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경비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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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c2down.cyworld.co.kr/download?fid=64222de07c9f21d1f3102f881f94045a&name=DSC06300.jpg[1]

지구상에서 가장 무서운 장소[2]
- 빌 클린턴

분단의 상징에서 평화의 상징으로

1. 정의2. 개요3. 판문점이라는 이름에 얽힌 사연4. 설명5. 주요건물
5.1. 남측 지역
5.1.1. 자유의 집5.1.2. 평화의 집5.1.3. 돌아오지 않는 다리5.1.4. 중립국감독위원회 캠프5.1.5. 기타 건물
5.2. 군사 분계선
5.2.1. 중립국감독위원회 회의실5.2.2. 군사정전위원회 회의실5.2.3. 당직장교 회의실5.2.4. 북측 경비병 휴게실
5.3. 북측 지역
5.3.1. 판문각5.3.2. 통일각5.3.3. 돌아오지 않는 다리5.3.4. 72시간 다리5.3.5. 기타 건물
6. 관광
6.1. 남측에서6.2. 북측에서
7. 군 복무지로서의 판문점
7.1. 타의로 JSA에 가게 되는 경우
8. 기타9. 사건 및 사고10. 관련 대중매체11. 관련 문서

1. 정의[편집]

共同警備區域 / 板門店

공식 명칭은 군사정전위원회 판문점 공동경비구역(軍事停戰委員會板門店共同警備區域), 영어로는 'Military Armistice Commission Joint Security Area - Pan Mun Jeom'이다. 이를 통상적으로는 공동경비구역(JSA, Joint Security Area)이라고 짧게 지칭하며, 대중적으로는 더 짧게 판문점이라고 부른다.

비무장지대 (DMZ) 군사분계선상에 있는 구역으로, 대한민국 경기도 파주시 진서면 어룡리와 북한황해북도 개성특급시 판문점리 접경 동서 800m, 남북 600m에 걸쳐 장방형으로 설정되어 있다. 이는 휴전 당시 유엔군중국 인민지원군북한군이 회의를 원만히 운영하기 위하여 1953년 10월 합의, 군사정전위원회 본부 구역 군사분계선(MDL)상에 설정한 것이다.

2. 개요[편집]

공동경비구역 안에는 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장을 비롯하여 북한 측의 '판문각', 유엔 측의 ‘자유의 집' 등 10여 채의 건물이 들어서 있다. 1971년 8월 남북적십자 예비회담, 1972년 7월 7.4 남북 공동 성명 등으로 판문점은 당시 5천만 한민족의 가슴을 한때 뜨겁게 한 바 있고, 1973년 6월 남북조절위원회가 결렬된 지 7년 만인 1980년 8월부터는 남북총리회담의 실무회담이 이곳에서 열려 8차까지 거듭한 끝에 북한 측의 일방적인 불참으로 공전(空轉, 없던 일로 됨)된 일도 내외의 관심을 모았다. 그리고 2015년 8월 서부전선 포격 사건의 연장선으로 이루어진 남북고위급접촉으로 다시 한 번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주로 한국전쟁 교전당사 사이에 맺어진 정전상태를 관리하기 위한 군사정전위원회의 회의와 협상의 장소로 이용되었지만, 1971년 9월 20일에 열리게 된 남북적십자예비회담을 계기로 남북한간 접촉과 회담을 위한 장소 및 남북한을 왕래하는 통과 지점으로 활용되었다.

2016년 2월 11일 2016년 개성공단 가동 중단 사건으로 인해 북한 측에서 판문점 연락 통로의 폐쇄를 선언한 상태다.

2018년 1월 3일 다시 판문점 연락 통로가 개통되었다.

3. 판문점이라는 이름에 얽힌 사연[편집]

사실 판문점이라는 이름에는 사연이 좀 있다. 6.25 전쟁 중 양측의 휴전회담이 처음에는 개성에서 진행되었다. 하지만 당시 개성은 공산군의 점령지였고, UN군 측은 공산군의 압박으로 인해 제대로 된 휴전회담이 어렵다고 주장하며 보다 중립적인 장소를 물색하였다. 그리고 개성에서 남쪽으로 20리 떨어진 이곳을 UN군 측이 제안하여 여기서 휴전회담이 열리게 된 것이다. 그 장소가 당시 경기도 장단군 진서면 ‘널문리’라는 동네에 있는 '널문리가게(주막을 겸한 조그마한 가게)' 앞 콩밭이었다고 한다.

당시 휴전회담은 3개 국어(영어, 중국어, 한국어) 공용어로 사용하였는데 ‘널문리가게’를 중국어로 표기하기가 마땅치 않아 "판문점"으로 표기하면서 조그만 구멍가게 일대가 오늘의 역사적인 장소가 된 것이다.

널문리라는 이름에도 나름대로 사연이 있다. 야사에 따르면, 임진왜란 당시 한양을 버리고 파천 중이던 선조가 이곳을 지나 강을 건너게 되었는데, 다리가 없어 건너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자 마을 백성들이 집집마다 대문을 뜯어다가 임시로 다리를 놓아 임금이 무사히 건널 수 있도록 하였다. 그 후, 이곳은 판자(널)문으로 다리를 놓았던 곳이라 하여 ‘널문리’라 부르게 되었다.

4. 설명[편집]


1972년까지의 행정구역은 경기도 장단군 진서면 어룡리이다. 현재는 경기도 파주시 진서면 어룡리. 북한 행정구역상으로는 개성특급시 판문군 판문점리에 해당하지만, 공식적으로는 쌍방 어느 쪽의 영토도 아닌 것으로 되어 있다. 서울특별시에서 서북방으로 62㎞, 북한평양직할시에서 남쪽으로 215㎞, 개성으로부터는 동쪽 10㎞ 지점으로 북위 37° 57' 20″(37.9560°), 동경 126° 40' 40″(126.6768°)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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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당시 판문점. 국방색 군용 텐트가 쳐진 방향이 대한민국 문산 쪽 방향. 허허 벌판으로 하얀 건물이 있는 쪽이 전쟁 후 북한령이 되고 만 개성 쪽 방향이다. 더 쉽게 설명하자면, 판문점 남동쪽 상공에서 찍은 사진이다.

사진은 실제 정전협정 조인이 이뤄진 판문점이며, 현재는 "정전협정조인장"이라고 설명되는 곳이다. 이곳과 현재의 판문점은 다른 곳이다. 사진의 지역은 현재의 판문점으로부터 약 1km 북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구글 지도를 통해서 판문점을 검색해보면, 북서쪽에 "정전협정조인장"이라고 표시되어있다.

6.25 전쟁 전만 해도 지난날의 의주가도(義州街道)와 사천(砂川)내가 만나는 지점의 이름없는 한촌(寒村)으로 초가집 몇 채뿐이었으나 1951년 10월 25일 이곳에서 휴전회담이 열리면서 세계 뉴스의 초점으로 떠올랐다.

마침내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이곳에서 조인되면서 이곳 명칭은 유엔군인민군의 ‘공동경비구역(JSA)’으로 결정되었다. 같은 해 8월부터 9월 초까지의 포로교환도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곳이 휴전선보다 북측에 있는 것이 문제였고, 결국 1953년 10월 동쪽으로 약 1 km 이전하여 휴전선 위에 새로운 판문점을 설정하고, 중립국 감독 위원회 관할로 포로교환장소 건물을 짓게 되었으며, 이 건물들은 현재 판문점에 남과 북을 가로지르는 하늘색과 회색 건물의 원형이 되었다. 하늘색 건물은 유엔군 측, 회색 건물은 북한 및 중국군 측 포로 교환 장소라고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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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원래의 옛 판문점은 "정전협정조인장"이라는 이름으로 북한의 견학 자원으로 활용되고 있고, 남한에서는 월북 당연히 갈 방법이 없다. 판문점 견학 시에 다리 너머로 보이는 옛 판문점을 먼 발치에서 볼 수 있을 뿐이다. 물론 북한 쪽을 통해서 판문점 견학시에는 반드시 거쳐가는 관광 코스이다. 평화 박물관이라고도 불리워지며 내부에 도끼만행사건 당시 사용되었던 도끼를 전시해놓았다. 그 외에 여러 사진 자료를 전시해놓았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써 북쪽 판문점 견학은 불가능에 가깝다.(북한 측 초청에 의해서 대한민국 통일부의 허가를 받아서 방문하는 경우는 예외, 물론 어렵다) 유튜브 등에 보면, 북한 측 판문점 관광객들이 올려놓은 영상을 볼 수 있다. 외국 관광객들이 올린 사진들을 인터넷상에서 확인 할 수 있다

공동경비구역 명칭 그대로 유엔군과 북한군에 의해서 공동으로 경비가 되던 구역이었다. 그래서 북한군 초소가 현재 남측 경비구역에 설치가 되었으나, 반대로 유엔군 경비 초소는 북측 경비구역에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그러나 판문점 서쪽 사천의 ‘돌아오지 않는 다리’ 부근에 있던 미루나무에서 1976년 8월 18일 북한군에 의해서 발생한 도끼만행사건으로 인해 미군 장교 아서 보니파스 소령과 마크 배럿 대위가 사망하면서, 사건 당일 북한군은 남쪽에서 도망치듯 모든 남쪽 초소에서 철수하였다. 이후에는 북측은 북한군이, 남측은 유엔군이 경비하는 지역으로 제한되었다. 자세한 건 해당 항목으로.

5. 주요건물[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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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에서 만든 간단한 안내도.

남북회담본부에서 만든 공동경비구역 안내도는 여기로.

이 항목은 남북회담본부에서 제공한 자료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자료자체가 최신의 자료가 아니기 때문에 각 언론의 추가 자료가 나올 때마다 갱신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평화의 집 항목의 경우, 남북회담본부 자료에 의하면 "1층에 기자실과 소회의실이 있다"고 되어 있으나, MBC보도에 의하면 "귀빈실과 기자실로 되어 있다"고 보도되었다. 어쩌면 귀빈실, 기자실, 소회의실 다 있을 수도 있고

5.1. 남측 지역[편집]

5.1.1. 자유의 집[편집]

파일:external/www.earthnutshell.com/80-north-korea-dmz-conference-rooms.jpg
북쪽에서 바라본 자유의 집-1
파일:자유의집.jpg
북쪽에서 바라본 자유의 집-2
파일:external/english.triptokorea.com/The%20Freedom%20House.jpg
남쪽에서 바라본 뒷면 모습
파일:구)자유의집.jpg
북쪽에서 바라본 옛 자유의집
파일:구)자유의집-1.jpg
옛 자유의집 뒷면 모습

북측의 판문각에 대응되는 건물이다. 첫 자유의 집 건물은 1965년 9월 30일에 2층짜리 콘크리트 건물 두 동에 중간에 팔각정이 있는 형태로 준공됐다. 그러나 판문각에 비해 너무 초라해 보이고, 건평도 달랑 86평으로 대단히 협소해서 1996년 후반에 기존 건물을 싹 밀고 다시 지었고, 1998년 7월 9일에 재오픈했다.

새로 지은 자유의 집은 지상 4층에 지하 2층 규모로 판문각보다 크고 아름답다. 팔각정은 새로 지은 자유의 집 한켠으로 옮기는 형태로 보존되었다. 첫 번째 사진 좌측에 나온 정자가 바로 팔각정이다. 남양주종합촬영소의 판문점 세트는 새로 짓기 전의 자유의 집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판문점의 옛 모습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는 장소다.

착공 1996.12.13
준공 1998.7.9
건평 1,437평(지상 4층, 지하 2층)
위치 파주군 군내면 조산리
용도 공공업무시설 및 전시시설

각 층은 다음과 같이 구성되어 있다. 지하의 구성은 알려지는 대로 추가바람.

- 1 층 : 로비/ 기자실/ 편의시설(식당 등)
- 2 층 : VIP실/ 회의실/ 사무실
- 3 층 : 남북연락사무소, 대회의실
- 4 층 : 전망대 및 다용도 공간

5.1.2. 평화의 집[편집]

파일:external/english.triptokorea.com/The%20Peace%20House.jpg

자유의 집에서 130m 떨어진 곳에 위치한 남북회담용 석조건물이다. 1989년에 지어진 3층 구조의 건물로 1층에는 귀빈실/기자실, 2층에는 회의장, 3층에는 연회실이 있다. 특이 사항으로 각 귀빈실에는 전용 통신선이 설치되어 있다고 한다. 이곳에서 2015년 8월 22일 부터 24일까지 진행된 남북고위급접촉이 진행되었다. 또한 2018년 1월 9일날 2018년 남북고위급회담이 2년 만에 진행되었다. 2018년 4월 27일 2018 제1차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되었다. 정상회담을 위해 내부수리를 했다고 한다.

링크에 자세한 설명이 있으니 참고할 것.

일단 남북회담본부의 자료에 따른 각 층별 안내는 다음과 같다.

- 1층 : 기자실, 소회의실
- 2층 : 회담장, 남북회담대표대기실
- 3층 : 대회의실, 소회의실

5.1.3. 돌아오지 않는 다리[편집]

파일:external/blogimg.ohmynews.com/1167708894.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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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지 않는 다리[3] 옛 이름은 널문다리이며 1번 국도의 구간이기도 하다.

이곳의 거의 모든 장소에는 나름의 사연이 담겨있다. 동명의 영화에서도 자주 등장하여 더욱 유명한 '돌아오지 않는 다리'는 한국전쟁 포로교환이 이루어진 장소로, '이 다리를 건너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이다. 영화에서는 이 다리 앞에 있는 초소에서 근무를 서다 월북하였으나... 판문점을 기준으로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건너가면 공동경비구역 밖이 되므로, 이 다리 건너편의 북한군 감시초소는 병력이 많고 중무장 되어 있다. 반면 그와 대치해야 하는 한국군 감시초소는 공동경비구역 내부에 있어 정전협정에 의거 중무장이 불가능한 관계로[4] 무인 감시장비만을 가동하고 병력은 배치하지 않고 있다.

북한이 판문점에 지뢰매설하였는데, 군인들의 탈북을 방지하기 위해서이며, 판문점 인근에 지뢰를 매설한 것은 정전협정 체결 이후 처음이라고 한다.

5.1.4. 중립국감독위원회 캠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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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립국감독위원회 캠프 내부에서 촬영된 모습. 미군한국군 경비병 외에도 민간인 기자와 캐나다군 육군 (검은 베레모에 CADPAT 전투복) 의 모습이 보인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인근에는 중립국감독위원회 (NNSC, Neutral Nations Supervisory Committee) 캠프가 설치되어 있다. 물론 이곳도 판문점 경비부대의 책임구역이다. NNSC는 정전협정 당시 정전협정 이행 여부를 관리 및 감독하기 위해 설치한 기관으로,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스웨덴, 스위스,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의 4개국 대표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스웨덴과 스위스는 유엔군 측에서, 폴란드와 체코슬로바키아는 북한 측에서 선택한 중립국가들이었다. 90년대 초 동구권 민주화 과정에서 체코슬로바키아가 체코슬로바키아 두 나라로 쪼개졌고 중감위 업무는 체코가 승계받았다. 이로부터 몇 년 지나지 않아 북한은 양국 중감위원단을 본국으로 추방해버렸고(...) 현재는 스웨덴과 스위스만이 판문점에 상주하고 있다. 체코 정부는 북한에서 자기들을 쫓아내자 학을 떼며 중감위에서 아예 사퇴해버렸고, 폴란드는 일단 아쉬운 대로 본국에서 업무를 처리하다가 큰 회의 열릴 때만 남한의 협조를 얻어 잠깐잠깐씩 판문점에 들른다.

중립국감독위원회의 임무는 정전협정이 제대로 이행되는지 감시하는 것이다. 또한 북한에서 온 귀순 군인을 취조심문하는 것이 임무인데, 중립의 입장에서 귀순자가 자발적인 귀순을 했는지 묻고(영상촬영을 한다) 이것을 북측에 근거로 제시하는 것이다.

스웨덴스위스가 군사분계선 남쪽에 세운 캠프가 바로 현재까지 남아 있는 NNSC 캠프이다. 폴란드체코슬로바키아 캠프는 군사분계선 북쪽에 설치되어 있었으나, 1989년 동유럽 혁명으로 두 나라가 모두 민주화된 이후 중립성이 훼손되었다는 이유로 북한에서 식수 및 전기 공급을 중단하는 등의 만행을 저지르다가(...) 결국 체코를 1993년에, 폴란드를 1995년에 축출했다. 이후 체코는 중감위 임무에서 완전히 빠졌고, 폴란드의 중립국 감독위원회 임무는 폴란드 본국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매년 회의에 참석할 때에는 남한 쪽 출입구를 통해 회의장에 들어가고 있다.

북한 측 NNSC 캠프 건물이 평화박물관(...)이란 이름으로 개관되었다는 헛소문이 나돌지만 사실이 아니다. 문제의 박물관은 정전협정이 체결되었고, 판문점이 현 위치로 이전하기 전에 잠시 주재했던 구 판문점이다. 이에 대해서는 밑에서 설명한다. 아무래도 북한군이 점거해서 자기네가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 그렇게 와전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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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프에서 공동경비구역으로 지름길로 갈 수 있는 파란색 도보교가 있다. 또한 2018 제1차 남북정상회담에서 이 다리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단독회담이 있었다 청와대 행정관 윤재관 비서실 행정관이 아이디어를 내어서 큰 호응을 받고 청와대 수석회의 중 박수까지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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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프 자체가 군사분계선에 찰싹 달라붙어 있다.

5.1.5. 기타 건물[편집]

  • 경비병 막사

  • 공동당직장교 사무실

  • H128 헬기장

  • 4개의 초소

  • 검문소

5.2. 군사 분계선[편집]

군사분계선에 걸쳐서 지어져 있는 건물들은 관할권이 수시로 바뀐다. 만약 남측 관광객들이 판문점에 와서 회담장에 들어갈 경우 이 건물은 일시적으로 남측의 관할이 된다. 이때 남측 경비병 중 1명이 건물의 북쪽 출입문을 걸어잠그고, 그 문 앞에 서서 북한군의 돌발행위에 대비하여 경비를 서고, 또 1명은 회담장 한가운데 있는 회담테이블 끄트머리에 서서 경비를 서게 된다. ...라기보다는 관광객들의 사진 모델이 되어준다... 반대로 북한 측의 관광객이 같은 건물에 들어오게 될 경우, 북한군은 남측 출입문 앞에 2명이 모두 배치된다.

관할권과 별개로, 관리 책임은 한쪽에 일임되어 있다고 한다. 파란색 건물은 남쪽에서 관리하고 회색 건물은 북쪽에서 관리한다고.

5.2.1. 중립국감독위원회 회의실[편집]

中立國監督委員會 (Neutral Nations Supervisory Commission, NN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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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모습.


가장 최근의 내부 모습.

군사정전위원회 회의실 서쪽에 위치한 건물이다. 비공개 회의로 진행되기 때문에, 내부 사진이 없다시피 하다. 다만 한국측에서 촬영한 중감위 관련 다큐에서 내부 모습이 잠깐씩 나온다. 구조적으로는 군사정전위원회 회의실과 유사하다. 군사정전위원회 회의실과의 외적인 차이로는 건물 자체의 창문이 작게 나있는데, 군정위 회의와는 달리 위에서 말한 대로 비공개 회의를 하기 때문이다.

또한 다른 건물들과는 다르게 회의실 본채 건물(파란색)이 서쪽의 회색 건물 3채와 연결 통로로 조립이 되어 하나의 세트를 형성하는 형태인데, 이 건물들의 용도와 내부 모습은 전혀 알려져 있지 않다.

5.2.2. 군사정전위원회 회의실[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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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문점 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장에 서양관광객들이 방문한 모습.[5]

군정위 회의가 공개 회의이기 때문에 창문이 큼지막하게 나 있다. 파란색 건물이며 따라서 남쪽에 관리 책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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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 전해드리는 코난 오브라이언 쇼!! 코난 오브라이언(우)과 스티븐 연(좌)이 코난의 내한 중일 때 찍힌 장면. 사진에서 두 사람은 북한 쪽 탁자에 앉아 있다.

가운데 있는 회담테이블의 가운데를 군사분계선이 지나가고 있다. 즉, 한국 육군 경비병의 오른쪽 반신은 남한 땅에, 왼쪽 반신은 북한 땅에 걸쳐 있는 셈이다.

삼성전자 에어컨이 앞뒤로 2대 설치돼 있고, 실외기도 남북쪽에 하나씩 있다. 때문에, 북측에서 찍은 동영상을 보면 북한 육군 경계병들 옆에 삼성 로고 찍힌 실외기가 놓여 있는 묘한 광경을 볼 수 있다.

실외기를 포함하여 유엔사에서 관리하는 군사회담장 내[6] 시설 관리가 필요할 경우 유엔사군사정전위원회에서 북한에 협조문을 보내 동의를 얻은 후 유엔사 소속 민간인 직원들이 해당 작업을 수행한다. 단 이 경우 경비병은 군사분계선을 넘지 못하기 때문에 매우 긴장되는 광경이 연출된다.

5.2.3. 당직장교 회의실[편집]

군정위 회의실 동쪽에 위치한 파란색 건물이며 판문점에서 24시간 연락을 유지하기 위해 상주시키는 당직 장교들의 회의실. 역시 비공개 회의라 창문이 작게 나 있으며, 가끔 다큐에 내부 모습이 나오거나 간혹 가다 개최되는 공식 행사 등 때문에 내부가 공개되기는 하는 중감위 회의실과는 달리 이쪽은 내부 모습 사진이 아예 없다.

5.2.4. 북측 경비병 휴게실[편집]

일직장교 회의실 동쪽에 있는 회색 건물. 이름은 이렇게 알려져 있는데, 실제 용도와 내부 모습은 전혀 안 알려져 있다. 유엔군에서 부르는 별명은 The Monkey House.

이 건물 동쪽으로는 건물이 없고 콘크리트 경계석이 조금 더 연장되어 있다가 끝나고 거기서부터는 흰색 말뚝으로 분계선이 표시되는데, 이 콘크리트 경계석 부분이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의 떼 방북 때 소를 실은 트럭들이 넘어간 통로였다. 정주영 회장 본인은 중감위 회의실을 통해 입북했다.

5.3. 북측 지역[편집]

5.3.1. 판문각[편집]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Panmunjeom_DMZ.png
남한에서 바라본 판문각

조선인민군 육군 경비병들은 보통 한국 육군 경비병들을 경계하며 서 있는 것이 원칙이나, 모종의 이유로 소집할 때에는 맞은편에 보이는 건물로 들어간다. 물론 저 건물 안에서 망원경으로 감시하는 것은 24시간이다. 현관 바로 왼쪽에 있는 창문 안에 망원경이 설치되어 있어 항시 감시인력이 대기하고, 주간에는 현관 바깥에도 병사가 위치하여 두 감시병 간 소통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그러나 2008년에 주 북한 영국 대사를 지낸 존 에버라드의 말에 따르면 인민군들은 군기 없이 그냥 막 돌아다닌다고 한다.

건물 자체의 용도는 북측 경비대 지휘소, 판문점대표부[7], 적십자연락대표부로 활용되고 있다고 한다. 건립은 69년 9월 9일에 120평 규모로 처음 지어졌으나 1994년 12월 1층과 2층을 260평, 3층을 130평으로 증축하여 지금에 이르게 된다.

5.3.2. 통일각[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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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각이다지하 1층, 지상 1층 규모의 건물. 1985년 8월에 김정일의 지시로 건설되었다. 우리 측의 평화의 집과 같은 남북회담용 건물이다.

이렇게만 보면 규모가 크지 않아 보이나, 규모도 상당하고 내부 시설도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상당히 고급이다. 2018 제2차 남북정상회담 문서에 올라온 몇 없는 사진과 영상자료만 봐도 대충이나마 고급스러움을 느낄 수 있을 정도. 대리석 장식이 호화스럽다.

2018년 5월 26일 오후 3시부터 5시까지 2018 제2차 남북정상회담이 이곳에서 극비리에 열렸다.

5.3.3. 돌아오지 않는 다리[편집]

파일:external/geosite.jankrogh.com/Img_9056S.jpg
북쪽에서 바라본 '돌아오지 않는 다리'의 후방 모습. 북쪽에서 판문점으로 진입하는 길은 중간에서 72시간 다리와 '돌아오지 않는 다리' 방향으로 나뉜다. 사진은 판문점으로 들어가는 '72시간 다리' 쪽 길에서 돌아오지 않는 다리 쪽으로 향하는 길목을 찍은 것으로 보인다.

5.3.4. 72시간 다리[편집]

'72시간 다리'는 말 그대로 72시간 만에 건설된 다리다. 이 다리가 있기 전, 본래 북한군은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통해 사천강을 건너 보급을 받고 있었다.[8] 그런데 판문점 도끼만행사건으로 인해 공동경비구역 남측의 북한군 출입이 통제되자 보급로가 막히게 되었고, 밥차가 다닐 수 있도록 공동경비구역 북쪽에 급하게 다리를 건설해서 72시간 만에 완성시킨 것.

그 밖에도 고인이 된 정주영 회장이 몰이(...)를 한 길이나 북한대한민국 수해 시 을 지원해줬던 길 등이 있다. 현재는 대부분의 큼직한 남북한 교류가 도라산 CIQ를 통해 이루어지므로 이런 장소들은 말 그대로 역사속의 장소로 남은 상태.

2017년 판문점 귀순 북한군 총격 사건 당시 귀순 북한 병사가 이 다리를 통해 판문점 지역에 접근하기도 했다.

5.3.5. 기타 건물[편집]

  • 경비병막사

  • 7개의 초소 - 이 중 6번, 7번 초소는 엄밀히 따지면 공동경비구역 밖에 있는 초소이다.

6. 관광[편집]

재미있는 사실은, 판문점은 원래 군사정전위원회의 회담을 위해 만들어진 장소이고 지금은 남북 간의 교류를 위해 자주 사용되는 장소인데, 정작 이곳을 방문하는 대부분의 인원들은 일반 민간인 관광객들이라는 점이다. 남북 양측에서도 분단의 상징이라는 점을 내세워 통일/안보관광 자원으로 이용하기도 하고....

그렇다보니 판문점을 경비하는 부대입장에서도 관광객 보호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군사정전위원회, 적십자 등의 정부관련 인원들이야 이곳을 드나드는 게 일상이다보니 알아서 처신을 잘 하지만, 하루에도 수백 명이 찾아오는 관광객들을 일사불란하게 통제하고 돌발상황이 발생하지 않게 예방하는 게 보통 힘든 게 아니다.

보통 판문점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은 남측의 패키지를 기준으로, 인근의 도라전망대와 제3땅굴까지 패키지로 둘러보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이런 분위기의 장소가 전 세계적으로 드물기는 하다. 번쩍번쩍하는 서울과는 너무나 비교되는 판문점과 그 일대 비무장지대의 풍경과 분위기가 이곳을 굉장히 특색 있는 관광지로 만들어준 것이다. 냉전으로 분단된 마지막 지역이며, 현재 휴전 상태에 있는 특수한 지역이다보니 외국인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모양인데, 실제로 이 곳을 다녀간 외국인 관광객들의 평가는 아주 좋은 편이다.

  • 판문점을 관광하려면 우선 국가정보원에서 국민과 함께 - 견학신청을 하면 된다. (만 10세 이상의 일반국민, 30인 이상 45인 이하의 단체만 해당)

6.1. 남측에서[편집]

내국인의 경우 판문점 관광이 제법 까다로운데,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개인 견학은 불가능하고, 사전 예약을 통해 30인 이상 45인 이하의 단체 견학만이 가능하다. 만약 학교나 회사, 또는 각종 단체를 통해 판문점 견학을 갈 기회가 있다면 꼭 가보는 것을 추천한다. 단체 견학밖에 안 되기 때문에 기회를 만들기가 어려운 편이다. 신청은 2달 이전에 해야 하고, 매주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견학이 가능하다. 국가정보원 홈페이지에서 온라인 신청을 받는다.

단, 복장 제한이 좀 세다. 북한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청바지, 미니스커트를 못 입고 오게 한다. 그런데 청바지 중에서는 좀 웃긴 것이, 특별히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오지 말라고 한다. 이유는 남한이 가난한 나라라고 북한의 선전자료로 쓰일 수 있다는 이유다. 그런데 반면 남쪽에서도 판문점을 가보고, 북한을 통해 판문점에 가본 한 외국인의 말로는, 북한에서는 복장규제가 없다고 한다. 그러면서 북한군 군관들이 관광객들에게 한다는 말이 가관이다.

"여러분, 남쪽에서는 판문점에 갈 때 아무 옷이나 못 입고 갑니다. 하지만 공화국은 자유이기 때문에 복장 규제가 없습니다."


조금 더 편하고 간단한 방법은, JSA에서 근무하는 지인의 면회를 가는 것이다. 면회 가는 것 중에서 판문점을 관광시켜주는 행사가 있다. 물론 JSA에서 근무하는 지인이 있어야 가능한 방법이지만.

한편 귀걸이 등 금속 장신구류는 햇빛이 반사되어 반짝이면 북한 경비병들이 발포로 오인하여 대응사격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불허하며, 유사시 신속히 대피해야 하기 때문에 신발은 운동화가 원칙이다. 그런데 사실 잘 안 지켜진다. 구두 신고 왔다고 쫓아낼 순 없는 데다, 하이힐 같은 거 아니면 일반적인 구두 정도는 단거리 뛰는 데 별 지장이 없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외로 카메라는 휴대가 가능하고, 인솔자의 통제하에 촬영도 가능하다. 포토 타임도 넉넉하게 주고, 촬영 가능한 범위도 다양한 편이다. 애초에 군사시설이 아닌 남북 간의 회담을 위해 만든 장소이기 때문에 촬영 제한이 심하지 않은 편이다. 물론 촬영제한을 두긴 한다. 남측을 향해 찍으면 북에 정보를 유출할 수 있다고 해서, 북측을 찍는 것만 허용된다.

견학 코스에는 제3땅굴과 도라산 안보전망대, 도라산역 견학도 세트로 들어 있다. 총 견학시간은 5~6시간이고 판문점 견학시간은 그 중 90분을 차지한다. 민통선에서는 당연히 군 검문소에서 헌병의 검문을 받아야 하고, 이때 받는 출입증은 돌아올 때까지 항상 옷에 달고 있어야 한다.

일단 주차장 안보전시관에서 브리핑을 들은 뒤에 자유의 집, 팔각정, 군사정전위원회 회의실 건물, '돌아오지 않는 다리' 등을 관람한다. 여기는 버스에서 내리지 않고 창밖으로만 관람한다. 유명한 판문점 도끼만행사건이 일어난 장소인 데다, 휴전선에서 너무 가깝기 때문이다. 문제가 된 미루나무가 잘리고 남은 밑둥도 볼 수 있다.

특히 휴전선을 가로지르고 있는 군사정전위원회 회의실 건물 안에서는 선을 넘어 북한 땅을 잠시나마 밟아볼 수 있는 희귀한 기회도 있지만, 북한 쪽으로 나가는 문은 헌병인 척하는 보병이 철저히 경비하고 있으므로 나갈 수 없다.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였겠지만 나갈 때는 아니란다. 이때 회의실 옆에 난 창문을 통해 북한군 경비병이 감시 목적으로 들여다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창문 너머지만 북한군을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참고로 중립국감시위원회 건물은 군정위의 바로 서쪽 옆에 있는 건물로, 남쪽이건 북쪽이건 관광객들은 여기 들어갈 일이 절대 없다. 창문도 큼지막하게 난 군정위 회의실과는 달리 벽 윗부분에 치우쳐서 좁게 나 있는데, 이것은 중감위 회의가 비공개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반면 군정위 회의는 공개로 진행된다.

견학요금은 무료지만, 제3땅굴은 1인당 1,800원을 받는다. 외국인의 경우에는 지정된 여행사를 통하여 견학이 가능하다. 내국인에 비하면 상당히 쉬운편이다.

한국인 관광객들은 단체 관광이 기본이기 때문에 통일자문회의/바른생활협의회/자유총연맹 등의 단체에 속한 사람들 또는 단체 견학을 오는 학생[9]들이 대부분을 차지하며, 외국인 관광객은 일본인 관광객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데 최근에는 중국인 관광객들의 비율이 빠르게 늘고 있다.

코난 오브라이언내한 때 판문점을 방문하기도 했었다. 테이블을 가로질러가서 콩트를 진행하기도 했었다고.

6.2. 북측에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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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측에서는 주로 외국인들의 평양 관광 공식 일정 후반에서 개성 관광의 부수 코스로 강제 선택되며, 남한과 달리 인원 제한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주로 중국인 관광객들과 조총련일본인들이 단체로 방문하고 있다. 인원 제한이 없는 만큼 50명 이상이 한 번에 올 때도 있으며, 이럴 경우 일부는 회담장견학을 하고 나머지는 판문점 옥상으로 올라가 관광을 실시한다.

대부분 평양에서 개성평양간 고속도로를 통해 이동한 뒤, 북방한계선에서 경비대원이 차에 동승해 판문점까지 이동한다. 견학 전에는 전문 강사에게 한국전쟁과 분단 상황에 대한 북한 또는 중국 시점의 역사왜곡 쩌는 설명을 들은 뒤 판문각과 회의실을 둘러보고 다시 개성을 거쳐 평양으로 돌아오는 것이 일반적인 코스라고 한다.

물론 이 북측 관광에서도 회의실 내부를 견학할 수 있지만, 마찬가지로 남한 쪽으로 나가는 문을 북측 경비병이 막아서고 있으니 그 쪽으로 나갈 수는 없다. 2000년대 초반에는 "국군 경비병들이 북한군이 하는 것처럼 감시 목적으로 들여다보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는 증언이 외국인 관광객들 사이에 있었다. 2010년대에는 감시장비의 발달로 직접 들여다 보는 경우는 없다.

7. 군 복무지로서의 판문점[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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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군 최고 엘리트 부대 중 하나[10]

대한민국 육군 제3야전군사령부에서 관할하며, 편제상으로는 제1보병사단 병력을 차출하는 형태다.[11] 근무자들은 드물게 잠시 파견오는 경우가 아니면 주한미군, 한국군조선인민군 모두 육군소속이며 병과는 거의 소총수다. 이들 남북 모두 헌병복장을 착용하지만 상당수의 병력은 민정경찰이라 보아도 무방하다. 휴전협정 조약상 경비병력은 경찰이 하도록 되어 있으나, 당시 둘 다 경찰조직의 미비 때문에 그러지 못했다. 단, 일반적인 민정경찰과 달리 이곳에서는 완장뿐 아니라 근무복과 헌병 헬멧, 행사복 등 육군 헌병의 피복을 전부 지급받고 병과장만 보병 병과장을 패용하거나, 혹은 아예 하지 않는다. 한 해군 헌병 예비역은, "JSA에 갑자기 인원이 많이 비는 바람에, 신병 올 때까지 파견가서 육군 헌병 옷 입고 근무한 적 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현재 이 지역을 경비하는 양측의 병력의 규모는 각각 1개 대대 정도로 알려져 있다. 한국군 경계병력들만 선글라스를 착용하는데, 이는 여러 가지 실질적인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우선은 적에게 시선을 들키지 않기 위함과 더불어, 여름철 강한 일광에 시력이 손상되는 것과 탈진 등을 방지하는 목적이 있다. 실제로 한여름 땡볕 아래에 부동자세로 수십 분씩 서있어야 하는 경계병들 입장에서는, 선글라스 착용 여부는 천지차이다. 물론, 적들에 대한 위압감과 간지는 덤이다.

대한민국이 휴전협정에 관하여 유엔군에 위임한 관계로[12] 남측 지역은 UN군사령부의 관리를 받고 있다.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이곳에 근무하는 대한민국 군인들도 공식적으로는 유엔군 휘하이다. 물론 유엔군사령부는 서류상의 조직에 가깝고 실질적으로 한미연합군사령부에 통제받고 있다고 보면 된다. 때문에 JSA 근무병들은 경비업무 이관 전까지 카투사처럼 미합중국 육군식 장비와 훈련을 받고[13] 한국 육군미 육군장교부사관들이 교차로 지휘하는 편제였다. 즉, 1, 3소대는 미군 소대장+한국군 선임하사, 2, 4소대는 한국군 소대장+미군 선임하사의 편제로 운영되었다. 그리고 소대원의 구성은 한국군과 미군이 50:50으로 편성되었다.

즉, 한국 육군으로 입대하여 차출된 다음, 공식적으로는 UN군사령부 소속으로서 미 육군 시설과 장비를 사용하면서 미 육군과 한국 육군 간부들의 교차지휘를 받는 특이한 형태의 군대였다.[14] 한국 육군으로 경비임무가 완전히 이양된 지금도 JSA는 공식적으로 UN군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의 관할구역이며 단지 한국 육군에게 경비책임을 이양한 형식인 것이다.

아무튼 영어도 배우고 편하게 군 생활 하려고 시험쳐서 카투사 입대했는데, 유단자라거나 PT테스트 성적이 극도로 좋다거나 혹은 단지 덩치가 좋다는 이유로 JSA로 차출되는 경우는 그저 지못미. 일반적인 카투사와는 상당히 괴리가 있는 부대였지만, 외부에서 보기에는 미 육군의 지휘하에 미 육군 시설에서 미 육군 장비를 사용하기 때문에 그냥 카투사 병력이라고 여겨졌는데, 막상 JSA부대원들은 본인들이 카투사로 불리는 것을 대단히 불쾌하게 생각했다. 그나마, 카투사 시험을 치고 재수없이(!) 끌려온 부대원들이야 출신성분(?)이 원래 카투사라서 상대적으로 덤덤한 편인데, 논산 육군훈련소에서 차출된 병력들을 카투사라고 불렀다간 상대방의 분노게이지를 끝까지 올라가게 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그러나 카투사들도 기초군사훈련은 논산에서 받고 온다

아무튼 기본적으로 2004년까지는 미 육군부대와 동일한 시설에서 근무했던 관계로 막사나 식당 모두 미 육군 부대의 시설이었지만, 이제는 온전히 한국 육군 부대가 되었기에 대한민국 국방부에서 제공하는 짬밥을 즐기게 되었다. 하루 아침에 버거킹군대리아로 바뀌게 된 장병들의 심정은... [15]

가을철이 되면 초파리가 부대 내에 엄청나게 많다. 진짜 엄청나게 많다. 정말 많다. 연병장이라고 부르기엔 아쉬운 크기의 운동장이 존재하는데, 이곳에서 간혹 미군들이 미식축구공을 던지고 받거나 야구공으로 하는 캐치볼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같이 하자고 영어로 말하면 보통 같이 끼워주니까 같이 하면 된다.

육군 장교들의 경우 이곳이 전 군 최고의 진급코스이다. 왜냐 하면 조선인민군과 직접 맞대고 있는 곳인 데다가 군사분계선 지역 중에서도 외교적으로 가장 중요한 곳이기 때문이다. 특히 수시로 대한민국북한의 고위인사들과 얼굴을 마주칠 일이 잦으며 심지어는 미국 대통령과도 얼굴을 마주칠 수 있다. 2015년 9월에는 대한민국의 김관진과 북한의 황병서가 이곳에서 만나서 협상을 한 적도 있다.

때문에 육군사관학교 출신 장교의 비율이 매우 높고, 전원 선발이며, 선발우선순위도 높다. 특히 소대장의 경우 중위급에서 육군 중위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지휘자 선발보직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높이 평가받는다. 물론 소대장이 아니더라도 엘리트 코스에 속하는 선발보직이다.[17]

그런 만큼 간부는 정말로 병보다 더 가리고 가려서 또 골라 뽑는다. 왜 그러냐 하면, 조금이라도 능력이 부족하거나 성격에 이상이 있는 인원이 이곳의 지휘관(자)이나 참모로 배치될 경우,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북한의 성격이 조금만 심기가 불편해도 온갖 트집을 잡는 놈들이라, 그런 놈들에게 약점 잡혀서는 안 되기 때문에 능력 출중하고 성격에 결함이 없는 사람으로 가려 뽑아야만 한다. 또 미국 대통령도 가끔 오는 곳이니만큼, 미국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려서도 안 되기 때문에 역시 가려 뽑아야 한다. 거기다 이곳의 군령권을 미국 대통령이 가진다. 때문에 이곳의 장교 신분의 지휘관(자)은 육군 전체에서 가리고 골라서 뽑아다가 배치할 수밖에 없는 것. 그러한 점을 인정받기 때문에, 여기에서 복무한 장교는 진급이 육군에서 최고로 잘 되는 것이다.

2017년부터 2018년까지 최악(?)의 군생활을 자랑할 것으로 보인다. 2017년 판문점 귀순 북한군 총격 사건부터 2018 제1차 남북정상회담, 그리고 북미정상회담까지 논의되는 세계외교의 장으로서 지속적인 VIP 방문이 예고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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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식으로 미국 대통령(당시 버락 오바마)과 직접 만나기도 한다. 이렇게나 엄청난 부대이기 때문에 공동경비구역이 육군 최고의 진급코스일 수밖에 없다.

물론 북한 역시 남한과 동일하게 육군 장교들의 경우 이 곳이 전군 최고의 진급코스이다. 그래선지 육군사관학교 출신 장교의 비율이 매우 높고, 전원 선발이며, 선발우선순위도 높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남한의 경우 미국 대통령이 가끔 오지만, 중국 주석이 방문하는 경우는 드물다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JSA경비대대는 공동경비구역 이외에도 북한과 닿아 있는 대성동 마을과 주변 GP 및 도로까지 모두 담당한다. 특히 대성동 마을은 대한민국 비무장지대 내 유일한 민간인 마을로, JSA경비대대에서 그들의 경비 임무를 맡고 있다. 참고로 반대편 휴전선 북쪽에 있는 기정동 마을과 대비하여 이 대성동 마을도 선전마을로 아는 사람들이 꽤 되는데, 대성동 마을은 그저 전쟁 이전부터 이곳에 살던 주민들이 여전히 남아 사는 것뿐이지, 마을의 거대한 국기게양대 정도를 제외하면 본격 선전마을의 가치는 거의 전무하다시피 하다. 애초에 기정동 마을은 말 그대로 선전을 위해 만들어놓은 모델하우스 마을이다. 채널A이만갑에 따르면, 전형적인 농촌 지역에 선전용으로 화려히 만든답시고 도시형 주택을 건설해 놨다고 한다. 그래서 쓸 수가 없게 되자, 결국 건물을 버리고 주민들은 이웃한 마을로 보내서 거기서 출퇴근 식으로 일하게 한단다.

한국 육군으로 이관된 이후에도 부대의 포지션이 상당히 특이하게 유지되고 있다. 일단 비정규전 부대는 아니지만 임무의 다양성과 중요성으로 인하여 편제와 장비가 특이하다. 예를 들어 도로관리를 위해서 제설차, 구난차량, 각종 상용 중장비(!), 소방차(!!)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다른 측면들도 흠좀무하기는 매한가지. 덕분에 부대 규모가 대대치고는 심히 크고 아름답다. 또한 부대원을 100% 선발한다. 지역적 특성상 지원을 받으면 불건전한 동기를 가지고 자원할 수 있다는 것인데, 헛소리라 여겨지겠지만 과거의 사고 경험이 있어서 그러는 것이다.

더불어 병력선발에 대한 권한이 높아서 특기병이 아니라면 입대한 장병들을 뺑뺑이 없이 데려갈 수 있다. 경비병은 306보충대에서 선발하고, 특기병 및 어학병은 육군훈련소에서 선발하니, 생각 있으면 골라가자. 어학병 소요는 육군 내부에서도 상당히 많은 편이므로 육군어학병으로 입대한다면 비교적 높은 확률로 굴러들어올 수 있다. 물론 본인들은 대부분 한미연합사국방부 근무지원단 또는 계룡대 근무지원단을 희망하겠지만 특전사와 JSA 선발관들은 자비가 없다. 선발은 JSA 대대본부 인사과 소속 인사담당관과 참모부에서 소속된 CP 혹은 인사병이 같이 기차타고 논산가서 0000.E 식의 군번 뒤에 어학특기 알파벳 달린 애들 불러모아 놓고 한명씩 인터뷰 보고, 육개장이나 한사발 먹고 KTX타고 다시 돌아오는길에 대부분 이미 선발자 후보들은 결정난다.

다만 이 선발도 그리 쉬운 편은 아니다. 우선 178cm 이상의 키를 보유해야 하고[18], 시력에 문제가 있거나 해도 차출이 되지 않는다.[19] 모여 있는 어학병들을 두고 본격적인 심사 전에 간단한 설문 조사를 하는데, 가기 싫으면 부정적인 방향으로 쓰자. 알아서 1차에서 버려진다.(기차 타면 제일 먼저 하는게 설문조사다). 한마디로 가기 싫으면 안 가기도 쉽다.

재미있는 점은, 시작하기 전에 부대의 좋은 점에 대해 줄줄이 홍보를 하기 때문에, 걸러지면 제발 기회를 달라고 사정 하는 병사들도 볼 수 있다는 것이다.[20]. 물론 주임원사나 인사담당관은 전부 좋다고 설명하지만, JSA 경비대대도 군대인지라 마냥 좋은 곳은 아니며, 어학병이나 특기병은 더 편한 복무지도 많다는 정도는 알아두고 선택하면 좋겠다.

좋은 부분도 있긴 있다. 본부중대나 경비 1중대, 경비 2중대, 혹은 민정중대로 빠지면 전시 혹은 산타클로스 출현이나 한미합동훈련 아니면 일반 통신병 취급이지만 JSA HQ Company HQ(대대본부)로 가면 2010 년 기준으로 2~3인 1실에 침대, 에어컨, 냉장고, 정수기, 스테레오, 크리스마스 트리(?)까지 겸비한 내부반에서 생활한다 (인터넷 있는 옆 막사 기무병 2명과 막가탁 근무인 1사단 화력지원 인력 빼고...그 아저씨들은 그들만의 세계에 살거나 아랫쪽 본부중대 막사). 군대치고는 꽤 좋은 시설에서 복무할 수 있다. 대대본부 인사, 정보, 작전, 군수과 병들 스펙을 보면 JSA 내부에 있는 자체적인 또 다른 세계의 버블인데, 45명 남짓 되는 병사들 전원 인서울 대학이나 주립대 혹은 아이비급 유학생 출신이다.

나중에 병사로 제대한 뒤 장교/부사관으로 다시 군대 가기엔 장교/부사관으로의 선발 및 임관 후 진급으로 따지면 여기에서 병사로 복무했던 이력이 매우 크게 도움이 되기 때문에, 그거 하나만큼은 끝내주게 좋다. 또한 어학병의 경우 어학병들이 자주 배치되는 근무지 (연합사, 정보사, 수방사, 국방부 등등)보다 어학장교의 수가 훨씬 적기 때문에, 꽤나 고급인력으로 대접받기도 한다. 다만 (영어도 어술한) 어학장교의 똥군기와 갑질은 각오해야 된다.(그런데 그런 어학장교도 한동안 대대장이 잘라서 없었다).

일단 선발된 병력들은 신병훈련기간 중 다시 평가를 받으며(터틀엔 악마가 있다), 평가가 나쁘다면 거침없이 짤린다. 나쁜 물이 들게 되면 한 기수[21]가 다 짤리기도 한다. 그 밖에 부대에 전입온 후에도 문제의 소지가 보이면 여지없이 전출이다. 적당히 지내보겠다는 생각으로 밍기적 거려도 전출될 소지가 있으므로, 방심은 금물이다. JSA에서는 중간만 하면 안 된다. 잘 해야 한다. 어느 정도로 잘 해야 하냐 하면 병사 1명이 어지간한 다른 부대의 장교들보다 더 정예한 병력이 되어 있어야 한다. 그냥 잘 하는 걸로는 안 된다. 반대로 말해서, 여기 남기 싫으면 나가기는 참 편하다는 얘기도 된다.

2005년 이전 기준으로 설명하면, 신병이 JSA에 배속되면 신병막사라는 곳에 별도로 수용(or 감금)되어 3~5주 정도 부대적응훈련과 신원조회 결과대기를 하게 되는데, 평균 10~20%가 신원조회상의 문제로 전출되며 또다른 10~20% 정도는 적응불능자로 전출되는 편이다. 신병교육대 대원들은 터틀(turtle), 즉 거북이라고 부르는데 훈련기간 동안 조교의 허락없이 발언이 금지되며, 강도높은 체력훈련으로 기어다닌다고 하여 미군이 거북이병사라 부르던 단어가 부대 내 "신병훈련"의 교유명사가되었다. 실제 터틀 기간동안 캠프 보니파스 호텔 128 헬기 착륙장을 (H-128) 거북이처럼 기어다닌다.

신원조회로 인해 전출되는 경우는 신원상에 특별한 문제가 있어서라기보다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월북이 용이한 지역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신원조회의 기준치가 엄청나게 높은 것일 뿐 일단적인 군 복무에 문제가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아버지가 국가유공자인데도 친척이 진보세력 정치인이라서 전출된 사례도 있었다. 심지어 해당 병사는 그 정치인이랑 집안 행사 때 외에는 만난 적이 없다고..... 또한 적응불능으로 전출되는 경우 그 사유가 대부분 체력부족 때문이다. 이 역시 JSA에서 요구하는 기준치가 워낙 높아서이다. 그리고 일부는 실제 비무장지대 내에서 근무생활을 해본 뒤 생각한 것보다 너무 최전방이란 점에 당황+겁 먹고 전출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일단 이런 경우 설득을 해본 후 안 되면 바로 전출시킨다.

공동경비구역 내부에서는 오직 1개 소대만의 병력이 권총을 넘어서는 무장은 휴대할 수 없도록 되어있기 때문에 소총 이상의 중화기들은 모두 뒤로 빠져 있고, 직접 북한군과 맞대고 있는 장병들은 병, 간부 구분 없이 권총만 소지하고 있다. 일단 이곳에 주둔하는 병들이라면 무조건 권총도 함께 지급되기에, 전차 승무원 등과 더불어 군 생활 중 육군 병이 권총사격을 경험해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지역. 2005년 이전에는 미 육군 장비를 사용했으므로 당연히 M9 권총을 사용했고, 지금은 K5를 사용한다.

게다가 항상 실전을 상정하고 있기 때문에 9mm 파라벨럼 교탄 중 90%가 JSA 사격훈련에서 소비되고 5.56mm탄도 1개 사단규모를 소비한다. 건물 내 근접전투 훈련(CQB)은 물론, 악조건하 사격(Stress shot), 즉각대응사격훈련이 많고, 특히 소부대 전투에 대한 훈련수준과 교리는 특별하게 뛰어나며 권총을 주무장으로 한 CQB에 있어서는 대한민국 국군에서 가장 많은 경험과 훈련량을 자랑한다. 모두다 근무중에는 권총을 항상 휴대한다. (그러다 겨울에 9mm 한탄창 QRF (Quick reaction force) 주차장에 떨구는 놈 나오면 한국군이고 미군이고 모두 동원해서 비무장지대를 전부 훓고 다니지...)

강도 높은 체력훈련으로도 악명이 높은데, 2012년경부터는 대한민국 육군 특급전사 기준을 충족하는 병사에게만 진급 및 포상휴가를 허락하였다. 타 부대와 같이 특급전사가 되었다고 포상휴가를 받는 것이 아니다. 특급전사가 되어야 각종 포상휴가 고려 대상자에 이름을 올릴 자격이 주어지는 것뿐이다. 더군다나 이 기준엔 당연하게도 권총사격 역시 포함되어 있다.[22] 더욱 무시무시한 것은, 이 제도가 실행되고 나서 대부분의 부대원들이 2달 내에 특급전사를 획득하였다는 사실. 운전병, 어학병, 정비병, 이외 기타 특기병으로 들어온 인원도 예외는 없다. 이에 부대는 특급전사보다 더 엄격한 기준인 "JSA 전사"기준을 자체 제정하여 이 기준을 충족시킨 병사들을 우대 대우해 준다고 한다.

전군 최고 수준의 정예병을 꼽으라면 당연히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훈련도가 높다.[23] 그러나 이는 위에서 말했듯이 JSA 현지의 특성에 따른 소부대 근접 보병 전투 수준에 한해서다. 전방의 보병 및 기계화보병 연대/여단/사단과 JSA부대는 작전 지역 특성과 임무 등에서 전혀 다른 환경이다. 물론 장병 개개인의 전투력만을 따지자면 분명 수준급인 건 맞는다.

한국 육군으로 임무가 이양되면서 위수지역 부대인 육군 제1보병사단과의 마찰도 적지 않은 편이다. JSA 경비대대에 대한 군령권이 여전히 UN군사령부에 있다보니 UN사 소속 미군 장교와 서로 신경전이 늘어났다. 다만 꽤 오래전부터 JSA대대장이랑 부대대장이랑 자주 티격거리긴 했다. 카더라 통신이지만 1사단장과 미 육군 제2보병사단장이 JSA 작전 수행과 관련하여 서로 언성을 높혀 통역병이 고역을 치룬 적도 있었다고 한다. 특히 자존심 강한 장군이 사단장으로 오면 갈등이 더 심화된다.

원인은 군정권군령권의 이원화 집행 구조 때문이다. 먼저 JSA경비대대의 군정권은 휴전 이래로 한국군이 행사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대대장은 UN군사령관이 임명한 미합중군 육군 중령이 맡고있다. 따라서 대대장의 요청으로 대대 내의 상황을 다른 부대에 함부로 전파하지 못하도록 했다. 반적인 경우라면 작전 수행 시 인근 부대 간부나 병에게 작전상황이나 배치 등을 묻는 경우 다 알려주게 되어 있지만, JSA는 정보과로 그것을 돌리도록 돼있다. 타 부대 간부들이 "너네는 한국군 아니냐?"며 화를 낸 경우도 있었다. 문제는 바로 경비 업무 이양으로 인해 JSA 내 미합중국 측 전투병력이 빠지면서 이원적 지휘 체계가 심화되었기 때문이다. 1사단장은 병력을 지원함에도 작전 입안 및 집행에 있어 배제되는 것에 대해 불만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JSA와 그 위수지역은 특수한 성격을 지니고 때문에 한국군 측의 입장을 UN사 입장에선 마냥 들어줄 순 없다.

한국 육군으로 이양된 후 어쩔 수 없이 JSA 특유의 문화는 많이 사라지고 있는 모양. 과거 요원 중심의 분대전투는 간부 중심의 일사분란한 지휘-분대전술으로 바뀌고 있다. 요원들도 대부분 간부를 잘 따르는 모양. 대부분의 간부가 육군 특전사 출신이라는 특성 탓에 특전사 간부들의 영향인지 소대 내부 역할이나 팀 분할 등이 특전사와 유사하다는 후문도 있다.

이들에게 지급되는 전투복과 전투모는 특전사 및 해외 파병 부대용 위장무늬로 되어 있었지만, 2015년 하반기에 들어서며 예산 문제로 인해 피복이 육군 통합 전투복으로 전면 전환되었다. 특전복 도입 당시에 베레모 사용을 검토하였는데, 특전사 출신 간부들이 베레모의 한없이 부족한 기능성을 성토하여 전투모가 지급되었다. 어차피 행사시엔 헌병 헬멧이나 근무복에 착용 가능한 육군 공용 베레모를 쓰면 되기에 큰 문제는 아니다. 특전복을 착용하다 졸지에 일반 신형 전투복을 입게 된 장병들의 심정은 그저 지못미.

육군 베레모는 근무복에만 쓰고 전투복에는 착용하지 않으며, 공군에서 쓰는 것과 동일한 전투모를 착용하고 있다. 정작 얼룩무늬 전투모 시절엔 JSA대대는 간부도 병들처럼 방탄모 위장포용 포제 저시인성 계급장을 달았었다. 확실히 실전성이 점점 떨어져 가긴 하나 보다. 이에 대한 보완으로 JSA대대의 자부심을 높이기 위해 JSA를 상징하는 새로운 흉장을 전투복 왼쪽 가슴부분에 달았다. 전통적으로 해오던 일명 게스트 뱃지라고 불리우는 흉장은 오른쪽 가슴부분에 그대로 있다. 2016년 11월 이후로 흉장 또한 예산 부족으로 폐기되었다. 게스트 벳지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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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SA경비대대와 대치하고 있는 조선인민군 육군 부대의 경우 특수부대로 분류되는 인민무력부 특무대, 폭풍 군단에서 차출된 병력들이라는 것 외엔 자세한 사항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물론 장소가 장소이다 보니 JSA경비대대처럼 이 부대 역시 상당히 엄격한 선별과 강훈련으로 유지되는 정예부대로 추정된다.

보다시피 전원 계급과는 상관 없이 육군 군관용 피복을 입고 있고 구식 철모 대신 중국제 철갑모가 지급되는 등 특별대우를 받는 것은 확실하다. 항시 헬멧을 쓰는 아측 경계병력과 달리, 평시엔 정모를 쓰다 남북간 긴장도가 높은 시기 등에는 위장포 씌운 철갑모를 쓴다. 물론 우리 쪽에선 "저것들이 이제야 위장포 도입한 거 자랑하려고 쓰고 다닌다"고 비웃는다. 달고 있는 하전사 계급장은 전부 위장용이고 실제로는 전원이 군관 신분 (혹은 정치장교)이라는 설도 있다.

국군 감시장비에 경계를 나온 북한군의 손에 붕대가 감겨있거나, 벽돌로 손날을 문지르는 등 북한군 특유의 수도(手刀)훈련이 잡히곤 한다.

파주시 문산읍의 경제는 이쪽에서 근무하는 우리 육군 장병들의 외박과 휴가가 책임진다고 한다.[24] 요즘은 LCD 관련 공장이 많이 들어서서 글쎄...? JSA 근무자의 절반은 외박이 없는데

7.1. 타의로 JSA에 가게 되는 경우[편집]

1사단 소속 장병의 경우, 정예병이 아닌데도 JSA에 가게되는 막장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안습 JSA도 군 부대인 만큼 시시각각 변하는 군 상황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가령 미군이 대규모 훈련이라 할 경우, 당연히 판문점 인근 미군의 공백은 JSA의 몫이다. 그럼 JSA의 공백은 누가 메꿀까? 1사단이 메꾸게 된다. 다만 JSA에 주둔하거나 경계 근무를 서지는 않고, JSA 인근 GOP부대의 대대본부가 주둔한 후방 CP에 파견되어 부족한 머릿수를 채워준다. 이를 전진타격대 근무라고 부르는데, 전진타격대의 오분대기조는 JSA 상황 발생 시 10분 내에 현장에 도착해야한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 다행히도 도착 시에 상황은 이미 잘 끝나있고, JSA 농구장에서 농구나 하며 윗선 부대로부터 상황 종료 명령이 떨어지기까지 기다린다.

8. 기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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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동경비구역의 설치 이후 구역 내에서는 군사분계선의 효력이 반쯤 소멸되어[25] 남북 쌍방의 관계자들은 구역 내에서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었다고 한다. 1976년 8월 18일에 발생한 판문점 도끼만행사건 이후 군사분계선의 효력을 완전히 되살리고 기존의 표지판 외에 추가적으로 자재를 들여와 군사분계선을 표시,[26] 이후 상대 영역에 있던 병력들은 모두 철수하였으며 모든 군인들은 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상대 측의 지역에 넘어갈 수 없고, 상호 간 대화도 금지되었다. 그러나 사건 이전에 친분을 다졌던 남북 경비병들이 이후에도 분계선에서 몰래몰래 만나 전역할 때까지 친분을 유지하였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물론 세월이 지나고 세대가 바뀌면서 이런 모습은 대부분 사라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암암리에 있을 것으로 보인다 (딸기맛 단물과 말보로 교환?). 판문점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탈북자에 의하면 원래 감시가 심해서 대화를 하지 못하게 되어 있지만, 몰래 한국 측 병사에게 조심스럽게 껌을 달라고 얘기해서 받았다고 한다. 민정중대 관할 방축골이나 얄미 쪽으로 순찰 나가거나 특이사항을 대대장이 직접 보겠다고 해서 나가면 아직도 북한군들이 담배 달라고 소리친다. [27] 말 걸다 걸리면 일단 기부반 취조후 영창

  • 조선 중기의 도사로 유명했던 남사고가 판문점을 예언했다는 말이 있다.[28]

십선반팔삼팔(十線反八三八) - 십(十)자에 반(反)자와 팔(八)자를 합하여 널빤지 판(板))자,
양호역시삼팔(兩戶亦是三八) - 호(戶)자 둘을 좌우로 합하니 문 문(門))자,
무주주점삼팔(無酒酒店三八) - 주점(酒店)에서 주(酒)자를 떼어내면 가게 점(店)자,
삼자각팔삼팔(三字各八三八) - 3글자가 각각 8획이니 3과 8이 되는 것=삼팔선.

  • 이 문서는 판문점 문서를 기반으로 공동경비구역에 있던 내용을 편집한 뒤 공동경비구역이라는 문서 하나로 엮은 것이다. 판문점 문서에 있던 정보를 보고 싶은 사람은 이곳을 참고할 것.

  • 포켓몬 GO의 체육관이 여기에서 발견되어 아직까지 아무도 못 가고 있다(...).[29]# 많고 많은 곳 가운데 왜 하필 여기?? 마침 체육관 관장도 악의 조직 보스 그리고 10월 15일에 2018년 10월 남북고위급회담이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에서 열린 날에 평양 선언에서 남북 정상이 합의하였던 JSA 내 지뢰 제거가 모두 완료되었는데, 닷새 이후에 판문점 내 초소 철거 및 비무장화가 진행될 예정이다. 그리고 비무장화가 완료되면 남북한 민간인과 관강객, 외국 관강객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JSA 남북지역을 자유롭게 왕례할 수 있다. 즉, 드디어 판문점으로 가서 체육관 도전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


  • 남북통일이 성사된다면 판문점은 군사지역에서 해제될 것이며[30], 판문점은 역사박물관 겸 교육연수원으로 탈바꿈할 가능성이 크다.

9. 사건 및 사고[편집]

10. 관련 대중매체[편집]

11. 관련 문서[편집]

[1] 보통 저기서 남북한 군인이 머리를 살짝보여주고 카메라로 찍고 하는 행위는 결코 호의적으로 하는 행위가 아니다. 견제하는 행위로서 전쟁이 발생 시 가장 먼저 싸울 수도 있기 때문에 UN이 상주하고 있다.[2]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 그리고 상황, 아울러 위기국면, 그리고 주변 4대 국가 사이의 알력이 펼쳐지고 있는 지금의 상황에 빗대어 본다면 이는 절대로 과장이 아니다. 더구나 대한민국과 북한의 경우, 전쟁이라도 일어났다간 그야말로 세계대전으로 확대될 정도의 위험성과 파괴력을 지닌 지역이다. 군사력이 강력한 3개국(미국, 러시아, 중국)과 경제력이 강력한 4개국(한국.미국, 일본, 중국)이 이곳에서 서로 기싸움을 벌이고 있다. 그리고 한국과 일본도 다른 3개국에 비해서는 밀려도 군사력이 만만한 수준은 아니다.[3] 사진의 군사분계선 표지판 0090번은 군사분계선에 설치된 1292개의 표지판들 중 유일하게 군사분계선상에 설치되지 않은 표지판이다. 분계선이 다리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는 관계로 다리 한가운데에 꽂는 것이 맞으나 기술적 문제 때문에 부득이하게 다리 입구에 설치되었다. 남쪽에 설치된 것은 이 표지판의 관리 책임이 남쪽에 있어서로 추측된다.[4] 판문점 내에서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권총만 소지 가능하다. 판문점의 병사들은 헌병 완장과 헬멧만 착용할 뿐, 헌병이 아니다.[5] ACU 복장의 미 육군은 관광객들을 안내하는 투어가이드이며, 헌병 행사복을 입고 있지만 사실은 보병대한민국 육군은 경비중대 소속의 경비병.[6] 군사분계선에 걸친, 파란색 건물들만을 말한다. 역시 군사분계선에 걸쳐져 있지만 회색인 건물들은 북한에서 관리한다.[7] 북한은 군정위가 철수한 1994년 4월 28일 이후, 동년 5월 24일 이곳에 판문점대표부를 설치한다.[8] 그때까지 북한군은 '돌아오지 않는 다리'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때는 유일한 통로였기 때문에 당연한 이야기이다.[9] 대학생의 경우에는 군사나 안보, 통일 및 북한학 관련 학과에 기회가 많이 오는 편이다.[10] 흔히 말하는 수색대대 같은 엘리트 부대들은 지원을 받아 엄격한 선발과정을 거치는데, 이곳도 그렇다.[11] 편제상 수방사 소속으로 대통령경호처에 파견되는 대통령경호처 지원부대와도 유사한 형태다.[12] 정확하게는 이승만 정권 당시 휴전을 인정하지 않는다며 조인에 불참하였다. 그런 이유로 유엔군이 대한민국 입장을 대리하게 됐다.[13]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한국군 장비나 무장이 모두 미군 장비인 것은 이 때문이다. 이때는 카투사로 입대했다가 카투사 교육대에서 JSA로 차출되는 형식이었다. 경비대대 중 본부중대 인원은 대부분 카투사 입대자 중 선발하였고, 경비중대와 민정중대 인원은 대부분 훈련소에서 운동 선수 출신, 유단자, 체육대학, 유도 선수 출신 등을 적당히 차출해서 카투사 교육대에서 후반기를 받은 후 자대로 보내졌다. 부대원들 내부에서는 통상 전자를 '시험군번'이라고 부르고 후자는 '차출군번'이라고 불렀는데, 시험군번에 해당하는 병들은 아무래도 가방끈이 긴 병력들이고, 차출군번들은 대체로 운동경력이 있는 병력들이었다. 이 때문에 양쪽 그룹간에 서로 따로 노는 경향이 있고 서로 갈구는 경우도 있긴 한데, 막상 1년쯤 지나고 나면 서로 안 좋은 쪽으로 비슷해진다.[14] 이 때문에 생긴 재미있는 에피소드 중 하나를 소개하자면, 외박을 나간 JSA 경비병 한 사람이 술을 마시던 중 사소한 시비가 붙어 어찌어찌 경찰서까지 가게 되었다. 담당 경찰관이 소속부대를 물어보자 "UN군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경비대대" 소속이라고 하자, 그러니까 다국적군이란 말이지라고 다시 물어봤다는 이야기가 있다. 소속이 소속이다 보니, 외국군 장교와 마찰을 빚을 수도 있어 사소한 시비는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다.[15] 여담이지만, 미군 식당에서 식사를 하던 시절만 해도, JSA 영내식당의 질은 미8군을 통틀어 우수한 수준[16]이었다. 아무래도 미국 입장에서도 최전방으로 분류되어 보급을 잘 받았을 뿐 아니라, 다른 미군 부대와는 달리 한국군 병력이 전체의 절반을 차지하다 보니 아무래도 한국군 입맛에 맞게 조리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 특히 근처 대성동에서 제공받는 로 지은 은 민간인의 기준에서 봐도 최상급에 속하는 훌륭한 맛이었다. 일반적으로 미군의 식단이 한국군 식단에 비해 엄청나게 화려하고 맛이 좋을 거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는데, 실상 한국군이 먹기에 미군 식단은 사실 고역에 가깝다. 한국에 있는 미군 부대 식당에서는 대부분 밥과 김치도 제공되지만 밥알이 날아다니는 안남미로 지은 밥+양배추 겉절이 같은 국적불명의 김치(?)에 퍽퍽해서 맛없는 치킨, 랜치드레싱과 그레이비소스로 대표되는 미국 요리 특유의 달달느끼하고 텁텁한 메뉴들이 더해진 조합은.....[16] 종교휴양소, 121종합병원 등 소규모 식당도 각각 장점이 있기 때문에 어디가 최고라고 단언하긴 힘들다.[17] 근데 이 부대를 거쳐간 장교 가운데 한 사람은 선발이 있을 때마다 뽑혀와서, 이곳 근무 경력만 수차례를 가지는 흠좀무한 경우도 있었다.[18] 어학병은 체력은 좋을 지언정 키는 그리 크지 않아도 된다.[19] 과거에 몸 상태를 속여서 신체등급을 높여받고 대대에 전입온 경우가 있었는데, 본인이 복무를 강력하게 희망하고, 근무에 지장이 없는 경우라는 소견을 받고 받아준 적이 있긴 하다.[20] 사실 선발대상자원의 대부분은 훈련소만 본 상태기 때문에, 부대 복무 환경 같은 설명은 잘 이해 못 하는 경우가 많다. 정말 가고 싶어하는 경우의 상당수는 그냥 분위기에 끌리는 것이다.[21] 적게는 1~2명에서 많게는 15명 정도까지[22] 현재 육군 특급전사 권총사격 기준은 200점 만점에 170점이다.[23] 다만 어디까지나 전방 메이커 사단급 부대와 비교했을 경우이다. 택티칼포럼이나 비밀 등의 밀리터리 사이트에 올라오는 한국군 이양 전 JSA 경비대대 근무 예비역들의 경험담을 접하면, 대체적으로 "옛날엔 보다 실전적이었는데, 한국군 이양 후 다소 비 실전적이고 경직된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는 것 같다"고. 예비역 중 한 분의 말을 인용하자면 'K11 같은 거 주고 디지털 전투복 입혀주는 것보다 시급한' 부대의 전술적, 전투적이던 분위기와 이양 전 전수되어 오다 이제는 맥이 끊긴 각종 소부대 전투기술들 추억하며 한탄하는 분위기라고 한다.[24] 그래도 문산읍은 강원도 양구군에 비해 바가지가 덜한 편이다.[25] 아예 없었던 것이 아니다! 판문점 도끼만행사건 이전에도 JSA 내에는 군사분계선이 엄연히 존재하였으며, 군사분계선 표지판도 세워져 있었다.[26] 회의장 구역에는 그 유명한 콘크리트 경계석으로 (이거...당시 군정위 근무하던 한국군 소속 병사가 손으로 공구치 쳐서 발라 만들었다), 그 밖의 지역에는 일정 간격으로 하얀색 말뚝을 박았다.[27] 현재에도 정전위나 중감위 회의장을 비롯하여 분계선상에 세워진 가건물 내에서는 군사분계선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다. 물론 상대 쪽 출입문으로는 절대 나갈 수 없다.[28] 조선시대엔 판문점이라는 지명이 존재하지 않았다. 요즘은 이 예언이 수록된 격암유록 자체가 조작이라는 설이 있다.[29] 해외 국적을 가진 사람이라면 북한을 통해서 갈 수도 있을지는 모르겠지만...[30] 베를린 장벽과 구 동서독 국경이 그랬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