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급배반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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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원인
2.1. 정보의 부재2.2. 무조건적인 지지2.3. 이익 판단 착오2.4. 사회문화적 보수주의2.5. 심리적 정당화2.6. 역린2.7. 계급과 가치의 불일치2.8. 대안부재
3. 사례
3.1. 대한민국3.2. 미국
4.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사람들은 반드시 자기 이익에 따라 투표하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정체성에 따라 투표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투표합니다. 그들은 자기가 동일시하고 싶은 대상에게 투표합니다. 물론 그들은 자기 이익과 자신을 동일시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자기 이익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은 무엇보다도 자기의 정체성에 투표합니다. 그리고 자기의 정체성이 자기 이익과 일치한다면 두말할 것 없이 그쪽으로 투표할 것입니다. 이 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람들이 언제나 단순히 자기 이익에 따라서 투표한다는 가정은 심각한 오해입니다.


People do not necessarily vote in their self-interest. They vote their identiry. They vote their values. They vote for who they, identify with. They may identify with their self-interest. That can happen. It is not that people never care about their self-interest. But they vote their identity. And if their identity fits their self-interest, they will vote for that. It is important to understand this point. It is a serious mistake to assume that people are simply always voting in their self-interest.

- 조지 레이코프(G.Lakoff),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Don't Think of an Elephant) 19페이지(원문 기준) -

"압제자들의 손에 들린 가장 강력한 무기는 바로 압제 받는 자들의 마음이다."
(The most potent weapon in the hands of the oppressor is the mind of the oppressed.)

- 스티브 비코[1] 자서전 <I Write What I Like> 中


자신이 속한 사회적 계층에 불리한 정책을 내놓는 세력의 정당이나 후보에 투표하는 경향이다. 유권자들이 자신과 그의 가족, 그가 속한 집단에게 이익을 안겨 주겠다고 하는 세력에 투표하여 권력을 주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일반적인 생각과는 달리, 전 세계에 걸쳐 자신이 속한 계급의 이익에 반하는 세력에게 투표하는 사례가 자주 발견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런 유권자들의 투표 자체를 두고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을 뿐더러 문제에 분석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2] 실제로 유권자들은 자신의 이익을 고려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다른 요소들도[3] 특정 후보나 정당을 지지하는데 변수가 되는 것이 현실이다.

어쨌든 계급배반투표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다양한데, 크게 다음과 같은 것을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2. 원인[편집]

2.1. 정보의 부재[편집]

정치에 관련해 세부적인 부분에 관심이 없거나 이해를 못하는 경우. 미국에서는 '정보 수준이 낮은 유권자'[4]라는 용어로 정의한다. 특히 정보화시대에 접어들면서 정보격차 문제가 더욱 부각되고 있다.

유권자가 표를 줘야 할 정당 또는 후보가 내세우는 공약과 정책에 대해 잘 모를 경우 해당 정당/인물이 내세우는 정책이 자신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할지 모르는 상태로 표를 줄 가능성이 커진다. 이러한 문제를 최소화하기 위해 다양한 장치(정책토론회, 선거공보 등)를 마련하지만, 정치에 무관심한 사회 분위기가 커질수록 이러한 수단도 그리 효과를 발휘하기 어려워진다. 거기에 미디어에서 의도적으로 후보자/정당의 정책보다는 흥미 본위 위주의 신변잡기식, 경쟁구도 위주의 보도를 할 경우 이런 현상은 더욱더 심각해진다. 특히 미디어가 정치권력이나 대기업의 강한 영향력 아래에 있을 경우 이런 편향적인 미디어노출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정보가 부재한 상태에서 유권자들은 투표 자체를 포기하거나 자신의 이익과 배치되는 정책을 지지하는 정당/후보자에게 투표할 가능성이 커진다. 또한 이러한 상태에서는 아래에서 설명할 인물/정당 투표 성향이 매우 커지게 된다.

가령 2017년 들어서 미국에선 도널드 트럼프오바마 케어 폐지 주장에 열광하면서, 자신은 ACA법안의 혜택을 받고 있으니 괜찮다는 한 열성 트위터리안의 이야기가 화제가 되었다. 참고로 오바마 케어의 정식명칭이 ACA법안이다 그러니까, 내용도 모르면서 자기 발등이나 찍으라고 인터넷에서 날뛴 것이다. "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을 국내 언론들이 발제자의 이름을 따서 간단하게 김영란법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미국 언론들도 "환자보호 및 부담적정보험법(Patient Protection and Affordable Care Act, PPACA)"이란 긴 법률안을 대부분 오바마케어라고 부른다. 하지만, 미국의 주류언론들이 대부분 오바마케어 vs 트럼프케어 식의 대결구도로 보도하면서 실제 오바마케어의 내용에 대해선 제대로 보도하지 않으면서 이런 해프닝이 나온 것이다. 실제 ACA 법안의 혜택을 받고 있는 대다수의 빈민층 유권자들이 오히려 도널드 트럼프의 오바마케어 폐지 주장에 동조한다는 여론조사가 나오기도 했다.

2.2. 무조건적인 지지[편집]

각 후보자나 정당의 정책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유권자들은 상대적으로 더 많이 알려진 인물, 그리고 더 큰 정당을 지지하는 성향을 보이게 된다. 각 정당에서 선거철만 되면 학계나 재계, 연예계에서 인물을 영입하려는 것도 이러한 인물 투표를 유도하기 위한 부분이 있다. 실제로 유명인은 자신의 인맥을 동원한 선거 활동에 도움을 주며, 대외적으로는 해당 업계의 이익을 대변하는 대리인이라는 입장이 주어진다. 여기에 더해 학연, 지연 등 자신과 인연은 있지만 이익과는 그리 관계가 없는 부분이 투표에 영향을 주기 쉬워진다. 우리가 남이가 같은 지역감정 자극 발언도 계급배반투표를 유도하는 대표적인 사례다.[5]

특히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이 어떤 판단을 하는지 봐 두었다가 자신의 판단을 정하는 현상도 상당한 이목을 끄는 정치심리학적 주제다. 즉 자신이 어떤 정치적 의사결정을 할 자신이 없을 때, 자신이 평소에 지지하고 동일시하는 정당이 어떤 판단을 하는지에 맞추어 자기 생각을 정하는 것. 이를 두고 정당 휴리스틱 이라고 부르는데, 특히 저소득 저학력자들이나 특정 정당에 깊이 관여하는 사람들이 이런 휴리스틱을 자주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 이들은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이 추구하는 가치가 자신의 가치와 동일하다고 믿는다. 거꾸로 어떤 사람이 "나는 이 정당을 지지하지만, 이번에 보이콧을 한 것은 잘못된 선택이었다", "나는 이 정당을 안 좋게 보지만, 이 법안을 발의한 것은 굉장히 잘 한 일이다" 의 발언을 자주 하는 편이라면, 그는 정당 휴리스틱에서 상당히 자유롭다고 볼 수 있다.

2.3. 이익 판단 착오[편집]

한 정당이나 후보자는 다양한 분야의 생각이나 정책을 갖고 있고 그것은 다양한 형태로 유권자의 이익과 이어진다. 특정 정당이 100% 특정 세력의 이익만을 보장하거나 손해만을 강요하는 일은 없으며 이익이 있는 정책이 있다면 손해를 끼치는 정책도 있다. 유권자는 그러한 부분을 가려 자신에게 손해보다는 이득을 더 크게 주는 정당과 세력을 지지하는 것이 이성적이다. 하지만 자신에게 안겨질 이익과 손실에 대한 판단이 정확하지 못할 경우 적은 이득만을 안겨주고 더 큰 손해를 안겨주는 세력을 지지하게 되는 계급배반투표를 하는 일이 벌어진다. 예를 들어 한 채의 아파트를 보유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집값이 오를 기대에 부동산 활성화를 공약으로 내세운 친재벌, 친부자 성향 정당에 투표하는 것. 기대한 이익이 기대한 수준 또는 그 이상으로 현실화가 되면 다행이지만 많은 경우 기대한 이익은 미미하거나 아예 배반을 당해 실현이 불가능하고 손실이 더 크게 다가오게 된다.

2.4. 사회문화적 보수주의[6][편집]

대학에서 학위를 받은 인텔리 중하류층, 중산층, 중상류층들은 서민층, 저소득층에 비해 습득한 지식과 정보량이 많고, 특히 인문사회계열 출신인 경우 대학에서 교양이나 전공[7]수업에서 '비판적 사고'(critical thinking)를 접했을 것이다. 이런 배경에서 중하류층, 중산층, 중상류층이 보수정당 대신에 자유주의 성향 혹은 진보 성향의 정당을 지지하는 경우가 적지 않게 생겨난다. 강남좌파 참조.

반면에 상대적으로 학력이 낮은(고졸 이하[8]) 서민층이나 저소득층의 경우 대학에서 '비판적 사고' 교육을 접하지 않았을 것이고 정보 획득 수단이 TV나 신문과 같은 매스미디어가 거의 전부라 정치, 사회 문제에 대한 교양이 인텔리층에 비해 뒤떨어져, 리버럴, 진보 성향의 일부 식자층보다 '전통적인 가치'[9]를 중시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부모나 연장자, 선배[10]한테 맞아가면서 익힌 위계적 문화에 익숙하기 때문이다.[11] 진보 정당에 투표하자니 가부장주의, 위계적 문화를 중시하는 자신들의 가치관과 충돌하기 때문에 그들의 반지성주의 혹은 보수적 가치관을 충족시킬 수 있는 보수정당에 투표하는 경향이 나타나는 것이다. "진보정당이 복지 증진에 나서는 것은 좋지만 호모질이나 조장하는 먹물들이라서 싫다."는 표현이 이런 정서를 대변한다. 진보, 리버럴 지지세력 혹은 정당을 '먹물들'이라 부정적으로 보는 저소득층, 저학력층의 반지성주의도 보수정당 투표의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2.5. 심리적 정당화[편집]

사회심리학 및 정치심리학 분야에서는 위의 "보수 정당과 자신의 동일시" 접근과 본 단락의 접근으로 계급배반투표 현상을 설명해내고 있다.

지난 1994년, 편견을 연구하던 사회심리학자 존 조스트(J.T.Jost)는 일찍이 카를 마르크스 이후 제기되어 온 유서 깊은 의문, 즉 "세상이 이렇게나 시궁창인데 왜 피압제자들은 들고 일어나 압제자와 싸우지 않는가? 어째서 세상은 믿을 수 없이 조용한가?" 에 답하기 위해 체제 정당화 이론[12]을 만들어냈다.[13] 그리고 이 이론은 학계 내외부의 진보계 인사들의 지적 목마름을 채워주며 단박에 유명세를 얻었고 조스트는 스타가 되었다. 학자들에 따르면, 사람에게는 누구나[14] 어느 정도씩의 정당화 동기가 존재하고 있다. 어떤 이들은 이것이 너무나 만성적으로 고양되어 있어서 자발적으로 기득권과 체제의 수호자를 자처하지만, 어떤 이들은 우연한 계기로 어떤 "자극" 을 만났을 때 부지불식간에 살짝 영향을 받는 정도이다.[15] 이 동기는 정치적 보수주의를 강하게 예측하며, 사회적 약자들이 불평등과 불이익에 고통받으면서도 정작 투표만큼은 기득권과 현재 체제를 긍정하는 방향으로 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쉽게 말해, "나는 지금 뭣도 없이 무진장 괴롭지만, 그렇다고 해서 혁명 같은 건 하는 거 아니야" 심리라고 할 수 있다.

체제 정당화 이론에 따르면, 정당화 동기는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 첫째, 사람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열악한 환경과 그 사회구조를 긍정함으로써 사회의 변화가 가져오게 될 불확실성과 예측 불가능성, 통제 불가능성, 가치의 다원성이 주는 인식론적인 위협을 피할 수 있다. 둘째, 기존의 체제는 고통스럽기는 할지언정 적어도 지금껏 자신의 목숨을 빼앗지는 않을 정도의 안전은 보장해 왔기에, 이 체제를 부정함으로써 발생하게 될 잠재적인 신변의 문제와 같은 실존적인 위협을 피할 수 있다. 셋째, 이렇게 사람들이 기존 체제를 긍정하다 보니, 여기에 혼자서 "NO" 라고 외치며 반기를 들었다가 주위의 눈총을 받고 불순분자, 모난 사람, 세상 사는 법을 모르는 사람 취급을 받는 관계적인 위협까지도 발생하게 된다. 따라서 이러한 위협들을 피하기 위한 다양한 동기들이 어우러지면서 개인으로 하여금 "이래도 한 세상 저래도 한 세상!" 의 결론으로 이어지게 한다는 것이다.

2010년대 이후 이 이론은 학계의 지배적인 입지를 굳혀 가고 있으며, 점차 범위가 확장되어서 집회 및 시위와 같은 집합적 행동(collective action), 그리고 그 결과 나타나게 될 사회적 변화(social change)의 주제까지도 설명의 포커스를 넓혀 가고 있는 중이다. 또한 이를 통해서 "그렇다면, 어떨 경우에 사람들은 체제를 정당화하게 되고 계급을 배반하게 되는가? 어떻게 개입하면 이들을 정의롭지 못한 사회에 맞서 저항하게 할 수 있는가?" 와 같은 질문들이 속속 연구되고 있다.

2.6. 역린[편집]

사람은 자신의 이득을 어느 정도 포기하더라도 절대적으로 지켜내고자 하는, 일종의 역린 같은 부분을 갖고 있다. 이 키워드에 해당되는 정치 세력은 자신에게 아무리 유리한 공약을 제시하더라도 표를 주지 않으며, 반대로 자신을 무시하는 정책을 하더라도 표를 주게 된다.

대한민국의 경우 빨갱이, 북한, 친일파, 미국 같은 키워드가 유권자의 감성을 자극하는 대표적인 키워드인데, 6.25 전쟁을 겪은 나라의 현실에서 여전히 이 전쟁을 체험했거나 전쟁 직후의 어려운 시기를 보낸 장년층과 노년층이 많기 때문이다.[16]

미국 역시 기독교 가치관이 강한 보수적인 주를 중심으로 사형, 낙태, 마약, 동성결혼 같은 것이 비슷한 파괴력을 갖는다. 이런 주에서는 진보 중심의 민주당이 아닌 보수 중심의 공화당 몰표가 나타난다.

2.7. 계급과 가치의 불일치[편집]

높은 지위에 있거나 재산이 많은 경우 상대적으로 자신의 계급에서 세금이 크게 늘어나는 것을 바라지 않고 불로소득에 대한 과세에도 부정적으로 반응한다. 하지만 일부 사회 지도층은 오히려 자신들의 이익을 줄이고 부담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이러한 사례는 일부라고 할 수 있으며, 목적 역시 100% 자신의 정치적인 지향점만을 반영하지도 않는다. 지나친 부의 집중에 대한 사회의 비판을 피하고자 하는 목적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자신의 권리를 내려 놓는다는 개념은 아니며, 얼핏 보면 계급에 배반되는 것 같은 주장도 내가 덜 얻겠다보다는 내가 더 하겠다라는 것에 가깝다. 자본주의의 돼지들보다는 오히려 이들이 진짜 계급에 걸맞는 일을 하는 셈.

2.8. 대안부재[편집]

그 어느 정당도 자신의 이익을 대변하지 못할 때 차악을 선택하는 의미로 특정 정당을 찍어 주는 경우가 있다. A당이 별로지만 A당을 상대하는 B당의 무능함이 도를 지나처서 제대로 기능하지 못할 때, 아무리 "내가 A당이 싫어도 B당보다 A를 찍어 주는 것이 그나마 낫다"는 식으로 찍어주는 경우가 해당된다. 일종의 전략적 투표에 가깝다.

3. 사례[편집]

3.1. 대한민국[편집]

대한민국은 정부수립 이래 특정한 계급을 주요 지지층으로 하는 제대로 된 계급정당이 권력을 가져본 역사가 없다. 다시 말해 진정한 의미의 계급투표도 없었던 것이다.

대한민국은 조선 후기, 일제강점기, 한국전쟁을 거치며 완전히 신분제도가 붕괴되고 처음부터 쌓은 국가이다. 이 때문에 유럽처럼 노동자계층, 귀족계층 같은 구분 자체가 전혀 없이 나이, 재산같은 비계급적 가치로 사람들 사이에 수직적 서열을 정하는 사회라 뚜렷한 계급분화가 없기 때문에 계급배반투표가 일어나는지 아닌지 알 길이 없다. 계급배반투표가 분명히 드러나지는 않는 상황에서 지적한 여러 원인이 복합적으로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정치권과 언론은 정치 혐오 사항을 부추기며 의도적으로 유권자가 자신의 계급을 대변할 수 있는 정당과 후보를 알기 어렵도록 한다. 지역감정학연, 지연으로 얽매인 현실은 자신의 이익을 크게 침해하지 않는다면 자신을 대변하지 않는 정치 세력을 투표하도록 이끈다. 정치에 무관심해진 유권자는 정치의 판을 바꿈으로써 자신이 얻을 계급적인 이득을 판단하지 못하고 불분명한 환상에 이끌려 표를 준다. 반면 종교 그 자체가 계급배반투표를 부르는 원인이 되지는 못한다.

계급배반투표가 반복되면 기존 정치 세력은 유권자를 쉽게 확보된 자산으로 보고 공약 파기를 밥먹듯이 하거나 아예 극단적인 특정 계급만의 이익을 위한 정책 수립에 나서게 된다. 이러한 문제를 막으려면 원칙적으로 모든 정당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결과를 주지 않는다는 점을 알게 된 유권자들이 경제적으로 불리한 결과를 낳는 기존 정당에 계속 투표하기보다는 자신들의 이익에 맞는 새로운 정당을 창당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다. 하지만 경제적인 능력이 약한 집단이 대규모 정치 조직을 창설, 유지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만큼 현실은 시궁창에 가깝다. 여기에 더해 하위 계급을 대변한다는 노동자, 좌파 정당이 원내에 진출하는 정도의 성과는 거두지만 수권정당으로서 다수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명확한 정책적인 비전을 보여주지 못하는 문제가 크다.

특히 민주화 이후로도 현재까지 한국 정치지형은 두 보수정당에 뿌리를 둔 자유한국당계 정당과 민주당계 정당의 양당체제로 이어져왔다. 때문에 처음부터 계급분화가 뚜렷하지 않았고, 계급의식이 따로 없으며, 특정 계급계층을 주 지지층으로 하는 정당이 없는 이상 애초에 계급배반투표가 불가능하다. 제도정치권 내에는 중하층 노동자[17], 도시빈민, 영세상인 등 경제적 저소득층, 사회문화적 저학력라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정당이 없거나 미약하다.[18][19] 이런 현실은 "어차피 찍어봐야 바뀌는 거 아무것도 없다"라는 식의 정치적 무관심 내지 포기로 이어져 선거 때마다 저조한 투표율로 드러나게 된다.[20][21] 농반진반으로 다들 서민을 자처하고 다들 서민정당을 자처하니 배반할 계급(의식)도 계급정당도 없는 것이다.

물론 1992년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의 사례에서와 같이 민주당(1991년)김대중 후보는 농촌 유권자의 친 민자당노태우성향을 비판하며 유권자의 책임을 지적한 바 있고 이미 30년 전부터 계급배반투표의 논리가 공식적으로 쓰였다 할 수도 있겠다. 1992년 대선 김대중 후보 민주당 유권자 책임강조 그러나 1992년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이전까지 좌파 사상 자체가 금기였으며, 좌파나 노동자 정당 역시 거의 대부분이 90년대 말기에 등장한 후, 현실적 의미있는 득표나 국회의원등의 선출권력을 가져본 사례는 겨우 2000년대 초부터이다.

3.2. 미국[편집]

4. 관련 문서[편집]


[1] Steve Biko, 1946~1977, 아파르트헤이트에 맞서 싸운 남아공의 흑인운동가. 경찰의 모진 고문으로 사망했다. 리처드 애튼버러의 영화 <자유의 절규>를 통해서도 널리 알려졌다.[2] 사실 유권자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계산기를 두들겨가며 투표해야지 합리적이라는 생각도 100%맞는 소리가 아니다. 가령 비기득권 유권자 A가 친기득권 정당을 지지하는 같은 비기득권 유권자들을 합리적이지 못하다고 비난한다면, 이는 반기득권 정당을 지지한 기득권층 또한 합리적이지 못한 유권자라고 비난하는 것과도 같다. 그리고 유권자 A는 언젠가 기득권이 되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반드시 친기득권 정당만을 지지할 것이라는 뜻이 된다. 투표행위의 본질은 민주주의 체제에서 의사 반영의 수단이지, 반드시 이익 관철의 수단이 아니다.[3] 가령 후보나 정당의 신념, 의지, 인간관도 있고,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전략투표를 할 때도 있다.[4] Low information voter(LIV)[5] 당시 지역감정 유발에 대한 정치적 혹은 도덕적인 비판과 지지철회보다 지역의 유권자들을 결집시키는 효과가 더 강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자.[6] 혹은 반지성주의[7] 특히 법학, 정치학, 사회학, 행정학[8] 넓게는 전문대졸 이하[9] 가령 가부장주의,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 연장자 및 상급자에 대한 절대적 충성 등[10] 군대 상관, 선임병 포함[11] 공장일이나 노가다와 같은 일과 끝내고 술 마시고 집에 돌아와 자식, 아내에게 권위적으로 대하는 남성 가장의 이미지가 이것에 딱 부합한다.[12] System Justification Theory(SJT)[13] Jost & Banaji, 1994.[14] 심지어 사회 운동가들이라 할지라도![15] 예컨대 사회 운동가들은 체제를 정당화하는 자극을 접했을 때는 파업이나 점거 등을 좀 더 일찍 끝내려는 경향을 보이고, 체제에 저항하는 자극을 접했을 때는 "이렇게 된 이상 끝까지 간다!" 며 결의를 다지는 경향을 보인다고 한다. 또한 언제나 체제를 정당화하는 미국 보수들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슬로건을 외치지만, 일시적으로 체제를 정당화하는 자극을 접한 리버럴의 경우 "같은 값이면, 기왕이면 국산을 사야겠지?" 정도로만 나타나게 된다고.[16] 아무리 더불어민주당이 자신의 이익에 부합하여 표를 던지고 싶어도 북한에 대한 유화적인 태도에 못마땅해하며 차라리 자유한국당을 찍겠다는 사람이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17] 흔히들 이야기하는 비정규직, 특수고용, 외국인, 하청영세기업 등등[18] 진보정당으로 40년 만에 국회에 진출했던 민주노동당은 초창기에는 조직화된 노동자계급이 진보정당의 기반이라는 고전적인 서구의 사회변혁이론을 맹신해서 대기업 정규직 노조 위주의 노동운동에 이끌려 다니면서 비정규직과 특수고용, 영세기업 노동자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고 그 뒤에는 NL계가 득세했다. 그 사이에 경제적 저소득층, 사회문화적 저학력층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데 실패했고, 사실상 중산층 급진주의 혹은 실제 저소득층과는 접점이 없는 고학력자들의 관념적 엘리트 정당이 되버렸다.[19] 그 후계라 할 수 있는 진보신당, 통진당, 정의당, 노동당 모두 비슷한 오류에 빠져서 갈수록 세가 축소되고 있다. 정의당이 비정규직 투쟁에는 소극적이다 아파트 중산층한테만 어필하다가 메갈논란으로 한방에 주저앉은 것도 이런 맥락이다.[20] 가령 2000년 이후 총선과 지선에서 대체로 45~50% 사이의 투표율을 보였다. 거의 절반 가까운 사람이 투표를 하지 않는 것이다. 단적으로 한달에 200만 원도 못버는 식당아줌마, 마트 캐셔, 간병인, 하루벌어 사는 막노동자들에게 투표를 하나 안 하나 별 차이가 없다. 투표날 하루 더하고 일당 받는 게 현실적인 이득일 뿐이다.[21] 그나마 2010년대에는 대선 75%이상, 총선과 지선은 60%에 육박하는 투표율을 보이며 정치적 관심과 열망이 상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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