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당(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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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합중국의 주요 정당

양대 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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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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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당

주요 원외정당

자유당

녹색당

헌법당

개혁당

Republican Party

한글 명칭

공화당

창당일

1854년 3월 20일

주요 이념

보수주의
사회보수주의
경제적 자유주의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부통령

마이크 펜스

전국위원회 위원장

라인스 프리버스

하원의장

폴 라이언

상원 원내대표

미치 맥코넬

하원 원내대표

케빈 매카시

상원 원내총무

존 코닌

하원 원내총무

스티브 스컬리스

상원의원

54석 / 100석

하원의원

247석 / 435석

주지사

31석 / 50석

국제조직

국제민주연합

공식 사이트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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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율리시스 S. 그랜트, 조지 워커 부시, 로널드 레이건, 리처드 닉슨, 에이브러햄 링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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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시어도어 루스벨트(26대), 제럴드 포드(38대), 조지 워커 부시(43대),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41대),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34대), 로널드 레이건(40대), 리처드 닉슨(37대), 에이브러햄 링컨(16대)[1]


1. 개요2. 역사
2.1. 1970년대 이전의 역사
2.1.1. 노예해방을 외치다2.1.2. 장기 집권(1861년~1933년)2.1.3. 혁신주의2.1.4. 민주당의 대반격
2.2. '남부전략'과 공화당의 재반격
2.2.1. 닉슨의 부활과 보수의 반격2.2.2. 레이건, 부시 부자와 신보수주의 혁명
2.3. 부시 대통령 이후의 공화당
2.3.1. 아들 부시의 나쁜 유산과 티 파티2.3.2. 2012년 대선2.3.3. 오바마 정부 2기 - 티 파티의 셧다운 자폭2.3.4. 유로마이단2014년 크림 위기 사태가 준 기회, 그러나...2.3.5. 2014년 경선2.3.6. 2014년 중간선거
2.4. 추락하는 공화당, 암울한 미래2.5. 2016년 대선, 압승을 거머쥐며 부활한 공화당2.6. 향후
3. 역대 선거결과
3.1. 대통령 선거
4. 지지층
4.1. 핵심 지지층
5. 외교6. 공화당 출신 정치인
6.1. 대통령6.2. 기타

1. 개요[편집]

Republican Party[2]

미국에서 리버럴적인 민주당과 대치하는 보수정당이다. 정치적, 문화적으로 보수주의를 표방할 뿐 아니라, 외교적으로도 패권주의적 관점과 국제 개입주의를 지지하는 정당이다.

경제정책으로도 매우 보수적인 정당이며, 사회적 우파, 기독교 우파적 관점에서도 다른 서구권 국가의 우파 정당보다 더욱 보수적인 성향. 다만 현재 그렇다는 것이며 앞으로 조직체계의 적응성이 달라질 개연성이 있기에 미래는 모르는 일. 하지만 미국 민주당과 같이 이 정당 역시 포괄 정당인지라 이게 어딜 봐서 보수야?라고 의문을 자아내게 하는 의원도 있고 극우에 가까운 의원 역시 존재한다. 그리고 리버테리안이나 기독교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소수파들도 존재한다.

과거에는 공업지대와 북부가 주요 텃밭이었으나 오늘날은 농촌과 남부가 주요 텃밭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민주당과의 싸움에서 불리한 것은 분명하다. 관련해서는 아래 조금 더 자세히 서술되어 있다.

미국에서의 정통적 진보주의는 정확히 말해서 중앙정부에 권한을 더 줘서 돈을 사회복지에 더 쓰고 규제를 강화하는 것이고, 정통적 보수주의는 중앙정부의 권한을 되도록이면 줄여서 사람들이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는한 규제를 줄여서 발전을 극대화하자는 것이다. 자유주의 같지만 사회규범은 더 엄격하게 지키기 때문에 구별되며, 그래서 자유주의(liberalism)는 민주당의 이념이고, 자유의지주의(libertarianism)은 보수의 이념이다. 자유의지주의는 개인에 대한 완전한 소유, 즉 정부의 권한을 줄이자는 이념이고, 자유주의는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미국에선 자유의지주의보단 덜한 자유, 더 강화된 정부의 권한을 주장한다.

2. 역사[편집]

2.1. 1970년대 이전의 역사[편집]

2.1.1. 노예해방을 외치다[편집]

초창기에는 개혁의 선두주자였다.[3] 모체는 휘그당으로, 노예제도에 대해 어정쩡한 입장을 취한 당론 때문에 노예제 찬성파와 반대파의 갈등이 극심해져 결국 당이 깨지는 사태가 초래되고 1854년 북부의 개혁파들 중심으로 창당된다. 그리고 에이브러햄 링컨대통령 선출로 1860년대에 처음으로 여당이 된다. 그야말로 보편적인 인류의 가치를 수호하는 아름다운 정당으로 시작은 화창했다.

물론 그 배경엔 경제적 요인도 있었지만 말이다. 최근의 연구는 되레 경제적 요인만으로 남북전쟁을 설명하기보다는, 도덕적 이슈가 정치의 메인이 될 만큼 성숙한 미국의 민주주의와 사회적 변화를 탐구하는 측면도 있다. 링컨 이전에 휘그당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인들만 보아도, 노예해방에 좀더 우호적인 경향은 있었지만 단순히 경제적 문제만으로 전쟁이 일어났다고 보기는 어려운 면이 많기 때문.

2.1.2. 장기 집권(1861년~1933년)[편집]

이후 공화당은 19세기 중반부터 긴 장기집권을 이룩한다. 남북전쟁을 북군이 이겼던 상황도 상황이거니와, 남부연맹을 지지했던 전력이 있던 민주당은 일부 잔당이 북군을 지지하긴 했었지만 한동안 북부의 군정에 죽어 지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남부 민주당 주요 인사들의 참정권과 피참정권이 한동안 금지되니 한 때 남부에서는 흑인 상원의원과 부주지사가 나오기도 했다. 백인들은 충성 서약을 할 때까지 참정권을 얻을 수 없었으므로!

1866년과 1868년 미국 상원의 공화:민주 의석 비율은 57:9, 62:12이었고 하원은 174:48, 168:70으로 공화당이 압도적이었다. 1872년에도 하원 203:89의 대 기록을 세웠다. 이렇게 1858년부터 러더퍼드 헤이스 정권 하에서 2년(1878년부터 1880년까지)을 제외하고는 공화당은 근 20여년간 득표에서 승리했고,[4] 상하원 다수당을 지켜냈다.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공화당은 하원은 1874년부터 1894년까지 20년간 두 번(80년, 88년)을 제외하고는 소수당이었는데, 첫 패배는 율리시스 S. 그랜트 정권의 말년 디버프와 함께 경제 공황이 몰아닥쳤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턱걸이로 과반수를 차지하는 등 여전히 열세에 시달렸으나, 공화당 역시 인기가 낮았으므로(…) 그로버 클리블랜드의 인기 등을 바탕으로 하원 과반을 지켜냈다. 결국 1894년 이후로는 공화당이 하원 다수당을 차지하면서 클리블랜드의 2기 행정부는 썩 즐겁지 못했다.

민주당의 클리블랜드나 우드로 윌슨 같은 이들이 정권을 뺏어올 수 있었으나 그것도 소수 출신 그룹(아일랜드인 등의 백인 비주류.)이 많은 뉴욕주를 바탕으로 잠시였다.[5] 인구적인 측면에서도 서부를 개발한 북부의 인구는 압도적이었고, 민주당이 중서부의 농업주들의 지지를 받을 때도 공화당의 인구빨은 강대했다. 이 시기의 대통령은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인기가 좋았던 율리시스 S. 그랜트를 제외하고는 모두 단임으로, 실질적 힘은 강한 상원의원들이 휘둘렀다는 게 특징.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반의 미국은 공화당 정권의 영향이 지대하게 미친 것이 사실이다. 공화당의 자유방임주의 정책은 거대 기업집단인 트러스트를 방치했고, 미국의 양극화는 점점 심해져갔으나 동시에 제2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며 급격한 발달을 이루었다. 또한 엄청난 관세를 때리는 보호무역 정책은 대전 후 세계공업을 주도할 기틀을 마련했다. 물론 미국의 주 수출품이었던 농산품으로 먹고 살던 남부 농민들은 북부인들을 더 싫어하게 되었다(…).

또한 연방정부의 힘도 공화당 정권 아래 더 세졌는데, 이는 지금도 미국 연방정부가 국내에서 가진 힘이 다른 정부에 비해 매우 약하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필요한 조치였다. 초창기의 연방정부는 세금을 부과할 권리도 힘도 없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미국에서 소득세를 부과하게 된 것은 헌법을 수정하고 나서인 1895년이다. 물론 사회주의라고 매도하는 엄청난 반대를 뚫고 이룩한 것이다.

2.1.3. 혁신주의[편집]

20세기 초반,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주도한 혁신주의 바람은 20세기 초기의 미국에 큰 변화를 일으켰다. 기업들이 각종 편법을 사용해서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 것을 막는 법을 제정하고, 독점을 막았으며, 식약청이 세워지는 등 안전과 발전을 위한 규제를 세웠다. 무엇보다도 루스벨트는 노동자와 흑인들에게 어느 정도 온정적인 노선을 취하면서 그들의 권익을 어느 정도 보장해 주었다. 물론 루스벨트는 민권운동을 좋아하지도 지지하지도 않았다. 다만 전 대통령들보다 더 온정적이었을 뿐이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미국 정부는 공화당이나 민주당이나 할 건 없이 운동 세력들을 탄압했고 클리블랜드 같은 이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런 배경에서 루스벨트의 노선은 그의 엘리트적인 배경을 생각할 때 놀라운 것이었다. 인민당이나 진보당 등이 성행했던 시기도 이때였다. 1908년 선거에서 공화당이 확보한 상원 의석은 무려 62석(민주당은 32석)이나 되었지만...

그러나 같은 시기 미국의 제국주의가 융성한 것도 사실이다. 윌리엄 매킨리 대통령의 미서전쟁이 대표적. 쿠바 독립에 관여하며 스페인과의 전쟁을 통해 필리핀, 푸에르토리코, 등의 식민지를 빼앗으면서 본격적으로 제국주의 식민지 쟁탈전에 돌입했다.

필리핀의 독립운동가 에밀리오 아기날도는 스페인을 미국과 함께 몰아내고 필리핀 혁명 정부의 대통령이 되었으나 졸지에 늑대를 쫓으려다 호랑이를 불러온 꼴이 되었다. 1899년 벌어진 전쟁은 1902년까지 계속되었고 100만의 필리핀인들이 희생되었다. 당시 대통령 매킨리는 백악관에서 어느 날 들은 필리핀을 개종시키라는 신의 음성을 듣고 필리핀을 식민지화 하기로 결정했다고 했지만 사실 변명일 뿐, 그동안 루스벨트나 다른 제국주의자들의 지속적인 압력에 굴복한 것이다. 먼로 독트린 이래 미국은 항상 아메리카 대륙에 세력을 떨치려 했으나 이 시기에 이르러 남미에 대한 영향력이 더더욱 극대화되었다.

하지만 혁신주의의 공은 결국 학자 출신인 우드로 윌슨에게로 넘어갔고, 공화당 내에서 혁신주의는 점점 세력을 잃기 시작했다. 공화당은 윌슨의 재임 기간 민주당에게 6년 연속 상하원 다수당을 잃었고, 특히 윌슨이 재선을 거둔 1916년의 경우 의석상에선 승리를 거뒀지만(216:214). 진보당과 사회당이 민주당을 지지해줌에 따라 하원 의장은 민주당이 차지했다. 물론 다시 1918년 선거 이후 14년간 다수당이 되었으며, 특히 1920년에는 산사태(Landslide)라고 부를 만한[6] 하원의 대승(302:132)을 거두었다. 루스벨트를 열심히 지지하던 워런 하딩은 별다른 업적 없이 죽었고, 캘빈 쿨리지 시대에 들어서는 미국은 자유방임주의로 다시 돌아가게 되었다. 남북전쟁의 후유증을 씻어낸 민주당의 거센 반격이 시작된 것이다.

2.1.4. 민주당의 대반격[편집]

공화당은 1860년대부터 1930년대 초까지 70년간, 행정부로 따지면 클리블랜드, 윌슨의 16년을 제외하고는 56년간 미국을 다스렸다. 그 경이로운 비율은 무려 7:2. 대통령 수로는 공화당에 단임 대통령이 많아 13:2였다. 하지만 허버트 후버 때 터진 세계 대공황은 매우 치명적이었다. 사실 대공황 자체는 그 혼자 책임을 질 사항은 아니었다. 원인을 따지자면 전임자 쿨리지의 지나친 자유방임 정책에 원인이 있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후버는 적어도 그 대처에 있어서는 실패했으며 차후 대응은 분명 부족했고 너무 늦게 나왔다.

그리고 그 때 그 유명한 프랭클린 D. 루스벨트[7]가 나와서 민주당 내의 진보세력과 규합하고 민주당의 정책을 바꿔놓는다. 이때부터 공화당은 링컨 이후 흔들림이 없었던 흑인들의 지지를 잃었으며 민주당은 소수인종-유대인-이민자-노동자-농민으로 구성되는 강력한 지지 기반을 얻게 된다. 이른바 뉴딜 라인.

그 극명한 결과는 1936년, 루스벨트의 재선에서 드러난다. 재선에서 루스벨트는 무려 60.8%를 득표하며 36.5%를 득표한 앨프리드 랜던을 1100만 명 차이로 격파했으며, 민주당이 상원에서는 76석(82%), 하원에서는 334석(76.7%)을 차지하면서 역사상 최고의 성적을 올린다. 공화당은 상원 16명(…)에 하원 88석(!)으로 대패를 당해버렸다.

결과적으로 흑인들은 1930년대 이후 공화당 지지를 버렸고, 민주당 지지 성향이 강하지만 1970년 이후로 흑인사회에서 미국 정부에 대한 반발이나 비난보다는 흑인사회의 자립과 향상을 지지하는 토머스 소웰이나 암스트롱 윌리엄스 등 소위 흑인 보수주의자들은 공화당을 지지한다. 물론 그 비율은 대충 전체 흑인 중 15% 내외로서 한국으로 치면 TK지역에서 민주당계 정당을, 호남에서 보수계통의 정당을 지지하는 비율 수준이다.

이 '뉴딜 동맹'의 지지 기반은 훗날 '남부전략'이 백인 하층민들을 공화당으로 끌어들일 때까지 어느정도 지속된다.

2.2. '남부전략'과 공화당의 재반격[편집]

2.2.1. 닉슨의 부활과 보수의 반격[편집]

FDR에서 해리 트루먼까지 민주당은 이렇게 무려 20년간 미국을 연이어 통치하였다. 이런 장기 통치와 세계대전, 이어지는 냉전에 국민들은 싫증을 내기 시작했다. 공화당은 그 틈을 타 그 동안의 경제파탄 정당 이미지를 어찌어찌 수습해나가면서 다시 세력이 강해졌고 결국 민주당 정권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가 당선되면서 끝났다. 1952년 대선 당시 아이젠하워의 공약 중 하나는 한국전쟁을 끝내겠다는 것이었고 당시 전쟁에 염증을 느끼던 미국인들은 아이젠하워를 지지하게 된다. 물론 트루먼 때문에 민주당의 인기가 바닥을 기고 있었기도 했지만.[8] 아이젠하워는 군인 출신의 경험을 살려 국방 예산을 줄이며 전쟁을 피하기 위해 노력했고, 미국 경제의 호황을 이끌어 개념 대통령 취급을 받는다. 이 시기(1950년~1958년) 상하원은 공화당과 민주당이 적은 의석차로 엎치락뒤치락했으며, 의석동수로 부통령 리처드 닉슨이 공화당을 다수당으로 행사한 적도 있다.

전통적으로 민주당은 서민과 남부, 공화당은 중산층 이상과 북부의 지지를 받았으나 20세기 후반에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 변화를 주도한 것이, 민주당과의 텃밭 바꾸기 전술, 일명 남부전략(Southern Strategy)이다.

20세기 들어와서도 남부에서 공화당의 입지는 거의 없었다. 아무래도 남북전쟁 이후 피해를 입은 남부에서 봤을 때 공화당은 가까이 하기에 너무 먼 존재였기 때문. 남북전쟁 자체가 노예제보다는 노예제를 포함한 여러 가지 문제, 즉 농업과 산업의 대립, 남부의 현금작물 대농장과 북부 개척민(자영농) 들의 대립 등 나라가 팽창하면서 생긴 여러 가지 뿌리깊은 대립이 모여서 터진 것이기 때문에 아예 출생성분이 달랐던 공화당은 남부에서는 거의 멸시와 혐오를 받고 있었던 것이다. 한편 보수적인 민주당 의원들은 딕시크랫이라고 불리며 민주당에 여전히 남아 있었다. 이런 어색한 동거는 FDR 때부터 시작한 민주당의 진보화(정확히는 연방정부 강화주의와 민권운동)에 불안을 느끼면서 삐걱대더니, 드디어 존 F. 케네디린든 존슨이 민권운동을 강력히 지지하면서 헛돌기 시작했다. 존슨이 남부의 상원의원 거물큰 형님로 민권운동과 여러 중요한 법안(업적)들을 이끌어 냈지만 속은 곪고 있었던 것.

이런 분위기를 당시 사우스캐롤라이나 남부 민주당 상원의원이었던 스트롬 서먼드가 감지하였고 그가 주권민주당을 창당하면서 남부 백인들의 마음을 돌려 민주당을 분열시켰다.[9] 닉슨은 당시 일고 있던 민권운동에서 슬며시 어정쩡한 태도를 보이며 이 딕시크랫들을 유혹했고, 기어이 1964년 서먼드가 공화당에 입당하면서 남부의 정치토양은 대 균열을 일으키게 되었다.

1964년 공화당 대통령 후보는 남부 애리조나 출신인 배리 골드워터였다. 결국 선거 결과는 존슨의 대승으로 끝나나 압승 속에도 공화당을 지지한 것은 기어이(그리고 도리어) 남부였다. 존슨의 지지 기반이었던 텍사스를 비롯하여 아칸소, 테네시, 노스캐롤라이나, 버지니아 등은 존슨을 찍어 주었으나 Deep South로 분류되는 사우스 캐롤라이나, 앨라배마, 조지아, 미시시피, 루이지애나는 골드워터의 손을 들어 주었다. 참고로 50개주+DC 중에서 골드워터가 승리한 주는 전술한 Deep South 5개주+골드워터의 Home State인 애리조나가 전부. 상황이 정반대가 된 것.[10] 이는 잠시 남부 출신인 지미 카터가 등장하면서 주춤해지지만[11] 후에 레이건이 이런 문화적 보수주의 전략을 한층 더 승화시켜서 현대 공화당의 전략을 확립한다.

닉슨은 비록 데탕트로 상징되는 외교정책과 미국의 베트남 전쟁 축소[12]는 성공하긴 했지만 거짓말, 월권, 사법부 직원들의 줄사표로 얼룩진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인하여 미국 역사상 유례없는 임기 중 사임을 하고야 만다.

2.2.2. 레이건, 부시 부자와 신보수주의 혁명[편집]

그나마 온정적이고 중도적이며 총기 규제에 적극 나서는 등 과거의 진보적 유산을 승계한 공화당의 이미지는 닉슨 선에서 끝난다. 로널드 레이건 때에는 결국 신보수주의/신자유주의소련과의 대결구도를 만들어 결국 소련을 붕괴시키고 강한 미국의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지지자들은 소련과의 군비경쟁이 결국 경제적으로 뒤떨어진 소련을 경제적 파국으로 치닫게 만들어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개방 및 개혁 노선을 이끌어냈다고 주장한다.[13]그 유명한 "고르바초프 서기장, 이 장벽을 부수시오!"라든가... 즉, 강경한 정책이 소련이 자멸하게 된 원인이라는 것이다. 뭐 미국이니까 그걸 감당해서 가능한 거지만...

레이건과 월터 먼데일이 맞붙었던 1984년 미 대선은 미국 역사에 남을 정도의 대관광이었다. 먼데일은 미국 50개 주+워싱턴 DC 가운데 자신의 고향인 미네소타와 DC만 간신히 먹고(선거인단 13명) 나머지는 모두 레이건에게 내주고 말았다. 당시 레이건의 인기가 워낙 좋았고, 먼데일이 좀 멍때리는 인상이라서(…) 이런 극단적인 결과가 나왔다나. 그러나 이후에 레이거노믹스의 약빨이 떨어지고 이란 콘트라 사건까지 터지면서 공화당의 지지율도 떨어져 나가서 1988년 대선에서 공화당의 재집권에 비상이 걸린 상황이었지만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의 탁월한 선거전략으로 정권 재창출에 성공을 거둔다.

그후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 임기 때는 냉전의 뒷수습을 잘했지만 걸프전의 함정과 경기 침체[14]로 인해 재선에 실패하고 만다. 그가 보수표를 잃은 큰 이유는 바로 그가 공약에서 절대 세금을 올리지 않겠다고 약속했다가 임기중에 적자를 만회하기 위해 세금을 올렸기 때문. 이 때문에 선거에서 로스 페로에게 보수표를 다수 빼앗겼으며[15] 결국 경제를 내세우며 "문제는 경제야, 이 바보야." 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빌 클린턴에게 패한다. 물론 1992년 선거에서 클린턴은 43%의 득표율밖에 보이지 못했다. 잠깐 어디서 본 것 같은데?

하지만 이것은 도리어 공화당에게 좋은 약이 되었다. 지지도가 충분치 않았던 클린턴 정권이 의료개혁의 실패로 비틀거리자, 1994년 중간선거에서 하원 지도자 뉴트 깅그리치가 내세운 미국과의 약속(계약)으로 공화당이 40년만에 하원 다수당을 되찾은 것이다. 대선에서 정권을 손쉽게 얻었느나, 의회권력을 패권을 몇십년만에 빼앗긴 민주당으로서는 거대한 타격이었으며, 클린턴 정권은 이후 공화당이 주도하는 하원에 끌려다니게 되었다.

아들 조지 W. 부시석연치 않게 앨 고어를 선거인단에서 이기고 당선되었고, 기독교 근본주의 세력과 신자유주의 세력을 기반으로 안보에 대한 공포심리를 이용하여 연임에도 성공하였다. 물론 그의 온정적 보수주의와 높은 도덕성도 스캔들에 질린 국민들의 지지를 끌었다. 하지만 이라크전이 점차 수렁으로 빠져들고 각종 비리 사건이 터졌고 무엇보다 부시 재임중에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까지 일어나면서 신자유주의+보수주의 노선은 국민의 지지를 잃고 말았다.

2.3. 부시 대통령 이후의 공화당[편집]

한마디로 말해서 그야말로 헬게이트 그 자체. 게다가 이들은 아직도 미국이 세계 경찰이라며 우크라이나이라크에 대한 적극개입을 주문하는 등 부시 시절의 미국의 역량과 현재의 역량에 대한 구분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게 아닌가 의심을 받을 정도로 현실 감각이 없다.

2.3.1. 아들 부시의 나쁜 유산과 티 파티[편집]

2008년 공화당 경선 후보, 특히 존 매케인의 경우는 부시를 까면서 지지를 받는 수준이었다. 매케인은 경선 후보가 된게 신기할 정도로 공화당 비주류였던 원칙 있는 보수주의자였다. 그의 표결이 거의 보수적이긴 했으나 중요한 순간마다 개념찬 발언들을 많이 했던 반면, 결국 세라 페일린에서 보듯 밑바닥 공화당은 여전히 보수주의자들이 판을 쳤다. 결국 페일린 디버프로 매케인은 큰 격차로 패배.

이렇게 공화당은 2008년 대선에 패배했고 의회에서도 소수당이 됐다. 팽팽하던 배아복제도 오바마가 새로운 법령으로 허용한 당시 60~70% 전후의 찬성률을 보이는 등 공화당의 문화적 보수주의는 잠시 패배하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이렇게 된 원인은 조지 W. 부시 덕분이었고, 여기에 양념을 쳐준 딕 체니도널드 럼즈펠드도 잊지 말자.

오죽하면 매케인이 대선 때 이런 말을 했을 정도...

"에이브러햄 링컨, 시어도어 루스벨트, 로널드 레이건의 정당에 부디 한 표를 부탁드립니다!"

아아 좋은 추억팔이다. 근데 그 분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할 게 아니라 그 분들을 본받아야지.

이렇게 공화당은 2008년 이후 역사상 전례가 없을 수준으로 세력이 약화되었으나, 경기가 회복되지 않고 티 파티 무리가 조직되면서 공화당은 분주히 세력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특히 경제사정이 나아지지 않자 "레이건 시절이 좋았어여!"라고 과거를 회상시키면서 유권자를 설득하는 모습도 보였다. 이런 대 반격 전략에 의해 중간선거 결과 하원에서 민주당과 오바마 정부의 오바마케어 대실패로 공화당은 큰 승리를 거두며 4년만에 하원을 되찾았다. 상원만 간신히 민주당이 유지한 정도.

2.3.2. 2012년 대선[편집]

밋 롬니를 내새운 2012년 대선에서 백인 표에서 이겼음에도 불구하고 비백인들의 표에서 심각하게 털리며 도시쪽 선거에서 탈탈 털린 이후론 여지껏 내세운 극단적인 보수주의로 나가는 걸 피하고 있다. 2012년 대선 지도를 보면 미국 전역을 새빨간 색으로 물들이며 땅따먹기 면적 자체는 공화당이 이겼다. 문제는 그들이 이긴 지역들은 인구수가 적은 시골이나 소형 도시/마을이 속한 카운티고, 각 주의 인구가 몰려있는 대도시 지역은 민주당이 강세를 보였다. 이런 성향은 경합주에서 두드러지게 보였다. 이 현상이 계속된다면, 노인 인구가 늘어나는 시골과 소형 도시를 먹고 있는 공화당의 미래는, 젊은 인구와 해마다 늘어나는 이민자 인구가 대거 주거하고 있는 대도시를 먹고 있는 민주당과 비교했을 때 상당히 암담하다. 물론 공화당의 성향은 한국처럼 고령화가 무지막지하게 빠르게 진행되는 상황을 개선할 생각이나 있는지 의문인 국가라면 오히려 장기적인 관점에서 크게 유리하다. 노인층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은 정확히 그 반대의 국가이기 때문에 공화당이 패배한 것. 사실 다른 공약은 극단적인 보수주의를 내세워도 유색인종 표엔 큰 문제가 없지만, 이민에 관련된 문제는 여태껏 내새운 강경주의를 사용하지 못할 듯.[16]

2008년 이후 대선 후보로는 롬니, 페일린, 마이크 허커비, 론 폴[17] 등이 다양하게 거론되었다. 의외로 흑인이지만 극우파인 케인과, 페일린을 제외하고는 그래도 완전 극우파는 없다. 허커비는 11년 불출마를 선언.

2012년 경선 와중에는 조지 W. 부시와 닮은 릭 페리라는 텍사스 주지사가 인기를 끌고 있다가 사그라들고, 보수주의의 대부인 뉴트 깅그리치가 등장했다.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깅그리치는 밀려나가고 롬니와 릭 샌토럼8표 차이로 1, 2등을 하고 4chan에서 트롤링으로 밀어주는 론 폴이 3등을 했다.[18]

이렇게 롬니가 후보 자리를 굳히는가 했더니... 사우스 캐롤라이나 경선에선 고인 취급받던 깅그리치가 1등을 해버렸다. 이건 뭐 뒤틀린 황천도 아니고. 플로리다네바다에서 롬니가 64명을 가져가면서 대세를 다시 끌어오더니 이번에는 샌토럼이 콜로라도미네소타를 가져갔다. 그래서 오히려 민주당은 승리를 자신하고 있다나.

그리고 운명의 슈퍼 화요일, 롬니는 많은 승수를 쌓으며 대세론을 이어갔지만 가장 중요한 오하이오[19] 등 10개 주 중 6주에서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지 못해 결국 공화당 경선은 초장기전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민주당은 더더욱 승리를 자신. 남부 보수우파를 등에 업은 깅리치는 어마어마한 네거티브 선거전에 돈을 쏟아부었고, 여기에 롬니가 맞서면서 경선이 거의 대선, 당내 내전 수준으로 이어졌다(…)

롬니가 이렇게 고전했던 이유 중 하나는 성경책에 손에 얹고 대통령 선서를 하는 나라에서 엄연히 기독교가 아닌 몰몬교라는 것이었다. 버락 오바마도 미들네임 '후세인'으로 곤욕을 치렀고, 미국 사회에 영향력이 큰 유대인도 대통령 후보는 내지 않는다. 깅그리치는 허먼 케인세라 페일린 같은 비교적 강경파들에게도 지지를 받았다.

다만 정치적 색깔이 극단적인 깅그리치는 항상 돈에 쪼들린다는 것이다. 반면 롬니는 롬니대로 돈을 너무 많이 벌고 있다고 까였다. 서민 드립을 치고 있는 공화당 후보인데 지난 2년간의 '개인' 수입은 $42 million... 거기에다가 롬니가 지난 2년간 낸 세금의 세율은 14%도 안 된다. 하루에 5만 6천 달러 벌고 있는 사람의 세율이 연봉이 5만 6천불인 사람과 비슷한 세율. 더 큰 문제는 롬니가 위법하지 않고 세금을 냈는데 세율이 14%밖에 안 된다는 것이다.

샌토럼은 도덕적 타격을 입은 깅그리치를 대신해서 깨끗하고 서민적인 이미지로 정통 보수들의 지지를 받는 모양새지만, 그만큼 아무래도 정치인인지 목사인지 모를 도덕론과 극단적인 보수주의 때문에 기존 공화당 지지자 표심은 잘 잡겠으나 중도층에는 취약할 후보라는 게 단점. 무난하지만 대신 보수 지지자들이 보기에는 너무 중도, 좌파스러워 미지근한 지지를 받는 롬니와는 반대의 경우인 셈. 선명성과 중도의 양강 대결로 점점 굳어졌다.

결국 샌토럼은 사퇴를 표명했고 그와중에 유타에서 모르몬교도인 롬니에게 도전하는 뉴트 깅그리치는 재혼왕의 패기를 보여줬다.

그러나 결국 2012년 5월 29일(현지시간), 롬니가 텍사스 주 프라이머리에서 공화당의 전체 대의원 중 과반수[20]를 (누적)확보하여 공화당의 44대 대선 후보로 확정되었다.[21] 2012년 8월 말에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후보로 공식 지명되어 2012년 11월 6일에 치러질 대선에 출마하게 될 예정이다.

2012년 7월 말까지도 러닝메이트는 결정되지 못했다.[22] 러닝메이트 하나 잘못 뽑아서 선거를 말아먹은 전례가 있어서...

그런데 9월 17일 미국의 진보성향의 잡지 '마더 존스'에서 밋 롬니가 그의 비공개 선거자금 모집행사 중에 연설하는 모습을 담은 몰래카메라 동영상을 공개했는데, 이 행사에서 롬니는 "오바마는 세금을 내지 않으면서 스스로를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47%의 미국인들의 지지에 의존한다.", "이들은 정부가 자신들을 보살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고, 의료보험과 먹을 것, 주택 등 모든 것을 지원받을 자격이 있다고 믿으면서, 세금은 전혀 내지 않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을 걱정하는 게 내 일이 아니다.", "나는 그들에게 스스로 책임을 지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돌봐야 한다고 설득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발언했다. 롬니가 대형 자폭을 시전하면서(…) 결국 노스 캐롤라이나를 제외한 오하이오, 플로리다, 버지니아 등의 경합주를 모조리 내주며 대선에서 패배했다.

다만, 2012년 대선의 경우 봐도 전국 득표율은 오바마 51.2 롬니 47.2로 꽤 차이가 났었는데 , 당시 밋 롬니가 패배한 경합주 플로리다(49%50%) 74,000표차, 펜실베니아(46.5%:52%) 310,000표차 ,오하이오(47.7%:50.7%) 166,000표차이로, 롬니가 각각 3만8천표,16만표,8만5천표를 더 얻었으면 (오바마로 부터 빼앗오는제로섬게임이니), 원래 롬니가 확보한 206명 선거인단에, 롬니가 근소하게 패배했던 경합주 플로리다(29),펜실베니아(20),오하이오(18)이 더해져 전국 득표율은 오바마 50.85 롬니 47.42로 3.4%밀리는 롬니가 선거인단 롬니 273명 오바마 265명으로 득표율로는 3.4% 지지만 어쨋든 당선'되는것도 가능했었다. 47%의 미국인들의 지지에 의존해서 당선될 수도 있었던 롬니

하원에서는 과반을 유지했지만 상원 선거에서는 리처드 머독 인디애나 주 후보와 토드 아킨 미주리 주 후보의 자폭[23]에 힘입어 8석 확보에 그쳤다.

2012년 선거 패배 후 낙태 관련 자폭 발언들과, 공화당이 장악한 지역 의회의 투표율 저하를 위한 공작[24] 티 파티의 활동 등으로 인한 꼴통스러운 이미지가 공화당에 덧씌워져 유권자들의 성향 변화를 반영하지 못했다는 예측이 중도층과 온건 지지자를 중심으로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반면 강경 보수주의자들은 롬니가 모르몬교도에 진짜 보수주의자가 아니라 졌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2.3.3. 오바마 정부 2기 - 티 파티의 셧다운 자폭[편집]

2013년 10월, 우려되던 셧다운 사태가 터지고, 그 원인이 오바마케어를 막으려는 공화당의 무리수임이 지적되면서 피해를 받는 유권자들의 분노가 공화당에게로 향했다. 주로 공무원이 많은 주들과 노인이나 중소기업처럼 국가의 지원을 필요로 하는 대상이 많은 주들이 피해를 많이 보았다.# 그리고 그 주들에는 공화당의 텃밭인 앨라배마와 알래스카도 끼어있다. 이외에도 셧다운 사태에 피해를 보는 주들 중에 공화당 지지세가 강하고 인구가 많은 주들이 다수 끼어있어 이들의 지지도가 낮아졌다. 셧다운 사태가 극적으로 해결된다 하더라도 이미 피해를 본 사람들이 많기에... 공화당으로서는 당장 급한 일 땜빵하려다가 지지 기반이 흔들리는 자충수를 둔 셈.

결국 셧다운 중단 협상에서 공화당은 요구사항 중 단 하나도 얻지 못했고, 지지 기반만 흔들리고 미국에 재산피해를 끼쳤다. 근데 공화당 강경파는 아직도 정신 못차렸다. 셧다운 후폭풍으로 다른 공화당원들이 2013년 시장, 주지사 선거에서 이리저리 털리는 와중에도[25] 티 파티와 담을 쌓고 허리캐인 샌디를 통해서 자기 PR을 착실하게 해온 크리스 크리스티는 전형적인 진보州로 통하는 뉴저지에서 주지사 자리를 지켜냈다. 하지만 다음 대선 후보로 주목을 받았던 크리스티가 포트 리의 시장이 선거 기간 동안 자신을 밀어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포트 리(뉴저지)와 뉴욕 시를 이어주는 조지 워싱턴 다리[26]의 차선을 의도적으로 정치 보복을 하기 위해 막아버렸던 사실이 드러나고, 허리캐인 샌디의 피해를 받았던 호보켄 역시 시장에게 구호금을 가지고 은유적으로 협박을 했던 게 드러나면서 그의 정치 생명과 공화당의 향후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설마 진짜 론 폴 2016.[27]

심지어 '보수단체에 대한 차별적 세무조사 청문회'에서는 로이스 러너 미 면세국장이 수정헌법 5조를 근거로 대답을 거부하고도 공화당 의원이었던 조사위원장이 계속 질문공세를 하자 민주당 쪽 의원이 손을 들어 의사 진행 발언을 요청했으나 위원장이 이를 무시하고 휴회를 선언하는 일이 벌어졌다.# 왠지 이런 일이 익숙한 한국과는 달리 이런 일은 미국 의회에서 유례가 없는 일이라 미 언론에서도 "요즘 미 의회의 예절이 땅바닥에 떨어졌다지만 이건 해도해도 너무한다."며 까였다.

2.3.4. 유로마이단2014년 크림 위기 사태가 준 기회, 그러나...[편집]

유로마이단 사태에서 미국은 아무리 멀리 있다고는 해도 사태가 저렇게 악화될 때까지 아무것도 못했다는, 국력에 비해 엄청난 굴욕을 맛보았다. 러시아크림 반도를 다시 흡수하고 우크라이나 동부 대부분을 친러로 돌려 대규모 이득을 보는 상황에서 미국이 유럽연합보단 낫다지만 아무런 제동도 못 걸었다는 점에서 이는 현 오바마 행정부에게 치명적인 오점이 되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그리 낙관적이지 않은 전망도 있는데, 일단 저번 사태 때 집권당이 공화당이었다는 걸 기억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아 꼭 민주당에게만 비난의 화살이 돌려지지는 않았다. 그리고 시리아 내전 사태에 대한 미국인들의 반응을 보듯 미국인들은 아프간전과 이라크전에서의 피해 이후로 해외분쟁에 끼어드는 것을 꺼려하는 고립주의 성향이 강해졌다. 우크라이나가 서유럽 국가들이나 일본한국처럼 미국과 상호방위조약으로 맺어진 동맹국이라면 모를까, 그렇지도 않은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사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았다고 비판하는 것을 미국인들이 과연 좋게 볼까? 당장 티 파티가 터트린 병크인 셧다운의 상처도 아직 아물지 못한 마당에? 뿐만 아니라 유로마이단의 주축에 네오 나치 세력이 끼어있다는 의혹이 불거진 이후로 우크라이나 임시정부에 대한 미국인들의 여론은 더욱 차갑게 식을 것이 분명한 만큼 공화당이 이걸 공격해서 별로 얻을 것이 없다는 분석도 나올 수 있다.

물론 오바마의 대러시아 정책의 실상은 아들 부시와 크게 달라지지 않은 상황이나 미국인들은 잘 모르고 있어서 공화당이 이를 집요하게 파고들 수는 있다. 버락 후세인 오바마/비판 항목 참고. 그러나 애초에 아들 부시가 먼저 깽판을 친 상태에서 태클 걸어봤자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는 소리 이상은 듣기 힘들 듯. 매케인처럼 또 자기 당의 네오콘들을 까거나 대오각성의 의지를 보여줘야 그나마 좀 될 텐데 과연 그런 인물이 있을지...

그리고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당장 공화당이 사실상 티파티와 온건파의 두 당파로 완전히 분열되어 있다. 당이 힘을 합쳐서 기회를 잡아 압도적인 열세를 극복해나가야만 하는 마당에 이러고 있으니 어쩌면 현재 공화당 수뇌부의 상황과 우크라이나 임시정부의 행태는 그리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2.3.5. 2014년 경선[편집]

버지니아주 하원의원이자 공화당 원내 대표인 에릭 캔터가 예비 선거에서 다른 공화당원에게 패배했다.[28] 사실 하원의원이 예비 선거에서 다른 인물에게 밀리는 건 그다지 대수로운 일도 아니지만, 문제는 이 양반이 공화당에서 다음 하원 의원장으로 예상될 정도의 거물 네임드라는 게 문제다. 거기다가 이 양반이 떨어진 이유가 '너무 진보적'이어서 듣보잡 복음주의 티 파티 후보에게 털렸다.[29] 당연한 소리지만, 저 양반이 실제로 진보적인 사상을 가진 인물은 절대로 아니다(…). 캔터가 티 파티를 비롯한 극우 공화당에게 '너무 진보적인' 이유는, 이민법 개정에 찬성을 하는 듯한 자세를 취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30]

사실 2014년 경선뿐만이 아니라 미국 현대 정치의 고질적인 문제인 것이, 가뜩이나 나라도 크고 인구수도 많은데 공화당과 민주당 네임드급 거물들이 대부분 극과 극을 달리는 우와 좌라는 것이다. 다인종 다문화 국가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세금이 제일 많이 걷히는 중산층 사람들은 소득으로서나 교육으로서나 어느 한쪽의 극을 좋아할 이유가 딱히 없는 딱 중간, 진보적인 보수요 보수적인 진보라고 할 만한 사람들인데 그걸 다 제쳐놓으니... 위의 에릭 캔터만 해도 미쳐서 이민법에 찬성하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적극적으로 시민권 가진 이민자들이 늘어나면 유권자가 늘어난다는 당연한 생각에 기반한 것이니 말이다. 이민법 문제 말고도 선거에 자주 등장하고 의견이 극과 극으로 나뉘는 낙태동성결혼 등의 문제의 경우도, 물론 선택할 권리와 행복권에 기반한 중요한 이슈이지만 선거할 때마다 이런 걸 가지고 물고 늘어지면 평범하게 벌어먹고 사는 보통 사람 입장에서는 아니 나라 빚이 지금 천억을 넘어가는데다 실업율은 또 얼마인데 저러고들 있냐는 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2.3.6. 2014년 중간선거[편집]

노스캐롤라이나 등 스윙 주에서 이기면서 상원을 다시 먹었다.

2014년 퍼거슨 소요에 놀란 보수성향 유권자들의 결집, 프리즘 폭로 사건으로 인한 민주당 지지자들의 이탈, 티 파티와 상대적으로 거리를 둔 공화당 온건파들의 대안화 등을 기반으로 중도파들이 대거 공화당 온건파들을 지지한 것 등이 원인으로 파악되며, 상하 양원을 모두 공화당이 장악함에 따라 오바마 행정부는 레임덕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이번 선거에서 공화당은 오바마와 민주당을 등치시키면서 오바마 심판론을 전개했고, 경합지역에는 상대적으로 온건파 후보를 배치하며, 온라인 여론전에도 신경을 썼으며, 티 파티와 민주당 행정부 양자에 모두 실망한 중도파들이 공화당 온건파들을 지지한 것과 민주당 지지자들의 투표율이 떨어졌던 것이 이번 선거에서 공화당 승리의 요인이었다. 오바마 심판론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오바마에 실망한 미국인의 결집에 득을 보았다고 할 수 있다.[31]

다만 지금은 썰물처럼 빠지긴 했지만 다시 밀물처럼 들어올 수 있는 티 파티가 공화당의 발목을 계속 잡는 것이 문제다. 이번 선거에서 공화당을 지지한 재계와 중도층은 티 파티는 싫으나 공화당 온건파를 지지한 경우가 다수라, 티 파티가 다시 강해지면 언제든지 공화당을 버릴 수 있기 때문(…). 여기에 자칫 핵전쟁을 부를 우크라이나 적극 개입을 외치거나,[32] 이미 이라크와 아프간전을 통해 안정화가 불가능하다는 것이 검증된데다 사회 자체가 극히 전근대적이라 현대적인 마인드 하에서의 접근 자체가 무의미한 중동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것을 주장하는 등, 공화당은 자신들이 비난하는 그 오바마보다도 외교정책에서는 비판의 소지가 충분한 마인드를 갖고 있는데[33] 이는 이라크나 아프간전과 경제위기로 인해 외부 개입에 대한 피로증이 심각한 미국 여론의 반발과 더불어 공화당에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아울러 공화당 입장에서 최대 난점은 힐러리를 압도할 후보가 아직은 없다. 현재 공화당에서 가장 지지율이 높은 후보는 29%의 지지율인 젭 부시지만 부시라는 성에서 알 수 있듯이 부시 가문, 그것도 조지 W. 부시의 남동생이다(…). 스펙트럼이 넓어진 공화당에서 온건파에 속하고 형이 아닌 아버지를 닮았다는 점이 매우 큰 장점이긴 하지만, 부시 가문에 환멸을 느끼는 미국인들이 워낙에 많아서 표를 주지 않겠다는 의견이 절반이라 형의 아우라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부터가 문제다(…).[34] 그 다음으로는 25%의 지지율인 랜드 폴이 있는데 그는 공화당의 딜레마인 티 파티의 지지를 받고 있는 인물이다. 밋 롬니는 여운을 남겨 놨지만 다시 출마하지 않겠다고 못을 박은 상황이고, 24%인 크리스티는 미국에서 가장 통행량이 많은 다리 중 하나인 조지 워싱턴 다리의 차선을 의도적으로 정치 보복을 하기 위해 막아버렸던 사실이 드러나고 나서 그동안의 블루 칼라스러운 좋은 이미지가 완전히 박살났다. 또 이름을 대자면 스콧 워커마코 루비오 정도? 물론 공화당 후보로 공천되는 시점에서 '인지도' 정도는 쉽게 극복할 수 있는 문제이긴 하나, 힐러리 클린턴과의 가상대결에서 모두 10% 가량의 차이로 패배할 것으로 예상되었다는 것이 문제이다.

물론 민주당 내에서도 힐러리를 압도할 만한 인물이 없는 게 문제지만, 적어도 힐러리라도 있다는 것이 민주당에겐 유리하다. 힐러리는 젊은 층에겐 비교적 인기가 적긴 하지만 최소한 blue dog 민주당원들이라는 든든한 지지 배경이 있고, 남편인 빌 클린턴의 고향인 아칸소를 비롯해 인접 남부 일대에서 공화당의 텃밭을 가져올 확률도 적지 않기 때문에 여러 모로 공화당에게는 매우 위협적인 후보이다. 후보로 거론되는 다른 인물로는, 메사추세츠 상원의원인 엘리자베스 워런과, 무소속이지만 리버럴 성향인 버몬트 상원의원 버니 샌더스가 있지만, 샌더스는 너무 마이너하고그러나 2016년에는...[35], 워런의 경우는 민주당 내부에서 비주류에 속했는데도 2014년 중간선거 이후 당에 변화를 주기 위해 당 주요 인사에 추대될 정도로 민주당 내부에서도 주목받는 인물이지만, 워런 스스로 자신이 할 일은 의회에 있다고 못을 박았기 때문에 출마할 가능성은 낮다.

2.4. 추락하는 공화당, 암울한 미래[편집]

지금까지의 서술을 보면 알겠지만, 공화당 자체가 기반부터 뿌리채 흔들리는 위기에 있다.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민주당과의 지지충 대결구도 그 자체에 있는데, 서부/동북부의 인텔리 백인+도시 노동자+흑인+히스패닉계+아시아계를 포함한 비백인계 이민자+여성+성 소수자+헐리우드라는 황금동맹, 다르게 말하면 강력한 콘크리트층을 형성한 민주당에 비해, 공화당의 갑부 자본가+남부와 중부의 시골 백인(레드넥)+종교적 보수주의자 연합이 적어도 지금으로서는 기본적으로 머릿수 싸움에서 밀릴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36][37] 그리고 공화당에게 있어 더 불리한 점은 민주당 지지자들은 당분간은 그 숫자가 더욱 늘어날 것이고(특히 히스패닉계를 포함한 비백인계 이민자.), 공화당의 경우 특히 남부와 중부의 시골 백인(레드넥)과 종교적 보수주의자는 점점 줄어드는 추세라는 것.

종교적 보수주의자들이 공화당을 기피해야하는 존재로 만들어 버리고 있다. 특히 종교 보수주의자들이 눈에 불을 키고 시비를 거는 사안이 성소수자 인권인데, 이 때문에 성소수자 존중 여론이 70%가 넘어가는 20-30대들은 말 그대로 종교 근본주의자들에게 이골이 난 상황으로, 자연히 공화당에게 그 똥이 온전히 튀기고 있다. 청년 공화당원이 급감하고 있으니 미래가 암울하다. 이제와서 공화당이 성소수자 분야에 대해 유동적인 정책이나 입장을 갖추기도 힘든게, 그 사이에 공화당 내에는 티파티로 상징되는 근본주의 기독교계의 힘이 너무나도 막강해졌다. 말그대로 공화당내 정통보수주의자들이 뭘 어떻게 할 정화 능력을 상실해가고 있다고 생각되어졌으나....

2.5. 2016년 대선, 압승을 거머쥐며 부활한 공화당[편집]

공화당 쟁쟁한 후보들과 민주당의 힐러리마저 모두 박살낸 뉴페이스, 아웃사이더 도널드 트럼프.
자세한 것은 2016년 공화당 대통령 후보 경선 그리고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 참조.

2015년에는 존 베이너가 은퇴를 하여 공석이 된 하원의장 자리를 폴 라이언이 대신하게 되었다. 이 때 공화당의 온건 보수주의 세력 (기득권)과 티 파티의 대립이 분명하게 나타났는데 베이너가 은퇴한 후 그의 후계자인 케빈 매카시를 티 파티 성향 (극우)의 공화당원들이 지지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 그래서 후계자가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베이너는 은퇴를 늦추기도 했다. 결국 하원의장을 안하겠다고 선언했으나 기득권과 티 파티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정치인이었던 폴 라이언이 하원의장이 되었다.

결국 경선에서 다른 모든 후보들이 나가 떨어지면서 도널드 트럼프가 사실상 공화당 대선 후보로 추대될 것으로 보인다. 티파티와 온건보수주의자들은 자신들의 후보가 모두 떨어졌기 때문에 대선에서 뭐라도 하려고 싶으면, 도널드 트럼프를 지지하던가 중재를 위한 새 후보를 내놓아야 한다. 도널드 트럼프가 공화당 대선후보로 확정된다면, 2014년 중간선거의 완벽한 반대면서 훨씬 심각한 상황을 맡게 될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에 투표하고 싶어하지 않는 공화당 지지자들이 아예 선거를 하지 않으면서 민주당이 손쉽게 대선에서 이길 지도 모른다는 전망이 유력 미디어로부터 나오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가 티파니와 온건보수주의자들을 모두 결합할 수 있는 무언가를 내놓아야지만 제대로된 본선이 치루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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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후보 도널드 트럼프

부통령 후보 마이크 펜스

결국 2016년 7월 19일, 도널드 트럼프가 공화당 대선 후보로, 마이크 펜스가 부통령 후보가 되었다. 이는 미국 역사적으로도 가장 압도적인 득표수로 확정된 것이라 큰 의미가 있다. 게다가 트럼프는 아웃사이더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압도적인 지지로 선출되어 공화당 내부에서도 당황스러운 분위기다. 물론 관련 전문가들도 충격을 금치 못하는 상황. 불과 몇개월 전만 해도 트럼프가 공화당 후보가 될 것이라 예상했던 전문가는 0명이었고, 그중 단 한 명만이 그래도 높게 주자면 20%정도는 가능성이 있다고 본 것이 전부.

여담으로 공화당 주류에서 얼마나 트럼프가 싫었는지 이미 사망한 로널드 레이건 이후의 역대 공화당 대통령과 대통령 후보 중에서 공화당 전당대회에 참석한 인물은 밥 돌 단 한명 뿐이고, 조지 부시 부자, 존 매케인, 밋 롬니 등은 모조리 불참했다. 공화당 대통령 경선에 나섰던 인물중에서도 존 케이식 오하이오 주지사와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 마크 루비오 플로리다주 주지사는 불참했다. 테드 크루즈는 참석해서 연설을 하기는 했는데, 끝내 트럼프 지지연설을 하는 대신에 당신의 양심에 따라서 투표하라라고 발언해서 트럼프를 엿먹였다. 이 외에 공화당 상원의원만 10여명이 불참하는 등, 공화당 주류의 반 트럼프 기조는 여전하다.

하지만 정작 선거 결과를 보면 예전부터 계속 공화당 찍어오던 사람들이 트럼프를 찍지 않는 일은 없었다. 공화당에서의 이탈은 거의 없었다. 특히 테드 크루즈의 강력한 지지기반인 개신교도들의 60%[38]가 트럼프에게 투표했다. 테드 크루즈의 말은 전혀 효과가 없었고, 공화당 유권자들은 트럼프를 버릴 생각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즉 트럼프의 승리는 전통적으로 공화당에게 지지를 보내오던 유권자들+원래 민주당 찍던 러스트벨트의 비도시지역 유권자들이 만들어냈다고 할 수 있다.

2016년 11월 9일,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며 세계가 깜짝 놀랐고, 더불어 침체기로 무너져가던 공화당을 다시 한 번 살려냈다. 즉, 웬 돈 많은 아웃사이더 한 명이 주류 공화당도 아니면서 공화당 후보들을 전부 박살내고, 막판에는 민주당의 힐러리에게마저 선거인단수로 압승하여 공화당에게 승리를 안겨준 셈. 공화당 주류 세력은 대권을 차지할 가망이 없으니 상하원 선거라도 잘해보자는 전략을 세웠었는데 그야말로 드라마 각본으로 쓰라고 해도 현실성이 없다며 비판 받을 기적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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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당 서열 1위 폴 라이언은 지속적으로 트럼프를 견제하다가, 당선 이후 트럼프를 칭송하고 나섰다.

미국 뿐만 아니라 전세계에서 놀란 기색이였다. 대부분의 전문가와 사람들이 힐러리의 완승을 예상했기 때문. 심지어 공화당에서조차 트럼프는 버린 자식 취급했으며, 이미 대통령 자리는 민주당에게 넘겨줄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트럼프의 승리에 대해 많은 분석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서민과 중산층 백인들의 소외감, 역차별, 경제적 문제, 그리고 민주당의 8년 장기 집권으로 다양성과 정치적 올바름이 극단적으로 나타나 사회에 많은 문제가 발생했고, 정치인들의 "입 바른 소리"에 질려 시원한 소리를 하는 도널드 트럼프의 표현이 더 진실되게 다가왔다는 점이다.

특히 민주당은 그간 다양성이라는 명목 아래에 비백인 인종에 많은 지원을 했고, 몇몇은 백인에 대한 역차별로 이어져 많은 논란을 낳았다. "비백인종 보호, 흑인 인권 중요하다"면서 서민층 백인들의 잃어버린 일자리는 무시하는 경향을 띄었고 이들이 조금이라도 볼멘소리를 하면 '못배우고 가난하고, 인종차별하는 백인들'이라는 취급이 일반적이었다. 관련하여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역차별적인 정책과 태도도 논란이 많았다. 그리고 트럼프는 이런 백인들의 소외감을 간파했던 것. 하여 쇠락한 러스트 벨트를 중심으로 선거를 돌며 침묵하는 다수인, 백인들의 마음을 휘잡아 압승을 거뒀다.

게다가 선거 결과가 끝나고 각계 각층의 투표율을 종합해보니 2012년 선거와 비교해 트럼프를 찍은 여성 투표율이 2%, 백인 투표율이 1% 감소한 반면 히스패닉, 흑인 투표율 2% 증가에 무슬림의 표가 무려 2배 증가했으며[39] 힐러리에 대한 흑인의 지지율도 감소[40]했고, 비백인 여성의 지지율도 1% 감소했다는 결과가 나왔다. 트럼프의 언행과 반대로 공화당이 백인에게서 전보다 덜한 성과를 거두고 무슬림과 유색인종에게서 전보다 더 나은 성과를 거두었다는 것이다.[41]

사실 도널드 트럼프라는 인물 자체가 대단히 특이하고, 선거 결과도 너무 충격적이라 앞으로의 공화당, 민주당의 행보를 예상하기 쉽지 않다. 다만, 한줄기 희망조차 없던 공화당에게 역사적으로도 정말 오랜만의 압승이며, 완벽한 정권교체를 이뤘다. 공화당 내부에선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 SBS CNBC에서는 다가올 트럼프 정부는 슈퍼 파워를 지닌 셈이라고 표현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대선 뿐만 아니라 같은날 치뤄진 상원 하원 주지사 선거에서도 공화당이 모두 승리하였다. 상하원은 과반까지 차지하였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469&aid=0000172002
상원 https://en.wikipedia.org/wiki/United_States_Senate_elections,_2016
하원 https://en.wikipedia.org/wiki/United_States_House_of_Representatives_elections,_2016
주지사 https://en.wikipedia.org/wiki/United_States_gubernatorial_elections,_2016

하지만 트럼프와 공화당 지도부의 관계는 그리 좋지 못해서 차후 미국 국정운영에서 커다란 걸림돌로 작용할 문제다[42].

2.6. 향후[편집]


트럼프 정권의 역사에 따라 공화당의 미래 또한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에서, 최근 CNN, NYT 등의 언론이 이야기하는 것만큼 모든 미국인이 트럼프 행정부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지지율이 불안정한 것은 사실이지만 국민의 절반인 공화당 지지자들과 열성적 우파들은 정말 웬만해서는 트럼프에게 긍정적일 것이고 (오바마 또한 논란에도 40%라는 진보층 콘크리트 지지가 있었듯이) 그외 트럼프가 추진하는 이민자 관련 법안은 도덕적 비판은 있을지언정 미국인 과반수 이상이 찬성하며 공감을 얻기도 했다.

또한 미국 언론이 대체로 진보적, 중도적 성향인 것을 보았을 때, 공화당 입장에서는 국민이 '주류 언론에만 의존'하려는 성향 또한 경계할 필요가 있고, 실제로도 비판적이다. 갤럽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공화당 지지자, 백인, 고학력자, 고소득자일수록 언론에 대한 불신이 높다고 대답했고, 2000년대부터 지금까지 국민들의 언론 의존도, 신뢰도가 낮아지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이런 변화 양상 때문인지, 트럼프와 주류 언론은 서로를 '가짜'라고 비난하며 신랄하게 타격하는 모양세를 띄고 있다.[43]

곧 다가올 획기적 네트워크 기술의 발달을 포함하여, 현재는 웬만한 매체보다 퓨디파이[44] 등의 메이저급 개인 유튜버가 더 큰 이슈를 만드는 것이 현실이고, 보수 성향의 칼럼니스트와 유튜버들만 'FAKE' 등으로 매도하는 분위기에 반감 여론도 형성되고 있다. 어쨌든 이런 충돌로 인해 무작정 언론을 신뢰하기보다는 자신이 직접 근거 자료들을 찾아보는 젊은 세대가 점차 늘고, 이것은 주류 언론과 적대적인 공화당에게 긍정적이라 볼 수 있다. 또한 주류 언론이 좌편향되었다고 생각하는 미국인이 다수를 차지하는 것도 특이할만한 점.

또한 공화당은 2008년 매케인이 5,990만 표, 2012년 롬니가 6,090만 표를 받은 것에 비해, 2016년 트럼프는 6,290만 표를 받아 전체 득표수는 4년마다 100만~200만 표씩 상승중인 반면, 민주당은 2008년 오바마 6,940만 표, 2012년 오바마 6,590만 표, 2016년 힐러리 6,580만 표를 받아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떨어지는 모습을 띄는 것도 공화당 입장에서 긍정적인 소식이다.

3. 역대 선거결과[편집]

3.1. 대통령 선거[편집]

선거연도

결과

후보자

대통령

부통령

1856년

낙선

존 C. 프리몬트

윌리엄 L. 데이튼

1860년

당선

에이브러햄 링컨

해니벌 햄린

1864년

재선

앤드루 존슨[45]

1868년

당선

율리시스 S. 그랜트

스카일러 콜팩스

1872년

재선

헨리 윌슨

1876년

당선

러더퍼드 B. 헤이스

윌리엄 A. 휠러

1880년

당선

제임스 가필드

체스터 아서

전임 암살 승계

체스터 아서

-

1884년

낙선

제임스 G. 블레인

존 로건

1888년

당선

벤저민 해리슨

리바이 P. 모턴

1892년

낙선

벤저민 해리슨

화이트로 리드

1896년

당선

윌리엄 매킨리

개릿 A. 호바트

1900년

재선

시어도어 루스벨트

전임 암살 승계

시어도어 루스벨트

-

1904년

당선

찰스 W. 페어뱅크스

1908년

당선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제임스 S. 셔먼

1912년

낙선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니콜라스 버틀러

1916년

낙선

찰스 에반스 휴즈

찰스 W. 페어뱅크스

1920년

당선

워런 거메일리얼 하딩

캘빈 쿨리지

전임 병사 승계

캘빈 쿨리지

-

1924년

당선

찰스 G. 도스

1928년

당선

허버트 후버

찰스 커티스

1932년

낙선

허버트 후버

찰스 커티스

1936년

낙선

알프 랜든

프랭크 녹스

1940년

낙선

웬델 윌키

찰스 맥너리

1944년

낙선

토머스 E. 듀이[46]

존 브리카

1948년

낙선

얼 워런

1952년

당선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리처드 닉슨

1956년

재선

1960년

낙선

리처드 닉슨

헨리 로지

1964년

낙선

배리 골드워터

윌리엄 밀러

1968년

당선

리처드 닉슨

스피로 애그뉴

1972년

재선

제럴드 포드

전임 사임 승계

제럴드 포드

넬슨 록펠러

1976년

낙선

제럴드 포드

밥 둘

1980년

당선

로널드 레이건

조지 H. W. 부시

1984년

재선

1988년

당선

조지 H. W. 부시

댄 퀘일

1992년

낙선

조지 H. W. 부시

댄 퀘일

1996년

낙선

밥 둘

잭 켐프

2000년

당선

조지 W. 부시

딕 체니

2004년

재선

2008년

낙선

존 매케인

세라 페일린

2012년

낙선

밋 롬니

폴 라이언

2016년

당선

도널드 트럼프

마이크 펜스

4. 지지층[편집]

중서부, 남부 백인 + 남성 + 장년층 + 군인(재향+현역) + 경찰 + 복음주의 기독교 + 교외지역 + 시골 + 언론, 영화, IT계를 제외한 대기업

초기에는 북부가 공화당의 기반이었으나 1964년 시민권법 제정과 공화당의 '남부 전략' 이후에는 남부가 공화당의 기반이 된다. 서부나 동부의 거대 도시보다 변두리나 시골에서의 공화당 지지도가 높은 편인데, 정책이념이 상당히 보수적이라 보수성향이 짙은 이들에 대한 지지도가 높을 수 밖에 없다. 연령으로 보면 젊은 세대보다는 중년층 이상부터 인기가 높다. 이는 미국뿐만 아니라 한국 또한 그런 성향을 띄는데, 나이가 들면 보수적인 정당을 지지하는 특성 때문. 또한 미국은 기혼자에 대한 세금부담이 덜하기 때문에 미혼자보다 기혼자가 공화당을 선호한다.

흑인 인권과 평등을 위해 민주당과 싸운 정당이지만 지금은 흑인들에게 인기가 없다. 이는 주로 경제정책 때문으로, 공화당의 주요 경제정책인 감세와 예산삭감 때문에 빈민층을 이루는 이들에 대한 사회복지가 감소되는 원흉(?)으로 지목받고 있는 까닭이다. 여기에 일부 보수주의 성향의 의원들 때문에도 그렇고. 최근 20여년간 대선을 보면 공화당은 6~8%정도를 득표하는 게 고작이다. 다만 최근에는 히스패닉에게 일자리를 빼앗긴다는 흑인들의 불만이 늘어나는 추세라서 다소 변화의 조짐이 있긴 하다. 일단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 당시에는 흑인의 8%가 트럼프 후보를 지지했다. 흑인 남성으로만 놓고 봤을 때는 13%가 트럼프를 지지했다.

백인들은 약 6대 4의 비율로 공화당을 지지한다. 2012년 대선이 레이건 이후로 가장 비백인과 백인의 정치성향 갭이 벌어진 선거로 기록되고 있다. 그러나 백인도 세대간 차이가 많이 있고 이 세대간 차이를 민주당이 벌리느냐 공화당이 좁히느냐도 선거에서의 승패를 가르는 치열한 싸움중 하나이다. 오바마는 성공했고 힐러리는 실패했다.

그 외에 다양한 인종으로 이루어진 이민자들은 압도적으로 민주당을 지지하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다만 쿠바나 베트남 같은 과거 공산권 지역 출신의 히스패닉, 아시안들에게는 인기가 높은 편인데, 이는 반공이라는 공통분모 때문이다. 쿠바계는 거의 플로리다에 모여살기 때문에 공화당이 플로리다에서 최소 48%~50%의 철벽 지지율을 지킬 있게 해준다.

아시아계는 80-90년대에는 공화당 지지세가 강했으나[47] 2000년대 들어 민주당 지지로 기울었다.이게 다 이 인간때문 하지만 아시아계라고 다 같은건 아니고 저마다의 차이가 있다. 한국계나 베트남계는 미국 내 유색인종에선 보기 드문 전통적인 골수 공화당 지지층이었는데, 베트남계는 월남전 패망 당시 베트남을 탈출해온 보트피플의 후예라는 점이 컸다. 필리핀계같은 경우는 종교적 보수색이 높아서인지 공화당:민주당 지지 비율이 5:5 정도였으며, 파키스탄계나 중동계 무슬림들은 원래 공화당 지지 성향이 높았으나 9.11테러 이후 미국의 네오콘 정책에 반해서인지 급격하게 민주당 지지층으로 바뀌었다. 이외에 일본계나 인도계, 기타 아시아계는 전통적으로 민주당 지지성향이 강했고 의외로 중국계도 민주당 지지 성향이 더 높았다. 특히 유대인 같은 경우는 7:3, 8:2 정도로 압도적인 민주당의 표밭이었으나 이스라엘에 우익 정권이 들어서고 오바마 정부와 갈등이 심해지면서 공화당을 지지하는 유대인 비율도 조금이나마 올라가는 추세라고 한다.

한국계 미국인은 원래 전통적으로 공화당을 선호하는 편이었고, 지금도 연령대가 높을수록 재미교포사회에서는 공화당이 인기가 좋다. 하지만 2012년 대선 당시 결과를 보면 재미교포는 공화당 롬니 20% 민주당 오바마 78%로 민주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했다. #. 하지만 2016년 대선에선 다시 공화당의 트럼프를 투표하는 비율이 높아졌다고 한다.

현재 미국 인구의 17%, 미국 유권자 중에서는 12%[48]인 히스패닉에서는 민주당에게 밀리지만, 30%정도의 지지는 받고 있는 편이다. 이 보수적인 히스패닉은 대부분 공산국가인 쿠바계 이민자라는 것이 특징이다. 의외로 강경 보수 성향을 가진 히스패닉도 무시못할 숫자인 게, 도널드 트럼프가 내세운 출생 시민권 헌법 개정에 대해서 히스패닉 중 23%가 찬성한다는 조사 결과도 있었다.#

전현직 군인들이 공화당을 지지하는 비율이 높다. 장교, 사병을 가리지 않고 공화당에 대한 지지도가 높지만 특히 장교들의 공화당 지지율이 매우 높다. 사실 남북전쟁 이후 150년 이상 미군은 공화당 지지자가 다수였다. 1차대전과 2차대전 당시 대통령은 민주당원이었지만 장군들은 공화당원이었다.(1차대전의 존 조지프 퍼싱, 2차대전의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더글러스 맥아더) 실제로도 '강한 미국'을 가치로 내세우는 공화당의 성격답게 군 관련 정책이 상당히 우호적이다. 물론 네오콘성향의 의원들 때문에 그 의미가 많이 퇴색되기는 했어도[49] 최강 미군 유지를 최우선으로 여기는 당의 성향이 강하다보니 군 관련 복지정책에 있어서도 긍정적인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군과 비슷한 이유로 NASA와 같은 우주 관련 인사 및 집단들의 지지율도 높다. 이 쪽 역시 '강한 미국'을 주장하기 위해 우주 관련 예산의 지원에 후하기 때문. 보통 첨단 과학 기술과 리버럴한 이미지가 잘 연결되는 것을 볼 때 아이러니라면 아이러니.[50]

그리고 메이저 언론사나 게임, 영화 업계, IT 업체 등을[51]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기업들이 공화당을 지지한다. 친기업 정책이 굉장히 강하기로 유명하고 여기에 의원직을 은퇴하고 나면 대개 대기업 임원들로 스카우트되는 경우가 많은 데다 대체적으로 기업들이 로비를 벌일 때 타겟으로 삼는 일순위가 바로 공화당이고 공화당 역시 경제정책에 대해선 정부의 무간섭주의를 주장하기 때문에 죽이 맞을 수 밖에 없다[52]. 미국은 전관예우에 대해서는 비교적 관대하다[53]

실제 소득으로 봤을 때도 고소득층이 공화당을 지지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로 공화당의 주요 경제정책 중 하나가 감세이다. 16년 대선에서는 트럼프가 백인 저소득층에게 어필하면서 약간 다른 모습을 보여줬으나, 의원 선거에선 여전히 고소득으로 갈수록 공화당 지지율이 높아지는 결과가 나타났다[54].

유대교 신자들은 민주당을 지지하지만 개신교[55]나 모르몬교 신자들은 공화당을 지지하는 비율이 높다. 이는 이들이 주로 낙태나 동성결혼 반대같은 쟁점에서 공화당 쪽의 스탠스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신교교단이라도 자유주의성향이 강한 교단들의 경우 공화당과 민주당 지지세가 거의 반반 정도로 나타난다. 다만 이들 자유주의 성향의 교단들은 세력이 축소되고 있다는게 함정.

가톨릭의 경우, 백인 가톨릭신자들은 공화당 지지율이 높고, 히스패닉 가톨릭신자들의 경우 민주당 지지세가 훨씬 강해서, 결과적으로 보면 민주당 지지세가 살짝 강하긴 하나, 2004년과 2016년 대선에서는 공화당 지지세가 더 강하게 나오는 것을 보면 총체적으로 봤을 때는 반반정도라고 할 수 있다.

성별로 보았을 때는 남성의 공화당 지지율이 여성에 비해 높은 편이나, 흑인에게는 남녀 가리지 않고 인기가 거의 없다.

4.1. 핵심 지지층[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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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줄 왼쪽부터
온건 보수주의 | 공화당 기득권 | 종교 보수주의
리버테리안 | 티 파티
파이브서티에이트의 네이트 실버는 이 다섯 세력 중 세 세력을 승리하는 사람이 경선을 승리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 온건 보수주의: 사회적, 경제적으로 온건적인 성향을 띄는 공화당 지지자들로 전 뉴욕 시장 루디 질루이아니 그리고 2012년 공화당 경선에 출마했던 존 허츠먼이 있다. 공화당과 민주당의 양극화가 심해지는 상황에서 이 세력은 공화당에서 조금씩 지지를 잃고 있는 중이다. 2016년 공화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이 위치에 완벽하게 있는 정치인은 없다. 그나마 젭 부시, 마코 루비오, 존 케이식이 진보적이지만 완벽한 온건 보수주의자라고 보기는 힘들다. 이들은 어느 정도는 온건 보수주의자들이지만 공화당 기득권 정치인으로 꼽힌다.

  • 공화당 기득권: 공화당 기득권 정치인들은 공화당 내부의 지지를 받는 정치인들로 공화당 평균보다 진보적이지도 (온건 보수주의) 보수적이지도 않다. 이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는 대선 후보로 선출되기는 매우 힘들다고 정치 전문가들은 보고 있으며 젭 부시, 마코 루비오, 존 케이식 정도가 꼽힌다. 도널드 트럼프벤 카슨이 2015년 11월 현재 많은 지지를 받고 있지만 경선을 승리하지는 못할것이라는 분석이 여기서 나오는 것이다. 사퇴하기전 스콧 워커도 공화당 평균보다 보수적이지만 공화당 기득권의 지지를 받을수 있는 정치인이였다.

  • 리버테리안: 사회적으로는 진보적이지만 경제적으로는 보수적이고, 평화주의적인 공화당 지지자들로 론 폴과 그의 아들 랜드 폴이 이에 해당된다. 특히 타국에 무력 개입을 꺼리고 국방비를 줄이려는 성향은 미국의 패권주의를 어느정도 지지하는 다른 공화당 지지자들과 큰 차이가 있다. 미국의 리버테리아니즘은 어느정도 자유지상적 아나키즘과 비슷한데 (조세와 기업 관련 규제를 줄이고 정부의 역할을 줄리는 것을 중요시 여긴다. 군에 관련해선 미국이 침략당하지 않도록 엄청난 패권을 원하는 자 / 침략을 적극적으로 막기 위해 해군과 공군은 키우되 육군은 감축하고 전시 징병제로 전환 등을 지지하는 세력으로 나뉜다) 리버테리안 파티는 아무리 투표해 봤자 실질적으로 정권을 잡거나 의회에서 목소리를 가지기 힘드니 그나마 조세와 사업 규제 정책 측면에서 말이 통하는 공화당 쪽에 표를 던지는 것. 보통 인간의 기본권과 자유시장경제를 최우선시 여기는 사람들이 많으며, 전반적으로 사회적으로 진보적인 이유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남이 마약빨고 죽든 신발하고 결혼하든 내 기본권만 침해하지 않으면 뭔 상관? 네오콘들 오지랖도 참...” 정도 되는 인물들이 많다. 팍스 앤 레크리에이션의 론 스완슨에서 수위를 약간 낮추면 된다.


  • 종교 보수주의: 사회적으로 보수적인 지지자들로 테드 크루즈, 마이크 허커비, 릭 샌토럼등이 해당된다. 다만 여기는 공화당 내 권력 싸움에선 유리한 레퍼토리일진 몰라도 미국 전체를 두고 보면 이 그룹은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종교적 보수주의가 아니고서야 공감자체가 불가능한 주장들이 한무더기이기 때문.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네이트 실버의 예상을 뒤집어 버리고 압승해버렸다.

5. 외교[편집]

우선 남북한의 경우 보수성향이 짙은 정당이었기 때문에 역대 공화당 정권은 한국과는 한미동맹과 우호협력 등을 통해 우호적으로 평가받았으나 미국의 이라크전, 아프간전 대실패와 천문학적인 세금 낭비 등으로 인해 고립주의를 지지하는 세력이 많아졌으며 론 폴을 필두로 한 주한미군 무용론, 철수론을 주장하는 세력도 꽤 있다. 2016년 대선 후보인 트럼프 측은 노골적으로 한국이 미국의 안보에 무임승차 하고 있다고 까고 있다. 최근 공화당의 양대 축인 티파티도 명목적으로 Libertarian들이기 때문에 남북한 외교에 대해서는 경제 문제에 비교하면 관심이 없다고 해도 될 수준이다[56]. 북한에 대해서는 미국을 위협할 적대국가로 인식하였고 역대 공화당 정권이나 공화당 대선 후보들도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와 군사제재 등을 국가 및 선거공약으로 내세울 정도.

과거 공화당 당적의 대통령 조지 W. 부시는 북한을 이라크, 이란과 함께 3대 악의 축 국가로 지목하였고 북한의 2대 군주에 대해서도 "전혀 못 믿을 사람이고 믿을 가치조차 없다.", "무기를 만들기 전에 백성들이나 먹여 살려라."라고 비판하였다. 그러나 이런 도덕주의적 국제관은 이라크-아프가니스탄의 수렁에 빠진 부시 후반기로 가면 결국 현실주의적인 협상론으로 기울어졌다. 다만 북한의 경우는 협상 자체가 먹히지 않는 막장 오브 막장이라 그런지 대안이 없어서 여전히 기존의 기조를 유지하고 있으며 오바마 역시 이런 공화당의 시각을 북한 문제에 한해서만큼은 그대로 이행하고 있다[57].

이외 다른 국가들의 경우, 과거에는 적극적인 도덕주의를 유지했지만 현재는 갈수록 고립주의자들이 그 세력을 넓혀가고 있다. 최근 시리아 전쟁에서 미국 내 여론이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시리아 개입에 반대하는 것[58]이 대표적인 사례. 다만 공화당 지도부는 여전히 국제적 도덕주의를 유지하고 있다.

6. 공화당 출신 정치인[편집]

6.1. 대통령[편집]

6.2. 기타[편집]


[1] 주로 역대 대통령이 우러러보는 선대 대통령은 해당 당의 첫번째 대통령을 그린다. 마찬가지의 이유로 민주당 삽화에서는 민주당으로서의 첫 대통령이라고 할 수 있는 앤드루 잭슨을 그렸다.[2] 별칭으로 Grand Old Party(GOP)라고 하나 어디서 유래한 이름인지는 모른다. 공화당도 추측할 뿐. # 상징은 코끼리. 원래 상징은 아니었으나 공화당을 까던 기사에서 풍자하면서 그렸고 그게 퍼지다 보니 후에는 그냥 상징으로 사용했다.천조국의 기상인지 미국 민주당의 상징인 당나귀도 원래는 언론에서 민주당을 당나귀에 빗대 병신 같다고 까던걸 당나귀는 멋있어! 하면서 갖다 쓴게 시작이다.[3] 공산주의의 창시자로 널리 알려진 카를 마르크스도 한창 특파원으로 일했을때 공화당 지지성향 신문사(뉴욕 데일리 트리뷴)에서 일했을 정도였다. 그래서 기자로 일했을때 미국 남북전쟁 전황을 분석하면서 링컨을 칭찬하는 기사를 내기도 했고,특파원일 그만두고, 링컨이 재선되었을때 축하편지도 내보내기도 할 정도였다.[4] 민주당은 1876년 새뮤얼 틸던이 득표에서 이겼지만 결국 졌다. 헤이스와 틸던 항목 각각 참조.[5] 공화당은 1892년 선거에서 2년간만 상원 다수당을 잃었다.[6] Landslide는 영어에서 압승을 표현.[7] 시어도어 루스벨트와는 친척 관계. 민주당에 온 이유가 공화당엔 시어도어의 아들들이 이미 포진되어 있어서 블루오션을 찾기 위해서였다나...[8] 공화당은 1946년과 1952년의 각각 2년간 하원 다수당을 회복하는데(246:188, 221:213), 이후 40년간 이 지위를 되찾지 못했다. 1930년의 석패부터 따지면 64년간![9] 케네디의 경우엔 대선에서 남부 선거인단 15명이 제3의 인물을 지지하는 돌발사태까지 있었는데, 그게 바로 서몬드의 표였다.[10] 참고로 골드워터가 출마한 이때를 미국 20세기 보수주의의 시작으로 본다. 골드워터가 처음 나왔을 때는 '자유의지주의'와 '신보수주의'가 생소한 개념이었으나 이후 미국에서 보수주의의 싹이 피어나기 시작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골드워터는 낙태를 반대하지 않는 등 그야말로 자유주의자라서 훗날의 미국 공화당 정서와는 조금 안 맞는 인물이지만... 이 계통을 재밌게도 존 매케인이 이어받았다.[11] 카터는 버지니아를 제외한 모든 남부 주에서 승리했다.[12] 이른바 전쟁의 베트남화. 남베트남으로 보면 실패한 전략이나 미국의 입장으로는 모로가도 발만 빼면 됐기 때문에...[13] 다만 실제로는 얘기가 다른데 고르바초프의 노선자체는 유리 안드로포프 때부터 이어져 내려온 것이기는 하다. 물론 군비경쟁에서 나자빠진 것이 급진적인 정책에 영향을 끼친 점은 부인할수 없겠지만[14] 레이건 후반기부터 부시 대통령 시기까지는 21세기가 되면 일본이 미국을 제치고 제1위 경제대국이 될 거라는 예측이 석학자들 입에서도 나올 때였다. 물론 조금 지나 일본도 경기 침체에 허덕이면서 설레발이 되긴 했지만.[15] 19%가 페로에게 갔다.[16] 사실 히스패닉계 자체의 정치 성향 자체는 오히려 공화당에 가깝다.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이고 종교적인데다가 'hard work'를 내세우는 마초스러움에 심취하는 성향이니...[17] 의사 출신으로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고, 마리화나 합법 찬성, 외교적으로 빈간섭주의 등 당내 비주류 의원이다. 젊은층에게 인기가 많다. 나이가 많은 게 흠(1935년생.). 하지만 그의 인기는 아들 랜드 폴이 이어받고 있다.[18] 꼭 트롤링이라고 볼 수도 없는 것이 사실 인터넷에서 폴의 인기는 상당하다. 어느 정도냐 하면 온라인에서 이루어진 거의 모든 투표를 싹쓸이했을 정도. 유튜브 같은 곳에서 미 공화당 경선을 검색해 보면 폴을 조금이라도 까는 영상은 추천의 배가 넘는 비추천이 달리는 것을 볼 수 있다. 다른 후보들은 정반대.[19] 가장 무난하게 미국 전체의 표심을 대변하는 주이다. 롬니가 샌토럼을 1% 차이로 간신히 이겼고, 공화당 표밭에서는 샌토럼이 이긴 경우도 있었다.[20] 공화당 대의원 총 2286명 중 1144명. 텍사스 프라이머리에서는 고작 대의원 58명의 지지를 추가하였을 뿐이어서 사실상 그 전에 이미 공화당 후보로서 거의 확정된 상태였다.[21] 과거 매케인이 3월에 이미 공화당 대선후보로 확정된 것에 비하면 거의 6월이 다 되어서야 확정된 롬니는 상당히 늦은 셈이다.[22] 롬니 측에서는 점점 인구가 증가하고 있는 히스패닉 유권자들의 표를 뺏어오기 위해 히스패닉계 후보를 내세우고 싶어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러나 마땅한 경력을 가진 히스패닉 후보가 없다는 듯. 때문에 심지어 카다피의 흑인 여왕 콘돌리자 라이스까지 러닝메이트로 언급되기도 하였다.[23] 둘 다 강력한 낙태 반대론자인데 낙태를 반대한답시고 머독은 "강간으로 인한 임신도 신의 뜻."이라는 개드립을 쳤다(…). 이건 경선 후보였던 샌토럼도 한 인터뷰에서 쳤던 개드립이다. 강간으로 인한 임신을 해도 신이 준 생명이니 키워야 한다는 희대의 병신소리를 지껄이는 이가 경선에서 롬니랑 엎치락 뒤치락 했다는 소리가 된다(…). 토드는 "진짜 강간(legitimate rape)을 당했을 경우, 여성의 몸이 임신 기능을 자동적으로 셧다운시킨다."라고 중학생만도 못한 성교육 수준의 헛소리를 하다가 사이좋게 낙선했다.[24] 조기 투표를 어렵게 만들고 사진이 있는 신분증을 통한 유권자 확인을 강제화. 선거 부정을 없애겠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미국에는 이런 신분증 없는 이가 제법 많고 발급받기도 까다롭다. 이 이슈들은 선거 직전 <심슨 가족>에 의해 대차게 까였다. 심지어 에런 소킨은 드라마 뉴스룸을 통해 이 공작에 주로 가담한 조직 티 파티아메리칸 탈레반이라고 까버렸다. 탈레반이 미국에서 가지는 의미를 생각하면 흠좀무.[25] 2013년 주목할 만한 새 시장들 보면 알겠지만 전부 민주당이다(…). 게다가 신시내티처럼 공화당은 아예 존재감이 없고 민주당 후보만 둘이 격돌한 도시도 있다. 그저 안습.[26] 미국에서 가장 통행량이 많은 다리 중 하나다.[27] 여러모로 시원시원하고 까칠하지만 정감 있는 '블루 칼라' 이미지를 성공적으로 쌓으면서 민주당의 표밭을 위협하던 크리스티가 무슨 마피아 영화에나 등장할법한 스캔들로 무너지면서, 2014년 시점에서 남은 '빅 네임' 후보는 론 폴의 아들인 랜 폴같은 티 파티/리버테리언 계열 인사들만 남은 상태다.[28] 원내대표가 경선에서 떨어지는 경우는 미국 역사상 처음이다.[29] 5~600만 달러 선거자금을 쓰고 10만 달러 쓴 티 파티 후보에게 털렸다. 돈 더 많이 쓴 쪽이 승리가 거의 확정적인 것을 보면 더 후덜덜하다.[30] 물론 단순히 이민법 개정 진보화가 캔터의 낙선의 모든 뒷배경은 아니다. 캔터의 경운 월가쪽과 상당히 친했고(선거 떨어진 지 반 년도 안 돼 월가에서 '국회 내부 커넥션'을 위한 로비스트로 몇 백만불의 연봉을 주며 모셔갔다.), 셧다운 등을 통해 공화당 내부에서 중도에 가까운 투표자들이 아예 공화당 자체에 등을 돌리거나 관심을 끊어버리는 경우가 생기면서, 극우 단체인 티 파티 후보가 남아있는 극우 투표자들의(티 파티) 지지를 받고 올라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31] 그동안 민주당을 지지했던 빌 게이츠가 이번 선거에는 공화당 지지로 돌아섰으며, 마크 저커버그도 공화당을 지지하였다.[32] 게다가 이 전쟁은 버락 후세인 오바마/비판 항목 보면 알겠지만 미국의 병크도 엄청난 수준이다.[33] 실제로 해당 분야에 대해 잘 아는 외교관들은 오바마의 이슬람권 및 우크라이나 개입에 대해 적극적으로 비판하고 있는데, 당장은 공화당이 까이지 않지만 결국 공화당의 정책이 오바마의 정책을 더 강경하게 계승하는 것임을 고려하면 똑같은 비판의 대상이 된다.[34]많이(…) 극복하기 힘든 문제긴 하지만, 그 문제만 해결된다면 공화당 입장으론 최상의 후보이긴 하다. 일단 성향이 공화당 내부에서 온건파에 속해서 중도표를 끌어들이는 데도 문제가 없고, 본인이 미국 대선에 매우 영향을 끼치는 스윙 스테이트 중 하나인 플로리다에서 주지사를 지냈기 때문에 스윙 스테이트 하나를 공화당쪽으로 끌어오기에도 적합하다. 그리고 부인이 히스패닉계이고, 정계 활동을 하고 있는 아들도 히스패닉의 색채가 강하게 나타나는 혼혈이기 때문에 공화당의 가장 큰 고심거리인 히스패닉계의 표를 끌어들이는 것도 가능하다. 여기에 젭 부시가 스페인어를 네이티브 수준으로 사용하고, 대학 전공 역시 남아메리카 학과를 나왔기 때문에, 여러모로 히스패닉에게 어필이 가능하다. [35] 2014년 11월 17일 콜베어 르포어에서 대선에 출마를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무소속으로 출마를 할 경우, 민주당 표를 갈라먹을듯(...).[36] 대한민국정치에 비유하면 민주당계 정당이 지역구도와 언론구도상(조중동은 보수계 정당의 분열을 우려하기 때문에 온리 새누리당에 가깝고, 한겨레와 경향 등 진보언론들은 민주당을 고깝게 본다.)의 불리함으로 인해 대선에서 핸디캡을 안고 싸울 수밖에 없는 상황과 비슷하다.[37] 아래에 후술할 2014년 중간 선거에서 공화당이 압승할 수 있었던 것도 늘 그렇듯이 현실감 없는 레드넥 백인 장년층 덕을 보았다. 게다가 이 중간선거에서 민주당 최대 표밭 캘리포니아뉴욕은 참가조차 하지 않았다. 아무리 공화당이 2014년 중간선거에서 압승했어도 앞으로의 전망은 특별한 변수가 일어나지 않는 이상 낙관적이지 못하다.[38] 이것은 2012년 선거에서 롬니가 받은 투표율보다 높다.[39] 출처1, 출처2의 voter demographics 참조[40] 이건 오바마가 흑인이어서 2012년 선거에서 좀 득을 본 감이 있다.[41] 하지만 민주당도 백인 유권자에게서 2012년 대통령 선거때(39%) 보다도 덜한 성과(37%)를 거두었다.[42] 대통령 유세기간 동안 트럼프가 보여준 행동이나 언행들이 기존의 공화당의 정당정책에서 상당히 벗어난 점이 많아(여성비하및 도발적인 언행) 애시당초 공화당 지도부와 마찰을 빚었을 뿐 아니라 이번 트럼프의 반이민 행정명령에 대한 법조계의 제동을 두고 트럼프의 '판사'비하 트윗으로 인해 지도부 역시 "이건 아니지."란 반응을 내놓을 정도로 서로간의 신뢰는 보여지지 않고있다.[43] 다만 언론에 대한 신뢰도 저하는 언론이 자처한 것이다. 실제로 트럼프가 미국 언론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기 전인 약 2000년부터 미국 언론 신뢰도는 지속적 하락 추세였기 때문에, 단순히 트럼프라는 사람 하나 때문에 언론 신뢰도가 떨어졌다고 말하는 것은 비약이 지나치다.[44] 트럼프에게 조소 섞인 농담을 즐기는 등 우파 성향의 인물은 아니지만, 주류 언론의 선동으로 많은 피해를 입어 이러한 언론 불신 여파에 큰 영향을 끼쳤다.[45] 민주당이었지만 통합을 명분으로 링컨이 부통령 후보로 삼았다.[46] 안습의 대선을 두 번이나 겪었다. 인기가 하늘을 찔렀던 전임 대통령인 프랭클린 루스벨트에게 패배한 44년 대선은 그렇다 쳐도, 압도적인 승리로 예상되던 트루먼과의 48년 대선에서 대역전패 당하는 굴욕을 맛보게 되었다. 이 듀이 - 트루먼의 사례는 정계에서 선거 국면이 불리한 진영의 희망고문의 소재로 종종 쓰이곤 한다.[47] 84년 대선 당시 로널드 레이건은 아시아인을 대상으로 70%를 득표했고, 88년 대선에서도 조지 부시가 54%를 득표해 44%를 득표한 듀카키스를 앞섰다. # 이는 92년(부시 55% vs 클린턴 31%)과 96년(돌 48% vs 클린턴 44%)까지 이어진다.#[48] 히스패닉의 평균연령이 상대적으로 낮아서 선거권이 없는 미성년자 비율이 높다.[49] 한국군 vs 북한군/경제력 비교 문서에 네오콘이 어떤 정책을 폈는지를 설명해 놓았다. 특히 이들 때문에 많은 미군의 최신무기들의 양산이 취소된 것을 생각해보면.[50] 사실 우주산업 엔지니어들 상당수가 미군 관계자들이기도 하다.[51] 이는 한국과 비슷한 양상이다. 이들은 다른 기업들보다 '표현과 언론의 자유'가 더 크게 작용하기 때문에 이와 관련된 민주당 지지율이 높다. 할리우드 등 미국의 예술계에서 민주당 지지율이 높은 이유도 이와 같다. 그러나 민주당 지지자들의 단점 중 하나인 극심한 정치적 올바름표현의 자유를 억누르면서 발목을 잡게 되기도 하며, 언론/IT/영화계의 PC운동은 그들이 외치던 자유주의를 억압하는 요인 중 하나가 되며 이중성으로 인해 트럼프에게 대통령을 안겨중 요인으로 뽑히기도 한다. [52]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당시 대다수의 미국 언론과 여론은 대형화된 월가와 금융기관을 그 원흉으로 지목했고 민주당(미국) 행정부 역시 이것에 대한 대대적인 손질을 예고했었으나 대형 금융회사들과 월가에서 공화당에 로비를 시전 "우리가 망하면 미국의 금융체계에 혼란을 초래한다"는 이른바 '대마불사론'을 강조, 책임을 회피한 예가 있다.[53] 전직 장, 차관급 인사가 대기업의 주주나 법조계, 그리고 교수직으로 들어가는 것에 대해 별 이의를 달지 않는다. 단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하는게 미국은 한국과는 달리 당사자에 대한 검증이(특히 개인적인 검증) 장, 차관 임명때 미 의회가 실시하는 인사청문회에서 마친 상태이고(비리라든가 개인적인 결격사항이 나타난 인물은 요직 진출 자체가 불가능하다), 또 해당 분야에 대한 학식이나 경험이 풍부하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한국의 전관예우가 문제가 되는 이유는 해당 인물의 대한 비리 내지는 여러 혐의가 확실하게 해결되지 않는 상황에서 '공과 사'를 확실히 구분하지 않는 한국 사회의 특성 때문에 부정적으로 여겨지는 것 때문이다.[54] 감세정책, 예산삭감등은 개인소득의 증가와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나가는 돈이 적을수록 개인의 주머니에 들어오는 돈은 늘어나니까. 다만 이 때문에 미국내에서도 양극화가 문제가 되기 시작하고 있다는 점은 함정이지만.[55] 특히 자유주의 성향의 교단 신자보다는 복음주의/근본주의 계통 교단의 신자들[56] 티파티의 기조는 쉽게 말하면 "내 돈에 손대지 마라"이기 때문에 자신들의 금전적 손해가 가지 않는 문제에 대해선 거의 무관심 수준이다.[57] 솔직히 상대가 "너 죽여버릴거야!"라고 노상 협박이나 해대는데 이성적인 접근을 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고 지네들도 여러가지 물리적인 위협을 가했던 전과가 있으니 만큼 왜 북한만 예외냐라고 묻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58] 그것도 시리아 정부군이 화학탄을 쓰든 말든 반대하는 입장이 다수다.[59] 41대와 부자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