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해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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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 告解聖事
라틴어: Confessio
영어: Confession/Sacrament of Penance/Sacrament of Reconciliation

1. 개요2. 교파별 고해성사
2.1. 가톨릭의 고해성사
2.1.1. 고해성사 준비2.1.2. 고해성사 진행 절차2.1.3. 내용 누설 금지의 원칙
2.1.3.1. 내용누설 금지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 것
2.1.4. 여담
2.2. 정교회의 고백성사
2.2.1. 교리와 전통2.2.2. 절차
2.2.2.1. 사제의 준비기도2.2.2.2. 죄의 고백 권고2.2.2.3. 고백과 사죄경
2.3. 성공회의 고해예식2.4. 성공회를 제외한 개신교의 고해예식
3. 사죄경4.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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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식 고해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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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교회식 고해성사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사람은 이미 하느님과 함께 행동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그대의 죄를 질책하시는데, 그대도 자신의 죄를 질책한다면 그대는 하느님과 결합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사람과 죄인은 별개의 존재입니다. 그대가 “사람”이라는 말을 들을 때, 그 사람은 하느님께서 지으신 것입니다. 그대가 “죄인”이라는 말을 들을 때, 그 죄인은 인간이 스스로 만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친히 만드신 것을 구원하시도록 그대가 만든 것을 부수십시오…… 그대가 만든 것을 미워하기 시작할 때, 그대는 자신의 악행을 고발하는 것이기에, 그대의 선행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악행의 고백은 선행의 시작입니다. 그대는 진리를 행하고 빛을 향해 가는 것입니다.


성 아우구스티노의 「요한 복음서 강해」 12,13: CCL 36,128(PL 35,1491

그대는 거리에서 넘어질 때마다 다시 일어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죄를 지을 때마다 지은 죄에 대해 참회하십시오. 또다시 죄를 지을지라도 실망하지 말고, 새롭게 뉘우치십시오. 약속된 상급[1]에 대한 희망을 잃지 마십시오.... 교회는 법정이 아니라, 치유의 장소입니다. 여기 교회에서는 그대의 죄를 셈하지 않고, 그대에게 용서를 베풀 따름입니다. 오직 하느님께 그대의 죄를 드러내십시오. "오로지 당신께 죄를 지었나이다. 당신 눈에 악한 것을 제가 행하였나이다"(시편 51, 6). 그러면 그대의 죄는 용서받을 것입니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2]의 「참회에 관한 설교」 3장 4절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요한복음서 20장 23절 (가톨릭 성경)[3]


기독교7성사 가운데 하나로서 여러가지 이유로 일반인에게도 가장 익숙한 종교적 예식일 것이다. '고백성사'라고도 하지만, 단순한 고백이 아니라 성찰, 통회가 있어야 하기에 고해성사가 더 의미에 맞으며, 전통적인 표현으로는 세례성사 다음에 오는 구원을 위한 뗏목.[4]

예수가 그의 사도들에게 내린 사죄의 권한에 의한 것으로서[5] 세례받은 신자가 대죄[6]를 지었다면 신자는 반드시 빠른 시일 내에 고해성사를 진정 참회하는 마음으로 봐야 한다. 이로써 신자는 를 용서받는다.

하지만 그 죄로 인하여 받을 이 없어지진 않는다고 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하루 먹을 음식을 훔쳤다가 회개하여 고해성사를 받았다고 해 보자. 죄는 용서받았지만 음식을 도둑맞은 사람이 한 끼 굶어야 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훔쳐간 사람은 훔친 물건을 돌려주는 등 피해를 보상하려는 노력이 필요하지만, 그러고도 못다한 부분은 죽어서 연옥에서 몸으로 때운다는 것이다.[7]

문학적으로도 많은 소재가 되는 것으로 이를 소재로 한 문학, 영화가 좀 된다. 한국에서도 죄와 벌[8]이라는 동생의 누명에 관해 고민하는 사제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이 있다. 각종 창작물에서 등장인물이 큰 죄를 저지른 뒤 고해성사를 하기도 한다. 카리스마 만빵인 캐릭터가(주로 악역) 살인 같은 죄를 저지른 뒤 이걸 하는 장면도 클리셰로 많이 쓰인다. '살인을 하기는 했지만 그만큼 속으로는 고뇌한다'는 외강내유갭 모에가 목적인 것이 대부분.

현존하는 기독교 종파 중 이 의식을 행하는 것은 가톨릭, 정교회, 성공회 정도다. 대다수의 개신교는 만인사제설과 성서에 쓰여있지 않다는 이유로 인정하지 않지만[9] 미국이나 유럽의 일부 루터교회에서 간혹 행하기는 한다.

2. 교파별 고해성사[편집]

2.1. 가톨릭의 고해성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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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해소. 문이 3개 있는 이 형태는 가운데 공간에는 사제가, 양쪽 공간에는 신자가 들어가며, 한쪽 신자가 고해를 볼 동안 다른 신자는 기다리게 돼 있다.[10]


가톨릭 교회의 고해성사가 합당하게 진행되려면, 먼저 참회자의 죄에 대한 자세한 성찰과, 통회(절실한 회개)가 있어야 하며,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다고 단호히 결심하고(정개) 마침내 사제에게 나아가 죄를 고백하고, 뒤이어 사제가 정해주는 보속을 받고 고해신부의 사죄경을 듣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이를 고해성사가 집행되는 순서에 비추어 볼 때 참회자는 먼저 양심적으로 성찰을 하여 지은 죄를 생각해 내고, 그 죄를 깊이 뉘우치는 통회를 하며, 다시는 이같은 죄에 빠지지 않기로 굳게 결심하고 나서 고해신부 앞에 나아가 죄의 고백을 한다. 그러면 고해신부는 사죄를 하고 보속을 정해 준다. 참회자는 받은 보속을 실천함으로써 고해성사가 끝난다.

연중 미사가 집전되기 30분 전부터 사제가 고해소에 들어가서 미사 참례하기 직전에 고해보기 위한 신자들을 접견한다. 그런데 고해보려는 사람이 많은 상황에서 신부님이 늦게 고해소에 들어가는 바람에 뒤에 줄 선 사람들이 고해를 못하고 미사에 참례하는 경우도 생기긴 한다

2.1.1. 고해성사 준비[편집]

고해성사 전에는 고해성사를 볼 마음을 가진 신자가 먼저 자기의 죄를 성찰하는 양심성찰을 먼저 한다. 물론 자기가 모든 죄를 다 알고 있다면 고해소에 들어가 즉흥적으로 해도 문제는 없지만 막상 고해소에 들어가서 말하려면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거나, 떠오르지 않는 죄나 잘못들이 많기 때문에 종이에 적어가면 좋다.

세례받은 가톨릭 신자가 개요에서 언급했던 대죄[12]와 무거운 죄악들[14]을 지었다면 미사성체성사를 포함한 7성사를 받기 위해서는 꼭 고해성사를 통해 먼저 죄를 용서받아야 한다. 이를 어길 시 올바른 마음으로 성사에 참여하거나 성체를 받아 모시지 않은 죄(모령성체의 죄)가 되기 때문에 이걸 가지고 나중에 또 고해성사를 봐야 하기 때문. 위의 쓴 죄악들이 아닌 작은 죄들은 소죄라고 해서 신실한 믿음과 반성으로 영성체에 임하면 성체성사를 통해서 용서된다고 본다.[15] 그래도 가톨릭 교회에선 소죄도 가급적 고해성사에서 고백하기를 권장한다. 일선 신부님들은 그럴 필요 없다고 하시긴 하지만 이것을 권하는 이유는, 고해성사에서 고의적으로 죄인 것을 알면서 누락하여 고백해서는 안 되기 때문. 그랬을 경우는 이 역시 다시 고해성사를 봐야 한다. 소소하게 누구에게 짜증을 내거나 욕을 했거나 하는 것은 죄를 고백하면서 말하게 되는 "그 밖에 알아내지 못한 죄에 대해서도~" 구절에 속하게 되니 특별히 콕 집어 마음에 걸리는 일이 없다면 따로 고백하지 않아도 상관은 없다. 다만 역시 일선의 사제들은 "그런 정도는 좀 모았다가 정산하세요"라며 일갈하기도[16]

보통 자기의 생활과 믿음에 관한 여러 죄, 잘못들을 대죄, 중죄의 기준인 십계명칠죄종을 중심으로 성찰하고 나면 이를 종이에 적거나 잘 머리에 담아서 고해소로 들어간다. 가기 전에 죄를 하느님 앞에 진심으로 뉘우치고 하느님의 마음을 상해드린 것을 안타까워해야 함(상등 통회)이 마땅하고, 그렇게까진 안되더라도 최소한 죄에 따른 벌이 두려워서라도 죄를 뉘우치는 회개의 마음(하등 통회)은 가지고 있어야 함이 원칙이다.

2.1.2. 고해성사 진행 절차[편집]

가톨릭의 고해성사는 철저한 비밀을 기본으로 하는 특성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다. 보통 고해실은 2실 또는 3실로 나뉘어 2실은 한편에 보라색 영대[17]를 맨 사제가, 한편에는 고해할 신자가 들어가 서로 사이에 벽과 이야기 소통이 가능하나 사제가 고해하는 신자의 얼굴은 알 수 없도록 꽤 촘촘한 철망이 창으로 내어져 뚫려 있다. 얇은 천으로 가려놓는 경우도 있다. 3실의 경우에는 가운데에 사제가 들어서고 양 옆으로 고해할 신자가 들어서는 방식이다. 그러므로 이 경우에는 고해하는 신자들이 다른 편에 있는 신자가 고해하는 내용을 듣지 못하도록, 미닫이 구조로 창에 맞는 문이 설치되어 사제가 이를 교대로 여닫아 고해를 들어준다. 또한 제대로 공사된 3실 고해소는 방음처리가 되어 있는 편이다.[18]

신자가 참회하며 죄를 고해하면 사제가 보속[19]을 내려주는데 거의 대부분 가톨릭의 기도 중 몇 개를 고르거나 그 중 하나(주로 주님의 기도나 성모송)를 몇번 암송하며 참회하라는 방식이 대부분이다. 물론 보속의 내용은 사제 개개인의 성향을 타서 묵주기도 5단을 바치라는 사제도 있고, 봉사(선행)를 실천하라는 사제도 있다. 공관복음서의 일부를 묵상하면서 읽으라고 보속을 내리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 보속을 내리는 권한이 전적으로 사제에게 있기 때문에 아주 가끔 골 때리는 보속을 주는 사례도 있다.[20] 이런 이야기가 있다. 남의 아내와 바람을 핀 유부남이 성사를 보는데, 그 뻔뻔한 태도에 열받은 신부가 산 위에 가서 털을 다 뽑으라고 보속을 주었다. 얼마 후 또 바람을 피우고 온 유부남이 같은 신부님께 고해성사를 보게 되었는데 또 뻔뻔한 태도로 일관한 모양이다. 신부님이 열을 받은 나머지, 며칠 전 뽑았던 닭털을 다 주워오라고 시켰다고 한다. 당연하지만, 털이 그 때까지 남아 있을 리가 없다.[21][22]

또한 현재는 이처럼 비교적 가벼운 보속을 내려주지만 과거에는 정말 빡센 보속을 내리는 경우가 많았다. 이 엄청나게 빡센 보속은 초기 교회 시대부터 내려오는 일종의 전통 관행이었는데, 12세기 무렵까지 고해성사 후 보속이란 것은 굉장히 길고 엄했다. 예를 들면 폭행죄를 저지른 사람은 7년간 고행, 부모님을 막대한 사람은 3년간 고행, 점을 치거나 미신행위를 한 사람은 5년간 고행, 욕한 사람은 7일간 금식, 미사나 성사 중에 떠든 사람은 10일간 금식 등등... 그외에도 '지금 당장 성지순례 떠나세요', 혹은 '1달 동안 아무것도 하지 말고 참회 기도만 드리세요' 같은 무거운 보속을 내리는 경우도 존재했다.

그 보속이 너무나 무거웠기 때문에 심지어 젊은 사람이 죽어가는 상황에서 고백성사를 청한다 하더라도 거부하라는 지침이 나왔을 정도였다. 만약 그 젊은 사람이 죽을 위기를 넘기면 보속을 시행해야 하는데, 최소 몇 년, 혹은 평생 동안 이를 시행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신자들도 당장 숨 넘어가는 상황이 아니면 고해성사를 보지 않음이 관례가 됐을 정도.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보속들은 차차 가벼운 행위로 바뀌어 갔지만, 공식적으론 제2차 바티칸 공의회까지 남아 있었다.

인간적인 측면에서 보면 성직자라고는 해도 남의 죄를 들어 주는 일이 쉽지는 않다. 실제로 많은 신부님들이 고해성사로 인한 스트레스를 겪는다고 한다.[23] 위 보속과 비슷한 사례로 끊임 없이 바람 피고 그 때마다 고해하러 오는 남자 때문에, 열받다 못한 신부가 고해를 듣다가 말고 고해소를 뛰쳐 나와 그 남자를 두들겨 팬 사례가 있다 한다. 신부 그만 두는 한이 있어도 그 놈은 패야겠다고 했다나 뭐라나.[24] 신기하게도 얻어맞은 그 신자는 그 이후로 바람피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하느님은 멀고 주먹은 가까웠다 카더라... 또한 자꾸만 간음하고서 고해성사를 보러 오는 여인이 있었는데 신부는 여인이 죄를 고백하자마자 "또요!" 이렇게 외치고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고 한다. 그리고 고해성사가 끝나고 여인이 나가자마자 자신도 따라나가서 신자들 중에서 눈에 불을 켜고 그 여인을 잡아내려고 찾아다녔다는 사례도 전한다.[25]

어떤 신부에게 보속을 받았는데 도저히 실행하지 못한다면, 나중에 다른 사제에게 고백성사를 볼 때 그 이야기를 하고 보속을 바꿀 수 있다. 좀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전에 받은 보속을 시행하지 않았음도 하나의 죄로 간주해서 고백하고, 다시 거기에 대한 보속을 받는 식이다. 하지만 어지간히 무리한 보속이 아니라면 그냥 시행하는 것이 신자의 도리.[26] 신부가 주는 보속이라는 게 응보적, 예방적인 목적과 함께 "앞으로는 좀 조심하시죠??" 하는 의미에서 주는 교정적 목적이기 때문이다.

대부분 고해한 사실에 대해 사제가 사죄경을 외고 보속(벌)을 주는데, 가끔씩 보속을 주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는 일반 사제가 보속을 주기에 너무나 무거운 벌인 경우이다. 대표적인 예로 '성체모독[27], 고해성사의 고해 내용 노출, 성직자결혼 시도, 낙태[28](2015-2016 자비의 희년동안 일반사제에게 사죄가 허락되었고 자비의 희년이 끝나고 일반사제에게도 영구적으로 사죄권이 부여되었다.) , 살인, 무력을 통한 절도, 교황의 허가 없이 주교 임명' 등이다. 이 항목 중 몇 항목은 '파문'에 이르는 무거운 벌이다. 이러한 죄에 대한 고해는 교황이나, 혹은 교황으로부터 특별권한을 부여받은 고위 성직자에게 해야 한다.[29] 단, 파문을 받은 사람이라도 죽을 위기에 처하면 아무 신부에게나 고해성사를 받고 파문을 해제받을 수 있다. 이 경우에는 심지어 신부로서의 권한이 정지된 사람에게 받아도 상관이 없다.

혹은 사제가 신자가 고해하는 내용를 들어보니 정말로 마음으로 뉘우치지 않고 입으로만 나불대는 것 같다 싶으면 사죄경을 거부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원래는 저런 특별한 죄를 제외하고는 보속을 주는 것이 맞다.

예를 들어 배우자 아닌 이성과 딴 살림을 차린 경우 제대로 된 고해성사가 되려면 딴 살림을 접고, 가정으로 돌아가야 하지만, 고해 내용을 들어보니, 그런 의사는 없는 것으로 보이고, 요식행위로 고해성사를 보는 것으로 판단되는 경우 더 괘씸한 것은 대림 또는 사순 판공 기간이어서 한 사람에게 오랜 시간을 할애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런 고백을 하는 것 라도 일단 사죄경을 해 줘야 한다. 다만, 그 사죄경은 제한적인 것으로 나중에 시간 여유를 갖고 제대로 된 고해성사를 보도록 권고한다.

때때로 면담식 고해라고 해서, 시간이 많을 때 사제를 따로 찾아가서 정말 길게 이야기한 뒤 사죄경을 받기도 한다. 특히 이런 경우는 수도회 소속 사제들이 할 때가 많다. 때로는 가톨릭 신자가 아닌 사람도 비밀이 엄수되는 가운데 자기 속을 이야기하고 싶어서 고해성사는 아니어도 이런 면담을 사제에게 요청하는 경우가 있다. 특히 이런 요청을 많이 받는 사제는 아예 '고백성사 수준의 비밀 엄수를 원하면서 이야기하고 싶은, 가톨릭 신자가 아닌 사람은 그 점을 명확하게 이야기해 달라'고 주문하기도 한다.

가톨릭 교회법에 규정된 특이한 (하지만 이해가 가는) 규정으로, 고해사제가 성범죄를 저질렀을 경우 공범자에 대한 사죄가 죽을 위험에 처하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는 것이 있다… 이건 성범죄가 아니라 어떤 범죄라도 신부 그 자신이 공범 관계에 있었을 경우라면 그 신부가 고해성사를 받아주지 못하는 게 원래 맞는 것 같지만.

한국에서는 판공성사라고 하는, 성탄과 부활이라는 그리스도 교회의 가장 핵심인 축제를 앞두고 진정으로 정성된 준비를 한다는 의미로 만들어졌지만, 많은 사람들에 의해 악용되어 한 해 모든 죄를 묶어서 참회하는 연례 성사가 있어 평소 고백성사를 하지 못한 이들은 이 때를 이용해 자신의 모든 죄를 참회하기도 한다. 평소에 고해성사는 신자 한 명 한 명의 죄를 보듬어주는 그런 성의 있는 성사를 주는 사제가 제대로 된 사제지만, 이 판공성사 기간에는 그런 거 없다. 사람이 무지 늘어서 있기 때문에 빨리빨리 를 잘하는 사제가 능력 있는 사제인 것이다.

2.1.3. 내용 누설 금지의 원칙[편집]

사제는 고해성사의 내용은 절대 발설하면 안 되는데, 이건 과거부터 현대까지 무수한 사회적 이야기가 되어 왔다. 대표적인 사례로, 성인 요한 네포무크체코 왕비의 성사 내용을 끝까지 에게 말하지 않다가, 혀가 뽑혀 프라하 카를 다리에서 블타바 으로 버려졌다. 왕 입장에서는 쳐죽일 놈이지만, 성직자로서는 참으로 성인이 되어 마땅하신 분이겠다. 강의 수호성인으로 동상이 다리에 세워지곤 한다.

프로테스탄트의 창시자격 인물인 마르틴 루터 또한 가톨릭 메인스트림을 박차고 나와 활동하던 중, 어느 주변 인물이 "거 수녀들은 평소에 무슨 고해를 합디까?" 하고 묻자 벼락같은 불호령을 작렬했다는 일화가 있다.[30] 다만 루터는 종교개혁 시기 이후에도 다른 동료에게 고해를 하거나 자신이 고해를 받는 일은 있었다. 고해는 할 수 있으나 성사는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을 뿐이다.

현대 미국에서는 이를 미국법 이하로 보는 판결을 한 전례가 있는데, 고해성사의 내용을 지킨 사제에게 상징적으로 1달러의 벌금 처분을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해성사 내용에 대한 성직자의 비밀 유지 의무를 존중하여, 이를 수사기관에 신고하지 아니하여도 국가보안법상의 불고지죄가 성립되지 않는다. 제5공화국 시절에는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 사건의 범인을 적극적으로 도피, 은닉하게 도와준 사제가 처벌된 일이 있었는데, 판례도 신고하지 않은 걸 넘어서 적극적으로 숨을 곳을 제공해 주는 등 도움을 주었기 때문에 도피ㆍ은닉죄가 성립한 것이지, 소극적으로 수사기관에 신고하지 않은 것은 죄가 되지 않았다고 한다.

고해성사 비밀 유지 의무는 대중에게도 꽤 잘 알려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무시하는 해괴한 사건이 종종 일어난다. 1996년안두희를 살해한 박기서가 범행 후 부천남부경찰서(現 부천소사경찰서)에서 한 블럭 거리에 있는 천주교 인천교구 심곡본동 성당에서 고해성사를 한 뒤 자수한 사건이 있었는데, 이 사실이 알려지자 기자들이 신부님에게 내용을 물어보는 병크를 저질렀다고. 통설상 범인은닉죄는 위에 나왔듯이 작위범, 즉 적극적으로 범인을 숨겨주고 도와줬을 때만 적용한다. 비밀유지만으로는 누구도 죄가 되지 않는다. 원칙은 그렇다. 그런데 예외가 되는 것이 그 악명높은 국가보안법이다. 김영란법에서도 비슷한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이건 특별한 사안이라서.

만약 성직자가 이를 누설할 경우, 특히 고의적으로 누설한 경우 교회법에 따라 자동파문이 될 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명목상으로는 형법 제317조 제2항[31]에 의하여 처벌될 수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 실제로 고해성사 누설로 처벌된 사제는 없으며, 범죄 사실은 보호받는 비밀이 아니기에 실질적으론 (De Facto) 이 조항에 의해 처벌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물론 이 조항으로 처벌을 받던 말던 고해성사 누설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자동파문이다. 또한 범죄 사실이 아닌 다른 고해 내용 누설이라면 이 법으로 처벌하는 것이 일단 가능은 하다. 판례가 있다면 추가 바람.
그리고 고해의 내용이 되는 사실이 타인에게 알려질 경우, 고해자의 명예를 훼손하기에 충분한 사실일 경우, 성직자가 이를 발설하는 것은 명예훼손죄에 해당할 수도 있다. 이 경우에는 실질적으로도 형사처벌이 가능해진다. 정확하게는 형법에서는 고해성사라는 특정 종교의 특정한 의식에 대해서 보호하는 것은 아니고, 종교를 막론하고 직무상 지득한 비밀을 누설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는 것이다. 즉 교리와는 달리 고해성사가 아니라도 사제로서 지득한 정보까지 포함되며, 개신교, 불교, 증산도, 통일교 등 어떤 종교에서라도 '종교의 직'에 있는 자는 이 형법규정의 대상이 된다.

고해사제가 실수로 내용을 누설했다면 파문까지는 아니지만 제재는 따르며, 신자들에게는 "난 신부로서 기본적인 소양도 없는 사람입니다." 하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실수로라도 발설하면 절대 안 된다는 강박관념이 있어서, 사제들은 어지간한 고해 내용을 뒤돌아서면 잊어버린다. 유럽은 우리나라 가톨릭과 달리 신부가 한 곳에 꽤 오래 정착하는 스타일이고 신자 수(라기보다는 밀도)도 많지 않아 발설하면 심각한 위험이 따르는 경우가 많아 저런 금지 조항이 반드시 필요하지만, 한국은 사제가 정기적으로 이동하며 신자 수도 많아 실질적으로 무슨 고해를 했는지 잘 기억하지 못한다고 한다. 게다가 사실 고해성사 보러 오는 사람 대다수가 큰 죄가 아닌 때 되어서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심지어 사는 게 죄라고 하는 노인 분들도 계시다.

가끔 고해소 밖에까지 목소리가 들리거나 해서 의도치 않게 고해 내용을 듣게 되는 일이 있는데,(고해를 통역하는 사람 뿐만 아니라) 다른 신자도 절대로 발설해선 아니된다. 우연히 듣게 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지만... 혹여 남이 고해한 내용을 듣게 되면 비밀을 지킬 의무가 있다 는 것을 명심하자. 사실 고해소가 제대로 방음 공사가 되어 있다면 남의 고해 내용을 듣는 것이 매우 어렵긴 하다.

이런 원칙에도 불구하고 이걸 깬 것으로 의심되는 사례가 있다 남미 지역에서 몇몇 성직자가 반체제 운동가의 고해성사를 누설하였다는 의혹, 그리고 105인 사건 당시 귀스타브 샤를 마리 뮈텔[32] 주교의 행동이다. 다만, 의심되는 사안의 상당수가 독재자나 식민지 당국자에 대한 '미래에 저지를 일'을 고해한 것으로, 윤리적으로 비난의 여지는 있겠지만 고해사제가 비밀 준수를 지켜야 할 의무가 없는 것들이었다. "내일 독재자 아무개를 제거하겠다."고 밝힌 것은 미래에 일어난 것을 고해한 것이고, 자기의 범의를 밝힌 것이기 때문에 고해성사를 악용한 것이므로 사죄경을 줄 수 없고, 설사 사죄경을 주었더라도 고해성사의 성사성을 모독한 모고해로 고해사제가 비밀준수의무를 지켜야 하는 것이 아니다. 자세한 내용은 바로 아래 '내용누설 금지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 것'을 참조.

CSI 7기 5화에서는 한 여자를 두고 신부와 함께 삼각관계였던 남자가 여자를 살해한 뒤 그 신부에게 찾아와 그 여자를 살해하였음을 고해성사를 통해 밝혔지만 신부는 이를 그리섬에게 밝히지 않고, 오히려 성직자로서의 본분을 어긴 죄책감 때문에 자신이 범인이라고 거짓 자백을 하였다가 그리섬에 의해 진상이 드러났다.

2.1.3.1. 내용누설 금지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 것[편집]

첫째, 고해자 혹은 고해의 내용이 특정되지 않은 것이다. 성직자들은 예비자나 일반 교우들에게 올바르게 고해성사를 보는 방법에 대해 설명을 하며, 그릇되게 고해하는 몇 가지 예를 든다. 통회의 태도를 보이지 않으면 고해성사의 은총을 받을 수 없는 대표적인 예로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못살게 군 것을 고해하면서 핑계삼아 며느리의 잘못에 대해 주절히 늘어놓는 것'을 설명하는 것 말이다. 여기서 구체적으로 교우 아무개가 이런 고해를 했다고 떠벌리는 것(실명누설)은 당연히 내용누설 금지원칙에 반하는 것이다.

둘째, 미래에 범죄를 저지를 예비음모를 하고 있다고 고해하는 것이다. 어떤 범죄자가 범행의 실행 준비를 완료하고 착수하기 전에 고해 사제에게 찾아갔다. 그가 범죄 음모를 꾸민 것을 뉘우치고 '다시는 그런 짓을 저지르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였다면 그것은 비밀 유지 의무의 대상이다. 그러나 범죄 음모를 뉘우친 것도 아니요, "앞으로 범죄를 저지를 테니 용서해주세요" 라며 고해성사를 단순히 종교적 수단으로 이용하려 한다면 이는 잘못된 고해의 태도이다. 고해성사가 유효하게 성립하려면 형식적으로 사제의 사죄경이 있어야 하지만, 실질적으로 고해자가 고해에 앞서 하느님의 마음을 상해 드린 것을 진심으로 가슴아파하고[33],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이 있어야 한다. 과연 "앞으로 범죄를 저지를 테니 용서해주세요" 한 사람이 다시는 범죄를 짓지 않겠다는 결심을 한 것일까? 아니다. 오히려 범행 전에 미리 고해성사를 보아, 자기의 죄값을 줄이려고 하는 꼼수의 발로일 수 있다. 즉 이러한 경우의 고해는 무효이며 오히려 고해성사의 신성성을 모독한 죄가 된다. 사제도 비밀준수 의무가 없다.

2.1.4. 여담[편집]

가톨릭 고해성사 중 매우 유명한 일화로, 바로 위에서 설명한 프로테스탄트의 창시자인 마르틴 루터의 고해성사 관련 에피소드가 있다.

마르틴 루터는 원래 어릴적부터 우울증을 앓고 있었고, 극심한 회의주의와 세심증(죄에 대한 강박증)에 빠졌는데, 수도자가 되고 나서도 시도 때도 없이 20년간 평생 지은 죄를 총고해 해서 4시간이고 6시간이고 고해신부를 잡아놓고 놓아주지 않았다.

그 중에서 가장 압권인 게 하루는 무려 장장 6시간 동안 쉬지 않고 고해해서, 듣고 있던 신부가 참지 못하고 루터에게 욕설을 퍼붓고 고해소 밖으로 뛰쳐나갔다고 한다.그 날 이후 루터가 고해성사를 하려 하면 신부들이 죄다 루터를 피해다녔다고... 그래서 본의 아니게 다른 신부들이 그의 고해신부가 되길 꺼려하자 결국 루터를 눈여겨 본 독일 아우구스티노 수도회에서 가장 높은 직위인 주교대리 신부 요한 폰 슈타우피츠가 루터의 고해신부를 맡을 수밖에 없었다.

고해성사랍시고 '임재범의 "고해"를 부르면 안된다. 그건 신성모독이 성립될 여지가 있다!

고해성사의 비밀 유지에 관해 가장 유명한 이야기로 19세기 말 프랑스의 뒤믈린 신부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성당의 문지기가 거액을 헌금하러 온 신자를 살해하고 그 사실을 사제에게 고해하였는데, 사제는 방에 돌아와서 신자가 죽어 있는 것을 보고 문지기의 소행이란 것을 바로 알았지만 고해성사의 비밀 엄수 조항 때문에 그 사실을 말할 수 없었고, 문지기가 흉기를 사제의 방에 숨겨두고, 거짓 증언까지 하는 바람에 사제가 대신 체포되어 종신형을 선고받고 지옥같은 교도소에서 중노동을 하게 되었다. 사제는 25년 후에야 문지기가 사실을 자백하여 돌아올 수 있었는데, 이 사건은 지금까지도 고해성사의 비밀 엄수 조항에 대해 강의할 때 꼭 나오는 이야기이다.

다만 실제로는 문지기는 거짓 증언을 했으므로 뉘우치지 않았다고 볼 수 있고 따라서 신부도 비밀 준수의 의무가 없었다. 참고하자.

자신이 소속된 본당 신부는 물론 인접 성당 신부한테도 고백하기 껄끄러운 죄를 고해하고자 한다면, 수도회 사제나 인접한 타 교구 소속 사제한테 고해성사보는 팁이 있다.

2.2. 정교회의 고백성사[편집]

정교회에서는 고해성사를 '고백성사'로 번역하는데, 정교회의 고해성사와 가톨릭의 고해성사의 가장 큰 차이점은 정교회는 공개된 장소에서 신부님을 직접 대면하고[34] 성사를 본다는 것이다.

정교회에서는 인간이 죄를 짓는 것을 일종의 병처럼 생각하며, 어떤 인간이 어떤 죄를 고백하는지 사제가 마치 의사처럼 진단해주고 치료하는 관점에서 바라보기 때문에 고해소 같은 것은 없다. 이런 점 때문에 훨씬 시각적인 의식이 곁들여지는데, 보통 예수 그리스도의 성화상 앞에서 복음서십자가를 앞에 두고 사제는 고백자와 나란히 서서 '에피트라힐리온'이라는 사제의 영대로 고백자의 머리를 덮은 뒤 '하느님의 주권으로 하느님의 종 아무개를 용서하소서'라고 사죄경을 외운다. 이때 예수 그리스도 이콘 앞에서 의식이 치뤄지는데 이는 가톨릭의 대리인적 관점이 아닌 증언자, 집행자의 관점에서 치뤄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정교회도 가톨릭과 마찬가지로 비밀 엄수 의무가 있다.

2.2.1. 교리와 전통[편집]

정교회의 고백성사 교리는 가톨릭과 거의 비슷하다. 비밀엄수 의무에서부터 교회의 중요한 7성사로써의 가치를 지닌다. 또한 신자가 죄의 용서를 받기 위해 반드시 받아야 할 성사인 것도 비슷한 위상이다. 하지만, 지역에 따라 고백성사의 실천 모습은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그리스-비잔티움 문화의 영향을 받은 지역의 교회에서는 고백성사가 반드시 성체성사와 연결되어, 영성체를 하기 전에 반드시 해야만 하는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 사제의 판단에 따라 영성체 후에 고백성사를 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고, 고백성사를 보기 전에 충분한 회개의 시간을 갖도록 권고가 된다. 신자가 매주 성당 예배에 참여하는 사람이라면 사순시기나 대림시기에 고백성사를 보는 정도도 괜찮다고 본다. 때문에 이 영향권에 속한 정교회 한국대교구에서는 신자들이 보통 부활 대축일 전이나 성탄 대축일 때 고백성사를 받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신자가 고백성사를 자주 보는 것 또한 권고하며, 특별히 성찬예배가 있기 하루 전에 고백성사를 보며 영성체를 준비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러시아-슬라브 지역에서는 고백성사와 영성체의 긴밀성을 고려하여[35], 반드시 성찬예배 전에 그 날 참석한 모든 신자들이 고백성사를 받아야 하며, 이 고백성사를 본 뒤에 영성체가 가능하다. 때문에 조금이라도 규모가 있는 성당의 경우에는 성찬예배 전은 물론이고 성찬예배가 진행되는 중이라도 신부 중 1명이 성당 한 켠에 자리잡고 영성체 전까지 예배가 진행되는 가운데 따로 고백성사만 베푸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한편, 신자는 자신의 고백 신부를 '영적 아버지'로 여기며, 가급적이면 고백신부는 한 신부님에게 보는 것을 권고받는다. 이는 정교회 고백성사가 '의사가 환자를 치료한다'는 관점에서 비롯하여, 한 영혼의 상태를 깊이 이해하고 조언해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신부에게 받는 것이 고백성사를 현실에서 더욱 유의미하게 할 수 있다는 점이다.

고백성사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진심 어린 통회가 필요하며, 전적으로 하느님에 대한 사랑에서 기원해야 하는 등 고백성사를 충분히 준비하기 위한 전통은 가톨릭과 역시 대동소이하다. 다만, 보속의 경우에는 그것이 '대사'로써 잠벌을 경감하는 효과가 있다거나 아주 필수적인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 보속은 정교회에서는 단지 영혼의 치료를 위해 쓰이는 하나의 치료 도구일 뿐이며, 그것이 '대사'나 '벌을 면하게 해주는' 효력이 있다고 보지 않는다.

2.2.2. 절차[편집]

준비된 장소에 고백신부와 고백자가 함께 이콘 혹은 십자고상 또는 복음경 앞에 서는 것으로 시작한다. 정교회에서 주로 쓰이는 시작기도와 '삼성송', '주님의 기도' 등을 한 뒤, 고백자는 시편 51편의 일부를 기도로 바친다. 그 뒤 사제가 다음의 성가를 드림으로써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2.2.2.1. 사제의 준비기도[편집]

+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무력한 우리 죄인들이 주께 간구하오니,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주께 의탁하오니, 우리에게 진노하지 마시고, 주의 자비로 우리의 죄악을 살피소서, 우리를 굽어보시고, 원수의 손에서 건져 주소서, 주는 우리 하느님이시고 우리는 주의 백성이오며, 또한 우리는 주의 손으로 찢어진 피조물이므로, 주의 이름을 부르나이다.

이제와 항상 대대로 있나이다. 아멘.

지극히 복되신 테오토코스여, 우리에게 당신 자애의 문을 열어주소서. 당신께 바라오니 우리가 방황하지 말게 하시고, 당신의 도움으로 악행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당신은 그리스도 신자들의 구원이시나이다.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12번)


+ 주님께 기도합시다. 우리 구세주 하느님이시여, 주는 나단 예언자를 통하여 참회하는 다윗의 죄를 사하시고, 마나세의 통회의 기도를 들어 주셨나이다. 비오니, 사람들을 위하시는 주의 끊임없는 사랑으로, 여기 나와 범한 죄를 뉘우치는 주의 종을 받아들이시고 주의 눈을 돌리소서. 주는 죄를 용서하시고 죄악을 눈감아 주시나이다. 주께서는 일끼지 "나는 죄인이 죽는 것을 원치 않고 뉘우쳐 살기를 원하노라.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여라"라고 말씀하셨나이다. 주의 엄한 위풍은 비할 데 없고 주의 자비는 한없사오니, 주께서 사람의 죄를 살피신다면, 감당할 자 누구이리까? 그러나 주는 회개하는 이들의 하느님이시나니,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이제와 항상 대대로 영화를 바치나이다. 아멘.

+ 주님께 기도합시다. 주 예수 그리스도여,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이시여, 목자이시고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어린 양이시여, 주는 두 채무자의 빚을 탕감해주시고, 인간의 죄를 용서하셨나이다. 자애로우신 주여, 여기 나온 주의 종(들)을 위하여 주의 선하심을 애원하는 우리 기도를 들으시어 크신 자비로 그(들)의 죄에서 눈을 돌이키시고 영벌에서 구하소서. 주여, 주는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여 있을 것이며 땅에서 풀면 하늘에도 풀려있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나이다. 주 홀로 죄가 없으시니,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이제와 항상 대대로 영광을 드리나이다. 아멘.

2.2.2.2. 죄의 고백 권고[편집]

+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고백을 들으시러 이 자리에 보이지 않게 계십니다. 수줍어 말고 두려워 말고 아무것도 숨기지 마십시오. 불신이 범한 모든 것을 숨김없이 고백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용서를 받으십시오.

또는

+ 당신은 하느님과 내 앞에 서 계십니다. 아무것이나 부끄러워 말고 말씀하십시오. 당신은 나에게 고백하는 것이 아니고 이 자리에 계시는 하느님께 고백하는 것입니다.

2.2.2.3. 고백과 사죄경[편집]

신자는 고백을 한다. 필요한 경우 사제는 질문을 하고 답을 받을 수 있다. 고백자는 가급적이면 자신이 지은 죄를 간결하되 그 핵심을 분명하게 이야기해야한다. 또한 숨김없이 자신이 알아낸 모든 죄를 고백해야 한다. 고백이 끝난 뒤 사제는 죄에 대한 적절한 교훈과 훈계를 내리며, 동시에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이나 경우에 따라 필요한 보속을 신자에게 말하는 등 죄의 용서와 극복을 위한 일련의 조언을 해준다. 이후 사제의 청원기도가 이어진 뒤 바로 사죄경이 내려진다.

+ 이 비천한 몸이 당신의 고백을 들었습니다만, 부당하고 죄 많은 나로서는 이 세상에서 당신의 죄를 사해드릴 권능이 없습니다. 하느님 홀로 죄를 사하십니다. 그러나 주께서 부활하신 후 사도들에게 "누구의 죄든지 너희가 용서해주면 그들의 죄도 용서받을 것이고, 용서해 주지 않으면 용서받지 못한 채 남아 있을 것이다"라고 하신 거룩하신 말씀에 힘입어, 나도 당신에게 선언합니다 : 이 비천한 나에게 당신이 고백한 모든 죄와 모르고 있거나 생각해내지 못한 모든 죄를 하느님께서 현세와 후세에 용서해주시리이다.

고백자는 머리를 숙이거나 무릎을 꿇는다. 그리고 사제는 자신의 영대(에피트라힐리온)을 고백자 머리에 올려 덮는다.

  • 사죄경 1양식 : + 주님께 기도합시다. 주 하느님, 주의 종들을 구원하시는 자비롭고 너그럽고 어지신 주여, 주는 우리 죄를 애석하게 여기시며, 죄인들이 죽는 것을 원치 않으시고 뉘우쳐 살기를 원하시니, 여기 나온 주의 종(아무개)을 불쌍히 여기시고, 뉘우치는 마음을 주시며 죄의 용서와 사죄를 베푸시어 그가 고의로나 무의식 중에 범한 모든 죄를 사하소서. 또한 주의 거룩한 교회에 그를 화해시키시고 일치시키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성자와 더불어 주께 권능과 찬미가 이제와 항상 대대로 있나이다. 아멘.

  • 사죄경 2양식 : + 주 예수 그리스도 우리 하느님이시여, 주는 베드로와 죄녀의 눈물을 보시어, 그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자기 잘못을 깨달은 세리를 의롭게 만드셨나이다. 비오니 주의 종(아무개)의 고백을 받아들이시고 주의 선하심을 보이시어 그가 고의거나 무의식중이거나 알거나 모르면서 범한 생각과 말과 행실의 모든 죄를 사해 주소서. 주 홀로 죄를 사하는 권능이 있나이다. 그러므로, 주 예수 그리스도와 주의 영원하신 아버지와 지극히 거룩하시고 선하시며 생명을 주시는 성령과 함께 이제와 항상 대대로 영화를 바치나이다. 아멘.


사제는 사죄경 끝을 외우며 십자 성호를 영대로 덮은 고백자 머리 위에 표시한다. 이로써 고백이 끝나며 고백자는 일어나 영대, 자신 앞에 있는 이콘이나 복음경, 십자고상에 입을 맞춘다. 사제는 고백 폐식기도를 바친 뒤, 십자 성호를 고백자를 향해 가볍게 그으며 강복하며 "다음부터는 죄를 짓지 말고, 평화로운 마음으로 가십시오"라고 마지막 인사를 한다.

2.3. 성공회의 고해예식[편집]

성공회에도 가톨릭과 비슷한 형식의 고해가 있으나, 교리적으로는 '성사'로 보지 않고 '예식 또는 준성사'로 본다. 하느님께 직접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는 교리를 수용하는 넓은 의미의 개신교라서 성공회에서 고해는 가톨릭에서와 달리 신앙생활에서 필수가 아니다. 즉, 다른 개신교단처럼 신자가 죄를 직접 하느님께 고백해도 되고, 가톨릭처럼 사제를 통해 고해를 해도 되는 하이브리드한 시스템이다.

가톨릭의 판공성사처럼 주기적인 고해예식이 의무화된 것도 아니다. 오히려 신자 본인이 진정으로 고해하는 것에 의미가 있다고 보아, 제도적으로 고해를 강제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따라서 고해를 하는 신자가 현실적으로는 거의 없다. 오죽하면 성공회 내부에서도 고해소가 창고로 쓰이고 있다고 한탄할까.[36][37] 아무튼 그래도 할 수는 있으며, 이런 성공회의 분위기를 다른 방향으로 생각한다면, 고해성사를 하게 되면 진심을 담아 드리는 매우 의미 깊은 예식를 시행하게된다

성공회의 고해 형식은 가톨릭과 비슷하다. 당연히 가톨릭 수준의 비밀 엄수 의무가 있다. 성공회의 교회법에서도 고해 내용의 누설은 성직 박탈 사유로 규정되어 있다.

고해소도 고교회파의 예배당에나 있고, 저교회파의 예배당에는 고해소가 없는 경우도 있다. 참고로 대한성공회는 대체적으로 고교회파적 성향이 강해서 성당에 고해소를 두고있는 경우가 많으나, 대한성공회 내에서 상대적으로 저교회파의 성향이 강한 부산교구의 성당들에는 없는 경우가 흔하다. 고해소가 따로 없는 성당에서는 사제와 신자가 단 둘이 성당 내 조용한 공간에서 예식을 진행하게 된다. 장로교 신자의 눈으로 본다면 상담을 좀 더 기독교 전통에 맞추어 한다고 생각하면 큰 무리가 없을 듯 하다.

2.4. 성공회를 제외한 개신교의 고해예식[편집]

보통은 그런 거 없다.

성공회는 5개의 예식(준성사)라 해서 신앙생활의 필수요소로 요구하지는 않고, 다만 그 예식을 교회의 전통으로 존중하기라도 하지만, 나머지 개신교 교파에서는 만인사제주의에 어긋나고, 비성경적인 예식이라 하여 고해예식을 아예 배척한다.
특히 칼뱅파 교회(장로회) 등에서는 고해예식에 대한 정서적 거부감이 강하다. '하나님께 직접 회개를 해야하지, 왜 사람인 사제/목사한테 회개를 해야하느냐'며 고해를 신학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 다만 루터교회에서는 예배 전에 목사가 죄의 용서를 선포하는 의식이 있고 일부 개혁교회에서도 에큐메니즘의 영향을 받은 경우 예배 절차 중에 '회개의 기도' 순서가 포함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다만 이러한 절차가 포함되어 있는 루터교회에서도 절대 다수의 교단들은[38] 성사로 여기지 않으며, 목회자에게 '개인적'으로 죄를 고백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사적으로 목사에게 자신의 죄에 대해 상담을 받거나 자문을 구하는 등의 경우가 없지는 않다. 다만 이러한 경우에도 성사라거나 예식 등으로 권위를 부여하는 경우는 없다. 엄연히 성도 사이의 '조언'(단순 상담)으로 간주될 뿐.

그러나 안타깝게도 모든 교회가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기에 국내 일부 교회 관련 행사나 수련회 등에서 자질이 의심되는 강사가 간증을 강요하는 경우도 있다. 제대로 된 고백이라고 볼 수도 없는 것이 애초에 들어주는 사람이 목사/사제가 아니다. 제대로 된 고백이 되려면 최소한 고백을 하는 사람과 들어주는 사람 사이에 신뢰와 애정이 있어야 되는 데, 그것도 전혀 아니다.[39] 이것은 정신적 학대 행위이며, 당연히 비밀 보장이 될 리도 없기에 당사자가 이후에 사회적으로 크게 곤란해질 수도 있다. 소설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원제:The Education of Little Tree)에 잘 나와있다.

이런 행위를 윗동네에서 바로 자아비판이라고 부른다. 당연히 이따위 엉터리 짓을 이행할 필요는 전혀 없으니, 당신이 독실한 개신교인인데 이런 상황을 겪는다면 스트레스 받지 말고 당연한 소리 몇 마디 하고 대충 넘기거나 이런 엉터리가 어딨냐며 조목조목 반박하자.[40] 대한민국 국적 보유자라면 헌법 제19조에 의해 양심의 자유를 보장받는다는 것을 명심하자.

박노자의 경우는 과거 나갔던 교회에서 공개 기도를 시키자 정신적으로 난교 파티를 강요당하는 기분이었다고 한다.

3. 사죄경[편집]

고백성사 시 사제가 죄의 용서를 선언, 혹은 기원하는 형태인 기도문. 사제가 이 사죄경을 하지 않으면 그저 '고백'했을 뿐이지 하느님의 용서를 받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중요하다.

가톨릭의 사죄경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용서하기 바라며, 교회의 직무 수행으로, 나도 그분의 권한을 가지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당신의 죄를 사합니다."

라는 형태로 돼 있다. 사제가 자신의 권한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인으로서 교회에 맡겨진 권한을 행사한다는 관점이 잘 드러나 있다. 또한 그 기도문이 간결하며, 필요한 요점만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동방교회의 사죄경과 대비된다.

비잔티움 전례를 사용하는 정교회에서는 "나(사제)는 그대(신자)가 하느님 심판대전 앞에서 단죄받지 않기를 빕니다."라고 하느님의 용서를 기원하는 형태로 돼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다윗, 베드로 등 성경 속 인물들의 죄가 용서받은 사례를 거론하며, 이 사람이 알게 모르게 지은 모든 죄를 그와 같이 용서해달라고 하느님께 청하는 내용이다. 동방 교회의 특징대로 대단히 문학적인 표현을 사용했기 때문에, 기도문 자체는 실로 아름다운 대신 장황하며 매우 길다.)

하지만 러시아 문화권의 영향을 받은 정교회에서는 사죄경이 가톨릭의 것과 비슷하다. 즉, 그리스도의 대리인 관점이 반영되어 교회에 맡겨진 권한으로 죄를 사하는 형식인데, 이는 17세기 표트르 대제서유럽 문화 유입 시기에 반영된 교회 문화이다. 이 시기 러시아 정교회는 서구적 리얼리티를 담은 이콘 문화, 성경의 정경 목록 설정 등 많은 면에서 가톨릭의 영향을 받았다.

4. 관련 문서[편집]


[1] 賞給, 여기서는 회개와 신앙에 대한 보상으로 천국에서 얻게 될 영광과 행복을 의미한다.[2] 아우구스티노급은 아니지만, 바로 그 다음급으로 유명한 네임드 교부이다. 화려한 말빨 덕에 '황금의 입'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한국 가톨릭에서는 '요한 금구(金口)'라고도 부른다.[3] 가톨릭에서 고해성사의 성서적 근거로 드는 구절이다.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가 말하는 '너희'는 12사도들을 말하는데, 이때 사도들은 그리스도로부터 신자들을 인도하는 권한과 사죄권을 받았고, 사도로부터 이어진 가톨릭 사제들도 이 사죄권을 가지고 고해성사를 집행하여 사도 시대와 마찬가지로 신자들의 죄를 적법하게 사하는 것.[4] 이는 세례 이후에도 죄에 떨어지기 쉬운 인간을 회개와 구원으로 이끈다는 고해성사의 취지를 잘 설명해주는 비유다.[5] 마태오 복음서 16잘 19절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도 풀릴 것이다.", 요한 복음서 20장 22절~23절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6] 십계명과 교회법을 의도적으로 어긴 죄로서 지옥에 떨어지는 죄악들. 예를 들어 고의적인 강도나 도둑질, 주일미사에 빠지고 냉담하는 행위, 미신행위, 성적 간음(동성애 행위 포함), 음란죄 자위행위 등.[7] 이렇게 고해성사로 죄 사함을 받은 후에도 남는 벌을 잠벌이라고 하는데, 교황청에서 가끔 베푸는 대사를 받음으로써 없앨 수 있다. 다만 대사는 이 잠벌만 없애는 것이지 고해하지 않은 죄까지 없애는 것은 아니다. 중세의 면벌부 사건은 이 대사를 남발하는 바람에 벌어진 일이다. 대사는 사실 교황의 고유 권한이고, 당시에도 원래 교회에 공적이 높은 사람에게 주는 것이 보통이었지만. 대성전을 지을 비용을 조달한답시고 남발하는 바람에.. 현대에는 크게 기념할 만한 일이 있을 때에나 뜻깊은 해일 경우에 선포한다. 가장 최근의 대사는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당시에 있었다.[8] 동명의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의 소설과는 관계 없다.[9] 개신교세례성사성체성사 두가지를 제외한 나머지 다섯가지 성사는 아예 인정하지 않는다. 다만 혼인성사의 경우는 영미권과 같은 기독교 문화의 전통이 있는 곳에서는 교회에서 일반 결혼식을 하기는 한다. 그나마도 개신교의 대표(?)로 고해 풍습이 남아있는 성공회세례성사성체성사만 '성사'로 부르고 나머지 5개는 '성사적 예식'으로 구분하고 있어 이를 대하는 격이 조금 다르다. 결국 성사로는 보지 않는 것.[10] 보통은 자리가 비면 바로바로 들어가서, 한 쪽의 신자가 고백하는 동안 반대편에 앉아 있는 신자는 조용히 죄를 회개하며 기다리다, 사제가 자기 쪽으로 돌아서면[11] 고해성사를 시작하는 식으로 진행된다.[11] 이때 드르륵 하고 자기 쪽 고해창을 여는 소리가 들린다.[12] 십계명과 교회법을 의도적으로 어긴 죄로서 지옥에 떨어지는 죄악들. 예를 들어 예를 들어 고의적인 강도나 도둑질, 주일미사와 의무 대축일 미사에 일부러 빠지고 냉담하는 행위[13] 점을 보는 등의 미신행위. 또한 성적 간음죄도 있는데, 부부관계를 제외한 혼외 성관계(혼전 성관계 및 간통 등), 동성 간 성행위, 타인에게 성폭력을 가하는 것, 포르노 등 음란물 이용, 자위행위 등등이다. 사회에서 도덕적으로 지탄받거나 범죄가 되는 내용들 중 상당수도 포함하지만 일반인들 기준으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내용들(예시로 음란물을 보고 자위행위를 하는것.)도 많이 포함한다.[13]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다면 고해성사 대신 묵주기도 5단과 선행, 성경읽기 등으로 대신할 수 있다. 여기서의 어쩔 수 없는 사정은 정말로 어느 곳에서도 미사 참석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했거나 많이 아팠거나 등의 사정을 말한다.[14] 예를 들어 음란물을 보고 자위행위를 했다거나, 누군가에 대해 일부러 험담을 했다거나.[15] 사실 죄를 사하는 권한 자체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사도를 통해 사제들에게 전해진 것이고, 영성체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살을 접하면서 직접 예수 그리스도와 하느님을 영접하는 것이다. 때문에 소소한 잘못 정도는 영성체로서 사함을 받을 수 있다고 보는 것.(성경에서 자주 등장하는 예수의 옷깃만 만져도 병이 나았다 같은 구절과 일맥상통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성체 전에 고해성사를 하는 이유는 죄 없는 몸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실천한 상태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위한 준비 의식 같은 것이라고 보면 된다.[16] 사실 꼬박꼬박 성당에 오는 할머니나 아주머니 등에게 이런 말을 하시는 경우가 많다. 한 신부님은 어차피 같은 잘못 잘 안 고쳐져서 일상적으로 반복하면서 그걸 자꾸 고백하면 그것도 모고해에 해당할 수 있다고 보시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시며 하느님은 잘못을 반복할 것도 이미 다 알고 계시므로 아 내가 그동안 정말 잘못했구나 싶을 때, 고쳐야겠다는 결심이 섰을 때 고백하는 걸 더 좋아하실거라는 설명을 덧붙이기도 했다. 죄의 크기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고해 때의 참회의 의미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보라는 의도.[17] '하느님의 대리인인 사제'로서 통회의 성사를 집전한다는 의미이다.[18] 제대로 방음처리된 고해소의 경우, 다른 편에 있는 신자가 고해하는 내용과 사제가 그 신자에게 보속을 주는 내용이 정말 제대로 안 들린다. 대화가 웅웅거리는 작은 소리로 들릴 뿐.[19] 마태오 복음서 3장 8절 "당신들이 회개했다는 증거를 행실로써 보이시오."[20] 어떤 성당에서는 고해소 칸의 머리 위쯤 되는 위치에 구멍이 있었고, 이 구멍으로 신부님이 손을 넣어 꿀밤을 때리는 경우도 있었다. 진짜 때리는 경우는 고해한 죄가 너무 괘씸할 경우였다나...[21]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EBS 영어교재에 나온다! 여기서는 한 여자가 다른 사람의 흉을 보고 다니다 걸려서 같은 아파트에 사는 노인에게 해결법을 묻는다. 이에 노인은 닭을 사서 털을 뽑아 길에 뿌리라고 시킨다. 여자가 닭털을 다 뿌리고 오니까 이번엔 주워오라고 시킨다.[22] 죄의 용서는 나의 노력(보속)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의 결과이기 때문에, 보속을 행하지 않았다고 해서 고해성사를 통해 받은 죄의 용서가 취소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신학적으로는 행하지 못한 보속만큼의 댓가를 연옥에서 마저 치르게 된다고 본다.[23] 비슷한 예로, 정신과 의사들도 환자들의 상담을 들어주는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니라고 한다.[24] 원칙적으로 통회(뉘우침)란, '두 번 다시 그 죄를 짓지 않겠다는 강한 결심'이며 고해성사 전에는 이것이 필요하다. 물론 '아... 내가 잘못한 거 같다. 하지 말 걸' 정도의 느슨한 후회 역시도 '불완전한 통회'로 취급되며, 이러한 불완전한 통회를 통한 고해성사 역시도 분명 유효한 효과(죄의 용서)는 있다. 그러나 죽을 죄(대죄)에 대하여 불완전한 통회조차 하지 않고 고해성사를 할 경우, 모고해가 되어서 얄짤없이 신성모독이 성립된다.[25] 신부님 신부님 우리 신부님의 등장인물인 공산주의자 읍장 빼뽀네는 앙숙인 돈 까밀로 신부가 공산당에 반대하는 강론을 하자 밤중에 까밀로에게 달걀과 몽둥이세례를 퍼붓곤 다음날 그를 찾아가 고해성사를 했다(...). 열받은 까밀로 신부는 예수님의 허락을 받고는 빼뽀네의 엉덩이를 걷어차는 것으로 복수했다(...).[26] 다만, 보속을 바칠 수 없는 게 아니라 깜박하고 보속을 하지 못했다면 그냥 하면 된다(...). 지난주에 고해성사를 보고 보속을 깜박해서 못한 걸 다시 성사를 보면 십중팔구 그 보속을 그냥 바치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그러니까 못했다면 그냥 그 보속을 하면 된다. 저번 고해는 저번 고해고 이번 고해는 이번 고해인 것이다.[27] 다만 모르고 한 경우는 일반 고해성사로도 된다.[28] 낙태는 자동 파문의 제재가 가해지는 중죄로 이에 대한 사면 권한이 일반 사제에게 위임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국의 경우 낙태로 인한 자동 파문의 사면이 본당 주임신부에게 위임되어 있다. 낙태 고해성사 - 그러나 프란치스코 교황은 11월 21일 자비의 희년의 폐막과 함께 발표한 교서 <자비와 불쌍함>에서 자비의 희년 동안 일반 사제에게 허락되었던 낙태에 관한 권한을 영구적으로 부여하였다. http://www.cpbc.co.kr/CMS/newspaper/view_body.php?cid=661387&path=201611[29] 이 규정 때문에, 중세 종교개혁의 원인이라고 일컫는 대사의 이해에 대해 오해가 생기는 경우가 있다.[30] 그런데 루터는 아우구스티노 수도회에 1505년에 입회했고, 사제 서품을 받은 것은 1507년인데다가 1508년부터 비텐베르크 대학에서 철학강사로 임용되며 신학박사 과정을 이수했기 때문에 실제로 수녀들의 고백을 들었을 가능성이 저조한 것으로 파악된다. 아마 일화 자체가 사실이 아니거나, 다 떠나서 질문 자체의 불순한 의도에 폭발한 에피소드일 가능성이 높다.[31] 형법 제317조(업무상비밀누설) ① 의사, 한의사, 치과의사, 약제사, 약종상, 조산사, 변호사, 변리사, 공인회계사, 공증인, 대서업자나 그 직무상 보조자 또는 차등의 직에 있던 자가 그 직무처리 중 지득한 타인의 비밀을 누설한 때에는 3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7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②종교의 직에 있는 자 또는 있던 자가 그 직무상 지득한 사람의 비밀을 누설한 때에도 전항의 형과 같다.[32] 천주교 서울대교구 제8대 교구장[33] 이를 신학적 용어로 '상등 통회'라고 한다.[34] 물론 일단 사제만이 내용을 들을 수 있게 되어있는 점에선 같다. 사실 초대교회에서는 교회에서 모두에게 공개된 상태로 죄를 고백했다. 하지만 기독교가 로마에서 공식 인정되고 이후 국교화되자 사람들이 몰렸고, 예전 같은 도덕성을 기대할 수 없게 되어 공개적으로 하되 사제만 듣게 바꾸었다. 가톨릭은 완전히 기밀로 만들었다는 점만 차이가 있다. 하긴, 이건 당시 사회 환경을 고려하면 당연히 벌어질 변화였다.[35] 바오로 서간에 나왔듯이, 영성체는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죄를 알고 이를 뉘우치고 용서받은 사람만이 할 수 있다.[36] 성공회는 고해를 기독교 전통으로서 존중할 뿐이어서, 성당에 고해소가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37] 성공회에서는 고해가 흔한 일이 아니라서 사제님께 고해를 하고 싶다고 말씀드리면 좀 당황하신다. --당황하시는 이유 중에 고해소를 치워야 되는 것도 있을지도..[38] 가톨릭적인 양식이 강하게 남아있는 북유럽국교회들에서도 마찬가지다[39] 심지어 거기에 모인 사람들이 모두 기독교인인지도 확인하기 어렵다.[40] 단 애초에 이런 일이 생길 정도면 행사 주최측이 문제가 있는 것이다. 문제 제기를 제대로 해보고 고칠 기미가 전혀 없다면 교회를 옮기는 것이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