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번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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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트 앤 메일 / 경번갑 (Plate and mail/鏡幡甲)

쇠사슬로 짠 체인메일에 철판을 유기적으로 결합시킨 갑옷. 즉 체인과 철판이 일체화되어있다.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이슬람세계를 중심으로 전 세계적으로 쓰인 갑옷. 이슬람세계에서는 자우샨(jawshan:체인메일, 경번갑, 러멜러 아머와 같은 유연한 갑옷을 통틀어 부르는 말), 코라진(Korazin), 지르후 바그타르(Zirah Bagtar)등으로 부르며, 유럽에서는 스플린티드 메일(Splinted mail) 혹은 플레이티드 메일(Plated mail)로 부른다. 러시아에서는 특별히 연결 방식에 따라 구분해서 칼란타르(Kolantar)와 베흐체리츠(Bekhteritz)로 달리 부른다.

1. 경번갑의 개념과 역사2. 연결 방식에 의한 구분 - 베흐체리츠와 칼란타르3. 이슬람식의 경번갑 - 유쉬만4. 총기의 보급과 이슬람세계에서의 경번갑의 쇠퇴

1. 경번갑의 개념과 역사[편집]


체인메일은 분명히 자상을 유발하는 도검류의 공격을 막아내는데에는 뛰어나나, 유연하기 때문에 충격의 흡수나 분산이 잘 이루어지지 않아 타격계 공격에는 방어효과가 적으며, 또한 제작특성상 표면의 천공으로 인해 화살/투창 등의 관통성 투사병기에 취약하다는 단점이 있다. 이에 따라 철판으로 된 보강판이나 갑옷을 위에 덧입는 게 유행했는데, 그렇게 되면 매우 무거워지므로 아예 철판과 체인메일을 일체화시키고자 하는 아이디어가 경번갑의 기원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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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번갑의 기원은 달리 추정하기가 어려우나, 가장 오래된 경번갑으로 추정할 만한 것은 중동 지방에서 융성했던 파르티아 제국의 중기병 "카타플락토이"의 낙서이다. 오스프리 출판사의 삽화에서는 일관되게 체인메일에 복부를 철판으로 보호하는 경번갑의 양식으로 복원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해당 낙서는 정말 어린아이 낙서 수준의 그림이고, 보는 사람에 따라 체인메일이 아니라 어린갑으로 볼 수도 있게 그려져 있다. 실제로 러시아측에서 복원한 그림에서는 몸통 윗부분과 스커트 부분을 어린갑로 그려놓고 있으므로, 논란의 여지가 있다는 점은 분명히 해둔다.

경번갑의 전성기는 대략 13~16세기에 걸친 기간동안이었으며, 특히 러시아, 중동 등지에서 표준적이라고 할만큼 다량으로 사용되었다. 그 이전 시대에는 단순한 체인메일이나 러멜러 아머등이 주류를 이루었는데, 굳이 경번갑이 전성기를 맞이한 이유는 중동의 뜨거운 기후에서 통풍이 잘 되는 갑옷이 보다 적합했고, 또한 러멜러 아머는 튼튼하지만 세세한 부분을 가려주지 못하고(ex:겨드랑이 등) 체인메일은 세세한 부분까지 모두 가리지만 유연성 때문에 방어력의 약점이 있었으며, 둘을 겹쳐 입으면 무거워지므로 무게도 합리적이면서 방어력도 보완하는 경번갑이 주류를 이룬 것이다. 특히 이슬람세계의 경우, 동체 갑옷뿐만이 아니라 팔다리 방호구, 마갑까지 경번갑으로 만드는 경우가 일반적인 경향이었다.

인도에서도 이러한 경번갑이 있었으며 동남아시아 등지는 힌두 문화의 영향을 받아 경번갑 형태의 갑옷이 사용되었다.

철판의 두께는 0.6~2mm정도. 위아래가 겹쳐지는 베흐쩨리쯔 같은 경우는 0.6~1.2mm대이고, 철판 각각이 독립된 형태일 경우에는 0.8~2mm정도가 된다.

한국에는 고려 시대때 몽골의 침공 이후 두정갑처럼 몽골에게서 전례된것으로 추정된다. 실제 유물로도 고려시대의 정지장군의 경번갑이 현존하며, 국조오례의 등에선 조선 전기의 경번갑 제식이 규정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 초, 중기때까지는 많이 쓰였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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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말 정지장군의 경번갑 유물

국조오례의 서례에 실린 경번갑 그림

조선왕조실록 태백산사고본의 경번갑 그림.
경복궁 수문장교대의식에서 쓰는 경번갑은 이게 모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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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수문장 교대의식에서 쓰는 경번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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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촬영된 경번갑 사진.
국조오레의서례의 것과 거의 같으며, 찰갑의 철판을 빼어다 재활용한 것으로 추측되는 매우 특이한 방식으로 원래 가죽끈이 들어갔을 부분은 사슬을 끼워서 연결했다. 한국에서만 발견된 독특한 양식.
러시아인이 만든 사이트 The Red khanate에서는 Korean Mail and Lamellar로 지칭하며 소개하기도 했다.[사진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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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경번갑의 모습. 출처는 위키백과. 근접촬영 사진 링크
일본의 경우 타다미구소쿠라는 경번갑 형태의 양식이 있으나 대륙과는 관계가 없이 독자적으로 발전한 것이며, 많이 쓰이지도 않았다. 등장시대도 다른 지역보다 굉장히 늦다.[2] 다른 나라들의 경번갑이 보통 중세시기 중후반부부터 등장하는 데 반해 근세시대에 들어서야(더 정확히는 전국시대 중후기부터) 등장한다. 그러나 재질의 특성상 접어서 보관/이동이 편리하다는 점 때문에 일본사극에서는 무한한 애정을 갖고 실제 역사에서보다 자주 등장시킨다.(...)

2. 연결 방식에 의한 구분 - 베흐체리츠와 칼란타르[편집]

다른 문화권에서 경번갑은 연결방식 등을 따로 구분하지 않는 것에 비해 러시아에서는 연결 방식에 따라 따로 구분한다. 칼란타르(Kolantar:Калантарь)와 베흐체리츠(Bekhteritz:Бехтерец)가 그것이다. 양자의 구분 포인트는 철판의 4면으로 체인메일이 지나가는가, 아니면 양 옆만 체인메일이 지나가는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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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란타르. 철판이 서로 겹쳐지지 않고 4방향으로 체인이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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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G

(베흐체리츠. 철판의 위아래가 겹쳐지며 체인은 양 옆으로만 지나간다)


굳이 이러한 구분이 생긴 것은 칼란타르 양식은 13세기부터 등장하고 사용되었지만, 철판의 위아래가 겹쳐지는 베흐체리츠 양식은 16세기가 되어서야 러시아에 도입되었기 때문이었다. 사진은 하나는 소매가 있고 하나는 소매가 없으나, 실제로는 어느 쪽이든 조끼도 있고 코트도 있었다. 양자의 구분은 오직 철판이 어떻게 연결되느냐 뿐. 다만 칼란타르의 경우, 조끼 형태에 양옆이 열려 입고 벗는 방식이 비교적 많은 편이다.

방어력은 칼란타르보다는 베흐체리츠가 나은데, 화살이 관통할 수 있는 취약부위인 체인메일 부위가 칼란타르보다 적고, 겹쳐진 철판이 생각보다 유연성이 좋아 움직이기 편하기 때문이다.

3. 이슬람식의 경번갑 - 유쉬만[편집]


중동에서 대량으로 사용되었으며 러시아에서도 사용된 바 있는 경번갑 양식이 유쉬만(yushman)이다. 유쉬만이란 러시아식의 구분으로써 오스만(Ottoman)이라는 이름이 러시아식으로 변형된 발음이다. 페르시아어 자우샨(jawshan)의 변형이라는 견해도 있다. 유쉬만은 몸통 전체를 방호하는 타 경번갑들과는 달리 등판은 전체를 가리지만 앞부분은 배만 가리는 경우가 많은 것이 당장 눈에 보이는 특징이다. 이는 중요 장기들이 많고 취약하며 베일 경우 치명적 부상을 입기 쉬운 배와 취약한 등을 보호한다는 개념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상체까지 보호하는 경우도 있다. 부족한 방어력은 방패로 벌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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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총기의 보급과 이슬람세계에서의 경번갑의 쇠퇴[편집]


이슬람세계와 그 주변부에서 16세기까지 근 300여년간 전성기를 맞았던 경번갑은 16세기부터 이란차하르 아이네(Chahar-Ai-Ne)와 오스만 투르크Krug흉갑에 밀려 점차 쇠퇴하게 된다. 이는 16세기에 걸쳐 급속하게 보급되어 전쟁터의 경향까지 바꿔버린 화승총 때문인데, 화승총은 기존의 갑옷들에 대해 매우 심각한 위협으로 다가왔으며, 기존의 경번갑으로는 이러한 화승총에 대응할 수가 없었다. 따라서 보다 튼튼하고 단단한 단일 철판으로 이루어진 갑옷이 선택되었으며, 그것이 차하르 아이네와 Krug흉갑이었다. 이러한 갑옷들은 기존의 경번갑을 대신해 성공적으로 이슬람세계와 그 주변부의 새로운 갑옷 트렌드를 형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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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만 제국의 Krug흉갑. 중앙의 둥근 대형 원판을 중심으로 배열된 철판으로 이루어진 흉갑이며, 다른 부위와 일체화되지는 않는다)

krug흉갑의 경우 흉갑을 구성하는 각 철판들을 체인메일로 연결한 경우가 많아 경번갑으로 분류할 수도 있겠으나, 그 위치와 개념이 경번갑의 등장 요소인 체인메일과 철판의 결합이라기보다는, 철판이 중요한 요소이고 체인은 단지 각 철판들을 연결하는 링크에 지나지 않으며, 실제로 러시아나 인도의 경우 철판을 가죽끈이나 천으로 연결하여 흉갑을 구성하기도 하므로 경번갑으로 분류하기는 어렵다고 할 수 있다.

관련 문서: 고대~근세기 무기

[사진출처] : http://lyuen.egloos.com/5432862[2] 가뜩이나 사슬갑옷은 기름떡칠해놓지 않으면 녹이 잘 스는데 기후가 습한 일본에서는, 특히 전투가 잦아 걸핏하면 눈, 비, 이슬 다 맞고 돌아댕기는 시대에는 선호될 턱이 없다. 막말에나 옷 밑에 받쳐입는 호신용 방검복 용도로 쓰인 정도다. 그외로 사슬을 뺀 형태가 있는데 정으로 고정하지 않고 실로 꿰맨다. 실이 판과 판을 연결하는 이전의 방식외에 옷감 겉에. 사슬이 보호하지 못하므로 판짝이많고 촘촘하거나 치밀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