겐요샤

최근 수정 시각:

분류

玄洋社

파일:external/npodga.asia/e4997dc151d97d17a98c32a52b464742.jpg

1. 개요2. 상세

1. 개요[편집]

일본 우익의 원류(原流)라고 평가받는 결사단체. 1881년 메이지 유신에 따라 (도쿠가와 막부한테) 몰락당한 무사계급 출신들을 규합해 조직했다. 처음에는 국회 개설운동에 참가하는 등 민족주의·민권주의를 내걸었으나, 차츰 도야마 미쓰루를 중심으로 아시아주의를 표방하는 국수주의적 단체로 변모해 갔다. 뭔가 안어울리는 두 단어

2. 상세[편집]

청일전쟁러일전쟁 때에는 대외강경론을 주장하며 군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었다. 하부조직으로는 이용구와 함께 한일 합방 운동을 전개한 흑룡회(黑龍會)가 있다. 1945년 일본 제국이 패망할 때까지 일제 정치계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허나 패전 후 1946년 GHQ가 위험단체로 판단하고 강제해산시켰다.

1895년 10월 8일 이 단체소속의 토우 카츠아키라는 낭인경복궁에 침입, 명성황후를 시해하는 을미사변을 저질렀다. 그는 명성황후를 시해한 48명의 낭인 중의 한명으로 명성황후를 2번째로 베어 마지막 숨을 끊었노라고 스스로 자랑하고 다녔다고 한다. 당시 일본 공사였던 미우라 고로는 겐요사 회원 출신으로 명성황후 시해를 직접 계획한 인물이며, 일본 정부가 직접 시해에 가담했다는 증거를 은폐하기 위해 사조직인 겐요사의 낭인 3인을 직접 동원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들 48명은 일본 사법당국에 의해 살인죄로 기소됐지만 2년간의 복역 후 전원 석방됐다. 겐요사는 러일전쟁 때는 만주의군을 조직해 게릴라 활동을 하는 등 정치·전쟁·테러를 배후에서 조종하였다.