2. 왜 서구 문명에서만 과학혁명이 일어났는가4.3. 과학혁명 같은 것은 없다
5. 과학혁명에 관한 여러가지 오해들6. 관련 항목

1. 개요[편집]

전통적인 관점에 따르면 16, 17세기 유럽에서 과학의 여러 분야들에 걸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난 역사적 사건. 토머스 쿤은 '패러다임의 전환'을 의미하는 용어로 사용하였으나, 본래의 의미는 저것이다.[1]
과학사의 대표적인 연구 주제 중 하나로, 이를 독립적으로 다루어도 될 정도로 그 연구가 많이 이루어졌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과학혁명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그리고 과학혁명이라는 것이 실제로 일어난 일인가에 대해서 끊임없이 질문이 던져지고 있다.

2. 과학혁명기의 과학 발전[편집]

3. 과학혁명 연구의 역사[편집]

3.1. 20세기 초 과학인식론주의자들의 영향과 한계[편집]

허버트 버터필드가 과학혁명을 시대개념으로 정립시킨 것은 과학의 역사적 탐구를 통해 과학지식의 진보를 입증하려 한 과학인식론주의자들의 전통을 계승한 것이다. 중세과학(특히 운동학)을 처음으로 발굴해낸 피에르 뒤엠이나 신칸트주의의 입장에서 실증주의를 비판한 철학자 에른스트 카시러, 과학혁명의 선구적 업적을 쌓은 것으로 거론되는 에드윈 버트, 그리고 과학사학의 정체성을 확립했다고 평가되는 알렉상드르 코이레가 대표적인 과학 인식론주의자로 거론된다.

과학인식론주의자들과 이들의 영향을 받은 초창기 과학사학자들은 과학사 전반에 관심을 가지면서 과학사의 거대 상을 그리는 것을 추구하였다. 일반론자라고 불리는 그들은 16, 17세기에 일어난 과학발전이 근대과학의 성립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는 것에 동의하였다. 이들의 과학혁명에 관한 과학학적 관심은 통사적인 분야사를 서술하려는 전통과 자연지식의 습득의 역사를 탐구한 전통의 영향을 받은 것인데, 그들의 과학학적 관심을 철학적·윤리적·인간학적 관점이라는 세 가지 측면에서 나누어 분석되었다.

첫 번째 관점은 실증주의의 유산으로 볼 수 있는데, 과학이란 다른 지식과는 구분되는 과학적 방법이 존재하기에 확고하고 객관적이라는 것이다. 그 다음 관점은 과학이란 자유·합리성·진리·선 등의 기본적인 가치가 체화된 것이며, 사회적이고 물질적인 진보의 원동력이라는 것이다. 마지막 관점은 과학은 보편적인 인간다운 활동으로 자연세계를 이해하려는 타고난 호기심의 표출이라고 보는 것으로, 조지 사튼의 새로운 휴머니즘이나 줄리언 헉슬리의 과학적 휴머니즘과 관련된 것이다.

과학사가들은 이 세 가지 관점을 수용하여 과학혁명 개념을 통해 근대과학의 기원을 설명하려 하였다. 첫번째 관점에서 과학혁명이란 인간의 사고방식과 자연연구 방법이란 측면에서 획기적인 사건이라 정의되었다. 이러한 관점 하에서 과학혁명이란 코페르니쿠스의 새로운 우주론과, 갈릴레이에 의해 등장한 새로운 역학의 등장 그리고 뉴턴에 의한 이 둘이 종합으로 등장한 기계적 세계관으로 규정되었다.

두 번째 관점에서 과학혁명이란 미신과 종교적 도그마를 물리치고 자유와 사상의 독립과 같은 근대적 가치를 중시하는 새로운 상징으로 정의되었다. 20세기 중반의 과학사가들은 과학혁명을 권위와 전통보다는 연구와 실험을 중시하게 된 결정적 계기로 파악하였는데, 이 때문에 과학사가들은 고대 과학의 세 권위자들인 프톨레마이오스아리스토텔레스, 그리고 갈레노스를 거부한 세 명인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이, 그리고 윌리엄 하비를 주목하면서 이들을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근대인을 상징하는 영웅으로 규정하였으며, 그 연장선 상에서 갈릴레오의 종교재판을 중요시여겼다. 또한 자연을 지배하고 기술을 활용해야한다는 프랜시스 베이컨의 새로운 주장을 물질적 진보와 사회적 조화를 이루는 수단으로서 과학 활동에 사회적 정당성을 부여함으로써 왕립학회나 과학 아카데미와 같은 근대적 과학단체의 등장을 이끌어냈다라는 거대한 서사를 만들어냈다.

또한 마지막 관점에서 과학혁명은 인식론적 측면에서 중요한 변화였다라고 강조되었다. 과학사에 있어서 인식의 측면만을 강조하는 이러한 관점은 코이레와 같은 과학사가들이 과학사에 대한 내적 접근만을 선호하게 되었으며 과학 발전을 이룩하게 만든 사회적 제반 요인에 관해서 무심하게 만들었다.

3.2. 기존 연구의 한계와 극복[편집]

비단 과학혁명 연구뿐만 아니라 20세기 초기의 과학사가들의 연구에는 다음과 같은 공통적인 문제점이 있다. 앞서 언급했듯 내적 접근만을 선호하여 과학 발전의 사회적 기반을 무시한다는 문제점이 있고, 또한 과거의 과학을 현대과학의 관점에서 평가함으로써 이전의 개념과 이론등을 극복되어야 할 불완전한 것으로 취급하였다는 점이다. 이러한 관점을 휘그적 역사관이라고 부르는데, 이 관점은 16, 17세기의 과학에서 현대과학이 받아들일 수 없는 요소가 당시에는 어떠한 중요성을 갖고 있는가에 관해서는 상관없이 무시되었다.

휘그적 역사 서술의 문제는 과학사 연구가 일반사가들과 지식사회학자들의 영향을 받으면서 극복되어갔다. 과학사학이라는 학문이 성숙해지고 전문적 연구 성과들이 나옴에 따라 버터필드와 같은 과학혁명에 대한 전통적 관점과 정전적 해석은 신뢰를 잃어갔다. 이 때 기존의 과학혁명관에 내재되어있는 문제 역시 드러남에 따라 전통적 관점은 힘을 상실해갔다.

그것은 근대 과학의 기원이 16~17세기를 벗어날 수 있다라는 인식이 싹튼 것이었다. 이 동향은 근거 없는 것이 아니었는데, 과학혁명 개념을 정립한 버터필드 역시 화학 혁명은 18세기에 이루어졌음을 지적하면서 이를 화학 분야에 있어서의 과학혁명의 지연이라고 표현하였고, 전통적 관점을 지지하는 이들 중 일부도 18세기에서 19세기에 일어난 물리학 분야의 성립(열역학과 전자기학, 통계 역학의 등장과 현대적 의미의 물리학 개념의 성립)이라든지 화학에서의 여러 이론들의 발전이라든지, 생명과학에서의 유전이론의 등장과 진화론의 등장등 과학에서 여러 변혁이 일어난 것에 대해서 '제 2의 과학혁명'이라고 표현한 것이었다.

그보다 과학혁명의 전통적인 관점이 갖고 있는 더욱 근본적인 문제점은 화학과 생명과학 분야는 어떤 식으로 확고한 자연지식을 획득하였는가는 문제였다. 생리학 분야에서 윌리엄 하비가 비록 기계론적 사고와 정량적 접근을 통해 과학혁명을 이루어냈다라는 전통적 관점은 비록 하비 이후의 생리학에서 어느정도 근대적인 측면을 찾아볼 수 있으나, 오히려 근대과학으로 완전히 넘어가지 못한 채 역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생리학으로 돌아갔으며,찰스 다윈이 등장하기 이전까지 생명과학 전반의 근대화는 이루어지지 않았다라는 설명으로 그칠 수 밖에 없었다. 또한 물리과학 분야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면서 17세기의 기계론 철학자들의 이면도 드러났는데, 비록 그들이 근대적 자연관을 모색하려 했을지라도 그들의 자연관은 현대의 그것과는 거리가 멀었으며, 기계론 철학자들 역시 신학적 형이상학적 개념들을 이용해서 자연을 설명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이 알려짐에 따라서 16, 17세기의 자연철학자들의 연구대상은 단일한 과학이 아니었듯이, 과학혁명 역시 하나의 개념틀로 설명불가능함이 과학사학자들에게 인식되었다. 이에 따라 초기 과학학자들이 갖고 있던 과학에 대한 견해, 확고한 과학적 방법이 존재하기에 과학은 확고하고 객관적인 지식이라는 생각은 무너질 수 밖에 없었다.

3.3. 거대 상의 몰락과 대안의 모색[편집]

4. 논의된 여러 문제들[편집]

4.1. 용어의 문제[편집]

과학혁명이라는 용어는 1940년대 이후 코이레에 의해 처음으로 사용되었고, 이 용어는 버터필드에 의해 과학사학계에 널리 퍼졌다. 이후 알프레드 루퍼트 홀은 그의 1954년에 출간된 저서에서 과학혁명이란 용어를 처음 책 제목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과학혁명이라는 용어는 생각과는 다르게 상당히 최근의 것이며 과학혁명에 대한 연구는 1940년대 이후에서야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그 이전에 과학혁명이라는 용어가 없었긴 하지만, 당대의 학자들이 후에 과학혁명이라 불리는 새로운 변화가 있음을 감지하지는 못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당시에, 과학의 역사를 저술했던 이들은 이런 새로운 변화들을 혁명으로 규정하지는 않았다. 이는 고·중세에 있었던 순환론적 역사 인식에 의한 것으로, 혁명이 오늘날의 의미로 확정된 것은 계몽철학자들이 활동했던 18세기에 들어서였다.

이와 같이 과학혁명에 혁명이라는 단어가 적합한가에 대해서 논란이 있기도 하지만, 루퍼트 홀은 과학혁명을 의미하는 scientific revolution의 scientific에도 문제가 있음을 지적한다. 그는 영어의 scientific이 상당히 모호한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에 rational이나 technical, industrial이란 형용사와 혼동될 수 있다고 말한다. 버나드 코언은 이러한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학혁명이라는 모호한 용어는 널리 알려지고 쓰이면서 신성시되었다고 밝혔다.

한편, 이렇게 과학혁명이라는 용어가 상당히 모호함에도 불구하고, 토마스 쿤이 그의 저서 과학혁명의 구조를 통해 과학혁명을 크고 작은 많은 과학상의 변혁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함에 따라, 과학혁명이 16, 17세기의 역사적 현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패러다임의 전이를 의미하는 것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어 개념의 혼란을 가져왔다고 루퍼트 홀은 지적하였다.

4.2. 왜 서구 문명에서만 과학혁명이 일어났는가[편집]


전통적 관점에 따르면 왜 서구 문명에서만 과학혁명이 일어났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우선 민주주의적인 개념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과학은 이의 제기와 존중 사이의 긴장, 즉 다른 사람들의 관점으로부터의 독립과 그 관점에 대한 관용 사이의 지속적인 긴장을 통해서만 살아 있고 자라게 된다. 다시 말해서, 과학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이의 제기의 자유성, 그리고 이런 의문을 받아주는 관용이 필수적이다. 이것이 바로, 온화하고 친절한 것이 미덕이고 기존의 질서에 반대하는 것이 개인적인 모욕이 되는 동양의 문명권에서 과학이 강력하게 발전하지 않은 까닭이다.[2]

여기에 니얼 퍼거슨은 다른 주장을 제기했다.[3] 니얼 퍼거슨에 따르면 동양에서는 도덕이나 사람이 살아가야 할 이치, 세계 전체에 대한 깨달음 같은 것들에 관심이 있었지 과학적 법칙을 세밀하게 증명하는 것, 수학적으로 측정하는 것들은 별로 관심을 가지지는 않았다. 즉 옳고 그름에 대한 포커스가 수학적, 과학적인 증명보다는 사람으로서 살아가야 할 도리, 그러한 도리로서의 예의 범절 같은 것에 맞춰져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서양에서 자연과학이 두드러졌던 것이다.

한편 과학기술사회학을 토대로 하는 사회구성주의자들은 근본적으로 과학혁명이라는 것이 크게 특별하다고 보지 않는다. 이들은 과학의 진보가 명백한 방향성이 있어 반드시 한쪽 방향으로 진보해야 하며, 그것을 성취한 것이 서유럽 중심의 서구세계였다는 관점 자체를 부정한다. 대신 이들은 과학혁명 혹은 과학의 진보는 어떤 방향으로든 이뤄질 수 있었으며, 그것이 반드시 지금의 과학과 같은 모습이어야 할 이유는 없다고 주장한다.[4] 이러한 관점 하에서 문제제기는 다음과 같이 수정된다. "왜 하필이면 서유럽 중심의 과학혁명이 성공하였는가?"

일선 과학사학자들 사이에선 다음과 같은 주장도 제기된다. 기존의 이론 중심적이던 과학이 기술적 실천과 만나 과학혁명이 일어났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사실 동양이나 서양이나, 과학혁명 이전에는 거의 탁상놀음과 가까웠다는 공통점이 있다. 과학혁명 이전의 과학은 대개 이론에 얾매여 있거나(갈레노스, 성리학 등), 단순한 지식의 수집(천문학)에 불과하였다. 그런데 구텐베르크가 인쇄기를 발명한 이후 수많은 분야의 책이 출판되었는데 이를 통해 단순한 실천에만 머물렀던 기술의 영역이 지식으로 진출하는게 가능해졌다. 이게 무슨 일이냐면, 이론 중심인 과학자실천 중심의 기술자들이 을 통해 만나는게 가능해진 것이다. 과학자와 기술자들이 교류한 결과, 과학자들은 실험과 증명을 강조하는 경험주의적 학풍이 생겨났고 이러한 이론과 실천의 적절한 융합이 과학혁명을 가능하게 했다는게 과학사학자들의 주장이다.

4.3. 과학혁명 같은 것은 없다[편집]

5. 과학혁명에 관한 여러가지 오해들[편집]


6. 관련 항목[편집]

[1] 이것은 국문으로 번역한 최초 역자의 실수때문에 같은 용어가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되는 것처럼 보이는 오해이다. 여기서 말하는 고유명사인 과학혁명과는 별개로 토머스 쿤은 과학사에 일반적인 혁명들(그의 책의 원서 제목도 "과학 혁명들의 구조 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이다)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건들이 있음을 의미한 것이다.[2] 조선의 사례는 반론이 될 수 있다. 조선은 세간의 인식과는 다르게 논쟁이 활발하고 권위주의가 약했던 나라이다. 당장 기정진과 이황의 논쟁도 그 예이다. 다만 조선은 동양권에서 매우 예외적인사실 세계에서도 매우 예외적인 케이스란 걸 유념할 필요가 있다.[3] Ferguson,니얼 퍼거슨의 시빌라이제이션,구세희 외 1인 역,2011[4] 이를 상대주의라 부르며, 앨런 소칼 사건과 인문학자들의 망신의 발단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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