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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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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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울임꼴은 총 인구 100명 미만인 성씨, 한자가 다르더라도 한글 표기가 같으면 합산된 인구로 계산)

· · · · · 강전 · · · · · · · · · · · · · · · · · · · · ·

· · · 남궁 · · · · ·

· · · · · · · 독고 · · · 동방 · · · 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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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장곡 · · · · · · 제갈 · · ·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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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 · · · · · · 황목 · 황보 · ·


1. 髙
1.1. 제주 고씨
1.1.1. 개성 고씨
2. 高
2.1. 횡성 고씨
3. 顧4. 로마자 표기5. 고씨 유명인6. 가상 인물

1.[편집]

한국의 성씨 중 하나. 한국에는 2015년 인구총조사에 471,396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중국에는 약 1,450만 명이 있고Gāo(까오)라고 부른다.(예로 삼국지 고순이 있다.)

학교에서 같은 반에 가씨, 경씨강씨가 없다면 1번이 될 확률이 매우 높은 성씨다. 특히 전라도경상남도에 굉장히 많은 편이다. 제주도는 두말할 것도 없이 아주 많은 편이다. 충청도는 대체로 적은 편이지만 충청이든 강원도든 어디서도 흔하게 볼 수 있다.

주인공이나 조역으로도 심심찮게 볼 수 있는 성씨이다. 대표 고 씨 캐릭터로는 우주 최강 소드 마스터이자 킹 오브 대인배이신고길동고뭉치, 고은비, 고은애[1] 등이 있다.

1.1. 제주 고씨[편집]

파일:go_family_seal_og.png

제주 고씨의 종문


탐라왕족성씨.

한국에 거주하는 고 씨는 제주 고씨가 흔하며 시조는 고을나왕[2]. 고 씨는 양 씨, 부 씨와 함께 탐라의 지배씨족으로서 이들 세 성의 시조 탄생에 대한 삼성혈 전설이 널리 알려져 탐라국의 국성이라고도 한다. 제주도에는 본래 사람이 없었는데 삼신인(양을나(良乙那), 고을나(高乙那), 부을나(夫乙那))이 한라산 북쪽 기슭 모흥혈에서 솟아 나왔다고 한다. 이들 삼신은 짐승을 사냥해서 살았는데 어느 날 동쪽에서 상자 하나가 바다로 떠내려 와서 열어 보니 그 속에는 미녀 세 명과 곡식의 씨앗, 망아지, 송아지가 들어 있었다. 삼신이 미녀 세 명을 각각 배필로 맞아 목축과 농사를 지어 살았다고 한다. 그중 고을나가 제주 고씨(濟州高氏)의 시조가 되었으며 본관을 제주로 하였다. 고씨는 시조에서 45세손 자견왕까지 탐라 군주로 세습해 오다가 46세손인 말로가 고려에 입조하여 그가 곧 모든 고씨의 중시조가 되었다. 고말로의 증손자 고공익, 고말로의 증손자 고령신(개성), 고말로의 10세손 고복림(장흥), 고말로의 후손 고종필(연안), 고말로의 16세손 고응섭(안동)을 중시조로 하는 등 15개의 본관으로 나뉘었는데, 최근에는 서로 같은 혈손이라며 다시 합본하여 고을나를 시조로 하고 본관을 제주로 하여 '제주 고씨 중앙종문회'를 만들었다. 예를 들어, 장흥을 본관으로 하는 장흥 고씨는 이제는 제주 고씨 장흥백파로 명명하고 있다.

고씨는 국내에 135,488가구, 435,839명이 살고 있으며, 특히 제주도에서는 김씨와 이씨에 이어서 세 번째로 많은 성이다.

제주 고씨 종친회에서는 성씨를 라고 표기하기로 합의하였다. 하지만 위 한자는 인명용 한자가 아니라서 젊은 고 씨들은 대개 를 사용한다. 그래서인지 주민등록등본 등을 자세히 살펴보면 때때로 아버지와 자녀가 쓰는 한자가 서로 다른 경우가 있다.

항렬상 이름으로는 '고재○', '고○석', '고○현', '고영○' 이 가장 제일 많이 보인다. 대동 항렬자(파 상관없이 지을 수 있는 항렬자)가 있되 각 파마다 돌림자가 다르다.

앞서 예시로 든 글자는 제주 고씨에서 가장 메이저한 파인 장흥백파의 돌림자로 장흥백파는 제주 고씨 1세조 고말로(高末老)의 10세손 고중연을 시조로 하는데, 고려 말 홍건적의 제2차 침입 때 고려 공민왕을 호종하여 호종공신으로 책봉되면서 장흥백(長興伯)에 봉해진데 그 기원이 있다. 유명한 장흥백파 출신으로는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 고경명이 있다.

일각에서는 제주 고씨가 고구려 왕족의 방계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신용하 서울대 명예교수는 탐라국이 고조선 문명권을 구성했던 고구려족·양맥족·부여족의 대이동 과정에서 건국된 뒤 섬 안의 다른 지역 마을공동체를 포섭하면서 전체 제주도로 확대 발전했다는 학설을 발표하면서 몇 가지 증거(?)를 제시했다. 그 근거로는 우선 시조들의 이름인 '을나'라는 호칭은 부여·양맥·고구려 등 북방에서 이동해온 예·맥족 호칭인 점, '일본서기'에 탐라국 왕자 고씨가 일본에 사절로 갔을 때 고구려족임을 뜻하는 '구마(久麻)'로 표기한 점, 그리고 '신당서' 등 중국측 고문헌이 탐라국 국왕의 성을 부여·고구려 왕족의 성명 중 하나인 '유리(儒李)'라고 기록한 점과 용담동 석곽무덤에서 나온 철제 장검 2점이 만주 길림성과 대동강 이북 서북한 지역에서만 발견되고 한반도 남부·남해안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점 및 제주도 내 여러 수혈주거지가 만주 등 북방족의 수혈주거양식과 동일한 점, 그리고 동굴 숭배사상의 동일성 등을 제시했다.[3] 그러나 아직 뚜렷한 증거가 없기에 섣불리 단정을 짓는 것은 무리다.

1.1.1. 개성 고씨[편집]

고씨 중 개성고씨가 조선시대에 학자와 문신을 많이 배출하였다. 판도판서(版圖判書) 고영(高瑛)의 아들인 고사경(高士褧)은 고려 말에 상서(尙書), 조선 초기에 보문각직제학을 지내고, 김지(金祗) 등과 함께 《대명률직해(大明律直解)》를 이두(吏讀)로 편찬하였다.

이밖에 각 조(曹)의 참의를 두루 지내고 충청도 · 강원도 관찰사로 있으면서 선정을 베푼 고약해(高若海), 울산 판관을 지내고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의 작가로 알려진 고상안(高尙顔), 영조 때 창녕현감(昌寧縣監)으로 선정을 베풀어 ‘고창녕’이란 별명을 듣고 성리학(性理學)에도 조예가 깊은 고유(高裕), 2품의 벼슬을 지내고 조선 중기의 대표적 시인으로 서민시집 《소대풍요(昭代風謠)》를 엮어낸 고시언(高時彦) 등이 빼어났다.

2.[편집]

2.1. 횡성 고씨[편집]

제주 고씨와는 연관이 없고 보장왕의 아들 고인승을 중시조로 하는 고구려 왕족의 후손이다. 이쪽은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 기준으로 9,996명이 있으며 본관에 걸맞게 횡성을 비롯한 강원 서남부 인근에 많이 분포한다.[4]

제주 고씨가 스스로 를 쓰기로 정한데 반해 이쪽은 를 그대로 써서 서로간 구별을 염두했으나, 그리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아서 보통 혼용되는 추세이다.

제주 고씨에 비하면 몹시 마이너한 축에 속하다 보니 존재 자체를 거의 모르다시피 해서 남해안 지역에 기거하는 소수의 횡성 고씨에게는 제주 고씨 종친회에서 일괄 연락이 오는 경우도 있다. 족보 등록하라는 내용인데 이런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고을나를 시조로 삼는 제주 고씨의 방계이자 고을나의 11세손 고인비를 시조로 삼던 제주도 출신 횡성 고씨가 실제로 존재했었기 때문이다. 이들 제주출신 횡성 고씨들은 다른 제주출신 고씨들과 함께 1988년 모두 제주 고씨로 합본하여 제주 고씨 화전군파로 분류되며, 이 이후 더 이상 고을나를 시조로 하는 횡성 고씨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이따금 이들 제주 고씨 화전군파가 횡성 고씨이었던 사실만 아는 사람들이 고인승을 시조로 모시는 현존하는 횡성 고씨들을 제주 고씨의 방계로 여기며 고구려 왕족이라는 주장을 사기극이라 여기는 일이 발생하곤 한다.

중국 요녕성에도 장수왕의 후손인 요양 고씨가 있으며 약 2천여 명이 집성촌과 족보를 지키며 산다. 한국에 역사스페셜로 소개된 적이 있다.

3.[편집]

국내에 33명밖에 존재하지 않는 희성이다. 2015년 조사때 집계되었다.

중국에서는 가끔 보이는 성씨로, 명나라 말기의 사상가 顧炎武(고염무), 홍콩 대중음악 작사 및 작곡가 顧嘉煇(고가휘)가 있다.

4. 로마자 표기[편집]

가장 일반적인 로마자 표기는 Ko이다. 2011년 외교부 여권 통계에 따르면 Ko가 약 60%, Go가 약 18%, Koh가 약 17%, Goh가 약 3%, Kho 등 기타 표기는 1% 미만이다. 매큔-라이샤워 표기법에 따르면 Ko, 현행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에 따르면 Go로 써야 맞는다.

5. 고씨 유명인[편집]

6. 가상 인물[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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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달려라 하니의 홍두개 선생님의 애인[2] 어디에서는 '고을라'라고 쓰기도 한다.[3] http://www.ihalla.com/read.php3?aid=1304866800362155121[4] 거주인구는 경기도(2,500명), -횡성이 있는- 강원도(2,015명), 서울(1,661명), 경상북도(822명), 충청북도(675명), 인천(553명), 울산(364명), 대구(362명), 부산(314명), 충청남도(220명), 경상남도(200명), 대전(158명), 전라남도(42명), 전라북도(35명), 광주(33명), 제주도(24명), 세종(18명) 순이다. 인구가 집중된 수도권을 제외하면 횡성이 위치한 강원도와 그 강원도 서남부 인근지역에 많이 분포함을 알 수 있다.[5] 문충공파 33세손 '석(錫)○' 항렬.[6] 개명 전 이름은 고우리. [7] 문충공파 35세손 '동(東)○' 항렬.[8] 문충공파 31세손 '병(炳)○' 항렬.[9] 문충공파 31세손 '병(炳)○' 항렬.[10] 본명은 고우리[A] 11.1 11.10 11.12 11.14 장흥백파 23세손 '○석(錫)' 항렬.[B] 12.1 12.2 12.3 12.4 12.5 장흥백파 24세손 '영(永)○' 항렬.[17] 개명 전 본명은 고영자(高英子).[18] 문충공파 34세손 '윤(潤)' 항렬.[19] 문충공파. 본명은 고은태이다.[21] 개명 전 이름은 고영우. [23] 재일 한국인, 일본명 다카야마 도모유키(高山智行)[25] 장흥백파 25세손 '병(秉)○' 항렬.[26] 문충공파 32세손 '○곤(坤)' 항렬.[27] 장흥백파 24세손 '영(永)○' 항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